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장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ㅇ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사데는 두아디라 남동 약 48km 지점에 위치
한 도시로 현재 터키인 루디아의 수도였다. 이 도시는 상업적으로번창한 도시였다. 특
히 염직 공업과 양털 염색, 금모래가 유명하여서 사치와 부의 도시로 전략하였고 무
역의 요충지가 되었다. 군사적인 면에서는 성채가 남쪽만을 제외하고 모두 암벽으로
되어 있어 난공 불락의 성을 이루고 있었기에 상당히 안일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사데 사람들은 그 안일함으로 인해 두 번 정복을 당하였다. B.C. 6세기 고레스(Cyrus)
의 공격과 약 200년 후 안티오쿠스(Antiochus)의 침략이 그것이다. 종교적으로 사데는
시벧리(Cybele) 여신을 섬겼고 황제 숭배가 극심하였다. 한편 사데 교회의 기원은 분
명치 않으나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요한의 전도로 세워졌고 2세기에 이르러 변증가
며 주석가로 유명했던 멜리토(Melito)가 이 교회의 감독이 됨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
다고 한다. 그러나 물질적 부요로 말미암아 내적인 피폐로 안일과 부도덕의 모습이 교
회에 까지 침투하였다.
ㅇ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 본문은 사데 교회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령을 가리키며(1:4,16,20, Lenski,
Morris, 1:4 주석 참조), '일곱 별'은 교회를 보호하고 책임져야 하는 천사를 가리킨
다(1:20 주석 참조). 한편 '가진'은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천사의 역할을 주관하심을
시사한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하시는 주된 일은 내적인 생명을 주어 하나님의 사람
으로 구원을 확증케 하는 일이다(요14:16).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부여하고 살리시는
성령과 교회를 지키는 천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제
로는 '죽었다'는 선언을 받은 사데 교회의 영적인 상태와 연관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권고를 받아들여 회개한다면 언제든지 죽은 사데 교회를 다시 살릴 수 있으며,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는 소수의 사데 교인을 지키고 계심을 시사한다(4절, Mounce, M-
offatt, Ramsay, Ford).
ㅇ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 사데 교
회의 '행위'가 사데 교회의 과거 업적을 말하는지 아니면 과거의 명성만 주장한 채 현
재는 생명을 상실한 모습을 말하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다음 절에서 '온전한 것이 없
다'는 선언으로 보아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Johnson). 실지로 사데 교회는 일곱 교회
중 이단의 특별한 위협이나 외부의 핍박이 가장 적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교적 문
화나 주변 환경과 타합함으로 생명력을 잃어 버렸다. 사데 교회가 생명력을 상실한 사
실을 단적으로 묘사한 '죽었다'는 표현은 사데에서 약 11km 떨어진 언덕같은 수많은
묘지를 암시한다. 이러한 표현이 종종 전통만을 고집하던 유대인들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Kiddle, Moffatt) 사데 교회가 외적인 형식과 모습은 갖추었으
나 신령한 모습은 상실했음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ㅇ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 '일깨워'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누 그레고논'은 현재 미완료 시상과 현재 능동
태 분사가 결합되어 계속적인 경성(警醒)을 시사한다(Moffatt, Beck, Robertson). 이
는 사데 지역이 난공 불락의 천연 요새로 되어 있다는 사실로 인해 안일에 빠져 두번
씩이나 점령을 당했던 사데 지역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경고가 되었을 것이다(Mounce,
Lenski). 그리스도께서는 '일깨워'라는 권면을 사데 교회에 하심으로 회개할 것을 촉
구함과(3절) 동시에 사데 교회가 비록 죽음 직전에 있으나 완전한 생명력을 상실한 것
이 아님을 암시한다(Weymount). '죽게 된 것을'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에메론 아포다
네인'은 미완료 능동태 시상으로 사데 교회가
부분적으로 살아있음을 보여준다(Swete). 한편 '굳게 하라'의 헬라어 '스테리손'
은 부정 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아직 남아있는 영적 생명을 견고히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시사한다.
ㅇ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 '온전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플레로메나'는 '충만함'을 나타내는 헬라어
'플레로오'의 완료 수동태 분사로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완전함이라
기 보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의 온전함을 말한다. 이것은 비록 사데 교회
가 외적으로 보기에 풍성하며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시기
에 허망하였음을 시사한다(Greijdanus).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ㅇ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 본
문은 사데 교회를 향한 세 가지 명령이다. (1)생각하고.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므네
모뉴에'는 '염두에 두다'란 의미의 '므네모뉴오'
의 현재 명령형으로 '항상 상태를 되돌아 보라'는 뜻이다(12:5). (2)지키
어.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레이' 역시 '유지하다'는 의미를 가진 헬
라어 '테레오'의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이미 받았고 들었던 복음을
굳게 붙잡아야 함을 시사한다. (3)회개하라. 이것의 헬라어 '메타노에손'
은 '돌이키다'는 의미를 가진 '메타노에오'의 부정
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단번에 결정적으로 죄에서 돌이킬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단
회적이며 시급한 돌이킴에 대한 명령은 임박한 종말에 대한 심판을 내다보며 죄로 부
패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함을 나타낸다(Behm).
ㅇ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내가 알지
못하리라. - 본문은 마24:34과 살전5:2을 반영한다.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권면했
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죄 속에 머물러 생명력을 상실한다면 마치 도적이 밤에
들이닥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예기치 못할 때에 오셔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
다. 한편 '알지 못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 메 그노스'는
제2부정 과거 능동태 가정법을 동반한 이중 부정으로 강조적이다.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ㅇ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 본문은 대부분의
사데 교인들이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으나 그 가운데 극소수의 예외가 있었음을 나타낸
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단순한 도덕적
순결로 해석한다(Moffatt). (2)혹자는 성적인 불결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으로 해석한
다(Zahn). (3)혹자는 구원받은 자가 사회적인 풍조와 혼합에 물들지 않는 기독교적 성
결로 해석한다(고후7:1, Lenski, Johnson).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
하다. 당시의 사데 교회가 처한 입장은 단순히 도덕적인 타락이나 성적인 범죄와 같은
일부분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내적이고 기독교적인 문제였으며, '옷이
더럽다'는 것은 기독교적 순결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기 때문이다(고전8:7; 고후11:2;
유1:23). 이러한 옷에 대한 예는 양모 산업이 발달하여 옷에 대해 관심이 많던 사데
사람들에게는 매우 적절한 것이다. 한편 '몇 명'의 헬라어는 '올리가 오노마타'
로 문자적으로 '몇 이름들'이다(행1:15; 계11:13). 이는 비
록 소수이기는 하나 하나님께 기억된 바 됨을 시사한다(Mounce, Ironside).
ㅇ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기다리니. - '흰 옷'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
는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는 의'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Plummer). (2)혹자는 '최
후에 그리스도인이 하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광과 성결'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Al-
ford). (3)혹자는 '죄나 이교도적인 혼합에서 분리시켜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enski). 세 가지 견해 중 첫번째와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사
데 교회의 교인들은 외적인 겉모습에는 관심이 많았으나 그리스도에 대한 내적 정결과
이교(異敎)와의 분리된 삶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기 때문이다(Johnson). 한편 '함께
다니리니'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이 그와 함께 교제함을 표현하는 것으
로(창5:22; 요:6,7) 단순히 현재적인 교제는 물론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나눌 교제를
시사한다(Ladd, Greijdanus).
ㅇ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 '합당한'은 종말에 있게 될 심판의 기준에 타당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2:7,17,27,28)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속죄
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누리는것을 시사한다(Clarke, Morris).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ㅇ본절은 사데 교인들 가운데서 믿음으로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세 가지 약속이
다.
ㅇ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 '이기는' 것에 대해서는 사데 교회
의 경우 다른 소아시아의 교회와는 달리 외적 핍박이나 특별한 이단 그리고 신비주의
가 언급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문맥과 사데 교회가 처한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세상의 부패나 타협, 안일함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한편 승
리자에게 주어질 첫번째 약속은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이다. '흰 옷을 입는다'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희게 되었으며(7:14)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과의, 영광을 닮아(18절; 6:11; 7:9,13; 19:14) 하나님 나라에게의 궁극적인 승
리를 약속받음을 시사한다(4절 주석 참조, Ladd,Johnson).
ㅇ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 '생명책'은 신,구약 성경에
서 자주 언급된다(13:8; 17:8; 20:12,15; 21:27; 출32:32; 시69:28; 눅10:20; 빌4:3).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시민권을 소유한 자들을 의미하였으며(출
32:32,33), 신약성경에서는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구별하는 의미로 쓰여 그리스도
의 피로 의로워진 자들은 영생을 소유하고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13:8; 17:8; 20:12,15; 21:27; 눅10:20; 빌4:3, Rosh). 그리스도께서 승리자에게 '생
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신 것은 승리자를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게서 결코 분리할 수 없으며(롬8:38,39)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께 의존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시민권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시사한다(Johnson, Beasley-
Murray).
ㅇ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본문은 승리자에게 주
어지는 세번째 약속으로 마10:32을 반영한다(막8:38; 눅9:26; 12:8). 이것은 보다 적
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공적(公的)으로 시인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시인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몰로게소'는 법정에서 증
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자신을 의지하여 승리한 자들의 이
름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증언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임을 확인하실
것을 시사한다.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ㅇ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이에 대하여는 2:7
주석을 참조하라.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ㅇ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빌라델비아'는 사데 동남쪽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고원 도시로 포도 생산지로 유명하였다. 그곳은 서머나와 루디아 왕
국으로부터 동방으로 가기 위해 제일 먼저 들러야 하는 도시로 '동방의 관문'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를 누렸으나 지진이
잦아 피해가 많았다. 또한 많은 신전과 종교적 행사가 있어 A.D.5세기에는 '작은 아
테네'로 불렸다. 그러나 빌라델비아는 이교 신전과 종교 행사가 많고 2,3장에 나타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위치한 지역 중 가장 짧은 역사를 기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B. C. 159-138) 아시아가 이슬람 교도들에 의해 짓밟힐 때 유일한 기독교의 보루(堡
壘)로서 신앙적인 면에서 가장 칭찬을 받은 지역이다(Lenski, Johnson). 한편 빌라델
비아 교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단지 암미아(Ammia)라는 여선지자가
이 교회를 관할하면서(A.D. 100-160) 큰 부흥을 이룬 듯하다. 이 교회의 성장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개종하는 역사도 있었으나 반면에 교회를 가장 반대하는 자들 역시
유대인들이었다.
ㅇ거룩하고 진실하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하기오스, 호 알레디노스'
는 문자적으로 '거룩한 자, 진실한 자'를 의미한다.
'호 하기오스'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 사용되었으나(사1:4; 5:19,24;
10:17,20; 12:6; 렘51:5; 겔39:7; 호11:9; 합3:3)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
되어 그의 신성과 메시야성을 나타내고 있다(막1:24; 요6:39; 행2:27; 13:35; 히7:26)
또한 '호 알레디노스'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온전하며 충성된 자. 그리스도께
서는 온전한 충성으로 메시야적 직무를 수행하신 완전한 분이심을 시사한다(Hort) (2)
진실한 자. 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칭호로 사용되었으나(사65:16)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참된 메시야로서 약속을 반
드시 성취하는 분이시므로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정하는 유대인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
으로 언급되었다(Mounce, Ladd).
ㅇ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 본문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22:15-25을 반영한다. 이사야서에서
국고를 맡고 있는 셉나 대신에 엘리야김이 다윗의 집 열쇠를 맡아 다윗의 집 전체를
관리하는 권세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 본문에서 '다윗의 열쇠'는 다윗의 집 즉 하나
님 나라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로서 하나님 나라의 특성인 영생의 수여권을 시사한다
(Ladd, Beasley-Murray). 엘리야김이 다윗의 집을 관리하는 열쇠를 소유한 바와 같이
스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열쇠를 소유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
어갈 자와 들어갈 수 없는 자를 결정하신다(Johnson). 한편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는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에 대한 해석으로 당시 빌라
델비아의 정황을 반영한다. 당시 빌라델비아에 많이 거주하였던 유대인들은 오직 자신
들만이 다윗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 살던 빌
라델비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진이'라고 계시한 것은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선민 의식에 대한 반론이며, 그리스도 자신이 천국의 주권을 가
진 메시야이심을 강조함으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위로하신 것이다(1:18; 마28:18; 엡
1:22; 히3:6).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ㅇ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 '열린
문'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남북으로 로마와 소아시아의 수도 에베소
를 연결하는 빌라델비아의 지리적위치 때문에 이를 '선교의 문'으로 해석한다(Ramsay,
Swete, Alford, Clarke, Charles, Holtzmann). (2)혹자는 '그리스도의 문'이나, '기도
나 순교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집접 나아가는 길'로 해석한다(Kiddle, Moffatt). (3)혹
자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구원의 문'으로 해석한다(Ladd, Zahn, Rist, Beckwith). 이
가운데서 세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12절과 본서의 종말론적(終末論
的) 성격으로 볼 때 그리스도께서 열어주신 구원의 문을 닫을 사람이 없는 것으로 해
석되기 때문이다.
ㅇ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
치 아니하였도다.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칭찬하신 내용이다.
'적은 능력'에 해당하는 헬라어 '미크란 에케이스 뒤나민'
은 '능력이 거의 없다'는 의미로 그 지역에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의
신분이나 지위 등의 외적 능력이 변변치 못함을 나타낸다. 한편 '지키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에테레사스'는 반의적인 강조 표현으로 문
자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켰다'를 의미한다. 이는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유대인
들이 가하는 시련과 온갖 유혹 가운데서도(9절) 진리의 편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의 말
씀대로 살았음을 시사한다.
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ㅇ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
빌라델비아 교회가 처한 문제는 외적인 황제 숭배나 핍박같은 것도 아니었고 부도덕하
게 혼합주의로 이끌어 가는 이세벧주의나 니골라당 같은 내적 문제도 아니었다. 그들
이 처한 위기는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핍박하
는 유대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은 혈통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고, 자신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였다고 주장하나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정함으로
사단을 추종하는 자들 즉 '사단의 회'가 되었다. 그들은 진정한 유대인이 혈통과 같은
외적인 요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루어지는 이
면적(裏面的)인 것임을 망각하였다(롬2:28,29).
ㅇ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
게 하리라. - 유대인들은 본래 이방인들이 자신들에게 찾아와 굴복한다고 믿고 있다
(사45:14; 60:14).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믿는 바와는
반대로 유대인들이 내면적인 유대인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찾아와 굴복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이것에 대해서 혹자는 유대인들의 회심이라고 해석하나(롬9-11장, Ladd)
문맥상 본문은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부인하는 '사단의 회'인 유대인들을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심을 나타낸다(Johnson, Mounce). 그리스도께서는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인한 혈
통적 유대인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셔서, 이면적이고 영적인 유대인들인 그리스도인들
에게 굴복케 하심으로 메시야이신 당신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드러내신
다.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ㅇ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 '나의 인내의 말씀'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
이다. (1)혹자는 '인내함으로 그리스도의 마지막 재림을 기다리라'는 명령으로 해석한
다(눅21:19; 히10:36, Lohmeyer, Vincent, Zahn). (2)혹자는 '인내로써 죄많은 세상의
모순을 극복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인내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한다(살후3:5; 히12:3,
Johnson, Charles, Ladd, Alford, Moffatt).
ㅇ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 '시험의 때'에 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혹자는 빌라델비아 지역에서 교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개인이 혹은 교회 공동체가 겪는 고통으로 해석한다(Payne). (2)혹자는 그리스도
의 재림 시에 비그리스도인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add, Mo-
unce, John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시험의 때'에 대한 이러한 해석
은 '면하게 하리니'와 상관 관계를 형성하여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면하
게 하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레소 에크'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요17:15의 용례를 들어 전치사 '에크'('...중에서 밖으
로')가 사용된 것은 환난 가운데서 보호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면서 본문은 빌라
델비아 교인들이 현재 처하고 있는 고통에서 보호받게 될 것을 말한다고 해석한다
(Charles). (2)혹자는 약1:27의 용례를 들어 전치사 '에크'를 '아포'(* , '...
로부터')의 의미로 보아 환난에서 떠나 보호를 받는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이는 장
차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환난 그 자체에서 제외된다는 입장으로 해석한다(Moffatt,
Rist). 이 드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시험의 때'가 그리스도의 재
림시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 또는 심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Johnson). 하나님께 순종
하며 그 말씀을 따르고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사단의 역사로 인한 고난은 받을
지라도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는 면하게 될 것이다.
ㅇ이는 장차 온 세상이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 본문은 앞서 언급
된 '시험의 때'에 대한 보충문이다. 본서에서 '땅에 거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부인
하고 교회를 대적한 비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6:10; 8:13; 11:10; 13:8,14; 17:8).
그러기에 본절의 '시험할 때'는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 모두가 당하는 일반적인
환난의 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비그리스도인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의 때를 가리
킨다.
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ㅇ내가 속히 임하리니. - 본문은 본서의 중심 사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된다.
(1)심판의 측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악한 자들에 대한 공의의 심판을 목적으로 한다
(마24:48-51; 살후1:7-9). 이는 에베소(2:5), 버가모(2:16) 및 사데 교회(3절)에 임하
신 모습이다. (2)축복의 측면. 본문에서는 심판의 경고가 아닌 충성된 빌라델비아 교
인들을 향한 축복의 재림의 약속을 나타낸다(2:16; 22:7,12,20, Johnson).
ㅇ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 '굳게 잡아'
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테이'는 현재 명령형 시제로 이제까지 빌
라델비아 교회가 지켜온 믿음을 더욱 지속적으로 공고히 해야 함을 시사한다. 한편
'면류관'은 경기장에서 승리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말은 경기장에서 선수가 상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
는 것과 마찬가지로(히12:1-4) 빌라델비아 교인들도 지속적으로 영적 무장을 통해 환
난과 핍박 속에서도 인내의 말씀을 지켜 승리해야 함을 시사한다('면류관'에 대해서는
2:10 주석을 참조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ㅇ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
리라. - 본문은 당시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성전 기둥'을 비유로 하고
있다. 당시 빌라델비아는 잦은 지진으로 건물들이 폐허가 되었으나 파괴된 건물 가운
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신전의 돌 기둥뿐이었다(Ramsay, Johnson). 지진과 폐허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신전 기둥을 본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하나님이 거주하시
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은 승리자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하고
요동치 않는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렘1:18; 딤전3:15, Charles,Mounce,
Ladd).
ㅇ내가...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 본문은 빌라델비아 교인들 중 승리자에게
주어진 두번째 약속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 종류의 이름을 부여할 것이라고 약속한
다. 이름을 부여받는 것은 당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있어서 친숙한 것이었다. 빌라
델비아는 지진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을 때 티베리우스(Tiberius)의 도움으로 재건된
후 '네오가이사랴'(Neocaesarea)라는 이름을 부여받았고 후에 베스파시안(Vespasian)
황제의 성을 따라 '플라비아'(Flavia)로 개명되었다(A.D. 70-79). 이러한 경험을 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름을 부여하신다고 약속하신 것은 중요한 의미
를 갖는다.
(1)하나님의 이름. -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이름이 주어졌다(민
6:27).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시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승리
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였
음을 나타낸다(22:4, Ladd, Morris, Johnson).
(2)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 -
하나님의 성인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승리한 자들이 하나님의 새 예
루살렘의 시민권을 소유함을 시사한다(Mounce, Ladd, Morris).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한 것으로(빌3:20) 그때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주할 것임을 암시한다.
(3)나의 새 이름. - 그리스도의 새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
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새 이름, 곧 다른 모든 권세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절대적인
권력과 인격 그리고 성품을 나타내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 이긴자들에게 주어짐
을 의미한다(19:12, Mounce, Morris, Beasley-Murray, Ladd) 다른 하나는 구속을 통해
서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음을 나타낸다(사62:6; 65:15, Johnson).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ㅇ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2:7절 주석을 참조
하라.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ㅇ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비아 동남쪽 약
72km,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약 160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서 라이커스(Lycus) 계곡에
있는 여러 도시들 중 하나이다. 또한 맞은 편으로 10km 지점에는 히에라볼리가 약
14km 지점에 골로새가 위치해 있었는데 이 세 곳은 바울 서신에서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다(골4:13,16). 이곳의 특징은 교통의 요충지였을 뿐만 아니라 모직물 공업의 중
심지였으며 '브루기아 가루'마 알려진 안약과 의학교가 있었다. 또한 활발한 금융
거래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이곳은 물 사정이 좋지 않아 히에라볼리와 골
로새로부터 항상 수로를 이용해 물을 공급받아야 했다. 한편 라오디게아 교회는 에바
브라가 설립하였으며(골4:12,13) 골로새 교회와 함께 바울이 지도하였다.
ㅇ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 '아멘이시요'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아
멘'은 문자적으로 '아멘인 자'를 의미하며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칭호로 나타난다(사65:16). 이것은 70인역에서 '톤 데온 톤 알레디논'
('진실한 하나님')으로 나타나면 '진리의 하나님'(the God
of the truth, RSV), '이름이 아멘이신 하나님'(the God whose name is Amen, NEB)으
로 번역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진리이시며, 신실하심을 시사한다. 본문에서는 이러
한 칭호가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실하지 못함에 대한 그리스도
의 신실성이 부각되고 있다(1:5,6; 고후1:20, Mounce). 한편 '충성되고 참된 증인'은
'아멘이시요'와 동일한 사상을 내포하는 칭호로(Ford, Beasley-Murray, Morris) 그리
스도께서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증거하시기 위해 온전한 순종과
충성으로 구약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셨음을 시사한다(1:5,9;2:13;고후1:20, Johnson).
ㅇ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의 헬
라어 '헤 아르케 테스 크티세오스 투 데우'
에서 '아르케'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의 최고(最高)의 근원을 나타낸다.
이 칭호는 그리스도의 또 다른 칭호 즉 '알파와 오메가'에서 '알파'에 해당되는 것으
로(Beasley-Murray) 그리스도께서 피조물 가운데 처음이란 의미가 아니라 창조자이며
창조의 근본이심을 나타낸다(잠8:22ff.; 요1:1-3; 고전1:30; 골1:15; 히1:2,3,
Moffatt, Charles, Lightfoot). 또한 이 칭호는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을 시사한
다(Moffatt).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ㅇ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
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열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영
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이 없음을 책망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차다'는 것은 라오디게아
의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약 16km 떨어진 골로새로부터 냉수를 공급받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으로 그들이 불신의 상태로 세상에 속하였음을 시사한다. '더웁다'는 것은 인접
한 히에라볼리의 온천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신앙을 위한 열정을 비유한다. 그러나 라
오디게아 교인들은 '차지도 덥지도' 즉 그리스도를 대적하며 세상과 타협하지도, 혹은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소유하지도 않은 상태로 미지근하였다(16절). 즉 그들
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에 대해 무관심하고, 자만하는 자들이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차든지 덥든지'하라는 요구는 양자 중 반드시 하나를 선택하라는 의미라
기보다 '차든지'와 '덥든지'의 중간 상태를 택하는 그들의 '미지근한 상태'에 대한 신
랄한 책망이다(Johnson).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ㅇ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
여 내치리라. - '미지근하여'라는 언급은 '차다', '더웁다'는 말과 관련되어 라오디게
아 교회의 영적 상태가 무익하고 무력함을 나타낸다(Beckwith, Green, Rudwick). 라오
디게아 사람들은 히에라볼리로부터 끌어온 온천수와 골로새로부터 수로를 통해 가져온
찬물을 공급받는 과정에서 물이 미지근하게 됨으로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여
마시는 자마다 토하여 버렸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미지근한 물을 토해 버리듯이 그
리스도께서도 미지근한 영적 상태에 머물러 있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거부하고 버리
겠다고 책망하신다.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ㅇ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 '부요하여'에 해당
하는 헬라어 '페플루테카'는 현재 완료형으로 이제 완전히
부요한 상태에 도달했다는 의미이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스스로가 부요하여 더이상
바랄 것이나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실질적으로 그들은 상당히 부요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는 매우 빈곤하고 곤고하다. 이러한 모습은 서머나 교회와 대
조를 이룬다. 서머나 교회는 외적으로 가난하였으나 영적으로 부요하였던 반면에 라오
디게아 교회는 그 반대였다.
ㅇ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실상을 묘사한 것으로 두 부분으로 나뉜다(Mounce,
Johnson). (1)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 '곤고한 것'은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약탈되
거나 파괴당했을 경우를 묘사하는 것으로(시137:8; 롬7:24) 그 어떤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는 상태를 나타낸다. 이러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영적 상태는 물질적 부와 정
반대로 가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Lenski, Moffatt, Morris). (2)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 '가난'은 라오디게아인들이 금융업이 발달할 정도로 물질적인 부를
축척한 것과는 달리 영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섬길 수 없는 상태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
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며(2:9), '눈먼 것'은 라오디게아에 특수한 안약과
의학교가 잇었던 것과는 달리 영적 시각 장애자로 분별력을 잃은 것을 의미하고, '벌
거벗은 것'은 라오디게아의 검정색 양모가 유명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이 영적으로 벗
은 모습임을 시사한다(Mounce).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부요하다고 착각하여 전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Johnson).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ㅇ본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앞절과 동일한 방법으로 라오디게아에서 유명하고 풍부했
던 것을 예로 들어 그들의 영적 무관심에 대해 권면하고 있다.
ㅇ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 그리스도께서
는 영적으로 가난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불로 연단한 금, 곧 시련을 통한 믿음을
사서 영적으로 부요해지라고 권면한다(사55:1, Johnson).
ㅇ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 라오디게아는 광택있는 검은 양모 생산지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는 양모가 아닌 '흰 옷' 곧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는 의의 옷을 입고 영적으로 수
치스럽게 벌거벗은 것을 가리라고 권면하신다.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역의 특산물
인 안약을 사서 치유하라고 권면함으로 그들의 영적 시각 장애를 치유하고 자신을 온
전히 바라보라고 권면하신다(골1:27; 2:3).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ㅇ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 하나님의 사랑은 주로 '아가파
오'('사랑하다')로 표현되는데 본절의 '사랑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는 '필로'로 되어있다. 이러한 문자적인 차이로 인해서 혹자는 '아가파
오'가 하나님께서 은혜로 사랑하시는 모습을 나타내는 반면에 '필로'는 그리스도의 판
단으로 사랑하심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engel). 그러나 필로는 '아가파오'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Barclay, Charles). 왜냐하면 신약성경에서
도 자주 '필로'와 '아가파오'가 같은 뜻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요5:20; 16:27). 한편
'책망'의 헬라어 '엘렝코'는 원래 '낮춤'을 의미하는 말로 '말로써
교훈하고 다스리는 것'을 나타내며(눅3:19; 딤전5:20), '징계'는 책망이 구체적인 형
태로 나타나는 행위를 의미한다(히12:5,7).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의 잘못을
방관(傍觀)하지 않으시며 사랑어린 책망과 징계로 인도하신다.
ㅇ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 '열심을 내라'의 헬라어 '젤류에'
는 현재 명령형이며, '회개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노에손'
은 부정 과거 시상이다. 이 두 개의 명령문의 시상 변화는 '단번에
결정적으로 회개하고 지속적으로 열심을 내라'는 의미를 갖는다(Moffatt, Rebertson).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ㅇ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 '서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스테카'
는 현재 완료 시상으로 이미 오셔서 준비가 완료된 상태를 의미하며
'두드리노니'의 헬라어 '크루오'는 현재 시상으로 지금도 계속해서 두
드리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것은 죄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인내와 사랑
을 알리시는 모습으로 불신앙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초청과 약속의 말씀이다(Mounce,
Trench). 한편 '문'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
암는 새로운 세상으로 해석한다(마24:33; 약5:9, Swete, Beckwith). (2)혹자는 라오디
게아 교인들의 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Mounce, John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
가 타당하다. 앞절에서 현재 회개하고 열심을 내라고 권면하였기 때문에 본문의 '문'
은 현재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제를 나누어야 하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마음을 지칭
한다(Ladd).
ㅇ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회개 촉구의 권면을
듣고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의 결과를 나타낸다. '먹고'의 헬라어 '데이프네
소'는 교제를 나누며 즐기는 식사를 가리킨다(Morris, Ladd,
Johnson, Mounce).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할 경우 그리스도께
서는 그들 안에 거하셔서 그들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시며 친밀한 관계를 이루신다. 그
리스도와 하나님은 현재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과 성령을 통해 교제하신다(요14:23).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ㅇ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
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 본문은 승리자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으심은 그의 왕적 지위를 시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에 앉음으로 왕적인 지위를 누리시는 것처럼 승리자에게도 그와 동일하게 권세를
허락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할 것에 대한 약
속이다(1:6,9; 2:26,27; 5:10; 20:4-6; 눅22:28-30; 롬8:17; 딤후 2:12). 한편 '보좌
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토 드로노'에는 '위에'를 의
미하는 전치사 '에피'가 아니라, '안에'를 의미하는 '엔'이 사용
되어 단순히 보좌에 앉는 것뿐 아니라 그 이상의 명예와 권세를 주시며 참여하게 하시
겠다는 약속을 시사한다(Plummer). 이렇게 그리스도의 권면을 받아들이고 회개하여 그
리스도와 교제를 나누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적인 통치를 공유
하게 될 것이다.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ㅇ2:7 주석을 참조하라.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ㅇ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사데는 두아디라 남동 약 48km 지점에 위치
한 도시로 현재 터키인 루디아의 수도였다. 이 도시는 상업적으로번창한 도시였다. 특
히 염직 공업과 양털 염색, 금모래가 유명하여서 사치와 부의 도시로 전략하였고 무
역의 요충지가 되었다. 군사적인 면에서는 성채가 남쪽만을 제외하고 모두 암벽으로
되어 있어 난공 불락의 성을 이루고 있었기에 상당히 안일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사데 사람들은 그 안일함으로 인해 두 번 정복을 당하였다. B.C. 6세기 고레스(Cyrus)
의 공격과 약 200년 후 안티오쿠스(Antiochus)의 침략이 그것이다. 종교적으로 사데는
시벧리(Cybele) 여신을 섬겼고 황제 숭배가 극심하였다. 한편 사데 교회의 기원은 분
명치 않으나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요한의 전도로 세워졌고 2세기에 이르러 변증가
며 주석가로 유명했던 멜리토(Melito)가 이 교회의 감독이 됨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
다고 한다. 그러나 물질적 부요로 말미암아 내적인 피폐로 안일과 부도덕의 모습이 교
회에 까지 침투하였다.
ㅇ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 본문은 사데 교회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령을 가리키며(1:4,16,20, Lenski,
Morris, 1:4 주석 참조), '일곱 별'은 교회를 보호하고 책임져야 하는 천사를 가리킨
다(1:20 주석 참조). 한편 '가진'은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천사의 역할을 주관하심을
시사한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하시는 주된 일은 내적인 생명을 주어 하나님의 사람
으로 구원을 확증케 하는 일이다(요14:16).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부여하고 살리시는
성령과 교회를 지키는 천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제
로는 '죽었다'는 선언을 받은 사데 교회의 영적인 상태와 연관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권고를 받아들여 회개한다면 언제든지 죽은 사데 교회를 다시 살릴 수 있으며,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는 소수의 사데 교인을 지키고 계심을 시사한다(4절, Mounce, M-
offatt, Ramsay, Ford).
ㅇ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 사데 교
회의 '행위'가 사데 교회의 과거 업적을 말하는지 아니면 과거의 명성만 주장한 채 현
재는 생명을 상실한 모습을 말하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다음 절에서 '온전한 것이 없
다'는 선언으로 보아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Johnson). 실지로 사데 교회는 일곱 교회
중 이단의 특별한 위협이나 외부의 핍박이 가장 적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교적 문
화나 주변 환경과 타합함으로 생명력을 잃어 버렸다. 사데 교회가 생명력을 상실한 사
실을 단적으로 묘사한 '죽었다'는 표현은 사데에서 약 11km 떨어진 언덕같은 수많은
묘지를 암시한다. 이러한 표현이 종종 전통만을 고집하던 유대인들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Kiddle, Moffatt) 사데 교회가 외적인 형식과 모습은 갖추었으
나 신령한 모습은 상실했음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ㅇ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 '일깨워'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누 그레고논'은 현재 미완료 시상과 현재 능동
태 분사가 결합되어 계속적인 경성(警醒)을 시사한다(Moffatt, Beck, Robertson). 이
는 사데 지역이 난공 불락의 천연 요새로 되어 있다는 사실로 인해 안일에 빠져 두번
씩이나 점령을 당했던 사데 지역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경고가 되었을 것이다(Mounce,
Lenski). 그리스도께서는 '일깨워'라는 권면을 사데 교회에 하심으로 회개할 것을 촉
구함과(3절) 동시에 사데 교회가 비록 죽음 직전에 있으나 완전한 생명력을 상실한 것
이 아님을 암시한다(Weymount). '죽게 된 것을'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에메론 아포다
네인'은 미완료 능동태 시상으로 사데 교회가
부분적으로 살아있음을 보여준다(Swete). 한편 '굳게 하라'의 헬라어 '스테리손'
은 부정 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아직 남아있는 영적 생명을 견고히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시사한다.
ㅇ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 '온전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플레로메나'는 '충만함'을 나타내는 헬라어
'플레로오'의 완료 수동태 분사로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완전함이라
기 보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의 온전함을 말한다. 이것은 비록 사데 교회
가 외적으로 보기에 풍성하며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시기
에 허망하였음을 시사한다(Greijdanus).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ㅇ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 본
문은 사데 교회를 향한 세 가지 명령이다. (1)생각하고.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므네
모뉴에'는 '염두에 두다'란 의미의 '므네모뉴오'
의 현재 명령형으로 '항상 상태를 되돌아 보라'는 뜻이다(12:5). (2)지키
어.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레이' 역시 '유지하다'는 의미를 가진 헬
라어 '테레오'의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이미 받았고 들었던 복음을
굳게 붙잡아야 함을 시사한다. (3)회개하라. 이것의 헬라어 '메타노에손'
은 '돌이키다'는 의미를 가진 '메타노에오'의 부정
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단번에 결정적으로 죄에서 돌이킬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단
회적이며 시급한 돌이킴에 대한 명령은 임박한 종말에 대한 심판을 내다보며 죄로 부
패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함을 나타낸다(Behm).
ㅇ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내가 알지
못하리라. - 본문은 마24:34과 살전5:2을 반영한다.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권면했
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죄 속에 머물러 생명력을 상실한다면 마치 도적이 밤에
들이닥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예기치 못할 때에 오셔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
다. 한편 '알지 못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 메 그노스'는
제2부정 과거 능동태 가정법을 동반한 이중 부정으로 강조적이다.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ㅇ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 본문은 대부분의
사데 교인들이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으나 그 가운데 극소수의 예외가 있었음을 나타낸
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단순한 도덕적
순결로 해석한다(Moffatt). (2)혹자는 성적인 불결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으로 해석한
다(Zahn). (3)혹자는 구원받은 자가 사회적인 풍조와 혼합에 물들지 않는 기독교적 성
결로 해석한다(고후7:1, Lenski, Johnson).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
하다. 당시의 사데 교회가 처한 입장은 단순히 도덕적인 타락이나 성적인 범죄와 같은
일부분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내적이고 기독교적인 문제였으며, '옷이
더럽다'는 것은 기독교적 순결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기 때문이다(고전8:7; 고후11:2;
유1:23). 이러한 옷에 대한 예는 양모 산업이 발달하여 옷에 대해 관심이 많던 사데
사람들에게는 매우 적절한 것이다. 한편 '몇 명'의 헬라어는 '올리가 오노마타'
로 문자적으로 '몇 이름들'이다(행1:15; 계11:13). 이는 비
록 소수이기는 하나 하나님께 기억된 바 됨을 시사한다(Mounce, Ironside).
ㅇ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기다리니. - '흰 옷'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
는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는 의'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Plummer). (2)혹자는 '최
후에 그리스도인이 하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광과 성결'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Al-
ford). (3)혹자는 '죄나 이교도적인 혼합에서 분리시켜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enski). 세 가지 견해 중 첫번째와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사
데 교회의 교인들은 외적인 겉모습에는 관심이 많았으나 그리스도에 대한 내적 정결과
이교(異敎)와의 분리된 삶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기 때문이다(Johnson). 한편 '함께
다니리니'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이 그와 함께 교제함을 표현하는 것으
로(창5:22; 요:6,7) 단순히 현재적인 교제는 물론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나눌 교제를
시사한다(Ladd, Greijdanus).
ㅇ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 '합당한'은 종말에 있게 될 심판의 기준에 타당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2:7,17,27,28)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속죄
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누리는것을 시사한다(Clarke, Morris).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ㅇ본절은 사데 교인들 가운데서 믿음으로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세 가지 약속이
다.
ㅇ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 '이기는' 것에 대해서는 사데 교회
의 경우 다른 소아시아의 교회와는 달리 외적 핍박이나 특별한 이단 그리고 신비주의
가 언급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문맥과 사데 교회가 처한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세상의 부패나 타협, 안일함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한편 승
리자에게 주어질 첫번째 약속은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이다. '흰 옷을 입는다'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희게 되었으며(7:14)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과의, 영광을 닮아(18절; 6:11; 7:9,13; 19:14) 하나님 나라에게의 궁극적인 승
리를 약속받음을 시사한다(4절 주석 참조, Ladd,Johnson).
ㅇ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 '생명책'은 신,구약 성경에
서 자주 언급된다(13:8; 17:8; 20:12,15; 21:27; 출32:32; 시69:28; 눅10:20; 빌4:3).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시민권을 소유한 자들을 의미하였으며(출
32:32,33), 신약성경에서는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구별하는 의미로 쓰여 그리스도
의 피로 의로워진 자들은 영생을 소유하고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13:8; 17:8; 20:12,15; 21:27; 눅10:20; 빌4:3, Rosh). 그리스도께서 승리자에게 '생
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신 것은 승리자를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게서 결코 분리할 수 없으며(롬8:38,39)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께 의존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시민권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시사한다(Johnson, Beasley-
Murray).
ㅇ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본문은 승리자에게 주
어지는 세번째 약속으로 마10:32을 반영한다(막8:38; 눅9:26; 12:8). 이것은 보다 적
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공적(公的)으로 시인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시인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몰로게소'는 법정에서 증
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자신을 의지하여 승리한 자들의 이
름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증언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임을 확인하실
것을 시사한다.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ㅇ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이에 대하여는 2:7
주석을 참조하라.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ㅇ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빌라델비아'는 사데 동남쪽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고원 도시로 포도 생산지로 유명하였다. 그곳은 서머나와 루디아 왕
국으로부터 동방으로 가기 위해 제일 먼저 들러야 하는 도시로 '동방의 관문'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를 누렸으나 지진이
잦아 피해가 많았다. 또한 많은 신전과 종교적 행사가 있어 A.D.5세기에는 '작은 아
테네'로 불렸다. 그러나 빌라델비아는 이교 신전과 종교 행사가 많고 2,3장에 나타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위치한 지역 중 가장 짧은 역사를 기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B. C. 159-138) 아시아가 이슬람 교도들에 의해 짓밟힐 때 유일한 기독교의 보루(堡
壘)로서 신앙적인 면에서 가장 칭찬을 받은 지역이다(Lenski, Johnson). 한편 빌라델
비아 교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단지 암미아(Ammia)라는 여선지자가
이 교회를 관할하면서(A.D. 100-160) 큰 부흥을 이룬 듯하다. 이 교회의 성장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개종하는 역사도 있었으나 반면에 교회를 가장 반대하는 자들 역시
유대인들이었다.
ㅇ거룩하고 진실하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하기오스, 호 알레디노스'
는 문자적으로 '거룩한 자, 진실한 자'를 의미한다.
'호 하기오스'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 사용되었으나(사1:4; 5:19,24;
10:17,20; 12:6; 렘51:5; 겔39:7; 호11:9; 합3:3)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
되어 그의 신성과 메시야성을 나타내고 있다(막1:24; 요6:39; 행2:27; 13:35; 히7:26)
또한 '호 알레디노스'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온전하며 충성된 자. 그리스도께
서는 온전한 충성으로 메시야적 직무를 수행하신 완전한 분이심을 시사한다(Hort) (2)
진실한 자. 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칭호로 사용되었으나(사65:16)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참된 메시야로서 약속을 반
드시 성취하는 분이시므로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정하는 유대인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
으로 언급되었다(Mounce, Ladd).
ㅇ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 본문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22:15-25을 반영한다. 이사야서에서
국고를 맡고 있는 셉나 대신에 엘리야김이 다윗의 집 열쇠를 맡아 다윗의 집 전체를
관리하는 권세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 본문에서 '다윗의 열쇠'는 다윗의 집 즉 하나
님 나라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로서 하나님 나라의 특성인 영생의 수여권을 시사한다
(Ladd, Beasley-Murray). 엘리야김이 다윗의 집을 관리하는 열쇠를 소유한 바와 같이
스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열쇠를 소유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
어갈 자와 들어갈 수 없는 자를 결정하신다(Johnson). 한편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는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에 대한 해석으로 당시 빌라
델비아의 정황을 반영한다. 당시 빌라델비아에 많이 거주하였던 유대인들은 오직 자신
들만이 다윗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 살던 빌
라델비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진이'라고 계시한 것은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선민 의식에 대한 반론이며, 그리스도 자신이 천국의 주권을 가
진 메시야이심을 강조함으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위로하신 것이다(1:18; 마28:18; 엡
1:22; 히3:6).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ㅇ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 '열린
문'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남북으로 로마와 소아시아의 수도 에베소
를 연결하는 빌라델비아의 지리적위치 때문에 이를 '선교의 문'으로 해석한다(Ramsay,
Swete, Alford, Clarke, Charles, Holtzmann). (2)혹자는 '그리스도의 문'이나, '기도
나 순교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집접 나아가는 길'로 해석한다(Kiddle, Moffatt). (3)혹
자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구원의 문'으로 해석한다(Ladd, Zahn, Rist, Beckwith). 이
가운데서 세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12절과 본서의 종말론적(終末論
的) 성격으로 볼 때 그리스도께서 열어주신 구원의 문을 닫을 사람이 없는 것으로 해
석되기 때문이다.
ㅇ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
치 아니하였도다.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칭찬하신 내용이다.
'적은 능력'에 해당하는 헬라어 '미크란 에케이스 뒤나민'
은 '능력이 거의 없다'는 의미로 그 지역에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의
신분이나 지위 등의 외적 능력이 변변치 못함을 나타낸다. 한편 '지키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에테레사스'는 반의적인 강조 표현으로 문
자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켰다'를 의미한다. 이는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유대인
들이 가하는 시련과 온갖 유혹 가운데서도(9절) 진리의 편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의 말
씀대로 살았음을 시사한다.
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ㅇ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
빌라델비아 교회가 처한 문제는 외적인 황제 숭배나 핍박같은 것도 아니었고 부도덕하
게 혼합주의로 이끌어 가는 이세벧주의나 니골라당 같은 내적 문제도 아니었다. 그들
이 처한 위기는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핍박하
는 유대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은 혈통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고, 자신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였다고 주장하나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정함으로
사단을 추종하는 자들 즉 '사단의 회'가 되었다. 그들은 진정한 유대인이 혈통과 같은
외적인 요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루어지는 이
면적(裏面的)인 것임을 망각하였다(롬2:28,29).
ㅇ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
게 하리라. - 유대인들은 본래 이방인들이 자신들에게 찾아와 굴복한다고 믿고 있다
(사45:14; 60:14).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믿는 바와는
반대로 유대인들이 내면적인 유대인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찾아와 굴복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이것에 대해서 혹자는 유대인들의 회심이라고 해석하나(롬9-11장, Ladd)
문맥상 본문은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부인하는 '사단의 회'인 유대인들을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심을 나타낸다(Johnson, Mounce). 그리스도께서는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인한 혈
통적 유대인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셔서, 이면적이고 영적인 유대인들인 그리스도인들
에게 굴복케 하심으로 메시야이신 당신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드러내신
다.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ㅇ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 '나의 인내의 말씀'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
이다. (1)혹자는 '인내함으로 그리스도의 마지막 재림을 기다리라'는 명령으로 해석한
다(눅21:19; 히10:36, Lohmeyer, Vincent, Zahn). (2)혹자는 '인내로써 죄많은 세상의
모순을 극복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인내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한다(살후3:5; 히12:3,
Johnson, Charles, Ladd, Alford, Moffatt).
ㅇ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 '시험의 때'에 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혹자는 빌라델비아 지역에서 교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개인이 혹은 교회 공동체가 겪는 고통으로 해석한다(Payne). (2)혹자는 그리스도
의 재림 시에 비그리스도인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add, Mo-
unce, John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시험의 때'에 대한 이러한 해석
은 '면하게 하리니'와 상관 관계를 형성하여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면하
게 하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레소 에크'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요17:15의 용례를 들어 전치사 '에크'('...중에서 밖으
로')가 사용된 것은 환난 가운데서 보호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면서 본문은 빌라
델비아 교인들이 현재 처하고 있는 고통에서 보호받게 될 것을 말한다고 해석한다
(Charles). (2)혹자는 약1:27의 용례를 들어 전치사 '에크'를 '아포'(* , '...
로부터')의 의미로 보아 환난에서 떠나 보호를 받는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이는 장
차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환난 그 자체에서 제외된다는 입장으로 해석한다(Moffatt,
Rist). 이 드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시험의 때'가 그리스도의 재
림시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 또는 심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Johnson). 하나님께 순종
하며 그 말씀을 따르고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사단의 역사로 인한 고난은 받을
지라도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는 면하게 될 것이다.
ㅇ이는 장차 온 세상이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 본문은 앞서 언급
된 '시험의 때'에 대한 보충문이다. 본서에서 '땅에 거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부인
하고 교회를 대적한 비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6:10; 8:13; 11:10; 13:8,14; 17:8).
그러기에 본절의 '시험할 때'는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 모두가 당하는 일반적인
환난의 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비그리스도인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의 때를 가리
킨다.
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ㅇ내가 속히 임하리니. - 본문은 본서의 중심 사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된다.
(1)심판의 측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악한 자들에 대한 공의의 심판을 목적으로 한다
(마24:48-51; 살후1:7-9). 이는 에베소(2:5), 버가모(2:16) 및 사데 교회(3절)에 임하
신 모습이다. (2)축복의 측면. 본문에서는 심판의 경고가 아닌 충성된 빌라델비아 교
인들을 향한 축복의 재림의 약속을 나타낸다(2:16; 22:7,12,20, Johnson).
ㅇ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 '굳게 잡아'
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테이'는 현재 명령형 시제로 이제까지 빌
라델비아 교회가 지켜온 믿음을 더욱 지속적으로 공고히 해야 함을 시사한다. 한편
'면류관'은 경기장에서 승리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말은 경기장에서 선수가 상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
는 것과 마찬가지로(히12:1-4) 빌라델비아 교인들도 지속적으로 영적 무장을 통해 환
난과 핍박 속에서도 인내의 말씀을 지켜 승리해야 함을 시사한다('면류관'에 대해서는
2:10 주석을 참조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ㅇ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
리라. - 본문은 당시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성전 기둥'을 비유로 하고
있다. 당시 빌라델비아는 잦은 지진으로 건물들이 폐허가 되었으나 파괴된 건물 가운
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신전의 돌 기둥뿐이었다(Ramsay, Johnson). 지진과 폐허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신전 기둥을 본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하나님이 거주하시
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은 승리자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하고
요동치 않는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렘1:18; 딤전3:15, Charles,Mounce,
Ladd).
ㅇ내가...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 본문은 빌라델비아 교인들 중 승리자에게
주어진 두번째 약속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 종류의 이름을 부여할 것이라고 약속한
다. 이름을 부여받는 것은 당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있어서 친숙한 것이었다. 빌라
델비아는 지진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을 때 티베리우스(Tiberius)의 도움으로 재건된
후 '네오가이사랴'(Neocaesarea)라는 이름을 부여받았고 후에 베스파시안(Vespasian)
황제의 성을 따라 '플라비아'(Flavia)로 개명되었다(A.D. 70-79). 이러한 경험을 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름을 부여하신다고 약속하신 것은 중요한 의미
를 갖는다.
(1)하나님의 이름. -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이름이 주어졌다(민
6:27).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시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승리
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였
음을 나타낸다(22:4, Ladd, Morris, Johnson).
(2)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 -
하나님의 성인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승리한 자들이 하나님의 새 예
루살렘의 시민권을 소유함을 시사한다(Mounce, Ladd, Morris).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한 것으로(빌3:20) 그때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주할 것임을 암시한다.
(3)나의 새 이름. - 그리스도의 새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
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새 이름, 곧 다른 모든 권세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절대적인
권력과 인격 그리고 성품을 나타내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 이긴자들에게 주어짐
을 의미한다(19:12, Mounce, Morris, Beasley-Murray, Ladd) 다른 하나는 구속을 통해
서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음을 나타낸다(사62:6; 65:15, Johnson).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ㅇ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2:7절 주석을 참조
하라.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ㅇ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비아 동남쪽 약
72km,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약 160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서 라이커스(Lycus) 계곡에
있는 여러 도시들 중 하나이다. 또한 맞은 편으로 10km 지점에는 히에라볼리가 약
14km 지점에 골로새가 위치해 있었는데 이 세 곳은 바울 서신에서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다(골4:13,16). 이곳의 특징은 교통의 요충지였을 뿐만 아니라 모직물 공업의 중
심지였으며 '브루기아 가루'마 알려진 안약과 의학교가 있었다. 또한 활발한 금융
거래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이곳은 물 사정이 좋지 않아 히에라볼리와 골
로새로부터 항상 수로를 이용해 물을 공급받아야 했다. 한편 라오디게아 교회는 에바
브라가 설립하였으며(골4:12,13) 골로새 교회와 함께 바울이 지도하였다.
ㅇ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 '아멘이시요'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아
멘'은 문자적으로 '아멘인 자'를 의미하며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칭호로 나타난다(사65:16). 이것은 70인역에서 '톤 데온 톤 알레디논'
('진실한 하나님')으로 나타나면 '진리의 하나님'(the God
of the truth, RSV), '이름이 아멘이신 하나님'(the God whose name is Amen, NEB)으
로 번역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진리이시며, 신실하심을 시사한다. 본문에서는 이러
한 칭호가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실하지 못함에 대한 그리스도
의 신실성이 부각되고 있다(1:5,6; 고후1:20, Mounce). 한편 '충성되고 참된 증인'은
'아멘이시요'와 동일한 사상을 내포하는 칭호로(Ford, Beasley-Murray, Morris) 그리
스도께서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증거하시기 위해 온전한 순종과
충성으로 구약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셨음을 시사한다(1:5,9;2:13;고후1:20, Johnson).
ㅇ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의 헬
라어 '헤 아르케 테스 크티세오스 투 데우'
에서 '아르케'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의 최고(最高)의 근원을 나타낸다.
이 칭호는 그리스도의 또 다른 칭호 즉 '알파와 오메가'에서 '알파'에 해당되는 것으
로(Beasley-Murray) 그리스도께서 피조물 가운데 처음이란 의미가 아니라 창조자이며
창조의 근본이심을 나타낸다(잠8:22ff.; 요1:1-3; 고전1:30; 골1:15; 히1:2,3,
Moffatt, Charles, Lightfoot). 또한 이 칭호는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을 시사한
다(Moffatt).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ㅇ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
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열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영
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이 없음을 책망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차다'는 것은 라오디게아
의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약 16km 떨어진 골로새로부터 냉수를 공급받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으로 그들이 불신의 상태로 세상에 속하였음을 시사한다. '더웁다'는 것은 인접
한 히에라볼리의 온천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신앙을 위한 열정을 비유한다. 그러나 라
오디게아 교인들은 '차지도 덥지도' 즉 그리스도를 대적하며 세상과 타협하지도, 혹은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소유하지도 않은 상태로 미지근하였다(16절). 즉 그들
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에 대해 무관심하고, 자만하는 자들이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차든지 덥든지'하라는 요구는 양자 중 반드시 하나를 선택하라는 의미라
기보다 '차든지'와 '덥든지'의 중간 상태를 택하는 그들의 '미지근한 상태'에 대한 신
랄한 책망이다(Johnson).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ㅇ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
여 내치리라. - '미지근하여'라는 언급은 '차다', '더웁다'는 말과 관련되어 라오디게
아 교회의 영적 상태가 무익하고 무력함을 나타낸다(Beckwith, Green, Rudwick). 라오
디게아 사람들은 히에라볼리로부터 끌어온 온천수와 골로새로부터 수로를 통해 가져온
찬물을 공급받는 과정에서 물이 미지근하게 됨으로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여
마시는 자마다 토하여 버렸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미지근한 물을 토해 버리듯이 그
리스도께서도 미지근한 영적 상태에 머물러 있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거부하고 버리
겠다고 책망하신다.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ㅇ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 '부요하여'에 해당
하는 헬라어 '페플루테카'는 현재 완료형으로 이제 완전히
부요한 상태에 도달했다는 의미이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스스로가 부요하여 더이상
바랄 것이나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실질적으로 그들은 상당히 부요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는 매우 빈곤하고 곤고하다. 이러한 모습은 서머나 교회와 대
조를 이룬다. 서머나 교회는 외적으로 가난하였으나 영적으로 부요하였던 반면에 라오
디게아 교회는 그 반대였다.
ㅇ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실상을 묘사한 것으로 두 부분으로 나뉜다(Mounce,
Johnson). (1)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 '곤고한 것'은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약탈되
거나 파괴당했을 경우를 묘사하는 것으로(시137:8; 롬7:24) 그 어떤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는 상태를 나타낸다. 이러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영적 상태는 물질적 부와 정
반대로 가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Lenski, Moffatt, Morris). (2)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 '가난'은 라오디게아인들이 금융업이 발달할 정도로 물질적인 부를
축척한 것과는 달리 영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섬길 수 없는 상태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
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며(2:9), '눈먼 것'은 라오디게아에 특수한 안약과
의학교가 잇었던 것과는 달리 영적 시각 장애자로 분별력을 잃은 것을 의미하고, '벌
거벗은 것'은 라오디게아의 검정색 양모가 유명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이 영적으로 벗
은 모습임을 시사한다(Mounce).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부요하다고 착각하여 전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Johnson).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ㅇ본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앞절과 동일한 방법으로 라오디게아에서 유명하고 풍부했
던 것을 예로 들어 그들의 영적 무관심에 대해 권면하고 있다.
ㅇ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 그리스도께서
는 영적으로 가난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불로 연단한 금, 곧 시련을 통한 믿음을
사서 영적으로 부요해지라고 권면한다(사55:1, Johnson).
ㅇ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 라오디게아는 광택있는 검은 양모 생산지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는 양모가 아닌 '흰 옷' 곧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는 의의 옷을 입고 영적으로 수
치스럽게 벌거벗은 것을 가리라고 권면하신다.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역의 특산물
인 안약을 사서 치유하라고 권면함으로 그들의 영적 시각 장애를 치유하고 자신을 온
전히 바라보라고 권면하신다(골1:27; 2:3).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ㅇ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 하나님의 사랑은 주로 '아가파
오'('사랑하다')로 표현되는데 본절의 '사랑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는 '필로'로 되어있다. 이러한 문자적인 차이로 인해서 혹자는 '아가파
오'가 하나님께서 은혜로 사랑하시는 모습을 나타내는 반면에 '필로'는 그리스도의 판
단으로 사랑하심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engel). 그러나 필로는 '아가파오'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Barclay, Charles). 왜냐하면 신약성경에서
도 자주 '필로'와 '아가파오'가 같은 뜻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요5:20; 16:27). 한편
'책망'의 헬라어 '엘렝코'는 원래 '낮춤'을 의미하는 말로 '말로써
교훈하고 다스리는 것'을 나타내며(눅3:19; 딤전5:20), '징계'는 책망이 구체적인 형
태로 나타나는 행위를 의미한다(히12:5,7).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의 잘못을
방관(傍觀)하지 않으시며 사랑어린 책망과 징계로 인도하신다.
ㅇ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 '열심을 내라'의 헬라어 '젤류에'
는 현재 명령형이며, '회개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노에손'
은 부정 과거 시상이다. 이 두 개의 명령문의 시상 변화는 '단번에
결정적으로 회개하고 지속적으로 열심을 내라'는 의미를 갖는다(Moffatt, Rebertson).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ㅇ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 '서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스테카'
는 현재 완료 시상으로 이미 오셔서 준비가 완료된 상태를 의미하며
'두드리노니'의 헬라어 '크루오'는 현재 시상으로 지금도 계속해서 두
드리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것은 죄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인내와 사랑
을 알리시는 모습으로 불신앙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초청과 약속의 말씀이다(Mounce,
Trench). 한편 '문'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
암는 새로운 세상으로 해석한다(마24:33; 약5:9, Swete, Beckwith). (2)혹자는 라오디
게아 교인들의 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Mounce, John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
가 타당하다. 앞절에서 현재 회개하고 열심을 내라고 권면하였기 때문에 본문의 '문'
은 현재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제를 나누어야 하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마음을 지칭
한다(Ladd).
ㅇ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회개 촉구의 권면을
듣고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의 결과를 나타낸다. '먹고'의 헬라어 '데이프네
소'는 교제를 나누며 즐기는 식사를 가리킨다(Morris, Ladd,
Johnson, Mounce).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할 경우 그리스도께
서는 그들 안에 거하셔서 그들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시며 친밀한 관계를 이루신다. 그
리스도와 하나님은 현재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과 성령을 통해 교제하신다(요14:23).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ㅇ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
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 본문은 승리자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으심은 그의 왕적 지위를 시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에 앉음으로 왕적인 지위를 누리시는 것처럼 승리자에게도 그와 동일하게 권세를
허락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할 것에 대한 약
속이다(1:6,9; 2:26,27; 5:10; 20:4-6; 눅22:28-30; 롬8:17; 딤후 2:12). 한편 '보좌
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토 드로노'에는 '위에'를 의
미하는 전치사 '에피'가 아니라, '안에'를 의미하는 '엔'이 사용
되어 단순히 보좌에 앉는 것뿐 아니라 그 이상의 명예와 권세를 주시며 참여하게 하시
겠다는 약속을 시사한다(Plummer). 이렇게 그리스도의 권면을 받아들이고 회개하여 그
리스도와 교제를 나누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적인 통치를 공유
하게 될 것이다.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ㅇ2:7 주석을 참조하라.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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