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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호세아

[스크랩] 호세아 6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23:24

호세아 6장 주석

 

========6:1


   본절에서 3절까지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 해석으로 나뉜다. (1)이스라엘 백성을 향

한 호세아 선지자의 권면으로 보는 견해(Keil). (2)회개의 날에 백성들 서로가 뉘우치

며 권면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Lange, Wood, Chrisholm). 이상의 두 가지  견해  모두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아마 이것은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와 태도를 독백과  대

화체의 형태로 표현한 것으로서 미래에 있을 백성들의 회개에 더 잘 부합되는 것 같다

(Harper, Ewald, Cheyne).

   우리를 찢으셨으나 - '찢다'의 히브리어 '타라프'(*      )는 사자가 먹이를  찢는

것처럼 심판이 가혹함을 암시한다(5:14;시 50:22).

   낫게 하실 것이요 - 5:14에서 예언된 멸망과 형벌은 이미 성취된 것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가 있을 경우 심판의 자리에서 고침을 받게 될  것임이  선언된다.

이는 백성들을 치료하고 회복시켜 주시는 여호와의 사랑과 주권적인 섭리를  보여주고

있다(신 32:39). 한편 이것은 여호와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백성들의 참된 회개를 전제

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달려 있음을 상기시킨다.


====6:2


   이틀 후에...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빠르고 확

실하게 성취될 것임을 표현한다(Keil, Cheyne, Lange, Chrisholm). 왜냐하면 이  숫자

들은 매우 짧거나 적은 것을 나타내는 동시에 가장 중요하거나 확실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왕상 17:12;왕하 9:32;잠 30:15;사 17:6;암 4:8). 그런데  유대인  학자들은

이를 연대기적으로 해석하여 '이틀'을 애굽과 바벧론 포로기로 '삼일'을 로마의  속박

과 관련시키거나(Kimchi), 또는 솔로몬 성전, 스룹바벧 성전, 메시야에  의해  세워질

성전의 '세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Rashi). 이와는 달리 많은 교부들과 주

석 학자들은 이 구절을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적용시킨다. 즉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

복은 3일만에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한다(Theodoret, Given,

Calvin, Butler). 결국 본 구절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뿐만 아니라 영적이고  도덕

적인 회복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즉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을 여호와께서 다시

소생시킬 뿐만 아니라, 메시야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릴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다(사 26:19;겔 37:1-14).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 직역하면 '그의 얼굴 앞에서'이다. 이는 여호와를 기꺼

이 받아들이고 그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의 섭리와 보호 아래서 살게 되리라는  의미이

다(창 17:18;렘 30:20).


=========6:3


  힘써 여호와를 알자 - 여호와를 '아는 것'(*      , 다아트)은 우상 숭배와 배교로

부터 돌아서려는 강한 열성을 내포한다(4:1,6). 이것은 계명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

랑하는 진실된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힘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다프'

(*      )는 '추적하다', '뒤따르다'란 뜻으로 여호와를 알고 섬기는 일에 온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열심히 좇아가는 것을 의미한다(신 30:2,3).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 '나오심'의 히브리어 '야차'(*    )는 해가

떠오르는 것을 나타낸다(창 19:23;시 19:5). 본 구절은 여호와의 임재가 새벽처럼  틀

림없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표현한다(사 58:8;60:2).

   비와 같이 - 여기서 '비'(*      , 게쉠)는 퍼붓거나 흡족하게  내리는  비로서(스

10:9,13) 10월 초부터 2월 말 사이에 오는 겨울비를 가리킨다.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 '늦은 비'(*          , 말코쉬)는 추수하기 전 3-4

월 중에 내리는 봄비로서 곡물의 수확에 가장 중요한 비이다. 한편, '땅을  적시는'에

해당하는 '요레'(*      )는 원래 '이른 비'(former rain, KJV)를  뜻하나,  여기서는

하필 미완료형(또는 칼 분사형)으로 사용되어 '마른 땅을 적시는'이란 의미를 갖는다.

이와같이 만물을 소성케 하는 겨울비와 봄비처럼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힘써 아는 백성

들에게 풍요로운 은총과 축복을 내리신다(레 26:4;신 11:14).


========6:4


  내가 네게 어떻게 하라 - 이 같은 여호와의 질문은 매우  부정적이다.  에브라임과

유다를 회개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노력은 모두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자포 자기나 절망을 표현하지 않는다. 다만 여호와의 관심이 백성들에게 집중되어  있

으나 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대조하고 있을 뿐이다.

   너희의 인애가...이슬 같도다 - '인애'(*      , 헤세드)는 여호와를 사랑하는  데

서 오는 충성이며, 이웃을 온유하게 대하는 자비이다(2:19;4:1).  이스라엘의  인애는

'아침 구름'(*             , 아난 보케르)과 '이슬'(*    , 탈) 같아서 쉽게  사라지

고 만다(13:3). 이는 그들의 신앙이 매우 변덕스럽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곧  경건의

가변성과 회개의 불완전함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들의 선행과 충성이 피상적이고  일시

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6:5


  그러므로...죽었노니 - 이스라엘의 이율 배반적인 태도는 급기야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다. '치다'의 히브리어 '하차브'(*      )는 도끼로 나무를  베거나,  연장으로

파내거나 잘라내는 것을 의미한다. 혹자는 이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스라

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조각하여 만드는 행위로 보았다(Jerome, Luther, Given).  그러

나 이것은 심판의 직접적인 행위, 즉 파괴를 가져오는 잘라냄을 뜻한다. 곧  선지자들

의 입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이 능력의 심판으로 나타났던 것이다(사 11:4;49:2;렘

1:10). 한편 70인역(LXX)은 '(거짓) 선지자들을 베어 넘어지게 했다'라고 번역한다.

   내 입의 말로 - '선지자들로'와 의미가 같다.  곧  여호와의  말씀을  의미한다(히

4:12).

   내 심판은 발하는 빛 - 원문에는 '네 심판', 곧 에브라임과 유다에게 내려지는  심

판임이  분명히  나타난다.  그  심판은  마치  빛처럼  나간다(goes  forth  as  the

light,RSV). 즉 백성들 위에 내려지는 여호와의 심판은 햇빛과 같이 분명하게  임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또한 그 심판은 명백하게 옳으며 의롭고 완전하다.


========6:6


  나는 인애를...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

나님께 대한 충성과 헌신뿐만 아니라 이웃을 향한 진실한 사랑까지도 포함한다.  만약

사랑과 진실없이 위선적이고 공허한 제사와 번제를 드린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

스러운 일일 뿐이다. 하나님은 거짓된 의식과 허울좋은 희생을 역거울 정도로  미워하

신다(사 1:11-17;암 5:21-24;미 6:6-8).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의식적

인 제사와 제물보다도 더없이 나은 것이다(막 12:33). 한편,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경건과  형식주의를  책망하고  긍휼과  자비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셨다(마

9:13;12:7). 따라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는 곧 하나님을 아는  참

된 지식이며 인애라고 볼 수 있다.


======6:7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 '아담처럼'(*        , 케아담)은 매우 다양하게 해석된

다. (1)'사람처럼'(like men, LXX, KJV). 일반적인 사람(욥 31:34) 또는 불신실한  사

람들로 보는 해석이다(Cheyne, Ewald, Henderson, Harper, Hitzig). (2)'아담에'(* 

     , 베아담). 요단 강 근처의 장소로 보는 경우이다(RSV, NEB, JB). (3)'아담처럼'

(like Adam, Keil, Lange, Pusey). 이상에서 (3)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게 보인다.  아

담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언약을 파기하였다(롬 5:14).

이와같이 에브라임과 유다도 여호와를 배반하고 언약을 지키지 않은 백성들이라는  것

이다.

   거기서(*    , 솽) - 이 단어는 앞의 '아담'을 장소로 생각하게 만든다(11:8 비교,

Admah). 그러나 여기서 '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패역한  행동을

한 장소를 나타낸다(시 14:5). 즉 넓게는 가나안 땅이고, 좁게는 벧엘이나 단과  같이

우상 숭배로 더럽혀진 장소를 말한다.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가드'(*     )는  신실치  못한

결혼 관계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고 반역하는 행위를 의미한다(5:7). 이는  이스

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기를 포기한 죄악된 위치에 있음을 시사한다.


=======6:8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 '길르앗'(*        )은 원래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기업으로 얻은 요단 동편의 넓은 땅을 가리킨다(수 13:8,11,25,31). 그런데 본

구절에서는 그곳이 고을, 즉 '성읍'(*        , 키르야)으로 표현되고 있어서  해석상

어려움이 제기되었다. 한편 학자들은 '길르앗'을 '라못 길르앗'(수 21:38)으로 보거나

(Henderson), 또는 길르앗의 중요 성읍인 '미스바'(삿  10:17,18)로  생각한다(Ewald,

Simson). 그러나 또 다른 학자들은 길르앗 전체 지역이 행악자들로 가득 찬 범죄 집단

임을 묘사하기 위하여 하나의 성읍으로 표현했다고 한다(Keil, Lange, Pusey). 즉  길

르앗 지역 전체가 행악자의 성읍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후자의 견해가 더 적합하

게 보인다. 어쨌든 길르앗 지역의 사람들은 매우 흉폭하고 살인적인 특성을 지닌 것으

로 기록된다. 그 증거로 길르앗 사람 오십 명이 베가의 반역에  동참하여  브가히야를

살해한 사건을 들 수 있다(왕하 15:25).

   핏발자취가 편만하도다 - 원문은 '피흘림의 발자취가 뒤따른다'라는 뜻으로서 보다

생생하게 피의 현장을 묘사해 준다. 이는 유혈과 살인으로 얼룩진 이스라엘의  비극적

인 상황을 극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살인 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역사

적 사건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혹자들은 이를 예후의 살인 행위(왕하 9,10장), 또

는 스가랴의 살인(왕하 15:10)과 연관시키지만(Jerome, Hitzig) 추측에 불과하다.  여

기서는 단지 살인자로 가득 찬 길르앗의 패역한 모습을 상기시킬 뿐이다.


=========6:9


  강도 떼(*          , 게두딤) -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도적의  무리를  가리킨다

(7:1). 

   제사장의 무리 - '무리'의 히브리어 '헤베르'(*      )는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서

로 연합하는 동료나 단체를 뜻한다. 당시의 제사장들은 살인과 약탈을 자행하기  위하

여 서로 협력해서 모였음을 암시한다.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 '세겜'(*      )은 길르앗과는 달리 요단  서편에  위치한

레위 지파의 성읍이자 도피성으로서(수 20:7;21:21) 사마리아로부터 벧엘에 이르는 길

못에 있었다. 여기서 세겜은 제사장들의 살인 장소로 언급되었다. 즉 제사장들의 무리

는 이스라엘의 북쪽으로부터 예배 장소인 벧엘로 가는 순례자들을 세겜 길에서 살인하

였다. 살인의 목적은 아마 약탈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제사장들의 탐욕과 잔인성을 보

여준다. 혹자는 이 살인을 제사장들의 거짓 가르침과 사회적 착취에 대한  과장법으로

생각한다(Chrisholm). 그러나 본 구절은 세겜 길을 점거하고 순례자들을 살인한  강도

행위를 지적하는 것이다.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 원문에 있는 '키'(*    )는 원인을 나타내지  않고,

'확실히'(NASB)란 뜻으로 제사장들이 진정 사악을 행했음을 심각하게  강조하는  것이

다. '사악'의 히브리어  '짐마'(*       )는  주로  성적인  범죄에  사용되었으나(레

18:17;19:29;삿 20:5,6) 여기서는 계획적인  책략에서  비롯되는  사악함을  의미한다

(Harper). 즉 제사장들의 온갖 가증스러운 행위가 의도적인  범죄였음을  시사한다(잠

10:23;21:27).


=======6:10


   이스라엘 집에서 - 이는 여로보암 성소가 있는 벧엘을  가리킨다(왕상  12:25-30).

그런데 종교의 중심지인 벧엘에서 하나님께 반역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북왕

국 전체의 타락을 증거한다.

   가증한 일(*            , 솨아루리야) -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일을

가리킨다(렘 5:30;18:13). 이는 이스라엘의 범죄가 하나님 앞에서 매우  증오스럽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에브라임은...더렵혔느니라 - '행음'(*      , 제누트)의 결과는  더럽혀지는  '부

정'(*      , 타메)이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제적인 음행을 가리킬 뿐만  아

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의 깊이 빠진 죄악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

편, '에브라임'은 한 지파가 아닌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다(4:17;5:3).


=========6:11


   유다여 - 원문에는 이 말 앞에 '감'(*    )이란 단어가 있다. 여기서  '감'은  '또

한', '똑같이', '마찬가지로'등의 뜻이다. 유다 역시 이스라엘과 같은 형벌의  운명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는 유다의 죄악이 진정 이스라엘보다 크거나 같다는  사실

을 암시한다.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 '사로잡힘'의 히브리어 '쉐부트'(*       )는

자유가 상실되고 고통으로 억압받는 포로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사로잡

힘이 앗수르나 바벧론에 의한 포로됨은 아니다. 단지 하나님을 배반하고 비참하게  된

이스라엘의 고통을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돌이킴'(*      , 슈브)은 포로에서의  정

치적 귀환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진노를 돌이켜 은총과

축복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Keil, Lange, Harper). 한편 본 구절을 7:1

과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있으나(RSV, NEB)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추수할 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치르'(*       )는 곡물의 수확을  뜻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상징한다. 즉 의인은 구원받고 악인은 멸망

을 당하게 되는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다(렘 12:13;51:33;욜 3:13). 하나님은 '심은 대

로 거두리라'(갈 6:7)는 말씀에 따라 심판하신다.

   정하였느니라 - 이는 심판이 유다에게도 임하도록 미리 정해져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유다를 사용할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Hitzig),

이스라엘과 똑같이 범죄하였던 유다 역시 심판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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