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사21:1]
주제1: [바벨론,에돔,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ꃨ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 '해변광야'는 바벨론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이름이다(9절) 아라비아 사막의 남단 대평원에 위치한 초기의 바벨론은 세미라미스(Semiramis)가 댐을 쌓기 전까지는 , 아비데누스(Abydenus)가 '마치 바다 처럼 보인다'고 말했을 정도로, 범람하는 유브라데 강물에 자주 침수되었다(Alexander). 그러나 '해변 광야'란 상징적인 이름에는 물에 잠겨 있는 바벨론의 지형 조건만이 아니라, 그 모습을 통하여 선지자가 미리 내다본 바, 바벨론의 궁극적인 운명의 불길한 전조까지 내포되어 있다(14:23;렘 51:13, Delitzsch). 그것이 선지자의 환상 속에서 점점 구체화된다. 적병이...남방 회리바람같이 몰려 왔도다. 바벨론에 임할 재난은 광대한 아바리아 사막에서 급속도로 불어오는 태풍에 비유된다. 이 태풍의 무서움에 대하여는 욥 1:19;37:9;렘 4:11;13:24;호 13:15;슥 9:14 등을 참조하라. 광야 곧 두려운 땅에서 오리라고 예언된 적병은 다음절에 나오는 엘람과 메대인들을 가리킨다.
성 경: [사21:2]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ꃨ 혹독한 묵시 - 이는 '묵시'(*,하주트)의 내용 자체가 견딜 수 없이 무겁다(*, 카솨)는 뜻이다.
ꃨ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 옛 주석가들은 본문을 포악한 바벨론 군주들에 대한 묘사로 본다. 이에 따르면, 바벨론이 왜 멸망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선지자가 여기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본문을 바벨론의 침략자들에게 적용시킨다. 두 가지가 다 문법적으로 가능하나 후자를 취한다(Alexander).
ꃨ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 '올라가고 에워싸라'는 말은 바벨론에 대한 공격 명령이다. 이 명령은 엘람과 메대에게 주어졌다. '엘람'은 현재의 이란 남부에 해당하며 바사 제국을 가리킨다. '엘람'은 히브리인들에게 잘 알려진 반면(창 14:1), '바사'는 그때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바사와 국경을 접하고 있던 엘람은 후에 바사에게 합병되었다. 바사와 메대는 B.C. 539년 고레스 왕의 주도하에 바벨론을 정복하였다. '메대'에 대하여는 13;17 주석을 참조하라. 이사야 선지자 당대에 엘람과 메대가 바벨론의 연합국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그의 묵시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는 이러한 혜안(蕙眼)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영감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임에 틀림없다.
성 경: [사21:3,4]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전절의 '혹독한 묵시'는 선지자에게 두 가지 신체적인 반응, 즉 극심한 요통(3절)과 마음의 진동(4절)을 야기시켰다. 포로기의 선지자들이 바벨론의 몰락을 환호한 데 비하면, 본문에 묘사된 선지자의 반응은 다소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하 카이저(Kaiser)는, 이 같은 표현은 선지자들이 자기 계시의 엄중함을 부가시키기 위하여 즐겨 사용하는 수사학적인 기교라교 설명한다(15:5;16:9, 11;겔 21:6, 7;단 10:2, 3, Oswalt). 반면에 칼빈(Calvin)은 자기가 본 것을 백성들에게 생동감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선지자가 자신을 바벨론과 동일시하여 마치 배우처럼 자신을 입을 통해 바벨론의 참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어느 쪽을 취하든지, 묵시의 혹독함이 간접적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
ꃨ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 본문의 히브리어 '할할라'(*)는 '춤추다', '꼬이다'는 뜻의 '훌'(*)에서 파생된 명사로, 몸부림치는 고통을 의미한다(겔 30:4,9). 선지자는 이 고통을 '임산한 여인의 고통'(*,치림)으로 비견한다(13:8).
ꃨ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 '희망의 서광'(네쉐프 히쉐키,* )은 직역하면 '나의 기쁨의 저녁'이니, 한 날의 근심을 벗고 안식하리라고 기대되었던 저녁 시간조차 두려움의 때로 변한다는 말이다.
성 경: [사21:5]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ꃨ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먹고 마시도다 - 포위 공격을 당하리라고 선언된(2절) 바벨론의 자세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본문에 묘사된 상황은 바벨론의 대연회 장면이다. (적군의 내침이 임박한 시점에서) 그들은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신다. 루짜토(Luzzatto)는 본절을 대립적으로 이해한다 : '그들은 식탁을 베푼다, 파수꾼을 세워야 함에도;그들은 먹고 마신다,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발라야 함에도,' '파숫꾼을 세우고'(*, 차포하차피트)는 언뜻 봐서는 바벨론인들의 허랑 방탕한 연회 모습을 기록하는 있는 본문에 어울리지 않는 듯이 보인다. 이 때문에 몇몇 주석가들은 이것을 '융단을 깔고'(sperad the carpets)로 번역한다(Hitzig, Knobel, Leupold, Gray, Alexander). 그러나 '차파'(*)란 '감시하다'는 뜻이며, 더욱이 이같이 위급한 상황에서 파수꾼을 배치하는 최소한의 예방 조치도 없이 연회를 베푼다는 것은 상식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본래대로 해석함이 옳다. 본문은 다음과 같이 이해된다 : '그들은 파수꾼을 세우는 한 가지 예방 조치만으로도 모든 준비를 다했다는 듯이 안심하고서 아무 걱정없이 연회에 빠져든다.'
ꃨ 너희 방백들아 일아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 전쟁 준비를 서두르라는 말이다. 방패에 기름을 바름은 적군이 내리치는 칼날이 미끄러져 빗겨가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에 앞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몇 가지 선행 조처들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이 시간까지도 방패에 기름을 바르지 않았다는 것은 저들의 태만함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본문의 전체적인 상황은 바벨론의 멸망을 기록하고 있는 단5장과 흡사하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벧사살은 귀인 일천 명과 더불어 잔치를 베풀며 놀다가 고레스의 군대에 의해 몰살당하였다.
성 경: [사21:6]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ꃨ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 보는 것을 고하게 하되 - 다가오는 메대-바사 군대와 바벨론의 멸망이 선지자 자신의 눈으로가 아니라 '파숫군'이라는 제 삼자의 시가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할진데, 이 파수꾼은 선지자에 의해서 객관화된 또 다른 그의 모습이다. 파수꾼의 표상은 메시지를 보다 생생하게 만들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다.
성 경: [사21:7]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ꃨ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약대 떼 - 파수꾼이 주목해서 봐야 할 내용이 소개된다. 기병대는 고레스가 자랑하는 바사의 주력 부대였다. 그 외 나귀 떼와 약대 떼는 군수품과 식량 운반 등에 활용된 듯하다. 그러나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고레스가 리다아인들(Lydians)을 물리칠 때는 나귀 떼를 이용했다고 한다(Gray). 이로 보건대, 나귀떼와 약대 떼는 운송 수단으로 뿐만 아니라 전쟁 수단으로도 활용되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크세노폰(Xenophon)은 바사의 군대가 둘씩 짝을 지어 행군했음을 알려준다(Alexander).
성 경: [사21:8]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ꃨ 파숫군이 사자같이 부르짖기를 -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외친다-사자-파수대 위에서'이다. 대분분의 주석가들은 '사자'(*, 아르예)가 파수꾼의 보고 내용이 아니라 보고하는 방식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좋는 병행구는 계 10:3의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에서 발견된다. 파수꾼의 보고는 먼저 자신이 성실과 끈기를 다하여 임무에 임했다는 것(8b절)과 바벨론에서 벌어진 전쟁의 결과(9절)에 대한 것이다.
성 경: [사21:9]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ꃨ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 6절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되던 사태의 추이가 마침내 '바벨론이 함락되었다'는 파수꾼의 환호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것은 고레스 왕이 주도하는 메대-바사 군대에 의해 바벨론이 멸망할 것을 선언하는 말인데, 영적인 의미에서 그 참된 성취는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계 18:2)라고 외치는 하늘 천사들의 합창에서 비로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바벨론과 함께 그 우상들의 몰락이 언급된 것은 비록 이일이 직접적으로는 고레스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이다.
성 경: [사21:10]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ꃨ 너 나의 타작한 것이여 나의 마당의 곡식이여 - 바벨론에 대한 경고의 마지막에서 예언의 목적이 제시된다. 그것은 바벨론에 의해 예속되어 고달픔을 겪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려는 것이다. 선지자가 그들에게 전하는 큰 기쁨의 소식은 바벨론이 몰락했다는 것이다. '나의 마당의 곡식'(벤-가르니, * - )은 문자적으로는 '나의 마당의 아들'인데, '아들'은 어떤 물건에 소속됨(관련성)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이다(Alexander). 이 말은 '나의 타작한 것'과 동의어다. 마치 농부가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기 위하여 곡식을 타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바벨론이라는 징계 수단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타작하였으나 그 괴로움의 시간은 이제 곧 끝날 것이다(렘 51:33;미 4:12).
성 경: [사21:11]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아돔에 대한 예언]
ꃨ 두마에 관한 경고라 - '침묵', '정적', '쓸쓸함'을 뜻하는 '두마'(*)는 에돔의 변형으로서, 에돔의 미래 운명을 상징하는 이름이다(시 94:17;115:17, Vitringa, Rosenmuller, Delitzch, Knobel). 어떤 이들은 '두마'가 이스마엘을 조상으로 하는 아랍 족속의 명칭(창 25:14;대상 1:30) 혹은 오늘날 '두마엘얀딜'(Dumah Eljandil)이라 불리우는 아라비아 북부의 한 지역이라고도 한다(Geseniuss, Hitzig, Michaelis, Umbreit, Ewald). 그러나 뒤에 나오는 '세일'(Seir) 자체가 에서의 자손 혹은 에돔인들의 거주 지역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별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Alexander).
ꃨ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 파수꾼(선지자)을 부르는 소리는 사해의 남쪽에서 엘란 만(Elantic gullf)에 미치는 높은 산악 지대인 세일(창 14:6;32:3;36:8, 9)에서 들린다.
ꃨ 파숫군이여 - 본무의 '파숫군'(*, 쇼메르)은 6절의 '파숫군'(*,메차페)과 같지 않다. 후자가 주로 적의 침략으로부터 성(城)을 방비하는 일을 한다면, 전자는 밤에 깨어 성을 지키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62:6;시 127:1;130:6;아 5:7). 참다운 의미에서 선지자는 세계의 밤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는 온 세상이 잠에 취해 있을 때, 홀로 깨어 어둠을 응시한다. 깨어 있는 자로서, 감시하는 자로서, 어둠의 무게를 두 어깨에 짊어진 자로서, 그는 세계의 운명에 대해 말할 것을 강요받는다.
ꃨ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 '밤'은 재난의 시간이다. 이 밤의 지겨움을 견딜 수 없어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탄식어린 물음이 새어 나온다. 그 물음은 이렇게 풀어 말할 수 있다:'우리는 지금 밤의 어느 지점에 있는가? 밤이 얼마나 남았는가? 이 고난의 밤은 언제나 끝나는가?' 반복된 물음은 그들의 답답함의 정도를 암시해준다.
성 경: [사21:12]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아돔에 대한 예언]
ꃨ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 파수꾼의 대답은 간결하고 모호하다. 탈굼역(Targum)은 이 말을 '의로운 자에게는 보상의 아침이 밝을 것이나 불의한 자에게는 형벌의 밤이 임할 것이다'로 해석한다. 노벧(Knobel)은 '유대인들에게는 구원의 아침이 돋을 것이나, 에돔인들에게는 고난의 밤이 계속되라라'로 해석한다. 반면에 그로티우스(Grotius)는 '비록 아침의 시간이 올지라도 영적인 흑암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로 해석한다. 그러나 보다 좋은 해석은 아침과 밤의 순환이 여기서 말해지고 있다고 보는 해석이다(Gesenius). 밤이 재난의 사건이라면, 아침은 구원의 시간이다. 비록 구원의 때가 바벨론의 멸망과 더불어 도래하는 듯이 보일지라도 그것은 또 다른 어둠에 삼킴을 당할 것이니, 즉 바사제국에 의해 그들은 지배될 것이다(Delitzsch).
성 경: [사21:13]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아라비아에 대한 예언]
ꃨ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 바벨론의 파멸은 에돔뿐만 아니라 인접한 아리비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라비아'(*,아라브)라는 이름에는, '해변광야', '두마'와 같이 그 나라의 운명을 암시하는 '저녁'이라는 상징적 뜻이 담겨 있다. 그의 구성은 대단히 기교적이다. 세일 산지를 뒤덮은 어둠(12절)은 아라비아에도 어어져 뜨거운 태양 아래 대상들이 자유로이 왕래하던 나라 아라비아는 이름 그대로 저녁의 땅이 될 것이다.
ꃨ 드단 대상이여 너희가...유숙하리라 - 선지자의 경고는 먼저 사막을 횡단하는 드단의 대상들에게 향한다. 이들은 에돔과 이웃한 족속들(창 10:7;25:3;렘 49:8;겔 25:13;27:20)로 낙타를 이끌고 두로를 오가는 원거리 상업에 종사하였다. 이들이 평상시에 통행하던 길에서 쫓겨나 수풀에서 은신처를 찾을 것이라는 말은 심각한 전쟁 상황을 암시하는 것이요 아라비아 땅이 적에게 유린될 것을 시사한다.
성 경: [사21:14]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아라비아에 대한 예언]
ꃨ 데마 땅의 거민들아...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 선지자의 다음말은 드단 대상들이 숲속으로 도망한 곳 근처에 있는 데마(아라비아 북부에 있음) 주민들에게 주어진다. 도피자들에게 물과 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동정심을 표시하는 행위이다(신 23:4). 이 말은 데마 주민들의 동정심이나 또는 아라비아 땅의 나머지에는 그래도 몸을 쉴 곳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피자들의 비참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덧붙여진 것이다.
성 경: [사21:15]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아라비아에 대한 예언]
ꃨ 그들이 칼날을 피하며...도망하였음이니라 - 드단 대상들이 왜 그토록 서둘러 몸을 피해야 했는지 그 이유가 설명된다. 한편, 본문은 '앞에서'(*, 미프네)라는 말을 4번이나 반복하고 있는데-'칼날 앞에서...,뺀 칼 앞에서, 당긴 활 앞에서, 전쟁의 무거움 앞에서'(원문)-, 이는 13절에 암시된 전쟁의 참사을 묘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성 경: [사21:16]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아라비아에 대한 예언]
ꃨ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다 쇠멸하리니 - '게달'(*,카다르)은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인데(창 25:13), 여기서는 아라비아 유목 민족을 대표하는 뜻으로 쓰였다(42:11;60:7;시 120:5;렘 2:10;49:28;겔 27:21). 지금도 유대 랍비들은 아라비아어를 '게달의 언어'라고 부른다(Alexander). 두로와의 상거래를 통하여 축적된 많은 부(富)와 풍부한 가축들, 그리고 활달한 용사들로 넘치는 게달의 '영광'(*, 케보드)은 가까운 장래에 전쟁의 '무거움'(*, 코베드)에 눌려 붕괴되고 말 것이다(Oswalt). '일 년 내에'란 말은 '품군의 정한 기한같이' 예정된 파멸의 시간이 결코 늦춰지지 않을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성 경: [사21:17]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아라비아에 대한 예언]
ꃨ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의 남은 수가 적으리라 - 그 조상 이스마엘 이래(창 21:20) 게달 자손들은 활을 잘 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시 120:4 참조). 그러나 전쟁의 참화를 겪은 뒤에 저들의 수는 현저히 줄어 극소수만 남게 될 것이다.
ꃨ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경고는 아라비아를 징벌하시는 분이 결국 하나님이시며 그는 무한한 능력으로써 선지자의 입을 통해 예언된 이 모든 일을 기필코 이루실 것임을 확인, 공표하는 말로 끝맺는다.
성 경: [사22:1]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이상(異像)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 '이상 골짜기'(*,게 히자욘)는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이름이다(5절). '골짜기'는 다윗 성이 서 있는 언덕(산) 기슭에서 마주치는 힌놈, 기드론 등의 골짜기에서 연유된 듯하고, '이상'은 그곳에 선지자의 거주지가 있고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시온 산'이라 불렸음을 생각할 때, '이상 골짜기'라는 이름에는 경멸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산' 과 '골짜기'의 대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산의 높은 곳에서는 먼 데까지도 전망이 가능하나, 어두운 골짜기에서는 아무것도 내다보지 못한다. '이상'에 관한 한, 예루살렘은 골짜기와 같다. 선지자가 그 이름을 통해서 풍자하고 있는 바, 미래를 예측하는 시력을 상실한 예루살렘은 임박한 재난 앞에서도 회개하기는 커녕, 기쁨으로 소동하며 분요하는 모습만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2절).
ꃨ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찜인고 - '어찜인고'(* - , 마-라크)는 직역하면 '네게 무슨 일이냐?'(What to you)이다. 이 물음에는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조롱의 뜻이 담겨 있다(삿 18:23). 예루살렘 주민들이 떼를 지어 지붕에 올라감(삿 16:27)은 아마도 (퇴각하는) 적군(산헤립의 군대)의 모습을 지켜 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36:22, Gray, Leupold). 본문과 관련되는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학자들간에 이견(異見)이 분분하다. 사실 여기서 제시되는 주장들은 기껏해야 개연성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본문의 상황이 B.C. 701년에 있었던 앗수르 군대의 예루살렘 포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당시 산헤립은 히스기야로부터 상당한 양의 공물을 받고 그의 군대를 철수시켰다(왕하 18:14-16).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자세한 사항에 대하여는 36,37장;왕하 18장을 참조하라.
성 경: [사22:2]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훤화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 예루살렘 성읍을 떠들석하게 만든 이 소동은 기쁨과 안도감에서 촉발된 것이다. 백성들은 퇴각하는 적군을 바라보면서 모든 위협이 사라진 양, 자만하며 허랑 방탕한 환락에 도취되었다.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전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즐거워하다'(*, 알리자)는 말은 헛된 자만에서 분출되는 득의 양양한 기쁨을 나타낸다(습 2:15, Delitzch).
성 경: [사22:3]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너희 관원들은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결박을 당하였도다 - 백성들을 지켜야 할 관원들이 오히려 제 몸을 보전히기 위하여 활도 팽개치고 도망하다가 포로가 되어 결박을 당한다. 명예와 용기가 자취를 감추고 수치와 비겁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것이 이상을 상실한 백성들의 결국이다. '활을 버리고'(*, 미케쉐트)는 직역하면 '활로부터'이니, 그 의미는 '활을 쏴보지도 못하고' 혹은 '아예 저항을 포기하고'이다. 유다의 지도자들에 관한 선지자의 부정적인 시선은 1:23;3:2, 3;5:13;7:2;28:7, 14;29:15 등에도 나와있다.
성 경: [사22:4]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 예루살렘의 미래가 이러하므로 선지자는 기쁨으로 환호하는 성읍의 한 가운데서 홀로 눈물을 흘린다. 그는 어떠한 위로도 거부한채 실컷 울기만을 소원한다. 이상을 결여한 시대에 선지자는 얼마나 특이하고 외로운 존재인지! 그는 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깨어 어둠을 응시하며(21:11, 12), 모두가 기쁨에 들떠 분요할 때 홀로 슬픔에 잠긴다. 그는 백성을 향하여 선포하는 자이며, 동시에 백성과 그 운명을 함께 나누자는 자이다. 선지자 이사야의 눈물은 백성의 고난에 참예하려는 그의 애끊는 가슴에서 흘러 내리는 것이다.
성 경: [사22:5]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성벽의 무너뜨림과 산악에 사무치는 부르짖는 소리로다 - 직역하면 '성벽을 무너뜨림과 산악에 대하여 부르짖음(*, 쇼아)이로다'이다. 두 소리가 들린다. 먼저 들리는 소리는 적군의 공격을 받아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요, 그와 때를 같이해서 살려달라는 백성들의 비명소리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에서 메아리쳐 울린다. '쇼아'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부르짖음이다(Alexander).
성 경: [사22:6]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엘람 사람...기르 사람 - 예루살렘 성을 포위 공격하는 앗수르 군대 중에 주도적인 두 나라가 진술된다. '엘람'과 '기르'는 산헤립 당시에 이미 거대한 앗수르 제국의 한 주(속국)로 편입되었다. '엘람'은 바벨론 북동쪽에 위치해 있으며(21:2),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하였다. '기르'는 코카서스에서 발원하여 카스피해로 유입되는 큐로스 강에 근접한 지방으로 알려져 있는데, 성경에서 그곳은 '아람 사람의 기원지'(암 9:7)로, '아람 사람이 포로로 사로잡혀온 곳'(엄 1:5)으로, 또는 디글랏 빌레셀이 다메섹 주민을 강제로 이주시킨 장소(왕하 16:9)로 언급되고 있다. '엘람'과 '기르'는 여기서 각각 바사와 메대 대신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Alexander). 이 두 나라로 대표되는 앗수르 군대의 위용은 곧 궁사들과 전차 부대와 기병대와 보병대로 구성된다.
성 경: [사22:7]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병거는...정렬되었도다 -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골짜기마다 적들의 병거가 가득하고, 성문 앞에는 마병이 정렬해 있는 일촉 즉발(一觸卽發)의 상황에서 예루살렘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다고 아니할 수 없다.
성 경: [사22:8]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 직역하면 '그가 유다의 베일(*, 마사크)을 벗기매'이다. '마사크'는 사람의 눈을 가려 보지 못하도록 하는 무엇을 뜻하는데(출 26:36;민 4:5;삼하 17:19;시 105:39;고후 3:15, 16), 여기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무지의 베일로 해석함이 가장 무난하다(Alexander, Leupold). 하나님께서 그들을 깨우쳐 주심으로 백성들은 그제서야 자기들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 속에 놓여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깨달음이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회개하도록 하는 데까지는 이르게 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병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성 경: [사22:9]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아래 못의 물도 모으며 - 포위당했을 때를 대비하여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사전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아래 못'은 시온 산 서쪽 맞은편 힌놈 골짜기에 아직도 남아 있는 저수지를 가리키는 듯하다.
성 경: [사22:10]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케도 하며 - 성읍 내의 가옥을 계수함은 그것을 헐어내기 위함이요, 그것을 헐어냄은 성벽을 견고케 하는 데 필요한 건축 재료를 얻기 위함이다(9절;렘 33:4).
성 경: [사22:11]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그러나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존경하지 아니 하였느리라 - 선지자는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백성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행위의 이면에 하나님을 앙망하는 마음이 없음을 질책하는 것이다. '앙망하다'와 '존경하다'는 히브리어로 '바라보다'(의지하다)는 뜻이다. '이 일을 하신 자'(*,오세야)와 '이 일을 경영하신 자'(*,요체라)는 문자적으로는 각각 '그것을 만드신 자'와 '그것을 빚으신 자'인데, 이는 유다 앞에 놓인 위기를 조성하신 분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하나님께 돌아옴이 없이는 그들이 어떤 자구책을 강구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성 경: [사22:12]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 예루살렘 성읍 앞에서 벌어진 이러한 일련의 위기 상황들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경고요, 부르심이었다. 이것은 백성들이 특별히 깨닫기 어려운 것도 아니며, 올바른 지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능히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통고하며 애호함'은 가슴을 치고 우는 것이니, 하나님을 거스려 범죄하였음을 뉘우치는 행위이다.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띰'은 회개의 외적 증거로서 동방에서 널리 시행되어 온 관습이었다(15:2,3 참조). '굵은 베'(*, 사크)는 슬픔의 날에 입는 굵은 삼베옷을 가리킨다(3:24;창 37:34;에 4:1;욘 3:6).
성 경: [사22:13]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 그러나 회개에의 기대는 깨어졌다. 백성들은 미래의 재난 앞에서 찰나적인 쾌락으로 일관하였다. 니느웨가 보인 반응과 비교해 보라(욘 3:6-9). 그들의 행위는 미래를 상실한 데서 오는 자기 파멸적 경향성일 수도 있고, 또는 '선지자가 내일 죽는다고 하니 그 말을 존중해주는 의미에서라도 오늘만큼은 실컷 즐기며 놀자'는 조롱의 표현일 수도 있다. 내일은 없으며 따라서 인생에는 영원한 것도, 가치있는 것도 없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에게 오늘이라는 시간은 먹고 마시는 쾌락의 한 순간으로만 존재한다. 그들의 눈에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며 자기 부정과 희생의 길을 걸어 가는 신앙인의 삶은 얼마나 기이하고 또 어리석게 보일 것인가(고전 15:19,32)!
성 경: [사22:14]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 회개하기를 거부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절대로 맛볼 수 없음을 엄숙히 선고하는 말이다. '속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파르'(*)는 본디 '덮다', '가리다'는 뜻이다. 구약 시대에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뿌려진 황소와 염소의 피는 백성들의 죄를 없이 하지 못하고 다만 일시적으로 가리울 뿐이었으므로 해마다 반복될 필요가 있었다(히 10:3,4).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제물로 바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심으로 이 같은 필요가 소멸되게 된 것이다.
성 경: [사22:15]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그 국고(國庫)를 맡고 궁을 차지한 셉나 - 직역하면 ' 이 국고 맡은 자(*, 하소켄 하제), 그 집 위에(* - ,알-하바이트) 있는 셉나'이다. 셉나의 직위가 소개된다. 그는 '집 위에 있는 사람', 즉 왕궁을 다스리는 궁내 대신이다(창 39:4;44:1, 4;왕상 4:6;18:3;왕하 15:5 참조). 이런 의미에서 그는 왕을 가까이 하는 사람(*, 소켄)이라 불렀다(Lange). '소켄'은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며 그 여성형인 '소케네트'(*)가 다윗 왕을 수종든 젊은 여자 아비삭에게 적용되었다(왕상 1:2, 4). 그 앞에 붙은 지시 대명사 '이'(this)라는 말 속에 경멸적인 어감이 함축되어 있다. 이것은 '셉나'란 이름 앞에 '...의 아들'이라는 소개가 생략된 것에서도 확인된다.
성 경: [사22:16]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높은 곳에...처소를 쪼아 내었도다 - 2인칭에서 3인칭으로 전환된다. 셉나의 헛된 야망의 높이를 상징하는 '높은 곳'은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대하 32:33)이란 말에서 보여진 것처럼 열왕들의 묘실을 기리킨다. 이들 무덤들은 예루살렘 주변 산들의 경사진 곳에 바위를 뚫어 만들었는데 이는 침해를 방지하고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Gray).
성 경: [사22:17,18]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속박하고...던질 것이라. 그러나 예루살렘 높은 곳에 왕들처럼 묻히고자 하는 셉나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그는 단단히 속박된 채로 공처럼 말려져 광막한 지경에 던져질 것이다.
ꃨ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거기 있으리라 - 원문상 '그 곳'(*, 솨마)이 2번 쓰여 강조되고 있다. 그것은 의미상으로 16절의 '여기'와 대조된다. 후자가 고귀한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면, 전자는 수치스러운 이국 땅을 뜻한다. 이국 땅에서 최후를 맞이함은 유대인들에게 최고의 불행으로 간주되었다(암 7:17, Leupold). 셉나의 영광은 곧 왕궁의 부끄러움이다. 그 같은 인물을 등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왕궁은 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영달을 좇아가면 욕과 멸시가 그 뒤를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이치이다(23:9).
성 경: [사22:19]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고 - 본문은 다음절에서 엘리아김의 등장을 말하기 위해서 덧붙여진 것이다. 셉나는 서기관으로 강등되었으며(36:3), 그 자리를 엘리아김이 차지했다.
성 경: [사22:20]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 엘리야김은 36:3에서 셉나와 함께 다시 언급된다. 그 이름 앞에 '내 종'이란 수식어를 첨가한 것은 그가 여호와의 충실한 종복으로서(20:3;삼하 3:18;암 3:7) 셉나와 대조적인 인물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Alexander).
성 경: [사22:21]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힘있게 하고 - '옷'은 사람의 신분과 권세를 나타낸다. '예복'(*, 케토네트)과 그 위에 두른 '띠'(*, 아브네트)는 취임식 때 입는 관복을 가리킬 것이다(출 28:4, 39;레 8:7, 13).
성 경: [사22:22]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 '다윗 집'은 유다 왕궁이다.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둔다'는 말은 위정자의 책임의 무거움을 강조하는 비유적 표현인데 무겁고 긴 열쇠를 어깨에 둘러 메었던 고대의 풍습이 반영되고있다(9:6). 열쇠를 가진 자는 집 안의 출입을 비롯해서 모든 살림 살이를 관장해야 했다. 이 열쇠는 왕이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자에게 주어졌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했을 때도 이와 같은 의미로 말씀하셨다(마 16:19).
성 경: [사22:23]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같이...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 새로이 공직에 취임한 엘리아김의 위치가 확고 부동할 것을 선지자는 두가지로 표현한다. 첫째, 국가에 관한 한, 그는 단단한 곳에 박힌 목처럼 흔들림이 없이 견고할 것이다(슥 10:4 참조). 둘째, 가문에 관한 한, 그는 그 아비 집에서 온 가족이 의지하는 보좌 같이 될 것이다. 즉, 영광이 될 것이다.
성 경: [사22:24]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그 아비 집의 모든 영광이...항아리 까지리라 - 그 가문에 속한 모든 이들이 견고한 못 같은 엘리아김에게 의지함을 말한다. '후손과 족속'(*, 하체에차임웨하츠피오트)은 대립적 의미-'아들과 딸'(성의 구분), '아들과 손자'(세대 구분), '고귀한 자와 천한 자'(계급 부분)-로 이해된다(Alexander).
성 경: [사22:25]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본절은 해석자들에게 큰 어려움을 야기시킨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엘리아김이 친족을 등용하여 족벌 정치를 행사하다가(24절), 그로 인하여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25절)는 해석을 취한다. 그러나 앞에서 엘리아김의 좋은 면을 이야기하다가 돌연 그에 대한 비난과 비극적 최후를 말한다는 것은 매우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몇몇 주석가들은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24절을 엘리아김에게, 본절을 셉나에게 적용하는 것이다(Calvin, Umbereit). 그러나 이 경우에 23, 24절에서 엘리아김을 가리킨 못이 어째서 돌연 셉나로 바뀌어야 하는지 그 까닭이 분명치 않다. 따라서 문맥에 비추어 부자연스러운 감은 있지만 앞의 해석을 받아들인다.
성 경: [사23:1]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두로에 관한 경고라 - 열방들에 관한 경고(*, 마사)는 바벨론에서 시작하여(13장) 두로에서 끝난다. 바벨론과 두로는 각각 세계의 대극점(동과 서)에 위치하면서, 세계의 두 힘 곧 권력과 재물을 대표한다. 계 18장에서 이들 두 나라는 영적으로 함께 결합된다. '두로'는 동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 페니키아(베니게)의 주요한 네 성읍-아라두스, 비블로스, 시돈, 두로-가운데 하나로 유명한 항구 도시였다. 그 자매 항구인 '시돈'은 약 40km 북쪽에 있다.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두로는 일찍이 바다를 개척하여 지중해를 통한 해상 무역에 활발히 종사하였다. 두로는 이사야 선지자의 때로부터 B.C.322년에 이르기까지 약 5번의 공격을 받았는데, 2번은 앗루르에 의해(느부갓네살), 또 1번은 바사에 의해(아타르크세르크스 3세), 그리고 마지막은 마게노냐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였다(Oswalt). 본문의 예언이 이중 어느 것과 관련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바벨론에 의한 점령이 가장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3절). 두로에 대한 예언으로는 겔 26-28장을 보라.
ꃨ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 '다시스의 선척들아'란 말에는 이중의 수사법이 들어 있으니, 그것이 지중해를 오가는 페니키아의 해상 활동을 대표하는 한에서 환유법이요, 또한 그것이 인격화되어 부름을 받는 한에서 돈호법이라 할 수 있다. '다시스'는 스페인의 타르테수스를 가리키는데, 그곳은 두로의 해상 식민지였다(2:16;60:9;왕상 10:22;22:48;시 48:7;겔 27:25;욘 1:3). 다시스를 돌아 고향으로 귀항 중인 선원들에게 슬픈 소식이 전해진다. 그것은 두로가 파멸되어 들어갈 항구도, 쉴 집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들려온 곳은 최종 정박지인 '깃딤' 곧 구브로 섬(Cyprus)이다(창 10:4;렘 2:10;단11:30).
성 경: [사23:2]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고(商賈)로 말미암아 부유하게 된 - '시돈 상고'는 페니키아의 상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시돈'은 페니키아를 대표하는 가장 크고 오래된 도시이며(삿 3:3;왕상 16:31), '상고'(*, 소헤르)는 상인, 장사꾼을 뜻한다. 이들은 지중해를 오가며 인접한 나라들의 물건을 중개 무역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덕을 본 나라들이 많았다.
성 경: [사23:3]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시흘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열국의 시장이었도다 - 시돈 상고로 대표되는 페니키아의 해상 활동이 구체적으로 예시된다. 이들은 고대 세계의 곡창 지대였던 애굽으로부터 곡식을 사서 이것을 '큰 물' 곧 지중해(시 107:23;겔 27:26)로 운반한 뒤에 곡식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되팔아서 큰 이윤을 남겼다. '시흘'(*)은 나일 강을 뜻하는 애굽어 '예오르'(*, 19:6)의 히브리어 발음이다(수 13:3;렘 2:18).
성 경: [사23:4]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시돈이여...생육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니라 - '바다', 엄밀히 말해서 '바다의 요새'(*, 마오즈 하얌)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바다의 요새'는 내륙에서 보건대, 섬과 같은 두로를 가리킨다. 두로에게 임한 재난은 시돈으로 대표되는 페니키아 땅에 부끄러움을 강요한다. 왜냐하면 한때 지중해를 석권하며 많은 식민지들을 건설할 두로가 이제 재난을 당하여 모든 것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 경: [사23:5]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통도(痛悼)하리로다. 두로의 패망 소식은 애굽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준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곡물 수출업자들인 그들의 몰락으로 애굽의 경제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겠기 때문이요, 둘째는 동방 국가의 서진(西進)을 저지시켜 주는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던 두로의 몰락으로 애굽 역시 동일한 군사적 위험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 경: [사23:6]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너희는 다시스로 건너갈지어다...슬피 부르짖을지어다. 적의 포위 공격을 받는 두로 거민들에게 가능한 한 멀리 다시스로 도피하라는 동정어린 명령이 주어진다. 알렉산더 대왕이 두로를 포위했을 때 이와 유사한 광경이 벌어졌는데, 늙은이, 부녀자, 어린아이 할 것없이 모두 페니키아의 식민지 중의 하나인 카르타고 (Carthage)로 도피하였다고 한다(Diodorus, Curtius, Justin). 그들의 경제력을 두로와의 해상 교역에 거의 의존하다시피 해온 해변 거민들 역시 두로의 몰락으로 자기들에게 미칠 손실을 생각하면서 괴로움에 부르짖는다.
성 경: [사23:7]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이것이 고대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유하던 성이냐 - 두로의 어제와 오늘이 대비된다(14:16, 17;애 2:15 참조). 선지자는 이것을 놀람이 함의된 의문문의 형태로 표현한다. 두로와 관련된 세 가지 요인이 이 놀람을 더욱 증폭시킨다. 첫째, 두로의 유구한 역사이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는 두로의 도성이 약 2,7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둘째, 두로의 활력성이다. 이 활력성은 모험성과 진취성이 충만한 상업적 활동에서 기인된 것이며, 두로의 사치와 교만을 반영해주는 것이다. 셋째, 두로의 끝없는 개척 정신이다. 그들은 넘쳐나는 활력으로 먼 데까지 나아가 시장을 개척하는 한편, 카르타고, 다시스 등과 같은 식민지들을 건설하기에 바빴다(Oswalt).
성 경: [사23:8]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뇨 - 히브리어 원문에 이 물음이 문두에 나온다. 실상 이 물음이 8-14절의 주조를 이룬다. 두로처럼 역사성이 깊고, 활력이 충만하며, 개척 정신이 강한 나라가 몰락한 데는 역사의 우연 이상의 더 큰 무엇이 개입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이에 대해 답변하기 전에, 선지자는 두로의 몰락이 주는 충격을 더하기 위해 과거 두로가 국제 사회에서 점했던 위치를 상기시킨다.
성 경: [사23:9]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세상의 모든 존귀한 자로 멸시를 받게하려 하심이니라 - 직역하면 '땅의 모든 존귀한 자들(*, 콜-니크바데-아레츠)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 레하켈)'이다. 어원적인 면에서 '니크바딤'(*)과 '하켈'(*)은 '무겁다'와 '가볍다'는 대조적인 의미를 갖는다.
성 경: [사23:10]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딸 다시스여...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 두로의 패망은 곧 그 밑에서 속박당해 온 속국들의 해방과 독립의 계기가 된다. 다시스는 그 한 예로서 본문에 언급된다. 구속된 상태에서의 두로와 그 식민지 다시스와의 관계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비유된다. 그러나 해방의 그날, 다시스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 어떤 간섭도 받음이 없이 마치 나일 강이 넘쳐서 제멋대로 흐름과 같이 그렇게 자유를 만끽할 것이다(Delitzsch)
성 경: [사23:11]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 - 두로의 파멸이 전적으로 여호와의 손에 의한 것임을 선지자는 다시 강조하고 있다. 손을 펴시는 여호와의 모습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친숙한 이미지이다(5:25;9:12, 17, 21;10:4;14:26;31:3). 그가 바다에 손을 펼치심으로 바다에 의존하던 열방들 곧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왕을 섬기고 있던 페니키아의 여러 나라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Gray).
성 경: [사23:12]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너 학대받은 처녀 딸 시돈아...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 본문의 전체적인 의미는 6절과 유사하다. 한때 순결한 처녀와도 같이 그 부(富)와 명예를 자랑하던 시돈 곧 페니키아가 능욕당하여 모든 즐거움울 상실한 여인의 모습으로 비유된다. 그에게 깃딤으로 도피하라는 권유가 주어진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지 바라는 안식은 찾지 못할 것이다.
성 경: [사23:13]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황무케 하였느니라 - 두로를 멸망시킬 도구가 제시된다. 그러나 이 도구가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해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뉜다. 두로의 파멸이 앗수르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본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가나안 땅(페니키아)을 보라. 이 나라는 더 이상 존재치 않는다. 앗수르가 그것을 광야로 바꾸어 버렸다. 그들(페니키아인들)은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건설했으나 그(앗수르)가 그것을 황무케 하였다'(Ewald). 그러나 이것은 과도한 본문 수정을 요구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갈대아 사람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다는 견해를 취한다. 이때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갈대아 사람(바벨론)의 땅을 보라. 이 백성(지금 거주하고 있는 바벨론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즉, 원주민이 아니었다). 앗수르가 그것을 광야의 거주자들(전에 유목 생활을 하던 갈대아인들)을 위해 건설하였다. 이 백성(갈대아인)이 망대를 세우고 그녀(두로)의 궁전을 헐었으며 그것을 황무케 하였다'(Alexander, Delitzsch). 언급된 '망대'는 고대 사회에서 포위 공격할 때 사용된 것이다. 후대의 역사가들에 따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이토발 왕 치하의 두로를 13년간이나 포위했으며(요세푸스, [고대사]) 부왕(父王)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고국 바벨론으로 귀환할 때 수 많은 페니키아의 포로들을 끌고 갔다고 한다(Berosus).
성 경: [사23:14]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 1절의 반복이다. 슬피 부르짖는 이유도 앞과 유사하다. 즉, '너희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4절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두로가 견고하 요새(*, 마우즈)로 묘사된다. 수미 쌍관의 형식으로 두로에 대한 비극적인 예언은 종결된다. 이하에서 선지자는 두로의 회복을 노래한다.
성 경: [사23:15]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재건에 대한 예언]
ꃨ 그 날부터 두로가...기생 노래의 뜻 같이 될 것이라 - 본문에서 선지자는 두로를 기생에 비유하니, 이는 물건을 사고 파는 상업 도시의 면모가 노래와 몸을 파는 기생과 비슷한 데가 있기 때문이다(17절). 이 기생은 일정한 기간 동안 손님으로부터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70년이 지난 뒤, 다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언급된 70이란 숫자는, '7(하나님의 사역을 가리키는 수) 10(완전을 가리키는 수)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도대로 일을 성취시켜 나가는 충만한 때를 상징하는 말로 봄이 무난하다(단 9:24). 실제로 70년이란 기간은 바벨론 유수의 시한과 일치한다(대하 36:21;렘 25:12;29:10;단 9:2;슥 1:12).
성 경: [사23:16]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재건에 대한 예언]
ꃨ 잊어버린 바 되었던 기생 너여...다시 기억케 하라 - '기생 노래'의 가사가 일부 소개 된다. 이는 선지자의 예언을 보다 생생하고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노래의 내용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한 기생이 다시금 옛 명성을 되찾고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 기묘한 곡조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이는 항간에 유행하던 소곡에서 따온 표현인 듯하다(Dillmann).
성 경: [사23:17]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재건에 대한 예언]
ꃨ 여호와께서 두로를 권고하시리니 -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두로를 방문하실 것이니'이다. 두로의 멸망이 여호와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면, 그 회복 또한 여호와의 은총으로부터 기인됨을 말하는 것이다.
성 경: [사23:18]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재건에 대한 예언]
ꃨ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 직역하면 '(그녀의) 소득과 (그녀의) 보수가 여호와께 거룩히 여김이 될 것이며'이다. '하나님께 거룩히 여김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뜻이다. 이때 '열방과 음란한 행위를 해서 번 돈이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왜냐하면 율법은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하나님께 가져오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다'(신 23:18)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는 두로에게 적용된 '기생'이라는 말이 상업 활동에 종사하는 두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Oswalt). 상행위 자체는 근본적으로 악하지 않다. 다만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됨'(딤전 6:10)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사24:1]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그 거민을 흩으시리니 - 히브리어 원문대로 읽으면 '보라(*, 힌네) 여호와께서 땅을 쏟아버리시며(* 보케크), 공허하게 하시며, 그 얼굴을 뒤집으시며, 그 거민을 흩어버리실 것이다'이다. '보케크'는 '바카크'(*)동사의 분사형인데, 이처럼 '히네'와 분사가 결함됨으로써 사건의 급박함을 나타낸다(3:;17:1;19:1;30:27). 한편, 여기서 '땅'(*, 하아레츠)은 13-23장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사으로 지정된 열국들을 포함한 온 세상을 가리킨다. 이 땅이 여기서 더러운 그릇으로 비유된다. 그 속에든 내용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릇을 뒤집어 비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죄악으로 가득찬 이 세상도 미래의 어느날 하나님에 의해 깨끗하게 될 날이 반드시 이를 것이다.
성 경: [사24:2]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백성과 제사장이...일반일 것이라 - 우주적 심판에서 제외될 자가 아무도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짝을 이루는 두 부류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불평등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 사회의 불평등은 정치-종교적(백성과 제사장), 신분적(종과 상전, 비자와 가모), 혹은 경제적(사는 자와 파는 자, 채급하는 자와 채용하는 자,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이유 등으로 해서 더욱 심화된다. 그러나 이런한 차별이 없어지고 모든 사람이 완전한 평등 가운데서 마주 설 날이 온다. 그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다. '비자'(*, 쉬프하)와 '가모'(*, 게비라)는 각각 계집종과 여주인을 뜻한다.
성 경: [사24:3]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 - 원문대로 읽으면 "왜냐하면(*, 키) 여호와께서 '이 말씀'(*, 하다바르 하제)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디베르)"이다. 이는 동족 목적어를 취한 강조 구문의 한 예이다. 예언의 확실성의 근거를 여호와의 말씀에서 구하는 선지자의 신앙적 자세가 잘 드러나 있다. 즉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성 경: [사24:4]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땅이...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 '땅'(*, 하아레츠)과 '세계'(*, 테벧)는 동의어이다(13:11;18:3). 1절에서 '더러운 그릇'으로 비유된 '땅'이 여기서 '가뭄으로 인해 시들고 쇠약해진 식물'로 비유된다. 발음의 유사성를 이용한 언어 유희는 계속된다-'(땅이)슬피 울며 시들며(*, 아벧라 나벧라) (세계가) 쇠약하고 시들며(*, 우믈렐라 나벧라).'
성 경: [사24:5]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 땅과 인간의 관계가 고려된다:땅이 심판받은 이유는 그것이 더러워졌기 때문이다(1-4절). 그런데 그 땅을 더럽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인간들-하나님에 의해서 땅의 관리자로서 부름받는(창 2:5-7, 15)-이다. 땅은 그들에 의해 '오염되고 부패하고 더럽게 되었다'(*, 하네파). 땅을 오염시키는 가장 주된 요인은 살인과 피다. 이에 대하여는 26:21;민 35:33;시 106:38 등을 참조하라. 그 밖의 요인들로는 음행(렘 3:1, 2, 9), 우상 숭배(렘 16:18;겔 36:17, 18) 등이 있다(Kissane). '심판'은 인간의 죄로 인해 더렵혀진 땅를 본래대로 정결하게 회복시키는 기능을 한다.
성 경: [사24:6]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 '저주'(*, 알라)는 언약을 파기한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보응이다. 고대 근동의 언약 문서에는 의무 조항과 더불어 그에 따른 축복과 저주가 명기되었다(신 27, 28장 참조, Mendenhall, Covenant Forms in Israelite Tradition).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고 피조물이 고통중에 함께 탄식한다는 사상에 관해서는 창 3:17;롬 8:22 등을 보라.
성 경: [사24:7]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 심판이 갖는 또 다른 국면이 제시된다. 그것은 인간을 즐겁게 만드는 요소들의 제거로 특징지워진다(7-13절). '새 포도즙'은 새로 압착한 포도에서 나온 아직 발효되지 않은 즙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포도나무'와 동의어로 쓰였다. 이것들은 슬퍼하고 쇠잔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뿌리가 말라서 아무것도 산출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Oswalt). 본문의 전체적인 표현은 욜 1:10-12과 거의 유사하다.
성 경: [사24:8]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소고 치는 기쁨이 그치고...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 - 흥겨운 음악과 즐거운 아우성으로 대표되는 축제의 기쁨이 멎고, 대신 무거운 침묵이 자리한다. '소고'(*, 토프)는 작은 북을 가리키며95:12;30:32), '수금'(*, 키노르)은 비파 혹은 하프를 가리킨다(5:12;16;11;23:16;30:32).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는 환락에 겨워 흥청대는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을 나타내는 말이다(22:2;습 2:15).
성 경: [사24:9]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노래하며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쓰게 될 것이며 - 그나마 술이 남아 있더라도 내면의 고통이 극심하여 술맛을 잃어버린다. 기쁨으로 마시는 술은 달콤하나 슬픔으로 마시는 술은 그지없이 쓴 법이다(시 104:15)- '노래도 없이 퍼마시는 술, 그 독한 술맛은 입에 쓰기만 하다'(공동 번역).
성 경: [사24:10]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집마다 닫히었고 들어가는 자가 없으며 - 본문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적의 침탈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빗장를 가로지르고 집을 폐쇠시킨다. (2) 집들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파멸되었다. 문맥상 후자를 취한다. 비슷한 표현이 23:1에 있다.
성 경: [사24:11]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 파멸된 도성의 암울함이 시적으로 묘사된다. 먼저, 거리에서 술을 구하는 부르짖음이 들린다. 이 부르짖음은 이전 시대에 성행했던 향연에 대한 그리움에서(O. Kaiser)혹은 현대의 비참함으로부터 망각의 세계로 도피하고자 하는 욕구에서(Rawlinson) 촉발된 것이다. 그러나 그 풍부하던 포도주를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ꃨ 모든 즐거움이 암흑하여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으며 - 청각적인 부르짖음에 이어 시각적인 색채 묘사가 대비된다. 밝은 태양 같은 기쁨과 즐거움이 스러진 자리에 대신 음울하고 어두운 땅거미가 짙게 깔린다.
성 경: [사24:12]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성문이 파괴되었느리라 - 사람들이 가장 붐비던 자리, 옛날 도성의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던 곳, 그러나 지금은 파괴되어 사람의 발걸음이 끊긴 성문에서 황무한 도성이 남긴 폐허의 잔영을 확인한다.
성 경: [사24:13]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같을 것이니라 - 전술한 예언의 범위가 확정적으로 진술된다. 그것은 '열방 가운데'와 '땅의 한 가운데'는 대등구이다. '이러한 일' 곧 심판 때에 일어날 일이 두 가지로 비교된다. 감람나무 열매를 흔들어 떨어뜨릴 때 그 꼭대기에 몇 개가 붙어 있음같이, 그리고 포도를 수확하고 난 뒤 이삭 줍는 자의 몫으로 얼마가 남겨짐같이, 심판의 날에 세계 민족의 운명이 그러할 것이다(17:5, 6을 보라).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무수히 많던 사람들 가운데 지극히 적은 수만 남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온 인류가 물 속에 잠기고 오직 노아와 그 가족만이 겨우 건짐을 입은 첫 번째 심판은 이 점에서 이후에 올 하나님의 심판의 원형이라할 수 있을 것이다.
성 경: [사24:14]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 직역하면 '그들(*, 헤마)이 소리를 높이며, (그들이) 노래 부를 것이며'이다. '그들'이 강조된다. 여기서 '그들'은 아마도 앞절에 묘사된 심판에서 생존한 극소수의 남은 자들을 가리킬 것이다(Young, Scott, Alexamder).
ꃨ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 찬양의 이유는 '여호와의 위엄'(*, 게온 야훼)때문이다. 전세계적인 심판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위엄이 지상에 밝히 드러나는 그때에 사람들은 '진실로 높은 자가 누구인지'(2:10-19;5:15, 16;13: 11;14:12-17;16:6;23:9)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성 경: [사24:15]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 찬양의 목적이 언급된다. '이름'(*, 쉠)은 하나님의 창조하시며, 섭리하시며, 구원하시며, 통치하시는 사역에서 드러나는 그의 신적인 본성를 가리키는 것이다(30:27).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말일에 온 인류가 유일 무이(唯一無二)한 참종교인 여호와 종교 앞에 부복한다는 사상과 무관하지 않다(2:2-4).
성 경: [사24:16]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궤휼자가...심히 궤휼을 행하도다 - 본문은 모두 '바가드'(*)라는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된 5개의 낱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바가드'는 '불성실하다', '속이다', '악탈하다'는 뜻인데, 속임수를 통해 남을 강탈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최후의 때가 이르기까지 이 땅에는 폭압과 강탈과 살인이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그가 미리 본 광경이었다.
성 경: [사24:17,18]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기 전에 온 땅에 미칠 최후 심판에 대한 묘사가 다시 전개된다.
ꃨ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임하였나니 -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피할 길이 전혀 없음이 연속되는 세 단어에는 강조된다. '두려움'(*, 파하드)과 '함정'(*, 파하트)과 '올무'(*, 파흐)는 야생 동물에 대한 사냥에서 빌어 온 말들이다(Bultema). 사냥꾼은 먼저 동물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갖게 한다. 두려움에 질린 동물은 허겁지겁 달아나다가 사냥꾼이 길목에 설치해 놓은 함정에 빠진다. 운좋게 그것을 피했다 할지라도 이번에는 올무(덫)에 걸린다. 이처럼 땅의 거민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야기된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쓸지라도 그 앞에 함정이 숨어 있으며, 설혹 그것을 피한다 해도 덫에 걸리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이 땅의 거민들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다. 암 5:19에서 이와 유사한 표상을 볼 수 있다.
ꃨ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 -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수 없는 까닭이 명시된다.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라는 표현은 노아의 홍수를 연상시킨다(창 7:11). 그때 온 땅을 절멸시킬 엄청난 양의 물을 방류하기 위해 하늘의 문이 열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여기서 물의 심판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다(창 9:11, 15 참조).
성 경: [사24:19]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땅이 깨어지고...흔들리며 - 지진의 과정이 인상적으로 기술되고 있다. 먼저 땅이 깨어지고 깨어진다(*, 로아). 그 다음에(깨어진) 땅이 갈라지고 갈라진다(*, 포르). 그리고 마지막으로 (갈라진) 땅이 흔들리고 흔들린다(*, 모트). 단어의 중복은 강조적 의미로 해석된다(3절 참조).
성 경: [사24:20]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땅이 취한 자같이 비틀비틀 침망같이 흔들리며 - 지진으로 인해 요동하는 땅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선지자는 그것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28:7;29:9;시 107:27)과 '거센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침망'(1:8)에 비교한다. '침망'(*, 멜루나)은 나무 사이에 달아맨 그물 침대를 말하는데, 그 어원적 의미에서 그것은 본래 임시로 거주하는 장소(원두막)를 뜻하였다(1:8).
성 경: [사24:21]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높은 군대를 벌하시며...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 - 본문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 '높은 군대'와 '땅의 왕들'이 동의어를 이룬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전자를 후자에 대한 비유로서 이해한다(Targum, Luther, Calvin). 그러나 더 많은 학자들은 '높은 군대'와 '땅의 왕들'이 여기서 대조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고 주장한다(Gray, Delitzsch, Oswalt). '높은 군대'는 문자적으로 '높은 곳의 군대'(*, 차바 하마롬)로서, 곧 하늘에 있는 별들(대하 33:4, 느 9:6)과 악한 천사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성 경: [사24:22]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그들이...형벌을 받을 것이라 - 최후 심판 이전의 어떤 과정이 언급된 듯하다. 그것은 3단계로 묘사된다. 이와 유사한 광경에 대하여 벧후 2:4;유 1:6;계 9:2, 11;11:7;17:8;20:1-3 등을 보라.
성 경: [사24:23]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그 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니라 - 최종적으로 세말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움이 묘사된다. 그 나라의 중심은 새 예루살렘일 것이며(2:2-40 구속받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장로들이 영광 중에 주를 보필할 것이다(출 24:9-11;계 4:4, 9-11). 그 나라의 영광은 너무나 눈부신 것이어서 심지어 하늘의 해와 달마저도 그 앞에서 빛을 잃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굴 것이다(60:19;욜 3:15;슥 14:7;계 21:23;22:5).
성 경: [사25:1]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주는 기사를...행하셨음이라 - 찬양의 이유가 제시된다. '왜냐하면 당신께서 기이한 일(*, 펠레)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출 15:11;시 40:5;77:11, 14;78:12;88:10, 12;89:5). 이 기이한 일의 시간적 깊이는 영원까지 닿는다. 인간의 사고력이 미치지 못하는 오래 전부터(*, 메라호크) 이 일을 계획 하시고 정하신(22:11;37:26)하나님은 이것을 또한 '성실함과 진실함'(*, 에무나 오멘)으로 이루신다. '에무나'와 '오멘'은 모두 '받들다', '견고하다'는 뜻의 '아만'(*) 동사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이처럼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된 명사들을 병렬시킴으로써 최대한의 강조적 의미를 얻고 있다(3:1;16:6 참조). '성실함과 진실함'은 '완전한 성실'로 번역 가능하다. '기이한 일'의 내용이 다음절에 소개된다.
성 경: [사25:2]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주께서 성읍으로 무더기를 이루시며 - 여기서 '성읍'은 하나님의 도성에 대립하는 지상의 도성을 가리킨다(Oswalt, Delitzsch). 이것들은 모두 멸망당할 운명에 놓여 있다. 외인(*, 자림)은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를 뜻하는 말이다(1:7;29:5;61:5). 심판의 끝에서 열방들은 하나님께 돌아온다.
성 경: [사25:3]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강한 민족이...주를 경외하리이다 - '하니님을 대적하고 그 백성을 억압하던 세상 나라가 심판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위엄을 목도한 후에(24:14) 비로서 하나님께 돌아와 그를 영화롭게 하며 그를 경외하게 될 것이다'는 의미이다. '(그를)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자연 특히 역사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는다는 뜻이며(24:23;26:15), '(그를) 경외한다', '두려워한다'(*, 이르아)는 말은 하나님께 에배드린다는 뜻이다(시 34:11, Gray).
성 경: [사25:4]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빈궁한 자의 보장(保障)이시며...그늘이 되셨사오니 - 하나님은 포악한 나라들에 대한 심판자로서만 아니라 동시에 그들로부터 압제를 당해온 가련한 민중들을 해방시키는 구원자로서 영광을 받으신다. 본문의 초점은 세말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맞춰진다. 선지자는 우선 그 백성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세 가지(보장, 피나처, 그늘)로 형상화 한다. '보장'(*, 마오즈)은 문자적으로는 '힘', '강함'인데, 여기서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강력한 요새의 뜻으로 쓰였다(시 27:1;28:8;29:11;31:2;43:2;46:1;렘 16:19).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은 성경에서 친숙하게 발견되는 표현 중의 하나이다. 특히 찬양 문학에서 현저하다(신 33:27;삼하 22:3;시 9:9;14:6;27:1; 28:8;31:4;37:39;46:1, 7, 11;48:3;62:7, 8;71:7;91:2, 9;94:22;142:5;렘 16:19). 더위를 피하는 '그늘'에 대하여는 4:6;16:3;32:2;시 57:1;91:1 등을 보라. 이어서 구원의 대상이 두 가지로 묘사된다. '빈궁한 자'(*, 달)와 '빈핍한 자'(*, 에브욘)는 가난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후자의 경우 물질적, 경제적 측면이 더 강조되는 반면, 전자의 경우에는 사회적, 계층적 열등성이 더 부각된다(10:2;11:4;14:30;26:6;29:19;41:17;시 72:12-14). 그러나 강조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개념 다 열악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만 의뢰하고자 하는 경건한 자들에 대한 묘사로 사용되고 있다.
성 경: [사25:5]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주께서...포악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 - 마른 땅에 작열하는 폭양 같은 포학자의 압제도 두꺼운 구름으로 그늘을 지어 그 백성을 돌보시는 여호와의 능력 앞에서는 그 위력을 잃는다. 그 결과, 한때의 승리에 도취되어 노래 부르던 적들의 환호가 가라앉을 것이다. 여기서 '노래'(*, 제미르)는 승전(勝戰)의 외침 소리를 뜻하며, '훤화'와 동의어로 쓰였다.
성 경: [사25:6]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 - 콜레스테롤을 걱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지방질이 풍부한 살진 고기는 가장 인기가 있었다(창 45:18;시 36:8;63:5). 특히 화목제의 주요한 제물로 기름이 드려졌다는 것은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출 29:13-22;레 3:3;4:8, 9;8:16;9:19). 이전에 그 백성들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졌던 그것이 이제 하나님의 손에 의해 그 백성들에게 되돌려진다(Oswalt, Lange). 여기서 아름다운 반전(反戰)이 있다. 골수에는 영양분이 아주 많았으므로 사람들을 먹고 남은 뼈다귀를 으깨어 골수를 먹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오래 저장되어 완전히 발효한 포도주도 고급 연회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음식의 하나였다. '기름진 것'(*, 쉐마님)과 '포도주'(*, 쉐마림)는 발음이 유사하다.
성 경: [사25:7]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그 가리워진 면박과... 그 덮인 휘장을 제시하며 - 그날에 하나님과 그 백성을 가로막던 벽이 허물어지고 참된 교제가 실현된다. '면박'(*, 로트)은 얼굴에 덮는 수건이니(고후 3:15). 참된 실상을 보지 못하도록 가리는 영적인 무지를 비유한 것이다(출 34:30 참조). '덮인 휘장'(*, 마세카)도 이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22:8). 그러나 주님이 그 가리운 것을 제시하면 그때 하나님과 사람을 가로막던 모든 장애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마치 얼굴로 대면하여 보는 것처럼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고전 13:12;요일 3:2). 그날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충만하게 될 것이다(Delitzsch, Bultema).
성 경: [사25:8]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 인생을 지배하던 최후의 적인 죽음(고전 15:26)의 정복에 대한 놀라운 기사가 덧붙여진다. 본문을 직역하면, '그가 사망을 꿀꺽 삼켜버릴 것이다(*, 빌라), 영원히'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노래하면서 이 말을 이렇게 인용한다:"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전 15:54). 이와 유사한 사상에 대하여는 65:20;단 12:2;호 13:14 등을 보라.
눈물을 씻기시며...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 죽음이 제거되면 그로부터 연유하는 눈물도, 슬픔도 없게 될 것이다. 여호와는 죽음이라는 근본 원인을 제거하실 뿐 아니라 친히 그 손으로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신다(계 7:17;21:4). '그 백성의 수치'는 기본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관련된 말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의 한 가운데서 홀로 여호와 종교를 갖는다는 것만으로 조소거리가 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 모든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되는 그날에 모든 수치는 녹는 눈처럼 사라질 것이다(롬 11:11, 12, Oswalt).
성 경: [사25:9]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그 날에 말하기를 - 주어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문맥에 비추어 보건대 하나님을 오래 전부터 기다리다가 이제야 그 구원을 맛본 백성들의 노래라고 추론할 수 있다(Gray).
ꃨ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이는 여호와시라 - 원문에는 '보라'(힌네, * )가 삽입되어 있다. 이는 구원받은 백성의 입으로부터 자랑스럽게 발출되는 탄성이다:'보라! 이 분이 우리가 말했던 그분, 곧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으며 마침내 우리를 구원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시 48:14).
ꃨ 우리가 그들 기다렸으니...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도래 할 때 그 약속을 의지하고 기다린 사람들은 기쁨과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기다림'은 평안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성도가 뿌리는 눈물의 씨앗이다(시 123편). 그리고 '구원'은 그의 기다림이 보상받는 수확의 날에 성도가 거두는 기쁨의 단이다(시 126:5,6).
성 경: [사25:10]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 '손'(*, 야드)은 권능을 상징한다. 시온산에 나타나신 여호와의 손은 구속함을 입은 백성들에게는 은혜와 축복의 손이요, 반면에 그 백성들을 조롱하고 멸시한 모압에게는 심판과 복수의 손으로 역사하신다(Delitzsch, Oswalt).
ꃨ 모압이...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 교만한 모압의 몰락이 '지푸라기가 똥더미에 묻히는 모양'으로 비유된다(왕하 9:37;시 83:10;렘 8:2;9:22; 16:4;25:33 참조). '거름물'에 해당하는 '마드메나'(*)는 '거름을 주다'는 뜻의 '다만'(*) 동사에서 파생한 말로, '거름더미', '똥더미'를 뜻한다. 이는 모압 성읍인 '마드멘'(*)에 대한 언어 유희로 의도적으로 채택된 것이다(렘 48:2). 여기서 모압이 왜 구속받은 백성들의 대표적인 원수로 등장하였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는지 않다. 모압이 과거에 이스라엘에 행했던 일들을 보려면 왕하 24:2;겔 25:8-11;습 2:8-10등을 보라.
성 경: [사25:11]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그가...누르실 것이라 - 앞절의 표상이 계속된다. 본문의 요점은 명료하다. 모압이 무슨 일을 하건 그는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그의 교만은 낮추어질 것이다(Gray). 여기서 헤엄치는 이는 모압 자신이며(Gesenius, Hitzing), '그 속'은 모압이 빠진 퇴비더미를 뜻한다(Knobel, Alexander). 하나님께서 낮추시는 모압의 죄악이 두 가지로 언급된다. 그 첫째는 '교만'이며, 그 둘 째는 '그 손의 교활'이다(16:6;렘 48:29).'손의 교활'은 손의 간교한 동작으로 상징되는 속임수, 거짓, 책략 등을 뜻한다(Lange). 참조로 델리취(Delitzsch)는 이 말을 물 속에서 자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팔을 휘젓는 모양으로 해석한다.
성 경: [사25:12]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너의 성벽의 높은 보장을 헐어...진토에 미치게 하시리라 - 여호와께서 모압을 낮추심을 선지자는 다르게 표현한다. 강하고 높은 성벽으로 묘사된 모압의 위세도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시는 날에 '헐리고 땅이 내려지며 심지어 먼지 바닥에 던져진다'(26:5). 즉, 완전하게 파괴될 것이다.
성 경: [사26:1]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 모압으로 전형화된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가 몰락하는 날에 새로운 도성이 창건될 것인데, 여기서는 그 도성의 강함의 원천이 제시된다. 그것은 그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다. 돌과 흙으로 빚은 성벽과 바깥벽만으로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구원이 함께할 때라야 그 도성은 난공 불락(難攻不落)이 된다.
성 경: [사26:2]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너희는 문들을 열고...들어오게 할지어다 - 하나님의 구원에 참예할 수 있는 백성들의 자질이 두 가지로 언급된다. 그것은 의로움(*, 차디크)과 신실함(*, 에무님)이다(1:26). '신을 지킨다'(*, 쇼메르 에무님)는 말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확고하게 유지함을 뜻하는 말이며, '의로운 나라'(*, 고-차디크)는 그로부터 파생되는 고귀한 영적 특성을 가리킨다(신 6:25). 신구약을 막론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의로움은 자기 안에 선함이 없음을 깊이 인식하고 오직 하나님의 구원만을 갈망하는 내적 의존의 태도를 말하니(롬 7:18), 이러한 믿음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도성의 문은 열리는 것이다(32:16, 17;33:15, 16;시 15편;24:3-10;118:19, 20;호 2:18-20;암 5:21-24). 이것은 다음절에서 보다 명확하게 표현된다.
성 경: [사26:3]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심지가 견고한 자(*, 예체르 사무크) - 문자적으로는 '견고한 마음'이니, 하나님만을 굳게 붙잡고 의지하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마음'(*, 예체르)은 사람의 내적 구조, 즉 사상과 의지의 그물로 짜여져 있는 전 태도와 습관을 가리킨다(Delitzsch). '사무크'(*)는 '머물다, 받치다'는 뜻의 '사마크'(*) 동사의 분사형으로서, 어떤 것을 확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시 112:8). 그 맞은편 대극에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태도'(약 1:8)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는 마음'(마 6:24)이 위치한다.
성 경: [사26:4]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완전한 평화가 여호와를 의지함에서 주어지는 것이 확실할진대,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해서 선지자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지하라고 권면한다. '의뢰하라'(*, 비트후)는 말은 '믿다', '확신하다'는 뜻의 '바타'(*) 동사의 명령형이며, 그 분사형(*, 바투아흐)이 앞절에서도 사용되었다. 신약에서와 마찬가지로 선지자 이사야에게 있어서 믿음과 구원의 문제는 긴밀하게 연관된다(12:2).
ꃨ 영원한 반석 - 하나님은 '반석'(*, 추르)으로 즐겨 비유된다(8:14;17:10; 30:29;44:8;신 32:4;삼상 2:2;삼하 22:2, 32;시 19:14;61:2;고전 10:4). '반석'에는 위급할 때 사람들이 도피하는 피난처라는 의미와 흔들림이 없는 굳건한 요새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더나아가 그는 영원한 반석 곧 만세 반석이시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러한 영원성이야말로 참된 신앙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성 경: [사26:5]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높은 데...솟은 성 - '높은 데'(*, 마롬)와 병행하는 '솟은 성'(*, 키르야 니스가바)은 사람들의 접근을 불허하는 난공 불락에 가까운 도성을 뜻한다. 이 도성은 1절의 '하나님의 도성'에 대립하는 지상의 도성인데, 이 둘은 각각 의의 원리와 악의 원리 또는 영원성과 찰라성을 대표한다. 전자의 모델이 예루살렘이라면, 후자의 모델은 아마도 바벨론(혹은 니느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대항해서 스스로 높아진 이 교만한 도성은 심판의 그날에 극적인 반전(反轉)을 경험하게 된다(25:12).
성 경: [사26:6]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걸음이리로다 - 파멸의 무더기를 밟는 '빈궁한 자'(*, 아니)와 '곤핍한 자'(*, 달림)의 발걸음에서 한때 교만했던 높은 성의 몰락이 확인된다(말 4:3). 이전에 불멸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그성은 먼지로 화하였으나, 그로부터 억압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으로 반석을 삼고 그를 의지한 백성들은 살아 남았다.
성 경: [사26:7]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 앞절에 언급된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에서 저들이 밟고 다니는 '길'에 대한 표상으로 자연스레 전환된다. 본문을 직역하면 '의인을 위한 길은 곧다'이다. '길'(*, 오라흐)은 성경에서 인생의 행로를 비유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곧고 평탄한 길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의로운 길이다(욥 8:13;시 1:6;5:8;27:11;119:105;잠 1:19;3:6;4:26;5:6, 21;11:5;15:19). '오라흐'는 본서에서만 여덟 번 나오며(8절;2:3;3:12;26:7, 8;30:11;33:8;40:14;41:3), 다른 예언 자료들에는 나오지 않는다(J.Jensen). 본서의 단일 저작설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이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성 경: [사26:8]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 이는 하나님께서 심판관으로서 속히 임하시기를 고대한다는, 다시 말해서 의로운 심판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히 드러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말이다. '기다림'은 그것이 기다리는 대상에 대한 지극한 열망의 표출이며 동시에 기다리는 자신의 철저한 겸비심(謙卑心)의 고백인 한에서, 그리스도인의 전형적인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25:9;33:2;40:31;49:23;51:5;59:19;60:9;시 25:3;37:9;호 12:6;미 7:7).
성 경: [사26:9]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밤에 내 영혼이...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 1인칭 복수에서 1인칭 단수로의 전환은 시편에서 종종 발견된다(시 44:5, 6). '밤'(*, 라옐라)은 여기서 고난의 때, 묵상하기 좋은 때를 가리킨다고 보기도 하나(Delitzsch, Leupold), '아침'과 대조되는 시간의 의미로 쓰였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즉, 본문은 '밤이나 아침이나 어느 때에나 하나님을 사모합니다'이다(Alexander). 이는 비록 '아침'(*, 보케르)이란 단어가 명시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간절히 구한다'는 뜻의 '솨하르'(*)동사에 '(아침에) 찾는다', '(일찍 일어나) 구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데서 확인된다(Young).
ꃨ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의를 배움이니이다 - 선지자가 그처럼 열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구한 데에는 그 백성들이 압제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악한 자들이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적극적인 이유도 담겨 있다(시 78:34).
성 경: [사26:10]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 여기서 '악인'은 '세계의 거민'(9절)과 동의어이다(시 9:17 참조).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다루실 때 왜 심판의 과정을 취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의 설명은 그가 딛고 선 경험적 현실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왜냐하면 악인들은 좋게 해서는 도무지 의를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 경: [사26:11]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사르리이다 - '쳐진 손'이 무력함을 상징한다면(삼하 4:1;렘 50:43), '높이 들린 손'은 활동 중인 힘을 상징한다(삼하 24:16). 악인들은 주의 높이 들린 손, 즉 임박한 심판이 그들의 머리 위에 준비되어 있음에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한다. 선지자를 답답하게 만드는 것이 이것이었다.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은 하나님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며(9:7;37:32, Delitzsch), '불'은 그의 대적을 소멸하시는 하나님의 엄중한 복수와 진노를 비유한 낱말로서(신 32:22;욥 20:26;22:20) 그의 백성에 대한 '열성'과 병행구를 이룬다(9:7;37:32).
성 경: [사26:12]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이루심이니이다 -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의로운 자들에게 초래될 궁극적인 결과는 포괄적인 안녕과 행복을 함의하는 '평강'(*, 솰롬)이다. 이 평강은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일관된 행동에 전적으로 근거한다(Delitzsch).
성 경: [사26:13]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 이방 나라들의 압제에서 그 백성을 해방시켜 주신 일이 하나님의 일로서 첫 번째로 거론된다. 세상의 주권자들이 이스라엘을 치리하는 동안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신 여호와는 소외된 듯이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주권을 회복하시는 날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백성들의 찬송소리는 다시 울려 퍼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다른 주들'에 관해 사사 시대(Kissane)와 제국 시대(Delitzsch)를 막론하고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억누른 이방 군주들을 가리킨다는 주장(Gray)과, 포로가 되기 전에 저들이 섬긴 우상신들을 가리킨다는 주장(Alexander)이 대립되고 있다. 전자의 견해가 우세하다.
성 경: [사26:14]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그들은 죽었은즉...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 하나님의 일로서 두 번째로 거론된 것은 한때 강력한 나라를 일구었던 세상 군왕들을 하나님께서 징벌하사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의 심연으로 던지신다는 것이다. 본문을 직역하면 '죽은 자들(*, 메팀), 그들은 살지 못하겠고, 망령들(*, 레파임), 그들은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이다. '레파임'에 대해서는 14:9 주석을 참조하라. 14:9-11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죽음이 인간의 헛된 교만을 비웃는 최후의 조롱꾼으로 등장한다.
성 경: [사26:15]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주께서 이 나라를...더 크게 하셨나이다 - 하나님의 일로서 세 번째로 거론된 것은 그가 이 나라를 더 크게 확장시켜 주셨다는 것이다. '나라를 더 크게 함'은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로 인구가 번성하고 그에 따라 국토의 경계가 더욱 확장됨을 뜻한다(9:3;54:2, 3;미 7:11). 한편,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넓은 세력을 형성하였던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회고하는 듯하다(Dillmann, Kissane).
성 경: [사26:16]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백성이 환난 중에...주께 기도하였나이다 - 선지자의 사고(思考)는 다시 현재로 되돌아온다.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를 믿는 신앙이 확실하다 할지라도 일상에서 겪는 경험적 현실 - '환난'과 '징벌'로 표현된 - 앞에서 신자들은 거듭거듭 심각한 무력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폭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기도밖에 없는 것이다(Oswalt).
성 경: [사26:17]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잉태한 여인이...부르짖음같이 - 이스라엘을 가위누르는 현재의 어려움이, 부르짖음으로 극대화된 임산의 고통으로 비유되고 있다(13:8;21:3;42:14;호 13:13;미 4:10).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임산부가 견뎌내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이 고통의 때가 지나면 소망했던 결과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성 경: [사26:18]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낳은 것은 바람 같아서 - 그러나 그 지난(至難)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거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허망함을 선지자는 '바람을 낳음과 같다'고 표현한다(41:29;전 1:14). 아무것도 낳지 못하는 여인의 산고, 그것이 이스라엘의 배반적(背反的)현실이었다.
ꃨ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 - 본문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1)새로 태어나는 생명들을 떨어뜨리지 못하였다(즉, 생산하지 못하였다, Delitzsch). 이는 해산의 고통을 강조한 문맥에 더 적합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 '떨어진다'는 뜻의 '나팔'(*)이 결코 해산의 뜻으로 쓰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따라서 다음 해석을 취한다. (2)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세력들을 떨어뜨리지 못하였다(즉, 패배시키지 못하였다. Gray). 이 경우, 본문은 앞의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와 평행을 이룬다.
성 경: [사26:19]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주의 죽은 자들은...일어나리이다 -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일 수 없으며, 그들의 헛됨이 하나님의 헛됨이 될 수 없다. 인생의 최대 비극인 죽음마저도 정복하시는 생명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신다. 이 믿음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침울한 절망의 애가가 부활의 환호로 돌변한다. 거듭되는 환난과 징벌에 눌려 사망의 그늘 가운데 누워 있던 신실한 신자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부어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은 신실한 성도들이 마지막날 부활의 영광에 그리스도와 더불어 참예할 것이다. 본문은 부활 교리를 가르쳐주는 구약의 몇 안 되는 구절 중의 하나이다(25:8;겔 37:1-14;호 6:2).
ꃨ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내어 놓으리로다 -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이 '이슬'로 비유된다(시 133:3;잠 19:12;호 14:5).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乾期)에 밤에 흡족히 내려 땅을 적시는 이슬은 팔레스틴 땅의 농작을 위하여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창 27:28;삼하 1:21;왕상 17:1;슥 8:12). '빛난 이슬'(탈 오로트, * )은 문자적으로는 '빛의 이슬'(Targum, Vulgate, Ewald, Grotius, Gesenius)이다. '빛'과 '이슬'은 공히 팔레스틴에서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성 경: [사26:20]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내 백성아 갈지어다...잠간 숨을지어다 - 세상을 뒤엎은 대홍수로부터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방주 속에 몸을 숨겼던 것처럼, 또한 애굽 땅을 뒤엎은 죽음의 천사로부터 히브리 백성들이 집으로 들어가 몸을 숨긴 것처럼, 온 땅을 뒤엎게 될 하나님의 분노 앞에서 성도들에게 '밀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잠간 숨으라'는 권면이 주어진다. 밀실에 들어가서 그것도 부족해서 문을 닫고 숨으라는 말은 대환난 날에 성도가 취해야될 몸가짐을 언급하는 듯하다. 즉, 그날에 성도들은 세상과의 분주한 거래를 단절하고 하나님과의 은밀한 기도 시간을 가져야만 된다. 그러나 그 혹심한 심판의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성 경: [사26:21]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 그날에 땅은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즉, 그동안 말없이 들이삼켰던 무죄한 자들의 피를 땅이 일순간에 토해낸다. 땅을 붉게 물들였던 피가 복수를 호소하며 일제히 부르짖는다(창 4:10;37:26;레 17:13;욥 16:18;시9:12;겔 24:7, 8;계 6:10). 뒤따르는 구절은 순교자들의 호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절의 평행으로 이해된다(Gray).
성 경: [사27:1]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날랜 뱀 리워야단 ... 용을 죽이시리라 - 본문에 언급된 대적의 수가 셋이라는 데에 대부분의 학자들이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하여는 각기 의견들이 다르다. 델리취(Delitzsch)는 '날랜 뱀리워야단'은 물살이 급하고 빠른 티그리스 강에 위치한 앗수르를 가리키고,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은 구부러진 곳이 많은 유브라데 강에 위치한 바벨론을 가리키며, '바다에 있는 용'은 애굽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박스(Box)와 체인(Cheyne)은 이들이 각각 바벨론과 바사, 그리고 애굽을 가리킨다고 하고, 라쉬(Rashi)는 앗수르, 애굽, 두로, 그리고 듐(Duhm)은 파르티아, 시리아, 애굽이 지칭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이것은 단일한 대상을 가리키는 삼중 표현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오스발트(Oswalt)는 우가릿 문헌을 근거로 말하기를, 이 같은 수법은 당시 가나안 지방에서 관례화된 시적 묘사일 뿐이라고 하고, 게세니우스(Gesenius)는 언급된 나라가 바벨론이라고 주장한다. 단일 대상설도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나, 여기서는 세 가지 대상설을 취한다. 그러나 이세 가지 대상들을 특정한 세 나라와 연계시키는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에 속한다. 중요한 것은 세 동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원수들이 철저하게 멸망하리라는 것이다. 심판의 그날에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는 혼돈의 세력들은 칼에 삼키움을 당하고 하나님의 주권만이 온 우주에 높이 세워질 것이다. 대적하는 동물 '리워야단'(*, 리우야탄)은 어원학적으로 '뒤틀어진 것, 둘둘 말린 것'을 의미하는데, 대체로 큰 뱀이나 악어(욥 41:1;시 74:14) 또는 바다에 사는 큰 괴물(욥 3:8;시 104:26)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Alexander). 그리고 '바다에 있는 용' 혹은 '괴물'(*, 탄닌)은 애굽에 대한 지배적인 상징어이다(51:9;시 74:13;겔 29:3;32:2). 본문의 지배적인 사상은 24:21-23과 매우 흡사하다.
성 경: [사27:2]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너희는 ... 노래를 부를지어다 - 직역하면 '아름다운 포도원, 그것을 너희는 노래할지어다'로서 노래의 주제(혹은 제목)를 밝히고 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비유한 말이다.
성 경: [사27:3]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 - '나 여호와'(*, 아니 야훼)가 강조되고 있다 : '포도원지기는 다름 아닌 나, 여호와이다...' 포도원을 가꾸며 돌보는 데는 많은 손질과 세심한 관심이 요청된다. 본문에서 포도원지기가 해야만 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 일이 거론된다. 그것은 정기적으로 물을 주는 일(재배)과 밤낮으로 잘 간수하여 상해를 입지 않도록 지키는 일(보호)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정성과 애정에 대하여 시 121:4,5을 보라.
성 경: [사27:4]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 '나의 백성에 대하여 더 이상 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Alexander). 이전에 열매맺지 않는 쓸데 없는 포도원에 대하여 퍼부어졌던 하나님의 진노가 이제는 그 적들로부터 포두언을 보호하는 애정으로 바뀔 것이다.
ꃨ 질려와 형극이 ... 불사르리라 - '질려와 형극'은 교회의 적들에 대한 묘사이다(10:17;삼하 23:6, 7, Delitzsc).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대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적하여 불에 던져 버리신다는 말이다.
성 경: [사27:5]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그리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 - 앞절의 연속이다. 질려와 형극 곧 교회의 대적에게는 양자 택일-하나님께 대적하여 멸절하든가, 아니면 하나님께 항복하고 그와 화평을 누리든가-만이 있을 뿐이다. '힘'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오즈'(*)는 '강하고 견고한 장소', '요새'를 의미하는데(17:9) 여기서는 '피난처'의 의미로 쓰였다. 본문과 바로 앞절에는 복음의 정신이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기술되어 있다. 하나님은 새롭게 회복된 당신의 백성을 향하여 더 이상 분노하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분노를 만족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해주셨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피하는 자는 누구라도(심지어 원수라도) 용서하시며 화평을 누리게 하신다(롬 3:21-26;5:8-11).
성 경: [사27:6]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후일에는 ... 지면에 채우리로다 -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된 소망스런 장래의 전망이 제시된다. 그것은 한 그루 나무로 표상된 야곱의 왕성한 성장이 다섯 단계로 묘사된다 : '뿌리가 박힘-움이 돋음-꽃이 핌-결실함-지면에 가득히 채움'(37:31;호 14:5-7 참조). '야곱'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초괄하는 명칭이며(Leupold, Fischer), '지면에 채운다'는 말은 복음에 의해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온 땅에 충만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이다(2:3;19:24, Calvin).
성 경: [사27:7]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주께서 그 백성을 치셨은들 ... 같았겠느냐 -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징계 가운데서라도 확증된다. 하나님께서는 대적들을 가혹하게 다루셨을지라도 백성들을 위하여는 예외적인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렘 10:24, 25;30:11;46:28). '그 백성을 친자들'(백성을 도륙한 자들)은 앗수르나 바벨론처럼 이스라엘을 침략한 제국 세력을 가리킨다.
성 경: [사27:8]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적당하게 견책하사 -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벌주시되 그들이 견뎌낼 수 있는 한도내에서 알맞게 주신다. 즉, 구각적 존립이 완전히 와해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이스라엘을 먼 나라로 유배시키셨다는 말이다. 주께서 그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심을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동풍에 실려 옮겨가는 모양으로 묘사한다. 한편, 본문에서 배울 수 있는 영적 교훈에 대하여는 고전 10:13을 참조하라.
ꃨ 동풍 부는 날에 ... 옮기셨느니라 - '동풍'은 근동 지방에서 부는 파괴적인 바람으로, 봄.가을 무렵에 곡식밭을 휩쓸고, 나무를 부러뜨리며, 밭에 있는 모든 작물과 나무의 과실들을 남김없이 짓밟아서 막대한 재난을 안겨주는 무서운 폭풍이다(창 41:6;욥 27:21;렘 18:17;겔 27:26;호 13:15, Calvin). 여기서 추론 가능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벌하심이 비록 그 대적에 대한 징벌과 비교할 바 못되고 더욱이 견딜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적당하게 사히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하는 백성의 입장에서 볼때 그것은 극히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2) 그러나 그 형벌이 그처럼 고통스러운 것이라도 그것이 바람이 불고 지나가는 것처럼 일시적인 것을 뿐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인내하는 데 큰 유익이 된다.
성 경: [사27:9]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 이로 인하나니 - 직역하면 '그러므로 이것에 의해서 야곱의 불의가 속죄함을 얻으며 그의 죄악을 없애버린 모든 열매는 이것이니'이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징벌에 의해서 그 백성들의 죄악이 속함을 얻는데, 그 결과는 우상 숭배의 제거로 나타난다'는 것이다(Alexander).
성 경: [사27:10]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견고한 성읍 - 이것이 어느 곳을 가리키느냐에 대해 해석자들의 견해는 대략 세 가지로 나뉜다. (1) 예루살렘 도성를 가리킨다는 주장(Calvin, Delitzsch, Fohrer, Duhm, Fischer, Rudolph, Skinner, Young). (2) 사마리아 성을 가리킨다는 주장(Marti, Clements, Wildberger, Vermeylen, Ploger, Leupold). (3)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는 세상 제국을 가리킨다는 주장(Dillmann, Procksch, Alexander, Feldmann, Gray, Kissane, Kaiser). 이중 마지막 견해를 취한다. 본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이스라엘은 적당하게 견책받고 나아가 행복한 미래를 보장받는 반면, 그 대적들은 완전한 파멸에 처해질 것이다.' 특히 본절은 바벨론과 연관되는 듯하다.
성 경: [사27:11]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이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 파멸의 보다 깊은 원인이 제시된다. 그것은 열방에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 곧 지각이 없기 때문이다(시 9:17). '지각'(*, 비노트)은 '이해', '깨달음'을 뜻하는 '비나'(*)의 복수형으로서, 일종의 강조적 의미를 갖는다(Leupold).
성 경: [사27:12,13]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세상 제국의 붕괴는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본문은 12절과 13절을 분리시켜 보느냐 아니면 함께 묶어 보느냐에 따라 두가지로 해석된다. (1) 전자의 경우 : 2번 쓰인 '그날에'가 각각 다른 때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즉 12절의 '그 날'에는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의 영역(유브라데 강에서 애굽 시내)내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별하여 모으시며, 13절의 '그 날'에는, 하나님께서 앞에 말한 그 경계선을 넘어 그 북쪽인 앗수르 땅과 그 남쪽인 애굽 땅에 유폐되고 추방된 백성들을 나팔소리로 소환해 들이신다는 것이다(Delitzsch, Leupold). (2) 후자의 경우 : 2번 쓰인 '그 날에'가 같은 때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12절의 경계(유브라데 강에서 애굽 시내)의 의미가 13절에서 설명되고 있다고 본다. 즉, 앗수르 땅과 애굽 땅에서 백성들이 몰려올 것이다(Alexander, Young). 여기서는 후자를 취한다. 전체적인 사상은 11:10-16과 매우 흡사하다.
ꃨ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 '창일하는 하수'는 유브라데 강을 가리킨다(창 31:21;신 1:7;11:24;수 1:4). '애굽 시내'는 오늘날의 '와디 엘 아리쉬'(Wady el-Arish, 민 34:5;왕상 8:65)를 가리킨다. 유브라데 강에서 애굽 시내에 이르는 지역은 약속의 땅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경계이다(창 15:18;출 23:31;왕상 8:65). 그러나 여기서 그 의미는 다음 절에서 설명되는 바, 곧 귀환하는 백성들이 모여드는 방향을 의미한다 : 그들은 유브라데 강을 건너 포로로 잡혀간 땅 앗수르로부터 그리고 애굽 시내를 건너 쫓겨간 땅 애굽으로부터 모여들 것이다(Young).
ꃨ 큰 나팔을 울려 불리니 - 깃발을 들어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팔을 부는 것도 사람들을 회집케 하는 하나의 방식이다(시 81:3). 신약에서 이는 특히 종말론적인 표상과 결부되어 자주 쓰인다(마 24:31;고전 15:52;살전 4:16, Gray).
ꃨ 파멸케 된 자 - 문자적으로는 '잃어버린 자'(*, 하오베딤)이니, 곧 낯선 땅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을 뜻한다(신 26:5). 동사 '아바드'(*)는 주인의 품을 떠나서 제멋대로 유리 방황하는 양들을 묘사할 때 주로 쓰인다(시 119:176;렘 23:1;50:6).
ꃨ 쫓겨난 자 - 문자적으로는 '추방된 자'(*, 하니다힘)이니, 애굽 땅으로 비겁하게 도망친 자들을 가리킨다. 고국 이스라엘을 떠나 앗수르 땅과 애굽땅에서 서러운 세월을 보내고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세말 구원의 날에 약속의 땅으로 불러들이실 것이다. 그날에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새로운 이스라엘의 구심점이 될 것이며, 백성들은 거룩한 산 시온에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릴 것이다(2:2-4;11:10-16;24:23;25:6 참조).
성 경: [사28:1]
ꃨ 취한 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여 ... 화 있을진저 - '에브라임'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열지파를 가리키며, '에브라임의 취한 자'는 그 방탕한 백성들을, 그리고 '교만한 면류관'은 사마리아 도성을 가리킨다. 사마리아 도성을 '교만한 면류관'이라 부름이 그 위치한 지리적 환경에서 연유한 듯하다(Alexander). 아합 왕의 부친 오므리가 세운 사마리아 도성은 비옥한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머리 부분에 자리 하였다(4절;왕상16:24;암 4:1;6:1). 몇몇 학자들은 잔치 때에 술 취한 자들에게 면류관을 씌워주는 고대의 풍습이 여기에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Lowth, Gesenius, Ewald). 하여튼 이들은 풍부한 물질적 여건을 믿고 지나치게 교만하여, 선지자가 '포도주에 절었다'과 할 만큼, 술과 방탕에 깊이 탐닉하였다.
성 경: [사28:2,3]
ꃨ 주께 있는 강하고 힘있는 자 - '주께 있다'(*, 라아도나)는 말은 '주께서 보유(예비)하고 계시다'는 뜻이다(Hendwerk, Ewald, Knibel). 여기서 '강하고 힘있는 자'는 앗수르를 가리킨다(왕하 17:3-6 참조). 앗수르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진노의 도구요 형벌의 매개체이다(10:4 참조).
ꃨ 손으로 그 면류관을 따에 던지리니 ... 밭에 밟힐 것이라 - 일반적으로 '야드'는 능력이나 힘을 상징한다. 그러나 여기서 이것은 '발'에 대응하는 의미로 쓰였다. 즉, '손으로 던지고(그것을) 발로 밟는다'(Alexander).
성 경: [사28:4]
ꃨ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 먹으리로다 - '시들은 꽃'으로 비유된 사마리아의 운명이 다시 '처음 익음 무화과'에 비유된다. 이러한 비유에서 사마리라에 대한 적들의 탐욕스러움과 그로 말미암은 파멸의 완전함이 암시되고 있다. 팔레스틴 땅에서 무화과나무가 대개 8-10월 사이에 추수됨을 고려할 때, 본문에 언급된 무화과 열매는 여름이 되기 전인 6월쯤에 숙성되어 나온 것인 듯하다. 이것은 대단히 희귀하고 맛이 있어서 나오자마자 소비되었다(렘 24:2;호 9:10;미 7:1;나 3:12). 본문의 의미는 사마리아 도성이 적들에 의해 게걸스럽고도 신속하게 삼켜질 것이라는 것이다. 과연 선지자의 예언처럼, 사마리아의 비옥함과 아름다움은 앗수르의 식욕을 돋구는 자극제가 되어서 포위 3년 만에 붕괴되고 말았던 것이다(왕하 18:9, 10).
성 경: [사28:5]
ꃨ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 화관이 되실 것이라 - 두 면류관이 대조된다. 에브라임이 적에게 삼킴을 당하는 그날에, 교만한 면류관(사마리아 도성)은 스러지고, 대신 영화로운 면류관(하나님 자신)이 햇빛처럼 솟아난다. 그러나 모두가 그 따스함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선지자는 그것을 '남은 백성'에게 제한시킨다. '남은 자' 개념은 본서에 현저한 주요 사상들 중의 하나이다(4:2;10:20-22;11:11, 16;14:22;15:9;16:14;17:3;21:17;37:31, 32;46:3). 이 '남은 자들'에 대해 학자들간에 이견이 분분하다. '도성의 파멸에서 살아 남은 열 지파의 생존자'(Jarchi), '멸망에서 구별된 유다와 생존한 에브라임의 일부'(Delitzsch), 멸망한 열 지파와 비교할 때 '남은 자로서의 두 지파, 왕국 즉 유다'(Kimchi, Alexander). 여기서는 맨 나중의 견해를 취하고자 한다.
성 경: [사28:6]
ꃨ 판결하는 신이 되시며 ... 힘이 되시리로다 마는 - 재판으로 대표되는 내치(內治)에는 '모략'이 필요하며, 대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방비하는 외치(外治)에는 '힘'이 필요하다. 이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심으로써 참된 왕으로서 평화를 누리게 하시며 왕국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시는 것이다(사 11:1-9).
성 경: [사28:7]
ꃨ 이 유다 사람들도 -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들 또한'( - 감-엘레)으로 되어 있다. '이들'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에브라임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는 주장(Oswalt, J. Watts). (2) 초점이 에브라임에서 유다로 넘어가고 있다는 주장(Alexander, Delitzsch, Lange).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2)를 채택한다. 이 경우, 해석은 '에브라임뿐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하신 자비에 의해서 열 지파와 구별된 유다에도 그와 똑같은 술취함과 방탕의 죄가 만연되어 있다'가 된다. 이와 관련해서 선지자는 특별히 지도적인 두 계층, 제사장과 선지자를 거론한다.
ꃨ 옆걸음 치며 ... 비틀거리며 ... 옆걸음 치며 ... 실수하나니 - 술에 취해 제 몸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이 비슷한 음의 반복과 함께 입체적으로 전달된다 : '...솨구(*) ... 타우(*) ... 솨구 ... 타우 ... 솨구 ... 파쿠(*).
성 경: [사28:8]
ꃨ 모든 상에는 ... 깨끗한 곳이 없도다 - 술취한 광경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들은 술에 절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옆으로 게걸음질할 뿐 아니라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입으로 토하기까지 한다.
성 경: [사28:9]
ꃨ 그들이 이르기를 ...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 선지자의 꾸지람에 대한 술취한 자들의 반응이 기술된다. 그들은 선지자를 조롱하며 비웃는다 : '당신이 감히 누구를 가르치려드는가? 우리가 누구인지나 아는가? 당신이 우리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를 가르칠 생각일랑 품지 말고 차라리 갓난 아이한테나 가서 떠벌려 보아라'(Jerome, Lowth).
성 경: [사28:10]
ꃨ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 본문의 의미에 대해 학자들간에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견해들은 다음과 같다. (1) 조롱할 때 쓰는 무의미한 말들(Cheyne, Duhm). (2) 갓난 아이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칠때 쓰는 유치한 말들(Marti, Lindblom). (3) 술에 취해 주정 부리는 소리(Driver). (4) '키'(*, 토하다)와 '추아(*, 배설물)를 익살스럽게 표현한 말(Skinner, Michaelis). (5) 알파벳을 가르칠 때 쓰는 항목의 일부분(히브리어에서 '차데'(*) 다음에 '코프'(*)가 온다. Houbigant, Procksch, Forher, W.Hallo). 이들 제 견해는 모두 선지자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뜻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고 있다.
성 경: [사28:11]
ꃨ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 - 이는 압제자의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다(신 28:49;렘 5:15). 앗수르어는 히브리어와 같은 셈조 계통의 언어이지만, 그 어휘와 문법 체계가 크게 달라서 유대인에게는 그것이 다른 지방의 방언처럼 들린다. 본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즉, 그들이 여호와의 교훈을 더듬거리는 말투로 조롱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도 더듬거리는 듯한 이방인들(앗수르인들)의 언어로 그들을 조롱하실 것이다.
성 경: [사28:12]
ꃨ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 참된 안식의 길이 이미 그들에게 지시되었다. 그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준행하고 그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다(신 28:1-14). 만약 저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만 한다면 약속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듣지 아니하였다(Alexander).
성 경: [사28:13]
ꃨ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 잡히게 하시리라 - 선지자를 통해 주어지는 부드러운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조소했으므로, 저들은 경험이라는 한층 더 무서운 교사로부터 그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아니된다(Oswalt). '경계에 경계를 ... 저기서도 조금'은 10절의 반복이며, 그 의미는 동일하다. 다만 이전에 저들이 역겨운 소리라고 비난했던 그 소리를 이제는 앗수르인의 생소한 입술을 통해서 듣게 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G.Rawlinson).
성 경: [사28:14]
ꃨ 너희 경만(輕慢)한 자여 - 이는 문자적으로 '비웃음의 사람들'(*, 안쉐 라촌)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치없는 것으로 조롱하는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9,10절). 이들은 스스로 진리의 길에서 이탈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도 이탈시키기를 즐겨 한다. 이런 사람들이 권위있는 자리에 오르게 되면, 그로 말미암은 폐해를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성 경: [사28:15]
ꃨ 우리는 ... 숨겼음이라 - 사망과 언약하였으므로 어떤 재난으로부터도 안저하다는 저들의 자기 확신은 어디에 기초하는 것인가? 그것은 애굽과의 동맹이다. 애굽으로 피난처를 삼고 그곳에 숨는 한, 앗수라의 위협도 무서워할 게 없다고 저들은 자만하였다. 그러나 선지자가 보기에 그것은 착각이었고 오산이었다. 애굽은 결코 그들을 도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사 30:1-7;36:6-9).
성 경: [사28:16]
ꃨ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 경만한 유다 지도자들의 말(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대조되어 나온다. 여기에 두 그림이 있다. 하나는 거짓과 허위로 기초를 삼은 건물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다 시온의 돌로 기초를 삼은 건물 그림이다. 전자는 홍수와 채찍이 어우러진 혹독한 재앙이 닥쳐올 때 흔적 조차 없이 소멸되어 버린다. 그러나 후자는 전혀 요동하지 않으며 견고함을 잃지 않는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마 7:24-27 참조). 이 견고성은 그 건물을 뒷받침하고 있는 시온의 모퉁잇돌에 힘입은 바 크다. 이 돌은 '시험한 돌' 곧 모든 시험을 다 거친 돌,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돌이다. 이 돌로써 건물의 기초를 삼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 돌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에 대해 다양한 대답들이 제시되었다 : 율법(Eichhorn, Umbreit), 상전(Ewald), 하나님의 말씀(Schegg),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위(Feldmann),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Duhm, Sknner), 다윗 왕국(Delitzsch), 히스기야(Gesenius, Maurer), 참된 신자들(Eichrodt), 시온(Chids, Hktzig, Knobel), 남은 자(Donner), 하나님의 약속(Konig), 신앙 그 자체(Kaiser, Marti, Forher), 하나님 자신(Cheyne), 예루살렘은 불가침이라는 하나님의 확신(G. Smith), 메시야의 구원(von Orelli) 등등. 이중 어느 하나를 확정하는 것은 힘들다. 다만 신약의 빛에 비추어 판단하건대, 이것이 메시야를 미리 가리킨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마 21:42;행 4:11;롬 9:33:엡 2:20;벧전 2:6).
성 경: [사28:17]
ꃨ 나는 공평으로 ... 넘칠 것인즉 - 시온의 모퉁잇돌로 기초를 삼고 '공평'과 '의'로 측량되어진 건물만이 영구한 견고성을 부여받는 반면, '거짓'과 '허위'에 기초한 다른 모든 건물들은 철저하게 붕괴되고 말 것이다. '우박'과 '물'은 하나님의 심판을 비유한 말이다(2절). '피난처'와 '숨는 곳'은 예루살렘의 경만한 자들이 자랑하던 것을 가리킨다(15절, Alexander).
성 경: [사28:18]
ꃨ 너희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 때, 즉 앗수르 군대가 나라를 유린할 때, 그들이 그토록 의지하였던 사망(=음부)과의 언약도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15절). 애굽은 유다를 구하지 못할 것이며, 그날에 유다 백성들은 속수 무책으로 밟힘을 당할 것이다(10:6).
성 경: [사28:19]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그 전하는 도를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 - 크게 두 가지 해석이 대립된다. (1) 새로운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만으로도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Lowth, Leupold). (2) 오직 두려움만이 그들로 하여금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서 전해진 하나님의 교훈을 깨닫게 할 것이다(Calvin, Alexander). 여기서는 후자를 취한다. 왜냐하면 '전해진 것'이라고 번역된 '쉐무아'(*)가 여기에서와 같이 9절에서도 동일한 명사와 결합되어 쓰였기 때문이다.
성 경: [사28:1]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취한 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여 ... 화 있을진저 - '에브라임'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열지파를 가리키며, '에브라임의 취한 자'는 그 방탕한 백성들을, 그리고 '교만한 면류관'은 사마리아 도성을 가리킨다. 사마리아 도성을 '교만한 면류관'이라 부름이 그 위치한 지리적 환경에서 연유한 듯하다(Alexander). 아합 왕의 부친 오므리가 세운 사마리아 도성은 비옥한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머리 부분에 자리 하였다(4절;왕상16:24;암 4:1;6:1). 몇몇 학자들은 잔치 때에 술 취한 자들에게 면류관을 씌워주는 고대의 풍습이 여기에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Lowth, Gesenius, Ewald). 하여튼 이들은 풍부한 물질적 여건을 믿고 지나치게 교만하여, 선지자가 '포도주에 절었다'과 할 만큼, 술과 방탕에 깊이 탐닉하였다.
성 경: [사28:2,3]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주께 있는 강하고 힘있는 자 - '주께 있다'(*, 라아도나)는 말은 '주께서 보유(예비)하고 계시다'는 뜻이다(Hendwerk, Ewald, Knibel). 여기서 '강하고 힘있는 자'는 앗수르를 가리킨다(왕하 17:3-6 참조). 앗수르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진노의 도구요 형벌의 매개체이다(10:4 참조).
ꃨ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 ... 밭에 밟힐 것이라 - 일반적으로 '야드'는 능력이나 힘을 상징한다. 그러나 여기서 이것은 '발'에 대응하는 의미로 쓰였다. 즉, '손으로 던지고(그것을) 발로 밟는다'(Alexander).
성 경: [사28:4]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 먹으리로다 - '시들은 꽃'으로 비유된 사마리아의 운명이 다시 '처음 익음 무화과'에 비유된다. 이러한 비유에서 사마리아에 대한 적들의 탐욕스러움과 그로 말미암은 파멸의 완전함이 암시되고 있다. 팔레스틴 땅에서 무화과나무가 대개 8-10월 사이에 추수됨을 고려할 때, 본문에 언급된 무화과 열매는 여름이 되기 전인 6월쯤에 숙성되어 나온 것인 듯하다. 이것은 대단히 희귀하고 맛이 있어서 나오자마자 소비되었다(렘 24:2;호 9:10;미 7:1;나 3:12). 본문의 의미는 사마리아 도성이 적들에 의해 게걸스럽고도 신속하게 삼켜질 것이라는 것이다. 과연 선지자의 예언처럼, 사마리아의 비옥함과 아름다움은 앗수르의 식욕을 돋구는 자극제가 되어서 포위 3년 만에 붕괴되고 말았던 것이다(왕하 18:9, 10).
성 경: [사28:5]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 화관이 되실 것이라 - 두 면류관이 대조된다. 에브라임이 적에게 삼킴을 당하는 그날에, 교만한 면류관(사마리아 도성)은 스러지고, 대신 영화로운 면류관(하나님 자신)이 햇빛처럼 솟아난다. 그러나 모두가 그 따스함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선지자는 그것을 '남은 백성'에게 제한시킨다. '남은 자' 개념은 본서에 현저한 주요 사상들 중의 하나이다(4:2;10:20-22;11:11, 16;14:22;15:9;16:14;17:3;21:17;37:31, 32;46:3). 이 '남은 자들'에 대해 학자들간에 이견이 분분하다-'도성의 파멸에서 살아 남은 열 지파의 생존자'(Jarchi), '멸망에서 구별된 유다와 생존한 에브라임의 일부'(Delitzsch), 멸망한 열 지파와 비교할 때 '남은 자로서의 두 지파, 왕국 즉 유다'(Kimchi, Alexander). 여기서는 맨 나중의 견해를 취하고자 한다.
성 경: [사28:6]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판결하는 신이 되시며 ... 힘이 되시리로다 마는 - 재판으로 대표되는 내치(內治)에는 '모략'이 필요하며, 대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방비하는 외치(外治)에는 '힘'이 필요하다. 이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심으로써 참된 왕으로서 평화를 누리게 하시며 왕국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시는 것이다(사 11:1-9).
성 경: [사28:7]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이 유다 사람들도 -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들 또한'(*, - 감-엘레)으로 되어 있다. '이들'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에브라임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는 주장(Oswalt, J. Watts). (2) 초점이 에브라임에서 유다로 넘어가고 있다는 주장(Alexander, Delitzsch, Lange).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2)를 채택한다. 이 경우, 해석은 '에브라임뿐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하신 자비에 의해서 열 지파와 구별된 유다에도 그와 똑같은 술취함과 방탕의 죄가 만연되어 있다'가 된다. 이와 관련해서 선지자는 특별히 지도적인 두 계층, 제사장과 선지자를 거론한다.
ꃨ 옆걸음 치며 ... 비틀거리며 ... 옆걸음 치며 ... 실수하나니 - 술에 취해 제 몸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이 비슷한 음의 반복과 함께 입체적으로 전달된다 : '...솨구(*) ... 타우(*) ... 솨구 ... 타우 ... 솨구 ... 파쿠(*).
성 경: [사28:8]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모든 상에는 ... 깨끗한 곳이 없도다 - 술취한 광경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들은 술에 절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옆으로 게걸음질할 뿐 아니라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입으로 토하기까지 한다.
성 경: [사28:9]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그들이 이르기를 ...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 선지자의 꾸지람에 대한 술취한 자들의 반응이 기술된다. 그들은 선지자를 조롱하며 비웃는다 : '당신이 감히 누구를 가르치려드는가? 우리가 누구인지나 아는가? 당신이 우리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를 가르칠 생각일랑 품지 말고 차라리 갓난 아이한테나 가서 떠벌려 보아라'(Jerome, Lowth).
성 경: [사28:10]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 본문의 의미에 대해 학자들간에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견해들은 다음과 같다. (1) 조롱할 때 쓰는 무의미한 말들(Cheyne, Duhm). (2) 갓난 아이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칠때 쓰는 유치한 말들(Marti, Lindblom). (3) 술에 취해 주정 부리는 소리(Driver). (4) '키'(*, 토하다)와 '추아(*, 배설물)를 익살스럽게 표현한 말(Skinner, Michaelis). (5) 알파벱을 가르칠 때 쓰는 항목의 일부분(히브리어에서 '차데'(*) 다음에 '코프'(*)가 온다. Houbigant, Procksch, Forher, W.Hallo). 이들 제 견해는 모두 선지자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뜻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고 있다.
성 경: [사28:11]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 - 이는 압제자의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다(신 28:49;렘 5:15). 앗수르어는 히브리어와 같은 셈조 계통의 언어이지만, 그 어휘와 문법 체계가 크게 달라서 유대인에게는 그것이 다른 지방의 방언처럼 들린다. 본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즉, 그들이 여호와의 교훈을 더듬거리는 말투로 조롱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도 더듬거리는 듯한 이방인들(앗수르인들)의 언어로 그들을 조롱하실 것이다.
성 경: [사28:12]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 참된 안식의 길이 이미 그들에게 지시되었다. 그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준행하고 그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다(신 28:1-14). 만약 저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만 한다면 약속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듣지 아니하였다(Alexander).
성 경: [사28:13]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 잡히게 하시리라 - 선지자를 통해 주어지는 부드러운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조소했으므로, 저들은 경험이라는 한층 더 무서운 교사로부터 그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아니된다(Oswalt). '경계에 경계를 ... 저기서도 조금'은 10절의 반복이며, 그 의미는 동일하다. 다만 이전에 저들이 역겨운 소리라고 비난했던 그 소리를 이제는 앗수르인의 생소한 입술을 통해서 듣게 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G.Rawlinson).
성 경: [사28:14]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너희 경만(輕慢)한 자여 - 이는 문자적으로 '비웃음의 사람들'(*,안쉐 라촌)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치없는 것으로 조롱하는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9,10절). 이들은 스스로 진리의 길에서 이탈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도 이탈시키기를 즐겨한다. 이런 사람들이 권위있는 자리에 오르게 되면, 그로 말미암은 폐해를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성 경: [사28:15]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우리는 ... 숨겼음이라 - 사망과 언약하였으므로 어떤 재난으로부터도 안저하다는 저들의 자기 확신은 어디에 기초하는 것인가? 그것은 애굽과의 동맹이다. 애굽으로 피난처를 삼고 그곳에 숨는 한, 앗수라의 위협도 무서워할 게 없다고 저들은 자만하였다. 그러나 선지자가 보기에 그것은 착각이었고 오산이었다. 애굽은 결코 그들을 도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사 30:1-7; 36:6-9).
성 경: [사28:16]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 경만한 유다 지도자들의 말(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대조되어 나온다. 여기에 두 그림이 있다. 하나는 거짓과 허위로 기초를 삼은 건물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시온의 돌로 기초를 삼은 건물 그림이다. 전자는 홍수와 채찍이 어우러진 혹독한 재앙이 닥쳐올 때 흔적 조차 없이 소멸되어 버린다. 그러나 후자는 전혀 요동하지 않으며 견고함을 잃지 않는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마 7:24-27 참조). 이 견고성은 그 건물을 뒷받침하고 있는 시온의 모퉁잇돌에 힘입은 바 크다. 이 돌은 '시험한 돌' 곧 모든 시험을 다 거친 돌,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돌이다. 이 돌로써 건물의 기초를 삼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 돌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에 대해 다양한 대답들이 제시되었다 : 율법(Eichhorn, Umbreit), 상전(Ewald), 하나님의 말씀(Schegg),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위(Feldmann),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Duhm, Sknner), 다윗 왕국(Delitzsch), 히스기야(Gesenius, Maurer), 참된 신자들(Eichrodt), 시온(Chids, Hktzig, Knobel), 남은 자(Donner), 하나님의 약속(Konig), 신앙 그 자체(Kaiser, Marti, Forher), 하나님 자신(Cheyne), 예루살렘은 불가침이라는 하나님의 확신(G. Smith), 메시야의 구원(von Orelli) 등등. 이중 어느 하나를 확정하는 것은 힘들다. 다만 신약의 빛에 비추어 판단하건대, 이것이 메시야를 미리 가리킨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마 21:42;행 4:11;롬 9:33:엡 2:20;벧전 2:6).
성 경: [사28:17]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나는 공평으로 ... 넘칠 것인즉 - 시온의 모퉁잇돌로 기초를 삼고 '공평'과 '의'로 측량되어진 건물만이 영구한 견고성을 부여받는 반면, '거짓'과 '허위'에 기초한 다른 모든 건물들은 철저하게 붕괴되고 말 것이다. '우박'과 '물'은 하나님의 심판을 비유한 말이다(2절). '피난처'와 '숨는 곳'은 예루살렘의 경만한 자들이 자랑하던 것을 가리킨다(15절, Alexander).
성 경: [사28:18]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너희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 때, 즉 앗수르 군대가 나라를 유린할 때, 그들이 그토록 의지하였던 사망(=음부)과의 언약도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15절). 애굽은 유다를 구하지 못할 것이며, 그날에 유다 백성들은 속수 무책으로 밟힘을 당할 것이다(10:6).
성 경: [사28:20]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침상이 짧아서 ...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 유다 백성들이 처한 곤고한 상황이 속담투의 말로 기술된다. 그들은 눕기 위해서 침상을 조달했으나 너무 짧아서 적당치 못하며, 또 덮기 위해서 이불을 재단했으나 너무 좁아서 불충분하다. 이 비유의 초점은 그들의 측정이 그릇되어서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애굽과의 동맹으로 앗수르의 공격을 막아보려는 그들의 인식과 계산이 잘못되었음을 꼬집은 말이다.
성 경: [사28:21]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여호와께서 브라심산에서와 같이 ...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 선지자는 이 모든 일이 여호와의 행사임을 환기시킨다. 즉 하나님께서 전쟁을 지휘하시는 한, 그들의 도모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싸움은 그 옛날, 다윗 왕때 있었던 브라심 산 전투(삼하 5:18-20;대상 14:9-11)와, 여호수아 때 있었던 기브온 골짜기 전투(수 10:10,11)에 비견된다. 다만 그때와 지금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하나님의 원수가 바뀌었다는 것이다(시 139:19-24). 그때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우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오히려 이스라엘을 대적해서 싸우실 것이다.
성 경: [사28:22]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그러므로 너희는 경만한 자가 되지 말라 ... 우심(尤甚)할까 하노라 - 결론적으로 선지자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이상 비웃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 말을 듣지 않으면 그들을 압박하고 있는 결박 상태가 가중될 것이다. 마치 덫에 걸린 동물이 빠져 나오려고 온몸을 뒤틀면 뒤틀수록 더욱더 단단히 조여드는 것처럼, 그들이 이 경고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손에서 빠져 나가려고 한다면 그럴수록 더욱 큰 재난을 맞게 될 것이다(Calvin).
성 경: [사28:23]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비유]
ꃨ 너희는 ...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 특별한 관심과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로서, 지혜 문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전형적인 연설 형태이다(시 49:1;78:1).
성 경: [사28:24]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비유]
ꃨ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 고르게만 하겠느냐 - 대답은 자명하다. 즉, 농부는 밭을 기경할 때 무한정 땅을 갈아 엎고 써레질만 하지는 않는다. 밭가는 모습에 대하여는 왕상 19:19을 참조하라.
성 경: [사28:25]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비유]
ꃨ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 심지않겠느냐 - 일단 땅을 갈아 고르게 한 뒤에 농부는 파종을 한다. 이때에도 농부는 아무렇게나 하지 않으며 종자의 크기와 특성, 종류에 따라 사려 깊게 행동한다(레 19:19). '소회향'(*, 가 검고 꽃이 푸르며 향기가 나는 미나리과 제비속의 식물의 일종)과 '대회향'(*, 향로로 사용되면 회향풀과 비슷한 미나리과 식물) 같은 종자가 작은 것들은 지면에 뿌리면 되었다. 반면에 이보다 종자가 큰 소맥과 대맥은 줄을 지어 심거나 혹은 구획을 나눠 심었다. 마지막으로 밀의 일종인 '귀리'는 가장자리에 심었는데, 이는 지나다니는 사람들로부터 곡식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성 경: [사28:26]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비유]
ꃨ 적당한 방법으로 보이사 - 직역하면 '올바른 원리를 따라'(*, 라미쉬파트)이다. 이에서 보다시피, '미쉬파트'(*, 공평)는 단순한 법적 정의를 넘어 물질적, 정신적인 영역에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속함을 알 수 있다(Oswalit).
성 경: [사28:27,28]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비유]
ꃨ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 타작할 때 보다 가벼운 농작물은 알갱이가 깨어지지 않도록 막대기로 두들겨 탈곡한다. 반면에 보다 단단한 곡식은 수레바퀴와 말발굽을 이용해 타작한다(41:15;신 25:4;미 4:12). 즉, 농사를 지어본 자라면 각 곡식에 따른 적절한 타작법 정도는 이미 지각하고 있다는 말이다(Leupold).
성 경: [사29:1]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유다의 위기와 하나님의 구원]
ꃨ 슬프다 아리엘이여 - 첫 번째 '화 있을진저'가 '교만한 면류관'(28:1)으로 시작했던 것처럼, 본장의 예언도 그 형식상의 유비(類比)에 의해 '아리엘'이라는 다소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이름으로 시작한다. 이 '아리엘'이 '다윗의 진친 성읍' 혹은 '절기가 돌아오려니와'란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유다의 성도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단어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학자들간에 의견의 차이를 보인다. 대표적인 두 가지 견해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그것은 '하나님의 사자'를 가리킨다(Gesenius, Delitzsch, Ewald). 이는 유다를 '사자'라 호칭한 것(창 49:9)과 왕의 보좌에 사자의 형상이 새겨진 것(왕상 10:19,20), 그리고 동물의 왕 사자처럼 예루살렘이 결코 정복되지 않는 강력함을 지닌 성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에서 그 근거를 취한다. 그러나 이는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다. (2) 그것은 '하나님의 번제단'을 가리킨다(겔 43:15,16, Alexander). 이는 '절기'(1절)란 낱말과 2절 후반부의 의미와 잘 어울리므로 많은 학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ꃨ 연부년(年復年)절기가 돌아오려니와 - 더 나아가 다윗이 신성한 법궤를 이곳으로 옮긴 날로부터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적인 예배 처소가 되었다(삼하 6:12-19). '연부년'은 '해마다'라는 뜻인데, 이곳에서 신성한 절기들이 자연의 순환 사이클처럼 아무 뜻도 없이 형식적이며 주기적으로 반복됨을 꼬집은 말이다.
성 경: [사29:2]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유다의 위기와 하나님의 구원]
ꃨ 네가 ...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 '희생 제물을 드리며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자랑을 삼는 네가 바로 아리엘과 같이 될 것이다.' 즉, 희생 제사의 피로 둘려있고 그 위에 놓인 모든 것을 불로 태우는 그러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이 장차 변할 것이다(Oswalt). 임박한 재앙이 예루살렘에 몰고 올 고통은 '슬픔과 애통'(*, 타아니야 와아니야)이다. 이 두 낱말은 모두 '신음하다', '괴로워하다'는 뜻의 '아나'동사에서 파생한 방계 명사들이다(애 2:5).
성 경: [사29:3]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유다의 위기와 하나님의 구원]
ꃨ 내가 ... 너를 치리니 - 한때 다윗이 진을 쳤던 그 도성(1절)을 이제 여호와께서 공격하기 위해 진을 치신다. 이 공격은 앗수르인들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내가'라는 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 속하는 것이다. 고대의 전쟁에 대하여는 신 20:20;왕하 25:1-4;겔 4:2;21:22 등을 참조하라.
성 경: [사29:4]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유다의 위기와 하나님의 구원]
ꃨ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 앞에서 언급된 장기간의 포위의 결과로 그들이 극도로 쇠약해질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선지자는 이것을 '땅에서 말하는 소리'와 '티끌에서 나는 소리'로 표현한다. 언급된 '땅'(*, 에레츠)과 '티끌'(*, 아파르)은 더 이상 낮아질 데가 없는 수치의 극한 혹은 주검의 세계(N.J.Tromp, J.Watts)를 가리킨다.
성 경: [사29:5]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유다의 위기와 하나님의 구원]
ꃨ 네 무적의 무리 ... 강포한 자의 무리 - 문자적으로는 '너의 이방인들의 무리(*, '하몬 자라이크) ... 잔혹한 자들의 무리(*, 하몬아리침)'타이다. '이방인'에 대하여는 1:725:5, '잔혹한 자'에 대하여는 13:11을 참조하라. '티끌'과 '겨'는 '나약한 것'혹은 '무력한 존재'를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다(4절;5:24;17:13;41:15;단 2:35;호 13:3;습 2:2).
성 경: [사29:6]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유다의 위기와 하나님의 구원]
ꃨ 벽력과 .. 맹렬한 불꽃으로 - 나열된 여러 현상들은 하나님의 현현을 나타내는 고전적인 표현에 속한다(출 19:16-19;왕상 19:11-13;겔 20:47, 48). 여기서 '큰 소리'(*, 콜 가돌)는 천등과 지진이 일어날 때 수반되는 굉음을 가리킨다. '맹렬한 불꽃'은 문자적으로는 '삼켜버리는 불의 광휘'(*, 라하브 에쉬 오켈라)인데, 이는 회오리 바람과 폭풍이 불 때 동반되는 벼락불을 가리킨다.
성 경: [사29:7,8]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유다의 위기와 하나님의 구원]
앗수르 군대에 대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과 관련하여 그 결과가 꿈의 언어로 제시된다. 대적의 모습이 7절에서는 '꿈'에 비견되고, 8절에서는 '꿈꾸는 자'에 비교된다.
ꃨ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 갈증이 있는 것같이 - '속'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페쉬'(*)는 '인간 자신'을 나타내는 완곡 어법(Grotius)으로도 쓰이나, 여기서는 '육체적 삶의 근원으로서 주림과 목마름을 느끼는 영혼'(Delitzsch)의 의미로 쓰였다기보다는 '욕구'라는 또 다른 의미로 쓰였다고 봄이 문맥에 더 잘 어울린다(Alexander). 즉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품고 있던 그 욕구는 '전혀 채워지지 않았으며'(*, 레카), 따라서 '더욱 짙은 갈증만을 남길 뿐이다'(*, 쇼케카).
성 경: [사29:9]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ꃨ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 5-8절에 약속된 구원을 경험하기 전에 이 백성에게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제시된다(9-16절). 본문을 직역하면 '너희는 머뭇거려라(*, 히트마흐메후). 너희는 놀라라(*, 테마후). 너희는 즐겨라(*, 히쉬타아쉬우). 너희는 소경이 되어라(*, 쇼우)'이다(원문 -Gesenius의 해석). 각각의 경우 두 번째 나오는 명령문은 앞에 나온 말의 결과로서 주어진 것이다. 즉 '믿지 말고 머뭇거려 보아라. (그 결과로)너는 더욱 놀라워하게 될 것이다. 연락 속에 빠져 즐겨 보아라. (그 결과로) 그것이 너호 하여금 더욱 눈이 멀게 할 것이다'(Alexander).
성 경: [사29:10]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ꃨ 대저 여호와께서 ... 부어 주사 - 백성들의 술 취함(소경됨)의 원인이 하나님께로 소급된다 : '깊은 잠의 영을 부어주신 분은 바로 여호와시다.' 그러나 이 말이 그들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6:9,10 주석을 참조하라.
ꃨ 눈은 선지자요 ... 머리는 선견자라 - 눈을 가리고 머리를 덮음은 전혀 볼 수 없게끔 하려는 것이다. 선지자 혹은 선견자는 백성들의 '눈'과 '머리', 즉 지도자로서 올바로 보고, 바르게 생각하여 백성들을 진리로 인도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들 스스로가 눈이 멀고, 소경이 되었으니, 누가 누구를 인도할 수 있겠는가(마 15:14)!
성 경: [사29:11,12]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ꃨ 모든 묵시가 ... 봉한 책의 말이라 - '모든 묵시'(*, 하주트 하콜)는 하나님께서 참된 예언자들을 통해 계시해주신 거룩한 진리의 말씀을 말하나(Delitzsch). 이 말씀들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책'(*, 하세페르)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것이 이 백성들에게는 굳게 닫혀서 도무지 열수 없는 봉함된 책과 같을 것이다. '책'이라 번역된 '세페르'(*)는 '긁다', '새기다'는 뜻의 '사파르'(*) 동사에서 파생한 명사로서 '기록하는 것', '기록된 것', '문서', '편지'를 뜻한다. 기록된 문서는 비밀을 보장하기 위한 조처로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봉인되었다(8:16 참조).
ꃨ 유식한 자 ... 무식한 자 - '유식한 자'는 문자적으로는 '쓰는 것을 아는 사람'(*, 요데아 하세페르)이니, 곧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지도층 인사)을 가리킨다. 이들은 외적인 지식은 갖추었으나 영적인 통찰력은 지니지 못하였으므로 계시의 말씀을 깨달은 수가 없었다(6:9 참조). 이와 반대로 '무식한 자'(*, - 로-야다 세페르)는 '쓰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니, 곧 일반 백성을 가리킨다(요 7:15).
성 경: [사29:13,14]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ꃨ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 존경하나 - 병행하는 두 말, '가까이하다'(*,나가쉬)와 '존경하다'(*, 카바드)는 공적인 예배 행위를 함의하는 낱말들이다. 당시 히스기야 왕주도하에 남왕국 유다에서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전국적인 종교 정화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교도의 관행들과 우상들은 여지없이 척결되었고 모세 떠의 고유한 예배 의식이 부활되었다(와하 18:4).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어디까지나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하달되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내면까지 바꾸는 데는 이르지 못하였다. 이를테면 참종교의 모양은 갖추었으나 참종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음'(*, 레바브)과 '경외심'(*, 이르아)은 갖추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입술의 종교를 혐오하신다. 신약에서 이 말은 입술과 혀로 그들의 경건을 자랑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적용되었다(마 15:7,8).
성 경: [사29:14]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ꃨ 지혜자의 지혜가 ... 가리워지리라 - 백성들이 그토록 의지하는 지도자들으니 지혜와 총명을 제거해버린다는 말이다. 그 결과, 그들은 다가올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전혀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5:21).
성 경: [사29:15]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ꃨ 자기의 도모를 ... 깊이 숨기려 하는 자여 - 이 백성이 징벌받을 수밖에 없는 세 번째 이유가 제시된다. 그것은 애굽과 동맹을 체결하려는 자들의 음모 때문이다. 선지자는 오래 전부터 이 일을 탄핵해왔다(20:5-6). 따라서 그들은 선지자 몰래 은밀하게 이 일을 도모하였던 것이다. 악인은 비칭신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그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어둠 속으로 도피하고 싶어한다(시 64:2-6;94:7;139-12;요 3:!9, 20).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래 인류가 계속적으로 시도해온 일이 이것이었으며(창 3:8-10), 특히 하나님을 안다고 스스로 공언하는 백성의 지도자들이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영적 무지를 증명해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성 경: [사29:16]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ꃨ 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저들의 생각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을 부정하는 불신앙이 전제되어 있다. 그들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모든 만물을 다 관찰하시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그 만드신 피조물과 동일한 수준에 병렬시키는 태도이다. 선지자는 저들의 이 같은 태도를 한마디로 '패리함'(*, 하페카)이라 규정한다. 이 말은 '상하가 뒤바뀌어 전도되다', '가치가 전도되다'는 뜻이다.
ꃨ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같이 여기겠느냐 - 여호와를 토기장이로 비유한 다른 예에 대하여는 45:9;64:8;욥 10:9;렘 18:4-6 등을 보라.
성 경: [사29:17]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심판 후 받을 축복]
ꃨ 레바논이 ... 여김이 되지 않겠느냐 - 부정 의문문은 긍정의 가장 강력한 형식 중의 하나이다. 본서의 여러 곳에서 '레바본의 삼림'은 권세자들의 표상으로(2:13;10:34;33:9;35:2;60:30), 또 그 삼림을 자르는 것은 비천하게 됨의 상징으로(10:34;37:24) 사용되었다. 본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삼림은 경작된 평원이 될 것이며, 반면에 경작된 평원은 삼림이 될 것이다.' 즉, 권세자들은 낮아질 것이요 반대로 억압받던 백성들은 높아질 것이다. 한편, 본절 이하로부터 24절까지는 메시야 시대에 대한 예언으로도 이해된다.
성 경: [사29:18]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심판 후 받을 축복]
ꃨ 귀머거리가 ... 소경이 눈이 볼 것이며 - 이는 분명 귀가 뚫리고 눈이 열리는 치유의 역사가 있을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신체적 치유만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들이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은 바로 '책의 말'(*, 디브레-세페르), 곧 선지자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11,12절). 이제 그토록 단단하게 굳었던 백성들의 마음이 부드럽게 변화될 날이 오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다.
성 경: [사29:19]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심판 후 받을 축복]
ꃨ 겸손한 자가 ... 즐거워하리니 - 이처럼 변화된 새로운 미래의 상속자들은 '겸손한 자'(*, 아나윔)와 '빈핍한 자'(*, 에브요님)이다(11:4;14:30,32;암 2:6-8). 이들은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천대받지만, 영적으로 경건하다. 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힘이 없으므로 오직 여호와의 손에 자신들의 송사를 맡긴다(21절).
성 경: [사29:20]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심판 후 받을 축복]
ꃨ 강포한 자가 ... 다 끊어졌음이라 - 반면에 지금 웃는 자들, 곧 '강포한 자'(*, 아리츠)와 '경만한 자'(*, 레츠)에게는 정반대의 운명이 예정되어 있다. 즉 그들은 '끝장나며'(*, 아페스), '소멸된다'(*, 칼라). 그들은 힘없는 백성을 착취하며(13:11;25:3-5;29:5;49:25) 진리를 조롱하고 가치를 전도시키며 공동체의 정신을 부정하는 사람들이다(28:14;잠 1:22;13:1).
성 경: [사29:21]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심판 후 받을 축복]
ꃨ 그들은 ... 억울케 하느니라 - 첫째, 그들은 거짓 증거로써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조작한다. 둘째, 그들은 시시 비비를 가리는 재판관을 올가미를 씌워 넘어뜨린다(암 5:10). 셋째, 그들은 의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정당한 권리를 박탈한다(10:2;출 23:6;암 5:12).
성 경: [사29:22]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심판 후 받을 축복]
ꃨ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 말씀하시되 - 본문을 직역하면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야곱의 집에게, 아브라함을 구속하신'이다. 이때 문법적으로만 해석하자면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자가 야곱이 되어버린다. 이를 피하기 위해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본문을 다음과 같이 수정해서 읽는다 : '...야곱의 집의 하나님, 아브라함을 구속하신'(Lowenthal, Lowth, Lluzzatto). '야곱 족속', 즉 '야곱의 집'은 그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기원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을 가리킨다. 그 옛날 아브라함이 우상 숭배에 빠졌던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의 백성의 조상이 되었듯이, 이제 여호와를 저버린 많은 사람들로부터 구별된 남은 자들도 새로운 공동체의 바탕이 된다(Delitzsch).
성 경: [사29:23]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심판 후 받을 축복]
ꃨ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 경외할 것이며 -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역사를 보게 될 때, 그들이 보일 반응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다 하는 것'(*, 히크디슈)과 그를 '경외하는 것'(*, 야아리추)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함은 그의 본성을 참되게 인식하는 것이며 피조 세계와 구별된 유일무이한 절대자로서 그의 주권을 온 세상에 널리 선포, 찬양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경외)은 여호와의 거룩하심을 바르게 인식함에서 비롯된다(8:13;마 6:9).
성 경: [사29:24]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심판 후 받을 축복]
ꃨ 마음이 혼미하던 자도 ... 교훈을 받으리라 - 새로운 이스라엘을 특징짓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심과 깨달음이다. 선지자는 미래에 약속된 변화상을 좀더 충격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극적인 반전 기법을 사용한다 : '영이 방황하던 자, 곧 이전에 소경 같고 귀머거리 같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도무지 알지 못하던 자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불평하던 자, 곧 이전에 완악하고 패역하여 하나님의 교훈을 거부하던 자들이 지식을 배우게 될 것이다'(원문). 14절과의 대조에 유의하라.
성 경: [사30:1,2]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애굽과의 동맹에 대한 경고]
ꃨ 패역한 자식들이여 - 이는 '마음이 완악하고 불순종하는 자식들'(바님 소레림)이란 뜻이다. '소레림'은 '다루기 힘들다'는 뜻의 '사라르' 동사에서 파생되었다. 이 말은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동물에 대해(호 4:16),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패륜아에 대해(신 21:18;시 78:8) 주로 사용되었는데, 선지자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말로 특별히 적용하였다(1:5,23).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애굽과의 어떠한 종류의 동맹이나 결속도 체결하지 말 것을 엄중히 명하셨다(출 13:17;신 17:16 참조). 그 이유에 대하여는 문화적, 종교적인 두 가지를 말할 수 있으니, 첫째,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나라와 교섭함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물들지 않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요, 둘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의 소속된 나라인 한, 오직 그만을 섬기고 의지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이다.
ꃨ 죄에 죄를 더하도다 - 본문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1) 이전에 유다가 앗수르와 연합해서 이 땅에 그를 불러들였는데 이제 다시 애굽과 결탁하여 그를 몰아내려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Calvin). (2) 하나님을 버린 죄에 더하여 인간에게 도움을 구걸한 행위를 가리킨다(Hitzig). (3) 애굽과 동맹한 죄에 더하여 그것을 하나님께 숨긴 행위를 가리킨다(Skinner). 그러나 이보다는 더 포괄적인 의미로서 '계속적으로 죄가 누적되고 있음'을 뜻하는 말로 보는 것이 더 무난하다(Alexander).
성 경: [사30:3]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애굽과의 동맹에 대한 경고]
ꃨ 바로의 세력이 ...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 애굽으로부터 그들이 기대하였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주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애굽은 그들에게 '힘'(세력)과 '그늘'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수치'와 '수욕'이 될 것이다. 당시의 애굽은, 랍사게가 '상한 갈대 지팡이'(36:6)라고 비웃을 정도로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성 경: [사30:4]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애굽과의 동맹에 대한 경고]
ꃨ 그 방백들이 ... 이르렀으나 - 본문만 가지고서는 언급된 '그 방백들'과 '사신들'이 애굽 사람을 가리키는지, 유다 사람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다. '에발트'(Ewald), '히찌히'(Hitzig), 노벧(Knobel) 등은 전자를 지지한다. 그러나 문맥을 고려할 때-2절에 유다 사신들이 이미 애굽으로 내려간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후자가 더 적절한 듯하다(Delitzsch). '소안'(타니스)은 애굽 북부 델타 지역의 동쪽에 자리한 도시(19:11;민 13:22)이며, '하네스'는 중앙 애굽의 나일 강 상류에 있는 도시로, 후에 '헤라클레오폴리스'(Heracleopolis)라 불렸다. 유다 사신들은 '소안'을 거쳐 심지어 '하네스'까지 이르는 먼 길을 힘들여 여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성 경: [사30:5]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애굽과의 동맹에 대한 경고]
ꃨ 수치를 당하리니 ...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 - '수치를 당하리니'로 번역된 '호비쉬'는 '악취를 풍기다'는 뜻의 동사 '바아쉬'에서 파생한 말로서(Maurer, Knobel), 여기서는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Delitzsch). '수욕'으로 번역된 '헤레파'는 역시 같은 말로 번역된 '켈리마'(3절)보다 강한 표현으로서 '멸시', '조롱'을 뜻한다.
성 경: [사30:6]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애굽과의 동맹에 대한 경고]
ꃨ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 - 본문의 요가지는 애굽으로 파송된 사절들이 자기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키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수고했다는 것이다. 언급된 '남방 짐승'(바하모트)은 '사자와 독사'(Hitzig), 혹은 '애굽을 상징하는 하마와 같은 짐승'(Delitzsch)이 아니라 '남쪽 방향으로 짐을 싣고 가는 짐스, 곧 나귀와 약대'를 가리킨다 : '오! 남방으로 향하는 짐승들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이여'(Alexander). '나귀'와 '약대'는 광야를 지날 때 짐 운반용으로 흔히 사용되는 짐승들이다(창 37:25;42:26).
성 경: [사30:7]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애굽과의 동맹에 대한 경고]
ꃨ 가만히 앉은 라합 - '라합'(*)은 찬조 질서에 대적하는 혼돈의 세력을 상징하는 바다 괴물인데,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 애굽 군대를 바다에서 물리치신 사건과관련하여 애굽에 대한 시적 동의어로 사용되었다(51:9;욥 9:13;26:12;시 87:4;89:10). 이 괴물은 지금-태만함에서건 무력함에서건-바다에서 꼼짝도 않고 부동 자세롤 앉아 있다(G.E. Wright, Martin). 그러니 어찌 유다를 도울 수 있겠는가?
성 경: [사30:8]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 책에 써서 - 선지자를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글로 남겨서 그들의 불순종과 패역함에 대한 증거를 삼으로 하신다. 한편, 서판 혹은 책에 기록하고자 한 그 내용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 해석이 대립된다. (1) 돌 위에 끌로 새긴 형태로 '라합'(7절)이라는 애굽 별명을 기입했다(Delitzsch, O, Kaiser). (2) 두루마리에 적은 형태로 애굽에 대한 비난의 주요한 대목들을 기록했다(Skinner, Scott). 후자가 더 적절한 듯하다.
성 경: [사30:9]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패역한 백성이요 ... 자식이라 - 선지자가 지적한 바, 백성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즉 그들의 마음 자체가 이미 패역해 있어서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할뿐 아니라 거짓말을 능사로 하고 있는 것이다. '패역한 백성'(*, 암 메리)은 문자적으로는 '반역의 백성'인데, 모세의 인도하에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괄할 때 저들이 상습적으로 나타내었던 그 불순종과 완악함을 상기시키는 말이다(민 17:10).
성 경: [사30:10]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 거짓된 것을 보이라 - '선견자'(*, 로에)와 '선자자'(*, 호제)는 평행하는 두 문장에서 동의어로 사용되었는데, '선지자'를 뜻하는 구약의 대표적인 명칭은 '나비'(*)와 다른 점은, 후자가 주로 메시지의 전달이라고 하는 능동적인 기능를 강조한 반면, 전자는 메시지를얻게 된 수동적 경험이 더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G. Vos, Bilical Theology).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백성들은 바른말 하는 선지자의 입을 막고 오히려 자기들의 뜻에 맞는 '부드러운 말'(*, 할라코트)과 '거짓된 말'(*, 마하탈로크)만을 전해 달라고 한다. '할라코투'는 '뺀들뺀들한 아침'을 뜻하며, '마 하탈로트'는 '미혹', '기만', '사기'를 뜻한다 할 수 있다.
성 경: [사30:11]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 떠나시게 하라 -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1:4),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여지는 교훈과 훈계를 제발 그만 듣게 해달라는 말이다. 악으로 치닫는 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오하며,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하도록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협박하고 방해한다. 이러한 예에 대하여는 왕상 22:8-13;렘 11:21;암 2:12;7:13;미 2:6 등을 참조하라.
성 경: [사30:12]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에 의로하니 - '압박'(*, 오쉐크)은 '억압', '상해'를 뜻하니, 애굽에 보낼 재화(財貨)를 마련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취한 강제적인 수탈을 가리킨다(왕하 15:20, Delitzsch, Skinner, Rawlinson). '허망'(*, 날로즈)은 '왜곡됨', '뒤틀어짐', '사악함'을 뜻하니, 애굽에 의존하는 외교정책을 가리킨다(Leupold).
성 경: [사30:13]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이 죄악이 ... 무너짐 같게 하리라 - '이 죄악'은 122가의 '이 말'과 대조되는데(Oswalt), 구체적으로는 애굽과의 동맹을 지칭한다. 애굽과의 동맹은 유다를 구원하기는 커녕 오히려 멸망의 전조로 작용하게 된다.
성 경: [사30:14]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그가 이 나라를 훼파하시되 ...파쇄하시리니 - '무너지는 벽'의 비유에서 '파쇄되는 토기 그릇'의 비유로 바뀐다. 벽의 비유에서 그 초점이 멸망의 급속함에 놓였다면, 여기서 그 초점은 멸망의 철절함에 맞추어진다. '훼파하다'(*, 솨바르)는 '깨뜨리다', '박살내다', '갈기갈기 찢다'는 뜻으로서 '파쇄하다'(*, 카타트)는 말과 동의어이다. '아낌이 없이'(*, 로 야흐몰)는 문자적으로는 '동정심도 없이'이다. 그릇을 깨뜨리는 토기장이 곧 유다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움이 여기에 암시되고 있다.
성 경: [사30:15]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 유다 백성들이 마땅히 취했어야 할 올바른 신앙 자세는 '돌이킴'(*, 슈브)과 '쉼'(*, 나하트)이다. '돌이킴'은 보통 회개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유다가 애굽에 대하여 취하고 있는 정책을 철회하는 것을 의미한다. '쉼'은 인간의 조바심에서 비롯되는 헛된 수고를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맛보게 되는 휴식(안식)과 평화를 의미한다. 동일한 메시기가 아하스 왕에게도 주어졌었다(7:4).
성 경: [사30:16]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니 - 그들은 하나님은 구원과 힘 대신에 (애굽의)말과 기병을 선택하였다(31:1). 선자자는 말을 되받아 치는 기법(언어 유희)을 이용하여 악인들이 의지하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올무에 빠짐을 재치있게 묘사한다.
성 경: [사30:17]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 이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에 충시했을 때, 그들은 '한 사람으로 천을 쫓으며 두 사람으로 만을 쫓을 수 있었다'(레 26:8;신 32:30:수 23:10). 그러나 이제 하나님으로 힘을 삼기를 거부하고 애굽을 의지하는 유댜 백성들은 이와는 정반대의 경험을 겪게 된다.
ꃨ 너희 남은 자는 ... 영(嶺)위의 기호 같으리라 - 전재의 참화에서 겨우 살아 남게 될 패잔병들의 모습을 선지자는 산꼭대기의 '깃대'(*, 토렌)와 영 위의 '기호'(*, 네스)에 비유한다. '토렌'은 '전나무'(Augusti), '소나무'(Rosenmuller) 혹은 '신도를 보내는 깃대'(Gesenius, Ewald), '등대'(Gataker) 등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단순히 높이 솟은 깃대의 기둥'이라는 의미로 취함이 무난하다(Alexander).
성 경: [사30:18]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선지자는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며 기다리지 못하는 유다 백성들의 조급함(15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대조시킨다.
ꃨ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 본문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 해석이 대립된다. (1)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그 공의는 충족되어야 하며 그때까지 그의 은혜는 보류되지 않으면 안 된다(Young). (2)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여호와는 징께를 베푸시는 동안에도 절제하시며 자비를 베푸셔서 그 백성을 진멸치 아니하신다(렘 10:24;30:11;합 3:2, Calvin). 전자의 해석을 따를 경우 본문은 앞절의 연속 심판으로 이해되나, 후자의 경우는 사랑의 근거로서의 공의 혹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완벽한 조화를 표현한 말로 이해된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그의 자비의 근거로 말해지고 있다. 더욱이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음을 권면하는 다음 구절과의 상관 관계를 생각할 때, 후자의 해석이 더 낫겠다.
성 경: [사30:19]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 본문은 '울다'는 뜻의 '바카'(*) 동사의 부정사와 미완료형이 결합되어 강조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관용적 중복어'(an idiomatic pleonasm, De Wette)이다. '너는 울되 울지 않을 것이다'(원문직역).영어성경 KJV는 이 말을 적절하게 '너는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이다'로 번역하였다.
성 경: [사30:20]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리니 - 한 때 핍박을 당하여 몸을 숨겨야 했던 선지자들이 다시 세상에 나와 자유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가르치게 된다는 말이다. '네 스승'으로 번역된 '모레카'(*)는 단수(하나님)로도 번역 가능하나(Valgate, G.E Wright,Ewald),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그것을 복수(선지자들)로 번역한다(Alexander, Delitzsch, Lange).선지자들에게 가해진 갖가지 비난과 위협들에 대하여는 8:12;왕상18:17;렘38:4;암7:10;마23:37 등을 참조하라.
성 경: [사30:21]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너희가 ...이리로 행하라 - 여기서 뒤에서 말하는 이는 선지자이며, 앞에서 듣는이는 백성들이다. 가르치는 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는 것과 관련하여, 선지자들는 양무리의 뒤를 따라가며 갈 길을 이노하는 목자의 모습에서 이 표상을 취했을 수도 있고(Delitzsch), 짐승을 모는 사람이 뒤에 앉아서 짐승에게 방향을 지시하는 모습에서 빌려왔을 수도 있다(Leupold). 여기서 '우편'과 '좌편'은 인간 생활의 모든 활동을 가리키는 말이며(신 5:32;17:20), 이로써 선지자는 우리 모든 행동에 있어서 하나님을 참된 인도자로 삼고 그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행위를 조정해 나가야 할 것을 교훈하고있는 것이다(Calvin)
성 경: [사30:22]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또 너희가 ...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 말씀에 대한 순종은 우상의 파기로 이어질 것이라. 말씀이 고갈되고 불신앙이 팽배한 시대에 우상숭배는 큰 유행이 된다. 그러나 선지자의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힘있게 선포되고 백성들의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리게 될 때, 우상은 그 즉시로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 그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참된 임재로 말미암아 우상이라는 인공적인 상징 자체가 불필요하게 된다(31:7;호14:3;미5:13,14,J. Watts).
성 경: [사30:23]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 풍성케 하길 것이며 - 농부의 수고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이, 하늘에서는 때를 따라 비가 내리고 그 결과 땅에서는 곡식이 영글어 넘친다. 팔레스틴의 농업은 거의 전적으로 비에 의존하였으며 이런 자연 환경 아래서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을 '비를 내리게 하실 수도, 막으실 수도 있는 분'으로 신앙하였다(5:6:신11:14;28:12;왕하8:1;암4:7).
성 경: [사30:24]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 먹을 것이며 - 비옥한 땅에서 풍성한 소산을 내는 한편, 가축들은 광활한 목초지 위에서 마음껏 먹이를 뜯는다. '맛있게 한 먹이'(*, 베릴 하미츠)는 문자적으로는 '발효된 혼합물'이니,'(귀리,보리,살갈퀴등의 여러 곡식들을 섞은) 혼합물'(*)에다 '(소금 혹은 향료를) 조미한'(*)것을 말한다.
성 경: [사30:25]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크게 살륙하는 날 ...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 '물의 공급'과 '망대의 붕괴'라는 두 주제가 혼합되어 나타난다. '망대'는 유다 백성들의 자기 교만을 상징하는 요새를 의미한다. 이 망대가 무너질 때, 즉 교만에 찬 무리들이 제거된 후에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풍성한 축복의 날은 허여된다:2:15;미5:9,10).'메마름'과 '비옥함'은 하나님을 의뢰함과 관계가 깊다(1:30; 3:1; 12:3; 15:6; 19:5; 32:2,20; 33:16; 35:6,7; 41:17,18; 43:19,20; 44:3,4; 48:21; 49:10; 55:1,10; 58:11; 65:10; 66:14, Delitzsch, Oswalt)
성 경: [사30:26]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 일곱날의 빛과 같으리라 - '달'은 '흰 것'(*, 할레바나)으로, '해'는 '뜨거움'(*, 하하마)으로 각각 형상화되었다. '일곱날의 빛'은 '일주일의 빛이 하루에 집중됨'(DRECHSLER)을 의미하니,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밝기로 빛나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 강조점은 눈을 멀게 할 정도의 빛의 강렬함에 있지 않고 상처입은 당신의 백성들을 치유하는 빛의 영화로움과 그들이 누리게 될 축복의 영속성에 놓인다. 여호와의 치유하심에 대하여는 1:6;욥5:18;겔34:16;호6:1;말4:2등을 참조하라.
성 경: [사30:27,28]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 앗수르에 대한 심판 에언이 이어진다(27-33절).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대적인 앗수르를 심판하시는 행위를 통하여 그 백성에 대한 사랑을 거듭 확인시켜 보여주신다.'여호와의 이름'(*, 쉠-야훼)은 그 말씀과 사역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영광'(겔1:28)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J.Watts).
ꃨ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 하수같은 즉 - 천둥, 번개를 통한 폭풍의 표상에 무섭게 분노하는 사람의 표상이 뒤섞여 하나님의 위협적인 심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맹렬한 불(*,에쉬 오칼레트)은 혀에 닿는 모든 것을 삽시간에 먹어치우는 탐욕스런 불의 성질을 나탄낸 말이다(30절;29:6;3:14;출24:17;신4:24;9:3;욜2:5). '창일하는 하수'는 평상시에는 큰 물로 돌변하는 사막의 '와디'를 가리킨다(Oswalt).
ꃨ 멸하는 키 ... 미혹되게 하는 자갈 - '키'와 '자갈'의 비유가 첨가된다. 하나님께서는 '열방들' 곧 이민족들로 구성된 앗수르군대를 키로 흔들어 멸망시키실 것이며(마3:12), 또 마부가 자갈을 눌려 야생마를 제어하듯이, 그들을 인도하여 파멸의 심연속으로 몰아 넣을실 것이다.
성 경: [사30:29]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 - 앗수르 구대의 멸망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기쁨과 환호를 가져다 줄 것인데, 선지자는 이 기쁨을 절기를 맞이하여 저(피리)를 불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는 자들의 가슴 벅찬 희열에 빗대고 있다. 여기서 '절기'는 아마도 유월절을 가리킬 것이다.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두가지이니, 첫째 그것이 밤에 시작되었고(출 12:42), 둘째 대적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Delitzsch).'이스라엘의 반석'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서(삼하23:3) 자신을 의뢰하는 모든 이들에게 여호와께서 진실로 안전한 피난처요 견고한 요새가 되심을 함의하고 있다(Alexander, Leupold).
성 경: [사30:30]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여호와께서 ... 우박을 하시리니 - 앗수르에 대한 심판 묘사가 계속된다. '그 목소리의 장엄함', 곧 하나님의 음성과 같고(시18:13;29:3-9;77:18), '그 팔의 치심', 곧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폭풍과 같다.
성 경: [사30:31]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 '낙담하다'로 번역된 '예하트'(*)는 '깨뜨리다','무섭게 하다'는 뜻의 '하타트'(*)동사의 니팔(수동), 미완료형이니, 공포로 인해 혼비백산함을 의미한다.
성 경: [사30:32]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 그들을 치시리라 - 하나님이 몽둥이를 들어 앗수르를 치실 때마다 그것에 맞추어 음악이 연주된다. 29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유다 백성은 즐거운 방관자이다, 원수와의 전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으로 돌려지는데, 이 사실이 '전쟁 떠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는 말에서 명시되고 있다. 하나님은 칼과 창같은 무기들을 쓰지 않으신다. 단지 팔을 들어 흔드시는 것만으로도 그는 능히 대적들을 제압하신다(19:16 참조, Delitzsch).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전쟁을 수행하시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승리와 영광을 즐거이 찬미하고 노래부른다.
성 경: [사30:33]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대저 도벳은 이미 설립되었고 ... 이를 사르시리라 - '도벳'(*, 토프테)은 '(혐오의 표시로) 침을 뱉다'는 뜻의 '투프'(*)동사에서 파생한 명사로, 예루살렘의 남서쪽 힌놈 골짜기에서 불타고 있는 화장터를 가리킨다. 이곳은 이전에 어린아이를 불태워 몰록신에게 제사를 드린 곳으로 유명하였는데(왕하 23:10;렘 7:31;19:6,11), 여기에서 자행되었던 끔찍한 살륙으로 인하여 '지옥'을 뜻하는 '게헨나'(마 5:22;10:28)란 이름을 얻기도 하였다. 이 '도베'은 이제 '몰록신' 대신 '멜렉'(*), 곧 앗수르 왕을 위해 '이미'(옛적부터) 마련되었다. 악인들이 불바다에서 쓰레기더미처럼 태워질 것이라는 끔찍한 예언과 더불어 본장은 마감되었다.
주제1: [바벨론,에돔,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ꃨ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 '해변광야'는 바벨론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이름이다(9절) 아라비아 사막의 남단 대평원에 위치한 초기의 바벨론은 세미라미스(Semiramis)가 댐을 쌓기 전까지는 , 아비데누스(Abydenus)가 '마치 바다 처럼 보인다'고 말했을 정도로, 범람하는 유브라데 강물에 자주 침수되었다(Alexander). 그러나 '해변 광야'란 상징적인 이름에는 물에 잠겨 있는 바벨론의 지형 조건만이 아니라, 그 모습을 통하여 선지자가 미리 내다본 바, 바벨론의 궁극적인 운명의 불길한 전조까지 내포되어 있다(14:23;렘 51:13, Delitzsch). 그것이 선지자의 환상 속에서 점점 구체화된다. 적병이...남방 회리바람같이 몰려 왔도다. 바벨론에 임할 재난은 광대한 아바리아 사막에서 급속도로 불어오는 태풍에 비유된다. 이 태풍의 무서움에 대하여는 욥 1:19;37:9;렘 4:11;13:24;호 13:15;슥 9:14 등을 참조하라. 광야 곧 두려운 땅에서 오리라고 예언된 적병은 다음절에 나오는 엘람과 메대인들을 가리킨다.
성 경: [사21:2]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ꃨ 혹독한 묵시 - 이는 '묵시'(*,하주트)의 내용 자체가 견딜 수 없이 무겁다(*, 카솨)는 뜻이다.
ꃨ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 옛 주석가들은 본문을 포악한 바벨론 군주들에 대한 묘사로 본다. 이에 따르면, 바벨론이 왜 멸망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선지자가 여기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본문을 바벨론의 침략자들에게 적용시킨다. 두 가지가 다 문법적으로 가능하나 후자를 취한다(Alexander).
ꃨ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 '올라가고 에워싸라'는 말은 바벨론에 대한 공격 명령이다. 이 명령은 엘람과 메대에게 주어졌다. '엘람'은 현재의 이란 남부에 해당하며 바사 제국을 가리킨다. '엘람'은 히브리인들에게 잘 알려진 반면(창 14:1), '바사'는 그때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바사와 국경을 접하고 있던 엘람은 후에 바사에게 합병되었다. 바사와 메대는 B.C. 539년 고레스 왕의 주도하에 바벨론을 정복하였다. '메대'에 대하여는 13;17 주석을 참조하라. 이사야 선지자 당대에 엘람과 메대가 바벨론의 연합국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그의 묵시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는 이러한 혜안(蕙眼)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영감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임에 틀림없다.
성 경: [사21:3,4]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전절의 '혹독한 묵시'는 선지자에게 두 가지 신체적인 반응, 즉 극심한 요통(3절)과 마음의 진동(4절)을 야기시켰다. 포로기의 선지자들이 바벨론의 몰락을 환호한 데 비하면, 본문에 묘사된 선지자의 반응은 다소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하 카이저(Kaiser)는, 이 같은 표현은 선지자들이 자기 계시의 엄중함을 부가시키기 위하여 즐겨 사용하는 수사학적인 기교라교 설명한다(15:5;16:9, 11;겔 21:6, 7;단 10:2, 3, Oswalt). 반면에 칼빈(Calvin)은 자기가 본 것을 백성들에게 생동감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선지자가 자신을 바벨론과 동일시하여 마치 배우처럼 자신을 입을 통해 바벨론의 참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어느 쪽을 취하든지, 묵시의 혹독함이 간접적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
ꃨ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 본문의 히브리어 '할할라'(*)는 '춤추다', '꼬이다'는 뜻의 '훌'(*)에서 파생된 명사로, 몸부림치는 고통을 의미한다(겔 30:4,9). 선지자는 이 고통을 '임산한 여인의 고통'(*,치림)으로 비견한다(13:8).
ꃨ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 '희망의 서광'(네쉐프 히쉐키,* )은 직역하면 '나의 기쁨의 저녁'이니, 한 날의 근심을 벗고 안식하리라고 기대되었던 저녁 시간조차 두려움의 때로 변한다는 말이다.
성 경: [사21:5]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ꃨ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먹고 마시도다 - 포위 공격을 당하리라고 선언된(2절) 바벨론의 자세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본문에 묘사된 상황은 바벨론의 대연회 장면이다. (적군의 내침이 임박한 시점에서) 그들은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신다. 루짜토(Luzzatto)는 본절을 대립적으로 이해한다 : '그들은 식탁을 베푼다, 파수꾼을 세워야 함에도;그들은 먹고 마신다,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발라야 함에도,' '파숫꾼을 세우고'(*, 차포하차피트)는 언뜻 봐서는 바벨론인들의 허랑 방탕한 연회 모습을 기록하는 있는 본문에 어울리지 않는 듯이 보인다. 이 때문에 몇몇 주석가들은 이것을 '융단을 깔고'(sperad the carpets)로 번역한다(Hitzig, Knobel, Leupold, Gray, Alexander). 그러나 '차파'(*)란 '감시하다'는 뜻이며, 더욱이 이같이 위급한 상황에서 파수꾼을 배치하는 최소한의 예방 조치도 없이 연회를 베푼다는 것은 상식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본래대로 해석함이 옳다. 본문은 다음과 같이 이해된다 : '그들은 파수꾼을 세우는 한 가지 예방 조치만으로도 모든 준비를 다했다는 듯이 안심하고서 아무 걱정없이 연회에 빠져든다.'
ꃨ 너희 방백들아 일아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 전쟁 준비를 서두르라는 말이다. 방패에 기름을 바름은 적군이 내리치는 칼날이 미끄러져 빗겨가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에 앞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몇 가지 선행 조처들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이 시간까지도 방패에 기름을 바르지 않았다는 것은 저들의 태만함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본문의 전체적인 상황은 바벨론의 멸망을 기록하고 있는 단5장과 흡사하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벧사살은 귀인 일천 명과 더불어 잔치를 베풀며 놀다가 고레스의 군대에 의해 몰살당하였다.
성 경: [사21:6]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ꃨ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 보는 것을 고하게 하되 - 다가오는 메대-바사 군대와 바벨론의 멸망이 선지자 자신의 눈으로가 아니라 '파숫군'이라는 제 삼자의 시가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할진데, 이 파수꾼은 선지자에 의해서 객관화된 또 다른 그의 모습이다. 파수꾼의 표상은 메시지를 보다 생생하게 만들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다.
성 경: [사21:7]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ꃨ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약대 떼 - 파수꾼이 주목해서 봐야 할 내용이 소개된다. 기병대는 고레스가 자랑하는 바사의 주력 부대였다. 그 외 나귀 떼와 약대 떼는 군수품과 식량 운반 등에 활용된 듯하다. 그러나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고레스가 리다아인들(Lydians)을 물리칠 때는 나귀 떼를 이용했다고 한다(Gray). 이로 보건대, 나귀떼와 약대 떼는 운송 수단으로 뿐만 아니라 전쟁 수단으로도 활용되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크세노폰(Xenophon)은 바사의 군대가 둘씩 짝을 지어 행군했음을 알려준다(Alexander).
성 경: [사21:8]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ꃨ 파숫군이 사자같이 부르짖기를 -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외친다-사자-파수대 위에서'이다. 대분분의 주석가들은 '사자'(*, 아르예)가 파수꾼의 보고 내용이 아니라 보고하는 방식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좋는 병행구는 계 10:3의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에서 발견된다. 파수꾼의 보고는 먼저 자신이 성실과 끈기를 다하여 임무에 임했다는 것(8b절)과 바벨론에서 벌어진 전쟁의 결과(9절)에 대한 것이다.
성 경: [사21:9]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ꃨ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 6절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되던 사태의 추이가 마침내 '바벨론이 함락되었다'는 파수꾼의 환호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것은 고레스 왕이 주도하는 메대-바사 군대에 의해 바벨론이 멸망할 것을 선언하는 말인데, 영적인 의미에서 그 참된 성취는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계 18:2)라고 외치는 하늘 천사들의 합창에서 비로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바벨론과 함께 그 우상들의 몰락이 언급된 것은 비록 이일이 직접적으로는 고레스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이다.
성 경: [사21:10]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예언]
ꃨ 너 나의 타작한 것이여 나의 마당의 곡식이여 - 바벨론에 대한 경고의 마지막에서 예언의 목적이 제시된다. 그것은 바벨론에 의해 예속되어 고달픔을 겪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려는 것이다. 선지자가 그들에게 전하는 큰 기쁨의 소식은 바벨론이 몰락했다는 것이다. '나의 마당의 곡식'(벤-가르니, * - )은 문자적으로는 '나의 마당의 아들'인데, '아들'은 어떤 물건에 소속됨(관련성)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이다(Alexander). 이 말은 '나의 타작한 것'과 동의어다. 마치 농부가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기 위하여 곡식을 타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바벨론이라는 징계 수단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타작하였으나 그 괴로움의 시간은 이제 곧 끝날 것이다(렘 51:33;미 4:12).
성 경: [사21:11]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아돔에 대한 예언]
ꃨ 두마에 관한 경고라 - '침묵', '정적', '쓸쓸함'을 뜻하는 '두마'(*)는 에돔의 변형으로서, 에돔의 미래 운명을 상징하는 이름이다(시 94:17;115:17, Vitringa, Rosenmuller, Delitzch, Knobel). 어떤 이들은 '두마'가 이스마엘을 조상으로 하는 아랍 족속의 명칭(창 25:14;대상 1:30) 혹은 오늘날 '두마엘얀딜'(Dumah Eljandil)이라 불리우는 아라비아 북부의 한 지역이라고도 한다(Geseniuss, Hitzig, Michaelis, Umbreit, Ewald). 그러나 뒤에 나오는 '세일'(Seir) 자체가 에서의 자손 혹은 에돔인들의 거주 지역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별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Alexander).
ꃨ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 파수꾼(선지자)을 부르는 소리는 사해의 남쪽에서 엘란 만(Elantic gullf)에 미치는 높은 산악 지대인 세일(창 14:6;32:3;36:8, 9)에서 들린다.
ꃨ 파숫군이여 - 본무의 '파숫군'(*, 쇼메르)은 6절의 '파숫군'(*,메차페)과 같지 않다. 후자가 주로 적의 침략으로부터 성(城)을 방비하는 일을 한다면, 전자는 밤에 깨어 성을 지키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62:6;시 127:1;130:6;아 5:7). 참다운 의미에서 선지자는 세계의 밤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는 온 세상이 잠에 취해 있을 때, 홀로 깨어 어둠을 응시한다. 깨어 있는 자로서, 감시하는 자로서, 어둠의 무게를 두 어깨에 짊어진 자로서, 그는 세계의 운명에 대해 말할 것을 강요받는다.
ꃨ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 '밤'은 재난의 시간이다. 이 밤의 지겨움을 견딜 수 없어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탄식어린 물음이 새어 나온다. 그 물음은 이렇게 풀어 말할 수 있다:'우리는 지금 밤의 어느 지점에 있는가? 밤이 얼마나 남았는가? 이 고난의 밤은 언제나 끝나는가?' 반복된 물음은 그들의 답답함의 정도를 암시해준다.
성 경: [사21:12]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아돔에 대한 예언]
ꃨ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 파수꾼의 대답은 간결하고 모호하다. 탈굼역(Targum)은 이 말을 '의로운 자에게는 보상의 아침이 밝을 것이나 불의한 자에게는 형벌의 밤이 임할 것이다'로 해석한다. 노벧(Knobel)은 '유대인들에게는 구원의 아침이 돋을 것이나, 에돔인들에게는 고난의 밤이 계속되라라'로 해석한다. 반면에 그로티우스(Grotius)는 '비록 아침의 시간이 올지라도 영적인 흑암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로 해석한다. 그러나 보다 좋은 해석은 아침과 밤의 순환이 여기서 말해지고 있다고 보는 해석이다(Gesenius). 밤이 재난의 사건이라면, 아침은 구원의 시간이다. 비록 구원의 때가 바벨론의 멸망과 더불어 도래하는 듯이 보일지라도 그것은 또 다른 어둠에 삼킴을 당할 것이니, 즉 바사제국에 의해 그들은 지배될 것이다(Delitzsch).
성 경: [사21:13]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아라비아에 대한 예언]
ꃨ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 바벨론의 파멸은 에돔뿐만 아니라 인접한 아리비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라비아'(*,아라브)라는 이름에는, '해변광야', '두마'와 같이 그 나라의 운명을 암시하는 '저녁'이라는 상징적 뜻이 담겨 있다. 그의 구성은 대단히 기교적이다. 세일 산지를 뒤덮은 어둠(12절)은 아라비아에도 어어져 뜨거운 태양 아래 대상들이 자유로이 왕래하던 나라 아라비아는 이름 그대로 저녁의 땅이 될 것이다.
ꃨ 드단 대상이여 너희가...유숙하리라 - 선지자의 경고는 먼저 사막을 횡단하는 드단의 대상들에게 향한다. 이들은 에돔과 이웃한 족속들(창 10:7;25:3;렘 49:8;겔 25:13;27:20)로 낙타를 이끌고 두로를 오가는 원거리 상업에 종사하였다. 이들이 평상시에 통행하던 길에서 쫓겨나 수풀에서 은신처를 찾을 것이라는 말은 심각한 전쟁 상황을 암시하는 것이요 아라비아 땅이 적에게 유린될 것을 시사한다.
성 경: [사21:14]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아라비아에 대한 예언]
ꃨ 데마 땅의 거민들아...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 선지자의 다음말은 드단 대상들이 숲속으로 도망한 곳 근처에 있는 데마(아라비아 북부에 있음) 주민들에게 주어진다. 도피자들에게 물과 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동정심을 표시하는 행위이다(신 23:4). 이 말은 데마 주민들의 동정심이나 또는 아라비아 땅의 나머지에는 그래도 몸을 쉴 곳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피자들의 비참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덧붙여진 것이다.
성 경: [사21:15]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아라비아에 대한 예언]
ꃨ 그들이 칼날을 피하며...도망하였음이니라 - 드단 대상들이 왜 그토록 서둘러 몸을 피해야 했는지 그 이유가 설명된다. 한편, 본문은 '앞에서'(*, 미프네)라는 말을 4번이나 반복하고 있는데-'칼날 앞에서...,뺀 칼 앞에서, 당긴 활 앞에서, 전쟁의 무거움 앞에서'(원문)-, 이는 13절에 암시된 전쟁의 참사을 묘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성 경: [사21:16]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아라비아에 대한 예언]
ꃨ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다 쇠멸하리니 - '게달'(*,카다르)은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인데(창 25:13), 여기서는 아라비아 유목 민족을 대표하는 뜻으로 쓰였다(42:11;60:7;시 120:5;렘 2:10;49:28;겔 27:21). 지금도 유대 랍비들은 아라비아어를 '게달의 언어'라고 부른다(Alexander). 두로와의 상거래를 통하여 축적된 많은 부(富)와 풍부한 가축들, 그리고 활달한 용사들로 넘치는 게달의 '영광'(*, 케보드)은 가까운 장래에 전쟁의 '무거움'(*, 코베드)에 눌려 붕괴되고 말 것이다(Oswalt). '일 년 내에'란 말은 '품군의 정한 기한같이' 예정된 파멸의 시간이 결코 늦춰지지 않을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성 경: [사21:17]
주제1: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아라비아에 대한 예언]
ꃨ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의 남은 수가 적으리라 - 그 조상 이스마엘 이래(창 21:20) 게달 자손들은 활을 잘 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시 120:4 참조). 그러나 전쟁의 참화를 겪은 뒤에 저들의 수는 현저히 줄어 극소수만 남게 될 것이다.
ꃨ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경고는 아라비아를 징벌하시는 분이 결국 하나님이시며 그는 무한한 능력으로써 선지자의 입을 통해 예언된 이 모든 일을 기필코 이루실 것임을 확인, 공표하는 말로 끝맺는다.
성 경: [사22:1]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이상(異像)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 '이상 골짜기'(*,게 히자욘)는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이름이다(5절). '골짜기'는 다윗 성이 서 있는 언덕(산) 기슭에서 마주치는 힌놈, 기드론 등의 골짜기에서 연유된 듯하고, '이상'은 그곳에 선지자의 거주지가 있고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시온 산'이라 불렸음을 생각할 때, '이상 골짜기'라는 이름에는 경멸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산' 과 '골짜기'의 대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산의 높은 곳에서는 먼 데까지도 전망이 가능하나, 어두운 골짜기에서는 아무것도 내다보지 못한다. '이상'에 관한 한, 예루살렘은 골짜기와 같다. 선지자가 그 이름을 통해서 풍자하고 있는 바, 미래를 예측하는 시력을 상실한 예루살렘은 임박한 재난 앞에서도 회개하기는 커녕, 기쁨으로 소동하며 분요하는 모습만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2절).
ꃨ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찜인고 - '어찜인고'(* - , 마-라크)는 직역하면 '네게 무슨 일이냐?'(What to you)이다. 이 물음에는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조롱의 뜻이 담겨 있다(삿 18:23). 예루살렘 주민들이 떼를 지어 지붕에 올라감(삿 16:27)은 아마도 (퇴각하는) 적군(산헤립의 군대)의 모습을 지켜 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36:22, Gray, Leupold). 본문과 관련되는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학자들간에 이견(異見)이 분분하다. 사실 여기서 제시되는 주장들은 기껏해야 개연성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본문의 상황이 B.C. 701년에 있었던 앗수르 군대의 예루살렘 포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당시 산헤립은 히스기야로부터 상당한 양의 공물을 받고 그의 군대를 철수시켰다(왕하 18:14-16).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자세한 사항에 대하여는 36,37장;왕하 18장을 참조하라.
성 경: [사22:2]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훤화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 예루살렘 성읍을 떠들석하게 만든 이 소동은 기쁨과 안도감에서 촉발된 것이다. 백성들은 퇴각하는 적군을 바라보면서 모든 위협이 사라진 양, 자만하며 허랑 방탕한 환락에 도취되었다.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전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즐거워하다'(*, 알리자)는 말은 헛된 자만에서 분출되는 득의 양양한 기쁨을 나타낸다(습 2:15, Delitzch).
성 경: [사22:3]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너희 관원들은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결박을 당하였도다 - 백성들을 지켜야 할 관원들이 오히려 제 몸을 보전히기 위하여 활도 팽개치고 도망하다가 포로가 되어 결박을 당한다. 명예와 용기가 자취를 감추고 수치와 비겁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것이 이상을 상실한 백성들의 결국이다. '활을 버리고'(*, 미케쉐트)는 직역하면 '활로부터'이니, 그 의미는 '활을 쏴보지도 못하고' 혹은 '아예 저항을 포기하고'이다. 유다의 지도자들에 관한 선지자의 부정적인 시선은 1:23;3:2, 3;5:13;7:2;28:7, 14;29:15 등에도 나와있다.
성 경: [사22:4]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 예루살렘의 미래가 이러하므로 선지자는 기쁨으로 환호하는 성읍의 한 가운데서 홀로 눈물을 흘린다. 그는 어떠한 위로도 거부한채 실컷 울기만을 소원한다. 이상을 결여한 시대에 선지자는 얼마나 특이하고 외로운 존재인지! 그는 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깨어 어둠을 응시하며(21:11, 12), 모두가 기쁨에 들떠 분요할 때 홀로 슬픔에 잠긴다. 그는 백성을 향하여 선포하는 자이며, 동시에 백성과 그 운명을 함께 나누자는 자이다. 선지자 이사야의 눈물은 백성의 고난에 참예하려는 그의 애끊는 가슴에서 흘러 내리는 것이다.
성 경: [사22:5]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성벽의 무너뜨림과 산악에 사무치는 부르짖는 소리로다 - 직역하면 '성벽을 무너뜨림과 산악에 대하여 부르짖음(*, 쇼아)이로다'이다. 두 소리가 들린다. 먼저 들리는 소리는 적군의 공격을 받아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요, 그와 때를 같이해서 살려달라는 백성들의 비명소리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에서 메아리쳐 울린다. '쇼아'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부르짖음이다(Alexander).
성 경: [사22:6]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엘람 사람...기르 사람 - 예루살렘 성을 포위 공격하는 앗수르 군대 중에 주도적인 두 나라가 진술된다. '엘람'과 '기르'는 산헤립 당시에 이미 거대한 앗수르 제국의 한 주(속국)로 편입되었다. '엘람'은 바벨론 북동쪽에 위치해 있으며(21:2),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하였다. '기르'는 코카서스에서 발원하여 카스피해로 유입되는 큐로스 강에 근접한 지방으로 알려져 있는데, 성경에서 그곳은 '아람 사람의 기원지'(암 9:7)로, '아람 사람이 포로로 사로잡혀온 곳'(엄 1:5)으로, 또는 디글랏 빌레셀이 다메섹 주민을 강제로 이주시킨 장소(왕하 16:9)로 언급되고 있다. '엘람'과 '기르'는 여기서 각각 바사와 메대 대신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Alexander). 이 두 나라로 대표되는 앗수르 군대의 위용은 곧 궁사들과 전차 부대와 기병대와 보병대로 구성된다.
성 경: [사22:7]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병거는...정렬되었도다 -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골짜기마다 적들의 병거가 가득하고, 성문 앞에는 마병이 정렬해 있는 일촉 즉발(一觸卽發)의 상황에서 예루살렘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다고 아니할 수 없다.
성 경: [사22:8]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 직역하면 '그가 유다의 베일(*, 마사크)을 벗기매'이다. '마사크'는 사람의 눈을 가려 보지 못하도록 하는 무엇을 뜻하는데(출 26:36;민 4:5;삼하 17:19;시 105:39;고후 3:15, 16), 여기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무지의 베일로 해석함이 가장 무난하다(Alexander, Leupold). 하나님께서 그들을 깨우쳐 주심으로 백성들은 그제서야 자기들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 속에 놓여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깨달음이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회개하도록 하는 데까지는 이르게 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병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성 경: [사22:9]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아래 못의 물도 모으며 - 포위당했을 때를 대비하여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사전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아래 못'은 시온 산 서쪽 맞은편 힌놈 골짜기에 아직도 남아 있는 저수지를 가리키는 듯하다.
성 경: [사22:10]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케도 하며 - 성읍 내의 가옥을 계수함은 그것을 헐어내기 위함이요, 그것을 헐어냄은 성벽을 견고케 하는 데 필요한 건축 재료를 얻기 위함이다(9절;렘 33:4).
성 경: [사22:11]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그러나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존경하지 아니 하였느리라 - 선지자는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백성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행위의 이면에 하나님을 앙망하는 마음이 없음을 질책하는 것이다. '앙망하다'와 '존경하다'는 히브리어로 '바라보다'(의지하다)는 뜻이다. '이 일을 하신 자'(*,오세야)와 '이 일을 경영하신 자'(*,요체라)는 문자적으로는 각각 '그것을 만드신 자'와 '그것을 빚으신 자'인데, 이는 유다 앞에 놓인 위기를 조성하신 분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하나님께 돌아옴이 없이는 그들이 어떤 자구책을 강구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성 경: [사22:12]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 예루살렘 성읍 앞에서 벌어진 이러한 일련의 위기 상황들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경고요, 부르심이었다. 이것은 백성들이 특별히 깨닫기 어려운 것도 아니며, 올바른 지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능히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통고하며 애호함'은 가슴을 치고 우는 것이니, 하나님을 거스려 범죄하였음을 뉘우치는 행위이다.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띰'은 회개의 외적 증거로서 동방에서 널리 시행되어 온 관습이었다(15:2,3 참조). '굵은 베'(*, 사크)는 슬픔의 날에 입는 굵은 삼베옷을 가리킨다(3:24;창 37:34;에 4:1;욘 3:6).
성 경: [사22:13]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 그러나 회개에의 기대는 깨어졌다. 백성들은 미래의 재난 앞에서 찰나적인 쾌락으로 일관하였다. 니느웨가 보인 반응과 비교해 보라(욘 3:6-9). 그들의 행위는 미래를 상실한 데서 오는 자기 파멸적 경향성일 수도 있고, 또는 '선지자가 내일 죽는다고 하니 그 말을 존중해주는 의미에서라도 오늘만큼은 실컷 즐기며 놀자'는 조롱의 표현일 수도 있다. 내일은 없으며 따라서 인생에는 영원한 것도, 가치있는 것도 없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에게 오늘이라는 시간은 먹고 마시는 쾌락의 한 순간으로만 존재한다. 그들의 눈에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며 자기 부정과 희생의 길을 걸어 가는 신앙인의 삶은 얼마나 기이하고 또 어리석게 보일 것인가(고전 15:19,32)!
성 경: [사22:14]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ꃨ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 회개하기를 거부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절대로 맛볼 수 없음을 엄숙히 선고하는 말이다. '속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파르'(*)는 본디 '덮다', '가리다'는 뜻이다. 구약 시대에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뿌려진 황소와 염소의 피는 백성들의 죄를 없이 하지 못하고 다만 일시적으로 가리울 뿐이었으므로 해마다 반복될 필요가 있었다(히 10:3,4).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제물로 바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심으로 이 같은 필요가 소멸되게 된 것이다.
성 경: [사22:15]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그 국고(國庫)를 맡고 궁을 차지한 셉나 - 직역하면 ' 이 국고 맡은 자(*, 하소켄 하제), 그 집 위에(* - ,알-하바이트) 있는 셉나'이다. 셉나의 직위가 소개된다. 그는 '집 위에 있는 사람', 즉 왕궁을 다스리는 궁내 대신이다(창 39:4;44:1, 4;왕상 4:6;18:3;왕하 15:5 참조). 이런 의미에서 그는 왕을 가까이 하는 사람(*, 소켄)이라 불렀다(Lange). '소켄'은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며 그 여성형인 '소케네트'(*)가 다윗 왕을 수종든 젊은 여자 아비삭에게 적용되었다(왕상 1:2, 4). 그 앞에 붙은 지시 대명사 '이'(this)라는 말 속에 경멸적인 어감이 함축되어 있다. 이것은 '셉나'란 이름 앞에 '...의 아들'이라는 소개가 생략된 것에서도 확인된다.
성 경: [사22:16]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높은 곳에...처소를 쪼아 내었도다 - 2인칭에서 3인칭으로 전환된다. 셉나의 헛된 야망의 높이를 상징하는 '높은 곳'은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대하 32:33)이란 말에서 보여진 것처럼 열왕들의 묘실을 기리킨다. 이들 무덤들은 예루살렘 주변 산들의 경사진 곳에 바위를 뚫어 만들었는데 이는 침해를 방지하고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Gray).
성 경: [사22:17,18]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속박하고...던질 것이라. 그러나 예루살렘 높은 곳에 왕들처럼 묻히고자 하는 셉나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그는 단단히 속박된 채로 공처럼 말려져 광막한 지경에 던져질 것이다.
ꃨ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거기 있으리라 - 원문상 '그 곳'(*, 솨마)이 2번 쓰여 강조되고 있다. 그것은 의미상으로 16절의 '여기'와 대조된다. 후자가 고귀한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면, 전자는 수치스러운 이국 땅을 뜻한다. 이국 땅에서 최후를 맞이함은 유대인들에게 최고의 불행으로 간주되었다(암 7:17, Leupold). 셉나의 영광은 곧 왕궁의 부끄러움이다. 그 같은 인물을 등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왕궁은 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영달을 좇아가면 욕과 멸시가 그 뒤를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이치이다(23:9).
성 경: [사22:19]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고 - 본문은 다음절에서 엘리아김의 등장을 말하기 위해서 덧붙여진 것이다. 셉나는 서기관으로 강등되었으며(36:3), 그 자리를 엘리아김이 차지했다.
성 경: [사22:20]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 엘리야김은 36:3에서 셉나와 함께 다시 언급된다. 그 이름 앞에 '내 종'이란 수식어를 첨가한 것은 그가 여호와의 충실한 종복으로서(20:3;삼하 3:18;암 3:7) 셉나와 대조적인 인물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Alexander).
성 경: [사22:21]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힘있게 하고 - '옷'은 사람의 신분과 권세를 나타낸다. '예복'(*, 케토네트)과 그 위에 두른 '띠'(*, 아브네트)는 취임식 때 입는 관복을 가리킬 것이다(출 28:4, 39;레 8:7, 13).
성 경: [사22:22]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 '다윗 집'은 유다 왕궁이다.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둔다'는 말은 위정자의 책임의 무거움을 강조하는 비유적 표현인데 무겁고 긴 열쇠를 어깨에 둘러 메었던 고대의 풍습이 반영되고있다(9:6). 열쇠를 가진 자는 집 안의 출입을 비롯해서 모든 살림 살이를 관장해야 했다. 이 열쇠는 왕이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자에게 주어졌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했을 때도 이와 같은 의미로 말씀하셨다(마 16:19).
성 경: [사22:23]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같이...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 새로이 공직에 취임한 엘리아김의 위치가 확고 부동할 것을 선지자는 두가지로 표현한다. 첫째, 국가에 관한 한, 그는 단단한 곳에 박힌 목처럼 흔들림이 없이 견고할 것이다(슥 10:4 참조). 둘째, 가문에 관한 한, 그는 그 아비 집에서 온 가족이 의지하는 보좌 같이 될 것이다. 즉, 영광이 될 것이다.
성 경: [사22:24]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ꃨ 그 아비 집의 모든 영광이...항아리 까지리라 - 그 가문에 속한 모든 이들이 견고한 못 같은 엘리아김에게 의지함을 말한다. '후손과 족속'(*, 하체에차임웨하츠피오트)은 대립적 의미-'아들과 딸'(성의 구분), '아들과 손자'(세대 구분), '고귀한 자와 천한 자'(계급 부분)-로 이해된다(Alexander).
성 경: [사22:25]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유다의 관리들에 대한 심판]
본절은 해석자들에게 큰 어려움을 야기시킨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엘리아김이 친족을 등용하여 족벌 정치를 행사하다가(24절), 그로 인하여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25절)는 해석을 취한다. 그러나 앞에서 엘리아김의 좋은 면을 이야기하다가 돌연 그에 대한 비난과 비극적 최후를 말한다는 것은 매우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몇몇 주석가들은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24절을 엘리아김에게, 본절을 셉나에게 적용하는 것이다(Calvin, Umbereit). 그러나 이 경우에 23, 24절에서 엘리아김을 가리킨 못이 어째서 돌연 셉나로 바뀌어야 하는지 그 까닭이 분명치 않다. 따라서 문맥에 비추어 부자연스러운 감은 있지만 앞의 해석을 받아들인다.
성 경: [사23:1]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두로에 관한 경고라 - 열방들에 관한 경고(*, 마사)는 바벨론에서 시작하여(13장) 두로에서 끝난다. 바벨론과 두로는 각각 세계의 대극점(동과 서)에 위치하면서, 세계의 두 힘 곧 권력과 재물을 대표한다. 계 18장에서 이들 두 나라는 영적으로 함께 결합된다. '두로'는 동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 페니키아(베니게)의 주요한 네 성읍-아라두스, 비블로스, 시돈, 두로-가운데 하나로 유명한 항구 도시였다. 그 자매 항구인 '시돈'은 약 40km 북쪽에 있다.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두로는 일찍이 바다를 개척하여 지중해를 통한 해상 무역에 활발히 종사하였다. 두로는 이사야 선지자의 때로부터 B.C.322년에 이르기까지 약 5번의 공격을 받았는데, 2번은 앗루르에 의해(느부갓네살), 또 1번은 바사에 의해(아타르크세르크스 3세), 그리고 마지막은 마게노냐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였다(Oswalt). 본문의 예언이 이중 어느 것과 관련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바벨론에 의한 점령이 가장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3절). 두로에 대한 예언으로는 겔 26-28장을 보라.
ꃨ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 '다시스의 선척들아'란 말에는 이중의 수사법이 들어 있으니, 그것이 지중해를 오가는 페니키아의 해상 활동을 대표하는 한에서 환유법이요, 또한 그것이 인격화되어 부름을 받는 한에서 돈호법이라 할 수 있다. '다시스'는 스페인의 타르테수스를 가리키는데, 그곳은 두로의 해상 식민지였다(2:16;60:9;왕상 10:22;22:48;시 48:7;겔 27:25;욘 1:3). 다시스를 돌아 고향으로 귀항 중인 선원들에게 슬픈 소식이 전해진다. 그것은 두로가 파멸되어 들어갈 항구도, 쉴 집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들려온 곳은 최종 정박지인 '깃딤' 곧 구브로 섬(Cyprus)이다(창 10:4;렘 2:10;단11:30).
성 경: [사23:2]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고(商賈)로 말미암아 부유하게 된 - '시돈 상고'는 페니키아의 상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시돈'은 페니키아를 대표하는 가장 크고 오래된 도시이며(삿 3:3;왕상 16:31), '상고'(*, 소헤르)는 상인, 장사꾼을 뜻한다. 이들은 지중해를 오가며 인접한 나라들의 물건을 중개 무역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덕을 본 나라들이 많았다.
성 경: [사23:3]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시흘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열국의 시장이었도다 - 시돈 상고로 대표되는 페니키아의 해상 활동이 구체적으로 예시된다. 이들은 고대 세계의 곡창 지대였던 애굽으로부터 곡식을 사서 이것을 '큰 물' 곧 지중해(시 107:23;겔 27:26)로 운반한 뒤에 곡식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되팔아서 큰 이윤을 남겼다. '시흘'(*)은 나일 강을 뜻하는 애굽어 '예오르'(*, 19:6)의 히브리어 발음이다(수 13:3;렘 2:18).
성 경: [사23:4]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시돈이여...생육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니라 - '바다', 엄밀히 말해서 '바다의 요새'(*, 마오즈 하얌)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바다의 요새'는 내륙에서 보건대, 섬과 같은 두로를 가리킨다. 두로에게 임한 재난은 시돈으로 대표되는 페니키아 땅에 부끄러움을 강요한다. 왜냐하면 한때 지중해를 석권하며 많은 식민지들을 건설할 두로가 이제 재난을 당하여 모든 것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 경: [사23:5]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통도(痛悼)하리로다. 두로의 패망 소식은 애굽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준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곡물 수출업자들인 그들의 몰락으로 애굽의 경제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겠기 때문이요, 둘째는 동방 국가의 서진(西進)을 저지시켜 주는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던 두로의 몰락으로 애굽 역시 동일한 군사적 위험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 경: [사23:6]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너희는 다시스로 건너갈지어다...슬피 부르짖을지어다. 적의 포위 공격을 받는 두로 거민들에게 가능한 한 멀리 다시스로 도피하라는 동정어린 명령이 주어진다. 알렉산더 대왕이 두로를 포위했을 때 이와 유사한 광경이 벌어졌는데, 늙은이, 부녀자, 어린아이 할 것없이 모두 페니키아의 식민지 중의 하나인 카르타고 (Carthage)로 도피하였다고 한다(Diodorus, Curtius, Justin). 그들의 경제력을 두로와의 해상 교역에 거의 의존하다시피 해온 해변 거민들 역시 두로의 몰락으로 자기들에게 미칠 손실을 생각하면서 괴로움에 부르짖는다.
성 경: [사23:7]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이것이 고대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유하던 성이냐 - 두로의 어제와 오늘이 대비된다(14:16, 17;애 2:15 참조). 선지자는 이것을 놀람이 함의된 의문문의 형태로 표현한다. 두로와 관련된 세 가지 요인이 이 놀람을 더욱 증폭시킨다. 첫째, 두로의 유구한 역사이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는 두로의 도성이 약 2,7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둘째, 두로의 활력성이다. 이 활력성은 모험성과 진취성이 충만한 상업적 활동에서 기인된 것이며, 두로의 사치와 교만을 반영해주는 것이다. 셋째, 두로의 끝없는 개척 정신이다. 그들은 넘쳐나는 활력으로 먼 데까지 나아가 시장을 개척하는 한편, 카르타고, 다시스 등과 같은 식민지들을 건설하기에 바빴다(Oswalt).
성 경: [사23:8]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뇨 - 히브리어 원문에 이 물음이 문두에 나온다. 실상 이 물음이 8-14절의 주조를 이룬다. 두로처럼 역사성이 깊고, 활력이 충만하며, 개척 정신이 강한 나라가 몰락한 데는 역사의 우연 이상의 더 큰 무엇이 개입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이에 대해 답변하기 전에, 선지자는 두로의 몰락이 주는 충격을 더하기 위해 과거 두로가 국제 사회에서 점했던 위치를 상기시킨다.
성 경: [사23:9]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세상의 모든 존귀한 자로 멸시를 받게하려 하심이니라 - 직역하면 '땅의 모든 존귀한 자들(*, 콜-니크바데-아레츠)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 레하켈)'이다. 어원적인 면에서 '니크바딤'(*)과 '하켈'(*)은 '무겁다'와 '가볍다'는 대조적인 의미를 갖는다.
성 경: [사23:10]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딸 다시스여...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 두로의 패망은 곧 그 밑에서 속박당해 온 속국들의 해방과 독립의 계기가 된다. 다시스는 그 한 예로서 본문에 언급된다. 구속된 상태에서의 두로와 그 식민지 다시스와의 관계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비유된다. 그러나 해방의 그날, 다시스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 어떤 간섭도 받음이 없이 마치 나일 강이 넘쳐서 제멋대로 흐름과 같이 그렇게 자유를 만끽할 것이다(Delitzsch)
성 경: [사23:11]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 - 두로의 파멸이 전적으로 여호와의 손에 의한 것임을 선지자는 다시 강조하고 있다. 손을 펴시는 여호와의 모습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친숙한 이미지이다(5:25;9:12, 17, 21;10:4;14:26;31:3). 그가 바다에 손을 펼치심으로 바다에 의존하던 열방들 곧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왕을 섬기고 있던 페니키아의 여러 나라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Gray).
성 경: [사23:12]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너 학대받은 처녀 딸 시돈아...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 본문의 전체적인 의미는 6절과 유사하다. 한때 순결한 처녀와도 같이 그 부(富)와 명예를 자랑하던 시돈 곧 페니키아가 능욕당하여 모든 즐거움울 상실한 여인의 모습으로 비유된다. 그에게 깃딤으로 도피하라는 권유가 주어진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지 바라는 안식은 찾지 못할 것이다.
성 경: [사23:13]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황무케 하였느니라 - 두로를 멸망시킬 도구가 제시된다. 그러나 이 도구가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해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뉜다. 두로의 파멸이 앗수르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본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가나안 땅(페니키아)을 보라. 이 나라는 더 이상 존재치 않는다. 앗수르가 그것을 광야로 바꾸어 버렸다. 그들(페니키아인들)은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건설했으나 그(앗수르)가 그것을 황무케 하였다'(Ewald). 그러나 이것은 과도한 본문 수정을 요구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갈대아 사람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다는 견해를 취한다. 이때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갈대아 사람(바벨론)의 땅을 보라. 이 백성(지금 거주하고 있는 바벨론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즉, 원주민이 아니었다). 앗수르가 그것을 광야의 거주자들(전에 유목 생활을 하던 갈대아인들)을 위해 건설하였다. 이 백성(갈대아인)이 망대를 세우고 그녀(두로)의 궁전을 헐었으며 그것을 황무케 하였다'(Alexander, Delitzsch). 언급된 '망대'는 고대 사회에서 포위 공격할 때 사용된 것이다. 후대의 역사가들에 따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이토발 왕 치하의 두로를 13년간이나 포위했으며(요세푸스, [고대사]) 부왕(父王)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고국 바벨론으로 귀환할 때 수 많은 페니키아의 포로들을 끌고 갔다고 한다(Berosus).
성 경: [사23:14]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 1절의 반복이다. 슬피 부르짖는 이유도 앞과 유사하다. 즉, '너희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4절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두로가 견고하 요새(*, 마우즈)로 묘사된다. 수미 쌍관의 형식으로 두로에 대한 비극적인 예언은 종결된다. 이하에서 선지자는 두로의 회복을 노래한다.
성 경: [사23:15]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재건에 대한 예언]
ꃨ 그 날부터 두로가...기생 노래의 뜻 같이 될 것이라 - 본문에서 선지자는 두로를 기생에 비유하니, 이는 물건을 사고 파는 상업 도시의 면모가 노래와 몸을 파는 기생과 비슷한 데가 있기 때문이다(17절). 이 기생은 일정한 기간 동안 손님으로부터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70년이 지난 뒤, 다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언급된 70이란 숫자는, '7(하나님의 사역을 가리키는 수) 10(완전을 가리키는 수)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도대로 일을 성취시켜 나가는 충만한 때를 상징하는 말로 봄이 무난하다(단 9:24). 실제로 70년이란 기간은 바벨론 유수의 시한과 일치한다(대하 36:21;렘 25:12;29:10;단 9:2;슥 1:12).
성 경: [사23:16]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재건에 대한 예언]
ꃨ 잊어버린 바 되었던 기생 너여...다시 기억케 하라 - '기생 노래'의 가사가 일부 소개 된다. 이는 선지자의 예언을 보다 생생하고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노래의 내용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한 기생이 다시금 옛 명성을 되찾고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 기묘한 곡조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이는 항간에 유행하던 소곡에서 따온 표현인 듯하다(Dillmann).
성 경: [사23:17]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재건에 대한 예언]
ꃨ 여호와께서 두로를 권고하시리니 -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두로를 방문하실 것이니'이다. 두로의 멸망이 여호와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면, 그 회복 또한 여호와의 은총으로부터 기인됨을 말하는 것이다.
성 경: [사23:18]
주제1: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두로의 재건에 대한 예언]
ꃨ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 직역하면 '(그녀의) 소득과 (그녀의) 보수가 여호와께 거룩히 여김이 될 것이며'이다. '하나님께 거룩히 여김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뜻이다. 이때 '열방과 음란한 행위를 해서 번 돈이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왜냐하면 율법은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하나님께 가져오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다'(신 23:18)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는 두로에게 적용된 '기생'이라는 말이 상업 활동에 종사하는 두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Oswalt). 상행위 자체는 근본적으로 악하지 않다. 다만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됨'(딤전 6:10)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사24:1]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그 거민을 흩으시리니 - 히브리어 원문대로 읽으면 '보라(*, 힌네) 여호와께서 땅을 쏟아버리시며(* 보케크), 공허하게 하시며, 그 얼굴을 뒤집으시며, 그 거민을 흩어버리실 것이다'이다. '보케크'는 '바카크'(*)동사의 분사형인데, 이처럼 '히네'와 분사가 결함됨으로써 사건의 급박함을 나타낸다(3:;17:1;19:1;30:27). 한편, 여기서 '땅'(*, 하아레츠)은 13-23장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사으로 지정된 열국들을 포함한 온 세상을 가리킨다. 이 땅이 여기서 더러운 그릇으로 비유된다. 그 속에든 내용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릇을 뒤집어 비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죄악으로 가득찬 이 세상도 미래의 어느날 하나님에 의해 깨끗하게 될 날이 반드시 이를 것이다.
성 경: [사24:2]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백성과 제사장이...일반일 것이라 - 우주적 심판에서 제외될 자가 아무도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짝을 이루는 두 부류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불평등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 사회의 불평등은 정치-종교적(백성과 제사장), 신분적(종과 상전, 비자와 가모), 혹은 경제적(사는 자와 파는 자, 채급하는 자와 채용하는 자,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이유 등으로 해서 더욱 심화된다. 그러나 이런한 차별이 없어지고 모든 사람이 완전한 평등 가운데서 마주 설 날이 온다. 그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다. '비자'(*, 쉬프하)와 '가모'(*, 게비라)는 각각 계집종과 여주인을 뜻한다.
성 경: [사24:3]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 - 원문대로 읽으면 "왜냐하면(*, 키) 여호와께서 '이 말씀'(*, 하다바르 하제)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디베르)"이다. 이는 동족 목적어를 취한 강조 구문의 한 예이다. 예언의 확실성의 근거를 여호와의 말씀에서 구하는 선지자의 신앙적 자세가 잘 드러나 있다. 즉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성 경: [사24:4]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땅이...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 '땅'(*, 하아레츠)과 '세계'(*, 테벧)는 동의어이다(13:11;18:3). 1절에서 '더러운 그릇'으로 비유된 '땅'이 여기서 '가뭄으로 인해 시들고 쇠약해진 식물'로 비유된다. 발음의 유사성를 이용한 언어 유희는 계속된다-'(땅이)슬피 울며 시들며(*, 아벧라 나벧라) (세계가) 쇠약하고 시들며(*, 우믈렐라 나벧라).'
성 경: [사24:5]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 땅과 인간의 관계가 고려된다:땅이 심판받은 이유는 그것이 더러워졌기 때문이다(1-4절). 그런데 그 땅을 더럽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인간들-하나님에 의해서 땅의 관리자로서 부름받는(창 2:5-7, 15)-이다. 땅은 그들에 의해 '오염되고 부패하고 더럽게 되었다'(*, 하네파). 땅을 오염시키는 가장 주된 요인은 살인과 피다. 이에 대하여는 26:21;민 35:33;시 106:38 등을 참조하라. 그 밖의 요인들로는 음행(렘 3:1, 2, 9), 우상 숭배(렘 16:18;겔 36:17, 18) 등이 있다(Kissane). '심판'은 인간의 죄로 인해 더렵혀진 땅를 본래대로 정결하게 회복시키는 기능을 한다.
성 경: [사24:6]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 '저주'(*, 알라)는 언약을 파기한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보응이다. 고대 근동의 언약 문서에는 의무 조항과 더불어 그에 따른 축복과 저주가 명기되었다(신 27, 28장 참조, Mendenhall, Covenant Forms in Israelite Tradition).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고 피조물이 고통중에 함께 탄식한다는 사상에 관해서는 창 3:17;롬 8:22 등을 보라.
성 경: [사24:7]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 심판이 갖는 또 다른 국면이 제시된다. 그것은 인간을 즐겁게 만드는 요소들의 제거로 특징지워진다(7-13절). '새 포도즙'은 새로 압착한 포도에서 나온 아직 발효되지 않은 즙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포도나무'와 동의어로 쓰였다. 이것들은 슬퍼하고 쇠잔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뿌리가 말라서 아무것도 산출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Oswalt). 본문의 전체적인 표현은 욜 1:10-12과 거의 유사하다.
성 경: [사24:8]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소고 치는 기쁨이 그치고...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 - 흥겨운 음악과 즐거운 아우성으로 대표되는 축제의 기쁨이 멎고, 대신 무거운 침묵이 자리한다. '소고'(*, 토프)는 작은 북을 가리키며95:12;30:32), '수금'(*, 키노르)은 비파 혹은 하프를 가리킨다(5:12;16;11;23:16;30:32).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는 환락에 겨워 흥청대는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을 나타내는 말이다(22:2;습 2:15).
성 경: [사24:9]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노래하며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쓰게 될 것이며 - 그나마 술이 남아 있더라도 내면의 고통이 극심하여 술맛을 잃어버린다. 기쁨으로 마시는 술은 달콤하나 슬픔으로 마시는 술은 그지없이 쓴 법이다(시 104:15)- '노래도 없이 퍼마시는 술, 그 독한 술맛은 입에 쓰기만 하다'(공동 번역).
성 경: [사24:10]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집마다 닫히었고 들어가는 자가 없으며 - 본문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적의 침탈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빗장를 가로지르고 집을 폐쇠시킨다. (2) 집들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파멸되었다. 문맥상 후자를 취한다. 비슷한 표현이 23:1에 있다.
성 경: [사24:11]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 파멸된 도성의 암울함이 시적으로 묘사된다. 먼저, 거리에서 술을 구하는 부르짖음이 들린다. 이 부르짖음은 이전 시대에 성행했던 향연에 대한 그리움에서(O. Kaiser)혹은 현대의 비참함으로부터 망각의 세계로 도피하고자 하는 욕구에서(Rawlinson) 촉발된 것이다. 그러나 그 풍부하던 포도주를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ꃨ 모든 즐거움이 암흑하여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으며 - 청각적인 부르짖음에 이어 시각적인 색채 묘사가 대비된다. 밝은 태양 같은 기쁨과 즐거움이 스러진 자리에 대신 음울하고 어두운 땅거미가 짙게 깔린다.
성 경: [사24:12]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성문이 파괴되었느리라 - 사람들이 가장 붐비던 자리, 옛날 도성의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던 곳, 그러나 지금은 파괴되어 사람의 발걸음이 끊긴 성문에서 황무한 도성이 남긴 폐허의 잔영을 확인한다.
성 경: [사24:13]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같을 것이니라 - 전술한 예언의 범위가 확정적으로 진술된다. 그것은 '열방 가운데'와 '땅의 한 가운데'는 대등구이다. '이러한 일' 곧 심판 때에 일어날 일이 두 가지로 비교된다. 감람나무 열매를 흔들어 떨어뜨릴 때 그 꼭대기에 몇 개가 붙어 있음같이, 그리고 포도를 수확하고 난 뒤 이삭 줍는 자의 몫으로 얼마가 남겨짐같이, 심판의 날에 세계 민족의 운명이 그러할 것이다(17:5, 6을 보라).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무수히 많던 사람들 가운데 지극히 적은 수만 남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온 인류가 물 속에 잠기고 오직 노아와 그 가족만이 겨우 건짐을 입은 첫 번째 심판은 이 점에서 이후에 올 하나님의 심판의 원형이라할 수 있을 것이다.
성 경: [사24:14]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 직역하면 '그들(*, 헤마)이 소리를 높이며, (그들이) 노래 부를 것이며'이다. '그들'이 강조된다. 여기서 '그들'은 아마도 앞절에 묘사된 심판에서 생존한 극소수의 남은 자들을 가리킬 것이다(Young, Scott, Alexamder).
ꃨ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 찬양의 이유는 '여호와의 위엄'(*, 게온 야훼)때문이다. 전세계적인 심판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위엄이 지상에 밝히 드러나는 그때에 사람들은 '진실로 높은 자가 누구인지'(2:10-19;5:15, 16;13: 11;14:12-17;16:6;23:9)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성 경: [사24:15]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 찬양의 목적이 언급된다. '이름'(*, 쉠)은 하나님의 창조하시며, 섭리하시며, 구원하시며, 통치하시는 사역에서 드러나는 그의 신적인 본성를 가리키는 것이다(30:27).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말일에 온 인류가 유일 무이(唯一無二)한 참종교인 여호와 종교 앞에 부복한다는 사상과 무관하지 않다(2:2-4).
성 경: [사24:16]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궤휼자가...심히 궤휼을 행하도다 - 본문은 모두 '바가드'(*)라는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된 5개의 낱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바가드'는 '불성실하다', '속이다', '악탈하다'는 뜻인데, 속임수를 통해 남을 강탈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최후의 때가 이르기까지 이 땅에는 폭압과 강탈과 살인이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그가 미리 본 광경이었다.
성 경: [사24:17,18]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기 전에 온 땅에 미칠 최후 심판에 대한 묘사가 다시 전개된다.
ꃨ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임하였나니 -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피할 길이 전혀 없음이 연속되는 세 단어에는 강조된다. '두려움'(*, 파하드)과 '함정'(*, 파하트)과 '올무'(*, 파흐)는 야생 동물에 대한 사냥에서 빌어 온 말들이다(Bultema). 사냥꾼은 먼저 동물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갖게 한다. 두려움에 질린 동물은 허겁지겁 달아나다가 사냥꾼이 길목에 설치해 놓은 함정에 빠진다. 운좋게 그것을 피했다 할지라도 이번에는 올무(덫)에 걸린다. 이처럼 땅의 거민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야기된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쓸지라도 그 앞에 함정이 숨어 있으며, 설혹 그것을 피한다 해도 덫에 걸리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이 땅의 거민들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다. 암 5:19에서 이와 유사한 표상을 볼 수 있다.
ꃨ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 -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수 없는 까닭이 명시된다.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라는 표현은 노아의 홍수를 연상시킨다(창 7:11). 그때 온 땅을 절멸시킬 엄청난 양의 물을 방류하기 위해 하늘의 문이 열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여기서 물의 심판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다(창 9:11, 15 참조).
성 경: [사24:19]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땅이 깨어지고...흔들리며 - 지진의 과정이 인상적으로 기술되고 있다. 먼저 땅이 깨어지고 깨어진다(*, 로아). 그 다음에(깨어진) 땅이 갈라지고 갈라진다(*, 포르). 그리고 마지막으로 (갈라진) 땅이 흔들리고 흔들린다(*, 모트). 단어의 중복은 강조적 의미로 해석된다(3절 참조).
성 경: [사24:20]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땅이 취한 자같이 비틀비틀 침망같이 흔들리며 - 지진으로 인해 요동하는 땅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선지자는 그것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28:7;29:9;시 107:27)과 '거센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침망'(1:8)에 비교한다. '침망'(*, 멜루나)은 나무 사이에 달아맨 그물 침대를 말하는데, 그 어원적 의미에서 그것은 본래 임시로 거주하는 장소(원두막)를 뜻하였다(1:8).
성 경: [사24:21]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높은 군대를 벌하시며...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 - 본문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 '높은 군대'와 '땅의 왕들'이 동의어를 이룬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전자를 후자에 대한 비유로서 이해한다(Targum, Luther, Calvin). 그러나 더 많은 학자들은 '높은 군대'와 '땅의 왕들'이 여기서 대조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고 주장한다(Gray, Delitzsch, Oswalt). '높은 군대'는 문자적으로 '높은 곳의 군대'(*, 차바 하마롬)로서, 곧 하늘에 있는 별들(대하 33:4, 느 9:6)과 악한 천사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성 경: [사24:22]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그들이...형벌을 받을 것이라 - 최후 심판 이전의 어떤 과정이 언급된 듯하다. 그것은 3단계로 묘사된다. 이와 유사한 광경에 대하여 벧후 2:4;유 1:6;계 9:2, 11;11:7;17:8;20:1-3 등을 보라.
성 경: [사24:23]
주제1: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
주제2: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ꃨ 그 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니라 - 최종적으로 세말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움이 묘사된다. 그 나라의 중심은 새 예루살렘일 것이며(2:2-40 구속받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장로들이 영광 중에 주를 보필할 것이다(출 24:9-11;계 4:4, 9-11). 그 나라의 영광은 너무나 눈부신 것이어서 심지어 하늘의 해와 달마저도 그 앞에서 빛을 잃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굴 것이다(60:19;욜 3:15;슥 14:7;계 21:23;22:5).
성 경: [사25:1]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주는 기사를...행하셨음이라 - 찬양의 이유가 제시된다. '왜냐하면 당신께서 기이한 일(*, 펠레)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출 15:11;시 40:5;77:11, 14;78:12;88:10, 12;89:5). 이 기이한 일의 시간적 깊이는 영원까지 닿는다. 인간의 사고력이 미치지 못하는 오래 전부터(*, 메라호크) 이 일을 계획 하시고 정하신(22:11;37:26)하나님은 이것을 또한 '성실함과 진실함'(*, 에무나 오멘)으로 이루신다. '에무나'와 '오멘'은 모두 '받들다', '견고하다'는 뜻의 '아만'(*) 동사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이처럼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된 명사들을 병렬시킴으로써 최대한의 강조적 의미를 얻고 있다(3:1;16:6 참조). '성실함과 진실함'은 '완전한 성실'로 번역 가능하다. '기이한 일'의 내용이 다음절에 소개된다.
성 경: [사25:2]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주께서 성읍으로 무더기를 이루시며 - 여기서 '성읍'은 하나님의 도성에 대립하는 지상의 도성을 가리킨다(Oswalt, Delitzsch). 이것들은 모두 멸망당할 운명에 놓여 있다. 외인(*, 자림)은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를 뜻하는 말이다(1:7;29:5;61:5). 심판의 끝에서 열방들은 하나님께 돌아온다.
성 경: [사25:3]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강한 민족이...주를 경외하리이다 - '하니님을 대적하고 그 백성을 억압하던 세상 나라가 심판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위엄을 목도한 후에(24:14) 비로서 하나님께 돌아와 그를 영화롭게 하며 그를 경외하게 될 것이다'는 의미이다. '(그를)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자연 특히 역사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는다는 뜻이며(24:23;26:15), '(그를) 경외한다', '두려워한다'(*, 이르아)는 말은 하나님께 에배드린다는 뜻이다(시 34:11, Gray).
성 경: [사25:4]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빈궁한 자의 보장(保障)이시며...그늘이 되셨사오니 - 하나님은 포악한 나라들에 대한 심판자로서만 아니라 동시에 그들로부터 압제를 당해온 가련한 민중들을 해방시키는 구원자로서 영광을 받으신다. 본문의 초점은 세말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맞춰진다. 선지자는 우선 그 백성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세 가지(보장, 피나처, 그늘)로 형상화 한다. '보장'(*, 마오즈)은 문자적으로는 '힘', '강함'인데, 여기서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강력한 요새의 뜻으로 쓰였다(시 27:1;28:8;29:11;31:2;43:2;46:1;렘 16:19).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은 성경에서 친숙하게 발견되는 표현 중의 하나이다. 특히 찬양 문학에서 현저하다(신 33:27;삼하 22:3;시 9:9;14:6;27:1; 28:8;31:4;37:39;46:1, 7, 11;48:3;62:7, 8;71:7;91:2, 9;94:22;142:5;렘 16:19). 더위를 피하는 '그늘'에 대하여는 4:6;16:3;32:2;시 57:1;91:1 등을 보라. 이어서 구원의 대상이 두 가지로 묘사된다. '빈궁한 자'(*, 달)와 '빈핍한 자'(*, 에브욘)는 가난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후자의 경우 물질적, 경제적 측면이 더 강조되는 반면, 전자의 경우에는 사회적, 계층적 열등성이 더 부각된다(10:2;11:4;14:30;26:6;29:19;41:17;시 72:12-14). 그러나 강조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개념 다 열악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만 의뢰하고자 하는 경건한 자들에 대한 묘사로 사용되고 있다.
성 경: [사25:5]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주께서...포악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 - 마른 땅에 작열하는 폭양 같은 포학자의 압제도 두꺼운 구름으로 그늘을 지어 그 백성을 돌보시는 여호와의 능력 앞에서는 그 위력을 잃는다. 그 결과, 한때의 승리에 도취되어 노래 부르던 적들의 환호가 가라앉을 것이다. 여기서 '노래'(*, 제미르)는 승전(勝戰)의 외침 소리를 뜻하며, '훤화'와 동의어로 쓰였다.
성 경: [사25:6]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 - 콜레스테롤을 걱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지방질이 풍부한 살진 고기는 가장 인기가 있었다(창 45:18;시 36:8;63:5). 특히 화목제의 주요한 제물로 기름이 드려졌다는 것은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출 29:13-22;레 3:3;4:8, 9;8:16;9:19). 이전에 그 백성들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졌던 그것이 이제 하나님의 손에 의해 그 백성들에게 되돌려진다(Oswalt, Lange). 여기서 아름다운 반전(反戰)이 있다. 골수에는 영양분이 아주 많았으므로 사람들을 먹고 남은 뼈다귀를 으깨어 골수를 먹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오래 저장되어 완전히 발효한 포도주도 고급 연회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음식의 하나였다. '기름진 것'(*, 쉐마님)과 '포도주'(*, 쉐마림)는 발음이 유사하다.
성 경: [사25:7]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그 가리워진 면박과... 그 덮인 휘장을 제시하며 - 그날에 하나님과 그 백성을 가로막던 벽이 허물어지고 참된 교제가 실현된다. '면박'(*, 로트)은 얼굴에 덮는 수건이니(고후 3:15). 참된 실상을 보지 못하도록 가리는 영적인 무지를 비유한 것이다(출 34:30 참조). '덮인 휘장'(*, 마세카)도 이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22:8). 그러나 주님이 그 가리운 것을 제시하면 그때 하나님과 사람을 가로막던 모든 장애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마치 얼굴로 대면하여 보는 것처럼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고전 13:12;요일 3:2). 그날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충만하게 될 것이다(Delitzsch, Bultema).
성 경: [사25:8]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 인생을 지배하던 최후의 적인 죽음(고전 15:26)의 정복에 대한 놀라운 기사가 덧붙여진다. 본문을 직역하면, '그가 사망을 꿀꺽 삼켜버릴 것이다(*, 빌라), 영원히'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노래하면서 이 말을 이렇게 인용한다:"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전 15:54). 이와 유사한 사상에 대하여는 65:20;단 12:2;호 13:14 등을 보라.
눈물을 씻기시며...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 죽음이 제거되면 그로부터 연유하는 눈물도, 슬픔도 없게 될 것이다. 여호와는 죽음이라는 근본 원인을 제거하실 뿐 아니라 친히 그 손으로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신다(계 7:17;21:4). '그 백성의 수치'는 기본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관련된 말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의 한 가운데서 홀로 여호와 종교를 갖는다는 것만으로 조소거리가 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 모든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되는 그날에 모든 수치는 녹는 눈처럼 사라질 것이다(롬 11:11, 12, Oswalt).
성 경: [사25:9]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그 날에 말하기를 - 주어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문맥에 비추어 보건대 하나님을 오래 전부터 기다리다가 이제야 그 구원을 맛본 백성들의 노래라고 추론할 수 있다(Gray).
ꃨ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이는 여호와시라 - 원문에는 '보라'(힌네, * )가 삽입되어 있다. 이는 구원받은 백성의 입으로부터 자랑스럽게 발출되는 탄성이다:'보라! 이 분이 우리가 말했던 그분, 곧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으며 마침내 우리를 구원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시 48:14).
ꃨ 우리가 그들 기다렸으니...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도래 할 때 그 약속을 의지하고 기다린 사람들은 기쁨과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기다림'은 평안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성도가 뿌리는 눈물의 씨앗이다(시 123편). 그리고 '구원'은 그의 기다림이 보상받는 수확의 날에 성도가 거두는 기쁨의 단이다(시 126:5,6).
성 경: [사25:10]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 '손'(*, 야드)은 권능을 상징한다. 시온산에 나타나신 여호와의 손은 구속함을 입은 백성들에게는 은혜와 축복의 손이요, 반면에 그 백성들을 조롱하고 멸시한 모압에게는 심판과 복수의 손으로 역사하신다(Delitzsch, Oswalt).
ꃨ 모압이...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 교만한 모압의 몰락이 '지푸라기가 똥더미에 묻히는 모양'으로 비유된다(왕하 9:37;시 83:10;렘 8:2;9:22; 16:4;25:33 참조). '거름물'에 해당하는 '마드메나'(*)는 '거름을 주다'는 뜻의 '다만'(*) 동사에서 파생한 말로, '거름더미', '똥더미'를 뜻한다. 이는 모압 성읍인 '마드멘'(*)에 대한 언어 유희로 의도적으로 채택된 것이다(렘 48:2). 여기서 모압이 왜 구속받은 백성들의 대표적인 원수로 등장하였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는지 않다. 모압이 과거에 이스라엘에 행했던 일들을 보려면 왕하 24:2;겔 25:8-11;습 2:8-10등을 보라.
성 경: [사25:11]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그가...누르실 것이라 - 앞절의 표상이 계속된다. 본문의 요점은 명료하다. 모압이 무슨 일을 하건 그는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그의 교만은 낮추어질 것이다(Gray). 여기서 헤엄치는 이는 모압 자신이며(Gesenius, Hitzing), '그 속'은 모압이 빠진 퇴비더미를 뜻한다(Knobel, Alexander). 하나님께서 낮추시는 모압의 죄악이 두 가지로 언급된다. 그 첫째는 '교만'이며, 그 둘 째는 '그 손의 교활'이다(16:6;렘 48:29).'손의 교활'은 손의 간교한 동작으로 상징되는 속임수, 거짓, 책략 등을 뜻한다(Lange). 참조로 델리취(Delitzsch)는 이 말을 물 속에서 자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팔을 휘젓는 모양으로 해석한다.
성 경: [사25:12]
주제1: [여호와의 능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주제2: [새 왕국을 위한 이스라엘의 찬양]
ꃨ 너의 성벽의 높은 보장을 헐어...진토에 미치게 하시리라 - 여호와께서 모압을 낮추심을 선지자는 다르게 표현한다. 강하고 높은 성벽으로 묘사된 모압의 위세도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시는 날에 '헐리고 땅이 내려지며 심지어 먼지 바닥에 던져진다'(26:5). 즉, 완전하게 파괴될 것이다.
성 경: [사26:1]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 모압으로 전형화된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가 몰락하는 날에 새로운 도성이 창건될 것인데, 여기서는 그 도성의 강함의 원천이 제시된다. 그것은 그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다. 돌과 흙으로 빚은 성벽과 바깥벽만으로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구원이 함께할 때라야 그 도성은 난공 불락(難攻不落)이 된다.
성 경: [사26:2]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너희는 문들을 열고...들어오게 할지어다 - 하나님의 구원에 참예할 수 있는 백성들의 자질이 두 가지로 언급된다. 그것은 의로움(*, 차디크)과 신실함(*, 에무님)이다(1:26). '신을 지킨다'(*, 쇼메르 에무님)는 말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확고하게 유지함을 뜻하는 말이며, '의로운 나라'(*, 고-차디크)는 그로부터 파생되는 고귀한 영적 특성을 가리킨다(신 6:25). 신구약을 막론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의로움은 자기 안에 선함이 없음을 깊이 인식하고 오직 하나님의 구원만을 갈망하는 내적 의존의 태도를 말하니(롬 7:18), 이러한 믿음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도성의 문은 열리는 것이다(32:16, 17;33:15, 16;시 15편;24:3-10;118:19, 20;호 2:18-20;암 5:21-24). 이것은 다음절에서 보다 명확하게 표현된다.
성 경: [사26:3]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심지가 견고한 자(*, 예체르 사무크) - 문자적으로는 '견고한 마음'이니, 하나님만을 굳게 붙잡고 의지하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마음'(*, 예체르)은 사람의 내적 구조, 즉 사상과 의지의 그물로 짜여져 있는 전 태도와 습관을 가리킨다(Delitzsch). '사무크'(*)는 '머물다, 받치다'는 뜻의 '사마크'(*) 동사의 분사형으로서, 어떤 것을 확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시 112:8). 그 맞은편 대극에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태도'(약 1:8)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는 마음'(마 6:24)이 위치한다.
성 경: [사26:4]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완전한 평화가 여호와를 의지함에서 주어지는 것이 확실할진대,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해서 선지자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지하라고 권면한다. '의뢰하라'(*, 비트후)는 말은 '믿다', '확신하다'는 뜻의 '바타'(*) 동사의 명령형이며, 그 분사형(*, 바투아흐)이 앞절에서도 사용되었다. 신약에서와 마찬가지로 선지자 이사야에게 있어서 믿음과 구원의 문제는 긴밀하게 연관된다(12:2).
ꃨ 영원한 반석 - 하나님은 '반석'(*, 추르)으로 즐겨 비유된다(8:14;17:10; 30:29;44:8;신 32:4;삼상 2:2;삼하 22:2, 32;시 19:14;61:2;고전 10:4). '반석'에는 위급할 때 사람들이 도피하는 피난처라는 의미와 흔들림이 없는 굳건한 요새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더나아가 그는 영원한 반석 곧 만세 반석이시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러한 영원성이야말로 참된 신앙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성 경: [사26:5]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높은 데...솟은 성 - '높은 데'(*, 마롬)와 병행하는 '솟은 성'(*, 키르야 니스가바)은 사람들의 접근을 불허하는 난공 불락에 가까운 도성을 뜻한다. 이 도성은 1절의 '하나님의 도성'에 대립하는 지상의 도성인데, 이 둘은 각각 의의 원리와 악의 원리 또는 영원성과 찰라성을 대표한다. 전자의 모델이 예루살렘이라면, 후자의 모델은 아마도 바벨론(혹은 니느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대항해서 스스로 높아진 이 교만한 도성은 심판의 그날에 극적인 반전(反轉)을 경험하게 된다(25:12).
성 경: [사26:6]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걸음이리로다 - 파멸의 무더기를 밟는 '빈궁한 자'(*, 아니)와 '곤핍한 자'(*, 달림)의 발걸음에서 한때 교만했던 높은 성의 몰락이 확인된다(말 4:3). 이전에 불멸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그성은 먼지로 화하였으나, 그로부터 억압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으로 반석을 삼고 그를 의지한 백성들은 살아 남았다.
성 경: [사26:7]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 앞절에 언급된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에서 저들이 밟고 다니는 '길'에 대한 표상으로 자연스레 전환된다. 본문을 직역하면 '의인을 위한 길은 곧다'이다. '길'(*, 오라흐)은 성경에서 인생의 행로를 비유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곧고 평탄한 길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의로운 길이다(욥 8:13;시 1:6;5:8;27:11;119:105;잠 1:19;3:6;4:26;5:6, 21;11:5;15:19). '오라흐'는 본서에서만 여덟 번 나오며(8절;2:3;3:12;26:7, 8;30:11;33:8;40:14;41:3), 다른 예언 자료들에는 나오지 않는다(J.Jensen). 본서의 단일 저작설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이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성 경: [사26:8]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 이는 하나님께서 심판관으로서 속히 임하시기를 고대한다는, 다시 말해서 의로운 심판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히 드러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말이다. '기다림'은 그것이 기다리는 대상에 대한 지극한 열망의 표출이며 동시에 기다리는 자신의 철저한 겸비심(謙卑心)의 고백인 한에서, 그리스도인의 전형적인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25:9;33:2;40:31;49:23;51:5;59:19;60:9;시 25:3;37:9;호 12:6;미 7:7).
성 경: [사26:9]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밤에 내 영혼이...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 1인칭 복수에서 1인칭 단수로의 전환은 시편에서 종종 발견된다(시 44:5, 6). '밤'(*, 라옐라)은 여기서 고난의 때, 묵상하기 좋은 때를 가리킨다고 보기도 하나(Delitzsch, Leupold), '아침'과 대조되는 시간의 의미로 쓰였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즉, 본문은 '밤이나 아침이나 어느 때에나 하나님을 사모합니다'이다(Alexander). 이는 비록 '아침'(*, 보케르)이란 단어가 명시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간절히 구한다'는 뜻의 '솨하르'(*)동사에 '(아침에) 찾는다', '(일찍 일어나) 구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데서 확인된다(Young).
ꃨ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의를 배움이니이다 - 선지자가 그처럼 열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구한 데에는 그 백성들이 압제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악한 자들이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적극적인 이유도 담겨 있다(시 78:34).
성 경: [사26:10]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 여기서 '악인'은 '세계의 거민'(9절)과 동의어이다(시 9:17 참조).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다루실 때 왜 심판의 과정을 취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의 설명은 그가 딛고 선 경험적 현실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왜냐하면 악인들은 좋게 해서는 도무지 의를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 경: [사26:11]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사르리이다 - '쳐진 손'이 무력함을 상징한다면(삼하 4:1;렘 50:43), '높이 들린 손'은 활동 중인 힘을 상징한다(삼하 24:16). 악인들은 주의 높이 들린 손, 즉 임박한 심판이 그들의 머리 위에 준비되어 있음에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한다. 선지자를 답답하게 만드는 것이 이것이었다.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은 하나님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며(9:7;37:32, Delitzsch), '불'은 그의 대적을 소멸하시는 하나님의 엄중한 복수와 진노를 비유한 낱말로서(신 32:22;욥 20:26;22:20) 그의 백성에 대한 '열성'과 병행구를 이룬다(9:7;37:32).
성 경: [사26:12]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이루심이니이다 -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의로운 자들에게 초래될 궁극적인 결과는 포괄적인 안녕과 행복을 함의하는 '평강'(*, 솰롬)이다. 이 평강은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일관된 행동에 전적으로 근거한다(Delitzsch).
성 경: [사26:13]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 이방 나라들의 압제에서 그 백성을 해방시켜 주신 일이 하나님의 일로서 첫 번째로 거론된다. 세상의 주권자들이 이스라엘을 치리하는 동안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신 여호와는 소외된 듯이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주권을 회복하시는 날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백성들의 찬송소리는 다시 울려 퍼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다른 주들'에 관해 사사 시대(Kissane)와 제국 시대(Delitzsch)를 막론하고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억누른 이방 군주들을 가리킨다는 주장(Gray)과, 포로가 되기 전에 저들이 섬긴 우상신들을 가리킨다는 주장(Alexander)이 대립되고 있다. 전자의 견해가 우세하다.
성 경: [사26:14]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그들은 죽었은즉...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 하나님의 일로서 두 번째로 거론된 것은 한때 강력한 나라를 일구었던 세상 군왕들을 하나님께서 징벌하사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의 심연으로 던지신다는 것이다. 본문을 직역하면 '죽은 자들(*, 메팀), 그들은 살지 못하겠고, 망령들(*, 레파임), 그들은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이다. '레파임'에 대해서는 14:9 주석을 참조하라. 14:9-11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죽음이 인간의 헛된 교만을 비웃는 최후의 조롱꾼으로 등장한다.
성 경: [사26:15]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주께서 이 나라를...더 크게 하셨나이다 - 하나님의 일로서 세 번째로 거론된 것은 그가 이 나라를 더 크게 확장시켜 주셨다는 것이다. '나라를 더 크게 함'은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로 인구가 번성하고 그에 따라 국토의 경계가 더욱 확장됨을 뜻한다(9:3;54:2, 3;미 7:11). 한편,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넓은 세력을 형성하였던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회고하는 듯하다(Dillmann, Kissane).
성 경: [사26:16]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백성이 환난 중에...주께 기도하였나이다 - 선지자의 사고(思考)는 다시 현재로 되돌아온다.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를 믿는 신앙이 확실하다 할지라도 일상에서 겪는 경험적 현실 - '환난'과 '징벌'로 표현된 - 앞에서 신자들은 거듭거듭 심각한 무력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폭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기도밖에 없는 것이다(Oswalt).
성 경: [사26:17]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잉태한 여인이...부르짖음같이 - 이스라엘을 가위누르는 현재의 어려움이, 부르짖음으로 극대화된 임산의 고통으로 비유되고 있다(13:8;21:3;42:14;호 13:13;미 4:10).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임산부가 견뎌내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이 고통의 때가 지나면 소망했던 결과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성 경: [사26:18]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낳은 것은 바람 같아서 - 그러나 그 지난(至難)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거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허망함을 선지자는 '바람을 낳음과 같다'고 표현한다(41:29;전 1:14). 아무것도 낳지 못하는 여인의 산고, 그것이 이스라엘의 배반적(背反的)현실이었다.
ꃨ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 - 본문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1)새로 태어나는 생명들을 떨어뜨리지 못하였다(즉, 생산하지 못하였다, Delitzsch). 이는 해산의 고통을 강조한 문맥에 더 적합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 '떨어진다'는 뜻의 '나팔'(*)이 결코 해산의 뜻으로 쓰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따라서 다음 해석을 취한다. (2)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세력들을 떨어뜨리지 못하였다(즉, 패배시키지 못하였다. Gray). 이 경우, 본문은 앞의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와 평행을 이룬다.
성 경: [사26:19]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주의 죽은 자들은...일어나리이다 -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일 수 없으며, 그들의 헛됨이 하나님의 헛됨이 될 수 없다. 인생의 최대 비극인 죽음마저도 정복하시는 생명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신다. 이 믿음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침울한 절망의 애가가 부활의 환호로 돌변한다. 거듭되는 환난과 징벌에 눌려 사망의 그늘 가운데 누워 있던 신실한 신자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부어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은 신실한 성도들이 마지막날 부활의 영광에 그리스도와 더불어 참예할 것이다. 본문은 부활 교리를 가르쳐주는 구약의 몇 안 되는 구절 중의 하나이다(25:8;겔 37:1-14;호 6:2).
ꃨ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내어 놓으리로다 -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이 '이슬'로 비유된다(시 133:3;잠 19:12;호 14:5).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乾期)에 밤에 흡족히 내려 땅을 적시는 이슬은 팔레스틴 땅의 농작을 위하여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창 27:28;삼하 1:21;왕상 17:1;슥 8:12). '빛난 이슬'(탈 오로트, * )은 문자적으로는 '빛의 이슬'(Targum, Vulgate, Ewald, Grotius, Gesenius)이다. '빛'과 '이슬'은 공히 팔레스틴에서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성 경: [사26:20]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내 백성아 갈지어다...잠간 숨을지어다 - 세상을 뒤엎은 대홍수로부터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방주 속에 몸을 숨겼던 것처럼, 또한 애굽 땅을 뒤엎은 죽음의 천사로부터 히브리 백성들이 집으로 들어가 몸을 숨긴 것처럼, 온 땅을 뒤엎게 될 하나님의 분노 앞에서 성도들에게 '밀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잠간 숨으라'는 권면이 주어진다. 밀실에 들어가서 그것도 부족해서 문을 닫고 숨으라는 말은 대환난 날에 성도가 취해야될 몸가짐을 언급하는 듯하다. 즉, 그날에 성도들은 세상과의 분주한 거래를 단절하고 하나님과의 은밀한 기도 시간을 가져야만 된다. 그러나 그 혹심한 심판의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성 경: [사26:21]
주제1: [의인들의 찬송]
주제2: [새 왕국에서의 노래]
ꃨ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 그날에 땅은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즉, 그동안 말없이 들이삼켰던 무죄한 자들의 피를 땅이 일순간에 토해낸다. 땅을 붉게 물들였던 피가 복수를 호소하며 일제히 부르짖는다(창 4:10;37:26;레 17:13;욥 16:18;시9:12;겔 24:7, 8;계 6:10). 뒤따르는 구절은 순교자들의 호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절의 평행으로 이해된다(Gray).
성 경: [사27:1]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날랜 뱀 리워야단 ... 용을 죽이시리라 - 본문에 언급된 대적의 수가 셋이라는 데에 대부분의 학자들이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하여는 각기 의견들이 다르다. 델리취(Delitzsch)는 '날랜 뱀리워야단'은 물살이 급하고 빠른 티그리스 강에 위치한 앗수르를 가리키고,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은 구부러진 곳이 많은 유브라데 강에 위치한 바벨론을 가리키며, '바다에 있는 용'은 애굽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박스(Box)와 체인(Cheyne)은 이들이 각각 바벨론과 바사, 그리고 애굽을 가리킨다고 하고, 라쉬(Rashi)는 앗수르, 애굽, 두로, 그리고 듐(Duhm)은 파르티아, 시리아, 애굽이 지칭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이것은 단일한 대상을 가리키는 삼중 표현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오스발트(Oswalt)는 우가릿 문헌을 근거로 말하기를, 이 같은 수법은 당시 가나안 지방에서 관례화된 시적 묘사일 뿐이라고 하고, 게세니우스(Gesenius)는 언급된 나라가 바벨론이라고 주장한다. 단일 대상설도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나, 여기서는 세 가지 대상설을 취한다. 그러나 이세 가지 대상들을 특정한 세 나라와 연계시키는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에 속한다. 중요한 것은 세 동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원수들이 철저하게 멸망하리라는 것이다. 심판의 그날에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는 혼돈의 세력들은 칼에 삼키움을 당하고 하나님의 주권만이 온 우주에 높이 세워질 것이다. 대적하는 동물 '리워야단'(*, 리우야탄)은 어원학적으로 '뒤틀어진 것, 둘둘 말린 것'을 의미하는데, 대체로 큰 뱀이나 악어(욥 41:1;시 74:14) 또는 바다에 사는 큰 괴물(욥 3:8;시 104:26)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Alexander). 그리고 '바다에 있는 용' 혹은 '괴물'(*, 탄닌)은 애굽에 대한 지배적인 상징어이다(51:9;시 74:13;겔 29:3;32:2). 본문의 지배적인 사상은 24:21-23과 매우 흡사하다.
성 경: [사27:2]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너희는 ... 노래를 부를지어다 - 직역하면 '아름다운 포도원, 그것을 너희는 노래할지어다'로서 노래의 주제(혹은 제목)를 밝히고 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비유한 말이다.
성 경: [사27:3]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 - '나 여호와'(*, 아니 야훼)가 강조되고 있다 : '포도원지기는 다름 아닌 나, 여호와이다...' 포도원을 가꾸며 돌보는 데는 많은 손질과 세심한 관심이 요청된다. 본문에서 포도원지기가 해야만 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 일이 거론된다. 그것은 정기적으로 물을 주는 일(재배)과 밤낮으로 잘 간수하여 상해를 입지 않도록 지키는 일(보호)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정성과 애정에 대하여 시 121:4,5을 보라.
성 경: [사27:4]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 '나의 백성에 대하여 더 이상 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Alexander). 이전에 열매맺지 않는 쓸데 없는 포도원에 대하여 퍼부어졌던 하나님의 진노가 이제는 그 적들로부터 포두언을 보호하는 애정으로 바뀔 것이다.
ꃨ 질려와 형극이 ... 불사르리라 - '질려와 형극'은 교회의 적들에 대한 묘사이다(10:17;삼하 23:6, 7, Delitzsc).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대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적하여 불에 던져 버리신다는 말이다.
성 경: [사27:5]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그리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 - 앞절의 연속이다. 질려와 형극 곧 교회의 대적에게는 양자 택일-하나님께 대적하여 멸절하든가, 아니면 하나님께 항복하고 그와 화평을 누리든가-만이 있을 뿐이다. '힘'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오즈'(*)는 '강하고 견고한 장소', '요새'를 의미하는데(17:9) 여기서는 '피난처'의 의미로 쓰였다. 본문과 바로 앞절에는 복음의 정신이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기술되어 있다. 하나님은 새롭게 회복된 당신의 백성을 향하여 더 이상 분노하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분노를 만족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해주셨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피하는 자는 누구라도(심지어 원수라도) 용서하시며 화평을 누리게 하신다(롬 3:21-26;5:8-11).
성 경: [사27:6]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후일에는 ... 지면에 채우리로다 -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된 소망스런 장래의 전망이 제시된다. 그것은 한 그루 나무로 표상된 야곱의 왕성한 성장이 다섯 단계로 묘사된다 : '뿌리가 박힘-움이 돋음-꽃이 핌-결실함-지면에 가득히 채움'(37:31;호 14:5-7 참조). '야곱'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초괄하는 명칭이며(Leupold, Fischer), '지면에 채운다'는 말은 복음에 의해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온 땅에 충만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이다(2:3;19:24, Calvin).
성 경: [사27:7]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주께서 그 백성을 치셨은들 ... 같았겠느냐 -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징계 가운데서라도 확증된다. 하나님께서는 대적들을 가혹하게 다루셨을지라도 백성들을 위하여는 예외적인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렘 10:24, 25;30:11;46:28). '그 백성을 친자들'(백성을 도륙한 자들)은 앗수르나 바벨론처럼 이스라엘을 침략한 제국 세력을 가리킨다.
성 경: [사27:8]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적당하게 견책하사 -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벌주시되 그들이 견뎌낼 수 있는 한도내에서 알맞게 주신다. 즉, 구각적 존립이 완전히 와해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이스라엘을 먼 나라로 유배시키셨다는 말이다. 주께서 그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심을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동풍에 실려 옮겨가는 모양으로 묘사한다. 한편, 본문에서 배울 수 있는 영적 교훈에 대하여는 고전 10:13을 참조하라.
ꃨ 동풍 부는 날에 ... 옮기셨느니라 - '동풍'은 근동 지방에서 부는 파괴적인 바람으로, 봄.가을 무렵에 곡식밭을 휩쓸고, 나무를 부러뜨리며, 밭에 있는 모든 작물과 나무의 과실들을 남김없이 짓밟아서 막대한 재난을 안겨주는 무서운 폭풍이다(창 41:6;욥 27:21;렘 18:17;겔 27:26;호 13:15, Calvin). 여기서 추론 가능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벌하심이 비록 그 대적에 대한 징벌과 비교할 바 못되고 더욱이 견딜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적당하게 사히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하는 백성의 입장에서 볼때 그것은 극히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2) 그러나 그 형벌이 그처럼 고통스러운 것이라도 그것이 바람이 불고 지나가는 것처럼 일시적인 것을 뿐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인내하는 데 큰 유익이 된다.
성 경: [사27:9]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 이로 인하나니 - 직역하면 '그러므로 이것에 의해서 야곱의 불의가 속죄함을 얻으며 그의 죄악을 없애버린 모든 열매는 이것이니'이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징벌에 의해서 그 백성들의 죄악이 속함을 얻는데, 그 결과는 우상 숭배의 제거로 나타난다'는 것이다(Alexander).
성 경: [사27:10]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견고한 성읍 - 이것이 어느 곳을 가리키느냐에 대해 해석자들의 견해는 대략 세 가지로 나뉜다. (1) 예루살렘 도성를 가리킨다는 주장(Calvin, Delitzsch, Fohrer, Duhm, Fischer, Rudolph, Skinner, Young). (2) 사마리아 성을 가리킨다는 주장(Marti, Clements, Wildberger, Vermeylen, Ploger, Leupold). (3)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는 세상 제국을 가리킨다는 주장(Dillmann, Procksch, Alexander, Feldmann, Gray, Kissane, Kaiser). 이중 마지막 견해를 취한다. 본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이스라엘은 적당하게 견책받고 나아가 행복한 미래를 보장받는 반면, 그 대적들은 완전한 파멸에 처해질 것이다.' 특히 본절은 바벨론과 연관되는 듯하다.
성 경: [사27:11]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이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 파멸의 보다 깊은 원인이 제시된다. 그것은 열방에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 곧 지각이 없기 때문이다(시 9:17). '지각'(*, 비노트)은 '이해', '깨달음'을 뜻하는 '비나'(*)의 복수형으로서, 일종의 강조적 의미를 갖는다(Leupold).
성 경: [사27:12,13]
주제1: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세상 제국의 붕괴는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본문은 12절과 13절을 분리시켜 보느냐 아니면 함께 묶어 보느냐에 따라 두가지로 해석된다. (1) 전자의 경우 : 2번 쓰인 '그날에'가 각각 다른 때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즉 12절의 '그 날'에는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의 영역(유브라데 강에서 애굽 시내)내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별하여 모으시며, 13절의 '그 날'에는, 하나님께서 앞에 말한 그 경계선을 넘어 그 북쪽인 앗수르 땅과 그 남쪽인 애굽 땅에 유폐되고 추방된 백성들을 나팔소리로 소환해 들이신다는 것이다(Delitzsch, Leupold). (2) 후자의 경우 : 2번 쓰인 '그 날에'가 같은 때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12절의 경계(유브라데 강에서 애굽 시내)의 의미가 13절에서 설명되고 있다고 본다. 즉, 앗수르 땅과 애굽 땅에서 백성들이 몰려올 것이다(Alexander, Young). 여기서는 후자를 취한다. 전체적인 사상은 11:10-16과 매우 흡사하다.
ꃨ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 '창일하는 하수'는 유브라데 강을 가리킨다(창 31:21;신 1:7;11:24;수 1:4). '애굽 시내'는 오늘날의 '와디 엘 아리쉬'(Wady el-Arish, 민 34:5;왕상 8:65)를 가리킨다. 유브라데 강에서 애굽 시내에 이르는 지역은 약속의 땅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경계이다(창 15:18;출 23:31;왕상 8:65). 그러나 여기서 그 의미는 다음 절에서 설명되는 바, 곧 귀환하는 백성들이 모여드는 방향을 의미한다 : 그들은 유브라데 강을 건너 포로로 잡혀간 땅 앗수르로부터 그리고 애굽 시내를 건너 쫓겨간 땅 애굽으로부터 모여들 것이다(Young).
ꃨ 큰 나팔을 울려 불리니 - 깃발을 들어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팔을 부는 것도 사람들을 회집케 하는 하나의 방식이다(시 81:3). 신약에서 이는 특히 종말론적인 표상과 결부되어 자주 쓰인다(마 24:31;고전 15:52;살전 4:16, Gray).
ꃨ 파멸케 된 자 - 문자적으로는 '잃어버린 자'(*, 하오베딤)이니, 곧 낯선 땅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을 뜻한다(신 26:5). 동사 '아바드'(*)는 주인의 품을 떠나서 제멋대로 유리 방황하는 양들을 묘사할 때 주로 쓰인다(시 119:176;렘 23:1;50:6).
ꃨ 쫓겨난 자 - 문자적으로는 '추방된 자'(*, 하니다힘)이니, 애굽 땅으로 비겁하게 도망친 자들을 가리킨다. 고국 이스라엘을 떠나 앗수르 땅과 애굽땅에서 서러운 세월을 보내고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세말 구원의 날에 약속의 땅으로 불러들이실 것이다. 그날에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새로운 이스라엘의 구심점이 될 것이며, 백성들은 거룩한 산 시온에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릴 것이다(2:2-4;11:10-16;24:23;25:6 참조).
성 경: [사28:1]
ꃨ 취한 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여 ... 화 있을진저 - '에브라임'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열지파를 가리키며, '에브라임의 취한 자'는 그 방탕한 백성들을, 그리고 '교만한 면류관'은 사마리아 도성을 가리킨다. 사마리아 도성을 '교만한 면류관'이라 부름이 그 위치한 지리적 환경에서 연유한 듯하다(Alexander). 아합 왕의 부친 오므리가 세운 사마리아 도성은 비옥한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머리 부분에 자리 하였다(4절;왕상16:24;암 4:1;6:1). 몇몇 학자들은 잔치 때에 술 취한 자들에게 면류관을 씌워주는 고대의 풍습이 여기에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Lowth, Gesenius, Ewald). 하여튼 이들은 풍부한 물질적 여건을 믿고 지나치게 교만하여, 선지자가 '포도주에 절었다'과 할 만큼, 술과 방탕에 깊이 탐닉하였다.
성 경: [사28:2,3]
ꃨ 주께 있는 강하고 힘있는 자 - '주께 있다'(*, 라아도나)는 말은 '주께서 보유(예비)하고 계시다'는 뜻이다(Hendwerk, Ewald, Knibel). 여기서 '강하고 힘있는 자'는 앗수르를 가리킨다(왕하 17:3-6 참조). 앗수르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진노의 도구요 형벌의 매개체이다(10:4 참조).
ꃨ 손으로 그 면류관을 따에 던지리니 ... 밭에 밟힐 것이라 - 일반적으로 '야드'는 능력이나 힘을 상징한다. 그러나 여기서 이것은 '발'에 대응하는 의미로 쓰였다. 즉, '손으로 던지고(그것을) 발로 밟는다'(Alexander).
성 경: [사28:4]
ꃨ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 먹으리로다 - '시들은 꽃'으로 비유된 사마리아의 운명이 다시 '처음 익음 무화과'에 비유된다. 이러한 비유에서 사마리라에 대한 적들의 탐욕스러움과 그로 말미암은 파멸의 완전함이 암시되고 있다. 팔레스틴 땅에서 무화과나무가 대개 8-10월 사이에 추수됨을 고려할 때, 본문에 언급된 무화과 열매는 여름이 되기 전인 6월쯤에 숙성되어 나온 것인 듯하다. 이것은 대단히 희귀하고 맛이 있어서 나오자마자 소비되었다(렘 24:2;호 9:10;미 7:1;나 3:12). 본문의 의미는 사마리아 도성이 적들에 의해 게걸스럽고도 신속하게 삼켜질 것이라는 것이다. 과연 선지자의 예언처럼, 사마리아의 비옥함과 아름다움은 앗수르의 식욕을 돋구는 자극제가 되어서 포위 3년 만에 붕괴되고 말았던 것이다(왕하 18:9, 10).
성 경: [사28:5]
ꃨ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 화관이 되실 것이라 - 두 면류관이 대조된다. 에브라임이 적에게 삼킴을 당하는 그날에, 교만한 면류관(사마리아 도성)은 스러지고, 대신 영화로운 면류관(하나님 자신)이 햇빛처럼 솟아난다. 그러나 모두가 그 따스함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선지자는 그것을 '남은 백성'에게 제한시킨다. '남은 자' 개념은 본서에 현저한 주요 사상들 중의 하나이다(4:2;10:20-22;11:11, 16;14:22;15:9;16:14;17:3;21:17;37:31, 32;46:3). 이 '남은 자들'에 대해 학자들간에 이견이 분분하다. '도성의 파멸에서 살아 남은 열 지파의 생존자'(Jarchi), '멸망에서 구별된 유다와 생존한 에브라임의 일부'(Delitzsch), 멸망한 열 지파와 비교할 때 '남은 자로서의 두 지파, 왕국 즉 유다'(Kimchi, Alexander). 여기서는 맨 나중의 견해를 취하고자 한다.
성 경: [사28:6]
ꃨ 판결하는 신이 되시며 ... 힘이 되시리로다 마는 - 재판으로 대표되는 내치(內治)에는 '모략'이 필요하며, 대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방비하는 외치(外治)에는 '힘'이 필요하다. 이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심으로써 참된 왕으로서 평화를 누리게 하시며 왕국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시는 것이다(사 11:1-9).
성 경: [사28:7]
ꃨ 이 유다 사람들도 -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들 또한'( - 감-엘레)으로 되어 있다. '이들'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에브라임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는 주장(Oswalt, J. Watts). (2) 초점이 에브라임에서 유다로 넘어가고 있다는 주장(Alexander, Delitzsch, Lange).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2)를 채택한다. 이 경우, 해석은 '에브라임뿐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하신 자비에 의해서 열 지파와 구별된 유다에도 그와 똑같은 술취함과 방탕의 죄가 만연되어 있다'가 된다. 이와 관련해서 선지자는 특별히 지도적인 두 계층, 제사장과 선지자를 거론한다.
ꃨ 옆걸음 치며 ... 비틀거리며 ... 옆걸음 치며 ... 실수하나니 - 술에 취해 제 몸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이 비슷한 음의 반복과 함께 입체적으로 전달된다 : '...솨구(*) ... 타우(*) ... 솨구 ... 타우 ... 솨구 ... 파쿠(*).
성 경: [사28:8]
ꃨ 모든 상에는 ... 깨끗한 곳이 없도다 - 술취한 광경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들은 술에 절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옆으로 게걸음질할 뿐 아니라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입으로 토하기까지 한다.
성 경: [사28:9]
ꃨ 그들이 이르기를 ...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 선지자의 꾸지람에 대한 술취한 자들의 반응이 기술된다. 그들은 선지자를 조롱하며 비웃는다 : '당신이 감히 누구를 가르치려드는가? 우리가 누구인지나 아는가? 당신이 우리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를 가르칠 생각일랑 품지 말고 차라리 갓난 아이한테나 가서 떠벌려 보아라'(Jerome, Lowth).
성 경: [사28:10]
ꃨ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 본문의 의미에 대해 학자들간에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견해들은 다음과 같다. (1) 조롱할 때 쓰는 무의미한 말들(Cheyne, Duhm). (2) 갓난 아이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칠때 쓰는 유치한 말들(Marti, Lindblom). (3) 술에 취해 주정 부리는 소리(Driver). (4) '키'(*, 토하다)와 '추아(*, 배설물)를 익살스럽게 표현한 말(Skinner, Michaelis). (5) 알파벳을 가르칠 때 쓰는 항목의 일부분(히브리어에서 '차데'(*) 다음에 '코프'(*)가 온다. Houbigant, Procksch, Forher, W.Hallo). 이들 제 견해는 모두 선지자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뜻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고 있다.
성 경: [사28:11]
ꃨ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 - 이는 압제자의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다(신 28:49;렘 5:15). 앗수르어는 히브리어와 같은 셈조 계통의 언어이지만, 그 어휘와 문법 체계가 크게 달라서 유대인에게는 그것이 다른 지방의 방언처럼 들린다. 본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즉, 그들이 여호와의 교훈을 더듬거리는 말투로 조롱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도 더듬거리는 듯한 이방인들(앗수르인들)의 언어로 그들을 조롱하실 것이다.
성 경: [사28:12]
ꃨ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 참된 안식의 길이 이미 그들에게 지시되었다. 그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준행하고 그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다(신 28:1-14). 만약 저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만 한다면 약속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듣지 아니하였다(Alexander).
성 경: [사28:13]
ꃨ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 잡히게 하시리라 - 선지자를 통해 주어지는 부드러운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조소했으므로, 저들은 경험이라는 한층 더 무서운 교사로부터 그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아니된다(Oswalt). '경계에 경계를 ... 저기서도 조금'은 10절의 반복이며, 그 의미는 동일하다. 다만 이전에 저들이 역겨운 소리라고 비난했던 그 소리를 이제는 앗수르인의 생소한 입술을 통해서 듣게 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G.Rawlinson).
성 경: [사28:14]
ꃨ 너희 경만(輕慢)한 자여 - 이는 문자적으로 '비웃음의 사람들'(*, 안쉐 라촌)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치없는 것으로 조롱하는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9,10절). 이들은 스스로 진리의 길에서 이탈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도 이탈시키기를 즐겨 한다. 이런 사람들이 권위있는 자리에 오르게 되면, 그로 말미암은 폐해를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성 경: [사28:15]
ꃨ 우리는 ... 숨겼음이라 - 사망과 언약하였으므로 어떤 재난으로부터도 안저하다는 저들의 자기 확신은 어디에 기초하는 것인가? 그것은 애굽과의 동맹이다. 애굽으로 피난처를 삼고 그곳에 숨는 한, 앗수라의 위협도 무서워할 게 없다고 저들은 자만하였다. 그러나 선지자가 보기에 그것은 착각이었고 오산이었다. 애굽은 결코 그들을 도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사 30:1-7;36:6-9).
성 경: [사28:16]
ꃨ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 경만한 유다 지도자들의 말(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대조되어 나온다. 여기에 두 그림이 있다. 하나는 거짓과 허위로 기초를 삼은 건물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다 시온의 돌로 기초를 삼은 건물 그림이다. 전자는 홍수와 채찍이 어우러진 혹독한 재앙이 닥쳐올 때 흔적 조차 없이 소멸되어 버린다. 그러나 후자는 전혀 요동하지 않으며 견고함을 잃지 않는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마 7:24-27 참조). 이 견고성은 그 건물을 뒷받침하고 있는 시온의 모퉁잇돌에 힘입은 바 크다. 이 돌은 '시험한 돌' 곧 모든 시험을 다 거친 돌,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돌이다. 이 돌로써 건물의 기초를 삼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 돌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에 대해 다양한 대답들이 제시되었다 : 율법(Eichhorn, Umbreit), 상전(Ewald), 하나님의 말씀(Schegg),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위(Feldmann),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Duhm, Sknner), 다윗 왕국(Delitzsch), 히스기야(Gesenius, Maurer), 참된 신자들(Eichrodt), 시온(Chids, Hktzig, Knobel), 남은 자(Donner), 하나님의 약속(Konig), 신앙 그 자체(Kaiser, Marti, Forher), 하나님 자신(Cheyne), 예루살렘은 불가침이라는 하나님의 확신(G. Smith), 메시야의 구원(von Orelli) 등등. 이중 어느 하나를 확정하는 것은 힘들다. 다만 신약의 빛에 비추어 판단하건대, 이것이 메시야를 미리 가리킨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마 21:42;행 4:11;롬 9:33:엡 2:20;벧전 2:6).
성 경: [사28:17]
ꃨ 나는 공평으로 ... 넘칠 것인즉 - 시온의 모퉁잇돌로 기초를 삼고 '공평'과 '의'로 측량되어진 건물만이 영구한 견고성을 부여받는 반면, '거짓'과 '허위'에 기초한 다른 모든 건물들은 철저하게 붕괴되고 말 것이다. '우박'과 '물'은 하나님의 심판을 비유한 말이다(2절). '피난처'와 '숨는 곳'은 예루살렘의 경만한 자들이 자랑하던 것을 가리킨다(15절, Alexander).
성 경: [사28:18]
ꃨ 너희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 때, 즉 앗수르 군대가 나라를 유린할 때, 그들이 그토록 의지하였던 사망(=음부)과의 언약도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15절). 애굽은 유다를 구하지 못할 것이며, 그날에 유다 백성들은 속수 무책으로 밟힘을 당할 것이다(10:6).
성 경: [사28:19]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그 전하는 도를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 - 크게 두 가지 해석이 대립된다. (1) 새로운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만으로도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Lowth, Leupold). (2) 오직 두려움만이 그들로 하여금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서 전해진 하나님의 교훈을 깨닫게 할 것이다(Calvin, Alexander). 여기서는 후자를 취한다. 왜냐하면 '전해진 것'이라고 번역된 '쉐무아'(*)가 여기에서와 같이 9절에서도 동일한 명사와 결합되어 쓰였기 때문이다.
성 경: [사28:1]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취한 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여 ... 화 있을진저 - '에브라임'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열지파를 가리키며, '에브라임의 취한 자'는 그 방탕한 백성들을, 그리고 '교만한 면류관'은 사마리아 도성을 가리킨다. 사마리아 도성을 '교만한 면류관'이라 부름이 그 위치한 지리적 환경에서 연유한 듯하다(Alexander). 아합 왕의 부친 오므리가 세운 사마리아 도성은 비옥한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머리 부분에 자리 하였다(4절;왕상16:24;암 4:1;6:1). 몇몇 학자들은 잔치 때에 술 취한 자들에게 면류관을 씌워주는 고대의 풍습이 여기에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Lowth, Gesenius, Ewald). 하여튼 이들은 풍부한 물질적 여건을 믿고 지나치게 교만하여, 선지자가 '포도주에 절었다'과 할 만큼, 술과 방탕에 깊이 탐닉하였다.
성 경: [사28:2,3]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주께 있는 강하고 힘있는 자 - '주께 있다'(*, 라아도나)는 말은 '주께서 보유(예비)하고 계시다'는 뜻이다(Hendwerk, Ewald, Knibel). 여기서 '강하고 힘있는 자'는 앗수르를 가리킨다(왕하 17:3-6 참조). 앗수르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진노의 도구요 형벌의 매개체이다(10:4 참조).
ꃨ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 ... 밭에 밟힐 것이라 - 일반적으로 '야드'는 능력이나 힘을 상징한다. 그러나 여기서 이것은 '발'에 대응하는 의미로 쓰였다. 즉, '손으로 던지고(그것을) 발로 밟는다'(Alexander).
성 경: [사28:4]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 먹으리로다 - '시들은 꽃'으로 비유된 사마리아의 운명이 다시 '처음 익음 무화과'에 비유된다. 이러한 비유에서 사마리아에 대한 적들의 탐욕스러움과 그로 말미암은 파멸의 완전함이 암시되고 있다. 팔레스틴 땅에서 무화과나무가 대개 8-10월 사이에 추수됨을 고려할 때, 본문에 언급된 무화과 열매는 여름이 되기 전인 6월쯤에 숙성되어 나온 것인 듯하다. 이것은 대단히 희귀하고 맛이 있어서 나오자마자 소비되었다(렘 24:2;호 9:10;미 7:1;나 3:12). 본문의 의미는 사마리아 도성이 적들에 의해 게걸스럽고도 신속하게 삼켜질 것이라는 것이다. 과연 선지자의 예언처럼, 사마리아의 비옥함과 아름다움은 앗수르의 식욕을 돋구는 자극제가 되어서 포위 3년 만에 붕괴되고 말았던 것이다(왕하 18:9, 10).
성 경: [사28:5]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 화관이 되실 것이라 - 두 면류관이 대조된다. 에브라임이 적에게 삼킴을 당하는 그날에, 교만한 면류관(사마리아 도성)은 스러지고, 대신 영화로운 면류관(하나님 자신)이 햇빛처럼 솟아난다. 그러나 모두가 그 따스함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선지자는 그것을 '남은 백성'에게 제한시킨다. '남은 자' 개념은 본서에 현저한 주요 사상들 중의 하나이다(4:2;10:20-22;11:11, 16;14:22;15:9;16:14;17:3;21:17;37:31, 32;46:3). 이 '남은 자들'에 대해 학자들간에 이견이 분분하다-'도성의 파멸에서 살아 남은 열 지파의 생존자'(Jarchi), '멸망에서 구별된 유다와 생존한 에브라임의 일부'(Delitzsch), 멸망한 열 지파와 비교할 때 '남은 자로서의 두 지파, 왕국 즉 유다'(Kimchi, Alexander). 여기서는 맨 나중의 견해를 취하고자 한다.
성 경: [사28:6]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판결하는 신이 되시며 ... 힘이 되시리로다 마는 - 재판으로 대표되는 내치(內治)에는 '모략'이 필요하며, 대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방비하는 외치(外治)에는 '힘'이 필요하다. 이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심으로써 참된 왕으로서 평화를 누리게 하시며 왕국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시는 것이다(사 11:1-9).
성 경: [사28:7]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이 유다 사람들도 -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들 또한'(*, - 감-엘레)으로 되어 있다. '이들'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에브라임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는 주장(Oswalt, J. Watts). (2) 초점이 에브라임에서 유다로 넘어가고 있다는 주장(Alexander, Delitzsch, Lange).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2)를 채택한다. 이 경우, 해석은 '에브라임뿐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하신 자비에 의해서 열 지파와 구별된 유다에도 그와 똑같은 술취함과 방탕의 죄가 만연되어 있다'가 된다. 이와 관련해서 선지자는 특별히 지도적인 두 계층, 제사장과 선지자를 거론한다.
ꃨ 옆걸음 치며 ... 비틀거리며 ... 옆걸음 치며 ... 실수하나니 - 술에 취해 제 몸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이 비슷한 음의 반복과 함께 입체적으로 전달된다 : '...솨구(*) ... 타우(*) ... 솨구 ... 타우 ... 솨구 ... 파쿠(*).
성 경: [사28:8]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모든 상에는 ... 깨끗한 곳이 없도다 - 술취한 광경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들은 술에 절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옆으로 게걸음질할 뿐 아니라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입으로 토하기까지 한다.
성 경: [사28:9]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그들이 이르기를 ...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 선지자의 꾸지람에 대한 술취한 자들의 반응이 기술된다. 그들은 선지자를 조롱하며 비웃는다 : '당신이 감히 누구를 가르치려드는가? 우리가 누구인지나 아는가? 당신이 우리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를 가르칠 생각일랑 품지 말고 차라리 갓난 아이한테나 가서 떠벌려 보아라'(Jerome, Lowth).
성 경: [사28:10]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 본문의 의미에 대해 학자들간에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견해들은 다음과 같다. (1) 조롱할 때 쓰는 무의미한 말들(Cheyne, Duhm). (2) 갓난 아이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칠때 쓰는 유치한 말들(Marti, Lindblom). (3) 술에 취해 주정 부리는 소리(Driver). (4) '키'(*, 토하다)와 '추아(*, 배설물)를 익살스럽게 표현한 말(Skinner, Michaelis). (5) 알파벱을 가르칠 때 쓰는 항목의 일부분(히브리어에서 '차데'(*) 다음에 '코프'(*)가 온다. Houbigant, Procksch, Forher, W.Hallo). 이들 제 견해는 모두 선지자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뜻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고 있다.
성 경: [사28:11]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 - 이는 압제자의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다(신 28:49;렘 5:15). 앗수르어는 히브리어와 같은 셈조 계통의 언어이지만, 그 어휘와 문법 체계가 크게 달라서 유대인에게는 그것이 다른 지방의 방언처럼 들린다. 본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즉, 그들이 여호와의 교훈을 더듬거리는 말투로 조롱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도 더듬거리는 듯한 이방인들(앗수르인들)의 언어로 그들을 조롱하실 것이다.
성 경: [사28:12]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 참된 안식의 길이 이미 그들에게 지시되었다. 그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준행하고 그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다(신 28:1-14). 만약 저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만 한다면 약속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듣지 아니하였다(Alexander).
성 경: [사28:13]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
ꃨ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 잡히게 하시리라 - 선지자를 통해 주어지는 부드러운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조소했으므로, 저들은 경험이라는 한층 더 무서운 교사로부터 그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아니된다(Oswalt). '경계에 경계를 ... 저기서도 조금'은 10절의 반복이며, 그 의미는 동일하다. 다만 이전에 저들이 역겨운 소리라고 비난했던 그 소리를 이제는 앗수르인의 생소한 입술을 통해서 듣게 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G.Rawlinson).
성 경: [사28:14]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너희 경만(輕慢)한 자여 - 이는 문자적으로 '비웃음의 사람들'(*,안쉐 라촌)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치없는 것으로 조롱하는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9,10절). 이들은 스스로 진리의 길에서 이탈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도 이탈시키기를 즐겨한다. 이런 사람들이 권위있는 자리에 오르게 되면, 그로 말미암은 폐해를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성 경: [사28:15]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우리는 ... 숨겼음이라 - 사망과 언약하였으므로 어떤 재난으로부터도 안저하다는 저들의 자기 확신은 어디에 기초하는 것인가? 그것은 애굽과의 동맹이다. 애굽으로 피난처를 삼고 그곳에 숨는 한, 앗수라의 위협도 무서워할 게 없다고 저들은 자만하였다. 그러나 선지자가 보기에 그것은 착각이었고 오산이었다. 애굽은 결코 그들을 도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사 30:1-7; 36:6-9).
성 경: [사28:16]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 경만한 유다 지도자들의 말(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대조되어 나온다. 여기에 두 그림이 있다. 하나는 거짓과 허위로 기초를 삼은 건물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시온의 돌로 기초를 삼은 건물 그림이다. 전자는 홍수와 채찍이 어우러진 혹독한 재앙이 닥쳐올 때 흔적 조차 없이 소멸되어 버린다. 그러나 후자는 전혀 요동하지 않으며 견고함을 잃지 않는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마 7:24-27 참조). 이 견고성은 그 건물을 뒷받침하고 있는 시온의 모퉁잇돌에 힘입은 바 크다. 이 돌은 '시험한 돌' 곧 모든 시험을 다 거친 돌,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돌이다. 이 돌로써 건물의 기초를 삼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 돌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에 대해 다양한 대답들이 제시되었다 : 율법(Eichhorn, Umbreit), 상전(Ewald), 하나님의 말씀(Schegg),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위(Feldmann),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Duhm, Sknner), 다윗 왕국(Delitzsch), 히스기야(Gesenius, Maurer), 참된 신자들(Eichrodt), 시온(Chids, Hktzig, Knobel), 남은 자(Donner), 하나님의 약속(Konig), 신앙 그 자체(Kaiser, Marti, Forher), 하나님 자신(Cheyne), 예루살렘은 불가침이라는 하나님의 확신(G. Smith), 메시야의 구원(von Orelli) 등등. 이중 어느 하나를 확정하는 것은 힘들다. 다만 신약의 빛에 비추어 판단하건대, 이것이 메시야를 미리 가리킨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마 21:42;행 4:11;롬 9:33:엡 2:20;벧전 2:6).
성 경: [사28:17]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나는 공평으로 ... 넘칠 것인즉 - 시온의 모퉁잇돌로 기초를 삼고 '공평'과 '의'로 측량되어진 건물만이 영구한 견고성을 부여받는 반면, '거짓'과 '허위'에 기초한 다른 모든 건물들은 철저하게 붕괴되고 말 것이다. '우박'과 '물'은 하나님의 심판을 비유한 말이다(2절). '피난처'와 '숨는 곳'은 예루살렘의 경만한 자들이 자랑하던 것을 가리킨다(15절, Alexander).
성 경: [사28:18]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너희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 때, 즉 앗수르 군대가 나라를 유린할 때, 그들이 그토록 의지하였던 사망(=음부)과의 언약도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15절). 애굽은 유다를 구하지 못할 것이며, 그날에 유다 백성들은 속수 무책으로 밟힘을 당할 것이다(10:6).
성 경: [사28:20]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침상이 짧아서 ...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 유다 백성들이 처한 곤고한 상황이 속담투의 말로 기술된다. 그들은 눕기 위해서 침상을 조달했으나 너무 짧아서 적당치 못하며, 또 덮기 위해서 이불을 재단했으나 너무 좁아서 불충분하다. 이 비유의 초점은 그들의 측정이 그릇되어서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애굽과의 동맹으로 앗수르의 공격을 막아보려는 그들의 인식과 계산이 잘못되었음을 꼬집은 말이다.
성 경: [사28:21]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여호와께서 브라심산에서와 같이 ...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 선지자는 이 모든 일이 여호와의 행사임을 환기시킨다. 즉 하나님께서 전쟁을 지휘하시는 한, 그들의 도모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싸움은 그 옛날, 다윗 왕때 있었던 브라심 산 전투(삼하 5:18-20;대상 14:9-11)와, 여호수아 때 있었던 기브온 골짜기 전투(수 10:10,11)에 비견된다. 다만 그때와 지금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하나님의 원수가 바뀌었다는 것이다(시 139:19-24). 그때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우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오히려 이스라엘을 대적해서 싸우실 것이다.
성 경: [사28:22]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 치리자에 대한 경고]
ꃨ 그러므로 너희는 경만한 자가 되지 말라 ... 우심(尤甚)할까 하노라 - 결론적으로 선지자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이상 비웃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 말을 듣지 않으면 그들을 압박하고 있는 결박 상태가 가중될 것이다. 마치 덫에 걸린 동물이 빠져 나오려고 온몸을 뒤틀면 뒤틀수록 더욱더 단단히 조여드는 것처럼, 그들이 이 경고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손에서 빠져 나가려고 한다면 그럴수록 더욱 큰 재난을 맞게 될 것이다(Calvin).
성 경: [사28:23]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비유]
ꃨ 너희는 ...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 특별한 관심과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로서, 지혜 문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전형적인 연설 형태이다(시 49:1;78:1).
성 경: [사28:24]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비유]
ꃨ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 고르게만 하겠느냐 - 대답은 자명하다. 즉, 농부는 밭을 기경할 때 무한정 땅을 갈아 엎고 써레질만 하지는 않는다. 밭가는 모습에 대하여는 왕상 19:19을 참조하라.
성 경: [사28:25]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비유]
ꃨ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 심지않겠느냐 - 일단 땅을 갈아 고르게 한 뒤에 농부는 파종을 한다. 이때에도 농부는 아무렇게나 하지 않으며 종자의 크기와 특성, 종류에 따라 사려 깊게 행동한다(레 19:19). '소회향'(*, 가 검고 꽃이 푸르며 향기가 나는 미나리과 제비속의 식물의 일종)과 '대회향'(*, 향로로 사용되면 회향풀과 비슷한 미나리과 식물) 같은 종자가 작은 것들은 지면에 뿌리면 되었다. 반면에 이보다 종자가 큰 소맥과 대맥은 줄을 지어 심거나 혹은 구획을 나눠 심었다. 마지막으로 밀의 일종인 '귀리'는 가장자리에 심었는데, 이는 지나다니는 사람들로부터 곡식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성 경: [사28:26]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비유]
ꃨ 적당한 방법으로 보이사 - 직역하면 '올바른 원리를 따라'(*, 라미쉬파트)이다. 이에서 보다시피, '미쉬파트'(*, 공평)는 단순한 법적 정의를 넘어 물질적, 정신적인 영역에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속함을 알 수 있다(Oswalit).
성 경: [사28:27,28]
주제1: [전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주제2: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비유]
ꃨ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 타작할 때 보다 가벼운 농작물은 알갱이가 깨어지지 않도록 막대기로 두들겨 탈곡한다. 반면에 보다 단단한 곡식은 수레바퀴와 말발굽을 이용해 타작한다(41:15;신 25:4;미 4:12). 즉, 농사를 지어본 자라면 각 곡식에 따른 적절한 타작법 정도는 이미 지각하고 있다는 말이다(Leupold).
성 경: [사29:1]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유다의 위기와 하나님의 구원]
ꃨ 슬프다 아리엘이여 - 첫 번째 '화 있을진저'가 '교만한 면류관'(28:1)으로 시작했던 것처럼, 본장의 예언도 그 형식상의 유비(類比)에 의해 '아리엘'이라는 다소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이름으로 시작한다. 이 '아리엘'이 '다윗의 진친 성읍' 혹은 '절기가 돌아오려니와'란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유다의 성도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단어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학자들간에 의견의 차이를 보인다. 대표적인 두 가지 견해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그것은 '하나님의 사자'를 가리킨다(Gesenius, Delitzsch, Ewald). 이는 유다를 '사자'라 호칭한 것(창 49:9)과 왕의 보좌에 사자의 형상이 새겨진 것(왕상 10:19,20), 그리고 동물의 왕 사자처럼 예루살렘이 결코 정복되지 않는 강력함을 지닌 성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에서 그 근거를 취한다. 그러나 이는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다. (2) 그것은 '하나님의 번제단'을 가리킨다(겔 43:15,16, Alexander). 이는 '절기'(1절)란 낱말과 2절 후반부의 의미와 잘 어울리므로 많은 학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ꃨ 연부년(年復年)절기가 돌아오려니와 - 더 나아가 다윗이 신성한 법궤를 이곳으로 옮긴 날로부터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적인 예배 처소가 되었다(삼하 6:12-19). '연부년'은 '해마다'라는 뜻인데, 이곳에서 신성한 절기들이 자연의 순환 사이클처럼 아무 뜻도 없이 형식적이며 주기적으로 반복됨을 꼬집은 말이다.
성 경: [사29:2]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유다의 위기와 하나님의 구원]
ꃨ 네가 ...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 '희생 제물을 드리며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자랑을 삼는 네가 바로 아리엘과 같이 될 것이다.' 즉, 희생 제사의 피로 둘려있고 그 위에 놓인 모든 것을 불로 태우는 그러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이 장차 변할 것이다(Oswalt). 임박한 재앙이 예루살렘에 몰고 올 고통은 '슬픔과 애통'(*, 타아니야 와아니야)이다. 이 두 낱말은 모두 '신음하다', '괴로워하다'는 뜻의 '아나'동사에서 파생한 방계 명사들이다(애 2:5).
성 경: [사29:3]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유다의 위기와 하나님의 구원]
ꃨ 내가 ... 너를 치리니 - 한때 다윗이 진을 쳤던 그 도성(1절)을 이제 여호와께서 공격하기 위해 진을 치신다. 이 공격은 앗수르인들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내가'라는 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 속하는 것이다. 고대의 전쟁에 대하여는 신 20:20;왕하 25:1-4;겔 4:2;21:22 등을 참조하라.
성 경: [사29:4]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유다의 위기와 하나님의 구원]
ꃨ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 앞에서 언급된 장기간의 포위의 결과로 그들이 극도로 쇠약해질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선지자는 이것을 '땅에서 말하는 소리'와 '티끌에서 나는 소리'로 표현한다. 언급된 '땅'(*, 에레츠)과 '티끌'(*, 아파르)은 더 이상 낮아질 데가 없는 수치의 극한 혹은 주검의 세계(N.J.Tromp, J.Watts)를 가리킨다.
성 경: [사29:5]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유다의 위기와 하나님의 구원]
ꃨ 네 무적의 무리 ... 강포한 자의 무리 - 문자적으로는 '너의 이방인들의 무리(*, '하몬 자라이크) ... 잔혹한 자들의 무리(*, 하몬아리침)'타이다. '이방인'에 대하여는 1:725:5, '잔혹한 자'에 대하여는 13:11을 참조하라. '티끌'과 '겨'는 '나약한 것'혹은 '무력한 존재'를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다(4절;5:24;17:13;41:15;단 2:35;호 13:3;습 2:2).
성 경: [사29:6]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유다의 위기와 하나님의 구원]
ꃨ 벽력과 .. 맹렬한 불꽃으로 - 나열된 여러 현상들은 하나님의 현현을 나타내는 고전적인 표현에 속한다(출 19:16-19;왕상 19:11-13;겔 20:47, 48). 여기서 '큰 소리'(*, 콜 가돌)는 천등과 지진이 일어날 때 수반되는 굉음을 가리킨다. '맹렬한 불꽃'은 문자적으로는 '삼켜버리는 불의 광휘'(*, 라하브 에쉬 오켈라)인데, 이는 회오리 바람과 폭풍이 불 때 동반되는 벼락불을 가리킨다.
성 경: [사29:7,8]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유다의 위기와 하나님의 구원]
앗수르 군대에 대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과 관련하여 그 결과가 꿈의 언어로 제시된다. 대적의 모습이 7절에서는 '꿈'에 비견되고, 8절에서는 '꿈꾸는 자'에 비교된다.
ꃨ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 갈증이 있는 것같이 - '속'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페쉬'(*)는 '인간 자신'을 나타내는 완곡 어법(Grotius)으로도 쓰이나, 여기서는 '육체적 삶의 근원으로서 주림과 목마름을 느끼는 영혼'(Delitzsch)의 의미로 쓰였다기보다는 '욕구'라는 또 다른 의미로 쓰였다고 봄이 문맥에 더 잘 어울린다(Alexander). 즉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품고 있던 그 욕구는 '전혀 채워지지 않았으며'(*, 레카), 따라서 '더욱 짙은 갈증만을 남길 뿐이다'(*, 쇼케카).
성 경: [사29:9]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ꃨ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 5-8절에 약속된 구원을 경험하기 전에 이 백성에게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제시된다(9-16절). 본문을 직역하면 '너희는 머뭇거려라(*, 히트마흐메후). 너희는 놀라라(*, 테마후). 너희는 즐겨라(*, 히쉬타아쉬우). 너희는 소경이 되어라(*, 쇼우)'이다(원문 -Gesenius의 해석). 각각의 경우 두 번째 나오는 명령문은 앞에 나온 말의 결과로서 주어진 것이다. 즉 '믿지 말고 머뭇거려 보아라. (그 결과로)너는 더욱 놀라워하게 될 것이다. 연락 속에 빠져 즐겨 보아라. (그 결과로) 그것이 너호 하여금 더욱 눈이 멀게 할 것이다'(Alexander).
성 경: [사29:10]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ꃨ 대저 여호와께서 ... 부어 주사 - 백성들의 술 취함(소경됨)의 원인이 하나님께로 소급된다 : '깊은 잠의 영을 부어주신 분은 바로 여호와시다.' 그러나 이 말이 그들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6:9,10 주석을 참조하라.
ꃨ 눈은 선지자요 ... 머리는 선견자라 - 눈을 가리고 머리를 덮음은 전혀 볼 수 없게끔 하려는 것이다. 선지자 혹은 선견자는 백성들의 '눈'과 '머리', 즉 지도자로서 올바로 보고, 바르게 생각하여 백성들을 진리로 인도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들 스스로가 눈이 멀고, 소경이 되었으니, 누가 누구를 인도할 수 있겠는가(마 15:14)!
성 경: [사29:11,12]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ꃨ 모든 묵시가 ... 봉한 책의 말이라 - '모든 묵시'(*, 하주트 하콜)는 하나님께서 참된 예언자들을 통해 계시해주신 거룩한 진리의 말씀을 말하나(Delitzsch). 이 말씀들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책'(*, 하세페르)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것이 이 백성들에게는 굳게 닫혀서 도무지 열수 없는 봉함된 책과 같을 것이다. '책'이라 번역된 '세페르'(*)는 '긁다', '새기다'는 뜻의 '사파르'(*) 동사에서 파생한 명사로서 '기록하는 것', '기록된 것', '문서', '편지'를 뜻한다. 기록된 문서는 비밀을 보장하기 위한 조처로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봉인되었다(8:16 참조).
ꃨ 유식한 자 ... 무식한 자 - '유식한 자'는 문자적으로는 '쓰는 것을 아는 사람'(*, 요데아 하세페르)이니, 곧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지도층 인사)을 가리킨다. 이들은 외적인 지식은 갖추었으나 영적인 통찰력은 지니지 못하였으므로 계시의 말씀을 깨달은 수가 없었다(6:9 참조). 이와 반대로 '무식한 자'(*, - 로-야다 세페르)는 '쓰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니, 곧 일반 백성을 가리킨다(요 7:15).
성 경: [사29:13,14]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ꃨ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 존경하나 - 병행하는 두 말, '가까이하다'(*,나가쉬)와 '존경하다'(*, 카바드)는 공적인 예배 행위를 함의하는 낱말들이다. 당시 히스기야 왕주도하에 남왕국 유다에서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전국적인 종교 정화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교도의 관행들과 우상들은 여지없이 척결되었고 모세 떠의 고유한 예배 의식이 부활되었다(와하 18:4).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어디까지나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하달되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내면까지 바꾸는 데는 이르지 못하였다. 이를테면 참종교의 모양은 갖추었으나 참종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음'(*, 레바브)과 '경외심'(*, 이르아)은 갖추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입술의 종교를 혐오하신다. 신약에서 이 말은 입술과 혀로 그들의 경건을 자랑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적용되었다(마 15:7,8).
성 경: [사29:14]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ꃨ 지혜자의 지혜가 ... 가리워지리라 - 백성들이 그토록 의지하는 지도자들으니 지혜와 총명을 제거해버린다는 말이다. 그 결과, 그들은 다가올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전혀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5:21).
성 경: [사29:15]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ꃨ 자기의 도모를 ... 깊이 숨기려 하는 자여 - 이 백성이 징벌받을 수밖에 없는 세 번째 이유가 제시된다. 그것은 애굽과 동맹을 체결하려는 자들의 음모 때문이다. 선지자는 오래 전부터 이 일을 탄핵해왔다(20:5-6). 따라서 그들은 선지자 몰래 은밀하게 이 일을 도모하였던 것이다. 악인은 비칭신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그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어둠 속으로 도피하고 싶어한다(시 64:2-6;94:7;139-12;요 3:!9, 20).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래 인류가 계속적으로 시도해온 일이 이것이었으며(창 3:8-10), 특히 하나님을 안다고 스스로 공언하는 백성의 지도자들이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영적 무지를 증명해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성 경: [사29:16]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ꃨ 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저들의 생각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을 부정하는 불신앙이 전제되어 있다. 그들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모든 만물을 다 관찰하시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그 만드신 피조물과 동일한 수준에 병렬시키는 태도이다. 선지자는 저들의 이 같은 태도를 한마디로 '패리함'(*, 하페카)이라 규정한다. 이 말은 '상하가 뒤바뀌어 전도되다', '가치가 전도되다'는 뜻이다.
ꃨ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같이 여기겠느냐 - 여호와를 토기장이로 비유한 다른 예에 대하여는 45:9;64:8;욥 10:9;렘 18:4-6 등을 보라.
성 경: [사29:17]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심판 후 받을 축복]
ꃨ 레바논이 ... 여김이 되지 않겠느냐 - 부정 의문문은 긍정의 가장 강력한 형식 중의 하나이다. 본서의 여러 곳에서 '레바본의 삼림'은 권세자들의 표상으로(2:13;10:34;33:9;35:2;60:30), 또 그 삼림을 자르는 것은 비천하게 됨의 상징으로(10:34;37:24) 사용되었다. 본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삼림은 경작된 평원이 될 것이며, 반면에 경작된 평원은 삼림이 될 것이다.' 즉, 권세자들은 낮아질 것이요 반대로 억압받던 백성들은 높아질 것이다. 한편, 본절 이하로부터 24절까지는 메시야 시대에 대한 예언으로도 이해된다.
성 경: [사29:18]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심판 후 받을 축복]
ꃨ 귀머거리가 ... 소경이 눈이 볼 것이며 - 이는 분명 귀가 뚫리고 눈이 열리는 치유의 역사가 있을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신체적 치유만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들이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은 바로 '책의 말'(*, 디브레-세페르), 곧 선지자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11,12절). 이제 그토록 단단하게 굳었던 백성들의 마음이 부드럽게 변화될 날이 오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다.
성 경: [사29:19]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심판 후 받을 축복]
ꃨ 겸손한 자가 ... 즐거워하리니 - 이처럼 변화된 새로운 미래의 상속자들은 '겸손한 자'(*, 아나윔)와 '빈핍한 자'(*, 에브요님)이다(11:4;14:30,32;암 2:6-8). 이들은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천대받지만, 영적으로 경건하다. 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힘이 없으므로 오직 여호와의 손에 자신들의 송사를 맡긴다(21절).
성 경: [사29:20]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심판 후 받을 축복]
ꃨ 강포한 자가 ... 다 끊어졌음이라 - 반면에 지금 웃는 자들, 곧 '강포한 자'(*, 아리츠)와 '경만한 자'(*, 레츠)에게는 정반대의 운명이 예정되어 있다. 즉 그들은 '끝장나며'(*, 아페스), '소멸된다'(*, 칼라). 그들은 힘없는 백성을 착취하며(13:11;25:3-5;29:5;49:25) 진리를 조롱하고 가치를 전도시키며 공동체의 정신을 부정하는 사람들이다(28:14;잠 1:22;13:1).
성 경: [사29:21]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심판 후 받을 축복]
ꃨ 그들은 ... 억울케 하느니라 - 첫째, 그들은 거짓 증거로써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조작한다. 둘째, 그들은 시시 비비를 가리는 재판관을 올가미를 씌워 넘어뜨린다(암 5:10). 셋째, 그들은 의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정당한 권리를 박탈한다(10:2;출 23:6;암 5:12).
성 경: [사29:22]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심판 후 받을 축복]
ꃨ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 말씀하시되 - 본문을 직역하면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야곱의 집에게, 아브라함을 구속하신'이다. 이때 문법적으로만 해석하자면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자가 야곱이 되어버린다. 이를 피하기 위해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본문을 다음과 같이 수정해서 읽는다 : '...야곱의 집의 하나님, 아브라함을 구속하신'(Lowenthal, Lowth, Lluzzatto). '야곱 족속', 즉 '야곱의 집'은 그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기원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을 가리킨다. 그 옛날 아브라함이 우상 숭배에 빠졌던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의 백성의 조상이 되었듯이, 이제 여호와를 저버린 많은 사람들로부터 구별된 남은 자들도 새로운 공동체의 바탕이 된다(Delitzsch).
성 경: [사29:23]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심판 후 받을 축복]
ꃨ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 경외할 것이며 -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역사를 보게 될 때, 그들이 보일 반응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다 하는 것'(*, 히크디슈)과 그를 '경외하는 것'(*, 야아리추)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함은 그의 본성을 참되게 인식하는 것이며 피조 세계와 구별된 유일무이한 절대자로서 그의 주권을 온 세상에 널리 선포, 찬양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경외)은 여호와의 거룩하심을 바르게 인식함에서 비롯된다(8:13;마 6:9).
성 경: [사29:24]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소망]
주제2: [심판 후 받을 축복]
ꃨ 마음이 혼미하던 자도 ... 교훈을 받으리라 - 새로운 이스라엘을 특징짓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심과 깨달음이다. 선지자는 미래에 약속된 변화상을 좀더 충격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극적인 반전 기법을 사용한다 : '영이 방황하던 자, 곧 이전에 소경 같고 귀머거리 같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도무지 알지 못하던 자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불평하던 자, 곧 이전에 완악하고 패역하여 하나님의 교훈을 거부하던 자들이 지식을 배우게 될 것이다'(원문). 14절과의 대조에 유의하라.
성 경: [사30:1,2]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애굽과의 동맹에 대한 경고]
ꃨ 패역한 자식들이여 - 이는 '마음이 완악하고 불순종하는 자식들'(바님 소레림)이란 뜻이다. '소레림'은 '다루기 힘들다'는 뜻의 '사라르' 동사에서 파생되었다. 이 말은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동물에 대해(호 4:16),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패륜아에 대해(신 21:18;시 78:8) 주로 사용되었는데, 선지자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말로 특별히 적용하였다(1:5,23).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애굽과의 어떠한 종류의 동맹이나 결속도 체결하지 말 것을 엄중히 명하셨다(출 13:17;신 17:16 참조). 그 이유에 대하여는 문화적, 종교적인 두 가지를 말할 수 있으니, 첫째,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나라와 교섭함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물들지 않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요, 둘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의 소속된 나라인 한, 오직 그만을 섬기고 의지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이다.
ꃨ 죄에 죄를 더하도다 - 본문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1) 이전에 유다가 앗수르와 연합해서 이 땅에 그를 불러들였는데 이제 다시 애굽과 결탁하여 그를 몰아내려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Calvin). (2) 하나님을 버린 죄에 더하여 인간에게 도움을 구걸한 행위를 가리킨다(Hitzig). (3) 애굽과 동맹한 죄에 더하여 그것을 하나님께 숨긴 행위를 가리킨다(Skinner). 그러나 이보다는 더 포괄적인 의미로서 '계속적으로 죄가 누적되고 있음'을 뜻하는 말로 보는 것이 더 무난하다(Alexander).
성 경: [사30:3]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애굽과의 동맹에 대한 경고]
ꃨ 바로의 세력이 ...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 애굽으로부터 그들이 기대하였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주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애굽은 그들에게 '힘'(세력)과 '그늘'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수치'와 '수욕'이 될 것이다. 당시의 애굽은, 랍사게가 '상한 갈대 지팡이'(36:6)라고 비웃을 정도로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성 경: [사30:4]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애굽과의 동맹에 대한 경고]
ꃨ 그 방백들이 ... 이르렀으나 - 본문만 가지고서는 언급된 '그 방백들'과 '사신들'이 애굽 사람을 가리키는지, 유다 사람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다. '에발트'(Ewald), '히찌히'(Hitzig), 노벧(Knobel) 등은 전자를 지지한다. 그러나 문맥을 고려할 때-2절에 유다 사신들이 이미 애굽으로 내려간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후자가 더 적절한 듯하다(Delitzsch). '소안'(타니스)은 애굽 북부 델타 지역의 동쪽에 자리한 도시(19:11;민 13:22)이며, '하네스'는 중앙 애굽의 나일 강 상류에 있는 도시로, 후에 '헤라클레오폴리스'(Heracleopolis)라 불렸다. 유다 사신들은 '소안'을 거쳐 심지어 '하네스'까지 이르는 먼 길을 힘들여 여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성 경: [사30:5]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애굽과의 동맹에 대한 경고]
ꃨ 수치를 당하리니 ...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 - '수치를 당하리니'로 번역된 '호비쉬'는 '악취를 풍기다'는 뜻의 동사 '바아쉬'에서 파생한 말로서(Maurer, Knobel), 여기서는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Delitzsch). '수욕'으로 번역된 '헤레파'는 역시 같은 말로 번역된 '켈리마'(3절)보다 강한 표현으로서 '멸시', '조롱'을 뜻한다.
성 경: [사30:6]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애굽과의 동맹에 대한 경고]
ꃨ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 - 본문의 요가지는 애굽으로 파송된 사절들이 자기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키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수고했다는 것이다. 언급된 '남방 짐승'(바하모트)은 '사자와 독사'(Hitzig), 혹은 '애굽을 상징하는 하마와 같은 짐승'(Delitzsch)이 아니라 '남쪽 방향으로 짐을 싣고 가는 짐스, 곧 나귀와 약대'를 가리킨다 : '오! 남방으로 향하는 짐승들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이여'(Alexander). '나귀'와 '약대'는 광야를 지날 때 짐 운반용으로 흔히 사용되는 짐승들이다(창 37:25;42:26).
성 경: [사30:7]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애굽과의 동맹에 대한 경고]
ꃨ 가만히 앉은 라합 - '라합'(*)은 찬조 질서에 대적하는 혼돈의 세력을 상징하는 바다 괴물인데,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 애굽 군대를 바다에서 물리치신 사건과관련하여 애굽에 대한 시적 동의어로 사용되었다(51:9;욥 9:13;26:12;시 87:4;89:10). 이 괴물은 지금-태만함에서건 무력함에서건-바다에서 꼼짝도 않고 부동 자세롤 앉아 있다(G.E. Wright, Martin). 그러니 어찌 유다를 도울 수 있겠는가?
성 경: [사30:8]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 책에 써서 - 선지자를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글로 남겨서 그들의 불순종과 패역함에 대한 증거를 삼으로 하신다. 한편, 서판 혹은 책에 기록하고자 한 그 내용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 해석이 대립된다. (1) 돌 위에 끌로 새긴 형태로 '라합'(7절)이라는 애굽 별명을 기입했다(Delitzsch, O, Kaiser). (2) 두루마리에 적은 형태로 애굽에 대한 비난의 주요한 대목들을 기록했다(Skinner, Scott). 후자가 더 적절한 듯하다.
성 경: [사30:9]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패역한 백성이요 ... 자식이라 - 선지자가 지적한 바, 백성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즉 그들의 마음 자체가 이미 패역해 있어서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할뿐 아니라 거짓말을 능사로 하고 있는 것이다. '패역한 백성'(*, 암 메리)은 문자적으로는 '반역의 백성'인데, 모세의 인도하에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괄할 때 저들이 상습적으로 나타내었던 그 불순종과 완악함을 상기시키는 말이다(민 17:10).
성 경: [사30:10]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 거짓된 것을 보이라 - '선견자'(*, 로에)와 '선자자'(*, 호제)는 평행하는 두 문장에서 동의어로 사용되었는데, '선지자'를 뜻하는 구약의 대표적인 명칭은 '나비'(*)와 다른 점은, 후자가 주로 메시지의 전달이라고 하는 능동적인 기능를 강조한 반면, 전자는 메시지를얻게 된 수동적 경험이 더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G. Vos, Bilical Theology).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백성들은 바른말 하는 선지자의 입을 막고 오히려 자기들의 뜻에 맞는 '부드러운 말'(*, 할라코트)과 '거짓된 말'(*, 마하탈로크)만을 전해 달라고 한다. '할라코투'는 '뺀들뺀들한 아침'을 뜻하며, '마 하탈로트'는 '미혹', '기만', '사기'를 뜻한다 할 수 있다.
성 경: [사30:11]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 떠나시게 하라 -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1:4),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여지는 교훈과 훈계를 제발 그만 듣게 해달라는 말이다. 악으로 치닫는 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오하며,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하도록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협박하고 방해한다. 이러한 예에 대하여는 왕상 22:8-13;렘 11:21;암 2:12;7:13;미 2:6 등을 참조하라.
성 경: [사30:12]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에 의로하니 - '압박'(*, 오쉐크)은 '억압', '상해'를 뜻하니, 애굽에 보낼 재화(財貨)를 마련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취한 강제적인 수탈을 가리킨다(왕하 15:20, Delitzsch, Skinner, Rawlinson). '허망'(*, 날로즈)은 '왜곡됨', '뒤틀어짐', '사악함'을 뜻하니, 애굽에 의존하는 외교정책을 가리킨다(Leupold).
성 경: [사30:13]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이 죄악이 ... 무너짐 같게 하리라 - '이 죄악'은 122가의 '이 말'과 대조되는데(Oswalt), 구체적으로는 애굽과의 동맹을 지칭한다. 애굽과의 동맹은 유다를 구원하기는 커녕 오히려 멸망의 전조로 작용하게 된다.
성 경: [사30:14]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그가 이 나라를 훼파하시되 ...파쇄하시리니 - '무너지는 벽'의 비유에서 '파쇄되는 토기 그릇'의 비유로 바뀐다. 벽의 비유에서 그 초점이 멸망의 급속함에 놓였다면, 여기서 그 초점은 멸망의 철절함에 맞추어진다. '훼파하다'(*, 솨바르)는 '깨뜨리다', '박살내다', '갈기갈기 찢다'는 뜻으로서 '파쇄하다'(*, 카타트)는 말과 동의어이다. '아낌이 없이'(*, 로 야흐몰)는 문자적으로는 '동정심도 없이'이다. 그릇을 깨뜨리는 토기장이 곧 유다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움이 여기에 암시되고 있다.
성 경: [사30:15]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 유다 백성들이 마땅히 취했어야 할 올바른 신앙 자세는 '돌이킴'(*, 슈브)과 '쉼'(*, 나하트)이다. '돌이킴'은 보통 회개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유다가 애굽에 대하여 취하고 있는 정책을 철회하는 것을 의미한다. '쉼'은 인간의 조바심에서 비롯되는 헛된 수고를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맛보게 되는 휴식(안식)과 평화를 의미한다. 동일한 메시기가 아하스 왕에게도 주어졌었다(7:4).
성 경: [사30:16]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니 - 그들은 하나님은 구원과 힘 대신에 (애굽의)말과 기병을 선택하였다(31:1). 선자자는 말을 되받아 치는 기법(언어 유희)을 이용하여 악인들이 의지하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올무에 빠짐을 재치있게 묘사한다.
성 경: [사30:17]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
ꃨ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 이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에 충시했을 때, 그들은 '한 사람으로 천을 쫓으며 두 사람으로 만을 쫓을 수 있었다'(레 26:8;신 32:30:수 23:10). 그러나 이제 하나님으로 힘을 삼기를 거부하고 애굽을 의지하는 유댜 백성들은 이와는 정반대의 경험을 겪게 된다.
ꃨ 너희 남은 자는 ... 영(嶺)위의 기호 같으리라 - 전재의 참화에서 겨우 살아 남게 될 패잔병들의 모습을 선지자는 산꼭대기의 '깃대'(*, 토렌)와 영 위의 '기호'(*, 네스)에 비유한다. '토렌'은 '전나무'(Augusti), '소나무'(Rosenmuller) 혹은 '신도를 보내는 깃대'(Gesenius, Ewald), '등대'(Gataker) 등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단순히 높이 솟은 깃대의 기둥'이라는 의미로 취함이 무난하다(Alexander).
성 경: [사30:18]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선지자는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며 기다리지 못하는 유다 백성들의 조급함(15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대조시킨다.
ꃨ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 본문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 해석이 대립된다. (1)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그 공의는 충족되어야 하며 그때까지 그의 은혜는 보류되지 않으면 안 된다(Young). (2)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여호와는 징께를 베푸시는 동안에도 절제하시며 자비를 베푸셔서 그 백성을 진멸치 아니하신다(렘 10:24;30:11;합 3:2, Calvin). 전자의 해석을 따를 경우 본문은 앞절의 연속 심판으로 이해되나, 후자의 경우는 사랑의 근거로서의 공의 혹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완벽한 조화를 표현한 말로 이해된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그의 자비의 근거로 말해지고 있다. 더욱이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음을 권면하는 다음 구절과의 상관 관계를 생각할 때, 후자의 해석이 더 낫겠다.
성 경: [사30:19]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 본문은 '울다'는 뜻의 '바카'(*) 동사의 부정사와 미완료형이 결합되어 강조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관용적 중복어'(an idiomatic pleonasm, De Wette)이다. '너는 울되 울지 않을 것이다'(원문직역).영어성경 KJV는 이 말을 적절하게 '너는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이다'로 번역하였다.
성 경: [사30:20]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리니 - 한 때 핍박을 당하여 몸을 숨겨야 했던 선지자들이 다시 세상에 나와 자유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가르치게 된다는 말이다. '네 스승'으로 번역된 '모레카'(*)는 단수(하나님)로도 번역 가능하나(Valgate, G.E Wright,Ewald),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그것을 복수(선지자들)로 번역한다(Alexander, Delitzsch, Lange).선지자들에게 가해진 갖가지 비난과 위협들에 대하여는 8:12;왕상18:17;렘38:4;암7:10;마23:37 등을 참조하라.
성 경: [사30:21]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너희가 ...이리로 행하라 - 여기서 뒤에서 말하는 이는 선지자이며, 앞에서 듣는이는 백성들이다. 가르치는 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는 것과 관련하여, 선지자들는 양무리의 뒤를 따라가며 갈 길을 이노하는 목자의 모습에서 이 표상을 취했을 수도 있고(Delitzsch), 짐승을 모는 사람이 뒤에 앉아서 짐승에게 방향을 지시하는 모습에서 빌려왔을 수도 있다(Leupold). 여기서 '우편'과 '좌편'은 인간 생활의 모든 활동을 가리키는 말이며(신 5:32;17:20), 이로써 선지자는 우리 모든 행동에 있어서 하나님을 참된 인도자로 삼고 그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행위를 조정해 나가야 할 것을 교훈하고있는 것이다(Calvin)
성 경: [사30:22]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또 너희가 ...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 말씀에 대한 순종은 우상의 파기로 이어질 것이라. 말씀이 고갈되고 불신앙이 팽배한 시대에 우상숭배는 큰 유행이 된다. 그러나 선지자의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힘있게 선포되고 백성들의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리게 될 때, 우상은 그 즉시로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 그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참된 임재로 말미암아 우상이라는 인공적인 상징 자체가 불필요하게 된다(31:7;호14:3;미5:13,14,J. Watts).
성 경: [사30:23]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 풍성케 하길 것이며 - 농부의 수고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이, 하늘에서는 때를 따라 비가 내리고 그 결과 땅에서는 곡식이 영글어 넘친다. 팔레스틴의 농업은 거의 전적으로 비에 의존하였으며 이런 자연 환경 아래서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을 '비를 내리게 하실 수도, 막으실 수도 있는 분'으로 신앙하였다(5:6:신11:14;28:12;왕하8:1;암4:7).
성 경: [사30:24]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 먹을 것이며 - 비옥한 땅에서 풍성한 소산을 내는 한편, 가축들은 광활한 목초지 위에서 마음껏 먹이를 뜯는다. '맛있게 한 먹이'(*, 베릴 하미츠)는 문자적으로는 '발효된 혼합물'이니,'(귀리,보리,살갈퀴등의 여러 곡식들을 섞은) 혼합물'(*)에다 '(소금 혹은 향료를) 조미한'(*)것을 말한다.
성 경: [사30:25]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크게 살륙하는 날 ...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 '물의 공급'과 '망대의 붕괴'라는 두 주제가 혼합되어 나타난다. '망대'는 유다 백성들의 자기 교만을 상징하는 요새를 의미한다. 이 망대가 무너질 때, 즉 교만에 찬 무리들이 제거된 후에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풍성한 축복의 날은 허여된다:2:15;미5:9,10).'메마름'과 '비옥함'은 하나님을 의뢰함과 관계가 깊다(1:30; 3:1; 12:3; 15:6; 19:5; 32:2,20; 33:16; 35:6,7; 41:17,18; 43:19,20; 44:3,4; 48:21; 49:10; 55:1,10; 58:11; 65:10; 66:14, Delitzsch, Oswalt)
성 경: [사30:26]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 일곱날의 빛과 같으리라 - '달'은 '흰 것'(*, 할레바나)으로, '해'는 '뜨거움'(*, 하하마)으로 각각 형상화되었다. '일곱날의 빛'은 '일주일의 빛이 하루에 집중됨'(DRECHSLER)을 의미하니,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밝기로 빛나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 강조점은 눈을 멀게 할 정도의 빛의 강렬함에 있지 않고 상처입은 당신의 백성들을 치유하는 빛의 영화로움과 그들이 누리게 될 축복의 영속성에 놓인다. 여호와의 치유하심에 대하여는 1:6;욥5:18;겔34:16;호6:1;말4:2등을 참조하라.
성 경: [사30:27,28]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 앗수르에 대한 심판 에언이 이어진다(27-33절).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대적인 앗수르를 심판하시는 행위를 통하여 그 백성에 대한 사랑을 거듭 확인시켜 보여주신다.'여호와의 이름'(*, 쉠-야훼)은 그 말씀과 사역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영광'(겔1:28)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J.Watts).
ꃨ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 하수같은 즉 - 천둥, 번개를 통한 폭풍의 표상에 무섭게 분노하는 사람의 표상이 뒤섞여 하나님의 위협적인 심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맹렬한 불(*,에쉬 오칼레트)은 혀에 닿는 모든 것을 삽시간에 먹어치우는 탐욕스런 불의 성질을 나탄낸 말이다(30절;29:6;3:14;출24:17;신4:24;9:3;욜2:5). '창일하는 하수'는 평상시에는 큰 물로 돌변하는 사막의 '와디'를 가리킨다(Oswalt).
ꃨ 멸하는 키 ... 미혹되게 하는 자갈 - '키'와 '자갈'의 비유가 첨가된다. 하나님께서는 '열방들' 곧 이민족들로 구성된 앗수르군대를 키로 흔들어 멸망시키실 것이며(마3:12), 또 마부가 자갈을 눌려 야생마를 제어하듯이, 그들을 인도하여 파멸의 심연속으로 몰아 넣을실 것이다.
성 경: [사30:29]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 - 앗수르 구대의 멸망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기쁨과 환호를 가져다 줄 것인데, 선지자는 이 기쁨을 절기를 맞이하여 저(피리)를 불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는 자들의 가슴 벅찬 희열에 빗대고 있다. 여기서 '절기'는 아마도 유월절을 가리킬 것이다.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두가지이니, 첫째 그것이 밤에 시작되었고(출 12:42), 둘째 대적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Delitzsch).'이스라엘의 반석'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서(삼하23:3) 자신을 의뢰하는 모든 이들에게 여호와께서 진실로 안전한 피난처요 견고한 요새가 되심을 함의하고 있다(Alexander, Leupold).
성 경: [사30:30]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여호와께서 ... 우박을 하시리니 - 앗수르에 대한 심판 묘사가 계속된다. '그 목소리의 장엄함', 곧 하나님의 음성과 같고(시18:13;29:3-9;77:18), '그 팔의 치심', 곧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폭풍과 같다.
성 경: [사30:31]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 '낙담하다'로 번역된 '예하트'(*)는 '깨뜨리다','무섭게 하다'는 뜻의 '하타트'(*)동사의 니팔(수동), 미완료형이니, 공포로 인해 혼비백산함을 의미한다.
성 경: [사30:32]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 그들을 치시리라 - 하나님이 몽둥이를 들어 앗수르를 치실 때마다 그것에 맞추어 음악이 연주된다. 29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유다 백성은 즐거운 방관자이다, 원수와의 전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으로 돌려지는데, 이 사실이 '전쟁 떠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는 말에서 명시되고 있다. 하나님은 칼과 창같은 무기들을 쓰지 않으신다. 단지 팔을 들어 흔드시는 것만으로도 그는 능히 대적들을 제압하신다(19:16 참조, Delitzsch).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전쟁을 수행하시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승리와 영광을 즐거이 찬미하고 노래부른다.
성 경: [사30:33]
주제1: [애굽과의 계약에 대한 경고와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자비]
ꃨ 대저 도벳은 이미 설립되었고 ... 이를 사르시리라 - '도벳'(*, 토프테)은 '(혐오의 표시로) 침을 뱉다'는 뜻의 '투프'(*)동사에서 파생한 명사로, 예루살렘의 남서쪽 힌놈 골짜기에서 불타고 있는 화장터를 가리킨다. 이곳은 이전에 어린아이를 불태워 몰록신에게 제사를 드린 곳으로 유명하였는데(왕하 23:10;렘 7:31;19:6,11), 여기에서 자행되었던 끔찍한 살륙으로 인하여 '지옥'을 뜻하는 '게헨나'(마 5:22;10:28)란 이름을 얻기도 하였다. 이 '도베'은 이제 '몰록신' 대신 '멜렉'(*), 곧 앗수르 왕을 위해 '이미'(옛적부터) 마련되었다. 악인들이 불바다에서 쓰레기더미처럼 태워질 것이라는 끔찍한 예언과 더불어 본장은 마감되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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