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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예레미야

[스크랩] 예레미야 40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58

예레미야 40장 주석

 

=====40:1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 본절부터 6절까지는 그다랴에 대한  이

야기의 서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다랴는 유다의 총독으로 소개되고 있다(5

절).  이곳의 무대인 라마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오늘날의 엘-

람(er-Ram)이란 곳이다. 포로들은 여기에 집결, 수용되었다가  바벨론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예레미야도 다른 포로들과 마찬가지로 사슬에 묶여 이곳에 등장한다.   이는

분명히 포로들에 대한 취급상의 어떤 잘못이 있었음을 말한다.  즉, 느부갓네살은  예

레미야에 대해서 상당한 대우를 해주라고 명령했었으며 그 명령에 따라 예레미야는 이

미 석방 되어 있었다(39:11-14).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유다인들을 잡아들이는 책무를

맡았던 병사들의 착오에 의해 예레미야는 다시 포로로 잡혔던 것이며, 다른       포로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가기 위해 사슬에 묶여 포로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그러나 시위

대장 느부사라단이 그를 발견했으며, 그 즉시 예레미야를 석방했다.  느부사라단은 예

루살렘 파괴 이후 한 달만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여서 그 성에 대한 파멸을 더욱 철저히

시행 하였고 또 포로들을 끌어가는 대열을 조직 하였다(왕하 25:8-12).

   말씀이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 이 어구는 흔히 어떤 신탁을 선포할

때 쓰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다음에 신탁의 말씀이 등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

소 불분명하다. 다음 절에서부터는 느부사라단의 입을 통해서 전달되고 있는  예레미

야 설교의 개요가 등장한다.  아마도 느부사라단의 입에서 나온 내용들과 이어지는 사

건들이 본절에 언급된 신탁 서론(말씀이 임하니라)에 대한 내용이 아닌가 생각된다

(Thdmpson).  그렇다면 본 구절의 '말씀'이란 꼭 예언의 말씀 그 자체라기보다는 일종

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계시된  메시지라는  측면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겠다

(Feinberg).


=====40: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선포하시더니 - 본 구절 말씀을 여호와께 대한 느부사라단

의 신앙의 표현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본 구절의 화자(話者)가  느부사라단임

을 굳이 부인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비근한 예로, 앗수르인들은 심리전에 이용할 목

적으로 전쟁 상대국의 종교에 깊은 관심을 드러낸바 있다(왕하 18:22, 33-35).   어쨌

든 바벨론 당국은 유다의 종교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수집하였을 터이며, 특히 바벨론

에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선포한 예레미야에 관해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본구절에서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의 메시지의 요점에 대해 나름대로 알고 있는  바를

인용조로 언급하고 있다 하겠다.


=====40:3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임한 것 이니라 - 여기서도 우리는 갈대아 군대의  장

군인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가 무슨 말을 선포했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짐

작할 수 있다. 즉 느부사라단은 여기서 예레미야가 전환 메시지의 대략적인 내용을 지

적하면서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이 이미 예언된 대로 발생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40:4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해방하노니 - 이제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가든지  아니

면 유다 땅에 남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Clarke).   예레미야에

대한 안전 배려는 이미 느부갓네살이 명령했던 것이기도 하다(39:12).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 성안에서 예레미야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예루살렘 함락 이전에 이미

보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바벨론의 '친구'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그것

이 그를 행복하게 하지는 못했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예레미야의 보다

궁극적인 관심사는 바벨론에 항복하여 안전을 누리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  백

성의 회복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선대하리라'의 히브리어 '아심 에트 에니'(*

                )는 문자적으로 '내 눈으로 (너를) 주시하리라'라는 뜻으로 좋은  대

접을 해주겠다는 의미이다.


=====40:5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  이  어구에  대해서  니콜슨

(Nicholson)은 '예레미야가 아직 대답하지 않고 있을 때 느부사라단이 계속 말하였다'

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는 가능한 해석이다.  그리고 히브리어 본문에는 '남는 것이  네

뜻이라면' 너는 그다랴에게로 가라'고 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 - 그다랴의 조부인 사반은 요시야의 대신이었으

며,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왕에게로 가져갔던 사람이다.(왕하 22:3-13).   사반의

아들이자 그다랴의 부친이기도 한 아히감은 요시야가 파견한 특사의 일원으로서  여선

지 훌다를 방문한 바 있다(왕하 22:12-14).  예레미야가 성전 설교를 하고 또 그가 위

험한 상태에 있었을 때 아히감은 예레미야를 보호하기도 하였다(26:24).  이제 유다의

새로운 총독이 된 자는 바로 이 아히감의 아들 그댜라인 것이다.  그는 아마 시드기야

의 내각에서 상당한 행정적인 경험을 쌓았을 것으로 보인다.  B.C. 6세기 초로 연대가

추정되는 라기스의 인장 하나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그댜라에게 속한 것' 그  집

전체에 대해서'라는 어구가 새겨져 잇었다.  이런 표현은 왕의 총리 대신에게나  사용

될 수 있던 어구였다(Thompson).


=====40:6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댜라에게로 - 그댜라의 행정부는 예루살렘에  세워

졌던 것이 아니다.  아마 그 당시 예루살렘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았을 것이다(애 2:13

; 4:1).  미스바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3km 가량 떨어져 있는 오늘날의 텔 엔-

나스베(Tel en Nasbeh)란 곳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도시는 수세기에 걸쳐서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였다(삿 20:1-3 ; 삼상 7:5-14 ; 10:17).  한편 어떤 학자들은 미스바의

위치를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오늘날의 네비 사무엘이라고  주장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의 견해가 보다 우세하고 설득력이 있다.  여기서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갔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41:17에서는 그가 미스바에  오

랫동안머물지  않고  곧장  베들레헴으로 옮겨  갔음을  암시하는  내용도   보인다

(Nicholson).


=====40:7

 바벨론 군대의 소탕 작전을 피해 달아났던 유다군 패잔병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

진 한적한 곳에 집결해 있었다.  이들은 바벨론에게 빼앗긴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기회만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본절의 '빈민'이란 아마 대부분 시드기야 이전 왕조의

특권 계층에서 소외되었던 자들이었을 것이다(J. Bright).


=====40:8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그들의 사람들 - 얼핏보면 그댜라는 그  땅에  남아있던

사람들을 규합하는 데 성공했던 것 같이 보인다.  그는 숨어 있던 많은 사람들이 폐허

를 복구시키는 작업에 협조해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이들 중에는 유다 군사들도 포

함되어 있었으며 또한 바벨론 군대를 피해서 달아났던 군대 장관이나  방백들이  있었

다.  유다 지역은 지리상 많은 언덕과 구릉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안전하게  숨겨줄

만한 그런 은밀한 장소가 많이 있었다.  한편 이들 지도자들의 이름들이 여기서  거명

되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을 주도할 자들이 이들 중에 있음을  암시

한다.  이들 중에는 왕가의 일원이기도 하며 또한 그다랴를 암살하게 될 '이스마엘'이

란 자가 포함되어 있다.


=====40:9

 맹세하며 가로되 너희는 갈대아인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 그다랴가 취한 첫번

째 조치는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는 지휘관들을 무마시키고 그들에게 안전에 대한 확신

을 주는 것이었다.  그다랴는 그들에게 맹세하면서 말했다.  즉,  그들이  지금이라도

반바벨론 입장을 확실하게 철회하면 바벨론 사람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왕하 25:24).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안전은 이 땅에 거주하고 바벨론 왕을 섬기

는 것이었다.

   유익하리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형 '야타브'(*      )는 '더 잘되다', '은

총을 입다', '즐겁다' 등의 뜻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얻게 되는  유익을

암시 한다.


=====40:10

  나는 미스바에 거하여...갈대아인을 섬기리니 - '갈대아인을 섬긴다'고 하는  말의

문자적 번역은 '갈대아인들 앞에 선다'이다.  이것은 여러가지 사건들에 대한 법적 처

리 절차를 위해 그다랴가 유다 백성들과 갈대아 관리들 사이에 중보자 역할을 할 것이

라는 내용이다(Bright).  본 구절의 전후 문맥을 고려하건대, 여기서는 특히 이스마엘

일행과 같은 패잔병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나서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Feinberg).


=====40:11,12

 모압이나 암몬, 그리고 에돔과 그밖의 지역으로 피난갔던 유다 난민들은 그다랴가

유다 총각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각 남은 자들과 합세하여  황폐해진  땅을

경작하고 좋은 실과들을 거두게 되었다.  황폐해진 이 땅은 다시 평정을 찾으며  일이

예전처럼 잘 진행되고 있었다.  생업이 재개되었고 정상적인 생활이 시작 되었다.  그

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도 있었다.  이런 판국에 갑자기 그다랴를       암살하려

는 엄청난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40:13,14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은 그다랴에게 합세했던 군대 장관들 중 하나였다. 그는  이

들 군대 장관들의 대표로서, 이 새 총독에게 나아가 총독을 암살하려는 음모가 진행중

이라는 사실을 경고해주었다.  즉 암몬 왕 바알리스가 왕가의 일원인 이스마엘을 부추

겨서 그다랴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겔 21:18-32에 보면, 느부갓네살

이 B.C. 587년 서방 원정을  계획했을 때 그는 유다 뿐만 아니라 암몬도 공격하고  했

는데, 아마 이들 두 나라 모두가 느부갓네살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 때 시드기야는 애굽보다는 암몬으로       달아나려고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39:4, 5 참조).  또한 여기에는 이스마엘이 바알리스의 사주

를 받는 것으로 암시되고 있는데, 그가 어떻게 해서 이 음모에 연루되게 되었는지  확

실히 알수가 없다.  그가 왕가의 일원이었기 때문에(41:1) 어쩌면 그는 유다에서 정권

을 장악하려고 계획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만행을 저지르고 난 직후, 그가  정권을

잡으려고 하지 않고 암몬으로 달아났던 것으로 보아서 이는 그다지 설득력을 지닌  것

같지 않다.  이보다는 그가 어떤 정치적 욕심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바벨론을 자극하

고 괴롭히려는 동기에서 그러한 짓을 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더 낫겠다.


=====40:15

 이스마엘을 죽이게 하라...남은 자로 멸망을 당케 하랴 -  요하난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임명된 유다 총독이 살해될 경우 얼마나 큰 위험이 닥칠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

었다.  최근에 그다랴 주변으로 모여든 유다인은 다시 흩어져 버릴 것이고 또 남은 자

마저도 멸망하고 말 것이다.  이스마엘이 꾀하고 있는 이런 야만적 행위는 이 땅의 남

은 자들을 근거로 해서 수립될 새로운 국가 건설에 대한 비전을 망쳐버리고      말  것이

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살려 놓아서 국가의 장래를 그르치게  하기보다는       비밀리에

그를 살해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Thompson).


=====40:16

  네가 이 일을 행치 말 것이니라 - 그다랴는 요하난이 잘못 알고 있었거나 또한  거

짓말을 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는 자기 동족

을, 그것도 국가의 패망으로 인해 상처받은 동족을 추호도 의심하고 싶지 않은 연민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화해와 단결을 솔선 수범하여 국토  재건에

매진하고자 하는 생각에 깊이 사로 잡혀 있었으리라고 보인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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