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사41:1]
ꃨ 섬들 민족들 - 전자는 '이임'(*)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를 가리키는데 당시 팔레스틴에서는 블레셋, 페니키아 등이 그런 나라들이겠다. 그러나 '이임'이 후자 곧 '민족들'로 번역된 '레우밈'(*)과 나란히 사용할 경우, 이것은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들을 포함한 세계 모든 민족들을 가리킬 수 있다. 서로 변론하자 - 문자적인 뜻은 '함께 재판하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논쟁하다', '조목조목 따져 보다'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논쟁을 통하여 가려볼 사실은 각 열방들이 각각의 신들을 신뢰하고 있는 이유 및 참신은 과연 누구냐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혹자는 이렇게 본 구절을 번역하고 있다 : '자함께 엄숙한 토론의 장으로 들어가 보자'(Lowth).
성 경: [사41:2]
본절 상반절의 맛소라 원문 직역은 이와 같다 : '누가 동방에서 일으켰느냐. 그 의가 그 발 뒤를 따르리라.' 본절에는 두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전자는 완료형인 '일으켰느냐'로 번역된 '헤이르'(*)이고 후자는 '이르게 하였느뇨'로 번역된 '이크라에후'(*)로서 미래형이다. 자유주의 학자들은 40-66장을 제2이사야서로 보고 그 저작 시기는 포로기 말엽 혹은 포로 귀한 후로 추측하는데, 더욱이 '혜이르' 곧, 완료형이 사용된 것은 그 당시 이미 활약 중이던 고레스를 지칭하는 것이라 단정한다. 그러나 또 다른 동사가 분명한 미래형이며 그 내용도 미래적임을 고려할 때, 이 완료형 동사는 예언 성취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이해된다. 아울러 하나님이 사용하기 위하여 세운 동방의 사람은, 고레스가 그 그림자인 미래에 임하실 메시야를 예언적으로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성 경: [사41:3]
ꃨ 안전히 지났나니 - 여기 '안전히'의 원문 직역은 '평화롭게'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으킨 인물이 정복 사역을 감당하되 그 사역은 피를 흘리게 하는 폭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하게 암시한다.
성 경: [사41:4]
ꃨ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命定)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 문자 그대로는 '시초부터 시대들을 불러서 존재케 하신 분이 누구냐?'는 뜻인데 여기 역사적 의미의 시간을 의미하는 '도르'(*)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본 구절이 강조하는 바는 역사의 주제 곧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인 것이 분명하다. 앞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능력, 유일 독특성과 이스라엘의 소망이 하나님께만 있음이 언급된 후에 비록 열국과의 변론 형식을 취하긴 하지만 동방에서 사람을 불러내어 세계를 정복케 하리라는 언급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본문에서 특히 역사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앞으로 하실 일이란 그 인물을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
성 경: [사41:5]
섬들, 땅 끝, 곧 세계 만민을 놀라 떨게 할 대상이 생략되어 있지만 문맥상 동방에서 일으킬 한 인물이 바로 그 대상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성 경: [사41:6]
ꃨ 담대하라 - 원문 직역은 '강하라'이다. 이것은 한 인물의 출현으로 온 세계가 떨면서도 내놓는 자구책의 일종인데, 그것은 서로 용기를 불어넣어 주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것이다.
성 경: [사41:7]
본절은 두려워하는 역국이 서로 용기를 불어넣어 주면서 도모하는 자구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우상 손질이며 그 묘사는 회화적이다. 즉, 본절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초월한 상황이 닥칠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서도 인간의 지혜, 능력을 대변하는 우상을 손질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분주함을 그림을 보여주듯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사41:8]
ꃨ 나의 종 야곱 아브라함의 자손 - 먼저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위해 그의 도구로 택함받은 존재를, 두 번째는 족장사에서 최종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선택된 존재를, 세 번째는 아브라함의 약속의 상속자 곧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임을 각각 함축하는 호칭들이다. 본 예언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역하다가 심판당하여 노예로 잡혀감으로 온 나라가 없어진 상황인데,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그의 뜻을 이루는 당신의 도구로 부르신다. 그렇다면 족장사를 통해서 택한 이스라엘의 선택은 아직도 유효하며,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속에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아브라함의 씨로서 하나님이 세우기로 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이자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사41:9]
ꃨ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 이는 하나님이 땅 끝과 같이 먼 곳에까지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과 여전히 관계를 맺고 계심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선택의 유효성은 불변한다는 사실이 재차 강조되고 있다.
성 경: [사41:10]
ꃨ 놀라지 말라(* , 알 티쉬타) - 여기 '티쉬타'(*)는 '보다', '주시하다'의 뜻인 '솨아'(*)에서 온 말로서 다급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눈을 크게 뜨고 그 대상을 주시하는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이스라엘이 이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한 사실의 유효성은 아직 불변함 곧 하나님이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성 경: [사41:11]
ꃨ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 수치와 욕을 당한다는 것은 정복당하고 멸망한 개인이나 단체를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다. 한편 40장이 주는 바벧론으로부터의 유다를 구한다는 수동적 측면을 다룬다면, 본장은 여기 보듯이 역으로 적국들을 완전히 정복한다는 구원의 적극적 측면을 다룬다. 물론 이 예언은 메시아의 초림에 따른 복음의 영적 승리와 재림에 따른 메시아의 종말론적 승리를 복합적으로 예언한 내용이라고 보아도 무난하겠다.
성 경: [사41:12]
ꃨ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 이 표현은 그 흔적을 찾을 수조차 없게 될 정도로 말끔히 치워버린 존재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36:37 참조). 대적의 멸망으로 입증될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같은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성 경: [사41:13]
ꃨ 나 내가 - 둘다 원어로는 1인칭 강조사인 '아니'(*)로서 다른 성경 특히 다른 선지서들에 비해 월등히 많이 본서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14-46, 48, 49, 52장 등에서 지배적으로 나오고 있다. 중재자를 가운데 두지 않고 직접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심을 강조할 때 사용되기도 하는 이 강조사는 본절에서 하나님이 힘을 주고 도우실 것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J. Watts).
성 경: [사41:14]
ꃨ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 '지렁이'에 해당하는 '톨라아트'(*)는 부패한 물질에서 생겨나는 벌레(14:11;출 16:20) 혹은 식물을 파괴하는 해충(신28:39;욘4:7)등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흔히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자의 상태를 묘사할 때 사용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무력하고 무가치한 존재로서의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성 경: [사41:15]
ꃨ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같게 할 것이라 - 본서에서 산, 언덕은 정치적 권세를 쥔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을 이스라엘이 부숴뜨린다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이스라엘의 대적임에 틀림없다. 한편 앞 문맥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에게 노하던 자가 멸망한 것이라고만 말했는데, 본절에서는 좀더 적극적으로 무가치한 이스라엘이 힘이 있는 세계 열강들을 무너뜨릴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복자로서의 이스라엘을 제시하고 있는데 본장 초두와 이 사실을 연결시킬 때, 동일하게 정복자로 묘사된 초두의 한 인물과 이스라엘은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는 특별한 의미가 파악되어진다.
성 경: [사41:16]
ꃨ 그들을 까부른즉 - 문자 그대로 키질을 의미한다. 타작한 곡식을 바람이 부는 가운데 키질을 하면 알곡은 채 안에 남고 껍데기는 날아가버리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 표현은 본 문맥에서 이스라엘을 통한 대적의 완전한 멸망, 이스라엘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한다.
ꃨ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 고대 사람들은 폭풍 혹은 회오리 바람이 사람을 휩쓸어 버린다고 믿었는데, 아마도 대적의 완전한 멸망을 생생하게 인식시키기 위하여 당시 사람들이 익숙해 있던 믿음에 호소하는 것 같다.
성 경: [사41:17]
ꃨ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 물은 생명을 보존케하는 중요한 수단인데, 그것이 없어서 구한다는 것은 생명 유지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는 의미이다. 40:3에서 나온 바있는 '광야'란 심판, 죽음의 땅을 의미했는데, 본 구절과 관련시켜 볼 때 그 광야는 징계 아래있는 이스라엘의 상태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물을 찾을 수 없어 그것을 구하는 상태란, 하나님의 극심한 징계 아래에 있는 상태를 암시한다 하겠다.
성 경: [사41:18]
ꃨ 자산 - 문자적인 뜻은 '메마른 고지(高地)'로, 토질이 척박하여 나무 한 그루 없는 벌거숭이 산들을 가리킨다(욥33:21;렘3:2;7:29등).
ꃨ 강 - '네하로트'(*)로서 문자적인 뜻은 '강들'이며 생수의 풍성함을 암시한다.
ꃨ 못 -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나 항상 생수가 비축되어 있는 오아시스 비슷한 곳이다. 이상 몇 단어들의 의미를 주해해 본 결과가, 본절은 생수공급이 불가능한 땅을 근원으로 만들겠다는 놀라운 약속을 담고 있다.
성 경: [사41:19]
본절에서 하나님은 식물의 생장(生長)이 불가능한 광야에 온갖 수목이 자라게 하겠다고 약속하시는데, 이 약속은 단순히 바벧론 포로로부터의 귀환 정도만을 암시한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특히 광야에 생수를 공급하는 이미지는 그리스도를 연결시키지 않고는 그 온전한 의미를 깨달을 수 없다(고전 10:1-5).
성 경: [사41:20]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었으나 원문에는 본절 초두에 '... 을 위하여', 곧 목적을 의미하는 전치사 '레마안'(*)이 붙어 있다. 즉, 본절은 하나님께서 '가련하고 빈핍한 자'(17절)에게 초현실적 긍휼을 베푸시는 목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목적은 보고, 알고, 체험하여, 곧 깊이 숙고하고 그 뜻을 상고하여 오직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베푸심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성 경: [사41:21]
ꃨ 소송을 일으키라 - 문자적 뜻은 '너희 건을 내놓으라'인데, 이것은 너희 입장이 옳다는 것을 제시해보라는, 즉 시비를 따져 보자는 의미이다. 또한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는 그 문자적인 뜻이 '너희 강한 것들을 제시해 보라'로서 소송 사건에서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킬 논거(論據)를 펴보이라는 의미이다. 그 논거의 핵심은 참신의 증거이다. 바로 앞 문맥에서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는 목적은 그 백성으로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나서 바로 열국의 신들을 헛되고 하나님만이 참신으로서 유일하게 영광과 찬송을 받을실 만한 분임을 강조하기 위함이 분명하다.
성 경: [사41:22]
ꃨ 장차 당할 일 이전 일 - 전자는 미래사를, 후자는 과거사를 각각 의미한다. 과거사와 미래사를 구별하여 양쪽 다 말해보라는 것은 한마디로 누가 역사의 주관인가에 의해서 참신의 여부를 가려보자는 의미이다. 진정한 역사의 주관자는 과거 역사가 어떤 경륜, 계획에 의해 일어났는가를 알고 또 미래의 역사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경륜의 의미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성 경: [사41:23]
ꃨ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 원문 직역은 '선을 행하든지 악을 행하든지 하라'이다. 우상이 추종자를 옹호하고 그 대적들을 좌절케 하기 위하여 자신이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만한 무언가를 행해보라는 뜻이다. 이 표현들은 이방 우상들이 무능한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한 역설적 표현이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동일한 강조를 위하여 그들을 벙어리, 귀머거리, 움직이지 않는 것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시115편등).
성 경: [사41:24]
이와같이 이사야가 우상들의 무력함을 만방에 공포하는 까닭은 우상 숭배자들의 어리석음과 가증함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정치 권력, 경제적인 부(富), 군사력, 과학 기술 등을 숭배하는 자들이 허다하다.
성 경: [사41:25]
앞에서는 우상들과의 비교를 통해 오직 하나님만이 미래사까지 결정하시는 참신임을 논증하고자 했다. 이제 본절로부터는 그러한 논증의 실례를 증거로서 제시한다.
ꃨ 내 이름을 부르는 자 -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이를 고레스에 대한 지칭으로 보는 데에 동의한다(G. W. Grogan, Whybray). 한편 본문과 같은 호칭은 반드시 고레스가 개종자가 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실현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무관하겠다.
성 경: [사41:26]
ꃨ 누가 처음부터 알게 하였느뇨 - 본문은 우상 숭배자들 가운데 25절에서 언급된 인물의 출생, 성품 등에 관하여 예언한 자가 하나도 없다는 의미로도 이해된다. 이 같은 의미에 이르게 하는 것은 '처음부터'를 출생에 따른 성품 등으로 해석한 결과이다(Barnes). 그러나 문맥적으로 볼 때 역사의 미래사나 과거사를 주관하는 존재가 하나님 외에 있었느냐는 질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 경: [사41:27]
ꃨ 기쁜 소식 전할 자 - 본절이 포로 귀환과 관련된 예언임을 고려할 때, 본문은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재건 운동을 일으켰던 스룹바벧, 느헤미야, 에스라 등과 같은 인물에 적용될 수 있겠다(J. Watts).
성 경: [사41:28]
본절은 이방세계의 선지자를 가장한 자들 가운데 미래사를 정확히 예언할 존재는 하나도 없음을 강조한다.
성 경: [사41:29]
본절은 이방 선지자들이 미래지사를 예언할 수 없는 까닭을 말함으로써 1절에서 제시한 논쟁을 결론짓고 있는데, 그 까닭이란 그들이 미래지사를 알려주기는 커녕 그 존재 자체가 무력하기 짝이 없는 우상들을 숭배하였기 때문이다.
성 경: [사42:1]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나의 종...나의 택한 사람 - 이 두 용어는 동격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전자는 구약에서 아브라함이나 모세 혹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된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걸출한 활약을 보였던 인물들에게 자주 사용되었다. 본절에서 이 인물은 하나님의 신을 받은 자로 묘사되고 있는데 본문의 문맥상 이상적인 통치자 곧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11:2에서는 다윗 계통의 왕에게 동일한 신이 임할 것을 예언한 바 있다.
성 경: [사42:2]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 '외치지 아니하며'와 마찬가지로 본 구절 역시 격렬한 분쟁 중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크고 분에 찬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본절이 묘사하고 있는 왕은 칼과 창으로 신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고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했던 고레스와는 그 모습이 전혀 다르다. 즉, 이분의 통치 방식은 세속적인 정복자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성 경: [사42:3]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 여기 '갈대'는 늪이나 습기가 많은 지대에서 서식하는 연약한 줄기 따위를 의미하는데, '상한 갈대'란 바람 때문에 그 연약한 줄기가 상처를 입지만 꺾이거나 뽑히지는 않는 갈대를 말한다. 본문은 마치 상한 갈대와 같이 연약하고 결점투성이인 인생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은혜로써 강하게 세워주시는 메시야의 구원 사역을 말한다.
성 경: [사42:4]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 문자적인 뜻은 '섬들이 그의 법을 고대한다'인데, 이것은 1, 2절이 묘사한 분의 의로운 통치를, 열방을 포함한 온 세계가 바란다는 뜻이다.
성 경: [사42:5]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호흡을 주시며...신(神)을 주시는 -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는 뜻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온 만물에 대한 통치권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 그의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특정 인간을 취하여 중개자로 삼으신다는 점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6절 이하에는 하나님의 종의 사역에 대해 다룬다. 결국, 본절은 창조주이시고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그 종의 사역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암시한다.
성 경: [사42:6]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백성의 언약 - 종의 사역 중 하나가 소개된다. 그 내용은, 종의 사역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언약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짐을 암시한다. 즉, 메시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을 회복, 완성시키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역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의미를 상기해야 할 것이다:"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이 새 언약은 혈통적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 곧 영적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다.
ꃨ 이방의 빛 - 본 사역은 종의 구원이 땅 끝까지 이르게 하는 것, 곧 열방에 생명의 축복을 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그를 찾아온 헬라인(이방인)과 나눈 대화 속에서 밝혀졌다:"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 초대 교회 당시 그리스도의 이러한 취지를 가장 활발하게 받든 인물은 바로 바울 사도였다.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리라"(갈 2:8).
성 경: [사42:7]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소경의 눈...갇힌 자...흑암에 처한 자 - 종의 사역을 설명하는 본절에서 등장하는 이 용어들은 종의 사역의 내용을 깨닫게 한다. 얼핏보면, 이 용어들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된 상태에 대한 암시로 생각된다. 특히 '갇힌 자', '흑암에 처한 자'는 바벨론에 포로된 상태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생각될 수 있겠다. 그러나 '소경의 눈'은 포로 상태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이 표현은 본서에서 영적 무지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43장). 본문의 종의 사역도 영적 무지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문맥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메시야의 놀라운 계시로 말미암아 흑암과도 같이 캄캄한 무지 상태로부터 찬란한 구원의 빛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눅 4:18).
성 경: [사42:8]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 '여호와'라는 칭호의 뜻은, 하나님이 친히 모세에게 가르쳐 주신 바와 같이 '스스로 있는 자'로서(출 3:14), 초월적이며 절대적인 주권자이심과 함께(창 21:33;시 90:2;139:7-12) 언약의 주체이심을 강조하는 이름이다(출 3:7-15 주제 강해, '하나님의 이름' 참조).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스스로 나타내시는 까닭은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만 찬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다.
성 경: [사42:9]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전에 예언한 일...새 일 - 계속해서 과거사와 미래사가 제시되는데, 이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며 참신이심을 보이는 증거이다. 한편 '전에 예언한 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때까지 전달되어졌던 모든 예언을 가리키며, 그중에서도 특히 39:5-7의 예언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새 일'이란 1차적으로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을 가리키며, 더 나아가서는 메시야 시대의 위대한 영적 해방을 시사한다.
성 경: [사42:10]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여호와 찬양의 권고]
ꃨ 섬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임'(*)은 먼 곳, 땅 끝까지를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되나, 여기서는 전세계 민족을 가리키고 있다.
ꃨ 새 노래로...찬송하라 - 문맥상 여기 '새 노래'는 하나님의 놀라운 새로운 구원 역사에 감격하여 땅 끝까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이다. 이는 궁극적인 의미에서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은혜를 감사, 찬양하는 것이다.
성 경: [사42:11]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여호와 찬양의 권고]
ꃨ 게달 사람의 거하는 촌락들 - '게달'은 이스마엘의 후손의 이름(창 25:13)이나, 후에 아라비아 사막을 '게달'이라 불렀다.
ꃨ 셀라의 거민들 - '셀라'(*)의 문자적인 뜻은 '바위'이며, 후에 '페트라'(Petra)로 알려진 에돔의 성읍을 가리키는 듯하다(Whybray).
성 경: [사42:12]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여호와 찬양의 권고]
ꃨ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선전할지어다 - 다시 온 세계를 가리키는 용어인 '섬들'이 등장하고 있다. 저자는 온 세계에 구원을 베푸시고자 하는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성 경: [사42:13]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여호와 찬양의 권고]
ꃨ 용사...전사 - 하나님께서 강력한 권능으로 그 대적을 쳐서 멸하실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2, 3절에 나타난 메시야의 한없이 자애롭고 부드러운 모습과 모순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원의 실체를 아는 자들은 이 두 모습이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외견상 무력하기 짝이 없어 보였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강력한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도리의 위대한 구원의 능력이 되었다(고전 1:22-24).
성 경: [사42:14]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
ꃨ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 - '숨이 차서'에 해당하는 '에숌'(*)은 원래 산고 중에 있는 여인이 내뿜는 거친 호흡을 뜻하지만, 문맥상 매우 강도가 높은 분노를 암시하는 말로 이해된다. 또한 '심히 헐떡일 것이라'의 히브리어 '에쉬아프'(*) 역시 거친 호흡을 뜻하는데, 특히 급박하게 대적을 쫓을 때 내뿜는 분노의 콧김을 가리킨다. 이 두 용어는 문맥상 용사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앞절과 연결되어 있다. 오랫동안 그 백성의 고통을 지켜 보시던 하나님은 이제 일어서시어 활동하실 것인데 그 활동 내용은 후속절에 이어지고 있다.
성 경: [사42:15]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
본절의 '큰 산', '작은 산' 등은 하나님과 그 백성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들을 가리키며, '강들'은 그들의 활동을 가능케 하는 동인(動因)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성 경: [사42:16]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
바로 앞 구절들에서 그의 대적에 관해 말쓰마신 하나님은 이제 그 대상을 바꿔 당신의 백성에 관하여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주목할 구절은 소경된 그들을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끄실 것이라는 내용이다. 하나님이 이끄실 이 길은, 단순히 포로 귀환으로만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이 길은 이스라엘이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새 길을 말한다. 특히 본장의 주된 문맥이 메시야의 구원에 관해 말하고 있음을 볼 때, 이 길은 이스라엘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방법의 구원을 암시한다. 여기서 우리는 영적 소경들의 참 목자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된다.
성 경: [사42:17]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
본절은 구약 성경에서 자주 취급되는 우상 숭배자들의 불행한 종말을 다루고 있다(시 35:4;70:3;97:7;겔 16:52 등). 그러나 16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볼 때 본절의 핵심은 우상 신뢰자들의 불행한 종말보다는 이스라엘을 소경으로 만들어버린 요소로서의 우상, 헛된 신에 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바로 깨닫고 회개한 자들도 예전에는 그러한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8절 이하에서는 또 다른 차원의 소경, 귀머거리가 언급된다.
성 경: [사42:18]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ꃨ 귀머거리들...소경들 - 16절에서 언급되었던 소경이 재언급되고 있고, 또 다른 부류인 귀머거리가 첨가되고 있다. 여기 '귀머거리'란 듣는 능력을 상실한 자를 뜻하지만, 문맥상 영적 분별력, 참진리에 대한 이해력을 결여한 자를 뜻한다(20절).
성 경: [사42:19]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ꃨ 소경이...내 종이 아니냐 -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수행해야 할 종이 영적 소경이었다.
ꃨ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 여기 '사자'는 '메슐람'(*)인데, '보내심을 받은 자'로 고쳐 읽는 자도 있으나 원문상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자',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자'로 해석하는 편이 낫다. 본절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특별한 일을 행하기 위하여 택하신 대상인 이스라엘이 귀머거리요 소경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큰 아이러니이다.
성 경: [사42:20]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ꃨ 많은 것 - 재앙이나 환난으로부터의 기적적인 구원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다양한 구원 행위들을 뜻한다.
ꃨ 귀는 밝을지라도 - 문자적인 뜻은 '귀는 열렸으나'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선조로부터 전승되어 오는 가르침, 곧 율법의 말씀을 열심히 들었던 것을 가리킨다(Barnes). 그들은 목격하고 들었으나 그 보고 들은 내용들의 참의미는 깨닫지 못하였다.
성 경: [사42:21]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ꃨ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 원문 직역은 '자기의 의로우심을 위하여'이다.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의의 수준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엄과 의로우심을 나타내신다는 뜻이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이 의로우시므로 그 백성도 마땅히 의로워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편, 여기 '의'(*, 체데크)는 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떤 학자가 말했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의를 생각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수 없다(Murray). 이 같은 사랑과 의의 밀접성을 전제로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죄인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죄인을 죄없다 할 수 없는 공의를 동시에 총족시키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것이다.
성 경: [사42:22]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의 계시를 받는 등 선민으로서의 온갖 특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존귀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모습 곧 약탈당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비참한 모습을 자초한 이스라엘의 비극상이 제시된다.
성 경: [사42:23]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ꃨ 이 일(*, 조트) - 이스라엘이 당한 비참한 포로의 현실 혹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율법의 계시를 가리킨다.
성 경: [사42:24]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본절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심판당하고서도 심판당한 이유를 깨닫지 못한 사실을 반문하는 형식을 통하여 들춰내고 있다.
성 경: [사42:25]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ꃨ 그 사방으로 불붙듯하나 깨닫지 못하며 - 다시 한번 이스라엘의 영적 소경됨이 지적되고 있는데 그 소경됨이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무지, 듣지 않으려는 완악함 그리고 당하고 있는 현실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그런 의미에서 소경이요 귀머거리였다. 이쯤되면 본장 앞부분에 언급된,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인 종의 중요한 사역의 의미를 읽을 수 있겠다(7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사역 중 가장 주요한 것이 바로 백성의 영적 무지와 맹목을 깨우치는 것이었다.
성 경: [사43:1]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너를 조성하신 자 - 여기 '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대표 단수로 쓰였다. 이스라엘이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역사 초두에서부터 분명히 드러났다. 한편, 하나님이 교회를 친히 세우시고 붙드시고 다스리신다는 확신이 무너질 때 우리에게는 기쁨과 평안이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인간적 노력과 재주를 부리는 인본주의나 이적만을 구하는 신비주의로 빠져 버릴 수 있다.
ꃨ 두려워 말라 - 이 말씀은 앞장의 마지막 내용과 관계가 있다. 앞에서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을 심판의 하나님이 아닌 소망의 하나님으로 알고 바라보고 의지하라는 것이다.
ꃨ 구속하였고 - 히브리어 '가알'(*)은 대가를 지불하고 무엇을 살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지금 이 용어는 그 죄로 멸망당한 이스라엘에게 적용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죄 때문에 포로라는 징벌을 받고 있는데, 이 징벌 자체가 그들의 죄악을 깨끗이 씻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 대가란 새로운 차원의 무엇을 기대케 한다. 그 자세한 의미는 53장에서 밝혀질 것이다.
성 경: [사43:2]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 이는 극심한 위험이나 재앙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 은유로서(시 66:12 참조),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우 익숙한 표현이었다. 특히 물 가운데로 지난다는 것은 출애굽의 모티브와 연관된다(Whybray).
성 경: [사43:3]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애굽을...속략물로, 구스와 스바를...대신(代身)으로 - 심지어 다른 열방을 희생시켜가면서 까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신다고 하는 이 말씀은 택한 자를 위한 특별하신 사랑과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보여준다. 한편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바사 왕 고레스의 애굽, 구스 및 스바 정복 계획과 연관되는 것 같다. 하나님은 고레스에게 이 열방들을 공략하도록 허락하는 대신 유대인의 귀환과 예루살렘 재건을 돕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실제로 고레스가 애굽을 침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와 다리오 1세는 애굽 정복을 위한 발판으로 팔레스틴을 이용했다(J. Watts).
성 경: [사43:4]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내가...사랑하였은즉 -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은 그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월등하게 선하거나 의로워서가 아니라 오직 당신의 주권적인 사랑에 기인하여 그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하신 것이다(벧전 1:7, 19 참조). 본절 전체 또한 출애굽 기사와 B.C. 6세기와 5세기의 근동의 정치 상황에 동시에 연관된다(J. Watts).
성 경: [사43:5]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유대인 포로 귀환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는 본절의 예언은 B.C. 538년 고레스 칙령으로 성취되었다.
성 경: [사43:6]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놓으라...구류하지 말라...이끌며...오게 하라 -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온 세상의 통치권을 갖고 계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하여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시온으로 향할 수 있도록 놓으라고 명하시는 것을 당연히 하실 수 있는 일이며, 따라서 이제 땅은 그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성 경: [사43:7]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 - 하나님의 창조 목적, 특히 땅 위에 그의 택한 백성을 두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 때문이다. 이는 에베소서의 한 구절을 상기케 한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5, 6).
성 경: [사43:8]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소경이요...귀머거리인 백성 - 이 백성을 이방인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는데(Lowth), 옳지 못하다. 42:18, 19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성 경: [사43:9]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본절은 법정적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으며, 열방이 다 모였다고 할지라도 장차 하나님이 세계 각처에서 이스라엘을 시온으로 모으실 것과 과거 이스라엘이 열방들로부터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증인이란 없다고 단언한다.
성 경: [사43:10]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 이스라엘은 오래도록 영적 소경과 귀머거리 상태였으나, 새롭게 회복된 다음에는 하나님의 증인이 된다는 말씀이다. 이러한 증인으로서의 사명은 구속함 받은 성도의 제1차적 사명이기도 하다(행 1:8).
성 경: [사43:11]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 문맥상 본문은 두 가지 뜻을 나타낸다. 첫째, 10절의 '내가 그'라는 표현과 함께 하나님의 유일성과 절대 주권을 나타내며, 둘째로는 이스라엘이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나타낸다.
성 경: [사43:12]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에인 바켐 자르) - 여기 '자르'(*)는 '이방인', '낯선 자'를 뜻한다. '자르'의 이러한 문자적 의미를 중시할 경우, 본 구절의 번역은 이와 같다:'나는 너희 가운데 낯선 자(외인)가 아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그 행사를 통하여 밝히 알려진 분이시지 결코 낯선 외인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구원을 예언하시고 실행하심으로 자신이 어떤 분인지를 충분히 계시하셨다. 따라서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증거할 증인이 되어야만 한다.
성 경: [사43:13]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 이는 하나님의 영원성 혹은 유일 절대자되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유일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계획하고 실행하시는 일을 방해할 존재란 없다.
성 경: [사43:14]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
ꃨ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내려가게 하리라 - 보냄을 받는 자가 생략되어 잇으나, 문맥상 고레스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나님께서는 바사와 메대를 통하여 바벨론을 치셨고 그때 재난의 위경 속에서 탈출을 꾀하던 도망자들을 멸하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때 바벨론의 귀족들은 서로 먼저 도망치기 위하여 배에 오르기를 경쟁하며 아우성쳤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소경된 이스라엘을 증인으로 세울 것임을 말씀하신 후 본절에서 그들을 얽매는 바벨론 세력을 멸망시킬 것을 약속하시는데, 이 멸망 사건은 과거 애굽을 멸하신 일을 능가하는 놀라운 일이다.
성 경: [사43:15]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
ꃨ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까닭이 언급되어 있다. 여기서 '창조자'란 특히 이스라엘을 택하사 당신의 백성으로 만드셨음을 나타낸다(고후 5:17;갈 6:15;엡 2:10, 15;4:24). 그리고 '너희 왕'이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사 영원히 통치하시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출 15:18;삿 8:23;대하 20:6;시 10:16;계 19:6).
성 경: [사43:16,17]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불변의 사랑의 전형적인 예증인 홍해로부터의 이스라엘 구원 및 바로 군대의 멸망 사건이 언급된다.
성 경: [사43:18]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
ꃨ 이전 일...옛적 일 -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16, 17절에 기록된 애굽으로부터의 구원 및 그 대적의 멸망을 가리킨다.
성 경: [사43:19]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
ꃨ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행하실, 옛적 일과는 비교가 안 되는 새 일에 대한 묘사인데 이 묘사가 그려내는 내용은 메말라 죽어 있는 상태에 생명의 물이 쏟아짐으로 다시 생명이 회생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때에 광야와 사막을 완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특별한 보호와 배려를 베풀어 주실 것에 대한 약속이자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암시하는 듯하다.
성 경: [사43:20]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
ꃨ 들짐승...나를 존경할 것은 -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베푸실 은혜의 생수는 심지어 들짐승들까지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울러 이는 구속의 은총이 택함받은 백성들뿐만 아니라 피조계 전체에게 영향을 미칠 것임을 암시한다(롬 8:21).
성 경: [사43:21]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
ꃨ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 하나님이 놀라운 새 일을 행하셔서 그의 백성으로 구원을 체험케 하시는 목적은, 그들로 하나님을 찬양케 하기 위함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곧 증인의 사명과 그 맥을 같이한다(12절).
성 경: [사43:22]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ꃨ 너는 나를 괴로와하였으며(*, 야가에타 비) - 본 구절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나올 수 있다. 그 하나는 긍정적 해석으로 '너는 나를 위하여 수고하였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부정적 해석으로 '너는 나에 대해서 피곤해 하였다'이다. 문맥을 볼 때, 둘 중 후자의 해석이 합당하다.
성 경: [사43:23]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기본적인 제사 예물조차 드리기를 아까워하고 귀찮아 하는 불신 상태에 대한 책망이다. 이는 성전 마당만 밟을 뿐인 형식에 치우친 제사와 함께(1:11-14) 이스라엘의 타락한 종교상을 꼬집은 말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 않는 예배가 하나님께 흠향되어질 수는 없다는 사실은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마찬가지이다(요 4:23).
성 경: [사43:24]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ꃨ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 하나님이 제사 제도를 주신 까닭은, 하나님이 인생의 죄악을 사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한마디로 제사는 짐을 지우는 수단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는 수단이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스라엘은 그 의미를 망각한 채 제물을 바치는 의식 자체에 몰두하거나 제물을 마련하는 비용에 연연함으로써 죄사함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였고, 이러한 죄의 짐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다.
성 경: [사43:25]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ꃨ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 22-28절까지의 문맥은 지난날에 이스라엘이 행했던 죄악을 지적하고 징벌을 경고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용서와 사죄를 언급하는 본절은 다소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죄악이 그토록 심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실현하시기 위해 곧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백성들을 회개시키시며 또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사죄의 은총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기 위해 삽입된 구절이다.
성 경: [사43:26]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ꃨ 서로 변론하자 - 지금까지 진술된 하나님의 말씀이 옳은지 그른지 따져 보자는 뜻이다.
성 경: [사43:27]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ꃨ 시조(始祖) - 문자적인 뜻은 '첫 아비' 혹은 '이전 아비'이다.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을 아담으로 보나 문맥이 이스라엘 전체의 죄악을 지적하고 있으므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기운을 이룬 열두 아들을 낳은 야곱을 가리키는 듯하다(J. Watts).
ꃨ 교사들 - 문자적인 뜻은 '중재자', '해설가', '통역관' 등이며 여기서는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특히 선지자들)을 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겠다(Whybray).
성 경: [사43:28]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ꃨ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보게 하며 - '욕을 보게 하며'의 문자적인 뜻인 '더럽게 하다'이지만 '찌르다', '살해하다'는 뜻도 갖고 있다. '성소의 어른들'에 대해서는 (1) 예루살렘 제사장들 중 지도급 인사들, 혹은 (2) 이스라엘의 왕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들이 있는데, 이중 (2)의 견해가 비교적 우세하다.
성 경: [사44:1]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선택받은 이스라엘]
ꃨ 이제 들으라 - 이는 바로 앞장 뒷부분과의 연관성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즉, 영적 무지와 맹목성으로 말미암아 심판받았지만 이제 구원을 통하여 새 이스라엘을 재건하겠다는 약속을 함축하고 있다.
성 경: [사44:2]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선택받은 이스라엘]
ꃨ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결정적 이유인 '선택'을 암시하는 구절이다. 예레미야, 바울 등도 자신들의 선지자됨 혹은 사도됨이 바로 이 선택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였다(렘 1:5;갈 1:15).
성 경: [사44:3]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선택받은 이스라엘]
상반절은 심판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내용의 일부로 메마른 당, 갈한 자들에게 생수를 부으실 것을 언급한다. 또한 하반절은 성령을 붓고 축복을 내리실 것을 약속하고 있는데, 이 둘은 유사적 평행구로 결국 성령 부어 주심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하반절은 상반절의 비유적 표현의 실체라고 볼 수 있다.
성 경: [사44:4]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선택받은 이스라엘]
ꃨ 솟아나기를 - 원래 이 표현은 물이 잘 공급되는 곳에서 쑥쑥 자라나는 나무나 풀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데(Barnes), 여기서는 성령 부음을 통하여 새 생명들이 영적으로 자라고 번성할 것을 암시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한편, 이는 많은 후손들이 번성할 것에 관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케 한다(창 15장).
성 경: [사44:5]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선택받은 이스라엘]
ꃨ 야곱의 이름으로 자칭할 것이며 -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으로 자신을 일컬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주체는 생략되어 있다. 그 주체를 단순히 바벨론 포로로부터 귀환한 이스라엘이라고만 볼 수도 있으나(J. Watts), 문맥이 새 생명으로의 소생, 성령 임재 등을 말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성령 부음을 통하여 영적 야곱의 후손에 합류될, 이방인까지도 포함하는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로 보는 것이 좋겠다(Westermann).
성 경: [사44:6]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본절은 하나님이 전역사의 과정을 주관하시는 분인 것을 밝히고 있는데, 본절 후에 이어지는 내용을 고려할 때 오직 하나님만이 참신이라는 사실도 더불어 함축하고 있다:"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6).
성 경: [사44:7]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ꃨ 될 일과 장차 올 일 - 미래사를 강조하는 부분이다. 하나님이 미래사를 알고 계시는 이유는 그가 역사의 주관자로서 역사의 진행 과정 전체를 계획하고 진전시키시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만이 참신이심이 입증되고 있다.
성 경: [사44:8]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ꃨ 들리지 아니하였느냐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 모세를 비롯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관한 계시가 전달되었던 사실과 그 계시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졌던 사실을 회상시키는 말이다. 그 회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유일한 참신이심을 확증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 받은 것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특권이었다:"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롬 3:1, 2).
성 경: [사44:9]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본절로 20절까지는 우상 숭배의 허망함을 열거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은 참신이심을 강조하는 앞 문맥(6-8절)의 의미를 한층 강화시킨다.
성 경: [사44:10]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ꃨ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뇨 - 이것은 우상을 만든 자에 대한 책망이기 이전에 우상 제작 자체가 하나의 아이러니임을 비꼬는 의미를 지닌다. 우상은 외형적으로는 인간이 섬기는 대상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인간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그 조작물에게 인간의 생사 화복(生死禍福)을 맡긴다는 자체가 아이러니이다.
성 경: [사44:11]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ꃨ 그 장색들은 사람이라...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 곧 장인, 장색을 비롯하여 보석 세공인, 금속 세공인, 철공, 목공 등 우상 제조에 관여했던 모든 자들이 큰 수치와 두려움 가운데 심판당할 것을 나타낸다. 그들이 만든 신이 그들을 도울 수 없는 것은 그 신 자체가 연약한 인간의 소산물이기 때문이다.
성 경: [사44:12]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연약함에 매여 사는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물건은 결코 초자연적인 힘을 낼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지적하기 위하여 쇠로 만드는 우상의 제작 과정이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Whybray).
성 경: [사44:13]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그 재질이 나무인 우상의 제작 공정이 묘사된다. 나무는 피조된 생물 가운데 가장 하층부에 있는 것이다. 우상 숭배자는 그런 것을 가지고 인간의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신전에 안치하여 신으로 섬긴다. 새겨진 우상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그 피조물 중 하나님의 형사에 가장 가까운 형상인 인간 형상에 대한 숭배는 나름대로 가장 세련된 형태라 하겠다.
성 경: [사44:14]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ꃨ 디르사나무(*, 티르자) - 이 용어는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나온다. 아마도 이 용어는 '단단하다', '굳다' 등을 뜻하는 '타라즈'(*)에서 온 것 같다. 한편, 본절에서는 이 나무를 포함한 팔레스틴의 대표적 나무들을 인간이 마음대로 베거나 심고 자라게 한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그 같은 운명의 나무로 만든 우상의 무가치성을 간접 강조하고 있다.
성 경: [사44:15]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본절과 다음절은 인간에게 있어서 나무란 근본적으로 화목(火木), 곧 땔감 정도의 의미밖에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실감나게 강조한다. 그런 나무로 인간은 자신의 생사 화복을 좌우할 것으로 믿는 우상을 만든다.
성 경: [사44:16]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ꃨ 내가 불을 보았구나 - 불기운의 위력을 느꼈다는 말로서, 쉽게 풀면 '야, 불기운이 대단한데'이다.
성 경: [사44:17]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나무가 땔감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의 행위로 증거했다. 그리고도 동일한 것으로 신을 만드는 아이러니컬한 모습이 그려진다.
성 경: [사44:18]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자들이 동일한 재목을 가지고 이율 배반적인 두 가지 용도에 동시에 사용하는 아이러니를 범하는 것은 한마디로 그들의 죄악과 그로 말미암는 영적 무지 때문이라고 본절은 말한다.
성 경: [사44:19]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아이러니에 대하여 숙고해보는 자가 없다는 것을 본절은 재차 강조한다.
성 경: [사44:20]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ꃨ 재를 먹고 - 본 표현은 헛되고 무익한 것을 얻기 위하여 애쓰는 자를 묘사할 때 사용되는데(삼하 13:19;욥 30:19;겔 28:18 참조), 에브라임의 경우, '재' 대신 '바람'이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호 12:1).
ꃨ 미혹한 마음에 미혹되어서(*, 레브 후탈 히타후) - 문자적인 뜻은 '미혹된 마음이 그를 오도하였다'이다. 이것은 인간의 어리석은 행위는 근본적으로 그 마음이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한 때문임을 보여준다. 롬 1장은 이 부분의 주해라고 할 만큼 예리한 설명을 담고 있다.
ꃨ 나의 오른손에 거짓것이 있지 아니하냐 - 여기 '오른손'은 인간이 힘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가리킨다(48:13;왕상 2:19;욥 40:14;마 27:38 참조).
성 경: [사44:21]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택함 받은 백성의 구속]
ꃨ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로 티나쉐니) - 여기 '티나쉐니'(*)를 단순 능동형(칼형) 명령형으로 보고 '너는 나를 잊지 말라'로 번역하는 견해도 있으나, 문맥상 수동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무난하다. 수동태인데도 이 같은 혼란을 준 것은 대개 단순 재귀형(니팔형)에서는 동작자가 '라멕'(*)을 통해 표시되기 마련인데, 본절에서는 '라멕'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수동태인 본 구절의 정확한 번역은 개역 성경과 동일하다. 하나님께서는 열국이 섬기는 우상의 실상을 말한 후 본절에서 선택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위치를 재확인하심으로써 그들의 패역함을 끝내 바로잡으시는 하나님의 일관된 사랑을 보여주신다.
성 경: [사44:22]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택함 받은 백성의 구속]
ꃨ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 구속이 회개 촉구에 선행하고 있다. 회개 촉구는 현재형으로, 구속 사실은 완료형으로 되어 있는 원문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하나님임을 강력히 변증한 후(1-5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영적 회생으로 연결시킨 반면), 여기서는 죄사함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로 보아 이스라엘의 영적 회생과 그들의 죄사함은 불가분적 관련이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자는 바벨론 포로라는 역사적 차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죄사함, 영적 회생이라는 차원을 견지하며 53장까지 나아가고 있다 하겠다. 본서가 말하고 있는 구속은 고레스의 구원을 통하여 완전히 그리고 확연히 성취된다. 53장의 고난의 종과 그의 구속 사역이 본서 저자의 진정한 관심사요 본질적 내용이다.
성 경: [사44:23]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택함 받은 백성의 구속]
본절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찬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찬양이란 구속을 체험한 하나님의 백성의 감격의 표현이다. 따라서 참구속의 의미를 깨달은 자만이 바른 찬양을 할 수 있다.
성 경: [사44:24]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택함 받은 백성의 구속]
ꃨ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 여기서는 역사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구속주가 될 뿐 아니라 본절 이하에 나오는 놀라운 사역을 능히 이루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창조적 권능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표현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Fausset). '땅을 베풀었다'는 것은 땅을 평평하게 펼쳤다는 뜻이다. 이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번영하는 표현이다.
성 경: [사44:25]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택함 받은 백성의 구속]
ꃨ 거짓말하는 자의 징조를 폐하며 - 여기 '거짓말하는 자'란 원문적으로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를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거짓 선지자를 비롯하여 점쟁이, 신접한 자등이 포함된다. 또한 '징조'는 '오토트'(*)로서 표적, 이적 등을 뜻한다. 당시 점쟁이나 신접한 자들은 그 배후에 있는 악령의 힘을 빌어 가시적인 이적들을 행하곤 했다.
성 경: [사44:26]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택함 받은 백성의 구속]
ꃨ 내 종의 말을 응하게 하며 - 여기 '종'(*, 아보두)은 단수형이지만 일존의 집합적인 의미, 곧 복수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는 동의어격으로 나온 '사자'(*, 말르아카)가 복수형인 사실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그의 참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케 하신 말씀을 이제 성취하신다는 것이다.
ꃨ 황폐한 곳 - 문자적인 뜻은 '쓸모없는 곳'이다. 바벨론의 침입을 받은 유다의 도시들은 부서지고 망가져 다시는 사람이 거주하지 못할 것처럼 쓸모없는 곳이 되어버렸었다.
성 경: [사44:27]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택함 받은 백성의 구속]
많은 학자들이 본절을 바벨론 정복을 위해 고레스가 유프라테스 강 지류들의 흐름을 바꿔 놓았던 사실에 대한 암시로 본다(Lowth, Grotius, Rosenmuller). 그리고 또 다른 학자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던 당시 홍해가 갈라졌던 사건에 대한 암시로 본다. 그런가 하면, 일반적인 의미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언급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Gesenius). 이중 어느 것을 취하더라도 하나님의 전능성, 유일한 능력의 구원자되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본 문맥과 합치한다.
성 경: [사44:28]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택함 받은 백성의 구속]
ꃨ 나의 목자 - 이스라엘을 인도한 모세에게도 이 호칭이 붙여진 바 있다(시 77:20). 본절에서 이 호칭이 고레스에게 부여된 것은 그가 포로 귀환을 위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았기 때문이다. 고레스에게 맡겨진 임무는 포로 귀환까지만일 뿐이며, 그 후의 온전한 구속은 앞으로 임할 종의 사역 곧 메시야의 사역에 의해 완수될 것이다.
성 경: [사45:1]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ꃨ 나 여호와는...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 '잡고'의 히브리어 '하자크'(*)는 '강하게 하다'는 뜻도 내포한다. 이 표현은 힘없는 자에게 힘을 줄 때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이 능력의 제공자이시고 고레스는 단지 그 능력을 따라 수행하는 도구에 불과한 존재임을 나타낸다.
ꃨ 열왕의 허리를 풀며 - 히브리 개념에 있어서 허리를 묶는다는 것은 여행, 노동, 혹은 전쟁에 임할 채비를 갖추는 것을 가리킨다. 반대로 허리를 푼다는 것은 쉼, 연약한 상태 혹은 무장 해제를 가리킨다. 두말할 나위 없이 여기서는 '무장 해제'를 의미한다.
성 경: [사45:2]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ꃨ 내가 네 앞서 가서 - 고레스가 정복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도록 하나님이 강력히 역사하셨음을 암시하는 본문은, 출애굽 때 이스라엘 진을 앞서가셨던 하나님의 임재를 상기케한다:"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출 13:21, 22).
ꃨ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 문자적인 뜻은 '구부러진 곳을 반듯하게 하며'이다. 계속 전투 개념이 이어지는 문맥을 중시할 때 이 표현은 고레스의 모든 대적, 방해적 요소들을 하나님이 제거하실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Lowth).
성 경: [사45:3]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본절은, 하나님이 고레스를 열왕의 정복자로 세우시는 이유를 그로 하여금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고레스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고 회개했다고 하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그는 자기가 숭배하는 말둑(Marduk)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귀환을 명령하였고 포로 귀환 명령 자체도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정책의 일환이었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앗수르의 정책은 그 식민지 백성들을 다 흩어버려서 다시는 국가를 세우지 못하게 하는 강압 정책을 썼던 반면, 페르시아 제국은 식민 국가로 하여금 자기 본토로 돌아가서 자기 종교를 갖게 하는 등 유화 정책을 썼던 것이다.
성 경: [사45:4]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ꃨ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 문자 그대로 하나님이 이방인 고레스를 일으키셨던 것은 그의 백성 때문이라는 말이다. 열왕들과 그 민족들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며 하나님은 그 자신의 목적 특히 그의 백성을 보호하고 구원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들을 통제하신다는 사실은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다(10:5;42:6).
성 경: [사45:5]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ꃨ 네 띠를 동일 것이요 - 1절의 '열왕의 허리를 풀며'와 대조를 이루는 표현으로, 열방의 정복자를 만들기 위하여 철저히 준비시키시겠다는 뜻이다.
성 경: [사45:6]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ꃨ 나밖에 다른 이가...알게 하리라 - 앞 문맥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방의 한 인물을 들어 쓰실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 경우, 우리에게 생기는 의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 중에서 이스라엘 구원을 위한 인물을 들어 쓰실까라는 점이다. 이는 구원뿐 아니라 심판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재기될 수 있는 의문이다. 즉 하나님은 이방 나라, 곧 바벨론과 앗수르를 통해 이스라엘을 징벌하셨기 때문이다. 이 의혹을 풀어주는 것이 바로 본 구절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의도는 당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곧 세계 모든 민족과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이심을 보이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분만이 참하나님이심을 알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재건, 회복뿐 아니라 이방인의 구원 참여에 대한 암시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성 경: [사45:7]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ꃨ 빛...어두움...평안...환난 - 당시 바사인들은 빛, 어두움 그리고 평안, 환난을 대치적 관계에서 이해했다. 그들은 철저히 이원론적 구도를 견지하였다(J. Watts). 바로 그들에게 본절은 하나님께서 그 각각을 모두 창조하셨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은 인간의 이원론을 뛰어넘어 그 모두를 통치하는 절대적 존재임을 강변하고 있다. 이 강변은 하나님이 유일한 참하나님이신 사실에 대한 또 다른 증거가 되기도 한다.
성 경: [사45:8]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본절은 7절과 마찬가지로 천지 창조에 관한 기사인 창세기 1장 내용을 상기케 한다. 본서 서두에서 하나님은 반역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증인으로서 하늘과 땅을 호출하신 바 있거니와(1:2), 여기서는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명령하신다. 이는 창조의 하나님과 구속의 하나님이 동일하시며,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창조 사실을 언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의와 구원이 긴밀하게 연관지어 언급되는 것은 여기 외에도 46:12, 13;51:5, 6, 8;56:1,2;59:17;61:10;62:1;63:1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G.W. Grogan).
성 경: [사45:9]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본절은 유대인을 통하여 제기될 수 있는 변론, 곧 왜 하나님은 그들로 포로가 되게 하셨는가 그리고 하필이면 이방 왕을 통해 포로 귀환케 하셨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왜 하나님은 구원자를 내시어 이방인도 구원하시는가 등에 대한 변증을 담고 있다. 바울은 본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롬 9:11-21).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것은 한마디로 그의 절대적 주권에 기인한다.
성 경: [사45:10]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문자적으로 볼 때 본절은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이가 그 부모에게 항의하는 모습에서 그 이미지를 따온 것 같다(Barnes). 그리고 그 항의하는 내용은 9절 주석에서 밝혀진 바 유대인에게서 제기될 수 있는 항의 사항일 것이다.
성 경: [사45:11]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앞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아무도 시비를 따를 수 없음, 곧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언급이 있었거니와, 본절은 이러한 언급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개역 성경처럼 명령문으로 번역할 경우는 하나님더러 이러라 저러라 할 권리가 그 누구에게도 없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되며, 의문문으로 번역할 경우 역시 부정적 답변을 강조해준다(NIV, RSV).
성 경: [사45:12]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본절은 땅 위의 그 누구도 하나님이 행하실 일에 시비를 걸 수 없는 이유를 마지막으로 첨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요 그 속에 사는 인간의 창조주라는 사실이다. 만물과 인간을 지으신 분이 자신의 계획을 따라 실행하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성 경: [사45:13]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ꃨ 내가 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 본절은 1차적으로, 고레스가 이스라엘의 귀환을 허락할 때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고 놓아주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옛적에 이스라엘이 약탈당했던 보물과 성구(聖具)들까지 돌려줌으로써 성취되었다(스 1:8-11;5:14;6:5). 그러나 보다 궁극적 의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성취될 사실에 대한 예언이기도 한다. 특히 후자의 측명과 관련하여, 본 구절의 의미를 올바로 상고하기 위해서는 본절이 앞부분 어디와 연결이 되는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의미를 더듬어 볼때 이는 하늘에서 의의 생수를 내려 땅으로 하여금 의와 구원의 열매를 맺겠다고 하는 8절과 연결됨을 알 수 있다. 9-12절은 의와 구원의 열매를 맺는 일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달렸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첨가된 일종의 삽입구의 역할을 한다. 여기서 우리는 본절의 '의'는 8절이 진술하는 '구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여기 '의'(*, 체데크)는 그 의미를 쉽게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문맥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진다. 그러나 구원과 연관성을 가질 때 우리는 전혀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개념을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죄있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없으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연상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대상은 누구인가 ? 그 대상은 말할 나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의를 논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빼놓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의로 일으킨 인물은 다름 아닌 고레스로 예표되는 그리스도이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본절의 성읍(*, 이리)은 1차적으로는 예루살렘을,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하나님의 복된 통치가 이루어질 영역을 뜻한다.
성 경: [사45:14]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애굽의...네게로 돌아와서 - 애굽, 구스, 스바 등이 바사 제국에게 무릎을 꿇을 것과 그들로부터 약탈한 재물이 유다 성전 건축에 기증될 것을 나타내며, 더 나아가서는 장차 이방인들까지도 회개하여 여호와께 돌아올 것까지를 암시하는 예언이라 하겠다.
성 경: [사45:15]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 문자적인 뜻은 '당신은 스스로를 숨기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이다. 본문의 화자(話者)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1) 고레스로 볼 경우:이는 고레스가 이제껏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하심에 대해 무지하였다가 이제 비로소 그것을 깨닫고 탄복하는 고백이 된다. 이 경우에 고레스의 탄복은 '왜 이제까지 스스로를 숨겨 오셨습니까 ?'라는 아쉬움을 담고 있다. (2) 이사야로 볼 경우:이 경우의 해석도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하나님이 이방인까지 구원에 포함시키시고 또 이방 세력을 통해 귀환을 가능케 하시는 등의 일들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뜻. 둘째는, 하나님이 초월자로서 유한한 인생에게는 마치 숨어 계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당신의 주권적인 섭리 안에서 활동하시며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사 그 백성을 구해주심을 확신하는 역설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맨 마지막 해석이 가장 무난한 것으로 여겨진다.
성 경: [사45:16]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전절과 관련지어 보면, 하나님을 스스로를 숨기시는 분이라고 단정하고 더 이상 신앙과 경배의 대상으로 섬기기를 거부하는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우상 숭배로 빠져드는 경우를 암시하는 구절이다.
성 경: [사45:17]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여호와께...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 일순간적인 도움도 줄 수 없는 우상(16절)과 영원한 구원을 주시는 여호와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26:4).
성 경: [사45:18]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 하나님은 특히 땅을 만드심에 있어서 기후, 토양, 그리고 각종 소산물등을 배려하사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곳으로 만드셨다는 말이다. 이 구절을,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감으로 황량해졌던 팔레스틴 땅이 포로 귀환으로 인하여 다시 사람이 살 만한 땅으로 변화될 것을 암시하는 구절로 보는 학자도 있으나(Fausset, Barnes), 문맥상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으며 온 우주의 구원자되신 참신으로서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이해함이 무난하다.
성 경: [사45:19]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 어두운 동굴과 같은 곳으로부터 그 의미도 분명하지 않은 채 들려오던 이방 신의 신탁 따위와는 다른, 분명하고도 명확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가리킨다(48:16). 한편, 본 구절은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된 표현과도 유사하다(요 18:20).
성 경: [사45:20]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 - 본 구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어떤 학자는 열방 중에 뛰어난 자, 곧 우두머리, 왕들로 본다(Kimchi). 그런가 하면 바벨론 백성들(Aben Ezra), 이방의 우상 숭배를 버리고 참신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온 개종자들(Vitringa), 혹은 고레스의 학정에서 살아 남은 자들(Grotius) 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여기 '피난한 자들'로 번역된 '펠리테'(*)는 원래 전쟁, 위험, 혹은 학살로부터 도망쳐 피한 자들을 가리킨다(창 14:13;수 8:32). 이 용례를 참고하면, 마지막 견해가 유력해 보인다. 그러나 본절 하반절은 '펠리테'가 우상 숭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자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 하반절의 암시를 중시할 때 우리는 '펠레테'를 이방 민족 가운데서 우상 숭배의 무지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자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하겠다.
성 경: [사45:21]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본절에서 하나님은 당신이 유일한 하나님이시며, 만유를 통치하시며, 의로우시며, 동시에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신다. 특히 여기서의 '의'는 엄한 공의의 법을 시행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용어라기보다는 그 속성이 항상 옳은 일만 하시는 분, 그 말씀이 항상 진리인 분, 그 약속을 항상 성취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용어로 보는 것이 낫겠다.
성 경: [사45:22]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나를 앙망하라...구원을 얻으리라 - 여기 '앙망하다'로 번역된 '페누'(*)는 '향하다', '돌아가다'는 뜻으로서 믿음의 눈으로, 영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곧 의롭고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21절)께 그 마음을 돌리는 것을 말한다(시 22:27). 하나님께로 그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권한이 이스라엘을 넘어 세상 모든 백성에게 주어지고 있다.
성 경: [사45:23]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 온 우주에 하나님의 맹세를 받을 만큼 큰 자는 없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맹세하시는데, 성경에서 이 같은 표현은 반드시 그 성취를 보게 될 약속에 대한 확증이 필요한 때 사용된다(히 6:13, 16). 동일한 비중의 표현으로는 '내가 살았노니'(룸 14:11)가 있다.
성 경: [사45:24]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의와 힘(*, 체다코트 와오즈) - 문자적인 뜻은 '의와 능력'이다. '의와 능력'은 하나님의 구원과 관계있는 것으로 분리하지 않고 '능력있는 의' 혹은 '의로운 능력'이라 부를 수 있겠다.
성 경: [사45:25]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여호와로 의롭다 함을 얻고 - 문자적인 뜻인 '여호와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고'이다. 24절과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여호와 안에서 죄를 용서 받고 구원 얻으며'로 의역될 수 있다. 이제 하나님이 일으키실 구원자(53장 참조)가 강력히 요청되고 있다.
성 경: [사46:1]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바벨론 우상의 파멸]
ꃨ 벨 - 바벨론의 수호신들 중의 우두머리이며, 그 수도의 신인 말둑(Marduk)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는 아람 방언이며, 히브리어로는 '주'라는 뜻의 '바알'이다(엠 50:2;51:44).
ꃨ 느보 - '나부'라 불리기도 한 이 우상은 바벨론 당시 벧 못지 않게 중요하게 여겨졌다. 말둑의 아들이며 운명의 서판들을 보관하는 문학과 지혜의 신이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나보니두스와 같은 왕들의 이름이 이 신의 이름과 유사한 것을 볼 때 바벨론 왕조가 섬겼던 신, 곧 왕가의 수호신이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Whybray). 그런데 본절은 이들을 포함한 다른 우상들이 그들을 숭배하는 자들의 짐이 되었다고 말한다. 아이러니컬한 이 표현을 통해 그 대조를 이룰 참신이신 하나님의 특성이 더욱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3절).
성 경: [사46:2]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바벨론 우상의 파멸]
ꃨ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 여기 '짐'이란 금속, 목재 혹은 돌 등으로 구성되었던 바벨론의 신상 그 자체를 의미한다. 바벨론 사람들이 숭배했었던 이 신들은 그들 자신을 상징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던 형상조차도 지킬 힘이 없었기에, 더군다나 그들을 신뢰하는 자들을 구하고 보호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성 경: [사46:3]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바벨론 우상의 파멸]
ꃨ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 - 문자적인 뜻은 '태중에서부터 운반된 자'이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하나님께 짐이었음을 의미한다. 여기 '짐'이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심판과 비참의 근원이 된 '죄의 짐'을 가리킨다. 본절에서 죄의 짐을 지고 죄를 사하는 분으로 계시된 하나님은 그 섬기는 자에게 도리어 짐이 된 이방의 신과 대조를 이룬다. 하나님은 짐을 지우는 분이 아니라 짐을 지는 분이셨다. 바리새인들이 구약 성경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왜 그리스도께서 그와같이 사시고 그와같이 죽으셨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성 경: [사46:4]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바벨론 우상의 파멸]
ꃨ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 하나님은 동일한 자상함, 애정, 보살핌을 계속 유지하실 분이라는 뜻이다. 곧 하나님의 분별성이 그 핵심이다. 이 예언은 혈통적 유대인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에 포함될 성도 모두들에게까지도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Fausset).
성 경: [사46:5]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바벨론 우상의 파멸]
ꃨ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 본절의 의도는 하나님과 대조가 되는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우상 신뢰의 헛됨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본서 저자가 흔히 강조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바벨론의 우상들은 그 도성을 보호하지 못할 뿐더러 그 자신도 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두고 있다(1, 2절). 그렇다면 그것들을 의존하는 일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 그리고 그 무력하고 허망한 우상들과 살아계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을 비교하는 일은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Barnes) !
성 경: [사46:6]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바벨론 우상의 파멸]
ꃨ 금을 쏟아 내며 - 여기 사용된 동사 '줄'(*)의 문자적인 뜻은 '흔들다', '풍부하게 붓다' 등이지만 '탕진하다'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신 21:20;잠 23:21;28:7). 말하자면, 우상 숭배자들은 천하고 무치한 신상을 만들기 위하여 아낌없이 금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Fausset).
ꃨ 은을 저울에 달아 - 저울에 무게를 다는 행위는 대체로 신중하고 사려깊은 정서를 반영한다. 그러나 낭비하듯 값비싼 금을 사용하는 우상 숭배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 바로 앞 구절을 중시할 때, 본문은 '그들은 정확히 그 눈금을 보지도 않고 값싼 금속을 취급하듯 되는 대로 양을 달았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ꃨ 장색(匠色)에게 주고 - 정확한 원문 지역은 '대장장이를 고용하고'이다.
성 경: [사46:7]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바벨론 우상의 파멸]
ꃨ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 우상 숭배자들은 고용한 대장장이가 제작한 우상을 그들의 어깨에 메어 신전 혹은 그것을 고정시켜 둘 자리로 옮겨간다. 이 같은 묘사의 목적은 의심할 나위 없이 인간의 어깨에 메여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신에게 복종을 표하는 일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ꃨ 그의 처소에 두면 - 본절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호와와 대조시키는 것이다. 즉 여호와께서는 피조물이 아니므로 영원하시며 무소 부재(無所不在)하신 반면, 인간에 의해 만들어져 그 처소를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우상은 누가 옮겨가기 전까지는 전혀 움직일 수도 없이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며 그를 예배하는 자들을 구하거나 그들의 소원을 들을 능력이 전혀 없음을 나타낸다.
성 경: [사46:8]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패역자에 대한 경고]
ꃨ 패역한 자들 - 문자적인 뜻은 '범죄한 자들'인데, 문맥상 우상 숭배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던 자들'을 지칭한다.
ꃨ 장부가 되라(* -, 히트오솨슈) -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용어로서 어렵지만 '이쉬'(*)로부터 파생된 '남자처럼 행동하라'의 의미를 지닌 용어로 보면 무난하다(Gesenius). 유사 용어인 헬라어 '안드리제스데'(*)가 고전 16:13에서 사용되었다:'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남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문맥상 어리석고 무가치한 우상 숭배 행위를 과감하게 청산하는 것을 뜻한다.
성 경: [사46:9]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패역자에 대한 경고]
ꃨ 옛적 일을 기억하라 - 여기 '옛적 일'은 '리쇼노트'(*)로서 과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시고 또 그 예언된 바를 성취하셨던 일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고서 하나님이 그 행하신 일들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는 분이심을 깨달아야만 한다. 이 같이 과거의 일을 기억하라고 하시는 까닭은 오직 하나님만이 참신이심을 상기케 하기 위함이다.
성 경: [사46:10]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패역자에 대한 경고]
ꃨ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 역사를 깊이 상고함으로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역사의 시종(始終)을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자의 그것이다. 이 이슈(issue)와 관련하여 최근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자유'라는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 내용인즉, 하나님은 미래에 무엇을 하시겠다는 계획을 말씀하시나 그 중간에 인간과의 대화, 곧 인간이라는 파트너의 반응에 따라 그 역사 계획을 수정하시기도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그대로 행하실 자유와 수정하실 자유를 갖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정해진 코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따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Zimmerli). 어떻게 보면 이 같은 주장은 역사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자유성을 변호하는 주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그 중심을 살펴보면 위험성이 가득하다. 하나님의 자유를 말하는 것 같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인간의 자유를 말하기 위하여 그같이 주장한 것이다. 인간의 역할, 반응의 중요성을 확대시킨 이 주장은 결국 하나님을 인간의 하수인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물론 성경은 인간의 행위에 따른 하나님의 반응을 적고 있다. 죽을 것을 선언받았지만 기도를 통하여 그의 생명을 연장받은 히스기야가 그 대표적 모범이다. 그러나 이 사건 역사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하에서 되어진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반응에 따라 그의 계획을 변경하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불변적으로 일관되게 시행하신다. 하나님의 가장 큰 특징, 곧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는 것은 그의 계획과 그 실행의 신실성에 있다.
ꃨ 모략이 설 것이니...이루리라 - 여기 '모략'은 하나님의 계획, 뜻을 가리키는 말이다. 상반절이 하나님의 역사 계획의 일관성을 강조한다면, 본하반절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통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나님은 역사 계획을 일관성있게 진행하실 뿐 아니라 주권적으로 세부적인 사항을 다스리시는 분이다.
성 경: [사46:11]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패역자에 대한 경고]
ꃨ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 여기서 1차적으로 의도된 인물은 고레스임이 분명하다. '동방'은 바사를 의미한다. '독수리'로 번역된 '아이트'(*)는 '솔개'(욥 28:7), '매'(렘 12:9), '독수리'(18:6)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호전적인 왕, 움직임의 신속성, 황폐를 낳는 강한 세력 등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 같은 이유 때문에 개역 성경을 비롯한 영역본들은 본 용어를 '독수리' 혹은 맹금(猛禽)으로 번역한 것이다. 성경에서 전쟁을 좋아하는 왕을 독수리에 비교하고 있는 예는 많으며(렘 49:22;겔 17:3), 아마도 본 문맥에서는 고레스가 큰 힘과 용맹성으로 열방들에게 나타날 것과 마치 맹금과 같이 갑자기 그들을 덮칠 것을 암시하기 위하여 본 용어가 사용된 듯하다. 실제로 고레스의 군대는 긴 창에 황금빛 찬란한 독수리 형상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Xenophon).
ꃨ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 - 여기 '모략'은 10절에서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특히 본절에서는 고레스가 단지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하기 위하여 불리운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강조할 목적을 지니고 있다. 고레스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내가 말하였은즉'이라는 강조사가 동원되고 있다(Whybray).
성 경: [사46:12]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패역자에 대한 경고]
ꃨ 마음이 완악하여 - 본래 이 표현은 대담하고 용기있는 자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데 대담한 자, 하나님의 계획과 통치에 저항하고 대적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자, 곧 본서의 표현대로 하면 영적으로 우매한 자를 가리킨다.
ꃨ 나를 들으라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우매한 결과, 죄를 짓고 포로로 잡혀 갔지만 포로의 징벌 속에서도 징벌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명령이다.
성 경: [사46:13]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패역자에 대한 경고]
하나님께서는 한 인물을 들어서 그의 계획을 실천하실 터인데 그 인물이 행할 일의 내용을 본절은 '나의 의', '나의 구원', '나의 영광' 등의 용어들로 정의하고 있다. 개역 성경을 볼 경우 '나의 의'와 '나의 구원'만이 평행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나, 원문 성경을 보면 '나의 영광'과 '나의 구원'도 평행구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나의 구원'과 '나의 의'가 갖는 관계이다. 구원을 가져다 주는 의에 대하여 가장 잘 언급하고 있는 곳은 롬 3:21이하이다. 로마서는 하나님 자신의 의로우심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칭의적 의를 동시에 설명한다. 이같이 로마서와의 연관성 속에서 살필 때, 본절의 의는 인간에게 전가되는 구원의 의뿐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하나님 자신의 의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죄인을 의롭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의를 손상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구속에 근거할 때만 가능하다. 동방에서 일으킬 한 인물과 지금까지 논한 하나님의 구원(및 영광)을 낳을 하나님의 의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11절에서 살펴보았듯이 동방의 인물은 역사적 인물인 고레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레스를 그 궁극적 인물의 예표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무지 몽매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고레스를 통해 포로 귀환의 장도(長途)에 오르게 하실 뿐 아니라 보다 궁극적으로는 고레스로 예표된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본절은 멀리서 조망하고 있다 하겠다.
성 경: [사47:1]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처녀 딸 바벨론 - '처녀 딸'이란 남자와 관계를 갖지 않은 순결한 여인을 가리키는데, 바벨론과 동격으로 사용된 데에 대하여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로, 이 용어는 바벨론이 그전에는 외국 군대에 의하여 한번도 정복을 당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보는 견해이다(Kimchi, Whybray). 두 번째로, 이 용어는 바벨론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갈대아와 그 땅 전체를 의인화한 표현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Gesenius). 섯째로, 이 용어는 바벨론 성 자체의 아름다움, 찬란함, 그리고 그 성 여인들의 우아함, 장식품의 풍부 등을 암시한다는 견해가 있다(Barnes). 각각의 견해들이 일리는 있으나 문맥이 난공 불락의 바벨론 성이 외적의 침입으로 인하여 멸망을 당할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첫 번째 견해를 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다(Herodotus).
ꃨ 티끌에 앉으라 - 이는 땅 위에 앉아 재를 머리에 뒤집어 쓰는 것을 가리키는데, 성경에서 이 이미지는 극도의 수치나 슬픔의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욥 2:12;10:9;애 3:29). 디도(Titus)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주조한 기념 메달에 보면 종려나무 아래 땅 위에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Barnes). 여기서 이 표현이 사용된 것은 가장 열악한 상황으로 떨어져 버릴, 가장 심한 슬픔을 맛볼 바벨론을 묘사하기 위함이 분명하다.
성 경: [사47:2]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맷돌을 취하여 가루를 갈라 - 아우구스투스 시이저 시대에 물레방아가 발명되기 전까지 고대 근동 지방에서 사용되었던 맷돌은 아래짝과 위짝 두 둥근 돌로 만들어졌으며 아래짝은 볼록한 모양으로 위짝은 오목한 모양으로 서로 맞물려 있었고 위짝 맷돌 가운데에 난 구멍으로 곡식 따위를 넣어 돌리므로 곡식을 빻았다. 대체로 여인 둘이 마주 않아 돌렸던 이 맷돌은 특히 여자 노예의 전유물이기도 하였다(마 24:41). 미래 바벨론의 노예 생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ꃨ 면박을 벗으며 - '면박'에 해당하는 '차마테카'(*)는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나오며, 의미는 '꼬고 땋아 내린 머리' 혹은 문자 그대로 '얼굴을 가리는 얇은 천' 등으로 볼 수 있따(고전 11:15). 땋은 머리든지 면박이든지 그것을 들어올리거나 벗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큰 수치를 뜻하였다.
ꃨ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 다리를 드러낸다는 표현은 당시 바벨론의 지도층 부녀자들이 자락이 길고 펄럭이는 옷을 입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또한 강을 건넌다는 표현은 바벨론 주위에 있었던 많은 강들과 수로들을 건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아울러 이는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겠다.
성 경: [사47:3]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내가 보수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 본 구절 중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는 매우 어려운 부분으로 그 해석이 다양하다. 해석에는 '사람이 나를 저항하지 못하리라'(Jerome), '나는 그 어느 누구도 중재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라'(Grotius), '나는 누구와도 평화하지 않을 것이다'(Noyes)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해석의 관건은 '아끼다'로 번역된 '에프가'(*)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인데, 이 용어는 '누구를 치다', '공격하다', '적대감을 갖고 덮친다', '죽이다', '살육하다' 등의 뜻과 함께 '누구를 치다', '공격하다', '적대감을 갖고 덮치다', '죽이다', '살육하다' 등의 뜻과 함께 '누구를 대신하여 만나다'의 뜻도 가지고 있다. 이 후자의 뜻을 중시하고 전술한 해석 중 그로티우스(Grotius)의 견해를 존중할 때 우리는 문제의 구절을 이렇게 번역할 수 있겠다:'바벨론을 대신하여 나선 그 어느 중재자도 만나지 아니하리라'(참조, I will not meet thee as a man, KJV). 이 같은 번역은, '내가 보수하되'라는 표현에서도 분명히 읽을 수 있는 하나님의 바벨론에 대한 징벌의 단호한 결심과도 조화를 이룬다.
성 경: [사47:4]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본절은 앞뒤 문맥과 잘 조화되지 않는 듯한 독특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일종의 찬양 혹은 큰 놀람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저자는 환상 중에 바벨론의 수치스러운 멸망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큰 놀람과 기쁨의 탄성을 터뜨렸던 것 같다. 그 감격의 내용을 좀더 풀어보면 이와 같다:'오 우리의 구속자이시여 ! 당신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시니이다 ! 당신의 능력은 얼마나 크신지요 ! 당신은 얼마나 신실하신지요 !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너무도 분명히 드러났나이다. 바벨론이 멸망하나이다. 그들의 우상이 그들을 구원할 수 없나이다. 그들의 멸망은 우리 백성의 구속자이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당신에 의하여 성취되었나이다.' 예기치 못했던 바벨론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저자는 인간적인 통쾌감을 느끼기보다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되시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 및 그분에 대한 감격을 느꼈던 것이다.
성 경: [사47:5]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흑암으로 들어가라 - 동일한 이미지가 이스라엘의 포로 사실과의 연관성 속에서 사용된 바 있는데(42:7), 이제 그 동일한 운명으로 고통당하는 바벨론을 묘사하기 위해 다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본 묘사가 바벨론의 포로 사실을 필연적으로 암시하는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포로와 같은 슬픈 운명을 강조할 뿐이다.
ꃨ 열국의 주모(主母) - 분자적인 뜻은 '왕국들의 여주인'이다. 이 호칭은 로마에게 붙여졌던 '세계의 여왕'이란 호칭을 연상케 한다. 바벨론은 이 같은 호칭에 걸맞는 권세와 명성을 유지하였고 그 주위의 열국들은 종속자, 종들로 여겨졌었다.
성 경: [사47:6]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 여기 '기업'이란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다 땅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모든 유다의 도시들이 파괴되도록 허락하셨고, 그 결과 그 온 땅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비록 갈대아의 손을 빌어 그 일을 하셨지만 분명히 그 결과는 하나님의 계획 아래 하나님의 지시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ꃨ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 이스라엘 포로를 대함에 있어 바벨론이 온정을 베푼적도 있었다. 다니엘의 경우 바벨론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았고 큰 특혜를 누렸던 것을 우리는 익히 아는 바이다. 그러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경우 예루살렘 성과 도시를 참혹하게 부쉈을 뿐 아니라 인권을 말살하는 잔혹성으로 이스라엘 포로들을 대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시편 기자는 그 사실을 애절한 시구로 묘사한 바 있다(시 137:1-3). 더욱이 바벨론의 압제자들은 노인을 학대하고 그들에게 중한 노역을 시켰다. 성경은 도처에서 노인에 대한 예우, 공격을 중요한 의무로 가르치고 있다(레 19:32;욥 32:4-6). 그리고 노인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행동을 가장 악한 범죄의 하나로 경고하고 있다(왕하 2:23-25;잠 30:17). 바벨론의 압제자들이 노인을 학대한 사실을 예레미야의 시들 속에서 반영되고 있다(애 5:12).
성 경: [사47:7]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 이 구절은 바벨론의 교만과 자기 확신을 묘사한다. 바벨론은 부(富), 그 성벽과 성문의 견고함, 대적에 대항할 수 있는 풍부한 군비 등을 믿었다. 더군다나 바벨론에게는 내우 외환(內憂外患)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듯이 보였다(Barnes). 따라서 그들은 바벨론의 태평 성대가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같은 확신이 바벨론 멸망의 동기는 되지 않는다. 문제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도구였다는 사실 곧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었다.
ꃨ 이 일 -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알지 못한 채 포로 생활로 압제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들의 방법대로 가혹하게 대했던 것을 가리킨다. 물론 그 같은 처세는 자신들이 거룩하고 공의로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때문이었다.
ꃨ 그 종말 - 바벨론은 자신들처럼 교만하고 잔혹하였던 다른 열방들의 종말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어야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치 않았으니 불행한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성 경: [사47:8]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 유흥에의 탐닉과 사치스런 생활이 조장한 유약하고 의미없는 삶을 가리킨다. 일설에 의하면 이 시대는 부패와 유흥과 방탕이 극에 달했던 시대라고 한다(Strabo). 또 다른 학자는 그 당시 바벨론만큼 방탕과 범죄적 쾌락에 몰두했던 나라는 없었다고 주장한다(Curtius).
ꃨ 나 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 이것을 바벨론의 비교 우위적 자만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즉, 바벨론 백성들은 그들의 도시만 도시요 다른 나라의 도시들은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당대 필적할 나라가 없었던 로마 역시 동일한 자만을 나타냈다고 한다(Martial). 그러나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위치에 자신들을 비교했던 신성 모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Whybray). 이 두 견해는 상호 보완적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에 대한 극도의 자만은 결국 자신들을 하나님의 위치에 놓게 되기 때문이다. 동일한 자만, 하나님에 대한 도전을 나타내었던 자들로 니느웨 성 거민들을 들 수 있다(습 2:13-15).
성 경: [사47:9]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무수한 사술과 많은 진언을 베풀지라도 - 원문 직역은 '많은 사술과 많은 주문 속에서'이다. 여기 '속에서'는 '베'(*)를 번역한 것인데 이 '베'는 두 가지 의미로 쓰일 수 있다. 하나는 '...에도 불구하고'이고, 또 다른 하나는 '...때문에'이다. 전자의 뜻을 취할 경우는 개역 성경 번역의 뉘앙스처럼 많은 사술과 마법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에 재앙이 임한다는 뜻이 되겠고, 후자의 뜻을 취할 경우는 바벨론에 재앙이 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많은 사술과 마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무리없는 문맥의 소통을 위해서는 전자를 취하는 것이 좋다.
성 경: [사47:10]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지혜...지식 - 이것은 당시 주변 국가에 비해 월등하게 발전하였던 산수, 천문학, 점성학, 마법 등을 일차적으로 가리킨다. 특히 당시 점성학이나 마법 따위는 단순한 학문의 성격을 넘어 종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성 경: [사47:11]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네가 그 근본을 알지 못할 것이며 - 여기 '근본'으로 번역된 '솨헤라'(*)는 '새벽의 빛', '새벽의 여명', '아침'을 뜻한다. 이 같은 의미를 존중할 때 본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새벽의 빛이 캄캄한 어둠을 갑자기 몰아내듯이 바벨론 위에 임하는 멸망도 갑자기 시작되리라는 것이다.
ꃨ 이를 물리칠 능이 없을 것이며 - 여기 '물리칠'은 '속죄하다', '보상하다'가 그 원문적인 뜻이다. 말하자면 바벨론은 그 어떤 속죄의 희생물이나 기도, 제물 따위로도 임하는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는 신정(神政) 시대였다. 따라서 어떤 나라든 간에 위기가 닥치면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 의존함으로써 위기를 해결하기 일쑤였다.
성 경: [사47:12]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악신의 음성을 듣고 그 위기를 해결했던 영매자, 마법사들에게 이번에도 악신을 불러 위기를 한번 막아보라고 권하는 일종의 조롱조의 도전이다.
성 경: [사47:13]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하늘을 살피는 자 - 문자적인 뜻은 '하늘을 나누는 자'이다, 여기서 '나누는'에 해당하는 '호베레'(*)는 구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용어이며 '자르다', '나누다'를 뜻하는 아랍어의 동족어이다. 바벨론 사람들은 천체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땅의 일을 예언하기 위하여 하늘을 몇 구역으로 나누었다. 아마도 오늘날의 황도대(黃道帶), 12궁도 따위도 바로 여기에서 기원한 것 같다(Whybray).
ꃨ 별을 보는 자 - 문자적인 뜻은 '별을 응시하는 자'이다. 이는 단순히 천문학을 연구하는 차원보다는 별을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신격체로 숭배했던 사실과 관련되는 표현인 듯하다.
ꃨ 월삭에 예고하는 자들 - 문자적인 뜻은 '달들에 관하여 지식을 주는 자'로서 달의 모양이 변해가는 동안 벌어질 땅 위의 사건을 예언하는 일종의 점쟁이들을 가리킨다. 하늘, 별, 달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 피조물들을 관찰하며 미래지사를 예언하는 자들을 비웃듯 열거하고 계신다.
성 경: [사47:14]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이 불은 더웁게 할 숯불이 아니요 - 문자적인 뜻은 '따뜻하게 하는 숯 하나 없으리라'이다. 이것은 바벨론의 완전한 멸망을 암시한다. 초개나 나무의 등걸이 완전히 타버릴 경우 심지어 숯 하나 남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와 같은 장면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된다. 어떤 학자는 '그것으로 빵 하나 구울 수 있는 숯 조각 하나 남아 있지 않으리라'로 번역하기도 한다(Rosenmuller, Cocceius).
성 경: [사47:15]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너의 근로하던 것들 - 앞에 언급된 '하늘을 살피는 자', '별을 보는 자', '월삭에 예고하는 자' 등을 가리킨다.
ꃨ 너와 함께 무역하던 자들 - 바벨론은 지형학적으로 교통의 요충지였다. 따라서 무역을 목적으로 하는 많은 외국 배들이 그들의 항구를 빈번히 찾곤 하였다.
성 경: [사48:1,2]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ꃨ 유다의 근원에서 나왔으며 - 문자적인 뜻은 '유다의 물들에서 나왔으며'이다. 여기 물줄기의 근원, 수원지를 연상케 하는 '물들'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비슷한 용어가 유다의 혈통을 암시하는 도 다른 대목에서 사용된 바 있다:"그 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종자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민 24:7). 여기서 '유다'라는 호칭이 사용된 것은, 유다 지파에서 메시야가 출생할 것에 대한 암시라고 해석해볼 수도 있겠다(창 49:10). 즉, 그토록 중요한 위치에 있는 백성들이 타락하였음을 강하게 책망하는 것이다.
ꃨ 거룩한 성 백성이라 칭하며 - '거룩한 성'이란 곧 예루살렘을 가리킨다(52:1;마 4:5). 이곳이 그렇게 불리운 까닭은 성전과 특히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인 법궤가 있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거룩한 성'이라는 명칭 속에서 그곳에 사는 백성들의 행실과 성품도 거룩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Keil & Delitzsch).
성 경: [사48:3]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본절에서 하나님은 과거에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장래의 일을 예언하시고 결국엔 그 일들을 성취했다고 말씀하신다. 특히 그 성취는 이스라엘 백성이 전혀 예상치 못한 시점에 홀연히 되어진 것임을 말씀하심으로써, 미래에 있을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의 성격도 그러할 것임을 암시하신다(42:9;44:7, 8;45:21;46:10).
성 경: [사48:4]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ꃨ 완악하며(*, 카솨) - 문자적인 뜻은 '굳은'인데 이것은 멍에 메기를 거절하는 수소에서 그 의미를 따온 것이다. '굳은 목', '뺏뻣한 목', '얼굴의 굳음'(겔 2:4), '마음의 굳음'(겔 3:7) 등으로도 묘사되고 있는 이 표현은, 단순히 하나님의 율법을 거절하는 상태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영적 무지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ꃨ 목의 힘줄은 무쇠요 - 문자적인 뜻은 '목은 쇠 근육이요'이다. 이 비유 역시 멍에를 거절하기 위해서 그 목을 뻣뻣하게 하는 황소의 모습에서 따온 것이다.
ꃨ 이마는 놋이라 - 이 표현은 흔히 수치를 모르는 매춘부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렘 3:3). 그러나 여기서는 무감각하고 완전한 상태를 나타낸다(렘 6:28).
성 경: [사48:5]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본절의 핵심은 하나님이 세상 만물과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사실보다는 그러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치 않으려는 인간의 뿌리 깊은 부패와 불신의 심성에 놓여져 있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존재와 권능을 입증하고도 남을 풍성한 역사적 경험과 말씀을 통한 계시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에게 향하는 전철을 되풀이하였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성 경: [사48:6]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ꃨ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隱秘)한 일 - 3-5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 때문에 먼저 어떤 일을 예언하고 그 후에 그 일을 성취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본절에서는 하나님이 앞으로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데 그 일은 이스라엘이 들어보지도 못한,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 일은 1차적으로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일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말미암은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 그리고 구원 사역의 완성일 것이다(Fausset).
성 경: [사48:7]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ꃨ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 43:16-21을 연상시키는 내용이다. 그곳에서 저자는 출애굽 사건을 '옛적 일'로 말하면서 '새 일'을 언급한 바 있으며 그 '새 일'을 그토록 놀라웠던 출애굽 사건마저 압도할 만한 어떤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한 사건이라면 바벨론 포로 귀환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도래로 말미암는 구원 사역까지 포함시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겠다.
성 경: [사48:8]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ꃨ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었나니(*, 로 피트하 아제네카) - 분명히 동사 '피트하'(*)가 능동태이므로 본 구절의 정확한 원문 직역은 '네가 너의 귀를 열지 않았다'이다. 그리고 본절에는 바로 앞 구절들과는 달리 귀 기울일 대상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본절은 이스라엘과 특정한 어떤 사건과의 관계를 밝히는 내용이 아니라 그들의 어떤 특성을 강조하는 구절로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그 어떤 사건에 국한되지 않고 번번이 영적 귀를 닫아온 민족이었다.
ꃨ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 - 문자 그대로 부면 인간 개인의 출생 당시의 영적 상태를 설명하는 표현으로 여겨진다. 사실 성경에 원래부터 부패한 인간의 영적 상태를 지적하는 구절이 없는 것은 아니다:"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그러나 본서가 한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한 단위로 보고 진술하고 있으므로, 본문은 이스라엘이 출생, 곧 국가 역사의 시초로부터 하나님을 거역한 사실을 지적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
성 경: [사48:9]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ꃨ 내 이름을 위하여 - 이 표현은 고레스에게 주신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45:4)라는 표현과 배치되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 두 곳의 '위하여'가 사용된 배경은 다르다. 45:4에서는 하나님이 고레스를 이스라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삼고자 하셨음을 밝히는 반면, 여기서는 이스라엘 구원 자체의 궁극적인 이유가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만유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따른 것이다(J. Watts).
성 경: [사48:10]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ꃨ 은처럼...택하였노라 - 여기 '택하였노라'는 '시험하였노라'가 그 원문적인 뜻이다. 당시 제련 과정에서는 광물들을 용광로에 넣음으로써 그 찌꺼가 가라앉고 순수한 원물질만 남았다. 이와같이 용광로에 광물을 넣는 목적은 순수한 물질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용광로에 광물을 넣는 것과 같은 시련이 많았지만 광물의 경우와는 달리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 본 구절의 의미하는 바이다(Whybray). 그들의 영적 무지를 깨우치고 죄를 고백케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저 아무런 효과없이 시련이라는 용광로 속에 넣다 뺐다 했을 뿐이라는 의미이다. 건국 이래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것을 입증한다.
성 경: [사48:11]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ꃨ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 무지 때문에 수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바른 계시를 이해하지 못했고 현재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 있다. 그런데 그러한 실상 때문에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신다면 이방은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들의 승리를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신(神)의 승리로 착각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및 이방이 전혀 알지 못한 '새 일'(6절)을 행하심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그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리라는 것이다.
성 경: [사48:12]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바벨론의 멸망]
ꃨ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 41:4과 외관상으로 유사하지만 그곳에서는 '역사성'을 강조하는 '도르'(*)가 사용되었고(41:4에서 '만대'로 번역됨) 이곳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여기서는 '역사성' 보다는 온 우주의 흥망 성쇠(興亡盛衰)를 쥐고 계신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것 같다.
성 경: [사48:13]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바벨론의 멸망]
ꃨ 내 오른손이 하늘에 폈나니 - 문자적인 뜻은 '내 오른손이 하늘을 재었다'이다. 40:12에서 이 표현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광대하심 그리고 그 능력을 암시하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특히 만물을 창조, 보존하시는 사실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그 안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을 모르실 리 없다. 자신이 만물의 흥망 성쇠를 쥐고 있음을 강조하여 이스라엘의 관심을 집중시키신 후 하나님께서는 시야를 좁혀 이스라엘 영역 속에서 되어질 일을 소개하고자 하신다.
성 경: [사48:14]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바벨론의 멸망]
ꃨ 나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바벨론 위에 시행할 고레스를 가리킨다. 그러나 '사랑하는'이란 표현이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도덕적 품성을 기뻐했다거나 그가 경건한 자였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도구로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 표현은 고레스에게만 적용하기에는 너무 강한 표현이다. 이 표현을 온전히 적용할 대상은 메시야이신 예수 뿐이시다(눅 3:22). 그렇다면 이 표현은 메시야의 예표적 인물로서의 고레스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해해볼 수 있겠다.
성 경: [사48:15]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바벨론의 멸망]
본절의 특징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 '나'가 세 번씩이나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특징은 이방 왕 고레스를 선택하고 그로 흥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쓰임받게 만드는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하에 되어지는 일임을 드러낸다. 원문에 보면 '그 길이 형통하리라'가 '그가 그의 길을 형통하게 하리라'라고 되어 주어가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뀐것을 알 수 있는데, 이 같은 인칭의 변화는 본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자 고유의 기법이다(Barnes).
성 경: [사48:16]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ꃨ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 - 본 구절을 기점으로 화자(話者)가 하나님에서 본서 저자인 선지자로 바뀌고 있다. 먼저 '신'은 하나님의 영을 말하는데 이 용어가 먼저 '신'은 하나님의 영을 말하는데 이 용어가 나온 것은 저자의 사역이 자신이 아닌 성령에 의해 되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또한 화자가 바뀜으로써 이어질 예언의 내용, 곧 17-22절이 몹시 중요한 내용임을 기대케 한다.
성 경: [사48:17]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ꃨ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여호와라 - 본절은 저자 자신이 하나님께 대한 수식어들을 사용한 데다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직접 연이어 놓음으로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지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본문의 수식어들은 하나님과 그 백성인 이스라엘간의 언약 관계가 여전히 존속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ꃨ 가르치고...인도하는 - 이 용어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행하시는 일을 압축시켜 놓은 것인데, 원문에 보면 이 용어들은 분사형으로 되어 있다. 이 사실은 괄목할 만한데 히브리어에서 분사형은 계속되는 상황을 강조할 때 쓰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와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셨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부각된다.
성 경: [사48:18]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얼핏 보면 본절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기술한 것 같지만, 사실은 백성에게 의도한 하나님의 축복의 풍성함을 역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 사실은, 본절이 지닌 시적 성격을 드러내 보면 잘 알 수 있다. 본절에 드러난 하나님의 축복 부분만 시적 구조에 충실하게 정리해보면 이렇다:'강과 같았(겠)다. 너의 평강이 그리고 너의 의가. 바다 물결 같았(겠)다.' 본절의 주안점은 무한한 평강과 의에 있는 바, 이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떠나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축복이다. 즉, 평강과 의는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고 그분의 백성이 되는 언약 관계에서 나타나는 축복이다.
성 경: [사48:19]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18절과 본절 상반절에는 축복이 기록되고 있는데, 전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내적 축복인 반면 후자는 외적 축복이라 봐도 무방하다. 특히 후자의 내용은 낯익은 것으로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의 축복을 반영하고 있다(창 22:17;32:12).
ꃨ 그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 이름이 끊어진다는 것은 그 백성에 대한 기억이 지워진다는 뜻이다. 이것은 반역으로 일관된 이스라엘 역사의 절정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아울러 여기에는 혈통적, 민족적 개념의 이스라엘을 영적 이스라엘로 대치시키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어렴풋이나마 시사되고 있는 듯하다. 즉, 언약 백성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쥐고 있던 그 영광스러운 신정 체제는 이제 망각 속으로 사라짐으로써 그림자와 모형의 시대가 지나가고 왕되신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탄생이 넌지시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사48:20]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ꃨ 피하고 - 압제하는 민족으로부터 온갖 수단을 다해 탈출해 나오라는 명령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어 놓았으니 그냥 나오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이제 나온 자들은 그냥 있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쁨으로 찬양하고 땅 끝까지 그 사역을 선포할 것이다.
성 경: [사48:21]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본절에는 과거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물을 먹이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저자가 그 사건을 언급하는 이유는 20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보증물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비록 본서 저자는 바벨론 포로 사건이 이미 발생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그가 서 있는 시점은 바벨론 포로 사건이 일어나기 100여 년 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의 사람인 1차 독자들에게 바벨론 포로 기간 이후 귀환으로 시작되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확실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준하는 실제적인 보증물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본절이 제시하는 사건은 광야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광야의 모든 사건을 망라해서 대표적으로 제시된 사건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와 같이 본절은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근거로 하여 20절에 나타난 앞으로 있을 구원 사역을 튼튼하게 제시하고자 의도된 것이다. 반복하지만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여호와의 위대한 구원 사역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본서가 암시하는 하나님의 궁극적 구원 사역이란 옛날 출애굽으로 대표되는 구원 사역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놀랍고 새로운 구원 사역인 것이다. 이 새로운 구원 사역은 천지를 처음 창조한 하나님의 사역에 필적한 것이며, 그 창조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 주며, 그 목적을 완성시켜 주는 새 창조의 사역임을 이미 40장 이후부터 저자가 계속 시사해 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49-53장에 서술되고 있는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내용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성 경: [사48:22]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여호와께서 그 종 야곱을 구속하심으로 벌어질 일 중의 하나는 두 부류의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두 부류는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받느냐 안 받느냐로 갈라질 것이다.
성 경: [사49:1]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종의 노래]
ꃨ 여호와께서...말씀하셨으며 - 본문의 화자(話者)를 누구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누인다. 먼저 이스라엘 혹은 고레스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그 근거는 본절에 나오는 '부르셨고', '이름' 따위의 표현이 분명히 이스라엘이나 고레스를 가리키는 43:1;45:3과 연관성을 나타낸다는 점이다(Whybray). 반면에 메시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그 근거로는 43:1;45:3과는 달리 본 문맥이 종으로 오신 메시야를 요청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들고 있다(Barnes, Fausset, Clark). 우리는 후자의 견해를 따르고자 한다. 신약은 예수께서 그의 출생 전부터 메시야의 사역을 부여받았을 뿐 아니라 출생 전 하나님으로부터 그 이름을 부여받았던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마 1:21;눅 1:31). 42장 이후 일반적인 용어들로 그 특성과 사역이 암시되었던 메시야는 본장에서부터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그가 감당할 사역을 선포하고 있는데, 그 선포의 내용은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 나라에도 구원 사역이 확장된다는 것이다.
성 경: [사49:2]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종의 노래]
ꃨ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 성경에서는 하나님 말씀의 설득력과 능력을 나타낼 때 '찌르는 것', '검' 따위에 비유한다(전 12:11;히 4:12). 한편, 계 1:16;19:15 등에서 요한은 본문을 인용하여 구세주를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ꃨ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 바로 앞 구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할 때 '나'는 칼과 같은 능력있는 말씀으로 볼 수 있겠다. 하나님은 망토에 칼을 숨기듯 메시야의 칼과 같은 말씀을 숨기셨다가 적절한 때 그 말씀을 내실 것이다(Hengstenberg).
성 경: [사49:3]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종의 노래]
ꃨ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 여기 '종'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1)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유대인'으로 보는 견해인데(41:8)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는 선포에 근거를 둔다(44:23, Rosenmuller). 이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이 종에 대한 언급으로 나오는 후속절의 내용이 결코 유대인에게 적용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본서 저자인 이사야로 보는 견해이다(Grotius, Dathe). 이 견해는 '이스라엘'이란 호칭을 이사야에게 붙여줄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에서 쉽게 반박된다. (3) 메시야로 보는 견해이다. 사실 후속절들에 나오는 이 인물에 대한 묘사와 신약에 나오는 설명(마 13:57;눅 2:32)은 메시야와 일치하고 있는 특히 7절에 열방의 왕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언급은 메시야 외의 다른 인물을 적용시키기 힘들다는 점을 확정짓는다. 문제는 '메시야'에게 '이스라엘'이란 호칭이 붙여진 점인데 한 개인인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란 민족의 호칭이 부여되었듯이, 사탄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를 통하여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의 머리가 되신 메시야에게 영적 의미의 이스라엘이란 호칭을 부여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될 만하다 하겠다.
성 경: [사49:4]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종의 노래]
ꃨ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 메시야 당시 팔레스틴 땅의 인구 수에 비해 결국 그의 사역을 통해 믿게 된 자의 수가 너무 적을 사실을 내다보는 언급으로 이해된다. 성경은 메시야의 부활을 믿는 수준에 이르렀던 자의 수가 대략 500여 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측케 한다(고전 15:6).
ꃨ 나의 신원이...하나님께 있느니라 - '나의 심판이 여호와와 함께 있고 나의 상급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가 원문 직역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메시야의 사역을 공의로 판단하시고 상급을 내리신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메시야의 수고와 고통이 결국에는 목적할 만큼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는 결코 낙심하거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42:4;50:7-9). 메시야의 고난과 십자가 사역은 실패하지 않았다. 그의 사역을 통하여 얻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게 되었다(53:10-12;벧전 2:23).
성 경: [사49:5]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종의 노래]
ꃨ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모이게 하시려고 - 양치기가 그의 흩어진 양들을 혹은 암탉이 그의 병아리들을 다시 모으는 장면에서 따온 비유이다:"예루살렘아 예루사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깨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마 23:37). 메시야 예수께서 땅에 오신 목적 중의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시기 위함이었다.
성 경: [사49:6]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종의 노래]
ꃨ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이르게 하리라 - 혈통적 이스라엘을 회개시키는 일은 메시야가 궁극적으로 이루실 과업에 비해서는 너무 작은 일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거듭된 반역으로 한 혈통적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구원은 막을 내렸고 이제 그 사역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온 세계를 대상으로 하되 메시야를 구세주로 믿는 개개인들을 받아들이는 식으로 구원 사역은 이어질 것이다.
성 경: [사49:7]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종의 노래]
ꃨ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 종으로 오실 메시야의 특징을 한마디로 잘 요약하고 있는 구절인데, 좀더 자세한 묘사는 53장에 나온다.
ꃨ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 메시야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보고 모든 이방 권세자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가리킨다. 종말론적 성격을 지닌 표현이다.
성 경: [사49:8]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 갑자기 시제가 완료형이 되었다. 메시야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장면이 선행되어 있음을 짐작케 하는 표현이다. 은혜를 구하는 장면이란 다름 아닌 메시야의 대속적 죽음을 가리킨다. 메시야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가리킨다. 메시야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근거를 마련하셨다. 이와 같은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은혜를 베푸실 것을 확신하는 의미에서 저자는 완료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 경: [사49:9]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잡혀 있는 자 - 영적 우매에 사로잡혀 있는 자를 가리킨다. 메시야께서 대속적 죽음을 죽으시고 인간의 죄를 속하신 1차적 이유는 영적 우매에 사로잡혀 있던 자들을 해방하시기 위함이었다(42:7).
ꃨ 길에서...것인즉 - 여기 '길'이란 광야를, '자산'이란 나무, 풀 한 포기 없는 민둥산을 각각 가리키는데, 그곳에 푸른 초장이 있다는 묘사는 후속절에 나오는 그 양떼를 먹이시는 목자되신 메시야의 이미지와 조화를 이룬다. 비록 메마른 광야를 다닐지라도 참목자되신 그리스도가 있으면 그 양떼들은 목마르거나 굶주리지 않는다는 영적 의미가 숨어 있다.
성 경: [사49:10]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 이것은 사막을 여행하던 대상(隊商)이 쉴만한 그늘이나 수풀을 만나게 되는 것을 연상케 한다(4:6;14:3;25:4;32:2). 목자되신 메시야를 통해 부여되는 보호, 쉼, 기쁨 등을 가리키는데, 신약에서도 동일한 이미지가 나온다:"...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계 7:16).
성 경: [사49:11]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모든 산을 길로 삼고 - 여기 '산'은 장애물을 상징하는 바, 본문은 그 장애물을 제거한다는 의미이다. 혹자는 여기 '산'을 복음 전파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역사적으로 로마라는 한 나라에 복속되었던 애굽, 시리아와 같은 큰 나라들로 보기도 한다(Vitringa).
성 경: [사49:12]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시님(*) - 성경에 한 번만 등장하는 용어이므로 이곳이 정확히 어딘지를 규명하기란 불가능하다. 70인역(LXX)은 '페르시아'로, 갈대아역은 '남부'로, 또 다른 학자는 '팔레스틴의 남부'로 각각 보고 있다. 특이할 만한 견해는 오늘날의 '중국'으로 보는 견해인데 이 견해는 당시 아라비아나 시리아 사람들에 의해 오늘날의 중국은 '시님'과 그 음역이 비슷한 '신', '친', '치니' 등으로 불리웠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Gesenius). 이렇게 견해가 엇갈리지만 분명한 것은 이곳이 팔레스틴으로부터 먼 곳이라는 사실이다. 이방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 혹은 이방인이 메시야의 복음을 듣고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의 구성원으로 소속될 것이다.
성 경: [사49:13]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하늘이여 노래하라...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 이것은 하나님께서 무생물인 자연을 그의 성가대로 부르신 이유이다. 그런데 여기 '위로'란 문자 그대로 억울하거나 힘든 경험을 한 사람에게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베푸는 정도의 선한 말이나 행동이 아니다. 본서의 특징은 동일한 사상을 계속 반복 심화시킨다는 점인데, 이곳과 유사한 사상을 피력하고 있는 44:21-23에 의하면 '위로'란 죄사함이다. 또 본서는 '의'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본서에서 '의'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그 무엇이다. 그런데 본서는 동시에 그 '의'가 메시야의 대속적 죽음을 통하여 만족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여기 '위로'란 메시야의 대속적 죽음을 통한 죄인들의 죄사함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놀라운 사실 때문에 자연까지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그 백성을 메시야를 통하여 구속하시는 근거는 그의 언약이다. '그 백성'이 언약적 용어라는 사실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성 경: [사49:14]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시온 -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포로지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이 마치 하나님이 그들을 그곳에 영원히 버려두시고자 한 것처럼 불평할 사실이 기록되고 있다. 본서의 집필 시점은 포로로 잡혀가기 100여 년 전인데, 그 성취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완료형이 사용되었다.
성 경: [사49:15]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보다 훨씬 승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표현은, 없는 사실을 일부러 가정한 것이 아니다. 인륜이 땅에 떨어지는 오늘날의 세태에서도 가끔 볼 수 있거니와, 당시 이방 부모들 가운데는 형편상 그의 어린 자녀를 버려서 죽어가게 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한다(롬 1:31, Barnes).
성 경: [사49:16]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손바닥에 새겼고 - 손바닥은 자주 들여다볼 수 있게끔 가까이에 있는 것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ꃨ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 이 표현도 계속 시선을 떼지 않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결국 본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로부터 멀리 계시거나 무관심하지 않다는 사실을 밝힌다.
성 경: [사49:17]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 원문 직역은 '네 자녀들은 서두를 것이다'이다. 무엇을 하기 위해 서두르느냐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 '자녀들'로 번역된 '바나이크'(*)는 '너의 아들들'로 또는 '너의 건축자들'(70인역)로 번역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서두르며 하는 일이란 건축에 관한 것이라는 암시를 추측케 한다. 그렇다면 본 구절은 포로 이스라엘이 그 무너진 성벽과 성전을 수축하기 위하여 서둘러 귀환할 사실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다.
성 경: [사49:18]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 원문 직역은 '살아 있는 내가 말하노니'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맹세의 중요한 한 형태인데, 이것은 이 맹세에 따르는 예언이 반드시 성취될 것에 대한 엄중한 확신을 내포한다(렘 22:24;겔 5:11;14:16, 18, 20;16:48).
ꃨ 네가 반드시...신부처럼 할 것이라 - 성경에서 시온은 흔히 신부에, 개심자들은 신부의 장식품에 각각 비유되고 있다(62:3;말 3:17). 여기서 시온의 자녀들이란 1차적으로 포로 귀환할 이스라엘 백성을, 2차적으로는 그리스도에게로 개심할 영적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이 후자의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완전한 회심을 이루는 수단이 될 것이다(미 5:7, 8;롬 11:12-15).
성 경: [사49:19]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 1차적으로는 귀환할 백성으로 인해 그 땅이 붐비게 될 것을 가리키나, 영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이 될 진정한 개심자들이 무수히 많을 것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본 암시는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주셨다(창 12:1-3;13:14-17 등).
성 경: [사49:20]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고난 중에 낳은 자녀 - 원문 직역은 '너희의 사별(死別)의 아들들'이다. 이는 남편과 사별한 사실보다는 자녀와 사별한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1차적으로 전쟁과 기근으로 말미암아 많은 자녀들을 잃어버린 예루살렘이 이제는 각처에서 돌아온 백성들로 크게 붐비게 될 것을 예언하는 말이다(Whybray). 그리고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 덕분에 믿음을 지니게 될 성도들에 대한 암시로도 이해된다.
성 경: [사49:21]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누가...생겼는고 - 이것은 1차적으로는 예기치 못한 회복을 목도한 시온의 즐거운 비명이며, 2차적으로는 영적 이스라엘의 행렬이 이방 각처에서 교회로 이어질 사실에 대한 암시이다. 이러한 사실에 따른 탄성, 비명은 행 10:45에서 가장 먼저 성취되었다:"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Fausset).
성 경: [사49:22]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열방을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 손을 쳐든다는 것은 환영의 표시이다. 하나님은 이방인이 메시야를 받아들이는 복된 대열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을 부르고 환영하신다는 것이다(11:11).
ꃨ 그들이 네 아들들을...올 것이며 - 어느 정도 자란 아이는 어깨에 올려 놓고 아주 갓난 아이는 가슴에 안은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이 표현은, 이방인들이 혈통적 이스라엘과 함께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에 구성원으로 가입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성 경: [사49:23]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본절의 이미지들은 보호, 복종 등을 그리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땅 위의 권세잡은 자들에 의해 보호받고 또 그들을 복속시킬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일례로, 이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國敎)로 공인된 사실이나 기독교의 영향력이 로마 전체에 미쳤던 사실은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되겠다.
성 경: [사49:24]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바벨론의 함락에 대한 예언]
ꃨ 용사의...있으랴마는 - 바로 뒤에 강한 긍정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부정의 문구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의 포로된 백성을 해방시킬 뿐 아니라 나아가 신약 교회 시대에 핍박 받는 그의 성도들을 핍박으로부터 보호하실 것에 대한 강한 암시이다(Fausset, Clark).
성 경: [사49:25]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바벨론의 함락에 대한 예언]
ꃨ 대적하고...구원할 것임이라 - 문자적인 뜻은 '싸워서...구원할 것이다'이다(54:17). 전쟁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세상 군왕들과는 달리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무기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바로 그것이었다. 그 무력해 보이는, 그러나 진정 강한 그 무기를 가지고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셨다.
성 경: [사49:26]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바벨론의 함락에 대한 예언]
ꃨ 자기의 고기를 먹게 하며...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 적의 자중지난(自中之亂)을 암시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대적은 서로 치고 받아 스스로 멸망할 것이다(계 16:6).
성 경: [사50:1]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이스라엘의 죄악]
ꃨ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 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 여기서 시온은 아내, 유대인은 자녀들, 그리고 하나님은 남편과 아버지로 비유되고 있다(54:5;62:5;렘 3:14). 율법에 따르면, 한 가정의 가장은 아내에게서 결격 사유를 발견하면 합법적으로 그 아내를 내보낼 수 있었는데 그때 이혼장을 주었다(신 24:1). 그런데 악한 가장들은 아내를 내보내는 행위를 정당화 시킬 때 이 율법대로 이혼장을 써주었다(마 19:7 참조). 뿐만 아니라 악의가 없는 가장들도 채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할 때 자녀들을 종으로 팔기도 하였다(출 21:7;왕하 4:1;느 5:5). 그런데 본절에서 하나님은 아내된 이스라엘과 자녀된 그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것은 하나님이 팔았기 때문에, 그리고 이혼 증서를 써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에 대한 징벌 때문인 것을 밝히기 위해 이스라엘이 익히 알고 있는 한 율법 조항을 사용하여 설명하신 것이다. 이 설명 속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인연은 잠시 중단된 것이며 한 남편이 그 아내와 자녀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듯이 이스라엘이 징벌의 의미를 깨닫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합법적으로 그 관계를 회복하실 수 있다는 암시가 내포되어 있다(Horsley).
성 경: [사50:2]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이스라엘의 죄악]
ꃨ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 마치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강림하신 적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 표현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던 사실을 암시한다(렘 7:25, 26).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듣지 않자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선지자로 이 땅에 보내셨는데 그리스도의 선지자되심은 베드로의 설교 속에 잘 드러난다(행 3:22-26).
ꃨ 내 손이 어찌 짧아...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 길게 뻗은 손은 '능력'을, 그 짧은 손은 '연약함'을 상징한다(59:1, Fausset).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갔고 그 수치스러운 생활이 지속되는 것은, 하나님이 무능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에 대한 징벌의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암시가 들어 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우매한 이스라엘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계속 묘사된다.
ꃨ 거기 물이...되느니라 - 어떤 학자는 근종 사막 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렬한 태양 광선으로 강줄기가 말라 그곳에 있던 물고기가 죽은 현상에 대한 묘사로 보지만(Barnes), 그것보다는 출애굽 전, 애굽의 하수가 피로 변하여 그곳의 물고기가 죽고 악취를 풍겼던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묘사로 보는 것이 더 문맥적이다(출 7:18-21).
성 경: [사50:3]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이스라엘의 죄악]
ꃨ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출애굽 전 하나님이 애굽 땅에 내리셨던 흑암 재앙을 가리킨다(출 10:21, 22).
ꃨ 굵은 베로 덮느니라 - '베'는 그 피륙의 조직 상태가 조잡하고 어두운 색으로 되어 있는 천으로, 애도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삼하 3:31). 그러나 본절에서는 애도의 상징보다는 그 색이 검다는 사실 때문에 언급되었으므로 본절의 상반절과 동의적 개념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2절에서는 땅 위, 본절에서는 하늘에 일어난 초자연적 현상을 대비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온 우주를 향해 그 능력을 발휘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증거한다.
성 경: [사50:4]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메시야의 순종과 승리]
본절부터는 화자(話者)가 바뀌고 있다. 이 화자가 누구를 가리키느냐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본서 저자인 이사야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경우, 8절은 이사야가 바벨론 정부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는 사실에 대한 묘사라고 한다. 물론 이사야가 심문을 받는 이유는 바벨론이 바사에게 곧 멸망할 것을 예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Whybray, J. Watts).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이사야가 바벨론 정부에 체포되어 심문받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구절은 없다. 다른 하나는 메시야로 보는 견해이다. 초대 교회 시대 이후 지지를 받아왔던 이 견해는 결정적인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6절을 인용하여 그 자신에게 적용시키셨던 사실을 들고 있다(눅 18:31, 32). 이 결정적인 단서를 빼고서 객관적으로 볼 때도 철저하게 능욕당함(6절), 여호와로 인한 궁극적 승리(8절) 등은 이사야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메시야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증거들이라 하겠다.
ꃨ 곤핍한 자 - 문자적인 뜻은 '지친 자'이다. 죄 의식으로 눌려 있는 자 혹은 무거운 짐을 지고 견딜 수 없어 하는 자 등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성 경: [사50:5]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메시야의 순종과 승리]
ꃨ 귀를 열으셨으므로 - 이 표현은 가르침의 전달이나 임무 수여를 뜻할 때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룻 4:4;삼상 9:15). 메시야는 인류 구속의 성취라는 막중한 임무를 하나님께 받으셨다. 비록 그 임무 수행에는 온갖 고통이 따르지만 그분은 그것을 기꺼이 수행하셨다.
성 경: [사50:6]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메시야의 순종과 승리]
ꃨ 나를 때리는...등을 맡기며 - 물론 이사야 자신도 이 같은 유(類)의 시련을 전혀 당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다 엄격한 의미에서 이 표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성취되었다(마 27:26;눅 18:33).
ꃨ 수염을...맡기며 - 수염은 당시 사회에서 일종의 영예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 수염을 자르거나 뽑는다는 것은 최고의 모욕 중 하나였다. 특히 이 같은 행위를 하는 자들은 사악한 자들로 간주되었다. 로마의 악한 소년들 중에는 족집게로 학자들의 긴 수염을 뽑는 못된 습관을 지닌 자들이 있었다고 한다(Hengstenberg). 이 무례하고 사악한 부류에게 메시야되신 그리스도께서는 빰을 맞으셨다(마 26:67;눅 18:32).
ꃨ 침 뱉음 - 누구의 면전에서 다른 곳을 향해 침을 뱉는 것은 모욕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더구나 그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모욕이었다. 바로 이 모욕을 그리스도께서 당하셨다(눅 18:32;막 14:65;15:19).
성 경: [사50:7]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메시야의 순종과 승리]
고통을 통하여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을 아시고 자신에게 퍼부어지는 모든 오욕을 인내로 이겨내실 것임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ꃨ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 성경에서 마음, 이마, 얼굴 따위를 굳게 한다는 표현은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 모두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부여된 임무를 고통이 따르더라도 끝까지 완수할 것이라는 각오가 담겨져 있다:"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미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네 이마도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겔 3:8, 9).
성 경: [사50:8]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메시야의 순종과 승리]
ꃨ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 여기 '의롭다 하심'이란 죄인을 의롭다 하는 칭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이 메시야의 의롭고 무죄하신 품성을 인정하고 드러내심을 가리킨다.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의 사역 과정에서 이 사실은 잘 드러난다. 먼저 그가 침례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들려온 소리를 통하여(마 3:17), 그가 행하신 기적을 통하여, 빌라도 아내의 입을 통하여(마 27:19), 심지어 십자가 사건을 목격한 로마 백부장에 의해서(눅 23:47) 그의 의로움이 증거되었다. 결국, 이는 그의 공생애 전체가 하나님의 인정 속에 되어졌다는 것을 입증하며 그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사 하늘로 오르셔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사실을 통하여 그의 의로우심은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ꃨ 나의 대적이 누구뇨(*, 미 바알 미쉬파티) - 문자적인 뜻은 '누가 나의 재판의 주인이냐'이다. 얼핏 보면 재판장이 누구냐는 질문으로 보이나, 문맥상 '나의 의로움을 인정하지 않고 나의 불의함을 선고하기 위하여 재판을 걸어오는 자가 누구냐'라는 의미의 질문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 누가 재판을 걸어봐도 결국 메시야 자신의 의로움은 인정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다(Barnes, Fausset).
성 경: [사50:9]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메시야의 순종과 승리]
ꃨ 주 여호와께서...누구뇨 - 사도 바울 역시 이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하였다:"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성 경: [사50:10]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여호와를 의지하라는 권고]
ꃨ 너희 중에...누구뇨(*, 미 바켐) - 이 표현을 이해하는 견해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본절이 묘사하는 대상, 곧 경건한 자의 숫자가 매우 적을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며(Hengstenberg), 다른 하나는 단순히 '누구든지' 정도의 의미를 지니는 부사로 보는 견해이다(Fausset). 문맥상 후자가 타당하다고 본다. 본절에서 메시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혹독한 재앙에 처해 있을 때에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 하지 말고 메시야 자신을 본받아 자신들을 신실한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의탁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성 경: [사50:11]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여호와를 의지하라는 권고]
ꃨ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 - 원문 직역은 '섬광(불꽃)으로 너 자신을 둘러쌀 불을 지피는 자'이다. 여기 '섬광(불꽃)'이란 지속적으로 타는 것이 아니라 잠시 큰 광채를 내지만 곧 스러지고 마는 문자 그대로의 불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본 구절이 암시하는 바는, 인생 여정에서 역경을 만날 때 자신의 보잘것 없는 능력으로 그것을 헤쳐보려고 애쓰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계시보다는 영매, 마법 등에 의존하는 영적 무지에 빠졌던 백성들 혹은 인간 철학의 교묘한 올무, 거짓 종교, 무신론, 자기의 등에 빠져 있는 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은 결국 그 의존하는 것으로 인하여 멸망하고 만다. 이것은 마치 빛과 열기를 기대했던 불에게 삼키움을 당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아무튼 10절과 본절은 인생 여정, 특히 역경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와 자신이나 우상을 의지하는 자를 비교하고 그 결과를 뚜렷이 대조시킨다.
ꃨ 섬들 민족들 - 전자는 '이임'(*)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를 가리키는데 당시 팔레스틴에서는 블레셋, 페니키아 등이 그런 나라들이겠다. 그러나 '이임'이 후자 곧 '민족들'로 번역된 '레우밈'(*)과 나란히 사용할 경우, 이것은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들을 포함한 세계 모든 민족들을 가리킬 수 있다. 서로 변론하자 - 문자적인 뜻은 '함께 재판하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논쟁하다', '조목조목 따져 보다'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논쟁을 통하여 가려볼 사실은 각 열방들이 각각의 신들을 신뢰하고 있는 이유 및 참신은 과연 누구냐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혹자는 이렇게 본 구절을 번역하고 있다 : '자함께 엄숙한 토론의 장으로 들어가 보자'(Lowth).
성 경: [사41:2]
본절 상반절의 맛소라 원문 직역은 이와 같다 : '누가 동방에서 일으켰느냐. 그 의가 그 발 뒤를 따르리라.' 본절에는 두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전자는 완료형인 '일으켰느냐'로 번역된 '헤이르'(*)이고 후자는 '이르게 하였느뇨'로 번역된 '이크라에후'(*)로서 미래형이다. 자유주의 학자들은 40-66장을 제2이사야서로 보고 그 저작 시기는 포로기 말엽 혹은 포로 귀한 후로 추측하는데, 더욱이 '혜이르' 곧, 완료형이 사용된 것은 그 당시 이미 활약 중이던 고레스를 지칭하는 것이라 단정한다. 그러나 또 다른 동사가 분명한 미래형이며 그 내용도 미래적임을 고려할 때, 이 완료형 동사는 예언 성취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이해된다. 아울러 하나님이 사용하기 위하여 세운 동방의 사람은, 고레스가 그 그림자인 미래에 임하실 메시야를 예언적으로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성 경: [사41:3]
ꃨ 안전히 지났나니 - 여기 '안전히'의 원문 직역은 '평화롭게'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으킨 인물이 정복 사역을 감당하되 그 사역은 피를 흘리게 하는 폭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하게 암시한다.
성 경: [사41:4]
ꃨ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命定)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 문자 그대로는 '시초부터 시대들을 불러서 존재케 하신 분이 누구냐?'는 뜻인데 여기 역사적 의미의 시간을 의미하는 '도르'(*)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본 구절이 강조하는 바는 역사의 주제 곧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인 것이 분명하다. 앞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능력, 유일 독특성과 이스라엘의 소망이 하나님께만 있음이 언급된 후에 비록 열국과의 변론 형식을 취하긴 하지만 동방에서 사람을 불러내어 세계를 정복케 하리라는 언급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본문에서 특히 역사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앞으로 하실 일이란 그 인물을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
성 경: [사41:5]
섬들, 땅 끝, 곧 세계 만민을 놀라 떨게 할 대상이 생략되어 있지만 문맥상 동방에서 일으킬 한 인물이 바로 그 대상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성 경: [사41:6]
ꃨ 담대하라 - 원문 직역은 '강하라'이다. 이것은 한 인물의 출현으로 온 세계가 떨면서도 내놓는 자구책의 일종인데, 그것은 서로 용기를 불어넣어 주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것이다.
성 경: [사41:7]
본절은 두려워하는 역국이 서로 용기를 불어넣어 주면서 도모하는 자구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우상 손질이며 그 묘사는 회화적이다. 즉, 본절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초월한 상황이 닥칠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서도 인간의 지혜, 능력을 대변하는 우상을 손질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분주함을 그림을 보여주듯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사41:8]
ꃨ 나의 종 야곱 아브라함의 자손 - 먼저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위해 그의 도구로 택함받은 존재를, 두 번째는 족장사에서 최종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선택된 존재를, 세 번째는 아브라함의 약속의 상속자 곧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임을 각각 함축하는 호칭들이다. 본 예언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역하다가 심판당하여 노예로 잡혀감으로 온 나라가 없어진 상황인데,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그의 뜻을 이루는 당신의 도구로 부르신다. 그렇다면 족장사를 통해서 택한 이스라엘의 선택은 아직도 유효하며,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속에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아브라함의 씨로서 하나님이 세우기로 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이자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사41:9]
ꃨ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 이는 하나님이 땅 끝과 같이 먼 곳에까지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과 여전히 관계를 맺고 계심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선택의 유효성은 불변한다는 사실이 재차 강조되고 있다.
성 경: [사41:10]
ꃨ 놀라지 말라(* , 알 티쉬타) - 여기 '티쉬타'(*)는 '보다', '주시하다'의 뜻인 '솨아'(*)에서 온 말로서 다급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눈을 크게 뜨고 그 대상을 주시하는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이스라엘이 이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한 사실의 유효성은 아직 불변함 곧 하나님이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성 경: [사41:11]
ꃨ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 수치와 욕을 당한다는 것은 정복당하고 멸망한 개인이나 단체를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다. 한편 40장이 주는 바벧론으로부터의 유다를 구한다는 수동적 측면을 다룬다면, 본장은 여기 보듯이 역으로 적국들을 완전히 정복한다는 구원의 적극적 측면을 다룬다. 물론 이 예언은 메시아의 초림에 따른 복음의 영적 승리와 재림에 따른 메시아의 종말론적 승리를 복합적으로 예언한 내용이라고 보아도 무난하겠다.
성 경: [사41:12]
ꃨ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 이 표현은 그 흔적을 찾을 수조차 없게 될 정도로 말끔히 치워버린 존재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36:37 참조). 대적의 멸망으로 입증될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같은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성 경: [사41:13]
ꃨ 나 내가 - 둘다 원어로는 1인칭 강조사인 '아니'(*)로서 다른 성경 특히 다른 선지서들에 비해 월등히 많이 본서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14-46, 48, 49, 52장 등에서 지배적으로 나오고 있다. 중재자를 가운데 두지 않고 직접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심을 강조할 때 사용되기도 하는 이 강조사는 본절에서 하나님이 힘을 주고 도우실 것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J. Watts).
성 경: [사41:14]
ꃨ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 '지렁이'에 해당하는 '톨라아트'(*)는 부패한 물질에서 생겨나는 벌레(14:11;출 16:20) 혹은 식물을 파괴하는 해충(신28:39;욘4:7)등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흔히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자의 상태를 묘사할 때 사용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무력하고 무가치한 존재로서의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성 경: [사41:15]
ꃨ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같게 할 것이라 - 본서에서 산, 언덕은 정치적 권세를 쥔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을 이스라엘이 부숴뜨린다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이스라엘의 대적임에 틀림없다. 한편 앞 문맥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에게 노하던 자가 멸망한 것이라고만 말했는데, 본절에서는 좀더 적극적으로 무가치한 이스라엘이 힘이 있는 세계 열강들을 무너뜨릴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복자로서의 이스라엘을 제시하고 있는데 본장 초두와 이 사실을 연결시킬 때, 동일하게 정복자로 묘사된 초두의 한 인물과 이스라엘은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는 특별한 의미가 파악되어진다.
성 경: [사41:16]
ꃨ 그들을 까부른즉 - 문자 그대로 키질을 의미한다. 타작한 곡식을 바람이 부는 가운데 키질을 하면 알곡은 채 안에 남고 껍데기는 날아가버리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 표현은 본 문맥에서 이스라엘을 통한 대적의 완전한 멸망, 이스라엘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한다.
ꃨ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 고대 사람들은 폭풍 혹은 회오리 바람이 사람을 휩쓸어 버린다고 믿었는데, 아마도 대적의 완전한 멸망을 생생하게 인식시키기 위하여 당시 사람들이 익숙해 있던 믿음에 호소하는 것 같다.
성 경: [사41:17]
ꃨ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 물은 생명을 보존케하는 중요한 수단인데, 그것이 없어서 구한다는 것은 생명 유지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는 의미이다. 40:3에서 나온 바있는 '광야'란 심판, 죽음의 땅을 의미했는데, 본 구절과 관련시켜 볼 때 그 광야는 징계 아래있는 이스라엘의 상태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물을 찾을 수 없어 그것을 구하는 상태란, 하나님의 극심한 징계 아래에 있는 상태를 암시한다 하겠다.
성 경: [사41:18]
ꃨ 자산 - 문자적인 뜻은 '메마른 고지(高地)'로, 토질이 척박하여 나무 한 그루 없는 벌거숭이 산들을 가리킨다(욥33:21;렘3:2;7:29등).
ꃨ 강 - '네하로트'(*)로서 문자적인 뜻은 '강들'이며 생수의 풍성함을 암시한다.
ꃨ 못 -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나 항상 생수가 비축되어 있는 오아시스 비슷한 곳이다. 이상 몇 단어들의 의미를 주해해 본 결과가, 본절은 생수공급이 불가능한 땅을 근원으로 만들겠다는 놀라운 약속을 담고 있다.
성 경: [사41:19]
본절에서 하나님은 식물의 생장(生長)이 불가능한 광야에 온갖 수목이 자라게 하겠다고 약속하시는데, 이 약속은 단순히 바벧론 포로로부터의 귀환 정도만을 암시한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특히 광야에 생수를 공급하는 이미지는 그리스도를 연결시키지 않고는 그 온전한 의미를 깨달을 수 없다(고전 10:1-5).
성 경: [사41:20]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었으나 원문에는 본절 초두에 '... 을 위하여', 곧 목적을 의미하는 전치사 '레마안'(*)이 붙어 있다. 즉, 본절은 하나님께서 '가련하고 빈핍한 자'(17절)에게 초현실적 긍휼을 베푸시는 목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목적은 보고, 알고, 체험하여, 곧 깊이 숙고하고 그 뜻을 상고하여 오직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베푸심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성 경: [사41:21]
ꃨ 소송을 일으키라 - 문자적 뜻은 '너희 건을 내놓으라'인데, 이것은 너희 입장이 옳다는 것을 제시해보라는, 즉 시비를 따져 보자는 의미이다. 또한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는 그 문자적인 뜻이 '너희 강한 것들을 제시해 보라'로서 소송 사건에서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킬 논거(論據)를 펴보이라는 의미이다. 그 논거의 핵심은 참신의 증거이다. 바로 앞 문맥에서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는 목적은 그 백성으로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나서 바로 열국의 신들을 헛되고 하나님만이 참신으로서 유일하게 영광과 찬송을 받을실 만한 분임을 강조하기 위함이 분명하다.
성 경: [사41:22]
ꃨ 장차 당할 일 이전 일 - 전자는 미래사를, 후자는 과거사를 각각 의미한다. 과거사와 미래사를 구별하여 양쪽 다 말해보라는 것은 한마디로 누가 역사의 주관인가에 의해서 참신의 여부를 가려보자는 의미이다. 진정한 역사의 주관자는 과거 역사가 어떤 경륜, 계획에 의해 일어났는가를 알고 또 미래의 역사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경륜의 의미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성 경: [사41:23]
ꃨ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 원문 직역은 '선을 행하든지 악을 행하든지 하라'이다. 우상이 추종자를 옹호하고 그 대적들을 좌절케 하기 위하여 자신이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만한 무언가를 행해보라는 뜻이다. 이 표현들은 이방 우상들이 무능한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한 역설적 표현이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동일한 강조를 위하여 그들을 벙어리, 귀머거리, 움직이지 않는 것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시115편등).
성 경: [사41:24]
이와같이 이사야가 우상들의 무력함을 만방에 공포하는 까닭은 우상 숭배자들의 어리석음과 가증함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정치 권력, 경제적인 부(富), 군사력, 과학 기술 등을 숭배하는 자들이 허다하다.
성 경: [사41:25]
앞에서는 우상들과의 비교를 통해 오직 하나님만이 미래사까지 결정하시는 참신임을 논증하고자 했다. 이제 본절로부터는 그러한 논증의 실례를 증거로서 제시한다.
ꃨ 내 이름을 부르는 자 -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이를 고레스에 대한 지칭으로 보는 데에 동의한다(G. W. Grogan, Whybray). 한편 본문과 같은 호칭은 반드시 고레스가 개종자가 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실현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무관하겠다.
성 경: [사41:26]
ꃨ 누가 처음부터 알게 하였느뇨 - 본문은 우상 숭배자들 가운데 25절에서 언급된 인물의 출생, 성품 등에 관하여 예언한 자가 하나도 없다는 의미로도 이해된다. 이 같은 의미에 이르게 하는 것은 '처음부터'를 출생에 따른 성품 등으로 해석한 결과이다(Barnes). 그러나 문맥적으로 볼 때 역사의 미래사나 과거사를 주관하는 존재가 하나님 외에 있었느냐는 질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 경: [사41:27]
ꃨ 기쁜 소식 전할 자 - 본절이 포로 귀환과 관련된 예언임을 고려할 때, 본문은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재건 운동을 일으켰던 스룹바벧, 느헤미야, 에스라 등과 같은 인물에 적용될 수 있겠다(J. Watts).
성 경: [사41:28]
본절은 이방세계의 선지자를 가장한 자들 가운데 미래사를 정확히 예언할 존재는 하나도 없음을 강조한다.
성 경: [사41:29]
본절은 이방 선지자들이 미래지사를 예언할 수 없는 까닭을 말함으로써 1절에서 제시한 논쟁을 결론짓고 있는데, 그 까닭이란 그들이 미래지사를 알려주기는 커녕 그 존재 자체가 무력하기 짝이 없는 우상들을 숭배하였기 때문이다.
성 경: [사42:1]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나의 종...나의 택한 사람 - 이 두 용어는 동격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전자는 구약에서 아브라함이나 모세 혹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된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걸출한 활약을 보였던 인물들에게 자주 사용되었다. 본절에서 이 인물은 하나님의 신을 받은 자로 묘사되고 있는데 본문의 문맥상 이상적인 통치자 곧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11:2에서는 다윗 계통의 왕에게 동일한 신이 임할 것을 예언한 바 있다.
성 경: [사42:2]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 '외치지 아니하며'와 마찬가지로 본 구절 역시 격렬한 분쟁 중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크고 분에 찬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본절이 묘사하고 있는 왕은 칼과 창으로 신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고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했던 고레스와는 그 모습이 전혀 다르다. 즉, 이분의 통치 방식은 세속적인 정복자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성 경: [사42:3]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 여기 '갈대'는 늪이나 습기가 많은 지대에서 서식하는 연약한 줄기 따위를 의미하는데, '상한 갈대'란 바람 때문에 그 연약한 줄기가 상처를 입지만 꺾이거나 뽑히지는 않는 갈대를 말한다. 본문은 마치 상한 갈대와 같이 연약하고 결점투성이인 인생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은혜로써 강하게 세워주시는 메시야의 구원 사역을 말한다.
성 경: [사42:4]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 문자적인 뜻은 '섬들이 그의 법을 고대한다'인데, 이것은 1, 2절이 묘사한 분의 의로운 통치를, 열방을 포함한 온 세계가 바란다는 뜻이다.
성 경: [사42:5]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호흡을 주시며...신(神)을 주시는 -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는 뜻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온 만물에 대한 통치권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 그의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특정 인간을 취하여 중개자로 삼으신다는 점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6절 이하에는 하나님의 종의 사역에 대해 다룬다. 결국, 본절은 창조주이시고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그 종의 사역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암시한다.
성 경: [사42:6]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백성의 언약 - 종의 사역 중 하나가 소개된다. 그 내용은, 종의 사역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언약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짐을 암시한다. 즉, 메시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을 회복, 완성시키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역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의미를 상기해야 할 것이다:"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이 새 언약은 혈통적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 곧 영적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다.
ꃨ 이방의 빛 - 본 사역은 종의 구원이 땅 끝까지 이르게 하는 것, 곧 열방에 생명의 축복을 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그를 찾아온 헬라인(이방인)과 나눈 대화 속에서 밝혀졌다:"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 초대 교회 당시 그리스도의 이러한 취지를 가장 활발하게 받든 인물은 바로 바울 사도였다.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리라"(갈 2:8).
성 경: [사42:7]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소경의 눈...갇힌 자...흑암에 처한 자 - 종의 사역을 설명하는 본절에서 등장하는 이 용어들은 종의 사역의 내용을 깨닫게 한다. 얼핏보면, 이 용어들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된 상태에 대한 암시로 생각된다. 특히 '갇힌 자', '흑암에 처한 자'는 바벨론에 포로된 상태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생각될 수 있겠다. 그러나 '소경의 눈'은 포로 상태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이 표현은 본서에서 영적 무지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43장). 본문의 종의 사역도 영적 무지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문맥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메시야의 놀라운 계시로 말미암아 흑암과도 같이 캄캄한 무지 상태로부터 찬란한 구원의 빛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눅 4:18).
성 경: [사42:8]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 '여호와'라는 칭호의 뜻은, 하나님이 친히 모세에게 가르쳐 주신 바와 같이 '스스로 있는 자'로서(출 3:14), 초월적이며 절대적인 주권자이심과 함께(창 21:33;시 90:2;139:7-12) 언약의 주체이심을 강조하는 이름이다(출 3:7-15 주제 강해, '하나님의 이름' 참조).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스스로 나타내시는 까닭은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만 찬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다.
성 경: [사42:9]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메시야의 사역]
ꃨ 전에 예언한 일...새 일 - 계속해서 과거사와 미래사가 제시되는데, 이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며 참신이심을 보이는 증거이다. 한편 '전에 예언한 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때까지 전달되어졌던 모든 예언을 가리키며, 그중에서도 특히 39:5-7의 예언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새 일'이란 1차적으로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을 가리키며, 더 나아가서는 메시야 시대의 위대한 영적 해방을 시사한다.
성 경: [사42:10]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여호와 찬양의 권고]
ꃨ 섬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임'(*)은 먼 곳, 땅 끝까지를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되나, 여기서는 전세계 민족을 가리키고 있다.
ꃨ 새 노래로...찬송하라 - 문맥상 여기 '새 노래'는 하나님의 놀라운 새로운 구원 역사에 감격하여 땅 끝까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이다. 이는 궁극적인 의미에서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은혜를 감사, 찬양하는 것이다.
성 경: [사42:11]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여호와 찬양의 권고]
ꃨ 게달 사람의 거하는 촌락들 - '게달'은 이스마엘의 후손의 이름(창 25:13)이나, 후에 아라비아 사막을 '게달'이라 불렀다.
ꃨ 셀라의 거민들 - '셀라'(*)의 문자적인 뜻은 '바위'이며, 후에 '페트라'(Petra)로 알려진 에돔의 성읍을 가리키는 듯하다(Whybray).
성 경: [사42:12]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여호와 찬양의 권고]
ꃨ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선전할지어다 - 다시 온 세계를 가리키는 용어인 '섬들'이 등장하고 있다. 저자는 온 세계에 구원을 베푸시고자 하는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성 경: [사42:13]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여호와 찬양의 권고]
ꃨ 용사...전사 - 하나님께서 강력한 권능으로 그 대적을 쳐서 멸하실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2, 3절에 나타난 메시야의 한없이 자애롭고 부드러운 모습과 모순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원의 실체를 아는 자들은 이 두 모습이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외견상 무력하기 짝이 없어 보였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강력한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도리의 위대한 구원의 능력이 되었다(고전 1:22-24).
성 경: [사42:14]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
ꃨ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 - '숨이 차서'에 해당하는 '에숌'(*)은 원래 산고 중에 있는 여인이 내뿜는 거친 호흡을 뜻하지만, 문맥상 매우 강도가 높은 분노를 암시하는 말로 이해된다. 또한 '심히 헐떡일 것이라'의 히브리어 '에쉬아프'(*) 역시 거친 호흡을 뜻하는데, 특히 급박하게 대적을 쫓을 때 내뿜는 분노의 콧김을 가리킨다. 이 두 용어는 문맥상 용사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앞절과 연결되어 있다. 오랫동안 그 백성의 고통을 지켜 보시던 하나님은 이제 일어서시어 활동하실 것인데 그 활동 내용은 후속절에 이어지고 있다.
성 경: [사42:15]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
본절의 '큰 산', '작은 산' 등은 하나님과 그 백성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들을 가리키며, '강들'은 그들의 활동을 가능케 하는 동인(動因)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성 경: [사42:16]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
바로 앞 구절들에서 그의 대적에 관해 말쓰마신 하나님은 이제 그 대상을 바꿔 당신의 백성에 관하여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주목할 구절은 소경된 그들을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끄실 것이라는 내용이다. 하나님이 이끄실 이 길은, 단순히 포로 귀환으로만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이 길은 이스라엘이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새 길을 말한다. 특히 본장의 주된 문맥이 메시야의 구원에 관해 말하고 있음을 볼 때, 이 길은 이스라엘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방법의 구원을 암시한다. 여기서 우리는 영적 소경들의 참 목자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된다.
성 경: [사42:17]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
본절은 구약 성경에서 자주 취급되는 우상 숭배자들의 불행한 종말을 다루고 있다(시 35:4;70:3;97:7;겔 16:52 등). 그러나 16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볼 때 본절의 핵심은 우상 신뢰자들의 불행한 종말보다는 이스라엘을 소경으로 만들어버린 요소로서의 우상, 헛된 신에 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바로 깨닫고 회개한 자들도 예전에는 그러한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8절 이하에서는 또 다른 차원의 소경, 귀머거리가 언급된다.
성 경: [사42:18]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ꃨ 귀머거리들...소경들 - 16절에서 언급되었던 소경이 재언급되고 있고, 또 다른 부류인 귀머거리가 첨가되고 있다. 여기 '귀머거리'란 듣는 능력을 상실한 자를 뜻하지만, 문맥상 영적 분별력, 참진리에 대한 이해력을 결여한 자를 뜻한다(20절).
성 경: [사42:19]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ꃨ 소경이...내 종이 아니냐 -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수행해야 할 종이 영적 소경이었다.
ꃨ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 여기 '사자'는 '메슐람'(*)인데, '보내심을 받은 자'로 고쳐 읽는 자도 있으나 원문상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자',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자'로 해석하는 편이 낫다. 본절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특별한 일을 행하기 위하여 택하신 대상인 이스라엘이 귀머거리요 소경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큰 아이러니이다.
성 경: [사42:20]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ꃨ 많은 것 - 재앙이나 환난으로부터의 기적적인 구원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다양한 구원 행위들을 뜻한다.
ꃨ 귀는 밝을지라도 - 문자적인 뜻은 '귀는 열렸으나'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선조로부터 전승되어 오는 가르침, 곧 율법의 말씀을 열심히 들었던 것을 가리킨다(Barnes). 그들은 목격하고 들었으나 그 보고 들은 내용들의 참의미는 깨닫지 못하였다.
성 경: [사42:21]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ꃨ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 원문 직역은 '자기의 의로우심을 위하여'이다.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의의 수준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엄과 의로우심을 나타내신다는 뜻이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이 의로우시므로 그 백성도 마땅히 의로워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편, 여기 '의'(*, 체데크)는 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떤 학자가 말했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의를 생각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수 없다(Murray). 이 같은 사랑과 의의 밀접성을 전제로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죄인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죄인을 죄없다 할 수 없는 공의를 동시에 총족시키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것이다.
성 경: [사42:22]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의 계시를 받는 등 선민으로서의 온갖 특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존귀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모습 곧 약탈당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비참한 모습을 자초한 이스라엘의 비극상이 제시된다.
성 경: [사42:23]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ꃨ 이 일(*, 조트) - 이스라엘이 당한 비참한 포로의 현실 혹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율법의 계시를 가리킨다.
성 경: [사42:24]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본절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심판당하고서도 심판당한 이유를 깨닫지 못한 사실을 반문하는 형식을 통하여 들춰내고 있다.
성 경: [사42:25]
주제1: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 사역]
주제2: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ꃨ 그 사방으로 불붙듯하나 깨닫지 못하며 - 다시 한번 이스라엘의 영적 소경됨이 지적되고 있는데 그 소경됨이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무지, 듣지 않으려는 완악함 그리고 당하고 있는 현실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그런 의미에서 소경이요 귀머거리였다. 이쯤되면 본장 앞부분에 언급된,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인 종의 중요한 사역의 의미를 읽을 수 있겠다(7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사역 중 가장 주요한 것이 바로 백성의 영적 무지와 맹목을 깨우치는 것이었다.
성 경: [사43:1]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너를 조성하신 자 - 여기 '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대표 단수로 쓰였다. 이스라엘이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역사 초두에서부터 분명히 드러났다. 한편, 하나님이 교회를 친히 세우시고 붙드시고 다스리신다는 확신이 무너질 때 우리에게는 기쁨과 평안이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인간적 노력과 재주를 부리는 인본주의나 이적만을 구하는 신비주의로 빠져 버릴 수 있다.
ꃨ 두려워 말라 - 이 말씀은 앞장의 마지막 내용과 관계가 있다. 앞에서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을 심판의 하나님이 아닌 소망의 하나님으로 알고 바라보고 의지하라는 것이다.
ꃨ 구속하였고 - 히브리어 '가알'(*)은 대가를 지불하고 무엇을 살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지금 이 용어는 그 죄로 멸망당한 이스라엘에게 적용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죄 때문에 포로라는 징벌을 받고 있는데, 이 징벌 자체가 그들의 죄악을 깨끗이 씻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 대가란 새로운 차원의 무엇을 기대케 한다. 그 자세한 의미는 53장에서 밝혀질 것이다.
성 경: [사43:2]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 이는 극심한 위험이나 재앙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 은유로서(시 66:12 참조),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우 익숙한 표현이었다. 특히 물 가운데로 지난다는 것은 출애굽의 모티브와 연관된다(Whybray).
성 경: [사43:3]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애굽을...속략물로, 구스와 스바를...대신(代身)으로 - 심지어 다른 열방을 희생시켜가면서 까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신다고 하는 이 말씀은 택한 자를 위한 특별하신 사랑과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보여준다. 한편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바사 왕 고레스의 애굽, 구스 및 스바 정복 계획과 연관되는 것 같다. 하나님은 고레스에게 이 열방들을 공략하도록 허락하는 대신 유대인의 귀환과 예루살렘 재건을 돕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실제로 고레스가 애굽을 침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와 다리오 1세는 애굽 정복을 위한 발판으로 팔레스틴을 이용했다(J. Watts).
성 경: [사43:4]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내가...사랑하였은즉 -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은 그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월등하게 선하거나 의로워서가 아니라 오직 당신의 주권적인 사랑에 기인하여 그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하신 것이다(벧전 1:7, 19 참조). 본절 전체 또한 출애굽 기사와 B.C. 6세기와 5세기의 근동의 정치 상황에 동시에 연관된다(J. Watts).
성 경: [사43:5]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유대인 포로 귀환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는 본절의 예언은 B.C. 538년 고레스 칙령으로 성취되었다.
성 경: [사43:6]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놓으라...구류하지 말라...이끌며...오게 하라 -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온 세상의 통치권을 갖고 계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하여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시온으로 향할 수 있도록 놓으라고 명하시는 것을 당연히 하실 수 있는 일이며, 따라서 이제 땅은 그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성 경: [사43:7]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 - 하나님의 창조 목적, 특히 땅 위에 그의 택한 백성을 두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 때문이다. 이는 에베소서의 한 구절을 상기케 한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5, 6).
성 경: [사43:8]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소경이요...귀머거리인 백성 - 이 백성을 이방인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는데(Lowth), 옳지 못하다. 42:18, 19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성 경: [사43:9]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본절은 법정적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으며, 열방이 다 모였다고 할지라도 장차 하나님이 세계 각처에서 이스라엘을 시온으로 모으실 것과 과거 이스라엘이 열방들로부터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증인이란 없다고 단언한다.
성 경: [사43:10]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 이스라엘은 오래도록 영적 소경과 귀머거리 상태였으나, 새롭게 회복된 다음에는 하나님의 증인이 된다는 말씀이다. 이러한 증인으로서의 사명은 구속함 받은 성도의 제1차적 사명이기도 하다(행 1:8).
성 경: [사43:11]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 문맥상 본문은 두 가지 뜻을 나타낸다. 첫째, 10절의 '내가 그'라는 표현과 함께 하나님의 유일성과 절대 주권을 나타내며, 둘째로는 이스라엘이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나타낸다.
성 경: [사43:12]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에인 바켐 자르) - 여기 '자르'(*)는 '이방인', '낯선 자'를 뜻한다. '자르'의 이러한 문자적 의미를 중시할 경우, 본 구절의 번역은 이와 같다:'나는 너희 가운데 낯선 자(외인)가 아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그 행사를 통하여 밝히 알려진 분이시지 결코 낯선 외인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구원을 예언하시고 실행하심으로 자신이 어떤 분인지를 충분히 계시하셨다. 따라서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증거할 증인이 되어야만 한다.
성 경: [사43:13]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
ꃨ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 이는 하나님의 영원성 혹은 유일 절대자되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유일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계획하고 실행하시는 일을 방해할 존재란 없다.
성 경: [사43:14]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
ꃨ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내려가게 하리라 - 보냄을 받는 자가 생략되어 잇으나, 문맥상 고레스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나님께서는 바사와 메대를 통하여 바벨론을 치셨고 그때 재난의 위경 속에서 탈출을 꾀하던 도망자들을 멸하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때 바벨론의 귀족들은 서로 먼저 도망치기 위하여 배에 오르기를 경쟁하며 아우성쳤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소경된 이스라엘을 증인으로 세울 것임을 말씀하신 후 본절에서 그들을 얽매는 바벨론 세력을 멸망시킬 것을 약속하시는데, 이 멸망 사건은 과거 애굽을 멸하신 일을 능가하는 놀라운 일이다.
성 경: [사43:15]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
ꃨ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까닭이 언급되어 있다. 여기서 '창조자'란 특히 이스라엘을 택하사 당신의 백성으로 만드셨음을 나타낸다(고후 5:17;갈 6:15;엡 2:10, 15;4:24). 그리고 '너희 왕'이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사 영원히 통치하시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출 15:18;삿 8:23;대하 20:6;시 10:16;계 19:6).
성 경: [사43:16,17]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불변의 사랑의 전형적인 예증인 홍해로부터의 이스라엘 구원 및 바로 군대의 멸망 사건이 언급된다.
성 경: [사43:18]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
ꃨ 이전 일...옛적 일 -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16, 17절에 기록된 애굽으로부터의 구원 및 그 대적의 멸망을 가리킨다.
성 경: [사43:19]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
ꃨ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행하실, 옛적 일과는 비교가 안 되는 새 일에 대한 묘사인데 이 묘사가 그려내는 내용은 메말라 죽어 있는 상태에 생명의 물이 쏟아짐으로 다시 생명이 회생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때에 광야와 사막을 완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특별한 보호와 배려를 베풀어 주실 것에 대한 약속이자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암시하는 듯하다.
성 경: [사43:20]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
ꃨ 들짐승...나를 존경할 것은 -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베푸실 은혜의 생수는 심지어 들짐승들까지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울러 이는 구속의 은총이 택함받은 백성들뿐만 아니라 피조계 전체에게 영향을 미칠 것임을 암시한다(롬 8:21).
성 경: [사43:21]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
ꃨ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 하나님이 놀라운 새 일을 행하셔서 그의 백성으로 구원을 체험케 하시는 목적은, 그들로 하나님을 찬양케 하기 위함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곧 증인의 사명과 그 맥을 같이한다(12절).
성 경: [사43:22]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ꃨ 너는 나를 괴로와하였으며(*, 야가에타 비) - 본 구절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나올 수 있다. 그 하나는 긍정적 해석으로 '너는 나를 위하여 수고하였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부정적 해석으로 '너는 나에 대해서 피곤해 하였다'이다. 문맥을 볼 때, 둘 중 후자의 해석이 합당하다.
성 경: [사43:23]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기본적인 제사 예물조차 드리기를 아까워하고 귀찮아 하는 불신 상태에 대한 책망이다. 이는 성전 마당만 밟을 뿐인 형식에 치우친 제사와 함께(1:11-14) 이스라엘의 타락한 종교상을 꼬집은 말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 않는 예배가 하나님께 흠향되어질 수는 없다는 사실은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마찬가지이다(요 4:23).
성 경: [사43:24]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ꃨ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 하나님이 제사 제도를 주신 까닭은, 하나님이 인생의 죄악을 사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한마디로 제사는 짐을 지우는 수단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는 수단이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스라엘은 그 의미를 망각한 채 제물을 바치는 의식 자체에 몰두하거나 제물을 마련하는 비용에 연연함으로써 죄사함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였고, 이러한 죄의 짐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다.
성 경: [사43:25]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ꃨ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 22-28절까지의 문맥은 지난날에 이스라엘이 행했던 죄악을 지적하고 징벌을 경고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용서와 사죄를 언급하는 본절은 다소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죄악이 그토록 심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실현하시기 위해 곧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백성들을 회개시키시며 또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사죄의 은총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기 위해 삽입된 구절이다.
성 경: [사43:26]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ꃨ 서로 변론하자 - 지금까지 진술된 하나님의 말씀이 옳은지 그른지 따져 보자는 뜻이다.
성 경: [사43:27]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ꃨ 시조(始祖) - 문자적인 뜻은 '첫 아비' 혹은 '이전 아비'이다.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을 아담으로 보나 문맥이 이스라엘 전체의 죄악을 지적하고 있으므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기운을 이룬 열두 아들을 낳은 야곱을 가리키는 듯하다(J. Watts).
ꃨ 교사들 - 문자적인 뜻은 '중재자', '해설가', '통역관' 등이며 여기서는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특히 선지자들)을 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겠다(Whybray).
성 경: [사43:28]
주제1: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주제2: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ꃨ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보게 하며 - '욕을 보게 하며'의 문자적인 뜻인 '더럽게 하다'이지만 '찌르다', '살해하다'는 뜻도 갖고 있다. '성소의 어른들'에 대해서는 (1) 예루살렘 제사장들 중 지도급 인사들, 혹은 (2) 이스라엘의 왕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들이 있는데, 이중 (2)의 견해가 비교적 우세하다.
성 경: [사44:1]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선택받은 이스라엘]
ꃨ 이제 들으라 - 이는 바로 앞장 뒷부분과의 연관성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즉, 영적 무지와 맹목성으로 말미암아 심판받았지만 이제 구원을 통하여 새 이스라엘을 재건하겠다는 약속을 함축하고 있다.
성 경: [사44:2]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선택받은 이스라엘]
ꃨ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결정적 이유인 '선택'을 암시하는 구절이다. 예레미야, 바울 등도 자신들의 선지자됨 혹은 사도됨이 바로 이 선택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였다(렘 1:5;갈 1:15).
성 경: [사44:3]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선택받은 이스라엘]
상반절은 심판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내용의 일부로 메마른 당, 갈한 자들에게 생수를 부으실 것을 언급한다. 또한 하반절은 성령을 붓고 축복을 내리실 것을 약속하고 있는데, 이 둘은 유사적 평행구로 결국 성령 부어 주심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하반절은 상반절의 비유적 표현의 실체라고 볼 수 있다.
성 경: [사44:4]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선택받은 이스라엘]
ꃨ 솟아나기를 - 원래 이 표현은 물이 잘 공급되는 곳에서 쑥쑥 자라나는 나무나 풀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데(Barnes), 여기서는 성령 부음을 통하여 새 생명들이 영적으로 자라고 번성할 것을 암시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한편, 이는 많은 후손들이 번성할 것에 관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케 한다(창 15장).
성 경: [사44:5]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선택받은 이스라엘]
ꃨ 야곱의 이름으로 자칭할 것이며 -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으로 자신을 일컬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주체는 생략되어 있다. 그 주체를 단순히 바벨론 포로로부터 귀환한 이스라엘이라고만 볼 수도 있으나(J. Watts), 문맥이 새 생명으로의 소생, 성령 임재 등을 말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성령 부음을 통하여 영적 야곱의 후손에 합류될, 이방인까지도 포함하는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로 보는 것이 좋겠다(Westermann).
성 경: [사44:6]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본절은 하나님이 전역사의 과정을 주관하시는 분인 것을 밝히고 있는데, 본절 후에 이어지는 내용을 고려할 때 오직 하나님만이 참신이라는 사실도 더불어 함축하고 있다:"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6).
성 경: [사44:7]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ꃨ 될 일과 장차 올 일 - 미래사를 강조하는 부분이다. 하나님이 미래사를 알고 계시는 이유는 그가 역사의 주관자로서 역사의 진행 과정 전체를 계획하고 진전시키시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만이 참신이심이 입증되고 있다.
성 경: [사44:8]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ꃨ 들리지 아니하였느냐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 모세를 비롯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관한 계시가 전달되었던 사실과 그 계시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졌던 사실을 회상시키는 말이다. 그 회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유일한 참신이심을 확증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 받은 것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특권이었다:"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롬 3:1, 2).
성 경: [사44:9]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본절로 20절까지는 우상 숭배의 허망함을 열거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은 참신이심을 강조하는 앞 문맥(6-8절)의 의미를 한층 강화시킨다.
성 경: [사44:10]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ꃨ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뇨 - 이것은 우상을 만든 자에 대한 책망이기 이전에 우상 제작 자체가 하나의 아이러니임을 비꼬는 의미를 지닌다. 우상은 외형적으로는 인간이 섬기는 대상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인간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그 조작물에게 인간의 생사 화복(生死禍福)을 맡긴다는 자체가 아이러니이다.
성 경: [사44:11]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ꃨ 그 장색들은 사람이라...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 곧 장인, 장색을 비롯하여 보석 세공인, 금속 세공인, 철공, 목공 등 우상 제조에 관여했던 모든 자들이 큰 수치와 두려움 가운데 심판당할 것을 나타낸다. 그들이 만든 신이 그들을 도울 수 없는 것은 그 신 자체가 연약한 인간의 소산물이기 때문이다.
성 경: [사44:12]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연약함에 매여 사는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물건은 결코 초자연적인 힘을 낼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지적하기 위하여 쇠로 만드는 우상의 제작 과정이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Whybray).
성 경: [사44:13]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그 재질이 나무인 우상의 제작 공정이 묘사된다. 나무는 피조된 생물 가운데 가장 하층부에 있는 것이다. 우상 숭배자는 그런 것을 가지고 인간의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신전에 안치하여 신으로 섬긴다. 새겨진 우상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그 피조물 중 하나님의 형사에 가장 가까운 형상인 인간 형상에 대한 숭배는 나름대로 가장 세련된 형태라 하겠다.
성 경: [사44:14]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ꃨ 디르사나무(*, 티르자) - 이 용어는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나온다. 아마도 이 용어는 '단단하다', '굳다' 등을 뜻하는 '타라즈'(*)에서 온 것 같다. 한편, 본절에서는 이 나무를 포함한 팔레스틴의 대표적 나무들을 인간이 마음대로 베거나 심고 자라게 한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그 같은 운명의 나무로 만든 우상의 무가치성을 간접 강조하고 있다.
성 경: [사44:15]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본절과 다음절은 인간에게 있어서 나무란 근본적으로 화목(火木), 곧 땔감 정도의 의미밖에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실감나게 강조한다. 그런 나무로 인간은 자신의 생사 화복을 좌우할 것으로 믿는 우상을 만든다.
성 경: [사44:16]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ꃨ 내가 불을 보았구나 - 불기운의 위력을 느꼈다는 말로서, 쉽게 풀면 '야, 불기운이 대단한데'이다.
성 경: [사44:17]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나무가 땔감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의 행위로 증거했다. 그리고도 동일한 것으로 신을 만드는 아이러니컬한 모습이 그려진다.
성 경: [사44:18]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자들이 동일한 재목을 가지고 이율 배반적인 두 가지 용도에 동시에 사용하는 아이러니를 범하는 것은 한마디로 그들의 죄악과 그로 말미암는 영적 무지 때문이라고 본절은 말한다.
성 경: [사44:19]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아이러니에 대하여 숙고해보는 자가 없다는 것을 본절은 재차 강조한다.
성 경: [사44:20]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ꃨ 재를 먹고 - 본 표현은 헛되고 무익한 것을 얻기 위하여 애쓰는 자를 묘사할 때 사용되는데(삼하 13:19;욥 30:19;겔 28:18 참조), 에브라임의 경우, '재' 대신 '바람'이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호 12:1).
ꃨ 미혹한 마음에 미혹되어서(*, 레브 후탈 히타후) - 문자적인 뜻은 '미혹된 마음이 그를 오도하였다'이다. 이것은 인간의 어리석은 행위는 근본적으로 그 마음이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한 때문임을 보여준다. 롬 1장은 이 부분의 주해라고 할 만큼 예리한 설명을 담고 있다.
ꃨ 나의 오른손에 거짓것이 있지 아니하냐 - 여기 '오른손'은 인간이 힘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가리킨다(48:13;왕상 2:19;욥 40:14;마 27:38 참조).
성 경: [사44:21]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택함 받은 백성의 구속]
ꃨ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로 티나쉐니) - 여기 '티나쉐니'(*)를 단순 능동형(칼형) 명령형으로 보고 '너는 나를 잊지 말라'로 번역하는 견해도 있으나, 문맥상 수동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무난하다. 수동태인데도 이 같은 혼란을 준 것은 대개 단순 재귀형(니팔형)에서는 동작자가 '라멕'(*)을 통해 표시되기 마련인데, 본절에서는 '라멕'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수동태인 본 구절의 정확한 번역은 개역 성경과 동일하다. 하나님께서는 열국이 섬기는 우상의 실상을 말한 후 본절에서 선택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위치를 재확인하심으로써 그들의 패역함을 끝내 바로잡으시는 하나님의 일관된 사랑을 보여주신다.
성 경: [사44:22]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택함 받은 백성의 구속]
ꃨ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 구속이 회개 촉구에 선행하고 있다. 회개 촉구는 현재형으로, 구속 사실은 완료형으로 되어 있는 원문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하나님임을 강력히 변증한 후(1-5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영적 회생으로 연결시킨 반면), 여기서는 죄사함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로 보아 이스라엘의 영적 회생과 그들의 죄사함은 불가분적 관련이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자는 바벨론 포로라는 역사적 차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죄사함, 영적 회생이라는 차원을 견지하며 53장까지 나아가고 있다 하겠다. 본서가 말하고 있는 구속은 고레스의 구원을 통하여 완전히 그리고 확연히 성취된다. 53장의 고난의 종과 그의 구속 사역이 본서 저자의 진정한 관심사요 본질적 내용이다.
성 경: [사44:23]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택함 받은 백성의 구속]
본절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찬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찬양이란 구속을 체험한 하나님의 백성의 감격의 표현이다. 따라서 참구속의 의미를 깨달은 자만이 바른 찬양을 할 수 있다.
성 경: [사44:24]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택함 받은 백성의 구속]
ꃨ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 여기서는 역사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구속주가 될 뿐 아니라 본절 이하에 나오는 놀라운 사역을 능히 이루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창조적 권능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표현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Fausset). '땅을 베풀었다'는 것은 땅을 평평하게 펼쳤다는 뜻이다. 이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번영하는 표현이다.
성 경: [사44:25]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택함 받은 백성의 구속]
ꃨ 거짓말하는 자의 징조를 폐하며 - 여기 '거짓말하는 자'란 원문적으로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를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거짓 선지자를 비롯하여 점쟁이, 신접한 자등이 포함된다. 또한 '징조'는 '오토트'(*)로서 표적, 이적 등을 뜻한다. 당시 점쟁이나 신접한 자들은 그 배후에 있는 악령의 힘을 빌어 가시적인 이적들을 행하곤 했다.
성 경: [사44:26]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택함 받은 백성의 구속]
ꃨ 내 종의 말을 응하게 하며 - 여기 '종'(*, 아보두)은 단수형이지만 일존의 집합적인 의미, 곧 복수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는 동의어격으로 나온 '사자'(*, 말르아카)가 복수형인 사실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그의 참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케 하신 말씀을 이제 성취하신다는 것이다.
ꃨ 황폐한 곳 - 문자적인 뜻은 '쓸모없는 곳'이다. 바벨론의 침입을 받은 유다의 도시들은 부서지고 망가져 다시는 사람이 거주하지 못할 것처럼 쓸모없는 곳이 되어버렸었다.
성 경: [사44:27]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택함 받은 백성의 구속]
많은 학자들이 본절을 바벨론 정복을 위해 고레스가 유프라테스 강 지류들의 흐름을 바꿔 놓았던 사실에 대한 암시로 본다(Lowth, Grotius, Rosenmuller). 그리고 또 다른 학자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던 당시 홍해가 갈라졌던 사건에 대한 암시로 본다. 그런가 하면, 일반적인 의미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언급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Gesenius). 이중 어느 것을 취하더라도 하나님의 전능성, 유일한 능력의 구원자되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본 문맥과 합치한다.
성 경: [사44:28]
주제1: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주제2: [택함 받은 백성의 구속]
ꃨ 나의 목자 - 이스라엘을 인도한 모세에게도 이 호칭이 붙여진 바 있다(시 77:20). 본절에서 이 호칭이 고레스에게 부여된 것은 그가 포로 귀환을 위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았기 때문이다. 고레스에게 맡겨진 임무는 포로 귀환까지만일 뿐이며, 그 후의 온전한 구속은 앞으로 임할 종의 사역 곧 메시야의 사역에 의해 완수될 것이다.
성 경: [사45:1]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ꃨ 나 여호와는...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 '잡고'의 히브리어 '하자크'(*)는 '강하게 하다'는 뜻도 내포한다. 이 표현은 힘없는 자에게 힘을 줄 때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이 능력의 제공자이시고 고레스는 단지 그 능력을 따라 수행하는 도구에 불과한 존재임을 나타낸다.
ꃨ 열왕의 허리를 풀며 - 히브리 개념에 있어서 허리를 묶는다는 것은 여행, 노동, 혹은 전쟁에 임할 채비를 갖추는 것을 가리킨다. 반대로 허리를 푼다는 것은 쉼, 연약한 상태 혹은 무장 해제를 가리킨다. 두말할 나위 없이 여기서는 '무장 해제'를 의미한다.
성 경: [사45:2]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ꃨ 내가 네 앞서 가서 - 고레스가 정복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도록 하나님이 강력히 역사하셨음을 암시하는 본문은, 출애굽 때 이스라엘 진을 앞서가셨던 하나님의 임재를 상기케한다:"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출 13:21, 22).
ꃨ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 문자적인 뜻은 '구부러진 곳을 반듯하게 하며'이다. 계속 전투 개념이 이어지는 문맥을 중시할 때 이 표현은 고레스의 모든 대적, 방해적 요소들을 하나님이 제거하실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Lowth).
성 경: [사45:3]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본절은, 하나님이 고레스를 열왕의 정복자로 세우시는 이유를 그로 하여금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고레스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고 회개했다고 하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그는 자기가 숭배하는 말둑(Marduk)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귀환을 명령하였고 포로 귀환 명령 자체도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정책의 일환이었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앗수르의 정책은 그 식민지 백성들을 다 흩어버려서 다시는 국가를 세우지 못하게 하는 강압 정책을 썼던 반면, 페르시아 제국은 식민 국가로 하여금 자기 본토로 돌아가서 자기 종교를 갖게 하는 등 유화 정책을 썼던 것이다.
성 경: [사45:4]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ꃨ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 문자 그대로 하나님이 이방인 고레스를 일으키셨던 것은 그의 백성 때문이라는 말이다. 열왕들과 그 민족들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며 하나님은 그 자신의 목적 특히 그의 백성을 보호하고 구원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들을 통제하신다는 사실은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다(10:5;42:6).
성 경: [사45:5]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ꃨ 네 띠를 동일 것이요 - 1절의 '열왕의 허리를 풀며'와 대조를 이루는 표현으로, 열방의 정복자를 만들기 위하여 철저히 준비시키시겠다는 뜻이다.
성 경: [사45:6]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ꃨ 나밖에 다른 이가...알게 하리라 - 앞 문맥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방의 한 인물을 들어 쓰실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 경우, 우리에게 생기는 의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 중에서 이스라엘 구원을 위한 인물을 들어 쓰실까라는 점이다. 이는 구원뿐 아니라 심판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재기될 수 있는 의문이다. 즉 하나님은 이방 나라, 곧 바벨론과 앗수르를 통해 이스라엘을 징벌하셨기 때문이다. 이 의혹을 풀어주는 것이 바로 본 구절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의도는 당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곧 세계 모든 민족과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이심을 보이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분만이 참하나님이심을 알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재건, 회복뿐 아니라 이방인의 구원 참여에 대한 암시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성 경: [사45:7]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ꃨ 빛...어두움...평안...환난 - 당시 바사인들은 빛, 어두움 그리고 평안, 환난을 대치적 관계에서 이해했다. 그들은 철저히 이원론적 구도를 견지하였다(J. Watts). 바로 그들에게 본절은 하나님께서 그 각각을 모두 창조하셨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은 인간의 이원론을 뛰어넘어 그 모두를 통치하는 절대적 존재임을 강변하고 있다. 이 강변은 하나님이 유일한 참하나님이신 사실에 대한 또 다른 증거가 되기도 한다.
성 경: [사45:8]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본절은 7절과 마찬가지로 천지 창조에 관한 기사인 창세기 1장 내용을 상기케 한다. 본서 서두에서 하나님은 반역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증인으로서 하늘과 땅을 호출하신 바 있거니와(1:2), 여기서는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명령하신다. 이는 창조의 하나님과 구속의 하나님이 동일하시며,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창조 사실을 언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의와 구원이 긴밀하게 연관지어 언급되는 것은 여기 외에도 46:12, 13;51:5, 6, 8;56:1,2;59:17;61:10;62:1;63:1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G.W. Grogan).
성 경: [사45:9]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본절은 유대인을 통하여 제기될 수 있는 변론, 곧 왜 하나님은 그들로 포로가 되게 하셨는가 그리고 하필이면 이방 왕을 통해 포로 귀환케 하셨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왜 하나님은 구원자를 내시어 이방인도 구원하시는가 등에 대한 변증을 담고 있다. 바울은 본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롬 9:11-21).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것은 한마디로 그의 절대적 주권에 기인한다.
성 경: [사45:10]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문자적으로 볼 때 본절은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이가 그 부모에게 항의하는 모습에서 그 이미지를 따온 것 같다(Barnes). 그리고 그 항의하는 내용은 9절 주석에서 밝혀진 바 유대인에게서 제기될 수 있는 항의 사항일 것이다.
성 경: [사45:11]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앞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아무도 시비를 따를 수 없음, 곧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언급이 있었거니와, 본절은 이러한 언급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개역 성경처럼 명령문으로 번역할 경우는 하나님더러 이러라 저러라 할 권리가 그 누구에게도 없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되며, 의문문으로 번역할 경우 역시 부정적 답변을 강조해준다(NIV, RSV).
성 경: [사45:12]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본절은 땅 위의 그 누구도 하나님이 행하실 일에 시비를 걸 수 없는 이유를 마지막으로 첨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요 그 속에 사는 인간의 창조주라는 사실이다. 만물과 인간을 지으신 분이 자신의 계획을 따라 실행하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성 경: [사45:13]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하나님의 도구 고레스]
ꃨ 내가 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 본절은 1차적으로, 고레스가 이스라엘의 귀환을 허락할 때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고 놓아주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옛적에 이스라엘이 약탈당했던 보물과 성구(聖具)들까지 돌려줌으로써 성취되었다(스 1:8-11;5:14;6:5). 그러나 보다 궁극적 의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성취될 사실에 대한 예언이기도 한다. 특히 후자의 측명과 관련하여, 본 구절의 의미를 올바로 상고하기 위해서는 본절이 앞부분 어디와 연결이 되는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의미를 더듬어 볼때 이는 하늘에서 의의 생수를 내려 땅으로 하여금 의와 구원의 열매를 맺겠다고 하는 8절과 연결됨을 알 수 있다. 9-12절은 의와 구원의 열매를 맺는 일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달렸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첨가된 일종의 삽입구의 역할을 한다. 여기서 우리는 본절의 '의'는 8절이 진술하는 '구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여기 '의'(*, 체데크)는 그 의미를 쉽게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문맥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진다. 그러나 구원과 연관성을 가질 때 우리는 전혀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개념을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죄있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없으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연상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대상은 누구인가 ? 그 대상은 말할 나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의를 논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빼놓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의로 일으킨 인물은 다름 아닌 고레스로 예표되는 그리스도이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본절의 성읍(*, 이리)은 1차적으로는 예루살렘을,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하나님의 복된 통치가 이루어질 영역을 뜻한다.
성 경: [사45:14]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애굽의...네게로 돌아와서 - 애굽, 구스, 스바 등이 바사 제국에게 무릎을 꿇을 것과 그들로부터 약탈한 재물이 유다 성전 건축에 기증될 것을 나타내며, 더 나아가서는 장차 이방인들까지도 회개하여 여호와께 돌아올 것까지를 암시하는 예언이라 하겠다.
성 경: [사45:15]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 문자적인 뜻은 '당신은 스스로를 숨기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이다. 본문의 화자(話者)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1) 고레스로 볼 경우:이는 고레스가 이제껏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하심에 대해 무지하였다가 이제 비로소 그것을 깨닫고 탄복하는 고백이 된다. 이 경우에 고레스의 탄복은 '왜 이제까지 스스로를 숨겨 오셨습니까 ?'라는 아쉬움을 담고 있다. (2) 이사야로 볼 경우:이 경우의 해석도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하나님이 이방인까지 구원에 포함시키시고 또 이방 세력을 통해 귀환을 가능케 하시는 등의 일들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뜻. 둘째는, 하나님이 초월자로서 유한한 인생에게는 마치 숨어 계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당신의 주권적인 섭리 안에서 활동하시며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사 그 백성을 구해주심을 확신하는 역설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맨 마지막 해석이 가장 무난한 것으로 여겨진다.
성 경: [사45:16]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전절과 관련지어 보면, 하나님을 스스로를 숨기시는 분이라고 단정하고 더 이상 신앙과 경배의 대상으로 섬기기를 거부하는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우상 숭배로 빠져드는 경우를 암시하는 구절이다.
성 경: [사45:17]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여호와께...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 일순간적인 도움도 줄 수 없는 우상(16절)과 영원한 구원을 주시는 여호와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26:4).
성 경: [사45:18]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 하나님은 특히 땅을 만드심에 있어서 기후, 토양, 그리고 각종 소산물등을 배려하사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곳으로 만드셨다는 말이다. 이 구절을,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감으로 황량해졌던 팔레스틴 땅이 포로 귀환으로 인하여 다시 사람이 살 만한 땅으로 변화될 것을 암시하는 구절로 보는 학자도 있으나(Fausset, Barnes), 문맥상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으며 온 우주의 구원자되신 참신으로서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이해함이 무난하다.
성 경: [사45:19]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 어두운 동굴과 같은 곳으로부터 그 의미도 분명하지 않은 채 들려오던 이방 신의 신탁 따위와는 다른, 분명하고도 명확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가리킨다(48:16). 한편, 본 구절은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된 표현과도 유사하다(요 18:20).
성 경: [사45:20]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 - 본 구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어떤 학자는 열방 중에 뛰어난 자, 곧 우두머리, 왕들로 본다(Kimchi). 그런가 하면 바벨론 백성들(Aben Ezra), 이방의 우상 숭배를 버리고 참신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온 개종자들(Vitringa), 혹은 고레스의 학정에서 살아 남은 자들(Grotius) 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여기 '피난한 자들'로 번역된 '펠리테'(*)는 원래 전쟁, 위험, 혹은 학살로부터 도망쳐 피한 자들을 가리킨다(창 14:13;수 8:32). 이 용례를 참고하면, 마지막 견해가 유력해 보인다. 그러나 본절 하반절은 '펠리테'가 우상 숭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자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 하반절의 암시를 중시할 때 우리는 '펠레테'를 이방 민족 가운데서 우상 숭배의 무지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자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하겠다.
성 경: [사45:21]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본절에서 하나님은 당신이 유일한 하나님이시며, 만유를 통치하시며, 의로우시며, 동시에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신다. 특히 여기서의 '의'는 엄한 공의의 법을 시행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용어라기보다는 그 속성이 항상 옳은 일만 하시는 분, 그 말씀이 항상 진리인 분, 그 약속을 항상 성취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용어로 보는 것이 낫겠다.
성 경: [사45:22]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나를 앙망하라...구원을 얻으리라 - 여기 '앙망하다'로 번역된 '페누'(*)는 '향하다', '돌아가다'는 뜻으로서 믿음의 눈으로, 영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곧 의롭고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21절)께 그 마음을 돌리는 것을 말한다(시 22:27). 하나님께로 그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권한이 이스라엘을 넘어 세상 모든 백성에게 주어지고 있다.
성 경: [사45:23]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 온 우주에 하나님의 맹세를 받을 만큼 큰 자는 없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맹세하시는데, 성경에서 이 같은 표현은 반드시 그 성취를 보게 될 약속에 대한 확증이 필요한 때 사용된다(히 6:13, 16). 동일한 비중의 표현으로는 '내가 살았노니'(룸 14:11)가 있다.
성 경: [사45:24]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의와 힘(*, 체다코트 와오즈) - 문자적인 뜻은 '의와 능력'이다. '의와 능력'은 하나님의 구원과 관계있는 것으로 분리하지 않고 '능력있는 의' 혹은 '의로운 능력'이라 부를 수 있겠다.
성 경: [사45:25]
주제1: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주제2: [만방의 구원자 하나님]
ꃨ 여호와로 의롭다 함을 얻고 - 문자적인 뜻인 '여호와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고'이다. 24절과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여호와 안에서 죄를 용서 받고 구원 얻으며'로 의역될 수 있다. 이제 하나님이 일으키실 구원자(53장 참조)가 강력히 요청되고 있다.
성 경: [사46:1]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바벨론 우상의 파멸]
ꃨ 벨 - 바벨론의 수호신들 중의 우두머리이며, 그 수도의 신인 말둑(Marduk)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는 아람 방언이며, 히브리어로는 '주'라는 뜻의 '바알'이다(엠 50:2;51:44).
ꃨ 느보 - '나부'라 불리기도 한 이 우상은 바벨론 당시 벧 못지 않게 중요하게 여겨졌다. 말둑의 아들이며 운명의 서판들을 보관하는 문학과 지혜의 신이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나보니두스와 같은 왕들의 이름이 이 신의 이름과 유사한 것을 볼 때 바벨론 왕조가 섬겼던 신, 곧 왕가의 수호신이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Whybray). 그런데 본절은 이들을 포함한 다른 우상들이 그들을 숭배하는 자들의 짐이 되었다고 말한다. 아이러니컬한 이 표현을 통해 그 대조를 이룰 참신이신 하나님의 특성이 더욱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3절).
성 경: [사46:2]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바벨론 우상의 파멸]
ꃨ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 여기 '짐'이란 금속, 목재 혹은 돌 등으로 구성되었던 바벨론의 신상 그 자체를 의미한다. 바벨론 사람들이 숭배했었던 이 신들은 그들 자신을 상징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던 형상조차도 지킬 힘이 없었기에, 더군다나 그들을 신뢰하는 자들을 구하고 보호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성 경: [사46:3]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바벨론 우상의 파멸]
ꃨ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 - 문자적인 뜻은 '태중에서부터 운반된 자'이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하나님께 짐이었음을 의미한다. 여기 '짐'이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심판과 비참의 근원이 된 '죄의 짐'을 가리킨다. 본절에서 죄의 짐을 지고 죄를 사하는 분으로 계시된 하나님은 그 섬기는 자에게 도리어 짐이 된 이방의 신과 대조를 이룬다. 하나님은 짐을 지우는 분이 아니라 짐을 지는 분이셨다. 바리새인들이 구약 성경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왜 그리스도께서 그와같이 사시고 그와같이 죽으셨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성 경: [사46:4]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바벨론 우상의 파멸]
ꃨ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 하나님은 동일한 자상함, 애정, 보살핌을 계속 유지하실 분이라는 뜻이다. 곧 하나님의 분별성이 그 핵심이다. 이 예언은 혈통적 유대인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에 포함될 성도 모두들에게까지도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Fausset).
성 경: [사46:5]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바벨론 우상의 파멸]
ꃨ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 본절의 의도는 하나님과 대조가 되는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우상 신뢰의 헛됨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본서 저자가 흔히 강조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바벨론의 우상들은 그 도성을 보호하지 못할 뿐더러 그 자신도 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두고 있다(1, 2절). 그렇다면 그것들을 의존하는 일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 그리고 그 무력하고 허망한 우상들과 살아계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을 비교하는 일은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Barnes) !
성 경: [사46:6]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바벨론 우상의 파멸]
ꃨ 금을 쏟아 내며 - 여기 사용된 동사 '줄'(*)의 문자적인 뜻은 '흔들다', '풍부하게 붓다' 등이지만 '탕진하다'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신 21:20;잠 23:21;28:7). 말하자면, 우상 숭배자들은 천하고 무치한 신상을 만들기 위하여 아낌없이 금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Fausset).
ꃨ 은을 저울에 달아 - 저울에 무게를 다는 행위는 대체로 신중하고 사려깊은 정서를 반영한다. 그러나 낭비하듯 값비싼 금을 사용하는 우상 숭배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 바로 앞 구절을 중시할 때, 본문은 '그들은 정확히 그 눈금을 보지도 않고 값싼 금속을 취급하듯 되는 대로 양을 달았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ꃨ 장색(匠色)에게 주고 - 정확한 원문 지역은 '대장장이를 고용하고'이다.
성 경: [사46:7]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바벨론 우상의 파멸]
ꃨ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 우상 숭배자들은 고용한 대장장이가 제작한 우상을 그들의 어깨에 메어 신전 혹은 그것을 고정시켜 둘 자리로 옮겨간다. 이 같은 묘사의 목적은 의심할 나위 없이 인간의 어깨에 메여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신에게 복종을 표하는 일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ꃨ 그의 처소에 두면 - 본절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호와와 대조시키는 것이다. 즉 여호와께서는 피조물이 아니므로 영원하시며 무소 부재(無所不在)하신 반면, 인간에 의해 만들어져 그 처소를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우상은 누가 옮겨가기 전까지는 전혀 움직일 수도 없이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며 그를 예배하는 자들을 구하거나 그들의 소원을 들을 능력이 전혀 없음을 나타낸다.
성 경: [사46:8]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패역자에 대한 경고]
ꃨ 패역한 자들 - 문자적인 뜻은 '범죄한 자들'인데, 문맥상 우상 숭배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던 자들'을 지칭한다.
ꃨ 장부가 되라(* -, 히트오솨슈) -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용어로서 어렵지만 '이쉬'(*)로부터 파생된 '남자처럼 행동하라'의 의미를 지닌 용어로 보면 무난하다(Gesenius). 유사 용어인 헬라어 '안드리제스데'(*)가 고전 16:13에서 사용되었다:'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남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문맥상 어리석고 무가치한 우상 숭배 행위를 과감하게 청산하는 것을 뜻한다.
성 경: [사46:9]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패역자에 대한 경고]
ꃨ 옛적 일을 기억하라 - 여기 '옛적 일'은 '리쇼노트'(*)로서 과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시고 또 그 예언된 바를 성취하셨던 일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고서 하나님이 그 행하신 일들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는 분이심을 깨달아야만 한다. 이 같이 과거의 일을 기억하라고 하시는 까닭은 오직 하나님만이 참신이심을 상기케 하기 위함이다.
성 경: [사46:10]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패역자에 대한 경고]
ꃨ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 역사를 깊이 상고함으로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역사의 시종(始終)을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자의 그것이다. 이 이슈(issue)와 관련하여 최근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자유'라는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 내용인즉, 하나님은 미래에 무엇을 하시겠다는 계획을 말씀하시나 그 중간에 인간과의 대화, 곧 인간이라는 파트너의 반응에 따라 그 역사 계획을 수정하시기도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그대로 행하실 자유와 수정하실 자유를 갖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정해진 코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따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Zimmerli). 어떻게 보면 이 같은 주장은 역사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자유성을 변호하는 주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그 중심을 살펴보면 위험성이 가득하다. 하나님의 자유를 말하는 것 같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인간의 자유를 말하기 위하여 그같이 주장한 것이다. 인간의 역할, 반응의 중요성을 확대시킨 이 주장은 결국 하나님을 인간의 하수인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물론 성경은 인간의 행위에 따른 하나님의 반응을 적고 있다. 죽을 것을 선언받았지만 기도를 통하여 그의 생명을 연장받은 히스기야가 그 대표적 모범이다. 그러나 이 사건 역사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하에서 되어진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반응에 따라 그의 계획을 변경하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불변적으로 일관되게 시행하신다. 하나님의 가장 큰 특징, 곧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는 것은 그의 계획과 그 실행의 신실성에 있다.
ꃨ 모략이 설 것이니...이루리라 - 여기 '모략'은 하나님의 계획, 뜻을 가리키는 말이다. 상반절이 하나님의 역사 계획의 일관성을 강조한다면, 본하반절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통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나님은 역사 계획을 일관성있게 진행하실 뿐 아니라 주권적으로 세부적인 사항을 다스리시는 분이다.
성 경: [사46:11]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패역자에 대한 경고]
ꃨ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 여기서 1차적으로 의도된 인물은 고레스임이 분명하다. '동방'은 바사를 의미한다. '독수리'로 번역된 '아이트'(*)는 '솔개'(욥 28:7), '매'(렘 12:9), '독수리'(18:6)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호전적인 왕, 움직임의 신속성, 황폐를 낳는 강한 세력 등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 같은 이유 때문에 개역 성경을 비롯한 영역본들은 본 용어를 '독수리' 혹은 맹금(猛禽)으로 번역한 것이다. 성경에서 전쟁을 좋아하는 왕을 독수리에 비교하고 있는 예는 많으며(렘 49:22;겔 17:3), 아마도 본 문맥에서는 고레스가 큰 힘과 용맹성으로 열방들에게 나타날 것과 마치 맹금과 같이 갑자기 그들을 덮칠 것을 암시하기 위하여 본 용어가 사용된 듯하다. 실제로 고레스의 군대는 긴 창에 황금빛 찬란한 독수리 형상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Xenophon).
ꃨ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 - 여기 '모략'은 10절에서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특히 본절에서는 고레스가 단지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하기 위하여 불리운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강조할 목적을 지니고 있다. 고레스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내가 말하였은즉'이라는 강조사가 동원되고 있다(Whybray).
성 경: [사46:12]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패역자에 대한 경고]
ꃨ 마음이 완악하여 - 본래 이 표현은 대담하고 용기있는 자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데 대담한 자, 하나님의 계획과 통치에 저항하고 대적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자, 곧 본서의 표현대로 하면 영적으로 우매한 자를 가리킨다.
ꃨ 나를 들으라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우매한 결과, 죄를 짓고 포로로 잡혀 갔지만 포로의 징벌 속에서도 징벌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명령이다.
성 경: [사46:13]
주제1: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
주제2: [패역자에 대한 경고]
하나님께서는 한 인물을 들어서 그의 계획을 실천하실 터인데 그 인물이 행할 일의 내용을 본절은 '나의 의', '나의 구원', '나의 영광' 등의 용어들로 정의하고 있다. 개역 성경을 볼 경우 '나의 의'와 '나의 구원'만이 평행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나, 원문 성경을 보면 '나의 영광'과 '나의 구원'도 평행구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나의 구원'과 '나의 의'가 갖는 관계이다. 구원을 가져다 주는 의에 대하여 가장 잘 언급하고 있는 곳은 롬 3:21이하이다. 로마서는 하나님 자신의 의로우심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칭의적 의를 동시에 설명한다. 이같이 로마서와의 연관성 속에서 살필 때, 본절의 의는 인간에게 전가되는 구원의 의뿐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하나님 자신의 의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죄인을 의롭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의를 손상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구속에 근거할 때만 가능하다. 동방에서 일으킬 한 인물과 지금까지 논한 하나님의 구원(및 영광)을 낳을 하나님의 의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11절에서 살펴보았듯이 동방의 인물은 역사적 인물인 고레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레스를 그 궁극적 인물의 예표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무지 몽매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고레스를 통해 포로 귀환의 장도(長途)에 오르게 하실 뿐 아니라 보다 궁극적으로는 고레스로 예표된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본절은 멀리서 조망하고 있다 하겠다.
성 경: [사47:1]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처녀 딸 바벨론 - '처녀 딸'이란 남자와 관계를 갖지 않은 순결한 여인을 가리키는데, 바벨론과 동격으로 사용된 데에 대하여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로, 이 용어는 바벨론이 그전에는 외국 군대에 의하여 한번도 정복을 당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보는 견해이다(Kimchi, Whybray). 두 번째로, 이 용어는 바벨론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갈대아와 그 땅 전체를 의인화한 표현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Gesenius). 섯째로, 이 용어는 바벨론 성 자체의 아름다움, 찬란함, 그리고 그 성 여인들의 우아함, 장식품의 풍부 등을 암시한다는 견해가 있다(Barnes). 각각의 견해들이 일리는 있으나 문맥이 난공 불락의 바벨론 성이 외적의 침입으로 인하여 멸망을 당할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첫 번째 견해를 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다(Herodotus).
ꃨ 티끌에 앉으라 - 이는 땅 위에 앉아 재를 머리에 뒤집어 쓰는 것을 가리키는데, 성경에서 이 이미지는 극도의 수치나 슬픔의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욥 2:12;10:9;애 3:29). 디도(Titus)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주조한 기념 메달에 보면 종려나무 아래 땅 위에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Barnes). 여기서 이 표현이 사용된 것은 가장 열악한 상황으로 떨어져 버릴, 가장 심한 슬픔을 맛볼 바벨론을 묘사하기 위함이 분명하다.
성 경: [사47:2]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맷돌을 취하여 가루를 갈라 - 아우구스투스 시이저 시대에 물레방아가 발명되기 전까지 고대 근동 지방에서 사용되었던 맷돌은 아래짝과 위짝 두 둥근 돌로 만들어졌으며 아래짝은 볼록한 모양으로 위짝은 오목한 모양으로 서로 맞물려 있었고 위짝 맷돌 가운데에 난 구멍으로 곡식 따위를 넣어 돌리므로 곡식을 빻았다. 대체로 여인 둘이 마주 않아 돌렸던 이 맷돌은 특히 여자 노예의 전유물이기도 하였다(마 24:41). 미래 바벨론의 노예 생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ꃨ 면박을 벗으며 - '면박'에 해당하는 '차마테카'(*)는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나오며, 의미는 '꼬고 땋아 내린 머리' 혹은 문자 그대로 '얼굴을 가리는 얇은 천' 등으로 볼 수 있따(고전 11:15). 땋은 머리든지 면박이든지 그것을 들어올리거나 벗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큰 수치를 뜻하였다.
ꃨ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 다리를 드러낸다는 표현은 당시 바벨론의 지도층 부녀자들이 자락이 길고 펄럭이는 옷을 입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또한 강을 건넌다는 표현은 바벨론 주위에 있었던 많은 강들과 수로들을 건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아울러 이는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겠다.
성 경: [사47:3]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내가 보수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 본 구절 중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는 매우 어려운 부분으로 그 해석이 다양하다. 해석에는 '사람이 나를 저항하지 못하리라'(Jerome), '나는 그 어느 누구도 중재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라'(Grotius), '나는 누구와도 평화하지 않을 것이다'(Noyes)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해석의 관건은 '아끼다'로 번역된 '에프가'(*)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인데, 이 용어는 '누구를 치다', '공격하다', '적대감을 갖고 덮친다', '죽이다', '살육하다' 등의 뜻과 함께 '누구를 치다', '공격하다', '적대감을 갖고 덮치다', '죽이다', '살육하다' 등의 뜻과 함께 '누구를 대신하여 만나다'의 뜻도 가지고 있다. 이 후자의 뜻을 중시하고 전술한 해석 중 그로티우스(Grotius)의 견해를 존중할 때 우리는 문제의 구절을 이렇게 번역할 수 있겠다:'바벨론을 대신하여 나선 그 어느 중재자도 만나지 아니하리라'(참조, I will not meet thee as a man, KJV). 이 같은 번역은, '내가 보수하되'라는 표현에서도 분명히 읽을 수 있는 하나님의 바벨론에 대한 징벌의 단호한 결심과도 조화를 이룬다.
성 경: [사47:4]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본절은 앞뒤 문맥과 잘 조화되지 않는 듯한 독특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일종의 찬양 혹은 큰 놀람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저자는 환상 중에 바벨론의 수치스러운 멸망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큰 놀람과 기쁨의 탄성을 터뜨렸던 것 같다. 그 감격의 내용을 좀더 풀어보면 이와 같다:'오 우리의 구속자이시여 ! 당신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시니이다 ! 당신의 능력은 얼마나 크신지요 ! 당신은 얼마나 신실하신지요 !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너무도 분명히 드러났나이다. 바벨론이 멸망하나이다. 그들의 우상이 그들을 구원할 수 없나이다. 그들의 멸망은 우리 백성의 구속자이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당신에 의하여 성취되었나이다.' 예기치 못했던 바벨론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저자는 인간적인 통쾌감을 느끼기보다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되시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 및 그분에 대한 감격을 느꼈던 것이다.
성 경: [사47:5]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흑암으로 들어가라 - 동일한 이미지가 이스라엘의 포로 사실과의 연관성 속에서 사용된 바 있는데(42:7), 이제 그 동일한 운명으로 고통당하는 바벨론을 묘사하기 위해 다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본 묘사가 바벨론의 포로 사실을 필연적으로 암시하는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포로와 같은 슬픈 운명을 강조할 뿐이다.
ꃨ 열국의 주모(主母) - 분자적인 뜻은 '왕국들의 여주인'이다. 이 호칭은 로마에게 붙여졌던 '세계의 여왕'이란 호칭을 연상케 한다. 바벨론은 이 같은 호칭에 걸맞는 권세와 명성을 유지하였고 그 주위의 열국들은 종속자, 종들로 여겨졌었다.
성 경: [사47:6]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 여기 '기업'이란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다 땅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모든 유다의 도시들이 파괴되도록 허락하셨고, 그 결과 그 온 땅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비록 갈대아의 손을 빌어 그 일을 하셨지만 분명히 그 결과는 하나님의 계획 아래 하나님의 지시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ꃨ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 이스라엘 포로를 대함에 있어 바벨론이 온정을 베푼적도 있었다. 다니엘의 경우 바벨론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았고 큰 특혜를 누렸던 것을 우리는 익히 아는 바이다. 그러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경우 예루살렘 성과 도시를 참혹하게 부쉈을 뿐 아니라 인권을 말살하는 잔혹성으로 이스라엘 포로들을 대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시편 기자는 그 사실을 애절한 시구로 묘사한 바 있다(시 137:1-3). 더욱이 바벨론의 압제자들은 노인을 학대하고 그들에게 중한 노역을 시켰다. 성경은 도처에서 노인에 대한 예우, 공격을 중요한 의무로 가르치고 있다(레 19:32;욥 32:4-6). 그리고 노인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행동을 가장 악한 범죄의 하나로 경고하고 있다(왕하 2:23-25;잠 30:17). 바벨론의 압제자들이 노인을 학대한 사실을 예레미야의 시들 속에서 반영되고 있다(애 5:12).
성 경: [사47:7]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 이 구절은 바벨론의 교만과 자기 확신을 묘사한다. 바벨론은 부(富), 그 성벽과 성문의 견고함, 대적에 대항할 수 있는 풍부한 군비 등을 믿었다. 더군다나 바벨론에게는 내우 외환(內憂外患)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듯이 보였다(Barnes). 따라서 그들은 바벨론의 태평 성대가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같은 확신이 바벨론 멸망의 동기는 되지 않는다. 문제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도구였다는 사실 곧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었다.
ꃨ 이 일 -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알지 못한 채 포로 생활로 압제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들의 방법대로 가혹하게 대했던 것을 가리킨다. 물론 그 같은 처세는 자신들이 거룩하고 공의로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때문이었다.
ꃨ 그 종말 - 바벨론은 자신들처럼 교만하고 잔혹하였던 다른 열방들의 종말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어야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치 않았으니 불행한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성 경: [사47:8]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 유흥에의 탐닉과 사치스런 생활이 조장한 유약하고 의미없는 삶을 가리킨다. 일설에 의하면 이 시대는 부패와 유흥과 방탕이 극에 달했던 시대라고 한다(Strabo). 또 다른 학자는 그 당시 바벨론만큼 방탕과 범죄적 쾌락에 몰두했던 나라는 없었다고 주장한다(Curtius).
ꃨ 나 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 이것을 바벨론의 비교 우위적 자만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즉, 바벨론 백성들은 그들의 도시만 도시요 다른 나라의 도시들은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당대 필적할 나라가 없었던 로마 역시 동일한 자만을 나타냈다고 한다(Martial). 그러나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위치에 자신들을 비교했던 신성 모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Whybray). 이 두 견해는 상호 보완적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에 대한 극도의 자만은 결국 자신들을 하나님의 위치에 놓게 되기 때문이다. 동일한 자만, 하나님에 대한 도전을 나타내었던 자들로 니느웨 성 거민들을 들 수 있다(습 2:13-15).
성 경: [사47:9]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무수한 사술과 많은 진언을 베풀지라도 - 원문 직역은 '많은 사술과 많은 주문 속에서'이다. 여기 '속에서'는 '베'(*)를 번역한 것인데 이 '베'는 두 가지 의미로 쓰일 수 있다. 하나는 '...에도 불구하고'이고, 또 다른 하나는 '...때문에'이다. 전자의 뜻을 취할 경우는 개역 성경 번역의 뉘앙스처럼 많은 사술과 마법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에 재앙이 임한다는 뜻이 되겠고, 후자의 뜻을 취할 경우는 바벨론에 재앙이 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많은 사술과 마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무리없는 문맥의 소통을 위해서는 전자를 취하는 것이 좋다.
성 경: [사47:10]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지혜...지식 - 이것은 당시 주변 국가에 비해 월등하게 발전하였던 산수, 천문학, 점성학, 마법 등을 일차적으로 가리킨다. 특히 당시 점성학이나 마법 따위는 단순한 학문의 성격을 넘어 종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성 경: [사47:11]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네가 그 근본을 알지 못할 것이며 - 여기 '근본'으로 번역된 '솨헤라'(*)는 '새벽의 빛', '새벽의 여명', '아침'을 뜻한다. 이 같은 의미를 존중할 때 본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새벽의 빛이 캄캄한 어둠을 갑자기 몰아내듯이 바벨론 위에 임하는 멸망도 갑자기 시작되리라는 것이다.
ꃨ 이를 물리칠 능이 없을 것이며 - 여기 '물리칠'은 '속죄하다', '보상하다'가 그 원문적인 뜻이다. 말하자면 바벨론은 그 어떤 속죄의 희생물이나 기도, 제물 따위로도 임하는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는 신정(神政) 시대였다. 따라서 어떤 나라든 간에 위기가 닥치면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 의존함으로써 위기를 해결하기 일쑤였다.
성 경: [사47:12]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악신의 음성을 듣고 그 위기를 해결했던 영매자, 마법사들에게 이번에도 악신을 불러 위기를 한번 막아보라고 권하는 일종의 조롱조의 도전이다.
성 경: [사47:13]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하늘을 살피는 자 - 문자적인 뜻은 '하늘을 나누는 자'이다, 여기서 '나누는'에 해당하는 '호베레'(*)는 구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용어이며 '자르다', '나누다'를 뜻하는 아랍어의 동족어이다. 바벨론 사람들은 천체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땅의 일을 예언하기 위하여 하늘을 몇 구역으로 나누었다. 아마도 오늘날의 황도대(黃道帶), 12궁도 따위도 바로 여기에서 기원한 것 같다(Whybray).
ꃨ 별을 보는 자 - 문자적인 뜻은 '별을 응시하는 자'이다. 이는 단순히 천문학을 연구하는 차원보다는 별을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신격체로 숭배했던 사실과 관련되는 표현인 듯하다.
ꃨ 월삭에 예고하는 자들 - 문자적인 뜻은 '달들에 관하여 지식을 주는 자'로서 달의 모양이 변해가는 동안 벌어질 땅 위의 사건을 예언하는 일종의 점쟁이들을 가리킨다. 하늘, 별, 달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 피조물들을 관찰하며 미래지사를 예언하는 자들을 비웃듯 열거하고 계신다.
성 경: [사47:14]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이 불은 더웁게 할 숯불이 아니요 - 문자적인 뜻은 '따뜻하게 하는 숯 하나 없으리라'이다. 이것은 바벨론의 완전한 멸망을 암시한다. 초개나 나무의 등걸이 완전히 타버릴 경우 심지어 숯 하나 남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와 같은 장면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된다. 어떤 학자는 '그것으로 빵 하나 구울 수 있는 숯 조각 하나 남아 있지 않으리라'로 번역하기도 한다(Rosenmuller, Cocceius).
성 경: [사47:15]
주제1: [바벨론의 멸망]
주제2: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ꃨ 너의 근로하던 것들 - 앞에 언급된 '하늘을 살피는 자', '별을 보는 자', '월삭에 예고하는 자' 등을 가리킨다.
ꃨ 너와 함께 무역하던 자들 - 바벨론은 지형학적으로 교통의 요충지였다. 따라서 무역을 목적으로 하는 많은 외국 배들이 그들의 항구를 빈번히 찾곤 하였다.
성 경: [사48:1,2]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ꃨ 유다의 근원에서 나왔으며 - 문자적인 뜻은 '유다의 물들에서 나왔으며'이다. 여기 물줄기의 근원, 수원지를 연상케 하는 '물들'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비슷한 용어가 유다의 혈통을 암시하는 도 다른 대목에서 사용된 바 있다:"그 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종자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민 24:7). 여기서 '유다'라는 호칭이 사용된 것은, 유다 지파에서 메시야가 출생할 것에 대한 암시라고 해석해볼 수도 있겠다(창 49:10). 즉, 그토록 중요한 위치에 있는 백성들이 타락하였음을 강하게 책망하는 것이다.
ꃨ 거룩한 성 백성이라 칭하며 - '거룩한 성'이란 곧 예루살렘을 가리킨다(52:1;마 4:5). 이곳이 그렇게 불리운 까닭은 성전과 특히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인 법궤가 있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거룩한 성'이라는 명칭 속에서 그곳에 사는 백성들의 행실과 성품도 거룩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Keil & Delitzsch).
성 경: [사48:3]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본절에서 하나님은 과거에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장래의 일을 예언하시고 결국엔 그 일들을 성취했다고 말씀하신다. 특히 그 성취는 이스라엘 백성이 전혀 예상치 못한 시점에 홀연히 되어진 것임을 말씀하심으로써, 미래에 있을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의 성격도 그러할 것임을 암시하신다(42:9;44:7, 8;45:21;46:10).
성 경: [사48:4]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ꃨ 완악하며(*, 카솨) - 문자적인 뜻은 '굳은'인데 이것은 멍에 메기를 거절하는 수소에서 그 의미를 따온 것이다. '굳은 목', '뺏뻣한 목', '얼굴의 굳음'(겔 2:4), '마음의 굳음'(겔 3:7) 등으로도 묘사되고 있는 이 표현은, 단순히 하나님의 율법을 거절하는 상태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영적 무지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ꃨ 목의 힘줄은 무쇠요 - 문자적인 뜻은 '목은 쇠 근육이요'이다. 이 비유 역시 멍에를 거절하기 위해서 그 목을 뻣뻣하게 하는 황소의 모습에서 따온 것이다.
ꃨ 이마는 놋이라 - 이 표현은 흔히 수치를 모르는 매춘부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렘 3:3). 그러나 여기서는 무감각하고 완전한 상태를 나타낸다(렘 6:28).
성 경: [사48:5]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본절의 핵심은 하나님이 세상 만물과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사실보다는 그러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치 않으려는 인간의 뿌리 깊은 부패와 불신의 심성에 놓여져 있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존재와 권능을 입증하고도 남을 풍성한 역사적 경험과 말씀을 통한 계시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에게 향하는 전철을 되풀이하였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성 경: [사48:6]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ꃨ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隱秘)한 일 - 3-5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 때문에 먼저 어떤 일을 예언하고 그 후에 그 일을 성취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본절에서는 하나님이 앞으로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데 그 일은 이스라엘이 들어보지도 못한,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 일은 1차적으로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일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말미암은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 그리고 구원 사역의 완성일 것이다(Fausset).
성 경: [사48:7]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ꃨ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 43:16-21을 연상시키는 내용이다. 그곳에서 저자는 출애굽 사건을 '옛적 일'로 말하면서 '새 일'을 언급한 바 있으며 그 '새 일'을 그토록 놀라웠던 출애굽 사건마저 압도할 만한 어떤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한 사건이라면 바벨론 포로 귀환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도래로 말미암는 구원 사역까지 포함시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겠다.
성 경: [사48:8]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ꃨ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었나니(*, 로 피트하 아제네카) - 분명히 동사 '피트하'(*)가 능동태이므로 본 구절의 정확한 원문 직역은 '네가 너의 귀를 열지 않았다'이다. 그리고 본절에는 바로 앞 구절들과는 달리 귀 기울일 대상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본절은 이스라엘과 특정한 어떤 사건과의 관계를 밝히는 내용이 아니라 그들의 어떤 특성을 강조하는 구절로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그 어떤 사건에 국한되지 않고 번번이 영적 귀를 닫아온 민족이었다.
ꃨ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 - 문자 그대로 부면 인간 개인의 출생 당시의 영적 상태를 설명하는 표현으로 여겨진다. 사실 성경에 원래부터 부패한 인간의 영적 상태를 지적하는 구절이 없는 것은 아니다:"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그러나 본서가 한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한 단위로 보고 진술하고 있으므로, 본문은 이스라엘이 출생, 곧 국가 역사의 시초로부터 하나님을 거역한 사실을 지적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
성 경: [사48:9]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ꃨ 내 이름을 위하여 - 이 표현은 고레스에게 주신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45:4)라는 표현과 배치되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 두 곳의 '위하여'가 사용된 배경은 다르다. 45:4에서는 하나님이 고레스를 이스라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삼고자 하셨음을 밝히는 반면, 여기서는 이스라엘 구원 자체의 궁극적인 이유가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만유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따른 것이다(J. Watts).
성 경: [사48:10]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ꃨ 은처럼...택하였노라 - 여기 '택하였노라'는 '시험하였노라'가 그 원문적인 뜻이다. 당시 제련 과정에서는 광물들을 용광로에 넣음으로써 그 찌꺼가 가라앉고 순수한 원물질만 남았다. 이와같이 용광로에 광물을 넣는 목적은 순수한 물질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용광로에 광물을 넣는 것과 같은 시련이 많았지만 광물의 경우와는 달리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 본 구절의 의미하는 바이다(Whybray). 그들의 영적 무지를 깨우치고 죄를 고백케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저 아무런 효과없이 시련이라는 용광로 속에 넣다 뺐다 했을 뿐이라는 의미이다. 건국 이래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것을 입증한다.
성 경: [사48:11]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사랑]
ꃨ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 무지 때문에 수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바른 계시를 이해하지 못했고 현재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 있다. 그런데 그러한 실상 때문에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신다면 이방은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들의 승리를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신(神)의 승리로 착각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및 이방이 전혀 알지 못한 '새 일'(6절)을 행하심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그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리라는 것이다.
성 경: [사48:12]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바벨론의 멸망]
ꃨ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 41:4과 외관상으로 유사하지만 그곳에서는 '역사성'을 강조하는 '도르'(*)가 사용되었고(41:4에서 '만대'로 번역됨) 이곳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여기서는 '역사성' 보다는 온 우주의 흥망 성쇠(興亡盛衰)를 쥐고 계신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것 같다.
성 경: [사48:13]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바벨론의 멸망]
ꃨ 내 오른손이 하늘에 폈나니 - 문자적인 뜻은 '내 오른손이 하늘을 재었다'이다. 40:12에서 이 표현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광대하심 그리고 그 능력을 암시하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특히 만물을 창조, 보존하시는 사실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그 안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을 모르실 리 없다. 자신이 만물의 흥망 성쇠를 쥐고 있음을 강조하여 이스라엘의 관심을 집중시키신 후 하나님께서는 시야를 좁혀 이스라엘 영역 속에서 되어질 일을 소개하고자 하신다.
성 경: [사48:14]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바벨론의 멸망]
ꃨ 나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바벨론 위에 시행할 고레스를 가리킨다. 그러나 '사랑하는'이란 표현이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도덕적 품성을 기뻐했다거나 그가 경건한 자였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도구로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 표현은 고레스에게만 적용하기에는 너무 강한 표현이다. 이 표현을 온전히 적용할 대상은 메시야이신 예수 뿐이시다(눅 3:22). 그렇다면 이 표현은 메시야의 예표적 인물로서의 고레스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해해볼 수 있겠다.
성 경: [사48:15]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바벨론의 멸망]
본절의 특징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 '나'가 세 번씩이나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특징은 이방 왕 고레스를 선택하고 그로 흥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쓰임받게 만드는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하에 되어지는 일임을 드러낸다. 원문에 보면 '그 길이 형통하리라'가 '그가 그의 길을 형통하게 하리라'라고 되어 주어가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뀐것을 알 수 있는데, 이 같은 인칭의 변화는 본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자 고유의 기법이다(Barnes).
성 경: [사48:16]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ꃨ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 - 본 구절을 기점으로 화자(話者)가 하나님에서 본서 저자인 선지자로 바뀌고 있다. 먼저 '신'은 하나님의 영을 말하는데 이 용어가 먼저 '신'은 하나님의 영을 말하는데 이 용어가 나온 것은 저자의 사역이 자신이 아닌 성령에 의해 되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또한 화자가 바뀜으로써 이어질 예언의 내용, 곧 17-22절이 몹시 중요한 내용임을 기대케 한다.
성 경: [사48:17]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ꃨ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여호와라 - 본절은 저자 자신이 하나님께 대한 수식어들을 사용한 데다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직접 연이어 놓음으로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지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본문의 수식어들은 하나님과 그 백성인 이스라엘간의 언약 관계가 여전히 존속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ꃨ 가르치고...인도하는 - 이 용어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행하시는 일을 압축시켜 놓은 것인데, 원문에 보면 이 용어들은 분사형으로 되어 있다. 이 사실은 괄목할 만한데 히브리어에서 분사형은 계속되는 상황을 강조할 때 쓰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와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셨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부각된다.
성 경: [사48:18]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얼핏 보면 본절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기술한 것 같지만, 사실은 백성에게 의도한 하나님의 축복의 풍성함을 역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 사실은, 본절이 지닌 시적 성격을 드러내 보면 잘 알 수 있다. 본절에 드러난 하나님의 축복 부분만 시적 구조에 충실하게 정리해보면 이렇다:'강과 같았(겠)다. 너의 평강이 그리고 너의 의가. 바다 물결 같았(겠)다.' 본절의 주안점은 무한한 평강과 의에 있는 바, 이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떠나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축복이다. 즉, 평강과 의는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고 그분의 백성이 되는 언약 관계에서 나타나는 축복이다.
성 경: [사48:19]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18절과 본절 상반절에는 축복이 기록되고 있는데, 전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내적 축복인 반면 후자는 외적 축복이라 봐도 무방하다. 특히 후자의 내용은 낯익은 것으로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의 축복을 반영하고 있다(창 22:17;32:12).
ꃨ 그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 이름이 끊어진다는 것은 그 백성에 대한 기억이 지워진다는 뜻이다. 이것은 반역으로 일관된 이스라엘 역사의 절정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아울러 여기에는 혈통적, 민족적 개념의 이스라엘을 영적 이스라엘로 대치시키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어렴풋이나마 시사되고 있는 듯하다. 즉, 언약 백성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쥐고 있던 그 영광스러운 신정 체제는 이제 망각 속으로 사라짐으로써 그림자와 모형의 시대가 지나가고 왕되신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탄생이 넌지시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사48:20]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ꃨ 피하고 - 압제하는 민족으로부터 온갖 수단을 다해 탈출해 나오라는 명령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어 놓았으니 그냥 나오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이제 나온 자들은 그냥 있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쁨으로 찬양하고 땅 끝까지 그 사역을 선포할 것이다.
성 경: [사48:21]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본절에는 과거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물을 먹이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저자가 그 사건을 언급하는 이유는 20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보증물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비록 본서 저자는 바벨론 포로 사건이 이미 발생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그가 서 있는 시점은 바벨론 포로 사건이 일어나기 100여 년 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의 사람인 1차 독자들에게 바벨론 포로 기간 이후 귀환으로 시작되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확실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준하는 실제적인 보증물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본절이 제시하는 사건은 광야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광야의 모든 사건을 망라해서 대표적으로 제시된 사건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와 같이 본절은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근거로 하여 20절에 나타난 앞으로 있을 구원 사역을 튼튼하게 제시하고자 의도된 것이다. 반복하지만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여호와의 위대한 구원 사역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본서가 암시하는 하나님의 궁극적 구원 사역이란 옛날 출애굽으로 대표되는 구원 사역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놀랍고 새로운 구원 사역인 것이다. 이 새로운 구원 사역은 천지를 처음 창조한 하나님의 사역에 필적한 것이며, 그 창조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 주며, 그 목적을 완성시켜 주는 새 창조의 사역임을 이미 40장 이후부터 저자가 계속 시사해 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49-53장에 서술되고 있는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내용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성 경: [사48:22]
주제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구원]
주제2: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여호와께서 그 종 야곱을 구속하심으로 벌어질 일 중의 하나는 두 부류의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두 부류는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받느냐 안 받느냐로 갈라질 것이다.
성 경: [사49:1]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종의 노래]
ꃨ 여호와께서...말씀하셨으며 - 본문의 화자(話者)를 누구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누인다. 먼저 이스라엘 혹은 고레스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그 근거는 본절에 나오는 '부르셨고', '이름' 따위의 표현이 분명히 이스라엘이나 고레스를 가리키는 43:1;45:3과 연관성을 나타낸다는 점이다(Whybray). 반면에 메시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그 근거로는 43:1;45:3과는 달리 본 문맥이 종으로 오신 메시야를 요청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들고 있다(Barnes, Fausset, Clark). 우리는 후자의 견해를 따르고자 한다. 신약은 예수께서 그의 출생 전부터 메시야의 사역을 부여받았을 뿐 아니라 출생 전 하나님으로부터 그 이름을 부여받았던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마 1:21;눅 1:31). 42장 이후 일반적인 용어들로 그 특성과 사역이 암시되었던 메시야는 본장에서부터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그가 감당할 사역을 선포하고 있는데, 그 선포의 내용은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 나라에도 구원 사역이 확장된다는 것이다.
성 경: [사49:2]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종의 노래]
ꃨ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 성경에서는 하나님 말씀의 설득력과 능력을 나타낼 때 '찌르는 것', '검' 따위에 비유한다(전 12:11;히 4:12). 한편, 계 1:16;19:15 등에서 요한은 본문을 인용하여 구세주를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ꃨ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 바로 앞 구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할 때 '나'는 칼과 같은 능력있는 말씀으로 볼 수 있겠다. 하나님은 망토에 칼을 숨기듯 메시야의 칼과 같은 말씀을 숨기셨다가 적절한 때 그 말씀을 내실 것이다(Hengstenberg).
성 경: [사49:3]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종의 노래]
ꃨ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 여기 '종'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1)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유대인'으로 보는 견해인데(41:8)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는 선포에 근거를 둔다(44:23, Rosenmuller). 이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이 종에 대한 언급으로 나오는 후속절의 내용이 결코 유대인에게 적용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본서 저자인 이사야로 보는 견해이다(Grotius, Dathe). 이 견해는 '이스라엘'이란 호칭을 이사야에게 붙여줄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에서 쉽게 반박된다. (3) 메시야로 보는 견해이다. 사실 후속절들에 나오는 이 인물에 대한 묘사와 신약에 나오는 설명(마 13:57;눅 2:32)은 메시야와 일치하고 있는 특히 7절에 열방의 왕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언급은 메시야 외의 다른 인물을 적용시키기 힘들다는 점을 확정짓는다. 문제는 '메시야'에게 '이스라엘'이란 호칭이 붙여진 점인데 한 개인인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란 민족의 호칭이 부여되었듯이, 사탄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를 통하여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의 머리가 되신 메시야에게 영적 의미의 이스라엘이란 호칭을 부여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될 만하다 하겠다.
성 경: [사49:4]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종의 노래]
ꃨ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 메시야 당시 팔레스틴 땅의 인구 수에 비해 결국 그의 사역을 통해 믿게 된 자의 수가 너무 적을 사실을 내다보는 언급으로 이해된다. 성경은 메시야의 부활을 믿는 수준에 이르렀던 자의 수가 대략 500여 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측케 한다(고전 15:6).
ꃨ 나의 신원이...하나님께 있느니라 - '나의 심판이 여호와와 함께 있고 나의 상급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가 원문 직역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메시야의 사역을 공의로 판단하시고 상급을 내리신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메시야의 수고와 고통이 결국에는 목적할 만큼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는 결코 낙심하거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42:4;50:7-9). 메시야의 고난과 십자가 사역은 실패하지 않았다. 그의 사역을 통하여 얻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게 되었다(53:10-12;벧전 2:23).
성 경: [사49:5]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종의 노래]
ꃨ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모이게 하시려고 - 양치기가 그의 흩어진 양들을 혹은 암탉이 그의 병아리들을 다시 모으는 장면에서 따온 비유이다:"예루살렘아 예루사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깨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마 23:37). 메시야 예수께서 땅에 오신 목적 중의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시기 위함이었다.
성 경: [사49:6]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종의 노래]
ꃨ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이르게 하리라 - 혈통적 이스라엘을 회개시키는 일은 메시야가 궁극적으로 이루실 과업에 비해서는 너무 작은 일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거듭된 반역으로 한 혈통적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구원은 막을 내렸고 이제 그 사역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온 세계를 대상으로 하되 메시야를 구세주로 믿는 개개인들을 받아들이는 식으로 구원 사역은 이어질 것이다.
성 경: [사49:7]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종의 노래]
ꃨ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 종으로 오실 메시야의 특징을 한마디로 잘 요약하고 있는 구절인데, 좀더 자세한 묘사는 53장에 나온다.
ꃨ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 메시야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보고 모든 이방 권세자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가리킨다. 종말론적 성격을 지닌 표현이다.
성 경: [사49:8]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 갑자기 시제가 완료형이 되었다. 메시야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장면이 선행되어 있음을 짐작케 하는 표현이다. 은혜를 구하는 장면이란 다름 아닌 메시야의 대속적 죽음을 가리킨다. 메시야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가리킨다. 메시야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근거를 마련하셨다. 이와 같은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은혜를 베푸실 것을 확신하는 의미에서 저자는 완료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 경: [사49:9]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잡혀 있는 자 - 영적 우매에 사로잡혀 있는 자를 가리킨다. 메시야께서 대속적 죽음을 죽으시고 인간의 죄를 속하신 1차적 이유는 영적 우매에 사로잡혀 있던 자들을 해방하시기 위함이었다(42:7).
ꃨ 길에서...것인즉 - 여기 '길'이란 광야를, '자산'이란 나무, 풀 한 포기 없는 민둥산을 각각 가리키는데, 그곳에 푸른 초장이 있다는 묘사는 후속절에 나오는 그 양떼를 먹이시는 목자되신 메시야의 이미지와 조화를 이룬다. 비록 메마른 광야를 다닐지라도 참목자되신 그리스도가 있으면 그 양떼들은 목마르거나 굶주리지 않는다는 영적 의미가 숨어 있다.
성 경: [사49:10]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 이것은 사막을 여행하던 대상(隊商)이 쉴만한 그늘이나 수풀을 만나게 되는 것을 연상케 한다(4:6;14:3;25:4;32:2). 목자되신 메시야를 통해 부여되는 보호, 쉼, 기쁨 등을 가리키는데, 신약에서도 동일한 이미지가 나온다:"...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계 7:16).
성 경: [사49:11]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모든 산을 길로 삼고 - 여기 '산'은 장애물을 상징하는 바, 본문은 그 장애물을 제거한다는 의미이다. 혹자는 여기 '산'을 복음 전파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역사적으로 로마라는 한 나라에 복속되었던 애굽, 시리아와 같은 큰 나라들로 보기도 한다(Vitringa).
성 경: [사49:12]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시님(*) - 성경에 한 번만 등장하는 용어이므로 이곳이 정확히 어딘지를 규명하기란 불가능하다. 70인역(LXX)은 '페르시아'로, 갈대아역은 '남부'로, 또 다른 학자는 '팔레스틴의 남부'로 각각 보고 있다. 특이할 만한 견해는 오늘날의 '중국'으로 보는 견해인데 이 견해는 당시 아라비아나 시리아 사람들에 의해 오늘날의 중국은 '시님'과 그 음역이 비슷한 '신', '친', '치니' 등으로 불리웠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Gesenius). 이렇게 견해가 엇갈리지만 분명한 것은 이곳이 팔레스틴으로부터 먼 곳이라는 사실이다. 이방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 혹은 이방인이 메시야의 복음을 듣고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의 구성원으로 소속될 것이다.
성 경: [사49:13]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하늘이여 노래하라...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 이것은 하나님께서 무생물인 자연을 그의 성가대로 부르신 이유이다. 그런데 여기 '위로'란 문자 그대로 억울하거나 힘든 경험을 한 사람에게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베푸는 정도의 선한 말이나 행동이 아니다. 본서의 특징은 동일한 사상을 계속 반복 심화시킨다는 점인데, 이곳과 유사한 사상을 피력하고 있는 44:21-23에 의하면 '위로'란 죄사함이다. 또 본서는 '의'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본서에서 '의'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그 무엇이다. 그런데 본서는 동시에 그 '의'가 메시야의 대속적 죽음을 통하여 만족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여기 '위로'란 메시야의 대속적 죽음을 통한 죄인들의 죄사함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놀라운 사실 때문에 자연까지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그 백성을 메시야를 통하여 구속하시는 근거는 그의 언약이다. '그 백성'이 언약적 용어라는 사실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성 경: [사49:14]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시온 -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포로지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이 마치 하나님이 그들을 그곳에 영원히 버려두시고자 한 것처럼 불평할 사실이 기록되고 있다. 본서의 집필 시점은 포로로 잡혀가기 100여 년 전인데, 그 성취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완료형이 사용되었다.
성 경: [사49:15]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보다 훨씬 승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표현은, 없는 사실을 일부러 가정한 것이 아니다. 인륜이 땅에 떨어지는 오늘날의 세태에서도 가끔 볼 수 있거니와, 당시 이방 부모들 가운데는 형편상 그의 어린 자녀를 버려서 죽어가게 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한다(롬 1:31, Barnes).
성 경: [사49:16]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손바닥에 새겼고 - 손바닥은 자주 들여다볼 수 있게끔 가까이에 있는 것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ꃨ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 이 표현도 계속 시선을 떼지 않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결국 본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로부터 멀리 계시거나 무관심하지 않다는 사실을 밝힌다.
성 경: [사49:17]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 원문 직역은 '네 자녀들은 서두를 것이다'이다. 무엇을 하기 위해 서두르느냐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 '자녀들'로 번역된 '바나이크'(*)는 '너의 아들들'로 또는 '너의 건축자들'(70인역)로 번역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서두르며 하는 일이란 건축에 관한 것이라는 암시를 추측케 한다. 그렇다면 본 구절은 포로 이스라엘이 그 무너진 성벽과 성전을 수축하기 위하여 서둘러 귀환할 사실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다.
성 경: [사49:18]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 원문 직역은 '살아 있는 내가 말하노니'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맹세의 중요한 한 형태인데, 이것은 이 맹세에 따르는 예언이 반드시 성취될 것에 대한 엄중한 확신을 내포한다(렘 22:24;겔 5:11;14:16, 18, 20;16:48).
ꃨ 네가 반드시...신부처럼 할 것이라 - 성경에서 시온은 흔히 신부에, 개심자들은 신부의 장식품에 각각 비유되고 있다(62:3;말 3:17). 여기서 시온의 자녀들이란 1차적으로 포로 귀환할 이스라엘 백성을, 2차적으로는 그리스도에게로 개심할 영적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이 후자의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완전한 회심을 이루는 수단이 될 것이다(미 5:7, 8;롬 11:12-15).
성 경: [사49:19]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 1차적으로는 귀환할 백성으로 인해 그 땅이 붐비게 될 것을 가리키나, 영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이 될 진정한 개심자들이 무수히 많을 것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본 암시는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주셨다(창 12:1-3;13:14-17 등).
성 경: [사49:20]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고난 중에 낳은 자녀 - 원문 직역은 '너희의 사별(死別)의 아들들'이다. 이는 남편과 사별한 사실보다는 자녀와 사별한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1차적으로 전쟁과 기근으로 말미암아 많은 자녀들을 잃어버린 예루살렘이 이제는 각처에서 돌아온 백성들로 크게 붐비게 될 것을 예언하는 말이다(Whybray). 그리고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 덕분에 믿음을 지니게 될 성도들에 대한 암시로도 이해된다.
성 경: [사49:21]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누가...생겼는고 - 이것은 1차적으로는 예기치 못한 회복을 목도한 시온의 즐거운 비명이며, 2차적으로는 영적 이스라엘의 행렬이 이방 각처에서 교회로 이어질 사실에 대한 암시이다. 이러한 사실에 따른 탄성, 비명은 행 10:45에서 가장 먼저 성취되었다:"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Fausset).
성 경: [사49:22]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ꃨ 열방을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 손을 쳐든다는 것은 환영의 표시이다. 하나님은 이방인이 메시야를 받아들이는 복된 대열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을 부르고 환영하신다는 것이다(11:11).
ꃨ 그들이 네 아들들을...올 것이며 - 어느 정도 자란 아이는 어깨에 올려 놓고 아주 갓난 아이는 가슴에 안은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이 표현은, 이방인들이 혈통적 이스라엘과 함께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에 구성원으로 가입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성 경: [사49:23]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시온의 재건]
본절의 이미지들은 보호, 복종 등을 그리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땅 위의 권세잡은 자들에 의해 보호받고 또 그들을 복속시킬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일례로, 이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國敎)로 공인된 사실이나 기독교의 영향력이 로마 전체에 미쳤던 사실은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되겠다.
성 경: [사49:24]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바벨론의 함락에 대한 예언]
ꃨ 용사의...있으랴마는 - 바로 뒤에 강한 긍정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부정의 문구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의 포로된 백성을 해방시킬 뿐 아니라 나아가 신약 교회 시대에 핍박 받는 그의 성도들을 핍박으로부터 보호하실 것에 대한 강한 암시이다(Fausset, Clark).
성 경: [사49:25]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바벨론의 함락에 대한 예언]
ꃨ 대적하고...구원할 것임이라 - 문자적인 뜻은 '싸워서...구원할 것이다'이다(54:17). 전쟁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세상 군왕들과는 달리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무기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바로 그것이었다. 그 무력해 보이는, 그러나 진정 강한 그 무기를 가지고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셨다.
성 경: [사49:26]
주제1: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위로]
주제2: [바벨론의 함락에 대한 예언]
ꃨ 자기의 고기를 먹게 하며...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 적의 자중지난(自中之亂)을 암시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대적은 서로 치고 받아 스스로 멸망할 것이다(계 16:6).
성 경: [사50:1]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이스라엘의 죄악]
ꃨ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 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 여기서 시온은 아내, 유대인은 자녀들, 그리고 하나님은 남편과 아버지로 비유되고 있다(54:5;62:5;렘 3:14). 율법에 따르면, 한 가정의 가장은 아내에게서 결격 사유를 발견하면 합법적으로 그 아내를 내보낼 수 있었는데 그때 이혼장을 주었다(신 24:1). 그런데 악한 가장들은 아내를 내보내는 행위를 정당화 시킬 때 이 율법대로 이혼장을 써주었다(마 19:7 참조). 뿐만 아니라 악의가 없는 가장들도 채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할 때 자녀들을 종으로 팔기도 하였다(출 21:7;왕하 4:1;느 5:5). 그런데 본절에서 하나님은 아내된 이스라엘과 자녀된 그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것은 하나님이 팔았기 때문에, 그리고 이혼 증서를 써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에 대한 징벌 때문인 것을 밝히기 위해 이스라엘이 익히 알고 있는 한 율법 조항을 사용하여 설명하신 것이다. 이 설명 속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인연은 잠시 중단된 것이며 한 남편이 그 아내와 자녀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듯이 이스라엘이 징벌의 의미를 깨닫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합법적으로 그 관계를 회복하실 수 있다는 암시가 내포되어 있다(Horsley).
성 경: [사50:2]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이스라엘의 죄악]
ꃨ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 마치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강림하신 적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 표현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던 사실을 암시한다(렘 7:25, 26).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듣지 않자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선지자로 이 땅에 보내셨는데 그리스도의 선지자되심은 베드로의 설교 속에 잘 드러난다(행 3:22-26).
ꃨ 내 손이 어찌 짧아...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 길게 뻗은 손은 '능력'을, 그 짧은 손은 '연약함'을 상징한다(59:1, Fausset).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갔고 그 수치스러운 생활이 지속되는 것은, 하나님이 무능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에 대한 징벌의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암시가 들어 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우매한 이스라엘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계속 묘사된다.
ꃨ 거기 물이...되느니라 - 어떤 학자는 근종 사막 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렬한 태양 광선으로 강줄기가 말라 그곳에 있던 물고기가 죽은 현상에 대한 묘사로 보지만(Barnes), 그것보다는 출애굽 전, 애굽의 하수가 피로 변하여 그곳의 물고기가 죽고 악취를 풍겼던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묘사로 보는 것이 더 문맥적이다(출 7:18-21).
성 경: [사50:3]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이스라엘의 죄악]
ꃨ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출애굽 전 하나님이 애굽 땅에 내리셨던 흑암 재앙을 가리킨다(출 10:21, 22).
ꃨ 굵은 베로 덮느니라 - '베'는 그 피륙의 조직 상태가 조잡하고 어두운 색으로 되어 있는 천으로, 애도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삼하 3:31). 그러나 본절에서는 애도의 상징보다는 그 색이 검다는 사실 때문에 언급되었으므로 본절의 상반절과 동의적 개념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2절에서는 땅 위, 본절에서는 하늘에 일어난 초자연적 현상을 대비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온 우주를 향해 그 능력을 발휘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증거한다.
성 경: [사50:4]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메시야의 순종과 승리]
본절부터는 화자(話者)가 바뀌고 있다. 이 화자가 누구를 가리키느냐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본서 저자인 이사야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경우, 8절은 이사야가 바벨론 정부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는 사실에 대한 묘사라고 한다. 물론 이사야가 심문을 받는 이유는 바벨론이 바사에게 곧 멸망할 것을 예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Whybray, J. Watts).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이사야가 바벨론 정부에 체포되어 심문받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구절은 없다. 다른 하나는 메시야로 보는 견해이다. 초대 교회 시대 이후 지지를 받아왔던 이 견해는 결정적인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6절을 인용하여 그 자신에게 적용시키셨던 사실을 들고 있다(눅 18:31, 32). 이 결정적인 단서를 빼고서 객관적으로 볼 때도 철저하게 능욕당함(6절), 여호와로 인한 궁극적 승리(8절) 등은 이사야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메시야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증거들이라 하겠다.
ꃨ 곤핍한 자 - 문자적인 뜻은 '지친 자'이다. 죄 의식으로 눌려 있는 자 혹은 무거운 짐을 지고 견딜 수 없어 하는 자 등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성 경: [사50:5]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메시야의 순종과 승리]
ꃨ 귀를 열으셨으므로 - 이 표현은 가르침의 전달이나 임무 수여를 뜻할 때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룻 4:4;삼상 9:15). 메시야는 인류 구속의 성취라는 막중한 임무를 하나님께 받으셨다. 비록 그 임무 수행에는 온갖 고통이 따르지만 그분은 그것을 기꺼이 수행하셨다.
성 경: [사50:6]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메시야의 순종과 승리]
ꃨ 나를 때리는...등을 맡기며 - 물론 이사야 자신도 이 같은 유(類)의 시련을 전혀 당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다 엄격한 의미에서 이 표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성취되었다(마 27:26;눅 18:33).
ꃨ 수염을...맡기며 - 수염은 당시 사회에서 일종의 영예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 수염을 자르거나 뽑는다는 것은 최고의 모욕 중 하나였다. 특히 이 같은 행위를 하는 자들은 사악한 자들로 간주되었다. 로마의 악한 소년들 중에는 족집게로 학자들의 긴 수염을 뽑는 못된 습관을 지닌 자들이 있었다고 한다(Hengstenberg). 이 무례하고 사악한 부류에게 메시야되신 그리스도께서는 빰을 맞으셨다(마 26:67;눅 18:32).
ꃨ 침 뱉음 - 누구의 면전에서 다른 곳을 향해 침을 뱉는 것은 모욕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더구나 그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모욕이었다. 바로 이 모욕을 그리스도께서 당하셨다(눅 18:32;막 14:65;15:19).
성 경: [사50:7]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메시야의 순종과 승리]
고통을 통하여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을 아시고 자신에게 퍼부어지는 모든 오욕을 인내로 이겨내실 것임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ꃨ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 성경에서 마음, 이마, 얼굴 따위를 굳게 한다는 표현은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 모두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부여된 임무를 고통이 따르더라도 끝까지 완수할 것이라는 각오가 담겨져 있다:"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미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네 이마도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겔 3:8, 9).
성 경: [사50:8]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메시야의 순종과 승리]
ꃨ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 여기 '의롭다 하심'이란 죄인을 의롭다 하는 칭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이 메시야의 의롭고 무죄하신 품성을 인정하고 드러내심을 가리킨다.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의 사역 과정에서 이 사실은 잘 드러난다. 먼저 그가 침례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들려온 소리를 통하여(마 3:17), 그가 행하신 기적을 통하여, 빌라도 아내의 입을 통하여(마 27:19), 심지어 십자가 사건을 목격한 로마 백부장에 의해서(눅 23:47) 그의 의로움이 증거되었다. 결국, 이는 그의 공생애 전체가 하나님의 인정 속에 되어졌다는 것을 입증하며 그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사 하늘로 오르셔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사실을 통하여 그의 의로우심은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ꃨ 나의 대적이 누구뇨(*, 미 바알 미쉬파티) - 문자적인 뜻은 '누가 나의 재판의 주인이냐'이다. 얼핏 보면 재판장이 누구냐는 질문으로 보이나, 문맥상 '나의 의로움을 인정하지 않고 나의 불의함을 선고하기 위하여 재판을 걸어오는 자가 누구냐'라는 의미의 질문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 누가 재판을 걸어봐도 결국 메시야 자신의 의로움은 인정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다(Barnes, Fausset).
성 경: [사50:9]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메시야의 순종과 승리]
ꃨ 주 여호와께서...누구뇨 - 사도 바울 역시 이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하였다:"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성 경: [사50:10]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여호와를 의지하라는 권고]
ꃨ 너희 중에...누구뇨(*, 미 바켐) - 이 표현을 이해하는 견해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본절이 묘사하는 대상, 곧 경건한 자의 숫자가 매우 적을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며(Hengstenberg), 다른 하나는 단순히 '누구든지' 정도의 의미를 지니는 부사로 보는 견해이다(Fausset). 문맥상 후자가 타당하다고 본다. 본절에서 메시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혹독한 재앙에 처해 있을 때에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 하지 말고 메시야 자신을 본받아 자신들을 신실한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의탁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성 경: [사50:11]
주제1: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
주제2: [여호와를 의지하라는 권고]
ꃨ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 - 원문 직역은 '섬광(불꽃)으로 너 자신을 둘러쌀 불을 지피는 자'이다. 여기 '섬광(불꽃)'이란 지속적으로 타는 것이 아니라 잠시 큰 광채를 내지만 곧 스러지고 마는 문자 그대로의 불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본 구절이 암시하는 바는, 인생 여정에서 역경을 만날 때 자신의 보잘것 없는 능력으로 그것을 헤쳐보려고 애쓰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계시보다는 영매, 마법 등에 의존하는 영적 무지에 빠졌던 백성들 혹은 인간 철학의 교묘한 올무, 거짓 종교, 무신론, 자기의 등에 빠져 있는 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은 결국 그 의존하는 것으로 인하여 멸망하고 만다. 이것은 마치 빛과 열기를 기대했던 불에게 삼키움을 당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아무튼 10절과 본절은 인생 여정, 특히 역경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와 자신이나 우상을 의지하는 자를 비교하고 그 결과를 뚜렷이 대조시킨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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