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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예레미야

[스크랩] 예레미야 39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58

예레미야 39장 주석

 

=====39:1

  시드기야의 구년 시 월에 - '시 월'은 에 2:16에서 데벳월로 기록되어 있다.  이데

벳월은 양력 정월 초승달이 뜨는 날에서부터 시작 되었다(Clarke). 이곳의 연대적  서

술은 52:4과 연결지어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이달 10일째라고 날짜를  덧붙이고  있

다.  본절과 2절은 52:4-6의 내용을 축약시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애 의해 함락된 것은 B.C. 586년 7월이었다(52:5 이하 참조).  성이  함락

되고 한 달 후 느부갓네의 경호 사령관인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예루살

렘 포위 공격은 B.C. 588년 1월에 시작되어 B.C. 586년 7월까지 계속되었으며 그 사이

에, 즉 B.C. 588년 여름에 일시적으로 포위 공격이 풀렸었다.  물론 그것은 애굽 원정

군의 등장으로 인한 것이었다.


=====39:2

 시드기야의 제 십 일년 사월 구일에  -  히브리 종교력으로 4월은 바벨론식 이름으

로 담무스월이라고 불리었다.  이  달은  오늘날의  7월  초승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Clarke).


=====39:3

 바벨론 왕의 모든 방백이 이르러 중문에 앉으니 - 본문은 시드기야가 바벨론  방백

들이 중문에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을 보고 달아났음을 암시하고 있다.  아마 왕은 어떤

방어 조치가 취해질 것을 기다리지 않고 성이 파괴되는 그날 밤으로 달아났을 것이다.

여기서 '중문'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에서 오직 이곳에만 언급된다.  어쩌면 이것은 성

을 두 구역으로 갈라놓고 있던 벽의 출입구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Thompson).  예루살

렘은 두 개의 언덕, 곧 남쪽의 시온과 북쪽의 아크라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사이에

는 깊은 계곡이 있었다. 중문이라는 말 자체에서도 쉽게 짐작되다시피, 이것은  아마

예루살렘의 두 언덕 사이의 계곡 한가운데에 있던 통로였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언덕은 때로는 상 예루살렘, 하 예루살렘으로도 불리었다. 갈대아 군대는 북쪽  편에

서 성을 파괴하고 진입해 들어왔을 것이고 진군하여 이 중문을 장악함으로써 성  전체

의 중심부를 차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시드기야는 이 사실을 알고 그 반대편에  있는

남쪽의 문으로 달아났을 것이다(Clarke).

   네르갈사레셀...박사장 네르갈사레셀 - 본절에 언급되고 있는 인물들은 바벨론  군

대의 주요 지휘관들이었다.  한글 개역 성경에는 환관장과 박사장이라는 두 직명이 소

개되는데, 이들도 역시 인명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가하면 블레이니(Blayney)

박사는 이를 세 사람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직행명과 그 뒤에

이름이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제견해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한

다.  한편 여기에는 '네르갈사레셀'이 두 번 언급된다.  바벨론군 총사령관은  느부사

라단이었는데, 아마 첫 번째 네르갈사레셀은 느부사라단이었는데, 아마 첫 번째  네르

갈사레셀은 느부사라단에 대한 오기에 의한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동명이인의 다른 군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우

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Clarke).


=====39:4

유다 왕 시드기야와...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 어쩌면 성문을 통하지 않고도 성밖으로

빠져나가는 비밀통로나 지하통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들키지도

않고 성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며, 또한 성에서 상당히 멀리까지 달아날  수

있었다(Clarke).

   아라바로 갔더니 - '아라바'란 요르단 계곡을 망라하는 지역을  가르키는데,  사해

남쪽에까지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리고 지역인 요르단 계곡을       가리키는

것으로 쓰였다(Thompson).  클라크(Clarke)는 이를 광야길로 번역한다.  아무튼  예루

살렘에서 여리고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감람산을 넘어가는 길이었

다.  그러나 산을 넘는 것은 시간을 지체할 것이기 때문에 시드기야는 다른 길인 광야

길, 다시 말해서 아라바를 택했던 것이다.  아마도 시드기야는 요르단을 건너  애굽으

로 도망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39:5

  하맛 땅 립나에 있는...느부갓네살에게로 - '립나'는 팔레스틴 지역  북쪽  변방에

위치해 있었으며  '하맛'  역시  수리아에  속해  있던  대도시였다(창  10:18  참조,

Clarke).  또한 오론테스 강변에 있었는데, 가데스 남쪽의 수리아 고도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 도시는 애굽과 메소포타미아를 직통으로 연결시켜주는 군사적  요충지엿다.

느부갓네살은 수리아의 심장부인 립나의 사령부에 머물러 있고 그의 군장은      유다에서

전쟁을 수행했었다.   포로들은 느부갓네살에게 심판을 받기   위해   압송되었다

(Thompson).


=====39:8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 니콜슨 (Nicholson)은 왕궁과 백성의 집 사이에 여

호와의 집이란 말을 덧 붙이고 있다.  물론 본절에는 언급되고 있지 않으나 52:13에는

포함되어 있다. 아무튼 여호와의 집이 파괴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날  남아

있는 예루살렘 성벽 남쪽 지역의 동쪽 비탈을 발굴한 결과 그 당시       백성의 개인적인

집들에까지 파멸이 미쳤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기서 '헐었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타추'(*        )는 성을 헌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예레미야의 소명 장면에서

도 나타났다(1:10).


=====39:9

  시위대장 느부사라단 - '시위대장'은 히브리어로 '라브 타바힘'(*

      )인데, 여기서 히브리어 동사 '타바흐'(*      )는  (짐승이나  사람을)'학살하

다', 살해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착안하여 탈굼역(Targum)은 '살해자의 방백'이라고

도 번역하나, '시위대장'이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 혹자는 이를 '남아 있는 장인들'로 번역하는데 이는 같

은 말의 반복을 피하고자 함이다(Nicholson).  그러나 본문은  예루살렘내의  백성을,

또 본절 말미의 '남은 백성'이란 유다 지경내의 백성들을 포함하는 말을 뜻한다고  보

아도 무방하다(Calvin).


=====39:10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그들에게 주었더라 - 여호야긴 당시의  예루살렘  함락

때와 같이(왕하 24:10-14),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 사람들을 사로 잡아서 바벨론으로

끌고 갔는데, 특히 유력한 인사들이나 재능있는 장인들을 잡아갔다.  반면에 빈민들은

유다의 땅을 할당받아 포도원이나 농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는  바벨론의  유화

정책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Feinberg).


=====39:11,12

 바벨론 왕이 예레미야에 대해서 특별한 배려를 하고 있는 내용이 언급된다.   예레

미야가 바벨론 정부에 어떻게 해서 알려지게 되었는지 그 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아

마 예루살렘 멸망 전에 바벨론에 투항한 유대인들에 의해서였을 것으로 보는 것이  무

난할 것 같다(Thompson).  즉 느부갓네살은 그들로부터 이 선지자가 예루살렘  함락을

예언하였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또한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바벨론에 반역하지

말고 항복할 것을 권유하곤 했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느부갓

네살은 예레미야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풀었다(Clarke).


=====39:13,14

 여기에는 느부사라단과 환관장 느부사스반, 박사장 네르갈사레셀 등을 포함한 바벨

론 왕의 주요 관리들이 시위대 뜰에서 예레미야를 데려다가 그를 그다랴에게 넘겨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사람은 '그달리야'라고도 불리우며 유다에 남은 자들의  총독으

로 임명되었다(왕하 15:22-24).  한편 기자는 여기서 예레미야를 '집으로 데려  가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다소 불명확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의 집이라고 표

현되지 않고 그냥 '그 집'(*         , 하바이트) 즉 정관사가 사용된 '집'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 집'이라고 표현되는 것은 흔히 성전을 뜻할  때

쓰였으며, 때로는 왕궁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집은 예레미야의

집이나 또는 그다랴의 집인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이는 바벨론 군대가 사령부 건물

로 사용하고 있는 새로운 정부 청사, 곧 그다랴 행정부 건물이나 또는 총독 관저 정도

되는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와 관련된 기사가 40:1-6에도 나오는데 그내용이

다소 다르다. 40장에는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8km 가량  떨어

진 라마의 포로 행렬 중에서 예레미야를 발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느부사라

단은 그를 포로의 사슬에서 풀어주고 솔직하게 담화하고 있다.  이것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본장의 11-14절의 내용은 사건의 세부 사항을 생략한 채 그 결과만을 간

단히 기록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아마 그는 1차 심문을 당한 후에  석방되었다

가 그 후 다시 병사들에게 붙잡혀서 사슬에 묶이게 되었을 것이며, 그런 다음  리블라

를 거쳐 바벨론으로 압송되기 위해 라마의 수용소로 보내졌을 것으로 추론된다.


=====39:15,16

 앞으로 다가올 예루살렘 파멸에도 불구하고 에벳멜렉이 살아남게 되리라고 하는 약

속이 여기에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38:13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아마 이 내용이  이

곳에 기록된 이유는 예레미야 자신과 함께 예레미야를 구출한 에벳멜렉 역시 예루살렘

함락에서 살아 남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 같다(Nicholson).


=====39:17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 에벳멜렉이 두려워하는 자들이란 아마 38:1에 언급

된 유다 고위층 인사들을 말하는 것 같다.  예레미야를 구출했던 자는 바로 이 에벳멜

렉이었고 또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큰 죄를 저질렀다고 왕에게 고소하였던

자가 바로 이 용기 있는 에벳멜렉이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유다       방백들의

위협에 늘 시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39:18

  네가 나를 신뢰함이니라 -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의 메시지에 공감을 표했던  사람이

었음을 암시한다.  아마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믿었던 다른 관리들도 더러 있었을 것이

다.  결국 에벳멜렉의 목숨을 건 대담한 행위는 왕이나 방백들 보다 여호와를 더욱 두

려워하는 신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그는 선지자의 편에 서서 중재하였고 그

로 인해 여호와의 보호하심이 함께했던 것이다(Clarke).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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