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2장 주석
=====42:1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 - '여사냐'는 40:8의 '여사냐'가 아니라 43:2에 나오는 아사
랴와 동일인이다. 따라서 칠십인역(LXX)은 43:2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샤라'로 번역하
였다. 이처럼 한 사람이 두 가지 이름을 가지는 예는 드물지 않았다. 웃시야도 왕하
15:1에서는 '아사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42:2,3
요하난의 무리들은 애굽으로 가려는 뜻을 이미 굳히고 있었다(41:17). 그래서 그
들이 예레미야에게 나아온 것은 진정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에서가 아니
라 그들의 인간적 결심에 동의를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이는 마치 이스
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발락의 요청에 내심 응하기로 마음을 정하고서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했던 발람의 망령된 태도와 다름없었다(민 22:21 이하).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여호와께 기도하소서 -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를 직
역하면, '우리의 탄원이 당신 앞에 있기를 기원하나이다'로서 다른 곳에서도 여러 번
등장하는 관용적 표현이다(36:7 ; 37:20 ; 38:26 ; 42:9). 이 말은 어떤 절실한 문제
를 탄원하거나 간구할 때 쓰였다.
=====42:4
본절을 전후하여서 여호와를 가리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너희 하나님 여호
와', 또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란 표현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차이란 그리 심각한 것
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어떤 반어법적 상황에서 비꼬는 의도로 쓰이고 있지 않
기 때문이다. 70인역(LXX)은 '우리의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당신의 하나님'
이란 말을 생략하고 있다(Bright). 한편, 여기서 우리는 예레미야가 아주 조심스럽게
응답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여호와의 뜻이 순수하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반영한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들이 여호와의 말이라면 그 어떤 것이나 쉽사
리 거부해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에 익숙해져 있었으며 또한 이번에도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짐작하였을 것이다. 즉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했던 것이
다. 아마도 그들이 애굽으로 가겠다고 결정을 내린 이상, 여호와의 신탁도 사실 아무
런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Thompson).
=====42:5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 이들이 순종하겠
다고 맹세하는 엄숙한 선언이 강조된 것은 그 뒤에 일어날 불순종의 의미를 강조하고
고조하는 역할을 해준다(Nicholson).
우리 중에 진실 무망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 유다 백성은 과거에 하나님과의 언약
을 제멋대로 파기하고 또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망령된 행실로 말미암아(출 20:7)징계
를 받았는데, 본장에서도 그와 같은 형태가 반복되고 있다. 어쨌든 이제부터 그들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함께 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진실 무망한 증인
으로 입석하셨기 때문이다(Clarke).
=====42:6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선언한 것이 세 번씩이나 반복된다.
여기에는 또한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란 관용구가 쓰이는데,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한 것이든 간에 그것을 청종할 것이란 의미이다. 본절 끝에는 '키'(
* )라는 히브리어 접속사가 쓰이고 있는데, 이는 강조적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예, 정말 그러하나이다'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Thompson).
=====42:7
십 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한 것은 그로부터
10일이 지난 다음이었다. 이렇게 응답 기일이 지체되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이 점차
불안해져 갔을 것이며, 더군다나 바벨론 군대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었을 것
이 분명하다. 예레미야는 그 당시 기도와 중재를 위해서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마침내 입을 열게 되었을때 그것은 자기의 심중에서 생겨난 자신의 생각
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었다. 참된 예언적 영감은 인간적인 통찰력에서 나오는 것
이 아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계시가 있어야 한다(23:18). 이런 과정
을 거칠 경우 10일이란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심지어 10년이라고 하더라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튼 예레미야는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릴 뿐 이들
의 요구가 있은 그 즉시로 예언할 수는 없었다. 이는 마치 제자들이 원한다고 해서
주님이 즉석에서 이적을 행하시지 않은 것과도 같다. 예언과 이적의 능력은 모두 여
호와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Clarke).
=====42:8,9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요하난을 위시한 군대 장관들과 모든 백성을 불러 모으고 또
그들이 간구와 맹세 사실을 다시금 주지시킨 후 여호와의 메시지를 들려 주고자 한다.
특히 이들을 낱낱이 불러 모은 것은 그들의 불순종에는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예외가
없었으며 따라서 아무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42:10
너희가 이 땅에 여전히 거하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 예레미야는 전에 그가 선
지자적 소명을 받을 때 사용했던 두드러진 동사들을 사용해서(1:10), 아주 강하게 여
호와의 응답을 그들에게 전달했다. 백성들이 심기고 뽑히지 아니하며, 또 세우고 헐
리지 않으려면, 그들은 이 땅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본절의 조건부 약속은
본토에 남는 자들도 바벨론에 잡혀가 있는 자들과 동일한 갱신과 회복의 약속을(14,
29장) 받고 있다. 이 무리들이 여호와께 스스로를 맡기고 순종한다면, 이 약속은 성
취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니라 - '뜻을 돌이킴이니라'에 해
당하는 '니하메티'(* )는 '뉘우치다', '후회하다'(repent, KJV, RSV)는 의
미로도 번역되나, '슬퍼하다'(grievend, NIV), '측은히 여기다'(LXX)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이는 백성들이 여호와께 계속해서 반역을 도모하였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으나 이제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는 이상, 그 처벌을 멈추실 것이라고 하
는 여호와의 은혜로우신 의지가 표명되어 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계셔
서 그들의 돕는 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 바벨론 왕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
는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는 그들에게 자비를 보이실 것이며, 그들의 고통을 그치게
하실 것이다(Clarke).
=====42:11
그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라 - 요하난의 무리들로서는, 바벨론 왕이 그
다랴 살해 만행을 저지른 자가 누구인지 또 누가 무죄한지를 식별하지 못하고 모두를
같은 수준으로 처리할지도 모른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들이 느부갓네살을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했을 것이다(Nicholson).
=====42:12
너희 본향으로 돌려 보내게 하리라 - 혹자는 본절을 포로 귀환에 관한 약속으로 확
대 해석하고자 본서 원문이 포로 기간중에 편집되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한
다. 그러나 이미 어떤 사람들은 고국을 떠나 망명 생활을 하고 있고 또 이곳의 무리
가 애굽으로 도망하려는 시점에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여호와께서 현재 베들레헴에
있는 이들이 그들의 고향으로 평화롭게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아무튼 예레미야는 이스마엘 한 사람으로 인한 죄로 자신들이 처벌
받게 되리라고 염려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점을 선언하였다. 여호와께서 느부갓네살
의 권세에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건지실 것이다. 실제로 느부갓네살이 총독 암살사건
으로 인해 보복을 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는 B.C.582년에 포로를 더
잡아갔을 뿐이다(52:30). 그것이 총독 살해 사건의 보복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면,
그것은 시기적으로 너무나 늦은 보복이었다. 아마 그것은 다른 소요 사태로 기인될
것일 가능성이 높다(Thompson).
=====42:13
너희가...여호와의 말씀을 순복지 아니 하고 - 이 구절에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백성들이 애굽행을 고집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노골
적으로 반항하고 거역하는 일이나 다름 없음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애굽에 의존하
거나 그곳을 동경하는 것은 율법서와 선지서 등 곳곳에서 비신앙적 심성의 발로로 지
적되고 있다(신 17:16 ; 사 30:2 ; 31:1).
=====42:14
애굽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전쟁의 나팔 소리나 식량 부족
등이 없는 평화로운 곳으로 여겨졌다. 요하난과 유다 백성들은 그곳에 가서 조용히
살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신탁을 말하는 중에도 그들의 이
러한 반응이나 응답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Thompson).
=====42:15,16
본 단락의 서론격인 4-6절에는 여호와의 말씀이면 무엇이든지 따르겠다는 순종의
맹세가 강조되어 있었다. 이러한 내용은 순종하지 않게 될 때에 그들에게 임할 파멸
의 정도가 어떠하리라는 점을 간접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여기서는 그들이 이 땅
에 거하게 됨으로써 맞게 될 불행한 일이나 재앙이 오히려 애굽에서 일어날 것임을 말
씀하신다(Clarke). '급히 따라 가서'(* , 이드바크 아하레
켐)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기근과 칼이 '그들의 발꿈치에 있을'것이란 뜻으로 그들이
두려워하여 피해갔던 전쟁의 기근과 칼이 그들을 파멸시키고 말 것임을 나타낸다
(Clarke).
=====42:17
본절에는 '칼', '기근', '염병'이란 말이 쓰이고 있는데, 이는 예레미야가 파국을
선언할 때 자주 사용하던 말이다. 이제 이렇듯 엄청난 재앙이 여호와의 말씀을 끝까
지 거부하고 애굽으로 건너가려는 자들에게 임할 것이다.
=====42:18,19
불과 얼마전에 절실하게 체험된 바 있던 예루살렘 함락 사건을 예로 들어 예언의
확실성을 강조, 확증하는 내용이다. 이 백성은 거듭되는 역사의 산 교훈에도 불구하
고 여호와의 말씀을 신뢰하기보다는 얄팍한 인간적 계산을 더 중시하는 완악한 자들이
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고 불순종했던 결과 여호와의
분노가 예루살렘에 쏟아졌던 것과 같이, 그들이 불순종하면 여호와의 분노가 애굽에서
도 임하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있을 파멸은 본서의 다른 곳에서 사용되었던 용어로
묘사되고 있다(44:12 등).
부은 것같이 - '부은'에 해당하는 '나타크'(* )는 '흐르다', '녹이다', '쏟
다' 등의 의미로서, 범람하는 홍수 혹은 용광로에 녹은 쇳물 등의 이미지를 제공한다.
그리고 저주라고 번역된 '알라'(* )는 '서원', '맹세'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데, 이는 맹세하는 자가 그 맹세를 어길 경우 당하게 될 저주를 피할 수 없음을 상기
시킨다(Calvin).
=====42:20
이 백성은 참으로 천하고 표리부동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마음 속에는 배은 망덕,
위선, 반역, 잔인함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만큼 심
판을 받고 그만큼 여호와의 말씀이 전달되었건만, 그들은 목이 곧고 마음이 굳어져서
여호와의 말씀을 또 무시하고 불순종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우상 숭배에 길들여져 있
어서 인격적이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였던 것이다(Clarke).
=====42:21
너희가 그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치 아니하였은즉 - 이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로 결심한 이상 이제 하나님의 징벌이 불가피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요
구하였고 또 그 계시에 순종할 것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예레미야를 하나님
앞에 보내어 구하게 하였던 그것을 하나도 행치 않음으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심히 모
욕하였던 것이다(Clarke).
=====42:22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 - 이 마지막 구절들에서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금지의 명령이 다시 한번 강조된다 하겠다. 예레미야의 경고는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단히 강렬하였다. 그들은 아마도 애굽으로 가려는 계획이 여호와께
용납되고 승인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착각이었
다. 그들은 이런 잘못된 판단 속에서 예레미야를 찾아왔었고 또 그를 여호와께 보냈
던 것이다. 또한 확실한 순종을 약속한 것도 그들의 계획이 여호와께 용인될 것이라
는 판단하에서였음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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