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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이사야

[스크랩] 이사야 53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25

이사야 53장 주석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 '우리'에 대해서는 (1) '선지자  자신'(Calvin,

Oehler, Stier), (2) 52:15의 '열방들'(혹은 이방인들, G.W. Grogan), (3)  '이스라엘

백성, 특히 선지자를 포함한 이스라엘의 경건한 무리들'(Delitzsch, Leupold)  등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으나 마지막 견해가 가장 나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이들  '우리'

는 수난받는 메시야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며, 또 저

들의 고백은 거의 회개에 가까운데,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새로운

깨달음을 믿은 유대인들의 심리 상태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53:2

   주 앞에서 - 여기 '주'는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종'의 삶의 과정

은 인간들 앞에서는 하찮은 것이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벧전 2:4).

   자라나기를(      , 야알) - 문자적인 뜻은 '그가 자라나셨다'로, 과거  시제(완료

형)로 되어 있다.  본 동사의 시제를 따른다면 본절이 나타내는 인물은 본서 저자  이

사야의 과거 시대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모세, 욥, 예레미야

등을 거론할 수 있지만 본장이 묘사하는 종과는 비교되 될 수 없다.  결국 이 종은 메

시야인신 예수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저자가 과거로 시제를 적은 이유는 본

서 저자가 미래를 내다볼 때 자신이 예언하는 메시지의 성취를 너무나도 명백히  보고

있었으므로 자신에게는 그 일이 이미 발생한 것처럼 확신있게 적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을 예언적 기술법 중의 하나인 '예엊넉 과거'라 부른다.

   마른 땅 ... 줄기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11:1)를 연상케 하는 구절이며, 특히 '마른 땅'이란 구세주께서 이 땅

에 오실 때 처해 있던 비천한 상황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53:3

   본절에서 저자는 '종'의 비하(卑下)를 좀더 상세히 묘사한다.

   멸시를 받아서 - 여기에는 거절과 배척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가 고난의  걸미미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를 거절하고 배척 했다.  고난의 '종'에 대한 태도 문제에  있어

서 중립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그의 구원을 즐거워하고 그를  높이

거나 아니면 그를 배척하고 멸시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에 대한 무관심 역시 그

에 대한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질고를 아는 - 문자적인 뜻은 '병을 잘 아는'이다.  그러나 이 구절을 그가 육체적

으로 허약하여 이런 저런 질병에 계속 걸렸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병'은

'죄'를 묘사하는 비유적 술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육체적 질병을 비유

로 해서 유다의 죄악 상태를 드러낸 바 있다(1:5,6).  따라서 성취될 구원은 궁극적으

로 죄로부터의 구원인 것이 분명하다.


=====53:4

   우리의 질고를 지고 - '종'이 짊어진 질고와 수난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대리 개념이다.  의로운 한 분이 질고와 허물과  죄

악이 가득한 자들을 대신하셨다는 것이다(롬 5:17-19).  이것은 그  '수난자'가  자기

백성을 죄의 결과뿐 아니라 죄 자체에서부터 구원하셨다는 것을 함의한다.   왜냐하면

죄와 그 결과는 분리될 수 업슨다 것이기 때문이다.  '수난자'께서는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신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안고 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다.


=====53:5

   본절은 '종'이 고난받은 참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허물  때

문이다.  여기 '허물'이란 단순한 실정법들에 대한 위반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대한

위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 대변되는 우리 인간은 거룩하

신 하나님의 불변적인 법에 대해서 범죄하였다.  그 결과우리는 그의 진노와 그  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었다.  죄들은 영원한 사망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

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상황에서 인간이 지불할  사망

이란 요구가 '종'에게 떨어졌던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볼때 여기  '찔리다',  '상하

다'등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죽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하는데, 사실  히브리어에서

이 두단어는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시사하는 용어들이다.

   평화 - 이것은 단지 외적인 안녕과 조화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 곧 하나님과의 평

화를 뜻한다.


=====53:6

   본절은 신학의 대요이다.  먼저, 우리가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는  것은,

우리가 죄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며 우리가 스스로 구원할 상태에 있지 못하다는 전적

부패 교리의 근거가 된다.  둘째로, 본장에서 지금까지는 나타나지  않던  '여호와'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죄악을 '종'에게 담당시킨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하

나님의 주권 교리의 근거가 된다.   셋째로,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분에게 담당

시킴으로써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에 필요한 것을 이루어 놓으셨다는 구원 교리로 볼

수 있다.


=====53:7

   본절은 고난에 대한 종의 태도를 요약해준다.  먼저 '곤욕을 당하여'는 좀더  풀어

보면 '그가 자신을 곤욕당하도록 내맡기셨다'이다.  이것은 종이 고난을 자원하여  받

은 것을 가리킨다.  또한 '그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은 고통을 감수하고  참아냈다는

것을 가리킨다.  종은 고난을 자원하였을 뿐 아니라 끝까지 인내하셨는데, 저자는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털 깎는 자 앞의 양의 이미지를 사용

하고 있다.


=====53:8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 '곤욕'(      , 오체르)은 '강압',  '구금자'

이 그 문자적인 뜻인데, 따라서 어떤 학자는 이 단어를 '감옥'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신약에 비추어 볼때 '체포'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아무튼 '종'은  법적인  과정을

밟아 사형 언도를 받기에 이르렀다.  혹자는 이 같은 결과가 단순한 오판  때문이었다

고 말한다.  종종 무죄한 피고가 부당히 고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있기 떠문

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그 같은 결과는 사람들이 악했기 때문이다.  '종'은

빛으로 이땅에 오셨다.  그러나 죄로 저주 아래 있던 이땅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고 오

히려 잔인하게 죽였다.


=====53:9

   그리스도께서 범죄자로 낙인 찍혀 참혹한 죽음을 당하신 후 부자의 묘실에  장례된

것을 연상케 한다(마 27:32-61).


=====53:10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 하나님께서 그를 즐겨 고난당하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 구절에 담겨 있다.  '속건 제물'과 속죄 제물의 차이를 정확히 가려내

는 것은 쉽지 않다.  속건 제물은 부채를 갚거나 또는 부과된 죄값을 만족시켜서 죄인

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목적으로 드려졌다(레 5:15).  이제 우리는 '종'의 비참한 죽음

과 처참한 고난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그의 죽음, 즉 그의 생명의 피를 쏟아  부음

은 속죄를 위해 계획되고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희생이었다.  한편

'종'의 죽음이 희생 제물이었다는 말은, 그 '종'이 제사장의 일을 수행하셨다는  말이

기도 하다.  종은 다른 제사장과는 달리 기꺼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따라서

그것은 모세 율법의 제사들과는 근본적으가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유일  무이(唯一

無二)한 제사로서 다른 제사의 원형이며 실체이다 :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6).

   그 씨를 보게 되며 - 여기 '씨'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영적  후손을  가리킨다(시

22:30).  유대 사회에서 많은 자손은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  물론  살아  생전

누리는 축복이었다.  그런데 종은 죽음으로써, 또 죽어서 그 축복을 누리신다.

   그 날은 길 것이요 - 장수 역시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  이제 종 메시야는 죽음에

서 일어나 승천하시고 다시 재림하신 후 영원히 그의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호 6:2;롬

6:9).


=====53:11

   자기  자식으로  -  이는  '그(종)의  지식으로'(by  his  knowledge,  KJV,  RSV,

Hengstenberg,  Stier)  혹은  '그(종)에  관한  지식으로'(by  knowledge  of   him,

Delitzsch) 등 두 가지로 해석된다.  어떤 해석을 취하든 본문 이해에는 별무리가  없

으나,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라는 50:4내용 등을 고려하건대, 첫  번

째 견해를 더 지지하고자 한다.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 이것은, 종이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는 근거

가 된다.  한마디로 그들의 죄악을 짐어지셨다는 말이다.  죄악을 짊어짐으로 종은 사

람들에게 자신의 완전한 의를 베푸신다.  이렇게 주어진 '의'는 '법정적 칭의'라고 불

리기도 한다.


=====53:12

   본장은 종의 사역에 관한 하나님의 결론적인 선포롤 끝맺고 있는데,  종이  위대한

승리자로서 전리품을 나누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 승리는 바로 종 자신의 전부를  다

바쳐 얻은 결과였으며, 이로 인해 범죄자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셨다 :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엡 4:8).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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