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6장 주석
=====26:1
팔레스틴에서 여름에 눈이 내리는 적은 없지만 설령 내린다고 해도 금방 녹아버릴
것이므로 무익하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는 봄부터 10월까지 비를 보기란 거의 불가
능하고 추수철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데 그때 비가 내린다면 그것은 익은 곡식에 손
상을 주어 도리어 해가 되며 심지어 불길한 징조로까지 생각되었다(삼상12:17). 영예
(* , 카보르) - 내적인 가치를 뜻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문맥상 외적
인 가치, 곧 높은 지위 따위를 뜻한다고 봐야 한다. 미련한 자의 높은 지위는 여름의
눈이나 추수철의 비처럼 무익할 뿐 아니라 해롭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지위에 합당
한 일들을 감당할 능력이 없을 뿐더러 자신의 욕심을 따라 그 지위을 남용함으로써 다
른 많은 사람에게 불이익을 끼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6:2
팔레스틴 전역에서 쉽게 발견되는 참새는 까닭없이 땅으로 내려오지 않으며 제비
역시 먼 이국 땅을 행해 갈 때는 그 목적지를 분명히 정한다. 참새와 제비같은 미물
(微物)들도 이유나 목적이 없는 행동은 취하지 않듯이 인간 세계속에도 이유 없는 결
과, 특히 악한 저주는 까닭없이 임하지 않는다. 당시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저
주가 공의(公義)에 관계없이 마술 화살처럼 그 목적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간다는 미
신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바로 이 같은 어리석음을 본절은 깨우쳐 주고 있다.
발람도 그같은 미신에 대한 강한 반발을 보인 바 있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민 23:8).
=====26:3
본절은 어리석은 자는 당나귀나 말처럼 이끌기 어려우니 물리적인 힘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러나 성경 전체 특히 시 32:8,9에 비추어 볼 때 본절은 하나님의
계명에 둔하고 어두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지 않으려는 잠재적 본성을 지닌 인
간 모두에게 주는 경고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
=====26:4
두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 미련한 자에게서 나오는 말에 맞장구 치다보
면 자신도 그 우매함에 물들 수 있다는 우려이다. 한편 사도 바울은 우매한 자들에게
맞서 대항하기 보다는 스스로 미련한 자처럼 되기도 했다. 그는 효과적인 전도를 위
하여 피전도자의 수준으로 낮아졌던 바 이것은 분별력 있는 낮아짐이다(고후 12:11).
이는 분별력없이 휩쓸려 들어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26:5
외관상으로 볼 때 4절과 본절은 서로 상반된 진술을 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
기 위하여 일련의 랍비들은 4절은 세속적인 논쟁에 관하여, 본절은 종교적인 논쟁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세속적인 논쟁은 피해야 하지만 종교적인 논쟁
은 맞서서 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또 다른 극단적인 랍비들은 4절
과 본절의 논리적 모순을 전제로 본서 전체의 정경성을 의심하고 있다(Cook, Toy).
그러나 본절은 분명히 미련한 자에게 대답해야 할 경우를 제한함으로써 4절과 본절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4절이 미련한 자의 수준에로 떨어지지 말라는 소극적인 경
고라면, 아마도 본절은 미련한 자와 헛된 변론을 나누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를 책망하
고 그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라는 적극적 권면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26:6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이라 - 소식을 전하는 일에는 두 발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생
각하면 이해하기 쉬워진다. 보냄을 받는 자가 그 목적을 잘 수행치 못할 어리석은 자
라면 그를 보내는 일은 두 발을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인 것이다. 한편 두
발을 자르는 일은 치명적인 해악을 연상케 하는데 이 사실은 '해를 받느니라'의 원문
상의 의미와 잘 조화를 이룬다. '해를 받느니라'(* , 하마스 쇼테)의 원
문 직역은 '폭력을 마시다'이다.
=====26:7
본절 하반절의 의미는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상반절의 경우는 힘없이 달렸
나니에 해당하는 '달르우'(* )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번역된
다. (1) '절름발이의 다리를 제거해 버려라'(마찬가지로 미련한 자가 잠언을 입에 올
리지 못하게 하라, Grk.). (2) '정상인의 다리는 절름발이의 그것보다 길다'(그처럼,
잠언이 미련한 자에게는 너무 높아 도달할 수 없다, Rashi). (3) '절름발이가 춤추는
것과 같이 ... '(Luther). (4) '절름발이의 다리가 힘없이 달렸나니'(개역 성경,
Ewald). (5) '절름발이의 두 다리는 서로 같지가 않듯이 ... '(KJV). 이와 같은 여
러 해석이 있으나, 어쨌든 절름발이의 걸음이 무기력하고 부조화스럽듯이 미련한 자와
잠언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Ross, Toy).
=====26:8
돌을 물매에 매는 것 - 이 묘사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크게 둘로 나뉜다. 그 하나
는 라틴역에 근거를 둔 것이로 보석 같은 귀중한 돌하나를 잡석(雜石)더미 위에 던지
는 행위에 관한 언급으로 보는 해석이다(Perowne, Clark 등). 또 다른 하나는 물매를
사용할 줄도 모르는 자가 돌을 물매에 묶는 모습에 대한 언급으로 보는 해석이다
(Whybray). 그러나 그 어떤 해석을 따르던 간에 어리석은 행위에 대한 묘사인 것만은
분명하다. '영예', 곧 세상적인 지위를 미련한 자에게 부여하는 일은 지극히 어리석
은 행위이다.
=====26:9
술 취한 자의 손에 든 가시나무 - 손에 가시나무를 들었을 경우 만취한 사람은 그
움직임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마찬가
지로 어리석은 자의 경우 잠언의 말씀을 읽거나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지적(知的)
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적절히 활용할 수는 없다. 잘못 사용하고 잘못 적용하여 남에
게 상처만 줄 뿐이다. 이 어리석은 자의 경우는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정확히 적용하
여 상대로 하여금 깊이 교훈을 주는 지혜자와 대조를 이룬다(전 12:11).
=====26:10
본절만큼 원문 이해가 어려운 곳도 많지 않다. 따라서 본절에 대한 번역은 다양한
데 그 대표적이며 가장 바람직한 번역은 다음과 같다 :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궁수(弓手)는 어리석은 자를 고용하고 모든 나그네를 고용하는 자와 같다.' 본 번역
을 바람직하다고 보는 이유는 그 내용이 미련한 자의 행위 혹은 그 행위가 낳은 결과
등에 관해 기술하고 있는 문맥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 번역에서 '어리석은 자 ...
나그네를 고용하는 자'란 궁수가 그 활을 생각없이 자기 멋대로 사용하는 것을 부각시
키려는 의도로 사용되었다. 가진 바 능력이나 지위를 생각없이 함부로 사용하는 자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 본절이 주는 교훈이라 하겠다(Brown, Cook, Toy).
=====26:11
문자 그대로 이해할 수 있듯이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
지 못하며 어떤 경고에도 불구하고 악한 행위를 반복한다. 토해 놓은 곳으로 발을 돌
이키는 개의 비유는(벧후 2:22) 죄를 반복하는 행위를 꼬집는 대목에서도 사용되고 있
다.
=====26:12
스스로 미련함을 인정하는 자는 소망이 있으나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는
구제 불능에 가까움을 가르친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통감하는 자는 새 출발할 가
능성이 많다.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에서 세리가 바로 그 모범이다. 그러나 자신이
완전하다고 믿는 자는 회개의 가능성이 희박한데 동일 비유의 바리새인이 바로 그 모
범이 된다(눅 18:9-14). 자신의 죄를 통감한 세리는 기대밖에 의인이라는 호칭을 들
었다.
=====26:13
개역 성경에서는 읽을 수 없지만 원문에서는 본절에 두 차례에 등장하는 '사자'가
서로 다른 용어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각각 '솨할'(* ), '아리'(* )로서 전자
는 일반적인 의미의 '사자'를 , 후자는 좀더 특징적인 '포악한 사자'를 가리킨다. 이
두 용어를 포함한 본절을 좀더 실감나게 의역하면 이와 같다 : "게으른 자는 '거리에
는 사자가 있어 아주 포악한 사자가 누비고 있다'라고 말한다." 게으른 자는 자신이
책임 회피자가 아니라 리얼리스트일뿐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핑계요 자기 기만일
뿐이다(Kidner).
=====26: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 아침 일찍이 일어나 활동할 생각은 않고 침
상에서 뒹구는 게으른 자의 모습을 비유한 표현이다(6:9, 10;24:33). 어떤 학자는
'게으른 자가 침대 위에서 몸을 한 번 뒤집었다면 그로서는 엄창난 일을 한 것'이라고
비꼰다(McKane).
=====26:15
19:24과 동일한 표현으로서 음식을 입에 넣기조차 싫어하는 게으른 자의 극단적인
모습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26:16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 - '선히 대답하는 사람'이란 바른 판단에 근거한 의견 제
시를 하는 사람을 말하고 '일곱'이란 완전 무한수를 암시한다. 그렇다면 이 표현은
'다수의 완벽하고 지혜로운 의견'을 가리키는 것이 되겠다. 게으른 자는 생각하기조
차 싫어하므로 참된 지혜를 얻고자 하는 진지한 토론을 거부한다. 또한 그의 관심은
본능을 좇아 안락하게 세월을 보내는데 있는데, 지혜 추구를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라
고 매도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26:17
간섭하는(* , 미트아베르) - 문자적인 뜻은 '간섭하다'외에 '격노하게 되
다', '흥분하다' 등이 있다. 이 동사는 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목격하게 된 싸움을 보
고 그 당사자들보다 더 흥분하고 격분하여 그 싸움에 끼어드는 행인을 연상케 한다.
이 행인을 본절은 개의 귀를 잡는 자에 비유하고 있는데 고대 사회에서 개란 오늘날
처럼 가정에서 길들여지지 않고 들개나 여우 따위처럼 들에서 멋대로 자랐기 때문에
사납기가 짝이 없었다. 따라서 이 같은 특성을 지닌 개의 귀를 잡았다는 것은 큰 상처
를 입기를 자초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관없는 싸움에 분을 내고 흥분하여 끼어든 자를
바로 그 같은 위험한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다툼, 분쟁을 그치게
하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마땅하다(마 5:9).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 분재에 개입
할 때 흥분하거나 격노한 상태에서 개입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26:18
횃불을 던지며 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 - 원문 직역은 '불덩이, 화
살, 죽음을 던지는 미친 사람'이다. 이것은 화살에 불을 달아 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인명(人命)을 가볍게 보고 살인을 도모하는 사람은 미친 자임에 틀림없다.
=====26:19
자기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 '내가 희롱하였노라'를 의역하
면 '농담삼아 해봤을 뿐이야' 혹은 '심심 풀이 삼아 해봤을 뿐이야'이다. 이는 남을
속여 큰 상처를 입게 하고도 '나는 손해 입히려는 마음이 없었어. 재미 삼아 그래본거
야'라고 일축해 버리는 뻔뻔스럽고 경솔한 자를 연상케 한다. 이 자는 살의를 가지고
불화살을 쏘는 미친 자와 같다. 농담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내뱉는 농담은 때로 살인 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에게
는 농담에 불과한 것이 상대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을 의도
적으로 속여 놓고 그 행위를 농담 한마디 한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26:20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 '말장이'(* , 니르간)의 문자적인 뜻
은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 '고자질장이'이다. 물론 나뿐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
도 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이야기를 맞장구치며 받아주는 사람도 악하다. 만일 나
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의 입에서 남을 중상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 맞장구치며 받는
사람이 없다면 문제는 확산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도둑질한 물건
을 받아주는 사람은 도둑 만큼이나 악하다'는 격언에 공감하게 된다(Clark). 한편 본
절에서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자와 분쟁의 관계는 땔감과 불의 관계에 비유되고 있는
데 이러한 이미지는 일상 생활 속에서 잠언의 소재를 끌어옴으로써 설득력을 더해준
다.
=====26:21
다툼을 좋아하는 자 - 20절의 '말장이'나 22절의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26:22
별식(* , 미틀라하밈) - 문자적인 뜻은 '한입거리 맛있는 음식' 혹은
'상처'이다. 이것은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자의 말을 가리키는데 남을 비방하고 험담
하는 말은 한입에 먹을 수 잇는 간편하고도 맛있는 음식과도 같지만 큰 상처를 남기기
도 한다는 뜻을 암시한다. 70인역(LXX)도 이것을 지지하고 있다 : '남의 말하기 좋아
하는 자의 말은 부드러우나 그 말은 뱃속 깊은 곳을 치느니라.'
=====26:23
온유한 입술(* , 세파타임 돌레킴) - 문자적인 뜻은 '불타는
입술'로서 겉으로 애정이 넘치고 따뜻한 사랑의 말을 내놓는 입술을 가리킨다.이런 입
술을 가진 자가 악한 마음을 숨기고 있다면 그는 위선자일 따름이다. 그런 자는 낮은
은을 입힌 곧 '은 찌끼를 입힌' 토기와도 같다. 토기에 찌끼를 입히는 것을 밝은 광채
를 내게하기 위함일 뿐 그것 자체가 토기를 고가품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애정이 넘치
는 말과 행동 이면에 악한 음모를 숨긴 대표적인 사례는 가룟 유다가 로마 군병을 이
끌고 주님을 만났을 때의 장면이다(마 26:47-49).
=====26:24
앞절에 이어 겉과 속이 전혀 딴판이니 위선자를 경계시키는 내용이다. 여기서 감정
에 해당하는 '시느아'(* )는 극도의 증오나 혐오를 뜻한다.
=====26:25
일곱 가지 가증한 것 - '일곱'은 '완전, 충만'을 상징한다. 부드럽고 매력적인 말
투로 치장했더라고 악인의 마음은 가증한 것, 곧 혐오감을 주는 것으로 충만해 있다는
말이다. 한편 이는 일곱 귀신에 사로잡힌 자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마 12:45;막
16:9).
=====26:26
다른 사람을 속이고 모함하는 일은 처음에는 쥐도 새도 모르는 것처럼 진행될 수
있으나 시일이 지나면 결국 그 흑막이 벗겨지기 마련이라는 지적이다. 종말에 있을 심
판의 때에 모든 악이 하나도 남김없이 폭로되고 드러나게 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요일 4:17-21).
=====26:27
악인들은 악한 의도를 따라 타인에게 불행을 안기기 위하여 얼마나 큰 수고를 하는
지 모른다. 그 수고를 본절은 깊은 구덩이를 파는 것과 돌을 굴리는 것에 비유하고
있는데 전자는 덫 설치를 그리고 후자는 밑으로 굴리기 위하여 꼭대기로 돌을 굴려 올
리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삿 9:53;삼하 11:21). 덫을 설치하는 일이나 산 혹은 성벽
꼭대기로 돌을 끌어 올리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 본절은 그토록 힘들
게 덫을 설치해 놓고 돌을 굴리고도 도리어 덫에 걸리고 돌에 치이듯이, 수고하여 준
비한 음모에 자신이 도리어 빠지고 만다고 경고하고 있다. 즉 심은 대로 거두고 마는
것이다. 대표적인 그 모범으로는 하만(에 7:10)과 다니엘의 대적들(단 6:24-28)을 들
수 있다.
=====26:28
거짓말하는 자는 자기의 해한자를 미워하고 - 일반적으로 본절은 거짓말과 증오가
같은 부류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지만(Flattery is a form of hatred. LB), 다음
과 같은 번역도 가능하다 : '거짓말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상처를 입힌
만큼 자신도 상처를 입으므로 자신을 미워하고,' 남에게 악을 행한 일이 도리어 자신
에게 해가 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는 앞절과의 연관성을 생각할 때 이 번역도 설득력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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