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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누가복음

[스크랩] 누가복음 17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09:02

누가복음 17장

 

 

용서, 믿음, 종이 할 일(마 18:6-7; 21:22; 막 9:42)

(눅 17: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눅 17: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눅 17: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눅 17: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눅 17: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눅 17: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마17:20, 막11:23, 마21:21
(눅 17: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1)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눅 17: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눅 17: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눅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롬3:12

나병환자 열 명이 깨끗함을 받다

(눅 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눅 17: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눅 17: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눅 17: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눅 17: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눅 17: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눅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 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마9:22
(눅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마 24:23-28, 37-41)

(눅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롬14:17
(눅 17: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마9:15
(눅 17: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눅 17: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살후2:2
(눅 17: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눅 17: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마24:37
(눅 17: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눅 17: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눅 17: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눅 17: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살후1:7
(눅 17: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막13:15, 창19:26, 눅9:62
(눅 17: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눅 17: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눅 17: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눅 17: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마24:41
(눅 17:36) 2)(없음)
(눅 17:37)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욥39:30, 마24:28


1. 헬, 기대어 누워 있는지라(유대인이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 2. 어떤 고대 사본에, 36절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가 있음


17:1-4 죄의 유혹과 용서에 대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져야할 태도를 가르치신다. 15, 16장에 바리새인을 향한 비유를 충분히 하신 만큼 이번에는 제자들에게도 바리새인들과 같이 미혹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시면서 이야기를 주신다.
1절 실족케 하는 것 skavndala(스칸달라) "올가미, 함정, 장애물"로 번역하기 힘든 단어이다.
눅7:23에서는 동사형으로 사용되었는데, 함정으로 유인하는 것을 말한다. 2절 예수께서는 무서운 말씀을 하신다. 연자 맷돌이란 곡식이나 빻을 때 사용하는 무거운 돌이다. 이것을 목에 걸고 익사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신다. 이것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을 그토록 아끼시고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소자란 어린아이로 볼 수도 있으나 아직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신자들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막10:24, 눅10:21 참고).
이런 무서운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은 4절 일곱번이라도 ... 용서하라는 것이다(
마18:21-22 참고). 일곱의 수는 온전한 것을 뜻하고 있으며, 여덟 번째의 잘못은 용서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언제나 습관처럼 용서하는 것을 몸에 배게 하라는 것이다(시119:164). 당시의 유대에서는 세 번 용서하는 것이 최고의 수준이었다.

17:5-10 종의 의무
제자들은 이러한 용서를 할 수 있을 정도라면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께 5절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고백한다. 제자들은 큰 믿음, 즉 어떤 특별한 능력의 믿음을 예수께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6절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이라고 하셨다. 겨자씨는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작은 것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속담 용어이다. 뽕나무 sukamivnw/(수카미네)라는 나무가 정확하게 어떤 나무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 뿌리가 깊게 넓게 자라고 높이는 10-15m에 이르는 뽕나무를 상징한다고 본다. 이 나무를 옮긴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불가능한 일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마17:20, 막21:21, 막11:23에는 뽕나무가 아니라 '산'으로 나온다.
9절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하나님의 일꾼들도 마땅히 하나님의 일을 해야함을 말한다. 종이 대가를 바라고 주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다.
10절 무익한 ajcrei'oiv(아크레이오이)은 "가치 없는, 쓸모 없는"의 뜻이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매우 번역하기 힘든 단어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봉사에 하나님께 무엇을 청구할 근거가 되지 못하며 오직 종으로서의 의미를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것으로도 주인의
은혜에 다 갚은 것이 아니라 결코 값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종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17:11-19 열 문둥병자
11절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는 지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난제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명쾌한 해석이 나오지 못한다. 여기에 언급된 지명들은 모두 요단강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예루살렘이 제일 아래에 있고, 갈릴리가 제일 북쪽에, 그리고 중간에 사마리아가 있다. 그러니까 갈릴리에서 내려온다고 해도 사마리아갈릴리 사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마리아갈릴리 사이가 되려면 사실상 갈릴리가 아니라 베뢰아가 되어야 맞는다. 그러나 베뢰아갈릴리의 한 부분으로 인정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사용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마샬은(I.H. Marshall)은 여기서 누가사마리아를 먼저 언급한 것은 열 명의 문둥병자 이야기 속에서 사마리아 사람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기록했다고 보고있다.

문둥병(Leprosy), 히 t['r;x;(차라트), 헬 lepra(레프라)
피부병의 일종으로 발진성(發疹性)의 피부병에 걸리는 것을 말하는 어근에서 파생되었다. 문둥병은 고대의 메소포타미아와 동방에서 잘 알려진 병으로, 그 기록은 B.C. 3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 미라에서는 한 건의 문둥병의 예가 발견되어 이 사람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주해온 사람이라는 가정도 낳았다.
중세기에는 문둥병이라는 말은 일정 기간에 걸쳐 거친 비닐 모양의 반점이 나오는 거의 모든 피부병을 의미했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어떤 특정의 피부병에 걸리면 감염된 피부 부위가 무감각해진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그 원인이 되는 유기물이 1871년 한센에 의해서 발견되었는데, 그는 문둥병이 미소한 분영균류인 나병균(Mycobacterium leprae:일명 한센씨균)의 감염임을 밝혔다.
문둥병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길 수도 있는데 이 병이 발생하면
제사장에게 보이고 제사장은 진단할 책임이 부여되었다(레13:2-17). 제사장이 다시 진단했을 때 환자에게 난육이 발생한 것이 밝혀지면 그는 '부정하다'라는 선고를 받아야 했다(레13:14). 그러나 색소가 결여된 흰 반점을 특징으로 하는 피부병 즉, 원형(圓形) 탈모증(대머리)은 문둥병 특유의 발진이 병발하지 않으면 정한 상태였다(레13:40-41). 만성 문둥병으로 진단되면 환자는 사회에서 추방되었으며, 구별되는 옷차림을 하고 자기의 부정함을 외치도록 명령을 받았다.
병이 저절로 나아 정해지면
레14:1-32에 의식규정이 규정되어 있다. 문둥병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성경에서 문둥병이 죄의 일종으로 언급된 예는 전혀 없다. 레13:14의 '부정하다'는 병에 대해서 언급된 말이지 죄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실상 이 부분에서 사람들은 후에 문둥병이 죄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문둥병이 고침을 받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라고 생각되었는데,
모세에게 돌발한 병(출4:7)의 성격이 불 문명한 한편 누이 미리암의 문둥병(민12:10-15)은 일시적인 성격으로 건선이었을 것이다. 나아만이 걸렸던 병(왕하5장)은 한센씨병이라고 보기보다는 피부질환인 백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멀리 서서 이들이 격리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많은 군중들 사이에 둘러싸인 예수께 가까이 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최대한 소리 높여 외쳤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고쳐달라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지만 이들의 요구는 당연히 병을 고쳐 달라는 것이었다. 자신들에게 긍휼은 병 고치는 일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14절 예수께서는 그들의 몸에 손을 데시거나 '너희 병이 나았다' 등의 어떤 말씀이나 행동도 하지 않으시고 다만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다.
레위기 14:2이하에 있는 규례 대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문둥병의 나음을 확인하라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이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계셨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모두 기적이 일어났다.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께로 돌아왔다. 정상적으로 사회에 가입할 수 있는
제사장에게 받은 증명서를 제쳐두고 그 모든 기쁨을 하나님과 예수께 돌리기 위해서 찾은 것이다. 누가는 이 사람이 사마리아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유대인과는 상종치 아니하는 이방인이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마땅히 감사해야할 다른 병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모든 감사는 그때그때 빨리 해야하는 것이다. 미루거나 다음은, 그 기회가 잃어버리거나 오지 않을 수 있다.
17절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는 말씀은
창3:9의 하나님이 아담을 찾으시던 말씀과 똑같은 상황이다.
19절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sevswkevn(세소켄)은 "낫게하다, 구원하다"의 뜻으로 그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이 구원되었음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만일 이 문둥병자도 예수께 돌아오지 않았다면 이러한 축복의 말씀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원어의 단어는 (
마9:22, 막5:34, 막10:52, 눅7:50, 눅8:48, 눅18:42)에도 나타난다.

17:20-21 하나님 나라
20절 바리새인들은 예수께 제일 많은 질문을 의도적으로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질문한 세력이다. 이 사람들은 본문에서도 불순한 의도나 생각이 있다는 것을 지울 수는 없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구약에 예언된 '주의 날'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사11:10, 사13:13, 렘31:31, 슥13:1, 말3:2). 그러나 유대인의 생각 속에는 다윗과 같은 왕이 오셔서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 세상의 통치권을 자신들이 잡는 그런 날을 묻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대답은 볼 수 있게 meta; parathrhvsew"(메타 파라테레세오스)란 성경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보이는 단어로 설명하신다. 이 말은 고대 헬라어에서 '어떤 병의 증상을 철저하게 관찰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병의 증상이 슬며시 찾아온 것처럼 주님이 오심도
바리새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미 21절 너희 안에 있느니라 ejnto;" uJmw'n(엔토스 휘몬) "너희 가운데"의 뜻으로 '너희들 사이'에 있다, 즉 예수그리스도의 인격(Person)과 사역(ministry) 속에 현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좁은 의미의 '안에' 또는 지나치게 영적으로 '심령'등으로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오히려 포괄적인 의미에서 역사적이면서 초월적이라는 것이다.
눅11:20에서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였다.

17:22-37 재림 때의 사건들
마24:23-28, 37-41 비교하라
22절 인자의 날 하루는 정확히 어느 때를 가리키는지 우리는 본문의 문장으로 파악하기 힘들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 제자들의 추억으로 보기도 하고, 벵겔(Bengel)은주님이 오시기 전의 날들로 해석하면서 눅9:51에 "승천하실 기약이 차매..."를 인용하였다. 또한 초대 교인들이 겪은 무서운 핍박을 반영한 누가의 기록으로, 고난이 하도 심하기 때문에 '주의 날'로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23-24절로 보아 전체적으로
메시야의 재림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한 것 같다.

26-28절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마지막 때 역시 처음 심판이 내려지던 노아의 때처럼 마지막 심판 때도 역시 같은 광경이 벌어질 것이라고 설명하신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상일에 바빠서 하나님의 생각을 헤아리지 못하고, 결국 준비하지 못하여 갑자기 당하게 되는 것처럼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을 예고하신다.
29-30절 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고 하심으로 이미 역사에 있었던 심판의 모습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하지만 이 때는 전 우주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고 마지막의 심판이기에 피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모든 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기 때문에 지난날에서 교훈을 얻되, 비교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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