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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예레미야

[스크랩] 예레미야 50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8:01

예레미야 50장 주석

 

=====50:1

  본절은 본장과 51장 전체 신탁 예언의 서두에 해당된다.  '갈대아인'은 우르  남부

에 정착해 있었던 반유목민 부족의 후손이었다.  그들의 당을 지칭하는 '갈두'란 말이

B.C. 10세기 경의 비문에 등장한다.  B.C. 9세기경에는 갈대아 족장들 중에 몇몇은 앗

수르의 통치자 아닷니라리 3세(B.C. 811-782년)의 봉신이었다.  느부갓네살의  부친인

나보폴라살은 갈대아 원주민이었으며 B.C. 625년에 바벨론 왕좌에 올랐다.  그리고 그

의 통치를 시작으로 해서 B.C. 539년까지 지속되는 신바벨론 왕조기를  이끌게  된다.

느부갓네살(B.C. 605-562년)은 이들 바벨론 왕들 중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우고  또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왕이었다. 한편, 70인역을 보면 맛소라 본문보다 내용이  훨씬

짧은데, '바벨론에 관하여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다(J. Bright).


=====50:2

 바벨론의 멸망을 예고하는 내용이며 특히 그들이 섬기던 우상도 함께 파괴되어  수

치를 당하게 될 것을 말한다.  한편 본절과 3절은 시(詩)의 형태를 띤다.

   벨...므로닥 - '벨'은 셈어인 '바알'과 연관되는 명칭으로서 '주', '주인'(lord)이

라는 문자적 뜻을 지니며, 수메르의 주신(主神)인 '엔릴'(Enlil)과도  같은  말이다.

바벨론이 신흥 강국으로 부상할 무렵에 그 주신(主神)인 '므로닥'(말둑)은 '벨'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우게 되었다(Feinberg).  따라서 벨은 말둑에 대한 별칭이었던  것이고,

그래서 벨과 말둑은 시적 평행법으로 표현된 동일한 신이었다.  한편 바벨론 창조  신

화에  따르면  말둑은  창조의  신이었고 또  '신들의  왕'으로  등장한다.   '우상'

(*                 , 길룰림)과 '신상'(*             , 아차빔)은 동상의 형태로 만

들어져 있던 신상을 가리킨 표현이다.  이러한 명칭들은 모두 이방의 우상들을 가리키

는 데 적용되었다(레 26:30; 신 29:17; 왕상 15:12등).  특히 우상을 가리키는  '길룰

림'이란 말은 '똥덩어리'란 뜻을 가진 야유적인 표현이다.  에스겔은 이 말을 거의 40

회에 걸쳐서 사용하고 있다(겔 6:5; 14:4, 5; 18:6, 15등).


=====50:3

한 나라가 북방에서 나와서 그를 쳐서 - '북방에서 나온 나라'가 어느 나라를 가리

키는 것인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예레미야는 이말을 자주 사용했는데(41절; 1:14;

4:6; 6:1; 15:12; 46:20; 47:2) 초기의 장들에서는 이 나라의 정체가 분명치 않았으나

후반부에 들어와서는 그 나라가 바벨론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그러나

이 용어가 이곳에서 다시 그 대상이 모호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이에 대한 언급은 페르시아를 가리킨다고 본다.  물론 페르시아는 바벨론

의 북방이 아니라 동쪽에 위치한 나라였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가 북방에서  임

하는 것으로 종종 언급됨을 보건대(사 14:31; 41:25), 본 구절의 '북방'은 다분히  상

징적 의미를 띤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50:4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 이스라엘의 회복과 위로에 대한 말씀인데, 이

러한 미래의 회복에 참여하는 자들은 북쪽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 유다 왕국이 다 포함

될 것이다(Nicholson).


=====50:5

 잊어버리지 아니할 영영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자 - '영영한 언약'이란  것은

31:31 이하와 32:40에 언급되어 있는 새 언약까지도  암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Nicholson).  RSV, NEB등의 영역 성경과 그밖의 다른 역본들은 4-7절을 산문으로  다

루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들 전체를 살펴보면, 이를 운문으로 보아야 할 충분한  근

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평행법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으로 지칭되고 있는 전체 이스라엘 백성이       울면서 여호와를

찾을 것이고 또 여호와와 다시 영영한 언약을 맺게 될 것이다(32:40, Thompson).


=====50:6

 여기에는 이 백성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또 그렇게 부추겼던 제사장들과  선지자

들, 그리고 왕들에 대한 비난이 언급된다.  구약에서 왕들, 제사장들, 선지자들이  종

종 목자로 불리웠던 것이다.  문맥상 여기서는 백성들을 높은 산위로 인도하고 거기서

바알을 제사하게 하였던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비난이 우선적으로 포함되는      것  같다

(2:20; 3:2 등).  한편, 언약 파기에 대한 본절의 내용은 5절의 영영한 언약의 갱신과

대칭되고 있다.


=====50:7

  본절은 이스라엘을 삼키는 자들은 모두 죄를 면치 못했다고 하는 2:3의 내용을  반

영한다(J. Bright).  즉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것으로 거룩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

나 범죄한 이상 그들은 여호와께 거룩한 존재가 아니었으며, 그러한 이유로 적들은 이

스라엘을 삼키고도 '우리는 무죄하다'라고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50:8

  갈대아인의 땅에서 나오라 - 바벨론의 종말이 가까웠기 때문에 이제 포로되었던 이

스라엘 사람들이 자유롭게 될 것이며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의 귀환      대열에서

앞장서게 될 것임을 뜻한다.


=====50:9

  큰 연합국으로 북방에서 일어나 나와서 - 예레미야의 예언 선포 당시 바사는  앗수

르 제국이 멸망하자 메대 남부 엘람의 한 지방인 안산(Anshan)에서 세력을 키우기  시

작했다.  따라서 당시로서는 바사가 강대국 바벨론에 대항할 연합국의 주체 세력이 될

만한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되어

질 일을 미리 아실 뿐 아니라 역사의 흐름을 당신의 계획하시는  방향으로  이끄셨다.

즉 B.C. 640년 고레스 1세가 안산의 왕으로 옹립되면서부터 안정된 기반을 구축해  가

던 바사는 캄비세스 1세의 뒤를 이어 고레스 2세가 등극하면서 메대를 점령함으로, 중

근동의 대권을 이어받을 준비를 갖추었던 것이다(B.C 550년).  이후 바사는       바벨론의

나보니두스 왕과 동맹을 맺었으며, B.C. 539년 나보니두스가 아랍 원정을 간사이 당시

섭정 왕 벨사살이 치리하고 있던 바벨론을 침략하여 완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50:10

 그를 약탈하는...만족하리라 - 앞절에서 설명된 숙련된 용사들은 바벨론 파괴를 즐

길 정도까지 될 것이라는 뜻이다.


=====50:11

 산업 - 이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상

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산업'으로 묘사되었다(Nicholson).  한편, 원문에서  본절

의 동사들은 모두 남성 복수로 표현되어 있으며, 12절에 대한 조건절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어 접속사 '키'(*       )는 양보의 뜻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를

12절과 연결시켜 직역하면, '너희가 즐거워하며 기뻐할지라도...수치를 당하리라'이다

(J. Bright).


=====50:12

 너희의 어미나 너희를 낳은 자란 말은 모두 바벨론을 뜻하는  의인법적  표현이다.

흔히 도시들은 그 주민들의 어미로 의인화되었다(Bright). 바벨론은 여호와의 산업을

노략질하고 그로 인해서 즐거워했지만, 그리고 열방 중에서도 가장 강력했지만,  이제

는 형편없이 왜소해지고 말 것이다.  한편, 이 구절에서 나타나는 어법은  예레미야의

다른 신탁에서 여러 번 사용되고 있다(6:8; 9:10; 18:16 등).


=====50:13

  온전한 황무지가 될 것이라 - 이스라엘을 약탈한 데 대한 여호와의 진노와 그 보복

이 암시되고 있는데, 이는 본자의 주요 주제이기도 하다(Nicholson).  하나님은  바벨

론을 열방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삼으셨지만, 바벨론은 스스로의  제국주의적  야심과

탐욕에 사로잡혀서 각국을 멸하고 유린하였을 뿐이었다.  한편 본절의 표현은  이스라

엘에 대한 심판을 가리킬 때 자주 쓰였던 것이지만(19:8), 여기서는 바벨론에  대해서

사용되고 있다.


=====50:14,15

   온전한 황무지가 될 것이라 - 이스라엘을 약탈한 데 대한 여호와의 진노와 그 보복

이 암시되고 있는데, 이는 본자의 주요 주제이기도 하다(Nicholson).  하나님은  바벨

론을 열방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삼으셨지만, 바벨론은 스스로의  제국주의적  야심과

탐욕에 사로잡혀서 각국을 멸하고 유린하였을 뿐이었다.  한편 본절의 표현은  이스라

엘에 대한 심판을 가리킬 때 자주 쓰였던 것이지만(19:8), 여기서는 바벨론에  대해서

사용되고 있다.


=====50:16

  파종하는 자와 추수 때에 낫을 잡은 자 - 바벨론은 다른 나라를 정복하면서 농장을

파괴하고 또 그 농부들을 살해했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일이 바벨론에서 일어나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본절 마지막 부분은 사 13:14 하반절의 내용과 비슷하다.   바벨

론 멸망과 함께 그들에 의해 잡혀갔던 유다인들과 같은 포로들은 그들의 고국으로  귀

향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50:17

 B.C. 722년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것과, B.C. 586년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멸망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구절이다.  또한 이스라엘은 맹수에 의해  쫓

기는 흩어진 양떼로 소개되고 있는데, 이는 목자 없는 양떼의 비참한 모습과 상통한다

(민 27:17; 왕상 22:17).


=====50:18

 내가 앗수르 왕을 벌한 것같이...벌하고 - 본문이 기록될 당시 앗수르는 이미 하나

님의 심판을 받은 후임을 암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은 B.C. 612년 이후에 기록되

었던 것이 분명하다.  예레미야는 미래에 있을 바벨  의 멸망을 이미 발생했던 역사적

사건에 비유함으로써, 그 예언이 확실히 성취될 것을 강조한다.


=====50:19

  그가 갈멜과 바산에서 먹을 것이며 - 여호와는 여기서 자신의 양떼 이스라엘을  그

의 목축지로 다시 데리고 오는 목자로 묘사되고 있다.  '갈멜'은 '동산',  '포도원'이

란 뜻으로 지중해 연안 아크레만 남단에 솟아 있는 540m의 산으로 나무가 많은 기름진

땅이다(사 33:9; 35:2; 암 1:2; 미 7:14).  그리고 '바산'은 '부드러운 땅'이란  뜻으

로 요단 강 동편에 위치한 넓고 비옥한 땅이다.


=====50:20

  내가 나의 남긴 자를 사(赦)할 것임이니라 - 본절은 31:31-34의 새 언약에서  선언

된 약속이 반영되고 있다.


=====50:21

 본절에 언급된 므라다임과 브곳에 대해서는 고유 명사로 보는 견해와 단순히  상징

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보통 명사로 보는 견해로 나뉜다.  전자를 주장하는  자들은

'므라다임'은 남부 바벨론 지역을 지칭하는 '마트 마라티'를 가리키며, '브곳'은  '푸

쿠두'라 일컫는 동부 바벨론 부족을 가리킨다고 본다(Feinberg).  하지만 이 두  단어

가 나타내는 문자적 의미를 중시할 때, 이는 예레미야에 의해 자주 사용된 언어  유희

적 표현으로 이해됨이 보다 무난할 것 같다.  즉, '므라타임'(*             )은  '불

순종하다', '반역하다'는 뜻인 '마라'(*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매우 반역적

임'을 뜻하며, '브곳'(*            )은  '심판하다',  '처벌하다'는  뜻의  '파카드'

(*         )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두 단어는 바벨론의 패역함과 이

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는 원인과 결과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50:22

  싸움의 소리와 큰 파멸의 소리 - 이 '소리'는 갈대아 지역이 패망하면서  들려오는

전쟁과 엄청난 파국의 소리이다(Thompson).


=====50:23

  온 세계가 방망이가...꺾여 부숴졌는고 - 바벨론은 이전에 마치 온 세상을  두드려

부술것만 같았던 거대한 해머와도 같았다(J. Bright).  그러나 그것이 이제는  꺾이고

부숴져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50:24

 네가 깨닫지 못하고 걸렸고 - 바벨론은 새를 잡으려고 덫을 놓았던 사냥꾼과  같이

열방들을 점령했었으며, 그 중에는 유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바벨론이 그 올무에 걸려들고 말 것이다. 한편 우리는 여기서 전인류에 대한  여호와

의 목적과 의도가 이미 질서정연하게 계획된 것임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떠한

세력도 여호와의 신적인 의도를 좌절시킬 수 없는 것이다. 포로들이 석방되기 위해서

는 바벨론의 권세가 부너져야 했다.  예레미야는 아직 이 일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

렇게 된 것처럼 예언을 전하고 있다.


=====50:25

  그 병고를 열고 분노의 병기를 냄은 - 여호와께서 무기고에서 꺼내올  '분노의  병

기'는 다름 아니라 사 44:28-45:1에 언급되어 있는 페르시아라고 하는 병기이다.   즉

하나님은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를 자신의 목자요 기름부음받은자로       세우셨던  것이다

(Thompson).


=====50:26

  먼데 있는의 히브리어 '미케츠'(*         )는 그 의미가 다소 불확실한데,  '사방

에서' 혹은 '끝에서부터'로도 번역될 수 있겠다(J. Bright).


=====50:27

 도수장으로 내려가게 하라 - 여기서는 바벨론 군사들이 '황소'에 비유되고  있는데

'황소'는 힘, 권력, 부 등을 상징하는 은유적 용어로 쓰였다(시 22:12; 사 34:7,  8).

그러나 그 날이 이르면, 즉 여호와의 심판의 때가 이르면, 그들은 모두 도살장으로 끌

려가게 될 것이다.  한편, 본절은 에돔에 대한 심판 상황을 싣고 있는 사 34:6, 7  내

용을 상기시킨다(Delitzsch).


=====50:28

 그 성전의 보수하시는 것을 선포하는 소리로다 - 바벨론 땅에서 달아나는 도망자들

은 여호와의 보복이 바벨론에 행해지고 있다는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한다.  이들은 아

마도 바벨론에서 달아난 유다인 도망자들을 뜻하는 것 같다.  성전(聖殿)은 이스라엘

의 종교 중심지였으며 또한 희생과 제사를 드리도록 하나님이 지정한  곳이기도  하였

다.  따라서 성전을 훼방하고 모욕하는 것은 참람한 행위였으며, 여호와의 보복을  자

초하는 것이었다.


=====50:29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음이니라 - 바벨론의 패망 원인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

은 스스로 교만하였기 때문이다. 이 말은 '여호와를 모욕했다'라고도 번역되며  또한

'반역된 행위를 했다'란 뜻으로도 설명되고 있다.  바벨론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

님을 두려워하기는 커녕 약소국의 패배한 신(神) 정도로 보고 교만하게 굴었던 것이다

(Nicholson).


=====50:30

   청년들이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 이와 같은 내용이 49:26에  나타나고  있는데,

거기서는 다메섹에 적용되었다.


=====50:31,32

 바벨론의 교만이 거듭 지적되고 있다.  바벨론은 그 나라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스스소의 힘으로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자만에  사로잡

혀 있었고, 결국 이러한 교만이 몰락을 불러왔다.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놓으리니 - 이 구절은 21:14  하반절과  비슷한  내용이다.

거기서는 바벨론 대신에 '예루살렘'이, 그리고 성읍이란 말 대신에 '수풀'이 언급되었

다.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목적이 다른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J. Bright).


=====50:33,34

 바벨론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주체자가 바로 만군의 여호와이심을  강

조하는 구절이다.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니 - 출애굽 당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구속자가 되어 주셨

던 것과 같이 바벨론으로부터 구속해  주실  것이라는  내용이  암시된다. '구속자'

(*         , 고엘)란 친지를 살해한 자를 대신해서 보복해주는 사람을 가리키는 법정

용어였다.  그는 또한 친지를 보호하고 그의 자유를 확보해 주었으며, 재산을 지켜 주

기도 하였다(레 25:25, 47-55; 민 35:21 등).


=====50:35,36,37

 여기서는 '칼이 임한다'는 말이 무려 5회나 언급되고 있다.  칼이 임한다는 어구는

바벨론 전쟁의 패배를 통해 가혹한 심판을 당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진노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곳에 언급되고 있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은 바벨론  거

민, 또 그 관리들과 지혜로운 자들, 그들의 거짓 선지자들, 그 용사들 등이다.

   자긍하는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딤'(*           )은 문자적으로 '거짓된 자'

를 뜻하는 말로서, '허풍쟁이'(Bright), '거짓 선지자',  '점쟁이'(Vulgate,  Syriac,

Targum)등을 가리키며 35절의 '지혜로운 자'와 같은 부류를 지칭한다(Calvin).   그리

   잡족이란 아마 바벨론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여러 나라로부터 소집된 외인부대  정

도를 가리킬 것이다.


=====50:38

 가뭄이 물 위에 임하여 - 한글 개역 성경은 맛소라 사본을 따라서 '가뭄'으로 번역

하고 있으나 70인역은 가뭄 대신에 앞 구절과 마찬가지로 칼이란 말을 쓰고 있다.  그

러나 '가뭄'(*         , 호레브)이나 '칼'(*         , 헤레브)이란  말은  히브리어

원어상, 자음이 동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음이 없던 고대 히브리어에서는 이  둘이

동음이의어로 쓰였을 것이다.  아무튼 본절은 전쟁이 일어날 경우 그 나라의 생명이나

마찬가지인 수로가 폐쇄되고 마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J.Bright).


=====50:39

 사막의 들짐승이 시랑과 함께 - '사막의 들짐승'과 '시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각각 '치임'(*           )과 '이임'(*           )인데, 이에 대한 해석은 각양 각색

이다.  (1) 숲속의 새들과 짐승(Calvin), (2) 유령들과 악귀(Bright),  (3)     사티로스

(희랍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숲의 신)와 요정, 이중 어떤 것이 옳은지를  정확히

결정하기란 어려우나, 분명한 사실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될 것을 가리킨

다는 점이다.


=====50:40

 파멸의 최종적인 모습은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그 인근 도시들이  심판받은  것에

비유된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완전하고 철저한 심판의 본보기로 언급된다.


=====50:41

  본절에서 43절까지는 약간의 변형을 제외하고는 6:22-24의 내용과 동일하며 그  어

투 또한 동일하다.  그리고 그 어투는 예레미야 특유의 어법을 담고 있다.  6장에서는

심판의 대상이 유다였으나 여기서는 바벨론이다.  유다를 심판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

되었던 바벨론이 이제 유다와 똑같은 운명에 처해지는 역설을 보여준다.


=====50:42

  활과 창을 가진 자라 - 예레미야가 이 신탁의 예언을 선언했을 당시에는       바벨론을

침략할 자들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훗날 사실이 밝혀졌듯이 그는

여호와께서 세우신 페르시아(바사)왕 고레스였다. 고레스의 군대 역시 여러 봉신국의

파견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Thompson).


=====50:43

  고통에 잡혀 해산하는 여인의 구로함 같도다 - 이 구절의 메시지는 바벨론이  이스

라엘을 침략하고 또 그들을 파멸시킨 북방의 두려운적이 되었던 것과 똑같이 이제  바

벨론 그 스스로가 북방의 두려운 적으로부터 그와 같은 운명을 당하게 될 것임을 나타

낸다(Nicholson).


=====50:44

 사자가 요단의 수풀에서 올라오는 것같이 - 본절에서 이 내용은 바벨론에       적용되고

있지만, 같은 내용이 49:19에 반복되면서 거기서는 에돔의 운명에 적용되었다.   그리

고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뇨?' 라고 하는 질문은 그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이

지상의 통치자인 이상 하나님의 권능과 경쟁할 수 없고 또 그분의 뜻을 거역할 수  없

다는 의미이다.


=====50:45

  여호와의 도모와...여호와의 뜻을 들으라 - 그 당시 역사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포

로로 잡혀가 있던 사람들은 해방되리라는 희망을 가질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절망의 시기에 그들의 해방에 대한 예언이 전달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회복이라는 여호와의 약속을 믿었던 자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포

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처음에는 대단히 분노했을 것이고 또  그들의  죄와

반역을 인정하기는 커녕 하나님을 원망했을 것이다.


=====50:46

  바벨론이 함락하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며 - 이 시점에서 에스겔 선지자의  역할과

사역을 바벨론 멸망이라는 사건에 비추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호와

께서 정당하시며 또한 그들에 대한 심판이 옳았다는 것을 역설하고 그들로 하여금  다

시 신앙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었다(겔 33:10, 11).  그랬기 때문에 에스겔은 예루살렘

함락 이후 회복의 메시지를 설교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예레미야 선지자나 에스겔 선지자가 선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던  사람들

은 적국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하

나님은 의로우시며 설사 우리들의 죄악으로 심판과 채찍질을 가하신다고 하더라도  좌

절하지 말고 다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함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Thompson).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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