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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잠언 25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5:47

잠언 25장 주석

 

=====25:1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의 편집한 것 - 본절은 25-29장의 표

제어와도 같다. 표제어의 의미는 첫째, 25-29장에서 진술되는 내용은 솔로몬의  통치

시대 때에 솔로몬이 기록한 내용을 근간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솔로몬의

기록을 근간으로 하기는 했으나 히스기야 시대 때 그의 신하들에 의하여 그 내용이 좀

더 체계적이고 주제 중심적으로 재편집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재편집은 왕 히스기

야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25-29장의 내용 구성을 살펴보면 주제 중심적 재편

집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2-7절은 왕과 그 신하를 위한 교훈, 26:1, 3-12은  어

리석은 자를 위한 교훈, 26:17-28은 악을 행하는 자를 위한 교훈으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Clark, Henry, Kidner).


=====25:2

 성경에서 하나님과 왕은 동일한 맥락에서 언급되기도 하나 본절에서는 대비적 개념

으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라는 말은 하나님의  본성

이나 그 깊으신 뜻 그리고 그의 우주 통치 방법, 의도 등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것

임을 가리키는 말이다(신 29:29;사 45:15).  성경을 보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뜻은

풍유, 비유 등에 가리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주님은 어떤 자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계시의 제한성을 암시하신 바  있다(마  13장

'씨 뿌리는 비유' 참조).  어떤 학자는 하나님의 이속성에 관해 이렇게  소견을  적고

있다 : '그 존재의 속성, 의도 등이 모두 알려져 있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더

이상 경배의 대상이 아닐 것이다'(McKane).  반면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라고 하

는데 여기 '살피는'에 해당하는 '하르코'(*      )는 '비밀을 밝히는 것',  '연구해서

찾아내는 것'을 뜻한다.  이는 왕이 갖추어야 할 자세를 가리키는 말로서  왕은  국사

(國事) 전반에 관한 문제들에 관하여 깊이 연구하여 국민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

궁금해 하는 것들을 숨김없이, 모호함이 없이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는 의미이다.   특

히 재판, 사법상의 문제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Greenstone).  우리는  대비적

관점에서 본절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왕의 통치가 하나님의 계시와 무관하다고  생각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세운 자로서의 왕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국사의  원리,

내용 등을 정립해야 하는데 그 경우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지 못하고는 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25:3

 본절은 왕의 속성 혹은 왕에게 주는 권고 둘 중 하나로 볼 수 있는데,  전자로  볼

경우 이는 왕의 통치 행위 및 국사 특정 사항의 결정등은 평민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

들도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내용이 되겠다.  후자로 볼 경우 왕은 통찰력이 있어서 항

상 한발 앞을 내다보고 전진함으로써 그의 통치권을 든든히 하고 그 권위를      인정받도

록 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이해된다.  이 둘 중 어느 것을 취해도 무리는 없으나  본

절이 특정 부유의 사람들을 권고하는 대목의 일부이므로 후자로 보는 것이 좀더  바람

직하다(1절 주석 참조).


=====25:4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 은을 비롯한 광물을 제련하면 순순한  물질만

남게 되고 대장장이는 그것을 가지고 유용한 기구들을 만든다.  이런  과정을  염두에

둘 때 제련 과정을 묘사한 뒤에 바로 나온 본 구절은 '은장색이 사용할  물질이  나올

것이요'로 번역되어야 바람직할 것이다.  많은 역본들이 이것을  지지한다(NIV,  RSV,

NEB).


=====25:5

  그 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 4절이 하나의 예를 제공한다면 본절은  그

예가 주는 주된 교훈에 해당한다.  그 근거는 두 구절이 평행 상태에  있다는  것이며

이 평행 상태를 뒷받침해 주는 것은 두 절이 공유하고 있는 '제하라'라는 명령어이다.

은에서 찌끼를 제거하듯 왕에게서 악한 자를 제거할 경우 얻게 되는 유익을 담은 내용

이 바로 본 구절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주변에는 사리사욕만       탐하며 아첨하는

간신 모리배들이 모여든다.  이때 왕이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신하를 따를 경우  공정

하고 올바른 판단력을 놓칠 수 있다.  반면에 그 같은 신하를 제할 때 왕궁에는  의로

운 충신들만이 남게 될 것이고 그 충신들의 조언을 듣는 왕의 통치는  의로운  통치가

될 것이다(Greenstone).


=====25:6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 하지 말며(*                        ,  알 티트

하다르 리프네 멜레크)  -  직역하면 '왕 면전에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  저돌적이고

욕망이 강한 자일수록 왕에게 자신의 모습을 자주 드러내기를 힘쓴다.  물론 그의  의

중에는 높은 지위로 승진하고자 하는 야망으로 가득 차 있다.


=====25:7

 문자 그대로 보면 본절은 교만으로 인해 많은 사람 앞에서 창피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내용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6절에서 잠시 논(論)한 대로 화제의  배경이

왕의 면전인 것을 중시할 때 본절의 핵심은 왕실에서의 승진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된

다.  참 지혜자는 자기 과시를 통한 무리한 승진을 꾀하기보다는  인내로  기다린다는

것을 본절은 가르친다.  인위적인 노력으로 승진을 꾀하는 자는 승진은 커녕 궁전  모

든 신하들 앞에서 큰 수치를 당하고 만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  근동

지혜서에서도 유사한 내용을 찾을 수 있는 본 경고는 잔칫집에서  제자들을      교훈하기

위하여 주님이 인용하셨던 경고이기도 하다(눅 14:8-11).


=====25:8

  급거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 - 문자적인 뜻은 '다투기 위하여 급히 나가지  말라'인

데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법정적인 관점에서  이  구절을  다루고  있다(Clark,  Cook,

Whybray 등). 아마도 '다투기'로 번역된 '랄리브'(*      )가 법정적 용어이기 때문인

것 같다(마 5:25).  소송건에 급히, 가볍게 뛰어드는 것 예를 들면 쉽게 증인석에  나

서는 일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자신이 목격한 내용이 신빙성이 없어서 일정 소송  사

건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경우 쉽게 나선 그는 대중 앞에서 큰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5:9

 본절은 이웃과 논쟁이 생겼을 때 당사자끼리만 논쟁을 할 것이요 자신의 옳음을 인

정받으려고 타인에게 논쟁 상대자의 개인적 단점, 비리 등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가

르치고 있다.  예수님도 어떤 형제가 분명히 범죄했을 경우, 그와만 만나 권고할 것을

가르치셨다(마 18:15).  범죄한 상대에게 이렇게 대하여야 한다면 의견 차이를 보이는

상대에 대해서는 더욱 그리하여야 할 것이다.  분쟁은 분쟁 상대자끼리만 알고 해결됨

이 바람직하다.


=====25:10

 원문이 '... 하지 않도록'의 의미를 지닌 '펜'(*   )으로 시작하고 있는 사실을 중

시해서 재번역하면 이렇다 : '그것을 듣는 자가 너를 모욕하고 악한 평판이 따르지 않

도록.' 다른 사람의 비밀스런 것을 청취했을 경우 인간은 겉으로  그것을  드러내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그 화자를 멸시하고 때에 따라서는 야단을 치기도 한다.  뿐만 아

니라 곧 그는 입이 가볍고 신실하지 못한 자로 소문이 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친구들마저 잃게 될 것이다.  외경 집회서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참조해  볼  수

있겠다 : '비밀을 누설하는 자는 신용을 잃게 되고 진실한 친구를  얻을  수  없도다.

친구를 사랑하고 그 친구에게 신의를 지켜라.  그의 비밀을 폭로하였거든 더 이상  그

와 사귀지 말라.  사람이 자기 원수를 죽인 것같이 너도 네 이웃의 사랑을 상실하였느

니라'(집회서 27:16-18).


=====25:11

  경우에 합당한 말(*                             , 다바르 다부르 알  아페나)  -

여기서 히브리어 '아펜'(*      )은 원래 '바퀴'를 뜻하나(겔 1:15)  여기서는 '상황'

(에 알맞은)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즉 본 문구는 상황에 꼭 필요한 지혜롭고  시기적

절한 말을 가리킨다.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 - 문자적인 뜻은 '은 그림 속에 금사

과.'  개역  성경의 번역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 이것은 은빛을 바탕색으로 하는 접시

따위의 주방 용품에 그림으로  새겨진 신선한 과일 모양을 연상케 한다.  당시 상당히

가치있는  물건으로 취급된 세공품의 일종이었던 아로새긴 쟁반이 언급된 이유는 상황

에 맞게 재주있게 구사되는 언어의 가치를 좀더 생생히 강조하기 위해서 이다.


=====25:12

  본절은 바르게 알고 행동하기 원하는 자는 선의의 책망과 충고를 존중한다는  것을

가리킨다(9:9;15:31).  특히 '청종하는 귀'는 사제지간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   참

제자는 스승의 꾸지람에도 귀를 기울인다.


=====25:13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 원문 직역은 '추수철의 눈의 냉기.'  추수철에  내리는

눈이나 우박 따위는 추수꾼에게 시원함을 주기보다는 공포와 손해를 줌으로 여기  '눈

의 냉기'를 문자 그대로 눈 혹은 우박으로 보는 것은 합당치 않다(삼상  12:17,  18).

그보다는 '사자'라는 표현이 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용어라는 점에서 '눈의 냉기'는

왕궁에서 5,6월의 찌는 듯한 열기를 식히기 위하여 포도주나 음료에 타서 먹던 레바논

이나 헬몬산의 얼음 정도로 보는 것이 좋겠다.  결국 본절은 무더운 추수 때에 농부가

얼음물을 마신다는 뜻이 아니라 '시원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왕이 먹던  얼음과  추수

때에 느끼는 갈증을 연관시키고 있는 듯하다.


=====25:14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 - 원문 직역은 '거짓 선물로 자신을  자랑하는  자.'

이 사람은 많은 것을 약속해 놓고 아무 것도 지키지 않으므로 주위 사람들을 실망시키

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사람은 여름 가뭄 때 한바탕 쏟아지는 비와  서늘한  바람을

고대하는 자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

가 버리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과 같은 존재이다. 신약에서는 죄악과 파멸로  인도하

는 거짓 선생들이 바로 이와 같은 존재로 비유된 바 있다(벧후 2:19;유 12절).

=====25:15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기보다는  참을성

있게 진지한 자세로 건의(建議)를 올릴 때 설득력을 갖게 된다는 의미이다.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는니라 - 부드러운 말은 처음에는 거의 가능해 보이지       않던 일도 성사시

킬 수 있다는 뜻이다.  즉 관대하고 호감을 주는 말은 상대방의 마음속의 장벽을 헐며

심지어 적의(適意)마저 없애주는 위력을 지닌 것이다.  한편  부드러운 인내의 말투는

복음을 대적하는 세상 권세자들을 대항하기 위하여  신약 성도가 준비해야할 덕목이기

도 하다(벧전 3:15, 16).


=====25:16

 족하리 만큼 먹으라 - 꿀이 모든 즐거움을 상징하는 음식임을 고려할  때  (Cook),

본절은 모든 즐거움을 정도에 지나치지 않게 취하라는 권고로 보여진다.   에덴  동산

타락 이후 대부분의 인간들은 즐거움을 주는 물질 혹은 기호를 적절히 취하여  즐거움

을 맛보기보다는 고도하게 취하여 심신을 상하게 만든다(Kidner).


=====25:17

 원문 직역은 '너의 이웃의 집에 너의 발이 좀처럼 있지 않게 하라(혹은 귀하게  되

도록 하라...).'  이것은 인간의 근본적 죄성을 염두에 둔 묘사로 볼 수도 있다.   말

하자면 빈번한 만남을 깊은 우정과 사랑을 낳아야 하는데 도리어 미움을 낳는 인간 세

태에 대한 풍자로 볼 수 있겠다는 것이다 : '너무 친하면 경멸하게 된다'(Clark).  그

러나 절제를 강조하는 앞절과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친한 벗이라 하더라도 예의와  삼

가는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권고로 볼 수 있겠는데 문맥을 중시할  경우  후자가

좀더 낫다.


=====25:18

  방망이 ... 칼 ... 살 - '방망이'(*       , 메피츠)는 무거운 나무 망치를 가리키

나 여기서는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곤봉을 뜻할 것이다.  이것은 달려드는 적을 한  방

에 기절시키기 위하여, 칼과 살을 각각 가까이서 그리고 멀리서 적을  찌르고  맞추기

위하여 사용하는 치명적인 무기들이다(Mattew Henry).  이처럼 거짓 증거는 무죄한 이

웃을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14:5;출 20:16;신 5:20).


=====25:19

  악인을 의뢰하는 자는 그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고통만 더하게 될 뿐임을 경고하는 구절이다.


=====25:20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 - '마음이 상한 자'란 원문에 따르면 '마음이  무

거운 자'인데 많은 근심되는 일로 인해 크게 낙심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상태에 있는 자에게 세레나데와 같은 것은 큰 위로를 줄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데 그 연주 결과가 추운날 옷을 벗긴 것과 같은 싸늘함을 낳는다고       묘사되는  것으로

보아 이곳의 '노래'란 상황에 맞지 않게 흥을 돋우고자 하는 노래를 상대방에게  심한

모욕과 조롱을 느끼게 만들 것이 뻔하다. 쏘다(*    , 나테르) - 이것은 고대의 천연

탄산 소다로 알려져 있는 물질을 뜻한다.  동방에서 이 물질은 주로 세척용으로 사용

되었다고 한다. 이 물질 위에 식초를 부을 경우 즉각적으로 부글부글 끊는 발효의 효

과가 나타난다(Shaw).


=====25:21

 22절 초두에는 본절과 22절의 연관성을 암시하는 이유 접속사 '키'(*   )가 있으므

로 22절은 본절의 가르침에 순종할 경우에 따르는 결과를 서술하고 있다.  본절은  악

인에 대한 궁극적 심판자가 하나님이시므로 도리어 원수 사랑을 통해  선으로써  악을

이기라고 하는 심오한 교훈과도 일맥상통한다(롬 12:21).  엘리사는 소경이 된 채  사

마리아 성(城)까지 끌려온 이방 아람인들에게 처벌 대신 떡과  물로  대접하였다(왕하

6:17-22).


=====25:22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 대적으로부터 예상 외의 대접을 받았

을 경우 그 상대는 먼저 당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하면서 그는  통

증에 가까운 수치를 느낄 것이다(18:19;20:22;24:17;창 42:45장).  그리고 이  상태에

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만일 그가 계속 적의와 증오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에게  주

어질 하나님의 심판은 더욱 엄중해질 것이다.  반면에 통회하는 마음으로 화해의 손을

내민다면 그의 상대방은 하나님께로부터 칭찬과 평강을 얻을 것이다.


=====25:23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 어떤 학자는 팔레스틴 북부 지역이 건조 지대이므로 본

절 내용이 신빙성이 없거나 본절과 관련되는 공간적 무대가 팔레스틴 지방 이외의  곳

이라고 이해한다(Kidner, Whybray).  그러나 또 다른 학자는 북풍은 팔레스틴 지방 북

쪽에 위치한 바다에서 생겨난 수증기를 동반하므로 충분히 비를 내릴 수 있다고  주장

한다(Clark).  그러나 본절의 핵심은 '북풍'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소하는  혀'

곧 상대를 모함하는 혀가 분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25:24

 21:9 주석을 참조하라.


=====25:25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 - 이 표현은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소식

을 가지고 오는 사람의 모습보다는 중요한 사실에 대한 소식을 오랫동안 안달하며  기

다리는 사람의 모습을 더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당시에는 우편 제도가 발달

하지 못했던 관계로 멀리 있는 소식을 전해 듣기란 여간 쉽지가 않았다.  따라서 마음

졸이며 기다렸던 좋은 소식이 왔을 경우 소식을 받는 자는 새 힘을 회복케 되기  마련

이다.  영적인 범주에서 볼 때 우리는  '좋은  기별'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good

news)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요 4:13, 14;7:37).


=====25:26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 이 표현은 한 사람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가 받는 영향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공동체는

평소 믿고 따랐던 의인이 삶의 변화에 대단히 민감하다. 한 의인이       악인의 위협으로

그 고결성을 상실할 때 그 공동체가 겪을 혼란과 좌절, 실망에 따른 타락은 그 정도가

심각한 것이다.


=====25:27

  꿀이 몸에 좋지만 과용하면 무익하듯이 영예(榮譽)는 귀한 것이지만 지나치게 추구

하면 결국 무익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진정한 영예는 그 자체를 추구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25:28

 고대 세계에서 성벽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성읍을 방어하는 데 있어 필요 불가결한

것이었다.  따라서 성벽이 없다는 것은 곧 침략자에게 성(城)을 내어놓는 것이나 마찬

가지인 셈이다. 본장을 마감하는 본절은 자기의 마음, 곧 자신의 모든 욕망과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무너진 성벽에다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70인역은  이를

행함(실천)과 관련하여 또 제롬(Jerome)은 방종한 언어와 관련하여 이해하였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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