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제1부 (2): 열방에 대한 심판 (13-23장) |
이 부분에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예고되어 있다. 여기에 나타나는 열방들은 세상 모든 나라들의 대표로서 등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바벨론과(13:1-14:23, 21:1-10), 앗시리아(14:24-32), 모압과(15-16장) 다메섹과(17장) 구스(이집트)와(18-20장), 에돔(21:11-13), 그리고 아라비아와(21:13-17) 예루살렘과(22장) 두로(23장)에 적용이 되고 있다. 유다는 각 시대의 상황에 따라서 외교정책을 결정했다. 유다는 북 이스라엘과 아람이 동맹을 맺고 유다를 위협할 때에 앗시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유다는 앗시리아가 예루살렘까지 위협하고 공물을 징수해 가게 되자, 그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주변의 여러 나라들과 협조했다. 이때에 이사야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스스로 자기의 유익을 위해 추구하는 모든 정책이 실패할 것을 예언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와 그 지도자들에게까지 그들의 이중성을 책망했다. "너희가 또 옛 못의 물을 위하여, 이사야에 언급된 하나님 왕국의 대적은 다음과 같이 셋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 나라에 부정적으로 대응한 이러한 나라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경건한 자들의 기도는 대적들의 멸망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2-1. 압제자들에 대한 심판(13-14장) 가.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고(13:1-14:23) * 여호와께서 군대를 소집하심(13:1-5) * 심판 날의 광경(13:6-16) * 메대에게 패망하는 바벨론(13:17-22) * 이스라엘의 회복(14:1-8) "학대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 조롱당하는 바벨론 왕(14:9-17) * 바벨론의 파멸(14:18-23) 나. 앗시리아(14:24-27) 만군의 여호와는 자신의 생각과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맹세하셨다. 하나님은 앗수르 사람들을 멸망시키고 그들을 짓밟으실 것이다. 그때에 이스라엘은 그들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될 것이다. 이 일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정하신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24-27). 2-2. 말썽쟁이들에 대한 심판 말썽쟁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경멸하고, 괴롭히고 박해하는 나라와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의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왔던 열방, 즉 블레셋, 모압, 에돔, 아람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했고, 이스라엘을 기습하고 침입했다. 블레셋 족속은 사사시대부터 다윗 때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모압 역시 이스라엘을 괴롭혀온 민족이었다. 아람 왕국의 수도 다메섹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많은 전쟁을 일으킨 발상지였다. 그들은 이리저리 동맹을 맺고 유다를 괴롭혔다. 열방은 파도처럼 요동할 것이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사나운 물결을 잔잔케 하실 것이다. 가. 블레셋(14:28-32) 이사야는 악한 왕인 아하스가 죽던 해에 블레셋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받았다(28). 하나님은 블레셋을 향해서 그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언급된 "너를 치던 막대기"는 블레셋을 위협하던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를 가리킨다. 블레셋에 상당한 타격을 가했던 그의 죽음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 하나님은 뱀의 뿌리에서 독사가 날 것이며, 그 열매는 나는 불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블레셋은 전에 경험했던 것보다 더 큰 위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이 예고대로 후에 앗수르의 사르곤 왕은 아스돗을 쳤고(20:1), 가사 왕 카눈을 포로로 잡았으며, 산헤립도 아스글론과 에그론을 정복하고 가사와 아스돗의 왕을 사로잡았다(29).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장자와 빈핍한 자, 즉 유다는 먹고 평안히 누울 것이지만, 블레셋은 기근으로 죽고, 남은 자는 칼에 의해 소멸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30). 하나님은 북방에서 블레셋을 치기 위해 오는 군대가 있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슬피 울라고 말씀하신다(31). 그러므로 유다는 블레셋의 멸망을 알고, 반앗수르 동맹에 유다를 참여시켜려고 그 사신이 찾아올 때에 이에 동조하지 말아야 한다. 구원은 이방 민족으로부터 오지 않고 오직 시온을 세우시고 지키시는 여호와께로부터 올 것이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들은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고 담대히 행해야 한다(32). 나. 모압(15:1-16:14) * 모압에 임할 심판(15장) 그때에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부르짖고, 그 소리는 야하스까지 들리게 될 것이다.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인접한 성읍으로, 모압의 북단에 있는 도시였다. 가장 북쪽에 있는 도성들까지 부르짖는 것은 슬픔이 모압 전 지역에 가득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도시에서 부르짖는 소리는 아르논 근처에 있던 야하스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클 것이다. 이는 그들의 슬픔이 매우 클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모압의 전사가 크게 부르짖고, 그 혼이 그 속에서 떨게 될 것이다. 가장 용맹스러운 전사들마저도 두려움으로 통곡할 정도로 모압의 슬픔은 절정에 달할 것이다(4). 모압의 극심한 슬픔을 인해 선지자 이사야도 그들을 위해 부르짖었다. 모압의 귀족들은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로 도망쳐서 울 것이며,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고,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부르짖을 것이다(5).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귀인들'(베리헤하)을 '도망하는 사람들'(바리헤하)로 읽고 있다. 모압의 피난민들은 울면서 사해 남단으로 도피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 니므림 물이 마를 것이며, 풀이 시들고 연한 것이 말라서 푸른 것이 사라질 것이다(6). '니므림'이 어디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본문이 피난민들의 행로와 관련된 것을 보면, 이 곳은 모압의 남쪽을 가리킬 것이다. 니므림 물이 마른 것은 모압을 침공한 군사들이 전략적으로 수원(水源)을 차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기의 재물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 피난하게 될 것이다(7). 모압 사람들은 난리통에 건질 수 있는 남은 재물들을 가지고 모압과 에돔을 가로 지르는 세렛 강을 건너 급히 피난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우는 소리가 모압 사방에서 들려오고, 슬피 부르짖는 소리가 브엘엘림까지 미쳤기 때무네 서둘러서 피난할 수밖에 없었다(8). '에글라임'은 사해 남단에 있었고, '브엘엘림'은 모압의 북동쪽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압의 남쪽끝에서 북쪽끝까지 방방 곡곡에서 통곡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디몬 물에는 죽은 시체에서 흘러내린 피로 가득했다. '디몬'은 '디본'을 의도적으로 변형해서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디몬'은 발음상 '피'(담)와 유사하다. 백성들의 부르짖음과, 디몬 물을 붉게 물들인 피, 이것은 모압인들을 급히 피난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앞으로도 더 디몬에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모압인 중에서 피난한 자들과 남은 자들을 치기 위해서 사자를 보내실 것이라고 경고하신다(9). 비록 소수의 모압 사람들이 재난을 모면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들마저 사자의 밥이 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고 완전해서 그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24:18; 암 5:19). * 모압의 죄악과 멸망(16장) 그들은 심히 교만하게 행했다. 그들은 허영과 교만으로 가득 차서 자신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거짓말과 과장된 말로 자신들의 미래를 자랑했다(6). 그러므로 결국 그들은 화를 당할 때에 서로의 처지를 슬퍼하며 통곡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그들은 길하레셋의 건포도 떡을 위해 슬퍼하며 크게 근심하게 될 것이다(7). '길하레셋'은 '길 모압'과 같은 곳으로 추정된다(15:1; 왕하 3:25). '건포도 떡'(아쉬쉐)은 건포도를 떡의 모양으로 눌러 만든 것으로 길하레셋의 주요 교역 물품으로 보인다. 그들이 슬퍼하며 근심한 것은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랐기 때문이었다. 헤스본과 십마는 모압의 유명한 포도 산지들이었다. 특히 십마의 포도는 그 맛이 달고 강렬하기로 유명했다. 십마는 르우벤 지파에 속했던 마을로 '헤스본에서 걸어서 500보 정도 되는 곳에 있었다. 한창 때 모압의 포도 농사는 북쪽으로 야셀에 미치고, 동쪽으로는 시리아 사막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사해 근방까지 펼쳐졌었다. 그러나 '열국의 주권자들', 즉 여러 민족 단위의 사령관들로 구성된 앗수르 군대가 그 좋은 포도 나무 가지들을 꺾어 버리고 말았다(8).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는 폐허가 된 모압을 위해서 애통하기 시작한다.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서도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포도주 틀을 밟아 포도주를 짤 사람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이사야는 수금이 되어 모압의 도시들을 위해 애통하고 있다(9-11). 그때에 모압 사람들이 산당에 올라가서 그 신을 섬기고,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종교 행위는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12). 모압의 멸망에 대한 예언은 이전에도 했던 것이었다. 이제 이사야는 그 예언에 또 다시 새로운 예언을 추가하고 있다(13). 하나님은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3년 내에 모압의 영화가 사라지고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3년이라는 기간은 꼭 3년을 가리킨다고 하기 보다는 예언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언급된 모압의 멸망 사건은 B.C. 734년의 디글랏 빌레셀의 침공 사건이나, B.C. 718년 경의 사르곤 2세의 원정과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멸망 기간은 결코 늦춰지거나 연기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품군의 정한 해', 곧 고용 기간이 끝나고 품꾼들이 정한 삯을 받기로 되어 있는 날로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품꾼들은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되, 그 날이 연기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21:16). 모압의 파멸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도 정확한 때에 성취될 것이다. 3년이 지나기 전에 모압의 영화는 사라지고 많은 무리들이 죽어 극소수만 남게 될 것이다. 모압의 운명은 이와 같이 '교만(게온)으로 시작해서 수치(칼론)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한 없이 높이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한없이 낮추실 것이다. 이제 이사야의 경고는 모압에서 다메섹, 즉 아람의 수도로 향하고 있다. 이 예언은 다메섹이 앗수르에 의해 파멸되기 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B.C. 732년 이전). 또한 수리아와 에브라임이 함께 거론된 것을 보면, 이 둘이 군사 동맹을 맺은 이후에 예언이 선포된 것으로 보인다(B.C. 735년 이후). 따라서 이 예언은 B.C.735-732년 사이에 (아마도 734년) 기록되었을 것이다. B.C. 1,000년경 다메섹은 수리아 연맹의 맹주로서 앗수르와 더불어 고대 근동의 주도권을 다툴 만큼 그 힘이 강력했였다. 그러나 B.C. 732년,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 함락된 이후 이전과 같은 힘을 다시 회복하지 못하였다. 다메섹은 메스포타미아와 애굽을 잇는 무역로의 관문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의 헬몬산과 남의 현무암 평원에 둘러싸인 비옥한 지대였다. 부채살 모양의 일곱 지류로 흐르는 아마나강과 헬몬 산 기슭에서 흘러 내리는 바르발(아와이) 강이 중심을 관류하고 있다(왕하 5:12). 선지자는 아로엘의 성읍들이 버림을 받아 양을 치는 곳이 될 것이라고 예고한다(2). 여기에 언급된 '아로엘의 성읍들'은 요단강 동편에 있던 성읍들을 가리킨다. 선지자는 에브라임과 다메섹과 아람의 남은 백성이 모두 멸망할 것이라고 말한다(3). 에브라임은 유다와 한 핏줄을 나눈 형제국이었지만, 이방 민족인 수리아와 결탁하여 유다를 대적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운명 역시 수리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 야곱, 즉 이스라엘의 영광이 쇠하고 살찐 몸이 파리해질 것이며(4), 찬란했던 이스라엘의 영화가 사라지고 병들어 뼈만 앙상하게 남게 될 것이다. 그날에 그 대적들은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고, 그 손으로 이삭을 베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치게 될 것이다(5). 그리고 그들은 마치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모조리 따고 몇 개만 남긴 것처럼 거의 멸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거의 멸망시키시되 언약을 위해 소수의 남은 사람들을 살려두실 것이다(6). 그때에 사람들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볼 것이며, 더 이상 우상, 즉 자기 손으로 지은 제단이나 아세라, 또는 태양상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7-8). 그때에 견고한 성읍이 폐허로 변해버릴 것이며, 이는 그들이 자기를 구원하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능력의 반석이 되시는 여호와를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9-10). 하나님은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 그들을 돌보아 주셨지만, 그 날에는 모든 농작물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11). 이사야는 많은 민족들이 소동하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며, 많은 물이 몰려오는 것처럼 그들을 공격하고 덮을 것이다(12).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그들은 대적들 앞에서 겨가 바람이 날리는 것고, 푹풍 앞에 떠도는 티끌과 같이 파별할 것이라고 고백한다(13). 그들은 저녁에 대적으로 보고 두려워하고, 아침이 되기전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14). '구스', 곧 에디오피아는 애굽 남단에 있으며, 그 영토는 오늘날의 에디오피아와 수단, 소말리아를 포함할 만큼 광활했다(겔 29:10; 30:6). 바사 시대에 구스는 인도와 더불어 땅의 맞은편 끝에 있는 나라로 인식되었다(에 1:1). B.C. 715년, 샤바코(Shabako)가 애굽의 왕위에 오름으로써 시작된 애굽 제25왕조(Nubian 왕조) 시대에, 이 나라는 북쪽의 앗수르와 함께 서아시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나파타(Napata, 오늘날의 Gebel Berkal)은 당시 정치의 중심지였다. 누비안(Nubian) 왕조의 세 번째 왕인 디르하가(Tirhakah)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히스기야를 핍박하여 라기스를 포위했을 때에 그와 접전했다(37:8-9; 왕하 19:8, 9, Leon Wood). 한동안 계속되었던 에디오피아인의 애굽 통치는, B.C. 633년, 애굽의 삼메티쿠스(Psammeticus)가 그 자리를 다시 찾음으로써 종말을 고하게 된다. * 구스의 멸망과 회개(18장) 그러면 왜 선지자는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있는가? 선지자는 온 지상의 거민을 향해서 여호와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선포한다. 그날에 온 세상은 산 위에 있는 기호를 보고, 나팔소리를 듣는 것같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3). 하나님은 민족들의 행위들을 지켜보시면서, 그들의 행위를 심판할 때가 이르기까지 침묵하며 기다리신다. 하나님께서 침묵하며 바라보시는 것은 마치 한낮의 햇볕과 저녁의 이슬과 같았다(4). 이것들은 곡식을 여물게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일광'(홈 차흐)은 밝은 빛을 가리키며, '운무'(아브 탈)는 밤에 이슬이 되는 가벼운 구름을 의미한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면서 온 세상을 바라보시는 동안에 하나님의 추수, 즉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익어갈 때에, 즉 추수 때가 되면 하나님은 낫으로 그 가지를 베고 찍어버리실 것이다(5). 그리고 그것을 산의 독수리들과 들짐승들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6). 심판의 날에 전쟁에서 죽임당한 시체들이 너무 많아서 독수리들이 여름 내내 그것을 먹고, 들짐승들이 겨울 내내 그것으로 배를 불리우게 될 것이다. '과하한다'는 말(카츠)은 '여름을 보낸다'는 말이며, '과동한다'는 말(테헤라프)는 '겨울을 보낸다'는 뜻이다. 산헤립의 군대가 하룻밤에 몰살당하였을 때, 그 죽은 수가 무려 185,000명에 이르렀다(사 37:36). 그리고 그때에 구스인들이 여호와께서 계신 시온에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 시온산에 도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7). '그 때'가 가까운 미래를 말하는지. 아니면 먼 미래를 말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선지자는 에디오피아가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시온산을 찾을 가까운 미래의 사건을 통해서, 먼 미래에 세계 민족들이 여호와께 나아올 장면을 내다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사 2:2-4; 습 3:10; 행 8:26-39). 구수는 처음에 앗수르를 대적하기 위해 동맹을 요구하기 위해 사절을 보냈었다. 그러나 그들은 두 번째로 앗수르를 물리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경배를 드리기 위해서 예물을 들고 시온을 찾게 될 것이다. 히스기야가 앗수르 군대를 멸망시켰을 때에 바벨론에서 사절을 보내어 승전을 축하했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앗수르에게 큰 고통을 당한 구수에서도 사절을 보내 히스기야 왕의 승전을 축하했을 가능성이 있다. * 애굽의 쇠퇴와 멸망(19장) 그때에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애굽이 자랑하던 나일 강이 마르고, 강에서는 악취가 날 것이며, 물이 줄어들어 마르고, 강물에서 물을 공급하던 초장과 밭들이 메말라버리게 될 것이다(5-7). 또 나일 강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은 고기가 없어져서 탄식하고 슬퍼하며 피곤해 할 것이다(8). 또한 옷감을 짜는 자들도 수치를 당하고, 왕에게 조언을 하던 모사들은 어리석게 되어 미련해 질 것이다(9-12). 또한 애굽의 관리들도 어리석어져서 미련해져서 애굽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마치 술에 취한 자가 비틀거리면서 걷는 것처럼 오락가락 할 것이다(13-14). 그리고 애굽인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할 일이 없게 될 것이다(15). 그때에 애굽인들은 여인처럼 두려워하고 떨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유다의 소식을 듣고 떨게 될 것이다(16-17). 선지자 이사야는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개의 성읍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선지자는 심판의 정점에서 애굽의 성 중에 일부가 여호와께 돌아올 것이라고 예고한다. 여기에 언급된 `다섯 성읍'은 애굽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보증하는 전조로 주어지고 있다. `다섯'이라는 숫자는 많은 것 중에 지극히 적은 것을 의미한다(30:17; 레 26:8; 고전 14:19). 이사야는 그 다섯 성읍 중에 하나를 "장망성"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말한다(18). 장망성은 `장차 망하기로 예정된 성'을 말한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성들은 구원받을 성들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이름은 문맥상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어려 가지로 제시되어 왔다. 1) 칼빈은 멸망할 `장망성'은 구원받을 다섯 성읍 가운데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 델리취는 장망성이 구원받을 다섯 성읍 중에 포함된 것은 틀림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성은 '장차 망하도록 예정된 성읍'이 아니라 `장차'(우상의 제단들을) 파괴시킬 `성읍'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3) `장망성'이란 말은 '태양의 성읍'이란 말이 잘못 기록되엇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약 15개의 히브리어 사본들과 심마쿠스역, 탈굼역. 벌게이트역 등에서 이 단어는 `태양의 성읍'(이르 하헤레스)로 표기되어 있다. 만약 이 견해가 옳다면 본문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인, 태양신을 섬기던 바로 그 우상의 성읍조차 하나님께 돌아와 가나안 방언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릴 것이다'(O-swalt). 현재로서는 이 해석이 가장 타당하게 여겨진다. 그때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 세워지고 그 주변에는 여호와를 위한 기둥이 있게될 것이다(19). 이 제단과 기둥은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인한 표적과 증거가 될 것이다. 그때에 애굽인들은 압박자로 인해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하나님은 한 구원자를 내어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건져주실 것이다(20). 그때에 여호와께서 자신을 애굽에 알리실 것이며, 애굽인들은 여호와를 알고 경배하며, 여호와께세 서원을 하고 그 서원을 이행할 것이다(21). 여호와께서는 애굽을 잠시 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치신 후에는 다시 그들을 고쳐주실 것이다. 그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돌아올 것이며, 여호와께서는 그 간구를 들으시고 그를 고쳐주실 것이다(22).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가는 대로가 있어서 앗수르 사람이 애굽으로 가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가게 되고, 애굽 사람들이 앗수르 사람들과 함께 여호와께 경배하게 될 것이다(23). 그날에는 이스라엘과 애굽과 앗수르 세 나라가 온 세계 중에서 축복의 나라가 될 것이다.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특별히 이 세 나라를 축복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24-25). * 앗수르에게 멸망하는 애굽과 구스(20장) 그때에 이러한 모습을 보고 '애굽과 구스'를 의지하던 유대인 과 팔레스틴 거민들은 놀라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될 것이다(5). 그들은 그토록 강대하게 보이던 애굽과 구스가 몰락하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될 것이며, 그러한 나라를 바라고 자랑했던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수치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에 유다를 포함하는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은 자기들이 믿었던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고 낙심하여 탄식하게 될 것이다(6). 유다를 포함한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구스와 애굽을 믿고 의지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애굽이 멸망하는 것을 볼 때에 애굽을 의지했던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한탄하게 될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러한 언급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왜 하나님을 피난처를 삼지 않고 애굽을 의지했느냐?"고 안시적으로 책망을 하고 있다. 이제 선지자의 경고는 해변 광야를 향하고 있다. '해변광야'는 바벨론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이름이다(9절). 이사야는 바벨론을 치러 오는 적병을 광대한 아바리아 사막에서 게세게 불어오는 태풍에 비유하고 있다. 광야 곧 두려운 땅에서 올 것으로 예언된 적병은 2절에 언급된 엘람과 메대인들을 가리킨다(1). 이사야는 견딜 수 없이 무거운 묵시를 보았다고 말한다. 장차 올라올 대적들은 바벨론을 속이고 약탈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엘람과 메대의 군사들을 향해서 바벨론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리신다(2). '올라가고 에워싸라'는 말은 바벧론에 대한 공격 명령을 말한다. '엘람'은 현재의 이란 남부에 해당하며 바사 제국을 가리킨다. 바사와 국경을 접하고 있던 엘람은 후에 바사에게 합병되었다. 바사와 메대는 B.C. 539년 고레스 왕의 주도하에 바벨론을 정복했다. 선지자 이사야는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혹독한 묵시'로 인해 두 가지 반응, 즉 극심한 요통(3절)과 마음의 진동(4절)을 일으켰다. 그는 해산하는 여인과 같은 고통을 느꼈으며, 이로 인해 듣고 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또한 그는 마음의 고통을 인해 놀라고 안식을 기대하던 저녁이 두려움의 시간으로 변해 버렸다. '희망의 서광'은 '나의 기쁨의 저녁'이라는 말로서, 이는 한 날의 근심을 벗고 안식할 수 있는 저녁 시간을 말한다. 바벨론 사람들은 적군의 내침이 임박한 때에 파수꾼을 세우는 한 가지 예방 조치만으로 모든 준비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연회에 빠져들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바벨론 방백들에게 연회에서 일어나서 방패에 기름을 바르라고 말한다. 이는 전쟁 준비를 서두르라는 말이다. 방패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적군이 내리치는 칼날이 미끄러져 빗겨나가게 하기 위한 것으로 전쟁에 앞서 군인들이 반드시해야 할 일들 중 하나였다. 이러한 묘사는 바벨론의 멸망을 기록하고 있는 (단 5장)의 내용과 비슷하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은 귀인 1,000명과 함께 잔치를 열고 놀다가 고레스의 군대에 의해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 파수꾼이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라고 지시하셨다(6). 본문에서는 다가오는 메대-바사 군대와 바벨론의 멸망을 '파숫군'의 시각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나님은 파수쑨에게 마병대가 쌍쌍이 오고, 나귀와 약대 떼를 보면 자세히 보고 들으라고 말씀하셨다(7). 마병대는 고레스가 자랑하는 바사의 주력 부대였으며, 일반적으로 나귀 떼와 약대 떼는 군수품과 식량을 운반했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는 고레스가 리디아인들(Lydians)을 공격할 때에 나귀 떼를 이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Gray). 이러한 기록을 참고해볼 때에 나귀와 약대 떼는 운송수단 뿐 아니라, 유사시에 전쟁 수단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크세노폰(Xenophon)은 바사의 군대가 둘씩 짝을 지어서 행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Alexander). 그 명령을 따라서 파수꾼은 낮에는 망대에서 그리고 밤에는 파수하는 곳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8). 그리고 그는 마침내 마병대가 짝을 지어 온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마침내 바벨론이 함락되어 그 우상들이 무너져 버렸다고 보고했다(9). 바벨론은 타작하여 마당에 쌓은 곡식으로 비유되고 있다. 이러한 비유는 추수하여 타작이 끝난 것처럼 바벨론의 심판이 종결되었음을 의미한다(10). 이제 선지자의 경고는 바베론에서 두마로이어진다. '두마'는 에돔의 변형으로, 에돔의 미래의 운명을 상징하는 이름이다(시 94:17; 115:17). 사해 남쪽에서 엘란 만에 걸쳐 있는 세일산에서 파수꾼(선지자)을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선지자는 영적인 밤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는 온 세상이 영적인 잠에 취해 있을 때에 홀로 깨어서 어둠을 바라본다. 세일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파수꾼을 향해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고 있다(11). '밤'은 재난의 시간이다. 밤이 너무 길게 느껴진 사람들은 밤이 얼마나 남았느냐?, 즉 이 고난의 밤이 언제나 끝날 것이냐?고 물을 것이다. 파수꾼의 대답은 간결하고 모호하다. 파수꾼은 아침이 오되 밤도 함께 올 것이라고 대답한다. 아침이 구원의 시간을 말한다면 밤은 재난의 시간이다.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해 에돔은 구원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또 다른 어둠에 의해 삼킴을 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벨론을 정복한 바사제국이 에돔을 다시 지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12). 그러므로 선지자는 그들을 향해 다가올 재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권고하고 있다. 바벨론의 멸망은 에돔뿐 아니라 인접한 아라비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선지자의 경고는 먼저 사막을 횡단하는 드단의 대상들을 향하고 있다. 그들은 에돔과 이웃한 족속들(창 10:7; 25:3; 렘 49:8; 겔 25:13; 27:20)로서 낙타를 끌고 두로를 오가는 원거리 상업에 종사했다. 그들은 평상시에 통행했던 길에서 쫓겨나서 수풀에서 은신처를 찾게 될 것이다. 이는 심각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아라비아 땅이 적에게 유린될 것을 말해주고 있다(13). 선지자의 다음 말은 드단 대상들이 도망친 곳과 가까운 데마 주민들을 향하고 있다. 선지자는 데마 사람들에게 급히 도피하는 자들에게 물과 빵을 주라고 말한다(14). 그들은 칼날과 활과 전쟁을 피해 급히 다라난 사람들이었다(15).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품군의 정한 기한같이 1년 내에 게달릐 영광이 소멸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16). '품군의 정한 기한같이'라는 말은 품꾼에게 일하기로 약속된 시간처럼 파멸되기로 예정된 시간이 늦추어지지 않을 것을 말해주고 있다. '게달'은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로서(창 25:13), 여기에서는 아라비아 유목 민족을 대표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두로와의 상거래를 통해 축적된 많은 부와 풍부한 가축들, 그리고 강한 용사들로 넘치던 게달의 '영광'은 곧 전쟁의 짐에 눌려 붕괴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게달 자손 중에서 활을 가진 자의 수가 매우 적어지게 될 것이다(17). 게달 자손들은 활을 잘쏘기로 유명했다(시 120:4). 그러나 전쟁을 겪은 뒤에 그들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어서 소수만 남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그들에 대하나님의 심판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 이상 골짜기에 대한 경고(22:1-14) 장차 여호와께서 이상의 골짜기, 즉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 예루사렘에서는 두 종류의 소리가 들리게 될 것이다. 첫째 소리는 적군의 공격을 받아서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이며, 둘째 소리는 그와 때를 같이해서 살려달라는 백성들의 비명소리이다. 부르짖는 소리('쇼아')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부르짖음이다(5). 이사야는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는 앗수르 군대 중에 주도적인 두 나라를 진술하고 있다. '엘람'과 '기르'는 산헤립 당시에 이미 거대한 앗수르 제국의 한 주(속국)로 편입되어 있었다. '엘람'은 바벨론 북동쪽에 있던 도시로(21:2), 활을 잘 쏘기로 유명했다. 또 '기르'는 코카서스에서 발원하여 카스피해로 유입되는 큐로스 강에 인접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두 나라로 대표되는 앗수르 군대는 활을 찬 궁사들과, 전차 부대, 그리고 기병대와 보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6). 그 날에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골짜기마다 적들의 병거가 가득할 것이며, 성문 앞에는 마병이 정렬해서 예루살렘을 공격할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7). 그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던 유대 백성들의 무지의 베일을 벗겨서 자신들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알게 할 것이다. 그 때에 예루살렘 거민들은 긴급히 수풀 곡간에 쌓아둔 병기를 꺼내 싸울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8). 그 동안 그들은 다윗 성이 견고한 성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그 날에 예루살렘 성에 무너진 곳이 얼마나 많은 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은 포위당했을 때를 대비해서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아래 못의 물을 모을 것이다(9). '아래 못'은 시온 산 서쪽 맞은편 힌놈 골짜기에 남아 있는 저수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때에 그들은 성읍 내에 있는 집을 계수하고 그것을 헐어서 성벽을 견고하게 하는 데 필요한 건축 재료를 구하게 될 것이다(10). 또한 그들은 옛 못의 물을 저중하기 위해서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 대비를 하면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앙망하거나 존경하지 않았다고 책망하고 있다(11). 개역성경에 '앙망한다', '존경한다'고 번역된 말은 '바라본다', 또는 '의지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들은 전쟁 준비만 할 줄 알았지, 유다를 위기 속에서 구원해 주실 피난처인 여호와를 바라보고 의지하지는 못했다. 예루살렘 앞에서 벌어진 위기 상황들은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경고였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러한 상황을 보고 자기 죄를 회개하며 가슴을 치고 울며, 머리털을 뜯고 굵은 베를 허리에 띠고 겸손히 행하기를 원하셨다(12). 그러나 그들은 놀랍게도 이러한 상황에서 즐거워하면서 양과 소를 잡고 내일 죽을 것이므로 오늘 먹고 마시자고 떠들어댔다(13).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그들의 죄악은 그들이 죽을 때까지 속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14). 회개하기를 거부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절대로 맛볼 수 없다. * 셉나의 뒤를 이은 엘리아김(22:15-25) 선지자는 다시스의 선척들을 향해 슬피 부르짖으라고 외친다. '다시스'는 스페인의 타르테수스를 가리키는데, 그곳은 두로의 해상 식민지였다(왕상 10:22; 22:48; 겔 27:25). 선지자는 두로가 황무하여 들어갈 항구도, 안식할 집도 없어졌다고 말한다. 이 소식은 그들의 최종 정박지인 '깃딤', 즉 구브로 섬에서 전달되었다(1). 이사야는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고(페니키아의 상인)들로 인해 부유하게 된 해변 거민들에게 잠잠하라고 외치고 있다(2). 페니키아의 상인들은 지중해를 오가면서 인접한 나라들의 물건을 중개 무역하였는데, 이로 인해 덕을 본 나라들이 많았다. 그들은 고대 세계의 곡창 지대였던 애굽에서 곡식을 사서, 이것을 '큰 물' 곧 지중해로 운반한 뒤에 곡식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팔아서 큰 이윤을 남겼다(3). '시흘'은 나일 강을 뜻하는 애굽어 '예오르'(19:6)의 히브리어 발음이다(수 13:3; 렘 2:18). 이사야는 시돈을 향해 부끄러워 하라고 외친다. 이는 한 때 지중해를 석권하여 많은 식민지들을 건설한 두로가 재난을 당해 모든 것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재난을 인해 아이를 낳지 못하고 청년과 처녀들을 양육하지 못하게 되었다(4). 두로의 패망 소식이 애굽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줄 것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곡물 수출업자인 그들의 몰락으로 인해 애굽의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둘째는 동방 국가가 서쪽으로 전진하는 일을 저지하는 방파제 역할을 수행했던 두로의 몰락으로 애굽 역시 군사적인 위험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5). 선지자는 적의 포위 공격을 받는 두로 거민들에게 가능한 한 멀리 있는 다시스로 도피하라고 명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두로를 포위했을 때에도 이와 유사한 광경이 벌어졌다. 그때에는 노인, 부녀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페니키아의 식민지 중의 하나였던 카르타고로 도피했다. 또한 이사야는 그들로 인해 경제적 혜택을 누려온 해변 거민들에게도 슬피 울며 부르짖으라고 말한다(6). 이사야는 이것이 고대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이며,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먼 지방까지 가서 거하던 성이냐?고 묻는다(7). 두로는 약 2,700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깊은 성이었으며, 활발한 상업 활동으로 풍요롭게 되었고, 끝없는 개척정신으로 먼 곳까지 가서 시장을 개척하고, 카르타고와 다시스와 같은 식민지들을 건설했다. 그러나 이제 그 성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폐허가 되고 말 것이다. 이사야는 세상의 면류관이며 지도자와 존귀한 자로 가득 찬 그들을 멸망하기로 정하신 분이 누구냐?고 묻는다(8). 그리고 나서 이사야는 이 일을 정하신 분이 만군의 여호와라고 선언한다. 그는 여호와께서 교만을 욕되게 하고, 모든 존귀한 자로 멸시를 받게 하려고 이 일을 정하셨다고 말한다(9). 두로의 패망으로 인해 그의 지배를 받던 나라들이 해방과 독립을 하게 될 것이다. 다시스는 그 중에 한 예로 제시되고 있다. 구속된 상태에서의 두로와 그 식민지인 다시스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비유되고 있다. 그러나 해방의 날에 다시스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나일 강이 흘러넘쳐서 마음대로 흐르는 것처럼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10). 여호와께서 바다에 손을 펼치실 때에 바다를 의존하던 열방들, 곧 독자적으로 자기 왕을 섬기던 페니키아의 여러 나라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다(11). 한때 순결한 처녀와 같이 부와 명예를 자랑하던 시돈(페니키아)이 능욕을 당하여 모든 즐거움울 상실한 여인처럼 될 것이다. 선지자는 그가 깃딤으로 도피한다고 해도 그가 원하는 안식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한다(12). 선지자는 두로를 멸망시킬 도구를 제시하고 있다. 본문에 언급된 두로를 멸망시킬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로 일부 사람들은 두로를 파멸시킬 나라는 앗수르라고 말한다. 그들은 본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가나안 땅(페니키아)을 보라. 이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앗수르가 그것을 광야로 바꾸어 버렸다. 그들(페니키아인들)은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건설했으나, 그(앗수르)가 그것을 황무케 하였다'(Ewald).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너무나 많은 본문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두로를 멸망시킬 갈대아 나라가 바벨론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본문을 이렇게 해석한다. '갈대아 사람(바벨론)의 땅을 보라. 이 백성(지금 거주하고 있는 바벨론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즉, 원주민이 아니었다). 앗수르가 그것을 광야의 거주자들(전에 유목 생활을 하던 갈대아인들)을 위해 건설하였다. 이 백성(갈대아인)이 망대를 세우고 그녀(두로)의 궁전을 헐었으며 그것을 황무케 하였다.' 후대의 역사가들에 따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이토발이 다스리던 두로를 13년간이나 포위했으며, 부왕의 사망 소식을 듣고 바벨론으로 귀환하면서 수 많은 페니키아 포로들을 끌고갔다고 한다. 선지자는 다시스의 선척들을 향해 슬피 부르짖으라고 말한다. 이는 그들의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기 때문이었다(14). 그 날부터 두로는 70년 동안을 잊혀져 지내다가 70년이 지나면 기생 노래의 뜻같이 될 것이다(15). 선지자는 두로를 기생에 비유하고 있다. 이는 물건을 사고 파는 상업 도시의 면모가 노래와 몸을 파는 기생과 비슷한 데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기생은 일정한 기간 동안 손님으로부터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70년이 지난 뒤에 다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70이란 숫자는, '7(완전수)X10(완전수)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충만한 때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다 역시 바벨론에서 70년이란 기간을 포로로 지내야 했다. '기생 노래'의 가사가 일부 소개되고 있다. 그. 노래의 내용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한 기생이 다시 옛 명성을 되찾고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 기묘한 곡조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16).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두로를 두로를 방문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두로의 멸망이 여호와로부터 말미암은 것처럼, 회복 또한 여호와의 은총으로부터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소득과 보수는 모두 여호와께 거룩히 겨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거룩히 여김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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