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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잠언 26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5:47

잠언 26장 주석

 

=====26:1

  팔레스틴에서 여름에 눈이 내리는 적은 없지만 설령 내린다고 해도 금방       녹아버릴

것이므로 무익하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는 봄부터 10월까지 비를 보기란 거의 불가

능하고 추수철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데 그때 비가 내린다면 그것은 익은 곡식에 손

상을 주어 도리어 해가 되며 심지어 불길한 징조로까지 생각되었다(삼상12:17).  영예

(*        , 카보르)  -   내적인 가치를 뜻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문맥상  외적

인 가치, 곧 높은 지위 따위를 뜻한다고 봐야 한다.  미련한 자의 높은 지위는 여름의

눈이나 추수철의 비처럼 무익할 뿐 아니라 해롭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지위에  합당

한 일들을 감당할 능력이 없을 뿐더러 자신의 욕심을 따라 그 지위을 남용함으로써 다

른 많은 사람에게 불이익을 끼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6:2

 팔레스틴 전역에서 쉽게 발견되는 참새는 까닭없이 땅으로 내려오지  않으며  제비

역시 먼 이국 땅을 행해 갈 때는 그 목적지를 분명히 정한다.  참새와 제비같은  미물

(微物)들도 이유나 목적이 없는 행동은 취하지 않듯이 인간 세계속에도 이유 없는  결

과, 특히 악한 저주는 까닭없이 임하지 않는다.  당시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저

주가 공의(公義)에 관계없이 마술 화살처럼 그 목적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간다는 미

신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바로 이 같은 어리석음을 본절은 깨우쳐 주고  있다.

발람도 그같은 미신에 대한 강한 반발을 보인 바 있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민 23:8).


=====26:3

  본절은 어리석은 자는 당나귀나 말처럼 이끌기 어려우니 물리적인 힘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러나 성경 전체 특히 시 32:8,9에 비추어 볼 때 본절은 하나님의

계명에 둔하고 어두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지 않으려는 잠재적 본성을 지닌  인

간 모두에게 주는 경고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


=====26:4

 두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 미련한 자에게서 나오는 말에 맞장구  치다보

면 자신도 그 우매함에 물들 수 있다는 우려이다. 한편 사도 바울은 우매한 자들에게

맞서 대항하기 보다는 스스로 미련한 자처럼 되기도 했다. 그는 효과적인 전도를  위

하여 피전도자의 수준으로 낮아졌던 바 이것은 분별력 있는 낮아짐이다(고후  12:11).

이는 분별력없이 휩쓸려 들어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26:5

 외관상으로 볼 때 4절과 본절은 서로 상반된 진술을 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

기 위하여 일련의 랍비들은 4절은 세속적인 논쟁에 관하여, 본절은       종교적인  논쟁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세속적인 논쟁은 피해야 하지만 종교적인 논쟁

은 맞서서 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또 다른 극단적인 랍비들은 4절

과 본절의 논리적 모순을 전제로 본서 전체의 정경성을  의심하고  있다(Cook,  Toy).

그러나 본절은 분명히 미련한 자에게 대답해야 할 경우를 제한함으로써 4절과  본절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4절이 미련한 자의 수준에로 떨어지지 말라는 소극적인 경

고라면, 아마도 본절은 미련한 자와 헛된 변론을 나누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를 책망하

고 그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라는 적극적 권면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26:6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이라 - 소식을 전하는 일에는 두 발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생

각하면 이해하기 쉬워진다.  보냄을 받는 자가 그 목적을 잘 수행치 못할 어리석은 자

라면 그를 보내는 일은 두 발을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인 것이다. 한편  두

발을 자르는 일은 치명적인 해악을 연상케 하는데 이 사실은 '해를 받느니라'의  원문

상의 의미와 잘 조화를 이룬다. '해를 받느니라'(*             , 하마스 쇼테)의  원

문 직역은 '폭력을 마시다'이다.


=====26:7

 본절 하반절의 의미는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상반절의 경우는 힘없이  달렸

나니에 해당하는 '달르우'(*       )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번역된

다.  (1) '절름발이의 다리를 제거해 버려라'(마찬가지로 미련한 자가 잠언을 입에 올

리지 못하게 하라, Grk.).  (2) '정상인의 다리는 절름발이의 그것보다 길다'(그처럼,

잠언이 미련한 자에게는 너무 높아 도달할 수 없다, Rashi).  (3) '절름발이가 춤추는

것과 같이 ... '(Luther).  (4) '절름발이의  다리가  힘없이  달렸나니'(개역  성경,

Ewald).  (5) '절름발이의 두 다리는 서로 같지가 않듯이 ... '(KJV).  이와 같은  여

러 해석이 있으나, 어쨌든 절름발이의 걸음이 무기력하고 부조화스럽듯이 미련한 자와

잠언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Ross, Toy).


=====26:8

 돌을 물매에 매는 것 - 이 묘사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크게 둘로 나뉜다. 그  하나

는 라틴역에 근거를 둔 것이로 보석 같은 귀중한 돌하나를 잡석(雜石)더미 위에  던지

는 행위에 관한 언급으로 보는 해석이다(Perowne, Clark 등).  또 다른 하나는 물매를

사용할 줄도 모르는 자가 돌을 물매에 묶는  모습에  대한       언급으로  보는 해석이다

(Whybray).  그러나 그 어떤 해석을 따르던 간에 어리석은 행위에 대한 묘사인 것만은

분명하다.  '영예', 곧 세상적인 지위를 미련한 자에게 부여하는 일은 지극히  어리석

은 행위이다.


=====26:9

  술 취한 자의 손에 든 가시나무 - 손에 가시나무를 들었을 경우 만취한 사람은  그

움직임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마찬가

지로 어리석은 자의 경우 잠언의 말씀을 읽거나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지적(知的)

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적절히 활용할 수는 없다.  잘못 사용하고 잘못 적용하여  남에

게 상처만 줄 뿐이다.  이 어리석은 자의 경우는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정확히 적용하

여 상대로 하여금 깊이 교훈을 주는 지혜자와 대조를 이룬다(전 12:11).


=====26:10

  본절만큼 원문 이해가 어려운 곳도 많지 않다. 따라서 본절에 대한 번역은 다양한

데 그 대표적이며 가장 바람직한 번역은 다음과 같다 :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궁수(弓手)는 어리석은 자를 고용하고 모든 나그네를 고용하는 자와 같다.'  본  번역

을 바람직하다고 보는 이유는 그 내용이 미련한 자의 행위 혹은 그 행위가 낳은  결과

등에 관해 기술하고 있는 문맥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 번역에서 '어리석은 자  ...

나그네를 고용하는 자'란 궁수가 그 활을 생각없이 자기 멋대로 사용하는 것을 부각시

키려는 의도로 사용되었다.  가진 바 능력이나 지위를 생각없이 함부로 사용하는 자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 본절이 주는 교훈이라 하겠다(Brown, Cook, Toy).


=====26:11

  문자 그대로 이해할 수 있듯이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

지 못하며 어떤 경고에도 불구하고 악한 행위를 반복한다. 토해 놓은 곳으로 발을 돌

이키는 개의 비유는(벧후 2:22) 죄를 반복하는 행위를 꼬집는 대목에서도 사용되고 있

다.


=====26:12

스스로 미련함을 인정하는 자는 소망이 있으나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는

구제 불능에 가까움을 가르친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통감하는 자는 새 출발할  가

능성이 많다.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에서 세리가 바로 그 모범이다.   그러나  자신이

완전하다고 믿는 자는 회개의 가능성이 희박한데 동일 비유의 바리새인이 바로 그  모

범이 된다(눅 18:9-14).  자신의 죄를 통감한 세리는 기대밖에 의인이라는 호칭을  들

었다.


=====26:13

 개역 성경에서는 읽을 수 없지만 원문에서는 본절에 두 차례에  등장하는       '사자'가

서로 다른 용어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각각 '솨할'(*     ), '아리'(*     )로서 전자

는 일반적인 의미의 '사자'를 , 후자는 좀더 특징적인 '포악한 사자'를 가리킨다.  이

두 용어를 포함한 본절을 좀더 실감나게 의역하면 이와 같다 : "게으른 자는  '거리에

는 사자가 있어 아주 포악한 사자가 누비고 있다'라고 말한다."  게으른 자는  자신이

책임 회피자가 아니라 리얼리스트일뿐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핑계요  자기  기만일

뿐이다(Kidner).


=====26: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 아침 일찍이 일어나 활동할 생각은 않고 침

상에서 뒹구는 게으른 자의 모습을 비유한 표현이다(6:9, 10;24:33).   어떤   학자는

'게으른 자가 침대 위에서 몸을 한 번 뒤집었다면 그로서는 엄창난 일을 한 것'이라고

비꼰다(McKane).


=====26:15

 19:24과 동일한 표현으로서 음식을 입에 넣기조차 싫어하는 게으른 자의 극단적인

모습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26:16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 - '선히 대답하는 사람'이란 바른 판단에 근거한 의견 제

시를 하는 사람을 말하고 '일곱'이란 완전 무한수를 암시한다.  그렇다면  이  표현은

'다수의 완벽하고 지혜로운 의견'을 가리키는 것이 되겠다.  게으른 자는  생각하기조

차 싫어하므로 참된 지혜를 얻고자 하는 진지한 토론을 거부한다.  또한 그의  관심은

본능을 좇아 안락하게 세월을 보내는데 있는데, 지혜 추구를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라

고 매도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26:17

 간섭하는(*            , 미트아베르) - 문자적인 뜻은 '간섭하다'외에 '격노하게 되

다', '흥분하다' 등이 있다. 이 동사는 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목격하게 된 싸움을  보

고 그 당사자들보다 더 흥분하고 격분하여 그 싸움에 끼어드는 행인을  연상케  한다.

이 행인을 본절은 개의 귀를 잡는 자에 비유하고 있는데 고대 사회에서  개란  오늘날

처럼 가정에서 길들여지지 않고 들개나 여우 따위처럼 들에서 멋대로  자랐기  때문에

사납기가 짝이 없었다. 따라서 이 같은 특성을 지닌 개의 귀를 잡았다는 것은 큰 상처

를 입기를 자초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관없는 싸움에 분을 내고 흥분하여 끼어든 자를

바로 그 같은 위험한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다툼, 분쟁을 그치게

하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마땅하다(마 5:9).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 분재에  개입

할 때 흥분하거나 격노한 상태에서 개입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26:18

  횃불을 던지며 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 - 원문 직역은  '불덩이,  화

살, 죽음을 던지는 미친 사람'이다. 이것은 화살에 불을 달아 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인명(人命)을 가볍게 보고 살인을 도모하는 사람은 미친 자임에 틀림없다.


=====26:19

  자기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 '내가 희롱하였노라'를  의역하

면 '농담삼아 해봤을 뿐이야' 혹은 '심심 풀이 삼아 해봤을 뿐이야'이다.  이는  남을

속여 큰 상처를 입게 하고도 '나는 손해 입히려는 마음이 없었어. 재미 삼아 그래본거

야'라고 일축해 버리는 뻔뻔스럽고 경솔한 자를 연상케 한다. 이 자는 살의를  가지고

불화살을 쏘는 미친 자와 같다. 농담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내뱉는 농담은 때로 살인 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에게

는 농담에 불과한 것이 상대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을  의도

적으로 속여 놓고 그 행위를 농담 한마디 한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26:20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 '말장이'(*        , 니르간)의 문자적인 뜻

은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 '고자질장이'이다. 물론 나뿐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

도 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이야기를 맞장구치며 받아주는 사람도 악하다. 만일 나

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의 입에서 남을 중상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 맞장구치며  받는

사람이 없다면 문제는 확산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도둑질한  물건

을 받아주는 사람은 도둑 만큼이나 악하다'는 격언에 공감하게 된다(Clark). 한편  본

절에서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자와 분쟁의 관계는 땔감과 불의 관계에 비유되고  있는

데 이러한 이미지는 일상 생활 속에서 잠언의 소재를 끌어옴으로써       설득력을  더해준

다.


=====26:21

  다툼을 좋아하는 자 - 20절의 '말장이'나 22절의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26:22

 별식(*        , 미틀라하밈) - 문자적인 뜻은 '한입거리 맛있는 음식' 혹은

'상처'이다. 이것은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자의 말을 가리키는데 남을 비방하고  험담

하는 말은 한입에 먹을 수 잇는 간편하고도 맛있는 음식과도 같지만 큰 상처를 남기기

도 한다는 뜻을 암시한다. 70인역(LXX)도 이것을 지지하고 있다 : '남의 말하기  좋아

하는 자의 말은 부드러우나 그 말은 뱃속 깊은 곳을 치느니라.'


=====26:23

 온유한 입술(*              , 세파타임 돌레킴) - 문자적인 뜻은  '불타는

입술'로서 겉으로 애정이 넘치고 따뜻한 사랑의 말을 내놓는 입술을 가리킨다.이런 입

술을 가진 자가 악한 마음을 숨기고 있다면 그는 위선자일 따름이다. 그런 자는  낮은

은을 입힌 곧 '은 찌끼를 입힌' 토기와도 같다. 토기에 찌끼를 입히는 것을 밝은 광채

를 내게하기 위함일 뿐 그것 자체가 토기를 고가품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애정이 넘치

는 말과 행동 이면에 악한 음모를 숨긴 대표적인 사례는 가룟 유다가 로마 군병을  이

끌고 주님을 만났을 때의 장면이다(마 26:47-49).


=====26:24

 앞절에 이어 겉과 속이 전혀 딴판이니 위선자를 경계시키는 내용이다. 여기서 감정

에 해당하는 '시느아'(*        )는 극도의 증오나 혐오를 뜻한다.


=====26:25

  일곱 가지 가증한 것 - '일곱'은 '완전, 충만'을 상징한다. 부드럽고 매력적인  말

투로 치장했더라고 악인의 마음은 가증한 것, 곧 혐오감을 주는 것으로 충만해 있다는

말이다. 한편 이는 일곱 귀신에  사로잡힌  자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마       12:45;막

16:9).


=====26:26

  다른 사람을 속이고 모함하는 일은 처음에는 쥐도 새도 모르는 것처럼  진행될  수

있으나 시일이 지나면 결국 그 흑막이 벗겨지기 마련이라는 지적이다. 종말에 있을 심

판의 때에 모든 악이 하나도 남김없이 폭로되고 드러나게 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요일 4:17-21).


=====26:27

 악인들은 악한 의도를 따라 타인에게 불행을 안기기 위하여 얼마나 큰 수고를 하는

지 모른다.  그 수고를 본절은 깊은 구덩이를 파는 것과  돌을 굴리는 것에       비유하고

있는데 전자는 덫 설치를 그리고 후자는 밑으로 굴리기 위하여 꼭대기로 돌을 굴려 올

리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삿 9:53;삼하 11:21). 덫을 설치하는 일이나 산  혹은  성벽

꼭대기로 돌을 끌어 올리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 본절은 그토록  힘들

게 덫을 설치해 놓고 돌을 굴리고도 도리어 덫에 걸리고 돌에 치이듯이, 수고하여  준

비한 음모에 자신이 도리어 빠지고 만다고 경고하고 있다. 즉 심은 대로 거두고  마는

것이다. 대표적인 그 모범으로는 하만(에 7:10)과 다니엘의 대적들(단 6:24-28)을  들

수 있다.


=====26:28

 거짓말하는 자는 자기의 해한자를 미워하고 - 일반적으로 본절은 거짓말과  증오가

같은 부류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지만(Flattery is a form of hatred. LB), 다음

과 같은 번역도 가능하다 : '거짓말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상처를 입힌

만큼 자신도 상처를 입으므로 자신을 미워하고,' 남에게 악을 행한 일이 도리어  자신

에게 해가 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는 앞절과의 연관성을 생각할 때 이 번역도 설득력

이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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