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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잠언

[스크랩] 잠언 24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5:47

잠언 24장 주석

 

=====24:1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 원문 직역은 '너는 악인을 부러워 하지  말

라'이다.  여기서 '부러워하다'(*        , 테카네)는 그 상대의 성품이나 인격보다는

가진 바 소유, 번영등을 질투하는 상태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동사이다.  바로 앞  문

맥(23:31-35)에서는 술취한 자에 관해 논했었는데 본장 초두에서는 악인에 관해  논하

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혜라는 주제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참  지혜

를 따르는 자는 악인의 물질적 형통을 질투하지 않을 뿐더러 그들과 동행하는  것조차

원치 않는다.


=====24:2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 '쇼드 예흐게 리밤'(*                     )으로 문

자적인 뜻은 '그들의 마음은 파괴를 연구한다.'  여기의 '파괴'는 강도,  살인  등을

가리키며 '연구하다'는 구체적이고 조직적으로 음모를 꾸민다는 것을 가리킨다.  결국

악인의 형통을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수고의 대가가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한 부정 축재(蓄財)의 결과임을 보여 준다.  그 입술은 잔해를 말함이니라 - 문자

적인 뜻은 '그 입술은 해악을  말하기  때문이다.' 본 구절은 상반절과 함께 1절의 이

유가 되는데, 악인은 다른 사람을 해치고 자신의 유익을 꾀하기 위하여 거짓, 중상 등

온갖 범죄를 일삼는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아주 가까이서 악인의 이런 면들을 관찰하

면 그의 더러운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Kidner).


=====24:3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 문자적으로 보면 지혜가  건축가로  되어  있다.

물론 본서에는 노골적으로 지혜의 의인화를 꾀하고 있는 곳이 있다.  일례로  9:1-6에

의하면 지혜는 집을 세우고 손님들을 초청하여 그 손님들에게 지혜를  주어      '생명'을

얻게 하는 여인으로 묘사 되고 있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지혜'가 의인화된 것이라기

보다는 지혜로 말미암은 축복된 결실을 표현하고 있다 하겠다.  악인의 도모가 파괴적

인 결과를 낳는다면 지혜로운 자의 슬기로운 처신은 건설적인 결과를 낳으며 특히  한

가정의 안전과 번영을 보장한다.


=====24:4

 방들은 ...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 -  3절에서의  '집'과  마찬가지로  본절의

'방'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이해될 수 도 있겠지만, 한 가정, 한 인간의 성품  혹은

기업 따위의 단체등에 관한 상징적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집'이

외형을 암시한다면 '방'은 내면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Cook).  한편  어떤  학자는

내면보다는 외형, 특히 물질적인 요소에 치중하는 현대를 이렇게 꼬집고 있다 : '오늘

날 가정들을 보면 책꽂이가 TV 세트에 의해서 그리고 책상이 침대에 의해  방들로부터

쫓겨나고 있다'(Plaut).  참지혜자의 가정은 풍성한 내면적 요소로 가득하다.


=====24:5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 '강하고'(*        , 바오즈)의 문자적인 뜻은 '힘 안에'

로서 어떤 힘에 뿌리를 박은, 확고히 선 무엇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Cook).

비록 외관상 약해 보이더라도 참지혜자는 깊은 근원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나무처럼  삶

의 목적과 중심이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그 행동이 거리낌 없다.


=====24:6

 본절의 '모략'은 싸움에 필요한 '전략'을 가리키고 '모사'는 그 전략을 짜는 '전략

가들'을 가리킨다.  본절의 핵심은 승리를 위해 서는 힘, 완력보다는 전략이 중요하지

만 진정한 전략은 지혜에서 비롯된다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 근거는 문맥이 계속적으

로 지혜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주제를 11:4;20:18 그리고 21:22 등이  다루고

있다.


=====24:7

 너무 높아서(*   , 라모트) -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다에서 나는 보석  '산

호'를 뜻한다(욥 28:18;겔 27:16).  말하자면 우매자에게 있어서 지혜는 너무 값이 비

싸서 손에 넣을 수 없는 산호와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라모트'가 형용사로  사용되

면 '높은'인데 개역 성경은 이러한 형용사적 의미로 번역했다(too  high,  KJV,  NIV,

RSV).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중요한 재판이 열리

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입을 열지 못한다는 것은 재판 따위의 중요한 일이  있

을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형벌에 처해지고 만다는 뜻이다.  지혜가 없는 우매자에

게  이 같은 현실은 당연하다 하겠다.  당시에는 지혜있는 자가 사회의 중요한 직분을

맡았던 사실을 생각할 때  본 구절은 지혜를 습득하지 못한 우매자는  사회 속에서 그

어떤 공직에도 적합하지 못하다는 점을 밝히는 내용으로 볼 수 도 있겠다(Whybray).


=====24:8

  사특한 자 - '사특'(*          , 메짐모트)은 무법하고 음란한 음모를  묘사할 때

사용되며(레 18:17;삿 20:6) 여기서는 특히 냉혹하고, 계산적이고, 저돌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 이해된다.  '사특한 자는' 이러한 외관상 강한 활동력을 지닌 수완있는

사람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이웃들은 잠시 속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음모의 특성에

서 드러나듯이 이 자는 각종 도덕성을 비웃고 가볍게 여기므로 얼마되지 않아 주위 사

람들에게 그의 진면목이 탄로되기 마련이다.


=====24:9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 대부분의 영역본들이나 개역 성경처럼 본 문구의  주어

를 '생각'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그러나 평행구인 하반절의 주어가 원문상  '사람

들에게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본 문구의 주어를 '죄'로 보아도 무방

할 것이다(Toy).  이렇게 볼 경우에, 미련하고 사특한(8절) 행위를 조장하는 것이  바

로 죄라고 하는 해석이 가능해진다(W.J. Deane).  사람의 미움을 받느니라 - 사람들에

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복

과 용서 구함이다.  그러나 우매자는 그 방법을 모르거나  알아도 실행치 않으므로 결

국 사람들의 혐오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24:10

  본서 원문 직역은 '만일 재앙의 날에 연약함을 보인다면 너의 힘은  작다.'   모든

일이 평탄할 때에는 누구나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 같고 또  강해  보인다.

그러나 막상 심각한 역경에 처하게 되면 인생의 무기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므

로 참 신앙의 판가름은 바로 이 역경의 때에 나게 된다. 왜냐하면 신앙은 인생의 무력

함과 연약함을 극복하게 하는 위대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시련과 역경의 때에

두려워하거나 절망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담대한 믿음으로 참고 견디며 극복해야 한

다.  한편 본절을 환난의 날 묵묵히 견디기를 도전하는 내용으로 본다면 이렇게  바꾸

는 것이 효과적이겠다 : '만일 재앙의 날에 연약해진다면 너의 힘은 과연 강한 것이겠

는가!'


=====24:11

 본절은 치명적인 위험 중에 있는 자들을 구출할 것을 명령한다. '사망으로 끌려가

는 자' 혹은 '살륙을 당하게 된 자'는 거의 죽게된 자를 뜻하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악이나 사려깊지 못함으로 멸망을 향해 급히 달려가는 자들을 가리키거나(Toy),  어떤

이유로든지 구속되고 재판받아 극형에 처해지기 직전에 있는 자를 가리키거나(McKane)

또는 질병, 기근, 전쟁 등으로 말미암아 치명적인 위험 가운데 처해있는 자를  가리킬

수 있겠으나 본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다음절이 구출받아야 할 자에 대해서 도

의적으로나 사법적으로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세  번

째  부류의 사람을 보았을 때 우리는 무관심, 무지 혹은 이기심 때문에 그를 구출하려

는 의무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눅 10:30-36).


=====24:12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 만일 진정 도움받아야 할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

고 나온 말이라도 이 말을 하는 자들은 그 책임을 면치 못한다.  그는 그만큼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주님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다(마

25:31-46).  그러나 실상 이 말을 하고 있는 자들은 알았으면서도 이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이

나 레위인은 강도 만난 이웃이 급히 도움을 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기적

인 마음 때문에 그냥 지나가고 말았다.  '마음을 저울질 한다'는 말은 그 마음의 생각

을 헤아려 안다는 뜻인데 이는 그 어떤 변명을 늘어놓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사악한

내면을 속일 수 없음을 나타낸다.


=====24:13

 꿀을 먹으라 - '꿀'은 분명히 지혜를 상징한다(14절).  이스라엘에서도 꿀은  건강

식품일 뿐 아니라 어린이들의 성장과 발육을 돕는 실품으로 알려졌다(사 7:15).  그러

므로 순전하고 몸에 유익을 주는 물질인 꿀을 지혜를 대신하여 언급한 것은 매우 적절

한 비유인 셈이다.  신약 성경에는 꿀과 함께 젖이 지혜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종종 사

용되고 있다(고전 3:2;9:7;히 5:12;벧전 2;2).


=====24:14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 이는 1차적으로는 지혜를 따라

사는 자가 이 땅에서 누리게 될 영적, 육적 축복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영원한 내세의 삶 또는 그 축복에 관한 암시도 내포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이다. 본절의 '장래'(*          , 아하리트)는 '소망'(*        , 티크와트) 등의 용

어가 메시야적 소망의 미래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가끔 나타난다(창 49:1;렘       31:17)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24:15

  의인의 집 ... 쉬는 처소 - 이것은 한 개인인 의인의 가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성

도들의 공동체인 교회와 연결시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의인의 가정을 공격하지

말라는 경고는 하나님과 그분이 세운 계획 및 경륜을 공격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

다.  하나님께서 의인의 가정과 그들의 모인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이다(마

16:18).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 '대저'는  이유를  뜻하는

접속사이다.  악인이 의인의 가정이나 교회를 공격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이유는 의

인의 궁극적 승리 때문이다.  '일곱'은 성경에서 완전수이다(잠 6:31;26:16;창  4:24;

욥 5:19;마 18:22).  따라서 '일곱 번 넘어짐'은 완전한 멸망을 뜻한다.  인간의 눈으

로 볼 때 완전한 멸망인줄 알았지만 의인은 다시 재기(再起)하고 만다.  왜냐하면  하

나님께서 그를 끝내 일으켜 세우시기 때문이다. 악인은...엎드러지느니라 - 반대로 악

인은 한번 파멸에 처하면 회생할 수  없다. 하나님없이 재앙으로부터 재기하기란 불가

능하고 그들에겐 그런 힘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15, 16절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의인

은 승리를 거두지만 의인을 억압하고  공격하는 자들은 바로 자신의 악행 때문에 넘어

지리라는 것이다.


=====24:17

 즐거워하지 말며 ...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 '즐거워하지'(*       , 티스마흐)는

상대의 고통 따위를 보고 히죽 히죽 웃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되며  '마음에  기뻐

하지'는 동일한 고통을 보고 웃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내적 만족감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한다.  비록 그 상대가 자신을 치고 공격하였던 자라도 이 같은 자세나 마음을 가

져서는 안 되는데 그 같은 미움은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 되고 만다.   왜

냐하면 그 상대방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24:18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 혹자는 '그 진노'를 원수의 악한  생각

으로 이해하고, 하나님이 원수의 악한 궤계까지도 변화시켜 새 사람으로 만들 때 그를

조롱했던자가 당혹케 되리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는 무리한 해석이다.   그

보다는 개인적 복수심에서 악인의 멸망을 기뻐하는 자세를 경고한 내용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물론 성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멸망을 보고  기뻐함이       마땅하다

(출 15장;17:15;삿 5장;시 58:10).  그러나 주의할 사실은 심판주는 오직  하나님이시

라는 사실이다(A.P. Ross).


=====24:19

 행악자의 득의(得意)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 원문 직역은 '악인들 때문에 스

스로 분노하지 말라.' 악안으로 인하여 분노할수 있는 경우는 많다.  특히 온갖  악행

을 저질러 놓고도 오히려 부귀와 권세를 누리며 사는 경우를 보면 참기 어려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본절은 그러한 경우에도 분노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다음 절

은 이에 대한 이유를 적고 있다.


=====24:20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 여기의 '장래'란 말은 땅 위에서  누리는

지속적인 축복뿐 아니라 하늘 나라에서 누리는 여생까지도 암시하는 듯하다.   악인에

게는 장기적인 혹은 궁극적인 측면에서 보면 땅 위에서든지 하늘에서든지 누릴 축복이

없다.  잠시 축복을 누리는 것처럼 끝나버릴 것이다.  특히 본절에서  '장래'는  하늘

나라에서 누리는 영생에 더 비중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왜냐하면 악인 중  재

앙도 없고 부를 누릴 뿐 아니라 고통도 없이 편안하게 숨을 거두는 자들이 있기  때문

이다.  이 사실로 야기된 갈등을 안고 쓴 것이 시편 73편이다.


=====24:21,22

 하나님은 물론이고 사회의 질서를 위해 세워진 왕에게도 복종하라는 내용이다.  반

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 이것의 해석은 쉽지 않은데  그것은  '반역자'로 번역된

'쇼님'(*          )이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명사의  동사형인 '솨

나'(*      )는 '반복하다',  '변화되다',  '달라지다' 등의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

'쇼님'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우선 RV는 '정치 선동가', 시리아역(Syriac)과 탈굼

역(Targum)은 '어리석은 자들', 라틴역(Vulgate)은  '딴  길을  가는  자들',  델리취

(Delitzsch)는 '다른 성향의 사람' 그외에 '달리 생각하는 자', '불찬성자'  등이  있

다.  그런데 본절 전체의 강조점은 상반절이 묘사하듯 하나님과 왕에 대한 경외에  있

다.  그렇다면 이것의 해석은 문제의 한 단어가 아닌 전체의 강조점을 존중하는  관점

에서 되어져야 하리라 본다.  가장 무난한 해석은 본 구절을 여호와와 왕에 대한 경외

를 부정적 표현을 통해 강조하는 내용으로 보는 해석이다. 그 경우 해석의 내용은 이

렇다 : '여호와와 왕 중 그 누구도 반역치 말라'(do not  disobey  either  of  them,

RSV).  이 해석은 70인역(LXX)이 지지한다(벧전 2:17).


=====24:23

  낯을 보아 주는 것 - 원문 직역은 '편애하는 얼굴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서부

터 재판 윤리에 대한 가르침이 시작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편파성을 보이는 것'으로

의역해도 무방하겠다(To show partiality, NIV).


=====24:24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 왜냐하면  한  나라의

국민들은 일반적으로 건전한 윤리관을 가지고 공의로서 통치하는 정부를 믿고  따르는

반면 불의와 불평등이 조장되는 상황에서는 불평 불만속에서 제각기 이기적으로만  행

동하려 들기 때문이다(Whybray). 물론 유다 말기, 이 윤리관은 땅에 떨어졌다.  그리

고 바로 바벧론이 침입해 와서 유다를 멸망시켰었다(합 1:1-10).


=====24:25

  기쁨을 얻을 것이요 - 백성들을 기쁘게 해주며 결국 백성들의 칭송과 존경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Cook).  법관이 최고의 명예를 누리는 방법은 그 맡은 책임대로 편파성

없이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일이다.


=====24:26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 '바른 대답을 하는 자에게 모든 사람이

그의 입술에 키스할 것이다'(Every man shall kiss his lips giveth a right  answer,

KJV)가 원문에 더 가까운 번역이다.  여기에서 바른 대답을 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법정에서 판사가 법을 따라 신실하게 행동하는 것, 곧 공정한 판결을 선고하는 것  혹

은 증인석에 앉은 자가 본 그대로 증언하는 것을 가리킬 뿐 아니라 일상적인 인간관계

에 있어서 진실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Whybray).  바로 그런 자는 모

든 사람의 키스를 받게 된다고 하는데 성경에서 입맞춤은 이성간의 애정의 표시뿐  아

니라 존경, 신뢰, 우정 등의 표시로 행해지기도 했다(창 27:26, 27:33;4;삼상 20:41).

또한 페르시아 시대에 있어서 키스는 진정한 우정의 표였다고 한다(Herodotus).  말하

자면 진실된 교제를 나누는 자는 우정의 친구를 많이 얻게 된다는 것이다(롬 16:16;고

전 16:20).


=====24:27

 원문 직역은 '밖에서 너의 일을 하되 밭에서 준비하라.  그 후에 너의  집을  세우

라.'  집을 건축하기 전에 밭을 질서정연하게 갈아 놓는 등 먼저 해야 할 일을 완수하

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집을 세우다'는 것이 가정을 형성한다는 의미로서 사

용되는 사실을 고려할 때(출 1:21), 본절은 급하고 신중치 못한 결혼에  대한  경고로

볼 수도 있다.  특히 이스라엘에는 구매 혼인(購買婚姻)의 풍습이 있었던 사실을 생각

하면 본절의 의미가 보다 명확해질 수 있다.  즉 이스라엘의 남자가 아내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 여자의 보호자에게 사의(謝意)로 상당한 분량의 빙폐(聘幣)를 지불하였던

것이다(창 34:12;출 22:16.17;룻 4:5;삼상 18:25).  어쨌든 본절의 핵심은 어떤  목적

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할 일을 구별하여 그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

이다(Whybray).


=====24:28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 거짓 증인을 겨냥한 경고적  명령이

다.  여기의 '증인'은 반드시 법정 용어로만 볼 수 없기 때문에 본 구절을 어떤  개인

혹은 정부에 대한 근거없는 비판, 비난의 중지를 명령하는 내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24:29

  본절이 28절의 연장인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간에  개인적

감정 차원의 복수 금지에 대한 강한 권고인 것은 분명한데 이는 심판자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며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다 하겠다(마

5:43-45).


=====24:30

 밭 ... 포도원 - 이것은 인간의 세상적 소유물 곧 그 사람의 삶의 현장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밭, 포도원을 들여다 보는 것은 그 소유주의 삶의 현장의  특

성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Gregory).


=====24:31

  거친 풀 - 원어는 '하룰림'(*          ).  그  표면이  가시로  가득한  아칸더스

(acanthus)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쐐기풀'을 가리키는 데 이 식물은 그대로  방치해

두면 어디서나 신속히 퍼져나간다고 한다(Deane).


=====24:32

  훈계를 받았었노라 - 매사에 진지하고 깊게 생각하는 훈련만 되어  있으면  우리는

어느 곳에서든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땅에서, 바다에서, 공중에서  책들을  읽고

설교를 들을 것이며 모든 살아있는 짐승 그리고 새, 물고기, 곤충 그리고 땅에서 자라

나는 모든 유용한 혹은 무익한 것들로부터 배울 것이다(Spurgeon).


=====24:33

  좀더 자자 ... 좀더 눕자 - 게으른 자의 특성을 조금이라도 더 잠자려는 사람의 모

습에 비추어 묘사하고 있다.  이 묘사는 땀흘려 일하기를 싫어하고       육신의 안락만을

추구하는 게으른 자의 참 모습을 특징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24:34

 개역 성경에는 원문 일부가 생략되었는데 그것을 보충하여 완역하면 이렇다 :  '네

빈궁이 여행자처럼 올 것이요 네 부족함이 군사처럼 오리라.'  어떤 역본을 개역 성경

과 마찬가지로 '여행자' 대신에 '악당', '강도' 등으로  번역하고  있는데(a  bandit,

NIV; a robber, RSV) '여행자'나 '악당'의 특성 중에 하나는 언제 나라를 침입하는 군

대에서도 찾을 수 있다. 본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계속 게으름을 연습하는  자에게

빈궁은 갑자기 임한다는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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