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8장 주석
=====8:1
유다 왕들의 뼈와...묘실에서 끌어내어 -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유다에 침략해
들어온 자들은 패배자들을 더욱 모독하기 위해서 왕들과 귀족들, 그리고 선지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무덤을 파헤쳐서 그 뼈들을 끄집어낼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시체가 매장되지 못한 채 버려지는 것은 큰 저주와 수치로 간주되었는데, 무덤이 파헤
쳐지는 것 또한 이와같은 선상에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본장 1-3절은 앞장 내용의
연속인 바 바벨론 군대에 의해 저질러질 만행에 대한 예언이며(Calvin, Venema).바벨
론은 유다 백성을 능멸하기 위한 목적 외에 무덤속에 묻힌 귀중한 패물들을 약탈할 목
적으로 무덤을 파헤쳤을 수도 있다(Lowth).
=====8:2
그들의 사랑하며...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분토같을 것이며 - 백
성들이 사랑하고 섬기며 경배하던 이러한 천체의 우상들은 그들의 흩어진 뼈들을 무관
심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내려다볼 것이다. 그리고 살아 남은 자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
이기 때문에 이러한 뼈들을 주워모아서 장사지낼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뼈
들은 지면의 분토처럼 내버려지는 것이다.
=====8:3
남아 있는 자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 본절이 지적하고 있는 요지는
도처에서 살육이 자행되고 죽은 자의 시체가 무덤에서 끌어내어 팽개쳐지는 등 하나님
의 심판이 아무리 가혹할지라도 앞으로 하나님께서 살아 남은 자들에게 내리실 징벌에
비하면 이는 경미하다는 내용이다. 즉, 살아 남은 자들의 생은 죽은것보다 훨씬 더 비
참할 것이다(왕하 25:5-7 참조). 하나님의 수많은 권고와 견책을 무시한 결과는 참으
로 끔찍하고 견딜 수 없는 심판이란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무시하며, 온갖 악행을 통해 육신의 배만 불리던 자들에게 최종적으로 임할 영원한 심
판은 아마 이보다 더욱더 참혹할 것이다.
=====8:4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 예러미야 선지자는 여기서 이스
라엘의 한계를 넘어선 완악성을 지적한다. 즉, 누구든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려고 하
지만 유다 백성은 그릇된 길에 빠져들어서는 하나님께로 되돌아오려고 하지 않는 것이
다. 그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을 엄숙하고도 가혹하게 예언했으며 그들을 회개로 인도
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들은 구제 불능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8:5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 실수와 과오는 때로 한 인간의
심경을 변화시켜 더 나은 상태로 인도할 수 있다. 또한 실패를 통하여 교훈을 배우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완악하고 목이 곧은 백성이라 자신의 오류에서 아
무런 유익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그들이 회개하기만 하면 니
느웨 백성처럼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8:6
그들이...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 예레미야는 자신의 예언과 경고
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을 정밀하게 살폈다. 그러나 자신의 악행을 뉘우치는 말을 한마
디라도 내뱉는 자는 없었다. 이런 광경은 우리가 5:1-3에서도 이미 보았던 것이다. 그
들은 전장(戰場)에서 날뛰는 말같이 제멋대로 행하였는데, 여기서 '행하다'는 본서에
서 아주 빈번하게 쓰이는 '슈브'(* )로서 '돌아가다'가 기본 뜻이다. 그들은
여호와께로 돌아서지 않고 그들의 익숙한 행위로 돌아섰다(Thompson).
=====8:7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 예레미야는 여기서 조류의 생태를 예화로 사용
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연계의 새들로 하여금 그 시기와 때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도
록 지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자연계의 법칙에 자동적으로 반응을 하는 것이
다.
내 백성은...알지 못하도다 - 이와는 대조적으로 언약 백성으로 택함받은 이스라엘
은 여호와의 법을 스스로 거부함으로써 마치 그것을 한번도 들어본 일이 없어 알지 못
한 자들처럼 행동했다. 여기서 '알다'(* , 야다)란 동사는 단순한 지적 인식보
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포함한다. 여기에는 감정적, 의지적 차원을 포함하는 전인
격적(全人格的) 체험의 개념을 담고 있다(Thompson).
=====8:8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 그들이 스스로 지혜 있다
고 주장하며 또한 여호와의 율법이 그들과 함께 있다고 주장한 근거는 그들이 예루살
렘에서 종교 의식을 치루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
야 선지자의 경고에 대한 반론으로서 이런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그들이 내
세우는 '여호와의 율법'이란 것은 분명히 '기록된 율법' 즉 성전에서 발견된 바 있는
언약의 책 또는 신명기서와 같은 책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은 행위와
실천보다는 기록된 책 그자체에 무슨 마력과 같은 힘이 있다는 미신에 젖어 있었던 듯
하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율법책이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예루살렘 성전
의 경우와 똑같이 오히려 선지자의 메시지를 방해하는 데 사용되었던 것이다. 본절에
는 서기관이란 말이 나오는데, 구약 성경에서 서기관이 어떤 직책을 맡은 특정 계층으
로 언급되는 곳은 이 부분이 처음이다. 대상 2:55에 따르면, 서기관들의 조직이 있었
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하 34:13에 따르면, 그들의 활동은 요시야 통치 때에 대
단히 두드러졌던 것 같다. 아마 그 이전에도 그들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을 것이
다. 그들은 율법과 역대 왕들의 사적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일 및 가르치는 자로서의
소임도 맡았던 것 같다.
=====8:9
경황 중에 잡히리라 - 이에 해당하는 원어 '하투 와일라케두'(*
)는 번역하기가 다소 난해하다.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Vulgate).은 '하투'
를 '크게 놀라다'는 뜻으로, '와일라케두'를 패전의 결과 포로로서 이송될 사실에 대
한 경고의미로 각각 이해했다. 반면에 페쉬타역(Peshitta)과 탈굼역(Targum)은 전자
를 '흩어지다'는 뜻으로 옮겼다. 어쨌거나 본절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혼비
백산하게 될 상황을 가리킴은 분명하다(McKane).
=====8:10
그들의 아내를 마타인에게 주겠고...다 거짓을 행함이라 - 여기서는 전쟁 이후 저
질러지는 범행이 예화로 사용되었다. 침략군은 유다 여자들을 빼앗아 가되 심지어 유
부녀까지 그리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토록 소중히 여겨졌던 약속의 땅 가나안마저
유린 당하고 적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다. 이런 참변에 대한 이유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탐욕으로 눈이 멀어져 있었고 심지어는 그들의 악행을 발벗고
나서서 말려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오히려 거짓과 사악한 행위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
이다.
=====8:11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 70인역(LXX)에는 10-12절이 누락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6:12-15과 유사한 내용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민족 전체가 중병을 앓으며 파국
직전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사할 것이라는 헛된 확신만을 심어 주었다.
=====8:12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 그들은 이런 거짓 위안으로 백
성들을 속이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얼굴색도 바꾸지 않았다. 따라서 그
들을 설득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의 엄위
하신 심판뿐이다. 설령 심판을 조금 연기한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유익될 것이 조금도
없다. 왜냐하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들의 죄악은 더 커지고 그 형벌이 더욱 혹독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8:13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 포도나무 비유는 본서에서 2:21에 처음으로 등장
하였는데, 거기서는 극상품의 선택된 포도가 야생포도가 되었다는 내용이었으며, 이어
서 6:9에 포도나무 비유가 등장하였는데, 거기서는 예레미야가 포도를 수확하는 자로
묘사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포도나무에 열매가 전혀 없다는 것으로 설명된
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언약의 말씀을 준행할 때 따르는 번영, 축복(신29:9; 시
37:9)과는 대조적으로 언약을 파기한 자들에게는 온갖 저주가 임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8:14
견고한 성읍들로나 들어가서 거기서 멸망하자 - 절망 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울부짖
음이 묘사되고 있다. 그들은 자구책을 강구하며 어떤 조치를 취하려고 하지만, 그 모
든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은 견고한 성읍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성읍은
단지 파멸의 순간을 조금 지체시키는 역할을 해줄 뿐, 파멸은 이미 기정 사실화된 것
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우심이니라 - '독한 물'에 해당하는 원어 '메 로쉬'(
)는 '쓴 물'로도 번역된다. 즉 '로쉬'( )는 신32:32에서 '쓰다'는 의
미에서 '쓸개'로 번역되었는데,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쓴 것'과 '독'은 유다인들에게
있어 밀접하게 연관된 의미를 시사했던 것 같다(민5:18 참조, Delitzsch).
=====8:15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 일말의 희망도 없어진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묘
사가 계속 이어진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명시하는 자들은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면 그때는 뉘우쳐도 이미 늦어버리게 되는 것이다(롬 2:4; 벧후 2:10).
=====8:16
바벨론의 마병이 노도처럼 내달아오는 것을 직접 보게 해주는 것 같은 생생한 예언
이다. 이런 맥락에서 벌게이트역(Vulgate)과 페쉬타역(Peshitta)은 '들리고'를 '이미
들려온다'라고 옮겼다(McKane).
=====8:17
뱀과 독사를 너희 중에 보내리니 - 13절에 이어 다시 여호와의 말씀이 등장한다.
13절과본절 사이에는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본절에는 심판이
닥쳐오는 것이 독사가 달려드는 것으로 비유되었는데, 이 독사에 대한 예화는 민
21:6-9의 내용을 상기시켜 준다. 그들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
을 원망한 죄악으로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심판의 불뱀들로부터 고통을 당했던 것이
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불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의 손길이 있었지만, 지
금 이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손길이 전혀 없다(Thompson).
=====8:18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 본절에서부터 22절까지는 예루살렘
파멸에 대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슬픔과 한탄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예레미아의 이
고통스러운 한탄 속에는 여태까지는 그나마 버틸 만한 힘이 있었지만 지금은 슬픔에
짓눌려 힘을 쓰지 못할 지경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
께 충성을 다하였으며, 그 명령을 어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헌신과 충성심은 자
기 백성에 대한 애정과 맞물려 있었으며, 그 결과 그는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라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8:19
여호와께서...그 왕이...격노케 하였는고 - 여호와의 왕권 사상은 구약에서 두드러
지게 나타나지만, 본절에서처럼 여호와를 왕으로 직접 호칭하는 것은 비교적 잘 등장
하지 않는다.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질문 사항은 구약의 다른 슬픔의 시에서도 흔히
보이는 형태이다(시44:24-26; 73:25-28 등). 그러나 예레미야가 선호하였던 애도의 표
현은 비애와 놀라움을 뒤섞어서 나타내는 형식이었다(2:14; 8:4,5; 14:19; 22:28). 한
편, 문맥상 본절에 등장하는 세개의 의문절 중 첫 번째 두 개의 질문은 백성들이 제기
하는 물음이고 세 번째 것은 여호와의 질문으로서, 앞의 두 질문은 '그렇다 여호와께
서 거기에 계시다'라는 긍정의 대답을 전제한 물음이다(Thompson).
=====8:20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 백성들의 불안과 고통의 울부짖음이 계속
되고 있다. 여기서 '추수'(* , 카치르)는 밀수확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추수 때가 지나갔고 또 여름 과실을 수확하는 시기가 지나갔다. 추수는 흔히 4월에서
6월까지 계속되었다. 밀 추수가 흉작으로 끝날 경우는 포도나 무화가 또는 감람 열매
등의 수확이라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열매조차 수확하지 못하게 되면,
백성들은 기아에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여기서 바로 이런 상황을 예화로
사용하였다. 유다 백성들은 반역된 길에서 돌아서서 회개할 기회가 있었으나 그것들을
차례차례 다 놓치고 말았으며 그래서 다가올 심판에서 구원받을 기회를 영영 상실하고
만 것이다.
=====8:21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 예레미야는 여태까지 심판에 대한 책음이 그들의 극악한
죄악에 있음을 지적하였으나, 여기서는 침략군의 발굽에 짓밟히는 동포의 모습을 생생
히 보고서 그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8:22
본절에서 이스라엘은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으나 치유받지 못한 환자에 비유된다.
그런데 정작 치유받지 못한 이유는 명의나 명약이 없어서가 아니라 환자 스스로가 질
병을 인정하지 않고 또 치유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치
유 계획과 은혜에 순종하고 고질적인 병폐인 죄악들에 대해 회개하였다면 그들에게는
건강과 축복이 주어졌을 것이나, 그들은 정반대의 태도를 고집하였던 것이다(Clar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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