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욥기

[스크랩] 욥기(2): 욥과 친구들의 논쟁(1)(2:11-14:22)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21:10

욥기(2): 욥과 친구들의 논쟁(1)(2:11-14:22)


1. 친구들의 방문(2:11-3:26)

 1-1. 친구들의 동정(2:11-13)

  이제 욥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나날이 시작되었다. 큰 사건이 일어나는 데에는 어떤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충격적인 일을 당하고 나면 그것을 이겨보려고 부단히 노력을 한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긴 시간 동안 침묵하기도 하고,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며, 어떤 때는 갑자기 화를 내기도 한다. 사람들은 재산이 많고 일이 잘 풀려 가는 사람들 주변에 많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가 고통을 당할 때에는 진정한 친구만이 그를 찾아준다. 욥이 부유할 때에는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욥이 고난에 처했을 때에 그를 찾아 온 사람은 세 사람뿐이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방문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들의 방문 목적은 욥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11). 그 친구들의 이름은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었다. 우리는 데만이 에돔 족의 한 종족이며 수아가 미디안의 형제 부족이었다는 사실 외에는 그들에 대해서 더 이상 알 길이 없다. 그리고 후에 등장하는 친구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엘리후였다. 그가 이전부터 욥을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우연히 욥과 그 친구들의 논쟁을 듣게 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들은 집을 떠나 욥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도 몰골이 흉하게 된 욥을 보고 그를 알아볼 수 없었다. 친구들은 이러한 욥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큰 소리로 울고 옷을 찢고 머리에 재를 뿌렸다(12). 그들은 욥에 대한 동정심으로 인해 7일 동안 말없이 욥의 곁에 있었다. 그들은 욥이 당하는 고통이 너무나 심한 것을 보고 그에게 무어라고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13). 큰 재난에 빠진 친구를 위로할 때에 말보다 침묵이 더 좋을 때가 있다.


 
1-2. 욥의 탄식(3:1-26)

  말없이 들어줄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 앞에서는 감정 표시를 하기가 쉬운 법이다. 욥은 그 동안 자기 곁에서 고통을 같이 해준 친구들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욥은 마음이 열려서 그들에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했다. 욥의 탄식은 세 가지였다. 1) 자기가 태어난 날에 대한 탄식(1-10), 2) 자기가 태어날 때에 죽지 않은 것을 탄식함(11-19). 3)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것을 탄식함(20-26).

 a. 욥은 자기의 생일(태어난 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내가 태어난 날이 없었고 모친이 사내아이를 임신했다고 했던 밤이 없었으며, 그 날이 캄캄하여 하나님께서 위에서 그 날을 돌아보지 않으시고, 빛도 그 날을 비취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유암(음부)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내 것이라 말하고(죽어서 태어남), 그 날에 구름이 덮여 낮이 캄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밤이 심한 어두움에 잡혀 해와 달의 수에 들지않고(그날이 없었다면) 그 밤이 적막하며, 그 밤에 (아이를 낳았다고 외치는)즐거운 소리가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날을 저주할 수 있는 하나님, 곧 큰 악어(악한 영)를 움직일 능력이 있는 하나님께서 그 밤을 저주하시고, 그 밤에 새벽별들이 어두워지고, 그 밤이 빛을 원해도 얻지못하고 동이 트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내 어머니의 태의 문을 닫지 않고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셔서 내 눈으로 이 환난을 보게 한단 말인가?"(1-10)

 b. 욥은 심한 고통으로 인해 차라리 사산했기를 바란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죽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고 모친의 젖을 빨게 하였던가?
  만일 내가 그 때에 죽었다면 이제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라. 자기를 위해 무덤을 만든 세상의 왕들과 위인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금과 은을 가지고 자기 집에 채운 관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또 부지중에 낙태한 아이와 같이 세상에 있지 않았을 것이며,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죽은 아이들)과 같았으리라.
  거기는 악한 자가 그 욕심을 그치고 거기서는 곤비한 자가 평강을 얻으며, 거기서는 갇힌 자들이 다함께 평안히 있어서 감독자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며, 거기서는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 같고, 종이 그 주인에게서 해방되는 곳이로다!"(11-19)

  욥은 낙태된 아이와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왜냐하면 무덤에서는 악한 자가 욕심을 버리고 힘들게 살던 사람도 평강을 얻기 때문이다. 무덤에서는 세상과 달리 갇힌 자들이 함께 모여 살고 더 이상 감독자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그 곳은 작은 자나 큰 자가 모두 신분이 같으며 종이 그 상전으로부터 해방된다. 욥은 이와 같이 죽음의 세계를 모든 신분과 고통이 없어진 안식의 세계로 보았다. 그러므로 극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그는 죽음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c. 욥은 계속해서 죽기를 갈망한다.(20-26).

  "어찌 하나님께서 고난을 당하는 자에게 빛(생명)을 주셨으며, 마음이 번뇌한 자에게 생명을 주셨던고? 이런 자는 죽기를 원해도 죽을 수가 없도다.
  나는 땅을 파고 숨긴 보물을 찾는 것보다 죽기를 더 원하니, 죽음을 얻게되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이라! 하나님의 공격에 둘려싸여 갈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 빛(생명)을 주셨는고?
  나는 먹기도 전에 신음을 하고, 내 입에서는 신음 소리가 마치 물처럼 쏟아져 나오는구나! 내가 두려워하던 일(재난)이 내게 미쳤고, 내가 무서워하던 일(질병)이 내 몸에 미쳤도다. 이제 내게는 평강도 없고 안식도 없으며 오직 고난만이 있을 따름이라!"(20-26)

  욥은 혼자 있을 때에는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 그는 모든 소유와 재산을 잃었을 때에도 신앙을 지켰고, 건강을 잃고 그의 아내가 그를 공격할 때에도 순전을 굳게 지키고 입으로 범죄하지 않았다. 이때에 사단이 욥을 넘어뜨리기 위해 보낸 것은 그의 친구들이었다. 물론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를 방문하지만 사단은 교묘히 그들을 이용해서 욥의 신앙을 공격하고 있었다. 욥은 자기와 입장이 같은 친구들에게 둘러 쌓여 그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게 되었다. 욥은 별 볼일 없는 친구들이 아무런 고난도 당하지 않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키려고 하는 자신만 일방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상대적인 결핍을 느꼈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에는 신앙을 지키기가 쉽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신만이 지나치게 고난을 당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분노를 터뜨리게 된다. 이것은 그 날 먹고살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유산을 받은 부자들이 돈을 물 쓰듯 쓰는 것을 볼 때에 느끼는 분노와도 같은 것이다. 이제 욥은 상대적인 결핍의식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고 죽기를 원해도 죽기 않고 고통 속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다. 어쩌면 간교한 사단은 이것을 노리고 친구들을 욥에게 보냈는지도 모른다. 욥이 친구와의 수평 관계에 시선을 맞추게 되었을 때에 그는 하나님과의 수직 관계에서 그의 시선을 놓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욥의 모습을 비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보다 더 쉬운 환경에서도 너무나 자주 세상을 원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용 질문>

1. 우리는 남이 잘될 때에는 그를 가까이 하다가 그가 어려워지면 멀리 하지 않는가? 진정으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돕고 있는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나를 찾아줄 친구가 몇 명이나 있는가?

2. 우리의 생일과 사는 날들을 감사하지 못하고 차라리 저주하고 싶은 때가 있었는가? 있었다면 그때가 언제이며 왜 그랬는지를 생각해보고 욥의 처지와 고백과 비교해 보자.

3. 죽기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유익과 해를 줄 수 있다.
 * 유익 1) 세상이 아니라 천국에 소망을 둔다. 2) 욕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정결해 진다. 3) 하나님을 찾는다.
 * 단점-인생을 비관하다가 하나님을 멀리할 수 있다.


< 친구들과의 논쟁 > (4:1-31:10)

  욥이 일 주일간의 침묵을 깨고 번민의 부르짖음을 외친 후에 그의 세 친구들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들은 욥이 죽기를 갈망하는 것을 보고서 그의 경솔한 발언에 대해 바로 잡아주어야 할 책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세 번에 걸쳐서 이루어지며 친구들이 말한 후에 욥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세 친구의 관점은 모두 의인이 상을 받고 악인이 고난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욥이 강퍅한 죄인이며 회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욥은 그들에게 자신이 고난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
 

A. 첫 번째 논쟁(4:1-14:22)


1-1. 엘리바스(4-5장)

 * 욥에 대한 비난(4:1-6)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데만 사람 엘리바스였다. 그는 욥에게 "누가 말을 하면 네게 염증이 나겠느냐?" 고 하였다. 엘리바스는 그 동안 욥이 다른 사람을 충고하는 위치에 있었으나, 이제는 욥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가 되었다고 충고하였다. 엘리바스는 혹시 누가 말을 해서 욥에게 염증이 난다고 해도 이제 더 이상 참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엘리바스는 욥이 이전에 말을 통해서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고, 손이 늘어진 자(낙심한 자)들에게 힘을 주었으며, 넘어져 가는 자를 붙들어 주고 낙심한 자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말한다. 엘리바스는 그러나 이제 정작 욥에게 고난이 오게 되자 욥은 자기 말대로 하지 않고 불안해하며 답답해하며 놀라고 있다고 비난한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네가 믿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이며, 너의 소망은 행위를 완전케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면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행위를 온전케 하라고 원하고 있다.

 * 그의 주장(4:7-5:7)

 <고통에 대한 그의 논리>(7-11)
  그는 욥에게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이며 정직한 자가 끊어진 일이 어디 있느냐? 고 도전한다. 그는 자기 생각에는 악으로 밭을 갈고 독을 씨처럼 뿌리는 자(죄를 행하는 자)는 악을 거두고,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록 사자가 강하지만 하나님께서 치시면 그 소리가 사라지고, 이가 부러지며, 늙은 사자는 먹을 것이 없어 죽고, 새끼들이 흩어진다고 말한다. 이것은 욥이 한 때 사자와 같이 강했지만 지금은 그의 죄로 이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할 말을 잃고 그의 세력이 사라지고 자녀들을 잃은 것을 비유로 말한 것이었다(4:7-11).

 <환상을 통한 계시>(12-21)
  엘리바스는 신비주의 자이거나 적어도 영적인 체험을 중시하는 자였다. 그는 자기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서 자기가 본 환상에 대해서 말한다. 그가 이러한 영적인 체험을 근거로 해서 말하는 것은 그가 체험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자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는 밤에 한 이상을 보았는데 그 이상 중에 한 영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엘리바스는 그 영이 "인생이 하나님보다 의롭지 못하고 사람이 창조주보다 성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하였다. 이것은 욥이 자기는 죄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치신다고 한 말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본 영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은 그 종이라도 믿지 않으시며 그가 부리는 사자라도 미련하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흙으로 만든 집에 살며 흙을 터로 삼고 하루살이에게도 눌려 죽을 사람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비천하겠는가? 사람은 아침과 저녁 사이에(하루아침에) 죽어서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장막 줄을 뽑을 때에(생명을 거둘 때에) 그들이 죽나니 이같이 사람은 지혜가 없도다." 엘리바스는 욥이 집을 잃고 재 가운데 앉아서 하루살이 같은 사람에게도 눌려 죽을 신세가 된 것을 비난했다. 그는 욥이 이렇게 된 것은 그의 지혜 없음과 죄로 인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4:12-21).

 * 욥에 대한 그의 충고(5:1-16)

  엘리바스는 욥이 부르짖어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의 부르짖음은 죄인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일으킨 미련한 분노이며,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시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엘리바스는 미련한 자가 뿌리박은 것을 (형통한 것) 보고 당장에 저주하였다. 그러자 그의 자녀들에게 평안이 사라지고 성문에서 압제를 당하나 구해 주는 자가 없으며, 그 추수한 것은 모두 다 빼앗기고 그 재산을 노리는 올무가 기다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욥이 악한 자이기 때문에 저주로 인해 집과 재산과 자녀를 잃고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비유로 말한 것이다. 그는 재앙과 고난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지은 죄에서 난다고 주장하였다(5:1-7).

  무자비하게 욥을 공격한 엘리바스는 이제 욥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그는 자기가 욥과 같은 환경에 있었다면 욥처럼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하고 그의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낮은 자를 높이시고 슬퍼하는 자를 들어 안전한 곳에 두신다(은혜와 자비의 하나님). 하나님은 궤휼한 자의 악한 계교를 멸하시며 그의 뜻이 상사되지 못하게 하신다(공의의 하나님). 그러므로 악인들은 대낮에도 어두운 밤과 같이 더듬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곤비한 자를 강한 악인들의 무기와 세력으로부터 구해주시기 때문에 가난한 자에게 소망이 있으며, 불의한 자들은 스스로 할 말을 잃게 될 것이다(8-16).

 * 하나님의 축복을 상기시킴(5:17-27)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말한 후에 하나님께 경책을 받는 자가 복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경책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는 지금 욥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징계하시는 것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죄인이 하나님의 경책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아프게 하시다가(징계) 싸매 주시고(회복과 위로), 상하게 하시다가(징계) 그 손으로 고치신다고(회복과 위로)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만일 욥이 그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6가지 환난에서 그를 구원하시고, 7가지 환난 속에서도 재앙이 미치지 못하게 하시며, 기근과 전쟁 때에도 생명을 지켜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욥이 회개하기만 하면 사람의 비난과 멸망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자연이 그를 해치지 않고, 다시 집을 짓고 평안히 살게 될 것이며, 재산을 회복하고 자녀들이 다시 많아질 것이며, 기한이 되어 추수한 단과 같이 장수하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였다. 엘리바스는 이와 같이 말한 후에 그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이 모든 것이 사실이니 욥은 이 말을 듣고 그에게 유익한 말로 받으라고 충고했다.

                                 < 적용 질문 >

1. 말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운 혀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남을 가르치면서 정작 나 자신을 가르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2. 죄를 지은 자가 망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를 무시하는 것은 죄인에게 바로 심판이 내리지 않고 때때로 의인도 고난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인이 받는 고난은 선한 목적 때문에 받는 것이다.

3. 어려움과 환난을 당한 사람을 정죄하고 그들을 비난하며 회개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며 남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일인지 이야기 해 보라.

4. 우리는 개인적인 영적 체험에 근거해서 판단하는가? 성경을 근거로 판단하는가?

 1-2. 욥의 대답(6-7장)

 * 욥의 변명(6:1-7)

  욥은 자신이 당하는 분한(분노)와 재앙을 저울에 달면 바다모래보다도 더 무거울 것이라고  한탄한다. 그는 큰 진노와 재앙으로 인해 자기가 경솔한 말을 했다고 고백한다. 욥은 자기에게 하나님의 독화살에 와서 박혔고 두려움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들 나귀와 소가 꼴이 있으면 울지 않듯이 욥도 재난을 당하지 않았다면 부르짖지 않았을 것이다. 욥은 싱거운 음식과 계란의 흰자위에 소금을 쳐야 맛이 있듯이 자기의 고통과 울부짖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고통에 대한 욥의 절망(6:8-13)

  욥은 차라리 하나님께서 자기의 생명을 거두어 주실 것을 요청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거두시면 그는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고통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자기는 돌이나 놋쇠가 아니므로 기력이 다해서 더 이상 기다릴 힘도 없다고 말한다. 욥은 이제 그의 안에는 그를 돕는 힘은 아무 것도 남아 잇지 않으나 지혜는 그를 떠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 친구들에 대한 욥의 실망(6:14-23)

  욥은 친구들이 지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을 포기한 자기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욥을 신실하게 대해 주지 못했다. 그들은 욥에게 있어서 우기나 눈이 올 때에 넘쳐흐르다가 가장 필요할 때에 물이 말라버리는 개울물과 같았다. 얼음이 광야에서 녹으면 모래를 검은색으로 만들다가 금방 더위에 말라 없어진다. 친구들의 신의는 이렇게 쉽게 말라버린 얼음물과 같았다. 욥은 친구들의 신의가 사람을 속이는 신기루와 같다고 말한다. 광야를 지나던 나그네들과 데마와 스바에서 온 행상들은 신기루를 보고 오아시스 인줄 알고 쫓아가다가 물이 없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광야에서 엎드러진다(14-20). 욥의 친구들은 욥이 당한 고난을 보고 욥을 돕다가 자기들도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고난 당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욥은 자기는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 없으니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 세 친구에 대한 욥의 탄원(6:24-30)

  욥은 만일 친구들 욥의 허물을 드러내어 가르쳐 주면 자신은 잠잠할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친구들이 한 말이 옳은 말이었다면 욥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전혀 근거 없는 말이기 때문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욥은 친구들이 마치 도움 받을 자가 없는 고아를 제비 뽑고(부당한 이익을 취함), 친구도 팔아먹을 사람이라고 비난하였다. 욥은 친구들에게 자기를 똑바로 쳐다보라고 요청한다. 그는 친구들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자신은 그들에게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한다. 욥은 친구들에게 자신을 죄인으로 몰은 일을 회개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부탁한다. 그는 자신은 의로움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자신에게도 자신이 선한지 악한 지를 분별할 정도의 분별력은 있다고 주장한다(21-30).

 * 하나님께 대한 불평(7:1-21)

 <욥의 불행한 형태>(7:1-5)

  욥은 인생(에노스: 약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네 가지로 비유하였다. 1) 군복무(차바: 본문에는 이 말이 전쟁이라고 번약됨)를 마치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군인, 2) 힘든 노동을 하는 품꾼, 3) 뜨거운 태양 밑에서 일하며 저녁이 되기를 기다리는 종, 4) 삯이 지불되기를 기다리는 품꾼. 욥은 이들과 같이 고난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여러 달 째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는 고통으로 인해 밤마다 고통으로 인해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밤새 몸을 뒤척였다. 그의 살에는 구더기와 흙 조각이 옷처럼 입혀 있었고, 그의 피부는 아물었다가 다시 터지기를 반복하였다.

 <하나님께 대한 욥의 기도>(7:6-21)

  그의 날은 마치 소망 없이 빠르게(베틀의 북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욥은 하나님께 자기 생명이 숨 한 번 쉬는 것과 같음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는 잠시 후 자기가 죽으면 친구와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임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이 그를 치시면 그는 구름이 사라짐 같이 없어져 다시는 음부에서 올라오지 못할 것이며, 집에서도 그를 다시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1-10). 그러므로 욥은 이제 멸망당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원망하겠다고 호소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바다 괴물인 용(티아맛: 바알과 싸워 진 바다 괴물)으로 취급하고 자기를 치고 있다고 불평한다. 그는 잠이 들 면 고통을 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잠에 들어도 하나님께서 그를 꿈에서도 놀라고 두렵게 하신다고 원망한다. 이제 그는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하나님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요청한다. 그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관심을 갖고 징계하며 시험하느냐? 고 불평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마치 죄수를 지키는 간수 같이 침 삼키는 순간도 그를 놓지 않고 지키고 서 있다고 불평한다. 그는 자기가 죄를 지었더라도 그것이 주님께 무슨 해가 되기에 자기를 공격할 대상으로 삼아 스스로 무거운 짐을 만드시느냐? 고 호소한다. 그는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지 않고 형벌을 제하지 않느냐고 호소한다. 그는 자기가 죽어서 흙에 누우면 주께서 찾아도 더 이상 땅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한다(11-21).

                                    <적용 질문>

1. 욥이 고통 중에 죽음을 바라본 태도(6:8-13)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준다. 1) 그는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인정했다. 2) 그는 세상에 오래 있기 보다 죽기를 원했다. 3) 그는 비록 죽음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소망이 있었다.

2. 우리는 친구들에게 끝까지 신의를 지키는 사람들인가? 그들이 어려울 때에 요긴한 도움을 주고 있는가? 아니면 물 없는 시내와 같이 친구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 그들을 속이고 있는가?

3. 욥이 인생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비유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자(7:1-5).

 1) 인생은 군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를 원하는 군인과 같다. 2) 인생은 힘든 노동을 하는 품꾼가 같다. 3) 인생은 뜨거운 태양 밑에서 일하며 저녁이 되기를 기다리는 종과 같다. 4) 인생은 삯이 지불되기를 기다리는 품꾼과 같다.

  우리는 이러한 비유들이 인생의 의미와 사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 지에 깊이 이야기해 보자.

4. 사람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러한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오늘도 우리가 부족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2-1. 빌닷(8장)

  욥이 엘리바스의 말에 대해 비난을 하게 되자 이 번에는 수아 사람 빌닷이 그를 반박하고 나섰다. 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서 원망하는 것을 비난하였으나(5:17), 빌닷은 욥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을 비난하였다(8:3).

 *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욥의 변호(8:1-7)

  빌닷은 욥에게 "네가 언제까지 이런 말을 하겠느냐?" 고 책망하고 나섰다. 그는 욥의 말이 마치 사납게 몰아치는 폭풍과 같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전능하신 이가 공의를 굽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빌닷은 욥의 자녀들이 주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셨다고 주장하였다. 빌닷은 욥이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고 전능하신 이에게 빌며(은혜 베풀기를 애원하며), 청결하고 정직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그를 돌아보시고 그의 의로운 집을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만일 욥이 회개하기만 한다면 그의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나중은 창대 하게 될 것이라고 충고하였다.

 * 빌닷의 증언(8-19)

 <역사에서 인용한 빌닷의 증언>(8-10)

  빌닷은 과거의 전통을 중시하는 전통주의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욥에게 옛 선조들에게 묻고 열조들이 이미 터득한 일을 배우라고 권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산 날이 짧기 때문에 지식에 한계가 있으며, 얼마 살지 못하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연을 인용한 빌닷의 예증>(11-19)

  그는 왕골은 진펄에서 나고 갈대는 물이 있는 곳에서 자란다고 말한다. 이 말은 외식하는 자(속이 빈 왕골과 갈대)는 죄(물)가 있는 곳에 기생한다는 것을 말한다. 왕골과 갈대는 푸르러서 벨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다른 풀보다 먼저 시든다. 빌닷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의 길이 이와 같으며, 사악하고 왜곡된 자의 소망은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말하였다. 빌닷은 악인들이 신뢰하는 것은 거미 줄 같이 되어 끊어져 버리고, 그 집은 오래 보존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빌닷은 식물이 햇빛을 받고 푸르러서 그 가지가 동산을 뻗어가며, 그 뿌리가 돌 가운데로 들어가도 그 자리에서 뽑히면 그 자리는 그 식물을 다시 기억하지 못하며, 그 후에 그 곳에는 다른 풀이 돋아나게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욥이 한 때 번성했지만 그가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빙자한 것이다. 빌닷은 만일 욥이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으면 그에게 징계가 임하고, 그가 죽은 후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그의 소유를 다른 사람이 차지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 빌닷이 제시한 한 가닥 소망(20-22)

  빌닷은 다시 한 번 욥에게 회개할 것을 권한다. 빌닷은 하나님은 순전한 자를 버리지 않고 악한 자를 버리시는 분임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만일 욥이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그의 입에 웃음과 즐거운 소리로 채우시고 그를 미워하는 자를 부끄러움을 당하게하시며, 그를 미워하는 자의 집이 없어지게 될 것(죽거나 사라짐)이라고 충고하였다.

                                   <적용 질문>

1. 처음보다 나중이 더 커지기 위해서는 1)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고 2) 전능 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며, 3) 그 행실을 정결하게 하고, 4) 정직하게 행동해야 한다(8:5-7).

2. 우리는 남을 판단할 때에 전통을 가지고 무조건 비판하고 있지는 않은가?("그것은 전통에 맞지 않아", "그것은 우리가 그 동안 해오지 않은 일이야!" 라고 비판하는 것)   

3. 속이 빈 왕골과 지조 없이 흔들리는 갈대 같은 신앙인이 어떤 일을 당하게 되는 지에 대해서 말해보라(8:11-19). 우리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2-2. 욥의 대답(9-10장)

 * 빌닷에 대한 대답(9장)

 <하나님의 두려운 권능>(9;1-13)

  욥은 인생이 하나님 앞에 의롭지 못하다는 빌닷의 말에 동의했다. 그는 사람이 하나님과 쟁변(소송을 제기함)하려 하면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지혜롭고 강하시기 때문에 그를 거역하고서 형통할 사람은 없다. 욥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았다. 하나님은 산을 옮기실 수 있으며, 지진을 일으키고, 해와 별들을 덮어버리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천막을 치듯이 공중에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신다(폭풍을 일으키신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별자리들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 일과 기이한 일을 행하신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에 우리 앞으로 지나가도 우리는 알 수 없으며, 하나님은 강하시기에 그가 하시는 일을 아무도 반대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진노하시면 돌이키지 않고, 라합(사단)을 돕는 원수들조차 그 앞에 굴복하게 만드신다.

 <하나님의 독단적인 권능>(9;14-24)

  욥은 지혜롭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는 대답도 변론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는 자신이 의로워도 대답하지 못하고 심판하실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만일 그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해도 자기는 자기 때문에 기도에 응답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께서는 폭풍과 같은 재난으로 그를 치셨고, 그의 상처를 많게 하시며, 숨을 쉬지 못하게 하시고 괴로움으로 몸에 가득하게 채우셨다고 한탄한다. 하나님은 힘이 강하시고 그 심판도 준엄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심판을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욥은 자기가 의롭고 순전해도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처음으로 하나님의 공평치 못함을 인해 항거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순전한 자나 악한 자를 막론하고 모두 멸망시킨다고 항의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재앙이 내려 덮칠 때에 그가 받는 고난을 비웃으신다고 원망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악인의 손에 붙이고 공의로 재판하는 자를 두지 않으셨다고 항의한다.

 <욥의 실망>(9:25-35)

  욥은 자기의 일생이 체부(달리는 사람)와 빠른 배, 그리고 먹이를 잡으려는 독수리 같이 빨리 지나가지만 자기는 복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불평한다. 욥은 자기가 원통함을 잊고 얼굴을 바꾸어 즐거운 모양을 하려해도 그 마음에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이것은 바로 자기를 정죄한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정죄 하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씻어도 주님께서 그를 다시 개천에 빠지게 하실 것이라고 한탄한다. 욥은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마주 앉아 재판할 수도 없고, 판결할 자도 없다고 한탄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그를 친 막대기를 거두시고 두렵게 하지만 않았다면 하나님께 나가서 두려움없이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욥은 자기에게 변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원망한다.

 * 욥의 절망(10장)

 <하나님께 대한 욥의 해명 요구>(1-7)

  욥은 영혼이 살기에 너무 힘이 들어 하나님께 원통함을 호소한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를 정죄만 하지말고 무슨 이유로 그를 송사는 지를 가르쳐 달라고 간구한다. 욥은 몇 가지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맞선다. 1) 하나님께서 자기 손으로 지으신 인간을 학대하고 멸시하면서 즐거움을 느끼십니까? 2) 하나님께서 인간과 같은 눈을 가지고 인간의 죄를 추궁하십니까? 3) 하나님이 사는 날이 짧기 때문에 인간의 죄를 묻는 것입니까? 그러나 욥은 분명히 이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가 악하지 않은 줄 알고 있는 것과 주의 손에서 자기를 구할 자가 없다는 두 가지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욥이 하나님께 상기시킴>(8-12)

  그는 주님께서 자기를 만드실 때는 언제이고 이제는 자기를 멸하려고 하느냐고 항의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티끌을 뭉치듯이 자신을 만들고 이제는 다시 티끌로 돌려보내려고 한다고 소리쳤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엉긴 젖(치즈)와 같이 얽고 그 위에 가죽과 살을 입히고 뼈와 힘줄로 덮어서 생명과 은혜를 주신 후에 그의 영혼을 지켜 주셨다. 욥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이제 그 마음이 변덕스럽게 변해서 욥을 멸하려 하느냐? 고 항의한다.

 <하나님께 대한 욥의 비난>(13-17)

  욥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그에게 고통을 주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죄를 지을 때에 용서하지 않고 악할 때에 노를 발하신다. 그러나 욥은 자기가 계속해서 고통과 환난을 받고 있기 때문에 비록 자기가 의롭다고 해도 자기는 머리를 들 수 없다고 말한다. 욥은 자기가  머리를 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즉시 사자 같이 신적인 능력으로 여러 증인들을 불러서 자기를  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께 대한 욥의 요청>(18-22)

  욥은 하나님께 이렇게 하려면 왜 자신을 태에서 나오게 하셨냐고 항의한다. 욥은 자기가 차라리 죽어서 태어났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소연한다. 그는 자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대로 내버려 달라고 간청한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가 죽어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되기 전에 자기를 고통에서 풀어 달라고 간구한다(14-22).

                                    <적용 질문>

1. 악한 인생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고 응답이 되어도 그것이 나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욥과 같이 기도 응답은 나의 의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9:16 참조).

2. 우리는 살면서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불공평하다고 원망해 본 적은 없는가?  이러한 원망은 왜 위험한 것인가?

3. 인생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 것을 묘사하기 위한 욥의 비유(9:25-26 참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자(체부(달리는 사람), 빠른 배, 먹이를 덮치는 독수리). 그리고 이런 빠른 인생을 살 때에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도록 우리의 시간을 계산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자.

4. 하나님은 우리 전후좌우에서 활동하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11). 우리는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항상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살아야 한다.

5. 우리는 우리를 창조해 주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이런 신앙을 고백할 때에 우리는 교만해 질 수 없으며, 우리 육체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런 신앙은 심한 고난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 은혜를 구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3-1. 소발: 적용된 원리(11장)

  소발은 욥이 무고하다는 주장과 하나님이 세상을 부당하게 다스린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한다. 소발은 친구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욥에 대하여 무례하게 공격한다.

 * 욥의 말에 대한 그의 비난(1-6)

  소발은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욥이 의로울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욥이 자랑할 때에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그를 부끄럽게 만들 것이라고 공격한다. 그는 욥이 스스로 정결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듣고 그를 빈정거리면서 욥에게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다. 소발은 무자비하게도 욥이 당한 벌이 오히려 그가 지은 죄에 비해 가볍다고 비난한다.

 *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소발의 찬양(7-12)

  소발은 하나님께서는 하늘보다 높으시고 음부보다 깊으시며 그 도량이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욥은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측량하지 못하고, 전능하신 분을 알 수도 없다. 소발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가두시면 아무도 그를 놓아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소발은 하나님께서는 헛된 사람을 아시기 때문에 악한 일에 상관하지 않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을 다 지켜보고 계신다고 말한다. 소발은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어서 그 출생함이 들 나귀와 같다고 말한다. 소발은 지금 욥을 지각없는 들 나귀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 욥의 회개를 요청함(13-19)

  소발은 욥에게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해 손을 들며 그 손에 있는 죄악과 불의를 버리라고 충고한다. 소발은 욥이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욥의 흠을 제하시고 그에게 안전과 확신을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소발은 욥이 회개하면 얼굴을 들고 굳게 서서 두려워하지 않고, 환난이 지나가며 환난을 잊을 것이라고 충고한다. 소발은 욥이 회개할 때에 그의 생애는 대낮보다 밝게 되고, 어두움 중에 있더라도 아침 같이 되며, 소망과 안식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권한다. 소발은 욥이 회개하면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고, 많은 사람이 예물을 드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로 악한 자는 눈이 어두워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고 기운이 떨어져서 죽기를 소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소발은 욥이 만일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그가 이런 악인과 같이 멸망에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적용 질문>

1. 우리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인가? 적게 하는 편인가?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많이 하기 보다 남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2).

2. 하나님은 헛된 일을 행하는 사람을 모두 아신다. 하나님은 악한 일에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모든 일을 다 보고 계신다(11).

3. 하나님을 순종하는 방법(12-14).
 1) 마음을 바로 할 것.
 2)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 것.
 3) 지은 죄를 버리고 바로 행할 것.

4. 죄를 버리고 순종하는 자는 평강을 누린다(15-20).
 1) 지나간 날의 고통의 일을 잊게 된다.
 2) 앞날에 대해서 두려워 할 것이 없게 된다.
 3) 주위(환경)에 대해서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
 4) 마음 속에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

3-2. 욥의 대답(12-14장)

 * 친구들에 대한 욥의 거부(12:1-13:19)

 <세 친구에 대한 욥의 반박>(12:1-12)

  소발은 욥을 들 나귀에 비유했다. 그러자 욥은 "너희만 사람이라고 떠드니 너희가 없어지면 세상의 지혜도 사라지겠구나?" 라고 비난한다. 욥은 자기도 총명이 있어서 그가 한 말 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기가 친구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어 의롭고 순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한탄한다. 불의한 자들은 평안하여(욥의 세 친구와 같은) 재앙이 오지 않는다고 말하나 의인인 욥에게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었다. 욥은 하나님께서 악인은 풍성하게 하시고 강도의 집을 형통케 하시며 하나님을 진노케 한 자들을 평안히 살게 하셨다고 불평했다(1-6).

  욥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소발이 말한 것)은 공중의 새와 땅과 바다의 고기와 같은 피조물도 다 알고 있다고 말한다. 욥은 이러한 피조물들조차 욥이 재앙을 당한 것이 그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의 혼과 인생의 영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욥은 입이 식물의 맛을 분별하는 것과 같이 자기 귀로 참된 말과 거짓 말(친구들의 잘못된 변론을)을 분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욥은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으나 세 친구들은 지혜가 없다고 말한다. 욥은 친구들이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에 대해서 말하지만 자기는 그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에 대한 욥의 설명>(12:13-25)

  욥은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의 번영 뿐 아니라 심지어 전 세계도 뒤엎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지혜와 권능, 모략과 명철을 가지셨기 때문에 자연을 지배하시고 인간이 세운 것을 헐고, 사람을 가두시고 가뭄과 홍수를 일으키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물을 주지 않으면 땅이 마르고 물을 주시면 홍수가 일어난다. 욥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지배 하에 있다고 말한다. 능력과 지혜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으며 속는 자와 속이는 자가 다 하나님께 속해있다. 하나님은 모사와 재판장, 열왕, 제사장들, 권력자와 충성된 자, 늙은 자와 방백들, 그리고 강한 자들의 콧대를 꺾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사가 벌거벗겨 끌려가게 하시며, 재판장을 어리석게 만드시고 열왕을 겸손하게 만드신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과 권력이 있는 자를 넘어뜨리고 충성된 자의 말을 없애며 늙은 자의 자식을 빼앗고 방백들을 멸시하시며, 강한 자의 띠를 푸시고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만국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열국의 군주시며 그들을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백성의 지도자들의 총명을 빼앗고 그들을 정신 적인 혼돈(물 없는 거친 들)으로 유리하게 하시며, 더듬고 비틀거리게 하심으로 그들을 미련하게 하실 수도 있다.

 <세 친구에 대한 욥의 요구>(13:1-19)

  욥은 자기가 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보고 듣고 통달하였다고 말한다. 욥은 친구들이 아는 것을 자기도 알고 있으며 자기가 그들만 못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욥은 세 친구와 말하기를 원치 않고 하나님과 변론하기를 원했다. 욥은 거짓말을 지어내는 아무 소용없는 의사와 같은 세 친구들에게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지혜라고 권한다. 욥은 그들이 입을 닫고 차라리 욥의 변론에 귀를 기울이라고 부탁한다. 욥은 세 친구가 하나님을 위해 불의와 거짓을 지어 말하려고 한다고 비난한다. 욥은 친구들이 하는 변론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책망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그들이 하는 격언이 마치 재와 같이 쓸데없고, 흙으로 만든 성과 같아서 아무도 보호할 수 없는 나약한 것이라고 하였다(1-12). 욥은 친구들에게 잠잠히 있고 자기를 그대로 두어 말하게 하라고 부탁한다. 욥은 자기가 한 말로 인해 무슨 일을 당하든지 자기가 그 결과를 받겠다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실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소망은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행위를 진술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곡한 자(위선 자)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지만 욥은 자기는 이러한 위선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숨김없이 말하고 싶어한다. 욥은 자기가 의롭다고 다시 한 번 주장한다. 욥은 자기와 변론할 자가 있으면 자기는 잠잠할 것이라고 말한다(13-19).

 <욥이 자기 사정을 하나님께 아룀>(13:20-28)

  욥은 하나님께서 피고인인 자기를 협박하지(두렵게 하고 놀라게 함) 말고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인의 자격으로 만나자고 말한다. 욥은 자기에게 먼저 하나님 앞에서 말할 기회를 주시고 나서 하나님께서 그의 말에 대답해 달라고 요청한다. 욥은 하나님께 자기의 불법과 죄가 얼마나 많은 지에 대해서 알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말을 듣고도 욥의 죄를 지적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욥은 왜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우시고 그를 대적으로 여기느냐? 고 항의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이미 다 쓰러져 무기력하게 된 자기(날리는 낙엽, 마른 검불)를 놀라게 하고 추격하는 일을 원망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왜 그를 대적하고 고통을 주시며 어렸을 때에 지은 죄 값을 받게 하고, 그가 하는 일을 제한하느냐고 불평한다. 이제 욥은 자기가 하나님의 매로 인해 썩은 물건과 좀먹은 옷같이 쓸모없게 되어버렸다고 하소연한다(20-28).

 * 욥의 절망(14장)

 <인생의 짧음>(1-6)

  욥은 사람의 사는 날이 짧고 괴로움으로 가득하며 꽃 같이 쉽게 사라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히 가고있다고 말한다. 욥은 이런 하찮은 인간을 왜 하나님께서 살피고 심문하느냐? 고 원망한다. 인생은 근본적으로 더러운 것이어서 그로부터 깨끗한 것이 나올 수 없다. 욥은 하나님께서 그의 날과 달수를 정하고 그 날 동안만 살게 하셨으니 이제 자기를 죽여서 쉴 수 있게 해 달라고 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품꾼이 하루 일을 마치듯이 자기의 생명도 끝나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죽음의 무익함>(7-12)

  욥은 나무는 죽어도 소망이 있지만 인생은 죽으면 소망이 없다고 말한다. 나무는 찍혀도 다시 움이 돋고 연한 가지가 나며, 그 부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 속에서 죽어도 물 냄새를 맡고 다시 움이 돋고 가지가 나서 새로 심은 나무처럼 된다고 말한다. 욥은 그러나 사람은 죽으면 소멸되어 다시 찾을 수가 없으며, 마치 증발되어 없어진 물같이 사라져서, 하늘이 없어질 때까지  눈을 뜨지 못한다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께 주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자기를 음부에 두시고 기한을 정하셨다가 후에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기도한다. 욥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다시 살겠냐고 묻는다. 그는 그가 당하는 모든 고난이 끝나는 날을 복역 기간을 마치고 전역할 날짜를 기다리는 군인과 같이 기다린다고 말한다. 욥은 주님께서 그를 부르시면 그가 대답할 것이며 주님께서 자기 손으로 지은 인간을 아끼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주님께서는 욥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그의 죄를 낱낱이 헤아리셨으며, 그 허물을 주머니에 봉해두고 그의 죄악을 싸매어 두셨다.

 <소망이 끊어짐>(18-22)

  욥은 하나님께서 그의 소망을 완전히 끊어버렸다고 불평한다. 이것은 마치 산이 무너져 내리고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져 굴러 떨어진 것과 같다. 이것은 마치 흐르는 물이 바위에 부딪쳐 닳게 하고 홍수가 땅에 있는 모든 티끌을 쓸어버린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인간을 치시고 그의 생명을 취하시며 그의 얼굴빛을 창백하게 하고 그가 소유했던 모든 것에서 떠나게 하신다. 죽은 부모는 아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깨닫지 못하고, 비천해져도 알지 못한다. 오직 그는 무덤에 누워 벌레들이 그 살을 갉아먹기 때문에 아파하고 홀로 외톨이가 되어 슬퍼할 뿐이다.

                                   <적용 문제>

1.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욥이 하나님의 주권과 지혜에 대해서 설명한 것을 묵상해보고 하나님의 주권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이야기 해보자(12:13-25 참조).
 1) 하나님이 헐면 세울 자가 없다(14).
 2) 비를 오게 하고 그치게 하신다(15).
 3) 모사와 재판장을 어리석게 만든다(16).
 4) 왕, 제사장, 권력 있는 자를 넘어뜨리신다(18-19).
 5) 충성된 자가 봉사할 기회를 얻지 못함. 늙은 자가 지혜가 없어짐, 남을 멸시하던 자들이 멸시를 당하게 됨(20-21).
 6) 나라들을 강대하게도 하시고 멸망하게도 하심(23).
 7) 왕들의 총명을 빼앗고 헤메게 만드심(24-25).

2. 죄 없는 자를 정죄하고 공격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재와 같이 쓸모 없는 교훈이고, 금방 무너질 토성을 지키는 것과 같다(13;12 참조).

3. 욥은 살 소망이 끊어진 때에도 구원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악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진실된 자만이 그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13:15-16 참고). 이와같이 의로운 자는 살 소망이 끊어질 때에도 소망을 잃지않는다.

4. 욥은 하나님께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13:23).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하고, 죄를 안다고 해도 그것을 위해 피 흘리며 싸우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도 욥과 같이 우리의 허물과 죄를 깨닫게 해 달라고 진지하게 기도할 필요가 있다.

5. 욥은 우리가 죄인이며 의를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묘사하였는가?(14:4 참조) 욥의 이러한 발언은 우리 안에 근본적으로 뿌리 박혀 있는 원죄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전적으로 부패해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6. 죽음에 대한 욥의 견해를 읽어보고 그가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말해보자 (14:10-22). 그리고 이 견해가 성경 적인지 살펴보고 자신의 견해와 비교해 보자.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