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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열왕기(1): 열왕기 서론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08

열왕기(1): 열왕기 서론


A. 서 론(참고: 요단강에서 바벨론 물가까지; 김지찬 저. pp. 363-381)


1. 번영에서 멸망으로


  열왕기상하를 읽으면 시작과 끝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모습을 깊이 느끼게 된다. 열왕기는 다윗이 세운 광대한 나라에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전성기를 누리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러나 열왕기는 나라가 멸망하며 성전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이야기로 끝나고 있다. 열왕기는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왕위가 계승되는 이야기, 즉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견고한 왕조를 세우시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다윗의 성공적인 전쟁의 결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수리아 지역에서 최고의 강대국이 되었다. 그리고 잠사 동안 이스라엘은 고대 근동 아시아에서조차도 어느 나라 못지 않은 강대국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다. 솔로몬은 탁월한 재능으로 다윗 왕국을 견고하게 했으며, 이스라엘 역사의 전성기를 이루는 데 기여하였다. 따라서 여호와의 왕국인 이스라엘은 열방들의 시기의 대상이 되었으며, 세계 열국에서 내노라 하는 국가들과 어깨를 견주게 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번번히 이스라엘을 누르려고 했던 애굽 마저도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맺기 위해서 바로가 자기의 딸을 솔로몬과 결혼시킬 정도가 되었다. 바로들이 자기 딸을 바벨론이나 니타니의 왕들에게조차 준 일이 없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파격적인 대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윗에게 복종했던 가나안인들은 이제 솔로몬의 대역사에서 노동력으로 동원되었으며, 장대한 왕의 건축물들이 예루살렘 언덕에 우뚝 서게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단한 것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와 그의 백성들이 인근 국가의 열의있는 도움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세운 일이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건축됨으로 하늘의 왕이신 여호와께서 천상의 성전에 상응하는 지상의 성전을 갖게 되셨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 세상에는 열방을 위한 기도처가 생기게 되었다(왕상 8:41-43). 그러나 이렇게 막강하던 제국은 불과 1세기도 지나지 않아서 남북으로 나뉘어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주전 72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귀족과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잡혀가고 말았다(왕하 17:23). 남반 유다 왕국은 이보다는 형편이 좀 더 나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국 남 왕국 유다 역시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었으며,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말았다. 이로 인해 열왕기서는 남 유다왕국의  귀족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왕하 25:11-21). 이와 같이 열왕기서의 전반적인 흐름은 평화와 번영으로 시작해서, 멸망으로 끝나는 비극적인 패턴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비극의 역사는 수천 년의 시공간적 간격을 두고 있는 현대 독자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러한 비극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일이 마치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과 고통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2. 바벨론 물가에서

 2-1. 디아스포라(흩어진) 공동체

  예루살렘과 이스라엘과 유다 국가의 물락, 그리고 바벨론의 포로 경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대파국이며 동시에 총체적인 재난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과, 팔레스타인에 남아 있던 자들, 그리고 자발적으로 외국으로 도피한 사람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1) 팔레스타인에 남아 있던 자들

  예루살렘과 많은 성읍들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파괴되고 초토화되고 말았다. 그리고 유다의 남부 지역의 영토는 에돔인들에 의해 잠식당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포로 초기에 심각한 신략 부족 현상과 인구 감소의 현상이 있었다(애 1:19, 2:19(하)-20, 4:4,10). 이로 인해 기존의 기득권 계층조차도 음식 부족으로 거리를 헤메고 다녔다(애 4:5, 5:8,12).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에는 반란을 일으킬 수 없는 농부들만 남게 되었다. 그들은 바벨론에 의해 후원되는 농업프로젝트에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땅과 그 소출은 그 곳을 정복한 외국인들이 주관했을 것이다(왕하 25:12, 애 5:2,4).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은 더 이상 유대인들의 물리적 본거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2) 자발적으로 애굽 등의 외국으로 도피한 공동체

  죽음과 포로를 간신히 면했던 유대인들은 자발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살 길을 찾아 떠나갔다. 이로 인해 디아스포라의 거대한 이동이 시작되게 되었다. 그들은 가까운 애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그 곳에는 포로 전부터 용병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사 11:11, 왕하 25:26). 포로기에 유대인들은 믹돌과 다바네스와 논과 바드로스 지방에 살았는데(렘 44:1), 엘레판틴 파피루스에는 이러한 유대인 공동체가 주전 525년(캄비세스가 이집트를 정복하기 전)부터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출애굽을 통해 애굽을 떠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해서 다시 애굽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이는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일어난 "역출애굽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애굽으로 돌아간 디아스포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렘 44:26-28).

 3) 포로가 되어 잡혀간 자들의 세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다.

  가장 큰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간 사람들이었다.  세 차례에 의해 끌려간 포로의 수는 4,600명이었다(렘 52:28-30). 만일 이 숫자가 성인 남자의 수를 계산한 것이었다면, 포로로 끌려간 모든 사람들은 15,000명을 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은 강제 수용소에 감금되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강제 노동을 하며 살지는 않았다. 물론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들은 투옥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포로인들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노예로 살거나, 인종이나 종교 때문에 박해를 받은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경작할 땅과 집터를 제공받고, 왕에게 노역과 조세와 군역으로 임차료를 지불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바벨로 포로들은 다양한 상업 활동에 종사하여 상단한 자유와 경제적인 풍요를 누린 것으로 보인다. 후기에 바벨론으로 간 유대인들은 부를 축적하고(렘 29:5), 노예를 소유했으며(스 2:65), 부자가 된 사람도 많이 있었다(스 1:6, 2:68-69). 그러나 남의 나라에 포로가 되어 잡혀 온 유대 포로민들은 심리적, 영적으로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일평생 이스라엘 안에 살면서 자신들만이 유일한 선민이며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이방인 민족에 의해 예루살렘과 성전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다. 그들은 세계 대제국인 바벨론의 중심부에 들어와 살면서 엄청난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그들은 그 곳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제국과, 솔로몬의 부와는 비교도 안되는 엄청난 부, 세계 최고의군사력, 그리고 거대한 신전과 신상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바벨론의 신들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전능하고 강한 것처럼 보이는 시험을 받았다.


 
2-2. 삶의 정황: 낙담과 혼미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포로기 당시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 역시 낙심과 혼미 가운데 있었다. 일부 유대인들은 "조상들이 죄를 지었는데 왜 우리가 고난을 당해야 하느냐?"고 불평하였다(애 5:7, 겔 18:2 참조). 따라서 당시의 시대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는 시 79편의 기자는 이렇게 애원하고 있다. "우리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여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시 79:8)"  이들은 시지어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겔 18:2)"는 속담을 만들어내기까지 하였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어서 아들의 이가 시다는 말이 유행했다는 것은 그들이 낙심과 혼돈 속에서 크게 방황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모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롭고 필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 저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곤고케 하셨도다(애 1:5)." 그러나 비록 이들이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들 역시 죄책감에 눌려 희망을 잃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중에서 쇠패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겔 33:10)."
 

 2-3. 바벨론 강변의 애가

  바벨론 사람들은 상실감에 빠져있는 유대 포로들을 조롱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포로들에게 시온 성은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는 노래를 부르라고 지시했다. 이로 인해 유대 포로들은 바벨론 강변에 앉아서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시 137:1-4)" 이방 땅 바벨론 강변에 앉은 포로민들은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역사는 유규히 흘러가건만, 이들은 예전처럼 수금을 연주하면서 시온의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대신 히브리 노예들은 흐르는 강물 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예루살렘을 잊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노래를 불렀다. 장차 사로잡아 온 바벨론의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복수의 날을 꿈꾸면서 노래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들어보자.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찐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찌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네 어린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시 137:5-9)."


 2-4. 썩은 무화과의 자랑

  그러나 그들을 괴롭힌 것은 단지 바벨론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예루살렘 멸망 직전에 팔레스타인에 남아 있던 자들은 주전 597년에 1차 포로로 잡혀간 자들보다 자기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포로가 되지 않았다고 자랑했다(겔 11:15, 33:24). "인자야 이 이스라엘 황무한 땅에 거한 자들이 말하여 이르기를, 아브라함은 오직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나니, 우리가 중다한즉 더욱 이 땅으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 되느니라(겔 33:24)."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생각이 옳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두 가지 무화과 나무 광주리를 보여주셨다. 그 중에 하나는 좋은 과일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썩은 과일로 채워져 있었다.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좋은 과일이며, 팔레스타인에 남은 자들이 썩은 과일이라고 경고하셨다(렘 24:10). 서로 헐뜯고 비방할만큼 유대인들의 영적 상황은 혼미 속에 빠져 있었다.


 
2-5. 신학적 위기

  국가의 멸망으로 인해 제기된 신학적 문제는 정말 심각한 것이었다. 국가와 성전의 몰락은 엄청난 환멸을 가져왔다. 역사는 여호와의 극적인 개입과 여호와의 나라의 확고한 승리로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 군대에 의해 여호와의 나라가 멸망하는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그렇다면 말둑이 여호와보다 강한 것이 아닌가? 한 민족의 승리를 그 민족이 섬기는 신의 승리로 간주하던 고대 근동의 배경에서 이러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로 인해 여호와에 대한 충성은 완전히 밑바닥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일부 유대인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 선조들이 하늘의 황제에게 분향할 때에는 일이 잘 풀렸었다. 그러나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서 그들을 버리자 우리에게 재난이 임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시 혼합주의로 나가야 한다(렘 44:15-19 참조). 실제로 애굽으로 간 유대인들은 다른 신들에게 분향을 했으며, 선조들의 악행과 이전 왕들의 잘못을 잊어버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법을 거역했다(렘 44:8-10). 실제로 공개적으로 "우리가 목석을 숭배하리라"고 선언하기도 했다(겔 20:32). 또한 그들은 음식 규정을 어기고, 우상을 섬겼으며, 살인과 간음을 자행했다. 이들은 선지자에게 문의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말을 실천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연예인처럼 취급했다(겔 33:25-26, 31-32).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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