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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호세아

[스크랩] 호세아 1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23:23

호세아 1장 주석

 

======1:1

호세아 1:1 웃시야와...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 호세아의 예언 사역은 원래 북왕국 이스라

엘의 정치, 종교, 도덕 등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는 여로보암 2세 통치 말기부터 북왕

국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B.C. 722년경까지 약 40여 년 동안 북왕국의 선지자로서 활

동을 하였다. 이 시기는 북왕국의 번영(B.C. 793-753)과 쇠퇴가  교차되는  때였으며,

정치.종교적으로 비극적이고 암울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본절은 유다 왕이

네 명이나 기록된 반면에 북왕국 이스라엘 왕은 여로보암 한 명밖에 언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혹자들은 호세아가 남쪽 유다 출신으로서 북왕국에 파송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세우시리라는 약속대로, 북왕국 백성들의 구원은 다

윗의 하나님인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에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다(7절;3:5). 둘째, 북

왕국의 정치적 불안과 혼란을 유다 왕조의 정통성과 대조시킴으로써, 북왕국을 멸망으

로  이끈  배교의  죄악을   드러내고   그로   인한   심판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4:1,2,15;5:5;6:4,10). 그러나 이것 역시 추론에 불과하며, 북왕국의 여섯 왕들(스가

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이 기록에서 삭제된 까닭을  확실히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단지 분명한 것은 호세아가 여로보암 2세 이전에 이스라엘  왕조

의 쇠퇴를 예고했다는 것과, 여로보암 왕만은 반역에 의하지 않고 정당하게 왕위를 계

승했다는 점이다. 즉 호세아는 여로보암을 여호와께서 북왕국을 위해  세우신  마지막

왕으로 인정하는 것이다(왕하 14:27).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 - '브에리'(*        )의 뜻은 '샘', 또는 '설명하는  자'로

이해되고 있으나 그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다. '호세아'(*      )는 '구원'이란  뜻

으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심을 반영한다.

   여호와의 말씀 - 이는 선지자를 통한 여호와의 신적 교통을 암시하는 것으로  선지

자의 사역과 연관된 계시를 말한다(사 2:1;렘 1:2;겔 6:1;욜  1:1;암  1:1;욘  1:1;미

1:1;습 1:1)



  웃시야와...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 호세아의 예언 사역은 원래 북왕국  이스라

엘의 정치, 종교, 도덕 등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는 여로보암 2세 통치 말기부터 북왕

국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B.C. 722년경까지 약 40여 년 동안 북왕국의 선지자로서 활

동을 하였다. 이 시기는 북왕국의 번영(B.C. 793-753)과 쇠퇴가  교차되는  때였으며,

정치.종교적으로 비극적이고 암울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본절은 유다 왕이

네 명이나 기록된 반면에 북왕국 이스라엘 왕은 여로보암 한 명밖에 언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혹자들은 호세아가 남쪽 유다 출신으로서 북왕국에 파송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세우시리라는 약속대로, 북왕국 백성들의 구원은 다

윗의 하나님인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에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다(7절;3:5). 둘째, 북

왕국의 정치적 불안과 혼란을 유다 왕조의 정통성과 대조시킴으로써, 북왕국을 멸망으

로  이끈  배교의  죄악을   드러내고   그로   인한   심판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4:1,2,15;5:5;6:4,10). 그러나 이것 역시 추론에 불과하며, 북왕국의 여섯 왕들(스가

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이 기록에서 삭제된 까닭을  확실히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단지 분명한 것은 호세아가 여로보암 2세 이전에 이스라엘  왕조

의 쇠퇴를 예고했다는 것과, 여로보암 왕만은 반역에 의하지 않고 정당하게 왕위를 계

승했다는 점이다. 즉 호세아는 여로보암을 여호와께서 북왕국을 위해  세우신  마지막

왕으로 인정하는 것이다(왕하 14:27).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 - '브에리'(*        )의 뜻은 '샘', 또는 '설명하는  자'로

이해되고 있으나 그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다. '호세아'(*      )는 '구원'이란  뜻

으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심을 반영한다.

   여호와의 말씀 - 이는 선지자를 통한 여호와의 신적 교통을 암시하는 것으로  선지

자의 사역과 연관된 계시를 말한다(사 2:1;렘 1:2;겔 6:1;욜  1:1;암  1:1;욘  1:1;미

1:1;습 1:1)


======1:2


   비로소 호세아로 - '비로소'(*        , 데힐라트)는 여호와의 말씀의 시작, 곧 음

란한 아내를 취하라는 계시가 호세아를 통해 처음으로 내려졌음을 의미한다.  '호세아

로'는 '호세아를 통하여'(through, NIV, RSV), 또는 '호세아에 의하여'(by, KJV)란 뜻

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호세아와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주어졌음을 시사한다.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 '취하다'의 히브리어 '라카흐'(*      )는 축첩을  뜻하지

않고 결혼하라는 의미이다(창 4:19;6:2;19:14;출 34:16). '음란한'의 히브리어  '제누

님'(*              )은 음탕한 기질이 있는 여자, 또는 매춘부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같은 명령이 하나님의 도덕적 특성과 신적 거룩함에 맞지 않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다양한 해석과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1)가설적인 결혼이라는 견해:호세아의  결혼이

하나님과 타락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한 하나의 비유 또는 환상이라는 주

장이다(Augustine, Jerome, Kimchi, E.J.Young). (2)영적인 불신앙으로 보는  견해:여

인의 음란을 이스라엘의 타락을 표현하기 위한 영적  음란으로  이해하려는  주장이다

(Umbreit). 하나님의 명령이 선지자의 내적이고 영적 본능 속에서 행하여진 것으로 이

해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Keil). (3)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견해:선지자가 역사  속에

서 실제로 경험한 결혼이라는 주장이다(Kurtz,  Lange,  Harper,  Chrisholm,  Given,

Butler). 즉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실재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가 가장 받아들일 만하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

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신적 속성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문자적  해석을  지지하는

학자들의 견해도 두 가지로 나뉜다. (1)여인이 호세아와 결혼하기 전에는  순결하였으

나, 결혼 후에 음란하게 되었다는 주장과, (2)원래부터 음탕한 창녀였다는 주장  등이

다. 그러나 (1)의 견해는 신적 거룩함을 옹호하기 위한 변증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적

뒷받침이 불충분하며, 특히 3:1-3과 연관해 볼 때 수용하기 어렵다. (2)의 견해는  하

나님의 명령이 결코 그의 신적 속성을 더럽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명령을  어기는

것이 죄가 된다는 입장을 취한다. 즉 음란한 여인과의 결혼은 실제적인 음란죄를 범하

라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죄악된 관습을 치료하여 선지자 자신의 수준으로 높이기 위

한 결합이라는 것이다(Lange).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고

상한 명령이자 선지자의 의무이지, 결코 도덕적 특성과 관련된 죄에 결부되지  않는다

는 것이다(M.Henry).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일 때 음란한 여인과의 결혼을 명령한 하나

님의 속성이 결코 불의 하다거나, 또는 그 명령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호세아

선지자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 원문에는 '낳으라'는 말이 없고 '취하라'(*      , 라카

흐)는 동사가 나온다. 그래서 혹자는 고멜이 결혼시에 이미 자녀들을  데리고  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의 문맥을 고려해 볼 때, 음란한 자식들은  4-9절의  세

자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음란한 자식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름지어진다(4,6,9절).

   이 나라가...행음함이니라 - '나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레츠'(*      )는  이

스라엘 땅의 백성을 가리키며(4:1), '떠나다'의 히브리어 '메아하레'(*           )는

여호와의 신실함에서 끊어진 관계를 나타낸다. 이처럼 그 백성이 여호와를 떠난  것은

'크게 행음하였기'(*               , 자노케즈네) 때문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이 계속해서 행해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이 나라'는 크게  행음하고

있는 음란한 아내로 상징되고 있는데,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와  방탕

한 생활 가운데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실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1:3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였더니 - '디블라임'(*          )은 일반적으로  '데벧

라'(*        ), 곧 '무화과떡'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진다(삼상  30:12;대상  12:40).

이것은 3:1에서 우상에게 바치는 떡으로 호색과 쾌락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리고  '고

멜'(*      )은 '완성', '완전'을 뜻하는 '가메르'에서 파생한 것으로 완전한  음란을

상징하는 것 같다. 한편 다른 곳에서 '고멜'은 단지 한 족속의 명칭으로 나타날  뿐이

다(창 10:2;겔 38:6).

   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 이는 '그 여인이 잉태하여 한 아들을 그에게  낳아

주었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호세아가 음탕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취한 사실을 증명해

준다. 동시에 그 아들이 호세아의 친자식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1:4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 '이즈르엘'(*          )은 '하나님께서 흩으신다'

란 뜻으로 이스라엘의 멸망을 암시한다. 특별히 여기서 '이스르엘'이라는 명칭은 예후

가 아합의 집을 대량으로 학살한 장소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Lange, Keil, 왕하  9,10

장).

   이스르엘의 피 - 이것은 예후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아합의 온 집을 멸망시킨  사

건과 관련이 있으나 그 이면의 내용은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아합 집의 멸망은  엘

리야가 예언했고(왕상 21:20-25), 엘리사가 명하였으며(왕하 9:6-10), 더욱이  하나님

께로부터 인정받았던 일이기 때문이다(왕하 10:30).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예후가

흘린 피를 갚겠다고 하시는가 ? 그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설명될  수  있다.  즉

(1)예후가 아합의 집을 멸하는 것으로 만족지 않고, 유다의 아하시야와 그 형제  42명

을 모두 죽였기 때문이다(왕하 9:27;10:13,14). 이들의 죽음이 비록 이스르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어났지만 그 장소의 대량 학살과 관계되어 있다(R.Chrisholm). (2)아합

집의 멸망이 비록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지만, 예후의 동기는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예후는 하나님의 명령을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악한 습성에 따라서  성

취시켰을 뿐이었다(Keil). 이것은 예후가 바알숭배를 멸하였지만 여로보암의  죄,  곧

금송아지 숭배를 계속행하였다는 사실에서 입증된다(왕하 10:28-31). 결국 예후의  행

위는 대량 학살이라는 범죄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왕하 10:11).

   예후의 집에 갚으며 - '갚다'의 히브리어 '파카드'(*      )는 '방문하다',  '권고

하다'란 뜻으로 여기서는 징벌을 의미한다. 예후 집의 멸망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4대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II, 스가랴)만에 끝이 나게 되었는데(왕하 10:30), 스

가랴가 통치 6개월 만에 살룸의 반역으로 죽임당함으로써 성취되었다(왕하 15:10).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 예후 왕조의 몰락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비록 그 이후 반세기 동안 북왕국이 지속되었지만, 계속되

는 반역과 살인으로 무질서와 무정부 상태가 극에 다달았다. 따라서 예후 왕조의 몰락

은 "종말의 시작이며 분해 과정의 시작이었다"(Hengestenberg).


========1:5


  비로소 호세아로 - '비로소'(*        , 데힐라트)는 여호와의 말씀의 시작, 곧 음

란한 아내를 취하라는 계시가 호세아를 통해 처음으로 내려졌음을 의미한다.  '호세아

로'는 '호세아를 통하여'(through, NIV, RSV), 또는 '호세아에 의하여'(by, KJV)란 뜻

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호세아와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주어졌음을 시사한다.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 '취하다'의 히브리어 '라카흐'(*      )는 축첩을  뜻하지

않고 결혼하라는 의미이다(창 4:19;6:2;19:14;출 34:16). '음란한'의 히브리어  '제누

님'(*              )은 음탕한 기질이 있는 여자, 또는 매춘부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같은 명령이 하나님의 도덕적 특성과 신적 거룩함에 맞지 않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다양한 해석과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1)가설적인 결혼이라는 견해:호세아의  결혼이

하나님과 타락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한 하나의 비유 또는 환상이라는 주

장이다(Augustine, Jerome, Kimchi, E.J.Young). (2)영적인 불신앙으로 보는  견해:여

인의 음란을 이스라엘의 타락을 표현하기 위한 영적  음란으로  이해하려는  주장이다

(Umbreit). 하나님의 명령이 선지자의 내적이고 영적 본능 속에서 행하여진 것으로 이

해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Keil). (3)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견해:선지자가 역사  속에

서 실제로 경험한 결혼이라는 주장이다(Kurtz,  Lange,  Harper,  Chrisholm,  Given,

Butler). 즉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실재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가 가장 받아들일 만하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

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신적 속성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문자적  해석을  지지하는

학자들의 견해도 두 가지로 나뉜다. (1)여인이 호세아와 결혼하기 전에는  순결하였으

나, 결혼 후에 음란하게 되었다는 주장과, (2)원래부터 음탕한 창녀였다는 주장  등이

다. 그러나 (1)의 견해는 신적 거룩함을 옹호하기 위한 변증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적

뒷받침이 불충분하며, 특히 3:1-3과 연관해 볼 때 수용하기 어렵다. (2)의 견해는  하

나님의 명령이 결코 그의 신적 속성을 더럽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명령을  어기는

것이 죄가 된다는 입장을 취한다. 즉 음란한 여인과의 결혼은 실제적인 음란죄를 범하

라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죄악된 관습을 치료하여 선지자 자신의 수준으로 높이기 위

한 결합이라는 것이다(Lange).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고

상한 명령이자 선지자의 의무이지, 결코 도덕적 특성과 관련된 죄에 결부되지  않는다

는 것이다(M.Henry).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일 때 음란한 여인과의 결혼을 명령한 하나

님의 속성이 결코 불의 하다거나, 또는 그 명령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호세아

선지자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 원문에는 '낳으라'는 말이 없고 '취하라'(*      , 라카

흐)는 동사가 나온다. 그래서 혹자는 고멜이 결혼시에 이미 자녀들을  데리고  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의 문맥을 고려해 볼 때, 음란한 자식들은  4-9절의  세

자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음란한 자식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름지어진다(4,6,9절).

   이 나라가...행음함이니라 - '나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레츠'(*      )는  이

스라엘 땅의 백성을 가리키며(4:1), '떠나다'의 히브리어 '메아하레'(*           )는

여호와의 신실함에서 끊어진 관계를 나타낸다. 이처럼 그 백성이 여호와를 떠난  것은

'크게 행음하였기'(*               , 자노케즈네) 때문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이 계속해서 행해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이 나라'는 크게  행음하고

있는 음란한 아내로 상징되고 있는데,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와  방탕

한 생활 가운데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실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1:6


   딸을 낳으매 -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종 아들 혹은 딸로 비유된다.

   로루하마(*              ) - 문자적으로 '은총을 입지 못하다', 또는 '동정을  받

지 못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더 이상 애정어린 긍휼을 받

지 못할 것을 나타낸다(시 103:13;사 49:15).

   내가 다시는...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 '사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사'(*

     )-직역하면 '들어 올리다', '가지고 가다'-의 난해함 때문에 본 구절은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1)'반드시 그들의 대적이 될 것이다'(LXX). 이는 '나사'를 '사네'(*   

    ), 곧 '미움받는 자'로 읽었기 때문인 것 같다. (2)'그것들을 완전히 제거할 것이

다'(KJV, Pusey, Henderson). (3)'그들을 버릴 것이다'(Meier, Hengstenberg). (4)'그

들을 잊을 것이다'(Vulgate). (5)'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RSV, NEB, JB). 그러

나 이와 같은 다양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본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을 더  이상  긍휼히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임이 분명하다. 이는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와 배교가  하나

님의 백성으로서 언약을 폐기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은 그

백성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선언은

앞으로 닥쳐올 북왕국의 멸망과 재난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1:7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 이는 이스라엘을 책망하기 위해 대조적으로 언급된  구

절이다. 사실상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는 똑같이 언약의 백성이다. 그런데 유

다 족속은 긍휼을 얻지만 이스라엘 족속은 사랑에서 제외된다. 이러한 차별은  이스라

엘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하나님께는 정당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유다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무기와 힘을 구원의 수단으로 삼았기  때

문이다.

   저희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 하나님께서 '내 자신'이라는 표현 대신에  '저

희 하나님 여호와'라는 강조적인 구문을 사용하신 것은,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은  하

나님의 언약 백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즉,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고 경배하는 자들에게만 구원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재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활과 칼이나...아니하리라 - 이스라엘이 의지했던 군사력이나 전쟁 무기로써가  아

니라, 오직 하나님 자신의 방법으로 구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  일은  실제로

유다왕 히스기야 때 앗수르의 산헤립에게서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음으로  성취되었다.

그때에 앗수르 군대 185,000명이 여호와의 사자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하였고, 유다는

자기들의 군사력이 아닌 하나님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게 되었다(왕하 19장;사 37장).


=========1:8,9


   로암미(*          ) - 이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 관계가 완전히 파괴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며, 동시에 이스라엘의 종국

적인 운명이 절망적인 것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제 하나님은 그 백성을 흩으시고(이

스르엘)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로루하마) 아예 포기하시고  버리

신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출 6:7;

레 26:12)는 특별한 언약 관계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 직역하면 '나는 너를 위하지  않을  것이

다'이다. 즉, '나는 너에게 아무 것도 아니며, 너에게 속하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뜻

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포기하시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하나님

의 결단은 이스라엘이 언약 백성의 삶에서 떠나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불법과 가증한 일들을 행한 데서 기인한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된다(왕하 17:18).


=======1:10


  그러나...셀 수도 없을 것이며 - 북왕국 이스라엘 열 지파에 대한  징벌이  선언된

후에, 곧바로 이스라엘 자손의 회복과 구원에 대한 약속이 대조적으로 선포되고 있다.

여기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어졌던  자손의   번성에   대한   약속(창

22:17;26:4;32:12)이 새삼 언급된 이유는, 비록 이스라엘 열 지파가 그들의  죄악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족장들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폐기되지 않음을 시사하기

위함이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이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징벌과 심판, 회

개와 용서의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곳에서 -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간 장소가 '메소포타미아'라고 주장하는 학자들

도 있지만 팔레스틴을 가리킨다고 보는 편이 적당하다(Lange). 그들이 언약 백성이 아

니라고 선언된 장소는 바로 이스라엘 땅이다.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 이는 언약 관계의 완전한 회복을 의미한다.  이

것은 일차적으로 열 지파 가운데 소수의 백성들이 유다 민족과 한 무리가  되어  포로

생활로부터 귀환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으며,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과(롬

11:25,26)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완성된다(벧전 2:10, P.Butler).


======1:11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 르호보암 때 분열된 두 왕국이 한  나라

로 다시 통일될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것은  이미  예레미야(렘  50:4)와  에스겔(겔

37:16-23)에 의해서 예언된 것이기도 하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통일은 먼저  스룹바벧

의 지휘 아래 바벧론에서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스 1:5;3:1,2). 그러나 이  예언

은 온 이스라엘이 메시야의  구원으로  인해  시온에  모이게  될  때에  성취된다(롬

9:26;11:26). 이것은 나아가 이방인과 이스라엘이 영적 아브라함의  후손들로서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롬 9:25;갈 3:28;엡 1:10;벧전 2:10).

   한 두목을 세우고 - '로쉬 에하드'(*             )는 '한 머리', 곧 단 하나의 방

백이나 왕을 의미한다. 이것은 유다와 이스라엘이 더 이상 두 나라가 아닌 한  나라로

서 연합할 것임을 시사한다. 이는 성경에서 종종 '다윗'이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데

(3:5;겔 34:23;37:24;암 9:11), 곧 메시야를 가리킨다. 즉 메시야로 인하여 모든 하나

님의 백성들이 하나로 연합됨을 상징한다(엡 2:11-22).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 일반적으로 '그 땅'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포로로 잡혀

있는 장소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그 땅'은 고대 이스라엘이 노예 생활을 했던 애굽으

로 상징되고 있는 듯하다(2:15;8:13;9:3;11:5). 여기서 애굽은 이스라엘이 흩어져  살

아야 하는 이방 세계의 모형이다. 그렇다면 본 구절의 '올라옴'은 포로  생활로부터의

귀환이거나, 유랑 생활에서 다시 모여들게 된 이스라엘의 독립을 뜻한다(Keil).  그러

나, 다른 한편으로 '그 땅'이 팔레스틴을 가리킨다면, '올라옴'은 이스라엘이  예루살

렘으로 개선 행진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미 2:13). 그런데 혹자는 이것을  교

회 또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 경배하러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J.Given). 여하튼 본 구절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해방과 승리를 묘사

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 '이스르엘'은 4절에서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는

뜻으로 사용되어 심판과 저주를 묘사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스르엘'의  또  다른

의미인 '하나님께서 심으신다', 또는 '뿌리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저주로부터 축복으로, 심판으로부터 언약의 성취에로 회복시킬 것을  의미

한다(2:23;사 9:4-7;암 9:11). 따라서 '이스르엘의 날'은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당했

던 패배와 수모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을 통한 구원과 승리를 맛보는 날을  의미한

다. 한편, 이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될 천년왕국의 모습을  상기시키기

도 한다(사 11:1-12;계 20:1-6).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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