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예레미야

[스크랩] 예레미야 30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57

예레미야 30장 주석

 

=====30:1

  여호와께로서 말씀이...이르시니라 - 이 예언은 바벨론의 2차 침입으로 인한  포로

사건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전달되었던 것 같다(Dahler, Clarke). 본장과 31

장이 70년이 지난 후 바벨론 포로로부터 해방될 것에 대한 예언을 싣고 있음은 물론이

다. 그런데 블레이니 박사(Dr. Blayney)는 본장과 31장을 유다와 이스라엘의 복음  시

대에서의 회복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이를 바벨론 포로에서의 해방을  예

언함과 동시에 종말론적인 해방과 궁극적 회복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Clarke).


=====30:2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 본절과 앞 구절은 한 단락에 대한 서론

에 해당한다. 이 단락은 30-33장까지로서, 전체적으로는 갱신과 복구에 대한 메시지가

요약되어 있다.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기록하라고 하는 위임 명령은 36장에서

도 나타난다(36:2, 4, 17, 18, 28-32). 아마 예레미야는 그의 개인 서기 역할을  했던

바룩(36:4)에게 대필시켰을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한 민족에게 있어서 그 말씀

을 기록으로 남겨 보존하게 하는 것은 중요하였다. 왜냐하면 심판에 관한 신탁의 예언

들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30:3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니 - 예언적 서술에서 '때가  이르리

니'라는 표현은 때로는 종말론적인 사건을 뜻하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항상  종말론

적인 사건을 가리켰던 것은 아니다. 이 말과 함께 주어진 예언과 약속은 종종 보다 짧

은 적당한 시기에 성취되었다. 그리고 '돌이키다'란 말의 히브리어는  '웨솨베티...쉐

부트'(*        ...        )인데, 구약에서 빈번하게 쓰이며 재산 따위를  '회복시키

다'란 의미로도 해석된다(욥 42:10;겔 16:53). 여기서는 한글 개역 성경처럼  '포로를

돌이키다'라고 번역하는 편이 가장 타당하리라 본다(KJV, NIV). 아울러 이는 여호와의

백성들의 재산이 회복될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한다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I  will

restore the fortunes, RSV). 한편 본절에서는 '이스라엘과 유다'란 말로써  여호와의

백성을 이중적으로 지칭하고 있는데, 이것은 모든 이스라엘, 곧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

유다 왕국이 모두 여호와의 은혜를 입게 될 것을 보다 분명히 나타내는 표현이다.  실

제로 본장의 많은 부분은 북이스라엘 왕국을 주대상으로 하고 있다.


=====30:4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 이 구절은 대단히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

는 5-24절의 운문 단락의 제목 역할을 하고 있다. 본서에는 이런 형태의 제목들이  빈

번히 쓰인다(7:1;11:1;14:1;18:1;21:1 등).


=====30:5

 우리가 떨리는 소리를 들으니 - 여기서 예레미야는 앞에서 언급된 회복의 약속이(3

절) 성취되기  이전에  이스라엘이  중한 시련  속에서  연단되어질  것을 시사한다

(Feinberg). '떨리는 호리'(*              , 콜 하라다)란 극심한 환난 상황을  묘사

하는 표현으로 종종 등장한다(4:31;6:24;13:21;22:23;49:24;50:43). 여기서는  바벨론

포로기를 포괄적으로 지칭하거나, 특히 고레스가 바벨론과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이  백

성이 느끼게 될 공포를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Clarke).


=====30:6

  해산하는 여인같이 손으로 각기 허리를 짚고 - 이와 비슷한 내용이 사 13:8에 언급

되고 있다. 이는 평화와 번영이 끝났음을 말하는 내용이다.


=====30:7

  본절의 신탁은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로 끝난다. 그런데 이것이 희망에 대한 서술이

냐 아니면 풍자적인 말이냐 하는 문제가 제시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본시의

서두에 묘사되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이를 '그가

그 고난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문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Bright).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에는 구두점들이 없기 때문에 그 의미가 매우  모호해

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희망을 나타내는 자료의 서두에 쓰이고 있기 때문에  절망

에 대한 강조적 표현이라고 보기는 무리일 것 같으며, 오히려 시련과 고난 끝에  마침

내 도래하는 회복과 구원에 대한 메시지로 봄이 더 타당하다(Thompson, Nicholson).


=====30:8

  본절과 다음절(9절)은 산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구절이 5-7절

과 10, 11절의 운문의 연결을 차단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곳의 히브리어 원

문이 비록 산문체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운율이나 박자 등은 시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후 문장의 흐름을 어색하게 할 절오는 아니라 하겠다(Thompson).  한

편,

   멍에(*    , 올)란 느부갓네살을 위시한 모든 이방의 압제자들로 인한 억압 상황을

시사하는 말이다(27:2 참조). 그러므로 본절은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게 될 자유와  해

방을 노래하고 있다. 또 본절과 9절에는 메시야 시대에 있게 될 위대한  해방에  관한

암시가 매우 뚜렷이 나타난다. 본절에 언급된 바, 이방인의 모든 멍에를 꺾어버릴  분

은 오직 메시야 한 분 밖에 없을 것이다(겔 34:23;호 3:5). 이러한 압제의 멍에가  꺾

어지면, 하나님의 백성은 이제 메시야의 은혜로운 멍에를 메게 될  것이다(마  11:29,

30).


=====30:9

  너희는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를 섬기며 - 회복의 목적은 이민족으로 하여금  여호

와께서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깨달아 경배하게 하는데 있었다.

   너희 왕 다윗 - 이는 대망의 메시야, 즉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뜻

한다. 겔 34:23, 24;37:24, 25;호 3:5 등에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 나타난다(Bright).


=====30:10

 내 종 야곱아 두려워 말라...구원하리니 - 본절과 다음절(11절)은  46:27,  28에서

반복되고 있다. 70인역(LXX)에서는 이 구절들이 46장에서만 언급되나 문맥상 여기서도

잘 어울리는 내용이다.


=====30:11

  본절의 내용은 본서의 다른 여러 곳에서도 발견된다.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

원할 것이다'란 표현은 1:8;15:20에서, '너를 흩었던 그 열방'이란  표현은  9:16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너는 진멸하지 아니하리라'는 표현은 4:27;5:10, 18;46:28  등에서

나타난다.


=====30:12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 절망적인 상황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여호와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형태의 본 단락(12-17절)은 본절의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로  시작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는 말로 끝맺는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의 상처와 고통이  스

스로 지은 바 죄악때문임을 밝히며,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회복 불가한 그때에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임하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한편, 이 단락을  전

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일련의 비슷한 말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본절의 '상처', '창상', '고칠 수 없고', '중하도다',  13절의  '송사',  '상처',

'변호할 자가 없고', '약이 없도다', 15절의 '상처', '고통'등을 들 수 있다.  본절의

'상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쉬브레크'(*          )란 말의 '레'(*   )는  다음에

이어지는 좋은 용례일 것이다. 이런 용례는 9:3에도 쓰이고 있는데,  거기서는  '레무

나'(*            ), 곧 '진실 그 자체'로 번역될 수 있다(Thompson).


=====30:13

 '변호할 자가 없고'는 모든 친구와 동맹자들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Bright). 그리고 '싸멜'이라 번역된 '테알라'(*        )는 '붕대', '치유' 또는

상처 위에 새로운 피부를 형성시키도록 하는 '치료 약'을 말한다.


=====30:14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 여기서 '사랑하던 자'란 유다와

정치적으로 동행을 맺었던 나라들을 뜻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유다를  잊어버렸고

더 이상 돌보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이들 동맹국들 중의 대표적인 나라는 애굽과 애돔

이었다(27:3;옵 1:7-14). 애굽은 수차에 걸쳐서 바벨론에 대항하여 반역할 것을  부추

겼다(37:5-7). 비록 애굽 군대가 B.C. 588년경에 예루살렘을 포위해 오는 바벨론 군대

와 맞서서 싸우려고 하였던 적이 있으나 그들은 이내 철수해버렸으며, 결국       예루살렘

은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37:1 이하). 그러난 유다를 치신 분은 궁극적으로  여호와

자신이었다.


=====30:15

 본절과 유사한 내용이 14절에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주석가들은 이를  여분

으로 삽입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후렴구와 같은  것이었을 수  있다

(Thompson).


=====30:16

 무릇 너를 먹는 자는 먹히며... - 본절에서는 앞 단락의 장면과 다른 주제가  나타

난다. 이제 파국의 날이 지난 다음의 희망적인 장면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유다에 해(害)를 끼쳤던 자들은 심판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유다의 적들이 유다

를 '먹어 버린다'는 표현은 2:3;5:17;8:16;10:25등에서도 발견된다. 예레미야는  여기

서 여호와께서 느부갓네살을 자신의 종으로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심판한 다음, 그  후

에는 친히 갈대아인들에 대한 심판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레미야보다  한

세기 이전에 살았던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에 대한 예언에서 이와 동일한 사상을  표

현한 바 있다(사 10장). 앞뒤 문맥을 따져보면 이곳에 제시되고 있는  유다의  적들에

대한 심판의 약속은 분명 주제의 급전환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종종 심판 메

시지에서 갑자기 구원 메시지로 주제를 옮겨가며 예언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15절에서

본절로의 주제 변화와 진전은 결코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30:17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 때가 무르익게 되면 12, 15절에서 언

급된 '고칠 수 없는'것이 '치유할 수 있게'될 것이다. 한편 본절의  '시온'이란  말에

대해서 어떤 학자들은 본문을 북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예언으로 보고  유다의  상징인

'시온'이란 말이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본문은 남북 왕국의 백성을  모두

포함하는 전체 이스라엘의 회복을 다룬다는 포괄적 의미로 이해함이 더 자연스럽다.


=====30:18

 내가 포로 된 야곱의 장막들을 돌이키고 - 본절에는 갱신의 약속이 언급되고  있는

데, 이제까지는 다소 일반적인 언급이었음에 비해 여기서는 '야곱의 장막들을  돌이킨

다'는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말로 표현되고 있다. '장막'이란 말은 '족속'으로 이해

될 수 있는데, 이는 그들이 장막에 사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Thompson). 한편  '야곱

의 장막'이란 말은 출애굽 당시 발람이 예언하였던 신탁에서 쓰이고 있다(민 24:5).

   그 성읍은 자기 산에 중건될 것이요 - '자기 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텔'(*    )

은 '흙 무덤'으로도 번역된다. 이것은 '파괴되고 내버려진 성읍의 폐허가  묻혀  있는

언던'을 뜻한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지명에 이런 '텔'이란 말이 복합어로 종종 쓰이

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런 의미 때문이다(Bright).  또한  본절에

언급되고 있는 '성읍'과 '궁궐'이란 말은 유다의 총체적 회복을 암시하는 집합적 의미

를 띤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이것이       단수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대표적인 의미에서 예루살렘과 왕궁을 가리킬 가능성도 있다.


=====30:19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에 대한 문자적 번역은 '웃는 자들의 소리'이다. 이제 포로

당시의 애가와 고통 대신에 평화와 번영으로 인한 즐거운 소리가 흘러나올  것이다(겔

36:33-38;암 9:11-15;슥 8:4-13).


=====30:20

 그 자손은...굳게 설 것이며 - '그 자손'이란 말은 문자적으로는  '그의  아들들',

곧 '야곱의 아들들'이란 뜻이다. 앞으로 그들은 옛 상태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리

고 '회중'으로 번역되고 있는 히브리어 '에다'(*      )는 종교적 예배를 위해서나 또

는 전쟁과 같은 어떤 정치적 목적에서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왕상 12:20 참조).  따라

서 이는 그들이 자주 독립 국가로서 정치적 제도를 완비하게 되며 아울러 민족 단위이

성전 예배를 회복하게 되리라는 약속을 암시한다.


=====30:21

 그 왕은 그 본족(本族)에게서 날 것이요...접근할 자가 누구뇨 - 이는 다양하게 해

석되는데, 브라이트(Bright)는 이를 다윗 시대의 영광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설명하

고 있고, 클라크(Clarke)는 느헤미야와 스룹바벨과 같은 후대의 통치자가  다름  아닌

그 족속 유다인임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를 다윗 계통에서 일어날       메시야적

왕으로 한정시켜서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Feinberg). 이  견

해는 본절 하반절에 의해 강력한 지지를 받는다. 구약적 용법상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

갈 수 있는 특권을 갖는다는 것은  제사장적  사역과  신분을  소유함을  의미한다(슥

6:13). 본문의 왕은 아무 중보자도 필요로 하지 않으면 멜기세덱처럼 제사장적 사역까

지 담당하게 될 것이다(시 110:4;히 5:4-10).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의미를  강

조하기 위해, 본절은 수사 의문문으로 끝나고 있다. 한편 탈굼역(Targum)은 '왕'을 아

예 '메시야'로 의역해 놓고 있다.


=====30:22

 너희는 내 백성이...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이것은 언약 체결 때에 흔히 나타나는

공식 문구이다. 70인역(LXX)에는 이 말이 빠져 있으나 이것은 회복 약속 전체에  대한

최종 목적일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구절이다. 즉, 이스라엘은 마침내 여호와께서  원

하시는 형태로 여호와와 결속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부르심의 참된  목적은

그들로 하나님의 거룩하고 선택된 백성이 되도록 하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출  19:5,

6). 언약 체결은 '너희 하나님'과 '내 백성'이라는 말로 압축된다(7:23;11:4;레 26:12

등).


=====30:23

  여호와의 노가...폭풍과 회리바람처럼 - 본절과 다음절(24절)은 약간의 변화를  제

외하고는 23:19, 20의 내용과 같다. 그러나 현문맥에서 이것은 다른 각도에       적용되고

있다. 다시말해서, 이는 11절과 16절에 언급된 바 이스라엘의 적들에게 임할 심판  약

속에 대한 강조적 의미에서 다시 덧붙여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Thompson, Bright). 아

울러 본절은 악인이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되며 오히려 심판과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음을 상기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영적, 윤리적 목적은 앞에 언급된 희망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항상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30:24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 이는 여호와의 의도와 목적이 이미 결정되었음

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표현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날이 올 때에 확연히 이해되어

질 것이다. 여기서 '말일'을 굳이 종말론적 개념을 가진 말로 이해할 필요는  없으며,

다만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된 후를 뜻하는 것으로 봄이 무난하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