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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예레미야

[스크랩] 예레미야 33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57

예레미야 33장 주석

 

=====33:1

  예레미야가...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 - 본장의 사건 역시 32장과 같은 해에 일어났

던 것으로 짐작된다.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갇혀 있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아

마 이곳은 장로들이나 왕의 관리들이 예레미야에게 조언을 쉽게 들을 수 있는  곳이었

을 것이다. 한편 본장은 일려의 '회복과 위로의 메시지'(30-33장)의 결론부에  해당하

며, 최대의 민족적 위기를 맞은 유다 백성에게 다시 한번 소망의  빛을  확신시키고자

하는 내용이다.


=====33:2

 여기서는 여호와를 가리켜 '일을 행하는 자'(*      , 오사흐), '그것을 짓는  자'

(*    ,요제르)로 지칭하고 있는데,이는 창 1장의 내용으로 소급되어 올라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기서는 '아사'(*      ,만들다),'야차르'(*      ,짓다),'바라'(*      ,

창조하다) 등의 동사가 쓰이고 있다. 이런 동사들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묘사

하는 데 쓰였다(Thompson).


=====33:3

  내게 부르짖으라...응답하겠고 - 이는 미래의 모든 일을 주관하며 계시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뿐이므로, 그분께 간절히 매어달려야 함을 상기시킨다. 특히 '부르짖으라'

의 히브리어 '카라'(*      )는 '절규하다'는 의미로서, 심한 갈증속에서 물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던 삼손의 모습이나 자식의 잉태를 위해 간구하던 한나의 모습을 연상

시킨다(삿 15:18;삼상 1:10-16).


=====33:4,5

  여기서는 예루살렘을 구하려는 모든 인위적 노력들이 무용함을 밝히고 있다.  성읍

의 가옥과 왕궁은 폐허화될 것인데, 그것은 대적의 파괴로 말미암아서가 아니라  포위

당한 예루살렘 백성들 자신에 의해서 그렇게 될 것으로 묘사된다(4절). 즉, 백성들은

자기 집과 왕궁을 헐어서라도 포위 공격하는 갈대아 군대를 막아 보고자 애쓰지만, 이

러한 자구책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패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여호와의 도우시는 손길이 끊어졌기 때문이다(5절).


=====33:6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  '치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루카'

(*          )는 원래 상처 부위에 돋아나는 새 살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범

죄로 인해 심한 상처를 입게 되지만, 그들을 연단시켜 새로이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하

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마치 피부에 새 살이 돋듯이 치유함을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33:7

  본절에는 유다와 이스라엘이 갇혀 언급되고 있는데, 이로 보아서 이곳의 회복의 약

속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해당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이것은 이전에 멸망한 북

이스라엘 왕국과 앞으로 멸망할 남유다 왕국 모두에 대한 미래의 희망의 메시지인  것

이다(Nicholson).


=====33:8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사할 것이라 - 여기에는 회복의 날에  있을  가장

중요한 양상이 언급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범하였던 죄를 용서하고  악

한 죄에서 정하게 할 것이란 사실이다(겔 36:25, 26 참조). 이는 결국 이스라엘이  당

한 파멸과 시련의 근본 원인이 바로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으며 따라서 사죄의  은총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한 근원적 처방임을 시사한다. 아울러 이는 복음 시대의  새

언약을 향한 암시적 언급으로도 이해될 수 있겠다(31:34;50:20 참조).


=====33:9

 이 성읍이...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 그때가 되면 예루살렘은 열방들 앞에서

기쁨과 찬양의 원천이 될 것이고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곳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여호와 앞에 바르게 서는 것은 전세계적인 의미를 띠는 것이다. 즉, 지상 모든

민족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행하신 그 모든 선한 일들을  듣고는,  그들의

엄청난 축복을 부러워하고 두려워할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모든 열방들 위에서  다스

리시는 여호와의 우주적 통치에 대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Thompson).


=====33:10,11

 7:34;16:9;25:10 등에서는 심판 때에 즐거움과 기쁨의 소리와 신랑, 신부의 소리가

끊어질 것에 대해 언급되었으나, 여기서는 정반대로 회복의 때에 이러한 소리들이  다

시 들리게 될 것을 말한다. 한편 11절의 후렴구는 시  100:5;106:1;107:1;136편  등과

대단히 유사하다.


=====33:12

  모든 성읍에 다시 목자의 거할 곳이 있으리니 - 이는 31:24의 약속과 비슷한  말씀

으로서(Nicholson), 평화와 안정과 번영의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다.


=====33:13

 양무리가 다시 계수하는 자의 손 아래로 지나리라 - 이는 날이 저물 때 그들이  울

타리로 돌아오는지 그리고 혹시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하는 것을 목자가 세는

장면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탈굼역(Targum)은 본절을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예언으

로 보고 '계수하는 자'를 아예 '메시야'라는 말로 대체하였다. 그러나 본절은  일차적

으로, 바벨론의 압제에서 벗어나 평화를 누리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이라는 점에서 탈굼

역의 단도 직입적인 번역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33:14

  여기서부터 마지막적까지는 칠십인역(LXX)에서 누락되었으며 많은 주석가들에 의해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즉 이 부분은 예레미야의 저작이 아니라 후대의 편집자에 의해

삽입되었다는 것이다(Hyatt). 그러나 이 부분은 23장, 30:1-33:13장에 수록된  내용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음에 분명하다. 여기 수록된 바, 다윗 왕조와 레위  계통

의 제사장직의 영원한 존속에 대한 약속은 포로 귀환으로 말미암아 부분적으로 성취될

것이며(스 1:8;2:2, 40-54;8:15-20), 궁극적으로는 메시야의 사역을 통해 온전히 성취

될 것이다(Feinberg).


=====33:15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 본절과 16절은 23:5, 6의 내용과 유사하

다. 여기서 '의로운 가지'란 다양하게 번역되기도 하나 분명히 정의롭고 바르게  다스

릴 이상적인 왕을 가리키고 있다. 이는 '싹'(사 4:2), '순'(슥 6:12),  '뜨인  돌'(단

2:34), '머릿돌'(벧전 2:7) 등으로 묘사되기도 하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가리킨다. 메

시야의 통치가 도래하면 유다는 구속함을 입을 것이고 예루살렘은 안전하게 거할 것이

다(Thompson).


=====33:16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 23:6에서는 메시야에게 주어졌던

'여호와 우리의 의'(*                 , 야훼 치드케누)라는 이름이 여기서는 예루살

렘에게 주어지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어떤 역본은 '그 성'을 '그에게'로 번역함으로써

23:6과 일치시키고자 한다(Aramaic, Vulgate, Syriac 등). 그러나 개역 성경처럼 번역

해도 별다른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온전히 새로워질  예루살렘은       메시야의

의를 반영할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여호와 우리의 의'라고 칭함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Bewer, 고후 5:21 참조).


=====33:17,18

 여기에서는 다윗 왕조와 레위계통의 제사장직이 영구히 존속될 것으로 예언되어 있

다. 이를 단순히 역사적 안목에서만 보면 이 예언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포로 귀환 후에도 다윗 왕조가 이어지지는 않았으며,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

역시 줄곧 이어져 갔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왕적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에 의해 온전히 성취되어짐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물론  그

리스도는 레위 계통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히

7:11). 그렇다면 레위 계통에 관한 언급은 민 25:13에서의 비느하스에 대한 약속과 마

찬가지고 제사장직의 영원한 존속에 대한 말씀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겠다.


=====33:19,20,21

  새 언약에 대한 확실한 보증으로 사용했던 31:35-37의 내용을 여기서 재차  언급하

여 확신을 더해 주고 있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 낮과 밤은 하나

님에 의해 태초에 설정되었다(창 1:5;8:22). 여기서는 낮과 밤의  교차가  하나님과의

계약과 관련되어 표현되고 있다(Bright). 이런 표현은 여호와 약속의 신뢰성과 영속성

을 입증하기 위해 쓰였다. 낮과 밤이 규칙적으로 계속되는 것은 자연  질서의  일부이

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 질서가 파괴되고 낮과 밤의 기능이 제때에       작용하지  않는다

면, 여호와께서 자기 종 다윗과 레위 제사장직에 대해 맺으신 언약이  파괴될  것으로

생각해도 좋다는 것이다(Thompson).


=====33:22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 자손을 셀 수 없이 많게 해주리란 약속은 아브라함

을 위시한 족장들에게 주어진 바 있다(창 13:16;15:5;22:17 등). 그런데 이제  이것이

다윗 자손들의 숫자와 레위 지파 제사장들의 숫자에 적용되고 있다. 어떤  면에서  이

구절은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성취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신

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영족 이스라엘로서 모두 다 왕같은 제사장들이기  때문이다(벧전

2:5, 9;계 1:6;5:9, 10).


=====33:23,24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결론적으로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두 족속에 대해서는 (1)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2) 야곱과 다윗(26절  참조)  혹은

(3) 야곱과 레위(왕직과 제사장직을 염두에 둔 구분) 등으로 보는  견해로  갈리지만,

(1)이 가장 무난할 듯하다. 그리고 또한 24절 초반에 나오는 '이 백성'이란  여호와를

믿지 않는 유다인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Bright). 민족의 절망적 현실에 부딪혀,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선포된 미세지를 믿지 못하는 자들은 공포에 질려 완전한  파멸

만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획은 그들의 생각과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33:25,26

  B.C.597년의 포로 사건이 있은 이후, 그리고 B.C.722년의 사마리아 함락이라는  사

건을 기억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

다고 믿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다

   B.C.586년의 예루살렘 함락 사건은 그들의 비관적인 태도를 더욱더 분명하게  해주

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다시 야곱 자손들의 통치자로서 다윗  자손       통치자를

세우시는 데 실패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것이 실패하게 될진대 차라리 낮과 밤이 바뀌

고 말 것이다. 한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고 하는 족장들에 대한 삼중적  언

급은 그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어졌던  모든  언약들을  강조하여  지칭하기      위함이다

(Feinberg).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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