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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예레미야

[스크랩] 예레미야 36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58

예레미야 36장 주석

 

=====36:1

  여호야김 사 년에 - '여호야김 사 년'은 B.C. 605년에 해당된다.  B.C. 605년은 고

대 근동 지역의 국제적 상황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이다.  그 이유는 바

로 이 해에 바벨론 군대가 유프라테스 강변 갈그미에서 애굽 군대를  격파시킴으로써,

명실 공히 근동의 패자(覇者)로 군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애굽군대를 격파하고  난

다음에 바벨론은 곧이어 수리아- 팔레스틴 지역으로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과 예레미야의 신탁을 담은 두루마리와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

하다.  이 두루마리의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

것은 대체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도구가 바벨론이 될 것이며, 그리고 여태까지  선포해

왔던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36:2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 이 '두루마리 책'이란 표현은 본절  외에  4절과  시

40:7 ; 겔 2:9에만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책으로 만들어진  긴  두루마리인지,

아니면 기록할 용지로서의 두루마리인지는 확실치 않다(Bright).  '두루마리'(*

        ,메길라)는 '굴리다'는 뜻의 '갈랄'(*       )에서 유래한 말이다.  고대에는

오늘처럼 종이 제조 기술이나 제본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까닭에 주로 갈대로  만든

파피루스나 동물의 가죽을 대신 사용했으며, 그것을 여러 장 연결한 후에  끝  부분에

굴림대가 있는 막대기를 부착시켜 양편에서 말 수 있도록 만들었다.   탈무드(Talmud)

에 따르면, 공적 집회에서 낭독용으로 사용되는 토라 사본은 정결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두루마리에 기록했다 한다. 바룩이 사용했던 두루마리는 파피루스였으리라 짐작

된다.  한편, 한글 개역 성경이 따르고 있는 맛소라 텍스트는 본절에서 이스라엘 이라

고 읽고 있지만, 70인역(LXX)은 이를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그러나 문맥상, 맛소라

를 따르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왜냐하면 뒤에 '열방'이란 말이 있어서, 하나의  국

가로서의 이스라엘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예루살렘과  유다를

함께 표현할 때는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이란 순서를 취하였다.  아무튼 여기서  '열

방'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그 메시지가 유다를 넘어서 보다 넓은 관점에서 선포된  것

임을 암시한다. 한편 한 흥미로운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그것은 예레미야가 왜 두

루마리에 기록으로 남기려고 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는 말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상황을 고려해서  살펴보

면, 그는 제사장들에의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방법만이 백성들과의 교신 수단이 되었을 것이다(5절).  또다른 요인을 든다면,  바벨

론 군대가 금방이라도 이 민족을 멸망시킬 것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흔히

있던 바와 같이 구전(口傳)으로 전달하면 전쟁의 혼란 속에서 곧 잊혀질 염려도  있었

을 것이다.  또한 예레미야가 계속 살아 있고 또 사회적 안정이 보장되어 있었다면 백

성들은 언제라도 선지자의 말을 들을 수 있었지만, 그 당시로서는 예레미야의  생명이

위기에 처해 있었고 민족 전체가 부패한 상황에서 그의 말을 귀기울여 들으려고  하는

분위기도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두루마리에 기록으로 남겨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B.C. 622년에 요시야 당시 성전에서 두루마리  책이  발견된

것 역시 하나의 선례가 되었을 수도 있다.


=====36:3

  유다 족속이...돌이킬듯 하니라 - 이 예언의 일차적 관심은 '유다 족속'을  대상으

로 하고 있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를 근거로 해서 2절의 '이스라엘'이란 말을 70인역

(LXX)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읽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특정대상

으로 언급하고 있는 단락에서도 유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이상

의 주장이 반드시 옳지는 않음을 말해 준다(3:6-11).  아무튼 하나님은 바로 이  시점

까지도 유다의 회개를 기다리고 계셨다.  회개의 기초는 여기서 지적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이었다(7절 ; 26:3 참조).


=====36:4

 바룩이...기록하니라 - 예레미야의 개인 비서 혹은 서기 역할을  하였던  '바룩'은

유다의 명문(名門) 집안 출신으로 짐작된다(51:59).  한편 바룩의 대필(代筆)에 관해,

우리는 하나님이 바룩에게 영감을 주신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을 때 예레미야가 영감을 받았을 뿐이며, 바룩은 그  영감받

은 말씀을 단순히 받아적었다고 보아야 한다(Feinberg).


=====36:5

 감금을 당한지라 - 여기 해당되는 히브리어의 기본형'아차르'(*         )는  종종

유체적 감금 상태를 말할 때도 사용되었다(33:1 ; 39:15).  그러나 이는  '에워싸다',

'제지하다', '억제하다' 등과 같이 여러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본문에서도 문자적으

로 감옥에 갇힌 상태를 말하지 않고, 여호야김과 방백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미움

을 받아 성전 출입이 금지되었음을 뜻하는 것  같다(Bright,  Nicholson).   왜냐하면 

19, 26절에서 처럼, 예레미야와 바룩은 스스로 몸을 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36:6

  본절에 언급된고 있는 금식일은 어떤 고정된 절기에 따라 소집된 것이 아니고 특정

한 사안이나 위기가 닥쳐서 소집된 것이었을 것이다(Bright).   예레미야는  금식일에

많은 군중들이 모여들 것을 계산했으며, 이때 두루마리를 읽게 함으로써 큰 효과를 거

두려고 하였다(Nicholson).  그러나 여기서 지적되었던 바와 같이 금식일로  소집되어

야 했던 긴급한 안건이 무었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그것은 바

벧론 군대가 팔레스틴 평원에 도착한 것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36:7

 금식의 날에 백성들은 여호와께 현재의 고통에서 자신들을 구해줄 것을 탄원할  것

이다.  본절에서는 예레미야가 자기 백성의 회개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는데,  이는

여호와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3절).  여호와께서 엄청난 분노로 예고하셨던 그 심판

을 돌려 놓으려면 회개가 필수 불가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백성은 돌이킬  줄

몰랐다.


=====36:8

  바룩이...낭독하니라 - 비슷한 내용이 10절에 언급되고 있다.  어떤 학자는 본절이

후대의 필사자들에 의해 삽입된 해석이나 설명일 것으로 보고 있으나(Bright),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36:9

 여호야김의 오 년 구 월에...금식을 선포한지라 - 본절에는 백성들이 금식을  선포

한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안일과 교만에 빠진 정치.종교 지도자들보다 백성들

이 더욱 신앙적 , 국가적 위기 의식을 절박하게 느꼈음을 알려주고 있다.  어떤  학자

들은 금식을 선포했다는 사실을 금식을 행하였다는 실천적 의미로 보기도 한다.  또한

백성들이 금식 선포의 주체가 아니라 금식 선포의       주체를 당국자로 보고 당국자들이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여 모이게 하였다고 보기도 한다(Bright). 아무튼 여기서 금

식이 선포된 날짜는 여호야김 오 년 구 월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양력으로 B.C.604

년 11, 12월에 해당된다.  이때의 날씨는 추웠다(22절).


=====36:10

 바룩이...그마랴의 방에서...낭독하여 - 바룩이 두루마리를 읽어 낭독한 것은 국가

의 공식 서기관인 사반의 아들 그마랴의 방에서였다.  이것은 요시야 시대에 성전에서

두루마리가 발견된 이야기와 관련시켜 볼 때 흥미롭다(왕하 22:3-23:3).  요시야 당시

그마랴의 부친 사반은 요시야의 국가 서기관이었으며 그 역시 두루마리를 읽었던 것이

다(왕하 22:3).  25절에는 그마랴가 예레미야의 메시지에 상당히 공감을 느끼고  있었

음을 암시한다. 사반의 다른 아들이 26:24에 언급되고 있는데,  그는  아히감이었다.

아히감 역시 예레미야에 대해서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Nicholson).  아무튼 바룩이 그마랴의 방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하는 사실은  그마랴

가 예레미야를 선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한편, 바룩이 백성들에게

두루마리를 낭독해주었던 그 방은 성전 윗뜰에 있었다(26:10).  그렇기 때문에 바룩은

성전 마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을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었고 또  거

기 모인 모든 사람들은 그의 낭독하는 말씀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 했는지는 언

급되지 않고, 다만 고위 관리들의 반응만이 다음절에서부터 기록되어 있다.


=====36:11

  미가야가 그 책에 있는...듣고 - 여기서부터는 예레미야의 말씀이  낭독된  이후에

일어나는 급박한 사태의 진전이 언급되고 있다.  미가야는 두루마리의 말씀을 듣고 그

사실을 궁정내의 여러 장관들에게 보고하였다.  그리고 장관들은  바룩을 그들 앞으로

데려오도록 명령하였으며, 그들이 직접 그 두루마리의 말씀을 경청한다.   그  내용이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이 문제를 왕에게 가져가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16절).


=====36:12

 서기관에 엘리사마와...하나냐의 아들 시드기야 -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관리들은

내각을 구성하는 장관의 지위에 있던 사람들로 보인다.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사반의

아들 그마랴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언급되어 있지만, 그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알

려지지 않고 있다(Bright).  엘라단의 부친인 악볼은 요시야 당시 성전에서 두루마리

책의 발견 기사에 등장한다(왕하 22:12).


=====36:13

  들은 모든 말로 그들에게 고하매 - 본장 내용은 요시야 당시와 지금 여호야김 당시

사이의 여러 유사한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부각 시키고 있는 듯하다.  특히 요시야  때

의 두루마리 책과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는 둘 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으며, 그것이 사

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경위에 대한 서술이 양쪽 다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36:14

 구시의 증손...느다냐의 아들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어 - '여후디'란 사람에 대해

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런데 그에 대한 소개는 흔히 2대 곧 '누구의 아들 아무개'

란 형식으로 쓰이는 것과는 달리 '구시의 증손셀레먀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여후디'로

표현되고 있다. 즉 그의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까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다소

예외적인 표현이다.  이에 대한 어떤 사람은 두 사람의 사자, 곧 '구시의 아들 셀레먀

와 또 느다냐의 아들 여후디'를 잘못 표기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아무런 근

거가 없는 주장이다.  아무튼 장관들은 여후디를 시켜서 바룩을 불러 다시 한번  자기

들에게 그 두루마리를 낭독하도록 하였다.


=====36:15

  바룩이 그들의 귀에 낭독하매 - 바룩이 귀족 출신이었기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무튼 이들 장관들은 그를 아주 정중하게 대우 했었다.  아마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그들이 바룩에 대해서  우호적  감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Bright).


=====36:16

 그들이...왕에게 고하리라 - 장관들은 예레미야와 바룩을 곤경에 처하게 하려는 의

사가 없었으며, 그들을 죽이고자 고자질하려는 의사도 없었다.  다만, 그들은  두루마

리의 내용이 참으로 심각하고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왕에게

보고하려고 했을 뿐이다.  뒤에서 언급되겠지만, 그들은 이 사안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레미야와 바룩에게 빨리가서 숨어 있을 것을 권고하였다(Bright).


=====36:17

 그 구전(口傳)하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뇨 - 방백들이 바룩에게 이렇게

물어본 의도는 두루마리의 내용이 실제로 여호와의 말씀인지, 그리고  예레미야에게서

나온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Clarke).


=====36:18

 바룩이 대답하되...책에 기록하였노라 - 방백들은 예레미야가 불러주는 대로  바룩

이 받아 적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바룩이 예레미야의 글을 받아  적은   이

사건은 앞으로 두 사람 사이에 있게 될 긴 협력 관계의 시작일 뿐이었다.  예루살렘이

최종적으로 멸망할 때까지 약 18년이란 기간 동안 이들은 협조와 교우 관계를  가지게

될 것이며,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 예레미야는 아나돗 밭을 사서 그에게  위탁하

기도 한다(32:12, 16).  바룩 역시 마지막에는 예레미야와 함께  애굽으로 가게된다

(43:6).  아마 이런 긴 세월 동안에 걸쳐 바룩은 예레미야의 어록과 활동 상황을 정리

하는 일을 맡게 되었을 것이다.  본서가 현재의 형태로 있게 된데는 바룩의 공로가 결

코 배제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신명기 사상의 산문체라고 알고 있는  그런

어떤 산문체도 어쩌면 바룩의 손에서 나왔을 수 있을 것이다.  바룩 역시 그러한 문체

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던 사람이었겠기 때문이다.


=====36:19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 방백들은 선지자의 두루마리 내용에 대한  자신

들의 믿음과 확신을, 여호야김 왕이 공감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이런 주도 면밀한 배려는 곧 정당했던 것으로 밝혀진다(26절).  본장의 사건의

진행을 이끌어 가고 있는 저자는 여기서 다시 한번 호기심을 자극시켜서 그 다음에 어

떤 일이 일어날지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Nicholson).  아무튼 이 방백들은 왕이  예

레미야와 바룩의 생명을 해할 것으로 보고 이들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이와 함께 사안

이 극히 중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를  왕에게  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Clarke).


=====36:20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 여호야김은 이미 선지자 우리야를 사형

에 처한 바가 있다.   우리야가  애굽으로  도피했었는데도,  그를  끌어와서  죽였다

(26:20-24).  방백들은 왕에게 보고하러 가면서 두루마리를 엘리사마의 방에 안전하게

남겨놓고 떠나갔다.  아마도 이는 왕의 손에서 그 두루마리를 지키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36:21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모든 방백의 귀에 낭독하니 - 왕의 손에서 두루마리를  지

키려고 한 노력은 아무 소용도 없게 되었다.  여후디가 두루마리를 가져와서 왕과  왕

의 곁에선 모든 방백들 앞에 낭독하게 된 것이다.


=====36:22

 때는 구 월이라...화로가 있더라 - '겨울 궁전'이라 함은 겨울에 사용하도록  별도

의 궁전을 지어 놓았다는 것이 아니라, 궁전 내에 난방 시설을 갖춘 곳을 의미한다(암

3:15 참조, Feinberg).  유대력으로 구 월은 양력 11, 12월에 해당되는데, 이때는  눈

이 내리기도 하였으나 오랫동안 내리지는 않았다.  여기서 '화로'란 것은 석탄이나 나

무로 불을 치운 청동 화로였는데,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부자들은 추운  날

씨에는 이 화로에다 불을 피워 방 한쪽에다 두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마루에서 불을

피웠다고 한다(Clarke).


=====36:23

  왕이 소도(小刀)로...두루마리를 태웠더라 - 여호야김은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조

각내어 불태웠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예레미야와 그의 메세지를 모욕하고 무시하

고자 했다.  어쩌면 그러한 행동은 단순히 모욕의 차원을 넘어서, 이 선지자가 선언하

고 있는 저주문들의 힘을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포함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어

쨌든 왕하 22:11-20에서 여호와김의 부친 요시야가 율법책의 낭독을 들을 때 자기  옷

을 찢은 것과 여호야김이 두루마리를 찢은 것은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36:24

 두려워하거나 그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을  때  두려워하고

옷을 찢으며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던 요시야의 반응과는 달리 여호야김은  여호

와의 말씀에 대해 정반대되는 반응을 보였다.  아마, 그 당시 국제 정치적 관점에서

여호야김은 북방 적에 대한 에레미야의 경고의 예언을 무시하고, 명목상의 대국에  지

나지 않는 애굽이 그들의 봉신된 유다를 도우러 올 것이라는 희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한편 본절의 '신하'에 해당하는 '에베드'(*      )는 '하인', '노예', '종'

등의 뜻이며, 여기서는 폭넓은 의미에서의 신하를 뜻하는 듯하다.


=====36:25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간구 하여도 - 에랄단은 유다 방백의  한  사람으로

예언자 우리야를 죽이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갔던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동일인으로 추

정된다(12절 ; 26:22).  들라야는 여기서만 언급되어 있으므로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본절을 통해 볼 때 어느 정도 신앙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마

랴는 사반의 아들로서 서기관이며 바룩으로 하여금 성전 새 문 어귀 곁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백성들에게 두루마리를 낭독하도록 허락해준 자이다(10절). 이들은 위험을 무

릅쓰고 왕의 잘못된 행동을 막으려고 애썼는데, 이로 보아 그들은 예레미야의  메시지

를 참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음에 틀림없다.


=====36:26

 여호야김은 두루마리를 소각시킨 것도 모자라서, 그것을 기록한  저자를  색출하여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여호야께서 이미 그들

을 숨기셨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의 운명은 26:20-23에 언급된 우리야의 경

우와 같은 그런 처벌을 받고 말았을 것이다.  예레미야와 바룩이 얼마나 오랫동안  숨

어 있었는지 하는 점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오래지  않아  예레미야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철회한 것 같다.  왜냐하면 연대상 이때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은,

레갑사람을 시험할 때에 그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35장).


=====36:27

  예레미야의 구전(口傳)으로 기록한 말씀을 불사른 후에 -  여호야김은  두루마리를

불태움으로써 유다 멸망에 대한 예언의 능력을 소멸시켰다고 믿었을지 모르나, 두루마

리를 불태운다고 해서 여호와의 말씀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36:28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 여호와의 말씀은 다시 기록된다.  그러나  그

것이 기록으로 남든 그렇지 않든 간에 여호와의 말씀은 굳건히 설 것이고 또 성취되고

야 말 것이다.  바룩은 전과 같이 다시 예레미야가 불러주는 대로 새로운 기록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새로 기록되는 이 두 번째 두루마리에는 첫 번째 내용도       포함되었

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영감에 의한 새로운 내용이 첨가되었을 것이다(32절).


=====36:29

 그가 이 두루마리를 불사르며 말하기를 - 히브리어 원문에는 '너'라는 2인칭의  의

미가 2회 반복되어 강조 용법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를 살려서 표현하면 '네가 감히

두루마리를  태웠도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6:30,31

  왕은 두루마리를 직접 불태웠으며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 선포의 권한을 탄압하였

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의 후손들이 다윗 왕위에 앉지 못할 것이다.   그의  아들

여호야긴은 불과 석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왕위에 앉았기는 하나, 곧장 폐위되고 포

로로 잡혀가서 죽었다(왕하 24:8, 9 ; 25:27-30).  여호야김은 이 예언대로 수치스러

운 죽음을 당하였고(22:18, 19참조), 그 시체가 매장되지도 못하고 낮에는 햇볕에, 밤

에는 서리에 노출되었다(30절).  불 옆에 편안히 앉아서 여호와의 말씀을 찢어 불속에

다 던졌던  이  사람의  시신은  낮에는  더위에, 밤에는 추위에 내던져질  것이다

(Thompson).


=====36:32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취하여...더 하였더라 - 여호야김의 두루마리 소각 행

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하려는 사탄의 끈질긴 시도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말씀에 영감을 불어넣으신 하나님은 또한

그 말씀을 친히 보존하시기 때문이다.  모세 당시 백성들의 가증스러운 범죄로 말미암

아 십계명이 깨뜨러졌을 때에도 하나님은 다시금 십계명을 새겨  주셨다(출       32:19  ;

34:1-9).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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