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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예레미야

[스크랩] 예레미야 27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56

예레미야 27장 주석

 

=====27:1

  여호야김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 본절에는 연대기적 상황이 언급되고 있

는데, 26:1의 연대기와 비슷하다. 그러나 3, 12절;28:1등을 참조할 때,  '여호야김'은

'시드기야'를 필사자가 오기(誤記)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므로 본절의 사건은  시드

기야가 왕위에 오른 이후인 B.C. 597년의 포로 사건을 전제하고 있다. 수리아역과  아

랍어역, 그리고 몇 개의 다른 맛소라 사본들 및 영역본 KJV, RSV, ASV등도 이를 '시드

기야'로 읽고 있다.


=====27:2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 예레미야의 청중들은 상징적 행위에 대해 익숙해  있었

던 것이 분명하다(13:1-11;19:1-13;사 20장;겔 4:1-3;12:3;24:3-5). 그는 여기서 황소

'멍에'를 그 상징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멍에'라고 하는 것은 소의 목에다 가죽  끈

으로 매단 나무 막대기이다. 예레미야는 이 멍에를 자기 목에다 걸었으며, 이것을  예

화로 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하였다(Thompson). 이러한 상징은 앞

으로 언급될 몇몇의 왕들이 갈대아인들의 지배하에 놓일 것임을 의미한다(Clarke).


=====27:3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붙여 - '그것을 붙여'(*          , 쉴라흐

탐)란 말은 '그것을 보내어'라는 의미이다. 이는 본절에 열거되어 있는 왕들에게 멍에

가 하나씩 보내졌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혹자는 본문에서 예레미야가  멍에를  하나만

사용했으며, 그것을 그의 목에다 걸었음을 근거로 하여 아마도 이것은 사신들이  자기

왕들에게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보고했던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곳에 등장하는 사신들은 반바벨론 동맹의 결성 문제를 두고 시드기야와 의논하기 위

해 예루살렘으로 파견된 특사였을 것이다. 또한 이들이 유다의 수도에 모였다는  사실

에서 우리는 시드기야가 반바벨론 음모의 주동자였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연유에서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 정복 후 시드기야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렸을 것이다.

이런 일이 있기 1년 전, 아마 B.C.594년 또는 593년경, 바벨론 국내에서는 반란과  소

요 사태가 있었는데, 시드기야를 포함한 느부갓네살의 여러 봉신국들은 이 틈을  타서

반란을 일으키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의논과 모의는  무위로  끝났다(B.C.

588년, 겔 17:1-21).


=====27: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 예레미야가 이들 이웃 왕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우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절대 주권을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

되고 있다. 여호와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백성과 그 안의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

하셨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계시며, 또한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이들을

정복할 임무를 주신 역사의 주인이시기도 하다(Thompson).


=====27:5

  본절에는  하나님의  창조주로서의  위엄과  권능이  서술된다.  '나 의  든  팔'

(*                        , 제로아 한투야)이라는 표현은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 구

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하는 말로 종종 사용된다(출 6:6;신 4:34;시 136:12).

한편 이 백성들 중 일부가 이미 B.C.597년에 포로로 잡혀갔다는 사실에 비추어 여호와

의 권능을 이와같이 선포하고 있는 것은 다소 의아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들이  포

로로 잡혀가는 것조차 여호와의 능력으로 인함이며,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은 온  세계

에 미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의아심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27:6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 '내 종'(*        , 아브디)이라는  표

현은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1)선지자(민 12:7, 8). (2)모든 이스라엘 백성(사

42:19). (3)이스라엘의 남은 자(사 41:8-10). (4)이방인을 포함한 경건한 자(욥 1:8).

(5)메시야(사 42:1;49:3;52:13). (6)다윗 왕가의 계승자(학 2:23). (7)열방의  통치자

들(사 45:1). 여기서는 제일 마지막에 해당하는 용례인데,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종

으로 묘사되어 있다고 해서 그가 여호와를 잘 섬겼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이것은  하

나님이 그를 선택하여서 자신의 신적(神的) 작정을 성취하는 데  사용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앞 구절에 언급된 여호와의 우주적 통치의 표현을 더욱      강화시키

고 있는 것이다. 열방의 운명을 통제하시는 분은 당연히 그들에게 자신의 신적 의지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든지 않든지 상관

없이 결국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야 만다. 7절에는 바벨론 자체도 결국에는 멸망하

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 암시되고 있다(Nicholson).


=====27:7

 열방이 그와 그 아들과 손자를 섬기리라 - 느부갓네살의 후계자는 그의 아들  에윌

므로닥이었다(52:31;왕하 25:27). 그러나 에윌므로닥은 자기 아들에게, 곧 느부갓네살

의 손자에게 왕위를 계승시키지 못하였다. 아마도 쿠데타가 일어난 때문인지 에윌므로

닥의 처남인 네르갈사레셀(B.C. 560-556)이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문자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다만 이곳에 언급되고 있는 열방들이 오랫동안 바

벨론 지배하에 놓이게 될 것임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7:8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는 국민이나...벌하리라 - 예레미야의 충고를 거부한다

는 것은 곧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과 사실상 동일하였다. 유다 백성들로서는 하

나님의 징벌이 하필 이방 세력에 의해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

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을 들어서 유다와 기타 열방들까지 징계하시는 모습을 통해, 우

리는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큰 섭리를 목도할 수 있다. 예레미야의 선임

자였던 이사야 앗수르가 여호와의 목적을 달성시키고 난 다음에는 그들의 임무가 끝날

것이라고 했던 바 있는데(사 10:5-12), 예레미야도 이와같이 바벨론의 임무를  엄격하

게 한정시켰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와의 종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가 그를  필

요로 하는 한 그는 그 요구에 저항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Thompson).


=====27:9

 여기에는 다양한 직책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스라엘에서는 가증스럽게 여겨서  금

지된 것들이다(신18:9-13,Nicholson). 연구를 종합해 보면, 이곳의 '선지자'(*      ,

나비)는하늘에서 어떤계시를받았다고 거짓으로 주장하였던자들이며,'복술자'(*      ,

카삼)는 제비나 화살 등의 여러 수단을 사용하여 어떤 징조를 받아 미래를 알아맞히는

자들로 통하였다. '꿈꾸는 자'(*        , 하롬)는 구름의 형태나 밀도  등을  통해서

점을 치는 자를 가리키고 '술사'(*      , 아난)란 구름이나 별을 보고 장래사를 예언

하거나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내는 자를 말한다. 그리고 '요술객'(*      ,  카솨프)은

신비로운 것이나 초자연적 결과 등을 마법의 방법으로 알아내는 자를  뜻한다(Clarke,

Venema). 그러나 이곳에 언급된 다섯 가지 직책들을 엄격히 서로 구별하기란  힘들다.

다만 당시 백성들이 여호와의 메시지를 거부하면서도 이방의 온갖 거짓 사술들에 미혹

되어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Delitzsch).


=====27:10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서 - 당시 거짓 선지자들은 기득권 상실을 우려하

는 대다수 지배 계층의 주장에 편승하며 또 그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바벨론에 대항하

도록 선동하고 다녔다. 비단 유다뿐만 아니라 그 주변국에도 신흥 세력인 바벨론의 조

기 패망설이 나돌고 있었으므로, 거짓 선지자들의 감언 이설은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

했을 것이다.


=====27:11

 오직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 바벨론에 항복하면 그  순간은  괴롭고

고통스러울지 모르나 모든 평화와 환난은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으므로 당신께서  반드

시 도우사 과거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뜻이다. 느부갓네살의 임무는 이스라엘

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것들을 파멸시키는 것에 국한되었다. 바벨론은 여호와의  목

적을 성취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에게 악한 영향을 미치던 그 모든 것이

파괴될 것이며, 그런 후 포로로 잡혀 갔던 자들은 회개하게 될 것이다.  이때가  되면

느부갓네살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어떤 치밀한 정치적  선견

지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가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역사적 필연에 관한  계

시였다.


=====27:12

  이방 민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경고를 선포하던 예레미야는 이제 유다 백성에게로

그 방향을 바꾼다. 사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이방이 아니라 바로 유다에  있었다.  한

편, 이방에 선포되었던 경고의 예언이 유다에게도 동일하게 선포되었다는 사실은 하나

님의 심판의 엄중성을 한결 부각시키고 있다.


=====27:13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나라에 대하여 -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바벨론 왕에게

굴복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임을 알고 이러한 징계를 겸허히 받아들여서 생명을 보존하

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말은 바벨론에 대한 저항에 사기를 떨어뜨릴  만한

것이었고,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해서 예레미야는 반국가적 선동을 야기시킨 반역자로

여겨졌을 것이다(Thompson).


=====27:14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는  경고가

계속 주어지고 있는데, 이는 왕을 위시한 대다수 백성들이 거짓 선지자들의 꾐에 너무

도 깊이 빠져 있었음을 반영한다. 한편 이방 왕들에게 주는 메시지에서 언급된 바  있

는 복술자, 꿈꾸는 자, 술사, 요술객 등에 대해서는 전혀 서술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바알을 섬기고 하늘 황후에게 제사를 바치던 사람들이(7:17, 18) 이러한 금지된  행위

로 돌아서지 않았으리라고 보기는 힘들다(신 18:9-13 참조).


=====27:15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 거짓 선지자들은 수없이 많은 비난을  받아

왔었다(23:15-40 참조). 그들의 예언은 예레미야의 예언과는 반대되고 모순되었다. 그

들은 여호와로부터 보내심을 받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통해

서 주시는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거부하고 오히려 이들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선호아

였는데, 이 같은 행위는 자신의 추방과 멸망을 스스로 앞당기는 것이었다. 실제로  시

드기야는 느부갓네살에 대한 반역을 시도하다가 B.C. 586년 느부갓네살에게 붙들렸다.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살해했으며, 그런 다음 시

드기야의 눈을 뽑았고, 그를 쇠사슬로 묶어 바벨론으로 데려갔다(왕하 25:1-7).  시드

기야는 거기서 죽었다.


=====27:16

  제사장들과 그 모든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말을 듣지 말라 - 시드기야  왕에게

주어진 것과 같은 내용의 말씀이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도 주어지고 있다. 이  구절에

는 또한 성전의 기구들에 대한 약간의 언급이 있다. 성전 기구들중 대부분의 품목들은

정복자들에 의해 이미 옮겨져 있었기 때문에(B.C.598년, 왕하 24:13) 현재로서는 성전

기구라 불리울 만한 물건이 남아 있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은  그저

소도구들밖에 없었을 것이다(19절 참조).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빼앗겨  버린  성전

기구들이 머잖아 모두 되돌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Bright, Nicholson). 그러나 그 주

장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남아 있는 성전 기구들마저 예루살렘 함락 후 바벨론으로  옮

겨지고 말았다.


=====27:17

 너희는 그들을 듣지 말고 - 거짓 선지자들이 이들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  들려준

예언이란 것은 실제로는 거짓이었으며, 헛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고

용납한다고 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고 심판을  자초하는  행위였다.

거짓 선지자들은 포로로 잡혀 간 자들이 이제 곧 돌아올 것이며, 재앙의 시대가  끝나

가고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하였을 것이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결국 그들의 설교

는 바벨론에 대한 저항과 반역을 자극하고 선동함으로써 유다의 패망을 앞당기는 계기

가 되었다.


=====27:18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구하여야 할 것이니라 - 여기서 선지자는 유다의 조속한

회복을 주장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그래서 그는 남아 있는 것이라도  빼앗

기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라는 말로 그들을 공박한다.  '구하여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가'(*      )는 '만나다', '탄원하다'는 뜻이며 여기서는 중재의  의미로

쓰였다.


=====27:19

 기둥들과 놋바다와 받침들 - 바벨론인들은 이것들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  이것들

은 성전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기구들이었다. 여기서 '받침들'(*          ,  메코

노트)이란 왕상 7:27-37에 언급된 바퀴가 달린  기구였을  것  같다.  '기둥'은  왕상

7:15-22에 언급된 내용과 같은 것이고, '놋바다' 역시 왕상 7:23-26에 언급되어 있다.


=====27:20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 - '여고니야'의 축약형 명칭은 22:24에  언급된

바와 같이 '고니야'이며, 왕명으로 '여호야긴'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Nicholson). 느

부갓네살은 1, 2차 예루살렘 침공에서  성전의  보배들  중  일부를  가져갔었다(왕하

24:13;단 1:2). 그렇지만  그  이후에도  어떤  기구들이  남아  있었을  것이며(왕하

25:13-17 참조), 빼앗겨 버린 기구들 중에 어떤 것은 규칙적인 성전 예배에서  사용되

었던 중요 항목이었기 때문에 새로이 만들어져서 대체되었을 것이다(Thompson).


=====27:21,22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 기구에 대하여 - 여호와의 마지막 말씀은 성전의  부수적

인 소기구들과 왕궁의 기구들이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으로  옮겨

지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것을 옮겨 이곳에 다시 두리라 - 용기와 기구들이 비록  바벨론으로  옮겨진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것들은 하나님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복귀될 것이다.  이것은  눈여겨

볼만한 또 다른 주제로서, 이 민족이 비록 심판하에 놓이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  심판

너머에서 하나님이 이 백성의 새로운 시작을 계획하고  있음을  나타낸다(Nicholson).

어떤 주석가들은 회복에 대한 이와 같은 예언이 파국을 말하는 신탁에는 걸맞지  않은

즉, 이것이 훗날에 첨가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심판 가운데 나타나는  희망의

메시지는 본서의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오직 심판과 절망의 메

시지만을 전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오히려 선지자의 궁극적 관심사는       이스라엘

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섭리에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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