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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이사야

[스크랩] 이사야 52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24

이사야 52장 주석

 

=====52:1

  네 힘을 입을지어다 - 문자적인 의미를 중시하면 좌절, 낙담에서 벗어나서  여호와

의 능력에  의지함으로써  강하고  담대하라는  뜻이다(40:28-31;51:9;삿  6:12-16;시

84:5,7).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의 평행구  정도로  봐도  무방하다(Fausset). 

예루살렘은 여기에서처럼 흔히 여성에 비유된다.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는 것은  문맥

상 포로 및 고통과 대조를 이루는 돌립 및 기쁨, 번영의 미래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표

현으로 보면 되겠다.

   이제부터 ... 것임이나라 - 여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란 문맥상 이스

라엘을 침입하는 이방 군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바벧론 포로  귀환이후에

도 두 차례 정도 큰 외적의 침입을 받았다.  따라서 본 예언은 그 완전한 성취 시점을

먼 미래로 잡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Leupold).  먼 훗날 곧 메시야의 완전한  통치

를 받게 되는 날, 이스라엘 곧 교회는 부정하고 불의한 세력의 통치없이 완전한  성결

을 이루며 살게 될 것이다.


=====52:2

  보좌에 앉을지어다(      , 쉐비) - 문자적인 뜻은 '앉으라'이다.  문맥적으로  볼

때 이것은 마치 일어섰던 곳, 곧 티끌에 다시 앉으라는 뜻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용

어는 영예로운 진리, 왕의 자리 등에 앉기를 권할 때 주로 사용된다.  여기서  우리는

포로 귀환할 이스라엘이 포로 해방이라는 차원을 넘어 무너진 왕조를 다시 회복할  것

까지 내다보게 된다.  물론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은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되어질 것이다(9:1-7).


=====52:3

 값 없이 ... 속량되리라 - 이스라엘이 값을 받지도 못한 채 포로가 되고 죄수가 되

었으니 이제 값을 치르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되겠다는 말씀이다.  값을 치렀든 안 치렀

든지 간에 일단 포로나 노예의 소유주가 된 자는 일정한 값을 받지 않고는 절대  그들

을 놓아주지 않기 마련이다.  이스라엘의 소유주인 바벧론은 이스라엘 포로에 대한 그

같은 태도를 굽히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자유

의 몸으로 만드실 것이다.  영적 이스라엘인 신약시대 교회 역시 '죄 아래 팔린 자'이

다(롬 7:14).  그러나 이들 역시 값없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55:1).  말하자면  육

신을 쓰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행위에 관계없이 죄인이

지만 값없이 베푸신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통해 값을 지불하지 않고도 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52:4

 본절은 앞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볼 때 포로 이스라엘이 값없이 자유의 몸이 될  것

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이 그 유사한 예들을 증거로 제시하는 내용으로 보면 되겠다. 

먼저 과거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애굽 땅에 내려갔었는데 그 후손들은 값을 받지도 못

한 채 애굽의 노예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한 바 있다.  또한  이스라엘

은 디글랏 빌레셀, 살만에셀, 산헤립 드응로 대변되는 앗수르의 군대에게 수차례 공격

받고 포로로 잡혀간 바 있었는데, 앗수르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알지  못하

고 마치 이스라엘의 소유주인 양 행사하다가 파멸당하고 말았다.  이 같은 과거의  예

들을 근거로 할 때 이스라엘이 비록 값없이 바벧론에 팔려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52:5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 문자적인 뜻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로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내놓는 탄식 같지만, 문맥상 하나님의 강력한 개입을 압시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옳다.  과거처럼 이스라엘이 값없이 포로로 잡혀갔으니 이스라엘의  주인되

신 하나님이 강력 개입 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 여기서 '떠들며'는 자랑한다는 뜻인데,  '슬픔의

비명을 지른다'는 뜻도 있기 때문에 바벧론의 포악한 통치 및 압제자들의 폭정으로 인

한 이스라엘 포로들의 '비명소리'를 의미한다 할 수 있겠다(70인역).  두 경우의 어느

것이 옳든 간에 이것은 하나님이 강력히 개입하시는 이유가 된다.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다는 뜻인데,  구체적으

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하나님의 능력이 없다고 비웃는 것을 가리킨

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구속하시는 근본적 이유는 그들의 선함 때문이 아니라  이스

라엘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당신의 주권적인 계획과 그의 거룩하신 이름의 영예  때

문이다(겔 20:9,14).


=====52:6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 1-5절에 드러난 하나님의  이스라엘  구원

계획의 중요한 이유가 밝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앞문맥에서  밝힌  예언을

그대로 성취시킴으로써 당신의 영화로운 권능과 주권을 밝히 드러내고자 하신다.


=====52:7

  온 성(城)안 백성이 고대하고 원하였던 소식을 소지하고 달려오는 전령을 발견하였

을때 그들의 눈에 비친 전령의 발이야말로 아름답게 보였음에 틀림없다.  물론 그  소

식이란 바벧론 포로로부터의 회복의 소식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

의 복음에 대한 암시라고도 볼 수 있겠다(롬 10:15).


=====52:8

 이는 여호와께서 이온으로 돌아오실때에 - 파수꾼들이 한 목소리로 기쁨의  노래를

부를 첫 번째 이유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돌아오심이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포로 구

환민들과 함께 다시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의 백성을 일순간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묘사는 하나님의 적극적

개입에 대한 표현으로 보면 되겠다.

   눈이 마주 봄이로다 - '눈이 눈을 보기 때문이다'란 뜻이다.  민 14:14에서도 등장

하는데, 그곳에서는 '대면하여 보다'로 번역하고 있다.  어떤 베일이나  중간  매개자

없이 가까이서, 공개적으로 또 명백히 보게 되는 사실을 드러낼 때 이 표현이  사용된

다.


=====52:9

 구속하셨음이라 - 여기 '구속'은 1차적으로는 하나님이 행하실 이스라엘의  바벧론

포로로부터의 구원을 가리킨다.  그러나 2차적으로는 그 구원이 암시하는 바,  메시야

를 통한 온 인류의 구원까지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구속의

결과를 서술하고 있는 10절에 의하면 온 세상 백성이 그 구속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

이다.

 

=====52:10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 전투를 위해 자신의 튼튼한 팔을 과시해 보이는 용사로부터

취한 이미지이다(겔 4:7).

   모든 땅 끝까지도 ... 구원을 보았도다 -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

을 모든 민족들이 여호와를 인정하게 되는 근거가 된다(66:18-20).


=====52:11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 우상을 좋아하는 이방의 습성에서 벗어나 자신들을

성결케 보존하라는 것이다.  야곱은 세겜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로 올라가기에  앞

서 그 모든 우상, 신상 따위를 처분하라는 바자령을 받은 바 있다(창 35:1-5).   하나

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준비 조치는 세상 우상을 제거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성

도에게 세상으로부터 나와 그 모든 영향력으로부터 단절될 것을 명령할 때 본  구절을

인용한 바 있고(고후 6:17, 18), 요한도 그리스도인이 '큰 성 바벧론'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그 죄의 동참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을 명령할 때 본절의  일부를  인용하고

있다(계 18:2,4).

   여호와의 기구(器具)를 메는 자여 ... 할지어다 -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

인이 포로를 잡혀갈 때 바벧론 왕 느부갓네살이 성전의 모든 기구들을 함께 운반해 갔

고 그것을 자신들의 축제 때 사용했던 사실과(단 5:2-5), 고레스의 명령으로 본국  귀

환시 그 기구들도 같이 옮겨 갔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스 1:7-11).  성전의 일을 맡

아 보는 제사장과 레위 족속(민 1:50:4:15)은, 일반 백성 그 이상으로 자신들을  성결

하고 거룩되이 구별해야 했다.


=====52:12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 황급히 나와야 했던 출애굽 때와는 대비를 이루는  상황

이 제시된다(출 12:33,39;신 16:3).


=====52:13

   보라(      , 힌네) - 저자는 본서 곳곳에서 주의를 새롭게 환기시킬 목적이  있을

때 이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무려 70여 회나 된다.  이제 저자가 새롭게 독자들의 관

심을 모으려고 하는 대상은 40장 이후에 계속 나온 '여호와의 종'이다.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 본 하반절은 상반절에서 진술된  것

에 의해서 나타나는 결과를 말하고 있다.  그 내용은 본 하반절을 이루고 있는 세  개

의 동사의 의미를 통해 잘 드러난다.  첫 번쩌 동사는 '야룸'(         )인데  이것은

'그가 일어날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다.  두 번째 동사는 '니사'(      )로서  '그가

자신을 일으킬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다.  마자막 동사는 '가바'(      )로서 하나의

상태를 나타내므로 '그가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로 번역된다.  주목할 점은  이  세

동사가 모두 승귀(昇貴)의 최고 정점을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신약

성경을 사익하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노

평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

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본서  저자와

빌립보서 저자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할 때 모두 하나님의 성령의 유일한 '구원

자'이신 그분의 승귀라는 위대한 주제를 진술할 수 있었다.


=====52:14

   이왕에는 ... 놀랐거니와 - 여기 '놀랐다'는 선지자 에스겔이 두로에 대해 말할 때

사용된 '숌무'(        )인데, 에스겔은 섬들의 거민들이 한때 교만하던 두로가  엄청

난 하나님의 응징을 받은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질리는 것을 한 폭의 그림을 보듯  생

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본 동사를 사용한 바 있다(겔 27:35).  본절에서도 동일한 개념

을 나타내기 위하여 동일한 동사가 동일한 개념을 나타내기 위하여 동일한 동사가  사

용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본절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질리듯 놀란 것은 종의 모

습이 너무 상하여서 사람의 모습 같지 않을 정도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두로처럼 그 종이 하나님의 징벌릉 받았다고 생각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52:15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 여기 '후에는'은 시간적 경과를 나타내는  부사

가 아니라 14절에 나오는 '상하였으므로'와 본절의 동사가 동시 동작임을 암시하는 부

사이다.  말하자면 그가 상해 있는 동안에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하

는 부사라는 말이다.  한편, '놀랠 것이며'의 의미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에 해당하는 '예제'(      )를 어떤 학자들은 '기뻐 뛰게 할 것이다', '경배할 것이

다' 등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전에 팔레스틴에서 발견된 매우 오래된 본서

사본에 따르면, 본 동사는 '뿌릴 것이다'로 번역되어 있다(sprinkle, KJV, NIV).   이

번역은 맛소라 본문의 직역과 동일하다.  더 나아가 뿌린다는 것은 레  4:6;8:11;14:7

등에 나오는 것처럼 결례 집행을 암시한다.  결례를 집행하기 위하여 뿌리던 자는  제

사장이었다.  그렇다면 본서의 '종'의 사역 역시 제사장의 사역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

이다.  부사 '후에는'과 연결시켜 보면 그 '종'은 그토록 무섭게 상해 있는 동안 바로

이 결례를 집행하신다는 뜻이 된다.  많은 무리에게 전적으로 부정한 자로 간주되었으

며 따라서 정결케 되어야 할 필요성이 큰 것으로 여겨진 바로 그 분이 오히려  대제사

장으로서 물과 피를 뿌릴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열방을 정결케 하실 것이라는  말이

다.  그분은 너무도 고난을 많이 당하신 수난자로서 그 일을 수행하실 것이다.   그러

므로 그의 고난들은 속죄적 정결을 위한 것이다.

   입을 봉하리니 - 이 표현은 어떤 소식에 압도되어버린 상태를 나타낼 때 처한 것은

수난과 종의 사역이 성공적일 뿐 아니라 그의 사역의 형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

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본 예언을 복음 자체에다 다음과 같이 적용시키고  있

다 :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9).  본절을 포함한 13,14절은 53장에서 전개될 위대한 주제의  요약이라  볼

수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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