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요한계시록

[스크랩] 요한계시록 (2 : 1~29)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7:45
요한계시록 (2 : 1~29)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ㅇ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에베소'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1)상업상
으로는 매우 중요한 교역의 중심지로서 소아시아에서 제일 부유한 도시이며 유프라테
스에서 라오디게아를 경유하여 에베소까지 이르면서 동방의 산물이 종착하는 곳이었
다. (2)종교적으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Artemis) 여신상이 있어서
미신이 성행하였으며 황제 숭배가 행해지던 부도덕한 곳이었다. (3)정치적으로는 로마
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아 '스트라테고이'(Strategoi)라는 독자적 행정관이 있었고 민
주적으로 선출된 통치 기관으로서 '불레'(Boule)라는 민회관과 순회 재판소가 있었다.
따라서 명목상 '버가모'가 소아시아의 수도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에베소가 소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Mounce, Kraft, Kiddle). 이러한 에베소에
기독교 신앙이 전파된 것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또한 바울이
이 에베소 지역에 2년 간 머무르며 목회하였고 후에 디모데가 바울의 열심을 본받아
목회 활동을 함으로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이어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행19
장; 딤전1:3, Ironside). 한편 '사자'는 그리스도에 의해 책임을 갖고 교회를 수호하
는 하늘의 천사들을 가리킨다(Johnson, 1:20주석 참조).
ㅇ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 본문
은 에베소 교회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한 묘사이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
잡고'에서 '붙잡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톤'은 단순히 '잡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요동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움켜쥐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그리스
도께서 교회를 보호하시고 통치하시며 지배하고 계심을 시사한다(1:13,16,20). 한편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 역시 그리스도께서 교회들을 사랑하고, 능력 가운데 교
회에 임재하고 계심을 암시한다(Mounce, Johnson, Clarke).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ㅇ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 '행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가'
는 포괄적인 의미로 전체적인 삶의 모습을 말하며(요3:19,20; 5:36; 요일3:8),
'수고'의 헬라어 '코폰'은 단순한 노력의 차원이 아니라 고통스런 노동
을 동반할 최선의 삶을 가리키고(롬16:12; 고전15:10), '인내'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
포모넨'은 '아래'를 의미하는 '휘포'와 '머물다'를
의미하는 '메노'의 합성어로 어떤 어려움도 개의치 않고 적극적으로 극복
해 나가는 확보 부동함을 나타낸다(약1:3, Lenski, Morris). 이런한 '행위'와 '수고'
와 '인내'의 항목에 대해 혹자는 살전 1장과 연결시켜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로 해석하여 각각 독립적인 덕목이라고 주장하며(Rist), 혹자는 '수고'
와 '인내'를 '행위'의 내용으로 해석한다(Mounce, Johnson, Charles, Moffatt,
Plummer). 두 가지 견해 중 헬라어 구문상 후자가 더 타당하다. 한편 '알고'에 해당하
는 헬라어 '오이다'는 단순히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나타내는 '기노스코'
('알다')와는 달리 직관적으로 아는 생득적(生得的) 지식을 가리킨
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행하는 수고와 인내를 모두 알고 계심을 나타내므로
그리스도의 전능성을 시사한다(9,13절; 3:1,8,15, Sweete).
ㅇ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
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 본문은 에베소 교회가 가졌던 고상한 영적 분별력을
말한다. 여기서 '악한 자들'(카쿠스)은 관사 없는 복수 명사로 문자
적으로 '악한 것들'을 뜻한다. 이 말이 정확하게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으나 대
체적으로 에베소에 있던 거짓 사도 혹은 거짓 교사들을 가리키는 듯하다(Mounce,
Johnson, Ladd, Greijdanus). 이들은 자칭 사도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주의자들로 본
다(고후11:13-23, Spitta). (2)혹자는 바울의 제자들로 간주한다(Holtzmann). (3)혹자
는 '니골라당'으로 본다(Bousset, Charles), 이 중 세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
냐하면 6절에 에베소 교회가 미워하던 거짓된 자들인 니골라당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
이다(행20:28-30; 고후11:13; 갈1:8,9).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은 예수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주장하는 교리나 확신을 통해서 이익을 추구하였다(고후 11:13,15;
12:11). 교회는 자칭 사도라 하는 이런한 거짓된 자들의 거짓을 구별할 필요성이 있었
고, 에베소 교회는 훌륭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의 열매'를 통해(마
7:20) 거짓을 분별하고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그들의 거짓을 드러냈다(고전14:29; 살
전5:21; 요일4:1; Johnson, Mounce).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ㅇ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 본절은 앞
절에 나타난 사실을 반복하여 더욱 강조함과 동시에 에베소 교회의 신앙의 정절을 나
타낸다. 당시 교회는 황제 숭배 강요 때문에 심한 박해 가운데 있었고, 그리스도의 성
육신을 부인하는 이단들의 내적 도전들이 많았으나 에베소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고 복음에 확고히 서서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굳게 지켰다.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ㅇ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본절은 에베소
교회에 대한 책망을 나타낸다. '처음 사랑'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한 견
해는 두 가지 이다. (1)혹자는 에베소 교인들이 가졌던 기독교적인 사랑 즉 형제에 대
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행20:35; 엡1:15, Vincent, Plummer, Charles,
Moffatt, Rist, Kiddle). (2)혹자는 처음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가졌던 그리스도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cott).에베소 교인들은 자신들의 교회에
있던 거짓 사도들을 분별하느라고 형제를 의심하고 엄격하게 구별함으로 형제에 대한
사랑이 식어졌다(Barclay, Mounce, Ladd).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형제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막12:29ff., Beasl
ey-Murray, Johnson).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형제 사랑을 동반하기 때문에 진정한
기독교적 사랑은 어느 하나라도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두가지 견해는 나름
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한편 '버렸느니라'에 해당하는 '아페카스'는
부정 과거로 단회적 행동을 나타내어 에베소 교인들이 그들이 가졌던 처음 사랑과 완
전히 단절되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본문은 에베소 교회가 교리적(敎理的)으로 칭찬
할 사실이 있다 할지라도 생명 없는 형식주의로 전락하여 사랑을 상실했음을 단호하게
책망하고 있다(Alford, Johnson).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ㅇ본문은 에베소 교회의 책망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 세 가지를 명령어를 사용하여
제시한다. 이러한 세 가지 명령은 에베소 교인들을 보호하시려는 그리스도의 단호한
명령이며 권고이다.
ㅇ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 이것은 죄의 원인을 깊이 생각하되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생각하라는 명령이다. 여기서 '생각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므네모뉴에'
는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계속하여 생각하고 회상하라'는 의미이다.
(눅15:17-22). 에베소 교인들은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그것을 어디에서
무엇으로 인해서 상실하게 되었는가를 상고해야만 한다.
ㅇ회개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노에손'은 부정 과거
명령형으로 단번에 결정적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이다(마3:2; 눅15:20).
ㅇ처음 행위를 가지라. - 에베소 교인들은 특별히 회개하여 돌아가되 무분별한 사랑
이 아닌 그들이 가졌던 처음의 사랑으로 돌아가야 한다(Kiddle, Moffatt). 여기서 '가
지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에손'은 '행하다'는 의미를 가진 '포이
에오'의 부정 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지금 즉시 행하라'는 말이다(마
3:8, Robertson, Johnson, Mounce). 에베소 교인들은 지금 즉시 처음에 그리스도에 대
해 가졌던 사랑으로 형제들에게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ㅇ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홅기리라. - 본문은 그리스도의 권면을 외면했을 때 초래할 결과에 대한 진술이다.
'내가 네게 임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코마이 소이'는
미래적인 현재 능동태로 예언적인 사실의 확실성을 나타낸다(22:20; 요14:13; 요일2:
18). 그러기에 혹자가 주장하는 대로 '그리스도의 재림'때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보
다는(Clarke), 오히려 회개치 않을 경우 맞게 될 현재적 심판을 선언하는 것으로 해석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Morris, Charles, Alford, Plummer). 한편 '네 촛대를 그 자리
에서 옮기리라'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에베소 교회가 다른 곳으로 옮
겨지게 될 것이라고 해석한다(Ramsay). (2)혹자는 당장 있게 될 지금의 심판을 말하는
것으로 에베소에서 교회가 없어지고 그 도시 전체가 황폐화할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
다(요 15:6; 엡1:22, Mounce, Greijdanus, Charles). 두 가지 해석 중 후자가 타당하
다. 왜냐하면 문맥상 현재에 임할 그리스도의 심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ㅇ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
하노라. - '니골라당'에 관해서는 본서 이외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이것
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된다. (1)역사적으로 이는 사도행전에 언급
된(행6:5)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니골라가 타락하여 만든 이단이라고 추측한다
(Irenaeus, Tertullian, Alford). (2)언어적으로 '니골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니콜라
이톤'은 '백성'을 뜻하는 '라오스'와 '없애다'
혹은 '정복하다'를 의미하는 '니카오'의 합성어로 구약성경에 기록된
(민22:12) '발람'('백성을 이긴')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발람의
행위와 동일시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괴하는 거짓 무리들로 추측한다(Bousset,Cha-
rles, Trench, Ewald).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와 같이 니골라당은 발람의 교
훈을 따른 자들로 이해된다(14,15절).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ㅇ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본문은 예수께서 지
상 사역 중 반복해서 내리신 명령이며(마11:15; 13:9,43; 막4:9,23; 눅8:8; 14:35),
본서에서 일곱 교회를 향한 서신의 결론적 어구로 반복된다(11,17,29절; 3:6,13,22),
'귀 있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에콘 우스'는 개교회 전체
에 속한 청중들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11,17,29절; 3:6,13,22) 여기서 '귀'는 하나
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통역하시는(Swete) 그리스도의 영이요(Beckwith) 예언의 영인
(Kiddle) 성령의 권면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나타낸다. 한편 '교회들에게'(*
, 타이스 여클레시아이스)는 복수로 각 교회들에게 보내진 서신 맨
끝에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문구이다. 이는 이 편지들이 특정한 한 지역 교회에 보내진
것이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보편적인 교회를 향해 보내진 것임을 시사한다(Le-
nski, Hughes).
ㅇ이기는 그에게는. - 본문은 그리스도의 권면대로 행하여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이기는 그에게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니콘티'는
관사가 있는 현재 능동태 분사로 계속해서 이기는 자를 가리키며 본서와 복음서에서
여러번 반복되는 문구이다(17,26절; 3:5,12,21; 5:5; 12:11; 15:2; 17:14; 요16:33;
요일2:13). 또한 이 말은 군사적인 용어로 그리스도와 사단의 타협없는 대결상을 잘
묘사한다. 즉 사단과 대결하여 끝까지 그리스도에게 충성한 자를 나타낸다(Mounce).
ㅇ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 '낙원'의 헬라
어 '토 파라데이소'는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말로 일차적
으로는 인류 최초의 거주지였던 에덴 동산을 암시하며(창2:8-10)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하나님 나라 자체를 의미한다(22:1-4,14; 눅23:43,
Morris, Robertson, Johnson). 한편 '생명나무의 과실'은 죽음과 고난이 존재하지 않
는(22:2) 영생(永生)을 상징한다(Johnson, Mounce, Ladd, Beasley-Murray). 그리스도
의 권면대로 회개하여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에베소 교인들은 첫창조 때에 에덴 동산
이라 했으며 종말론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할 예루살렘 즉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게
되며,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생명나무 즉 영생을 영원히 누리
게 될 것이다.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ㅇ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서머나'는 에베소 북쪽 약 80km 지점에 있
었고, 당시 인구가 약 20-30만 정도로 소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도시였다.
'서머나'란 말 가운데 '머'(Myrrh)는 '유향'이란 뜻으로 이곳은 향료 수출지로도 유
명하였다. 또한 이곳은 호머(Homer)의 출생지이며 학문, 특히 과학과 의술이 발달한
도시였다.
종교적으로는 이교 문화와 종교의 집합처로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다. 따라
서 서머나는 소아시아 도시들 가운데서 지리적으로나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그로 인해 복음이 순수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황제 숭배가 성행하는
등 혼합화와 박해가 뒤따른 도시였다(Johnson, Kraft). 한편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
는 본 서신 외에 잘 알려진 것이 없으며 다만 '폴리갑의 생애'에서 바울이 이곳에 전
도하였다고 전한다(Eusebius). 그리고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서머나 교회의 초대 감독
이었던 폴리갑(B.C.155-166)이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ㅇ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 '처음이요 나중이요'는 1:
17,18의 반복된 표현이다. 이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역사 전체를 지배하시며 태초에도
계셨으며 역사의 종말에도 계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나타낸다. 한편 '죽었다가 살아나
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에게네토 네크로스 카이 에제센'
은 두 부정 과거 시제가 사용된 표현으로, 그리
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역사적이며 단회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임을 나타낸다. 그리스도
께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계시하신 것은 투옥과 사형의 핍박 가운데 있는 서머
나 교회 교인들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다(Johnson, Lenski).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ㅇ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 '환난'에 해당하는 헬라어 '들마신'
는 '무거운 물건 밑에서 눌려 부서지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신앙으로 말미암아
받는 외부적 핍박을 시사한다. 또한 '궁핍'의 헬라어 '프토케이안'
은 '외적 핍박으로 생긴 물질적인 빈곤'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황제
숭배를 거절함으로 당한 경제적 제재나 적대 감정을 가진 유대인이나 다른 사람으로부
터 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가리킨다(Johnson, Ladd).
ㅇ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 서머나 도시 자체는 부요한 도시였다. 그러나 서머
나 교회는 온갖 핍박으로 인해 실제적으로 궁핍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
서는 서머나 교회를 향해 부요하다고 인정하신다. 이것은 육신적으로는 궁핍하나 내적
으로 정결하고 부요함을 의미한다(눅12:21; 고후6:10; 딤전6:17,18; 약2:5). 이는 외
적으로는 부요하나 내적, 영적으로 궁핍했던 라오디게아 교회와 정반대이다(3:17).
ㅇ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 서머나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
하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서머나의 유력한 위치에 오른 자들이 많아서 기독교를
박해하고 방해하였다. 예를 들면 황제 숭배를 이용하여 거짓된 말로 로마 제국을 충동
해서 서머나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을 처형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고 그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인 것을 천국 시민권으로 오해함으로
더욱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였다. 실제로 초대 교회 여러 이단들과 잘못된 사상들 가운
데 유대주의는 가장 포괄적이며 무서운 기독교 진리의 훼방자였다(Moffatt, Johnson,
Kraft).
ㅇ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
여 하나님의 선민임을 자랑했던 서머나의 유대인들은 사실상 진정한 유대인이 아니었
다. 왜냐하면 진정한 유대인은 혈통(血統)에 의한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고 그리스도에
의한 이면적 유대인이기 때문이다(롬2:28,29). 서머나의 유대인은 도리어 사단의 회였
다. '사단의 회'는 자칭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여호와의 총회'라 했으나(민14:27,35)
그들의 실체는 사단의 자식이며,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적대자임을 시사한다(요8;31-
47). 그들은 교회와 복음을 방해하며 교인들을 핍박하였다. 이들에 대한 언급은 본서
전체에서 자주 나타난다(13절; 3:9; 9:11; 12:9,10,12; 13:4; 20:7,10 Johnson).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ㅇ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 서머나 교회에 대한 서신에서는 책망과 심
판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고 곧바로 권면 즉, 곧 있게 될 고난을 상기시키며 두려
워 말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로 보아 당시의 신자들이 장차 임할 핍박과 고난을 생각
하고 두려워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ㅇ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
본문은 장차 서머나 교인들이 받게 될 핍박의 내용이다. 서머나 교인들을 핍박하는 것
이 유대인이든 당시 정부이든 간에 그 핍박의 주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였다.
마귀는 서머나 교인들을 시험하기 위해 몇몇 사람을 감옥에 넣을 것이었다. 한편 '시
험을 받게 하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스데테'는
'유혹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련을 통해서 '시험하다'는 뜻으로 감옥에서 받을 온갖
고난이나 핍박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난과 핍박을 그리스도인들은 감수해야 하며 심지
어 순교로까지 자신들의 신앙을 증명해야 한다.
ㅇ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 본문은 환난의 기간을 나타낸다. '십일 동
안'의 헬라어 '헤메론 데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십일은 짧은 기간을 가리키거나 실제로 열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창
24:55; 민11:19; 단1:12,14; 행25:6, Alford, Charles, Plummer, Johnson, Kiddle,
Beasley-Murray, Ladd). (2)혹자는 십일은 극단적이면서도 완전한 환난을 상징하고 긴
기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민14:22; 욥19:3, Mounce, Summers). 두 가지 견해 중 전
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십일은 짧은 기간을 나타내는 셈어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Johnson, Moffatt)
ㅇ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 '네가 죽도
록 충성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누 피스토스 아크리 다나투'
에서 '기누'는 '기노마이'('되다')의 현재
중간태 명령형으로 과거의 순교자들이 순교하기까지 충성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드러냈던 것처럼 서머나 교인들도 죽기까지 신앙을 지켜야 함을 시사한다. 이것은 당
시 극심한 황제 숭배 강요 속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던 교인들을 향한 단호한 명
령이다. 한편 '생명의 면류관'은 죽기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
에게 주어진 상급이다. '면류관'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1)'디아
데마'로 '왕관'을 의미한다. (2)'스테파노스'
로 운동 경기에서 승리자에게 주어진 '승리의 관'을 의미한다. 두 가지 중 본문에 사
용된 면류관은 후자에 해당되는 것으로 운동 선수가 경기에서 끝까지 싸워 승리하 듯
이 온갖 핍박에서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을 가리킨다. 성경은 '생
명의 면류관'(약1:12) 외에도 '썩지 않는 면류관'(고전9:25), '자랑의 면류관'(살전2:
19), '의의 면류관'(딤후4:8), '영광의 면류관'(벧전5:4) 등을 그리스도인이 받을 상
급으로 진술하고 있다.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ㅇ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 본문은 앞절에서 언급된 생명의
면류관과 연결된 것으로 승리자에게 주어진 약속을 나타낸다. '둘째 사망'은 탈굼에서
유래한 것으로 유대인에게는 아주 친숙한 용어였다(Johnson, Beasley-Murray).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 모두가 직면하게 되는 육체적 사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
니라 비그리스도인이 당할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分離) 곧 영원한 죽음을 가리킨다
(Ladd). 그리스도인들의 최후에 비그리스도인이 당할 불못 즉 영원한 사망의 해를 받
지 않을 것이다(20:14; 21:8). 이러한 그리스도의 약속은 순교에 직면한 서머나 교인
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죄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ㅇ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버가모'는 서머나 북쪽 약 100km되는 곳
에 위치한 수도로 주전 130년 경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곳은 에베소와 서머
나가 상업적으로 아시아의 중심 역할을 한 반면에 문화적인 측면에서 아시아의 중심
부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의학교가 있었으며 장서 20여 만권을
소장한 도서관이 있었으며 책을
만드는 종이인 양피지의 생산지였다. 종교적으로 치료의 신으로 이해되었던 '아에스쿨
라피우스'(Asclepius)라 불리는 뱀신과 주신인 '제우스'(Zeus), 그리고 아테네 신전
지도자 '디오니소스'(Dionysos) 등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지였다.
ㅇ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 본문은 버가모 교인들에게 계시된 그리스
도의 모습으로 1:16의 반복이다. '검'은 권위와 능력을 가진 심판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버가모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과 니골라당을 대적
하여 심판하실 것임을 시사한다(16절, Mounce, Lenski).

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ㅇ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 '네가 어디 사
는 것'은 단순히 버가모 교인들이 버가모에 살고 있는 것을 안다는 의미보다 버가모
교인들이 지금 처하여 있는 어려움을 안다는 의미이다. 버가모가 황제 숭배와 온갖 우
상 숭배의 중심지였기에 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당하는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고난을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심으로 위로하
신다. 한편 '사단의 위'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버가모 지역의 대표적
인 우상 신전 중 특별히 제우스 제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Deissmann). (2)혹
자는 버가모 도시 자체가 언덕처럼 생겨서 평원 위로 솟아오른 모습이 하나의 제단처
럼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본다(Wood). (3)혹자는 버가모가 이방신과 황제 숭배
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Johnson, Mounce, Alford). 세 해석 중
마지막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사실상 버가모는 황제 숭배를 비롯한 모든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다.
ㅇ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
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 '굳게 잡
아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테이스'는 '크라테오'
('붙잡다')의 현재 능동태 시상으로 '계속해서 굳게 잡았음을 의미한다(25절; 3:11).
따라서 이것은 여러 가지 우상과 황제 숭배의 강요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
음을 저버리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한편 본절에는 고난과 순교 가운데서도 신앙을 저
버리지 않은 한 사람 안디바를 제시한다. '안디바'(안티파스)는 '모
든 것에 대적하는 자'란 의미로 그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로 나뉜다. (1)이름의 의미
자체가 밝히는 것처럼 어느 개인이 아닌 당시 순교자 전체에 대한 지칭이다. (2)당시
버가모에서 최초의 순교자든지 아니면 위대한 어떤 순교자를 지칭한다. 두 가지 추측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터툴리안은 '안디바'가 버가모 교회의 명성 높은 감독
으로 황제 숭배 거절로 인해 불에 타 순교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Moffatt).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ㅇ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
이 있도다. - 분문은 버가모 교회가 내부적으로 분열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그리스
도의 충성된 증인으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지만 반면 부분적으로는 발람의 교훈
을 좇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6절). '발람'은 어원적으로 '백성을 정복하라'는 의미
의 '니골라당'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6절 주석 참조).
ㅇ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 분문은 버가모 교인들이 따랐던 발람의 교훈에 대한 설명이
다. 발람의 교훈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이방사람들 잡혼(雜婚)을 하게 하고 우
상 숭배하는 일에 타협케 한 것을 가리킨다(민22-25장; 31:8,16). 발람은 발락의 청구
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정면으로 저주하지는 않았으나 모압 여인을 통해 이스라엘
을 유혹하게 하여 음행케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 중 수만 명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게 하였다. 이러한 '발람의 교훈'은 신약성경에서(벧후2:15; 유1:11), 혹은 유대 역
사에서 늘 경계의 표적으로 언급되었다. 이처럼 당시 버가모도 특히 우상 숭배가 많은
지역이었고,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형식으로 세상과 타협하였다. 따라서 본문
은 버가모 교인들이 우상 숭배에 동참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혼합화된 현상
은 정죄받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Bousset, Plummer, Johnson, Charles, Kiddle).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ㅇ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 '이와 같이'는 앞절
에서 언급된 발람의 교훈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절에서는 언급되는 '니골라당의 교훈'
과 '발람의 교훈'이 동일한 것임을 암시한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ㅇ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
과 싸우리라. - 본절은 발람의 교훈과 동일한 니골라당의 교훈에 빠져있는 버가모 교
인들에 대한 권면과 그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생겨날 일에 대한 경고이다. 그
권면은 '회개하라'는 것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회복할 것을 의미한다. 만약 회
개하여 신앙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심판이 임하게 된다.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에서
'임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코마이'는 미래적인 현재 중간태
시상으로 지금 그리스도께서 임하고 있다는 현재성과 김급함을 나타낸다(5절; 3:11;
11:14; 22:7,12,20,Johnson). 한편 '내 입의 검'은 '심판의 말씀'을 의미한다(19:15).
마치 하나님이 발람의 추종자들을 칼로 심판하셨던 것처럼(민31:8) 우상이나 황제 숭
배와 타협하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심판하실 것임을 시사한다(엡6:17;
히4:12).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자 밖에는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ㅇ본절은 권면을 듣고 그대로 행함으로 신앙을 지킨 승리자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ㅇ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 '감추었던 만나'는 후손들을 위해
언약궤 안에 두었던 만나 항아리가(출16:32-34; 히9:4) 솔로몬의 성전이 파괴될 때에
예레미야 혹은 천사에 의해 감추어졌다가 장차 메시야 왕국에서 공개 된다는 유대 전
설을 반영한 것으로(마카비하2:4-6; 바룩29:8) 이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
자는 만나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유지할 삶의 능력이 하나님 안
에 감추어져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Swete). (2)혹자는 '감추었던'이란 말은 이 세상에
없고 하늘에만 있다는 의미로 보아 하늘에서만 먹는 양식으로 해석한다(Meyer). (3)혹
자는 '감추었던 만나'는 신령하고 참된 양식으로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를 통해 주어지
는 것으로 해석한다(Greijdanus, Charles, Johnson, 요6:33,39,48).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즉 '감추어진 만나'는 생명나무의 열매와 마찬가지로(7절)
하나님께서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나라에서 주실 영원한 생명을 상징
한다(Beasley-Murray).
ㅇ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 승리한 버가모 교인들에게 두번째로 주어질 것은 새 이
름이 기록된 흰 돌이다. 여기서 '흰'것과 '새'것은 장차 천국에서 맞게 될 모습을 상
징하는 것으로 본서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이다(1:14; 3:4,5,18; 4:4; 6:2,11;
7:9,13,14; 19:11,14; 20:11; 21:1,2,5 Trench, Charles, Plummer). 이 '흰 돌'에 대
한 해석은 여러 가지이다. (1)혹자는 '흰 돌'을 이방의 미신 사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 황제 숭배 사상과 관련있는 것으로 해석한다(Moffatt). (2)혹자는 만나가 하늘에
서 내린 것처럼 하늘에서 내린 흰 돌로 본다(Rist). (3)혹자는 당시의 풍습에서처럼
재앙을 막기 위해 사용한 흰 돌에다 알 수 없는 이름을 새겨 넣은 것으로 본다(Holtz-
mann). (4)혹자는 재판 과정에서 배심원들이 사용한 무죄 표시의 흰 돌로 해석한다
(Clarke, Bengel). (5)혹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대제사장의 흉패에 붙인 보석으
로 본다(Trench). (6)혹자는 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우승의 기념으로 새겨 주었던 흰
돌로 본다(Zahn).(7)혹자는 연회장에서 초대의 표시로 사용한 흰 돌로 본다(Plumptre,
Johnson). 이 가운데서 여섯번째와 일곱번째의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흰 돌'은 하나
님 나라에서 신앙의 정절을 지킨 승리자에게 주는 상급이며,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케하는 상급이다. 한편 '새 이름'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그리스도'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해석한다(Kiddle, Lohmeyer, Rist). (2)혹자는 '부
활을 통해서 새로운 상태에 들어간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Beasley-Murray).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Johnson). 즉 세상에 감
추어져 있으나 장차 드러나게 될 그리스도 자신의 이름이든지(3:12; 14:1), 아니면 구
속받은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이름을 나타낸다.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ㅇ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두아디라'의 옛 이름은 '펠로피아'(Pel-
pia) 혹은 '유힙피아'(Euhiooia)이며, 현재는 '아킷살'(Akhissar)로 불리운다. 이곳은
버가모와 서머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공업 도시로 유명한 곳이었다. 주전
190년 경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태양신 '아폴로'(Apollo)와 '아데미'(Diana), '삼바
다'(Sambatha) 등의 신전이 있었으며, 공업이 발달하게 된 동업 조합이 유명하였다.
빌립보에서 개종한 자주 장사 루디아가 이곳 출신의 여인이었다(행16:14, Johnson).
한편 두아디라 교회가 어떻게 설립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 때 전도하였거나 루디아가 전달하여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ㅇ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그리스도의 모습은 두아디라에서 숭배하던 태양
신 '아폴로'와 거짓 예언자 '이세벧'(20절)을 염두에 두고 경고하시는 것으로 그들의
우상 숭배와 행음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당시 청동업이 발
달한 두아디라에 사는 교인들에게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모습은 생생한 화면처럼 느껴
지는 계시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1:14,15 주석 참조, Johnson, Ramsay). 한편 '하나
님의 아들'이란 언급은 일곱 교회 서신의 서두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 중에서 본절
에만 나타난다. 이는 시2:7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품성의 위엄을 강조하며
(Charles) 두아디라 지방의 우상이면서 제우스의 아들로 여겼던 아폴로나 황제와 대조
를 이루어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사한다(Mounce, Lenski).

19 내가 네게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ㅇ버가모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칭찬은 버가모 교회가 지닌 성숙함에 대한 것이었
다. 본절에는 다섯 가지 칭찬 덕목이 나타난다.
ㅇ사업.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가'는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같은 것으로 연이어 언급되는 '사랑', '믿음', '섬김', '인내' 등의 제반 덕목을 포괄
한다.
ㅇ사랑. - 이것은 에베소 교회가 부족했던 덕목으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마땅히 지
녀야 할 삶의 규범이다(마22:37-4-; 고전12:31-13:3).
ㅇ믿음. -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되는 삶을 가리킨다. 그런데 '믿음'보다 '사
랑'의 덕목이 먼저 언급된 것은 두아디라 교회가 믿음보다 '사랑'을 강조한 듯하다.
그래서 말씀과 믿음의 바탕이 없는 사람들이 '이세벧'같은 이단을 수용한 듯하다.
ㅇ섬김과 인내. - 이는 '사랑'의 외적 표현으로 칭찬받을 만한 훌륭한 덕목이다(롬15
:25; 고전16:15).
ㅇ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 이것은 에베소 교회와는 정반대되는 현상으
로(4절) 두아디라 교회의 신앙 상태가 현저하게 진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에베소
교회가 믿는 도리를 강조하다 사랑을 잃었으나 두아디라는 사랑이 식지 않았고 계속해
서 그 사랑의 사업이 처음보다 더 많아졌음을 나타낸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하고 우상의 재물을 먹게 하는도다

ㅇ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벧을 네가 용압함이
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 구약
성경에서 '이세벧'은 시돈의 왕녀였으나(왕상16:31; 왕하9:7) 이스라엘 왕 '아합'의
왕비가 되어 바알신을 이스라엘에 가져와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 숭배를 하게 함으로
영적 간음을 행하게 하였다. 두아디라 교회에도 거짓 선지자인 이세벧이 있었다. 두아
디라 교회에 있던 '이세벧'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다른 사본에 '이세
벧' 앞에 '너의'(수)가 있어 당시 두아디라 교회 교역자의 아내라 주장한다.
(2)혹자는 특정 인물이기보다는 상징적인 인물로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세벧과 같은 역
할을 하는 이단자라고 주장한다(Alford, Charles, Barclay, Walvoord).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당시 두아디라에 성행했던 조합(組合)과 관련하여 우상의 제
물을 먹고 성적 부도덕에 빠지는 일이 비일 비재했으며 그 거짓 선지자의 정체를 폭로
하기 위해 구약성경의 이세벧이란 명칭을 상징적으로 사용한 듯하다(Alford,Johnson).
사실상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벧의 정체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를 교회 내에서
활동하도록 용납함으로 범죄하였다. 그들은 분명히 이세벧을 징계했어야만 하나 하지
않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편 이세벧이 저지른 죄악
은 두아디라 교인들을 유혹하여 행음케 하고 우상 제물을 먹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세벧의 행위는 에베소와 버가모 교회의 니골라당이나 발람의 가르침과 유사하다(14,
15절).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ㅇ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
'주었으되...아니하는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도카...우 델레이'
에서 '에도카'는 부정 과거형으로 결정적인 경고의 기회가 주어졌음을 나타
내며, '우 델레이'는 현재의 시상으로 지금도 계속하여 회개하기를 원치 않음을 나타
낸다. 거짓 선지자인 이세벧에게도 회개의 기회는 주어졌다. 그러나 '이세벧'은 주어
진 회개의 기회조차도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다(22,23절).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재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ㅇ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 '볼지어다'는 감탄사로 단호한 심판적
경고에 앞서 두아디라 교인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한편 '침상'의 헬라어 '클리
넨'은 '잠자는 침상', '잔치용 상', '환자용 침상' 등을 의미한다.
본문에서의 '클리네'는 죄로 인한 심판과 관련되어 우상 숭배를 위한 상이나 음행을
위한 침상이 병상으로 바뀌어짐을 암시한다(Ramsay, Johnson, Ladd). 실지로 소아시아
의 비문들은 음행의 결과로 질병에 걸려 죽은 사실들을 전하고 있다(Moffatt).
ㅇ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
데 던지고. - '그로 더불어'는 이세벧과 짝한 것을 가리킨다. 이세벧과 뜻을 같이하여
음행하거나 우상 숭배한 모든 자들이 회개치 않는다면 이세벧과 동일하게 심판을 당할
것이다. 한편 '큰 환난 가운데'는 이세벧에게 주어진 심판, 즉 병상에 던져버림을 당
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두아디라 교인들을 유혹하여 행음케 하고 우상을
숭배케 했던 이세벧은 물론 이세벧과 마음을 같이하여 회개치 않는 범죄한 교인들에게
도 동일한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ㅇ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 '그의 자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
다. (1)혹자는 실제로 음행한 자들의 자녀라고 주장한다(Holtzmann, Vincent). (2)혹
자는 이세벧의 가르침과 교훈을 따르는 모든 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harles,Rist,
Morris).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그의 자녀'를 이세벧과 행음하는 자
사이에서 생겨난 자녀로 보기는 어렵다(Ladd). 이러한 심판은 엘리야를 통해 이세벧에
게 경고되고 성취되었던 형벌과 일치한다.(왕상21:21; 왕하9:6-37). 따라서 본문은 이
세벧을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의 형벌을 받는 것이 엄연한 사실임을 보여 준다.
ㅇ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지라. - '모든 교회'라는
언급은 본 서신이 특수한 상황 아래 있는 교회에 보내졌지만 보편적인 모든 교회를 대
상으로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는 시7:9; 렘
11:20 등의 말씀을 반영한 것으로 하나님만의 신적 속성을 그리스도도 소유하심을 시
사한다. '뜻'(네프루스)은 문자적으로 '신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
람의 가장 깊은 생각과 감정의 총체'를 말하며, '마음'(카르디아스)
은 '감정'(롬9:2)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내적 생각과 사상
과 감정 모두를 알고 계심을 나타낸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자기 계시를 통해 두아디라
교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식하게 하고 회개케 하고자
하신다.
ㅇ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엄격
히 드러낸 말로서 하나님이 인간의 중심을 살피실 뿐 아니라 그 행위에 따른 남김 없
는 보응을 행하실 것을 가리킨다(렘17:10; 마 16:27; 롬2:6; 갈6:7).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기 전에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21절).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ㅇ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일지 못하
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 '사단의 깊은 것'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구
원을 얻으려면 신비한 지식을 터득해야 하며 자신들만이 그러한 지식을 가졌다고 하는
영지주의자들의 학설을 말한다고 해석한다(Alford, Clarke, Plummer, Vincent, Rist,
Bruce). (2)혹자는 이세벧이 직접 '사단의 깊은 것'이란 말을 사용하였으며 마땅히 우
상 숭배나, 음행, 또는 이교도들의 깊은 생활을 알아야 더 철저한 영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라고 해석한다(Zahn, Boussett, Spitta, Johnson). 위의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신약 호크마 9권의 공동서신 개론, '공동서신의 이단사상' 참조). 두
아디라 교인들은 죄가 풍성한 곳에 은혜가 더하다는 말씀을 이용하여 죄를 실제로 치
험함으로 은혜를 더욱 값지게 느낄 수 있다는 이세벧의 유혹을 당하였다.
ㅇ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 '다른 짐'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이세벧의 가르침을 따르지 말라는 25절의 명령을 제외한 다른 것으로 본다
(Beckwith, Walvoord, Holtzmann). (2)혹자는 행15장에 나타난 음행이나 우상 숭배에
관한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이외의 것으로 보기도 한다(행15:28,29, Alford, Sweet,
Vincent, Ladd).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벧
의 가르침을 따라 음행과 우상 숭배를 함으로 책망받았다(20절). 그러므로 '다른 짐'
은 음행과 우상 숭배에 대한 교훈을 제외한 다른 교훈을 가리키는 듯하다.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ㅇ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 '너희에게 있는 것'은 두
아디라 교인들이 처음에 가졌던 그리스도에 관한 참된 진리와 소망과 특권을 가리키며
(Ladd, Alford), '내가 올 때까지'라는 말은 성도들의 궁극적인 승리의 날인 그리스도
의 영광스런 재림의 날을 의미한다(Morris, Johnson). 한편 '굳게 잡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테사테'는 단순 과거 명령형으로 단번에 진리라 굳
게 붙잡고 변치 말아야 함을 의미한다. 두아디라 교인들은 이세벧의 유혹에 의해서 음
행과 우상 숭배 그리고 혼합주의의 위험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이세벧
의 유혹을 물리치고 오직 기독교의 진리를 굳게 변치 말 것을 권고하신다.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ㅇ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 '이기는 자'와 '지키는 그에게'라는
언급은 일곱 교회에 보내진 서신의 공통적인 형식으로 진리를 굳게 붙잡으며 그리스도
의 권면을 듣고 순종하는 승리자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또한 '끝까지'는 온전한 승리
자가 되는 시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 시기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이다(25절).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연속되는 사단과의 투쟁이며 그 가운데 인내해야 함을 암시한다.
한편 '내 일'(에르가무)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는
말씀과 연관된 것으로(23절) 이세벧주의자들의 교훈과 가르침에 정반대되며(22절) 이
미 두아디라 교회가 시행하여 칭찬받는 것의 내용을 의미한다(19절).
ㅇ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 본문은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첫번째 약속으로
시2:8,9을 반영한다. 시2편은 메시야의 주권 사상을 노래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하나
님으로부터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것처럼 세상 끝에 그리스도인들도 그 권세에
참여함을 시사한다(1:6; 3:21; 9:10; 11:6; 20:6; 22:14; 마28:28).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ㅇ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
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 본절은 시2:9의 인용으로 철저하게 정복하시는 메시
야 그리스도의 권세의 실체를 나타낸다. '다스려'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마네이'
는 '양을 치다'라는 의미를 가진 '포이마이노'의
미래 능동태로 뒤이어 언급되는 '깨뜨리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쉰트리베타이'
('산산 조각이 나다')와 대조를 이룬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재림
시에 행하실 권세가 한편으로는 '양을 치듯'하며,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깨뜨리는 심판
으로서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Charles, Mounce, Lenski). 즉 그리스도께
서는 재림하셔서 악에 대해 심판함과 동시에 끝까지 인내하는 자에게 승리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임을 나타낸다. 한편 '받은 것이'의 헬라어 '에일레파'
는 완료형으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만국을
다스리는 절대적 왕권을 부여받았음을 암시한다(시2:1-5; 빌2:9-11).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권능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기인한 것임을 자신이 소유한 권세의 신성(神性)
을 강조하고 있다(눅22:29; 요17:18).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ㅇ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승리자에게 주신 두번째
약속이다. 여기서 '새벽 별'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이를 왕의 지배권
을 상징한다고 보아(민24:17; 마2:2)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인내하는 자들에게 주어
질 영광스런 승리로 해석한다(Plumptre). (2)혹자는 영광의 상징이거나(Stuart), 구원
의 상징으로 해석한다(Moffatt). (3)혹자는 22:16에 근거하여 그리스도 자신으로 해석
한다(눅23:43, Victor, Bleek, Charles, Johnson, Kiddle). 이 세 가지 견해 중 마지
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본문은 시2편을 반영하며, 그 의미 역시 시2편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승리한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께서 동행하심으로 어두움에 대한 온전한 승리를 획득할 것이다.

29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ㅇ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본문은 일곱 교회에
보내진 서신의 결론적 어구로서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권면과 인도에 귀기울여
청종해야 함을 강조하는 명령이다(7절 주석 참조).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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