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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이사야

[스크랩] 이사야 제1부 (2): 열방에 대한 심판 (13-23장)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07

이사야 제1부 (2): 열방에 대한 심판 (13-23장)


2. 열방에 대한 심판: 여호와의 날(13:1-23:18)

  이 부분에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예고되어 있다. 여기에 나타나는 열방들은 세상 모든 나라들의 대표로서 등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바벨론과(13:1-14:23, 21:1-10), 앗시리아(14:24-32), 모압과(15-16장) 다메섹과(17장) 구스(이집트)와(18-20장), 에돔(21:11-13), 그리고 아라비아와(21:13-17) 예루살렘과(22장) 두로(23장)에 적용이 되고 있다. 유다는 각 시대의 상황에 따라서 외교정책을 결정했다. 유다는 북 이스라엘과 아람이 동맹을 맺고 유다를 위협할 때에 앗시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유다는 앗시리아가 예루살렘까지 위협하고 공물을 징수해 가게 되자, 그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주변의 여러 나라들과 협조했다. 이때에 이사야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스스로 자기의 유익을 위해 추구하는 모든 정책이 실패할 것을 예언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와 그 지도자들에게까지 그들의 이중성을 책망했다.

 "너희가 또 옛 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 앙망하지 않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자를 존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22:11)"

  이사야에 언급된 하나님 왕국의 대적은 다음과 같이 셋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압제자들: 바벨론과 앗시리아
 2) 말썽쟁이들: 모압, 블레셋, 아람, 에돔
 3) 유혹자들: 구스(이집트), 두로

  이사야는 하나님 나라에 부정적으로 대응한 이러한 나라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경건한 자들의 기도는 대적들의 멸망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2-1. 압제자들에 대한 심판(13-14장)

 가.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고(13:1-14:23)

 * 여호와께서 군대를 소집하심(13:1-5)
  하나님은 가장 먼저 바벨론에 대해서 경고의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은 먼저 나무없는 민둥산에 멀리서도 볼 수 있게 깃발을 세우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큰소리로 사람들을 부르고,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어서 사람들에게 서둘러 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바벨론을 치기 위해서 그 성문을 공격하라고 말씀하신다(13:1-2). 하나님은 진노를 풀기 위해서 구별한 용사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산 위에서 함께 모여서 소리를 지르면서 바벨론을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치기 위해서 먼 곳에서 데려온 군대들이었다(13:3-5).

 * 심판 날의 광경(13:6-16)
  하나님은 바벨론을 행해서 여호와의 날, 즉 심판의 날이 가까웠음을 알리고 그들에게 애곡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때에는 모든 사람들의 손이 피곤해지고 그 마음에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임신한 여인처럼 고통하며, 서로 쳐다보고 놀라서 얼굴이 불처럼 붉어질 것이다(13:6-8). 그때에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임하여 땅을 황폐하게 만들고 죄인을 멸하실 것이며, 그때에 하늘에서는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고 어두워질 것이다(9-10). 그때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고, 교만한 자를 끊고 오만한 자를 낮추며, 수많은 사람이 죽어서 그 땅에 사는 사람이 거의 없게 만드실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시고, 바벨론 사람들이 쫓기는 노루와 양처럼 도망치게 만드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도망치다가 잡혀서 창과 칼에 찔려 죽을 것이며, 어린 아이는 메어침을 당하고, 집은 약탈을 당하며, 아내는 강간을 당하게 될 것이다(11-16).

 * 메대에게 패망하는 바벨론(13:17-22)
  하나님은 바벨론을 칠 도구로서 메대를 선택하실 것이다. 그들은 뇌물로 제공하는 은과 금을 받지 않고 그들을 공격할 것이다. 메대 사람들은 활로 바벨론의 청년들을 죽이고, 아이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죽일 것이다. 그때에 바벨론은 메대사람들의 노리개가 되어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 땅은 저주를 받아 사람들이나 가축들이 거하지 않고, 야생 짐승들이 우굴거리며, 집에는 타조가 살고, 궁성에서는 이리와 들개가 우는 곳이 될 것이다(17-22).

 * 이스라엘의 회복(14:1-8)
  그때에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포로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은 다시 회복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징계했던 자기 백성을 다시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을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그때에 돌아온 유대인들은 자기를 사로 잡았던 사람들을 노비로 삼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회복의 날에 바벨론 왕에 들려줄 노래 가사를 미리 가르쳐 주셨다. 그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1-4(상)).

 "학대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패권자의 홀을 꺾으셨도다.
  그들이 분을 내어 여러 민족을 치되 치기를 마지 아니하였고,
  노하여 열방을 억압하여도 그 억압을 막을 자 없었더니,
  이제는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니,
  무리가 소리 질러 노래하는도다!
  향나무와 레바논 백향목도 너로 인해 기뻐하며 이르기를,
  네가 넘어뜨리웠은즉 올라와서 우리를 작벌할 자 없다 하는도다(14:4(하)-8)."

 * 조롱당하는 바벨론 왕(14:9-17)
  그때에 음부에서는 죽은 바벨론 왕을 환영하게 될 것이다. 음부에 있는 모든 영웅과 왕들이 바벨론 왕을 환영하면서 "너도 우리와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고 말하게 될 것이다. 한때 끝없이 높아졋던 바벨론은 음부에까지 낮아지게 될 것이다. 그때에 구더기가 그의 시체 아래에 깔리고, 지렁이가 그의 이불이 되어 그를 덮게 될 것이다(9-11). 하늘의 계명성처럼 빛나던 바벨론 왕은 하늘에서 떨어져서 땅에 떨어지게 될 것이며, 큰 나무가 찍혀 넘어지는 것처럼 넘어지게 될 것이다. 그는 스스로 하늘에 올라가서 별 사이에 자기 보좌를 두고, 북극 산위에 가서 앉을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려고 생각했다. 고대에는 신들이 특정한 산에 모여 집회를 갖는다는 생각이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예, 그리스의 올림푸스 산). 이러한 경우에 신들이 모이는 산은 북쪽에 있었다. 여기 언급된 '집회의 산'은 신들이 모이는 곳으로 아려진 시리아 북쪽의 자폰산이나 카시우스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했던 바벨론 왕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음부 구덩이 중에서도 맨 밑바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를 보고 놀라서 이렇게 외치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이 땅과 열국을 진동시키고, 땅과 세계를 황폐케 하고 그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간 자가 아니냐?"(12-17).

 * 바벨론의 파멸(14:18-23)
  열방의 왕들은 자기 무덤에 묻혀셔 편안히 잠을 자고 있다. 그러나 바벨론 왕은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부정하게 취급되어 내던져질 것이다. 그 시체는 돌구덩이에 빠진 시체들에 둘러싸여서, 발에 밟히는 시체처럼 취급될 것이다. 그의 시체는 길에서 죽은 자기 백성들처럼 안장되지 못하고 길에서 나뒹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의 후손을 영원히 기억되지 못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바벨론이 열국에게 행한 죄를 갚기 위해서, 그 후손들을 치실 것이다. 하나님은 친히 일어나셔서 그들을 치실 것이며, 남은 자들과 그 아들과 후손들을 바벨론에서 끊어버리실 것이다. 이로 인해 바벨론은 고슴도치가 사는 굴과 물이 고인 웅덩이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멸망의 비로 죄악된 바벨론을 청소하실 것이다(18-23).
 

 나. 앗시리아(14:24-27)

  만군의 여호와는 자신의 생각과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맹세하셨다. 하나님은 앗수르 사람들을 멸망시키고 그들을 짓밟으실 것이다. 그때에 이스라엘은 그들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될 것이다. 이 일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정하신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24-27).


2-2. 말썽쟁이들에 대한 심판

  말썽쟁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경멸하고, 괴롭히고 박해하는 나라와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의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왔던 열방, 즉 블레셋, 모압, 에돔, 아람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했고, 이스라엘을 기습하고 침입했다. 블레셋 족속은 사사시대부터 다윗 때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모압 역시 이스라엘을 괴롭혀온 민족이었다. 아람 왕국의 수도 다메섹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많은 전쟁을 일으킨 발상지였다. 그들은 이리저리 동맹을 맺고 유다를 괴롭혔다. 열방은 파도처럼 요동할 것이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사나운 물결을 잔잔케 하실 것이다.

 가. 블레셋(14:28-32)

  이사야는 악한 왕인 아하스가 죽던 해에 블레셋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받았다(28). 하나님은 블레셋을 향해서 그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언급된 "너를 치던 막대기"는 블레셋을 위협하던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를 가리킨다. 블레셋에 상당한 타격을 가했던 그의 죽음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 하나님은 뱀의 뿌리에서 독사가 날 것이며, 그 열매는 나는 불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블레셋은 전에 경험했던 것보다 더 큰 위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이 예고대로 후에 앗수르의 사르곤 왕은 아스돗을 쳤고(20:1), 가사 왕 카눈을 포로로 잡았으며, 산헤립도 아스글론과 에그론을 정복하고 가사와 아스돗의 왕을 사로잡았다(29).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장자와 빈핍한 자, 즉 유다는 먹고 평안히 누울 것이지만, 블레셋은 기근으로 죽고, 남은 자는 칼에 의해 소멸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30). 하나님은 북방에서 블레셋을 치기 위해 오는 군대가 있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슬피 울라고 말씀하신다(31). 그러므로 유다는 블레셋의 멸망을 알고, 반앗수르 동맹에 유다를 참여시켜려고 그 사신이 찾아올 때에 이에 동조하지 말아야 한다. 구원은 이방 민족으로부터 오지 않고 오직 시온을 세우시고 지키시는 여호와께로부터 올 것이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들은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고 담대히 행해야 한다(32).

 나. 모압(15:1-16:14)

 * 모압에 임할 심판(15장)
  선지자의 경고는 블레셋에서 모압으로 이어지고 있다. 선지자는 하루 밤에 갑자기 모압 알이 황폐해지고, 모압 길이 멸망하여 폐허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1). '모압 알'(알 모압)은 아르논 남단에  있던 모압의 수도이며(민 22:36) 오늘날의 랍바(Rabba)에 해당된다. '모압 길'(길 모압')은 거대한 바위 위에 세워진 요새화 된 도시로서 '모압 알'의 남동쪽에 있었으며, 오늘날의 케레크(Kerek)에 해당된다. 가장 중요한 모압의 두 도성이 망하여 폐허가 된다는 말은 나라 전체가 붕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사야는 그때에 그들이 바잇과 디본 산당에 올라가서 울 것이라고 말한다. '바잇'(바이트)은 '집', '성전'을 의미하며, '디본'은 아르논 북쪽에 있는 곳으로 모압 왕 메사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민 33:45). 이곳에는 그모스 신의 산당이 있었는데, 모압 사람들은 재난에 직면할 때에 이 곳으로 달려가서 울며 호소했다. 또한 그때에 모압은 느보와 메드바를 위해 통곡하게 될 것이다. '느보'는 헤스본 남쪽에 있던 성읍이며, '메드바'는 느보와 디본의 중간에 있는 성읍이었다. 그때에 그들은 머리털을 밀고 수염을 깎고 슬피 울게 될 것이다. 머리털을 밀고 수염을 깎으면서 맨몸 위에 굵은 베를 두르고 지붕 위에서 통곡하는 것은 고대 근동의 애도방식이었다(3).

  그때에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부르짖고, 그 소리는 야하스까지 들리게 될 것이다.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인접한 성읍으로, 모압의 북단에 있는 도시였다. 가장 북쪽에 있는 도성들까지 부르짖는 것은 슬픔이 모압 전 지역에 가득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도시에서 부르짖는 소리는 아르논 근처에 있던 야하스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클 것이다. 이는 그들의 슬픔이 매우 클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모압의 전사가 크게 부르짖고, 그 혼이 그 속에서 떨게 될 것이다. 가장 용맹스러운 전사들마저도 두려움으로 통곡할 정도로 모압의 슬픔은 절정에 달할 것이다(4). 모압의 극심한 슬픔을 인해 선지자 이사야도 그들을 위해 부르짖었다. 모압의 귀족들은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로 도망쳐서 울 것이며,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고,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부르짖을 것이다(5).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귀인들'(베리헤하)을 '도망하는 사람들'(바리헤하)로 읽고 있다. 모압의 피난민들은 울면서 사해 남단으로 도피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 니므림 물이 마를 것이며, 풀이 시들고 연한 것이 말라서 푸른 것이 사라질 것이다(6). '니므림'이 어디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본문이 피난민들의 행로와 관련된 것을 보면, 이 곳은 모압의 남쪽을 가리킬 것이다. 니므림 물이 마른 것은 모압을 침공한 군사들이 전략적으로 수원(水源)을 차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기의 재물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 피난하게 될 것이다(7). 모압 사람들은 난리통에 건질 수 있는 남은 재물들을 가지고 모압과 에돔을 가로 지르는 세렛 강을 건너 급히 피난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우는 소리가 모압 사방에서 들려오고, 슬피 부르짖는 소리가 브엘엘림까지 미쳤기 때무네 서둘러서 피난할 수밖에 없었다(8). '에글라임'은 사해 남단에 있었고, '브엘엘림'은 모압의 북동쪽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압의 남쪽끝에서 북쪽끝까지 방방 곡곡에서 통곡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디몬 물에는 죽은 시체에서 흘러내린 피로 가득했다. '디몬'은 '디본'을 의도적으로 변형해서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디몬'은 발음상 '피'(담)와 유사하다. 백성들의 부르짖음과, 디몬 물을 붉게 물들인 피, 이것은 모압인들을 급히 피난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앞으로도 더 디몬에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모압인 중에서 피난한 자들과 남은 자들을 치기 위해서 사자를 보내실 것이라고 경고하신다(9). 비록 소수의 모압 사람들이 재난을 모면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들마저 사자의 밥이 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고 완전해서 그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24:18; 암 5:19).

 * 모압의 죄악과 멸망(16장)
  이사야는 모압이 위기를 피할 방법을 제시한다. 모압 왕은 유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유다 왕에게 어린 양을 공물로 드리고 화친을 청해야 한다. 이사야는 그 어린 양들을 셀라에서 광야를 지나 유다의 시온 산으로 보내라고 말한다(1). 모압은 양들의 고장으로 알려졌으며,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새끼양 십 만의 털과, 수양 십 만의 털을 보낸 일도 있다(왕하 3:4). '셀라'는 모압 사람들이 도피했던 에돔의 수도이다(왕하 14:7). 그러나 이 말은 '바위'(셀라)로 덮인 모압의 주요 도시들을 지칭하는 집합 명사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유다에 바치는 공물은 셀라에서 출발하여 사해 남부를 돌아, 유대 광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게 하라고 지시되고 있다. 모압에 거하는 여자들(주민들)은 고향을 떠나 이곳 저곳을 방황하는 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아르논 강의 나루터에서 '떠다니는 새'와,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처럼 처량하게 흩어져 살고 있었다(2). 이사야는 유다에 사절로 간 모압의 사절들에게 다음과 같이 유다 왕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말한다. 그들은 유다 왕에게 모압인들을 위해 좋은 모략을 구하고, 공의로 판결하여 어려움에 빠진 피난민들을 선처해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3). 모압의 사절들은 쫓겨난 모압인들을 유대에 함께 머무르게 하고, 약탈자에게서 숨겨주는 피난처가 되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그러면 모압에 대한 박해는 오래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곧 '착취자'를 제거하시고, '폭압'을 그치게 하시며, '발로 짓밟는 자'를 멸망하게 만드실 것이다(4). 그리고 하나님은 폭력과 착취를 일삼던 제국을 멸망시키시고, 그 자리에 다윗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그 왕국은 다윗의 후손에서 나온 한 왕을 갖게 될 것이며, 그 왕은 '인자함'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충실함'으로 옳고 그름을 판결할 것이며, '공평'과 '의를 실행하실 것이다(사 9:7; 11:4). 그리고 하나님은 시온의 그늘 아래 피난처를 삼은 모압을 메시아 왕국의 일원으로 환영해 주실것이다(5). 이것이 바로 선지자 이사야가 모압에게 제시한 그들이 살 길이었다. 그러면 모압은 이러한 이사야의 제안을 받아들였는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심히 교만하게 행했다. 그들은 허영과 교만으로 가득 차서 자신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거짓말과 과장된 말로 자신들의 미래를 자랑했다(6). 그러므로 결국 그들은 화를 당할 때에 서로의 처지를 슬퍼하며 통곡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그들은 길하레셋의 건포도 떡을 위해 슬퍼하며 크게 근심하게 될 것이다(7). '길하레셋'은 '길 모압'과 같은 곳으로 추정된다(15:1; 왕하 3:25). '건포도 떡'(아쉬쉐)은 건포도를 떡의 모양으로 눌러 만든 것으로 길하레셋의 주요 교역 물품으로 보인다. 그들이 슬퍼하며 근심한 것은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랐기 때문이었다. 헤스본과 십마는 모압의 유명한 포도 산지들이었다. 특히 십마의 포도는 그 맛이 달고 강렬하기로 유명했다. 십마는 르우벤 지파에 속했던 마을로 '헤스본에서 걸어서 500보 정도 되는 곳에 있었다. 한창 때 모압의 포도 농사는 북쪽으로 야셀에 미치고, 동쪽으로는 시리아 사막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사해 근방까지 펼쳐졌었다. 그러나 '열국의  주권자들', 즉  여러 민족 단위의 사령관들로 구성된 앗수르 군대가 그 좋은 포도 나무 가지들을 꺾어 버리고 말았다(8).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는 폐허가 된 모압을 위해서 애통하기 시작한다.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서도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포도주 틀을 밟아 포도주를 짤 사람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이사야는 수금이 되어 모압의 도시들을 위해 애통하고 있다(9-11). 그때에 모압 사람들이 산당에 올라가서 그 신을 섬기고,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종교 행위는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12). 모압의 멸망에 대한 예언은 이전에도 했던 것이었다. 이제 이사야는 그 예언에 또 다시 새로운 예언을 추가하고 있다(13). 하나님은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3년 내에 모압의 영화가 사라지고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3년이라는 기간은 꼭 3년을 가리킨다고 하기 보다는 예언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언급된 모압의 멸망 사건은 B.C. 734년의 디글랏 빌레셀의 침공 사건이나, B.C. 718년 경의 사르곤 2세의 원정과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멸망 기간은 결코 늦춰지거나 연기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품군의 정한 해', 곧 고용 기간이 끝나고 품꾼들이 정한 삯을 받기로 되어 있는 날로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품꾼들은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되, 그 날이 연기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21:16). 모압의 파멸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도 정확한 때에 성취될 것이다. 3년이 지나기 전에 모압의 영화는 사라지고 많은 무리들이 죽어 극소수만 남게 될 것이다. 모압의 운명은 이와 같이 '교만(게온)으로 시작해서 수치(칼론)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한 없이 높이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한없이 낮추실 것이다.


 
다. 다메섹(17:1-14)

  이제 이사야의 경고는 모압에서 다메섹, 즉 아람의 수도로 향하고 있다. 이 예언은 다메섹이 앗수르에 의해 파멸되기 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B.C. 732년 이전). 또한 수리아와 에브라임이 함께 거론된 것을 보면, 이 둘이 군사 동맹을 맺은 이후에 예언이 선포된 것으로 보인다(B.C. 735년 이후). 따라서 이 예언은 B.C.735-732년 사이에 (아마도 734년) 기록되었을 것이다. B.C. 1,000년경 다메섹은 수리아 연맹의 맹주로서 앗수르와 더불어 고대 근동의 주도권을 다툴 만큼 그 힘이 강력했였다. 그러나 B.C. 732년,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 함락된 이후 이전과 같은 힘을 다시 회복하지 못하였다. 다메섹은 메스포타미아와 애굽을 잇는 무역로의  관문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의 헬몬산과 남의 현무암 평원에 둘러싸인 비옥한 지대였다. 부채살 모양의 일곱 지류로 흐르는 아마나강과 헬몬 산 기슭에서 흘러 내리는 바르발(아와이) 강이 중심을 관류하고 있다(왕하 5:12). 선지자는 아로엘의 성읍들이 버림을 받아 양을 치는 곳이 될 것이라고 예고한다(2). 여기에 언급된 '아로엘의 성읍들'은 요단강 동편에 있던 성읍들을 가리킨다. 선지자는 에브라임과 다메섹과 아람의 남은 백성이 모두 멸망할 것이라고 말한다(3). 에브라임은 유다와 한 핏줄을 나눈 형제국이었지만, 이방 민족인 수리아와 결탁하여 유다를 대적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운명 역시 수리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 야곱, 즉 이스라엘의 영광이 쇠하고 살찐 몸이 파리해질 것이며(4), 찬란했던 이스라엘의 영화가 사라지고 병들어 뼈만 앙상하게 남게 될 것이다. 그날에 그 대적들은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고, 그 손으로 이삭을 베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치게 될 것이다(5). 그리고 그들은 마치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모조리 따고 몇 개만 남긴 것처럼 거의 멸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거의 멸망시키시되 언약을 위해 소수의 남은 사람들을 살려두실 것이다(6).

  그때에 사람들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볼 것이며, 더 이상 우상, 즉 자기 손으로 지은 제단이나 아세라, 또는 태양상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7-8). 그때에 견고한 성읍이 폐허로 변해버릴 것이며, 이는 그들이 자기를 구원하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능력의 반석이 되시는 여호와를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9-10). 하나님은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 그들을 돌보아 주셨지만, 그 날에는 모든 농작물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11). 이사야는 많은 민족들이 소동하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며, 많은 물이 몰려오는 것처럼 그들을 공격하고 덮을 것이다(12).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그들은 대적들 앞에서 겨가 바람이 날리는 것고, 푹풍 앞에 떠도는 티끌과 같이 파별할 것이라고 고백한다(13). 그들은 저녁에 대적으로 보고 두려워하고, 아침이 되기전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14).


 
라. 구스(이집트)(18:1-20:6)

  '구스', 곧 에디오피아는 애굽 남단에 있으며, 그 영토는 오늘날의 에디오피아와 수단, 소말리아를 포함할 만큼 광활했다(겔 29:10; 30:6). 바사 시대에 구스는 인도와 더불어 땅의 맞은편 끝에 있는 나라로 인식되었다(에 1:1). B.C. 715년, 샤바코(Shabako)가 애굽의 왕위에 오름으로써 시작된 애굽 제25왕조(Nubian 왕조) 시대에, 이 나라는 북쪽의 앗수르와 함께  서아시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나파타(Napata, 오늘날의 Gebel Berkal)은 당시 정치의 중심지였다. 누비안(Nubian) 왕조의 세 번째 왕인 디르하가(Tirhakah)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히스기야를 핍박하여 라기스를 포위했을 때에 그와 접전했다(37:8-9; 왕하 19:8, 9, Leon Wood). 한동안 계속되었던 에디오피아인의 애굽 통치는, B.C. 633년, 애굽의 삼메티쿠스(Psammeticus)가 그 자리를 다시 찾음으로써 종말을 고하게 된다.

 * 구스의 멸망과 회개(18장)
  선지자 이사야는 다메섹에 대한 예언을 마치고,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치는 소리 나는 땅을 향해 탄식하고 있다(1). 여기에 언급된 '구스의 강'은 나일 강과 그 지류를 말하며, '그 건너편 땅'은 에디오피아인들이 지배하던 남쪽 땅을 가리키고 있다. 날개치는 소리는 학자들에 따라 '강물이 철썩거리는 소리', '군인들의 무기가 부딪혀 나는 소리', 또는 '곤충들이 날개치며 윙윙거리는 소리"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무덥고 습기찬 에디오피아 땅에는 곤충들의 날개치는 소리가 흔했다(7:18). 또한 이 소리는 장차 있을 앗수르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소집된 군사들의 거대한 함성을 암시하고 있다. 선지자 이사야는 구스에서 유다를 향해 사자를 파송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장차 구스는 앗수르를 대적하기 위해서 유다에 협조를 구하는 사자를 파송할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 사절들에게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외친다. 그때에 구스는 사자들을 파송해도 동맹군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2). '경첩하다'는 말(칼림)은 '가볍고 날래다'는 뜻이다. 이사야는 에디오피아인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1)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키가 크고 당당하며 잘생긴 사람들. 2)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백성'-그들은 애굽을 압도하고 그 영토를 크게 확장시킨 민족이었다. 그들은 탁월한 용맹성으로 끝없이 영토를 확장시켜 나가는 호전성을 가지고 있었다. 3)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그 땅이 매우 비옥한 곳임을 묘사함.

  그러면 왜 선지자는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있는가? 선지자는 온 지상의 거민을 향해서 여호와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선포한다. 그날에 온 세상은 산 위에 있는 기호를 보고, 나팔소리를 듣는 것같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3). 하나님은 민족들의 행위들을 지켜보시면서, 그들의 행위를 심판할 때가 이르기까지 침묵하며 기다리신다. 하나님께서 침묵하며 바라보시는 것은 마치 한낮의 햇볕과 저녁의 이슬과 같았다(4). 이것들은 곡식을 여물게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일광'(홈 차흐)은 밝은 빛을 가리키며, '운무'(아브 탈)는 밤에 이슬이 되는 가벼운 구름을 의미한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면서 온 세상을 바라보시는 동안에 하나님의 추수, 즉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익어갈 때에, 즉 추수 때가 되면 하나님은 낫으로 그 가지를 베고 찍어버리실 것이다(5). 그리고 그것을 산의 독수리들과 들짐승들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6). 심판의 날에 전쟁에서 죽임당한 시체들이 너무 많아서 독수리들이 여름 내내 그것을 먹고, 들짐승들이 겨울 내내 그것으로 배를 불리우게 될 것이다. '과하한다'는 말(카츠)은 '여름을 보낸다'는 말이며, '과동한다'는 말(테헤라프)는 '겨울을 보낸다'는 뜻이다. 산헤립의 군대가 하룻밤에 몰살당하였을 때, 그 죽은 수가 무려 185,000명에 이르렀다(사 37:36). 그리고 그때에 구스인들이 여호와께서 계신 시온에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 시온산에 도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7). '그 때'가 가까운 미래를 말하는지. 아니면 먼 미래를 말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선지자는 에디오피아가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시온산을 찾을 가까운 미래의 사건을 통해서, 먼 미래에 세계 민족들이 여호와께 나아올 장면을 내다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사 2:2-4; 습 3:10; 행 8:26-39). 구수는 처음에 앗수르를 대적하기 위해 동맹을 요구하기 위해 사절을 보냈었다. 그러나 그들은 두 번째로 앗수르를 물리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경배를 드리기 위해서 예물을 들고 시온을 찾게 될 것이다. 히스기야가 앗수르 군대를 멸망시켰을 때에 바벨론에서 사절을 보내어 승전을 축하했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앗수르에게 큰 고통을 당한 구수에서도 사절을 보내 히스기야 왕의 승전을 축하했을 가능성이 있다.

 * 애굽의 쇠퇴와 멸망(19장)
  이제 이사야의 경고는 애굽으로 향하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심판을 신속하게 행하기 위해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실 것이다. 그때에 애굽의 우상들이 여호와 앞에서 떨고 애굽인들도 두려워 정신이 나가게 될 것이다(1). 하나님은 애굽인을 들어서 애굽인을 치게 하실 것이다. 그때에 형제가 형제를 치고, 이웃이이웃을 칠 것이며, 성읍이 성읍을 치고 나라가 나라를 치게 될 것이다(2). 동족 상잔의 비극은 `형제'에서 `이웃'으로, `성읍'에서 `나라' 로 범위와 강도를 더해갈 것이다. 여기에 언급된 `나라'는 수십 개로 나뉘어진 고대 애굽의 지방들(nomes)을 가리킨다.  어떤 의미에서 애굽의 역사는 끝없는 자기 소모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애굽은 처음 여섯 왕조(B.C. 3,000-2,200년경) 때에는 강력한 연합을 유지했지만, 그 후에는 약 42개의 노메스(지방정부)로 갈리어 난립하는 혼란기틀 맞았다. 이러한 혼란은 제 12왕조하(B.C. 1990-1785년 경)에서만 잠시 주춤거리고, 그후에 애굽은 거듭되는 분열과 내란의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  특히 에디오피아 왕조(제 25왕조, B.C. 715-664년)가 들어서기 직전과 그 직후(B.C. 715년경), 그리고 삼메티쿠스에 의한 애굽 왕조의 회복(B.C. 664년경)을 전후해서 이러한 혼란은 극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동족상잔으로 인해 애굽인들은 정신을 잃고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며, 미신과 광신적인 집단들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3). 또한 하나님은 그 나라에 잔인한 독재자를 왕으로 세워서 그 나라의 백성을 괴롭히게 하실 것이다(4).

  그때에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애굽이 자랑하던 나일 강이 마르고, 강에서는 악취가 날 것이며, 물이 줄어들어 마르고, 강물에서 물을 공급하던 초장과 밭들이 메말라버리게 될 것이다(5-7). 또 나일 강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은 고기가 없어져서 탄식하고 슬퍼하며 피곤해 할 것이다(8). 또한 옷감을 짜는 자들도 수치를 당하고, 왕에게 조언을 하던 모사들은 어리석게 되어 미련해 질 것이다(9-12). 또한 애굽의 관리들도 어리석어져서 미련해져서 애굽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마치 술에 취한 자가 비틀거리면서 걷는 것처럼 오락가락 할 것이다(13-14). 그리고 애굽인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할 일이 없게 될 것이다(15). 그때에 애굽인들은 여인처럼 두려워하고 떨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유다의 소식을 듣고 떨게 될 것이다(16-17).

  선지자 이사야는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개의 성읍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선지자는 심판의 정점에서 애굽의 성 중에 일부가 여호와께 돌아올 것이라고 예고한다. 여기에 언급된 `다섯 성읍'은 애굽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보증하는 전조로 주어지고 있다. `다섯'이라는 숫자는 많은 것 중에 지극히 적은 것을 의미한다(30:17; 레 26:8; 고전 14:19). 이사야는 그 다섯 성읍 중에 하나를 "장망성"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말한다(18). 장망성은 `장차 망하기로 예정된 성'을 말한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성들은 구원받을 성들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이름은 문맥상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어려 가지로 제시되어 왔다. 1) 칼빈은 멸망할 `장망성'은 구원받을 다섯 성읍 가운데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 델리취는 장망성이 구원받을 다섯 성읍 중에 포함된 것은 틀림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성은 '장차 망하도록 예정된 성읍'이 아니라 `장차'(우상의 제단들을) 파괴시킬 `성읍'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3) `장망성'이란 말은 '태양의 성읍'이란 말이 잘못 기록되엇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약 15개의 히브리어 사본들과 심마쿠스역, 탈굼역. 벌게이트역 등에서 이 단어는 `태양의 성읍'(이르 하헤레스)로 표기되어 있다. 만약 이 견해가 옳다면 본문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인, 태양신을 섬기던 바로 그 우상의 성읍조차 하나님께 돌아와 가나안 방언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릴 것이다'(O-swalt). 현재로서는 이 해석이 가장 타당하게 여겨진다.

  그때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 세워지고 그 주변에는 여호와를 위한 기둥이 있게될 것이다(19). 이 제단과 기둥은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인한 표적과 증거가 될 것이다. 그때에 애굽인들은 압박자로 인해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하나님은 한 구원자를 내어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건져주실 것이다(20). 그때에 여호와께서 자신을 애굽에 알리실 것이며, 애굽인들은 여호와를 알고 경배하며, 여호와께세 서원을 하고 그 서원을 이행할 것이다(21). 여호와께서는 애굽을 잠시 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치신 후에는 다시 그들을 고쳐주실 것이다. 그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돌아올 것이며, 여호와께서는 그 간구를 들으시고 그를 고쳐주실 것이다(22).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가는 대로가 있어서 앗수르 사람이 애굽으로 가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가게 되고, 애굽 사람들이 앗수르 사람들과 함께 여호와께 경배하게 될 것이다(23). 그날에는 이스라엘과 애굽과 앗수르 세 나라가 온 세계 중에서 축복의 나라가 될 것이다.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특별히 이 세 나라를 축복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24-25). 

 * 앗수르에게 멸망하는 애굽과 구스(20장)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에 보내어 그 곳을 정복한 때에 여호와께서는 이사야를 부르셨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허리에서 베를 풀고, 발에서 신을 벗고 가라고 명하셨으며, 이로 인해 이사야는 벌거벗은 몸과 벗은 발로 길을 행해야만 했다(1-2). 베(사크)는 애통하거나 회개의표시로 몸에 걸치는 의복이었으며 일반적으로 선지자들의 예복으로 여겨졌다(왕하 1:8; 슥 13:4; 마 3:4, 히 11:37). 이 옷을 바로 입으려면 허리에 베띠를 둘러야 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 띠를 매지 못하여 속옷이 드러나는 상태로 신발도 신지 않고 사람들 앞에 나서야 했다. 이러한 일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었지만, 이사야는 여호와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했다. 이사야는 이러한 모습으로 3년 동안 지내야 했다. 이러한 모습과 기간은 장차 애굽이 앗수르에게 멸망하여 포로가 될 것을 상징하는 예표인 동시에 기적이 되었다(3). '삼 년'은 앗수르 군대에 의해 아스돗이 포위된 기간이나, 또는은 애굽이 멸망하기 직전의 기간을 가리키며,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한 것 애굽인들이 앗수르에게 패하여 포로로 끌려가는 비참한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었다(4). 이러한 예언적 행위는 아스돗이 점령된 지 약 30년 후에 실제로 이루어졌다. 앗수르 왕 에살핫돈은 애굽을 공격하여 디르하가의 군대를 패퇴시키고 멤피스를 점령했고(B.C. 681년), 그의 아들 앗술바니팔에 의해 애굽은 재차 유린되었다(B.C. 669년). 나이의 노소를 불문하고 붙잡혀간 수많은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들은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끌려가야 했고, 심지어 엉덩이가 드러나는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그때에 이러한 모습을 보고 '애굽과 구스'를 의지하던 유대인 과 팔레스틴 거민들은 놀라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될 것이다(5). 그들은 그토록 강대하게 보이던 애굽과 구스가 몰락하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될 것이며, 그러한 나라를 바라고 자랑했던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수치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에 유다를 포함하는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은 자기들이 믿었던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고 낙심하여 탄식하게 될 것이다(6). 유다를 포함한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구스와 애굽을 믿고 의지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애굽이 멸망하는 것을 볼 때에 애굽을 의지했던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한탄하게 될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러한 언급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왜 하나님을 피난처를 삼지 않고 애굽을 의지했느냐?"고 안시적으로 책망을 하고 있다.


 
마. 바벨론의 멸망(21:1-10)

  이제 선지자의 경고는 해변 광야를 향하고 있다. '해변광야'는 바벨론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이름이다(9절). 이사야는 바벨론을 치러 오는 적병을 광대한 아바리아 사막에서 게세게 불어오는 태풍에 비유하고 있다. 광야 곧 두려운 땅에서 올 것으로 예언된 적병은 2절에 언급된 엘람과 메대인들을 가리킨다(1). 이사야는 견딜 수 없이 무거운 묵시를 보았다고 말한다. 장차 올라올 대적들은 바벨론을 속이고 약탈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엘람과 메대의 군사들을 향해서 바벨론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리신다(2). '올라가고 에워싸라'는 말은 바벧론에 대한 공격 명령을 말한다.  '엘람'은 현재의 이란 남부에 해당하며 바사 제국을 가리킨다. 바사와 국경을 접하고 있던 엘람은 후에 바사에게 합병되었다. 바사와 메대는 B.C. 539년 고레스 왕의 주도하에 바벨론을 정복했다. 선지자 이사야는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혹독한 묵시'로 인해 두 가지 반응, 즉 극심한 요통(3절)과 마음의 진동(4절)을 일으켰다. 그는 해산하는 여인과 같은 고통을 느꼈으며, 이로 인해 듣고 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또한 그는 마음의 고통을 인해 놀라고 안식을 기대하던 저녁이 두려움의 시간으로 변해 버렸다. '희망의 서광'은 '나의 기쁨의 저녁'이라는 말로서, 이는 한 날의 근심을 벗고 안식할 수 있는 저녁 시간을 말한다. 바벨론 사람들은 적군의 내침이 임박한 때에 파수꾼을 세우는 한 가지 예방 조치만으로 모든 준비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연회에 빠져들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바벨론 방백들에게 연회에서 일어나서 방패에 기름을 바르라고 말한다. 이는 전쟁 준비를 서두르라는 말이다. 방패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적군이 내리치는 칼날이 미끄러져 빗겨나가게 하기 위한 것으로 전쟁에 앞서 군인들이 반드시해야 할 일들 중 하나였다. 이러한 묘사는 바벨론의 멸망을 기록하고 있는 (단 5장)의 내용과 비슷하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은 귀인 1,000명과 함께 잔치를 열고 놀다가 고레스의 군대에 의해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 파수꾼이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라고 지시하셨다(6). 본문에서는 다가오는 메대-바사 군대와 바벨론의 멸망을 '파숫군'의 시각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나님은 파수쑨에게 마병대가 쌍쌍이 오고, 나귀와 약대 떼를 보면 자세히 보고 들으라고 말씀하셨다(7). 마병대는 고레스가 자랑하는 바사의 주력 부대였으며, 일반적으로 나귀 떼와 약대 떼는 군수품과 식량을 운반했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는 고레스가 리디아인들(Lydians)을 공격할 때에 나귀 떼를 이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Gray). 이러한 기록을 참고해볼 때에 나귀와 약대 떼는 운송수단 뿐 아니라, 유사시에 전쟁 수단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크세노폰(Xenophon)은 바사의 군대가 둘씩 짝을 지어서 행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Alexander). 그 명령을 따라서 파수꾼은 낮에는 망대에서 그리고 밤에는 파수하는 곳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8). 그리고 그는 마침내 마병대가 짝을 지어 온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마침내 바벨론이 함락되어 그 우상들이 무너져 버렸다고 보고했다(9). 바벨론은 타작하여 마당에 쌓은 곡식으로 비유되고 있다. 이러한 비유는 추수하여 타작이 끝난 것처럼 바벨론의 심판이 종결되었음을 의미한다(10).


 
바. 에돔(21:11-12)

  이제 선지자의 경고는 바베론에서 두마로이어진다. '두마'는 에돔의 변형으로, 에돔의 미래의 운명을 상징하는 이름이다(시 94:17; 115:17). 사해 남쪽에서 엘란 만에 걸쳐 있는 세일산에서 파수꾼(선지자)을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선지자는 영적인 밤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는 온 세상이 영적인 잠에 취해 있을 때에 홀로 깨어서 어둠을 바라본다. 세일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파수꾼을 향해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고 있다(11). '밤'은 재난의 시간이다. 밤이 너무 길게 느껴진 사람들은 밤이 얼마나 남았느냐?, 즉 이 고난의 밤이 언제나 끝날 것이냐?고 물을 것이다. 파수꾼의 대답은 간결하고 모호하다. 파수꾼은 아침이 오되 밤도 함께 올 것이라고 대답한다. 아침이 구원의 시간을 말한다면 밤은 재난의 시간이다.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해 에돔은 구원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또 다른 어둠에 의해 삼킴을 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벨론을 정복한 바사제국이 에돔을 다시 지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12). 그러므로 선지자는 그들을 향해 다가올 재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권고하고 있다.


 
사. 아라비아(21:13-17)

  바벨론의 멸망은 에돔뿐 아니라 인접한 아라비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선지자의 경고는 먼저 사막을 횡단하는 드단의 대상들을 향하고 있다. 그들은 에돔과 이웃한 족속들(창 10:7; 25:3; 렘 49:8; 겔 25:13; 27:20)로서 낙타를 끌고 두로를 오가는 원거리 상업에 종사했다. 그들은 평상시에 통행했던 길에서 쫓겨나서 수풀에서 은신처를 찾게 될 것이다. 이는 심각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아라비아 땅이 적에게 유린될 것을 말해주고 있다(13). 선지자의 다음 말은 드단 대상들이 도망친 곳과 가까운 데마 주민들을 향하고 있다. 선지자는 데마 사람들에게 급히 도피하는 자들에게 물과 빵을 주라고 말한다(14). 그들은 칼날과 활과 전쟁을 피해 급히 다라난 사람들이었다(15).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품군의 정한 기한같이 1년 내에 게달릐 영광이 소멸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16).  '품군의 정한 기한같이'라는 말은 품꾼에게 일하기로 약속된 시간처럼 파멸되기로 예정된 시간이 늦추어지지 않을 것을 말해주고 있다. '게달'은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로서(창 25:13), 여기에서는 아라비아 유목 민족을 대표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두로와의 상거래를 통해 축적된 많은 부와 풍부한 가축들, 그리고 강한 용사들로 넘치던 게달의 '영광'은 곧 전쟁의 짐에 눌려 붕괴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게달 자손 중에서 활을 가진 자의 수가 매우 적어지게 될 것이다(17). 게달 자손들은 활을 잘쏘기로 유명했다(시 120:4). 그러나 전쟁을 겪은 뒤에 그들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어서 소수만 남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그들에 대하나님의 심판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아. 예루살렘(22:1-25)

 * 이상 골짜기에 대한 경고(22:1-14)

  선지자의 경고는 아라비아에서 이상 골짜기, 즉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다. 이상 골짜기는 예루살렘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향해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찜니야?"고 묻는다(1). 이 질문에는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조롱의 뜻이 담겨져 있다(삿 18:23). 예루살렘 주민들이 떼를 지어 지붕에 올라가는 것(삿 16:27)은 아마도 (퇴각하는) 적군(산헤립의 군대)의 모습을 지켜 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36:22. 본문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학자들간에 견해가 분분하다.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이 상황이 B.C. 701년에 있었던 앗수르 군대의 예루살렘 포위 사건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당시에 산헤립은 히스기야로부터 상당한 양의 공물을 받고, 그의 군대를 철수시켰다(왕하 18:14-16).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했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퇴각하는 적군을 바라보면서 모든 위협이 사라진 것처럼 자만하며 환락에 빠졌다. 그들은 재난의 때에 하나님께 돌아와야 했지만, 위험이 사라지게 되자 다시 방탕으로 빠져들었다.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적과 싸우다가 칼에 죽거나 전쟁에서 죽은 것이 아니었다(2). 백성들 지켜야 할 지도자들은 자기 몸을 보전하기 위해서 활을 팽개치고 도망치다가 포로가 되어  결박을 당했다. 그리고 멀리 도망쳤던 사람들도 모두 발격이 되어 함께 결박을 당하고 말았다. 예루살렘에는 명예와 용기가 사라지고 수치와 비겁으로 가득 찼다(3). 이사야는 이러한 예루살렘의 미래를 보면서 홀로 눈물을 흘린다. 그는 민족을 위해 슬피 울면서 모든 위로받기를 거부했다(4).  이상을 상살한 시대에 사는 선지자는 참으로 외로운 존재이다. 그는 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깨어  어둠을 바라보고 홀로 슬픔에 잠긴다.

  장차 여호와께서 이상의 골짜기, 즉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 예루사렘에서는 두 종류의 소리가 들리게 될 것이다. 첫째 소리는 적군의 공격을 받아서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이며, 둘째 소리는 그와 때를 같이해서 살려달라는 백성들의 비명소리이다. 부르짖는 소리('쇼아')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부르짖음이다(5). 이사야는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는 앗수르 군대 중에 주도적인 두 나라를 진술하고 있다. '엘람'과 '기르'는 산헤립 당시에 이미 거대한 앗수르 제국의 한 주(속국)로 편입되어 있었다. '엘람'은 바벨론 북동쪽에 있던 도시로(21:2), 활을 잘 쏘기로 유명했다. 또 '기르'는 코카서스에서 발원하여 카스피해로 유입되는 큐로스 강에 인접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두 나라로 대표되는 앗수르 군대는 활을 찬 궁사들과, 전차 부대, 그리고 기병대와 보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6). 그 날에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골짜기마다 적들의 병거가 가득할 것이며, 성문 앞에는 마병이 정렬해서 예루살렘을 공격할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7). 그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던 유대 백성들의 무지의 베일을 벗겨서 자신들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알게 할 것이다. 그 때에 예루살렘 거민들은 긴급히 수풀 곡간에 쌓아둔 병기를 꺼내 싸울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8). 그 동안 그들은 다윗 성이 견고한 성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그 날에 예루살렘 성에 무너진 곳이 얼마나 많은 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은 포위당했을 때를 대비해서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아래 못의 물을 모을 것이다(9). '아래 못'은 시온 산 서쪽 맞은편 힌놈 골짜기에 남아 있는 저수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때에 그들은 성읍 내에 있는 집을 계수하고 그것을 헐어서 성벽을 견고하게 하는 데 필요한 건축 재료를 구하게 될 것이다(10). 또한 그들은 옛 못의 물을 저중하기 위해서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 대비를 하면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앙망하거나 존경하지 않았다고 책망하고 있다(11). 개역성경에 '앙망한다', '존경한다'고 번역된 말은 '바라본다', 또는 '의지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들은 전쟁 준비만 할 줄 알았지, 유다를 위기 속에서 구원해 주실 피난처인 여호와를 바라보고 의지하지는 못했다. 예루살렘 앞에서 벌어진 위기 상황들은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경고였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러한 상황을 보고 자기 죄를 회개하며 가슴을 치고 울며, 머리털을 뜯고 굵은 베를 허리에 띠고 겸손히 행하기를 원하셨다(12). 그러나 그들은 놀랍게도 이러한 상황에서 즐거워하면서 양과 소를 잡고 내일 죽을 것이므로 오늘 먹고 마시자고 떠들어댔다(13).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그들의 죄악은 그들이 죽을 때까지 속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14). 회개하기를 거부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절대로 맛볼 수 없다.

 * 셉나의 뒤를 이은 엘리아김(22:15-25)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국고를 맡고 궁을 차지한 셉나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라고 지시하셨다(15). 셉나는 왕궁을 다스리는 궁내 대신이었다. 하나님은 셉나에게 "네가 이 곳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이 곳에 너의 묘실을 팠느냐?"고 물으셨다(16). 그는 예루살렘 높은 곳에 왕들처럼 묻히기 위해서 그의 무덤을 팠다. 이 무덤들은 예루삼렘 주변에 있는 산들의 경사진 곳에 바위를 뚫어 만들었는데, 이는 침해를 방지하고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단단히 묶어서 공처럼 힘센 장사같이 그를 던져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셨다(17). 하나님은 그를 말아서 공처럼 광막한 곳에 던지실 것이다. 하나님은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던 셉나는 광막한 곳에서 죽을 것이며, 그가 타던 영광스러운 수레도 그 곳에 있게 될 것이다(18). 그때에 하나님은 그를 관직에서 쫓아내고 그 지위를 낮추실 것이다(19). 후에 셉나는 서기관으로 강등되었고(36:3), 그 자리를 엘리아김이 차지했다. 하나님은 엘리야김에게 셉나가 가졌던 권세를 주실 것이며, 그가 예루살렘과 유다 거민의 지도자로 서게 될 것이다(20-21). 하나님은 다윗 집(왕궁)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실 것이다(22). '열쇠를 어깨에 둔다'는 말은 위정자의 책임의 무거움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는 무겁고 긴 열쇠를 어깨에 둘러메던 고대의 풍습을 반영하고 있다(9:6). 열쇠를 가진 자는 집 안의 출입을 비롯해서 모든 살림 살이를 관장했다. 이 열쇠는 왕이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자에게 주어졌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했을 때에도 이와 같은 의미로 말씀하셨다(마 16:19). 새롭게 공직에 취임한 엘리아김의 위치는 확고부동하게 될 것이다.  첫째로 그는 단단한 곳에 박힌 못처럼 흔들림이 없이 견고할 것이다(슥 10:4  참조). 둘째 그는 그 아비 집에서 온 가족이 의지하는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며(23), 그의 가문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견고한 못과 같은 엘리아김을 의지하게 될 것이다(25). 하나님은 그 날에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모이 삭아서 그 못이 부러져 떨어질 것이며, 이로 인해 그 못에 결렸던 물건이 깨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25). 25절은 해석하기가 어려운 구절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구절을 엘리아김이 친족을 등용하여 족벌 정치를 하다가, 그로 인해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앞에서 엘리아김의 좋은 면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그에 대한 비난과 비극적 최후를 언급하는 것은 문맥상 납득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은(Calvin, Umbereit) 25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부러진 못은 엘리아김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된 셉나라고 말한다. 그들은 25절이 엘리야김은 견고할 것이지만, 셉나는 부러진 못처럼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23-24절에서 엘리아김을 의미하는 못이 갑자기 셉나로 바뀐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많은 학자들이 다소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25절에 언급된 못은 엘리야김을 가리킨다는 앞의 해석을 받아들이고 있다.


 자. 두로(23:1-18)

  선지자의 경고는 예루살렘에서 두로로 향하고 있다. 이사야의 열방에 대한 경고는 바벨론에서 시작해서 두로로 끝나고 있다. 바벨론과 두로는 세계의 동과 서에 위치하면서, 세계의 두 힘 곧 권력과 재물을 대표하고 있다. '두로'는 동부 지중해 연안에 있는 고대 페니키아(베니게)의 주요한 네 성읍(아라두스, 비블로스, 시돈, 두로) 중에 하나로 유명한 항구 도시였다. 그 자매 항구인 '시돈'은 약 40km 북쪽에 있었다.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두로는 일찍 바다를 개척하여 지중해를 통한 해상 무역에 활발히 종사했다. 두로는 이사야 선지자의 때로부터 B.C.322년에 이르기까지 약 5번의 공격을 받았는데, 2번은 앗루르에 의해(느부갓네살), 1번은 바사에 의해(아타르크세르크스 3세), 그리고 마지막은 마게노냐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Oswalt). 본문의 예언이 이중에 어느 것과 관련있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본문에 선언된 언금이 바벨론에 의한 두로의 점령을 말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선지자는 다시스의 선척들을 향해 슬피 부르짖으라고 외친다. '다시스'는 스페인의 타르테수스를 가리키는데, 그곳은 두로의 해상 식민지였다(왕상 10:22; 22:48; 겔 27:25). 선지자는 두로가 황무하여 들어갈 항구도, 안식할 집도 없어졌다고 말한다. 이 소식은 그들의 최종 정박지인 '깃딤', 즉 구브로 섬에서 전달되었다(1). 이사야는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고(페니키아의 상인)들로 인해 부유하게 된 해변 거민들에게 잠잠하라고 외치고 있다(2). 페니키아의 상인들은 지중해를 오가면서 인접한 나라들의 물건을 중개 무역하였는데, 이로 인해 덕을 본 나라들이 많았다. 그들은 고대 세계의 곡창 지대였던 애굽에서 곡식을 사서, 이것을 '큰 물' 곧 지중해로 운반한 뒤에 곡식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팔아서 큰 이윤을 남겼다(3). '시흘'은 나일 강을 뜻하는 애굽어 '예오르'(19:6)의 히브리어 발음이다(수 13:3; 렘 2:18). 이사야는 시돈을 향해 부끄러워 하라고 외친다. 이는 한 때 지중해를 석권하여 많은 식민지들을 건설한 두로가 재난을 당해 모든 것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재난을 인해 아이를 낳지 못하고 청년과 처녀들을 양육하지 못하게 되었다(4).  두로의 패망 소식이 애굽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줄 것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곡물 수출업자인 그들의 몰락으로 인해 애굽의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둘째는 동방 국가가 서쪽으로 전진하는 일을 저지하는 방파제 역할을 수행했던 두로의 몰락으로 애굽 역시 군사적인 위험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5). 선지자는 적의 포위 공격을 받는 두로 거민들에게 가능한 한 멀리 있는 다시스로 도피하라고 명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두로를 포위했을 때에도 이와 유사한 광경이 벌어졌다. 그때에는 노인, 부녀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페니키아의 식민지 중의 하나였던 카르타고로 도피했다. 또한 이사야는 그들로 인해 경제적 혜택을 누려온 해변 거민들에게도 슬피 울며 부르짖으라고 말한다(6).

  이사야는 이것이 고대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이며,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먼 지방까지 가서 거하던 성이냐?고 묻는다(7). 두로는 약 2,700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깊은 성이었으며, 활발한 상업 활동으로 풍요롭게 되었고, 끝없는 개척정신으로 먼 곳까지 가서 시장을 개척하고, 카르타고와 다시스와 같은 식민지들을 건설했다. 그러나 이제 그 성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폐허가 되고 말 것이다. 이사야는 세상의 면류관이며 지도자와 존귀한 자로 가득 찬 그들을 멸망하기로 정하신 분이 누구냐?고 묻는다(8). 그리고 나서 이사야는 이 일을 정하신 분이 만군의 여호와라고 선언한다. 그는 여호와께서 교만을 욕되게 하고, 모든 존귀한 자로 멸시를 받게 하려고 이 일을 정하셨다고 말한다(9). 두로의 패망으로 인해 그의 지배를 받던 나라들이 해방과 독립을 하게 될 것이다. 다시스는 그 중에 한 예로 제시되고 있다. 구속된 상태에서의 두로와 그 식민지인 다시스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비유되고 있다. 그러나 해방의 날에 다시스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나일 강이 흘러넘쳐서 마음대로 흐르는 것처럼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10). 여호와께서 바다에 손을 펼치실 때에 바다를 의존하던 열방들, 곧 독자적으로 자기 왕을 섬기던 페니키아의 여러 나라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다(11). 한때 순결한 처녀와 같이 부와 명예를 자랑하던 시돈(페니키아)이 능욕을 당하여 모든 즐거움울 상실한 여인처럼 될 것이다. 선지자는 그가 깃딤으로 도피한다고 해도 그가 원하는 안식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한다(12). 선지자는 두로를 멸망시킬 도구를 제시하고 있다. 본문에 언급된 두로를 멸망시킬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로 일부 사람들은 두로를 파멸시킬 나라는 앗수르라고 말한다. 그들은 본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가나안 땅(페니키아)을 보라. 이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앗수르가 그것을 광야로 바꾸어 버렸다. 그들(페니키아인들)은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건설했으나, 그(앗수르)가 그것을 황무케 하였다'(Ewald).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너무나 많은 본문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두로를 멸망시킬 갈대아 나라가 바벨론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본문을 이렇게 해석한다. '갈대아 사람(바벨론)의 땅을 보라. 이 백성(지금 거주하고 있는 바벨론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즉, 원주민이 아니었다). 앗수르가 그것을 광야의 거주자들(전에 유목 생활을 하던 갈대아인들)을 위해 건설하였다. 이  백성(갈대아인)이 망대를 세우고 그녀(두로)의 궁전을 헐었으며 그것을 황무케 하였다.' 후대의 역사가들에 따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이토발이 다스리던 두로를 13년간이나 포위했으며, 부왕의 사망 소식을 듣고 바벨론으로 귀환하면서 수 많은 페니키아 포로들을 끌고갔다고 한다. 선지자는 다시스의 선척들을 향해 슬피 부르짖으라고 말한다. 이는 그들의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기 때문이었다(14).

  그 날부터 두로는 70년 동안을 잊혀져 지내다가 70년이 지나면 기생 노래의 뜻같이 될 것이다(15). 선지자는 두로를 기생에 비유하고 있다. 이는 물건을 사고 파는 상업 도시의 면모가 노래와 몸을 파는 기생과 비슷한 데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기생은 일정한 기간 동안 손님으로부터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70년이 지난 뒤에 다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70이란 숫자는, '7(완전수)X10(완전수)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충만한 때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다 역시 바벨론에서 70년이란 기간을 포로로 지내야 했다. '기생 노래'의 가사가 일부 소개되고 있다. 그. 노래의 내용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한 기생이 다시 옛 명성을 되찾고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 기묘한 곡조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16).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두로를 두로를 방문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두로의 멸망이 여호와로부터 말미암은 것처럼, 회복 또한 여호와의 은총으로부터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소득과 보수는 모두 여호와께 거룩히 겨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거룩히 여김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말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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