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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스겔

[스크랩] 에스겔 33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8:19

에스겔 33장 주석

 

=====33:1

 총 3부로 구성된 본서의 마지막 3부(33-48장)가 시작되는 곳으로 이제껏  이스라엘

과 주변 열강의 죄악을 지적하고 그 죄과로 말미암아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던

1부(1-24장), 2부(25-32장)와는 달리 이미 예루살렘이 멸망한 시점에서(32:1 주석  참

조) 선지자는 더 이상 심판에 의한 멸망을 언급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회복과

구원이라는 위로와 평강의 메시지로 그 예언의 내용을 전환시킨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심판 예고 중에서도 그들의 고토 귀환(11:17;14:22)과 회복된  나라에서의

여호와 경배(20:40-44)를 언급한 바 있는데 본 예언부터 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상세하게 기술된다. 이 3부는 크게 두 단락으로 대별되는 바, 그  첫째는  이스라엘의

고토 회복과 그 회복된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의 약속이며(33-39장), 둘

째는 하나님에 의해 회복된 새 나라에서 영원히 여호와만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예언

이다(40-48장). 한편 그 시작인 본장은 선지자의 파수꾼적 사명(1-20절)과 안악한  백

성들에 대한 경고(21-33절)가 기술된다. 혹자는 1-20절까지의 내용이 회복과 구원이라

는 3부의 내용과 모순된다는 점과 그 내용이 예루살렘 함락 직전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를 새로운 단락에 포함시키는 견해를 배격하고 1-32장까지에  대

한 선지자의 최종적인 결론으로 이해한다(Kliefoth, Hengstenberg). 그러나 이 심판적

내용이 앞으로 전개될 회개와 회복의 전제적 역할을 담당한다는 통시적인 개념과 구체

적인 연대의 언급이 중반부인 21, 22절에 나타나, 전후 단락의 내용을 하나로 이어 주

고 있다는 점으로 볼  때  본장을  3부의  서론부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Delitzsch).


=====33:2

 본절에서 6절까지는 일반적인 군대의 파수병에 대한 비유를 들어 파수꾼의  막중한

책임과 파수꾼의 경고에 대한 반응을 비유하여, 이스라엘의 영적 파수꾼으로 부름받은

에스겔 선지자가 전개할 예언의 내용을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 이는 예언의 대상이 다시 이스라엘 민족으로  환원된

사실을 가리키며 본장이 새로운 단락의 서론부라는 것을 지지하는 구절이다.

   칼을 한 땅에 임하여 - 여기서 '칼'은 고대 전쟁의 가장 중요한 무기였던 바, 여기

서는 대적의 침략으로 야기될 전쟁을 가리키는 제유법적 표현이다.


=====33:3

  나팔을 불어 - 이 말은 성경의 용례상 특별하게 백성들을 소집하기 위한 신호를 나

타내는 데 쓰여진 표현이다(Schroder). 한편 원어상 '나팔'(*        , 쇼파르)은 '새

기다'란 동사에서 파생되었는데, 이 염소 뿔로 만든 나팔의 용도는  연주용이라기보다

는 주로 축제 때 사람들의 마음에 특별한 의미를 새겨넣거나 전쟁 때 경각심을 일깨우

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었다(민 10:6, 7;왕상 1:34).


=====33:4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 '그 피'란 파수꾼의 나팔 소리에도 불구하

고 방비하지 않아 죽게 된 자의 피를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본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

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자기 죄로 인해 죽게 됨을 강조한다.


=====33:5

 본절은 4절에 선포된 내용을 부가적으로 설명하는 반복절이다.


=====33:6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 바 되려니와 - 본 구절에서의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적 의미

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2절) 그 죽음은 파수꾼의 직무에 관계없이 자신의  죄과에

대한 필연적인 심판의 결과임을 말한다.

   그 죄를 내가 파숫군의 손에서 찾으리라 - 이 말은 파수꾼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

무, 곧 백성들의 안녕과 보호의 직임을 게을리함으로써 백성들을 무방비 상태로  죽음

에 이르게 했다는 점에서 간접적인 살인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하나님은  그  죄값을

파수꾼에게서 찾으신다. 이 비유는 이스라엘에 있어 영적 파수꾼된  선지자의  책무와

그에 순종해야 하는 백성들의 의무를 적절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33:7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을 삼음이 - 실로 구약에 있어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그

백성들에게 닥쳐오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소식을 미리 대언해 줌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영적 각성과 여호와 찬양을 실천케 하는 영적 파수꾼으로 비유된다(렘 6:17).


=====33:8,9

  본문은 3-6절의 비유에 대한 해설에 해당한다.


=====33:10

  우리는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 예언의 새로운 전환을 시사하는  구절로

서 이제까지 지속되어온 에스겔의 심판 예고 사역이 바로 백성들을 영적으로 각성시켜

본절처럼 그들 스스로가 죄를 인식하며, 그 죄를 시인케 함으로써 철저한 회개와 구원

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한 것이었음을 암시한다(Schroder). 혹자는 이를 닥쳐온 심판

을 모면하기 위한 위선적인 고백으로 생각하기도 한다(Havernick).

   우리로 쇠패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 여기서 '쇠패하게'(*         , 네마킴)

는 '녹이다', '썬다'란 문자적 의미를 가지는 바, '어찌 능히 살리요'란 절망적인  고

백과 관련하여 죄가 인간에게 미치는 심각한 폐해를 잘 드러내주는 말이다.


=====33:11

 본절은 내용상 18:23, 32의 반복이다.

   악인의...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이  악인의

멸절이 아니라 그 죄로부터 돌이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임을 시사하는  구절로

(신 8:5, 6;히 12:9-11), 절망을 마주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를 통한  새로

운 구원의 소망을 확신시켜 주고 있다.

   돌이키고 돌이키라 - 연속적으로 반복된 원어 '슈부'(*       )는 '돌아가다'란 의

미외에 '회복하다', '새롭게 하다'란 뜻을 함축하고 있는 바, 본 구절에서 이 말은 단

순하게 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에서 떠남은 물론 철저

한 회개와 함께 새로운 신앙의 사람으로 그의 전인격이 회복되는 것을 가리킨다.


=====33:12

  의인이...구원치 못할 것이요 - 율법 주의에 얽매여 '자기의'(自己義)를 구원의 요

건으로 확신하는 유다인들의 보편적인 생각과 당시 선조들의 의가 자손에게  전가된다

는 그릇된 사상으로(18:20, 21) 인해 하나님의 심판적 징계를 회개와  구원의  전제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징계 자체를 이유없는 고난이라고 불평하며 심판적  경고

와 그에 따른 회개를 촉구하는 선지자의 예언을 무시하고 배격하는 자들을 염두에  둔

구절이다. 에스겔은 구원의 소망을 제시한 11절에 이어 그러한 자들의 왜곡된  구원관

을 경고하기 위해 20절까지 구원은 자기의가 아닌 회개와 새로운 신앙의 회복 속에 임

하는 것이며 개개인의 운명은 어느  누구도  아닌  다사자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는

(14:10, 14, 16, 18, 20) 하나님 심판의 기본적인 성격을 설파하고 있다.


=====33:13

 그 의를 스스로 믿고 - 여기서 '스스로 믿고'는 주관적인 확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자기의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 구절은 그러한 자가 죄를 범하면

서도 과거의 의가 자신을 구원하리라는 그릇된 확신 속에 안주하는 것을 경고하는  내

용으로 계속적인 의의 실행만이 구원의 조건임을 제시한다(Schroder).


=====33:14

 법과 의대로 행하여 - 여기서 '법'(*       , 미쉬파트)은 종교적, 도덕적, 법률적

의미에서의 정의를 가리키며 '의'(*       , 체다카)는 종교적, 도덕적 의미에서의 올

바름(right, NIV)을 각각 가리킨다. 따라서 '법과 의'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의롭

고 올바른 내적, 외적 상태를 포괄적으로 언급한 것이다(18:5). 이런 점에서 본  구절

은 '돌이켜 자신의 죄에서 떠나서'라는 앞 구절과 함께 진정한 회개란 단순히 죄를 떠

나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인격의 회복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바른 삶을 사는 것임

을 재삼 주지시킨다.


=====33:15

 14절에 언급된 '법'과 '의'에 따른 행위가 몇 개의 구체적인 실례로 기술된다.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 상반절인 대인(對人) 관계에 대한 의의 회복을 말한  것

이라면 본 구절은 대신(對神) 관계에 대한 회복을 가리킨다. 여기서 '생명의  율례'는

협의적으로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을, 광의적으로는 구원과 영원한 삶의  근거가

되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18:21;20:11).


=====33:16

  본절에 대해서는 18:22 주석을 참조하라.


=====33:17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된  자신

들을 이방인들과 같이 심판 대상으로 삼은 사실을 하나님의 공평치 못한 섭리로  받아

들였다는 의미로 최후까지 회개하지 않음은 물론 그 고난의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려

는 백성들의 가증함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만유 앞에  공평

하신 분이심을 깨닫고 회개했어야 하나 도리어 강퍅한 마음으로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려 했던 것이다.


=====33:18

  그가 그 가운데서 죽을 것이고 - 본 구절은 내용상 13절 상반절과  논리적  연관을

맺고 있다.


=====33:19

  본절은 11절, 그리로 14-16절과 내용상 상통한다.


=====33:20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 구약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였던  까닭에

모든 죄의 책임을 나누어 가져야 했다(사 6:5).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죄가 언

약 공동체의 공동 책임으로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의 죄를 결코

간과하지 않으신다. 곧 이스라엘의 죄는 공동체적 성격과 함께 개인적인 책임도  내포

하는 것이었다.


=====33:21

  본절은 선지자 예언의 새로운 전환부가 된다는 것을 연대기적  사실로  입증해주는

핵심 부분이다. 본장 이전에까지 언급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이 예루살렘의  함

락으로 성취되었으며 그 함락 뒤에 선지자에게 일어날 일을 예언한 24:25-27의 내용이

본절에서 성취되고 있다. 따라서 24:27의 예언대로 이제 선지자는 그 입을 열어  심판

뒤의 상황, 곧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게 될 구원의 소망을 선포하게 된다.

   십 이 년 시 월 오 일 - 예루살렘의 함락은 시드기야 왕 제 11년(B.C. 586)  4월의

일이었다(렘 39:2). 따라서 여기에 나타난 연대는 예루살렘이 함락된 지 18개월이  경

과한 시기로서, 이렇듯 오랜 시간이 경과한 뒤에 에스겔 선지자가 그 멸망 소식을  접

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그러한 연유로 많은 학자들과 사본들은  맛소라

사본의  '12년'을  '11년'의  오기로  본다(LXX,  수리아역,   Hitzig,   Doederlein,

Hengstenberg, Eichrodt). 또한 이러한 견해는 약 1세기가 지난 후 에스라가 동료들과

함께 똑같은 길을 4개월 만에 여행했다는 기록에 유추하여 볼 때(스 7:9)  에스겔에게

소식을 알린 도망자의 여정이 약 6개월 정도라는 사실과도 합치하는 바, 그  타당성이

인정된다 하겠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소식을 접한 시기를 에스겔이  잘못

길고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그의 예언이(24:25-27) 성취된 사실에 대한 특

별한 소식을 접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33:22

 본절에서 에스겔 선지자의 새로운 예언이 시작된 것은 결코 도망자의 소식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 때문임을 시사한다. 곧 본절에 사용된 동사  '임하여'

(*                   , 하예타 엘라), '여시더니'(*       , 이프타흐)가 모두  미완

료형으로 계속적인 동작의 상태를 나타내는 용법으로 쓰인 점과 '열리기로'(*       ,

이파타흐)가 '열리다'란 뜻을 강조하기 위한 강세 반복어란 점에서 선지자는 이미  도

망한 자가 소식을 전하기 이전 저녁부터 새로운 구원과 회복의 예언을 선포하고  있었

다고 볼 수 있다(Schroder, Delitzsch).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 본 구절은 에스겔이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  황홀경에

빠진 상태를 가리킨다(Michaelis, Delitzsch, Schroder).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였노라 - 곧 1-20절의 예언과 23절 이후의 예언을 구분지어

주는 말로 23절 이후의 예언은 도망온 자로부터 예루살렘 멸망 소식을 들은 후에 선포

된 것임을 암시한다.


=====33:23

  예루살렘 멸망 소식을 접한 선지자에게 처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직접적인  구

원과 위로의 선포 이전에 형식적인 선민 사상에 젖어있던 자들에 대한 책망의  형식으

로 전개된다. 곧 본절에서 29절까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그 당에 남아있는 유다인

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다.


=====33:24

 이스라엘 황무한 땅 - 여기서 '황무한'(*         , 헤라보트)은 원어상  성읍이나

집들의 파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본 구절은 예루살렘이 바벧론의 침략으로  철저하게

약탈되고 폐허가 되었기에(렘 33:10-13) 오히려 피신한 유다인들이  거주하는  곳보다

더 핍절한 환경이 되었음을 보여준다(Schroder).

   아브라함은...주신 것이 되느니라 - 본 구절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이라

는 사실에 집착해 여전히 죄악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고향에 남은 유다인

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준다(요 8:33, 39). 곧 그들은 아브라함이 혼자의 몸으로도 가

나안 땅을 하나님께 기업으로 얻은 바 되었으며 그 기업이 후손에게까지 약속된  것이

라는 사실을 들어, 죄악에 빠진 자신들의 상태를 망각하고 여전히 가나안 땅이 자신들

에게 회복될 것이며 심지어는 그 회복의 조건이 아브라함 때와 비교해 숫적으로  많은

자신들에게 훨씬 더 유리하다는 착각에 빠졌다. 실로 그들은 외적 조건에만 매달려 문

제의 본질, 곧 자신들이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의 자격을 상실했음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33:25

 본절부터 29절까지 그들의 구체적인 죄목이 종교적, 도덕적 측면에 걸쳐  포괄적으

로 나열된다.

   피 있는 고기를 먹으며 - 구약 이스라엘에 있어 피는 곧 생명의 상징이었기에 일찍

부터 이 피의 식용이 금지된 바 있다(창 9:4-6;레 17:12;19:26). 따라서 본 구절은 그

들이 피를 깨끗하게 씻어내지 않은 채 고기를 먹음으로써 율법을 경시하고 어긴  사실

을 가리키는 듯하다(Delitzsch, Havernick). 또한 이는 하반절의 우상 숭배와  관련하

여 우상에게 바친 피  있는  제물의  식용을  언급한  것으로도  보여진다(18:6,  11,

15;22:3). 이와 달리 혹자는 피가 곧 생명의 상징이란 점을 비유해 그들의 살인  행위

를 책망하는 것으로 이해했다(Hengstenberg). 그러나 '먹으며'라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먹은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며 살인에 대해서는 다음 구절에 다시 언급되므로 이  견해

는 타당하지 않다.

   우상들에게 눈을 들며 피를 흘리니 - 영역 성경 중 리빙 바이블(LB)은  본  구절을

'너희가 우상을 숭배하고 살인하니'(you worship idols, and murder)로 의역했다.  이

해석은 본 구절에 매우 적절하다.


=====33:26

  칼을 믿어 가증한 일을 행하며 - 여기서 '칼'은 일반적인 전쟁의 상징이 아니라 제

한적인  '폭력'의  의미를  '가증한  일'은  우상   숭배를(18:12)   각각   가리킨다

(Delitzsch). 특별히 슈로더(Schroder)는 '가증한 일'(*                     ,  아시

텐 토에바)이 여성형이란 점을 들어 이를 우상 숭배와 관련된 종교적 매음 행위로  보

았다.


=====33:27

  26절에 언급된 범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철저하고도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

으 시사한다.

   산성과 굴 - 여기서 '산성'(*           , 메차도트)은 험한 산 위에 있어서  공략

하기 어려운 천연 요새를, '굴'(*       , 메아라)은 이스라엘 산지에 산재해 있어 은

신하기에 알맞은 천연의 석회 동국을 각각 가리킨다(삼상 13:6). 하나님은 이런  곳에

피신해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심판의 징벌이 임하게 하실 정도로 그  징벌을  철저하게

행하신다.


=====33:28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고 - '황무지와 놀라움'(*                   ,  쉐마마

우메솨마)이란 말은 둘 다 '황폐케 되다', '폐허가 되다', '경악하게 하다'란 뜻의 어

근 '솨멤'(*     )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본 구절을  '황폐

시켜 폐허가 되게 하고'(NIV, RSV), '가장 황폐하게 만들고'(KJV)로 번역했다.

   권능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 여기서 '권능의 교만'(*               , 게온  우

즈)은 곧 세속적인 힘에서 유래한 교만을 가리키는 바, 본 구절은 그러한 교만의 근거

가 되는 그들의 모든 세상적 존립 기반을 없어지게 하시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7:24 주석 참조).


=====33:29

  그 때에...알리라 - 여기서 '알리라'(*     , 야다)는 단순한 지식적 앎이  아니라

전인격을 통한 체험적 깨달음으로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정립과 그 맥을 같이한다

(골 1:10). 따라서 본 구절은 위에 언급된 심판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이스라엘  사

람들로 하여금 죄의 길에서 떠나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진정한

구원의 자리에 이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임을 시사한다(11절).


=====33:30

  본절은 에스겔 선지자의 예루살렘 심판 예언이 성취됨으로써 고조될 선지자에 대한

백성들의 관심이 진실한 회개와 구원의 소망 때문이 아닌 자신들의 이기적 정욕  충족

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 '담 곁에서'는 은밀하고 비밀한 것을, '집

문에서'는 공공연하게 공개되는 것을 각각  의미하는  말이며(Delitzsch,  Schroder),

'너를'(*   , 베카)은 '너에게 관해서'란 문자적 의미로,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

겔과 그의 예언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임을 가리킨다(Schroder). 그리고 이것은  예루

살렘 멸망 예언의 성취 후 선지자의 존재가 백성들간에 음으로 양으로 급속하게  부각

되었음을 시사한다.

   자, 가서...들어보자 - 말씀에 대한 진지한 경청과 그에 대한 순종의 자세라기보다

는 단지 새로운 소식에 대한 호기심의 총족을 위한 행동이다(31절 주석 참조).


=====33:31

  내 백성처럼...행치 아니하니 - 본 구절은 실천적 순종이 결여된 그들의 내적 자세

를 암시하고 있는 바, 그들의 행동이 극히 위선되고 가증된 것임을 주지시키고 있다.

   입으로 사랑을 나타내어도 - 여기서 '사랑'(*         , 아가빔)은 그들의  이기적

안목에서  자신들의  기호와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것을   가리킨다(Delitzsch,

Schroder). 따라서 본 구절은 후반절과 관련하여 그들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모든  좋

은 말들이 기실은 자신들의 이기적 욕구 충족에 그 목적이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로,

극단적으로  상반된  그들의  내적,  외적   상태의   양면성을   암시한다(Gesenius,

Havernick).


=====33:32

  음악을 잘하며...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같이 - 구약 선지자들이 종종 그들의  예언

을 노래로 읊어 전달한 사실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삼상 10:5;왕하 3:15). '사랑의 노

래를 하는 자같이'(*                   , 케쉬르 아가빔)는 세속적 의미에서  노래로

즐거움을 주는 가수와 같다는 뜻이다(Delitzsch, Hitzig). 이는 백성들이 에스겔의 예

언을 회복과 구원의 전제로서 진지하게 경청한 것이 아니라 단지 좋은 음악을  듣듯이

피상적으로 들은 사실을 시사한다. 즉 회개를 전제로 선포한 심판의 구원의 메시지 중

그들은 자신들의 욕구에 맞는 구원의 메시지만을 아무런 결단이나 돌이킴  없이  듣기

좋은 말로만 수용했다.


=====33:33

  그 말이 응하리니 - 백성들에게 선포한 심판이 성취될 것임을 말한다.  곧  그들은

아직도 회개에 이르기 위한 내적 상태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구원의  약

속에서 제외되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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