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마가복음

[스크랩] 마가복음 7장 강해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08:53

마가복음 7장


< 막 7:1-23 >

1. 유대인들에게는 필요없지만 이방인을 위하여 덧붙인 설명을 세 군데만 찾아봅시다.

    2절의 '씻지 않은 손': 부정한 손이란 '씻지 않은 손'을 가리킨다는 설명,
    3-4절: 유대인들에게 손, 그릇, 주발, 몸을 씻는 관습이 있다는 설명,
    11절의 '하나님께 드림': 고르반의 의미를 설명한 것: 고르반이라고 하면 하나님께 드린 것이므로 부모님께 아무 의무가 없다.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자신이 착복한 셈이다.

2. 다음 표현과 대조적인 표현들을 찾아보자.

    입술(6) ↔ 마음(6)
    장로들(사람)의 유전(3, 5, 7, 8, 13) ↔ 하나님의 계명(8, 9, 13)
    모세의 말(10) ↔ 너희의 말(11)
    부모를 공경하라(10) ↔ 고르반(11)

3.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왜 '예루살렘에서 왔다'고 표현하는가?

    예수님의 사역은 예루살렘과 멀리 떨어진 갈릴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으므로 이들이 적은 노력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 흠잡을 일을 찾기 위해서 고의로 왔음을 말한다. 3:22에서 일차 실패하고 아마 2차로 파송되어 왔을 것이다.

4. 1) 여러분이 예수님을 찾아갔다면 제일 먼저 무엇이 보였을까? 2) 볼 것이 많았을 텐데 왜 하필이면 몇 제자가 손 씻지 않고 식사하는 것이 보이는가?

    1) 와 많다(군중들). 대단한 능력(기적적인 치유), 열 둘이나 되는 제자들?
    2) 사람의 눈은 보고 싶어하는 대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 관심있는 것만 보인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경향이 있다. 흠을 잡으려고 온 그들에게는 당연히 그런 것만 보인다.

5.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도록 되어있는데 '왜 씻지 않느냐'는 것이 잘못인가?

    언뜻 보기에 위생상, 전통상으로는 바리새인들의 말이 옳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지적하는 것은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장로의 유전을 왜 지키지 않느냐는 형식상, 의식상의 문제인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예수님은 그것을 빌미로 하여 '하나님의 계명은 잊어버리고 장로의 유전, 즉 형식만 중시하는 것'을 비판하셨다. 바리새인들의 지적은 일부는 옳지만 그것을 근거로 더 큰 잘못을 지적하셨다. 엄밀히 말하면 일종의 동문서답인 셈이다.

6. 우리가 꼭 손을 씻어야 하는 경우를 말한다면 '화장실' 다녀온 때라고 할텐데 유대인들은 왜 하필이면 '시장'일까?

    많은 사람을 접하게 되면 그 중에는 부정한 사람이 끼여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레 15장 참고). 그러니까 위생상의 문제(신체상으로 더러운 것에 접촉하는 것)가 아니라, 정결례의 문제(결례법상으로 부정한 것에 접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7. 고르반이란 하나님께 드린 물건이란 뜻이다. 그것이 어떻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가?

    부모에게 드리면 유익이 된다는 것은 부모도 갖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에게 드리지 않고 자기가 갖고 싶을 때 '이것은 고르반입니다'해서 부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핑계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교회나 하나님을 핑계로 마땅히 해야 할 일에서 요리조리 다 빠지는 것이 그런 경우이다.

8. 1) 왜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하는가? 2) 제사음식이나, 술, 담배도 그런가? 3) 침이나 가래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니 더러운 것인가?

    1)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가치가 육체가 아닌 영에 있다면 들어가는 것은 전부 육과 관련된 것이므로 영을 더럽히지 못한다.

    2) 그 자체가 부정하거나 더러운 것이 아니라 건덕상의 문제로 금한 것일 뿐이다. 박태선파에서 술을 금하는 이유는 몸에 술이 묻으면 부활 때 그 부분은 썩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웃기는 이야기다. 우리가 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대적 부정함 때문도 아니고, 술 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라 단지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 때문이다. 술 한잔했다고 큰 일이 나는 것이 아니다.

    3) 육과 관련된 것이므로 예수님이 말하시는 '나오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위생상, 기분상으로는 좋지 못하다.

9. 제자들의 질문(17)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 1) '그 비유의 의미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2) 너무도 당연한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너희도'라는 말씀을 보면 청중들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1) 그게 어떻게 비유냐? 15-16절은 비유가 아니다.
    2)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당연하지만 예수님의 그 말씀이 당시에는 그만큼 파격적(폭탄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10. 모든 식물은 깨끗하다(19). 이것은 글자 그대로 폭탄선언이다. 유대의 전통을 깡그리 부수는 선언인데 결과적으로 나중에 어떤 일을 가능케하는가?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고넬료 사건(행10:1-16):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다면 부정한 것이 있을 수 없다는 말씀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 교훈을 생각했을 것이다. 음식에 대한 교훈이 결과적으로 부정하다고 상종도 하지 않았던 이방인과 상종하게 만들어버렸다. 복음이 유대교를 넘어서 이방인을 향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사건이다. 그 외에도,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갈2:11-14), 롬 14장, 고전 8, 10장, 골 2:16 등의 말씀에 반영되어 있다.

11. 하나님의 계명도 지키고 사람의 계명도 지키는 일은 불가능한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염두에 두고 왜 이런 규칙이 주어진 것인지 생각하면서 살면 된다. 좀 피곤하겠지만 계명을 주신 본래의 의미 혹은 의도를 생각하자. 십계명을 중요시하면서 서문을 간과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무시하는 전형적인 예이다.

12.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나쁜 것 중에 1) 하나님과 관련된 조항이 왜 없을까? 2) 가장 나쁜 것은? 3) 가장 흔한 것은? 4) 전부 몇 가지인가?

    1) 문제 제기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은 섬기는 전제 하에서 부정하지 않은 삶을 사는 방법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2) ???(다수결이나 토론으로)
    3) 탐욕, 음란
    4) 12가지

13. 장로의 유전이란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만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 혹독하게 비판을 받게된 원인을 두 가지만 지적해보자.

    형식에 치우친 것(외식), 자기 욕심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것(고르반):

< 마 7:24-30 >

14. 배경을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자. 1) 이 여인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2) Korean-American은 인종적으로는 한국인이지만 국적은 미국인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을 찾으면? 3) 어느 지역의 사람인가?

    1) 헬라인(언어학 상), 2) 수로(시리아 지역의)보니게(페니키아인), 3) 두로(지금 레바논의 페니키아)

15. 예수님께서 두로에 간 이유가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함(선교, 치병 등의 공적인 목적)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무도 모르게 숨으려했으므로(24)

16. 공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왜 국경을 넘어 잠적하려했을까?

    앞의 폭탄선언과 관련해서 격해지는 박해를 잠시 피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목숨까지 걸고 지키던 규례와 규정들을 깡그리 무시해 버렸으니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몹시 격분해 있었을 것이다. 잠시 냉각기가 필요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휴식(6장에서도 휴식에 방해를 받음): 잠시 쉼도 없이 교회를 섬긴다고 뛰어 다니는 젊은 교역자에게 어느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단다. '휴식도 목회야!'

17. 예수님의 이 모진 말씀(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이 본의가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변명을 할 수 있을까?

    평소 인품을 봐서(다른 이방인의 경우 한번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즉시 귀신을 쫓아낸 점(소원을 깨끗하게 들어줌).

18. 이 여인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27절)은 옳은가? 그 이유를 설명하라.

    옳다: 말이야 맞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뚱뚱한 사람을 보고 뚱뚱하다고 말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닌 것처럼. 다만 이 여인을 박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뜻이 있으며, 아픈 마음을 즉시 감쌀 수 있기 때문에 옳은 것이지 사실대로 말했기 때문에 옳은 것이 아니다.

19. 이 여인의 대답은 어떤가? 위대한 신앙의 표현인가? 자식으로 인한 비굴함인가? 마태복음15장에는 더욱 괄세를 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대한 신앙의 표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함으로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에는 금기사항이 없다. 모든 행위가 정당화된다. 체면도 예의도 벗어 던질 수 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지면 그 분이 무엇이라 하던지 아무 상관이 없다! 선생님과 제자 사이에도 서로 신뢰가 있다면 훨씬 더 여유가 있을 수 있다. 어느 여름날 학급실장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보고 선생님께서 잔뜩 놀렸다. '마치 똥개가 여름날 축 늘어져 자다가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왈왈거리다가 또 자고......' 그러는데 마침 종이 쳤다. 실장이 일어나더니 두 번 '왈왈'(차렸!) '왈왈'(경례!)했고 친구들은 그 구령에 맞춰 '수고했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교실은 웃음으로 난리가 났고 선생님은 웃으며 나가셨다. 요즈음에 그랬다가 인격모독으로 쫓겨나지 않을까?

20. 이 여인이 남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자신을 개에 비유하고 있어도 전혀 흔들림 없이 간구한 점, 구체적으로 살핀다면 다음과 같은 점이 있다.
    영리하다. 침착하다(개도 부스러기는 얻을 수 있다) ↔ 미친 사람
    겸손하다(옳소이다마는)
    간절하다(부스러기라도)
    의심하지 않았다(돌아가라 할 때)
    예수를 '주'라고 불렀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를 '주'라고 부른 이는 이 여인뿐이다.

    간절히 사모하다가 결국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이라 하는가? 하나님의 뜻이 다른 모양이다(좌절? 신뢰? 믿음이 없는 모양이다? 의심하였다?) 이 여인은 자식의 불행이 결국은 위대한 신앙으로 이어진 경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우리에게는 시련과 연단이 너무 없는 것이 아닌가?

21. 견딜 수 없는 수모와 실망스러움을 극복할 수 있는 이런 신앙이 어떻게 가능할까?

    예수님을 인정(능력, 존재)하는 것: 어떻게 예수님에 대해서 이런 신앙이 가능했는지 궁금하다.

22. 예수님은 이 여인을 시험하셨는가? 아니면 연단을 주셨는가? 아니면 무엇?

    시험하심(1점),
    연단하심(2점),

    이 여인의 믿음을 밝히 드러내심(3점): 이런 일로 인해서 이 여인의 기사가 널리 전해지면서 이런 신앙을 갖도록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있지 않은가? 만약 아무 일없이 바로 고쳐주셨을 때의 결과와 비교해 보라. 아무에게나 이렇게 하시진 않았다.

< 마 7:31-37 >
두로의 북쪽 40Km에 시돈이 있고, 다시 동남쪽 내륙으로 내려와서 갈릴리를 우회하여 동쪽에 데가볼리(Deca-Police: 열 개의 성읍이란 뜻이다)가 있다.

23. 먼 길을 다녀오셨는데 별로 성과없는 여행인 것 같다. 전도보다 다른 목적이 있었을까?

    휴식이나 제자 교육을 위한 여행이었던 모양이다.

24. 이 지역은(데가볼리 쪽의 갈릴리 호수, 동쪽) 지난 번 군대귀신 들린 자를 고치고 쫓겨났던 곳이다(5장). 그 동안 많이 변한 것 같다. 비록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찾아오긴 했지만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오도록 변화된 동기는 무엇일까?

    귀신들렸던 자의 전도(5:17-20)?

25. 왜 군중들이 보는 곳에서 치료를 않으시는가?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감추려하신 적이 더러 있는가?

    군중들에게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일 수도 있었다. 하나님의 역사를 단순한 눈요기감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능력을 보이시지 않았다. 광야의 시험 때 사단이 노리는 것이 그것이었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사람들이 그랬다.

    군중들이 너무 흥분하기를 원하지 않으심, 36절 참고: 야이로의 딸, 변화산, 자신이 메시야임도 감추려하셨다. 나중에 드러내셔야할 상황에는 스스로 드러내셨다.

26. 귀먹고 어눌한 자를 치료하는 방법이 좀 특이하다. 순서대로 정돈을 해보자.

    1) 손가락을 양 귀에 넣고
    2) 침을 뱉아: 침을 사용하는 행위는 보편적인 치료행위에 해당하는 것 같다: 가려움이나 간단한 피부트러블에 효과가 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침이 가장 약효가 있다.
    3) 혀에 손을 대고
    4) 하늘을 우러러 탄식: 탄식하듯 간구하셨다. 창조의 원형이 깨뜨려짐에 대한 안타까움 아닐까?
    5) '에바다' 하심: 당시 공용어는 헬라어이고 그 지방의 토속어는 아람어이다. '에바다'는 아람어이다.

27.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처럼 그렇게 간단히 안되나?

    치료하는 방법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대상자의 믿음의 차이이다: 그 여인은 집에 돌아가서 온전한 딸을 보고 분명히 예수님께서 고쳐주셨으리라고 믿었을 것이나, 이 사람은 아무 일도 없이 고쳐졌다면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억지로 왔다. 예수님이 치료하기 위하여 이런 행위를 했음을 확인시키기 위함이다. 안수하여 병이 나은 사람 중에는 병원에서 '오진'이었다고 하는 경우가 적지않다. 자식에게 돈 걱정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어느 쪽이 옳은가? 어느 정도는 보여주는 것이 옳으나 아이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하시는 방법이 달라서 심정이 상한 적이 있다면 어떤 경우가 있는가? 부모가 자식을 다르게 대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대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다. 우리의 부모들은 남자라고, 맏이라고 그럴 수 있지만 하나님은 동일하게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 다만 받아들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내게 필요한 것과 나의 형제에게 필요한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빠하고 똑 같은 옷을 사 주지 않는다고 시샘할 필요가 없다.

28. 다음 네 사람의 치료방법의 차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자.

    ① 야이로의 딸 ② 혈루증 여인 ③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 ④ 데가볼리의 농아
    1) 믿음을 드러내려고 하신 경우: 2, 3
    2) 기적적 치유를 감추려하신 경우: 1, 4
    3) 아무 행위도 없이 고치신 경우: 2, 3
    4) 치유의 표시를 많이 낸 경우:
    1, 4

    1) 야이로의딸: 천천히 가심, 죽었다는 말을 듣고 가심, 사람들을 물리친 후에
    2) 혈루증 여인: 확인만 하심
    3)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 모진 대답을 통하여 믿음이 드러나자 바로 치유됨
    4) 데가볼리의 농아: 조용한 곳에서, 요란스런 치유모습으로

29. 사람들이 '그가 다 잘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 어느 말이 연상되는가?

    요한이 감옥에서 제자들을 보내어 질문했을 때 예수님의 대답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마 11:5-6). 간접적으로 예수가 메시야라는 말이다. 결국 사람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30.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는 경계의 말씀을 잘 지켜졌을까?

    대체로 이 명령은 준수되지 않았다. 흥분하여 날뛰는 것을 진정시키는 정도의 효과만 있었을 것이다. 이런 소문을 통하여 예수의 소문이 널리 퍼지는 것을 예수님은 원하지 않으신 것 같다. 도대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었기에 그랬을까? 그릇된(정치적인) 메시야관이 퍼져서 진짜 사역(희생제물이 되는 것)이 방해받는 것을 경계하셨을 것이다. 그들의 환호란 순식간에 조롱으로 변하여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1: 일단 죽으려고 오셨다. - 소문이 널리 퍼지는 것은 죽는데 지장이 있다.
    예수님의 사역2: 복음을 전하려고 오셨다. - 터만 닦고 제자들을 훈련시켜 일을 완성시키려하셨다. 열심히 가르치고 병을 고치긴 하셨으나 자신이 사람을 모으고 교회를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씨뿌리는 일만 하셨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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