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마가복음

[스크랩] 마가복음 16장 강해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08:56

마가복음 16장


1.
예수께서 돌아가신 날이 금요일, 부활이 주일 새벽이면 어떻게 사흘만인가?

    가장 짧은 2박 3일인 셈이다. 한국식으로는 이틀이면 2살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흘 만에'라는 표현과 조금 차이가 있다. 아마도 유대식 '사흘 만에'라고 보아야겠다.

2. 이 세 여자들의 이름을 어디에서 봤더라?

    막 15:40에서: 많은 여자들이 있었다고 하면서 이 세 사람의 이름을 대표로 기록한 것은 부활을 처음 목격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서 두 명은 무덤까지 확인했다.

3. 이 여자들을 대단히 용감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제자들도 도망가버린 판에 장례를 다 치르기까지 죽음을 지켜보았고, 이른 새벽에 무덤을 찾아감

4. 이 여자들은 전혀 겁이 없었는가?

    아니다. 걱정도 있었고 막상 천사를 만나고는 무서워 말도 하지 못했다: 예수의 부활을 예상하지 못했고 청년의 모습을 한 천사를 귀신으로 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겁이 많은 모습이 본래 모습일 것이다. 그럼에도 예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용기를 낸 것이다.

5. 어떻게 보면 이 여인들은 대책없는 여자들이다. 어떤 점이 그런가?

    죽은 시체에 향료를 바르려고 찾아감: 유대인들에게 시체를 접촉하는 것은 부정한 행위이며 더구나 장례를 치른 사람에게 향유를 바르는 법이 유대인들에게는 없었다. 두려움, 냄새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무덤 문을 굴릴 방법도 없이 무작정: 보통은 돌무덤 앞에 홈을 파서 큰 돌을 경사지게 막아둔다. 열려면 경사로를 따라 돌을 굴려 올려야 한다.

    사랑이 지극하면 때로는 이렇게 무대책(국경 초월, 율법 초월, 전통 초월)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시체를 손대려는 것은 유대인들이 무척 꺼리는 일이다. 더구나 이미 돌아가셨는데? 이기심으로 따르는 경우에는 그 사람이 권력을 잃거나 죽으면 다 흩어진다. 죽음 이후에도 이렇게 정성을 다 하려는 것은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얼마나 큰사랑을 베푸셨는지 알 수 있다. 유일한 흠이 '믿지 못했다'는 것이다.

6. 이 여자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갑작스런 일이었다. 향품을 미리 준비해두지 않았다고 본다면 언제 샀을까?

    안식일이 끝난 저녁에: 해지고 난 후에 샀을 것이다.

7. 이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간 시간을 '매우 일찍이(어두울 때) 해 돋은 때에'란다. 마가는 바보인가? 아니면 왜 이렇게 헷갈리게 썼을까?

    어두울 때 집을 나섰고 해 돋은 때에 무덤에 도착했을 것: 다른 복음서의 표현도 새벽에 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미명에-마, 새벽에-눅, 이른 아침 어두울 때-요). 이 시간은 기독교가 태어나는 놀라운 시간이다.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시간에 이 여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도 모른 채 걱정하며 무덤을 찾아갔다.

8. 예수께서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만날 것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를 버리고 떠나버린 제자들을 불러모아 '다시 시작하자'고 하시는 셈이다. 가정이 깨어질 위기에 처한 부부가 회복을 위해서 처음 만났던 곳을 찾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원래 예수님의 주된 사역지는 갈릴리였다. 유월절이 다가옴에 따라 죽으려고 예루살렘으로 오셨다. 이제 다시 제자들과 함께 사역했던 그 곳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셔서 돌아가시기 전에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기도 하다. 온갖 추억이 깃든 갈릴리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말이다.

9.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하라고 하면서 하필이면 '제자들과 베드로에게'라고 하는가? 베드로가 제자들의 대표라는 점 외에 달리 그럴 이유가 있다면?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하고 실의에 빠져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을 베드로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10.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란다. 끝까지 그랬을까? 제자들에게 전하지 못했을까?

    초기 증상이다: 처음에는 그랬다는 말이다. 마가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만으로 복음서를 끝냈다(8). 예수의 지상사역을 부활함으로 완성되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11. 많은 고대 사본에는 8절 이후의 기록이 없다. 그렇다면 마가는 8절까지만 기록했고 그 다음 부분은 초대교회가 덧붙인 것으로 판단된다. 덧붙인 부분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제자들의 불신을 꾸짖음, 새로운 사명을 주심: 성경을 함부로 덧붙일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현대의 모든 교회가 일치를 본다고 해도 성경을 고쳐 쓸 수는 없다. 다만 정경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초대 교회가 수용한 것'은 정경의 중요한 기준이었다. 이 부분이 마가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초대교회가 그 내용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정경의 형성과정상의 문제가 있거나 다른 본문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배척되었을 것이다.

< 9-20 >

12. 이 부분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첨가된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한다. 사용된 단어의 빈도나 의미, 표현 양식의 차이점도 있지만 일반인의 눈으로 보아도 어떤 점에서 연결이 어색한가?

    막달라 마리아를 새삼스럽게 다시 설명하는 부분: 이 부분이 본래부터 마가복음의 일부였다면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이란 표현은 마리아가 처음 등장할 때(15장이나 16장 초)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라는 표현도 중복이다(1, 9절).

13. 제자들은 초지일관으로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이 기록을 읽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들의 위대한 스승들이 그랬다는 것은 어떤 유익이 있을까?

    학창 시절에 사고를 많이 친 사람이 선생이 되면 오히려 말썽꾸러기들을 잘 가르친다고 한다. 제자들의 이런 행위는 아마도 부활을 믿지 못하던 초대교회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유익했을 것이다. '너희만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믿고 있으며 이 일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증거하지 있지 않느냐?' '우리도 그랬다'는 말은 대단히 위력적인 말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의도로 부끄러운 기록은 계속 강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먼 훗날의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도 정상이 아닐까? 믿는 우리가 비정상인가? 복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다.

14.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증거를 여러 가지 말씀하셨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믿는 자들에게 이런 현상을 보기 어려운 것 같다. 잘 믿지 않아서 그런가?

    복음이 처음에 전하여질 때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났고 지금도 선교사들의 보고에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믿는 사람이 이런 이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애쓸 때 주님께서 이렇게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15. 예수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이 시체를 도적하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본문을 근거로 대답한다면?

    여자들에게는 문을 굴릴 능력도 없고, 제자들은 슬퍼하며 울고 있었고, 부활했다는 말을 믿지도 않았다.

16. 성경에서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로암미가 암미로, 로루하마가 루하마로 바뀐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이다. 고유명사는 아니지만 그처럼 이름(?)이 바뀐 것이 보인다. 무슨 이름이 어떻게 변했는가?

    '열 두 제자'가 '열 한 제자'로:

17.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도 제자들은 원칙적으로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다. 이것은 예수님의 어떤 말씀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인가?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어긴 셈이다. 결국은 성령의 강권하심에 따라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해진다.

18.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란다. 믿고 세례를 안 받으면 어떻게 되나?

    세례는 믿는 것에 대한 외적 표현일 뿐이다. 세례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 중요하다.

19. 17-18절은 믿는 자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아니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복음을 전하는 것과 관련된다. 믿음을 가지게 하고 그것을 위하여 헌신하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놀라운 권능으로 함께 하겠다는 말이지 미신처럼, 개인적인 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말이 아니다. 불을 처음 붙일 때는 불쏘시개가 필요하다. 잘 타고 있는 불에 불쏘시개를 자꾸 집어넣어서는 안된다. 불피우는 일과 관계없이 불쏘시개로 불장난을 해서는 더욱 안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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