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사51:1]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 - 이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본국으로 귀환할 때를 고대했던 남은 자들을 가리킨다. 이를릉 다포로 생활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던 자들이었다. 본문에서 이들은 '의를 좇는' 자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칫하면 형식적 율법 준수에 집착하는 것으로써 선민(選民)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구절들은 바로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아 주려고 하는 암시를 내포하고 있다.
ꃨ 반석 ... 구덩이 - 이 둘은 석수장이가 돌을 떠내서 움푹 패인 자리를 가리킨다. 무엇인가 암시하는 이미지인데, 그 내용은 2절에 설명되어 있는 것 곧 하나님이 그 주권적 의지에 따라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언약 백성이 출현하게 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두 용어가 포함된 문장과 2절 상반절은 공히 '생각하여 보라'로 끝맺고 있기 때문이다.
성 경: [사51:2]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너희 조상 ... 생각하여 보라 - 저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의'(5절 참조) 설명함에 있어서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시작되어 많은 수의 민족으로까지 불어난 이스라엘 민족을 예로 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서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에게 하나님 나라에 관한 약속을 부여하시되 인간의 안목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방법 곧 노인 사라를 통한 자손 출생을 통하여 그 약속을 이루어 나가셨고,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큰 나라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이 위로를 받은 남은 자들은 구원에 관한 절대 주권을 쥐고 계신 하나님을 소망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의로워질 수 있는 근거를 이 소망 위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성 경: [사51:3]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그 광야로 에덴 같고 - 여기 '에덴'은 하나님이 인간의 거주지로 정하셨던 최초의 장소인 에덴 동산을 가리키는데(창 2:8,9), 구약에서 이 호칭은 이상적인 목초지 혹은 농경지의 상징이 되고 있다(창 13:10;겔 31:8,9). 그러나 겔 36:35과 마찬가지로 본 호칭은 미래에 다시 회복될 처소를 상징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본절은 종말론적 관점에서도 이해 가능하다. 1차적으로 본절은 혼자였던 아브라함을 통해 큰 민족을 만드셨던 하나님이 포로지의 남은 자들을 근거로 이스라엘을 재건하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 그리고 그 예언 성취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완료형으로 적고 있다. 그러나 종말론적 성격을 띠고 있는 '에덴'이란 호칭으로 미루어 볼 때, 본절은 메시야를 통한 구속 사역의 완성 그리고 더 나아가 메시야의 재림 때에 있을 완전한 구속 사역의 성취에 따른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에까지 그 시야를 확산시키고 있다 하겠다.
성 경: [사51:4]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내 백성 ... 내 나라 - 각각 '암미'(*), '레움미'(*)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 두 용어를 각각 '민족들'이란 뜻의 '아밈'(*)과 '나라들'을 뜻하는 '레우밈'(*)으로 바꿈으로써 본 구절의 청중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한 만민들인 것으로 보려 하나 '만민'에 관한 언급이 따로 나오므로 원문 수정까지 해가면서 굳이 그렇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ꃨ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 원문에 입각한 직역은 '나의 심판은 만민의 빛이 되리라'이다. 문맥상 본절의 '율법'과 본문의 '심판'은 동의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본절과 5절 내용은 여호와의 날에 되어질 상황을 그린 2:3,4과, 이방에 공의를 베푸실 '종'의 노래에 해당하는 42:1 내용과 연관성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본문의 예언 역시 바벨론 포로 귀환뿐 아니라 메시야 시대에 되어질 일들을 통해 온전히 성취될 것이라 하겠다.
성 경: [사51:5]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 계속해서 복합 성취를 겨냥한 예언이 나오며, 특히 종말론적 색채가 짙은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와 이스라엘의 죄의 해결을 동시에 만족시킬 대속주이신 메이야의 대속 사역을 암시한다. 한편 메시야의 대속 사역은 1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위한 것이지만, 2차적으로는 이방의 택한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ꃨ 팔 -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하며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26)을 가리킨다.
성 경: [사51:6]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하늘이 연기같이 ... 죽으려니와 - 만물의 일시성,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묘사이지만 종말에 되어질 어떤 징조에 대한 암시가 정확히 담겨 있지 않다고 볼 수도 없는 구절이다. 이 같은 묘사가 갑자기 나오는 것은 앞서 언급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예언의 성취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통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이방의 선택받은 자의 구원은 결국 성취되고 말 분명한 사실이다 :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시 102:26;히 1:11,12).
성 경: [사51:7]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의를 아는 자들 ...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 - 1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여호와의 구원을 사모하여 율법대로 살아가고자 힘쓰는 이들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특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뜻한다. 이제 바벨론 포로 사건을 놓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네가 어떻게 구원받겠느냐'라고 조롱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위기 때 여호와의 언약적 신실성을 확신하는 이들은 결코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마 10:28).
성 경: [사51:8]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 좀이 의복을 갉아먹어버리듯이 무기력하게 멸망당하고 말 악인들의 허망함과 유약함을 나타낸다(Fausset). 이처럼 유약한 인간이라면 그가 내뱉는 조롱조의 말은 생명력도 없고 영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거기에 비해 하나님은 그 무엇에 의해서도 해(害)를 받지 않으시는 분이며 따라서 그분에게서 나온 말씀, 구원의 계시는 생명력이 있다.
성 경: [사51:9]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사야의 간구]
ꃨ 깨소서 깨소서 - 하나님의 과거의 전능 사역을 회고하며 아뢰는 이 호소는 '공동체적 애가'(corporate lamentation)의 특성을 보여준다(시 44:1-3, 23;80:2). 하나님의 구원을 재촉하는 듯한 이 호소는 하나님의 무관심에 대해 원망하는 말이 아니라 긴박한 현실 상황으로부터 한시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에서 나온 말이다.
ꃨ 라합 - '애굽'의 시적인 이름이다. 이미 본서 저자가 사용한 바 있다 :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30:7).
ꃨ 용(*, 탄닌) - 문자적인 뜻은 '악어'인데 악어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애굽 정복 뒤에 애굽의 동전에 새겨진 그림을 통해 확인하였듯이 애굽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특히 그 왕 바로를 가리킨다(27:1;시 74:13,14;겔 32:2). 선지자는 여기서 기적적인 출애굽 사건 중 바로의 항복기사를 회상하고 있다.
성 경: [사51:10]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사야의 간구]
ꃨ 바다를 ... 주가 아니시니이까 - 여기서 '바다'는 홍해를 가리킨다(43:6;출 14:21). '당신은 홍해 기적 사건을 일으키신 바로 그 전능자가 아니십니까?'라고 묻고 있지만 이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의 질문이다.
성 경: [사51:11]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사야의 간구]
ꃨ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 1차적으로는 넓게 펼쳐진 광야를 지나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귀환민들에게 찬양과 감격이 가득할 것을 서술한 것이다. 한편 본절이 9,10절의 애가적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다하여 본절의 화자(話者)를 하나님으로 보려는 시도도 있으나, 원문상 9-11절과 12-16절은 서술 시점 및 사용된 인칭에 있어 분명한 구별성을 보이고 있다.
성 경: [사51:12]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나여늘 나여늘(*, 아노키 아노키) - 보기 드물게, '아노키'가 두 번 사용되었는데 참위로자, 구원자는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것은 계속 반복되는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그의 백성에 대한 답답한 심정의 표출이기도 하다.
성 경: [사51:13]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 원문 직역은 '너를 멸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이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은 표적을 정하고 활시위를 뒤로 잡아당긴 상태를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시 7:13;11:2;21:12, Maurer). 사실 이와 같은 상태 속에 있다면 두려워떨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본절은 그와 같은 상태 속에 있더라도, 우주 안에 되어지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사람과 하나님 중에 누구를 더 의지할 것인가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며 날마다 부딪혀야 하는 심각한 질문이다.
성 경: [사51:14]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 여기 '결박된 포로'(*, 초에)의 문자적인 뜻은 '한 쪽으로 치우친 것' 혹은 '기운 것'으로 담은 액체를 쏟기 위해 기울인 그릇 따위를 연상케 한다(헴 48:12). 그렇다면 이것은 포로로서 그 헐리를 구부린 모습으로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회화적 표현이라 보면 적절하다. 이제 그 포로 상태에서 속히 놓인다면 본절의 시점은 포로 시대 말기 쯤이 될 것이다. 이 표현을 오랫동안 고난을 당하지만 결국에는 승리할 신약 교회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Fausset).
성 경: [사51:15]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바다를 저어서 그 물결고 흉용케 하는 자 - 원문 직역은 '그 물결이 뛰는 바다를 나눈 자'이다. '꾸짖어 뛰는 파도를 잠잠케 한 자'로 번역하는 역본도 있다. 이 같은 번역들을 종합할때 본 구절은 파도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흉용한 바다를 명령하셔서 잔잔케 하시고 둘로 나누어 그 사이에 길을 내심으로 이스라엘로 무사히 건너게 하셨던 홍해 도보 사건을 암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성 경: [사51:16]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 이 구절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본문이 세 번째 종의 노래를 번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시할 때(49:2), 이는 본서에서 줄곧 암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종'을 통한 신기원적인 구원 사역을 가리킨다고 추측할 수 있다(49:2;50:4,5;59:21;신 18:18;요 3:34, G.W. Grogan).
성 경: [사51:17]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ꃨ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 - 당시 바벨론의 포로로 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상태를 분노의 잔을 마신 자에 빗대어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로 가득 담긴 잔을 마신 자는 전적으로 파멸당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비유는 그리스도에 대속적 죽음과 관련해서도 사용된바 있다(막 10:38). 한편 9절에서 사용된 '히트오레리'(*) 곧 '깰지어다'가 여기서도 두 번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1차적으로 진정 깨어나야 할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함인 것 같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회복될 것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성 경: [사51:18]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포로 상태의 이스라엘을 회복할 존재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은 바사 왕 고레스의 개입에 의해 실현되었다. 아울러 본문은 영적 이스라엘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신적 존재 곧 메시야를 통해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성 경: [사51:19]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ꃨ 이 두가지 일 - 정확히는 '이 두 가지 일들'이다. 말하자면 두 쌍, 곧 네 가지 일들을 가리키는데, 먼저 한 쌍은 땅의 관점에서 본 것으로 황폐와 멸망이며 또 다른 한 쌍은 사람의 관점에서 본 것으로 기근과 칼, 곧 전쟁이다. 한편, 이를 내적 사건과 외적 사건으로 구분하는 견해(Aben Ezra, Kimchi), 혹은 기근으로 인한 황폐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멸망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Clark).
성 경: [사51:20]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ꃨ 그물에 걸린 영양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 여기 '모퉁이'(*, 로쉬)란 그 문자적인 뜻이 '머리', '꼭대기'인데 거리의 '머리'(꼭대기)란 당시 한 도시의 모든 거리와 도로의 출발점이자 중심지였던 성문을 가리킨다. 당시 성문은 밤이 되면 폐쇄되었는데 문 안으로 들어오고자 했던 자로서 밤이 되어 그 문이 폐쇄되면 그 문 앞에 모여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모습 곧 여럿이 성문 앞에 모여있는 모습을 저자는 그물에 걸린 영양떼에 비유하고 있다. 어쩔 도리없이 그 발이 묶인 나그네와 같이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있다.
성 경: [사51:21]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ꃨ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 - '포도주 없이 취한 자'이다. 포도주 때문이 아니라 외적의 침입으로 비틀거리고 쓰러진 이스라엘의 형편을 지적으로 표현이다(29:9;애 3:15).
성 경: [사51:22]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ꃨ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 문자 그대로는, 다시는 바벨론 포로와 같은 시련과 재난을 허락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귀환 후에도 로마의 침공으로 동일한 시련과 재난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이 약속은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제 경건한 참이스라엘 백성, 곧 남은자들은 세상에서는 시련과 재난을 겪으나 결국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결코 동일한 고통을 겪지 않고 살게 될 것이다.
성 경: [사51:23]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ꃨ 그들의 앞에 ... 하였느니라 - 정복자가 피정복자를 잔혹하게 대하였던 사실에 대한 생생한 묘사이다. 정복자들이 문자 그대로 그 피정복 국가 왕의 목을 밟았던 관습은 성경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수 10:24;66:11,12).
성 경: [사52:1]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네 힘을 입을지어다 - 문자적인 의미를 중시하면 좌절, 낙담에서 벗어나서 여호와의 능력에 의지함으로써 강하고 담대하라는 뜻이다(40:28-31;51:9;삿 6:12-16;시 84:5,7).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의 평행구 정도로 봐도 무방하다(Fausset). 예루살렘은 여기에서처럼 흔히 여성에 비유된다.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는 것은 문맥상 포로 및 고통과 대조를 이루는 돌립 및 기쁨, 번영의 미래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면 되겠다.
ꃨ 이제부터 ... 것임이니라 - 여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란 문맥상 이스라엘을 침입하는 이방 군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 귀환이후에도 두 차례 정도 큰 외적의 침입을 받았다. 따라서 본 예언은 그 완전한 성취 시점을 먼 미래로 잡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Leupold). 먼 훗날 곧 메시야의 완전한 통치를 받게 되는 날, 이스라엘 곧 교회는 부정하고 불의한 세력의 통치없이 완전한 성결을 이루며 살게 될 것이다.
성 경: [사52:2]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보좌에 앉을지어다(*, 쉐비) - 문자적인 뜻은 '앉으라'이다. 문맥적으로 볼 때 이것은 마치 일어섰던 곳, 곧 티끌에 다시 앉으라는 뜻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용어는 영예로운 진리, 왕의 자리 등에 앉기를 권할 때 주로 사용된다. 여기서 우리는 포로 귀환할 이스라엘이 포로 해방이라는 차원을 넘어 무너진 왕조를 다시 회복할 것까지 내다보게 된다. 물론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은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되어질 것이다(9:1-7).
성 경: [사52:3]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값 없이 ... 속량되리라 - 이스라엘이 값을 받지도 못한 채 포로가 되고 죄수가 되었으니 이제 값을 치르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되겠다는 말씀이다. 값을 치렀든 안 치렀든지 간에 일단 포로나 노예의 소유주가 된 자는 일정한 값을 받지 않고는 절대 그들을 놓아주지 않기 마련이다. 이스라엘의 소유주인 바벨론은 이스라엘 포로에 대한 그 같은 태도를 굽히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자유의 몸으로 만드실 것이다. 영적 이스라엘인 신약시대 교회 역시 '죄 아래 팔린 자'이다(롬 7:14). 그러나 이들 역시 값없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55:1). 말하자면 육신을 쓰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행위에 관계없이 죄인이지만 값없이 베푸신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통해 값을 지불하지 않고도 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 경: [사52:4]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본절은 앞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볼 때 포로 이스라엘이 값없이 자유의 몸이 될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이 그 유사한 예들을 증거로 제시하는 내용으로 보면 되겠다. 먼저 과거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애굽 땅에 내려갔었는데 그 후손들은 값을 받지도 못한 채 애굽의 노예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한 바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디글랏 빌레셀, 살만에셀, 산헤립 드응로 대변되는 앗수르의 군대에게 수차례 공격받고 포로로 잡혀간 바 있었는데, 앗수르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알지 못하고 마치 이스라엘의 소유주인 양 행사하다가 파멸당하고 말았다. 이 같은 과거의 예들을 근거로 할 때 이스라엘이 비록 값없이 바벨론에 팔려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성 경: [사52:5]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 문자적인 뜻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로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내놓는 탄식 같지만, 문맥상 하나님의 강력한 개입을 압시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옳다. 과거처럼 이스라엘이 값없이 포로로 잡혀갔으니 이스라엘의 주인되신 하나님이 강력 개입 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ꃨ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 여기서 '떠들며'는 자랑한다는 뜻인데, '슬픔의 비명을 지른다'는 뜻도 있기 때문에 바벨론의 포악한 통치 및 압제자들의 폭정으로 인한 이스라엘 포로들의 '비명소리'를 의미한다 할 수 있겠다(70인역). 두 경우의 어느 것이 옳든 간에 이것은 하나님이 강력히 개입하시는 이유가 된다.
ꃨ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다는 뜻인데,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하나님의 능력이 없다고 비웃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구속하시는 근본적 이유는 그들의 선함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당신의 주권적인 계획과 그의 거룩하신 이름의 영예 때문이다(겔 20:9,14).
성 경: [사52:6]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 1-5절에 드러난 하나님의 이스라엘 구원 계획의 중요한 이유가 밝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앞문맥에서 밝힌 예언을 그대로 성취시킴으로써 당신의 영화로운 권능과 주권을 밝히 드러내고자 하신다.
성 경: [사52:7]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온 성(城)안 백성이 고대하고 원하였던 소식을 소지하고 달려오는 전령을 발견하였을때 그들의 눈에 비친 전령의 발이야말로 아름답게 보였음에 틀림없다. 물론 그 소식이란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회복의 소식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암시라고도 볼 수 있겠다(롬 10:15).
성 경: [사52:8]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이는 여호와께서 이온으로 돌아오실때에 - 파수꾼들이 한 목소리로 기쁨의 노래를 부를 첫 번째 이유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돌아오심이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포로 구환민들과 함께 다시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일순간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묘사는 하나님의 적극적 개입에 대한 표현으로 보면 되겠다.
ꃨ 눈이 마주 봄이로다 - '눈이 눈을 보기 때문이다'란 뜻이다. 민 14:14에서도 등장하는데, 그곳에서는 '대면하여 보다'로 번역하고 있다. 어떤 베일이나 중간 매개자 없이 가까이서, 공개적으로 또 명백히 보게 되는 사실을 드러낼 때 이 표현이 사용된다.
성 경: [사52:9]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구속하셨음이라 - 여기 '구속'은 1차적으로는 하나님이 행하실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구원을 가리킨다. 그러나 2차적으로는 그 구원이 암시하는 바, 메시야를 통한 온 인류의 구원까지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구속의 결과를 서술하고 있는 10절에 의하면 온 세상 백성이 그 구속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 경: [사52:10]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 전투를 위해 자신의 튼튼한 팔을 과시해 보이는 용사로부터 취한 이미지이다(겔 4:7).
ꃨ 모든 땅 끝까지도 ... 구원을 보았도다 -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을 모든 민족들이 여호와를 인정하게 되는 근거가 된다(66:18-20).
성 경: [사52:11]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 우상을 좋아하는 이방의 습성에서 벗어나 자신들을 성결케 보존하라는 것이다. 야곱은 세겜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로 올라가기에 앞서 그 모든 우상, 신상 따위를 처분하라는 바자령을 받은 바 있다(창 35:1-5).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준비 조치는 세상 우상을 제거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성도에게 세상으로부터 나와 그 모든 영향력으로부터 단절될 것을 명령할 때 본 구절을 인용한 바 있고(고후 6:17, 18), 요한도 그리스도인이 '큰 성 바벨론'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그 죄의 동참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을 명령할 때 본절의 일부를 인용하고 있다(계 18:2,4).
ꃨ 여호와의 기구(器具)를 메는 자여 ... 할지어다 -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인이 포로를 잡혀갈 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성전의 모든 기구들을 함께 운반해 갔고 그것을 자신들의 축제 때 사용했던 사실과(단 5:2-5), 고레스의 명령으로 본국 귀환시 그 기구들도 같이 옮겨 갔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스 1:7-11). 성전의 일을 맡아 보는 제사장과 레위 족속(민 1:50:4:15)은, 일반 백성 그 이상으로 자신들을 성결하고 거룩되이 구별해야 했다.
성 경: [사52:12]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 황급히 나와야 했던 출애굽 때와는 대비를 이루는 상황이 제시된다(출 12:33,39;신 16:3).
성 경: [사52:13]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보라(*, 힌네) - 저자는 본서 곳곳에서 주의를 새롭게 환기시킬 목적이 있을 때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무려 70여 회나 된다. 이제 저자가 새롭게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려고 하는 대상은 40장 이후에 계속 나온 '여호와의 종'이다.
ꃨ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 본 하반절은 상반절에서 진술된 것에 의해서 나타나는 결과를 말하고 있다. 그 내용은 본 하반절을 이루고 있는 세 개의 동사의 의미를 통해 잘 드러난다. 첫 번째 동사는 '야룸'(*)인데 이것은 '그가 일어날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다. 두 번째 동사는 '니사'(*)로서 '그가 자신을 일으킬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다. 마자막 동사는 '가바'(*)로서 하나의 상태를 나타내므로 '그가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로 번역된다. 주목할 점은 이 세 동사가 모두 승귀(昇貴)의 최고 정점을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신약 성경을 삽입하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노평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본서 저자와 빌립보서 저자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할 때 모두 하나님의 성령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그분의 승귀라는 위대한 주제를 진술할 수 있었다.
성 경: [사52:14]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이왕에는 ... 놀랐거니와 - 여기 '놀랐다'는 선지자 에스겔이 두로에 대해 말할 때 사용된 '숌무'(*)인데, 에스겔은 섬들의 거민들이 한때 교만하던 두로가 엄청난 하나님의 응징을 받은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질리는 것을 한 폭의 그림을 보듯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본 동사를 사용한 바 있다(겔 27:35). 본절에서도 동일한 개념을 나타내기 위하여 동일한 동사가 동일한 개념을 나타내기 위하여 동일한 동사가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본절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질리듯 놀란 것은 종의 모습이 너무 상하여서 사람의 모습 같지 않을 정도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두로처럼 그 종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성 경: [사52:15]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 여기 '후에는'은 시간적 경과를 나타내는 부사가 아니라 14절에 나오는 '상하였으므로'와 본절의 동사가 동시 동작임을 암시하는 부사이다. 말하자면 그가 상해 있는 동안에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부사라는 말이다. 한편, '놀랠 것이며'의 의미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에 해당하는 '예제'(*)를 어떤 학자들은 '기뻐 뛰게 할 것이다', '경배할 것이다' 등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전에 팔레스틴에서 발견된 매우 오래된 본서 사본에 따르면, 본 동사는 '뿌릴 것이다'로 번역되어 있다(sprinkle, KJV, NIV). 이 번역은 맛소라 본문의 직역과 동일하다. 더 나아가 뿌린다는 것은 레 4:6;8:11;14:7등에 나오는 것처럼 결례 집행을 암시한다. 결례를 집행하기 위하여 뿌리던 자는 제사장이었다. 그렇다면 본서의 '종'의 사역 역시 제사장의 사역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부사 '후에는'과 연결시켜 보면 그 '종'은 그토록 무섭게 상해 있는 동안 바로 이 결례를 집행하신다는 뜻이 된다. 많은 무리에게 전적으로 부정한 자로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정결케 되어야 할 필요성이 큰 것으로 여겨진 바로 그 분이 오히려 대제사장으로서 물과 피를 뿌릴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열방을 정결케 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그분은 너무도 고난을 많이 당하신 수난자로서 그 일을 수행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고난들은 속죄적 정결을 위한 것이다.
ꃨ 입을 봉하리니 - 이 표현은 어떤 소식에 압도되어버린 상태를 나타낼 때 처한 것은 수난과 종의 사역이 성공적일 뿐 아니라 그의 사역의 형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본 예언을 복음 자체에다 다음과 같이 적용시키고 있다 :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 본절을 포함한 13,14절은 53장에서 전개될 위대한 주제의 요약이라 볼 수 있다.
성 경: [사53:1]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멸시와 외면을 당하는 메시야]
ꃨ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 '우리'에 대해서는 (1) '선지자 자신'(Calvin, Oehler, Stier), (2) 52:15의 '열방들'(혹은 이방인들, G.W. Grogan), (3) '이스라엘 백성, 특히 선지자를 포함한 이스라엘의 경건한 무리들'(Delitzsch, Leupold) 등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으나 마지막 견해가 가장 나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이들 '우리'는 수난받는 메시야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며, 또 저들의 고백은 거의 회개에 가까운데,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새로운 깨달음을 믿은 유대인들의 심리 상태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성 경: [사53:2]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멸시와 외면을 당하는 메시야]
ꃨ 주 앞에서 - 여기 '주'는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종'의 삶의 과정은 인간들 앞에서는 하찮은 것이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벧전 2:4).
ꃨ 자라나기를(*, 야알) - 문자적인 뜻은 '그가 자라나셨다'로, 과거 시제(완료형)로 되어 있다. 본 동사의 시제를 따른다면 본절이 나타내는 인물은 본서 저자 이사야의 과거 시대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모세, 욥, 예레미야 등을 거론할 수 있지만 본장이 묘사하는 종과는 비교되 될 수 없다. 결국 이 종은 메시야인신 예수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저자가 과거로 시제를 적은 이유는 본서 저자가 미래를 내다볼 때 자신이 예언하는 메시지의 성취를 너무나도 명백히 보고 있었으므로 자신에게는 그 일이 이미 발생한 것처럼 확신있게 적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을 예언적 기술법 중의 하나인 '예언적 과거'라 부른다.
ꃨ 마른 땅 ... 줄기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11:1)를 연상케 하는 구절이며, 특히 '마른 땅'이란 구세주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처해 있던 비천한 상황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성 경: [사53:3]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멸시와 외면을 당하는 메시야]
본절에서 저자는 '종'의 비하(卑下)를 좀더 상세히 묘사한다.
ꃨ 멸시를 받아서 - 여기에는 거절과 배척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가 고난의 걸미미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를 거절하고 배척 했다. 고난의 '종'에 대한 태도 문제에 있어서 중립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그의 구원을 즐거워하고 그를 높이거나 아니면 그를 배척하고 멸시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에 대한 무관심 역시 그에 대한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ꃨ 질고를 아는 - 문자적인 뜻은 '병을 잘 아는'이다. 그러나 이 구절을 그가 육체적으로 허약하여 이런 저런 질병에 계속 걸렸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병'은 '죄'를 묘사하는 비유적 술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육체적 질병을 비유로 해서 유다의 죄악 상태를 드러낸 바 있다(1:5,6). 따라서 성취될 구원은 궁극적으로 죄로부터의 구원인 것이 분명하다.
성 경: [사53:4]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ꃨ 우리의 질고를 지고 - '종'이 짊어진 질고와 수난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대리 개념이다. 의로운 한 분이 질고와 허물과 죄악이 가득한 자들을 대신하셨다는 것이다(롬 5:17-19). 이것은 그 '수난자'가 자기 백성을 죄의 결과뿐 아니라 죄 자체에서부터 구원하셨다는 것을 함의한다. 왜냐하면 죄와 그 결과는 분리될 수 업슨다 것이기 때문이다. '수난자'께서는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신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안고 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다.
성 경: [사53:5]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본절은 '종'이 고난받은 참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허물 때문이다. 여기 '허물'이란 단순한 실정법들에 대한 위반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대한 위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 대변되는 우리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불변적인 법에 대해서 범죄하였다. 그 결과우리는 그의 진노와 그 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었다. 죄들은 영원한 사망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상황에서 인간이 지불할 사망이란 요구가 '종'에게 떨어졌던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볼때 여기 '찔리다', '상하다'등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죽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하는데, 사실 히브리어에서 이 두단어는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시사하는 용어들이다.
ꃨ 평화 - 이것은 단지 외적인 안녕과 조화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 곧 하나님과의 평화를 뜻한다.
성 경: [사53:6]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본절은 신학의 대요이다. 먼저, 우리가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는 것은, 우리가 죄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며 우리가 스스로 구원할 상태에 있지 못하다는 전적 부패 교리의 근거가 된다. 둘째로, 본장에서 지금까지는 나타나지 않던 '여호와'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죄악을 '종'에게 담당시킨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주권 교리의 근거가 된다. 셋째로,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분에게 담당시킴으로써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에 필요한 것을 이루어 놓으셨다는 구원 교리로 볼 수 있다.
성 경: [사53:7]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본절은 고난에 대한 종의 태도를 요약해준다. 먼저 '곤욕을 당하여'는 좀더 풀어보면 '그가 자신을 곤욕당하도록 내맡기셨다'이다. 이것은 종이 고난을 자원하여 받은 것을 가리킨다. 또한 '그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은 고통을 감수하고 참아냈다는 것을 가리킨다. 종은 고난을 자원하였을 뿐 아니라 끝까지 인내하셨는데, 저자는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털 깎는 자 앞의 양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성 경: [사53:8]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ꃨ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 '곤욕'(*, 오체르)은 '강압', '구금자'이 그 문자적인 뜻인데, 따라서 어떤 학자는 이 단어를 '감옥'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신약에 비추어 볼때 '체포'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아무튼 '종'은 법적인 과정을 밟아 사형 언도를 받기에 이르렀다. 혹자는 이 같은 결과가 단순한 오판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종종 무죄한 피고가 부당히 고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있기 떠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그 같은 결과는 사람들이 악했기 때문이다. '종'은 빛으로 이땅에 오셨다. 그러나 죄로 저주 아래 있던 이땅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고 오히려 잔인하게 죽였다.
성 경: [사53:9]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그리스도께서 범죄자로 낙인 찍혀 참혹한 죽음을 당하신 후 부자의 묘실에 장례된 것을 연상케 한다(마 27:32-61).
성 경: [사53:10]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사야의 승리]
ꃨ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 하나님께서 그를 즐겨 고난당하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 구절에 담겨 있다. '속건 제물'과 속죄 제물의 차이를 정확히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다. 속건 제물은 부채를 갚거나 또는 부과된 죄값을 만족시켜서 죄인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목적으로 드려졌다(레 5:15). 이제 우리는 '종'의 비참한 죽음과 처참한 고난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그의 죽음, 즉 그의 생명의 피를 쏟아 부음은 속죄를 위해 계획되고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희생이었다. 한편 '종'의 죽음이 희생 제물이었다는 말은, 그 '종'이 제사장의 일을 수행하셨다는 말이기도 하다. 종은 다른 제사장과는 달리 기꺼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따라서 그것은 모세 율법의 제사들과는 근본적으가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유일 무이(唯一 無二)한 제사로서 다른 제사의 원형이며 실체이다 :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6).
ꃨ 그 씨를 보게 되며 - 여기 '씨'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영적 후손을 가리킨다(시 22:30). 유대 사회에서 많은 자손은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 물론 살아 생전 누리는 축복이었다. 그런데 종은 죽음으로써, 또 죽어서 그 축복을 누리신다.
ꃨ 그 날은 길 것이요 - 장수 역시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 이제 종 메시야는 죽음에서 일어나 승천하시고 다시 재림하신 후 영원히 그의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호 6:2;롬 6:9).
성 경: [사53:11]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사야의 승리]
ꃨ 자기 지식으로 - 이는 '그(종)의 지식으로'(by his knowledge, KJV, RSV, Hengstenberg, Stier) 혹은 '그(종)에 관한 지식으로'(by knowledge of him, Delitzsch) 등 두 가지로 해석된다. 어떤 해석을 취하든 본문 이해에는 별무리가 없으나,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라는 50:4내용 등을 고려하건대, 첫 번째 견해를 더 지지하고자 한다.
ꃨ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 이것은, 종이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는 근거가 된다. 한마디로 그들의 죄악을 짐어지셨다는 말이다. 죄악을 짊어짐으로 종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완전한 의를 베푸신다. 이렇게 주어진 '의'는 '법정적 칭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성 경: [사53:12]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사야의 승리]
본장은 종의 사역에 관한 하나님의 결론적인 선포롤 끝맺고 있는데, 종이 위대한 승리자로서 전리품을 나누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 승리는 바로 종 자신의 전부를 다 바쳐 얻은 결과였으며, 이로 인해 범죄자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셨다 :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엡 4:8).
성 경: [사54:1]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예루살렘 회복의 약속]
ꃨ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 - 본 이미지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견해는 여럿이 있으나 바벨론 포로 시대에 그 숫자가 적었던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특히 이어지는 3절에서는 이방인 성도가 이들에게 포함될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온다는 점에서, 바야흐로 메시야 시대의 영적 이스라엘에 관한 비전이 강력히 제시된다.
ꃨ 홀로 된 ... 많음이니라 - 과부의 지식이 남편 있는 여인의 자식보다 그 숫자가 많겠다는 이 표현은 앞에 언급된 남은 자의 후손은 그 숫자가 일반의 이해를 넘어서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물론 이 사실의 성취는 이방인의 회심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앞장에서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묘사한 저자는 그 사역이 낳을 결과의 첫 번째 것으로 믿는 자의 수가 이스라에의 남은 자를 근거로 늘어날 것을 바라다보고 있다.
성 경: [사54:2]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예루살렘 회복의 약속]
ꃨ 휘장(*, 아할레크) - 일반적으로 이 용어는 침대나 창문 주위에 혹은 관객들로부터 무대를 숨기기 위하여 극장 객석과 무대 사이에 내리우는 천을 가리킬 때 쓰인다. 그러나 여기서는 거주용 천막을 의미한다. 이 천막은 일정 거주자의 거주 영역을 암시하는데, 여기서 그 영역을 확대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방 세계에서 돌아오는 개심자의 행렬을 수용하기 위하여 교회의 영역이 매우 넓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 표현은 새로운 개심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 각각의 구성원의 믿음도 더 강해진다는 것을 동시에 암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 경: [사54:3]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예루살렘 회복의 약속]
ꃨ 좌우로 퍼지며 - 이것은 동서남북 그 어느 방향을 가릴 것없이 폭발적으로 퍼지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퍼지며'(*, 파라츠)의 원문적 의미는 '터지듯 번성하며'이다. 물론 이는 영토의 확장 혹은 단순한 인구의 폭발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수의 증가를 가리킨다.
ꃨ 황폐한 성읍들 - 1차적으로는 남북 왕국의 멸망 이후에 근방 민족들의 불법 이주로 훼손되었던 팔레스틴 땅을 가리킨다. 그러나 2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가리킨다(J. Watts).
성 경: [사54:4]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영원한 평화의 약속]
ꃨ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 '청년 때의 수치'란 애굽 치하의 시대 혹은 앗수르 및 바벨론의 포로 시대와 같은 특정한 시대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으로부터 당시에 이르기까지 신실치 못한 아내와 같았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역사 전체를 가르킨다고 봄이 나을 것 같다. 장차 이스라엘이 마주할 백성의 중다함과 그 영광의 찬란함은 그 수욕의 역사를 잊을 만한 정도라는 것이 본 구절의 의미이다. 물론 이 구절의 완성은 주의 재림 때 이루어질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후 이스라엘은 그 역사 속에서 몇 차례 외적의 침입 및 그로 인한 영광의 함몰을 재차 겪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ꃨ 과부 때의 치욕 -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에 따른 결과, 예컨대 이 민족의 침탈과 유린 등을 가리킨다(렘 3:24,25;31:19;호 2:2-5 참조).
성 경: [사54:5]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영원한 평화의 약속]
ꃨ 이는 ... 남편이시라 - 여기 '남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형 '바알'(*)은 그 문자적인 뜻은 '주인', '제조자', '통치자', '소유자' 등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흔히 '남편'을 뜻하기도 하는데(신 21:13;24:1;말 2:11), 여기서는 바로 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을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그처럼 크고 세심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의 상태는 흔히 간음으로 묘사되며(대하 21:11;겔 6:9;호 4:12), 신약 시대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묘사된다(요 3:29;엡 5:23,24;계 21:9).
ꃨ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제 혈통적 이스라엘뿐 아니라 세상 모든 백성에게도 그들을 통치하는 참하나님으로 인정받으실 것을 예언하는 말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예언은 하나님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전파될 시대를 겨냥한 표현이다 :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롬 3:29). 이 같은 결과가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메시야의 대속 사역 때문이었다(53장).
성 경: [사54:6]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영원한 평화의 약속]
ꃨ 부르시되(*, 케라아크) - 시제는 완료형이다. 앞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볼 때 저자는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회복하실 사실을 그 신실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일단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던 아내가 남편의 용서로 다시 남편에게도 돌아오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일을 이미 완성된 듯이 완료형으로 묘사한 것은 그 성취될 사실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함인데, 이 같은 표현 방법을 '선지자적 과거'라고 부른다(Fausset). 70인역(LXX)의 경우는 난해하게도 '여호와께서 버려지고 위안을 받지 못한 아내로 그들을 부르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녀의 젊은 시절부터, 미워해 왔던 아내로 부르지도 않으셨다'로 본절은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추측컨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인간 사이의 부부 관계로써 묘사하기를 거절하고자 하는 의도때문인 것으로 보여지나 문맥에 합당하지 않다.
성 경: [사54:7]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영원한 평화의 약속]
ꃨ 잠시 - '약간의 분노로'로 번약하는 학자도 있으나(Lowth), 원문은 개역 성경과 동일하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아주 짧은 시간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이 표현이 등장한 것은 이후 임할 번영 및 영광의 기간은 영원할 것이라는 사실과 대조를 이루게 하기 위해서이다. 신약 성경에도 동일한 사상이 나타나 있다 :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ꃨ 큰 긍휼 - 또 다른 차원의 대조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버림받음이 '적은' 것이었다면 긍휼은 '큰(위대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 큰 '긍휼'의 내용은 오랫동안의 배역(背逆)을 다 품고 해결할 수 있는 위대한 메시야의 대속사역이다.
성 경: [사54:9]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영원한 평화의 약속]
본절에서 하나님은 노아게게 주신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다시는 이스라엘을 징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그런데 본 약속에 대한 이해의 기초는 노아에게 약속을 주셨던 당시의 문맥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에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다(창 8:21). 노아에게 주셨던 약속은 분명하게 인간의 죄성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은 나면서부터 죄인인데, 이러한 인생들에 대하여 반복하여 대홍수와 같은 저주를 내린다면 이 땅과 인생들은 잠시도 견디지 못할 것이므로 이 땅과 인생들은 잠시도 견디지 못할 것이므로 인류 전체를 향한 물심판은 없으리라는 약속이었다. 따라서 인간의 죄성이란 관점에서 본절의 약속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셔서 인간의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본절에서 범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징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데, 그것은 53장에서 메시야께서 온 인류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지실 것이기 때문에 그 대속의 은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심판을 면제해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성 경: [사54:10]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영원한 평화의 약속]
ꃨ 인자(*, 헤세드) - 언약 용어로서 기왕에 주신 약속을 끝까지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불변의 상랑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ꃨ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 베리트 쉘로미) - 문자적인 뜻은 '나의 평화의 언약'이다. 동일한 용어가 사용된 유사 구절에 근거할때 본 언약은 다윗의 위를 이은 한 왕이 통치할 영원한 하나님 나라 건설에 관한 약속이다(겔 37:24-26). 이 나라는 혈통적 이스라엘만을 구성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들어올 이방의 택함받은 자까지도 포함된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대한 약속으로 보아야 정확하다. 이 나라의 건설은 인간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하나님 언약의 신실성 때문에 가능하다. 견고성, 불변성을 상징하는 산들은 혹시 움직여질 수 있어도 그 나라를 세우기로 한 하나님의 약속 계획은 결코 변경되지 않는다.
성 경: [사54:11]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새 예루살렘]
ꃨ 곤고하며 ... 안위를 받지 못한 자 - 오랫동안의 포로 생활로 광풍에 시달리는 배처럼 그 마음에 평안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그들에게 저자는 미래의 안정과 영광을 약속함으로 그들을 위로하려고 하고 있다(11-`4절).
ꃨ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 여기 '화려한 채색'이란 색색의 벽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돌과 돌을 붙이는 색색의 접합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여인들이 눈썹 위에 치장용으로 붙이기도 했던 이 접합체는 벽돌 사이사이에 붙여, 벽돌 건물을 멋지게 보이도록 하는데 사용되었다. '더하며'의 정확한 원문 직역은 '기초를 놓다'이다. 이는 그 기초가 튼튼한, 따라서 미래의 번영과 영광이 보장된 교회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때도 사용된다(계 21:18-21 참조).
ꃨ 청옥 - 그 단단하기에 있어서는 다이아몬드 다음이고 아름다움과 광체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푸른 색, 붉은 색, 흰 색, 자주색 등 다양한 색을 지닌, 우리에게 사파이어로 알려져 있는 보석이다.
성 경: [사54:12]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새 예루살렘]
ꃨ 홍보석(*, 카데코드) - '때리다', '가루를 내다' 혹은 '불을 지피다'는 뜻의 '카다드'(*)에서 온 본 용어는 불을 지필 때 나는 섬광, 불꽃과 같이 번쩍이는 보석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ꃨ 성첩(*, 쉼쇼타이크) - '태양'을 뜻하는 '쉐메쉬'(*)에서 온 용어로 의미 규정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성벽위의 반짝이는 피뢰침, 성채 혹은 성(城) 본 건물에 딸린 작은 건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문맥은 그 기초가 든든하고 찬란한 성을 말하고 있으므로, 보석으로 지은 번쩍이는 성 건물의 일부로 보면 적절하겠다.
성 경: [사54:13]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새 예루살렘]
ꃨ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 이것은 미래에 하나님의 참자녀들이 구속주 메시야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것을 시사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 아래 있게 될 것을 예언하면서 이 구절과 유사하게 표현한 바 있다 :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렘 31:34).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이끌림을 받은 자만이 그에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말씀 하시면서 본 구절을 인용하셨다 :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 6:45).
성 경: [사54:14]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새 예루살렘]
ꃨ 의로 설 것이며 - 메시야가 다스리는 나라의 특성 중의 하나가 소개되고 있다(시 72:2;계 19:11). 다른 세상 나라는 음모, 약탈, 정복 등으로 세워지므로 통치의 내용이 불의하지만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지는 메시야의 왕국은 편만한 공평이 통치의 특징이 될 것이다.
성 경: [사54:15]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새 예루살렘]
ꃨ 그들이 모일지라도(*, 고르) - 주어가 대명사로 되어 있으므로 그 정체를 밝히는 것이 쉽지 않으나 문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의 대적이며 엄밀히 말해서 메시야의 대적이다. 세상 나라 군왕들이 연합하여 메시야를 대적할 것을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잘 묘사하고 있다 :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아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시 2:1,2).
ꃨ 너를 인하여 패망하리라(*, 알라이크 이폴) - 문자적인 뜻은 '너에게 복종케 되리라'이다. 이것은 메시야의 대적이 파멸케 될 것을 가리킬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이들이 오히려 교회으 진영으로 두손들고 들어오게 된 것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 교회는 멸망할 듯 보였으나 도리어 세상 나라가 교회로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성 경: [사54:17]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새 예루살렘]
ꃨ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 법정의 이미지가 동원되었다. 교회의 대적들은 교회를 고소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도리어 대적들에게 승리할 것이다. 그 이유는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근거로 그의 택한 백성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대적이 고소할 때 교회를 변호하고 대적을 물리치시기 때문이다.
성 경: [사54:16]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새 예루살렘]
여기 언급된 기계를 만드는 자와 그 기계를 가지고 파괴를 일삼는 자는 외관상 전쟁을 일삼는 자들로 보여진다. 그러나 다음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볼 때, 이들은 교회를 대적하는 조재의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된다. 그들은 하나님 수하에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교회를 대적할 수 있을 뿐이다.
성 경: [사54:8]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영원한 평화의 약속]
ꃨ 넘치는 진노(*, 베쉐체프 케체프) - '분노의 범람'이 그 문자적 뜻이다(a surge of anger, NIV). 그러나 하나님의 징벌과 회복의 은총을 대조시키는 문맥을 중시할 때, 이는 '적은 분노'(a little wrath, KJV) 혹은 '잠시 동안의 격노'(lverflowing wrath for a moment, RSV) 등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겠다.
ꃨ 얼굴을 ... 가리웠으나 - 불쾌감의 표현이다(8:17;욥 13:24;34:29;시 30:7). 이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바벨론 포로라는 징벌로 명백히 드러난 하나님의 불쾌감과 노여움을 가리킨다.
ꃨ 영원한 자비 - 앞의 '넘치는 진노'와 대비를 이룬다. 메시야의 은총 아래 있는 교회와 그 개인이 받을 은총은 엄청나다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 1:3).
ꃨ 구속자 여호와 - 계속해서 '구속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회복될 모든 번영, 영광 등은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근거로 하는 것임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성 경: [사55:1]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본절은 원문에 의하면 개역 성경에서는 번역되지 않은 감탄사 '호'(*)로 시작되고 있는데, 본 감탄사는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중대 사안이 뒤에 따를 경우 사용된다.
ꃨ 너희 목마른 자들아 - 원문 직역은 '목마른 모든 자들아'이다. 여기 '모든'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칼'(*)은 빈부 귀천 가릴 것 없는, 특히 이방인까지도 포함한 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또한 '목마른'은 그 무엇을 강하게 소원하는, 특히 영적 구원을 그렇게 사모하는 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시 42:2;63:1;143:6;요 7:37). 아마도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축복을 선포하셨을 때 바로 본 구절을 염두에 두셨을 것이다(마 5:6).
ꃨ 물로 나아오라 - 이미 본서는 메시야 시대 이후 존재하게 될 축복, 곧 영생을 암시함에 있어서 시내, 물줄기, 비와 같은 물을 소재로 한 이미지를 사용한 바 있다(35:6;43:20;44:3). 본서가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감탄사 '호'(*)를 사용한 목적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특권이었던 구원이 이방인에게도, 그것도 값없이 확대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 같은 결과는 53장에 자세히 언급된 메시야의 구속 사역에 근거를 둔다.
ꃨ 포도주와 젖 - 생명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물뿐 아니라 활기와 영양을 공급하는 포도주와 우유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구원의 복음이 주는 축복의 다양함과 풍성함을 시사한다(아 5:1;요 7:37).
성 경: [사55:2]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양식 아닌 ... 수고하느냐 - 문자적으로는, 인간은 행복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실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풍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빵은 생명을 지탱케 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인간은 빵을 얻기 위해 돈을 버는데, 어리석은 인간은 빵 아닌 것을 사기 위해 헛되이 돈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구절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육신을 살지우는 빵이 아니라 영혼을 살지우는 빵이다. 1절에서 언급되었듯이 영혼을 살지우는 빵은 인간의 노력으로 번 돈을 지불하여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그것을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 사람은 결코 그것을 얻을 수 없다. 그 대안을 하반절이 제시한다.
ꃨ 나를 ... 먹을 것이며 - 원문 직역은 '부지런히 나를 들으라 그리고 좋은 것을 먹으라'이다. 동등한 두 개의 명령문으로 보이나, 후자는 전자의 결과를 나타낸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들으면 좋은 것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개역성경의 번역이 이 의미를 잘 드러낸 준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먹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깨닫고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육의 생명이 아닌 영의 생명을 얻게 됨을 의미한다.
ꃨ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 여기 '기름진 것'이란 성경에서 최고의 음식을 암시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창 27:28;시 65:11). 여기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속을 경험한 자가 누리게 되는 부(富)와 풍성한 축복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시 63:5).
성 경: [사55:3]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들으라 ... 영혼이 살리라 -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약속들을 포용하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다. 성경에서 신앙은 흔히 영생을 얻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요 5:40;6:33;20:31;계 2:8-10).
ꃨ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 - 다윗을 그 모형으로 하는 메시야에 관한 약속을 상기시킨다. 그 약속은 취소될 수도, 실패하게 될 수도 없는 약속이었다(삼하 7:15,16;시 89:2-4,28,29,34-36;고후 1:8-20). 여기 '은혜'(*, 헤세드)는 언약적 용어로서 인애, 긍휼, 연민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여기서는 메시야의 대속사역, 그중에서도 메시야의 부활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그의 전도 여행 중 안디옥에서 행한 연설 중에서 이것을 증명하였다 :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행 13:34). 다윗이 하나님께 받았던 약속은 메시야가 고난당하여 죽임을 당하실 것이지만 끝내는 부활하여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은 결코 변경될 수 없는 약속이었다. 다윗은 이미 그의 시편들에서 메시야의 부활 사상을 암시한 바 있다(시 16편등).
성 경: [사55:4]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그 - 다윗 혹은 메시야로 볼 수 있는데, 문맥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약속의 주인공(3절) 되신 메시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속사역을 완성하고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소망을 제시하실 분이시다. 구약 성경 자체도 이 사실을 증거한다(렘 30:9;겔 34:23,24;37:24,25;호 3:5).
ꃨ 증거(*, 에드) - 공적으로 충고하거나 증인들 앞에서 변론하는 자(Rosenmuller) 혹은 증인, 왕, 방백, 망령자, 율법 수여자 등을 뜻하기도 한다(잠 19:5-9). 메시야에게 적용되었으니 하나님의 법, 계획 등을 인간에게 가르치고 전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면 되겠다.
ꃨ 인도자(*, 나기드) - 갈대아역은 '왕'으로 번역한다. 메시야가 가르치고 전하는 분일 뿐 아니라 그 백성과 통치와 피통치의 관계를 맺고 있는 분임을 암시하는 용어이다. 메시야의 직분중 중요한 한 가지는 왕직이다.
ꃨ 명령자(*, 메차웨) - 원문 직역은 '율법 수여자'이다. 메시야는 율법의 창안자이시기도 하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곧 절대적 규범이요 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사55:5]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네가 - 본 2인칭 주어를 메시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지만(Whybray), 그보다는 영적 이스라엘로 파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Delitzsch, G.W. Grogan). 다윗 통치하에서 이스라엘의 영토는 역사상 가장 넓게 확장되었다. 이런 측면에서도 다윗은 왕으로 오실 메시야의 예표가 되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메시야에 의해 통치될 영적 이스라엘의 영역은 다윗 왕국조차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계적 차원에 이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성 경: [사55:6]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 이것은, 지금은 여호와를 만날 수 있을 만한 때임을 암시하는 반면, 때가 오면 그분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수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공고하고 있다. 영적 축복을 얻는 문제에 따르는 조건과 제한성에 대한 권고이다(시 32:6;마 25:1-13;요 7:34;8:21;고후 6:2;히 2:3;3:13,15). 물론 이 권고를 받을 대상은 포로된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인류이다.
ꃨ 부르라 - '하나님의 자비에 너 자신 전체를 던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신약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못박고 있다(롬 10:13). 본절은 일종의 동의어 반복이며, 하반절이 상반절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강한 표현이다(Fausset).
성 경: [사55:7]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악인 ... 불의한 자 - 이 둘은 그 정체를 규명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동의적 평행구로 사용되고 있고 특히 후자의 경우 그 원어적 의미가 '범죄의 사람'이므로 둘 다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는 죄인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롬 3:23). 굳이 의미를 구분해보면 전자는 그 '행실'에 있어서 공개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이고, 후자는 스스로는 범죄자로 생각하지 않으나 그 내면적 실상이 죄악된 자를 가리킨다. 회개의 진행은 소극적인 변화인 '그의 행실을 버림으로' 시작되어 적극적인 회개인 '여호와께로 돌아가', '여호와를 그의 하나님으로 섬기는'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성 경: [사55:8]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본절은 여호와의 생각과 길이 우리 인간의 그것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사실의 의미는 바로 앞절의 '용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개역 성경은 생략하고 있지만 원문에는 '이유'를 뜻하는 접속사 '키'(*)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본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 '너희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풍성히 용서하시는 사실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낼 필요가 없다. 악인의 행실과 불의한 자의 생각은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방식은 용서받을 악인이나 불의한 자의 상태나 정도에 따라 좌우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시 25:11;롬 5:19).
성 경: [사55:9]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본절은 앞절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 분명하다. 하늘과 땅 사이의 간격 만큼이나 하나님과 인간의 계획의 차이가 크다고 덧붙이는 본문은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서 뒷받침된다 :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시 103:11),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시 57:10),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시 89:2). 이상의 구절들이 취하고 있는 사상은 동일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인간의 눈에 용서받을 수 없어 보이는 자가 용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성 경: [사55:10]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저자는 6-9절에 언급한 내용에 확실성을 더하기 위하여 한 비유를 들고 있다. 그 비유의 내용은 척박한 토지에 비와 눈이 내려 옥토로 만들면 그 옥토는 열매를 내고 추수꾼은 파종하여 양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본절을 영적으로 고갈되어버린 인간의 마음으로, 비와 눈을 메시야 통치 시대 아래 부어질 성령으로 그리고 열매를 의로 각각 보고 있다. 말하자면 본절은 영적으로 고갈 상태에 있는 인간의 마음이 이제 메시야 시대가 되면 성령을 받아 회개하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비유의 경우, 그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소재거리 하나하나의 의미보다는 그 내용 전체가 담고 있는 주제가 무엇이냐가 더 중요하다. 이 비유가 드러내는 주제는, 하나님은 한번 발설한 말씀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성취를 보신다는 것이다. 그것을, 한번 내려진 비나 눈은 반드시 그 열매를 낳는다는 알기 쉬운 자연의 이치를 통해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주제는 다음절에 잘 정리되어 있다.
성 경: [사55:11]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내 입에서 나가는 말 - 구체적으로 이 말씀은 앞문맥(7절)에 언급된 '용서'이다. 사막에 내린 비와 눈은 금방 흔적도 찾아보기 힘드나 결국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듯이, 하나님이 한번 약속하신 '용서'는 결국 성취되고 말 것이다. 이제 그 '용서' 사역은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유대인과 더 나아가 유대인과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돌아올 이방인의 행렬을 통해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성 경: [사55:12]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나아가며 ...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 이것은 1차적으로 세계 각처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의 인도를 받아 본토로 귀환할 것을 가리키고,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을 포함한 택함받은 모든 백성들이 참지도자되신 메시야의 인도를 받아 영적 본토인 교회로 이끌림을 받을 것을 암시한다 : "야곱아 내가 정녕히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떼 같게 하며 초장의 양떼 같게 하리니 그들의 인수(人數)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며 길을 여는 자가 그들의 앞서 올라가고 그들은 달려서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좇아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미 2:12,13).
ꃨ 산들과 ... 손바닥을 칠 것이며 - 하나님의 백성의 기쁨에 대해 자녀의 동일한 기쁨의 환영을 표시하고 있다. 자연이 이 같은 반응을 나타내는 까닭은 인간의 죄가 제거될 때 갱신된 인간 세계와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자연계도 '허무'에서 구원받고 새롭게 갱신될 것이기 때문이다(시 98:8;롬 8:19-22).
성 경: [사55:13]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잣나무 - 경건한 백성들을 가리킨다(60:13).
ꃨ 가시나무 - 사악한 자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삼하 23:6;미 7:4).
ꃨ 화석류 - 팔레스틴 지역, 특히 갈릴리 호수 부근과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근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록수로서, 희거나 붉은 꽃은 향기가 짙다. 느헤미야는 초막절 축제를 위해 필요한 초막을 짓는 데 이 나무를 사용했다(느 8:15).
ꃨ 질려 - 황량한 비경작 지대의 상징으로 쓰였다(5:6).
ꃨ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 '이것'이란 자연계의 갱신뿐 아니라 본장에서 다루고 있는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복음에로의 초대, 용서 등을 가리킨다. 바로 그 같은 결과들은 여호와의 선하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기념비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성 경: [사56:1]
ꃨ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 - 본절은 언약적 차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언약에 근거하여 '구원'과 '의'를 베푸실 것인데, 이제 언약 당사자인 이스라엘 역시 '공평'과 '의'를 지키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Delitzsch).여호와측에서 약속하신 바(곧 메시야 시대의 도래)의 성취 시점이 가까울수록, 이스라엘 또한 더욱 신실한 자태로 단장할 필요가 없었다. 한편, 세례 요한도 메시야의 도래를 선포함에 있어서 인간편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르소 유사한 요구를 한 바 있다.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 본절의 '공평'이나 '의'혹은 세례 요한의 '회개' 등은 메시야의 도래를 맞을 때 요구되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자태라는 점에서 그 공통점이 있다 하겠다 :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말 4:5,6).
성 경: [사56:2]
ꃨ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 본절 전체는 지혜 문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축복 형식(benediction formula)을 보여주며(30:18;32:20;시 1:1;119:1;잠 8:32,34 참조), 안식일을 잘 준행하는 자가 복있는 사람임을 나타낸다. 본절만의 내용을 보면 안식일에 지켜야 할 금지 사항만 언급되고 있으나 문맥상 온전한 예배와 영적, 육체적 회복과 갱신이라고 하는 적극적 측면도 함께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G.W. Grogan). 웨스터만(Westermann)에 의하면, 포로기 동안 안식일 준수는 여호와꼐 예배드리는 신앙 공동체의 건실한 일원임을 알리는 결정적인 표시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안식일 못지않게 중요한 전제를 비롯한 여러 희생 제사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제의적(祭儀的) 율법이 폐지되는 메시야 시대에 대한 간접적 암시라고 볼 수 있겠다.
성 경: [사56:3]
ꃨ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 - 여기 '연합한'의 히브리어 '라와'(*)는 레위 지파를 가리키는 '레위이'(*)의 어근으로서, 레위지가의 성전 직무를 암시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레위 지파는 거룩한 성전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특별히 구별되었다(신 10:8). 그렇다면 본절은 그 직무가 이방인에 의해서도 수행될 것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 본 구절은 참신앙을 갖고 하나님의 예배자가 될 이방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ꃨ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 원래 '고자'의 히브리어 '사리스'(*)는 그 당시 궁궐에서 주요 직무를 맡고 있던 고급 관리 곧 '내시'를 뜻하지만(에 1:10, 12, 15;단 1:3;행 8:27), 여기서는 생식기능이 마비된 남자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이들은 당시 모세 율법에 의하여 총회의 명부에 기록되지 못했고 총회의 모임에 참석하지도 못하였다(신 23:2). 본 구절은 이제 율법 시대가 지나감으로 그들도 총회에 들 수 있음을 뜻한다. 또한 본 구절은 단지 생식 기능이 마비된 자뿐아니라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총회의 행사, 특히 예배에 참속하지 못했던 자들도 겨냥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강조점은 고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제약하던 율법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성 경: [사56:4,5]
새롭게 등장할 메시야 왕국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자의 자격은 외형적이거나 육체적인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신실히 좇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음을 밝히는 구절이다(G.W. Grogan, J. Watts).
ꃨ 내 집 - 교회의 상징으로서의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킨다(딤전 3:15). 모세 율법상으로 이방인은 성전 바깥 뜰에 밖에 들어 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도 성전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방인도 마음껏 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됨으로써 거룩한 자의 반열에 들수 있게 된 것을 가리킨다(히 10:19, 20).
ꃨ 내 성 안 - 원문 직역은 '나의 성 벽들 안'이다. 고자들도 예루살렘 성벽들 안에로의 출입이 허용될 것이라는 뜻인데, 성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말은 그들도 하나님이 통치를 받게 됨을 뜻한다. 기념물(*, 야드) - '기념비'(삼상 15"12;삼하 18:18), '손' 혹은 '장소' 등을 뜻하는 용어로서, 여기서는 '장소'로 보아도 무방하겠다(KJV). 왜냐하면 본 용어와 연관성이 있는 절 말미의 '끊치지'란 어떤 장소, 공동체와 연관이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성 경: [사56:6]
7절에 열거된 특권을 누리기 위해 이방인들이 행햐야 할 일들이자세히 열거되고 있다.
ꃨ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 3절에서 이미 진술한 바와 마찬가지로 '연합'이란 이스라엘 레위 지파의 제사 직무와 연관된 용어이다. 물론 본 구절에서 말하는 제사란 구약 시대의 제사와는 다른 새로운 예배를 가리키며 이 새로운 예배는 오실 메시야 예수께 대한 바른 이해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요 4:21-23).
ꃨ 이름을 사랑하며 - 여기 '이름'은 인류를 사랑하시어 그의 아들 예수를 보내실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 예수와 연관성이 있는 하나님을 모르고는 참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ꃨ 종이 되며 - 여기서 '종'이란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핵심으로 하는 복음을 이방에게 전하는 자를 뜻한다. 먼저는 그리스도 자신이 종이 되실 것이고 계속해서 그의 교회가 종의 직무를 전수하게 될 것이다.
ꃨ 안식일 - 구약의 한 절기에 불과한 안식일이 아닌 메시야 도래이후 그 의미가 새롭게 재정립될 모든 종교적 규례들을 함축적으로 가리킨다.
성 경: [사56:7]
ꃨ 나의 성산 - 문자적으로는 예루살렘을, 영적으로는 메시야 시대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교회를 가리킨다(2:2;렘 3:17).
ꃨ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 이 표현은 문자 그대로의 희생 제사가 이방인에 의해서도 수행될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지금 문맥은 메시야 시대엥 있을 일들을 다루고 있는데 메시야가 자신의 몸을 영단번의 제사로 드림으로 구약의 희생 제사는 폐지될 것이기 때문이다(히 10:11, 12). 핵심은 이스라엘의 특권과 우월성이 사라지게 된다는 점에 있다. 번제와 희생은 이스라엘만의 특권이었고, 그들의 우월성의 근거가 되었다.
ꃨ 이는 ... 될 것임이라 - 본절 상반절에 기록된 이방인의 특권 수혜의 근거를 적고 있다. 한마디로 그 근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국한 하였던 특권을 '만민', 곧 땅 위의 모든 백성에게로 확대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결과를 낳은 것은 온 인류를 상대로 하는 메시야의 대속 사역이다. 이방인까지 성저능마 향하여 기도하게 해달라는 간구가 성전 봉헌 당시 솔로몬에 의해 언급된 바 있다(왕상 8:41-43). 그러나 이를 복음의 우주적 성격과 관련지어 명확히 표현한 것은 이시야에 와서이다(Delitzsch). 주님께서도 본 구절을 인용하신 바 있다(마 21:13).
성 경: [사56:8]
ꃨ 이미 모은 본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 포로지로부터 모아들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른 이방들의 많은 자들을 더 하시겠다는 이 약속은 본장 본절까지와 앞의 몇장들 내용의 결론이 되고 있다.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새로운 주제가 소개되므로 여기서 지금까지 다룬 몇 개의 장들을 정리 요약할 필요가 있다. 요약의 내용은 본 구절을 통해 잘 드러나듯이 메시야 시대 때 이방 세계는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타민족 사이에 놓여왔던 두터운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따라서 어느 민족도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 놀라운 경륜 아래서 이제 모든 성도는 한때는 낯선 자요 외국이었으나 이제는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는 확신 가운데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엡 2:19). 그 기원에 있어서 온 세계는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온 땅에 거하게 하셨기 때문이다(행 17:26).
성 경: [사56:9]
ꃨ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을 징벌하기 위하여 하나님에 듸하여 소집될 이방 군대를 가리키는데, 본서가 기록된 시점이 아직 갈대아의 침입을 받기 전이므로 갈대아 군대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겠다(렘 12:7-9;겔 34:5). 바로 앞장에서 메시야 도래의 확신과 그 택함 받은 자의 수가 이방인의 히심으로 더 늘어날 것을 말함으로 그 백성을 위로하였던 저자는, 돌연 그 주제를 바꾸어 이방 군대의 침입을 예언하고 있다. 시간상 순서로 보면 침입에 관한 기사가 먼저이고, 메시야의 도래 및 남은 자 수의 확대는 나중이다. 한 주제를 말하다가 갑자기 상반된 주제로 바꾸는 것은 본서 저자의 기술(記述)상의 특징이다.
성 경: [사56:10]
ꃨ 파숫군들(*, 초파) - 문자적인 뜻은 '보는 자'이다. 본 용어는 개역 성경의 문자적인 뜻 그대로 성 위 망루에서 망을 보는 자 혹은 영적인 눈을 가지고먼 미래를 예견하는 선지자 둘 중의 하나에 적용된다(21:6-12;52:8;62:6;렘 6:17;겔 3:17). 여기서는 후자와 아울러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을 함께 일컫는 말로 이해된다(G.W. Grogan).
ꃨ 벙어리 개 - 짖음으로써 사나운 짐승의 접근을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목자의 사냥개에서 따온 비유이다.
ꃨ 꿈꾸는 자 ... 누운 자 ...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 - 세 가지 모두 유사 용어이다. 그 의미가 비교적 분명한 '꿈꾸는 자'의 히브리어 '호짐'(*)은 그 문자적 뜻이 '꿈 속에서 말하는 자', '비전을 보는 자' 등인데, 이것은 게을러서 비활동적인 사람뿐 아니라 그릇된 이상, 환상을 보는 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성 경: [사56:11]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부패한 지도자들에 대한 책망]
ꃨ 이 개들은 ... 자요 - 원문 직역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욕심 많은 개들이요'이다. 이는 당시 지도급 인사들의 물질적인, 육욕적인 탐욕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갤 34:2,3;미 3:11). 이와 같은 자들을 신약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등으로 부르고 있다(빌 3:18, 19).
ꃨ 몰각한 목자들 - 백성들의 영적 필요에 대해 무지한 자들이라는 뜻이다(10절). 자신들의 육적인 욕심에 빠져 있는 자들이 다른 사람의 필요, 특히 영적인 필요를 헤아릴 수없는 것은 당연하다.
ꃨ 어디 있는 자이든지(*, 미카체후) - 문자적인 뜻은 '모든 처소로부터'이지만 '가장 고귀한 자로부터 가장 천한 자에 이르기까지'가 적절한 의미이겠다(Lowth). 창 19:4은 '무론 노소하고', 곧 '나이든 사람, 어린 사람 가릴 것 없이'로 번역한 바 있다. 이로써 파멸의 이유가 밝혀졌는데, 그것은 종교지도자뿐 아니라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한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지도층의 성향은 곧 피지도층의 성향이 되기 쉽다.
성 경: [사56:12]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부패한 지도자들에 대한 책망]
ꃨ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 오리라 - 여기 이르는 사람들은 영적 지도자들이다. '포도주를 가져 오리라'란 '한 잔 더 마시겠다'란 뜻도 된다. 결국 본 구절은 술을 서로 권하는 대로 받아 마셔 한 테이블에 앉은 자들이 포도주에 취하여 취흥을 즐기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그 시대의 지도자들의 육욕적인 상황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ꃨ 내일도 오늘같이 - 이것은 그들의 육욕에로의 탐닉이 일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습관적인 것, 곧 삶의 주된 관심사였음을 밝혀준다.
성 경: [사56:1]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이방인들의 구원]
ꃨ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 - 본절은 언약적 차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언약에 근거하여 '구원'과 '의'를 베푸실 것인데, 이제 언약 당사자인 이스라엘 역시 '공평'과 '의'를 지키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Delitzsch).여호와측에서 약속하신 바(곧 메시야 시대의 도래)의 성취 시점이 가까울수록, 이스라엘 또한 더욱 신실한 자태로 단장할 필요가 없었다. 한편, 침례 요한도 메시야의 도래를 선포함에 있어서 인간편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르소 유사한 요구를 한 바 있다.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 본절의 '공평'이나 '의' 혹은 침례 요한의 '회개' 등은 메시야의 도래를 맞을 때 요구되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자태라는 점에서 그 공통점이 있다 하겠다 :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말 4:5,6).
성 경: [사56:2]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이방인들의 구원]
ꃨ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 본절 전체는 지혜 문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축복 형식(benediction formula)을 보여주며(30:18;32:20;시 1:1;119:1;잠 8:32,34 참조), 안식일을 잘 준행하는 자가 복있는 사람임을 나타낸다. 본절만의 내용을 보면 안식일에 지켜야 할 금지 사항만 언급되고 있으나 문맥상 온전한 예배와 영적, 육체적 회복과 갱신이라고 하는 적극적 측면도 함께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G.W. Grogan). 웨스터만(Westermann)에 의하면, 포로기 동안 안식일 준수는 여호와께 예배드리는 신앙 공동체의 건실한 일원임을 알리는 결정적인 표시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안식일 못지않게 중요한 전제를 비롯한 여러 희생 제사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제의적(祭儀的) 율법이 폐지되는 메시야 시대에 대한 간접적 암시라고 볼 수 있겠다.
성 경: [사56:3]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이방인들의 구원]
ꃨ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 - 여기 '연합한'의 히브리어 '라와'(*)는 레위 지파를 가리키는 '레위이'(*)의 어근으로서, 레위지가의 성전 직무를 암시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레위 지파는 거룩한 성전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특별히 구별되었다(신 10:8). 그렇다면 본절은 그 직무가 이방인에 의해서도 수행될 것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 본 구절은 참신앙을 갖고 하나님의 예배자가 될 이방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ꃨ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 원래 '고자'의 히브리어 '사리스'(*)는 그 당시 궁궐에서 주요 직무를 맡고 있던 고급 관리 곧 '내시'를 뜻하지만(에 1:10, 12, 15;단 1:3;행 8:27), 여기서는 생식기능이 마비된 남자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이들은 당시 모세 율법에 의하여 총회의 명부에 기록되지 못했고 총회의 모임에 참석하지도 못하였다(신 23:2). 본 구절은 이제 율법 시대가 지나감으로 그들도 총회에 들 수 있음을 뜻한다. 또한 본 구절은 단지 생식 기능이 마비된 자뿐 아니라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총회의 행사, 특히 예배에 참속하지 못했던 자들도 겨냥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강조점은 고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제약하던 율법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성 경: [사56:4,5]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이방인들의 구원]
새롭게 등장할 메시야 왕국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자의 자격은 외형적이거나 육체적인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신실히 좇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음을 밝히는 구절이다(G.W. Grogan, J. Watts).
ꃨ 내 집 - 교회의 상징으로서의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킨다(딤전 3:15). 모세 율법상으로 이방인은 성전 바깥 뜰에 밖에 들어 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도 성전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방인도 마음껏 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됨으로써 거룩한 자의 반열에 들수 있게 된 것을 가리킨다(히 10:19, 20).
ꃨ 내 성 안 - 원문 직역은 '나의 성 벽들 안'이다. 고자들도 예루살렘 성 벽들 안에로의 출입이 허용될 것이라는 뜻인데, 성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말은 그들도 하나님이 통치를 받게 됨을 뜻한다.
ꃨ 기념물(*, 야드) - '기념비'(삼상 15"12;삼하 18:18), '손' 혹은 '장소' 등을 뜻하는 용어로서, 여기서는 '장소'로 보아도 무방하겠다(KJV). 왜냐하면 본 용어와 연관성이 있는 절 말미의 '끊치지'란 어떤 장소, 공동체와 연관이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성 경: [사56:6]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이방인들의 구원]
7절에 열거된 특권을 누리기 위해 이방인들이 행햐야 할 일들이 자세히 열거되고 있다.
ꃨ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 3절에서 이미 진술한 바와 마찬가지로 '연합'이란 이스라엘 레위 지파의 제사 직무와 연관된 용어이다. 물론 본 구절에서 말하는 제사란 구약 시대의 제사와는 다른 새로운 예배를 가리키며 이 새로운 예배는 오실 메시야 예수께 대한 바른 이해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요 4:21-23).
ꃨ 이름을 사랑하며 - 여기 '이름'은 인류를 사랑하시어 그의 아들 예수를 보내실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 예수와 연관성이 있는 하나님을 모르고는 참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ꃨ 종이 되며 - 여기서 '종'이란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핵심으로 하는 복음을 이방에게 전하는 자를 뜻한다. 먼저는 그리스도 자신이 종이 되실 것이고 계속해서 그의 교회가 종의 직무를 전수하게 될 것이다.
ꃨ 안식일 - 구약의 한 절기에 불과한 안식일이 아닌 메시야 도래이후 그 의미가 새롭게 재정립될 모든 종교적 규례들을 함축적으로 가리킨다.
성 경: [사56:7]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이방인들의 구원]
ꃨ 나의 성산 - 문자적으로는 예루살렘을, 영적으로는 메시야 시대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교회를 가리킨다(2:2;렘 3:17).
ꃨ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 이 표현은 문자 그대로의 희생 제사가 이방인에 의해서도 수행할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지금 문맥은 메시야 시대에 있을 일들을 다루고 있는데 메시야가 자신의 몸을 영단번의 제사로 드림으로 구약의 희생 제사는 폐지될 것이기 때문이다(히 10:11, 12). 핵심은 이스라엘의 특권과 우월성이 사라지게 된다는 점에 있다. 번제와 희생은 이스라엘만의 특권이었고, 그들의 우월성의 근거가 되었다.
ꃨ 이는 ... 될 것임이라 - 본절 상반절에 기록된 이방인의 특권 수혜의 근거를 적고 있다. 한마디로 그 근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국한 하였던 특권을 '만민', 곧 땅 위의 모든 백성에게로 확대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결과를 낳은 것은 온 인류를 상대로 하는 메시야의 대속 사역이다. 이방인까지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게 해달라는 간구가 성전 봉헌 당시 솔로몬에 의해 언급된 바 있다(왕상 8:41-43). 그러나 이를 복음의 우주적 성격과 관련지어 명확히 표현한 것은 이시야에 와서이다(Delitzsch). 주님께서도 본 구절을 인용하신 바 있다(마 21:13).
성 경: [사56:8]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이방인들의 구원]
ꃨ 이미 모은 본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 포로지로부터 모아들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른 이방들의 많은 자들을 더 하시겠다는 이 약속은 본장 본절까지와 앞의 몇장들 내용의 결론이 되고 있다.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새로운 주제가 소개되므로 여기서 지금까지 다룬 몇 개의 장들을 정리 요약할 필요가 있다. 요약의 내용은 본 구절을 통해 잘 드러나듯이 메시야 시대 때 이방 세계는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타민족 사이에 놓여왔던 두터운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따라서 어느 민족도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 놀라운 경륜 아래서 이제 모든 성도는 한때는 낯선 자요 외국이었으나 이제는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는 확신 가운데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엡 2:19). 그 기원에 있어서 온 세계는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온 땅에 거하게 하셨기 때문이다(행 17:26).
성 경: [사56:9]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부패한 지도자들에 대한 책망]
ꃨ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을 징벌하기 위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소집될 이방 군대를 가리키는데, 본서가 기록된 시점이 아직 갈대아의 침입을 받기 전이므로 갈대아 군대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겠다(렘 12:7-9;겔 34:5). 바로 앞장에서 메시야 도래의 확신과 그 택함 받은 자의 수가 이방인의 회심으로 더 늘어날 것을 말함으로 그 백성을 위로하였던 저자는, 돌연 그 주제를 바꾸어 이방 군대의 침입을 예언하고 있다. 시간상 순서로 보면 침입에 관한 기사가 먼저이고, 메시야의 도래 및 남은 자 수의 확대는 나중이다. 한 주제를 말하다가 갑자기 상반된 주제로 바꾸는 것은 본서 저자의 기술(記述)상의 특징이다.
성 경: [사56:10]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부패한 지도자들에 대한 책망]
ꃨ 파숫군들(*, 초파) - 문자적인 뜻은 '보는 자'이다. 본 용어는 개역 성경의 문자적인 뜻 그대로 성 위 망루에서 망을 보는 자 혹은 영적인 눈을 가지고먼 미래를 예견하는 선지자 둘 중의 하나에 적용된다(21:6-12;52:8;62:6;렘 6:17;겔 3:17). 여기서는 후자와 아울러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을 함께 일컫는 말로 이해된다(G.W. Grogan).
ꃨ 벙어리 개 - 짖음으로써 사나운 짐승의 접근을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목자의 사냥개에서 따온 비유이다.
ꃨ 꿈꾸는 자 ... 누운 자 ...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 - 세 가지 모두 유사 용어이다. 그 의미가 비교적 분명한 '꿈꾸는 자'의 히브리어 '호짐'(*)은 그 문자적 뜻이 '꿈 속에서 말하는 자', '비전을 보는 자' 등인데, 이것은 게을러서 비활동적인 사람뿐 아니라 그릇된 이상, 환상을 보는 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성 경: [사56:11]
ꃨ 이 개들은 ... 자요 - 원문 직역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욕심 많은 개들이요'이다. 이는 당시 지도급 인사들의 물질적인, 육욕적인 탐욕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갤 34:2,3;미 3:11). 이와 같은 자들을 신약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등으로 부르고 있다(빌 3:18, 19).
ꃨ 몰각한 목자들 - 백성들의 영적 필요에 대해 무지한 자들이라는 뜻이다(10절). 자신들의 육적인 욕심에 빠져 있는 자들이 다른 사람의 필요, 특히 영적인 필요를 헤아릴 수없는 것은 당연하다.
ꃨ 어디 있는 자이든지(*, 미카체후) - 문자적인 뜻은 '모든 처소로부터'이지만 '가장 고귀한 자로부터 가장 천한 자에 이르기까지'가 적절한 의미이겠다(Lowth). 창 19:4은 '무론 노소하고', 곧 '나이든 사람, 어린 사람 가릴 것없이'로 번역한 바 있다. 이로써 파멸의 이유가 밝혀졌는데, 그것은 종교지도자뿐 아니라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한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지도층의 성향은 곧 피지도층의 성향이 되기 쉽다.
성 경: [사56:12]
ꃨ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 오리라 - 여기 이르는 사람들은 영적 지도자들이다. '포도주를 가져 오리라'란 '한 잔 더 마시겠다'란 뜻도 된다. 결국 본 구절은 술을 서로 권하는 대로 받아 마셔 한 테이블에 앉은 자들이 포도주에 취하여 취흥을 즐기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그 시대의 지도자들의 육욕적인 상황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ꃨ 내일도 오늘같이 - 이것은 그들의 육욕에로의 탐닉이 일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습관적인 것, 곧 삶의 주된 관심사였음을 밝혀준다.
성 경: [사57:1]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의인이 죽을지라도 ...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 여기 '의인'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자는 자신이 살던 당시에 무고한 자들의 희생이 일반적인 경향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죽을지라도'로 번역된 '아바드'(*)나 하반절에 '취하여 감'으로 번역된 '네에사핌'(*)은 모두 박해로 죽어가는 상황을 암시하는 용어들이다. 유다에도 무고한 피를 흘리게 하는 왕들이 많았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므낫세이다 :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유다로 범하게 한 그 죄 외에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가에서 저 가까지 가득차게 하였더라"(왕하 21:16). 유대 전승과 초대 교부들은 본서 저자 이사야가 바로 이 악명 높은 므낫세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ꃨ 화액(禍厄)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 - 원문 직역은 '다가올 악으로부터 취하여진 것'(is taken away from the evil to come, KJV)이다. 사방도처에 만연한 도덕적 악행으로부터, 이방 군대의 침입으로 나타날 민족적 죄악에 대한 징벌로부터 취하여 갔다는 뜻이다. 즉, 의인이 너무 이르게 죽은 이유는 그가 만연한 도덕적 악행을 더 이상 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또 이방 군대의 침입으로 인한 쓰라린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미리 데려가셨다는 것을(are taken away to be spared from evil, NIV) 가리킨다. 의인 아비야의 죽음을 성경은 그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이 그에게 내린 축복으로 묘사하고 있다(왕상 14:10-13).
성 경: [사57:2]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정로(正路)로 행하는 자 - 여기 '정로로'에 해당하는 '네코호'(*)는 '곧바른', '바른' 등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 용어는 악인이 걷는 '구부러진' 길과 대조할 때 자주 사용되는 형용사이다(59:8;시 125:5;잠 2:15;빌 2:15).
ꃨ 편히 쉬느니라 - 의인의 몸이 그의 무덤에서 안식을 취하는 듯이 묘사하고 있다. 신약 성경은 재림 때에 성도의 몸이 부활할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서 죽은 자를 '자는 자'로 부르기도 한다(살전 4:14).
성 경: [사57:3]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무녀의 자식 - 문자적인 뜻은 '마술의 아들들'로, 참신이신 하나님보다 이방인이 추구하던 마술, 마법 등에 탐닉해 있던 이스라엘을 풍자하는 표현이다. 이스라엘은 동방의 이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마술, 마법 등에 빠져 있었는데 특히 므낫세 왕 때 아주 심하였다(왕하 21:6).
ꃨ 간음자와 음녀의 씨 - 1차적으로는 도덕적 기준이 문란해짐에 따른 성적 부패 현상 혹은 이방인과의 결혼 금지 규례까 무시되어 음란함이 이스라엘에 만연하였던 사실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아울러 이 말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좇는 영적 음란함에 대한 지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특히 므낫세 통치 때 만연하였던 악하고 부패한 모든 행실 가운데 가장 일반적이었던 것이 바로 음란함이었다(황하 21장). 어떤 경우에 있어, 이 음란함은 우상 숭배 예식에 필수적인 동반 요소였다. 예수님도 당대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함에 있어서 음란함에 대해 반복 언급하셨다(마 12:39;16:4 등).
성 경: [사57:4]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 '희롱하느냐'에 해당하는 '티트아나구'(*)는 '장난치다', '조롱하다' 등을 뜻하는 '아나그'(*)에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후자인 '조롱하다'가 문맥과 어울린다. 1절에서 '의인들'에 대한 언급이 나왔기 때문에 '조롱'의 대상은 그들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이스라엘 역사를 볼 때 우상 숭배자들이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고 경멸적 제스처를 취한 경우는 많았다(Whybray). 우상 숭배자들의 그 같은 태도는 결국 의로운 자들이 섬기는 하나님 그분에 대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ꃨ 혀를 내미느냐 - '혀를 감느냐'로도 번역되는데 한마디로 순간적으로 혀를 밖으로 쭉 내밀었다가 안으로 끌어들이는 동작을 가리키며 이는 경멸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성 경: [사57:5]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상수리나무 사이 ... 음욕을 피우며 - '상수리나무 사이'는 '바엘림'(*)인데 '테레빈나무(팔레스틴에 서식하던 나무의 일종)의 숲 사이'로 보는 견해(Kimchi)와, '우상의 형상들'로 보는 견해(70인역)가 있다. 그 어느 견해를 따르든 간에 분명 놓치지 말아야 할것은, 본 구절은 숲속에서 이방 신을 숭배하던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대상은 테레빈나무로 만든 우상일 수도 있다. '푸른 나무 아래'란 표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기보다는 이방 우상 숭배 의식을 서술하는 대목에 대체로 수반되는 틀에 박힌, 상투적 표현의 의미가 있다(왕하 17:10;대하28:4).
ꃨ 자녀를 죽이는도다 - 상반절의 우상 숭배 의식에 대한 언급과 유사한 내용으로 인신 희생 제사를 가리킨다. 특히 이는 물록 신에 대한 제사를 연상시킨다. 특히 이는 몰록 신에 대한 제사를 연상시킨다(레 18:21;왕하 23:10). 몰록 신 숭배했던 타락한 이스라엘 부모들은 그 자식을 죽여 불에 태워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성경은 이 사실을 정확히 증명해주고 있는데 그 제사가 시행되던 곳은 그악명 높은 힌놈의 골짜기였다(대하 28:3). 이 끔찍스러운 제사는 가나안 민족과 바벨론 민족에 의해서도 수행도이가으며*왕하 17:31), 역사가들에 따르면 페니키아 민족 그리고 카르타고 민족에 의해서도 자행되었다고 한다(Eusevius, Diodorus Siculus). 이스라엘에서는 아합 때 처음 시작되었고 국가적 위기 때에 가끔씩 자행되다가 아하스와 므낫세 때 널리 유행되었으며 요시야 때 폐지되었다(왕하 23:10).
성 경: [사57:6]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골짜기 가운데 매끄러운 돌 중에 너희 소득이 있으니 - '매끄러운 돌'에 해당하는 '헬레크'(*)는 단지 한정사일 뿐이며 '돌'은 추측에 의한 번역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물이 흐르는 골짜기에서 발견한 아름답고 맨들맨들한 돌을 가져다가 신적 경의를 표한 사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Kimchi), 그보다는 이스라엘 우상 숭배자들이 숲이 우거진 곳 특히 물이 흐르는 시냇가에 우상을 세원 호고 숭배하였음을 뜻한다고 봄이 나을 것 같다. '소득'의 히브리어 역시 '매끄러운 돌'과 같은 '헬레크'(*)로서 일종의 언어 유희(word-play)를 보여주며, 그 문자적인 뜻이 '기업'으로도 번역된다. 이는 우상 숭배를 직업처럼 그 일에 몰두하였던 것을 암시하는 용어이다.
ꃨ 전제 - 하나님께 드리던 제사의 일종으로 포도주와 기름을 제단 위에 부어 드리던 제사(출 29:40;레 23:13;민 15:5-7)이다. 우상 숭배자들은 이방 우상 숭배에 있어서도 하나님께 드렸던 동일한 방식을 취하였다.
ꃨ 예물(*, 민하) - 희생 짐승이 아닌 곡식 및 고운 가루를 제물로 드렸던 것을 가리킨다(레 14:10).
성 경: [사57:7]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높은 산 위에 네 침상을 베풀었고 - 공개적으로 수치심없이 감행되는 음란 행위에서 따온 이미지이다(겔 23:7). '침상'은 우상 숭배에 사용되는 제단에 상응하는 용어이다. 아무튼 본절 전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소위 영적 간음 행위를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겔 16:16,25).
성 경: [사57:8]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기념표를 문과 문설주 뒤에 두었으며 - 여기 '기념포'란 새긴 이방 우가의 신상을 가리킨다.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가정 수호신인 '라레스'와 '페나테스'의 신상를 집안 곳곳에 놓아 두었듯이 패역한 이스라엘은 이방 신상을 집안에 두었다. 이 행위는 모세의 율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였다. 뿐만 아니라 그 신상을 둔 곳은 다름 아닌 문과 문설주였다. 이 두 곳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새겨 두어야 할 곳이었다(신 6:9;11:20). 바로 그곳에 페역한 이스라엘은 신상을 두었다. 이 행위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 "...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를 저주를 받을 것이라"(신 27:15).
ꃨ 다른 자를 위하여 몸을 드러내고 - 음란한 여인의 성교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 표현은 패역한 이스라엘의 이방 신 숭배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ꃨ 침상을 넓히고 그들과 언약하며 - 음란 행위를 할 상대를 더 많이 받아들이는 장면으로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한 공개적인 위반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미 그들은 하나님과 불변의 언약을 맺은 바 있다(출 19:5;23:32).
성 경: [사57:9]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몰렉(*, 멜레크) - 문자적인 뜻인 '왕'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마치 매춘부가 향수를 바르고 손님을 맞듯이 숭배하기 위해 그 앞으로 나아갔던 우상(렘 4:30;겔 23:40) 혹은 이스라엘이 하나님보다 더 신뢰했던 앗수르, 애굽 그리고 그 외 이방의 왕들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후자로 보는 것이 더욱 낫다. 왜냐하면 문맥적으로는 '우상'으로 볼 수있으나 용어 자체는 문자 그대로 '왕'을 가리킬 때 쓰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몰렉 우상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몰레크'로 발음됨). '향품'이란 외국 왕들에게 바치던 선물, 조공 등으로 보면 되겠다(호12:1).
ꃨ 음부까지 스스로 낮추었으며 - 낮출 수있는 최저의 자리까지 자신을 낮추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의존하기를 버릴 때 그들은 가장 비천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성 경: [사57:10]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네 힘이 ... 아니함이니라 - 문자적인 뜻은 '너는 너의 손의 생명을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너는 슬퍼하지 아니하였다'이다. 여기 '생명'(*, 하이트)이란 활력, 원기 등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본 구절이 뜻하는 바는, 이스라엘은 이방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원기가 그몸에 남아 있는 한 여전히 그 소망 가운데 기뻐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차례의 이방나라에로의 사신 파송이 아무 소득이 없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이스라엘은 힘이 있는 한 계속해서 사신을 파송하면서 소망을 잃지 않았던 사실을 가리킨다.
성 경: [사57:11]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이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 잠잠함을 인함이 아니냐 - 하나님께 대한 관심조차 없었음을 나타낸다. 거짓 고백으로 아첨하기보다는 차라리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관심도 없으면서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은 양 가장했다. 그 같은 위선은 하나님이 그들을 오랫동안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은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오랜 고통의 침묵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부인케 하기 위함이 아니라 회개케 하기 위함이었다(롬 2:4,5).
성 경: [사57:12]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본절 원문 직역은 '나는 너희들의 의와 너희들의 행위들을 나타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너희들에게 무익하기 때문이다'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그들의 위선적인 의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시겠다는 뜻이며, 그들이 이방의 도움을 요청하고 이방 신상을 숭배하는 행위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공개적으로 나타내시겠다는 것이다.
성 경: [사57:13]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땅을 차지하겠고 - '땅'은 1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돌아가 다시 얻게 될 유다와 시온 산을 가리키지만, 2차적으로는 영적 이스라엘 곧 신약 교회 성도들이 얻을 영원한 천국을 가리킨다(49:8;시 37:9,11;69:35,36;마 5:5;히 12:22).
성 경: [사57:14]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이는 바벨론 포로니로부터 귀환할 때 그 장애물들이 제거될 것이라는 예언으로도 볼 수 있으나, 특히 거치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크숄'(*)은 구약 성경(특히 에스겔서)에서 문자 그대로의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최촉(催促)하는 우상 숭배 등의 죄악을 가리키는 말로 종종 사용되므로 본문은 메시야 시대의 구원과 해방을 암시하는 예언으로도 이해 가능하겠다(Whybray)
성 경: [사57:15]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 - 여기 '통회'란 '다카'(*)로서 '깨어지고, 부숴지고, 잘게 쪼개어진 어떤 물건'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여기서는 자신의 죄성과 무가치성을 철저하게 깨닫는 자를 암시하고 있다. 영적 구원 문제에 관한 한, 바로 이 같은 의식을 갖고 있는 자만이 이제 오실 참구속주인 메시야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자이기도 하다(마 5:1-8). 이 의식을 가졌던 세리는 의인이라는 호칭을 받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의를 자랑하며 영적 교만에 싸여 있었던 바리새인은 수치를 당하였다(눅 18:9-14).
성 경: [사57:16]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내가 영원히는 ... 아니할 것은 - 한마디로 이것은 14, 15절에 있는 약속, 곧 통회하는 자를 회복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영원히 그의 백성과 다투지 않으시는 까닭은 그들의 영혼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만 봐도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은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애 3:33;미 7:8,9).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필경 파멸에 이르게 하신다(시 7:11;계 14:11).
성 경: [사57:17]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얼굴을 가리우고 - 하나님의 '얼굴'이란 은총의 현시(顯示)를 가리키므로, 얼굴을 가리웠다는 것은 그 반대인 은총의 사라짐을 뜻하겠다.
ꃨ 오히려 패역하여 - 문자적인 뜻은 '완고함을 계속하여'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사라지고 징계가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죄를 깨닫기는 커녕 도리어 하나님에게서 더 멀어져만 갔다. 그와 같은 자들에게 취하실 하나님의 태도는 두 가지 중 하나였는데,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버리는 대신 그들의 죄의 문제를 대신 해결할 메시야를 보내시는 쪽을 택하셨다.
성 경: [사57:18]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 여기 '길'이란 악행 혹은 회개 등으로 볼수 있는데, 앞절에 의존할 때 전자가 옳다고 여겨진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반복되는 죄악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간구하셨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메시야를 통한 그 백성의 구원이다. 성경은 영적 구원을 암시함에 있어 질병의 치유와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대하 7:14;시 41:4;렘 3:22;호 14:4 등).
성 경: [사57:19]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 - 히 13:15에서 바울이 말한 '찬미의 제사'가 바로 '입술의 열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입술에서 찬양이 나오게 할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 일이란 '평강'에 관한 것이다. 이 '평강'(*, 솰롬)이란 완전한 평화로서(요 14:27), 먼저는 유대인의 포로지에서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과 관계된다. 그러나 좀더 포괄적으로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에도 전파될 복음을 통하여 온 인류 중 택한 자들이 누리게 될 영적 평안을 가리킨다. 베드로는, 당시로서는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평안의 복음이 이방에게도 퍼질 것을 '먼 데 있는 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드러내었다(행 2:39;엡 2:17).
성 경: [사57:20]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의인과는 달리 혼란과 불안정 상태에서 벗어날 길 없는 악인을 대비시키고 있다.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위해 '바다'라는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히브리 개념에 있어서 '바다'는 결코 안식이 없는 그 무엇의 이미지로 종종 등장한다(43:2).
성 경: [사57:21]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본절은 19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완고한 악인, 곧 회개치 못하는 자는 19절에 언급된 평화를 나누는 일에서 제외될 것이다. 이 표현은 약속된 영적 화해와 용서에 따른 평안을 회개에는 자에게만 돌아갈 몫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재강조하는 것이다. 48장도 동일한 강조로 마무리되고 있다.
성 경: [사58:1]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외식적 금식과 참된 금식]
ꃨ 내 백성에게 ... 고하라 - 여기 '백성'이란 선지자 시대의 백성 혹은 바벨론 포로 시대의 백성, 둘 중으 하나이겠다. 우리는 다수 주석가들의 견해에 따라 후자의 견해를 취하고자 한다(Delitzsch, Rosenmuller, J. Watts, Whybray). 그 근거로서 성전, 희생 제사, 므낫세 시대에 유행했던 우상 숭배 따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성 경: [사58:2]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외식적 금식과 참된 금식]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기는 하되 그것은 형식적이요 외면적일 뿐,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도리어 자기의 뜻을 구했던 사실에 대한 조롱이 담기 다역설적 표현이다. '그들은 나를 날마다 찾으며, 나의 뜻을 몹시도 알고 싶다면서, 마치 옳은 일을 해 온 백성이기나 하듯이, 자기 신의 법을 어기지 않은 백성이기나 하듯이, 무엇이 옳은 법인지 나에게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고 싶다면서'(공동 번역).
성 경: [사58:3]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외식적 금식과 참된 금식]
본절은 이스라엘이 금식의 본래적 목적과 의의를 외면하고 오히려 현실상의 축복을 비는 수단으로, 단지 종교적 자랑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 사실을 계속 책망하는 내용이다. 본래 금식은 회개와 성결을 위해 제정된 것으로서(느 9:1,2;시 69:10), 철저한 회개를 통해 자신의 이기적인 뜻과 정욕을 억누르고 자기를 부인케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금식에 대한 언급은 이른 시기부터 보여진다(삼상 31:13;삼하 12:11-23;대하 20:3). 그러나 개인 금식이 경건의 표현으로서 대중화되고 정기적으로 공동 금식이 준행된 것은 포로기 이후의 일이다. 슥 8:19에는 정기 금식의 네 시기가 언급되어 있다. 그중 4월 9일의 금식은 예루살렘 함락을(와하 25:3-21), 5월 10일의 금식은 성전 파괴를(렘 52:12,13), 7월 2일의 금식은 그달리야 살해를(왕하 25:23-25) 그리고 10월 10일의 금식은 예루살렘이 처음 공략된 것을 각각 기억하는 데에 애초의 목적이 있었다(J. Watts).
ꃨ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 그들의 영혼이 괴로움을 당했다고 자랑하였던 사실이 위선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들은 오히려 금식을 즐기고 있었다.
ꃨ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 여기 '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체브'(*)는 매우 힘들고 고통이 따르는 노동, 땀, 산고 등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이며 또한 '시키는도다'에 해당하는 '나가스'(*)는 '폭정을 가하다', '강제 징수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본 구절은 금식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유익을 챙기기 위해 그 종이나 일꾼에게 가혹한 일을 강요하는 악덕 주인을 고발하는 내용이 되겠다(느 5:1-5).
성 경: [사58:4]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외식적 금식과 참된 금식]
ꃨ 다투며 싸우며 -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다투고 싸우는 것을 금식의 목적으로 삼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금식하는 중에조차 그러한 이욕(利慾)적인 혈기를 부릴 정도로, 그들은 금식의 목적 자체에 대해 무지하였음을 보여준다(Whybray).
성 경: [사58:5]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외식적 금식과 참된 금식]
ꃨ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 여기 '기뻐하는'의 원문적 의미는 '선택한'이다. 말하자면, 너희들이 취하는 형태의 금식은 하나님이 택하신 곧 하나님이 인정하고 명령하신 금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ꃨ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 재를 펴는 것 - 이는 극도의 겸손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나 형식적 모양만 갖춘다고 하여 다된 걸로 생각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다. 본절의 요지는 금식의 방법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금식의 정신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금식의 참정신이 6절 이하에서 전개되는 바, 그것은 결국 경건의 모양과 능력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다(마 6:16-18).
성 경: [사58:6]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외식적 금식과 참된 금식]
ꃨ 흉악의 결박(*, 하레추보트) - 문자적인 뜻은 '악의 띠'로 불의하고 잔혹한 권위를 가지고 타인의 권리나 유익을 억압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ꃨ 명에의 줄을 끌러 주며 - 여기 '멍에'는 악압 혹은 강제적인 노동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용어로, 여기서도 그런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ꃨ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며 - 여기 거론되고 있는 상대는 문자 그대로는 '상한 자'이며 폭력, 압제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고 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 사람의 실체를 결정적으로 밝혀주는 단서는 '자유케 하며'로 번역된 '하페쉼'(*)이다. 이 용어는 한번 노예가 되었다가 자유를 얻은 자를 묘사할 때 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신 15:12;욥 3:19 등). 이 단서에 근거할 때 본 구절이 서술하려는 존재는 의심의 여지없이 '노예'라고 볼 수 있다.
성 경: [사58:7]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외식적 금식과 참된 금식]
ꃨ 주린 자에게 ... 나눠 주며 - 이것은 한 아비가 그 자녀에게 그렇게 하듯이 가진 자가 그 소유를 필요로 하는 자에게 공급하는 것을 가리킨다. 대체로 이 행실은 신앙인의 필수적 의무로 간주되었는데, 고난의 사람 욥은 이러한 선행의 모범을 아름답게 서술한 바 있다(욥 31:16-22).
ꃨ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 - 원문 직역은 '너 자신의 살(육체)로부터 너 자신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여기 '살(육신)'은 '바사르'(*)로서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를 뼈 중의 뼈 그리고 '살 중의 살'이라 칭할 때(창 2:23), 그리고 라반이 야곱을 그의 '골육'이라 칭할 때(창 29:14), 각각 사용하던 용어이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본 용어는 혈육상 밀접한 관계에 있는 상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보면 되겠는데, 그런 의미에서 개역 성경의 번역 '골육'은 적절하다. 골육, 곧 친척에게서 자신을 숨기는 경우란 그 친척의 사회적 신분이 낮거나 재물이 없을 때 혹은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는 일을 꺼려할 때이겠다. 참신앙인이라면 골육 친척이 어떤 신분이나 처지에 있든 간에 친절과 애정을 갖고 그와 친교를 나누고 그의 필요를 공급하는 데 힘을 써야 함이 마땅하다. 성경은 친척, 곧 가족을 돌보지 않는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보다 더 약하다고 경고하고 있다(딤전 5:8).
성 경: [사58:8]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의로운 자가 받을 축복]
ꃨ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 올바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서 금식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풍성한 번영의 축복을 주신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번영'은 흔히 아침에 비치는 찬란한 빛에 비유되고 있다(욥 11:17).
ꃨ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 원문 직역은 '네 상처는 빨리 치료될 것이다
'이다. 여기 '치료'의 본래 뜻은 상처를 치료할 때 사용되는 '긴 붕대'이다(1:6과 비교하라). 따라서 본 구절은 오랫동안의 정신적, 육체적 상처, 곧 전인적인 상처를 전제로 한다고 볼 수 있다.
ꃨ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 말하자면 하나님의 율법에의 순응은 행복, 번영, 평화의 길로 이끄는 선봉장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뜻이다.
ꃨ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 이것은 이스라엘과 그들을 분리하기 위하여 그 사이를 가로막고 섰었던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연상케 한다(출 14:19, 20).
성 경: [사58:9]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의로운 자가 받을 축복]
ꃨ 손가락질 - 문자적인 뜻은 '손가락을 뻗치는 것'이다. 이것은 남을 경멸하고 조롱하기 위하여 손가락질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법적 기소(起訴)를 암시하는 말로 쓰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Whybray).
ꃨ 허망할 말(*, 다베르 아웬) - 이는 무(無), 헛됨, 텅 빈 것(41:29;슥 10:2), 거짓, 속임수(시 36:4;잠 17:4), 무가치한 것, 사악함 , 죄악(1:13;욥 36:21) 등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인데, 결국 여기서는 당시 사회에 만연하였던 온갖 종류의 거짓, 거친 행동 그리고 불의한 언사 등을 의미하는 것 같다.
성 경: [사58:10]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의로운 자가 받을 축복]
ꃨ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動)하며 - 원문 직역은 '너의 영혼을 주린 자에게 끄집어 내며'이다. 직역의 내용이 어색하기 때문에 몇 역본들과 사본들은 '너의 빵을 주린 자에게 내밀며'로 번역하고 있다(사해 사본, 시리아역, Noyes, Horsley). 그러나 이 번역은 원문을 크게 수정한 번역으로, 굳이 이렇게 옮길 필연성은 없다. 여기 '영혼'(*, 네페쉬)은 '마음' 혹은 '선행의 마음' 등과 동의어로 보면 된다. 따라서 원문 수정 없이도 본문의 의미는 정확히 드러난다고 본다 : '너의 선행의 마음을 주린 자에게 드러내며.'
ꃨ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 지금까지 불투명하고 암담했던 삶의 여정이 분명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바뀔 것이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재앙들 그리고 시련들의 과정이 끝나고 풍성한 번영의 과정이 이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성 경: [사58:11]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의로운 자가 받을 축복]
ꃨ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 '마른 곳'(*, 차흐차호트)은 태양의 강렬한 햇살에 노출되거나 가뭄 때문에 습기가 완전히 말라버린 곳을 가리킨다. 그러나 본문이 약속하는 것은 단순한 마른 땅, 가뭄에 내릴 비 정도가 아님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혜택을 받을 대상이 '영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이 암시하는 바는 오랜 고통에서 벗어난 자가 얻게 될 마음의 평안, 더 나아가서는 메시야의 도래와 그의 사역으로 말미암을 구원의 약속까지로 보아야겠다. 본서는 메시야의 구원 사역으로 인한 그 택한 백성의 구원을 암시할 때 '마른 땅'의 이미지를 자주 등장시킨 바 있다(41:17 등). 물 댄 동산 - 이는 근동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나타내려 할 때 흔히 사용된 표현이다. 시리아역(Syriac)은 본 구절을 '천국'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천국을 이뤄본 적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 표현을 종말론적 측면에서 이해해볼 수도 있겠다. 이제 주님이 재림하시면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이방의 택함받은 자들은 완성된 천국에서 살게 될 것이다.
ꃨ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 여기 '끊어지지'로 번역된 '예카제부'(*)는 그 문자적인 뜻이 '속이다', '거짓말하다'이다. 이것은 샘의 근원이 말라 있을 경우 물을 얻기 위해 그곳을 찾은 대상들, 혹은 짐승들의 허탕을 치게 되는 사실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비하실 샘은 켤코 마르지 않고 항상 풍성한 샘이다. 이 샘은 바로 반석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 사역 때문에 그분을 찾는 모든 사람은 항상 영생의 물을 얻게 될 것이다(요 4:13,14;고전 10:4).
성 경: [사58:12]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의로운 자가 받을 축복]
ꃨ 네게서 날 자들 - '너를 통하여 있게 될 자들'이란 뜻이다. 이는 이스라엘 후손들을 가리킨다.
ꃨ 오래 황폐된 곳 ... 역대의 파괴된 기초 - 이것은 분명 바벨론 포로 시대 동안 황폐된 상태로 방치되었던 이스라엘 성을 가리킨다. 그 성은, 건물은 물론 그 기초까지도 완전히 파고되었었다. 이 성의 수측은 1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더 나아가서는 이방의 회심이라는 축복을 암시한다(암 9:11,12;행 15:16,17)
성 경: [사58:13]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의로운 자가 받을 축복]
본절의 시점은 포로 귀환 이후의 시대이다. 바로 이 시대에도 안식일 준수는 중요한 의무로 주어지고 있다(느 13:15-22).
ꃨ 네 발을 금하여 ...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 '발'은 동작을 일으키는 수단이다(잠 4:27). 안식일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어떤 일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따라서 안식일에 회당이나 성전에 가는 일 외에 다른 일에 그 발을 사용하지 않았다(행 1:12 참조).
ꃨ 성일(聖日) - '나의 거룩한 날'이란 뜻이다. 하나님은 이날을 나의 날이라 부르신다. 따라서 그날을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면 그분은 소유를 도둑질 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즐거움'이 아니라 그 즐거움이 육적인 것이냐 아니면 영적인 것이냐는 것이다. 만일 육적인 즐거움을 취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안식일 규례를 범한 것이 된다.
성 경: [사58:14]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의로운 자가 받을 축복]
ꃨ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 쉽지 않은 구절로서 해석 견해는 크게 둘로 나뉜다. 그 하나는 이스라엘이 살던 팔레스틴 땅은 고지대인데 바로 그 고지대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 곧 포로 귀환의 약속으로 보는 견해이고, 또 다른 하나는 높은 지대가 상징하는 번영, 안정에 대한 약속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두 견해를 연속적 개념으로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즉, 포로로부터 귀환시킨 후 번영과 안정을 허락하겠다는 약속으로 보는 것이다.
ꃨ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 야곱에게 약속된 땅 가나안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ꃨ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 원문 직역은 '왜냐하면 여호와의 입이 그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이다. 말하자면 여호와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포로 후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땅을 소유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번 주신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강조할 때 흔히 이 표현이 사용된다.
성 경: [사59:1]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여호와의 손이 짧아 ...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 신인 동형론적 표현을 통하여 본절이 나타내려고 하는 바는, 이스라엘의 포로된 그리고 그들의 오랜 금식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해방을 얻지 못하는 원인이 하나님편에 있지 안혹 이스라엘편에 있다는 사실이다. 본장은 자신들의 오랜 포로 생활 가운데 겪는 고통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는 듯 하나님께 논쟁하고 따지는 어리석은 이스라엘의 변론을(58:3 참조) 전제로 시작되고 있다.
성 경: [사59:2]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너희 죄악(*, 아온테켐) - '너희들의 죄악들'이란 뜻이다. 복수형으로 된 이 죄악들이란 바로 전장에서 나열하였던 죄악들과 본장 앞부분에서(2-8절) 열거할 죄악들을 가리킨다.
ꃨ 사이(*, 마브딜림) - 대체로 커튼 혹은 담벽 등으로 인한 영역의 구분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출 26:33;32:26)이다. '죄악들'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분리시키는 커튼이나 벽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 같은 상태에서는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성 경: [사59:3]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본절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동의적 개념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 하나는 '손'과 '손가락'인데, 전자는 총제척 번죄 행위, 곧 범죄 행각을 가리키는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입술'과 '혀'인데, 전자는 공개적으로 되어지는 모든 거짓말을, 후자는 은밀하게 되어지는 거짓말을 각각 암시하는 듯하다(렘 6:28;9:4). 당시에는 연령층에 관계없이 행동과 말로 되어지는 각종의 죄악들이 범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성 경: [사59:4]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 문자적인 뜻은 '공의를 요구하는 자도 없고'이다. 말하자면 공의롭게 재판건을 재판정으로 가지고 나가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부당한 유익을 얻는 목적을 위해서만 법정을 이용하던 행태를 꼬집는 표현이다. 이 같은 형태는 법을 집행하는 사법 기관이 썩었기 때문이다.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 하박국 선지가 자신의 국가 유다의 멸망을 하나님께 구했던 중요한 이유는, 바로 공의가 땅에 떨어졌던 사회상을 목도하였기 때문이다 :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이니다"(합 1:4).
ꃨ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 왜곡되고 불합리한 사회 풍조 때문에 합법적이고 정당한 방법으로는 일이 되지 않고 그래서 온갖 부정한 수단에 의지하게 됨을 나타낸다.
ꃨ 잔해(殘害)를 잉태하여 - 문자적인 뜻은 '불행을 잉태하여'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불이익, 성처를 낳는 악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가리킨다.
성 경: [사59:5]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독사의 알을 품으며 - '독사'에 해당하는 '치프오니'(*)의 정확한 뜻은 밝히기 어려우나 맹독성을 지닌 뱀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겠다. 이 같은 뱀음 알 속에 있을 때 밟아 죽여야 옳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도리어 그 동물을 보호하고 키우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그들이 악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ꃨ 거미줄을 짜나니 - 여기 '거미줄'은 다른 곤충을 잡기 위해 치는 함정, 곧 남을 해치기 위해 놓는 덫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곧 망가져 버릴 정도로 얇은 조직으로 된 거미줄의 상태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6절에서 이 거미줄은 단단하고 치밀한 조직으로 짠 '옷'과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남을 해치고 망치려는 계획과 행위는 헛되면 일순간적인 뿐임을 말하고 있다(욥 8:14;잠 11:18).
성 경: [사59:6]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 거미줄은 옷감 재료로 부적합하다는 것이 문자적인 뜻인데, 여기서는 그와 유사한 행위는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이득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나아가 구원을 보장할 수도 없다는 의미를 암시한다. 거미줄을 짓는 것과 같은 행위에는 기만적인 궤변이 있다. 이것은 참지혜, 경건, 미덕 그리고 그에 따른 구원을 이루지 못하며 허공을 치는 사색에 그치고 만다(Vitringa). 또 다른 예로는 악한 자의 술수, 헛된 형식주의, 거짓된 여론, 간교한 사색, 그리고 생명 없는 전승 등이 있겠다.
성 경: [사59:7]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 문자적인 뜻은 '그들의 발은 악으로 달리며'이다. 악으로 달린다는 것은 악을 행하고자 하는 강한 열정을 암시하는 말이다. 3절에서 죄를 짓는 신체 부위로서 손, 손가락, 입술, 혀를 언급했던 저자는 여기서 발을 언급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죄악이 전인적(全人的)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1:5,6).
ꃨ 사상은 죄악의 사상 - 죄행의 뿌리가 밝혀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그 행동에 있어서만 악했던 것이 아니라 그 의도, 생각에 있어서도 역시 악했는데 사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내적인 요소이다.
성 경: [사59:8]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평강 - 하나님 및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화평 혹은 자신의 양심에 있어서의 심적인 평안을 가리킨다.
ꃨ 굽은 길 - 이는 부정적, 자만, 속임수의 상징인 반면, '곧바른 길'은 성실, 진실, 정직 그리고 곧음의 상징이다(시 125:5;잠 2:15). 여기서는 그들의 계획이나 도모하는 행사 따위가 곡해되고 악하다는 의미이다.
성 경: [사59:9]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우리에게서 - 8절과 그 앞 몇 구절들에서 3인칭(그들)이었던 호칭이 1인칭으로 바뀌었다. 저자는 이같이 인칭을 바꿈으로써 이제 자신까지를 포함하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당할 재앙을 바라보면서 그 죄악을 회개하는 형식을 갖추었다.
ꃨ 의 - 문맥상 하나님이 이루실 구원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성 경: [사59:10]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소경같이 담을 더듬으며 - 시내 광야에서 모세가 예언한 내용을 상기시킨다. 그때 모세는 만일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준행치 않으면 소경이 더듬는 것같이 더듬으리라고 하였던 것이다(신 28:29). 소경처럼 담을 더듬는다는 것은 갑작스런 환난을 당하여 황망해 하는 것, 스스로 참진리의 길을 가지 못하는 것 혹은 스스로는 구원의 길에 들 수 없는 상태에 처한 것을 가리킨다.
ꃨ 낮에도 황혼 때 같이 넘어지니 -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임한 재앙이 그치지 않음을 뜻한다. 안식의 낮을 잠시 기대하여 보지만 여전히 재앙의 밤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ꃨ 우리는 강장한 자 ... 같은지라 - '강장한 자'(*, 아쉬마님)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이를 '어둠'(Jerome, Luther), '무덤'(탈굼역, D.Kimchi), '황량한 장소'(J. Kimchi) 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맥상 이 말이 '죽은 자'와 반어적 관계에 있는 듯하고, 그 어원으로 추측되는 '솨멘'(*)이 '풍부한', '살진', '무성한' 등의 뜻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는 '비옥한 밭' 혹은 '살지고 강건한 (자)'를 가리킨다고 봄이 더 나을 것 같다. 또 이 둘 중에서도 어두(語頭)첨가어 '알렙'(*)이 붙은 말은 대체로 명사적 의미보다는 형용사적 의미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후자가 더 자연스럽겠다(Delitzsch). 다른 사람은 번영과 낙을 누릴 때 죽은 자처럼 번영도 없이 기쁨을 모르는 삶을 사는것, 그것이 바로 불신자의 모습이다(26:10;눅 15:17).
성 경: [사59:11]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곰같이 부르짖으며 - '부르짖으며'에 해당한 '네헤메'(*)는 중얼거리는 소리, 혼란하고 시끄러운 소리, 으르렁거리는 소리, 비둘기처럼 '구구'하는 소리(겔 7:16), 모인 무리가 웅성거리고 소동하는 소리 등을 가리킬때 사용되는 용어인데 여기서는 그 어떤 고통 때문에 울부짖고 신음하는 소리로 보면 되겠다.
ꃨ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 애조를 띤 소리의 대명사인 비둘기의 우는 소리는 흔히 슬픔을 나타낼때 사용된다(겔 7:16).
성 경: [사59:12]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거하오니 - 원문 직역은 '우리의 죄가 우리를 향해 대답하오니'이다. 이것은 그들의 과거 죄악들이 너무 현저해서 그들이 죄인임을 명백히 증언한다는 뜻이다. 한편 본절에는 '우리'라는 말이 무려 일곱 번이나 등장하는데, 이는 허물진 백성을 대신하여 중보적으 회개 기도를 올리는 이사야의 진정한 동족애를 보여준다.
성 경: [사59:13]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바로 앞절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의 진술없이 일반적인 관점에서 죄인임을 인정했다면, 본절에서는 죄의 구체적인 내용을 열거하고 있다. 그런데 구체적인 죄행도 사실은 하나님께 대한 배신의 행동, 말 그리고 생각으로 나타난 것이다.
성 경: [사59:14]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 여기 '공평'(*, 미쉬파트)이란 재판정의 생명이라 볼 수 있는 '공정성'을 뜻한다. 재판은 바로 이 '공정성'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당시는 어떤 권력의 배경이나 뇌물 등을 가진 자에게 유리하도록 재판이 진행되곤 하였음을 시사한다.
ꃨ 거리에 앞드러지고 - 공정성에 의해 진행되는 재판은 거리가 아닌 성문 따위와 같은 사람의 왕래가 가장 빈번한 곳에서 열렸다. 그런데 그 재판의 생명인 바 '공정성' 곧 '성실'(*, 에메트)이 거리에 엎드러졌다는 것은 공정성이 재판정을 떠났음을 뜻한다. '정의'의 상징인 재판정이 정의롭지 못하면 그 나라 전체는 도덕적 붕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성 경: [사59:15]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 문자적인 뜻은 '악으로부터 떠난 자가 먹이가 되다'이다. 범람하고 있는 악의 세태에 물들지 않은 정직하고 경건한 자가, 먹이를 노리른 야수와 같은 악인의 공격 표적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ꃨ 그 공평이 없는 것을 기뻐 아니하시고 - 원문 직역은 '하나님 눈앞에 악이 있었다. 그것은 그분을 고통스럽게 하였다'이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죄악성은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는 그의 품성을 따라 어떤 조치를 취하셔야만 했다. 사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 속성을 예시하는 역할을 위해 선택된 모범적 국가로서의 자태를 만방에 드러내어야 했다.
성 경: [사59:16]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 이스라엘이 징벌을 받는 이유는 죄 때문이었다. 따라서 징벌이 멈추려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다. 그런데 인간 세계에는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한 존재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본 구절의 뜻하는 바이다.
ꃨ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이쉬토멤)의 원문 직역은 '어찌할 바 몰라하셨다'인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같은 태도를 취하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재자, 곧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죄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없음을 크게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 표현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ꃨ 자기 팔 - 구원 문제에 있어서 인간이 아닌 하나님 한 분만이 해결책을 제시하실 수 있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용어이다.
성 경: [사59:17]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이스라엘의 부패상이 너무 심각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마치 무장한 전사처럼 하고서 직접 개입하시는 내용이다. 이는 사도 바울이 묘사한 성도의 전신갑주를 연상시킨다(엡 6:13 이하). 에베소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여호와의 각종 무장 장비들은 당신의 거룩하신 성품의 다양한 표현들에 다름 아니며, 이들은 당신의 진노와 사랑을 아울러 나타내는 것이다(Delitzsch).
성 경: [사59:18]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본절에서 강조되는 말은 '행위'이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게물'(*)이 세 차례나 사용되고 있는(개역 성경은 '보응'과 '보복'의 히브리어도 바로 '게물'임) 것만 보아도 강조점은 명백하다. 이제 말씀으로 경고하는 때는 지나갔고 심판의 행동이 개시된다는 것이다(J. Watts). 한편,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세상 열방들에 대해 내려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어서 마치 패역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은 숨겨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아마 기자는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까지 세상 만국에 대한 심판 속에 포함시켜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성 경: [사59:19]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본절에 대한 번역은 역본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해석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취해질 수 있다 : '하나님을 겨외하게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격렬한 진노가 대적들을 완전히 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G.W. Grogan).
성 경: [사59:20]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 이 말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하늘로부터 오는 구속자는 배타적으로 유대인에게만, 유대인을 위해서만 오신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이스라엘은 여호와 신앙의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또 구속주가 이스라엘 중에서 탄생하시게 된다는 의미에서 우선적 배려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롬 1:16 참조).
성 경: [사59:21]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본절은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20절)를 포함한 구속함 받은 자들에게 주신 약속이다. 그중 첫째는 성령을 그들에게 계속 임하게 하신다는 약속이다. 성령은 계시의 근원이자(욜 2:28), 권능과 은사의 원동력이다(미 3:8).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계속 머물러 하신다는 약속이다. 말씀은 계시의 결정체요, 신령한 은혜의 방편이요, 성도의 행할 바를 일러주는 삶의 지침서이기도 하다. 이 두 약속은 오순절 성령 강림과 신구약 66권의 완성을 통해 1차적으로 성취되었다.
성 경: [사60:1]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ꃨ 일어나라 - 52:1에도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죄악에 따른 심판으로 말미암아 티끌과 폐허 위에 앉아 있던(3:26;52:2) 시온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이 전해진다. 1차적으로 이는 포로 귀환을 겨냥한 것이지만, '치료하는 광선을'발하실 메시야를 통하 교회의 탄생과 확장으 예언하는 내용이기도 하다(말 4:2;엡 5:14).
ꃨ 네 빛이 이르렀고 - 이제 시온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된다. 죄악으로 인해 황폐해졌던 시온 자체에는 빛이 있을 턱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 자체로부터 나오는 치유의 빛, 구원의 빛을 받음로 말미암아 새로이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빛'또한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어 온,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빛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성 경: [사60:2]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본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직전에 애굽에서 일어났던 흑암의 재앙 사건을 연상시킨다(출 10:21-23). 이사야는 '어두움'과 '환난'(45:7), '불의'(45:19)를 상징하는 말로도 사용하였다. 본절은 죄악과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온 땅이 캄캄할 때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시온에 비춰질 것이라는 예언이다. 한편, 본절은 빛되신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때에 이스라엘 외의 세상 나라와 이스라엘 자체를 대비시키고 있다고도 이해된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때 세상 다른 곳은 여전히 어두운 상태에 있을 것이다. 물론 빛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도 그 빛을 깨닫지 못했다(요 1:9,10). 그러므로 본문은 구약의 예언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먼저 오셨다는 것을 뜻한다. 이후 온 땅은 이스라엘을 통해 그 빛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9:2).
성 경: [사60:3]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본절은 이스라엘에 임한 빛이 먼 나라 이방에게로 확장되며, 따라서 그들이 이 복음의 축복에 참여케 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암시는 본장이 보여주려 하는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2:3;11:10;49:22;54:3).
성 경: [사60:4]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ꃨ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 여기 '무리'란 세계 각처로 흩어졌던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 몇 선택받은 이방인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제 그들은 뒤엉켜 한 무리를 짓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물을 바치기 위해 몰려올 것이다.
ꃨ 안기워 올 것이라 - 원문 직역은 '네 곁에 붙들어 매어질 것이라'이다. 이것은 근동의 풍습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 근동 사회에서는 부모가 어린 자식을 데리고 다닐 때 허리를 걸치듯 업곤 했다. 이같이 익숙한 풍습과 연관된 표현을 함으로써, 저자는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내용에 애착을 느끼고 또한 반드시 성취될 것을 기대케 하고 있다.
성 경: [사60:5]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ꃨ 희색을 발하며 - 원문 직역은 '(함께)흐르며'이다. 이 동사는 '강'을 뜻하는 '네하르'(*)에서 왔는데 여기서 이 동사가 사용된 것은 강물이 넘실대며 넘쳐 흐르는 이미지를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문맥에서 볼 때 그 이미지를 통해 나타내려는 바는 '넘치는 기쁨'이겠다.
ꃨ 네 마음이 놀라고 -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방인 회심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어쩔줄 몰라하며 크게 감동받은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ꃨ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 여기 '바다의 풍부'는 '하몬 얌'(*)인데, '하몬'(*)은 '군중'(13:4;단 10:6), '많은 군대'(삿 4:7;단 11:11-13), '많은 물'(렘 10:13;51:16), '큰 재물'(시 37:16;전 5:9) 등을 뜻하며 '얌'(*)은 바닷가에 사는 백성들을 뜻하는데 바로 이어지는 구절 '열방의 재물'이 본문의 동의적 병행구임을 고려할 때 '하몬 얌'(*)은 '이방인들의 재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포로 귀환시 이방의 재물이 지원될 것을 시사함과 동시에(스 1:6)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되면 이방인의 소유물들이 시온, 곧 교회에게 바쳐짐을 예언한 것이기도하다. 말하자면 땅의 재물이 기록한 용도에 사용되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성 경: [사60:6]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ꃨ 에바 - 미디안의 장남으로(창 25:4) 아라비아 페트레아(Petrea)에 살았는데 그 이름을 따서 그가 살던 지역을 에바라 불렸다. 사해 동부 해안이었던 그곳은 미디안 땅의 일부이기도 했는데 이곳은 약대가 풍부했다.
ꃨ 젊은 약대 - 아라비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대의 일종으로 그 특징은 그 등에 낱 혹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Webster). 먼저 언급된 '약대'는 등에 혹이 둘인 약대를 가리킨다.
ꃨ 스바 - 성경에서 이곳은 솔로몬에게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왔던 이방 영왕의 나라로 알려진 곳(황상 10:1;대하 9:1), 금과 향이 풍부한 곳으로 언급되어 있다(렘 6:20;겔 27:22). 오늘날의 에디오피아 아비시니아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성 경: [사60:7]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ꃨ 게달 - 주로 아라비아 사막 남부 혹은 아리비아 페트레아 북부에 살았지만 그들은 거주지를 자주 옮겼으며 이러한 유목민에게 양이 풍성했으리라는 것은 얼마든지 상상할 수있다(21:16,17;42:11).
ꃨ 느바욧 - 이스마엘 아들 중의 한(창 25:13;대상 1:29)로, 그 후손이 아리비아 페트레아에 거주했으며 주로 약탈, 구역 그리고 가축 사육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들의 귀한 소유인 가축도 하나님께 바쳐질 것이다.
성 경: [사60:8]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ꃨ 저 구름같이 - 이방인의 회심을 묘사함에 있어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본 이미지는 히브리서에서 읽을 수 있듯이 그 수의 많음에 갖오점이 있다 :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히 12:1). 그러나 동격으로 사용되고있는 '비둘기의 비행'은 수의 많음보다는 속도의 빠름에 그 강조점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Fausset). 이제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 되면 많은 이방인들이 빠른 속도로 예루살렘, 곧 주의 교회로 들어올 것이다.
성 경: [사60:9]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ꃨ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 다시스의 배들, 곧 무역선은 가장 먼 지역에까지 무역을 하는 배로 유명했는데 그 배들이 먼저 이른다는 말은, 먼 곳에 있던 자들(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을 포함하여)조차 조속히 몰려들게 될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66:20).
ꃨ 이름에 드리려 하며 - '이름'이란 어떤 존재의 중요한 속성 혹은 그자체를 상징하는 의미를 지닌다(창 25:19-26 주제 강해, '이름 짓기' 참조). 여기서는 이방까지도 구원 대열에 포함시키신 구원의 하나님의 속성을 강조한다.
성 경: [사60:10]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 이는 포로 귀환시 회심한 이방인들도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에 조력하게 될 것을 뜻함과 아울러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들이 영적 예루살렘, 곧 교회를 섬기는 일에 협력할 것을,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에 동참할 것을 뜻한다.
성 경: [사60:11]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성문이 항상 열려 - 새로운 예물들과 개심자들을 영접하기 위하여 교회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26:2;행 14:27;계3:8). 평화의 왕 메시야의 완전한 통치가 실현되면 대적들의 위협조차 전혀 없으므로 시온의 그 문에는 침입자를 막기 위한 문빗장도 없을 것이다 :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계 21:25, 26).
ꃨ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 원문 직역은 '그 왕들이 이끌려 올 것이라'이다. 여기 동사 '네후김'(*)은 수동태로서 어떤 영향력 따위의 당기는 힘에 의하여 연약한 물체가 끌려가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동사이다. 아마도 이것은 세상의 권세잡은 세력들도 결국에는 메시야의 강한 통치력에 굴복하고 말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성 경: [사60:12]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었으나 본절 원문 서두에는 원인 접속사 '키'(*)가 놓여 있다. 바로 앞절에 서술된 세상 나라의 왕들과 그 백성들이 교회에 굴복하게 되는 까닭은, 그렇지 않은 경우 저주받아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슥 14:17).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할 때 명심해야 할 점들 중의 하나는, 믿지 않으면 저주받아 멸망하고 말 것을 외쳐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불행히도 이 땅에서 복 받고 잘산다는 것이 복음 증거의 주요 골자인 양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을 자랑한다고 선포한 후에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의 상황을 서술함으로써 복음 선포는 믿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무서운 저주와 파멸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에 주요 목적이 있음을 강조한 바있다(롬 1:16,18).
성 경: [사60:13]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레바논의 영광 ... 아름답게 할 것이며 - 여기 열거된 나무들은 레바논 땅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대표적인 수목들이다(Fausset). 그 나무들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알려진 거룩한 곳, 곧 성전을 아름답게 한다는 말은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 나무들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재목으로 쓰인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Whybray). 그러나 메시야의 통치 이후 이방의 귀중한 물건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바쳐져서 성별되게 쓰일 것을 말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성 경: [사60:14]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 철저한 복중의 자세를 취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하며 그 완전한 성취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메시야의 통치 이후 많은 이방의 선택받은 자들이 교회로 몰려들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거부하는, 곧 메시야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들은 교회의 역사 속에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며 주의 재림 때에 이르러서야 그 대적들이 사라질 것이다. 한편 '시온'이 '여호와의 성읍'이라 불리운 것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는 성읍'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 곧 하나님 나라라는 중요한 개념을 유추해볼 수 있다.
성 경: [사60:15]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하여 황폐화됨으로 말미암아 팔레스틴 땅은 사막의 대상 심지어 나그네도 그리로 지나가지 않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성 경: [사60:16]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열방의 젖을 빨며 - 앞에서 거듭 언급된 바 이방 세계의 물적 후원과 조력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J.Wstts).
ꃨ 네 구원자 ... 알리라 - 이것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회심한 이방인 위에 임할 은총은 메시야를 통한 구속 사역에 근거하게 될 것을 나타낸다.
성 경: [사60:17]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내가 금을 ... 돌을 대신하며 - 여기서 이사야가 비유로 들고 있는 물질적 풍요는 솔로몬 시대의 그것을 연상시킨다(왕상 10:21-27). 본 구절의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다음 두 가지가 무난하겠다. (1) 새로이 회복될 시온의 영적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물질적 번영과 아름다움에 비유한 것이다. (2) 다가올 메시야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더 나은 것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교회 역사를 살펴볼 때 구원의 복음이 들어간 지역은 대체로 정치, 경제, 문화, 그 외 모든 분야에 있어서 발전하고 복된 곳이 되었다.
성 경: [사60:18]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성벽 -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사용되었으며(삼상 25:16),
ꃨ 성문(*, 솨아르) - 영광의 왕이 들어가는 문(시 24:7), 혹은 양의 문(요 10:7)이라는 이미지와 연관시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양이 된 성도들뿐이다.
성 경: [사60:19,20]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가장 밝은 발광체인 낮은 태양과 밤의 달이 그 백성에게 비췰 하나님 자신의 영광의 월등함 때문에 오히려 가리워질 것을 묘사하고 있다(30:26;계 21:23;22:5).
성 경: [사60:22]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그 작은 자가 천(千)을 이루겠고 - 본문은 다분히 종말론적 색채를 띠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예수의 겨자씨 비유및 누룩 비유와 연관시켜 보아도 무방하겠다(마 13:31-33). 겨자씨와 누룩은 처음에는 보잘것없이 작게 보이나 나중에는 엄청나게 큰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메시야의 초림 때에는 그가 핍박을 받음으로 교회라는 존재 자체의 존립성조차 위태한 듯이 보였으나,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강력한 생명력으로 말미암아 급속히 확장되어 간다는 것이다.
성 경: [사61:1]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메사야의 사역]
ꃨ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 이는 바벨론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이사야가 공식적으로 위임받는 대목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Gesenius, Rosemnuller).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메시야에 관한 언급으로 해석되어지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는 예수께서 본절을 자신에 관한 예언으로 명시하셨다는 사실이다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으니라"(눅 4:18-21). 예수께서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신 순간에도 그 사역의 공적 인정을 위하여 성령이 임하신 바 있다(마 3:16;요 1:32).
ꃨ 기름을 부으사(*, 마솨흐) - 이 용어에서 '메시야'란 단어가 유래된다. 이스라엘의 왕(삼상 16:13), 제사장(출 30:30), 선지자(왕상 19:16) 등은 그들의 중요 직책을 위해 구별될 때 그 머리 위에 기름 부음을 받았다(삼상 16:1-5 주제 강해, '기름 부음의 영적 의미' 참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구별해 세우신 것을 암시하기 위해 본 표현이 사용되었다. 메시야를 언급하려고 이와 동일한 용어를 사용한 것은 시 45:7;히 1:9 등에도 나온다.
ꃨ 가난한 자(*, 아나윔) - 원래 이 용어는 상처나 억압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자를 뜻하며, 여기서는 1차적으로 낙담 중에 있었던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을 뜻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이 용어는 자신에게는 소망이 없으므로 오직 하나님이 보낼 메시야를 고대하며 사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고 봄이 더 정확하겠다(마 5:3). 이 말은 시편에서 개인적 재난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고대하였던 신실해 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종종 사용되었다(시 9:12,18). 예수께서는 자신의 지혜를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신 자신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한 마음이 교만한 자를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라고 풍자하셨고 반대로 그를 알아본 자들을 '어린 아이들'이라고 부르셨는데 이자들이 바로 가난한 자들이다(눅 10:21).
ꃨ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 1차적으로는 포로 귀환을, 더나아가서는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예언하는 내용이다. 또한 본 표현은 희년의 때에 모든 종된 자에게 선포되는 자유를 동시에 연상케 한다(레 25:10;렘 34:8,9).
ꃨ 갇힌 자에게 놓임 - 원문상으로는 '갇힌 자의 감옥문을 여는 것'이란 뜻이다. 여기서 '여는 것'이란 메시야의 도래와 연관지어 볼 때 죄와 사망의 올무로부터의 해방(롬 6:18;7:24,25;히 2:5) 혹은 영적으로 장님되었던 자가 영의 눈을 뜨는 것을 가리킨다(Ewald). 눅 4:18은 본절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본절에는 없는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이란 구절을 첨가함으로써 후자의 뜻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성 경: [사61:2]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메사야의 사역]
ꃨ 여호와의 은혜의 해(*, 쉐나트 라초 라훼) -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해'이다. 이것은 나팔이 올리고 온 이스라엘 땅에 자유가 선포되었던 희년의 때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레 25:9,10). 희년의 때와 마찬가지로 메시야의 때도 '해방'이란 이미지를 내포한다. 메시야의 도래의 때는 온 세계 인류를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키는 때인 것이다. 메시야의 도래로 시작된 해방의 때는 은혜의 때라고 불리기도 한다('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ꃨ 하나님의 신원의 날 - 문자적인 뜻은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다. 1차적으로 이날은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의 날을 가리킨다. 그런데 바로 이날을 '복수의 날'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바로 앞에 언급된 바 '여호와의 은혜의 해'의 대비적 표현으로 본 표현이 언급된 것은, 이스라엘에게 '은혜의 해'가 되는 때가 그 대적에게는 '복수', 곧 '심판'의 때가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마지막 심판날에 하나님이 대적들을 멸하시는 보응은 곧 성도들에게는 영광을 얻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요 12:47;고전 15:52;고후 4:17;계 21,22장).
성 경: [사61:3]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메사야의 사역]
ꃨ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 원문 직역은 '아름다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이다. '아름다움'에 해당하는 '페에르'(*)는 본래 여자들이 머리에 쓰던 아름답고 화려한 관을 말하며, '희락의 옷', '찬송의 옷'과 함께 즐거운 축제 때를 연상시킨다(G.W. Grogan). 이제 여호와의 구원과 은혜의 때가 이르면 슬픔의 표로 뒤집어 썼던 재를(에 4:1,3;렘 6:26) 털어내고 대신 아름다운 관을 쓰고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ꃨ 희락의 기름 - 당시는 기쁨의 축제 때 특히 초청한 귀빈의 머리 위에 향내나는 값비싼 기름을 붓곤 하였다(시 23:5;45:7;암 6:6). 그외 성경은 축제 혹은 기쁨 그 자체를 뜻할 때 '기름'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57:9). 공적인 재난 혹은 슬픔의 때에는 결코 기름을 사용하지 않았다(삼하 14:2).
ꃨ 찬송의 옷 - 절망에 빠진 자를 삼베옷을 입은 것에 비유하는 대신, 찬송과 감사를 드리고있는 자는 밝은 채색옷을 입은 것에 비유한다.
ꃨ 의의 나무(*, 엘레 하체데크) - '나무'에 해당하는 '엘레'(*)는 팔레스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수리나무를 뜻한다. 이 나무는 굵고 튼튼하여 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한다(이런 맥락에서 탈굼역, 제롬역, 시리아역 등은 이을 '강한 것' 혹은 '힘센 것'으로 번역했음). 본문의 '의의 나무'는 한때 죄악으로 인해 넘어졌으나 은혜로 말미암아 회복되어 굳건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주의 백성을 가리킨다. 그들이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은 정원사가 나무를 심듯이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구원하여 세우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영광을 열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에 의해서만 세움을 받는 사실은 주님이 사용하신 비유에도암시도이가 있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마 15:13).
성 경: [사61:4]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택한 백성이 받을 축복]
ꃨ 대대로 무녀져 있던 것들 -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 유다 본국 팔레스틴 땅과 성읍이 황폐해졌던 사실을 가리키며(렘 20:6;28:6), 나아가서는 본장 전체의 문맥상 메시야의 도래가 있기 전 혹은 메시야를 영접하기 이전의 상태를 나타낸다.
성 경: [사61:5,6]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택한 백성이 받을 축복]
이는 새로이 회복될 이스라엘이 이방 가운데서 제사장 나라로서(추 19:6) 우뚝서게 되며 이방인들로부터 물적 조력을 받을 것을(60:10)가리킨다고 해석되기도 하나,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더 나을 것 같다. 즉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편입된 이방인들 가운데서, 마치 아론의 후손이 이스라엘 중에서 감당했던 것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Delitzsch). 그러나 이방인들 중에서도 제사장과 레위인을 택하리라고 하신 말씀(66:21)이나 특히 이방인과 유대인 간의 벽이 완전히 허물어질 복음 시대(엡 2:14)의 상황을 염두에 둘 때, 이는 문자적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사도 바울의 언급에서 찾을 수 있겠다 :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은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롬 15:27).
성 경: [사61:7]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택한 백성이 받을 축복]
ꃨ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 바벨론에서 당한 고통에 비교해볼 때 메시야 왕국의 도래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누릴 축복은 더욱더 엄청나게 크고 값진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당한 고통과 메시야 사역으로 인한 축복을 단순히 비교한다는 의미보다는 메시야의 구원 사역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누릴 축복이 그 무엇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1차적으로는 포로지의 이스라엘에게 큰 위로를 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ꃨ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 여기 '능욕'에 해당하는 '켈리마'(*)의 문자적인 뜻은 '혼돈', '혼란'이지만 바로 앞 구절과 동의적 평행을 이룸을 고려할 때 '수치', '슬픔' 등으로 번역함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분깃'도 메시야의 구속 사역으로 얻게 될 구원의 축복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한편 원문에 보면 앞 구절과는 달리 본절의 주어는 2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뀌어 있는데, 이것은 본서 저자가 자주 사용하는 화법의 일종이므로 큰 의미없이 동일한 주체를 의도하고 있는 화법으로 보면 되겠다.
성 경: [사61:8]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택한 백성이 받을 축복]
ꃨ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 '대저'는 '키'(*)로서 앞절에 진술된 바벨론 포로 생활로 고통받은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이 배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사실의 이유를 밝히는 접속사이다. 하나님이 그같이 하실 이유는 그가 공의를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방의 손을 빌어 그의 백성을 심판하신 것도 공의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본절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바벨론의 교만과 불의의 강탈에 대한 분노로 나타난다.
ꃨ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며(*, 세네 가젤 베올라) - 본문에 대한 번역은 구구하지만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견해가 이처럼 둘로 나뉘는 것은 '베올라'(*)의 '베'(*)를 그대로 두고 번역하느냐 아니면 '베'를 빼고 대신 접속사 '와우'(*)를 삽입하여 번역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먼저 후자의 경우를 따르면 '나는 강탈(혹은 약탈)과 범죄를 미워한다'가 된다(시리아역, Lowht, Noyes). 그러나 이 번역은 받아들일 수없다. 왜냐하면 본 번역의 경우 필요 이상의 원문 수정을 가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전자의 경우를 따르면 '나는 번죄에 수반되는 강탈(혹은 약탈)을 미워한다'가 된다. 이는 바벨론이 유다 백성을 압제하고 강탈하는 등 필요 이상으로, 월권 행사를 도모한 사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그 영적 우매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이방이라는 수단을 통해 받았다. 그러나 수단으로 사용된 이방 세력은 본연의 임무인 징벌의 집행 외에 과도한 불의를 저질렀다. 바로 이 사실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의해 체크되었던 것이다.
성 경: [사61:9]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택한 백성이 받을 축복]
ꃨ 알리리니 - '구별되게 하리니' 혹은 '명예롭게 하리니'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시 67:2;76:1;79:10등의 용례들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ꃨ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참자녀들이 세상나라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방은 자들임을 완전하게 인정받는 때는 구원 역사의 종말, 곧 재림의 때이다. 그러나 그때가 이르기 전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 인정을 받을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 올려진다(마 5:16).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마 5:13-15).
성 경: [사61:10]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선민(選民)의 즐거움]
ꃨ 의의 겉옷 - '겉옷'은 입은 옷 위에 걸쳐 몸 전체를 가리다시피하는 느순한 망토 따위를 가리킨다(시 132:9;계19:8). 이 망토는 추위 또는 외부로부터의 침해 따위로부터 몸을 보하하는 구실을 한다. 여기서 이 망토가 의미하는 바는 '의'이다. 이 '의'는 이스라엘의 자격, 능력과 관계없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덧입히신 그 무엇으로 메시야의 구원 사역의 결과로 야기된 것이다. 원래 이스라엘은 스스로 영적 파멸로부터 구원하거나 사단의 집요한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이스라엘 역사가 그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아들 메시야를 보내시고 그로 구속 사역을 이루게 하시어서 그 사역을 근거로 그들을 보호하는 영적인 옷을 입히셨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였다. 따라서 영적 이스라엘, 교회는 그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성 경: [사61:11]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선민(選民)의 즐거움]
ꃨ 땅이 싹을 내며 - 본서 저자가 여러 차례 사용한 이미지(45:8;55:10,11)로, 의미하는 바는 적시에 내린 단비로 촉촉해진 땅에서 새싹이 움트듯이, 메시야가 오시면 진리와 의가 돋아 자라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그의 택한 백성을 그곳으로 모으시는 목적은 그의 백성들로부터 찬양을 받기 위함이다. 본절에서의 찬양은 교회가 세상과는 다른 구별적, 거룩한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칭송을 듣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성 경: [사62:1]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나는...잠잠하지 아니하며 - 본절의 화자(話者)를 누구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구구하다. 먼저는 저자인 이사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 경우 본절이 의미하는 바는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그 영광이 의미하는 바는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그 영광이 온 땅에 드러나기까지 이사야는 그의 수고와 중보 기도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것이 된다(Calvin, Gesenius). 한편 하나님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 경우 본절은 구속 사역을 성취하기까지는 그의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각오를 실은 구절이 된다(Delitzsch, Grotius). 이외에도 유대인, 신약교회 성도 등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유력한 견해는 아니다. 이중에서 본장의 전반적 흐름을 고려할 때, 본 화자는 1차적으로 이사야 선지자를, 더 나아가서는 위대한 중보자이신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영적 회복을 맛볼 때까지 그 백성과 하나님을 향한 그의 중보 사역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사야가 특히 하나님을 향해 중보 기도를 드린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침묵 및 그의 백성의 불평이 전제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오랜 포로생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이 시행되지 않자 백성들은 불평을 하고 그 불평을 들은 이사야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대목이 전제되어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경우를 64:12; 시 28:1 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57:11; 65:6등에서는 오랜 침묵을 깨고 응답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ꃨ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 앞의 '공의가 빛같이'의 동의적 평행구이다. '횃불', '빛' 따위는 그 특징이 그 주위를 향해 빛을 발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제 이스라엘에게 비롯된 구원이 마치 아침 태양이 가까운 언덕, 들, 그리고 더 높은 산을 향해 그 빛을 펼쳐 나가듯이 온 세상을 향해 그 영향력을 펼쳐 나갈 것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저자는 나타날 구원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열방에도 미칠 것을 암시하는 셈이다.
성 경: [사62:2]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 - '새 이름'은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용어이다.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한 후 그곳에서 살게 될 자들을 언급할 때 바로 이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계 2:17; 3:12). 여기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이 회복된 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현재 수치와 가난, 압제로 대변되는 삶의 상황 속에 처해 있다. 그러나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하면 번영과 영광으로 삶의 상황이 바뀌게 될 것인데 바로 그와 같은 상황을 새 이름을 얻을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사62:3]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 원문직역은 '여호와의 손안에 있는 영광의 면류관'이다. 본문은 해석하기 힘든 구절로 알려졌는데 그 이유는 면류관이란 머리에 쓰는 것이 상식인데 여기서는 그 면류관이 손안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면류관'을 축제 혹은 결혼식 따위 때에 손에 들고 행진하던 화환, 꽃다발 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본절은 면류관 자체보다 하나님 손안에 있다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는 내용으로 보고 해석되어야 할 것같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음을 가리킨다(신 33:3). 그리고 후 문맥은 하나님이 다시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보호하실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본 구절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될 이스라엘을 강조하는 구절로 봄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영광의 '면류관' 혹은 ' 왕관'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될 수는 없다. 특히 '왕관'은 '체니프'(*)로서 '둥글다', '굴곡을 이루다'는 뜻을 내표하는 말이며 가장자리에 보석 따위가 박힌 둥근 면류관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왕관은 모든 사람 앞에 드러나는 영광의 상징이다. 이 사실을 중시할 대 본절은 이스라엘이 이방 세계 앞에 두드러질 것을 암시한다고 간주될 수 있다. 앞 문맥은 사실 이것을 지지한다.
성 경: [사62:4]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헵시바(* - , 헤프치 바) - 문자적인 뜻은 '나의 기쁨은 그녀 안에 있다'이다. 말하자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겠다는 것이다. 물론 예루살렘이 그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은 자신의 무엇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총을 베푸셨기 때문이다. 한편 히스기야 왕의 아내가 '헵시바'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에(왕하 21:1) 착안하여, 히스기야 왕은 메시야의 모형으로 언급되기도 한다(32:1 참조).
ꃨ 쁄라(*, 베울라) - 문자적인 뜻은 '결혼한 자', '결혼한 부인'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결혼했다가 이혼 당한, 말하자면 버림을 받은 여인에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여기서는 한번 버림을 받았으나 다시 용서함 받은 이스라엘의 신분을 암시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근동에서는 한 왕이 다른 왕으로부터 왕권, 곧 통치권을 받았으면 그는 그 왕국과 혼인 관계에 들어갔다고 흔히 말한다(Robert). 또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그의 교회를 신부로 비유하곤 한다(요 3:29; 계 21;2,9). 저자는 다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을 이스라엘의 운명을 바로 이 결혼 이미지를 통해 묘사하고 있다.
성 경: [사62:5]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같이 - 한번 버림을 받은 여인과 같은 이스라엘과 재결합하는 이미지가 소개되는 문맥에서 본 비유는 좀 낯설다. 일반적으로 청년이 과부나 한번 결혼했던 여인과 결혼하는 경우는 쉽지 않다. 물론 왕실이 또 다른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을 때에는 그 정략적인 목적 때문에 그 같은 경우가 흔히 생기기는 했다. 여기서 하나님이 한번 버림을 받았던 이스라엘과 재결합하는 사실을 청년과 처녀의 재결합 이미지로 묘사하는 저변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완전히 사하셨다는 뜻을 보이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 같다.
ꃨ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본문의 해석은 상당히 난해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견해로 나뉜다. (1)'아들들'을 하나님께 대한 경외를 나타내는 복수형 칭호로 해석하는 견해. (2)' 네 아들들'에 해당하는 '바나이크'(*)를 '건축자'란 뜻의 '보네크'(*)로 읽어, 예루살렘의 건축자이신 하나님을(시 147:2)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Whybray). (3) '취하겠고'의 히브리어 '바알'(*)이 '결혼하다'는 뜻 외에 '다스리다', '관할하다'(26:13)는 뜻도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본문을 '네 자녀들이 네게 거하겠고'로 해석하는 견해(사해 사본, 벌게이트역, 70인역, 탈굼역), 세 번째 견해가 가장 무난하리라 본다.
성 경: [사62:6]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파숫군을 세우고 - '파숫군'이란 대적의 침입을 살피거나 소식을 가지고 오는 전령을 확인하기 위하여 성벽 망대를 지키던 자이다(52:7,8). 그러나 여기서는 그 백성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임무를 맡았던 자들을 가리킨다(겔 3:17;33:7).
ꃨ 잠잠치 않게 하였느리라 - 이것은 시간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이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동방의 파수꾼들이 망대를 순회할 때마다 큰소리를 지르던 관습을 연상케 한다. 여기서는 백성을 가르칠 책임이 있는 자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이 그들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ꃨ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하마즈키림 에트 야훼) -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를 기억하게 만드는 자들'이다. 여기서 '하마즈키림'(*)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 혹은 예배 의식 따위에 적용되는 용어로서(시 45:17; 102:12) '기억하다'로 번역되는 '자카르'(*)에서 온 단어이다. 따라서 본 용어는 여호와를 기억나게 하기 위하여 예배에 봉사하는 자 혹은 여호와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 백성에게 그의 이름, 곧 그의 전사역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 존재 그 자체를 찬양 및 선포하는 자로 해석될 수 있겠다. 여기서는 후자로 해석됨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1절에서 암시되었거니와 본절의 종교 지도자들의 임무란 다름 아닌 메시야를 통한 구원 사역을 계획하고 수행하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선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 경: [사62:7]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 이것은 1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포로로부터 돌아와 이전의 특권을 회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완전한 성취는 주의 재림 때에야 되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본 예언은 영적 예루살렘인 신약 교회에도 적용된다. 신약 시대 성도들 중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들은 교회가 우주적인 존경과 기쁨의 대상이 될 재림의 날을 준비하며, 이스라엘의 국교지도자들이 그랬듯이 끊임없이 인내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눅 18:1,7 참조).
성 경: [사62:8]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여호와께서...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 고대에는 맹세의 방법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는데 하늘을 행해 손을 드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었다(신 32:40). 하나님은 그 맹세를 드릴 상대가 없는 분이므로 하나님의 맹세의 경우 그 자신에게 드려졌다(45:23). 여기서 하나님은 그의 오른손을 들고 맹세하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특히 여기서의 오른손은 그의 백성을 이방의 압제에서 구원하실 권능을 나타낸다. 이제 그의 강력한 오른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후 하나님은 결코 그 백성을 이방에게 다시 넘겨주지 않으실 것이다.
ꃨ 네 곡식을...식물로 주지 아니하겠고 - 여기 곡식은 문자적으로 '옥수수', '곡물'을 뜻한다. 오늘날 옥수수는 동물의 먹이로 많이 사용되지만, 당시 팔레스틴에서의 옥수수란 중요한 식물(植物)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은 단지 옥수수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취하던 모든 양식이 앞으로는 결코 이방의 손에 들어가지 않으리라고 약속하고 계신 셈이다. 그러나 이 약속 후에도 이방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그들의 양식을 탈취한 바 있다. 그렇다면 본 약속은 종말론적 성격을 띤 약속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주의 재림 이후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룩될 때 그 백성은 결코 사단의 위험이나 공격으로 인해 탈취당하지 않을 것이다.
성 경: [사62:9]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수고한 것을 즐기게 된다는 말씀인데, 이 같은 결과는 안전의 상태가 조성되었을 때에만 가능하다. 자신의 수고한 것을 먹는다는 것만큼 안정 속에서 누리는 자유와 번영을 강력히 암시하는 표현도 드물다(Barnes).
ꃨ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규례를 따라 성전에서 먹고 마시곤 하였는데(레 6:16; 신 12:17,18; 14:23). 그때 그들이 보여 준 가장 큰 특징은 기쁨이었다. 그들로 기쁨을 느끼게 한 것은 그 모든 축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자각이었다. 본 구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모든 축복의 결과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식하고 기쁨으로 낙을 누리게 될 것을 암시한다.
성 경: [사62:10]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본절은 본서 저자인 이사야(1절)와 파수꾼들로 호칭된 종교 지도자들(7절)의 중뵈도, 그리고 계속 이어진 하나님의 엄숙한 약속(8,9절)이라는 문맥의 연장선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선지자 이사야와 종교 지도자들이 중보기도한 내용은 1차적으로 다름 아닌 바벨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귀환이었다. 이제 그 귀환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취될 것인데 그 성취를 묘사하고 있는 곳이 바로 본절이다.
ꃨ 기를 들라 - 이것은 한 군대가 행진을 재개할 때를 연상케 한다. 행진 중 어느 곳에 쉬다가 충분한 휴식 후 행진을 재개할 경우 깃발은 높이 쳐들어서 행렬을 재정비하라는 신호를 내곤 한다. 그와 유사하게 오랜 포로 생활로 이곳 저곳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은 정한 지도자를 앞세우고 전열을 정비하듯 한데 모여 본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성 경: [사62:11]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네 구원이 임하느니라 - 여기 '구원'은 1차적으로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귀환을 뜻한다. 그러나 문맥적으로 그리고 보다 먼 조망에서 볼 때는 메시야를 가리킨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력한 역본들은 본 '구원'을 '구세주'로 번역하고 있다(70인역, 벌게이트역).
ꃨ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 여기 '그'란 바로 메시야를 가리키며 '상급이 그에게 있고'란 구원이 그 손안에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것은 메시야께서 구속 사역을 완수하실 것을 암시한다.
성 경: [사62:12]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4절에 이어 다시 한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 반복 강조되고 있다. 그 같은 결과는 메시야의 구속 사역에 근거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기 '여호와의 구속 하신 자'란 '대속적 피에 의해 그 죄를 씻음 받고 죽음에서 해방된 자'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이름만큼 아름다운 이름은 없다.
성 경: [사63:1]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의 심판]
ꃨ 에돔...보스라 - 전자는 근접해 있는 까닭에 유다와 끊임없는 적대감을 가졌던 국가이며 후자는 위치상으로는 모압에 가까우나 이두매, 곧 에돔의 주요 도시 중의 하나였던 곳이다. 이 두 곳은 본서 저자가 세상의 모든 유다의 대적을 의미할 때 언급한 곳이다(34:6).
ꃨ 홍의를 입고...오는 자 - 여기 '홍의를 입고'는 '하무츠 베가딤'(*)이다. 그런데 '하무츠'(*)는 '(맛이) 신', '(색깔이) 얼룩덜룩한' 어떤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하마츠'(*)에서 유래한 용어로서 자줏빛, 주홍색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용어는 원래 자줏빛으로 염색한 혹은 피가 그 옷자락에 튀어 피색으로 물든 용사의 망토를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본절이 묘사하고 있는 어떤 인물은 이 사실과 뒷문맥을 고려하여 볼 때에 승리를 쟁취하고 귀환하는 큰 용사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용사의 정체에 관한 견해는 다양하다. 그러나 그중의 대표적인 두 견해는 메시야 혹은 하나님으로 보는 견해이다. 62장과의 문맥적 연결 면에서 그리고 본절이 그려내는 용사의 모습이 대적들을 정복한 승리자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후자의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이 많다(Calvin, Delitzsch, Gesenius). 그러나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근거에 입각해볼 때, 오히려 전자의 견해가 더 나을 것 같다. (1)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상황은 단지 이스라엘의 역사상 일어날 일이라기보다는 마지막 보응의 날과도 관계된다. 이런 점에서 에돔 등은 이스라엘의 모든 대적은 물론이고 나아가 메시야와 성도들을 대적하는 사단의 모든 세력까지 상징한다. (2) 피묻은 옷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대속을 암시한다(계 19:11-14). (3)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패배의 십자가가 아니라 도리어 죄와 사망과 사단의 세력을 파하신 승리의 십자가였다(골 2:15).
ꃨ 화려한 의복 - 문자적인 뜻은 '그 의복에 있어 영광스러운'이다. 이것은 고위직에 있는 고대 용사들의 영예롭고 눈부신 군복을 가리킨다.
ꃨ 큰 능력으로 걷는 자 - 두말할 나위 없이 이 표현은 그의 대적을 완전히 섬멸한 사실을 드러내듯 승리의 정복자로서 당당한 보무로 입성하는 용사에서 따온 이미지이다.
ꃨ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 지금까지는 제삼자가 화자(話者)였다면 본 구절부터는 메시야 자신이 화자가 되고 있으며, 본 화자는 앞선 화자의 의문에 대답을 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 '의'는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성 경: [사63:2]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의 심판]
본절은 메시야가 그 대적을 진멸하신 사실을 포도즙 짜는 모습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당시 포도즙을 짤 때에는 먼저 큰 통에 포도를 넣고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 밟았다. 한 시간 정도 밟으면 질이 좋지 않은 포도는 맨 위로 떠올랐으며 그후 계속해서 30분 정도를 더 밟으면 향기 좋은 포도즙이 각 송이에서 흘러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더 밟으면 신 포도까지 터져 전체 포도즙의 맛은 좋지 않게 된다고 한다(Burder). 본절은 이같이 포도즙을 짤 때 그 즙이 튀어 옷에 뭍은 어떤 사람을 연상하여 말하고 있다. 성경은 피를 포도즙에 비유해 언급하곤 한다(신 32:14). 어떤 학자는 여기서 저자가 피를 포도즙에 비유하고 있는 까닭은 1절에 언급된 '보스라'라는 지역이 포도 산지로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Calvin). 이 경우 '보스라'가 포도 산지인 줄 알고 있던 유대인들은 더 실감나게 본절의 의미를 파악했을 것이다.
성 경: [사63:3]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의 심판]
ꃨ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 본절은 2절에 묘사된 바 포도즙 틀을 밟다가 그 즙이 옷에 묻은 것과 같은 데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성 경: [사63:4]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의 심판]
ꃨ 원수 갚는 날 - 여기 '원수 갚는다'는 표현은 공의에 입각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에돔 혹은 이두매로 대변되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다. 성경은 에돔 자손이 예루살렘 성전의 기초까지 파괴할 정도로 악했고 이스라엘을 괴롭혔다고 진술하고 있다(시 137:7). 이 같은 대적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방(사단의 세력)이 징벌받는 이 날은 역으로 이스라엘(모든 성도)의 구원의 날이다(34:8;61:2 참조).
성 경: [사63:5]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의 심판]
ꃨ 도와 주는 자도 없고...없으므로 - 아무도 메시야의 구원 사역을 조력하지 않으며 조력할 수도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 말은, 메시야께서 감당하시는 인류 구원의 대업(大業)은 메시야 자신의 대속 사역으로써 충분하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ꃨ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 이 표현은 59:16의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를 연상시킨다.
성 경: [사63:6]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의 심판]
ꃨ 그들을 취케 하고 - 혹자는 본절을 3절 하반절의 반복적 유사 평행구로 보고 본문의 히브리어 '아솨크램'(*)을 '쳐부수다'는 의미의 '아솨브램'(*)으로 수정하고자 한다(탈굼역, Whybray). 그러나 굳이 원문 수정을 하지 않더라도, 본문은 메시야의 진노의 공포 아래 있는 자가 만취한 자처럼 자제력을 잃고 땅 위에 엎드러져 있는 상황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시 75:8 참조).
성 경: [사63:7]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에 대한 찬양]
ꃨ 내가 - 본절에서부터 화자가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는(1-6절) 화자가 주로 메시야이셨다면 이제부터는 대적의 진멸을 통하여 그들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스라엘이며(7-14절) 그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선지자가 직접적 화자로 나서고 있다. 그런데 여기 대적의 진멸이란 1-6절에 서술된 내용이 아니라 과거 이스라엘 역사속에 수차례 반복된 이방으로부터의 이스라엘 구원 역사를 가리킨다. 하나님 찬양으로 시작되는 본절로부터 14절까지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15절부터 64:12까지의 큰 단락은 이스라엘의 억압과 파멸 상황에 따라 하나님의 자비를 탄원하는 이스라엘의 기도를 그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성 경: [사63:8]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에 대한 찬양]
ꃨ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 이것은 언약 관계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가리킨다.
ꃨ 거짓을 행치 아니하는 자녀 - 이것은 이스라엘과 언약 관계를 맺었을 때 하나님이 가지셨던 기대를 표현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언약 관계에 신실할 것을 기대하셨다. 아울러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그러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반역과 거짓의 역사를 되풀이해 왔지만, 하나님께서 그 크신 은총을 따라 택하신 백성을 회개시켜 새로이 회복시키시리라는 암시도 담겨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작정도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암시를 주는 구절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 경: [사63:9]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에 대한 찬양]
ꃨ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베콜 차라탐 로 차르) - 짧지만 번역하기 난해한 구절이다. 그 이유는 '...이 아니다'의 뜻을 지닌 '로'(*) 때문이다. '로'를 생략해버릴 경우,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와 부합하는 번역이 가능하다:'그들의 모든 고통의 때에 하나님도 고통하였다'(In all their affiction he was afflicted, KJV, LB, RSV). 그러나 원문의 단어 자체를 생략하는 이 같은 번역은 수용하기 어렵다. 반면 '로'를 그대로 두고 문자적 번역을 하면 '모든 그들의 고통의 때에 하나님은 고통하지 않으셨다'라는 다소 애매한 내용이 되어버린다. 이 난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뒷문맥을 고려하고 본 구절 자체에 어떤 용어가 생략되어 있다고 가정하는 일이다. 그 같은 경우 다음과 같은 번역이 가능하다:'모든 그들의 빈궁의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향한 그의 선하심에 있어) 빈궁하지 않으셨다'(Houbigant). 여기 '빈궁'은 '고통'으로도 번역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이 같은 번역이 가장 무난하다고 본다.
ꃨ 자기 앞의 사자 - 이 사자는 광야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고 구원하였던 적이 있다(출 32:34;33:2;민 20:16). 따라서 천사로 보는 것이 가능해지는데 구체적으로 가브리엘(눅 1:19), 미가엘(단 10:13-21)로 보는 견해가 있다(Clark, Jarchi). 그런데 이 용어는 오실 메시야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데 실제로 메시야로 보지 않으면 해석되지 않는 부분에서 이 용어가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출 14:19;23:20, 21). 따라서 본 용어는 1차적으로는 천사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메시야를 예표하는 용어로 정리하면 되겠다.
ꃨ 드시며 - 그의 양떼를 모든 목자 혹은 그의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 혹은 새끼를 날개 아래 품는 독수리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출 19:4;신 32:11, 12).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광야의 연단 중에서 보존하시고 결국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이신 것을 가리킨다.
성 경: [사63:10]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에 대한 찬양]
ꃨ 성신(*, 루아흐 카데쇼) - 어떤 학자는 이것을 '선지자들의 말씀'(갈대아역 등) 혹은 '하나님'으로 각각 번역한다(Grotius, Gesenius, Rosenmuller). 그러나 신약에 비추어 볼 때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갱신시키고 거룩하게 만드시는 삼위(三位) 중 성령 하나님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물론 당시 히브리인들이 이 용어를 하나님에게 적용시켰다는 사실과, 오늘날의 성도들과 달리 삼위의 독립된 존재 양식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용어가 '성령'을 지시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시대에 있어서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동일하게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성부, 성자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계셨듯이 성령 하나님도 영원 전부터 계셨다.
성 경: [사63:11]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에 대한 찬양]
ꃨ 백성이 옛적 모세의 말을 추억하여 가로되 - 원문 직역은 '그가 모세와 그의 백성들, 옛날을 기억하셨다'이다. '기억하셨다'는 '이즈코르'(*)로서 3인칭 단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인칭 복수로 바꾸어 번역하려는 시도가 있는데(NIV),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그 시도의 이유는 이어지는 내용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원(의문)처럼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은 백성의 탄원(의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탄원(의문)을 그대로 묘사하는, 말하자면 그들의 의문을 그대로 인용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이즈코르'의 인칭 문제는 해결된다. '이즈코르' 곧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뜻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반역은 징벌을 받아 마땅한, 심지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를 지키지 않으셔도 될 만한 악한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고 계속 그 약속에 신실하셨던 것이다. 이 신실함은 모세와 그의 백성의 시대 곧 광야 시대 때 나타났었다. 이제 그 후대 이스라엘은 바로 그 신실하심의 결과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고통의 현실에 대하여 동일한 신실함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의문을 제기하였는데, 본절에서 14절까지 하나님은 그들의 의문을 직접 인용하시면서 그들의 현실의 고통에 대한 궁극적 결과를 알려주고 계신다.
ꃨ 바다 - 의심의 여지없이 이스라엘이 탈출하여 나왔던 애굽을 가리킨다. 홍해 사건은 12절에 나온다.
ꃨ 성신 -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궁극적 목적은 그들을 다른 민족보다 승한 거룩한 민족이 되게하기 위함이었다(출 19:4-6). 그런데 그 목적에 도달하게끔 역사하는 힘은 그들 가운데 보내신 성신으로 말미암았다.
성 경: [사63:12]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에 대한 찬양]
ꃨ 그 이름을 영영케 하려 하사 -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고 광야에서 인도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만이 참신이신 것을 이스라엘과 온 세계에 알리는 데 있었다. 애굽은 당시 세계에서 모든 과학, 문명의 중심 국가라 할 만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연구되어진 혹은 발생되어진 사건, 결과 등을 쉽게 온 세계로 퍼져 나갔다.
성 경: [사63:13]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에 대한 찬양]
ꃨ 말이 광야에 행함과 같이 - 여기 '광야'는 그 여러 특성 중 그 여정에 장애물이 없는 평평한 곳이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성 경: [사63:14]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에 대한 찬양]
ꃨ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 높은 언덕 위로부터 비옥하고 물이 많은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의 떼를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시 23:2). 이들 가축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성령은 지친 광야의 방황 이후 이스라엘을 약속하셨던 땅에 들여보내사 그들로 하여금 안식하게 하셨다. 본절은 과거의 회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고통 중에 있는 그 후손 이스라엘에게도 하나님은 동일한 은혜를 베푸실 것을 암시한다.
성 경: [사63:15]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도움을 구하는 기도]
ꃨ 주여 하늘에서...보옵소서 - 본절에서부터 현재의 재난과 역경의 문제에 하나님의 은총이 개입되기를 원하는 이스라엘의 탄원이 시작된다. 그들의 탄원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그의 자녀로 택하신 사실과 과거 그의 조상들을 동일한 어려움에서 구원하셨던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ꃨ 간곡한 자비(*, 하몬 메에이카) - '하몬'(*)은 빗소리와 같은 소리(왕상 18:41), 노랫소리(겔 26:13), 무리의 떠드는 소리(삼상 4:14;14:19)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으나, 여기서는 '풍요', '풍부' 정도의 의미로 보면 무난하겠다. 그리고 '메에이카'(*)는 '부드럽다'는 뜻의 사용되지 않는 어근에서 유래한 말로 '복부' 혹은 상징적으로 '동정심'을 뜻한다.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할 때 본 구절의 뜻은 '풍부한 자비' 정도가 되겠다.
성 경: [사63:16]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도움을 구하는 기도]
ꃨ 아브라함은...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 이것은, 뒤에 이어지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그들을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대비적 표현이다. 여기 나오는 '아브라함' 그리고 '이스라엘'(야곱)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자들이다. 한편, 본문은 49:15을 생각나게 한다:"여인이 어찌 그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성 경: [사63:17]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도움을 구하는 기도]
ꃨ 어찌하여...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 인간이 냉소적으로 그리고 완고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할 때 하나님께서는 은혜 베푸는 일을 멈추고 그들로 방황하도록 내버려두신다. 이때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에게로 돌아올 수 없게 되는데, 이 경우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자신들을 완전히 버리신 것으로 판단하고 불평하게 된다. 본 구절은 바로 이스라엘의 그 같은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Keil & Delitzsch). 그러나 16절에서 하나님을 그들의 아버지, 구속자로 고백하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본 구절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소원해진 사실을 고백하는 역설적 표현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64:5).
성 경: [사63:18]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도움을 구하는 기도]
ꃨ 주의 거룩한 백성 -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려졌었다(62:12;신 7:6).
성 경: [사63:19]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도움을 구하는 기도]
본절은 그 의미를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원문과 문맥에 충실하면 의미 규정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핵심은 개역 성경의 '우리는 ...같으며' 부분을 정확히 규정하는 일인데 원문은 이렇다: '하이누 메올람 로 마솰타 밤'(*). 이것의 문자적 의미는 '우리는 당신의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당신은 그들을 다스리지 않았읍니다'이다. 바로 앞절에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가나안을 점령한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그 언급 후 바로 이어지는 '영원 전부터, 곧 옛적부터 우리는 당신의 것'이라는 고백은 대적이 그들의 본토를 점령한 사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가능한 추론은 옛적부터 하나님이 택한 백성,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이니 그것을 근거로 그 대적을 본토로부터 몰아내달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고백은 자신들의 본국 귀환의 근거와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그들을 다스리지 않았다'의 '그들'이란 이스라엘의 대적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본국 귀환의 또 다른 근거로서, 그 대적은 하나님의 율법을 모르는 민족이라는 사실이다. 그 같은 민족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못할 것은 당연하다. 이상의 소고를 정리할 때 본 절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서인 사실과 그의 대적이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민족인 사실을 근거로 자신들의 본토로의 귀환을 호소하는 탄원으로 볼 수 있다.
성 경: [사64:1]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
ꃨ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 하나님은 폭풍, 불 그리고 구름 가운데 땅 위에 내려오시는 분으로 묘사되어지곤 하는데 그 목적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그 백성을 축복하기 위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대적을 진멸하기 위한 것이다(시 18:9;144:5). 토론의 여지없이 여기서는 후자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성 경: [사64:2]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
ꃨ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 여기 사름을 당하고 끓음을 당하는 것은 '산들'(1절)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임하실 때 그 단단한 산은 불을 받고 그 강한 열기의 작용으로 인해 액체처럼 밑으로 흘러 내리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 임재의 영향력을 암시하는 것인데, 특히 화산을 연상케 한다. 저자가 화산 폭발을 보고 그 이미지를 본절에서 인용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리아, 팔레스틴 및 사해 주변에서 당시 화산 분출이 빈번했다는 역사적 고증을 고려할 때(Lyell)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아무튼 저자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문학적 혹은 실제적 이미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임재의 막강한 영향력을 묘사하고 있다.
성 경: [사64:3]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
ꃨ 우리의 생각 밖에 두려운 일 - 이전에 결코 목도하지 못했고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을 가리키는데, 그 일이란 출애굽 사건을 뜻한다.
ꃨ 산들이 주의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 이것은 불과 연기 가운데 하나님이 시내 산에 강림하셨던 것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출 19:18). '진동하였사오니'(*, 나졸루)보다는 '흘러 내렸으니'가 더 원문적 표현이다. 이스라엘은 과거의 이 역사가 자신들의 시대에도 동일하게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다.
성 경: [사64:4]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
ꃨ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 여기 '앙망하는 자'는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개입과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인데, 바울은 이 같은 사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부르고 있다(고전 2:9).
ꃨ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 본 구절을 바울은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자'로 적고 있다(고전 2:9). 이 같은 사실 때문에 어떤 학자는 바울이 원문을 오해했거나 원문이 파손되어 이 부분만 외경의 유사 부분에서 인용했다고 주장하거나(Lowth), 혹은 이를 바로 앞의 '들은자도 없고'와 표현만 다른 반복 구절로 보기도 하나 근거없는 주장이다.
성 경: [사64:5]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백성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
ꃨ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 - '기쁨으로 기꺼이 의를 행하는 자'란 뜻이다(요 7:17;행 10:35).
ꃨ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 - 원래 '기억하는 자'란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경이로운 구원 역사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그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기도, 예배, 찬양을 드리는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 '길'이란 율법을 뜻한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ꃨ 선대하시거늘 -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주권적으로 언약 관계를 설정하셔서 언약 관계를 맺고 있는 백성에게 평화, 안정을 주시고 계속적으로 우애를 나누시는 것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언약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를 뜻한다.
ꃨ 진노하셨사오며 - 이것은 탄원자의 깊은 사색을 반영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이 자비가 있으시고 그 언약 백성을 축복하는 분임을 알면서도, 본절의 '우리'는 하나님이 큰 진노중에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히 그 앞에 나아가시 못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의 죄악과 타락상에 대해 통절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진정한 회개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며 그 마음을 치며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이다(눅 18:13, 14).
ꃨ 이 현상이 이미 오랬사오니(*, 바헴 올람) - 여기 '바헴'(*)은 '그들(혹은 그것들) 안에'로 번역될 수 있는데 그 선행사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난해 구절로 만들어버린다. '그들(혹은 그것들)'에 대한 해석으로는, 먼저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가 있다('선대하시거늘'). 이 해석을 따를 경우, 본문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적 자비'를 뜻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본절 하반절은 하나님의 진노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원한 언약적 자비 때문에 이스라엘이 구원얻을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피력하는 대목이 되어버린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그 선행사를 바로 앞구절에 있는 '범죄'로 보는 해석이다. 이 해석을 따를 경우, 본절 하반절은 그 오랜(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올람'(*)은 '영원히'로 주로 번역되나 '옛날', '오랫동안'으로 번역되기도함)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조차도 할 수 없어 애타하는 심정을 묘사하는 대목이 된다. 이 경우는 개역 성경의 번역과 그 의미가 일치한다. 우리는 후자의 해석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 중요한 전제인 '바헴'을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로 보는 근거가 타당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절 이후 문맥을 고려할 때 후자가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진노하신 이유로 자신들이 오랫동안 범죄한 사실을 들고 있다.
성 경: [사64:6]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백성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
ꃨ 부정한 자(*, 타메) - 레위기적 의미의 오염되거나 더러워진 그 무엇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모세의 율법에 따른 오염되거나 혐오스러운 동물(레 11:29, 30), 인간(레 15:2-12) 등에 특히 문둥병자에게 주로 적용되었는데(레 13:3) 이 같은 자는 성도의 회중에서 추방당하였다.
ꃨ 더러운 옷(*, 이딤) - 문자적인 뜻은 '더러운 걸레'이다. '사용한 생리대'를 뜻하기도 한다(레 15:33;20:18).
성 경: [사64:7]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백성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
ꃨ 스스로 분발하여(*, 미트오레르) - 이는 '깨어나다', '일어나다'는 뜻인 '우르'(*)의 히트파엘형(강의 재귀형)으로서 눌려 있던 영적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애쓰는 모습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이스라엘 전체는 영적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영적 무기력 상태를 깨닫지도 못하였다.
ꃨ 얼굴을 숨기시며 - 하나님의 '얼굴'은 '은혜'를 가리킨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인 은혜를 베푸신 데서 시작된다. 그런데 그 은혜를 중단하자 많은 결과가 발생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이스라엘이 빠졌던 영적 무기력이었다. 물론 하나님이 은혜 베풀기를 중단하신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
ꃨ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테무게누) - 문자적인 뜻은 '녹게 하셨나이다'이다. 얼음 따위가 녹아 내리는 모습 따위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본 용어는 주로 이스라엘의 대적이 하나님이 일으키신 초월적인 현상 앞에서 공포로 떨 때의 심적 상태를 묘사할 경우 사용되고 있는데(출 15:15), 여기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적용되고 있다.
성 경: [사64:8]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백성의 탄원]
본절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토기장이에, 자신들을 진흙에 비유하고 있다(45:9;렘 18:6). 토기장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흙을 주무른다. 진흙이 어떤 모양의 용기가 되는 것은 혹은 다시 진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전적으로 토기장이에 달려 있다. 성경에서 본 토기장이 비유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다. 본절에서 이스라엘은 자손들의 운명, 존재 자체가 하나님 손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고백하는 까닭은 구원을 호소하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그들 스스로에게 달려 있지 않으며 오직 그들의 운명을 쥐고 계신 하나님께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먼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구원을 호소하려는 것이다.
성 경: [사64:9]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백성의 탄원]
ꃨ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 여기 '주의 백성'이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며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성을 읽게 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언약 때문에 범죄에 따른 하나님의 징벌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징벌에서 놓이고 다시 언약 백성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리로 나가는 출발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의 호소이다.
성 경: [사64:10]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백성의 탄원]
ꃨ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 지금 서술된 장면은 그 성취 시점이 미래이다. 말하자면 저자가 기술하고 있는 시점은 서술된 내용이 아직 성취되지 않은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미 성취된 듯 완료 시제로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 내용이 미래에 반드시 성취된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거룩한 성읍들'에 대해 어떤 학자는 동일한 예루살렘의 고지대와 저지대를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본다(Vitringa). 그러나 성경 다른 부분에서 예루살렘을 고지대, 저지대로 나누고 있는 예가 없으므로 이 견해는 받기 어렵다. 아마도 예루살렘을 포함한 온 이스라엘 본토가 쑥밭이 되어버린 상황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복수형을 사용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것 같다.
성 경: [사64:11]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백성의 탄원]
ꃨ 열조가 주를 찬송하던...전 - 여기 '찬송하던...전'이란 하나님께 예배하던 성전을 가리킨다. 지금 이스라엘의 고통을 심화시키는 요소는 전토나 가옥의 파괴 및 손실이 아니라 그의 조상들이 오랫동안 예배 처소로 삼아왔던 성전의 파손이다. 진지한 회개의 일면이 엿보인다.
ꃨ 즐거워하던 곳 - 원문 직역은 '소망의 대상들'이다. 성전을 포함하여 자신들이 살던 가옥들 그리고 온 도성을 가리킨다.
성 경: [사64:12]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백성의 탄원]
ꃨ 일이 이러하거늘 - 여기 '일'이란 '이러한 것들', 곧 지금까지 자세히 열거한 재앙들을 가리킨다(10, 11절). 참회개(5절)와 재앙의 진상을 아뢴 후 하나님의 신속한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
성 경: [사65:1]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거역에 대한 심판 경고]
ꃨ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 바로 앞장 마지막 부분에서 토로된 이스라엘의 탄원에 대한 대답의 첫 성(聲)으로 주어진 것이 바로 본 구절이다.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란 이방인을 가리킨다. 그리고 '물음을 받았다'는 '니드라쉬티'(*)인데 이것은 수동태로서 '찾음을 당하였다'가 문자적인 뜻이다. 이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신학적으로 다소 어폐(語弊)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으시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이 이방인도 부르신 것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보면 된다. 바울은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롬 10:20). 그런데 구원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의 탄원이라는 문맥에서 암시된 이방인 구원에의 비전은 구원 역사에 관한 좀더 넓은 시야를 열어준다.
성 경: [사65:2]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거역에 대한 심판 경고]
ꃨ 내가...불선한 길을 행하는 - 이것은 다음절에서부터 자세하게 열거하게 될 이스라엘의 패역한 행동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배척하셨던 그리고 이방에게 그의 구원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하신 전체적인 이유를 담고 있다.
ꃨ 종일 손을 펴서 - '손을 펼친다'는 것은 초청을 뜻한다(잠 1:24).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의 은총 속에서 이스라엘을 초청하셨다.
성 경: [사65:3]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거역에 대한 심판 경고]
ꃨ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 이것은 이방의 우상 숭배와 연관성이 있는 표현이다. 이방인들은 주로 수풀 속에서 제사 의식을 가졌다. 또한 그들은 벽돌 위에 미신적인 상징을 새기기도 하였는데 돌 대신 벽돌을 재료로 취한 까닭은 벽돌이 돌 보다 그 위에 새기기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출 20:25에 보면 제단을 세울 때 다듬은 돌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것도 어떤 면에서는 벽돌 위에 미신적 주문이나 형상 새기는 것을 금하고자 한 것과 일맥 상통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방의 제사는 그 외형적인 모양도 취하지 않기를 원하셨다.
ꃨ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 여기 '항상'의 원문 직역은 '계속적으로'이다. 이것은 2절의 '종일' 곧 '계속적으로'와 적절한 대비를 이룬다.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초청하셨지만 그들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였다(신 32:21).
성 경: [사65:4]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거역에 대한 심판 경고]
ꃨ 무덤 사이에 앉으며 - 본문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두 가지이다. (1) 영매(靈媒)가 되기 위해 묘지에 왕래했던 사실(8:19)을 가리킨다(Whybray).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생을 떠난 사람의 경우 이생에 관한 모든 일을 알고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하여 죽은 자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자 하는 영매술이 유행했다. (2) 죽은 자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러 무덤으로 간 것을 가리킨다(Vitringa). 이 둘 중 어느 하나를 단정적으로 취하기는 어렵다.
ꃨ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 '은밀한 처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추림'(*)의 원형은 '지키다', '숨기다', '숨다' 등을 뜻하는 '나차르'(*)이다. 따라서 본문은 이방의 신상을 안치해 둔 신전(Jerome)이나 지하 토굴(Delitzsch)을 가리킬 것이다. 그리고 '지내며'(*, 얄리누)는 '하룻밤을 머물다'는 뜻이다.
ꃨ 돼지 고기를 먹으며 - 이방인들은 돼지를 대체로 식용이나 제물로도 사용하였던 반면, 이스라엘은 그러한 사용을 일절 금하였다. 이것을 알았던 신 구약 중간 시대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Antriochus Epiphanes)는 여호와 신앙의 포기 및 배교의 증표로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하였다. 한편, 돼지가 이방의 희생 제사에 사용되기도 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돼지고기를 먹었다는 것은 단순한 식용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즉, 제물로 바쳐진 것을 먹는 것은 그 제물이 바쳐진 대상에 대한 경의를 뜻하는 셈이 되었던 것이다. 본문에서는 바로 이 사실도 넌지시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ꃨ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 여기 '국'(*, 파라크)의 문자적인 뜻은 '조각'이다. 이방 종교 의식에는 신에게 바치는 희생 동물의 살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드리는 의식이 있었는데, 본 구절은 바로 그 같은 의식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앞구절의 '돼지'를 조각내어 드리기도 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여기 '가증한 물건'이란 돼지고기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성 경: [사65:5]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거역에 대한 심판 경고]
ꃨ 너는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말라 - 그 당시 혐오스러운 이방 예식에 종사하던 자들이 영적 오만으로 자신을 구별하였던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주님 시대 당시 위선적인 자기 의로 가득 찼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부류를 연상시킨다(마 9:11;눅 5:30;18:11;유 1:19).
ꃨ 내 코의 연기요...불이로다 - 여기 '코'(*, 아프)는 문자 그대로의 '코'를 의미하지만(민 11:20;욥 40:24) 때때로 '분노'를 뜻하기도 하는데 분노는 강한 호흡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본 구절은 이방 제사자들의 역겨운 행동이 연기가 코를 찌르고 불쾌하게 하듯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거나, 그들의 행동이 분노의 상징인 하나님의 코에 불을 붙였다는 것, 곧 하나님의 진노케 하였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성 경: [사65:6]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거역에 대한 심판 경고]
ꃨ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 이 표현은 왕의 포고령을 그 백성이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서책(書冊)에 혹은 테이블 따위에 기록하여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세워두거나 비치하던 당시의 관습을 연상케 한다. 이방 신 제사 금지와 그 금지를 어길 때에 따를 처벌에 관한 사실은 이미 율법책에 기록되어 있다.
ꃨ 그들의 품에 보응할지라 - 여기 '품'(*, 헤크)이란 '가슴'이라는 뜻 외에 물건 따위를 넉넉히 받기 위하여 길게 늘어뜨린 옷의 앞자락 부분을 가리킨다(출 4:6, 7;잠 6:27). 여기서는 범죄한 이방 제사자들에게 임할 징벌이 크고 심할 것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성 경: [사65:7]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거역에 대한 심판 경고]
ꃨ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니 - 이것은 이스라엘의 죄악이 결국 하나님의 엄중한 징벌이 임하기까지 세대에서 세대를 지나면서 축적되어 왔던 것을 암시한다.
성 경: [사65:8]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ꃨ 포도송이에는 즙이 있으므로 - 이 구절은 여러 원인 때문에 대부분이 상해버린 포도송이들 중에서 그래도 쓸 만한 송이를 가려내는 작업을 연상케 한다.
ꃨ 나도...그같이 행하여 - 포도를 수확하는 사람이 상해버린 포도 송이들 중에서 좋은 포도즙을 낼 수 있는 포도 송이를 가려 뽑듯이 하나님이 불경건한 이스라엘 민족 대부분을 명망시키는 중에 경건한 '남은 자'를 아껴 두실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본서에는 이 사상이 반복되고 있다(1:9;6:13; 10:21;11:11-16).
성 경: [사65:9]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ꃨ 씨 - '거룩한 씨'란 뜻으로, 조상들의 죄로 말미암아 몰수당했던 거룩한 땅을 다시 소유키로 되어 있는 야곱의 후손들을 가리킨다(6:13).
ꃨ 나의 산들 - 예루살렘과 그 인근 지역이 지형학적으로 높은 곳이므로 산이라 불리웠다.
성 경: [사65:10]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ꃨ 사론 - 지중해 연안 갈멜 산 남부 지방인데 빼어난 경관과 비옥한 땅으로 유명한 곳이다(35:2).
ꃨ 아골(*, 아코르) - 문자적인 뜻은 '고통'인데 여리고 가까이에 있는 골짜기의 이름이다. '고통'이란 의미가 붙여진 이유는 과거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전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받았던 곳이기 때문이다(수 7:24). '아골 골짜기'란 호칭은 성경에서 재앙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처소로도 사용된다(호 2:15).
성 경: [사65:11]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ꃨ 갓에게 상을 베풀어 놓으며 - '갓'은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여겨졌던 시리아 신(神)으로 이해되며 포에니시아(Phoenicia), 팔미르(Palmyra) 및 팔레스틴 등지에서 숭배되었다(수 11:17;12:7;15:37 참조, J. Watts, Whybray). 이 신을 섬기기 위해 마련된 상 위에는 온갖 음식, 특히 포도주와 꿀을 섞은 술잔 등이 진설되었다고 한다(Jerome).
ꃨ 므니(*, 메니) - '할당하다', '세다' 등을 뜻하는 '마나'(*)의 변형이 분명한데, 많은 견해가 있지만 운명의 신으로 숭배되었던 것 같다(J. Watts, Whybray).
성 경: [사65:12]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ꃨ 칼에 붙일 것인즉 - 고도의 언어적 유희가 돋보이는 구절이다. 여기 '붙일'에 해당하는 '마니티'(*)는 11절의 '메니'(*)와 그 원형(*, 마나)이 동일하다. 패역한 백성이 그들의 운명을 세듯 좌지 우지할 것으로 믿었던 바로 그 신의 운명을 하나님께서 좌지 우지하신다는 것이 본 언어 유희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헛된 우상 '메니'(*)를 의지한 이스라엘의 불경건한 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
성 경: [사65:13]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본절은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는 자와 배척하는 자가 서로 다른 운명에 처할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본절이 이스라엘 역사 속의 어떤 구체적인 사건을 암시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주릴 것'이란 A.D. 70년 로마 디도 장군의 예루살렘 포위로 백십여 만 명이 기근으로 몰살한 역사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근거는 불명확하다(Houbigant). 뒷문맥에 근거하여(17-25절) 본절을 다분히 종말론적 상황에 대한 묘사로 보는 것이 좋겠다.
성 경: [사65:14]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ꃨ 심령이 상하므로 - '상하므로'의 히브리어 '솨바르'(*)는 '산산이 부숴지다', '찢어지다'는 뜻으로서 극심한 재앙으로 인해 그 마음이 크게 눌릴 때 사용된다. 하나님 나라에서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이 제외될 것을 암시하는 대목인 마 8:12에 유사한 뜻의 표현이 사용되었다:"나라의 본(本)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성 경: [사65:15]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ꃨ 너희의...될 것이니라 - 어떤 이의 이름을 다른 사람에 대한 저주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끔찍한 저주의 사례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실례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저주하기 위해 시드기야와 아합의 이름을 사용한 렘 29:22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Whybray).
성 경: [사65:16]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ꃨ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 환난이 잊어졌다는 것은 환난이 종결되었음을 뜻한다. 말을 바꾸면 하나님의 은총이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우상에게 맹세하고 복을 비는 행위는 사라지고 참신이신 하나님께 맹세하고 복을 구하게 될 텐데 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성 경: [사65:17]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본절은 1차적으로 포로 귀환 이후 새로이 회복될 공동체의 상황을 언급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메시야의 통치시대의, 더 이상 고통과 슬픔 따위가 없는 완전한 세계를 바라보게 하고 있다. 갈렙이 그 발로 밟았던 바로 그 땅을 물려받았듯이(신 1:36), 메시야와 그의 백성들은 전혀 새롭게 변화된 새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34:4;66:22;히 12:26-28;벧후 3:13;계 21:1)
성 경: [사65:18]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ꃨ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 새로이 재건될 예루살렘 혹은 새 창조로 말미암은 천성(天城) 예루살렘에 즐거움이 넘치게 되리라는 예언이다(I will create Jerusalem to be a delight, NIV).
성 경: [사65:19]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ꃨ 우는 소리와...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 1차적으로는 예루살렘, 그리고 2차적으로는 모든 구원받을 자에 대한 예언이다(25:7, 8;35:10;계 7:17;21:4).
성 경: [사65:20]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본절은 인간의 평균 수명이 최소한 100세일 것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역사 종말 이후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새 세계는 수명이란 것이 아예 없이 영원히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점은 본절의 평균 수명 100세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영원히'라는 의미 정도로 해석할 때 해소될 수 있다. 이 해석에 비추어 보건대, 아마도 너무 일찍 죽는 현세대의 상황과 대비시키기 위해 평균 수명의 이미지를 사용한 것 같다.
성 경: [사65:21]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본절 역시 포로 귀환 후의 상황에 대한 약속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가옥 건축과 과실 재배에 관한 본절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이는 새 세계에 가옥이 있고 노동이 있음을 암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 세계를 좀더 실감나게 상상케 하기 위하여 익히 알고 있는 현세상의 이미지를 끌어들이고 있다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성 경: [사65:22]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본절 상반절은 여호와께 불순종하는 자에게 내려졌던 저주와 정반대되는 내용이다:"...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으나 네가 그 과실을 쓰지 못할 것이며"(신 28:30).
ꃨ 나무 - 자연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것 중의 하나로, 이 역시 영원한 삶을 보다 실감나게 하기 위한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61:3;시 92:12).
성 경: [사65:23]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ꃨ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 원문 직역은 '고통을 위하여 낳지 않을 것이며'이다. 이것은 후손의 운명을 암시한다. 당시 산모가 아기를 낳을 경우, 아이는 출산 과정에서 죽기도 하고 분만이 되어도 짧은 생(生)을 살고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성 경: [사65:24]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64:7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와 대조를 이루는 구절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하나님은 그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과 그 백성 간의 친밀한 영적 교제를 암시하는 표현이다.
성 경: [사65:25]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인간의 범죄 이후 여러 현상이 발생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자연의 조화가 깨어지고 서로 죽이고 죽는 저주가 임했다는 점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한다'라고 묘사하고 있다(롬 8:22). 그런데 본절에서 저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그와 같은 부조화가 사라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육식 동물의 식성이 바뀔 것이며 심지어 저주에 관한 최초의 언급이 나오는 창 3장을 연상케 하는 뱀까지도 더 이상 파괴자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의와 평강과 희락의 세계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곧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 조성된 적대감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로 청산될 때에만 가능하다.
성 경: [사66:1]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그릇된 예배에 대한 경고]
ꃨ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무슨 집을 지을꼬 - 신령과 진정은 결여된 채(요 4:23 참조)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제사에만 몰두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초월성을 부각시키는 내용이다(대상 28:2;시 11:4;99:5;132:7;애 2:1). 즉, 하나님은 특정한 건물 안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온 우주에 편재하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구절로서, 여기서는 성전 건축과 연관되는 내용이라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히찌히(Hitzig)는, 포로 귀환 후에도 계속 바벨론에 남아 자기들 나름대로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던 유대인들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으로 해석한다. 그런가 하면 움브라이트(Umbreit)는, 성전이나 희생 제사 예식이 도무지 필요없는 새 예루살렘에서의 상황에 대한 묘사로 해석한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포로 귀환 후 성전 재건에 착수해야 할 유대 공동체에게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예배를 미리 강력하게 경고하는 내용으로 이해함과 아울러, 더 나아가서는 신약 시대와 새 예루살렘에서의 신령한 예배를 겨낭한 내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성 경: [사66:2]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그릇된 예배에 대한 경고]
ꃨ 마음이 가난하고(*, 아니) - 단순히 재산이 없는 자가 아니라 자신에게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죄의 문제를 해결해줄 구주(救主)를 기다리며 사는 자를 가리킨다. 동일한 용어가 산상 수훈의 한 대목에 나타난다(마 5:3). 바로 이 같은 자의 심령의 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요 14:23). 한편,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에 성전이란 없다. 그때에는 주 하나님 그분이 성전 자체이시다(계 21:22).
성 경: [사66:3]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그릇된 예배에 대한 경고]
유대인에게 있어 '개'란 추잡함이나(신 23:18) 경멸스러움을(삼상 17:43) 상징하는 말이기도 했는데, 그 목을 꺾어 죽여서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일은 지극히 혐오스러운 모습을 나타낸다. 또한 돼지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일 역시 이방 제사에서나 행해졌던 혐오스러운 것이었다(65:4). 그런데 본절은 율법이 허용하고 있는 소 및 어린 양의 제사를 이방의 제사인 양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2절을 고려하면 이 난제는 쉽게 풀린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제사의 바른 정신을 깨닫고 그 정신에 입각해 드리는 제사인데, 그 제사란 가난한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이다. 바로 이 같은 내면적 자세를 무시한 채 그냥 동물만 잡아 드리는 제사는 이방의 제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본절의 요지이다.
성 경: [사66:4]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그릇된 예배에 대한 경고]
ꃨ 유혹(*, 타알룰레헴) - '악한 행동을 하다', '악하게 대하다'는 뜻인 '알랄'(*)에서 온 용어로서 '안달', '토라짐', '뻔뻔함' 등을 뜻하나 3절의 '자신들이 멋대로 택한 길'(개역 성경에는 '자기의 길'로 나와 있음)과 대비를 이루는 용어로 볼 때 '망상', '잘못된 생각' 정도로 의역함이 가능하겠다. 많은 학자들이 본 용어를 망상, 잘못된 생각이 야기할 수 있는 '재앙'으로 번역하고 있다(Noyes, Lowth).
성 경: [사66:5]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신실한 자들이 받을 위로]
ꃨ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쫓아내며 - 공공 예배와 연관된 특권을 박탈당하거나 그 공동체로부터 출교당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님도 공생애 동안 이것을 참성도에게 닥치는 중요한 시련 가운데 하나로 가르치신 바 있는데(마 10:22), 구체적으로는 사도들이 유대인들에게 그런 취급을 당했다(요 16:2).
ꃨ 여호와께서는...원하노라 - 남은 자들을 향한 자신들의 포학이 하나님을 위한 열정 때문에 나온 것인 양 퍼붓는 박해자들의 조롱조의 도전이다.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께서도 동일한 조롱을 받으셨다(마 27:42, 43).
성 경: [사66:6]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신실한 자들이 받을 위로]
소리가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들린다는 것은 이스라엘 안보다는 이스라엘 밖에 있는 대적, 곧 이방 대적을 향한 하나님의 보응을 암시한다(슥 12:2, 3;14:3, 19-21). 논조가 본절에서 급히 바뀌었는데 이것은 이방 대적을 향한 하나님의 복수가 급박하게 이루어질 것을 암시한다.
성 경: [사66:7]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신실한 자들이 받을 위로]
전혀 고통없이 그것도 순식간에 자녀를 출산한다는 이 비유적 예언은, 1차적으로는 이적적 섭리에 따른 포로들의 귀환을 가리키며, 더 나아가서는 교회의 태동과 발전을 암시한다. 본절의 예언처럼 성령 감림으로 교회가 시작된 후 이방의 개심자들과 유대의 개종자들의 수는 급속히 불어났다(행 2장). 특히 교회의 태동과 확장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출 경우 여기 '남자, 곧 영적 이스라엘이 단수로 되어 있는 것은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가 한 머리(메시야)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임을 가리키는 것이거나, 영적 이스라엘 복수 공동체를 가리키는 대표 단수를 뜻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성 경: [사66:8]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신실한 자들이 받을 위로]
ꃨ 나라(*, 에레츠) - 문자적인 뜻은 '땅'이지만 평행구가 '민족'으로 되어 있으므로 개역 성경처럼 '나라'로 의역하는 것이 좋다. 땅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오랜 세월 속에서 그 소산을 내기 마련이다(막 4:28). 이 원리는 세상 나라의 발전 속도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는 이 원리를 초월한 하나님의 이적적 개입이 있게 될 것이다.
성 경: [사66:9]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신실한 자들이 받을 위로]
ꃨ 나는 해산케...닫겠느냐 - 8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은 예언이 필연적으로 성취될 수 밖에 없는 근거를 제시한다. 그 근거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역사하심이다.
성 경: [사66:10]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예루살렘의 회복과 영광]
본절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 혹은 이방인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주는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이다. 슬픔으로부터 기쁨으로의 주제의 전환은 본서 하반부(40-66장)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인데 그 완전한 성취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루어질 것이므로 본 기쁨의 노래는 '종말론적 찬양의 노래'라고 불리운다(Whybray).
성 경: [사66:11]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예루살렘의 회복과 영광]
ꃨ 젖을 빠는 것 같이...만족하겠고 - 이사야는 '회복될 예루살렘'을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1) 회복될 예루살렘이 그들의 본향이며(잠 27:8;히 11:14-16), 거기에는 (2) 신령한 젖이 있으며(벧전 2:2), (3) 모든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생명의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시 73:10;계 22:1, 2).
성 경: [사66:12]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예루살렘의 회복과 영광]
ꃨ 주리니(*, 노테) - 문자적인 뜻은(주먹이나 텐트 따위를 펼칠 때와 같은) '뻗치다'(창 12:8) 혹은 (강의 범람 따위로 인하여 없었던 지류가 새로 생겨났을 때를 가리키는) '뻗어나다' 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강의 범람으로 전에 강이 없던 곳에 새 지류가 생기듯이, 전에 맛보지 못했던 신령한 평안과 번영이 넘치리라는 예언이다.
ꃨ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 문자 그대로는 49:22의 경우처럼 이스라엘이 이방의 부요를 받아 나누게 될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사랑하는 모든 자가 하나님이 주는 영육간의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을 가리킨다.
성 경: [사66:13]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예루살렘의 회복과 영광]
예루살렘이 그 자녀를 돌보는 개념으로부터 여호와께서 어머니의 역할을 감당하는 개념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여기서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고 구하시는 모든 은총의 진정한 주체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상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만이 생모가 자녀를 돌보는 이상으로 그 백성을 돌보신다는 주제가 49:13-15 이후 다시 반복되고 있다.
성 경: [사66:14]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예루살렘의 회복과 영광]
ꃨ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 문자적인 뜻은 '너희 뼈들이 풀처럼 번성하리라'이다. 인간의 신체 중에 뼈를 소재로 한 이미지는 성경에 자주 나온다. 몸의 활력이 스러질 때, 많은 고통을 받을 때 뼈가 연약해졌다 혹은 말랐다라는 표현이 사용된다(시 6:2;22:14, 17;38:3;51:8;잠 14:30;17:22;애 1:13). 반면 번영, 건강, 혈기 왕성 등을 나타낼 때는 그 뼈가 살진다거나 혹은 본 구절과 같은 표현이 사용된다(58:11). 하나님의 진노의 불로 인해 바짝 타버린 뼈와 같은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은 이제 다시 생기를 회복할 것이다(잠 3:8;15:30).
성 경: [사66:15]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악인에게 임할 심판]
ꃨ 불에 옹위되어 - '불'은 그의 대적들을 심판하고 징벌하기 위한 주의 강림의 상징으로 흔히 사용되는 이미지이다.
ꃨ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 - 여호와를 전사(戰士)로 비유한 본 이미지는 바벨론 군대의 당도를 묘사할 때 사용된 바 있다(렘 4:13).
성 경: [사66:16]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악인에게 임할 심판]
원본에 뚜렷이 나타난 평행법을 살려 상반절을 재번역하면 이와 같다:'불로 여호와께서 심판을, 그의 검으로 (그가 심판하시리라) 모든 육체를.' 심판의 도구인 불과 검이 강조되었다.
ꃨ 모든 혈육 - 하나님의 진노의 모든 대상자들을 가리킨다. 경건한 자들은 주님에 의해 심판의 장소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숨겨질 것이다(26:20, 21;시 31:20;살전 4:16, 17).
성 경: [사66:17]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악인에게 임할 심판]
ꃨ 가증한 물건(*, 하쉐케츠) - 식용이 금지된 부정한 짐승들을 기록하고 있는 레위기에 나온 용어이다(레 11:10-45).
ꃨ 쥐 - 레 11:29에서 부정한 동물로 분류되었다.
성 경: [사66:18]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만민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여호와]
ꃨ 아노라 - 원문에는 이 단어가 없이 '내가 그들의 일들과 생각들을...'이라고만 되어 있다. 문맥을 고려해서 '왜냐하면 내가 그들의 일들과 생각들을 심판할 것이기 때문이다'로 번역하는 견해가 있는데(Maurer), 앞절에 '...망하리라'가 있다는 점에서 취해 봄직도 한 번역이다. 하반절과 19절은 심판 이후의 후속 조치를 설명하고 있다.
성 경: [사66:19]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만민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여호와]
ꃨ 징조(*, 오트) - 문자적인 뜻은 '깃발', '표시', '표적'이다. 본서에서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7:14), 애굽 땅 중앙에 여호와를 위해 세워질 제단(19:19, 20) 혹은 잣나무와 화석류가 가시나무와 질려를 각각 대신하게 될 것(55:13) 등을 '오트'라는 말로 표현한바 있다. 여기서 이 말이 지칭하는 것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1) 이곳 저곳 멀리 흩어졌던 유대인들의 귀환의 예비 작업으로, 모임 장소를 알리기 위해 높은 장소에 세울 물건. (2)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마 12:38-40, Kidner). (3) 하나님이 파송하실 자에게 길을 알려 주시기 위해 세운 이정표(Westermann). 이중 본문맥에서는 (3)의 견해가 보다 자연스러울 것 같다.
ꃨ 그들 중 도피한 자 - 이에 관한 해석도 가지가지이다. (1) 유대인들 중 남은 자(Grogan). (2) 열방들에 대한 심판에서 살아남은 자(Westermann). 여기서는 이방인들 중 여호와 신앙에 복종하며 열방에게 임할 심판에서 벗어나는 자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ꃨ 다시스 - 오늘날의 유럽 서부 스페인의 어느 지방인데, 여기서는 당시 히브리인들에게 가장 먼 곳에 있는 항구로 알려진 곳이었기 때문에 거명되고 있다.
ꃨ 뿔 - 아프리카 북동부에 위치한 지방으로 애굽과 에디오피아 국경 지방이기도 하다.
ꃨ 룻 - 소아시아의 리디아 지방을 가리킨다.
ꃨ 두발 - 흑해와 아락세스 사이코커서스 남부 지역에 위치한 티발레니안스를 가리킨다.
ꃨ 야완 - 성경에 나오는 야완의 모든 후손들을 포함하는 '이오니아인들'로 불리우는 자들이다.
성 경: [사66:20]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만민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여호와]
ꃨ 그들이...드릴 것이요 - 문자 그대로는 이방인들이 흩어진 이스라엘을 거룩한 땅으로 데려온다는 것인데, 영적으로는 이방 세계로부터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교회로 하나님의 택한 자들의 행렬이 이어질 것을 뜻한다.
ꃨ 교자(轎子) - '마차'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자세하게는 낙타 따위가 이끄는 유개차(有蓋車), 말하자면 바람이나 비를 막기 위하여 마차 위에 덮어 씌운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성 경: [사66:21]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만민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여호와]
ꃨ 그 중에서...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 여기서 '제사장과 레위인'이란 직접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제 메시야의 시대가 오면 이방인들이 직접 하나님을 예배하는 부류에 속하게 될 것이다(벧전 2:9).
성 경: [사66:22]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만민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여호와]
ꃨ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 바로 앞문맥에서 언급된 바, 이방인이 직접 하나님을 섬기는 상황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 사실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3).
성 경: [사66:23]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만민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여호와]
ꃨ 매 안식일에 - '한 안식일에서 또 다른 안식일이 되는 것만큼 자주'란 뜻이다. 이것은 메시야의 시대가 오면 안식일 규례가 영원한 규례로 정착될 것을 의미한다.
성 경: [사66:24]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만민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여호와]
ꃨ 그들이...볼 것이라 - 이스라엘이 홍해에서 진멸당한 애굽 군대의 시체를 목격했듯이(출 14:30)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이 모든 악인들의 멸망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ꃨ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 예루살렘 남부 힌놈의 골짜기를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30:33). 경건한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에 이어지는 불의한 사단의 세력에 대한 심판으로 본서는 끝맺고 있다.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 - 이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본국으로 귀환할 때를 고대했던 남은 자들을 가리킨다. 이를릉 다포로 생활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던 자들이었다. 본문에서 이들은 '의를 좇는' 자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칫하면 형식적 율법 준수에 집착하는 것으로써 선민(選民)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구절들은 바로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아 주려고 하는 암시를 내포하고 있다.
ꃨ 반석 ... 구덩이 - 이 둘은 석수장이가 돌을 떠내서 움푹 패인 자리를 가리킨다. 무엇인가 암시하는 이미지인데, 그 내용은 2절에 설명되어 있는 것 곧 하나님이 그 주권적 의지에 따라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언약 백성이 출현하게 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두 용어가 포함된 문장과 2절 상반절은 공히 '생각하여 보라'로 끝맺고 있기 때문이다.
성 경: [사51:2]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너희 조상 ... 생각하여 보라 - 저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의'(5절 참조) 설명함에 있어서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시작되어 많은 수의 민족으로까지 불어난 이스라엘 민족을 예로 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서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에게 하나님 나라에 관한 약속을 부여하시되 인간의 안목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방법 곧 노인 사라를 통한 자손 출생을 통하여 그 약속을 이루어 나가셨고,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큰 나라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이 위로를 받은 남은 자들은 구원에 관한 절대 주권을 쥐고 계신 하나님을 소망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의로워질 수 있는 근거를 이 소망 위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성 경: [사51:3]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그 광야로 에덴 같고 - 여기 '에덴'은 하나님이 인간의 거주지로 정하셨던 최초의 장소인 에덴 동산을 가리키는데(창 2:8,9), 구약에서 이 호칭은 이상적인 목초지 혹은 농경지의 상징이 되고 있다(창 13:10;겔 31:8,9). 그러나 겔 36:35과 마찬가지로 본 호칭은 미래에 다시 회복될 처소를 상징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본절은 종말론적 관점에서도 이해 가능하다. 1차적으로 본절은 혼자였던 아브라함을 통해 큰 민족을 만드셨던 하나님이 포로지의 남은 자들을 근거로 이스라엘을 재건하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 그리고 그 예언 성취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완료형으로 적고 있다. 그러나 종말론적 성격을 띠고 있는 '에덴'이란 호칭으로 미루어 볼 때, 본절은 메시야를 통한 구속 사역의 완성 그리고 더 나아가 메시야의 재림 때에 있을 완전한 구속 사역의 성취에 따른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에까지 그 시야를 확산시키고 있다 하겠다.
성 경: [사51:4]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내 백성 ... 내 나라 - 각각 '암미'(*), '레움미'(*)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 두 용어를 각각 '민족들'이란 뜻의 '아밈'(*)과 '나라들'을 뜻하는 '레우밈'(*)으로 바꿈으로써 본 구절의 청중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한 만민들인 것으로 보려 하나 '만민'에 관한 언급이 따로 나오므로 원문 수정까지 해가면서 굳이 그렇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ꃨ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 원문에 입각한 직역은 '나의 심판은 만민의 빛이 되리라'이다. 문맥상 본절의 '율법'과 본문의 '심판'은 동의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본절과 5절 내용은 여호와의 날에 되어질 상황을 그린 2:3,4과, 이방에 공의를 베푸실 '종'의 노래에 해당하는 42:1 내용과 연관성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본문의 예언 역시 바벨론 포로 귀환뿐 아니라 메시야 시대에 되어질 일들을 통해 온전히 성취될 것이라 하겠다.
성 경: [사51:5]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 계속해서 복합 성취를 겨냥한 예언이 나오며, 특히 종말론적 색채가 짙은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와 이스라엘의 죄의 해결을 동시에 만족시킬 대속주이신 메이야의 대속 사역을 암시한다. 한편 메시야의 대속 사역은 1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위한 것이지만, 2차적으로는 이방의 택한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ꃨ 팔 -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하며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26)을 가리킨다.
성 경: [사51:6]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하늘이 연기같이 ... 죽으려니와 - 만물의 일시성,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묘사이지만 종말에 되어질 어떤 징조에 대한 암시가 정확히 담겨 있지 않다고 볼 수도 없는 구절이다. 이 같은 묘사가 갑자기 나오는 것은 앞서 언급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예언의 성취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통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이방의 선택받은 자의 구원은 결국 성취되고 말 분명한 사실이다 :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시 102:26;히 1:11,12).
성 경: [사51:7]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의를 아는 자들 ...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 - 1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여호와의 구원을 사모하여 율법대로 살아가고자 힘쓰는 이들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특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뜻한다. 이제 바벨론 포로 사건을 놓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네가 어떻게 구원받겠느냐'라고 조롱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위기 때 여호와의 언약적 신실성을 확신하는 이들은 결코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마 10:28).
성 경: [사51:8]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 좀이 의복을 갉아먹어버리듯이 무기력하게 멸망당하고 말 악인들의 허망함과 유약함을 나타낸다(Fausset). 이처럼 유약한 인간이라면 그가 내뱉는 조롱조의 말은 생명력도 없고 영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거기에 비해 하나님은 그 무엇에 의해서도 해(害)를 받지 않으시는 분이며 따라서 그분에게서 나온 말씀, 구원의 계시는 생명력이 있다.
성 경: [사51:9]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사야의 간구]
ꃨ 깨소서 깨소서 - 하나님의 과거의 전능 사역을 회고하며 아뢰는 이 호소는 '공동체적 애가'(corporate lamentation)의 특성을 보여준다(시 44:1-3, 23;80:2). 하나님의 구원을 재촉하는 듯한 이 호소는 하나님의 무관심에 대해 원망하는 말이 아니라 긴박한 현실 상황으로부터 한시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에서 나온 말이다.
ꃨ 라합 - '애굽'의 시적인 이름이다. 이미 본서 저자가 사용한 바 있다 :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30:7).
ꃨ 용(*, 탄닌) - 문자적인 뜻은 '악어'인데 악어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애굽 정복 뒤에 애굽의 동전에 새겨진 그림을 통해 확인하였듯이 애굽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특히 그 왕 바로를 가리킨다(27:1;시 74:13,14;겔 32:2). 선지자는 여기서 기적적인 출애굽 사건 중 바로의 항복기사를 회상하고 있다.
성 경: [사51:10]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사야의 간구]
ꃨ 바다를 ... 주가 아니시니이까 - 여기서 '바다'는 홍해를 가리킨다(43:6;출 14:21). '당신은 홍해 기적 사건을 일으키신 바로 그 전능자가 아니십니까?'라고 묻고 있지만 이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의 질문이다.
성 경: [사51:11]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사야의 간구]
ꃨ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 1차적으로는 넓게 펼쳐진 광야를 지나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귀환민들에게 찬양과 감격이 가득할 것을 서술한 것이다. 한편 본절이 9,10절의 애가적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다하여 본절의 화자(話者)를 하나님으로 보려는 시도도 있으나, 원문상 9-11절과 12-16절은 서술 시점 및 사용된 인칭에 있어 분명한 구별성을 보이고 있다.
성 경: [사51:12]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나여늘 나여늘(*, 아노키 아노키) - 보기 드물게, '아노키'가 두 번 사용되었는데 참위로자, 구원자는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것은 계속 반복되는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그의 백성에 대한 답답한 심정의 표출이기도 하다.
성 경: [사51:13]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 원문 직역은 '너를 멸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이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은 표적을 정하고 활시위를 뒤로 잡아당긴 상태를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시 7:13;11:2;21:12, Maurer). 사실 이와 같은 상태 속에 있다면 두려워떨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본절은 그와 같은 상태 속에 있더라도, 우주 안에 되어지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사람과 하나님 중에 누구를 더 의지할 것인가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며 날마다 부딪혀야 하는 심각한 질문이다.
성 경: [사51:14]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 여기 '결박된 포로'(*, 초에)의 문자적인 뜻은 '한 쪽으로 치우친 것' 혹은 '기운 것'으로 담은 액체를 쏟기 위해 기울인 그릇 따위를 연상케 한다(헴 48:12). 그렇다면 이것은 포로로서 그 헐리를 구부린 모습으로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회화적 표현이라 보면 적절하다. 이제 그 포로 상태에서 속히 놓인다면 본절의 시점은 포로 시대 말기 쯤이 될 것이다. 이 표현을 오랫동안 고난을 당하지만 결국에는 승리할 신약 교회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Fausset).
성 경: [사51:15]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바다를 저어서 그 물결고 흉용케 하는 자 - 원문 직역은 '그 물결이 뛰는 바다를 나눈 자'이다. '꾸짖어 뛰는 파도를 잠잠케 한 자'로 번역하는 역본도 있다. 이 같은 번역들을 종합할때 본 구절은 파도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흉용한 바다를 명령하셔서 잔잔케 하시고 둘로 나누어 그 사이에 길을 내심으로 이스라엘로 무사히 건너게 하셨던 홍해 도보 사건을 암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성 경: [사51:16]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ꃨ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 이 구절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본문이 세 번째 종의 노래를 번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시할 때(49:2), 이는 본서에서 줄곧 암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종'을 통한 신기원적인 구원 사역을 가리킨다고 추측할 수 있다(49:2;50:4,5;59:21;신 18:18;요 3:34, G.W. Grogan).
성 경: [사51:17]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ꃨ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 - 당시 바벨론의 포로로 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상태를 분노의 잔을 마신 자에 빗대어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로 가득 담긴 잔을 마신 자는 전적으로 파멸당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비유는 그리스도에 대속적 죽음과 관련해서도 사용된바 있다(막 10:38). 한편 9절에서 사용된 '히트오레리'(*) 곧 '깰지어다'가 여기서도 두 번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1차적으로 진정 깨어나야 할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함인 것 같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회복될 것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성 경: [사51:18]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포로 상태의 이스라엘을 회복할 존재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은 바사 왕 고레스의 개입에 의해 실현되었다. 아울러 본문은 영적 이스라엘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신적 존재 곧 메시야를 통해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성 경: [사51:19]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ꃨ 이 두가지 일 - 정확히는 '이 두 가지 일들'이다. 말하자면 두 쌍, 곧 네 가지 일들을 가리키는데, 먼저 한 쌍은 땅의 관점에서 본 것으로 황폐와 멸망이며 또 다른 한 쌍은 사람의 관점에서 본 것으로 기근과 칼, 곧 전쟁이다. 한편, 이를 내적 사건과 외적 사건으로 구분하는 견해(Aben Ezra, Kimchi), 혹은 기근으로 인한 황폐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멸망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Clark).
성 경: [사51:20]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ꃨ 그물에 걸린 영양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 여기 '모퉁이'(*, 로쉬)란 그 문자적인 뜻이 '머리', '꼭대기'인데 거리의 '머리'(꼭대기)란 당시 한 도시의 모든 거리와 도로의 출발점이자 중심지였던 성문을 가리킨다. 당시 성문은 밤이 되면 폐쇄되었는데 문 안으로 들어오고자 했던 자로서 밤이 되어 그 문이 폐쇄되면 그 문 앞에 모여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모습 곧 여럿이 성문 앞에 모여있는 모습을 저자는 그물에 걸린 영양떼에 비유하고 있다. 어쩔 도리없이 그 발이 묶인 나그네와 같이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있다.
성 경: [사51:21]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ꃨ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 - '포도주 없이 취한 자'이다. 포도주 때문이 아니라 외적의 침입으로 비틀거리고 쓰러진 이스라엘의 형편을 지적으로 표현이다(29:9;애 3:15).
성 경: [사51:22]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ꃨ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 문자 그대로는, 다시는 바벨론 포로와 같은 시련과 재난을 허락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귀환 후에도 로마의 침공으로 동일한 시련과 재난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이 약속은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제 경건한 참이스라엘 백성, 곧 남은자들은 세상에서는 시련과 재난을 겪으나 결국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결코 동일한 고통을 겪지 않고 살게 될 것이다.
성 경: [사51:23]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ꃨ 그들의 앞에 ... 하였느니라 - 정복자가 피정복자를 잔혹하게 대하였던 사실에 대한 생생한 묘사이다. 정복자들이 문자 그대로 그 피정복 국가 왕의 목을 밟았던 관습은 성경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수 10:24;66:11,12).
성 경: [사52:1]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네 힘을 입을지어다 - 문자적인 의미를 중시하면 좌절, 낙담에서 벗어나서 여호와의 능력에 의지함으로써 강하고 담대하라는 뜻이다(40:28-31;51:9;삿 6:12-16;시 84:5,7).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의 평행구 정도로 봐도 무방하다(Fausset). 예루살렘은 여기에서처럼 흔히 여성에 비유된다.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는 것은 문맥상 포로 및 고통과 대조를 이루는 돌립 및 기쁨, 번영의 미래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면 되겠다.
ꃨ 이제부터 ... 것임이니라 - 여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란 문맥상 이스라엘을 침입하는 이방 군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 귀환이후에도 두 차례 정도 큰 외적의 침입을 받았다. 따라서 본 예언은 그 완전한 성취 시점을 먼 미래로 잡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Leupold). 먼 훗날 곧 메시야의 완전한 통치를 받게 되는 날, 이스라엘 곧 교회는 부정하고 불의한 세력의 통치없이 완전한 성결을 이루며 살게 될 것이다.
성 경: [사52:2]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보좌에 앉을지어다(*, 쉐비) - 문자적인 뜻은 '앉으라'이다. 문맥적으로 볼 때 이것은 마치 일어섰던 곳, 곧 티끌에 다시 앉으라는 뜻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용어는 영예로운 진리, 왕의 자리 등에 앉기를 권할 때 주로 사용된다. 여기서 우리는 포로 귀환할 이스라엘이 포로 해방이라는 차원을 넘어 무너진 왕조를 다시 회복할 것까지 내다보게 된다. 물론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은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되어질 것이다(9:1-7).
성 경: [사52:3]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값 없이 ... 속량되리라 - 이스라엘이 값을 받지도 못한 채 포로가 되고 죄수가 되었으니 이제 값을 치르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되겠다는 말씀이다. 값을 치렀든 안 치렀든지 간에 일단 포로나 노예의 소유주가 된 자는 일정한 값을 받지 않고는 절대 그들을 놓아주지 않기 마련이다. 이스라엘의 소유주인 바벨론은 이스라엘 포로에 대한 그 같은 태도를 굽히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자유의 몸으로 만드실 것이다. 영적 이스라엘인 신약시대 교회 역시 '죄 아래 팔린 자'이다(롬 7:14). 그러나 이들 역시 값없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55:1). 말하자면 육신을 쓰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행위에 관계없이 죄인이지만 값없이 베푸신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통해 값을 지불하지 않고도 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 경: [사52:4]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본절은 앞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볼 때 포로 이스라엘이 값없이 자유의 몸이 될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이 그 유사한 예들을 증거로 제시하는 내용으로 보면 되겠다. 먼저 과거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애굽 땅에 내려갔었는데 그 후손들은 값을 받지도 못한 채 애굽의 노예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한 바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디글랏 빌레셀, 살만에셀, 산헤립 드응로 대변되는 앗수르의 군대에게 수차례 공격받고 포로로 잡혀간 바 있었는데, 앗수르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알지 못하고 마치 이스라엘의 소유주인 양 행사하다가 파멸당하고 말았다. 이 같은 과거의 예들을 근거로 할 때 이스라엘이 비록 값없이 바벨론에 팔려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성 경: [사52:5]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 문자적인 뜻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로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내놓는 탄식 같지만, 문맥상 하나님의 강력한 개입을 압시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옳다. 과거처럼 이스라엘이 값없이 포로로 잡혀갔으니 이스라엘의 주인되신 하나님이 강력 개입 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ꃨ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 여기서 '떠들며'는 자랑한다는 뜻인데, '슬픔의 비명을 지른다'는 뜻도 있기 때문에 바벨론의 포악한 통치 및 압제자들의 폭정으로 인한 이스라엘 포로들의 '비명소리'를 의미한다 할 수 있겠다(70인역). 두 경우의 어느 것이 옳든 간에 이것은 하나님이 강력히 개입하시는 이유가 된다.
ꃨ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다는 뜻인데,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하나님의 능력이 없다고 비웃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구속하시는 근본적 이유는 그들의 선함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당신의 주권적인 계획과 그의 거룩하신 이름의 영예 때문이다(겔 20:9,14).
성 경: [사52:6]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 1-5절에 드러난 하나님의 이스라엘 구원 계획의 중요한 이유가 밝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앞문맥에서 밝힌 예언을 그대로 성취시킴으로써 당신의 영화로운 권능과 주권을 밝히 드러내고자 하신다.
성 경: [사52:7]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온 성(城)안 백성이 고대하고 원하였던 소식을 소지하고 달려오는 전령을 발견하였을때 그들의 눈에 비친 전령의 발이야말로 아름답게 보였음에 틀림없다. 물론 그 소식이란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회복의 소식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암시라고도 볼 수 있겠다(롬 10:15).
성 경: [사52:8]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이는 여호와께서 이온으로 돌아오실때에 - 파수꾼들이 한 목소리로 기쁨의 노래를 부를 첫 번째 이유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돌아오심이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포로 구환민들과 함께 다시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일순간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묘사는 하나님의 적극적 개입에 대한 표현으로 보면 되겠다.
ꃨ 눈이 마주 봄이로다 - '눈이 눈을 보기 때문이다'란 뜻이다. 민 14:14에서도 등장하는데, 그곳에서는 '대면하여 보다'로 번역하고 있다. 어떤 베일이나 중간 매개자 없이 가까이서, 공개적으로 또 명백히 보게 되는 사실을 드러낼 때 이 표현이 사용된다.
성 경: [사52:9]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구속하셨음이라 - 여기 '구속'은 1차적으로는 하나님이 행하실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구원을 가리킨다. 그러나 2차적으로는 그 구원이 암시하는 바, 메시야를 통한 온 인류의 구원까지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구속의 결과를 서술하고 있는 10절에 의하면 온 세상 백성이 그 구속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 경: [사52:10]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 전투를 위해 자신의 튼튼한 팔을 과시해 보이는 용사로부터 취한 이미지이다(겔 4:7).
ꃨ 모든 땅 끝까지도 ... 구원을 보았도다 -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을 모든 민족들이 여호와를 인정하게 되는 근거가 된다(66:18-20).
성 경: [사52:11]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 우상을 좋아하는 이방의 습성에서 벗어나 자신들을 성결케 보존하라는 것이다. 야곱은 세겜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로 올라가기에 앞서 그 모든 우상, 신상 따위를 처분하라는 바자령을 받은 바 있다(창 35:1-5).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준비 조치는 세상 우상을 제거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성도에게 세상으로부터 나와 그 모든 영향력으로부터 단절될 것을 명령할 때 본 구절을 인용한 바 있고(고후 6:17, 18), 요한도 그리스도인이 '큰 성 바벨론'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그 죄의 동참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을 명령할 때 본절의 일부를 인용하고 있다(계 18:2,4).
ꃨ 여호와의 기구(器具)를 메는 자여 ... 할지어다 -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인이 포로를 잡혀갈 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성전의 모든 기구들을 함께 운반해 갔고 그것을 자신들의 축제 때 사용했던 사실과(단 5:2-5), 고레스의 명령으로 본국 귀환시 그 기구들도 같이 옮겨 갔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스 1:7-11). 성전의 일을 맡아 보는 제사장과 레위 족속(민 1:50:4:15)은, 일반 백성 그 이상으로 자신들을 성결하고 거룩되이 구별해야 했다.
성 경: [사52:12]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 황급히 나와야 했던 출애굽 때와는 대비를 이루는 상황이 제시된다(출 12:33,39;신 16:3).
성 경: [사52:13]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보라(*, 힌네) - 저자는 본서 곳곳에서 주의를 새롭게 환기시킬 목적이 있을 때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무려 70여 회나 된다. 이제 저자가 새롭게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려고 하는 대상은 40장 이후에 계속 나온 '여호와의 종'이다.
ꃨ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 본 하반절은 상반절에서 진술된 것에 의해서 나타나는 결과를 말하고 있다. 그 내용은 본 하반절을 이루고 있는 세 개의 동사의 의미를 통해 잘 드러난다. 첫 번째 동사는 '야룸'(*)인데 이것은 '그가 일어날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다. 두 번째 동사는 '니사'(*)로서 '그가 자신을 일으킬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다. 마자막 동사는 '가바'(*)로서 하나의 상태를 나타내므로 '그가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로 번역된다. 주목할 점은 이 세 동사가 모두 승귀(昇貴)의 최고 정점을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신약 성경을 삽입하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노평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본서 저자와 빌립보서 저자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할 때 모두 하나님의 성령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그분의 승귀라는 위대한 주제를 진술할 수 있었다.
성 경: [사52:14]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이왕에는 ... 놀랐거니와 - 여기 '놀랐다'는 선지자 에스겔이 두로에 대해 말할 때 사용된 '숌무'(*)인데, 에스겔은 섬들의 거민들이 한때 교만하던 두로가 엄청난 하나님의 응징을 받은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질리는 것을 한 폭의 그림을 보듯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본 동사를 사용한 바 있다(겔 27:35). 본절에서도 동일한 개념을 나타내기 위하여 동일한 동사가 동일한 개념을 나타내기 위하여 동일한 동사가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본절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질리듯 놀란 것은 종의 모습이 너무 상하여서 사람의 모습 같지 않을 정도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두로처럼 그 종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성 경: [사52:15]
주제1: [임박한 바벨론 포로 귀환]
주제2: [구원의 선포]
ꃨ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 여기 '후에는'은 시간적 경과를 나타내는 부사가 아니라 14절에 나오는 '상하였으므로'와 본절의 동사가 동시 동작임을 암시하는 부사이다. 말하자면 그가 상해 있는 동안에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부사라는 말이다. 한편, '놀랠 것이며'의 의미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에 해당하는 '예제'(*)를 어떤 학자들은 '기뻐 뛰게 할 것이다', '경배할 것이다' 등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전에 팔레스틴에서 발견된 매우 오래된 본서 사본에 따르면, 본 동사는 '뿌릴 것이다'로 번역되어 있다(sprinkle, KJV, NIV). 이 번역은 맛소라 본문의 직역과 동일하다. 더 나아가 뿌린다는 것은 레 4:6;8:11;14:7등에 나오는 것처럼 결례 집행을 암시한다. 결례를 집행하기 위하여 뿌리던 자는 제사장이었다. 그렇다면 본서의 '종'의 사역 역시 제사장의 사역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부사 '후에는'과 연결시켜 보면 그 '종'은 그토록 무섭게 상해 있는 동안 바로 이 결례를 집행하신다는 뜻이 된다. 많은 무리에게 전적으로 부정한 자로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정결케 되어야 할 필요성이 큰 것으로 여겨진 바로 그 분이 오히려 대제사장으로서 물과 피를 뿌릴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열방을 정결케 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그분은 너무도 고난을 많이 당하신 수난자로서 그 일을 수행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고난들은 속죄적 정결을 위한 것이다.
ꃨ 입을 봉하리니 - 이 표현은 어떤 소식에 압도되어버린 상태를 나타낼 때 처한 것은 수난과 종의 사역이 성공적일 뿐 아니라 그의 사역의 형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본 예언을 복음 자체에다 다음과 같이 적용시키고 있다 :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 본절을 포함한 13,14절은 53장에서 전개될 위대한 주제의 요약이라 볼 수 있다.
성 경: [사53:1]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멸시와 외면을 당하는 메시야]
ꃨ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 '우리'에 대해서는 (1) '선지자 자신'(Calvin, Oehler, Stier), (2) 52:15의 '열방들'(혹은 이방인들, G.W. Grogan), (3) '이스라엘 백성, 특히 선지자를 포함한 이스라엘의 경건한 무리들'(Delitzsch, Leupold) 등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으나 마지막 견해가 가장 나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이들 '우리'는 수난받는 메시야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며, 또 저들의 고백은 거의 회개에 가까운데,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새로운 깨달음을 믿은 유대인들의 심리 상태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성 경: [사53:2]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멸시와 외면을 당하는 메시야]
ꃨ 주 앞에서 - 여기 '주'는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종'의 삶의 과정은 인간들 앞에서는 하찮은 것이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벧전 2:4).
ꃨ 자라나기를(*, 야알) - 문자적인 뜻은 '그가 자라나셨다'로, 과거 시제(완료형)로 되어 있다. 본 동사의 시제를 따른다면 본절이 나타내는 인물은 본서 저자 이사야의 과거 시대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모세, 욥, 예레미야 등을 거론할 수 있지만 본장이 묘사하는 종과는 비교되 될 수 없다. 결국 이 종은 메시야인신 예수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저자가 과거로 시제를 적은 이유는 본서 저자가 미래를 내다볼 때 자신이 예언하는 메시지의 성취를 너무나도 명백히 보고 있었으므로 자신에게는 그 일이 이미 발생한 것처럼 확신있게 적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을 예언적 기술법 중의 하나인 '예언적 과거'라 부른다.
ꃨ 마른 땅 ... 줄기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11:1)를 연상케 하는 구절이며, 특히 '마른 땅'이란 구세주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처해 있던 비천한 상황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성 경: [사53:3]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멸시와 외면을 당하는 메시야]
본절에서 저자는 '종'의 비하(卑下)를 좀더 상세히 묘사한다.
ꃨ 멸시를 받아서 - 여기에는 거절과 배척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가 고난의 걸미미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를 거절하고 배척 했다. 고난의 '종'에 대한 태도 문제에 있어서 중립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그의 구원을 즐거워하고 그를 높이거나 아니면 그를 배척하고 멸시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에 대한 무관심 역시 그에 대한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ꃨ 질고를 아는 - 문자적인 뜻은 '병을 잘 아는'이다. 그러나 이 구절을 그가 육체적으로 허약하여 이런 저런 질병에 계속 걸렸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병'은 '죄'를 묘사하는 비유적 술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육체적 질병을 비유로 해서 유다의 죄악 상태를 드러낸 바 있다(1:5,6). 따라서 성취될 구원은 궁극적으로 죄로부터의 구원인 것이 분명하다.
성 경: [사53:4]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ꃨ 우리의 질고를 지고 - '종'이 짊어진 질고와 수난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대리 개념이다. 의로운 한 분이 질고와 허물과 죄악이 가득한 자들을 대신하셨다는 것이다(롬 5:17-19). 이것은 그 '수난자'가 자기 백성을 죄의 결과뿐 아니라 죄 자체에서부터 구원하셨다는 것을 함의한다. 왜냐하면 죄와 그 결과는 분리될 수 업슨다 것이기 때문이다. '수난자'께서는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신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안고 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다.
성 경: [사53:5]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본절은 '종'이 고난받은 참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허물 때문이다. 여기 '허물'이란 단순한 실정법들에 대한 위반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대한 위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 대변되는 우리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불변적인 법에 대해서 범죄하였다. 그 결과우리는 그의 진노와 그 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었다. 죄들은 영원한 사망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상황에서 인간이 지불할 사망이란 요구가 '종'에게 떨어졌던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볼때 여기 '찔리다', '상하다'등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죽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하는데, 사실 히브리어에서 이 두단어는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시사하는 용어들이다.
ꃨ 평화 - 이것은 단지 외적인 안녕과 조화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 곧 하나님과의 평화를 뜻한다.
성 경: [사53:6]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본절은 신학의 대요이다. 먼저, 우리가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는 것은, 우리가 죄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며 우리가 스스로 구원할 상태에 있지 못하다는 전적 부패 교리의 근거가 된다. 둘째로, 본장에서 지금까지는 나타나지 않던 '여호와'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죄악을 '종'에게 담당시킨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주권 교리의 근거가 된다. 셋째로,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분에게 담당시킴으로써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에 필요한 것을 이루어 놓으셨다는 구원 교리로 볼 수 있다.
성 경: [사53:7]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본절은 고난에 대한 종의 태도를 요약해준다. 먼저 '곤욕을 당하여'는 좀더 풀어보면 '그가 자신을 곤욕당하도록 내맡기셨다'이다. 이것은 종이 고난을 자원하여 받은 것을 가리킨다. 또한 '그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은 고통을 감수하고 참아냈다는 것을 가리킨다. 종은 고난을 자원하였을 뿐 아니라 끝까지 인내하셨는데, 저자는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털 깎는 자 앞의 양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성 경: [사53:8]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ꃨ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 '곤욕'(*, 오체르)은 '강압', '구금자'이 그 문자적인 뜻인데, 따라서 어떤 학자는 이 단어를 '감옥'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신약에 비추어 볼때 '체포'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아무튼 '종'은 법적인 과정을 밟아 사형 언도를 받기에 이르렀다. 혹자는 이 같은 결과가 단순한 오판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종종 무죄한 피고가 부당히 고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있기 떠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그 같은 결과는 사람들이 악했기 때문이다. '종'은 빛으로 이땅에 오셨다. 그러나 죄로 저주 아래 있던 이땅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고 오히려 잔인하게 죽였다.
성 경: [사53:9]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그리스도께서 범죄자로 낙인 찍혀 참혹한 죽음을 당하신 후 부자의 묘실에 장례된 것을 연상케 한다(마 27:32-61).
성 경: [사53:10]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사야의 승리]
ꃨ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 하나님께서 그를 즐겨 고난당하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 구절에 담겨 있다. '속건 제물'과 속죄 제물의 차이를 정확히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다. 속건 제물은 부채를 갚거나 또는 부과된 죄값을 만족시켜서 죄인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목적으로 드려졌다(레 5:15). 이제 우리는 '종'의 비참한 죽음과 처참한 고난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그의 죽음, 즉 그의 생명의 피를 쏟아 부음은 속죄를 위해 계획되고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희생이었다. 한편 '종'의 죽음이 희생 제물이었다는 말은, 그 '종'이 제사장의 일을 수행하셨다는 말이기도 하다. 종은 다른 제사장과는 달리 기꺼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따라서 그것은 모세 율법의 제사들과는 근본적으가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유일 무이(唯一 無二)한 제사로서 다른 제사의 원형이며 실체이다 :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6).
ꃨ 그 씨를 보게 되며 - 여기 '씨'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영적 후손을 가리킨다(시 22:30). 유대 사회에서 많은 자손은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 물론 살아 생전 누리는 축복이었다. 그런데 종은 죽음으로써, 또 죽어서 그 축복을 누리신다.
ꃨ 그 날은 길 것이요 - 장수 역시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 이제 종 메시야는 죽음에서 일어나 승천하시고 다시 재림하신 후 영원히 그의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호 6:2;롬 6:9).
성 경: [사53:11]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사야의 승리]
ꃨ 자기 지식으로 - 이는 '그(종)의 지식으로'(by his knowledge, KJV, RSV, Hengstenberg, Stier) 혹은 '그(종)에 관한 지식으로'(by knowledge of him, Delitzsch) 등 두 가지로 해석된다. 어떤 해석을 취하든 본문 이해에는 별무리가 없으나,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라는 50:4내용 등을 고려하건대, 첫 번째 견해를 더 지지하고자 한다.
ꃨ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 이것은, 종이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는 근거가 된다. 한마디로 그들의 죄악을 짐어지셨다는 말이다. 죄악을 짊어짐으로 종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완전한 의를 베푸신다. 이렇게 주어진 '의'는 '법정적 칭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성 경: [사53:12]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사야의 승리]
본장은 종의 사역에 관한 하나님의 결론적인 선포롤 끝맺고 있는데, 종이 위대한 승리자로서 전리품을 나누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 승리는 바로 종 자신의 전부를 다 바쳐 얻은 결과였으며, 이로 인해 범죄자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셨다 :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엡 4:8).
성 경: [사54:1]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예루살렘 회복의 약속]
ꃨ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 - 본 이미지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견해는 여럿이 있으나 바벨론 포로 시대에 그 숫자가 적었던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특히 이어지는 3절에서는 이방인 성도가 이들에게 포함될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온다는 점에서, 바야흐로 메시야 시대의 영적 이스라엘에 관한 비전이 강력히 제시된다.
ꃨ 홀로 된 ... 많음이니라 - 과부의 지식이 남편 있는 여인의 자식보다 그 숫자가 많겠다는 이 표현은 앞에 언급된 남은 자의 후손은 그 숫자가 일반의 이해를 넘어서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물론 이 사실의 성취는 이방인의 회심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앞장에서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묘사한 저자는 그 사역이 낳을 결과의 첫 번째 것으로 믿는 자의 수가 이스라에의 남은 자를 근거로 늘어날 것을 바라다보고 있다.
성 경: [사54:2]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예루살렘 회복의 약속]
ꃨ 휘장(*, 아할레크) - 일반적으로 이 용어는 침대나 창문 주위에 혹은 관객들로부터 무대를 숨기기 위하여 극장 객석과 무대 사이에 내리우는 천을 가리킬 때 쓰인다. 그러나 여기서는 거주용 천막을 의미한다. 이 천막은 일정 거주자의 거주 영역을 암시하는데, 여기서 그 영역을 확대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방 세계에서 돌아오는 개심자의 행렬을 수용하기 위하여 교회의 영역이 매우 넓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 표현은 새로운 개심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 각각의 구성원의 믿음도 더 강해진다는 것을 동시에 암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 경: [사54:3]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예루살렘 회복의 약속]
ꃨ 좌우로 퍼지며 - 이것은 동서남북 그 어느 방향을 가릴 것없이 폭발적으로 퍼지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퍼지며'(*, 파라츠)의 원문적 의미는 '터지듯 번성하며'이다. 물론 이는 영토의 확장 혹은 단순한 인구의 폭발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수의 증가를 가리킨다.
ꃨ 황폐한 성읍들 - 1차적으로는 남북 왕국의 멸망 이후에 근방 민족들의 불법 이주로 훼손되었던 팔레스틴 땅을 가리킨다. 그러나 2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가리킨다(J. Watts).
성 경: [사54:4]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영원한 평화의 약속]
ꃨ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 '청년 때의 수치'란 애굽 치하의 시대 혹은 앗수르 및 바벨론의 포로 시대와 같은 특정한 시대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으로부터 당시에 이르기까지 신실치 못한 아내와 같았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역사 전체를 가르킨다고 봄이 나을 것 같다. 장차 이스라엘이 마주할 백성의 중다함과 그 영광의 찬란함은 그 수욕의 역사를 잊을 만한 정도라는 것이 본 구절의 의미이다. 물론 이 구절의 완성은 주의 재림 때 이루어질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후 이스라엘은 그 역사 속에서 몇 차례 외적의 침입 및 그로 인한 영광의 함몰을 재차 겪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ꃨ 과부 때의 치욕 -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에 따른 결과, 예컨대 이 민족의 침탈과 유린 등을 가리킨다(렘 3:24,25;31:19;호 2:2-5 참조).
성 경: [사54:5]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영원한 평화의 약속]
ꃨ 이는 ... 남편이시라 - 여기 '남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형 '바알'(*)은 그 문자적인 뜻은 '주인', '제조자', '통치자', '소유자' 등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흔히 '남편'을 뜻하기도 하는데(신 21:13;24:1;말 2:11), 여기서는 바로 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을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그처럼 크고 세심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의 상태는 흔히 간음으로 묘사되며(대하 21:11;겔 6:9;호 4:12), 신약 시대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묘사된다(요 3:29;엡 5:23,24;계 21:9).
ꃨ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제 혈통적 이스라엘뿐 아니라 세상 모든 백성에게도 그들을 통치하는 참하나님으로 인정받으실 것을 예언하는 말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예언은 하나님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전파될 시대를 겨냥한 표현이다 :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롬 3:29). 이 같은 결과가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메시야의 대속 사역 때문이었다(53장).
성 경: [사54:6]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영원한 평화의 약속]
ꃨ 부르시되(*, 케라아크) - 시제는 완료형이다. 앞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볼 때 저자는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회복하실 사실을 그 신실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일단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던 아내가 남편의 용서로 다시 남편에게도 돌아오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일을 이미 완성된 듯이 완료형으로 묘사한 것은 그 성취될 사실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함인데, 이 같은 표현 방법을 '선지자적 과거'라고 부른다(Fausset). 70인역(LXX)의 경우는 난해하게도 '여호와께서 버려지고 위안을 받지 못한 아내로 그들을 부르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녀의 젊은 시절부터, 미워해 왔던 아내로 부르지도 않으셨다'로 본절은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추측컨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인간 사이의 부부 관계로써 묘사하기를 거절하고자 하는 의도때문인 것으로 보여지나 문맥에 합당하지 않다.
성 경: [사54:7]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영원한 평화의 약속]
ꃨ 잠시 - '약간의 분노로'로 번약하는 학자도 있으나(Lowth), 원문은 개역 성경과 동일하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아주 짧은 시간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이 표현이 등장한 것은 이후 임할 번영 및 영광의 기간은 영원할 것이라는 사실과 대조를 이루게 하기 위해서이다. 신약 성경에도 동일한 사상이 나타나 있다 :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ꃨ 큰 긍휼 - 또 다른 차원의 대조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버림받음이 '적은' 것이었다면 긍휼은 '큰(위대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 큰 '긍휼'의 내용은 오랫동안의 배역(背逆)을 다 품고 해결할 수 있는 위대한 메시야의 대속사역이다.
성 경: [사54:9]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영원한 평화의 약속]
본절에서 하나님은 노아게게 주신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다시는 이스라엘을 징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그런데 본 약속에 대한 이해의 기초는 노아에게 약속을 주셨던 당시의 문맥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에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다(창 8:21). 노아에게 주셨던 약속은 분명하게 인간의 죄성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은 나면서부터 죄인인데, 이러한 인생들에 대하여 반복하여 대홍수와 같은 저주를 내린다면 이 땅과 인생들은 잠시도 견디지 못할 것이므로 이 땅과 인생들은 잠시도 견디지 못할 것이므로 인류 전체를 향한 물심판은 없으리라는 약속이었다. 따라서 인간의 죄성이란 관점에서 본절의 약속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셔서 인간의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본절에서 범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징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데, 그것은 53장에서 메시야께서 온 인류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지실 것이기 때문에 그 대속의 은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심판을 면제해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성 경: [사54:10]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영원한 평화의 약속]
ꃨ 인자(*, 헤세드) - 언약 용어로서 기왕에 주신 약속을 끝까지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불변의 상랑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ꃨ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 베리트 쉘로미) - 문자적인 뜻은 '나의 평화의 언약'이다. 동일한 용어가 사용된 유사 구절에 근거할때 본 언약은 다윗의 위를 이은 한 왕이 통치할 영원한 하나님 나라 건설에 관한 약속이다(겔 37:24-26). 이 나라는 혈통적 이스라엘만을 구성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들어올 이방의 택함받은 자까지도 포함된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대한 약속으로 보아야 정확하다. 이 나라의 건설은 인간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하나님 언약의 신실성 때문에 가능하다. 견고성, 불변성을 상징하는 산들은 혹시 움직여질 수 있어도 그 나라를 세우기로 한 하나님의 약속 계획은 결코 변경되지 않는다.
성 경: [사54:11]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새 예루살렘]
ꃨ 곤고하며 ... 안위를 받지 못한 자 - 오랫동안의 포로 생활로 광풍에 시달리는 배처럼 그 마음에 평안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그들에게 저자는 미래의 안정과 영광을 약속함으로 그들을 위로하려고 하고 있다(11-`4절).
ꃨ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 여기 '화려한 채색'이란 색색의 벽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돌과 돌을 붙이는 색색의 접합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여인들이 눈썹 위에 치장용으로 붙이기도 했던 이 접합체는 벽돌 사이사이에 붙여, 벽돌 건물을 멋지게 보이도록 하는데 사용되었다. '더하며'의 정확한 원문 직역은 '기초를 놓다'이다. 이는 그 기초가 튼튼한, 따라서 미래의 번영과 영광이 보장된 교회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때도 사용된다(계 21:18-21 참조).
ꃨ 청옥 - 그 단단하기에 있어서는 다이아몬드 다음이고 아름다움과 광체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푸른 색, 붉은 색, 흰 색, 자주색 등 다양한 색을 지닌, 우리에게 사파이어로 알려져 있는 보석이다.
성 경: [사54:12]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새 예루살렘]
ꃨ 홍보석(*, 카데코드) - '때리다', '가루를 내다' 혹은 '불을 지피다'는 뜻의 '카다드'(*)에서 온 본 용어는 불을 지필 때 나는 섬광, 불꽃과 같이 번쩍이는 보석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ꃨ 성첩(*, 쉼쇼타이크) - '태양'을 뜻하는 '쉐메쉬'(*)에서 온 용어로 의미 규정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성벽위의 반짝이는 피뢰침, 성채 혹은 성(城) 본 건물에 딸린 작은 건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문맥은 그 기초가 든든하고 찬란한 성을 말하고 있으므로, 보석으로 지은 번쩍이는 성 건물의 일부로 보면 적절하겠다.
성 경: [사54:13]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새 예루살렘]
ꃨ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 이것은 미래에 하나님의 참자녀들이 구속주 메시야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것을 시사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 아래 있게 될 것을 예언하면서 이 구절과 유사하게 표현한 바 있다 :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렘 31:34).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이끌림을 받은 자만이 그에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말씀 하시면서 본 구절을 인용하셨다 :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 6:45).
성 경: [사54:14]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새 예루살렘]
ꃨ 의로 설 것이며 - 메시야가 다스리는 나라의 특성 중의 하나가 소개되고 있다(시 72:2;계 19:11). 다른 세상 나라는 음모, 약탈, 정복 등으로 세워지므로 통치의 내용이 불의하지만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지는 메시야의 왕국은 편만한 공평이 통치의 특징이 될 것이다.
성 경: [사54:15]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새 예루살렘]
ꃨ 그들이 모일지라도(*, 고르) - 주어가 대명사로 되어 있으므로 그 정체를 밝히는 것이 쉽지 않으나 문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의 대적이며 엄밀히 말해서 메시야의 대적이다. 세상 나라 군왕들이 연합하여 메시야를 대적할 것을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잘 묘사하고 있다 :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아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시 2:1,2).
ꃨ 너를 인하여 패망하리라(*, 알라이크 이폴) - 문자적인 뜻은 '너에게 복종케 되리라'이다. 이것은 메시야의 대적이 파멸케 될 것을 가리킬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이들이 오히려 교회으 진영으로 두손들고 들어오게 된 것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 교회는 멸망할 듯 보였으나 도리어 세상 나라가 교회로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성 경: [사54:17]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새 예루살렘]
ꃨ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 법정의 이미지가 동원되었다. 교회의 대적들은 교회를 고소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도리어 대적들에게 승리할 것이다. 그 이유는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근거로 그의 택한 백성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대적이 고소할 때 교회를 변호하고 대적을 물리치시기 때문이다.
성 경: [사54:16]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새 예루살렘]
여기 언급된 기계를 만드는 자와 그 기계를 가지고 파괴를 일삼는 자는 외관상 전쟁을 일삼는 자들로 보여진다. 그러나 다음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볼 때, 이들은 교회를 대적하는 조재의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된다. 그들은 하나님 수하에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교회를 대적할 수 있을 뿐이다.
성 경: [사54:8]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주제2: [영원한 평화의 약속]
ꃨ 넘치는 진노(*, 베쉐체프 케체프) - '분노의 범람'이 그 문자적 뜻이다(a surge of anger, NIV). 그러나 하나님의 징벌과 회복의 은총을 대조시키는 문맥을 중시할 때, 이는 '적은 분노'(a little wrath, KJV) 혹은 '잠시 동안의 격노'(lverflowing wrath for a moment, RSV) 등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겠다.
ꃨ 얼굴을 ... 가리웠으나 - 불쾌감의 표현이다(8:17;욥 13:24;34:29;시 30:7). 이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바벨론 포로라는 징벌로 명백히 드러난 하나님의 불쾌감과 노여움을 가리킨다.
ꃨ 영원한 자비 - 앞의 '넘치는 진노'와 대비를 이룬다. 메시야의 은총 아래 있는 교회와 그 개인이 받을 은총은 엄청나다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 1:3).
ꃨ 구속자 여호와 - 계속해서 '구속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회복될 모든 번영, 영광 등은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근거로 하는 것임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성 경: [사55:1]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본절은 원문에 의하면 개역 성경에서는 번역되지 않은 감탄사 '호'(*)로 시작되고 있는데, 본 감탄사는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중대 사안이 뒤에 따를 경우 사용된다.
ꃨ 너희 목마른 자들아 - 원문 직역은 '목마른 모든 자들아'이다. 여기 '모든'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칼'(*)은 빈부 귀천 가릴 것 없는, 특히 이방인까지도 포함한 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또한 '목마른'은 그 무엇을 강하게 소원하는, 특히 영적 구원을 그렇게 사모하는 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시 42:2;63:1;143:6;요 7:37). 아마도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축복을 선포하셨을 때 바로 본 구절을 염두에 두셨을 것이다(마 5:6).
ꃨ 물로 나아오라 - 이미 본서는 메시야 시대 이후 존재하게 될 축복, 곧 영생을 암시함에 있어서 시내, 물줄기, 비와 같은 물을 소재로 한 이미지를 사용한 바 있다(35:6;43:20;44:3). 본서가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감탄사 '호'(*)를 사용한 목적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특권이었던 구원이 이방인에게도, 그것도 값없이 확대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 같은 결과는 53장에 자세히 언급된 메시야의 구속 사역에 근거를 둔다.
ꃨ 포도주와 젖 - 생명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물뿐 아니라 활기와 영양을 공급하는 포도주와 우유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구원의 복음이 주는 축복의 다양함과 풍성함을 시사한다(아 5:1;요 7:37).
성 경: [사55:2]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양식 아닌 ... 수고하느냐 - 문자적으로는, 인간은 행복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실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풍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빵은 생명을 지탱케 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인간은 빵을 얻기 위해 돈을 버는데, 어리석은 인간은 빵 아닌 것을 사기 위해 헛되이 돈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구절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육신을 살지우는 빵이 아니라 영혼을 살지우는 빵이다. 1절에서 언급되었듯이 영혼을 살지우는 빵은 인간의 노력으로 번 돈을 지불하여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그것을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 사람은 결코 그것을 얻을 수 없다. 그 대안을 하반절이 제시한다.
ꃨ 나를 ... 먹을 것이며 - 원문 직역은 '부지런히 나를 들으라 그리고 좋은 것을 먹으라'이다. 동등한 두 개의 명령문으로 보이나, 후자는 전자의 결과를 나타낸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들으면 좋은 것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개역성경의 번역이 이 의미를 잘 드러낸 준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먹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깨닫고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육의 생명이 아닌 영의 생명을 얻게 됨을 의미한다.
ꃨ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 여기 '기름진 것'이란 성경에서 최고의 음식을 암시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창 27:28;시 65:11). 여기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속을 경험한 자가 누리게 되는 부(富)와 풍성한 축복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시 63:5).
성 경: [사55:3]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들으라 ... 영혼이 살리라 -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약속들을 포용하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다. 성경에서 신앙은 흔히 영생을 얻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요 5:40;6:33;20:31;계 2:8-10).
ꃨ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 - 다윗을 그 모형으로 하는 메시야에 관한 약속을 상기시킨다. 그 약속은 취소될 수도, 실패하게 될 수도 없는 약속이었다(삼하 7:15,16;시 89:2-4,28,29,34-36;고후 1:8-20). 여기 '은혜'(*, 헤세드)는 언약적 용어로서 인애, 긍휼, 연민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여기서는 메시야의 대속사역, 그중에서도 메시야의 부활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그의 전도 여행 중 안디옥에서 행한 연설 중에서 이것을 증명하였다 :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행 13:34). 다윗이 하나님께 받았던 약속은 메시야가 고난당하여 죽임을 당하실 것이지만 끝내는 부활하여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은 결코 변경될 수 없는 약속이었다. 다윗은 이미 그의 시편들에서 메시야의 부활 사상을 암시한 바 있다(시 16편등).
성 경: [사55:4]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그 - 다윗 혹은 메시야로 볼 수 있는데, 문맥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약속의 주인공(3절) 되신 메시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속사역을 완성하고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소망을 제시하실 분이시다. 구약 성경 자체도 이 사실을 증거한다(렘 30:9;겔 34:23,24;37:24,25;호 3:5).
ꃨ 증거(*, 에드) - 공적으로 충고하거나 증인들 앞에서 변론하는 자(Rosenmuller) 혹은 증인, 왕, 방백, 망령자, 율법 수여자 등을 뜻하기도 한다(잠 19:5-9). 메시야에게 적용되었으니 하나님의 법, 계획 등을 인간에게 가르치고 전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면 되겠다.
ꃨ 인도자(*, 나기드) - 갈대아역은 '왕'으로 번역한다. 메시야가 가르치고 전하는 분일 뿐 아니라 그 백성과 통치와 피통치의 관계를 맺고 있는 분임을 암시하는 용어이다. 메시야의 직분중 중요한 한 가지는 왕직이다.
ꃨ 명령자(*, 메차웨) - 원문 직역은 '율법 수여자'이다. 메시야는 율법의 창안자이시기도 하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곧 절대적 규범이요 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사55:5]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네가 - 본 2인칭 주어를 메시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지만(Whybray), 그보다는 영적 이스라엘로 파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Delitzsch, G.W. Grogan). 다윗 통치하에서 이스라엘의 영토는 역사상 가장 넓게 확장되었다. 이런 측면에서도 다윗은 왕으로 오실 메시야의 예표가 되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메시야에 의해 통치될 영적 이스라엘의 영역은 다윗 왕국조차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계적 차원에 이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성 경: [사55:6]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 이것은, 지금은 여호와를 만날 수 있을 만한 때임을 암시하는 반면, 때가 오면 그분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수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공고하고 있다. 영적 축복을 얻는 문제에 따르는 조건과 제한성에 대한 권고이다(시 32:6;마 25:1-13;요 7:34;8:21;고후 6:2;히 2:3;3:13,15). 물론 이 권고를 받을 대상은 포로된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인류이다.
ꃨ 부르라 - '하나님의 자비에 너 자신 전체를 던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신약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못박고 있다(롬 10:13). 본절은 일종의 동의어 반복이며, 하반절이 상반절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강한 표현이다(Fausset).
성 경: [사55:7]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악인 ... 불의한 자 - 이 둘은 그 정체를 규명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동의적 평행구로 사용되고 있고 특히 후자의 경우 그 원어적 의미가 '범죄의 사람'이므로 둘 다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는 죄인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롬 3:23). 굳이 의미를 구분해보면 전자는 그 '행실'에 있어서 공개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이고, 후자는 스스로는 범죄자로 생각하지 않으나 그 내면적 실상이 죄악된 자를 가리킨다. 회개의 진행은 소극적인 변화인 '그의 행실을 버림으로' 시작되어 적극적인 회개인 '여호와께로 돌아가', '여호와를 그의 하나님으로 섬기는'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성 경: [사55:8]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본절은 여호와의 생각과 길이 우리 인간의 그것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사실의 의미는 바로 앞절의 '용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개역 성경은 생략하고 있지만 원문에는 '이유'를 뜻하는 접속사 '키'(*)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본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 '너희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풍성히 용서하시는 사실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낼 필요가 없다. 악인의 행실과 불의한 자의 생각은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방식은 용서받을 악인이나 불의한 자의 상태나 정도에 따라 좌우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시 25:11;롬 5:19).
성 경: [사55:9]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본절은 앞절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 분명하다. 하늘과 땅 사이의 간격 만큼이나 하나님과 인간의 계획의 차이가 크다고 덧붙이는 본문은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서 뒷받침된다 :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시 103:11),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시 57:10),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시 89:2). 이상의 구절들이 취하고 있는 사상은 동일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인간의 눈에 용서받을 수 없어 보이는 자가 용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성 경: [사55:10]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저자는 6-9절에 언급한 내용에 확실성을 더하기 위하여 한 비유를 들고 있다. 그 비유의 내용은 척박한 토지에 비와 눈이 내려 옥토로 만들면 그 옥토는 열매를 내고 추수꾼은 파종하여 양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본절을 영적으로 고갈되어버린 인간의 마음으로, 비와 눈을 메시야 통치 시대 아래 부어질 성령으로 그리고 열매를 의로 각각 보고 있다. 말하자면 본절은 영적으로 고갈 상태에 있는 인간의 마음이 이제 메시야 시대가 되면 성령을 받아 회개하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비유의 경우, 그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소재거리 하나하나의 의미보다는 그 내용 전체가 담고 있는 주제가 무엇이냐가 더 중요하다. 이 비유가 드러내는 주제는, 하나님은 한번 발설한 말씀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성취를 보신다는 것이다. 그것을, 한번 내려진 비나 눈은 반드시 그 열매를 낳는다는 알기 쉬운 자연의 이치를 통해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주제는 다음절에 잘 정리되어 있다.
성 경: [사55:11]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내 입에서 나가는 말 - 구체적으로 이 말씀은 앞문맥(7절)에 언급된 '용서'이다. 사막에 내린 비와 눈은 금방 흔적도 찾아보기 힘드나 결국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듯이, 하나님이 한번 약속하신 '용서'는 결국 성취되고 말 것이다. 이제 그 '용서' 사역은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유대인과 더 나아가 유대인과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돌아올 이방인의 행렬을 통해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성 경: [사55:12]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나아가며 ...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 이것은 1차적으로 세계 각처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의 인도를 받아 본토로 귀환할 것을 가리키고,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을 포함한 택함받은 모든 백성들이 참지도자되신 메시야의 인도를 받아 영적 본토인 교회로 이끌림을 받을 것을 암시한다 : "야곱아 내가 정녕히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떼 같게 하며 초장의 양떼 같게 하리니 그들의 인수(人數)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며 길을 여는 자가 그들의 앞서 올라가고 그들은 달려서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좇아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미 2:12,13).
ꃨ 산들과 ... 손바닥을 칠 것이며 - 하나님의 백성의 기쁨에 대해 자녀의 동일한 기쁨의 환영을 표시하고 있다. 자연이 이 같은 반응을 나타내는 까닭은 인간의 죄가 제거될 때 갱신된 인간 세계와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자연계도 '허무'에서 구원받고 새롭게 갱신될 것이기 때문이다(시 98:8;롬 8:19-22).
성 경: [사55:13]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ꃨ 잣나무 - 경건한 백성들을 가리킨다(60:13).
ꃨ 가시나무 - 사악한 자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삼하 23:6;미 7:4).
ꃨ 화석류 - 팔레스틴 지역, 특히 갈릴리 호수 부근과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근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록수로서, 희거나 붉은 꽃은 향기가 짙다. 느헤미야는 초막절 축제를 위해 필요한 초막을 짓는 데 이 나무를 사용했다(느 8:15).
ꃨ 질려 - 황량한 비경작 지대의 상징으로 쓰였다(5:6).
ꃨ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 '이것'이란 자연계의 갱신뿐 아니라 본장에서 다루고 있는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복음에로의 초대, 용서 등을 가리킨다. 바로 그 같은 결과들은 여호와의 선하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기념비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성 경: [사56:1]
ꃨ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 - 본절은 언약적 차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언약에 근거하여 '구원'과 '의'를 베푸실 것인데, 이제 언약 당사자인 이스라엘 역시 '공평'과 '의'를 지키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Delitzsch).여호와측에서 약속하신 바(곧 메시야 시대의 도래)의 성취 시점이 가까울수록, 이스라엘 또한 더욱 신실한 자태로 단장할 필요가 없었다. 한편, 세례 요한도 메시야의 도래를 선포함에 있어서 인간편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르소 유사한 요구를 한 바 있다.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 본절의 '공평'이나 '의'혹은 세례 요한의 '회개' 등은 메시야의 도래를 맞을 때 요구되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자태라는 점에서 그 공통점이 있다 하겠다 :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말 4:5,6).
성 경: [사56:2]
ꃨ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 본절 전체는 지혜 문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축복 형식(benediction formula)을 보여주며(30:18;32:20;시 1:1;119:1;잠 8:32,34 참조), 안식일을 잘 준행하는 자가 복있는 사람임을 나타낸다. 본절만의 내용을 보면 안식일에 지켜야 할 금지 사항만 언급되고 있으나 문맥상 온전한 예배와 영적, 육체적 회복과 갱신이라고 하는 적극적 측면도 함께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G.W. Grogan). 웨스터만(Westermann)에 의하면, 포로기 동안 안식일 준수는 여호와꼐 예배드리는 신앙 공동체의 건실한 일원임을 알리는 결정적인 표시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안식일 못지않게 중요한 전제를 비롯한 여러 희생 제사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제의적(祭儀的) 율법이 폐지되는 메시야 시대에 대한 간접적 암시라고 볼 수 있겠다.
성 경: [사56:3]
ꃨ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 - 여기 '연합한'의 히브리어 '라와'(*)는 레위 지파를 가리키는 '레위이'(*)의 어근으로서, 레위지가의 성전 직무를 암시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레위 지파는 거룩한 성전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특별히 구별되었다(신 10:8). 그렇다면 본절은 그 직무가 이방인에 의해서도 수행될 것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 본 구절은 참신앙을 갖고 하나님의 예배자가 될 이방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ꃨ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 원래 '고자'의 히브리어 '사리스'(*)는 그 당시 궁궐에서 주요 직무를 맡고 있던 고급 관리 곧 '내시'를 뜻하지만(에 1:10, 12, 15;단 1:3;행 8:27), 여기서는 생식기능이 마비된 남자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이들은 당시 모세 율법에 의하여 총회의 명부에 기록되지 못했고 총회의 모임에 참석하지도 못하였다(신 23:2). 본 구절은 이제 율법 시대가 지나감으로 그들도 총회에 들 수 있음을 뜻한다. 또한 본 구절은 단지 생식 기능이 마비된 자뿐아니라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총회의 행사, 특히 예배에 참속하지 못했던 자들도 겨냥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강조점은 고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제약하던 율법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성 경: [사56:4,5]
새롭게 등장할 메시야 왕국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자의 자격은 외형적이거나 육체적인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신실히 좇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음을 밝히는 구절이다(G.W. Grogan, J. Watts).
ꃨ 내 집 - 교회의 상징으로서의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킨다(딤전 3:15). 모세 율법상으로 이방인은 성전 바깥 뜰에 밖에 들어 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도 성전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방인도 마음껏 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됨으로써 거룩한 자의 반열에 들수 있게 된 것을 가리킨다(히 10:19, 20).
ꃨ 내 성 안 - 원문 직역은 '나의 성 벽들 안'이다. 고자들도 예루살렘 성벽들 안에로의 출입이 허용될 것이라는 뜻인데, 성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말은 그들도 하나님이 통치를 받게 됨을 뜻한다. 기념물(*, 야드) - '기념비'(삼상 15"12;삼하 18:18), '손' 혹은 '장소' 등을 뜻하는 용어로서, 여기서는 '장소'로 보아도 무방하겠다(KJV). 왜냐하면 본 용어와 연관성이 있는 절 말미의 '끊치지'란 어떤 장소, 공동체와 연관이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성 경: [사56:6]
7절에 열거된 특권을 누리기 위해 이방인들이 행햐야 할 일들이자세히 열거되고 있다.
ꃨ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 3절에서 이미 진술한 바와 마찬가지로 '연합'이란 이스라엘 레위 지파의 제사 직무와 연관된 용어이다. 물론 본 구절에서 말하는 제사란 구약 시대의 제사와는 다른 새로운 예배를 가리키며 이 새로운 예배는 오실 메시야 예수께 대한 바른 이해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요 4:21-23).
ꃨ 이름을 사랑하며 - 여기 '이름'은 인류를 사랑하시어 그의 아들 예수를 보내실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 예수와 연관성이 있는 하나님을 모르고는 참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ꃨ 종이 되며 - 여기서 '종'이란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핵심으로 하는 복음을 이방에게 전하는 자를 뜻한다. 먼저는 그리스도 자신이 종이 되실 것이고 계속해서 그의 교회가 종의 직무를 전수하게 될 것이다.
ꃨ 안식일 - 구약의 한 절기에 불과한 안식일이 아닌 메시야 도래이후 그 의미가 새롭게 재정립될 모든 종교적 규례들을 함축적으로 가리킨다.
성 경: [사56:7]
ꃨ 나의 성산 - 문자적으로는 예루살렘을, 영적으로는 메시야 시대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교회를 가리킨다(2:2;렘 3:17).
ꃨ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 이 표현은 문자 그대로의 희생 제사가 이방인에 의해서도 수행될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지금 문맥은 메시야 시대엥 있을 일들을 다루고 있는데 메시야가 자신의 몸을 영단번의 제사로 드림으로 구약의 희생 제사는 폐지될 것이기 때문이다(히 10:11, 12). 핵심은 이스라엘의 특권과 우월성이 사라지게 된다는 점에 있다. 번제와 희생은 이스라엘만의 특권이었고, 그들의 우월성의 근거가 되었다.
ꃨ 이는 ... 될 것임이라 - 본절 상반절에 기록된 이방인의 특권 수혜의 근거를 적고 있다. 한마디로 그 근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국한 하였던 특권을 '만민', 곧 땅 위의 모든 백성에게로 확대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결과를 낳은 것은 온 인류를 상대로 하는 메시야의 대속 사역이다. 이방인까지 성저능마 향하여 기도하게 해달라는 간구가 성전 봉헌 당시 솔로몬에 의해 언급된 바 있다(왕상 8:41-43). 그러나 이를 복음의 우주적 성격과 관련지어 명확히 표현한 것은 이시야에 와서이다(Delitzsch). 주님께서도 본 구절을 인용하신 바 있다(마 21:13).
성 경: [사56:8]
ꃨ 이미 모은 본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 포로지로부터 모아들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른 이방들의 많은 자들을 더 하시겠다는 이 약속은 본장 본절까지와 앞의 몇장들 내용의 결론이 되고 있다.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새로운 주제가 소개되므로 여기서 지금까지 다룬 몇 개의 장들을 정리 요약할 필요가 있다. 요약의 내용은 본 구절을 통해 잘 드러나듯이 메시야 시대 때 이방 세계는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타민족 사이에 놓여왔던 두터운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따라서 어느 민족도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 놀라운 경륜 아래서 이제 모든 성도는 한때는 낯선 자요 외국이었으나 이제는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는 확신 가운데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엡 2:19). 그 기원에 있어서 온 세계는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온 땅에 거하게 하셨기 때문이다(행 17:26).
성 경: [사56:9]
ꃨ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을 징벌하기 위하여 하나님에 듸하여 소집될 이방 군대를 가리키는데, 본서가 기록된 시점이 아직 갈대아의 침입을 받기 전이므로 갈대아 군대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겠다(렘 12:7-9;겔 34:5). 바로 앞장에서 메시야 도래의 확신과 그 택함 받은 자의 수가 이방인의 히심으로 더 늘어날 것을 말함으로 그 백성을 위로하였던 저자는, 돌연 그 주제를 바꾸어 이방 군대의 침입을 예언하고 있다. 시간상 순서로 보면 침입에 관한 기사가 먼저이고, 메시야의 도래 및 남은 자 수의 확대는 나중이다. 한 주제를 말하다가 갑자기 상반된 주제로 바꾸는 것은 본서 저자의 기술(記述)상의 특징이다.
성 경: [사56:10]
ꃨ 파숫군들(*, 초파) - 문자적인 뜻은 '보는 자'이다. 본 용어는 개역 성경의 문자적인 뜻 그대로 성 위 망루에서 망을 보는 자 혹은 영적인 눈을 가지고먼 미래를 예견하는 선지자 둘 중의 하나에 적용된다(21:6-12;52:8;62:6;렘 6:17;겔 3:17). 여기서는 후자와 아울러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을 함께 일컫는 말로 이해된다(G.W. Grogan).
ꃨ 벙어리 개 - 짖음으로써 사나운 짐승의 접근을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목자의 사냥개에서 따온 비유이다.
ꃨ 꿈꾸는 자 ... 누운 자 ...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 - 세 가지 모두 유사 용어이다. 그 의미가 비교적 분명한 '꿈꾸는 자'의 히브리어 '호짐'(*)은 그 문자적 뜻이 '꿈 속에서 말하는 자', '비전을 보는 자' 등인데, 이것은 게을러서 비활동적인 사람뿐 아니라 그릇된 이상, 환상을 보는 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성 경: [사56:11]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부패한 지도자들에 대한 책망]
ꃨ 이 개들은 ... 자요 - 원문 직역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욕심 많은 개들이요'이다. 이는 당시 지도급 인사들의 물질적인, 육욕적인 탐욕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갤 34:2,3;미 3:11). 이와 같은 자들을 신약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등으로 부르고 있다(빌 3:18, 19).
ꃨ 몰각한 목자들 - 백성들의 영적 필요에 대해 무지한 자들이라는 뜻이다(10절). 자신들의 육적인 욕심에 빠져 있는 자들이 다른 사람의 필요, 특히 영적인 필요를 헤아릴 수없는 것은 당연하다.
ꃨ 어디 있는 자이든지(*, 미카체후) - 문자적인 뜻은 '모든 처소로부터'이지만 '가장 고귀한 자로부터 가장 천한 자에 이르기까지'가 적절한 의미이겠다(Lowth). 창 19:4은 '무론 노소하고', 곧 '나이든 사람, 어린 사람 가릴 것 없이'로 번역한 바 있다. 이로써 파멸의 이유가 밝혀졌는데, 그것은 종교지도자뿐 아니라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한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지도층의 성향은 곧 피지도층의 성향이 되기 쉽다.
성 경: [사56:12]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부패한 지도자들에 대한 책망]
ꃨ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 오리라 - 여기 이르는 사람들은 영적 지도자들이다. '포도주를 가져 오리라'란 '한 잔 더 마시겠다'란 뜻도 된다. 결국 본 구절은 술을 서로 권하는 대로 받아 마셔 한 테이블에 앉은 자들이 포도주에 취하여 취흥을 즐기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그 시대의 지도자들의 육욕적인 상황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ꃨ 내일도 오늘같이 - 이것은 그들의 육욕에로의 탐닉이 일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습관적인 것, 곧 삶의 주된 관심사였음을 밝혀준다.
성 경: [사56:1]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이방인들의 구원]
ꃨ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 - 본절은 언약적 차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언약에 근거하여 '구원'과 '의'를 베푸실 것인데, 이제 언약 당사자인 이스라엘 역시 '공평'과 '의'를 지키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Delitzsch).여호와측에서 약속하신 바(곧 메시야 시대의 도래)의 성취 시점이 가까울수록, 이스라엘 또한 더욱 신실한 자태로 단장할 필요가 없었다. 한편, 침례 요한도 메시야의 도래를 선포함에 있어서 인간편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르소 유사한 요구를 한 바 있다.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 본절의 '공평'이나 '의' 혹은 침례 요한의 '회개' 등은 메시야의 도래를 맞을 때 요구되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자태라는 점에서 그 공통점이 있다 하겠다 :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말 4:5,6).
성 경: [사56:2]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이방인들의 구원]
ꃨ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 본절 전체는 지혜 문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축복 형식(benediction formula)을 보여주며(30:18;32:20;시 1:1;119:1;잠 8:32,34 참조), 안식일을 잘 준행하는 자가 복있는 사람임을 나타낸다. 본절만의 내용을 보면 안식일에 지켜야 할 금지 사항만 언급되고 있으나 문맥상 온전한 예배와 영적, 육체적 회복과 갱신이라고 하는 적극적 측면도 함께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G.W. Grogan). 웨스터만(Westermann)에 의하면, 포로기 동안 안식일 준수는 여호와께 예배드리는 신앙 공동체의 건실한 일원임을 알리는 결정적인 표시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안식일 못지않게 중요한 전제를 비롯한 여러 희생 제사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제의적(祭儀的) 율법이 폐지되는 메시야 시대에 대한 간접적 암시라고 볼 수 있겠다.
성 경: [사56:3]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이방인들의 구원]
ꃨ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 - 여기 '연합한'의 히브리어 '라와'(*)는 레위 지파를 가리키는 '레위이'(*)의 어근으로서, 레위지가의 성전 직무를 암시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레위 지파는 거룩한 성전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특별히 구별되었다(신 10:8). 그렇다면 본절은 그 직무가 이방인에 의해서도 수행될 것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 본 구절은 참신앙을 갖고 하나님의 예배자가 될 이방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ꃨ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 원래 '고자'의 히브리어 '사리스'(*)는 그 당시 궁궐에서 주요 직무를 맡고 있던 고급 관리 곧 '내시'를 뜻하지만(에 1:10, 12, 15;단 1:3;행 8:27), 여기서는 생식기능이 마비된 남자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이들은 당시 모세 율법에 의하여 총회의 명부에 기록되지 못했고 총회의 모임에 참석하지도 못하였다(신 23:2). 본 구절은 이제 율법 시대가 지나감으로 그들도 총회에 들 수 있음을 뜻한다. 또한 본 구절은 단지 생식 기능이 마비된 자뿐 아니라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총회의 행사, 특히 예배에 참속하지 못했던 자들도 겨냥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강조점은 고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제약하던 율법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성 경: [사56:4,5]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이방인들의 구원]
새롭게 등장할 메시야 왕국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자의 자격은 외형적이거나 육체적인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신실히 좇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음을 밝히는 구절이다(G.W. Grogan, J. Watts).
ꃨ 내 집 - 교회의 상징으로서의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킨다(딤전 3:15). 모세 율법상으로 이방인은 성전 바깥 뜰에 밖에 들어 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도 성전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방인도 마음껏 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됨으로써 거룩한 자의 반열에 들수 있게 된 것을 가리킨다(히 10:19, 20).
ꃨ 내 성 안 - 원문 직역은 '나의 성 벽들 안'이다. 고자들도 예루살렘 성 벽들 안에로의 출입이 허용될 것이라는 뜻인데, 성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말은 그들도 하나님이 통치를 받게 됨을 뜻한다.
ꃨ 기념물(*, 야드) - '기념비'(삼상 15"12;삼하 18:18), '손' 혹은 '장소' 등을 뜻하는 용어로서, 여기서는 '장소'로 보아도 무방하겠다(KJV). 왜냐하면 본 용어와 연관성이 있는 절 말미의 '끊치지'란 어떤 장소, 공동체와 연관이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성 경: [사56:6]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이방인들의 구원]
7절에 열거된 특권을 누리기 위해 이방인들이 행햐야 할 일들이 자세히 열거되고 있다.
ꃨ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 3절에서 이미 진술한 바와 마찬가지로 '연합'이란 이스라엘 레위 지파의 제사 직무와 연관된 용어이다. 물론 본 구절에서 말하는 제사란 구약 시대의 제사와는 다른 새로운 예배를 가리키며 이 새로운 예배는 오실 메시야 예수께 대한 바른 이해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요 4:21-23).
ꃨ 이름을 사랑하며 - 여기 '이름'은 인류를 사랑하시어 그의 아들 예수를 보내실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 예수와 연관성이 있는 하나님을 모르고는 참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ꃨ 종이 되며 - 여기서 '종'이란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핵심으로 하는 복음을 이방에게 전하는 자를 뜻한다. 먼저는 그리스도 자신이 종이 되실 것이고 계속해서 그의 교회가 종의 직무를 전수하게 될 것이다.
ꃨ 안식일 - 구약의 한 절기에 불과한 안식일이 아닌 메시야 도래이후 그 의미가 새롭게 재정립될 모든 종교적 규례들을 함축적으로 가리킨다.
성 경: [사56:7]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이방인들의 구원]
ꃨ 나의 성산 - 문자적으로는 예루살렘을, 영적으로는 메시야 시대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교회를 가리킨다(2:2;렘 3:17).
ꃨ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 이 표현은 문자 그대로의 희생 제사가 이방인에 의해서도 수행할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지금 문맥은 메시야 시대에 있을 일들을 다루고 있는데 메시야가 자신의 몸을 영단번의 제사로 드림으로 구약의 희생 제사는 폐지될 것이기 때문이다(히 10:11, 12). 핵심은 이스라엘의 특권과 우월성이 사라지게 된다는 점에 있다. 번제와 희생은 이스라엘만의 특권이었고, 그들의 우월성의 근거가 되었다.
ꃨ 이는 ... 될 것임이라 - 본절 상반절에 기록된 이방인의 특권 수혜의 근거를 적고 있다. 한마디로 그 근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국한 하였던 특권을 '만민', 곧 땅 위의 모든 백성에게로 확대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결과를 낳은 것은 온 인류를 상대로 하는 메시야의 대속 사역이다. 이방인까지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게 해달라는 간구가 성전 봉헌 당시 솔로몬에 의해 언급된 바 있다(왕상 8:41-43). 그러나 이를 복음의 우주적 성격과 관련지어 명확히 표현한 것은 이시야에 와서이다(Delitzsch). 주님께서도 본 구절을 인용하신 바 있다(마 21:13).
성 경: [사56:8]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이방인들의 구원]
ꃨ 이미 모은 본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 포로지로부터 모아들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른 이방들의 많은 자들을 더 하시겠다는 이 약속은 본장 본절까지와 앞의 몇장들 내용의 결론이 되고 있다.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새로운 주제가 소개되므로 여기서 지금까지 다룬 몇 개의 장들을 정리 요약할 필요가 있다. 요약의 내용은 본 구절을 통해 잘 드러나듯이 메시야 시대 때 이방 세계는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타민족 사이에 놓여왔던 두터운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따라서 어느 민족도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 놀라운 경륜 아래서 이제 모든 성도는 한때는 낯선 자요 외국이었으나 이제는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는 확신 가운데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엡 2:19). 그 기원에 있어서 온 세계는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온 땅에 거하게 하셨기 때문이다(행 17:26).
성 경: [사56:9]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부패한 지도자들에 대한 책망]
ꃨ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을 징벌하기 위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소집될 이방 군대를 가리키는데, 본서가 기록된 시점이 아직 갈대아의 침입을 받기 전이므로 갈대아 군대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겠다(렘 12:7-9;겔 34:5). 바로 앞장에서 메시야 도래의 확신과 그 택함 받은 자의 수가 이방인의 회심으로 더 늘어날 것을 말함으로 그 백성을 위로하였던 저자는, 돌연 그 주제를 바꾸어 이방 군대의 침입을 예언하고 있다. 시간상 순서로 보면 침입에 관한 기사가 먼저이고, 메시야의 도래 및 남은 자 수의 확대는 나중이다. 한 주제를 말하다가 갑자기 상반된 주제로 바꾸는 것은 본서 저자의 기술(記述)상의 특징이다.
성 경: [사56:10]
주제1: [구원의 우주적 성격]
주제2: [부패한 지도자들에 대한 책망]
ꃨ 파숫군들(*, 초파) - 문자적인 뜻은 '보는 자'이다. 본 용어는 개역 성경의 문자적인 뜻 그대로 성 위 망루에서 망을 보는 자 혹은 영적인 눈을 가지고먼 미래를 예견하는 선지자 둘 중의 하나에 적용된다(21:6-12;52:8;62:6;렘 6:17;겔 3:17). 여기서는 후자와 아울러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을 함께 일컫는 말로 이해된다(G.W. Grogan).
ꃨ 벙어리 개 - 짖음으로써 사나운 짐승의 접근을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목자의 사냥개에서 따온 비유이다.
ꃨ 꿈꾸는 자 ... 누운 자 ...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 - 세 가지 모두 유사 용어이다. 그 의미가 비교적 분명한 '꿈꾸는 자'의 히브리어 '호짐'(*)은 그 문자적 뜻이 '꿈 속에서 말하는 자', '비전을 보는 자' 등인데, 이것은 게을러서 비활동적인 사람뿐 아니라 그릇된 이상, 환상을 보는 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성 경: [사56:11]
ꃨ 이 개들은 ... 자요 - 원문 직역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욕심 많은 개들이요'이다. 이는 당시 지도급 인사들의 물질적인, 육욕적인 탐욕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갤 34:2,3;미 3:11). 이와 같은 자들을 신약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등으로 부르고 있다(빌 3:18, 19).
ꃨ 몰각한 목자들 - 백성들의 영적 필요에 대해 무지한 자들이라는 뜻이다(10절). 자신들의 육적인 욕심에 빠져 있는 자들이 다른 사람의 필요, 특히 영적인 필요를 헤아릴 수없는 것은 당연하다.
ꃨ 어디 있는 자이든지(*, 미카체후) - 문자적인 뜻은 '모든 처소로부터'이지만 '가장 고귀한 자로부터 가장 천한 자에 이르기까지'가 적절한 의미이겠다(Lowth). 창 19:4은 '무론 노소하고', 곧 '나이든 사람, 어린 사람 가릴 것없이'로 번역한 바 있다. 이로써 파멸의 이유가 밝혀졌는데, 그것은 종교지도자뿐 아니라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한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지도층의 성향은 곧 피지도층의 성향이 되기 쉽다.
성 경: [사56:12]
ꃨ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 오리라 - 여기 이르는 사람들은 영적 지도자들이다. '포도주를 가져 오리라'란 '한 잔 더 마시겠다'란 뜻도 된다. 결국 본 구절은 술을 서로 권하는 대로 받아 마셔 한 테이블에 앉은 자들이 포도주에 취하여 취흥을 즐기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그 시대의 지도자들의 육욕적인 상황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ꃨ 내일도 오늘같이 - 이것은 그들의 육욕에로의 탐닉이 일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습관적인 것, 곧 삶의 주된 관심사였음을 밝혀준다.
성 경: [사57:1]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의인이 죽을지라도 ...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 여기 '의인'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자는 자신이 살던 당시에 무고한 자들의 희생이 일반적인 경향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죽을지라도'로 번역된 '아바드'(*)나 하반절에 '취하여 감'으로 번역된 '네에사핌'(*)은 모두 박해로 죽어가는 상황을 암시하는 용어들이다. 유다에도 무고한 피를 흘리게 하는 왕들이 많았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므낫세이다 :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유다로 범하게 한 그 죄 외에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가에서 저 가까지 가득차게 하였더라"(왕하 21:16). 유대 전승과 초대 교부들은 본서 저자 이사야가 바로 이 악명 높은 므낫세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ꃨ 화액(禍厄)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 - 원문 직역은 '다가올 악으로부터 취하여진 것'(is taken away from the evil to come, KJV)이다. 사방도처에 만연한 도덕적 악행으로부터, 이방 군대의 침입으로 나타날 민족적 죄악에 대한 징벌로부터 취하여 갔다는 뜻이다. 즉, 의인이 너무 이르게 죽은 이유는 그가 만연한 도덕적 악행을 더 이상 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또 이방 군대의 침입으로 인한 쓰라린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미리 데려가셨다는 것을(are taken away to be spared from evil, NIV) 가리킨다. 의인 아비야의 죽음을 성경은 그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이 그에게 내린 축복으로 묘사하고 있다(왕상 14:10-13).
성 경: [사57:2]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정로(正路)로 행하는 자 - 여기 '정로로'에 해당하는 '네코호'(*)는 '곧바른', '바른' 등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 용어는 악인이 걷는 '구부러진' 길과 대조할 때 자주 사용되는 형용사이다(59:8;시 125:5;잠 2:15;빌 2:15).
ꃨ 편히 쉬느니라 - 의인의 몸이 그의 무덤에서 안식을 취하는 듯이 묘사하고 있다. 신약 성경은 재림 때에 성도의 몸이 부활할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서 죽은 자를 '자는 자'로 부르기도 한다(살전 4:14).
성 경: [사57:3]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무녀의 자식 - 문자적인 뜻은 '마술의 아들들'로, 참신이신 하나님보다 이방인이 추구하던 마술, 마법 등에 탐닉해 있던 이스라엘을 풍자하는 표현이다. 이스라엘은 동방의 이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마술, 마법 등에 빠져 있었는데 특히 므낫세 왕 때 아주 심하였다(왕하 21:6).
ꃨ 간음자와 음녀의 씨 - 1차적으로는 도덕적 기준이 문란해짐에 따른 성적 부패 현상 혹은 이방인과의 결혼 금지 규례까 무시되어 음란함이 이스라엘에 만연하였던 사실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아울러 이 말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좇는 영적 음란함에 대한 지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특히 므낫세 통치 때 만연하였던 악하고 부패한 모든 행실 가운데 가장 일반적이었던 것이 바로 음란함이었다(황하 21장). 어떤 경우에 있어, 이 음란함은 우상 숭배 예식에 필수적인 동반 요소였다. 예수님도 당대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함에 있어서 음란함에 대해 반복 언급하셨다(마 12:39;16:4 등).
성 경: [사57:4]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 '희롱하느냐'에 해당하는 '티트아나구'(*)는 '장난치다', '조롱하다' 등을 뜻하는 '아나그'(*)에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후자인 '조롱하다'가 문맥과 어울린다. 1절에서 '의인들'에 대한 언급이 나왔기 때문에 '조롱'의 대상은 그들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이스라엘 역사를 볼 때 우상 숭배자들이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고 경멸적 제스처를 취한 경우는 많았다(Whybray). 우상 숭배자들의 그 같은 태도는 결국 의로운 자들이 섬기는 하나님 그분에 대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ꃨ 혀를 내미느냐 - '혀를 감느냐'로도 번역되는데 한마디로 순간적으로 혀를 밖으로 쭉 내밀었다가 안으로 끌어들이는 동작을 가리키며 이는 경멸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성 경: [사57:5]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상수리나무 사이 ... 음욕을 피우며 - '상수리나무 사이'는 '바엘림'(*)인데 '테레빈나무(팔레스틴에 서식하던 나무의 일종)의 숲 사이'로 보는 견해(Kimchi)와, '우상의 형상들'로 보는 견해(70인역)가 있다. 그 어느 견해를 따르든 간에 분명 놓치지 말아야 할것은, 본 구절은 숲속에서 이방 신을 숭배하던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대상은 테레빈나무로 만든 우상일 수도 있다. '푸른 나무 아래'란 표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기보다는 이방 우상 숭배 의식을 서술하는 대목에 대체로 수반되는 틀에 박힌, 상투적 표현의 의미가 있다(왕하 17:10;대하28:4).
ꃨ 자녀를 죽이는도다 - 상반절의 우상 숭배 의식에 대한 언급과 유사한 내용으로 인신 희생 제사를 가리킨다. 특히 이는 물록 신에 대한 제사를 연상시킨다. 특히 이는 몰록 신에 대한 제사를 연상시킨다(레 18:21;왕하 23:10). 몰록 신 숭배했던 타락한 이스라엘 부모들은 그 자식을 죽여 불에 태워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성경은 이 사실을 정확히 증명해주고 있는데 그 제사가 시행되던 곳은 그악명 높은 힌놈의 골짜기였다(대하 28:3). 이 끔찍스러운 제사는 가나안 민족과 바벨론 민족에 의해서도 수행도이가으며*왕하 17:31), 역사가들에 따르면 페니키아 민족 그리고 카르타고 민족에 의해서도 자행되었다고 한다(Eusevius, Diodorus Siculus). 이스라엘에서는 아합 때 처음 시작되었고 국가적 위기 때에 가끔씩 자행되다가 아하스와 므낫세 때 널리 유행되었으며 요시야 때 폐지되었다(왕하 23:10).
성 경: [사57:6]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골짜기 가운데 매끄러운 돌 중에 너희 소득이 있으니 - '매끄러운 돌'에 해당하는 '헬레크'(*)는 단지 한정사일 뿐이며 '돌'은 추측에 의한 번역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물이 흐르는 골짜기에서 발견한 아름답고 맨들맨들한 돌을 가져다가 신적 경의를 표한 사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Kimchi), 그보다는 이스라엘 우상 숭배자들이 숲이 우거진 곳 특히 물이 흐르는 시냇가에 우상을 세원 호고 숭배하였음을 뜻한다고 봄이 나을 것 같다. '소득'의 히브리어 역시 '매끄러운 돌'과 같은 '헬레크'(*)로서 일종의 언어 유희(word-play)를 보여주며, 그 문자적인 뜻이 '기업'으로도 번역된다. 이는 우상 숭배를 직업처럼 그 일에 몰두하였던 것을 암시하는 용어이다.
ꃨ 전제 - 하나님께 드리던 제사의 일종으로 포도주와 기름을 제단 위에 부어 드리던 제사(출 29:40;레 23:13;민 15:5-7)이다. 우상 숭배자들은 이방 우상 숭배에 있어서도 하나님께 드렸던 동일한 방식을 취하였다.
ꃨ 예물(*, 민하) - 희생 짐승이 아닌 곡식 및 고운 가루를 제물로 드렸던 것을 가리킨다(레 14:10).
성 경: [사57:7]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높은 산 위에 네 침상을 베풀었고 - 공개적으로 수치심없이 감행되는 음란 행위에서 따온 이미지이다(겔 23:7). '침상'은 우상 숭배에 사용되는 제단에 상응하는 용어이다. 아무튼 본절 전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소위 영적 간음 행위를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겔 16:16,25).
성 경: [사57:8]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기념표를 문과 문설주 뒤에 두었으며 - 여기 '기념포'란 새긴 이방 우가의 신상을 가리킨다.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가정 수호신인 '라레스'와 '페나테스'의 신상를 집안 곳곳에 놓아 두었듯이 패역한 이스라엘은 이방 신상을 집안에 두었다. 이 행위는 모세의 율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였다. 뿐만 아니라 그 신상을 둔 곳은 다름 아닌 문과 문설주였다. 이 두 곳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새겨 두어야 할 곳이었다(신 6:9;11:20). 바로 그곳에 페역한 이스라엘은 신상을 두었다. 이 행위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 "...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를 저주를 받을 것이라"(신 27:15).
ꃨ 다른 자를 위하여 몸을 드러내고 - 음란한 여인의 성교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 표현은 패역한 이스라엘의 이방 신 숭배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ꃨ 침상을 넓히고 그들과 언약하며 - 음란 행위를 할 상대를 더 많이 받아들이는 장면으로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한 공개적인 위반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미 그들은 하나님과 불변의 언약을 맺은 바 있다(출 19:5;23:32).
성 경: [사57:9]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몰렉(*, 멜레크) - 문자적인 뜻인 '왕'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마치 매춘부가 향수를 바르고 손님을 맞듯이 숭배하기 위해 그 앞으로 나아갔던 우상(렘 4:30;겔 23:40) 혹은 이스라엘이 하나님보다 더 신뢰했던 앗수르, 애굽 그리고 그 외 이방의 왕들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후자로 보는 것이 더욱 낫다. 왜냐하면 문맥적으로는 '우상'으로 볼 수있으나 용어 자체는 문자 그대로 '왕'을 가리킬 때 쓰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몰렉 우상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몰레크'로 발음됨). '향품'이란 외국 왕들에게 바치던 선물, 조공 등으로 보면 되겠다(호12:1).
ꃨ 음부까지 스스로 낮추었으며 - 낮출 수있는 최저의 자리까지 자신을 낮추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의존하기를 버릴 때 그들은 가장 비천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성 경: [사57:10]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네 힘이 ... 아니함이니라 - 문자적인 뜻은 '너는 너의 손의 생명을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너는 슬퍼하지 아니하였다'이다. 여기 '생명'(*, 하이트)이란 활력, 원기 등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본 구절이 뜻하는 바는, 이스라엘은 이방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원기가 그몸에 남아 있는 한 여전히 그 소망 가운데 기뻐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차례의 이방나라에로의 사신 파송이 아무 소득이 없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이스라엘은 힘이 있는 한 계속해서 사신을 파송하면서 소망을 잃지 않았던 사실을 가리킨다.
성 경: [사57:11]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이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 잠잠함을 인함이 아니냐 - 하나님께 대한 관심조차 없었음을 나타낸다. 거짓 고백으로 아첨하기보다는 차라리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관심도 없으면서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은 양 가장했다. 그 같은 위선은 하나님이 그들을 오랫동안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은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오랜 고통의 침묵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부인케 하기 위함이 아니라 회개케 하기 위함이었다(롬 2:4,5).
성 경: [사57:12]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본절 원문 직역은 '나는 너희들의 의와 너희들의 행위들을 나타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너희들에게 무익하기 때문이다'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그들의 위선적인 의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시겠다는 뜻이며, 그들이 이방의 도움을 요청하고 이방 신상을 숭배하는 행위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공개적으로 나타내시겠다는 것이다.
성 경: [사57:13]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땅을 차지하겠고 - '땅'은 1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돌아가 다시 얻게 될 유다와 시온 산을 가리키지만, 2차적으로는 영적 이스라엘 곧 신약 교회 성도들이 얻을 영원한 천국을 가리킨다(49:8;시 37:9,11;69:35,36;마 5:5;히 12:22).
성 경: [사57:14]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이는 바벨론 포로니로부터 귀환할 때 그 장애물들이 제거될 것이라는 예언으로도 볼 수 있으나, 특히 거치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크숄'(*)은 구약 성경(특히 에스겔서)에서 문자 그대로의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최촉(催促)하는 우상 숭배 등의 죄악을 가리키는 말로 종종 사용되므로 본문은 메시야 시대의 구원과 해방을 암시하는 예언으로도 이해 가능하겠다(Whybray)
성 경: [사57:15]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 - 여기 '통회'란 '다카'(*)로서 '깨어지고, 부숴지고, 잘게 쪼개어진 어떤 물건'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여기서는 자신의 죄성과 무가치성을 철저하게 깨닫는 자를 암시하고 있다. 영적 구원 문제에 관한 한, 바로 이 같은 의식을 갖고 있는 자만이 이제 오실 참구속주인 메시야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자이기도 하다(마 5:1-8). 이 의식을 가졌던 세리는 의인이라는 호칭을 받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의를 자랑하며 영적 교만에 싸여 있었던 바리새인은 수치를 당하였다(눅 18:9-14).
성 경: [사57:16]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내가 영원히는 ... 아니할 것은 - 한마디로 이것은 14, 15절에 있는 약속, 곧 통회하는 자를 회복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영원히 그의 백성과 다투지 않으시는 까닭은 그들의 영혼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만 봐도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은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애 3:33;미 7:8,9).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필경 파멸에 이르게 하신다(시 7:11;계 14:11).
성 경: [사57:17]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얼굴을 가리우고 - 하나님의 '얼굴'이란 은총의 현시(顯示)를 가리키므로, 얼굴을 가리웠다는 것은 그 반대인 은총의 사라짐을 뜻하겠다.
ꃨ 오히려 패역하여 - 문자적인 뜻은 '완고함을 계속하여'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사라지고 징계가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죄를 깨닫기는 커녕 도리어 하나님에게서 더 멀어져만 갔다. 그와 같은 자들에게 취하실 하나님의 태도는 두 가지 중 하나였는데,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버리는 대신 그들의 죄의 문제를 대신 해결할 메시야를 보내시는 쪽을 택하셨다.
성 경: [사57:18]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 여기 '길'이란 악행 혹은 회개 등으로 볼수 있는데, 앞절에 의존할 때 전자가 옳다고 여겨진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반복되는 죄악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간구하셨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메시야를 통한 그 백성의 구원이다. 성경은 영적 구원을 암시함에 있어 질병의 치유와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대하 7:14;시 41:4;렘 3:22;호 14:4 등).
성 경: [사57:19]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ꃨ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 - 히 13:15에서 바울이 말한 '찬미의 제사'가 바로 '입술의 열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입술에서 찬양이 나오게 할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 일이란 '평강'에 관한 것이다. 이 '평강'(*, 솰롬)이란 완전한 평화로서(요 14:27), 먼저는 유대인의 포로지에서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과 관계된다. 그러나 좀더 포괄적으로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에도 전파될 복음을 통하여 온 인류 중 택한 자들이 누리게 될 영적 평안을 가리킨다. 베드로는, 당시로서는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평안의 복음이 이방에게도 퍼질 것을 '먼 데 있는 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드러내었다(행 2:39;엡 2:17).
성 경: [사57:20]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의인과는 달리 혼란과 불안정 상태에서 벗어날 길 없는 악인을 대비시키고 있다.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위해 '바다'라는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히브리 개념에 있어서 '바다'는 결코 안식이 없는 그 무엇의 이미지로 종종 등장한다(43:2).
성 경: [사57:21]
주제1: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주제2: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본절은 19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완고한 악인, 곧 회개치 못하는 자는 19절에 언급된 평화를 나누는 일에서 제외될 것이다. 이 표현은 약속된 영적 화해와 용서에 따른 평안을 회개에는 자에게만 돌아갈 몫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재강조하는 것이다. 48장도 동일한 강조로 마무리되고 있다.
성 경: [사58:1]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외식적 금식과 참된 금식]
ꃨ 내 백성에게 ... 고하라 - 여기 '백성'이란 선지자 시대의 백성 혹은 바벨론 포로 시대의 백성, 둘 중으 하나이겠다. 우리는 다수 주석가들의 견해에 따라 후자의 견해를 취하고자 한다(Delitzsch, Rosenmuller, J. Watts, Whybray). 그 근거로서 성전, 희생 제사, 므낫세 시대에 유행했던 우상 숭배 따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성 경: [사58:2]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외식적 금식과 참된 금식]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기는 하되 그것은 형식적이요 외면적일 뿐,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도리어 자기의 뜻을 구했던 사실에 대한 조롱이 담기 다역설적 표현이다. '그들은 나를 날마다 찾으며, 나의 뜻을 몹시도 알고 싶다면서, 마치 옳은 일을 해 온 백성이기나 하듯이, 자기 신의 법을 어기지 않은 백성이기나 하듯이, 무엇이 옳은 법인지 나에게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고 싶다면서'(공동 번역).
성 경: [사58:3]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외식적 금식과 참된 금식]
본절은 이스라엘이 금식의 본래적 목적과 의의를 외면하고 오히려 현실상의 축복을 비는 수단으로, 단지 종교적 자랑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 사실을 계속 책망하는 내용이다. 본래 금식은 회개와 성결을 위해 제정된 것으로서(느 9:1,2;시 69:10), 철저한 회개를 통해 자신의 이기적인 뜻과 정욕을 억누르고 자기를 부인케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금식에 대한 언급은 이른 시기부터 보여진다(삼상 31:13;삼하 12:11-23;대하 20:3). 그러나 개인 금식이 경건의 표현으로서 대중화되고 정기적으로 공동 금식이 준행된 것은 포로기 이후의 일이다. 슥 8:19에는 정기 금식의 네 시기가 언급되어 있다. 그중 4월 9일의 금식은 예루살렘 함락을(와하 25:3-21), 5월 10일의 금식은 성전 파괴를(렘 52:12,13), 7월 2일의 금식은 그달리야 살해를(왕하 25:23-25) 그리고 10월 10일의 금식은 예루살렘이 처음 공략된 것을 각각 기억하는 데에 애초의 목적이 있었다(J. Watts).
ꃨ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 그들의 영혼이 괴로움을 당했다고 자랑하였던 사실이 위선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들은 오히려 금식을 즐기고 있었다.
ꃨ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 여기 '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체브'(*)는 매우 힘들고 고통이 따르는 노동, 땀, 산고 등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이며 또한 '시키는도다'에 해당하는 '나가스'(*)는 '폭정을 가하다', '강제 징수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본 구절은 금식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유익을 챙기기 위해 그 종이나 일꾼에게 가혹한 일을 강요하는 악덕 주인을 고발하는 내용이 되겠다(느 5:1-5).
성 경: [사58:4]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외식적 금식과 참된 금식]
ꃨ 다투며 싸우며 -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다투고 싸우는 것을 금식의 목적으로 삼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금식하는 중에조차 그러한 이욕(利慾)적인 혈기를 부릴 정도로, 그들은 금식의 목적 자체에 대해 무지하였음을 보여준다(Whybray).
성 경: [사58:5]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외식적 금식과 참된 금식]
ꃨ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 여기 '기뻐하는'의 원문적 의미는 '선택한'이다. 말하자면, 너희들이 취하는 형태의 금식은 하나님이 택하신 곧 하나님이 인정하고 명령하신 금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ꃨ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 재를 펴는 것 - 이는 극도의 겸손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나 형식적 모양만 갖춘다고 하여 다된 걸로 생각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다. 본절의 요지는 금식의 방법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금식의 정신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금식의 참정신이 6절 이하에서 전개되는 바, 그것은 결국 경건의 모양과 능력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다(마 6:16-18).
성 경: [사58:6]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외식적 금식과 참된 금식]
ꃨ 흉악의 결박(*, 하레추보트) - 문자적인 뜻은 '악의 띠'로 불의하고 잔혹한 권위를 가지고 타인의 권리나 유익을 억압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ꃨ 명에의 줄을 끌러 주며 - 여기 '멍에'는 악압 혹은 강제적인 노동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용어로, 여기서도 그런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ꃨ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며 - 여기 거론되고 있는 상대는 문자 그대로는 '상한 자'이며 폭력, 압제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고 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 사람의 실체를 결정적으로 밝혀주는 단서는 '자유케 하며'로 번역된 '하페쉼'(*)이다. 이 용어는 한번 노예가 되었다가 자유를 얻은 자를 묘사할 때 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신 15:12;욥 3:19 등). 이 단서에 근거할 때 본 구절이 서술하려는 존재는 의심의 여지없이 '노예'라고 볼 수 있다.
성 경: [사58:7]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외식적 금식과 참된 금식]
ꃨ 주린 자에게 ... 나눠 주며 - 이것은 한 아비가 그 자녀에게 그렇게 하듯이 가진 자가 그 소유를 필요로 하는 자에게 공급하는 것을 가리킨다. 대체로 이 행실은 신앙인의 필수적 의무로 간주되었는데, 고난의 사람 욥은 이러한 선행의 모범을 아름답게 서술한 바 있다(욥 31:16-22).
ꃨ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 - 원문 직역은 '너 자신의 살(육체)로부터 너 자신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여기 '살(육신)'은 '바사르'(*)로서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를 뼈 중의 뼈 그리고 '살 중의 살'이라 칭할 때(창 2:23), 그리고 라반이 야곱을 그의 '골육'이라 칭할 때(창 29:14), 각각 사용하던 용어이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본 용어는 혈육상 밀접한 관계에 있는 상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보면 되겠는데, 그런 의미에서 개역 성경의 번역 '골육'은 적절하다. 골육, 곧 친척에게서 자신을 숨기는 경우란 그 친척의 사회적 신분이 낮거나 재물이 없을 때 혹은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는 일을 꺼려할 때이겠다. 참신앙인이라면 골육 친척이 어떤 신분이나 처지에 있든 간에 친절과 애정을 갖고 그와 친교를 나누고 그의 필요를 공급하는 데 힘을 써야 함이 마땅하다. 성경은 친척, 곧 가족을 돌보지 않는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보다 더 약하다고 경고하고 있다(딤전 5:8).
성 경: [사58:8]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의로운 자가 받을 축복]
ꃨ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 올바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서 금식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풍성한 번영의 축복을 주신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번영'은 흔히 아침에 비치는 찬란한 빛에 비유되고 있다(욥 11:17).
ꃨ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 원문 직역은 '네 상처는 빨리 치료될 것이다
'이다. 여기 '치료'의 본래 뜻은 상처를 치료할 때 사용되는 '긴 붕대'이다(1:6과 비교하라). 따라서 본 구절은 오랫동안의 정신적, 육체적 상처, 곧 전인적인 상처를 전제로 한다고 볼 수 있다.
ꃨ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 말하자면 하나님의 율법에의 순응은 행복, 번영, 평화의 길로 이끄는 선봉장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뜻이다.
ꃨ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 이것은 이스라엘과 그들을 분리하기 위하여 그 사이를 가로막고 섰었던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연상케 한다(출 14:19, 20).
성 경: [사58:9]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의로운 자가 받을 축복]
ꃨ 손가락질 - 문자적인 뜻은 '손가락을 뻗치는 것'이다. 이것은 남을 경멸하고 조롱하기 위하여 손가락질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법적 기소(起訴)를 암시하는 말로 쓰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Whybray).
ꃨ 허망할 말(*, 다베르 아웬) - 이는 무(無), 헛됨, 텅 빈 것(41:29;슥 10:2), 거짓, 속임수(시 36:4;잠 17:4), 무가치한 것, 사악함 , 죄악(1:13;욥 36:21) 등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인데, 결국 여기서는 당시 사회에 만연하였던 온갖 종류의 거짓, 거친 행동 그리고 불의한 언사 등을 의미하는 것 같다.
성 경: [사58:10]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의로운 자가 받을 축복]
ꃨ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動)하며 - 원문 직역은 '너의 영혼을 주린 자에게 끄집어 내며'이다. 직역의 내용이 어색하기 때문에 몇 역본들과 사본들은 '너의 빵을 주린 자에게 내밀며'로 번역하고 있다(사해 사본, 시리아역, Noyes, Horsley). 그러나 이 번역은 원문을 크게 수정한 번역으로, 굳이 이렇게 옮길 필연성은 없다. 여기 '영혼'(*, 네페쉬)은 '마음' 혹은 '선행의 마음' 등과 동의어로 보면 된다. 따라서 원문 수정 없이도 본문의 의미는 정확히 드러난다고 본다 : '너의 선행의 마음을 주린 자에게 드러내며.'
ꃨ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 지금까지 불투명하고 암담했던 삶의 여정이 분명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바뀔 것이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재앙들 그리고 시련들의 과정이 끝나고 풍성한 번영의 과정이 이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성 경: [사58:11]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의로운 자가 받을 축복]
ꃨ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 '마른 곳'(*, 차흐차호트)은 태양의 강렬한 햇살에 노출되거나 가뭄 때문에 습기가 완전히 말라버린 곳을 가리킨다. 그러나 본문이 약속하는 것은 단순한 마른 땅, 가뭄에 내릴 비 정도가 아님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혜택을 받을 대상이 '영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이 암시하는 바는 오랜 고통에서 벗어난 자가 얻게 될 마음의 평안, 더 나아가서는 메시야의 도래와 그의 사역으로 말미암을 구원의 약속까지로 보아야겠다. 본서는 메시야의 구원 사역으로 인한 그 택한 백성의 구원을 암시할 때 '마른 땅'의 이미지를 자주 등장시킨 바 있다(41:17 등). 물 댄 동산 - 이는 근동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나타내려 할 때 흔히 사용된 표현이다. 시리아역(Syriac)은 본 구절을 '천국'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천국을 이뤄본 적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 표현을 종말론적 측면에서 이해해볼 수도 있겠다. 이제 주님이 재림하시면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이방의 택함받은 자들은 완성된 천국에서 살게 될 것이다.
ꃨ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 여기 '끊어지지'로 번역된 '예카제부'(*)는 그 문자적인 뜻이 '속이다', '거짓말하다'이다. 이것은 샘의 근원이 말라 있을 경우 물을 얻기 위해 그곳을 찾은 대상들, 혹은 짐승들의 허탕을 치게 되는 사실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비하실 샘은 켤코 마르지 않고 항상 풍성한 샘이다. 이 샘은 바로 반석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 사역 때문에 그분을 찾는 모든 사람은 항상 영생의 물을 얻게 될 것이다(요 4:13,14;고전 10:4).
성 경: [사58:12]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의로운 자가 받을 축복]
ꃨ 네게서 날 자들 - '너를 통하여 있게 될 자들'이란 뜻이다. 이는 이스라엘 후손들을 가리킨다.
ꃨ 오래 황폐된 곳 ... 역대의 파괴된 기초 - 이것은 분명 바벨론 포로 시대 동안 황폐된 상태로 방치되었던 이스라엘 성을 가리킨다. 그 성은, 건물은 물론 그 기초까지도 완전히 파고되었었다. 이 성의 수측은 1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더 나아가서는 이방의 회심이라는 축복을 암시한다(암 9:11,12;행 15:16,17)
성 경: [사58:13]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의로운 자가 받을 축복]
본절의 시점은 포로 귀환 이후의 시대이다. 바로 이 시대에도 안식일 준수는 중요한 의무로 주어지고 있다(느 13:15-22).
ꃨ 네 발을 금하여 ...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 '발'은 동작을 일으키는 수단이다(잠 4:27). 안식일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어떤 일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따라서 안식일에 회당이나 성전에 가는 일 외에 다른 일에 그 발을 사용하지 않았다(행 1:12 참조).
ꃨ 성일(聖日) - '나의 거룩한 날'이란 뜻이다. 하나님은 이날을 나의 날이라 부르신다. 따라서 그날을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면 그분은 소유를 도둑질 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즐거움'이 아니라 그 즐거움이 육적인 것이냐 아니면 영적인 것이냐는 것이다. 만일 육적인 즐거움을 취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안식일 규례를 범한 것이 된다.
성 경: [사58:14]
주제1: [참된 신앙에 대한 촉구]
주제2: [의로운 자가 받을 축복]
ꃨ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 쉽지 않은 구절로서 해석 견해는 크게 둘로 나뉜다. 그 하나는 이스라엘이 살던 팔레스틴 땅은 고지대인데 바로 그 고지대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 곧 포로 귀환의 약속으로 보는 견해이고, 또 다른 하나는 높은 지대가 상징하는 번영, 안정에 대한 약속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두 견해를 연속적 개념으로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즉, 포로로부터 귀환시킨 후 번영과 안정을 허락하겠다는 약속으로 보는 것이다.
ꃨ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 야곱에게 약속된 땅 가나안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ꃨ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 원문 직역은 '왜냐하면 여호와의 입이 그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이다. 말하자면 여호와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포로 후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땅을 소유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번 주신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강조할 때 흔히 이 표현이 사용된다.
성 경: [사59:1]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여호와의 손이 짧아 ...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 신인 동형론적 표현을 통하여 본절이 나타내려고 하는 바는, 이스라엘의 포로된 그리고 그들의 오랜 금식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해방을 얻지 못하는 원인이 하나님편에 있지 안혹 이스라엘편에 있다는 사실이다. 본장은 자신들의 오랜 포로 생활 가운데 겪는 고통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는 듯 하나님께 논쟁하고 따지는 어리석은 이스라엘의 변론을(58:3 참조) 전제로 시작되고 있다.
성 경: [사59:2]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너희 죄악(*, 아온테켐) - '너희들의 죄악들'이란 뜻이다. 복수형으로 된 이 죄악들이란 바로 전장에서 나열하였던 죄악들과 본장 앞부분에서(2-8절) 열거할 죄악들을 가리킨다.
ꃨ 사이(*, 마브딜림) - 대체로 커튼 혹은 담벽 등으로 인한 영역의 구분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출 26:33;32:26)이다. '죄악들'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분리시키는 커튼이나 벽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 같은 상태에서는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성 경: [사59:3]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본절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동의적 개념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 하나는 '손'과 '손가락'인데, 전자는 총제척 번죄 행위, 곧 범죄 행각을 가리키는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입술'과 '혀'인데, 전자는 공개적으로 되어지는 모든 거짓말을, 후자는 은밀하게 되어지는 거짓말을 각각 암시하는 듯하다(렘 6:28;9:4). 당시에는 연령층에 관계없이 행동과 말로 되어지는 각종의 죄악들이 범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성 경: [사59:4]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 문자적인 뜻은 '공의를 요구하는 자도 없고'이다. 말하자면 공의롭게 재판건을 재판정으로 가지고 나가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부당한 유익을 얻는 목적을 위해서만 법정을 이용하던 행태를 꼬집는 표현이다. 이 같은 형태는 법을 집행하는 사법 기관이 썩었기 때문이다.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 하박국 선지가 자신의 국가 유다의 멸망을 하나님께 구했던 중요한 이유는, 바로 공의가 땅에 떨어졌던 사회상을 목도하였기 때문이다 :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이니다"(합 1:4).
ꃨ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 왜곡되고 불합리한 사회 풍조 때문에 합법적이고 정당한 방법으로는 일이 되지 않고 그래서 온갖 부정한 수단에 의지하게 됨을 나타낸다.
ꃨ 잔해(殘害)를 잉태하여 - 문자적인 뜻은 '불행을 잉태하여'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불이익, 성처를 낳는 악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가리킨다.
성 경: [사59:5]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독사의 알을 품으며 - '독사'에 해당하는 '치프오니'(*)의 정확한 뜻은 밝히기 어려우나 맹독성을 지닌 뱀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겠다. 이 같은 뱀음 알 속에 있을 때 밟아 죽여야 옳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도리어 그 동물을 보호하고 키우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그들이 악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ꃨ 거미줄을 짜나니 - 여기 '거미줄'은 다른 곤충을 잡기 위해 치는 함정, 곧 남을 해치기 위해 놓는 덫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곧 망가져 버릴 정도로 얇은 조직으로 된 거미줄의 상태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6절에서 이 거미줄은 단단하고 치밀한 조직으로 짠 '옷'과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남을 해치고 망치려는 계획과 행위는 헛되면 일순간적인 뿐임을 말하고 있다(욥 8:14;잠 11:18).
성 경: [사59:6]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 거미줄은 옷감 재료로 부적합하다는 것이 문자적인 뜻인데, 여기서는 그와 유사한 행위는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이득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나아가 구원을 보장할 수도 없다는 의미를 암시한다. 거미줄을 짓는 것과 같은 행위에는 기만적인 궤변이 있다. 이것은 참지혜, 경건, 미덕 그리고 그에 따른 구원을 이루지 못하며 허공을 치는 사색에 그치고 만다(Vitringa). 또 다른 예로는 악한 자의 술수, 헛된 형식주의, 거짓된 여론, 간교한 사색, 그리고 생명 없는 전승 등이 있겠다.
성 경: [사59:7]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 문자적인 뜻은 '그들의 발은 악으로 달리며'이다. 악으로 달린다는 것은 악을 행하고자 하는 강한 열정을 암시하는 말이다. 3절에서 죄를 짓는 신체 부위로서 손, 손가락, 입술, 혀를 언급했던 저자는 여기서 발을 언급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죄악이 전인적(全人的)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1:5,6).
ꃨ 사상은 죄악의 사상 - 죄행의 뿌리가 밝혀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그 행동에 있어서만 악했던 것이 아니라 그 의도, 생각에 있어서도 역시 악했는데 사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내적인 요소이다.
성 경: [사59:8]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평강 - 하나님 및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화평 혹은 자신의 양심에 있어서의 심적인 평안을 가리킨다.
ꃨ 굽은 길 - 이는 부정적, 자만, 속임수의 상징인 반면, '곧바른 길'은 성실, 진실, 정직 그리고 곧음의 상징이다(시 125:5;잠 2:15). 여기서는 그들의 계획이나 도모하는 행사 따위가 곡해되고 악하다는 의미이다.
성 경: [사59:9]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우리에게서 - 8절과 그 앞 몇 구절들에서 3인칭(그들)이었던 호칭이 1인칭으로 바뀌었다. 저자는 이같이 인칭을 바꿈으로써 이제 자신까지를 포함하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당할 재앙을 바라보면서 그 죄악을 회개하는 형식을 갖추었다.
ꃨ 의 - 문맥상 하나님이 이루실 구원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성 경: [사59:10]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소경같이 담을 더듬으며 - 시내 광야에서 모세가 예언한 내용을 상기시킨다. 그때 모세는 만일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준행치 않으면 소경이 더듬는 것같이 더듬으리라고 하였던 것이다(신 28:29). 소경처럼 담을 더듬는다는 것은 갑작스런 환난을 당하여 황망해 하는 것, 스스로 참진리의 길을 가지 못하는 것 혹은 스스로는 구원의 길에 들 수 없는 상태에 처한 것을 가리킨다.
ꃨ 낮에도 황혼 때 같이 넘어지니 -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임한 재앙이 그치지 않음을 뜻한다. 안식의 낮을 잠시 기대하여 보지만 여전히 재앙의 밤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ꃨ 우리는 강장한 자 ... 같은지라 - '강장한 자'(*, 아쉬마님)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이를 '어둠'(Jerome, Luther), '무덤'(탈굼역, D.Kimchi), '황량한 장소'(J. Kimchi) 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맥상 이 말이 '죽은 자'와 반어적 관계에 있는 듯하고, 그 어원으로 추측되는 '솨멘'(*)이 '풍부한', '살진', '무성한' 등의 뜻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는 '비옥한 밭' 혹은 '살지고 강건한 (자)'를 가리킨다고 봄이 더 나을 것 같다. 또 이 둘 중에서도 어두(語頭)첨가어 '알렙'(*)이 붙은 말은 대체로 명사적 의미보다는 형용사적 의미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후자가 더 자연스럽겠다(Delitzsch). 다른 사람은 번영과 낙을 누릴 때 죽은 자처럼 번영도 없이 기쁨을 모르는 삶을 사는것, 그것이 바로 불신자의 모습이다(26:10;눅 15:17).
성 경: [사59:11]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곰같이 부르짖으며 - '부르짖으며'에 해당한 '네헤메'(*)는 중얼거리는 소리, 혼란하고 시끄러운 소리, 으르렁거리는 소리, 비둘기처럼 '구구'하는 소리(겔 7:16), 모인 무리가 웅성거리고 소동하는 소리 등을 가리킬때 사용되는 용어인데 여기서는 그 어떤 고통 때문에 울부짖고 신음하는 소리로 보면 되겠다.
ꃨ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 애조를 띤 소리의 대명사인 비둘기의 우는 소리는 흔히 슬픔을 나타낼때 사용된다(겔 7:16).
성 경: [사59:12]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거하오니 - 원문 직역은 '우리의 죄가 우리를 향해 대답하오니'이다. 이것은 그들의 과거 죄악들이 너무 현저해서 그들이 죄인임을 명백히 증언한다는 뜻이다. 한편 본절에는 '우리'라는 말이 무려 일곱 번이나 등장하는데, 이는 허물진 백성을 대신하여 중보적으 회개 기도를 올리는 이사야의 진정한 동족애를 보여준다.
성 경: [사59:13]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바로 앞절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의 진술없이 일반적인 관점에서 죄인임을 인정했다면, 본절에서는 죄의 구체적인 내용을 열거하고 있다. 그런데 구체적인 죄행도 사실은 하나님께 대한 배신의 행동, 말 그리고 생각으로 나타난 것이다.
성 경: [사59:14]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 여기 '공평'(*, 미쉬파트)이란 재판정의 생명이라 볼 수 있는 '공정성'을 뜻한다. 재판은 바로 이 '공정성'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당시는 어떤 권력의 배경이나 뇌물 등을 가진 자에게 유리하도록 재판이 진행되곤 하였음을 시사한다.
ꃨ 거리에 앞드러지고 - 공정성에 의해 진행되는 재판은 거리가 아닌 성문 따위와 같은 사람의 왕래가 가장 빈번한 곳에서 열렸다. 그런데 그 재판의 생명인 바 '공정성' 곧 '성실'(*, 에메트)이 거리에 엎드러졌다는 것은 공정성이 재판정을 떠났음을 뜻한다. '정의'의 상징인 재판정이 정의롭지 못하면 그 나라 전체는 도덕적 붕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성 경: [사59:15]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 문자적인 뜻은 '악으로부터 떠난 자가 먹이가 되다'이다. 범람하고 있는 악의 세태에 물들지 않은 정직하고 경건한 자가, 먹이를 노리른 야수와 같은 악인의 공격 표적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ꃨ 그 공평이 없는 것을 기뻐 아니하시고 - 원문 직역은 '하나님 눈앞에 악이 있었다. 그것은 그분을 고통스럽게 하였다'이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죄악성은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는 그의 품성을 따라 어떤 조치를 취하셔야만 했다. 사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 속성을 예시하는 역할을 위해 선택된 모범적 국가로서의 자태를 만방에 드러내어야 했다.
성 경: [사59:16]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 이스라엘이 징벌을 받는 이유는 죄 때문이었다. 따라서 징벌이 멈추려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다. 그런데 인간 세계에는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한 존재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본 구절의 뜻하는 바이다.
ꃨ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이쉬토멤)의 원문 직역은 '어찌할 바 몰라하셨다'인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같은 태도를 취하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재자, 곧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죄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없음을 크게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 표현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ꃨ 자기 팔 - 구원 문제에 있어서 인간이 아닌 하나님 한 분만이 해결책을 제시하실 수 있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용어이다.
성 경: [사59:17]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이스라엘의 부패상이 너무 심각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마치 무장한 전사처럼 하고서 직접 개입하시는 내용이다. 이는 사도 바울이 묘사한 성도의 전신갑주를 연상시킨다(엡 6:13 이하). 에베소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여호와의 각종 무장 장비들은 당신의 거룩하신 성품의 다양한 표현들에 다름 아니며, 이들은 당신의 진노와 사랑을 아울러 나타내는 것이다(Delitzsch).
성 경: [사59:18]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본절에서 강조되는 말은 '행위'이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게물'(*)이 세 차례나 사용되고 있는(개역 성경은 '보응'과 '보복'의 히브리어도 바로 '게물'임) 것만 보아도 강조점은 명백하다. 이제 말씀으로 경고하는 때는 지나갔고 심판의 행동이 개시된다는 것이다(J. Watts). 한편,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세상 열방들에 대해 내려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어서 마치 패역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은 숨겨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아마 기자는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까지 세상 만국에 대한 심판 속에 포함시켜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성 경: [사59:19]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본절에 대한 번역은 역본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해석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취해질 수 있다 : '하나님을 겨외하게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격렬한 진노가 대적들을 완전히 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G.W. Grogan).
성 경: [사59:20]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ꃨ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 이 말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하늘로부터 오는 구속자는 배타적으로 유대인에게만, 유대인을 위해서만 오신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이스라엘은 여호와 신앙의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또 구속주가 이스라엘 중에서 탄생하시게 된다는 의미에서 우선적 배려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롬 1:16 참조).
성 경: [사59:21]
주제1: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불의]
본절은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20절)를 포함한 구속함 받은 자들에게 주신 약속이다. 그중 첫째는 성령을 그들에게 계속 임하게 하신다는 약속이다. 성령은 계시의 근원이자(욜 2:28), 권능과 은사의 원동력이다(미 3:8).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계속 머물러 하신다는 약속이다. 말씀은 계시의 결정체요, 신령한 은혜의 방편이요, 성도의 행할 바를 일러주는 삶의 지침서이기도 하다. 이 두 약속은 오순절 성령 강림과 신구약 66권의 완성을 통해 1차적으로 성취되었다.
성 경: [사60:1]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ꃨ 일어나라 - 52:1에도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죄악에 따른 심판으로 말미암아 티끌과 폐허 위에 앉아 있던(3:26;52:2) 시온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이 전해진다. 1차적으로 이는 포로 귀환을 겨냥한 것이지만, '치료하는 광선을'발하실 메시야를 통하 교회의 탄생과 확장으 예언하는 내용이기도 하다(말 4:2;엡 5:14).
ꃨ 네 빛이 이르렀고 - 이제 시온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된다. 죄악으로 인해 황폐해졌던 시온 자체에는 빛이 있을 턱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 자체로부터 나오는 치유의 빛, 구원의 빛을 받음로 말미암아 새로이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빛'또한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어 온,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빛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성 경: [사60:2]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본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직전에 애굽에서 일어났던 흑암의 재앙 사건을 연상시킨다(출 10:21-23). 이사야는 '어두움'과 '환난'(45:7), '불의'(45:19)를 상징하는 말로도 사용하였다. 본절은 죄악과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온 땅이 캄캄할 때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시온에 비춰질 것이라는 예언이다. 한편, 본절은 빛되신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때에 이스라엘 외의 세상 나라와 이스라엘 자체를 대비시키고 있다고도 이해된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때 세상 다른 곳은 여전히 어두운 상태에 있을 것이다. 물론 빛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도 그 빛을 깨닫지 못했다(요 1:9,10). 그러므로 본문은 구약의 예언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먼저 오셨다는 것을 뜻한다. 이후 온 땅은 이스라엘을 통해 그 빛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9:2).
성 경: [사60:3]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본절은 이스라엘에 임한 빛이 먼 나라 이방에게로 확장되며, 따라서 그들이 이 복음의 축복에 참여케 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암시는 본장이 보여주려 하는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2:3;11:10;49:22;54:3).
성 경: [사60:4]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ꃨ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 여기 '무리'란 세계 각처로 흩어졌던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 몇 선택받은 이방인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제 그들은 뒤엉켜 한 무리를 짓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물을 바치기 위해 몰려올 것이다.
ꃨ 안기워 올 것이라 - 원문 직역은 '네 곁에 붙들어 매어질 것이라'이다. 이것은 근동의 풍습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 근동 사회에서는 부모가 어린 자식을 데리고 다닐 때 허리를 걸치듯 업곤 했다. 이같이 익숙한 풍습과 연관된 표현을 함으로써, 저자는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내용에 애착을 느끼고 또한 반드시 성취될 것을 기대케 하고 있다.
성 경: [사60:5]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ꃨ 희색을 발하며 - 원문 직역은 '(함께)흐르며'이다. 이 동사는 '강'을 뜻하는 '네하르'(*)에서 왔는데 여기서 이 동사가 사용된 것은 강물이 넘실대며 넘쳐 흐르는 이미지를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문맥에서 볼 때 그 이미지를 통해 나타내려는 바는 '넘치는 기쁨'이겠다.
ꃨ 네 마음이 놀라고 -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방인 회심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어쩔줄 몰라하며 크게 감동받은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ꃨ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 여기 '바다의 풍부'는 '하몬 얌'(*)인데, '하몬'(*)은 '군중'(13:4;단 10:6), '많은 군대'(삿 4:7;단 11:11-13), '많은 물'(렘 10:13;51:16), '큰 재물'(시 37:16;전 5:9) 등을 뜻하며 '얌'(*)은 바닷가에 사는 백성들을 뜻하는데 바로 이어지는 구절 '열방의 재물'이 본문의 동의적 병행구임을 고려할 때 '하몬 얌'(*)은 '이방인들의 재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포로 귀환시 이방의 재물이 지원될 것을 시사함과 동시에(스 1:6)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되면 이방인의 소유물들이 시온, 곧 교회에게 바쳐짐을 예언한 것이기도하다. 말하자면 땅의 재물이 기록한 용도에 사용되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성 경: [사60:6]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ꃨ 에바 - 미디안의 장남으로(창 25:4) 아라비아 페트레아(Petrea)에 살았는데 그 이름을 따서 그가 살던 지역을 에바라 불렸다. 사해 동부 해안이었던 그곳은 미디안 땅의 일부이기도 했는데 이곳은 약대가 풍부했다.
ꃨ 젊은 약대 - 아라비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대의 일종으로 그 특징은 그 등에 낱 혹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Webster). 먼저 언급된 '약대'는 등에 혹이 둘인 약대를 가리킨다.
ꃨ 스바 - 성경에서 이곳은 솔로몬에게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왔던 이방 영왕의 나라로 알려진 곳(황상 10:1;대하 9:1), 금과 향이 풍부한 곳으로 언급되어 있다(렘 6:20;겔 27:22). 오늘날의 에디오피아 아비시니아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성 경: [사60:7]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ꃨ 게달 - 주로 아라비아 사막 남부 혹은 아리비아 페트레아 북부에 살았지만 그들은 거주지를 자주 옮겼으며 이러한 유목민에게 양이 풍성했으리라는 것은 얼마든지 상상할 수있다(21:16,17;42:11).
ꃨ 느바욧 - 이스마엘 아들 중의 한(창 25:13;대상 1:29)로, 그 후손이 아리비아 페트레아에 거주했으며 주로 약탈, 구역 그리고 가축 사육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들의 귀한 소유인 가축도 하나님께 바쳐질 것이다.
성 경: [사60:8]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ꃨ 저 구름같이 - 이방인의 회심을 묘사함에 있어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본 이미지는 히브리서에서 읽을 수 있듯이 그 수의 많음에 갖오점이 있다 :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히 12:1). 그러나 동격으로 사용되고있는 '비둘기의 비행'은 수의 많음보다는 속도의 빠름에 그 강조점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Fausset). 이제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 되면 많은 이방인들이 빠른 속도로 예루살렘, 곧 주의 교회로 들어올 것이다.
성 경: [사60:9]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ꃨ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 다시스의 배들, 곧 무역선은 가장 먼 지역에까지 무역을 하는 배로 유명했는데 그 배들이 먼저 이른다는 말은, 먼 곳에 있던 자들(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을 포함하여)조차 조속히 몰려들게 될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66:20).
ꃨ 이름에 드리려 하며 - '이름'이란 어떤 존재의 중요한 속성 혹은 그자체를 상징하는 의미를 지닌다(창 25:19-26 주제 강해, '이름 짓기' 참조). 여기서는 이방까지도 구원 대열에 포함시키신 구원의 하나님의 속성을 강조한다.
성 경: [사60:10]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 이는 포로 귀환시 회심한 이방인들도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에 조력하게 될 것을 뜻함과 아울러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들이 영적 예루살렘, 곧 교회를 섬기는 일에 협력할 것을,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에 동참할 것을 뜻한다.
성 경: [사60:11]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성문이 항상 열려 - 새로운 예물들과 개심자들을 영접하기 위하여 교회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26:2;행 14:27;계3:8). 평화의 왕 메시야의 완전한 통치가 실현되면 대적들의 위협조차 전혀 없으므로 시온의 그 문에는 침입자를 막기 위한 문빗장도 없을 것이다 :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계 21:25, 26).
ꃨ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 원문 직역은 '그 왕들이 이끌려 올 것이라'이다. 여기 동사 '네후김'(*)은 수동태로서 어떤 영향력 따위의 당기는 힘에 의하여 연약한 물체가 끌려가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동사이다. 아마도 이것은 세상의 권세잡은 세력들도 결국에는 메시야의 강한 통치력에 굴복하고 말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성 경: [사60:12]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었으나 본절 원문 서두에는 원인 접속사 '키'(*)가 놓여 있다. 바로 앞절에 서술된 세상 나라의 왕들과 그 백성들이 교회에 굴복하게 되는 까닭은, 그렇지 않은 경우 저주받아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슥 14:17).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할 때 명심해야 할 점들 중의 하나는, 믿지 않으면 저주받아 멸망하고 말 것을 외쳐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불행히도 이 땅에서 복 받고 잘산다는 것이 복음 증거의 주요 골자인 양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을 자랑한다고 선포한 후에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의 상황을 서술함으로써 복음 선포는 믿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무서운 저주와 파멸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에 주요 목적이 있음을 강조한 바있다(롬 1:16,18).
성 경: [사60:13]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레바논의 영광 ... 아름답게 할 것이며 - 여기 열거된 나무들은 레바논 땅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대표적인 수목들이다(Fausset). 그 나무들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알려진 거룩한 곳, 곧 성전을 아름답게 한다는 말은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 나무들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재목으로 쓰인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Whybray). 그러나 메시야의 통치 이후 이방의 귀중한 물건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바쳐져서 성별되게 쓰일 것을 말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성 경: [사60:14]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 철저한 복중의 자세를 취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하며 그 완전한 성취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메시야의 통치 이후 많은 이방의 선택받은 자들이 교회로 몰려들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거부하는, 곧 메시야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들은 교회의 역사 속에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며 주의 재림 때에 이르러서야 그 대적들이 사라질 것이다. 한편 '시온'이 '여호와의 성읍'이라 불리운 것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는 성읍'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 곧 하나님 나라라는 중요한 개념을 유추해볼 수 있다.
성 경: [사60:15]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하여 황폐화됨으로 말미암아 팔레스틴 땅은 사막의 대상 심지어 나그네도 그리로 지나가지 않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성 경: [사60:16]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열방의 젖을 빨며 - 앞에서 거듭 언급된 바 이방 세계의 물적 후원과 조력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J.Wstts).
ꃨ 네 구원자 ... 알리라 - 이것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회심한 이방인 위에 임할 은총은 메시야를 통한 구속 사역에 근거하게 될 것을 나타낸다.
성 경: [사60:17]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내가 금을 ... 돌을 대신하며 - 여기서 이사야가 비유로 들고 있는 물질적 풍요는 솔로몬 시대의 그것을 연상시킨다(왕상 10:21-27). 본 구절의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다음 두 가지가 무난하겠다. (1) 새로이 회복될 시온의 영적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물질적 번영과 아름다움에 비유한 것이다. (2) 다가올 메시야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더 나은 것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교회 역사를 살펴볼 때 구원의 복음이 들어간 지역은 대체로 정치, 경제, 문화, 그 외 모든 분야에 있어서 발전하고 복된 곳이 되었다.
성 경: [사60:18]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성벽 -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사용되었으며(삼상 25:16),
ꃨ 성문(*, 솨아르) - 영광의 왕이 들어가는 문(시 24:7), 혹은 양의 문(요 10:7)이라는 이미지와 연관시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양이 된 성도들뿐이다.
성 경: [사60:19,20]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가장 밝은 발광체인 낮은 태양과 밤의 달이 그 백성에게 비췰 하나님 자신의 영광의 월등함 때문에 오히려 가리워질 것을 묘사하고 있다(30:26;계 21:23;22:5).
성 경: [사60:22]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그 작은 자가 천(千)을 이루겠고 - 본문은 다분히 종말론적 색채를 띠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예수의 겨자씨 비유및 누룩 비유와 연관시켜 보아도 무방하겠다(마 13:31-33). 겨자씨와 누룩은 처음에는 보잘것없이 작게 보이나 나중에는 엄청나게 큰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메시야의 초림 때에는 그가 핍박을 받음으로 교회라는 존재 자체의 존립성조차 위태한 듯이 보였으나,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강력한 생명력으로 말미암아 급속히 확장되어 간다는 것이다.
성 경: [사61:1]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메사야의 사역]
ꃨ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 이는 바벨론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이사야가 공식적으로 위임받는 대목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Gesenius, Rosemnuller).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메시야에 관한 언급으로 해석되어지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는 예수께서 본절을 자신에 관한 예언으로 명시하셨다는 사실이다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으니라"(눅 4:18-21). 예수께서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신 순간에도 그 사역의 공적 인정을 위하여 성령이 임하신 바 있다(마 3:16;요 1:32).
ꃨ 기름을 부으사(*, 마솨흐) - 이 용어에서 '메시야'란 단어가 유래된다. 이스라엘의 왕(삼상 16:13), 제사장(출 30:30), 선지자(왕상 19:16) 등은 그들의 중요 직책을 위해 구별될 때 그 머리 위에 기름 부음을 받았다(삼상 16:1-5 주제 강해, '기름 부음의 영적 의미' 참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구별해 세우신 것을 암시하기 위해 본 표현이 사용되었다. 메시야를 언급하려고 이와 동일한 용어를 사용한 것은 시 45:7;히 1:9 등에도 나온다.
ꃨ 가난한 자(*, 아나윔) - 원래 이 용어는 상처나 억압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자를 뜻하며, 여기서는 1차적으로 낙담 중에 있었던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을 뜻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이 용어는 자신에게는 소망이 없으므로 오직 하나님이 보낼 메시야를 고대하며 사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고 봄이 더 정확하겠다(마 5:3). 이 말은 시편에서 개인적 재난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고대하였던 신실해 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종종 사용되었다(시 9:12,18). 예수께서는 자신의 지혜를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신 자신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한 마음이 교만한 자를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라고 풍자하셨고 반대로 그를 알아본 자들을 '어린 아이들'이라고 부르셨는데 이자들이 바로 가난한 자들이다(눅 10:21).
ꃨ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 1차적으로는 포로 귀환을, 더나아가서는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예언하는 내용이다. 또한 본 표현은 희년의 때에 모든 종된 자에게 선포되는 자유를 동시에 연상케 한다(레 25:10;렘 34:8,9).
ꃨ 갇힌 자에게 놓임 - 원문상으로는 '갇힌 자의 감옥문을 여는 것'이란 뜻이다. 여기서 '여는 것'이란 메시야의 도래와 연관지어 볼 때 죄와 사망의 올무로부터의 해방(롬 6:18;7:24,25;히 2:5) 혹은 영적으로 장님되었던 자가 영의 눈을 뜨는 것을 가리킨다(Ewald). 눅 4:18은 본절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본절에는 없는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이란 구절을 첨가함으로써 후자의 뜻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성 경: [사61:2]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메사야의 사역]
ꃨ 여호와의 은혜의 해(*, 쉐나트 라초 라훼) -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해'이다. 이것은 나팔이 올리고 온 이스라엘 땅에 자유가 선포되었던 희년의 때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레 25:9,10). 희년의 때와 마찬가지로 메시야의 때도 '해방'이란 이미지를 내포한다. 메시야의 도래의 때는 온 세계 인류를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키는 때인 것이다. 메시야의 도래로 시작된 해방의 때는 은혜의 때라고 불리기도 한다('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ꃨ 하나님의 신원의 날 - 문자적인 뜻은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다. 1차적으로 이날은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의 날을 가리킨다. 그런데 바로 이날을 '복수의 날'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바로 앞에 언급된 바 '여호와의 은혜의 해'의 대비적 표현으로 본 표현이 언급된 것은, 이스라엘에게 '은혜의 해'가 되는 때가 그 대적에게는 '복수', 곧 '심판'의 때가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마지막 심판날에 하나님이 대적들을 멸하시는 보응은 곧 성도들에게는 영광을 얻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요 12:47;고전 15:52;고후 4:17;계 21,22장).
성 경: [사61:3]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메사야의 사역]
ꃨ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 원문 직역은 '아름다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이다. '아름다움'에 해당하는 '페에르'(*)는 본래 여자들이 머리에 쓰던 아름답고 화려한 관을 말하며, '희락의 옷', '찬송의 옷'과 함께 즐거운 축제 때를 연상시킨다(G.W. Grogan). 이제 여호와의 구원과 은혜의 때가 이르면 슬픔의 표로 뒤집어 썼던 재를(에 4:1,3;렘 6:26) 털어내고 대신 아름다운 관을 쓰고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ꃨ 희락의 기름 - 당시는 기쁨의 축제 때 특히 초청한 귀빈의 머리 위에 향내나는 값비싼 기름을 붓곤 하였다(시 23:5;45:7;암 6:6). 그외 성경은 축제 혹은 기쁨 그 자체를 뜻할 때 '기름'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57:9). 공적인 재난 혹은 슬픔의 때에는 결코 기름을 사용하지 않았다(삼하 14:2).
ꃨ 찬송의 옷 - 절망에 빠진 자를 삼베옷을 입은 것에 비유하는 대신, 찬송과 감사를 드리고있는 자는 밝은 채색옷을 입은 것에 비유한다.
ꃨ 의의 나무(*, 엘레 하체데크) - '나무'에 해당하는 '엘레'(*)는 팔레스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수리나무를 뜻한다. 이 나무는 굵고 튼튼하여 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한다(이런 맥락에서 탈굼역, 제롬역, 시리아역 등은 이을 '강한 것' 혹은 '힘센 것'으로 번역했음). 본문의 '의의 나무'는 한때 죄악으로 인해 넘어졌으나 은혜로 말미암아 회복되어 굳건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주의 백성을 가리킨다. 그들이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은 정원사가 나무를 심듯이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구원하여 세우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영광을 열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에 의해서만 세움을 받는 사실은 주님이 사용하신 비유에도암시도이가 있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마 15:13).
성 경: [사61:4]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택한 백성이 받을 축복]
ꃨ 대대로 무녀져 있던 것들 -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 유다 본국 팔레스틴 땅과 성읍이 황폐해졌던 사실을 가리키며(렘 20:6;28:6), 나아가서는 본장 전체의 문맥상 메시야의 도래가 있기 전 혹은 메시야를 영접하기 이전의 상태를 나타낸다.
성 경: [사61:5,6]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택한 백성이 받을 축복]
이는 새로이 회복될 이스라엘이 이방 가운데서 제사장 나라로서(추 19:6) 우뚝서게 되며 이방인들로부터 물적 조력을 받을 것을(60:10)가리킨다고 해석되기도 하나,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더 나을 것 같다. 즉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편입된 이방인들 가운데서, 마치 아론의 후손이 이스라엘 중에서 감당했던 것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Delitzsch). 그러나 이방인들 중에서도 제사장과 레위인을 택하리라고 하신 말씀(66:21)이나 특히 이방인과 유대인 간의 벽이 완전히 허물어질 복음 시대(엡 2:14)의 상황을 염두에 둘 때, 이는 문자적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사도 바울의 언급에서 찾을 수 있겠다 :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은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롬 15:27).
성 경: [사61:7]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택한 백성이 받을 축복]
ꃨ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 바벨론에서 당한 고통에 비교해볼 때 메시야 왕국의 도래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누릴 축복은 더욱더 엄청나게 크고 값진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당한 고통과 메시야 사역으로 인한 축복을 단순히 비교한다는 의미보다는 메시야의 구원 사역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누릴 축복이 그 무엇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1차적으로는 포로지의 이스라엘에게 큰 위로를 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ꃨ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 여기 '능욕'에 해당하는 '켈리마'(*)의 문자적인 뜻은 '혼돈', '혼란'이지만 바로 앞 구절과 동의적 평행을 이룸을 고려할 때 '수치', '슬픔' 등으로 번역함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분깃'도 메시야의 구속 사역으로 얻게 될 구원의 축복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한편 원문에 보면 앞 구절과는 달리 본절의 주어는 2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뀌어 있는데, 이것은 본서 저자가 자주 사용하는 화법의 일종이므로 큰 의미없이 동일한 주체를 의도하고 있는 화법으로 보면 되겠다.
성 경: [사61:8]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택한 백성이 받을 축복]
ꃨ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 '대저'는 '키'(*)로서 앞절에 진술된 바벨론 포로 생활로 고통받은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이 배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사실의 이유를 밝히는 접속사이다. 하나님이 그같이 하실 이유는 그가 공의를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방의 손을 빌어 그의 백성을 심판하신 것도 공의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본절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바벨론의 교만과 불의의 강탈에 대한 분노로 나타난다.
ꃨ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며(*, 세네 가젤 베올라) - 본문에 대한 번역은 구구하지만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견해가 이처럼 둘로 나뉘는 것은 '베올라'(*)의 '베'(*)를 그대로 두고 번역하느냐 아니면 '베'를 빼고 대신 접속사 '와우'(*)를 삽입하여 번역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먼저 후자의 경우를 따르면 '나는 강탈(혹은 약탈)과 범죄를 미워한다'가 된다(시리아역, Lowht, Noyes). 그러나 이 번역은 받아들일 수없다. 왜냐하면 본 번역의 경우 필요 이상의 원문 수정을 가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전자의 경우를 따르면 '나는 번죄에 수반되는 강탈(혹은 약탈)을 미워한다'가 된다. 이는 바벨론이 유다 백성을 압제하고 강탈하는 등 필요 이상으로, 월권 행사를 도모한 사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그 영적 우매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이방이라는 수단을 통해 받았다. 그러나 수단으로 사용된 이방 세력은 본연의 임무인 징벌의 집행 외에 과도한 불의를 저질렀다. 바로 이 사실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의해 체크되었던 것이다.
성 경: [사61:9]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택한 백성이 받을 축복]
ꃨ 알리리니 - '구별되게 하리니' 혹은 '명예롭게 하리니'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시 67:2;76:1;79:10등의 용례들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ꃨ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참자녀들이 세상나라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방은 자들임을 완전하게 인정받는 때는 구원 역사의 종말, 곧 재림의 때이다. 그러나 그때가 이르기 전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 인정을 받을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 올려진다(마 5:16).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마 5:13-15).
성 경: [사61:10]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선민(選民)의 즐거움]
ꃨ 의의 겉옷 - '겉옷'은 입은 옷 위에 걸쳐 몸 전체를 가리다시피하는 느순한 망토 따위를 가리킨다(시 132:9;계19:8). 이 망토는 추위 또는 외부로부터의 침해 따위로부터 몸을 보하하는 구실을 한다. 여기서 이 망토가 의미하는 바는 '의'이다. 이 '의'는 이스라엘의 자격, 능력과 관계없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덧입히신 그 무엇으로 메시야의 구원 사역의 결과로 야기된 것이다. 원래 이스라엘은 스스로 영적 파멸로부터 구원하거나 사단의 집요한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이스라엘 역사가 그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아들 메시야를 보내시고 그로 구속 사역을 이루게 하시어서 그 사역을 근거로 그들을 보호하는 영적인 옷을 입히셨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였다. 따라서 영적 이스라엘, 교회는 그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성 경: [사61:11]
주제1: [메시야의 사역과 그 결과]
주제2: [선민(選民)의 즐거움]
ꃨ 땅이 싹을 내며 - 본서 저자가 여러 차례 사용한 이미지(45:8;55:10,11)로, 의미하는 바는 적시에 내린 단비로 촉촉해진 땅에서 새싹이 움트듯이, 메시야가 오시면 진리와 의가 돋아 자라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그의 택한 백성을 그곳으로 모으시는 목적은 그의 백성들로부터 찬양을 받기 위함이다. 본절에서의 찬양은 교회가 세상과는 다른 구별적, 거룩한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칭송을 듣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성 경: [사62:1]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나는...잠잠하지 아니하며 - 본절의 화자(話者)를 누구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구구하다. 먼저는 저자인 이사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 경우 본절이 의미하는 바는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그 영광이 의미하는 바는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그 영광이 온 땅에 드러나기까지 이사야는 그의 수고와 중보 기도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것이 된다(Calvin, Gesenius). 한편 하나님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 경우 본절은 구속 사역을 성취하기까지는 그의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각오를 실은 구절이 된다(Delitzsch, Grotius). 이외에도 유대인, 신약교회 성도 등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유력한 견해는 아니다. 이중에서 본장의 전반적 흐름을 고려할 때, 본 화자는 1차적으로 이사야 선지자를, 더 나아가서는 위대한 중보자이신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영적 회복을 맛볼 때까지 그 백성과 하나님을 향한 그의 중보 사역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사야가 특히 하나님을 향해 중보 기도를 드린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침묵 및 그의 백성의 불평이 전제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오랜 포로생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이 시행되지 않자 백성들은 불평을 하고 그 불평을 들은 이사야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대목이 전제되어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경우를 64:12; 시 28:1 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57:11; 65:6등에서는 오랜 침묵을 깨고 응답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ꃨ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 앞의 '공의가 빛같이'의 동의적 평행구이다. '횃불', '빛' 따위는 그 특징이 그 주위를 향해 빛을 발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제 이스라엘에게 비롯된 구원이 마치 아침 태양이 가까운 언덕, 들, 그리고 더 높은 산을 향해 그 빛을 펼쳐 나가듯이 온 세상을 향해 그 영향력을 펼쳐 나갈 것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저자는 나타날 구원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열방에도 미칠 것을 암시하는 셈이다.
성 경: [사62:2]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 - '새 이름'은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용어이다.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한 후 그곳에서 살게 될 자들을 언급할 때 바로 이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계 2:17; 3:12). 여기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이 회복된 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현재 수치와 가난, 압제로 대변되는 삶의 상황 속에 처해 있다. 그러나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하면 번영과 영광으로 삶의 상황이 바뀌게 될 것인데 바로 그와 같은 상황을 새 이름을 얻을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사62:3]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 원문직역은 '여호와의 손안에 있는 영광의 면류관'이다. 본문은 해석하기 힘든 구절로 알려졌는데 그 이유는 면류관이란 머리에 쓰는 것이 상식인데 여기서는 그 면류관이 손안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면류관'을 축제 혹은 결혼식 따위 때에 손에 들고 행진하던 화환, 꽃다발 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본절은 면류관 자체보다 하나님 손안에 있다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는 내용으로 보고 해석되어야 할 것같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음을 가리킨다(신 33:3). 그리고 후 문맥은 하나님이 다시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보호하실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본 구절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될 이스라엘을 강조하는 구절로 봄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영광의 '면류관' 혹은 ' 왕관'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될 수는 없다. 특히 '왕관'은 '체니프'(*)로서 '둥글다', '굴곡을 이루다'는 뜻을 내표하는 말이며 가장자리에 보석 따위가 박힌 둥근 면류관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왕관은 모든 사람 앞에 드러나는 영광의 상징이다. 이 사실을 중시할 대 본절은 이스라엘이 이방 세계 앞에 두드러질 것을 암시한다고 간주될 수 있다. 앞 문맥은 사실 이것을 지지한다.
성 경: [사62:4]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헵시바(* - , 헤프치 바) - 문자적인 뜻은 '나의 기쁨은 그녀 안에 있다'이다. 말하자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겠다는 것이다. 물론 예루살렘이 그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은 자신의 무엇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총을 베푸셨기 때문이다. 한편 히스기야 왕의 아내가 '헵시바'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에(왕하 21:1) 착안하여, 히스기야 왕은 메시야의 모형으로 언급되기도 한다(32:1 참조).
ꃨ 쁄라(*, 베울라) - 문자적인 뜻은 '결혼한 자', '결혼한 부인'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결혼했다가 이혼 당한, 말하자면 버림을 받은 여인에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여기서는 한번 버림을 받았으나 다시 용서함 받은 이스라엘의 신분을 암시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근동에서는 한 왕이 다른 왕으로부터 왕권, 곧 통치권을 받았으면 그는 그 왕국과 혼인 관계에 들어갔다고 흔히 말한다(Robert). 또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그의 교회를 신부로 비유하곤 한다(요 3:29; 계 21;2,9). 저자는 다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을 이스라엘의 운명을 바로 이 결혼 이미지를 통해 묘사하고 있다.
성 경: [사62:5]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같이 - 한번 버림을 받은 여인과 같은 이스라엘과 재결합하는 이미지가 소개되는 문맥에서 본 비유는 좀 낯설다. 일반적으로 청년이 과부나 한번 결혼했던 여인과 결혼하는 경우는 쉽지 않다. 물론 왕실이 또 다른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을 때에는 그 정략적인 목적 때문에 그 같은 경우가 흔히 생기기는 했다. 여기서 하나님이 한번 버림을 받았던 이스라엘과 재결합하는 사실을 청년과 처녀의 재결합 이미지로 묘사하는 저변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완전히 사하셨다는 뜻을 보이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 같다.
ꃨ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본문의 해석은 상당히 난해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견해로 나뉜다. (1)'아들들'을 하나님께 대한 경외를 나타내는 복수형 칭호로 해석하는 견해. (2)' 네 아들들'에 해당하는 '바나이크'(*)를 '건축자'란 뜻의 '보네크'(*)로 읽어, 예루살렘의 건축자이신 하나님을(시 147:2)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Whybray). (3) '취하겠고'의 히브리어 '바알'(*)이 '결혼하다'는 뜻 외에 '다스리다', '관할하다'(26:13)는 뜻도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본문을 '네 자녀들이 네게 거하겠고'로 해석하는 견해(사해 사본, 벌게이트역, 70인역, 탈굼역), 세 번째 견해가 가장 무난하리라 본다.
성 경: [사62:6]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파숫군을 세우고 - '파숫군'이란 대적의 침입을 살피거나 소식을 가지고 오는 전령을 확인하기 위하여 성벽 망대를 지키던 자이다(52:7,8). 그러나 여기서는 그 백성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임무를 맡았던 자들을 가리킨다(겔 3:17;33:7).
ꃨ 잠잠치 않게 하였느리라 - 이것은 시간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이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동방의 파수꾼들이 망대를 순회할 때마다 큰소리를 지르던 관습을 연상케 한다. 여기서는 백성을 가르칠 책임이 있는 자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이 그들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ꃨ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하마즈키림 에트 야훼) -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를 기억하게 만드는 자들'이다. 여기서 '하마즈키림'(*)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 혹은 예배 의식 따위에 적용되는 용어로서(시 45:17; 102:12) '기억하다'로 번역되는 '자카르'(*)에서 온 단어이다. 따라서 본 용어는 여호와를 기억나게 하기 위하여 예배에 봉사하는 자 혹은 여호와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 백성에게 그의 이름, 곧 그의 전사역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 존재 그 자체를 찬양 및 선포하는 자로 해석될 수 있겠다. 여기서는 후자로 해석됨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1절에서 암시되었거니와 본절의 종교 지도자들의 임무란 다름 아닌 메시야를 통한 구원 사역을 계획하고 수행하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선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 경: [사62:7]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 이것은 1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포로로부터 돌아와 이전의 특권을 회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완전한 성취는 주의 재림 때에야 되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본 예언은 영적 예루살렘인 신약 교회에도 적용된다. 신약 시대 성도들 중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들은 교회가 우주적인 존경과 기쁨의 대상이 될 재림의 날을 준비하며, 이스라엘의 국교지도자들이 그랬듯이 끊임없이 인내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눅 18:1,7 참조).
성 경: [사62:8]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여호와께서...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 고대에는 맹세의 방법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는데 하늘을 행해 손을 드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었다(신 32:40). 하나님은 그 맹세를 드릴 상대가 없는 분이므로 하나님의 맹세의 경우 그 자신에게 드려졌다(45:23). 여기서 하나님은 그의 오른손을 들고 맹세하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특히 여기서의 오른손은 그의 백성을 이방의 압제에서 구원하실 권능을 나타낸다. 이제 그의 강력한 오른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후 하나님은 결코 그 백성을 이방에게 다시 넘겨주지 않으실 것이다.
ꃨ 네 곡식을...식물로 주지 아니하겠고 - 여기 곡식은 문자적으로 '옥수수', '곡물'을 뜻한다. 오늘날 옥수수는 동물의 먹이로 많이 사용되지만, 당시 팔레스틴에서의 옥수수란 중요한 식물(植物)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은 단지 옥수수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취하던 모든 양식이 앞으로는 결코 이방의 손에 들어가지 않으리라고 약속하고 계신 셈이다. 그러나 이 약속 후에도 이방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그들의 양식을 탈취한 바 있다. 그렇다면 본 약속은 종말론적 성격을 띤 약속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주의 재림 이후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룩될 때 그 백성은 결코 사단의 위험이나 공격으로 인해 탈취당하지 않을 것이다.
성 경: [사62:9]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수고한 것을 즐기게 된다는 말씀인데, 이 같은 결과는 안전의 상태가 조성되었을 때에만 가능하다. 자신의 수고한 것을 먹는다는 것만큼 안정 속에서 누리는 자유와 번영을 강력히 암시하는 표현도 드물다(Barnes).
ꃨ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규례를 따라 성전에서 먹고 마시곤 하였는데(레 6:16; 신 12:17,18; 14:23). 그때 그들이 보여 준 가장 큰 특징은 기쁨이었다. 그들로 기쁨을 느끼게 한 것은 그 모든 축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자각이었다. 본 구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모든 축복의 결과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식하고 기쁨으로 낙을 누리게 될 것을 암시한다.
성 경: [사62:10]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본절은 본서 저자인 이사야(1절)와 파수꾼들로 호칭된 종교 지도자들(7절)의 중뵈도, 그리고 계속 이어진 하나님의 엄숙한 약속(8,9절)이라는 문맥의 연장선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선지자 이사야와 종교 지도자들이 중보기도한 내용은 1차적으로 다름 아닌 바벨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귀환이었다. 이제 그 귀환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취될 것인데 그 성취를 묘사하고 있는 곳이 바로 본절이다.
ꃨ 기를 들라 - 이것은 한 군대가 행진을 재개할 때를 연상케 한다. 행진 중 어느 곳에 쉬다가 충분한 휴식 후 행진을 재개할 경우 깃발은 높이 쳐들어서 행렬을 재정비하라는 신호를 내곤 한다. 그와 유사하게 오랜 포로 생활로 이곳 저곳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은 정한 지도자를 앞세우고 전열을 정비하듯 한데 모여 본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성 경: [사62:11]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ꃨ 네 구원이 임하느니라 - 여기 '구원'은 1차적으로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귀환을 뜻한다. 그러나 문맥적으로 그리고 보다 먼 조망에서 볼 때는 메시야를 가리킨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력한 역본들은 본 '구원'을 '구세주'로 번역하고 있다(70인역, 벌게이트역).
ꃨ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 여기 '그'란 바로 메시야를 가리키며 '상급이 그에게 있고'란 구원이 그 손안에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것은 메시야께서 구속 사역을 완수하실 것을 암시한다.
성 경: [사62:12]
주제1: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4절에 이어 다시 한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 반복 강조되고 있다. 그 같은 결과는 메시야의 구속 사역에 근거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기 '여호와의 구속 하신 자'란 '대속적 피에 의해 그 죄를 씻음 받고 죽음에서 해방된 자'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이름만큼 아름다운 이름은 없다.
성 경: [사63:1]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의 심판]
ꃨ 에돔...보스라 - 전자는 근접해 있는 까닭에 유다와 끊임없는 적대감을 가졌던 국가이며 후자는 위치상으로는 모압에 가까우나 이두매, 곧 에돔의 주요 도시 중의 하나였던 곳이다. 이 두 곳은 본서 저자가 세상의 모든 유다의 대적을 의미할 때 언급한 곳이다(34:6).
ꃨ 홍의를 입고...오는 자 - 여기 '홍의를 입고'는 '하무츠 베가딤'(*)이다. 그런데 '하무츠'(*)는 '(맛이) 신', '(색깔이) 얼룩덜룩한' 어떤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하마츠'(*)에서 유래한 용어로서 자줏빛, 주홍색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용어는 원래 자줏빛으로 염색한 혹은 피가 그 옷자락에 튀어 피색으로 물든 용사의 망토를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본절이 묘사하고 있는 어떤 인물은 이 사실과 뒷문맥을 고려하여 볼 때에 승리를 쟁취하고 귀환하는 큰 용사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용사의 정체에 관한 견해는 다양하다. 그러나 그중의 대표적인 두 견해는 메시야 혹은 하나님으로 보는 견해이다. 62장과의 문맥적 연결 면에서 그리고 본절이 그려내는 용사의 모습이 대적들을 정복한 승리자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후자의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이 많다(Calvin, Delitzsch, Gesenius). 그러나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근거에 입각해볼 때, 오히려 전자의 견해가 더 나을 것 같다. (1)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상황은 단지 이스라엘의 역사상 일어날 일이라기보다는 마지막 보응의 날과도 관계된다. 이런 점에서 에돔 등은 이스라엘의 모든 대적은 물론이고 나아가 메시야와 성도들을 대적하는 사단의 모든 세력까지 상징한다. (2) 피묻은 옷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대속을 암시한다(계 19:11-14). (3)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패배의 십자가가 아니라 도리어 죄와 사망과 사단의 세력을 파하신 승리의 십자가였다(골 2:15).
ꃨ 화려한 의복 - 문자적인 뜻은 '그 의복에 있어 영광스러운'이다. 이것은 고위직에 있는 고대 용사들의 영예롭고 눈부신 군복을 가리킨다.
ꃨ 큰 능력으로 걷는 자 - 두말할 나위 없이 이 표현은 그의 대적을 완전히 섬멸한 사실을 드러내듯 승리의 정복자로서 당당한 보무로 입성하는 용사에서 따온 이미지이다.
ꃨ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 지금까지는 제삼자가 화자(話者)였다면 본 구절부터는 메시야 자신이 화자가 되고 있으며, 본 화자는 앞선 화자의 의문에 대답을 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 '의'는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성 경: [사63:2]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의 심판]
본절은 메시야가 그 대적을 진멸하신 사실을 포도즙 짜는 모습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당시 포도즙을 짤 때에는 먼저 큰 통에 포도를 넣고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 밟았다. 한 시간 정도 밟으면 질이 좋지 않은 포도는 맨 위로 떠올랐으며 그후 계속해서 30분 정도를 더 밟으면 향기 좋은 포도즙이 각 송이에서 흘러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더 밟으면 신 포도까지 터져 전체 포도즙의 맛은 좋지 않게 된다고 한다(Burder). 본절은 이같이 포도즙을 짤 때 그 즙이 튀어 옷에 뭍은 어떤 사람을 연상하여 말하고 있다. 성경은 피를 포도즙에 비유해 언급하곤 한다(신 32:14). 어떤 학자는 여기서 저자가 피를 포도즙에 비유하고 있는 까닭은 1절에 언급된 '보스라'라는 지역이 포도 산지로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Calvin). 이 경우 '보스라'가 포도 산지인 줄 알고 있던 유대인들은 더 실감나게 본절의 의미를 파악했을 것이다.
성 경: [사63:3]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의 심판]
ꃨ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 본절은 2절에 묘사된 바 포도즙 틀을 밟다가 그 즙이 옷에 묻은 것과 같은 데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성 경: [사63:4]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의 심판]
ꃨ 원수 갚는 날 - 여기 '원수 갚는다'는 표현은 공의에 입각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에돔 혹은 이두매로 대변되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다. 성경은 에돔 자손이 예루살렘 성전의 기초까지 파괴할 정도로 악했고 이스라엘을 괴롭혔다고 진술하고 있다(시 137:7). 이 같은 대적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방(사단의 세력)이 징벌받는 이 날은 역으로 이스라엘(모든 성도)의 구원의 날이다(34:8;61:2 참조).
성 경: [사63:5]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의 심판]
ꃨ 도와 주는 자도 없고...없으므로 - 아무도 메시야의 구원 사역을 조력하지 않으며 조력할 수도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 말은, 메시야께서 감당하시는 인류 구원의 대업(大業)은 메시야 자신의 대속 사역으로써 충분하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ꃨ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 이 표현은 59:16의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를 연상시킨다.
성 경: [사63:6]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의 심판]
ꃨ 그들을 취케 하고 - 혹자는 본절을 3절 하반절의 반복적 유사 평행구로 보고 본문의 히브리어 '아솨크램'(*)을 '쳐부수다'는 의미의 '아솨브램'(*)으로 수정하고자 한다(탈굼역, Whybray). 그러나 굳이 원문 수정을 하지 않더라도, 본문은 메시야의 진노의 공포 아래 있는 자가 만취한 자처럼 자제력을 잃고 땅 위에 엎드러져 있는 상황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시 75:8 참조).
성 경: [사63:7]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에 대한 찬양]
ꃨ 내가 - 본절에서부터 화자가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는(1-6절) 화자가 주로 메시야이셨다면 이제부터는 대적의 진멸을 통하여 그들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스라엘이며(7-14절) 그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선지자가 직접적 화자로 나서고 있다. 그런데 여기 대적의 진멸이란 1-6절에 서술된 내용이 아니라 과거 이스라엘 역사속에 수차례 반복된 이방으로부터의 이스라엘 구원 역사를 가리킨다. 하나님 찬양으로 시작되는 본절로부터 14절까지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15절부터 64:12까지의 큰 단락은 이스라엘의 억압과 파멸 상황에 따라 하나님의 자비를 탄원하는 이스라엘의 기도를 그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성 경: [사63:8]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에 대한 찬양]
ꃨ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 이것은 언약 관계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가리킨다.
ꃨ 거짓을 행치 아니하는 자녀 - 이것은 이스라엘과 언약 관계를 맺었을 때 하나님이 가지셨던 기대를 표현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언약 관계에 신실할 것을 기대하셨다. 아울러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그러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반역과 거짓의 역사를 되풀이해 왔지만, 하나님께서 그 크신 은총을 따라 택하신 백성을 회개시켜 새로이 회복시키시리라는 암시도 담겨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작정도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암시를 주는 구절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 경: [사63:9]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에 대한 찬양]
ꃨ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베콜 차라탐 로 차르) - 짧지만 번역하기 난해한 구절이다. 그 이유는 '...이 아니다'의 뜻을 지닌 '로'(*) 때문이다. '로'를 생략해버릴 경우,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와 부합하는 번역이 가능하다:'그들의 모든 고통의 때에 하나님도 고통하였다'(In all their affiction he was afflicted, KJV, LB, RSV). 그러나 원문의 단어 자체를 생략하는 이 같은 번역은 수용하기 어렵다. 반면 '로'를 그대로 두고 문자적 번역을 하면 '모든 그들의 고통의 때에 하나님은 고통하지 않으셨다'라는 다소 애매한 내용이 되어버린다. 이 난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뒷문맥을 고려하고 본 구절 자체에 어떤 용어가 생략되어 있다고 가정하는 일이다. 그 같은 경우 다음과 같은 번역이 가능하다:'모든 그들의 빈궁의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향한 그의 선하심에 있어) 빈궁하지 않으셨다'(Houbigant). 여기 '빈궁'은 '고통'으로도 번역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이 같은 번역이 가장 무난하다고 본다.
ꃨ 자기 앞의 사자 - 이 사자는 광야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고 구원하였던 적이 있다(출 32:34;33:2;민 20:16). 따라서 천사로 보는 것이 가능해지는데 구체적으로 가브리엘(눅 1:19), 미가엘(단 10:13-21)로 보는 견해가 있다(Clark, Jarchi). 그런데 이 용어는 오실 메시야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데 실제로 메시야로 보지 않으면 해석되지 않는 부분에서 이 용어가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출 14:19;23:20, 21). 따라서 본 용어는 1차적으로는 천사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메시야를 예표하는 용어로 정리하면 되겠다.
ꃨ 드시며 - 그의 양떼를 모든 목자 혹은 그의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 혹은 새끼를 날개 아래 품는 독수리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출 19:4;신 32:11, 12).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광야의 연단 중에서 보존하시고 결국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이신 것을 가리킨다.
성 경: [사63:10]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에 대한 찬양]
ꃨ 성신(*, 루아흐 카데쇼) - 어떤 학자는 이것을 '선지자들의 말씀'(갈대아역 등) 혹은 '하나님'으로 각각 번역한다(Grotius, Gesenius, Rosenmuller). 그러나 신약에 비추어 볼 때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갱신시키고 거룩하게 만드시는 삼위(三位) 중 성령 하나님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물론 당시 히브리인들이 이 용어를 하나님에게 적용시켰다는 사실과, 오늘날의 성도들과 달리 삼위의 독립된 존재 양식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용어가 '성령'을 지시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시대에 있어서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동일하게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성부, 성자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계셨듯이 성령 하나님도 영원 전부터 계셨다.
성 경: [사63:11]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에 대한 찬양]
ꃨ 백성이 옛적 모세의 말을 추억하여 가로되 - 원문 직역은 '그가 모세와 그의 백성들, 옛날을 기억하셨다'이다. '기억하셨다'는 '이즈코르'(*)로서 3인칭 단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인칭 복수로 바꾸어 번역하려는 시도가 있는데(NIV),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그 시도의 이유는 이어지는 내용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원(의문)처럼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은 백성의 탄원(의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탄원(의문)을 그대로 묘사하는, 말하자면 그들의 의문을 그대로 인용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이즈코르'의 인칭 문제는 해결된다. '이즈코르' 곧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뜻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반역은 징벌을 받아 마땅한, 심지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를 지키지 않으셔도 될 만한 악한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고 계속 그 약속에 신실하셨던 것이다. 이 신실함은 모세와 그의 백성의 시대 곧 광야 시대 때 나타났었다. 이제 그 후대 이스라엘은 바로 그 신실하심의 결과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고통의 현실에 대하여 동일한 신실함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의문을 제기하였는데, 본절에서 14절까지 하나님은 그들의 의문을 직접 인용하시면서 그들의 현실의 고통에 대한 궁극적 결과를 알려주고 계신다.
ꃨ 바다 - 의심의 여지없이 이스라엘이 탈출하여 나왔던 애굽을 가리킨다. 홍해 사건은 12절에 나온다.
ꃨ 성신 -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궁극적 목적은 그들을 다른 민족보다 승한 거룩한 민족이 되게하기 위함이었다(출 19:4-6). 그런데 그 목적에 도달하게끔 역사하는 힘은 그들 가운데 보내신 성신으로 말미암았다.
성 경: [사63:12]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에 대한 찬양]
ꃨ 그 이름을 영영케 하려 하사 -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고 광야에서 인도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만이 참신이신 것을 이스라엘과 온 세계에 알리는 데 있었다. 애굽은 당시 세계에서 모든 과학, 문명의 중심 국가라 할 만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연구되어진 혹은 발생되어진 사건, 결과 등을 쉽게 온 세계로 퍼져 나갔다.
성 경: [사63:13]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에 대한 찬양]
ꃨ 말이 광야에 행함과 같이 - 여기 '광야'는 그 여러 특성 중 그 여정에 장애물이 없는 평평한 곳이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성 경: [사63:14]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하나님에 대한 찬양]
ꃨ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 높은 언덕 위로부터 비옥하고 물이 많은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의 떼를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시 23:2). 이들 가축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성령은 지친 광야의 방황 이후 이스라엘을 약속하셨던 땅에 들여보내사 그들로 하여금 안식하게 하셨다. 본절은 과거의 회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고통 중에 있는 그 후손 이스라엘에게도 하나님은 동일한 은혜를 베푸실 것을 암시한다.
성 경: [사63:15]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도움을 구하는 기도]
ꃨ 주여 하늘에서...보옵소서 - 본절에서부터 현재의 재난과 역경의 문제에 하나님의 은총이 개입되기를 원하는 이스라엘의 탄원이 시작된다. 그들의 탄원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그의 자녀로 택하신 사실과 과거 그의 조상들을 동일한 어려움에서 구원하셨던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ꃨ 간곡한 자비(*, 하몬 메에이카) - '하몬'(*)은 빗소리와 같은 소리(왕상 18:41), 노랫소리(겔 26:13), 무리의 떠드는 소리(삼상 4:14;14:19)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으나, 여기서는 '풍요', '풍부' 정도의 의미로 보면 무난하겠다. 그리고 '메에이카'(*)는 '부드럽다'는 뜻의 사용되지 않는 어근에서 유래한 말로 '복부' 혹은 상징적으로 '동정심'을 뜻한다.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할 때 본 구절의 뜻은 '풍부한 자비' 정도가 되겠다.
성 경: [사63:16]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도움을 구하는 기도]
ꃨ 아브라함은...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 이것은, 뒤에 이어지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그들을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대비적 표현이다. 여기 나오는 '아브라함' 그리고 '이스라엘'(야곱)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자들이다. 한편, 본문은 49:15을 생각나게 한다:"여인이 어찌 그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성 경: [사63:17]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도움을 구하는 기도]
ꃨ 어찌하여...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 인간이 냉소적으로 그리고 완고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할 때 하나님께서는 은혜 베푸는 일을 멈추고 그들로 방황하도록 내버려두신다. 이때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에게로 돌아올 수 없게 되는데, 이 경우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자신들을 완전히 버리신 것으로 판단하고 불평하게 된다. 본 구절은 바로 이스라엘의 그 같은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Keil & Delitzsch). 그러나 16절에서 하나님을 그들의 아버지, 구속자로 고백하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본 구절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소원해진 사실을 고백하는 역설적 표현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64:5).
성 경: [사63:18]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도움을 구하는 기도]
ꃨ 주의 거룩한 백성 -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려졌었다(62:12;신 7:6).
성 경: [사63:19]
주제1: [하나님의 진노와 이사야의 기도]
주제2: [도움을 구하는 기도]
본절은 그 의미를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원문과 문맥에 충실하면 의미 규정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핵심은 개역 성경의 '우리는 ...같으며' 부분을 정확히 규정하는 일인데 원문은 이렇다: '하이누 메올람 로 마솰타 밤'(*). 이것의 문자적 의미는 '우리는 당신의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당신은 그들을 다스리지 않았읍니다'이다. 바로 앞절에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가나안을 점령한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그 언급 후 바로 이어지는 '영원 전부터, 곧 옛적부터 우리는 당신의 것'이라는 고백은 대적이 그들의 본토를 점령한 사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가능한 추론은 옛적부터 하나님이 택한 백성,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이니 그것을 근거로 그 대적을 본토로부터 몰아내달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고백은 자신들의 본국 귀환의 근거와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그들을 다스리지 않았다'의 '그들'이란 이스라엘의 대적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본국 귀환의 또 다른 근거로서, 그 대적은 하나님의 율법을 모르는 민족이라는 사실이다. 그 같은 민족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못할 것은 당연하다. 이상의 소고를 정리할 때 본 절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서인 사실과 그의 대적이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민족인 사실을 근거로 자신들의 본토로의 귀환을 호소하는 탄원으로 볼 수 있다.
성 경: [사64:1]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
ꃨ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 하나님은 폭풍, 불 그리고 구름 가운데 땅 위에 내려오시는 분으로 묘사되어지곤 하는데 그 목적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그 백성을 축복하기 위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대적을 진멸하기 위한 것이다(시 18:9;144:5). 토론의 여지없이 여기서는 후자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성 경: [사64:2]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
ꃨ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 여기 사름을 당하고 끓음을 당하는 것은 '산들'(1절)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임하실 때 그 단단한 산은 불을 받고 그 강한 열기의 작용으로 인해 액체처럼 밑으로 흘러 내리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 임재의 영향력을 암시하는 것인데, 특히 화산을 연상케 한다. 저자가 화산 폭발을 보고 그 이미지를 본절에서 인용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리아, 팔레스틴 및 사해 주변에서 당시 화산 분출이 빈번했다는 역사적 고증을 고려할 때(Lyell)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아무튼 저자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문학적 혹은 실제적 이미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임재의 막강한 영향력을 묘사하고 있다.
성 경: [사64:3]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
ꃨ 우리의 생각 밖에 두려운 일 - 이전에 결코 목도하지 못했고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을 가리키는데, 그 일이란 출애굽 사건을 뜻한다.
ꃨ 산들이 주의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 이것은 불과 연기 가운데 하나님이 시내 산에 강림하셨던 것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출 19:18). '진동하였사오니'(*, 나졸루)보다는 '흘러 내렸으니'가 더 원문적 표현이다. 이스라엘은 과거의 이 역사가 자신들의 시대에도 동일하게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다.
성 경: [사64:4]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
ꃨ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 여기 '앙망하는 자'는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개입과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인데, 바울은 이 같은 사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부르고 있다(고전 2:9).
ꃨ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 본 구절을 바울은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자'로 적고 있다(고전 2:9). 이 같은 사실 때문에 어떤 학자는 바울이 원문을 오해했거나 원문이 파손되어 이 부분만 외경의 유사 부분에서 인용했다고 주장하거나(Lowth), 혹은 이를 바로 앞의 '들은자도 없고'와 표현만 다른 반복 구절로 보기도 하나 근거없는 주장이다.
성 경: [사64:5]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백성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
ꃨ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 - '기쁨으로 기꺼이 의를 행하는 자'란 뜻이다(요 7:17;행 10:35).
ꃨ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 - 원래 '기억하는 자'란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경이로운 구원 역사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그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기도, 예배, 찬양을 드리는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 '길'이란 율법을 뜻한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ꃨ 선대하시거늘 -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주권적으로 언약 관계를 설정하셔서 언약 관계를 맺고 있는 백성에게 평화, 안정을 주시고 계속적으로 우애를 나누시는 것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언약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를 뜻한다.
ꃨ 진노하셨사오며 - 이것은 탄원자의 깊은 사색을 반영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이 자비가 있으시고 그 언약 백성을 축복하는 분임을 알면서도, 본절의 '우리'는 하나님이 큰 진노중에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히 그 앞에 나아가시 못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의 죄악과 타락상에 대해 통절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진정한 회개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며 그 마음을 치며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이다(눅 18:13, 14).
ꃨ 이 현상이 이미 오랬사오니(*, 바헴 올람) - 여기 '바헴'(*)은 '그들(혹은 그것들) 안에'로 번역될 수 있는데 그 선행사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난해 구절로 만들어버린다. '그들(혹은 그것들)'에 대한 해석으로는, 먼저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가 있다('선대하시거늘'). 이 해석을 따를 경우, 본문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적 자비'를 뜻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본절 하반절은 하나님의 진노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원한 언약적 자비 때문에 이스라엘이 구원얻을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피력하는 대목이 되어버린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그 선행사를 바로 앞구절에 있는 '범죄'로 보는 해석이다. 이 해석을 따를 경우, 본절 하반절은 그 오랜(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올람'(*)은 '영원히'로 주로 번역되나 '옛날', '오랫동안'으로 번역되기도함)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조차도 할 수 없어 애타하는 심정을 묘사하는 대목이 된다. 이 경우는 개역 성경의 번역과 그 의미가 일치한다. 우리는 후자의 해석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 중요한 전제인 '바헴'을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로 보는 근거가 타당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절 이후 문맥을 고려할 때 후자가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진노하신 이유로 자신들이 오랫동안 범죄한 사실을 들고 있다.
성 경: [사64:6]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백성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
ꃨ 부정한 자(*, 타메) - 레위기적 의미의 오염되거나 더러워진 그 무엇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모세의 율법에 따른 오염되거나 혐오스러운 동물(레 11:29, 30), 인간(레 15:2-12) 등에 특히 문둥병자에게 주로 적용되었는데(레 13:3) 이 같은 자는 성도의 회중에서 추방당하였다.
ꃨ 더러운 옷(*, 이딤) - 문자적인 뜻은 '더러운 걸레'이다. '사용한 생리대'를 뜻하기도 한다(레 15:33;20:18).
성 경: [사64:7]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백성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
ꃨ 스스로 분발하여(*, 미트오레르) - 이는 '깨어나다', '일어나다'는 뜻인 '우르'(*)의 히트파엘형(강의 재귀형)으로서 눌려 있던 영적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애쓰는 모습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이스라엘 전체는 영적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영적 무기력 상태를 깨닫지도 못하였다.
ꃨ 얼굴을 숨기시며 - 하나님의 '얼굴'은 '은혜'를 가리킨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인 은혜를 베푸신 데서 시작된다. 그런데 그 은혜를 중단하자 많은 결과가 발생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이스라엘이 빠졌던 영적 무기력이었다. 물론 하나님이 은혜 베풀기를 중단하신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
ꃨ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테무게누) - 문자적인 뜻은 '녹게 하셨나이다'이다. 얼음 따위가 녹아 내리는 모습 따위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본 용어는 주로 이스라엘의 대적이 하나님이 일으키신 초월적인 현상 앞에서 공포로 떨 때의 심적 상태를 묘사할 경우 사용되고 있는데(출 15:15), 여기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적용되고 있다.
성 경: [사64:8]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백성의 탄원]
본절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토기장이에, 자신들을 진흙에 비유하고 있다(45:9;렘 18:6). 토기장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흙을 주무른다. 진흙이 어떤 모양의 용기가 되는 것은 혹은 다시 진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전적으로 토기장이에 달려 있다. 성경에서 본 토기장이 비유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다. 본절에서 이스라엘은 자손들의 운명, 존재 자체가 하나님 손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고백하는 까닭은 구원을 호소하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그들 스스로에게 달려 있지 않으며 오직 그들의 운명을 쥐고 계신 하나님께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먼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구원을 호소하려는 것이다.
성 경: [사64:9]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백성의 탄원]
ꃨ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 여기 '주의 백성'이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며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성을 읽게 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언약 때문에 범죄에 따른 하나님의 징벌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징벌에서 놓이고 다시 언약 백성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리로 나가는 출발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의 호소이다.
성 경: [사64:10]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백성의 탄원]
ꃨ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 지금 서술된 장면은 그 성취 시점이 미래이다. 말하자면 저자가 기술하고 있는 시점은 서술된 내용이 아직 성취되지 않은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미 성취된 듯 완료 시제로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 내용이 미래에 반드시 성취된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거룩한 성읍들'에 대해 어떤 학자는 동일한 예루살렘의 고지대와 저지대를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본다(Vitringa). 그러나 성경 다른 부분에서 예루살렘을 고지대, 저지대로 나누고 있는 예가 없으므로 이 견해는 받기 어렵다. 아마도 예루살렘을 포함한 온 이스라엘 본토가 쑥밭이 되어버린 상황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복수형을 사용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것 같다.
성 경: [사64:11]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백성의 탄원]
ꃨ 열조가 주를 찬송하던...전 - 여기 '찬송하던...전'이란 하나님께 예배하던 성전을 가리킨다. 지금 이스라엘의 고통을 심화시키는 요소는 전토나 가옥의 파괴 및 손실이 아니라 그의 조상들이 오랫동안 예배 처소로 삼아왔던 성전의 파손이다. 진지한 회개의 일면이 엿보인다.
ꃨ 즐거워하던 곳 - 원문 직역은 '소망의 대상들'이다. 성전을 포함하여 자신들이 살던 가옥들 그리고 온 도성을 가리킨다.
성 경: [사64:12]
주제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
주제2: [백성의 탄원]
ꃨ 일이 이러하거늘 - 여기 '일'이란 '이러한 것들', 곧 지금까지 자세히 열거한 재앙들을 가리킨다(10, 11절). 참회개(5절)와 재앙의 진상을 아뢴 후 하나님의 신속한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
성 경: [사65:1]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거역에 대한 심판 경고]
ꃨ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 바로 앞장 마지막 부분에서 토로된 이스라엘의 탄원에 대한 대답의 첫 성(聲)으로 주어진 것이 바로 본 구절이다.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란 이방인을 가리킨다. 그리고 '물음을 받았다'는 '니드라쉬티'(*)인데 이것은 수동태로서 '찾음을 당하였다'가 문자적인 뜻이다. 이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신학적으로 다소 어폐(語弊)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으시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이 이방인도 부르신 것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보면 된다. 바울은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롬 10:20). 그런데 구원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의 탄원이라는 문맥에서 암시된 이방인 구원에의 비전은 구원 역사에 관한 좀더 넓은 시야를 열어준다.
성 경: [사65:2]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거역에 대한 심판 경고]
ꃨ 내가...불선한 길을 행하는 - 이것은 다음절에서부터 자세하게 열거하게 될 이스라엘의 패역한 행동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배척하셨던 그리고 이방에게 그의 구원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하신 전체적인 이유를 담고 있다.
ꃨ 종일 손을 펴서 - '손을 펼친다'는 것은 초청을 뜻한다(잠 1:24).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의 은총 속에서 이스라엘을 초청하셨다.
성 경: [사65:3]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거역에 대한 심판 경고]
ꃨ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 이것은 이방의 우상 숭배와 연관성이 있는 표현이다. 이방인들은 주로 수풀 속에서 제사 의식을 가졌다. 또한 그들은 벽돌 위에 미신적인 상징을 새기기도 하였는데 돌 대신 벽돌을 재료로 취한 까닭은 벽돌이 돌 보다 그 위에 새기기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출 20:25에 보면 제단을 세울 때 다듬은 돌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것도 어떤 면에서는 벽돌 위에 미신적 주문이나 형상 새기는 것을 금하고자 한 것과 일맥 상통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방의 제사는 그 외형적인 모양도 취하지 않기를 원하셨다.
ꃨ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 여기 '항상'의 원문 직역은 '계속적으로'이다. 이것은 2절의 '종일' 곧 '계속적으로'와 적절한 대비를 이룬다.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초청하셨지만 그들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였다(신 32:21).
성 경: [사65:4]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거역에 대한 심판 경고]
ꃨ 무덤 사이에 앉으며 - 본문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두 가지이다. (1) 영매(靈媒)가 되기 위해 묘지에 왕래했던 사실(8:19)을 가리킨다(Whybray).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생을 떠난 사람의 경우 이생에 관한 모든 일을 알고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하여 죽은 자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자 하는 영매술이 유행했다. (2) 죽은 자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러 무덤으로 간 것을 가리킨다(Vitringa). 이 둘 중 어느 하나를 단정적으로 취하기는 어렵다.
ꃨ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 '은밀한 처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추림'(*)의 원형은 '지키다', '숨기다', '숨다' 등을 뜻하는 '나차르'(*)이다. 따라서 본문은 이방의 신상을 안치해 둔 신전(Jerome)이나 지하 토굴(Delitzsch)을 가리킬 것이다. 그리고 '지내며'(*, 얄리누)는 '하룻밤을 머물다'는 뜻이다.
ꃨ 돼지 고기를 먹으며 - 이방인들은 돼지를 대체로 식용이나 제물로도 사용하였던 반면, 이스라엘은 그러한 사용을 일절 금하였다. 이것을 알았던 신 구약 중간 시대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Antriochus Epiphanes)는 여호와 신앙의 포기 및 배교의 증표로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하였다. 한편, 돼지가 이방의 희생 제사에 사용되기도 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돼지고기를 먹었다는 것은 단순한 식용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즉, 제물로 바쳐진 것을 먹는 것은 그 제물이 바쳐진 대상에 대한 경의를 뜻하는 셈이 되었던 것이다. 본문에서는 바로 이 사실도 넌지시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ꃨ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 여기 '국'(*, 파라크)의 문자적인 뜻은 '조각'이다. 이방 종교 의식에는 신에게 바치는 희생 동물의 살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드리는 의식이 있었는데, 본 구절은 바로 그 같은 의식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앞구절의 '돼지'를 조각내어 드리기도 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여기 '가증한 물건'이란 돼지고기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성 경: [사65:5]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거역에 대한 심판 경고]
ꃨ 너는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말라 - 그 당시 혐오스러운 이방 예식에 종사하던 자들이 영적 오만으로 자신을 구별하였던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주님 시대 당시 위선적인 자기 의로 가득 찼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부류를 연상시킨다(마 9:11;눅 5:30;18:11;유 1:19).
ꃨ 내 코의 연기요...불이로다 - 여기 '코'(*, 아프)는 문자 그대로의 '코'를 의미하지만(민 11:20;욥 40:24) 때때로 '분노'를 뜻하기도 하는데 분노는 강한 호흡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본 구절은 이방 제사자들의 역겨운 행동이 연기가 코를 찌르고 불쾌하게 하듯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거나, 그들의 행동이 분노의 상징인 하나님의 코에 불을 붙였다는 것, 곧 하나님의 진노케 하였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성 경: [사65:6]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거역에 대한 심판 경고]
ꃨ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 이 표현은 왕의 포고령을 그 백성이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서책(書冊)에 혹은 테이블 따위에 기록하여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세워두거나 비치하던 당시의 관습을 연상케 한다. 이방 신 제사 금지와 그 금지를 어길 때에 따를 처벌에 관한 사실은 이미 율법책에 기록되어 있다.
ꃨ 그들의 품에 보응할지라 - 여기 '품'(*, 헤크)이란 '가슴'이라는 뜻 외에 물건 따위를 넉넉히 받기 위하여 길게 늘어뜨린 옷의 앞자락 부분을 가리킨다(출 4:6, 7;잠 6:27). 여기서는 범죄한 이방 제사자들에게 임할 징벌이 크고 심할 것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성 경: [사65:7]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거역에 대한 심판 경고]
ꃨ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니 - 이것은 이스라엘의 죄악이 결국 하나님의 엄중한 징벌이 임하기까지 세대에서 세대를 지나면서 축적되어 왔던 것을 암시한다.
성 경: [사65:8]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ꃨ 포도송이에는 즙이 있으므로 - 이 구절은 여러 원인 때문에 대부분이 상해버린 포도송이들 중에서 그래도 쓸 만한 송이를 가려내는 작업을 연상케 한다.
ꃨ 나도...그같이 행하여 - 포도를 수확하는 사람이 상해버린 포도 송이들 중에서 좋은 포도즙을 낼 수 있는 포도 송이를 가려 뽑듯이 하나님이 불경건한 이스라엘 민족 대부분을 명망시키는 중에 경건한 '남은 자'를 아껴 두실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본서에는 이 사상이 반복되고 있다(1:9;6:13; 10:21;11:11-16).
성 경: [사65:9]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ꃨ 씨 - '거룩한 씨'란 뜻으로, 조상들의 죄로 말미암아 몰수당했던 거룩한 땅을 다시 소유키로 되어 있는 야곱의 후손들을 가리킨다(6:13).
ꃨ 나의 산들 - 예루살렘과 그 인근 지역이 지형학적으로 높은 곳이므로 산이라 불리웠다.
성 경: [사65:10]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ꃨ 사론 - 지중해 연안 갈멜 산 남부 지방인데 빼어난 경관과 비옥한 땅으로 유명한 곳이다(35:2).
ꃨ 아골(*, 아코르) - 문자적인 뜻은 '고통'인데 여리고 가까이에 있는 골짜기의 이름이다. '고통'이란 의미가 붙여진 이유는 과거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전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받았던 곳이기 때문이다(수 7:24). '아골 골짜기'란 호칭은 성경에서 재앙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처소로도 사용된다(호 2:15).
성 경: [사65:11]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ꃨ 갓에게 상을 베풀어 놓으며 - '갓'은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여겨졌던 시리아 신(神)으로 이해되며 포에니시아(Phoenicia), 팔미르(Palmyra) 및 팔레스틴 등지에서 숭배되었다(수 11:17;12:7;15:37 참조, J. Watts, Whybray). 이 신을 섬기기 위해 마련된 상 위에는 온갖 음식, 특히 포도주와 꿀을 섞은 술잔 등이 진설되었다고 한다(Jerome).
ꃨ 므니(*, 메니) - '할당하다', '세다' 등을 뜻하는 '마나'(*)의 변형이 분명한데, 많은 견해가 있지만 운명의 신으로 숭배되었던 것 같다(J. Watts, Whybray).
성 경: [사65:12]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ꃨ 칼에 붙일 것인즉 - 고도의 언어적 유희가 돋보이는 구절이다. 여기 '붙일'에 해당하는 '마니티'(*)는 11절의 '메니'(*)와 그 원형(*, 마나)이 동일하다. 패역한 백성이 그들의 운명을 세듯 좌지 우지할 것으로 믿었던 바로 그 신의 운명을 하나님께서 좌지 우지하신다는 것이 본 언어 유희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헛된 우상 '메니'(*)를 의지한 이스라엘의 불경건한 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
성 경: [사65:13]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본절은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는 자와 배척하는 자가 서로 다른 운명에 처할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본절이 이스라엘 역사 속의 어떤 구체적인 사건을 암시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주릴 것'이란 A.D. 70년 로마 디도 장군의 예루살렘 포위로 백십여 만 명이 기근으로 몰살한 역사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근거는 불명확하다(Houbigant). 뒷문맥에 근거하여(17-25절) 본절을 다분히 종말론적 상황에 대한 묘사로 보는 것이 좋겠다.
성 경: [사65:14]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ꃨ 심령이 상하므로 - '상하므로'의 히브리어 '솨바르'(*)는 '산산이 부숴지다', '찢어지다'는 뜻으로서 극심한 재앙으로 인해 그 마음이 크게 눌릴 때 사용된다. 하나님 나라에서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이 제외될 것을 암시하는 대목인 마 8:12에 유사한 뜻의 표현이 사용되었다:"나라의 본(本)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성 경: [사65:15]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ꃨ 너희의...될 것이니라 - 어떤 이의 이름을 다른 사람에 대한 저주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끔찍한 저주의 사례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실례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저주하기 위해 시드기야와 아합의 이름을 사용한 렘 29:22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Whybray).
성 경: [사65:16]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구원과 심판]
ꃨ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 환난이 잊어졌다는 것은 환난이 종결되었음을 뜻한다. 말을 바꾸면 하나님의 은총이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우상에게 맹세하고 복을 비는 행위는 사라지고 참신이신 하나님께 맹세하고 복을 구하게 될 텐데 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성 경: [사65:17]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본절은 1차적으로 포로 귀환 이후 새로이 회복될 공동체의 상황을 언급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메시야의 통치시대의, 더 이상 고통과 슬픔 따위가 없는 완전한 세계를 바라보게 하고 있다. 갈렙이 그 발로 밟았던 바로 그 땅을 물려받았듯이(신 1:36), 메시야와 그의 백성들은 전혀 새롭게 변화된 새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34:4;66:22;히 12:26-28;벧후 3:13;계 21:1)
성 경: [사65:18]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ꃨ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 새로이 재건될 예루살렘 혹은 새 창조로 말미암은 천성(天城) 예루살렘에 즐거움이 넘치게 되리라는 예언이다(I will create Jerusalem to be a delight, NIV).
성 경: [사65:19]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ꃨ 우는 소리와...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 1차적으로는 예루살렘, 그리고 2차적으로는 모든 구원받을 자에 대한 예언이다(25:7, 8;35:10;계 7:17;21:4).
성 경: [사65:20]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본절은 인간의 평균 수명이 최소한 100세일 것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역사 종말 이후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새 세계는 수명이란 것이 아예 없이 영원히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점은 본절의 평균 수명 100세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영원히'라는 의미 정도로 해석할 때 해소될 수 있다. 이 해석에 비추어 보건대, 아마도 너무 일찍 죽는 현세대의 상황과 대비시키기 위해 평균 수명의 이미지를 사용한 것 같다.
성 경: [사65:21]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본절 역시 포로 귀환 후의 상황에 대한 약속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가옥 건축과 과실 재배에 관한 본절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이는 새 세계에 가옥이 있고 노동이 있음을 암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 세계를 좀더 실감나게 상상케 하기 위하여 익히 알고 있는 현세상의 이미지를 끌어들이고 있다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성 경: [사65:22]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본절 상반절은 여호와께 불순종하는 자에게 내려졌던 저주와 정반대되는 내용이다:"...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으나 네가 그 과실을 쓰지 못할 것이며"(신 28:30).
ꃨ 나무 - 자연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것 중의 하나로, 이 역시 영원한 삶을 보다 실감나게 하기 위한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61:3;시 92:12).
성 경: [사65:23]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ꃨ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 원문 직역은 '고통을 위하여 낳지 않을 것이며'이다. 이것은 후손의 운명을 암시한다. 당시 산모가 아기를 낳을 경우, 아이는 출산 과정에서 죽기도 하고 분만이 되어도 짧은 생(生)을 살고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성 경: [사65:24]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64:7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와 대조를 이루는 구절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하나님은 그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과 그 백성 간의 친밀한 영적 교제를 암시하는 표현이다.
성 경: [사65:25]
주제1: [남은 자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
주제2: [새 하늘과 새 땅]
인간의 범죄 이후 여러 현상이 발생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자연의 조화가 깨어지고 서로 죽이고 죽는 저주가 임했다는 점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한다'라고 묘사하고 있다(롬 8:22). 그런데 본절에서 저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그와 같은 부조화가 사라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육식 동물의 식성이 바뀔 것이며 심지어 저주에 관한 최초의 언급이 나오는 창 3장을 연상케 하는 뱀까지도 더 이상 파괴자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의와 평강과 희락의 세계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곧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 조성된 적대감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로 청산될 때에만 가능하다.
성 경: [사66:1]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그릇된 예배에 대한 경고]
ꃨ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무슨 집을 지을꼬 - 신령과 진정은 결여된 채(요 4:23 참조)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제사에만 몰두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초월성을 부각시키는 내용이다(대상 28:2;시 11:4;99:5;132:7;애 2:1). 즉, 하나님은 특정한 건물 안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온 우주에 편재하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구절로서, 여기서는 성전 건축과 연관되는 내용이라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히찌히(Hitzig)는, 포로 귀환 후에도 계속 바벨론에 남아 자기들 나름대로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던 유대인들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으로 해석한다. 그런가 하면 움브라이트(Umbreit)는, 성전이나 희생 제사 예식이 도무지 필요없는 새 예루살렘에서의 상황에 대한 묘사로 해석한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포로 귀환 후 성전 재건에 착수해야 할 유대 공동체에게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예배를 미리 강력하게 경고하는 내용으로 이해함과 아울러, 더 나아가서는 신약 시대와 새 예루살렘에서의 신령한 예배를 겨낭한 내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성 경: [사66:2]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그릇된 예배에 대한 경고]
ꃨ 마음이 가난하고(*, 아니) - 단순히 재산이 없는 자가 아니라 자신에게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죄의 문제를 해결해줄 구주(救主)를 기다리며 사는 자를 가리킨다. 동일한 용어가 산상 수훈의 한 대목에 나타난다(마 5:3). 바로 이 같은 자의 심령의 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요 14:23). 한편,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에 성전이란 없다. 그때에는 주 하나님 그분이 성전 자체이시다(계 21:22).
성 경: [사66:3]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그릇된 예배에 대한 경고]
유대인에게 있어 '개'란 추잡함이나(신 23:18) 경멸스러움을(삼상 17:43) 상징하는 말이기도 했는데, 그 목을 꺾어 죽여서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일은 지극히 혐오스러운 모습을 나타낸다. 또한 돼지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일 역시 이방 제사에서나 행해졌던 혐오스러운 것이었다(65:4). 그런데 본절은 율법이 허용하고 있는 소 및 어린 양의 제사를 이방의 제사인 양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2절을 고려하면 이 난제는 쉽게 풀린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제사의 바른 정신을 깨닫고 그 정신에 입각해 드리는 제사인데, 그 제사란 가난한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이다. 바로 이 같은 내면적 자세를 무시한 채 그냥 동물만 잡아 드리는 제사는 이방의 제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본절의 요지이다.
성 경: [사66:4]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그릇된 예배에 대한 경고]
ꃨ 유혹(*, 타알룰레헴) - '악한 행동을 하다', '악하게 대하다'는 뜻인 '알랄'(*)에서 온 용어로서 '안달', '토라짐', '뻔뻔함' 등을 뜻하나 3절의 '자신들이 멋대로 택한 길'(개역 성경에는 '자기의 길'로 나와 있음)과 대비를 이루는 용어로 볼 때 '망상', '잘못된 생각' 정도로 의역함이 가능하겠다. 많은 학자들이 본 용어를 망상, 잘못된 생각이 야기할 수 있는 '재앙'으로 번역하고 있다(Noyes, Lowth).
성 경: [사66:5]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신실한 자들이 받을 위로]
ꃨ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쫓아내며 - 공공 예배와 연관된 특권을 박탈당하거나 그 공동체로부터 출교당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님도 공생애 동안 이것을 참성도에게 닥치는 중요한 시련 가운데 하나로 가르치신 바 있는데(마 10:22), 구체적으로는 사도들이 유대인들에게 그런 취급을 당했다(요 16:2).
ꃨ 여호와께서는...원하노라 - 남은 자들을 향한 자신들의 포학이 하나님을 위한 열정 때문에 나온 것인 양 퍼붓는 박해자들의 조롱조의 도전이다.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께서도 동일한 조롱을 받으셨다(마 27:42, 43).
성 경: [사66:6]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신실한 자들이 받을 위로]
소리가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들린다는 것은 이스라엘 안보다는 이스라엘 밖에 있는 대적, 곧 이방 대적을 향한 하나님의 보응을 암시한다(슥 12:2, 3;14:3, 19-21). 논조가 본절에서 급히 바뀌었는데 이것은 이방 대적을 향한 하나님의 복수가 급박하게 이루어질 것을 암시한다.
성 경: [사66:7]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신실한 자들이 받을 위로]
전혀 고통없이 그것도 순식간에 자녀를 출산한다는 이 비유적 예언은, 1차적으로는 이적적 섭리에 따른 포로들의 귀환을 가리키며, 더 나아가서는 교회의 태동과 발전을 암시한다. 본절의 예언처럼 성령 감림으로 교회가 시작된 후 이방의 개심자들과 유대의 개종자들의 수는 급속히 불어났다(행 2장). 특히 교회의 태동과 확장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출 경우 여기 '남자, 곧 영적 이스라엘이 단수로 되어 있는 것은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가 한 머리(메시야)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임을 가리키는 것이거나, 영적 이스라엘 복수 공동체를 가리키는 대표 단수를 뜻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성 경: [사66:8]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신실한 자들이 받을 위로]
ꃨ 나라(*, 에레츠) - 문자적인 뜻은 '땅'이지만 평행구가 '민족'으로 되어 있으므로 개역 성경처럼 '나라'로 의역하는 것이 좋다. 땅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오랜 세월 속에서 그 소산을 내기 마련이다(막 4:28). 이 원리는 세상 나라의 발전 속도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는 이 원리를 초월한 하나님의 이적적 개입이 있게 될 것이다.
성 경: [사66:9]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신실한 자들이 받을 위로]
ꃨ 나는 해산케...닫겠느냐 - 8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은 예언이 필연적으로 성취될 수 밖에 없는 근거를 제시한다. 그 근거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역사하심이다.
성 경: [사66:10]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예루살렘의 회복과 영광]
본절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 혹은 이방인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주는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이다. 슬픔으로부터 기쁨으로의 주제의 전환은 본서 하반부(40-66장)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인데 그 완전한 성취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루어질 것이므로 본 기쁨의 노래는 '종말론적 찬양의 노래'라고 불리운다(Whybray).
성 경: [사66:11]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예루살렘의 회복과 영광]
ꃨ 젖을 빠는 것 같이...만족하겠고 - 이사야는 '회복될 예루살렘'을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1) 회복될 예루살렘이 그들의 본향이며(잠 27:8;히 11:14-16), 거기에는 (2) 신령한 젖이 있으며(벧전 2:2), (3) 모든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생명의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시 73:10;계 22:1, 2).
성 경: [사66:12]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예루살렘의 회복과 영광]
ꃨ 주리니(*, 노테) - 문자적인 뜻은(주먹이나 텐트 따위를 펼칠 때와 같은) '뻗치다'(창 12:8) 혹은 (강의 범람 따위로 인하여 없었던 지류가 새로 생겨났을 때를 가리키는) '뻗어나다' 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강의 범람으로 전에 강이 없던 곳에 새 지류가 생기듯이, 전에 맛보지 못했던 신령한 평안과 번영이 넘치리라는 예언이다.
ꃨ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 문자 그대로는 49:22의 경우처럼 이스라엘이 이방의 부요를 받아 나누게 될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사랑하는 모든 자가 하나님이 주는 영육간의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을 가리킨다.
성 경: [사66:13]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예루살렘의 회복과 영광]
예루살렘이 그 자녀를 돌보는 개념으로부터 여호와께서 어머니의 역할을 감당하는 개념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여기서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고 구하시는 모든 은총의 진정한 주체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상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만이 생모가 자녀를 돌보는 이상으로 그 백성을 돌보신다는 주제가 49:13-15 이후 다시 반복되고 있다.
성 경: [사66:14]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예루살렘의 회복과 영광]
ꃨ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 문자적인 뜻은 '너희 뼈들이 풀처럼 번성하리라'이다. 인간의 신체 중에 뼈를 소재로 한 이미지는 성경에 자주 나온다. 몸의 활력이 스러질 때, 많은 고통을 받을 때 뼈가 연약해졌다 혹은 말랐다라는 표현이 사용된다(시 6:2;22:14, 17;38:3;51:8;잠 14:30;17:22;애 1:13). 반면 번영, 건강, 혈기 왕성 등을 나타낼 때는 그 뼈가 살진다거나 혹은 본 구절과 같은 표현이 사용된다(58:11). 하나님의 진노의 불로 인해 바짝 타버린 뼈와 같은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은 이제 다시 생기를 회복할 것이다(잠 3:8;15:30).
성 경: [사66:15]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악인에게 임할 심판]
ꃨ 불에 옹위되어 - '불'은 그의 대적들을 심판하고 징벌하기 위한 주의 강림의 상징으로 흔히 사용되는 이미지이다.
ꃨ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 - 여호와를 전사(戰士)로 비유한 본 이미지는 바벨론 군대의 당도를 묘사할 때 사용된 바 있다(렘 4:13).
성 경: [사66:16]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악인에게 임할 심판]
원본에 뚜렷이 나타난 평행법을 살려 상반절을 재번역하면 이와 같다:'불로 여호와께서 심판을, 그의 검으로 (그가 심판하시리라) 모든 육체를.' 심판의 도구인 불과 검이 강조되었다.
ꃨ 모든 혈육 - 하나님의 진노의 모든 대상자들을 가리킨다. 경건한 자들은 주님에 의해 심판의 장소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숨겨질 것이다(26:20, 21;시 31:20;살전 4:16, 17).
성 경: [사66:17]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악인에게 임할 심판]
ꃨ 가증한 물건(*, 하쉐케츠) - 식용이 금지된 부정한 짐승들을 기록하고 있는 레위기에 나온 용어이다(레 11:10-45).
ꃨ 쥐 - 레 11:29에서 부정한 동물로 분류되었다.
성 경: [사66:18]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만민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여호와]
ꃨ 아노라 - 원문에는 이 단어가 없이 '내가 그들의 일들과 생각들을...'이라고만 되어 있다. 문맥을 고려해서 '왜냐하면 내가 그들의 일들과 생각들을 심판할 것이기 때문이다'로 번역하는 견해가 있는데(Maurer), 앞절에 '...망하리라'가 있다는 점에서 취해 봄직도 한 번역이다. 하반절과 19절은 심판 이후의 후속 조치를 설명하고 있다.
성 경: [사66:19]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만민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여호와]
ꃨ 징조(*, 오트) - 문자적인 뜻은 '깃발', '표시', '표적'이다. 본서에서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7:14), 애굽 땅 중앙에 여호와를 위해 세워질 제단(19:19, 20) 혹은 잣나무와 화석류가 가시나무와 질려를 각각 대신하게 될 것(55:13) 등을 '오트'라는 말로 표현한바 있다. 여기서 이 말이 지칭하는 것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1) 이곳 저곳 멀리 흩어졌던 유대인들의 귀환의 예비 작업으로, 모임 장소를 알리기 위해 높은 장소에 세울 물건. (2)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마 12:38-40, Kidner). (3) 하나님이 파송하실 자에게 길을 알려 주시기 위해 세운 이정표(Westermann). 이중 본문맥에서는 (3)의 견해가 보다 자연스러울 것 같다.
ꃨ 그들 중 도피한 자 - 이에 관한 해석도 가지가지이다. (1) 유대인들 중 남은 자(Grogan). (2) 열방들에 대한 심판에서 살아남은 자(Westermann). 여기서는 이방인들 중 여호와 신앙에 복종하며 열방에게 임할 심판에서 벗어나는 자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ꃨ 다시스 - 오늘날의 유럽 서부 스페인의 어느 지방인데, 여기서는 당시 히브리인들에게 가장 먼 곳에 있는 항구로 알려진 곳이었기 때문에 거명되고 있다.
ꃨ 뿔 - 아프리카 북동부에 위치한 지방으로 애굽과 에디오피아 국경 지방이기도 하다.
ꃨ 룻 - 소아시아의 리디아 지방을 가리킨다.
ꃨ 두발 - 흑해와 아락세스 사이코커서스 남부 지역에 위치한 티발레니안스를 가리킨다.
ꃨ 야완 - 성경에 나오는 야완의 모든 후손들을 포함하는 '이오니아인들'로 불리우는 자들이다.
성 경: [사66:20]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만민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여호와]
ꃨ 그들이...드릴 것이요 - 문자 그대로는 이방인들이 흩어진 이스라엘을 거룩한 땅으로 데려온다는 것인데, 영적으로는 이방 세계로부터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교회로 하나님의 택한 자들의 행렬이 이어질 것을 뜻한다.
ꃨ 교자(轎子) - '마차'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자세하게는 낙타 따위가 이끄는 유개차(有蓋車), 말하자면 바람이나 비를 막기 위하여 마차 위에 덮어 씌운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성 경: [사66:21]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만민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여호와]
ꃨ 그 중에서...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 여기서 '제사장과 레위인'이란 직접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제 메시야의 시대가 오면 이방인들이 직접 하나님을 예배하는 부류에 속하게 될 것이다(벧전 2:9).
성 경: [사66:22]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만민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여호와]
ꃨ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 바로 앞문맥에서 언급된 바, 이방인이 직접 하나님을 섬기는 상황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 사실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3).
성 경: [사66:23]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만민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여호와]
ꃨ 매 안식일에 - '한 안식일에서 또 다른 안식일이 되는 것만큼 자주'란 뜻이다. 이것은 메시야의 시대가 오면 안식일 규례가 영원한 규례로 정착될 것을 의미한다.
성 경: [사66:24]
주제1: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
주제2: [만민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여호와]
ꃨ 그들이...볼 것이라 - 이스라엘이 홍해에서 진멸당한 애굽 군대의 시체를 목격했듯이(출 14:30)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이 모든 악인들의 멸망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ꃨ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 예루살렘 남부 힌놈의 골짜기를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30:33). 경건한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에 이어지는 불의한 사단의 세력에 대한 심판으로 본서는 끝맺고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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