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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잠언

[스크랩] 잠언 29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5:48

잠언 29장 주석

 

=====29: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 - 이 사람은 이웃, 부모, 복음  사역자들,

하나님의 말씀 등에 의하여 베풀어지는 권고, 충고, 징책 등을 멸시하고 거절하는  뻔

뻔한 얼굴, 굳은 마음, 마비된 양심을 소유한 자이다(Gill).  특히 목이 곧다는  것은

멍에를 쓰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목을 뒤흔드는 완고한 황소로부터 따온 이미지이다.

   패망을 당하고 - 히브리어 '이솨베르'(*       )의 문자적인 뜻은 '부서지다', '깨

뜨러지다'이다.  말하자면 쇠방망이에 맞아 산산조각이 나고 다시는 재결합될  수  없

는, 사기로 만든 항아리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영원한 멸망의  징

벌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징벌은 생각지 않았던 때 갑자기 임한다.  그리

고 그 징벌을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는데 이 말의 원문적 뜻은 '치유되지 않는다'이다.

그처럼 전혀 개전(改悛)의 정을 보이지 않는 사람의 죄는 사유(赦宥)되지 않으며 그를

그 끔찍한 징벌의 상황에서 돌이킬 그 무엇은 없다.  그는 상실된  자이며,       잃어버린

바된 자이며, 버린운 자이다.  하나님은 되풀이되는 경고를 무시하고 멋대로 행하였던

엘리의 아들들의 목숨을 끊어버림으로써 본절의 교훈의 실례를 보이셨다(삼상 2:25).


=====29:2

  많아지면(*           , 비르보트) - 권좌에 올라 그 세력을 강화시켜 가는 것을 말

한다.   따라서 어떤  역본들은 '권좌에  있으면'으로  번역하기도   한다(are   in

authority, KJV;thrive, NIV).  본절은 28:12,28이 언급하였던 동일한 교훈을 주고 있

다.  그 내용은 통치자가 악하거나 의로움에 따라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구가하기도 하

고 도탄에 빠져 신음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의인이 권좌에 있을 경우       범죄들은

징벌되고 억제되므로 나라에 정의와 평안이 있을 것이다.  반면 악인이  권력을  잡을

경우 공의를 시행치 않으므로 나라는 혼탁해지고 특히 신앙적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이

박해를 받게 될 것이다(Henry).


=====29:3

  창기를 사귀는 자는 재물을 없이 하느니라 - '사귄다'는 것은 계속해서 친구  관계

를 유지한다는 뜻인데 창기와 계속 가까이 짝하는 자에 관해서는 1-9장에서 자세히 다

루고 있으며 특히 경제 문제와 연관시키고 있다.  이 점에 관하여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 하나는, 당시 사회에서 부(富)를 신적 축복의 증표 중의 하나로  간주하였을  뿐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한 가정의 영예로운 위치를 세우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기를 사귀든 아니면 그외 다른 목적 때문에 부를 쓸데없이  소비하

는 것은 개인적인 우매의 행위였을 뿐 아니라 한 가정과 그 가정의 가장에 대한  반역

행위이기도 하였다(Whybray).  합리적인 재정 운영을 통해 그 가정의  기쁨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게 하는 요소로서 본절 상반절에서는 지혜를 꼽고 있다.


=====29:4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             , 이쉬 테루모트)  - 문자적인

뜻은 '공물(뇌물)의 사람'이다.  여기서 히브리어 '테루모트'는 '뇌물'(brives,  NIV)

혹은 백성이 관청이나 궁궐에 바치던 '공물'을 가리킨다.  특히 이를 후자로 볼  경우

자원하여 드리는 공물은 문제가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할 때 여기서는 강요된 공물을 의

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NEB) 강요된 공물은 중한 세금의 개념과 연관성이 있다.  세금

정하는 것이 왕의 고유 권한임은 고대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었던 바이다.  그런

데 불행히도 왕은 거대한 건물을 지으려는 사치스러운 야욕이나 불필요한 정복 전쟁을

수행하려는 목적 때문에 상식을 넘어선 세금을 거두려는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

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과도한 세금을 거두려는 어리석은 왕들 때문에 고통을  당

하였다.  왕 제도를 부정적으로 여겼던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으로       왕세우기

를 요청하였을 때 과도한 세금 징수를 비롯한 왕의 학정을 경고하며 왕 세우기를 거절

한 바 있다(삼상 8:11-18).


=====29:5

 아첨하는 것(*   , 마할리크) - 원래 뜻은 '매끄럽게 하는 것'이다. 아첨꾼

의 말은 부드럽고 상대를 기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미리 계

획된 사악한 행위를 덮기 위한 치장이요 속임수에 불과하다(McKane).  하반절의  그의

는 아첨을 듣는 이웃일 수 있다. 이 경우 하반절이 뜻하는 바는 아첨을 듣는 자는 아

첨꾼의 말을 듣고 자신에 대해 잘못 판단하여 죄를 짓거나 멸망에 빠질 수 있다는  뜻

이 된다.  그러나 이를 아첨꾼 자신으로 볼 수도 있다.  이 경우 하반절의 뜻은  아첨

뒤에 숨긴 사악한 음모로 도리어 자신이 멸망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원문상  주어가

'아첨하는 자'임을 고려할 때 후자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결국  본절은  아첨은

자멸을 초래한다는 경고로 보여 진다.


=====29:6

 악인의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나 - 원문 직역은 '악인의  범

죄 가운데는 올무가 있다.'  고질적인 악의 습관에서 초래된 악인의 범죄는 결국에 가

서는 그 자신을 멸망으로 이끄는 올무가 되고 만다는 것을 가리킨다.  반면       상반절과

의 전적인 대비를 위해 서술된 하반절은 그 양심이 범법에서 떠난, 따라서 멸망의  올

무에 빠질 위험이 없는 자의 영속적인 기쁨을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


=====29:7

 알아 주나 ... 지식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각각 '요데아'(*     ), '다아트'

(*      )로서 같은 어근의 단어들이며 깊은 개인적 관심을 언급할 때 사용된다. 예를

들면 궁핍의 절정에 있는 가난한 자나 도움받을 길이 없는       고아를 구체적으로  돕는

것, 멸망 직전에 있는 자를 회복시키는 것, 법정에 나가 억울한 피고인을 위해 증언하

는 것, 신체 장애자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는 것 등을 묘사할 때 이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욥 29:12-17).  이와같이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모

든 사람의 의무이다(시 41:1).  그러나 악인은 관심도 없을 뿐더러 그 대상을 찾는 통

찰력도 결여되어 있다.


=====29:8

 모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케 하여도 - 원문 직역은 '조롱하는 자는 도시를 불  위에

놓는다'이다. 여기 '조롱하는 자'란 도덕적 의무, 특히 국가가 부여하는 의무를  비웃

고 동료 시민들의 저급한 감정을 부추겨서 중앙 정부를 대항하여 정치적, 종교적 쿠데

타를 일으키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사 28:14, Cook, Toy).  그러나 본절에서는 영적

으로 교만한 자, 곧 하나님의 율법을 경멸함으로 분쟁을 일으키는 자로 봐야 할  것인

데 그 이유는 '슬기로운 자'와 대비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슬기로운 자'란 하

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신령한 지혜를 받은 자요 선행으로 지혜와 온유함을      나타내는

자이다.  그는 이기적 탐욕이 없으므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다툼이나  분쟁을  쉬게

하고 화평의 열매를 거두게 한다(약 3:13-18).


=====29:9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이 그침이 없느니라 - 원문에는  '지혜로운

자'가 '그가'로 되어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의 해석 가능성은 두 가지이다.  먼저  개

역 성경처럼 '그'를 '지혜로운 자'로 볼 경우에는, 그가 미련한 자를 크게 경멸하든지

인자한 품성으로 대하든지 간에 결과는 동일하게 어리석은 자의 다툼과 어리석음은 중

단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반면 '그'를 '미련한 자'로 볼 경우 본  구절의  의미

는, 미련한 자가 논쟁의 과정에서 이유없이 웃거나 이유없이 그 상대를  비난하는  등

반미치광이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논쟁이  평화롭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Parker).  한마디로 본 절은 어리석은 자와 더불어 이성적인 논쟁을 하기 위하여  노

력하는 일은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말한다.


=====29:10

 원문 직역은 '피를 목말라 하는 자는 정직한 자를 미워하고 의인은 그의 영혼을 찾

는다.'  본 직역의 내용의 의미가 불투명하다고 하여 NIV, RSV등이 원문을 수정  번역

하였는데(Bloodthirsty men hate a man of integrity and seek to kill the   upright,

NIV) 개역 성경도 수정 번역을 따르고 있다.  반면 맛소라 원문을 중시하는 성경 번역

가들은 원문을 직역하고 있다(The bloodthirsty hate the upright but just seek  his

soul, KJV).  앞뒤 문맥이 지혜자와 어리석은 자 등을 대비시키고 있는 경향을 고려하

더라도 수정 번역보다는 원문 직역이 옳다고 보여진다.  처음부터 살인한 자였던 사단

과 그의 모든 후손들은 정직한 자, 의로운 자를 미워하게 되어 있다.  가장 가까운 아

우 아벨을 피흘려 죽인 가인은 그 시조이자 표본이었다(창 4:5-8). 피를  목말라하는

사단의 후손의 증오 대상인 의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그 악한 자들의  회심

을 위하여 기도하고 애씀으로 그 버려진 영혼들을 구하려 한다.  악인의 증오에도  불

구하고 의인은 그들을 사랑하고 그 영혼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그 절정은 십자

가 위에서 나타났다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


=====29:11

  노(*        , 루호) - 문자적인 뜻은 '바람', '마음' 등이나 여기서는 '격렬한 열

정'에 휩싸인 '노', '분'등을 뜻한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하반절의 동사는 분, 노

따위를 억제하고 눌러 평정을 되찾는 것을 묘사하는 '예솨브헤나'(*           )가 사

용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 동사는 분 혹은 폭풍 따위가 완전히 가라앉거나       잠잠해짐

을 묘사하는 용어이다(시 65:7;89:9).  따라서 '억제하느니라'보다는  '잠잠하느니라'

로 번역하는 것이 원문에 가깝다.  언어, 표정 등을 통하여 어리석은 자가 그  분노를

그대로 드러낸다고 하여도 지혜로운 자는 그 마음에 평정을 계속  유지한다.   이같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하늘로서 임한 평안이 있기 때문이다(약 3:17).


=====29:12

 일단 지도자가 거짓말을 듣기 시작하면 그 공동체는 곧 부패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구절이다.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피지배 계급은 지배  계급

에 적응하도록 애쓰는 것이 그 속성이다. 그런데 지배 계급을 향해 속임수를 쓰고 아

첨의 말을 한 것이 먹혀 들어간 경우 지배층의 호의를 얻고자 하는 자들은 너도  나도

그 악행을 계속할 것이며 그 같은 경향은 공동체 전체에 파급되며 마침내 부패와 타락

이 창궐하도록 만들고 말 것이다.  로마의 한 속담이 본절의 핵심을 잘 풍자하고 있다

: '그 왕의 그 신하.'


=====29:13

 포학한 자(*                   , 이쉬 테카킴) - '고리대금업자',  '억압하는  자',

'속이는자'로 번역되기도 한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 '눈에 빛을 준다'는 것은 생명, 특히

육적인 생명을 지속케 함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악인이나 의인에게 똑같이 빛을 비추

이신다고 하였다(마 5:44,45).  악인은 가난한 자를 속이거나 압박하여 재산을 모으고

모은 재산으로는 고리대금업을 하여 더 큰 재산을 축적하며 그 같은 과정 속에서 가난

한 자는 고통받고 슬퍼한다.  가난한 자와 악한 부자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공존

하며 그 갈등은 계속된다.  그러나 악인이든 가난한 자든 간에 그들의 생명이  지속되

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본절의 핵심이며 악한 부자에 대한 평가, 징벌  따

위는 본절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29:14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 문자적인 뜻은 '가난한 자를 신실하게 판단하면'으

로서 가난한 자의 억울한 사정을 잘 해결해 주는 것을 가리키는데 왕이  이같이  덕치

(德治)를 베풀때 만백성의 추앙을 받으며 오래도록 왕위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하반

절) 내용이다.  이 같은 이상적인 통치를 위해 솔로몬은 기도하였는데 사실 진정한 의

미의 이 같은 왕은  그리스도  한분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의  왕권은  영원하다(시

72:4,12).


=====29:15

 임의로 하게 버려 두면(*        , 메슐라흐) - 자기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어 어

떤 악한 습관에 깊이 빠져버린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떤 자녀가 이 지경에 이르

렀을 경우 방관하여 아이를 마쳐 버린 그 어머니의 무관심 죄는 그 가정의 수치  혹은

불명예라는 결과를 낳는다.  일례로 다윗의 넷째 아들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

면서 자라났던 아도니야는 결국 솔로몬의 몫인 왕위를 찬탈하려다가 죽음을      당함으로

써(왕상 2:24, 25)다윗 가문의 큰 수치가 되었다.


=====29:16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 바벨탑 사건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났듯이 고대

세계를 보면 인류의 수가 증가할수록 세상은 타락하고 인간은 서로를 부패시켰다.  그

리고 죄가 많아질수록 파멸은 더 심각하게 또 더 가까이 다가온다.       이  같은  세태를

바라보면서 의인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버리셨다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도리어  종

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악인들만 수치와 멸망에 떨어질 것을 믿으며 인내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본절은 종말론적 신앙을 요구하고 있다.


=====29:17

  평안하게 하겠고 ... 기쁨을 주리라 - 훈계와 질책을 통해 잘 교육된 자녀를 둔 부

모가 누리게 될 정신적 축복들을 가리킨다.  전자는 '이니헤카'(*         )로서 문자

적인 뜻은 '근심에서 구조되다'인데 이것은 비뚤어진 성격과 악습이 몸에 밴 자녀들로

인해 겪게 될 각종 염려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후자

'이텐 마아다님'(*                   )은 적극적인 의미의 기쁨, 곧 자식의 성공  따

위로 얻는 만족과 평안을 가리킨다.  징계의 연단을 거치고 바르게 자란 자녀는  세상

에서도 성공하여 부모의 마음에 평안을 줄 것이다.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 '묵시'는 '하존'(*        )인데 이 용

어는 일반적으로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사

1:1;나 1:1).  그런데 본절은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가 중단된 것을 암시하기보

다는 계시에 대한 백성의 존중심 및 관심이 없는 상황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는데  왜

냐하면 하반절이 율법을 지키는 자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본절은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것을 지키거나 지키지 않는 두 부류에 관한 언

급이다.  그리고 '방자히 행하거니와'에 해당하는 '이파라'(*        )의 문자적인 뜻

은 '벌거숭이가 되다', '멸망하다', '사라지다'등인데 이 중에서 어느 것을 취해도 의

미는 분명하다. 먼저 전자는 그 가진 소유물뿐 아니라 입은 의복까지 벗기움을  당한

모습을 연상케 하는데 우리는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입으로 그 소유물을 빼앗기고 결박

당한 채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과 유다의 사례를 이 모습과 연결시킬 수 있다.  또한

후자는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당하고 그 주권을 빼앗겼던 사실,  그  땅

거민이 세계 도처에 흩어져 버렸던 사실을 연상케 한다.  익히 아는 바 대로 이스라엘

과 유다가 그 같은 운명에 처했던 까닭은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하고 무관심하였기  때

문이었다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29:19

   종이 이같은 반응을 나타내는 이유는 종이란 대개 양심이나 사랑이 아니라  마지못

해 눈가림으로 일을 하려 들기 때문이다. 바울은 종이 그 상전을 사랑하고 공경하면

서 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을 훼방하는 것이       된다고 경고했다

(딤전 6:1, 2).


=====29:20

  언어에 조급한 사람 - '조급함'의 히브리어 '아츠'(*    )는 '서두르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절은 신중히 생각해 보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나오는 대로 말하는 사람을  가

리키며, 이런 사람은 타인에게 큰 상처를 입히기  마련이다(26:12;약  3:8).   본서는

긍, 부정의 측면을 막론하고 말이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6:19;10:18-21;12:6,14;14:5, 25;17:4,7:19:5, 9;20:19;21:6;28:23).


=====29:21

 종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여 그의 어린 시절부터 멋대로 하도록 키울  경우  결국

그 종은 주인의 법적 아들의 권리, 예컨대 상속권까지도 요구하게 됨을 뜻한다.  신약

성경 시대까지만 해도 사회 구조상 노예 제도는 존속될 수밖에 없었으며,  주종(主從)

관계가 흐트러지면 위계 질서에 큰 차질이 빚어지게 마련이었다.  한편  종이  주인의

몫을 가로채는 비행(非行)의 예는 므비보셋의 사환인 시바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삼하

16:1-4).


=====29:22

  노, 분 - 각각 '아프'(*    ), '헤마'(*     )인데 이것은 일시적인 상태가 아니라

고질화될 성향, 기질을 가리킨다.  따라서 어떤 학자는 하반절을  이렇게  의역하기도

한다 : '성마른 기질은 많은 죄의 원인이다'(Moffatt).  특히 '헤마'는 하나님을 향한

반역을 일삼는 자들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된다.  분을 품고 노를 발동하는 것이 일종

의 기질이나 습관처럼 되어버린 자가 있는 공세는 항상 다툼이 있고 범죄가 있다는 경

고의 말씀이다(14:17,29;15:18;16:32).


=====29:23

 본절의 원문을 직역하면 '인간의 자랑은 그를 낮은 곳으로 데려가고 그 마음이  낮

은 자는 영예를 얻는다.'  자기 자랑은 수치로 인도하고 겸손을 영예로 이끈다는 사실

을 강조하기 위하여 직역에서 '낮은'으로 번역된 '솨팔'(*      )이 상.하반절에 각각

사용되고 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6:18)는 말씀도 있듯이,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교만한 자는 일반적으로 수치를  당할

뿐 아니라 공개적으로 큰 경멸을 당해 왔었다.  겸손이 영예로운 자리로 이끈다는  사

실에 대해서는 주님도 말씀하신 바 있다(눅 14:11;18:14).


=====29:24

 맹세함을 들어도 직고(直告)하지 아니하느니라 - 문자적인 뜻은 '맹세 아래 있지만

감히 증언하지 않는다.' 이것은 도적의 공모자가 도적의 범죄를 밝히는 증언대에 서서

진실만을 증언할 것을 맹세한 후에도 거짓말을 늘어놓기에 전전  긍긍함을  가리킨다.

진실을 증언하지 않을 경우 율법은 모든 죄가 증언하지 않는 그에게 돌아가도록  명령

하고 있다(레 5:1).  이같이 무서운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가 증언하지 않는 것은,  첫

째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경외심이 없기 때문이며 둘째는 도적에 대한 사사로운  인

정(人情) 때문이다.  모든 죄의 대가를 뒤집어 쓰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자신을 미워하

는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소한 인정 중 한 길을 따라야 할 경우 성도가  택해야

할 길은 명백하다(행 4:19).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기 되거니와 - 세상 사람이 부러워하는 권력, 명성,

힘 그리고 부 따위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삶이  통제당하도록

내어 맡겨버리는 경우, 그 묘한 압박감 때문에 분명한 하나님의 뜻과 옳은 길로  나아

가기를 주저하게 된다.  사람의 인기를 중시하여 여론에 민감한 자의 경우도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의 평판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그 같은 성향의 결국은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한편 무력을 가진 악한 무리들은 두려워한 베드로는 자신이 그리스도요 하나

님의 아들로 고백한 주님을 부인하고 심한 고통을 받았다(마 26:69-75).


=====29:26

  은혜(*      , 페네) - 이것의 문자적인 뜻은 '얼굴'이다.  이것은  어떤 결정권을

가진 자의 개인적 친분, 호혜를 얻기 위하여 경쟁하듯 아첨하는 자들의 모습을 암시하

는 용어이다.  이들은 참신뢰의 대상을 잊게 하는 욕심과 압박(행24:25-27) 비합리(고

전 2:6, 8)와 불안정성(시 146:3,4)등의 노예가 되어버린 자들이다.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 원문 직역은 '모든 사람의  판단력

은 하나님께로 부터 온다.'  악한 것을 바르게 교정할 판단을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른 사회를 세우기 위하여서는 뇌물을 주고 아첨하고 탄원하기 위하

여 이리저리 뛰기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낫다.


=====29:27

  본절은 선과 악 사이의 본유적인 불일치뿐 아니라(고후 6:14-18) 여자의 후손과 사

단의 후손 사이에 항상 존재해온 적대감을 암시하고 있다(창 3:15).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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