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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욥기(5): 엘리후의 발언(31-37장)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21:11

욥기(5): 엘리후의 발언(31-37장)


"" 구경하던 젊은 지혜자(엘리후)가 입을 열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고난이 죄 때문에 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욥의 회개를 요청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하나님의 부당성에 항의했다. 욥이 끝까지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게되자, 마침내 욥의 친구들은 욥을 설득하는 일을 포기한다. 논쟁이 교착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또 다른 한 사람이 무대에 올라섰다. 그는 바로 젊지만 지혜로운 엘리후였다. 그는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면서 욥과 세 친구들의 논쟁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의 논쟁을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서 일어섰다.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들과는 달리 욥이 당한 곤경에 대해서 깊은 통찰을 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엘리후가 한 네 가지 발언(32-37장)은 욥기가 쓰여지고 나서 후대에 다시 첨가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엘리후는 욥기 다른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고 있지 않다.
 2) 엘리후의 발언과 문체는 욥기의 다른 부분과는 다르다.
 3) 엘리후의 견해는 이 책의 논쟁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다.
 4) 욥이 엘리후의 말에 대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
 1) 엘리후는 논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진리에 가까웠기 때문에 하나님의 책망을 듣지 않았다.
 2) 엘리후가 다른 사람들과 문체가 다른 것은 그의 독특한 성격을 보여줄 뿐이다.
 - 하나님이란 말을 많이 사용함-욥-17, 엘리바스-8, 빌닷-6, 소발-2, 엘리후-19
 - 아람어를 많이 사용함
 3) 엘리후는 세 친구와 견해가 달랐다. 세 친구는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했지만, 엘리후는 반대로 욥이 고통으로 인해 죄를 짓고 있다(교만)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연단을 위해 고난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33:17,28,30,36:16). 그리고 엘리후는 하나님께 불평하는 욥의 잘못된 태도를 고발하고(33:13, 34:17),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고 제안한다.
 4) 욥이 엘리후에게 대답하지 않은 것은 그의 말이 많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욥은 그의 발언을 통해서 자기의 죄와 교만한 태도를 돌이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엘리후의 이야기는 욥과 세 친구의 이야기와 하나님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교량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엘리후의 이야기로 욥과 세 친구의 논쟁을 정리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등장하는 것은 문맥상 자연스럽고 보다 더 효과적으로 보인다.


1. 엘리후의 첫 번째 발언(32-33장)

 1-1. 엘리후에 대한 소개(32:1-5)

  욥과 세 친구의 논쟁이 그치게 되자 엘리후가 등장한다. 그는 람 족속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이었다. 아마도 바라겔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부스(창 22:20)의 후손인 듯 하다. 재미있는 것은 부스의 형인 우스는 후에 욥의 고향인 "우스 땅"(욥 1;1)이란 이름을 낳게 한 인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엘리후는 욥과 세 친구를 향해 노를 발했다. 왜냐하면 욥이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고 주장하였고, 그의 친구들은 능히 대답핮는 못했지만 욥을 정죄하였기 때문이다. 엘리후는 나이가 어려서 고대 근동 지방의 관습을 따라 연장자들의 논쟁에 끼여들 수 없었기 때문에 잠잠히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으나 세 친구가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자 마침내 분노를 터뜨린다.
 

 1-2. 엘리후의 자기 소개(32:6-22)

  엘리후는 자신이 말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였기에 그 동안 참고 감히 의견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 동안 오래 살고 경험이 많은 분이 입을 열어서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성령)이 있고, 전능 자께서 사람들에게 총명을 주시기 때문에 반드시 나이가 많은 사람이 지혜롭고 공의로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을 하려 하니 내 말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나도 내 견해를 여러 분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6-9)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들의 무능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당신들의 말을 기다렸고 당신들이 (욥에게)적당한 말을 하려고 애쓰는 동안 그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내가 당신들이 하는 말을 자세히 들으니 당신들 가운데 욥이 인정할 수 있도록 답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신들이 욥을 굴복시키지 못했다고 해서 욥을 이길 자는 하나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왜냐하면 나도 욥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방법은 당신들과는 다를 것입니다. 욥이 나에게 공격하지 않았으니 나도 욥을 공격하지 않을 것입니다(10-14).    

  엘리후는 자기가 욥에게 대답해야 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친구들이 놀라서 대답을 하지 못하니 이는 그들이 더 이상 할 말이 없기 때문이로다. 그들이 말없이 가만히 서서 다시 대답하지 못하니 이제 내가 어찌 더 기다릴 수 있겠는가? 나도 내 본분(책임)을 따라 욥의 말에 대답하고 나도 내 뜻을 보이리니, 이는 내 입에 말이 가득하여 내 심령이 말하기를 재촉하고 있음이로다. 이로 인해 내 가슴은 봉한 포도주와 발효되어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와 같이 할 말로 가득 찼도다. 그러므로 내가 말을 해야 시원할 것이라. 나도 내 입을 열어 대답할 것이라.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않고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으니, 이는 내가 아첨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사람에게 아첨하면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나를 속히 취하실 것을 알기 때문이로다(15-22).

                                 <적용 질문>

1. 엘리후는 나이가 어렸지만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욥과 무고히 남을 정죄하는 것을 친구들을 보고 분노했다. 우리는 불의를 보고 분노하는가? 아니면 내 일이 아니라고 눈감고 있는가?

2. 지혜와 총명은 나이에 관계없이 성령과 하나님께서 연약한 자에게도 계시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가? 이 시간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자.

3. 우리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아첨하는가?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3. 욥에 대한 엘리후의 첫 번째 대답(33장)

  엘리후는 다음과 같이 욥에게 자기의 말을 들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듣고 내가 하는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시오. 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내 입에서 저절로 말을 하도다. 내 말이 내 마음의 정직함을 나타내고 내 입술이 아는 바를 정직하게 말하리라(정직과 진실성).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셨도다(그의 말이 성령에 영감 되었음을 의미함). 만일 당신이 내 말을 듣고 대답할 수 있다면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와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일반이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기 때문이로다. 나는 내 위엄으로 당신을 두렵게 할 수 없고 내 권세로도 당신을 누를 수 없음을 알고 있다"(엘리후는 자기도 욥과 같은 처지에 있으며, 인간적인 조건으로는 욥에게 충고할만한 자격이 없음을 고백한다. 그는 겸손히 하나님의 진리만을 전하려 했다)(1-7).

  엘리후는 다음과 같이 그 동안 욥이 한 말을 요약하고 있다.

  "진실로 당신이 내가 듣는 중에 말하였고 나는 당신의 말소리를 들었나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깨끗하여 죄가 없고 허물이 없으며 불의도 없으나, 하나님께서 나를 칠 틈을 찾으시고, 나를 적으로 간주하시고 내 발을 착고에 채우며 내 모든 길을 감시하는구나."(8-11)

  엘리후는 이 말(욥이 한 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이제 내가 당신에게 대답하겠습니다. 이 말에 대해 당신은 의롭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주권자시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람에게 고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불평하고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십니까?"(12-13)

  "하나님은 이미 여러 번 반복하여 사람들에게 자기의 뜻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은) 이미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가르침을 자기와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을 잘 때나 꿈을 통해서 환상 중에 서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을 치듯이(분명하게) 사람들에게 자기 뜻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뜻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 꾀를 버리고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계시를 주신 것은 사람의 영혼이 (죄악과 파멸의)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고, 그 생명이 칼에 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구원)."(14-18)

  "때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질병으로 징계하실 수는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징계를 받은 사람은 병상에 누워 뼈가 쑤시며 (식욕을 잃고)음식과 별미를 먹지 못하며, 그의 피부는 말라 버리고  뼈만 앙상하게 드러나서 죽음의 문턱에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혹자는 이 천사가 그리스도를 말한다고 한다-박윤선) 그 병자의 해석자(하나님의 대언자)가 되어 그 병자와 동행하며 그를 회개하게 만들고 옳은 길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를 구덩이(죽음)에 빠지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이미 대속물(예수 그리스도)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다시 피부가 회복되고 어린 아이보다 부드러워져서 소년의 때를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는 나은 후에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고, 사람들 앞에서 그 의를 다시 회복시켜 줄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노래할 것입니다. "내가 전에 범죄하여 진리를 비 진리와 바꾸었으나 내게 아무 유익이 없었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건져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셨으니 이로 인해 나는 이제 빛을 보게 될 것이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은혜로 대해 주시는 것은 그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어 죄로부터 돌이키게 만들고, 생명의 빛을 그에게 비추어 주기 위한 것입니다."(19-30)

  "그러므로 욥이시여 귀를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 말을 듣고 잠잠하시오. 내가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내 말에 대해서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해 보십시오. 내가 그 말을 듣고 당신을 의롭게 만들 것입니다. 자 이제 내 말에 대답해 보십시오. 그러나 대답할 말이 없다면 계속해서 내 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혜를 가지고 당신을 가르칠 것입니다."(31-33)

                                    <적용 질문>

1.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충고해 줄 때에 그보다 낫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그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충고하는가?

2. 하나님은 만물의 왕이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을 우리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왜 이렇게 하십니까?" 라고 따지고 있지는 않는가?

3.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선한 뜻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자신과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17)

4.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구원받은 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보고 자기의 노래와 비교해 보라(27-28).


2. 엘리후의 두 번째 발언(34장)

  엘리후는 욥이 자기 말에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의 두 번째 발언은 하나님께서 불공평하다고 하는 욥의 말에 대한 답변이었다(하나님의 의를 변호함).

  "나의 존경하는 지혜 자들이여 내 말을 듣고, 지식 있는 자들이여(연장자들)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입이 음식의 맛이 좋고 나쁨을 분별할 수 있듯이 우리의 귀도 말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옳은 것을 택하고 무엇이 선한 것인지 함께 알아봅시다"(1-4).

  엘리후는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주장하는 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다.

  "욥 당신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의롭지만 하나님께서 내 의를 제하셨고, 내가 정직하지만 거짓말쟁이가 되었으며, 나는 허물이 없지만 내 상처가 낫지 않는구나.' 감히 누가 이러한 불경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욥은 (거룩하신)하나님을 물 마시듯 훼방하고 악인들과 함께 교제하고 동행하면서(이것은 엘리후가 욥을 잘못 이해하였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일이 아무 유익도 없다'는 신성 모독적인 발언을 담대하게 내뱉고 있도다(5-9).

  엘리후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에 대해서 변호하고 있다.

  "그러므로 총명한 자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하나님은 결단코 악을 행하지 않으시며 전능  하신 분은 결코 불의를 행치 않으시고, 사람이 행한 일을 따라 갚되 그 행위대로 갚아주십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하신 분은 공의를 굽게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땅과 온 세계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므로 아무도 그 분을 공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주관자시기 때문에 신과 호흡을 거두시면 한 순간에 모든 생명과 사람들이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거두지 않으시고 오늘도 이 생명들을 유지해 주시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총명이 있다면 내 말을 듣고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공의를 미워하는 자라면 어찌 세상을 다스릴 수 있습니까? 욥이시여 당신은 어찌하여 공의롭고 전능하신 분을 고소하려고 하십니까? 하나님은 왕까지도 인간 폐물로 취급하시며 귀족들도 악하다고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왕족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부자라도 가난한 자보다 더 생각해 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모두 다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밤중에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시면) 순식간에 죽을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은 떨면서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어서 세력 있는 자들까지도 손을 대지 않고도 멸망시켜 버릴 수 있습니다(10-20)"

  엘리후는 악인이 당할 징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고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기(모든 것을 아심)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한 자들은 어둠이나 그늘에 숨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으므로 권세 자들도 조사할 필요도 없이 꺾어버리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행위를 익숙하게 아시기에 밤중에 악인들을  엎어버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사람이 보는 앞에서 치시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말씀을 어김). 이러한 악한 자들로 인해 가난한 자들의 호소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고 있고, 무고히 환난 받는 자들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상달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할 때에 누가 감히 하나님을 그릇 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진노하여 사람에게 그 얼굴을 가리우실 때에 누가 감히 그 얼굴을 뵈올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국가도 개인과 같이 공의로 대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자가 권세를 잡고 백성을 해치지 못하도록 백성들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21-30)."

  엘리후는 다시 한 번 욥이 한 말을 들어 그를 공격한다. 욥은 하나님이 자기를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는 만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나타나서 자기가 어떤 악을 행했는지 가르쳐 주면 범죄하기를 그치겠다고 말했다(6;24, 7:20-21, 10:2, 13:23 등). 엘리후는 이러한 발언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을 향해 자기 뜻대로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는 짓(주제 넘는 일)이라고 말한다. 엘리후는 욥을 향해서 주권자인 하나님께서 인간인 욥의 욕에 따라 행동해야 되겠느냐:? 고 판단해 보라고 한다.

  엘리후는 총명한 자와 자기 말을 듣는 지혜 자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말한다.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 말이 참으로 지혜롭지 못하도다". 엘리후는 욥의 대답이 악인과 같은 것을 보고 욥이 끝까지 시험받기를 원했다. 엘리후는 욥이 자기가 지은 죄 위에 교만과 패역한 죄를 더하고, 친구들 앞에서 손뼉을 치면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31-37)

                                   <적용 질문>

1.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하나님은 자기가 지은 만물을 선으로 대해 주신다).

2.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공개적으로 치시는 이유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자기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로 하나님과 그 말씀을 대하고 있지 않는가?

3.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모든 행위를 알기에 그릇 판단할 수 없다. 하나님은 조사할 필요도 없이 악을 심판할 수 있다. 하나님은 권세 잡은 자라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쉽게 심판할 수 있다).

4. 우리는 욥처럼 고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이래라 저래라 하고 요구한 적은 없는가? 이러한 태도가 얼마나 하나님께 큰 죄인지 엘리후의 말을 토대로 이야기 해보자.


3. 엘리후의 세 번째 발언(35장)

  엘리후는 세 번째 발언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무죄함에 대해 보상해 주지 않는다" 고 외치는 욥의 고발에 대해 대답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변호한다. 엘리후의 대답은 두 가지 점을 강조하고 있다. 1) 하나님은 지고하신 분이므로 사람의 유죄나 무죄로 인해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 2) 하나님께서 욥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않는 것은 그의 교만함 때문이다.

  엘리후는 의를 행하는 것이 범죄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한 (욥의)말을 비난한다.

  "당신은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를 지킨 내가) 죄를 지은 자보다 유익한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이냐?" 당신은 이 말이 합당한 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1-3)

  엘리후는 하나님은 사람과 달라서 인간이 하나님께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말한다.

  "내가 당신과 당신과 함께 있는 친구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대답하겠습니다. 당신들은 눈을 높이 들어서 하늘을 바라보시고, 높이 펼쳐진 궁창을 바라보십시오(하나님의 높으심과 인간의 나약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렇게 높고 크신 데) 당신이 범죄 하는 일이 하나님께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당신이 죄로 세상을 가득 채운 일이 하나님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입니까? 당신이 의롭다고 해서 하나님께 무슨 유익을 드리고 하나님이 당신 손에서 무엇을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이 행한 악과 의로운 행동은 당신과 같은 사람이나 해롭게 하고 유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4-8)

  엘리후는 인간이 교만도 하나님께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학대를 받고 세력 있는 자에게 압제 당할 때에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부르짖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환난 중에서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과 사람들로 하여금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고난을 찬송으로 바꾸어주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으며, 사람들을 (환난을 통해서)짐승보다 더 낫도록 교육하시며, 공중의 새들보다 더 지혜롭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부르짖어도 응답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교만하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결코 헛된 기도를 듣지 않으시며 전능하신 분은 헛된 자의 기도를 돌아보지 않으시도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불의하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어떻게 응답해 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그 동안 계속해서 죄 없는 나는 고난을 당하나 이 고난에서 도와주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며, 하나님은 무죄 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일의 시비를 가려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으니 나는 하나님만을 기다릴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행하는 악을 살펴보지도 않고 그 죄를 보고 진노로 징계하지도 않는다고 말하니, 당신은 참으로 헛된 입을 열어 무지한 말을 많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9-16)

                                  <적용 질문>

1. 우리는 내가 의를 행했는 데 악을 행한 사람보다 별로 나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원망한 일은 없는가? 이러한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 지 이야기 해 보자.

2.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우리보다 얼마나 높으신 분인 지를 한 번 생각해보자.

3. 하나님은 교만한 마음으로 부르짖는 헛된 기도는 응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는 "고난 중에도 찬송하게 하시는 하나님"과 "연단을 통해서 지혜와 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구하는 기도이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가?


4. 엘리후의 네 번째 발언(36-37장)

  엘리후는 두 번째 발언(34장)에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변호했고, 세 번째 발언에서는 "하나님의 주권"(35장)에 대해서 변호했다. 이제 그는 마지막 발언을 통하여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언급하고 있다. 그는 1) 사람을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고(36:1-26), 2) 자연을 다스리시는 일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자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36:27-37:24).  

 4-1. 하나님의 공의를 변호함(36:1-26)

  엘리후는 먼저 사람을 다스리시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공의와 능력을 변호한다. 그는 이 일을 위해서 자신의 발언이 진실하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당신들은 나를 잠시동안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직도 하나님을 위해(하나님의 일에 불의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당신들에게 할 말이 남아 있습니다. 나는 먼 옛날로부터 지식을 얻어서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증거 할 것입니다. 진실로 내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지식을 갖춘 자(엘리후 자신)와 함께 앉아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1-4)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악인과 의인을 대하는 일에 있어서 공정하다고 말한다(5-12).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지만 아무도 멸시하지 않고, 그 지식이 끝이 없어 악인을 살려두지 않으시며, 고난 받는 자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시고, 그 눈은 의인을 주목하시며, 그를 왕과 함께 영원히 위에 앉혀 주시고 존귀하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혹시라도 의인이 (죄를 짓고)사슬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히게 되면 (징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행한 일과 허물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한 교만한 행위를 깨닫게 하시고,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해 주시며 그들을 향해 죄악에서 떠나 돌아오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들이 그 말을 듣고 하나님을 섬기면 그들은 다시 형통하고 즐거운 삶을 살게 될 것이나, 거역하면 칼에 망하고 무지한 자와 함께 죽게 될 것입니다."(8-12)        

  엘리후는 다음과 같이 사람들이 고난을 받을 때에 나타내는 반응을 묘사한다.

  "마음이 사곡한 자들(하넾: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외식하는 자들)은 (계속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의 속박(고난)을 당해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젊어서 죽고 그 생명은 남자 창기와 함께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통 당하는 자가 고통으로 인해 쓰러질 즈음에 그들을 구원하시며, 학대당할 즈음에 그들의 귀를 열어 주실 것입니다."(13-15)

  엘리후는 고난에 대한 그릇된 욥의 태도를 지적하고 회개를 요청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욥 당신을 곤고한 곳에서 이끌어 내어 넓은 곳으로 옮기려 하셨기 때문에 ( 고난을 받을 때에 순종하였더라면) 당신은 지금 상에 살진 것을 차리고 그것을 먹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에게 악인이 받아야 할 형벌이 가득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가 당신을 사로잡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분을 내어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일을 대적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당신이 계속 하나님을 대적하려 한다면) 아무리 대속물로도 당신을 구속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교만하게 부르짖고 당신 자신을 의지하는 일이 어찌 고난에서 당신을 구원하는 일에 유익이 되겠습니까?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밤, 곧 인생이 자기 장소에서 제거되는 때(죽는 때)를 사모하지 말며, 삼가 조심하여 악한 일에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당신은 환난을 받는 것보다 오히려 죽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권능을 베풀어 큰 일을 행하시고 이 일을 통해 우리에게 놀라운 교훈을 얻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가 감히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의 길에 대해서 항의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항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당신은 이제 (하나님께 원망하기를 그치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깊게 우러러 보고 있으며, 먼 곳에서도 그 분이 하신 일을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위대하시므로 우리가 그 분을 알 수 없으며, 그가 사시는 햇수도 계산할 수 없습니다"(16-26)

                                   <적용 질문>

1. 하나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해 주신다. 우리는 이것을 믿을 때에 어떤 위로를 받을 수 있는가?

2.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성도들을 바르게 세우신다. 이러한 간증이 있으면 말해보자.

3.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에 순종하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 이야기 해 보자(8-15).

4.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에 왜 불평을 그치고 하나님의 일을 찬송해야 하는가?

5. 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주의 깊게 살펴보며 연구해야 하는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하신 일에 대해서 방관하는 자세를 취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4-2. 자연에 대한 섭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과 자비(36:27-37:24)

  이제 엘리후는 마지막으로 자연에 대한 섭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는 먼저 가을 비바람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을 노래한다(36:27-33).

  "하나님께서는 물을 수증기로 만들어 하늘로 끌어올리시고, 그것을 안개와 구름 형태로 만들어 비를 만드시고, 그것이 공중에서 사람 위에 내리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름과 우뢰와 번개를 통해서 사람들을 심판하기도 하고, 곡식을 잘되게 하여 풍년이 들게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손에 빛을 감추어 두셨다가 그것을 명하여 명중시킬 표적을 맞추게 하십니다(번개). (이러한 번개는) 의로운 자들에게는 풍년을 약속해주지만, 악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주고 있습니다"(27-33)   

  엘리후는 계속해서 겨울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로 인해(번개와 우뢰소리) 내 마음이 떨며 내 집에서 숨는구나.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어 보라. 하나님은 그 소리를 온 천하에 울려 퍼지게 하시고, 번개 빛을 땅 끝까지 미치게 하시며, 우뢰를 발하여 위엄 있는 소리를 내게 하시고, 그 음성이 들릴 때마다 번개 빛이 온 세상을 비취도록 하시도다. 하나님은 기이하게 울리는 소리를 내시고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게 하시며, 적은 비와 큰비도 땅에 내리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큰비나 눈을 내려 사람들이 일을 하지 못하게(손을 봉하심)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그들이 손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지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들이 숨는 곳으로 들어가서 그 굴에 머물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남방에 있는 밀실에서 광풍이 불게 하시고, 북방에서는 찬바람이 불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게 하심으로 얼음이 얼고 물이 얼음이 되어 물의 넓이가 줄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습기를 빽빽한 구름 위에 실으시고 번개 빛이 나는 구름을 공중에 널리 펴시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온 세계에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구름이 가는 대로 두루 다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구름을 오게 하여 징벌을 주기도 하시고, 토지에 비를 주기도 하시며,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기도 합니다."(37:1-13)

  엘리후는 계속해서 여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말을 한다.(37:14-18)

  "욥이시여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연구해 보십시오. 당신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구름이 번개 빛으로 번쩍번쩍하게 하시는지 아십니까? 당신은 어떻게 구름이 평평하게 뜨는지, 그리고 지혜가 온전하신 분이 하신 기묘한 일을 아십니까? 당신은 남풍으로 인해 땅이 고요할 때에 당신의 의복이 따뜻해지는 이유를 아십니까? 당신이 능히 이러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여 부은 거울 같이 견고한 하늘을 펼칠 수 있단 말입니까?"(14-18)

  엘리후는 마지막으로 욥이 하나님의 길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당신이 참으로 지혜롭다면) 당신은 우리에게 우리가 하나님께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는 지혜가 어두워 하나님께 해야 할 말을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어찌 창조주를 향해서 말하고 싶은 말(하나님을 비평하는 말)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내가 그렇게 한다면 나는 하나님의 노에 소멸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때는 구름에 가려 하늘의 빛을 볼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지나가면 구름이 사라지고 하늘이 다시 맑아집니다. 그러면 다시 북방 하늘에서 금과 같은 해 빛이 나와 사람들에게 비추어줍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권능이 지극히 크신 분이기 때문에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베풀기를 굽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능하신 분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스스로 지혜롭다고 말하는 자를 돌아보지 않는 분이십니다(19-24)."

                                   <적용 질문>

1. 비와 번개, 그리고 우뢰를 통해 가을에 풍년을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심판도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2. 우리는 겨울에 찬바람이 불어 얼음을 얼게 하시고 구름을 통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어떤 마음이 생기는가?

3. 우리는 여름에 비가 올 때에 번개가 치며, 기온이 따뜻해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게 되며, 파란 하늘에 머리 위에 펼쳐지고 하늘에 구름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4. 우리는 구름으로 해를 가리웠다가 다시 찬란한 햇빛이 비취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어떠한 마음이 드는가? 우리는 이러한 모든 일을 묵상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으며,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송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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