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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잠언 9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5:43

잠언 9장 주석

 

=====9:1

 내용상 8장의 후반부와 직접 연관되는 부분으로 지혜의 집 문에서 간절한 애정으로

지혜의 초청을 기다린 자는 물론이고(8:34) 지혜 없는 어리석은 자까지 잔치에 초청하

는 내용이 6절까지 기술된다(마 22:1-14;요 7:37,38). 지혜가 그 집을 짓고 - 여기서

'지혜'(*          , 호크모트)는 원어상 복수 형태로 쓰여졌는데,  이는 지혜의 종류

를 나태내는 것이 아니라  8장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모든 신적 속성을 함축하고 있는

지혜의 완전성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쓰여진 것이다(1:20,22;14:1;24:7).  또한 '집

을 짓고'(*                 , 보느타 베타)는 여기서 완료형으로 쓰여졌는 바(house,

NIV, RSV),  이는 지혜가 초청한 자들을 위한 모든 준비를 이미 완료하고 있음을 암시

한다. 한편 이러한 '지혜의 집'은 영적으로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 자신의 몸과(요 2:1

9) 그의 몸된 교회를(벧전 2:5)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으며  이것으로 유추해 볼때 본

절은  모든 인간을 천국 복음으로 초청하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예시하고 있다 하

겠다. 일곱 기둥을 다듬고  -  이는 고대 근동에 있어서 특별한 종교 제전이나 축제의

용도로 쓰여진 장대한 건축물의 기둥들을 암시하며  그것은 현관과 첫 번째 홀 사이의

행랑을 지탱하는 역할을 담당했다(Deitzsch, Hitzig, Toy).  한편  '일곱'이란 숫자는

성경에 있어서 완전수로 나타내며, 또한 이 기둥들이 상반절의 '지혜의 집'에 속한 부

속물이란 점에서 본 문구는 '지혜의 집'의 완전성을 암시해 주는 한편  영적 의미에서

지혜의 일곱 가지 신적 속성과(약 3:17) 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교회(계 1:4이하)를 예

시하고 있다(Bernard, Delitzsch, Vitringa, Zockier). 한편 LB는 두 문장으로 이루어

진 본절을  '일곱 기둥으로 떠받쳐진 궁전'(...a palace supported on seven pillars)

이란 하나의 문장으로 번역했다.


=====9:2

 짐승을 잡으며(*                   ,토브하 티베하) - 혹자는 이를 '희생  제사'에

비유하기도 하나 원어상 그러한 종교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는 단

순히 잔치를 위한 식용의 용도를 가리키는 것이다(마 22:4).  포도주를 혼합하여 - 여

기서 '혼합하여'(*        , 모스카)는 원어상 '(향료 따위를) 섞다'란 뜻인 바, 이는

흥겨운 기분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포도주에 몰약을 섞어 그 도수를 높인 것을 의미한

다(23:30;사 5:22).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원액 그대로의 포도주는 극히 독하기

때문에 이를 입에 맞도록 더운 물이나 찬 물에 섞어 마신 당시의 관례를 따라 본 문구

를 해석하기도 한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고기와 포도주는 모두 내적, 외적 삶의 유익

한 지침들이 되는 지혜의 속성들을 상징하며  더 나아가서는 지혜 그 자체이신 그리스

도께서 우리의 영적 양식과 음료가 되신다는 사실을 예시하고 있다(눅 22:19, 20).


=====9:3

 그 여종을 보내어 - 히브리어 '에베드'(*     )는 구약 성경에서 종종 '노예'로 번

역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완전하게 속박된 노예의 신분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자유권과

생활권을 보장받은 자들로 주인으로부터 많은 권한을 위임 받은 '종'으로 이해하는 것

이 낫겠다(27:27;31:15;창 24:14;룻 2:5;에 2:2, Toy).한편 이는 위 주석들의 영적 의

미로 미루어 볼때 신약에서 천국 복음의 초청자로 위임받은 '주의종'(마 22:3;눅 14:1

7)들에 비유될 수 있다. 한편 70인역은 이를 '그녀의 종들'로 번역했다.  불러 이르기

를 - 개역 성경의 번역은 상반절과 연관하여 지금 말하는 자가 지혜의 여종인 듯이 묘

사되어 있으나 원전과 각 영역본들은 이 두가지 상황, 즉 '여종을 보내는 것'과 '자신

이 직접 외치는 것'으로 구분하여 다룸으로써 지금 말하는 자를 지혜 자신으로 나타낸

다(She has sent..., and she calls..., NIV). 1:21 주석을 참조하라.


=====9:4

 잔치 준비를 완료한 지혜의 초청 내용이 기술된다.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 여기서 '어리석은 자'(*      , 페티)는  생각이 단순해서 외부의 유혹에 쉽계 속아

넘어가는 자(7:7 주석 참조)를 가리키는 바, 필연적인 심판의 대상으로만 언급하던  '

악한 자'(8절;6:17-19;8:13)와는 달리,  본절에서 이 어리석은 자를 초청하는 것은 그

들의 어리석음이 의도적이고 완악한 죄적 성향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경험이

없고 확고한 분별력이 없는 인격적인 미숙함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길로 돌아올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혜없는 자 - 7:7 주석을 참조하라.


=====9:5

  내 식물을...마시고 - 여기서 '식물'(*       , 라히미)은 문자적으로 '빵'이란 뜻

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용어는 모든 음식물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으로 자주 등장한

다. 한편 이러한 지혜의 초청은 그리스도의 초청 메시지(요 6:35,50, 51, 53-58)와 유

사하다(Bertheau).  특히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본절을  신약의  성만찬  의례(마

26:26-28)를 직접 예시한 것으로 보았다.


=====9:6

  어리석음을 버리고 - 혹자는 '어리석음'(*          , 페타임)을 '어리석은  자들'

(the foolish, KJV)로  해석하여  본  문구를  '어리석은  자들을  떠나라'로  읽는다

(Hitzig, Umbreit, Zockler). 그러나 대부분의 주석가들과 역본들은 이를 추상 명사로

보고 권고의 대상인 어리석은 자로 하여금 이제까지 지니고 있던 바로 그 어리석음 자

체를 버리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명철의 길을 행하라 - 여기서 '명철의 길'은 곧 지혜

의 교훈을 통해 지시된 길을 가리키는 바(2:9), 본절을 통해 저자는 어리석은 자로 하

여금  그 어리석음을 떠나는 소극적인 측면과 함께 지혜의 교훈에 순종하며 사는 적극

적인 측면까지를 포괄하여 권고하고 있다.


=====9:7

  지혜가 그 초청의 대상을 어리석은 자까지만으로 한정한 이유를 설명한다.  혹자는

7-10절이 전절과 내용상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점을 들어 이를 후대의 삽입절

로 본다(Hitzig).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12절의 '거만'이란 용어가  다시  나타난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은 듯하다.

   거만한 자를...능욕을 받고 -  '거만한 자'(*    , 레츠)는 '조롱하는 자'란  뜻으

로서 (1:22;29:8), 지혜로운 자의 신앙적, 도덕적 삶을 조롱하며 지혜의 교훈을  멸시

하고 적극적으로 훼방하는 자이다. 곧 이러한 자들은 그들의 행위가 본질적으로  고의

적이며 완악한 죄적 성향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이들을 설득하여 교정(矯正)하려는  모

든 시도는 그들의 배타성과 완고함 때문에 오히려 멸시와 조롱을 받계 될 것임을 보여

준다(마 7:6;24:9). 악인을...흠을 잡히느니라 -  '악인'은 이미 돌이키게 할 수 없는

필연적인 심판의 대상으로 언급된 바 있다(8:13). 또한 '흠'(*        , 무모)은 원어

상 '(육체적, 도덕적) 약점'을 의미하는 바, 본 문구는 그러한 악인에 대한 충고는 오

히려 자신을 그들의 멸시와 학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우를 범하게함을 시사

한다(Delitzsch).


=====9:8

 지혜 있는 자를...너를 사랑하리라  -   지혜를 수용한 자는 그의 전인격이 항상 지

고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던 허물을 지적하고  모든

권고를 기꺼워한다(19:25;27:6;시 141:5).


=====9:9

 지혜 있는 자에게...지혜로와질 것이요  -  8절과 연관하여 본 문구는 지혜로운 자

에게 권면하는 것은 권면자 자신은 물론 지혜 있는 자 모두에게 서로  유익한  것임을

설파하고 있다. 실로 이러한 충고와 기꺼운 수용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와  대인,

대사회의 수평적 관계를 올바르계 정립하고 유지하는 근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한편 본절은 1:5과 그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유사하다(16:22;마 13:12;막 4:25;

눅 8:18).  의로운 사람을...학식이 더하여라 - 여기서 '의로운 사람'은 상반절의 '지

혜 있는자'와 병행을 이루는 말로 이는 지혜의 지적,  도덕적 속성을 포괄적으로 드러

내기 위한 의도에서 쓰여진 표현이다(Delitzsch). 한편 '학식'(*      , 레카흐)은 원

어상 '전해진' 이란 의미로서 이는 대대로 전수되어 축적되어진 포괄적인 삶의 지식을

가리킨다(1:5). 따라서 본 문구는 그처럼 지혜를 수용하여 도덕적 성품을 겸비한 의로

운 자는  그 성품에서 우러나오는 겸손과 포용력, 이해력 때문에 선취한 지식은 물론

자기를 향한 모든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나날이 자기 지식의 범주를 넓혀간

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70인역(LXX)은 '의로운 사람'을 상반절과 같이  '지혜 있는

자'로 번역했다.


=====9:10

 여호와를...지혜의 근본이요 - 1:7주석을 참조하라. 거룩하신 자를...명철이니라 -

'거룩하신 자'(*          , 케도쉼)는 '카도쉬'(*         , 거룩한)의 복수형으로서

이는 거룩하신 자의 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의미에서의  완전한 거룩함을

지칭하는 것이다(1:20 주석 비교). 따라서 이 말은 '거룩하고도 거룩하신 분'(30:3;사

6:3)을 의미하며, 특별히 하나님의 무한하신 거룩의 속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편 본

절은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2:5과 유사점을 가지는 바, 지혜의 절대적 지향점이 바

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그러한 여호와 신앙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아는 신지식(

神知識), 곧 지혜(명철)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9:11

  본절은 지혜에 대한 전인격적인 결단과 순종의 결과로 주어지는 질적, 양적 측면에

서의 축복된 삶을 언급한 3:2과 동일한 의미이다. 곧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는  3:2의

'장수하여'와 동일한 말로 이는 구약 이스라엘에 있어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의  하나

로 여겨진 양적 측면에서의 '장수'(長壽)를, 생명의 해가 더하리라는 3:2의 '많은 해'

와 같은 말로 질적 측면에서의 '행복한 삶의 날들'을 가리킨다. 한편 고대 히브리  사

람들의 관념상 이러한 축복은 온전한 여호와 신앙을 통해서만 주어졌다는 점에서 본절

은 지혜를 통해 주어지는 축복의 진정한 주체가 바로 지혜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임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본절은 그 숨은 의미로 비추어 보아 10절과 직접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이는 7-10절을 후대의 삽입절로 보는 학자들의 견해를 반박할수  있는  여지를

드러내 준다.


=====9:12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 하키미타 라크) - 문자적으로는 '너

는 네 자신을 위해 지혜롭다'란 의미로서, 지혜의 모든 결과적 소산들이 지혜자  자신

에게 유익으로 돌아가게 됨을 시사한다(욥 22:2;35:6-9,Delitzsch). 한편 70인역을 비

롯한 고대의 역본들은 이를 '네가 지혜로우면 네 이웃을 위해서도 지혜로워라'로 번역

하여 원전의 뜻과는 달리 지혜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너 홀로 해를  당하

리라 - 상반절과 대구를 이루는 구절로 이는 곧 상반절과 함께 선택과  결과적 보응에

있어 그 책임이 전적으로 개개인에게 달려  있음을  재삼  강조하고  있다  하겠다(갈

6:4,5;민 9:13;욥 34:31;렘 7:19).


=====9:13

는 본문(13-18절)은 파멸의 죽음으로  생을 인도하는 죄악의 간계한 초청을 보여 준

다. 미련한 계집이 떠들며 - '미련한 계집'(*                  , 에쉐트 케실루트)은

문자적으로 '미련함의 계집'이란 뜻으로  '미련함'과  '계집'이  동격으로(The  woman

Folly, NIV) 쓰여져 궤사한 계집의 실체를 강조하여 드러내고 있다(사 1:8, Delitzsch

). 한편 이 '미련한 계집'은 곧 음녀(Aprostitute, LB)를 가리키는 것이다(2:16;5:3).

또한 '떠들며'(*        , 호미야)는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쾌락만을 추구하여 그 도덕

적 성품이 극히 불량한 상태에 있음을 가리키는 바(7:11주석 참조), 본 문구에 나타난

음녀의 소란스럽고 천박한 내적, 외적 형태는 지혜자의 사려깊고 신중한 모습과  극명

한 대조를 이룬다.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 여기서 '어리석어서'(*

     , 페타이우트)는 4절과 같이 개선의 가능성이 있는 '단순성'과는 달리 좀더 부정

적인 의미에서의 경솔함과 자의적인 방종을 가리킨다(brash, LB; wanton, RSV).  또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 발 야데아 마)는 '어리석음'의 원인으

로서 완전한 무지(無知)를 뜻하며(민 24:3;욥 13:13) 이는 지혜를 통해 습득된 완전한

지식(9-12절;1:2-6)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한편 70인역과 히찌히(Hitzig)는 원어상

독립적으로 쓰인 '발'을 자의적으로 '켈'로 보고  이 '켈'과 '마'를 '수치', '치욕'을

뜻하는 '켈리마'(*        )라는 단어에 결부시켜  본 문구를 '수치를 알지 못하고'로

번역한다.


=====9:14

  집 문에 앉으며...자리에 않아서  -  3절에서 보여지듯 여종을 보내고 직접 소리쳐

초청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지혜의 초청 방식과는 달리 미련한 계집의 초청 방식은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창기의 모습과 유사하다(창 38:14;렘 3:2). 한편 3절과 병행어로

쓰여진 '성읍 높은 곳'은 7장에 나타난 음녀의 실체에 비추어 보아(7:8-12) 음녀의 집

에 있는 곳을 가리킨다기 보다는 지혜를 모방하려는 음녀의 가중하고도 무모한 모습을

묘사하기 위한 의도가 엿보이는 표현이다(Umbreit, Zockler).


=====9:15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객 - 이는 지혜의 권고를 수용하고 그 인도에 순종함으로써

내적, 외적 삶의 방식이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을 가리키나(사  57:2),

혹자는 이를 부정적 의미로 보아 '자기 길을 곧장 가는 사람' 곧 아둔한 가운데  음녀

가 제시한 유혹의 길을 따라 무분별하게  좇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본다(Zockler,

Delitzsch, Hitzig).


=====9:16

  어리석은 자를 초청하는 형식이 지혜의 그것(4절)과 동일하게 나타나나 그  초청의

내용과 그에 따른 결과는 상반된 것이다. 그것은 곧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파멸의  죽

음으로 나타난다(4절 주석 비교).


=====9:17

  도적질한 물이 달고...  -  여기서 '도적질한 물'은 5:15과 비교해서 불륜하고  음

란한 성관계를, '몰래 먹는 떡' 역시 육체적인 음란 행위를 가리키는  바(Delitzsch),

본절은 지혜의 공식적인 초청 준비(5절)와는 달리 음녀의 초청이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금지된 쾌락의 자리임을 시사한다(30:20). 실로 본성적으로 죄적 성향을 타고난  인간

들에게 공적으로 금지되고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행위는 매혹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9:18

  지혜의 초청에 응한 결과(6절)와는 대조적으로 음녀의 가중하고 은밀한 초청에  응

한자의 치명적인 종국이 본서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는 엄중한 심판적 의미로 기술된다

(2:18;7:27). 죽은 자가 그의 곳에 있는 것 - '죽은 자'(*          , 레파임)는 문자

적으로 '유혼'(幽魂)이란 뜻이나  여기서는 실질적인 육적 생명은 유지하고 있지만 이

미 영적으로는 사망에 이른 자들을 가리킨다(Delitzsch, Zockler).  곧 이들은 그들의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로 전인격적인 파탄을 경험하며  그로  말미암아 그의 삶 전체가

곧 음부에서의 그것과 동일한 것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그의 곳'은 이미 '사망의 집'

으로 언급된 '음녀의 집'을 가리키며  이는 곧 산 자의 땅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

음부'(sheol)를 암시한다(2:18주석 참조). 그의 객들이 음부 깊은 곳에 있는 것 - '그

의 객들'은 음녀와 관계한 자들임을 강조하기 위해 상반절의 '죽은 자'와 병행어로 쓰

인 말이다. 또한 '음부 깊은 곳'은 '그의 곳'을 지시한다(2:18, 19 주석 참조).  한편

일부 학자들은 '깊은 곳'(*         ,베이메케)을 '골짜기로 해석하나(Umbreit, Ewald

), 이는 '음부 깊은 곳'이 단지 음부 곧 지하 세계에 대한 강조적 표현이며 원어상 그

러한 뜻이 함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은 듯하다(Delitzsch). 실로 음녀

의 길을 선택한 자들은  지상에서의 삶에서 죽음 뒤에까지도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의

범주에 속해 있게 되는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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