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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신약/마가복음

[스크랩] 마가복음 6장(1) 강해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08:52

마가복음 6장(1)


1. 고향사람들이 예수에 대하여 아는 것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면?

    1) 지혜와 능력(새로 알게된 것): 가르치는 일과 능력은 인정받았다.
    2) 예수의 친족(기존의 아는 것): 이것 때문에 새롭게 받은 지혜와 능력을 무시했다.

2. 예수님을 가리키는 표현은 아주 다양하다. 가장 명예로운 이름 중에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고향사람들은 1) 예수를 누구의 아들이라고 하는가? 2) 정상적인 경우라면 누구의 아들이라고 불러야 옳을까? 3) 왜 그렇게 불렀을까?

    1) 마리아의 아들, 2) 요셉의 아들, 3) 애비없는 자식, 혹자처럼 사생아라고 경멸하는 뜻으로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3. 예수님의 등장에 대해서 고향사람들이 가장 아니꼽게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천한 목수 주제에 제자를 거느리고 나타난 것 아닐까? 혹은 랍비로 불리는 것?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현상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4. 로마(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신격화하다보니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로 지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본문의 어느 내용이 문제가 되는가?

    예수를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의 형제라고 하는 말과 누이들이 있다는 말

5. ∼ 얻었느뇨? ∼이 어찜이뇨?(2)라는 표현은 감탄의 느낌을 준다. 반면에 ∼아니냐?,∼아니냐?,∼아니하냐?(3)의 느낌은 어떠한가?

    경멸적이다:

6. 예수의 새로운 모습을 고향사람들이 분명히 인정했음에도 왜 예수를 배척했을까?

    1) 먼저 입력된 것이 나중에 입력되는 것을 거부하는 간섭작용을 선입견이라던가? 어릴 때 교회에서 가장 농땡이 치던 놈이 목사가 되었다는 것은 아는 데, 그가 얼마나 변화되었는지를 모르는 경우처럼, 인성은 알고 있으나 신성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가짜 김일성 장군이 나타나서 권력을 잡았을 때 '어? 아는 사람이잖아?'하고 찾아갔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은 사람들이 많았단다.

    2) 시기심: 자신들과 달리 유명해지는 동료를 비난하는 수가 많다.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부자로 산다면 친근한 이웃이 될 수 없는 일이다.

    3) 친밀함은 경멸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가까운 좋은 사람 두고 시원찮은 먼 데 사람 좋아한다(결혼). 시이저를 환호하는 국민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몸종이라는 서양 속담도 있다.

    4) 민도가 낮으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소용이 없을 수 있다. 그저 먹는 것이나 현찰에만 눈이 빨개지는 사람들에게는 민족을 위하고 세계평화에 도움이 되는 것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5) 로마인들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의 압제를 두려워하여 삼손을 거부하듯, 독립지사가 숨겨주는 것을 꺼려하듯이?

    6) 유명세를 탄다고 모두가 고향에서 배척을 받지는 않는다. 박찬호 선수가 한창 유명세를 탈 때 고향 사람들이 그를 배척하고 비난하였는가? 열렬히 환영하다가 이내 배신을 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인가보다. 차원이 높은 일일수록, 특히 신앙 문제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정상이다. 우리도 신앙문제에 관한한 모든 사람이 이해해주기를 바랄 수 없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비난을 받고 핍박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신앙문제이다. 잘 놀고, 노래 잘해서 비난받을 일은 별로 없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비난을 신앙적인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7)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배척 당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사 53장).

7. 고향 사람들과 친척에게 배척받는 예수님을 보면서 특별하게 더 은혜를 받는 사람은 왜 그럴까?

    자신이 신앙문제로 가족에게 배척을 받고 쫓겨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8. 예수께서 이상히 여기셨다면(6) 모르는 것이 있다는 말인가? 아무 능력도 행하실 수 없다니(5) 이게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사람과 동역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동역하지 않고 하신 일은 천지창조 밖에 없다.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때는 사람을 찾고 그 사람 속에서 없는 믿음이라도 찾아서 그것을 믿음이라 일컬으며 능력을 행하셨다. 노아의 예를 든다면 노아가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였지만(창 6:9),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원어상 표현으로는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하였더라')는 말씀도 잊으면 안된다. 능력부족이 아니라는 증거는 소수의 병인은 고치신 일이다(5). 대부분 믿지않았지만 그 중에서 몇몇 사람들이 믿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역사하셨다.

9. 예수님에게는 신성과 인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예수님의 생애 중에 신성이 드러난 때와 인성이 드러난 때는 어떤 때인가?

    인성이 드러나는 경우: 자신의 문제에 관련되었을 때, 즉 가족과 고향에서 배척받으심,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일, 고난 받은 일...

    신성이 드러나는 경우: 타인의 문제에 관련되었을 때, 즉 풍랑 속의 제자들, 병든 자를 고치심, 죽은 자를 살리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가 아님으로 그의 신성은 불쌍한 사람을 구원하는 데에만 소용이 있었다. 왜 나는 수퍼맨이 되면 안 되는가? 자신을 위해서는 그런 능력을 전혀 쓰지 않고 오직 타인을 위해서만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그런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 6:7-13 >

10. 예수님께서 왜 12제자들을 보냈을까?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제자로써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실습 겸 넓은 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함일 것이다. 원래 제자들을 세우신 목적에 '전도'가 포함되어 있다( 막 3:14).

11. 둘씩 보내신 이유는 무엇일까?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기 위함(전 4:9-12), 증인은 둘 혹은 세 사람이어야 한다(신 17:6()).

12.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주셨는데 예수 믿는 우리도 이런 능력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능력이 필요한 상황 속에 우리가 들어가 있는 것이 중요하다(가령, 위험하기 그지없는 선교지). 필요하면 주시겠지만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을 사람에게도 함부로 주시진 않는다. 이렇게 능력을 받았던 제자들도 나중에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책망을 받는다(9:18).

13. 왜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시는가? 가져도 좋은 것은?

    가지지 말라는 이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과 전도하는 일 외에는 아무 신경도 쓰지 말라는 의미이다.
    가져도 좋은 것: 오직 신발과 지팡이만 허용했다. 많이 돌아다니는 데 필요한 것이다.

14. 파송받은 12제자들에게 경제적인 문제를 전혀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데 전도자는 이래야 하는가? 오늘날의 목사님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일시적이고, 훈련 중이다. 목회자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은 아니다. 신부와 수녀는 그렇게 살기로 서약을 하고 시작했으니 그렇더라도, 목사님들은 일상생활을 완전히 떠난 분들이 아니다. 스스로 결심하고 이런 삶을 사는 것은 괜찮으나 남(부인이나 자녀들까지)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

15.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는 말씀은 한 곳에 거처를 정하거든 옮기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

    복음 전하는 일에만 집중하라는 말씀이다. 거처를 구하기 위하여 신경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능력있는 제자들을 대접하겠다고 쟁탈전이라도 벌어지면, 이집 저집 다니다보면 뜻하지 않은 알력이나 시기심을 자극할 수도 있고 만약 대접이 시원찮거나, 도저히 그 집에 계속 있을 수 없는 형편(집안 처지나, 음식이나)일지라도 오로지 복음 위하여 헌신하는 모습만 보여라. 자신의 어려움을 감수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고 싶은데로 다 하고 먹고 싶은데로 다 먹으면서 복음을 전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16. 발의 먼지를 떠는 행위는 무엇에 대한 증거인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이렇게 떨어버릴 것이다: 복음을 거부하는 행위에 대한 증거이다. 이방인의 지역을 다닌 사람이 모든 부정한 것을 털어버리듯,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이방인으로 취급을 한다는 의미이다. 너희는 복음과 상관이 없다.

17. 제자들이 외친 내용은 '회개하라'이었다. 요한도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다. 베드로도 그랬다. 그런데 요즈음은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는 듣기 어렵고 귀에 듣기 좋은 설교만 많단다. 그래서 어떤 분은 듣기 싫든 말든 여전히 회개를 설교의 주제로 삼는다고 자랑했다. 누구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가?

    회개는 신앙의 출발점이다. 출발점에 선 사람이나 출발할 생각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회개를 강력히 촉구해야 한다. 제자들이나 요한, 예수님께서 상대하셨던 분들이 바로 그런 분들이었다. 회개하고 의롭게되어 성화를 이루어 가는 성도들에게도 회개를 선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잘 달려가고 있는 선수를 붙들어다가 다시 출발선상에 세우는 짓은 삼가해야 한다.

18. 전도하러 가는 제자들에게 왜 하필이면 귀신 쫓아내는 능력과 병고치는 능력을 주셨을까?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데 가장 요긴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신학교에서 가장 필요한 과목이 이것 아닐까?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이 맡았던 이 역할의 상당부분은 오늘날 의사들이 감당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반드시 필요했다. 의술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므로 오늘의 전도자들이 반드시 이 부분을 맡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특별한 경우에는 있을 수 있지만 병이 들면 무조건 신앙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반드시 신앙적이라고 볼 수 없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기도하되 의술을 통해서 역사하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19. 제자들의 활동을 크게 두 영역으로 나눈다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영적인 일이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은 육적인 일이다. 적어도 이 땅에서 구원이라고 할 때는 이 두 가지 요소가 다 필요한 일이다.

< 막 6:14-29 >

20. 제자들이 보냄을 받고 행한 일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예수의 소문이 전국적으로 퍼졌다. 이 일에 대한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헤롯: 죽은 세례 요한, 헤롯이 죄책감에 잡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특이한 반응을 보였다. 무언가 일이 생기면 자신의 경험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버릇이 사람에게는 있다.
    유대인들, 지도자들: 엘리야(말 4:5, 마 11:14, 마 9:13), 혹은 선지자 (헤롯을 위로하려는 주장일 수도 있을 것)
    제자들: 신이 났음(30)

21. 헤롯의 행위나 생각이 유대인답지 않은 것이 있다면?

    죽은 사람의 원혼이 다른 사람에게 들어가서 능력을 발휘한다는 생각은 아주 특이함 - 어쩌면 이방인이었기에 가진 미신적인 사고

22. 헤롯이 어떤 사람인지 정리해보고 어떤 점이 자신과 닮았는지 생각해보자.

    1)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잡혀 있었음
    2) 동생의 아내와 결혼한 좀 비정상적인 사람
    3) 양심이나 소신에 따르지 못하고 우유부단. 이혼, 결혼은 소신대로 하면서, 요한의 문제는 고민을 많이함, 엉뚱한 소신파(원서 쓸 때)
    4) 이 여인을 위하여 세례요한을 가둠, 죽임: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생기는 판단착오
    5) 요한의 지적을 달게받음
    6) 체면을 존중함: 연회석상에서 잘난 체 하지(허풍떨지) 않았더라면 헤롯이 잘못을 범하지 않았을 텐데.
    결) 위대한 아버지 덕에 왕(이름만)이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멍청이, 예수님은 그를 여우라고 부름(눅13:32)

23. 헤로디아의 요사스러움에 대하여 설명해보자.

    1) 시숙과 결혼: 그 문제를 지적하는 요한을 원수로 여기게 됨. 이름이 비슷한 것은 원래는 삼촌과 질녀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헤롯이 아내를 버리고 결혼을 했는데 첫 아내의 친정(아라비아의 왕 아레타스)과 싸워 패하고 황제에 의해 유배되고, 통치권이 아그립바에게 넘어감

    2) 딸을 이용하여 요한을 죽일 계책을 꾸밈: 공주로 하여금 천한 무용수, 위안부나 출 춤을 추게함

24. 위대한 선지자 요한이 왜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가? 특히 서글픈 점이 있다면?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면 제사장은 굶어 죽어야 하고 시대가 악해지면 의인에게도 비참함이 따른다. 악한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의로운 목숨이 조그만 계집아이의 천한 춤값으로 사라지다니...: 세례요한의 사역에 대하여 인색한(1:2-8) 마가가 그의 죽음을 상세하게 기록하는 이유는 예수의 고난을 상세하게 기록하는 이유와 같다.

25. 세례요한이 정치적인 문제에 무엇 때문에 나서서 이렇게 비참하게 죽는가! 요한의 삶은 실패인가? 종교적인 가르침만 베풀면 되는 것 아닌가? 회개하라고 할 때 이런 것을 가리키는가? 이때 예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요한과 함께 용감하게 투쟁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치적인 측면에서 요한의 죽음을 이해하기보다는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러온 그의 역할에서 그의 죽음을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길을 예비하러온 요한은 예수의 죽음의 길마저 잘 닦아주었다. 요한의 비참한 죽음은 예수님의 비참한 죽음을 예시하는 것이다. 인류를 위하여 죽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얼마나 허무한 죽음인가?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나 고귀하지만! 요한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당장의 현실보다 먼 훗날까지 계속될 복음 전파에 정열을 쏟았다.

26. 우리의 삶도 이런 요한의 삶이어야 하는가?

    요한은 헤롯의 죄를 면전에 대고 지적했지만 예수님은 아무 말도 않으셨다. 때가 되기까지는 피해 다니시기도 했다. 맡은 역할의 차이이다. 무조건 죄를 지적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자신의 사명을 확인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사회의 소금이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다가 자신을 희생해야 할 때가 되면 기꺼이 희생할 수도 있어야 하지만 때가 아닌데 용기만 내어서 일만 그르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도 죄 많은 세상이 되어서 지혜롭게 처신하지 않으면 온 사방에 적만 깔아두고 개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27.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아내의 잘못된 말을 따르다가 신세를 완전히 망쳐버린 사람이 헤롯이라면 구약에도 흡사한 인물이 있다. 구약의 헤롯과 헤로디아라고 할 수 있는 부부는?

    아합과 이사벨(왕상 21장):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도 섬긴 전형적인 양다리 신앙이다. 그것을 성경은 가장 악한 왕이었다고 평가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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