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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신약/마가복음

[스크랩] 마가복음 14(2)장 강해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08:55

마가복음 14(2)장


< 43-52 >

26. 유다가 배신하고 군인들에게 한 말(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은 어떤 느낌을 주는가(44)?

    실수하지 않게, 위험 인물이니까, 쉽게 다루면 큰일난다: 예수의 능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일 것.

27.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가긴 했지만 좀 과장을 해서라도 상세하게 기록하고 싶은 것이 없었을까?

    베드로의 용감성에 대하여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일부러 이름조차 기록하지 않았다.

28. 잡으러 온 자들에게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자포자기? 끝까지 최선의 방어?

    저항하지 않음: 성경이 말하는 대로 따라갈 뿐이었다.

29. 가룟 유다의 배신에 대하여 제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아무런 분노도 원한도 없는 듯 평온하다. 유다 개인에게는 전혀 불쾌한 감정을 나타내지 않은 듯 하다.

30. 별 4개 달린 장군이 강등되어 어느 날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있다면 엄청난 충격이다. 그만한 신분 변화를 본문에서 찾는다면?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예수를 파는 자'로 바뀐 것: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열둘 중의 하나'란 말은 권위와 존경 그 자체이었다. 영광스러운 이름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변하여 '예수를 파는 자'로 전락되었다.

31. '악어의 눈물'이라는 말이 있다. 짐승을 잡아먹기 전에 죽는 짐승이 불쌍해서 눈물이라도 뿌리고 죽이는가? 그렇다면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아마 특이하게 생긴 악어의 눈을 보고 사람들이 그런 말을 만들지 않았을까? 악어에게는 죄가 없을 것 같은데... 그것보다 더 가증스러운 것이 본문에 있다면?

    유다의 입맞춤: 랍비여, 즉 '존경하는 나의 스승이시여'라는 뜻이다. 이 말이 잡아야 할 자를 가리키는 배신의 신호로 쓰였다. 아 가증스러운 인간!

32.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나왔느냐?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지 않느냐?' 이 말씀은 항변인가? 책망인가?

    이 말씀의 핵심은 바로 다음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에 있다: 너희들이 나를 강도처럼 다룬다고 내가 강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이 그러하기 때문에 내가 강도처럼 체포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33. 벗은 몸으로 도망간 청년은 누구일까? 베 홑이불이란 원어상 아주 귀한 고급 천이다.

    아마 마가 자신일 것이다: 비밀스럽게 유월절 마지막 만찬을 행한 곳이 마가의 다락방이었고, 나이도 가장 어려서 정식 제자가 되지는 않았다. 자다가 집 앞으로 지나가는 무리를 따라 왔다가... 아마 마지막 만찬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있었던 것 같다. 그 후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겟세마네로 가고 마가는 잠을 잤을 것이다. 예수를 잡으러 가는 자들이 일단 식사 장소였던 마가의 집에 들이닥쳤을 테고, 뭔가 불길한 낌새를 챈 마가는 잠자든 그대로 홑이불을 두르고 따라 갔을 수도 있다. 더구나 그가 두르고 있던 베 홑이불은 아주 귀한 고급 천이었으므로 부유했던 마가에게는 어울리는 것이었다.

34. 예수가 잡히시는 순간에 멋있는 제자는 하나도 없다. 장렬하게 죽거나 용감하게 싸운 자도 없다. 칼을 휘둘러 본 제자가 한 사람 있긴 있었으니 체면이라도 세운 셈인가?

    그나마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한번 휘둘렀는데 예수는 초능력을 발휘할 기미가 전혀 없다. 그래서 다들 도망가버렸다. 몇 시간 전의 호언장담은 어디로 가고? 그야, 예수님께서 능력을 보이실 줄로 생각하고 한 얘기지... 이럴 줄 알았나! 그런가?

< 53-65 >

35. 예수님에 대한 이 재판은 온통 불법투성이다. 어떤 점이 불법일까?

    야간에 체포해서 바로 재판함: 중요한 소송은 야간 재판이 금지되었고, 이틀에 걸쳐 심리하도록 되어있었음
    장소가 사택임: 산헤드린 공회는 광장이나 공회당에서 열려야 함
    변호인이 없음
    자백 외에 증거가 없음
    형을 미리 정해두고 증거를 찾음(55)
    (안식일이나 축일에는 심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월절에 재판을 끝냄)

36. 재판을 이끌고 있는 대제사장의 고민은 무엇일까?

    시간은 없는데 제대로 된 증인이 없는 것

37. 그래서 궁리한 방법은?

    피고 자신의 말에서 고소할 근거를 찾음: 묵비권을 행사하면 그나마 건더기도 없는 셈이다. 그런데 대답을 않던 예수께서 적절한 대답을 해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일종의 유도심문을 노린 셈이다.

38. 거짓 증인이 하는 말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아닌가(요 2:19)?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은 있다. 요 2:19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셨지만 자신이 헐겠다는 뜻은 아니다. 예레미야보다도 더 표현이 약하다(렘 26:8-9). 오히려 성전된 자신에 대한 말씀이었지만 악의적으로 곡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나마 다른 증인들과 일치하지 않았다.

39. 거짓 증언을 하는 일은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신 19:16-20에,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아무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 말함이 있으면 그 논쟁하는 양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시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 후부터는 이런 악을 너희 중에서 다시 행하지 아니하리라'고 한다. 만일 예수님에 대한 재판이 공정한 재판이었다면 이 거짓증인들은 어떤 벌을 받아야 하나?

    사형: 예수를 죽이려고 거짓증언을 했으므로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라는 말씀대로 하면 죽어야한다. 그럼에도 거짓 증인이 많았다는 것은 제사장의 비호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40. 제대로 재판이 진행되지 않자 대제사장이 직접 나섰다. 대제사장이 예수를 심문할 때 만약 변호사가 있었다면 어느 대목에서 이의를 신청하고 나섰을까?

    61절 하반절: 유도신문이기 때문이다.

41. 대제사장의 질문에 예수님은 왜 대답을 않으셨을까?

    죽기 위하여 오신 분이니까 살려고 애쓸 이유가 없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성경을 이루려하심이다(사 53:7, 시 38:13-14). 그런데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대답을 하셨다. 더구나 그 전에는 자신이 메시야임을 구나 그 전에는 자신이 메시야임을 숨기시던 분이... 죽으려고 작정하신 분이다.

42. 대제사장의 질문 '네가 그리스도냐?'에 대해서 '내가 그니라'는 대답은 능력만 보여주면 신성모독이 아니다. 유대인들이 가졌던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은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갖게 된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탁월한 인간이나, 선지자 정도이었기 때문이다(11:9-10). 그러면 무슨 대답이 그렇게 참람한가?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권능자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뜻하며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는 것은 단 7:13절을 원용하여 심판주로 오실 것을 뜻한다. 아무 말씀도 않으시던 예수님은 대적자들이 노리는 바로 그 완벽한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대답을 하셨다. 대제사장이 겉으로야 분노, 슬픔, 고통의 표현으로 옷을 찢고 난리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통쾌하였을까? 어리석은 놈! 누가 누구를 보고? 옷을 찢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처럼 죄인에게 심판을 하실 것이라는 상징이기도 하다.

43. 실제로는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형식상으로는 하나님을 대단히 경외하는 것처럼 보이는 말투는?

    하나님을 '찬송받을 자'라고 표현하는 것(61):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성호를 대단히 두렵게 다루어서 부르지도 않았거니와 쓰는 것도 극도로 주의하였다. 하나님을 직접 부르지 않고 완곡하게 부르기 위한 표현이다. 형식상으로는 대단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같은데...

44.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선지자 노릇을 하라고 하는 것이 무슨 말인가? 아이들의 어떤 놀이와 비슷한가?

    너를 때리는 자가 누구인지 맞추어보라는 말이다. 그것도 모르면서 무슨 선지자냐는 것이다. 뒤에서 꼭 찌르고는 '어느 손가락?' 하고 손을 내미는 것과 비슷하다.

45. 재판을 받고 있는 예수와 멀리서 동정을 살피다가 들킨 베드로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기도로 준비하여 초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예수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도 모른 채 자신만 믿고 큰소리치다가 철저하게 무너지는 베드로

46. 아무런 용기도 없는 베드로가 무엇 하러 멀찍이서라도 따라갔을까?

    자신이 한 말도 있지만, 혹시라도 초능력을 발휘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47. 예수를 따르더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바짝 따라가야 한다. 베드로처럼 멀찍이서 따라가면 실족하게 된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겠지만 어딘가 분적으로는 맞는 말이겠지만 어딘가 좀 논리적이지 못해 보인다. 베드로가 실족한 원인이 무얼까?

    기도하라고 할 때 기도하지 않고 졸았던 것, 멀찍이 따라간 것,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리라고 할 때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자신만 믿고 펄쩍 뛴 것 등이 다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 어느 하나만을 지적해서는 곤란하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신앙적 미성숙이 원인 아니겠는가? 앞에서 든 것들은 그것의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 66-72 >

48. 베드로의 정체가 어떻게 탄로 났을까?

    불빛에 모습이 드러난 것(67)과 말씨 때문(70, 갈릴리 사람, 마 26:73): 베드로의 정체를 알아낸 대제사장의 비자는 아마도 대제사장의 명을 받아 가끔 예수를 감시하거나 시험하는 일에 출장 다닌 사람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베드로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숨어 있으려면 잘 숨어있지 말은 왜 해서 들키나? 별로 지혜롭지 않았던 모양이다. 말씨도 지방마다 달라서 단 한 두 마디로 출신 성분이 드러난다는 것도 참으로 묘한 일이다. 사람이 언뜻 보기에 비슷해도 천차만별이고, 같은 말이라도 지방마다 다르다는 것은 놀라운 지혜자의 작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49. 왜 부인해버렸을까? 심지어 맹세까지 하면서?

    제 정신이 아니다: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죽을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예수님이 진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50. 마가복음이 기록될 당시의 가장 능력있는 사도요 교회의 어른인 베드로가 누구 앞에서 예수를  부인했다고 기록하고 있는가?

    비자: 작은 계집 종 앞에서 이런 추한 모습을 보였다? 사람의 이야기에는 절대로 이런 식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위인전에는 결코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51. 예수를 가리켜서 '나사렛 예수'라 하고 베드로를 가리켜 '갈릴리 사람'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듣는 것과 당시의 표현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 당시에는 어떤 느낌을 담고 있는 말일까?

    무시하거나, 경멸적인 표현이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요 1:46)?

52. 베드로가 저지른 엄청난 실수를 보면서 마가복음의 독자들, 특히 로마에 있는 이방인 성도들은 어떤 교훈을 받았을까?

    점증하는 로마의 핍박을 예상하면서 베드로처럼 실수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혹시라도 실수한 신자들에게는 베드로처럼 회개의 가능성을 가지지 않았을까? 교훈을 잘못 받은 사람은 '저 정도의 죄도 용서받았는데 이 정도야 용서하시지 않을까?'하면서 죄를 짓는다?

53. 회개하고 돌이킨 후 위대한 사도가 된 베드로는 이 사건을 기억하며 제자들에게 무슨 말을 전해주었을까? (참고, 벧전4:7, 5:8, 벧후3:17)

    근신하라 깨어라, 기도하라, 떨어질까 주의하라

54. 이번 일만 제외하면 베드로는 용기있고 의리있는 사나이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인간적인 의리와 용기가 얼마나 힘없는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 때문에 일을 더 그르치는 경우도 많다.

55. (Nonsense Quiz) 예수를 부인한 그 날 이후 베드로에게는 병이 하나 생겼다. 일종의 정신병인데 깜짝 깜짝 놀라는 병이다. 물론 사전에도 없는 병인데 이름이 뭘까?

    닭소리 알레르기(닭울음 놀람증)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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