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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호세아 (1) : 예언의 1부: 호세아와 고멜 (1-3장)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23:20

호세아 (1) : 예언의 1부: 호세아와 고멜 (1-3장)


A. 호세아서의 배경(1: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호 1:1)"

1. 호세아

  호세아는 아모스 직후에 활약했던 선지자이다. 아모스는 남왕국 유다 출신으로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로 가서 메시지를 전했지만, 호세아는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한 사람이다. 호세아라는 이름은 "구원" 혹은 "구출"("예수", 또는 "여호수아"와 같은 뜻)을 의미한다. 메시지를 통해 나타나는 호세아는 불같은 급한 성격과, 온유한 부드러운 마음을 골고루 지닌 감성적이며 또한 정서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메시지의 주요 내용은 "고멜과의 결혼"을 통해 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고멜과의 결혼에서 받은 고통과 슬픔을 통해서 음행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모스가 "사회에 대한 의와 정의"를 강조한 반면, 호세아는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헤세드)"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강조하고 있다

  북왕국의 마지막 선지자에 속하는 호세아는 부와 번영의 시대에 부름받았다. 당시는 권모술수와 기회주의가 판을 쳤고, 부자와 세도가들은 사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호세아는 자기 만족과 배신에 젖은 백성에게 하나님의 사자로 보냄을 받았다(주전 753년경). 그는 자신의 사명과, 예언 전통에 소속됨과, 자신의 구속사적인 위치를 깊이 자각하고 있었다. 그는 또 지리적인 언급에서 드러나듯이, 북왕국의 역사와 지리에도 매우 정통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대언자였다. 그는 예후 왕조의 멸망을 선포하고 증언했다(1:4). 그는 이스라엘의 궁중 음모와 정치적 야욕, 그리고 정치적 생존을 위한 현실정책을 규탄했다. 국제 세력들 간에 "세계 패권"을 위한 투쟁이 심화될 때마다, 정치는 음모와 반역과 무질서로 얼룩졌다. 그는 여호와께 절대적인 충성과 현실정책의 폐기를 부르짖었다(14:2-3). 진실로 그는 "이스라엘의 종말의 사자였고, 종말을 주관하시는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사자였다."


2. 호세아의 시대 상황


  유다 웃시야(주전 792-740)와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주전 793-753)가 함께 다스린 시대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견줄만큼 번영과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2:4-17). 이스라엘은 아람의 침입으로 잃었던 영토를 되찾는데 성공했으며(왕하 14:25), 상업과 무역이 융성해졌고, 사마리아의 정치가들과 상인들은 생활 수준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노동자들과 농부들은 가난과 굶주림과 압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미 속으로부터 썩어가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다시 교만해졌으며 경제적 발전은 그들을 더욱 자만에 빠지게 만들었다. 사회 구조는 상류 계층의 권력과 탐욕과 불의와 사치스러운 삶을 부채질했다. 이로 인해 사회는 더욱 분열되었으며,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조금도 돌아보지 않았다. 가난한 자들은 빚을 지고 이를 갚지 못해서 노예 상태로 전락했으며, 귀족들은 왕실을 따라 사치에 빠졌고, 빈부간의 격차는 위협적이 될만큼 커지게 되었다. 번영과 더불어 문화가 크게 타락하기 시작했다.

  정치가들은 많은 노력 끝에 얻은 정치적 권력을 잃지 않으려고 밀려드는 외국 문화의 영향을 조금도 막지 않았다. 풍요를 비는 제사와 진탕 마시고 떠들어대는 주연(4:10-13)과, 풍기 문란한 가나안 족속의 바알 숭배를(2:7,17, 11:2) 비롯하여, 난잡한 외국 문화가 이스라엘을 잠식했다. 또한 종교적인 매춘이 성행했으며(암 2:7-8), 단과 벧엘의 성소에서는 우상 숭배가 공개적으로 자행되고 있었다. 고대 근동의 문화적 변화에 순응하면서, 이스라엘 종교는 혼합주의가 되었다. 그들은 여호와께 각종 제사와 희생과 십일조를 드리면서(8:11,13, 9:4, 10:1, 암 5:22), 동시에 앗시리아인의 종교적 관습을 따랐다(암 5:16). 또한 이방 우상의 종교 의식에 참석한 자들도 여호와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성소를 메웠다. 제사장들도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타락했다(4:4-9, 5:1, 6:9). 이런 혼합주의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급속히 부패시켰다. 여호와에 대한 이스라엘의 얄팍한 헌신은 민족과 사회 전체에 위협을 가져왔다. 호세아는 경제적 호황이 준 혜택을 누리면서 반복되는 반역과 모반에서 국가의 위기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7:7, 8:4). 그는 이스라엘의 외세와의 결탁은 결국 국가의 파멸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호세아는 주전 753년 직전 예후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면서 그의 사역을 시작했다(1:4).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스라엘의 경제적 우위와 국제적 명성은 퇴색하였다. 이스라엘은 사마리아의 급격한 정치변화로 인해 내적으로 불안을 겪었다(7:7, 8:4).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 의 정세는 아모스 때와 크게 달랐다. 아모스가 메시지를 전했을 때만 해도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상황은 안정권에 들어 있었다. 그때에는 비록 부패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부와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호세아가 활동할 때에는 앗수르가 이스라엘에 침략의 마수를 뻗치고 있었고, 나라 안에서는 서로 죽이는 왕위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호세아는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정복하기 직전에 선지자로 부름 받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0시의 선지자"라고 부른다. 살룸(주전 752년)은 한 달 동안 다스리고(왕하 15:8-15) 므나헴에 의해 살해되었다. 므나헴은 10년 동안 다스리며(주전 752-742) 앗시리아의 디글랏 빌레셀 3세(주전 745-727)에게 조공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려 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이스라엘은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었다. 이스라엘의 말기인 주전 746-721년까지 근 25년에 걸쳐 무려 여섯 왕들(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이 서로 뺏고 빼앗기면서 왕위에 올랐는데, 그들 중 네 명의 왕(스가랴, 살룸, 브가히야, 베가)은 혁명에 의해 살해되었다. 왕권의 무정부 상태는 사회 전역에 걸쳐서 거의 비슷한 양상으로 일어났다. 백성들은 모든 면에서 타락할 대로 타락했으며 법과 질서는 완전히 무시되었다.

  여로보암 2세가 죽은 해는 주전 746년이었다. 그리고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앗수르의 왕권을 쥔 것은 그 이듬해(주전 745년)였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앗수르 왕들의 숙원에 하나였던 강대한 제국 건설(메소포타미아와 근동 지방)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진군의 나팔을 불었다. 이러한 앗수르의 움직임은 이스라엘과 애굽에 큰 위협이 되었다. 이스라엘과 유다 외에도 앗수르의 움직임을 눈치 챈 나라들은 모두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다. 당시 앗수르가 피점령국의 백성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다루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었다. 그들은 포로들을 끌고가서 자기 나라의 전 지역에 흩어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국의 백성들을 선발해서 그 자리에 대신 채워 놓는 "이민 정책"을 사용했다. 그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피정복국의 민족성 자체를 말살시키려고 했다. 디글랏 빌레셀 3세는 바벨론의 통치권을 장악한 다음 메소포타미아 전 지역을 짓밟으면서 계속 지중해 방면으로 진격해 나갔다. 그리고 그는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아람과 이스라엘을 초토로 만들어 버렸다. 이스라엘 왕 베가(주전740-732)는 아람(르신)과 정치적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베가는 유대 왕 아하스가 그 동맹에 가입하지 않는 것을 보고자(5:8-11), 아람과 연합하여 유다를 침공했다. 이때에 아하스는 앗시리아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이로 인해 앗시리아는 수리아-에브라임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아람을 공격해서 거민을 사로잡아 옮겼고 다메섹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리고 앗시리아는 주전 732년에 이스라엘 경내에까지 군사력을 확장시켰다(왕하 15:29, 호 5:8-11). 앗시리아의 왕 디글랏 빌레셀 3세는 주전 732년에 호세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고(5:13-14, 7:8-9, 8:9-10), 자율적인 정치 생활을 허용했다. 그러나 호세아가 이집트와 정치적 동맹을 맺음으로 앗시리아의 이익을 해치개 되자(왕하 17:4, 호 5:13, 7:11, 9:3, 11:5, 12:1), 앗시리아는 살만에셀 5세 때에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멸망시키고 말았다.

  호세아와 고멜의 관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고멜의 불성실함은 이스라엘의 배교를 상징했고, 그녀의 자녀들은 죄의 열매와 여호와의 심판을 상징했다. 또 도망친 고멜을 다시 데리고 오는 호세아의 모습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상징한다. 비록 고멜이 호세아에게 신실하지 못했지만, 그는 다시 감옥에 가서 그녀를 데려왔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조롱과 수욕을 감수했다. 호세아는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보고 놀라도록, 자신의 결혼 생활 전모를 밝혔다. 고멜에 대한 그의 사랑은 배교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러한 결혼 비유는 선지자 호세아의 심리학적 통찰을 요구했다. 그는 분명히 동시대인들에게 비난과 거부를 당했으며, 또한 결혼 생활 속에서도 많은 고통을 당했을 것이다(9:7-8). 아모스는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된 불의와, 가난한 자들이 소수 권력층에 의해 착취당하는 현실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호세아의 메시지의 핵심은 달랐다. 그는 이스라엘이 왜 죽을 병에 걸리게 되었는지를 면밀히 진단했다. 이스라엘이 중병에 걸린 이유는 그들의 불신실함과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호세아는 장차 이스라엘을 찾아올 보았다. 장차 다가 올 이스라엘의 소망은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의 참상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그의 예언을 맺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과연 누가 알겠느냐고 부르짖었다.


B. 호세아의 메시지


1. 예언의 1부(서론): 호세아와 고멜(1-3장)

  호세아 1-3장은 호세아의 서론인 동시에 전체 메시지를 요약해주고 있다. 우리는 호세아 1-3장에서 선지자의 생활상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호세아의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결혼이란 서로가 한 몸이 되기로 언약을 맺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이러한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끝까지 이행하려고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언약을 버리고 신실치 못하게 행동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호세아가 고멜과의 결혼 서약을 파기했듯이 신실하지 못한 이스라엘 버리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전히 버리신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연단을 통해서 그들을 순결케 하시고, 그후에 다시 새로운 언약을 통해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받아주실 것이다. 이러한 일은 호세아가 이혼 후에 다시 고멜을 데려오는 일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1-1. 호세아의 가족과 이스라엘(1:2-2:1)

 가. 호세아의 결혼과 이스라엘(1:2-3)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2). 이에 저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였더니 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3)."

  여호와는 부패한 이스라엘에게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호세아를 통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여호와는 호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2)"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탕한 기질이 있는 여인을 아내로 취하고 그녀를 통해 음탕한 기질이 있는 자녀들을 낳으라고 명령하셨다. 어떻게 보면 음탕한 여인과 결혼하라는 명령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다양한 해석과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1) 일부 학자들은 호세아의 결혼이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타락한 이스라엘의 관계를 나타내는 비유나 상징이라고  주장한다(Augustine, E.J.Young). 또 어떤 사람들은 고멜의 음탕한 기질이 성적 음란이 아니라, 영적인 음람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Umbreit). 2)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호세아의 결혼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다고 주장한다(Kurtz, Lange). 그들은 하나님께서 호세아의 결혼을 통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계시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견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선지자에게 음탕한 여인과의 결혼을 명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두 가지로 제시되고 있다. 1) 일부 학자들은 고멜이 호세아와 결혼하기 전에는 순결했지만, 결혼 후에 음탕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성경적 근거가 불충분하다(3:1-3 참조). 2) 그러므로 또 다른 학자들은 고멜이 원래부터 음탕한 창녀였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음탕한 여인과 결혼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호세아에게 음란죄를 범하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호세아의 진실한 사랑을 통해서 음탕한 여인을 거룩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말한다(Lange). 이러한 해석은 호세아 결혼의 역사성과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모두 해치지 않으면서도, 본문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을 하셨을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호세아의 결혼을 통해 이러한 이스라엘의 부정한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저버리고 음란한 삶에 빠져있었다. 여기에서 행음은 영적인 의미에서의 음행, 즉 우상숭배를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저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그릇되고 또 하나님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지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을 통해서 부정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시려고 하셨던 것이다. 호세아는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여 자기 아내를 삼았다. '디블라임'은 우상에게 드렸던 '무화과 떡'을 의미하며(삼상 30:12; 대상 12:40), 음란함과 쾌락의 상징으로 보인다(3:1). 또한 '고멜'은 '완성', '완전'을 의미하는 '가메르'란 말에서 파생된 말로 완전한 성적 타락을 상징하는 말로 보인다. 다른 곳에서 '고멜'은 한 족속의 명칭으로 기록되기도 했다(창 10:2;겔 38:6).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음탕한 여인 고멜과 결혼을 했으며, 그 후에 고멜을 통해서 첫 번째 아들을 낳게 되었다.


 
나. 호세아의 자녀들과 이스라엘(1:4-9)

 가) 이스르엘(아들); 이스르엘의 피를 갚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4).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5)"

  하나님은 호세아가 고멜을 통해 낳은 첫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부르라고 지시하셨다. '이즈르엘'은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는 뜻으로, 이 말은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흩어질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스르엘'은 예후가 아합의 집을 대량으로 학살했던 장소였다(왕하 9,10장). 왜 하나님은 호세아의 첫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부르게 하셨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잠시 후에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고,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호세아의 첫 아들의 이름은 호세아 당시에 왕으로 다스리던 예후 왕가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멸망을 동시에 상징하고 있다. 일찍이 예후는 이스르엘에서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로 몰아넣은 아합의 집을 멸망시켰다. 이 일은 엘리야의 예언과(왕상 21:20-25) 엘리사의 명령에 의해 시행된 것이었다(왕하 9:6-10). 그때에 하나님은 아합을 친 예후의 공로를 인정해 주셨다(왕하 10:30). 그런데 왜 하나님은 또 다시 예후가 흘린 아합의 피 값을 갚겠다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예후는 아합의 집을 멸망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유다의 아하시야와 그 형제 42명까지 모두 죽여버렸다(왕하 9:27; 10:13-14). 둘째로 예후는 하나님의 명에 따라 아합의 집을 치긴 했지만, 그는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그 일을 수행했다(Keil). 셋째 예후가 바알 숭배를 주도하던 아합을 친 후에 자신도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왕하 10:28-31).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후가 "이스르엘에서 흘린 피 값을 예후에게 다시 갚겠다"고 선언하셨던 것이다. 여기에서 '갚는다'고 번역된 말(파카드)은 원래 '방문한다', '권고한다'는 뜻을 가진 말로서, 죄를 징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호세아의 예언대로 예후 왕가는 4대(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II, 스가랴)만에 끝나고 말았다(왕하 10:30). 동시에 이러한 예후 왕가의 멸망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예후 왕가 이후에 북 이스라엘은 약 반세기 동안 지속되었지만, 계속되는 반역과 살인으로 무질서와 무정부 상태가 극에 달했다. 이러한 점에서 예후 왕조의 몰락은 "이스라엘 종말의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이렇게 예고하셨다.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5)"

 나) 로루하마(딸)(6-7):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함
  "고멜이 또 잉태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6).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저희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7)."

  시간이 흐른 후에 고멜이 또 딸을 낳게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이번에 그 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부르게 하셨다. 로루하마라는 말은 '은총을 입지 못한다', 또는 '동정을 받지못한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호세아의 딸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상징하고 있다(6). 우리말 성경에 '사한다'고 번역된 말(나사)은 원래 '들어올린다', '가지고 간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학자들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헬라어 역인 70인경은 이 말을 '대적이 된다', 라틴 역인 벌게이트 성경은 이 말을 '잊는다'고 번역했으며, KJV은 '제거한다'고 번역했고, 다른 성경들(RSV, NEB, JB)은 이 말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번역하고 있다. 우리가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하든지 이 말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더 이상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하나님은 여러 번 이스라엘의 범죄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그들을 용서해 주셨다. 그러나 그들의 거듭된 죄악을 인해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을 긍휼히 여겨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러한 선언은 닥쳐올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과 재난이 확실하게 결정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과는 달리 남 유다 왕국은 긍휼히 여겨주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실 때에 다윗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유다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름으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7).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는 모두  언약의 백성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더 이상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숭배했으며, 자신의 무기와 힘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후손이 잘못해도 징계를 하되, 완전히 버리지는 않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 유다 왕국은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었다. 유다 왕 히스기야 때에 이스라엘을 점령한 앗수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었다. 그때에 히스기야는 앗수르 군대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하나님은 하루 밤에 앗수르 군대 185,000명을 전멸시키셨다. 이와 같이 유다는 다윗의 언약을 인해 긍휼히 여김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그들은 군사력이 아닌 하나님이 이름으로 구원을 받게되었다(왕하 19장; 사 37장).

 다) 로암미(아들)(8-9): 내 백성이 아니다.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9)."

  고멜은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다시 아들을 낳게 되었다. 이번에는 여호와께서 그 아들의 이름을 "로암미"라고 부르게 하셨다.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이 아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이 완전히 폐지되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하나님은 끝까지 회개의 기회를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지 않으실 것이다.


 다. 회복: 상징의 전환(1:10-2:1)

 가)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1:10-11)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10).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 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11)."

  그러나 하나님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언하신 후에, 그들의 회복과 구원에 대한 약속도 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후에 다시 그들을 번성케 하여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예후의 피값을 갚았던 "이스르엘"이 이스라엘 자손을 심고 파종하는 축복의 장소가 될 것이다. 이 언약은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해주셨던 약속이었다(창 22:17; 26:4; 32:12).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다시 반복해 주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은 후에도 그들과 맺은 언약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실 때에도 그들을 다시 회복시켜서 족장들과 맺은 언약을 이행해 주실 것이다. 이로 인해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고 선언했던 이스라엘(로암미)이 다시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라!"(암미)라고 불리우게 될 것이다(10). 그리고 그때에 둘로 나뉘어졌던 "남 유다와 죽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어 한 지도자를 세우고 올라오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르호보암 때에 분열되었던 두 왕국이 다시 통일될 것이다. 이 일은 예레미야(렘 50:4)와 에스겔(겔 37:16-23)도 예언한 적이 있었다. 이는 후에 스룹바바벨의 인도 아래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옴으로 시작되었다(스 1:5;3:1,2). 그리고 이 예언은 장차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믿고 돌아올 때에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롬 9:26;11:26).

 나) 암미(내 백성이다)와 루마하(사랑받음)(2:1)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2:1)"

  여호와께서는 이제 다시 이스라엘을 암미, 즉 내 백성이라고 부르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루하마, 즉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는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전에 범죄한 이스라엘을 이스르엘, 로루하마, 그리고 로암미라고 부르셨으나, 이제는 다시 그들을 이스르엘, 루하마, 그리고 암미라고 부르실 것이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내려졌던 저주가 완전히 사라지고, 새롭게 언약이 갱신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심으로 자신의 신실하심과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실 것이다.


1-2. 징계와 회복(2:2-23)

 가. 하나님의 심판(2:2-13)

 가) 회개의 촉구(2:2)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너희 어미'는 이스라엘 국가를 의미하고, '쟁론한다'는 말(리브)은 육체적인 싸움이나 사법적인 논쟁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녀들, 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버리고 영적 간음을 행한 어미, 즉 이스라엘 국가를 고소하라고 명하셨다. 하나님은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님의 아내가 아니며, 하나님도 그들의 남편이 아니라!고 선포하셨다. 하나님은 순결을 상실한 이스라엘에게 이혼을 선포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할 것"을 촉구하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으며, 자기 힘과 이방 민족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떠나 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과 맺은 언약을 파기할 것을 선언하시고, 그들에게 영적 은행을 떠날 것을 촉구하셨다.

 * 태어나던 날처럼 만드심(3-4)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3),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4)."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그를 발거벗겨서 그가 태어나던 날처럼 만들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음행을 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그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때처럼 멸시를 받는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고 경고하셨다. 이스라엘은 애굽에 있을 때에 버려진 어린 아이와 같았다(겔 16:5,6).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용납하시고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으며,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고 권세와 부와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과 이방 민족을 좆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에게 여러 번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그 죄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이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이 받았던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광야와 마른 땅처"럼 되게 하여, 목이 말라 죽게 하실 것이라고 경고 하셨다(3). 이스라엘은 끝까지 돌이키지 않으면 열매 맺지 못하는 사막처럼 되어 이방 나라의 압제 속에 죽게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음란한 중에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이상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4).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와 탐욕 속에 살면서 자녀들을 낳았다. 그러므로 그 자녀들도 음란한 부모들의 행동을 좆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날에 그 자녀들도 긍휼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 영적 음행과 고난(5-7)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5).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6),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찌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7)."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음행을 하고 부끄러운 일을 했다고 고발하신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처럼 하나님의 아내인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과 이방 민족을 사랑하여 그들을 따라갔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대신에 이방 나라들(애굽, 앗수르)을 의지했고, 그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이방 나라들과 우상들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5). 그들은 음식(떡, 물)과 옷(양털, 삼), 그리고 기쁨을 주는 것(기름, 술)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 나라들과 이방신들이 준다고 믿었다.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때에 막대한 부를 누렸다. 그는 이스라엘이 모든 부귀와 영화를 얻은 것이 이방 나라와 동맹을 맺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렘 44:17-18).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버리고, 이방의 신을 섬기며, 이방 민족의 불의한 삶을 좆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제 그들이 더 이상 우상 숭배를 하지 못하도록 가시나무와 담을 쌓으실 것이라고 선언하셨다(6). 이는 이스라엘에게 전쟁이나 노예 생활과 같은 극한 고난을 겪게 하여 그들이 더 이상 이방 나라를 의지하지 못하게 하실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그들이 사모하는 이방 나라를 따라가도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그들을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로 고통을 당할 때에 그들이 의지했던 앗수르나 애굽의 도움을 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던 때가 더 나았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 남편인 하나님께 돌아오게 될 것이다(7).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징계를 통해서 이방 나라를 의지한 것이 헛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지나간 일을 뉘우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집을 나갔던 탕자가 돌아오듯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 음행에 대한 심판(8-13)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8).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9).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10).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이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신 것이었다(신 7:13; 11:14).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과 금을 더해 주셨으나,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바알 신상을 장식하고(렘 10:4), 바알 숭배에 필요한 비용으로 사용했다(13). '바알'은 고대 근동에서 섬긴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모든 우상들을 대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셨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8).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었던 곡식과 새 포도주와, 그들의 몸을 가릴 양털과 삼을 도로 찾으실 것이라고 경고하셨다(9). 하나님은 곡식과 포도를 거둘 때에 갑자기 그것들을 사라지게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곡식과 새 포도주로 쾌락과 우상 숭배를 위해 사용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그러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그들에게 주셨던 곡식과 새포도주를 찾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흉년이나 외적의 침입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모든 소산을 거두어 가실 것이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수치스러운 모습을 이방 나라들에게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 그들이 사모하던 이방 나라들과 우상들은 그들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10).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11), 저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리라(12).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13)."

  또한 하나님은 그때에 이스라엘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실 것이다(11). 이스라엘은 심판 날에 그들이 누렸던 모든 기쁨과 즐거움을 잃을 것이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이 지키던 절기들, 즉 유월절과 오순절과 장막절과, 월삭과 안식일, 그리고 기타 모든 축제일이 폐지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기면서 형식적으로 절기와 명절을 지켰다. 이로 인해 그들이 드리는 제사와 의식은 가증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이 그 일을 행하지 못하도록 모든 절기들을 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때에 이방 나라들이 준 것이라고 말했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숲이 되게 하시고, 그 열매를 들짐승이 먹게 하실 것이다(12).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땅을 황무지로 만들어 그들이 경작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과수원은 풀이 우거진 숲이 되고, 그 열매는 들짐승들이 먹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얼마 동안이나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인가?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이 몸에 치장을 하고 이방 나라를 좆아가서 바알을 섬긴 날짜를 따라 그들을 징계하실 것이다(13).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들과 우상을 섬기기 위해서 온갖 장식과 치장을 했다. 그들은 그들의 남편인 여호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대했지만, 향을 사르면서 열심히 바알들을 섬겼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좆았던 시간 만큼 이스라엘을 징계하실 것이다.


 
나. 회복에 대한 약속(2:14-23)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14),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 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15)."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심판을 선포하는 동시에, 그들에 대한 소망에 대한 메시지도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장차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려가서 말로 위로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개유한다'고 번역된 말(파타)은 '속인다', '유혹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삿 14:15).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말이 "부드러운 말로 마음을 열도록 설득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거친 들'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고생하며 살 것을 상징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로가 되게하여 그 죄악을 깨닫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하나님은 다시 그들의 상처입은 마음을 위로해 주실 것이다(14). 하나님은 징계가 끝난 후에 이스라엘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 그때에 다시 그들에게 포도원을 돌려주실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은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이 되게 하실 것이다. 아골 골짜기는 아간이 그의 범죄로 인해 형벌을 받았던 곳으로(수 7:26), 이스라엘이 죄로 인해 고통받은 형벌의 장소를 말한다. 하나님은 그들이 징계를 받었던 장소를 소망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게 하실 것이다. 형벌이 끝난 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새로운 소망의 비젼을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화답할 것이며, 조상들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처럼 춤을 추면서 찬송하게 될 것이다(15).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16).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17).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18)."

  구원의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내 남편"이라고 부르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16)." 여기서 '바알'(주인)은 종과 주인의 소유 관계를 의미하고, 남편은 사랑과 언약의 관계를 의미한다. 구원의 날에 이스라엘이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아내로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 더 이상 바알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17).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더 이상 바알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남편되신 하나님만 부르고 경배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 날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들과 언약을 세우시고,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제거하실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안히 눕게 해주실 것"이다(18). 살아 있는 동물들과 언약을 맺는 행위는 이 땅에 평화와 안전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활'과 '칼'은 과거에 심판의 도구였지만, 그 날에는 이 모든 것이 제거되고, 평화와 안정이 지속되게 하실 것이다(사 2:4; 슥 9:10).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19),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2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21),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22).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23)."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의 약속을 주신다.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을 자기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지불한 지참금은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이 될 것이다. 이러한 지참금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1) 의와 공변됨- '의'(체데크)는 주관적이고 내적인 공의를, '공변됨'(미쉬파트)은 객관적인 정의로운 판단을 의미한다. 2) 은총과 긍휼-'은총'(헤세드)은 언약을 신실하게 실행하는 것을, '긍휼'(라하밈)은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의미한다. 3) 진실함(에무나)-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의 견고함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음행한 여인으로 간주하지 않고, 처녀로 인정하시고 다시 결혼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실추되었던 이스라엘의 명예를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이러한 언약은 파괴되었던 옛 언약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될 '새로운 언약'이었다(렘 31:31-33).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마침내 "여호와를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알게 될 것이며, 여호와께 충성과 사랑으로 헌신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드리는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다(2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다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은 비를 달라는 기도에 응답하여 땅에 비를 내리실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땅은 다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낼 것이다. 그때에 이스라엘 땅은 다시 회복되어 열매를 맺는 땅이 될 것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다시 약속의 땅에 심어주실 것이다(이스르엘). 그때에 흩어졌던 백성들은 함께 모여서 죄를 회개하고, 남편이 되신 하나님을 경배할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약속의 땅에 심고(이스르엘),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했던 자(로루하마)를 긍휼히 여기실 것이며(루하마), 자기 백성이 아니었던 자(로암미)를 다시 내 백성(암미)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을 향해 "주는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23). 여기에서 '심는다'는 말(자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가나안 땅에 번성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여호와께 전적인 충성과 헌신을 맹세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영적인 관계의 회복은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확대되고 있다(엡 1:21-23; 2:20-22; 골 1:15-29). 장차 수많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신부(교회)가 될 것이다(갈 3:7-9).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영생의 축복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갈 3:28-29).


1-3. 호세아 가정의 회복과 이스라엘의 회복(3:1-5)

 가. 하나님의 명령(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찌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1)...."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겼다. 다른 신을 '섬겼다'는 말(파나)은 얼굴을 돌이켜 다른 신을 바라보는 것으로, 영적인 배교와 우상 숭배를 의미한다. 또한 '건포도 떡'(아쉬솨)은 앗수르인이 섬기는 풍요의 여신 아스다롯에게 드린 떡을 말한다(렘 7:18; 44:17-19). 건포도 떡을 즐겼다는 말은 공공연하게 여신을 숭배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음란한 고멜과 같이 영적인 간음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신다고 고백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호세아에게 음부가 된 고멜을 다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1). 하나님께서 음행에 빠진 이스라엘을 사랑하듯이, 호세아 역시 음녀가 된 고멜을 사랑해야 했다.


 
나. 호세아의 순종(2-3)

  "내가 은 열 다섯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2), 저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3)."

  호세아는 이러한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서 은 15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주고 고멜을 다시 찾아 왔다(2). 호세아는 음란한 고멜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 일정한 비용을 지불했다. 한 호멜은 십 에바로서 은 십 세겔과 비슷했으며(겔 45:11), 보리 한 호멜 반은 은 십오 세겔에 해당했다. 호세아가 여인의 몸 값으로 지불한 돈(은 15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은 은 삼십 세겔로서, 당시의 보통 노예의 몸 값에 해당했다(출 21:32; 레 27:4). 고멜은 음란을 좆다가 노예의 몸값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노예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고멜의 모습은 이방을 좆다가 그들의 포로가 되어 지배를 받던 이스라엘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호세아는 고멜을 데려온 후에 이렇게 말했다.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3)." 그 동안 그녀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그를 좆아갔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음란한 생활을 끝내고, 남편에게 돌아와서 순결한 아내로서 살아야 했다. '함께 지낸다'는 말(야솨브 리')는 '조용히 혼자 앉아 있는 것'을 의미하며, '남자를 좇지 말라'는 말은 '성적인 관계를 갖지 말라'는 뜻이다. 여인은 조용히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정결한 마음을 가질 때까지 훈련을 받아야 했다. 호세아는 고멜이 반성의 시간을 갖는 동안 "나도 네게 그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말은 원문대로 해석하면 "또 나는 너에게로'라는 말이다. 이 구절은 해석상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었다.

 1) '나도 너와 함께 지낼 것이다'(NIV).
 2) '나도 네게 오지 아니하리라'(Kimchi).
 3) '내가 네게 친절하게 대하리라'(Ewald).
 4) '나도 역시 네 편이 되리라'(Calvin).

  문맥을 볼 때에 위의 4가지 해석 중에서 2), 4)번의 견해가 적합해 보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그들이 정결케 될 때까지 인내로 기다려 주실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오래 참고 인내로 대해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다.


 
다. 연단의 기간(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군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4)...."

  호세아와 고멜의 절제 기간은 이스라엘의 포로기간을 상징하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에 필요한 연단의 시기였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통치자(왕과 군)를 잃고, 자주적인 통치권을 상실하고, 종교 행위도 중단될 것이다. 이때에는 제사도 사라지고, 우상을 상징하는 기둥(주상)도 없어지고, 에봇이나 드라빔도 없이 지내게 될 것이다. '에봇'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입는 겉옷으로, 하나님의 신탁을 구하는 우림과 둠밈이 이 옷에 있었다(출 28:30). 이것은 후에 우상 숭배와 연관되어 종교적 숭배물로 우상화되기도 했다(삿 8:27; 17:5; 삼상 21:9 참조). '드라빔'은 가정 수호신으로(창 31:19; 삼상 19:13-16) 미래를 예언하는 신이었다. 이것은 점치는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개인적인 우상 숭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삿 18:14-20; 겔 21:21). 따라서 에봇과 드라빔이 없어진다는 것은 여호와 종교와 우상 숭배가 혼합된 종교 행위가 그치게 될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회개를 위해서 일정 기간 정치적, 종교적인 암흑기를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은 이스라엘의 참회와 정결을 위해서 꼭 필요한 기간이었다.


 
라. 완전히 회복될 미래(5)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5)."

  이러한 연단 기간이 지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서 여호와와 여호와께서 세운 왕 다윗을 구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시련을 통해서 우상을 버릴 것이며, 다시 여호와 를 찾게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 왕가의 왕(암 9:11 비교), 즉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구하게 될 것이다(렘 30:9; 겔 34:23-25). 그리고 그들이 "말일에는 여호와를 경외할 것이며, 이로 인해 여호와와 그 은총을 받기 위해 그 보좌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5). '말일'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인 종말을 의미한다(신 4:30; 사 2:2; 렘 23:20;미 4:1  참조). 이 날은 구속이 완성되는 메시야의 날이며,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메시야 강림의 날이다(Keil). '경외함'(파하드)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떠는 것을 말한다. '은총'(토브)은 '선하심'(goodness)은, 죄를 용서해주시는 은혜를 말한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에 가능해질 것이다. 이러한 회복에 대한 예언은 메시아 시대로 확대하여 적용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신약 교회와 성도들에게 성령의 은사와 축복들을 통해서 충만하게 될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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