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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예레미야

[스크랩] 예레미야 9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52

예레미야 9장 주석

 

=====9: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 예루살렘 멸망의  상황

이 너무나도 비참하여서 아무리 울어도 충분하지 않다. 즉 유다 백성의  죄와  파멸을

바라보자니 슬픔이 극에 달해 이미 눈물 근원이 말라버렸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또 다

른 눈물 샘이 터지기를 바란다. 그러면 밤이고 낮이고 동포의 살육을 한탄하며 울  수

가 있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지금 이런 심정으로 노래하고 있다(Calvin).


=====9:2

 그렇게 되면 내 백성을 떠나 가리니 - 고대 근동에는 여관이나 유숙하는 집이 없었

다. 다만 대상들이 유숙하는 공공 건물들이 더러 있었는데, 나그네들은  보통  여기서

유숙하였다. 그러나 그곳에는 가구나 음식 같은 것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으며  때로는

지붕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막의 야수들의 침입 정도를 막아주는 벽

만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예레미야는 지금 이처럼 불편한 곳이라도 있으면  거기로

피신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 백성에게 내릴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지  않아

도 되리라는 것이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 구절을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이상과 같은 설명에서 보다시피 예레미야 선지자가 한탄조로 내뱉은 말로  보

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Clarke).


=====9:3

 그들이 활을 당김같이 그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 활을 당긴다고 하는 것은  타

인의 생명을 해하기 위함이다. 그들의 거짓말이 여기에 비유되고 있다. 혀는 타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본절은 참으로 적절한 비유이다(시64:3).  거짓

선지자들은 수없이 심판이나 파멸이있지 않을 것이라고 혀를 잘못 놀려왔다. 백성들은

그들의 거짓을 참인 줄로 착각하고 그들을 믿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회개하지 않

았고 칼이 그들에게 임하였으며 그들을 모조리 파괴하였던 것이다.


=====9:4

  이웃을 삼가며 아무 형제든지 믿지 말라 - 이웃을 믿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들이

속이기 때문인다. 속인다는 것은 문자적으로는 진리(*      , 에메트)가 없다는  것

이며 또한 거짓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당시 유다 사회에  만연되었던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불신 풍조를 반영해 준다.


=====9:5

 이웃을 속이며...악행을 행하기에 수고하거늘 - 혀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하나

님을 찬양하며 이웃을 격려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나, 그들은  거짓

을 가르치고 타인을 모함하는 일에 사용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야기시켰다. 또한, 그들

은 파멸을 얻고 지옥에 가기 위해 악착같이 애쓰고 노력하고 있다.


=====9:6

  네 처소는 궤휼 가운데 있도다 - 인간의 마음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보시며(삼상16:7), 그들의 악을 지적하신다. 여기서 여호와께

서  그들의 처소가 궤휼 가운데 있다고 한 것은  그들이 악한 자들과 함께 악을  공공

연히 자행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척하는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

다.


=====9:7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 여기서는 이전에 사용되었던 예화로 다시  되돌아가고

있다. 이미 유다인들은 제련되지 않는 불량 금속에 비유된 바 있다(6:27-30).  그럼에

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그들을 다시 녹여서 유용하게 만들어 보시겠다는 하나님의 굳은

의지가 표명된다. 택한 백성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는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를  엿보

게 한다.


=====9:8

 그들의 혀는 치명적인 화살과 같고 그들의 입은 속임과 사기로 가득 차 있다. 일상

생활에서 만나는 이웃들에 대해 겉으로는 다정하게 인사하면서도 그 내심은 어떻게 하

여야 그들을 해할꼬 하는 생각뿐이다. '해를 도모하는도다'라는 표현 중 '해'에  해당

하는 원어 '아라브'(*       )는 맹수가 먹이를 노리며 숨어있는 것 혹은 복병이 상대

의 접근을 기다리며 엎드려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9:9

 벌하지 아니하겠으며...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 백성들의 이 같은  악행에

대해 여호와께서 이 백성들을 처벌할 것이며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는

'이런 나라'(*        , 고이)에 보복하실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을 '고이'란  용어

로 지칭한 것은, 이 용어가 이방 나라를 가리킬 때 주로 쓰인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매우 참혹하다. 즉, 그들은 지금 이방인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고아'의

복수형인 '고임'(*         )으로 지칭되는 이방나라들은 언약과  상관없이  족속들로

서, 하나님의 보호와 약속 밖에 있었다. 아마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런 용어를  선택한

것은 그 당시 유다인들이 표리 부동하게도 여호와의 언약을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9:10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 대가로 이 배도한 민족에게 닥치게 될 끔찍한 재앙으로 인

해 예레미야의 감정은 극히 동요되고 있다. 새와 짐승마저 도망가고 없다는 표현 속에

서 철저한 파괴와 황폐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죄와       전국토에

미치는 이 민족의 참변이 서로 결속되어 있다는 내용은 여러  선지자들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주제이다(암4장; 미6:10-16;학1:9-11 등 참조).


=====9:11

 예루살렘이 폐허 더미가 될 것에 대한 예언은 26:18에 인용된 바 미가의 예언과도

동일한 내용이다(미3:12). 또한 예루사렘은 시랑의 굴이 될 운명으로 설명되고  있다.

'시랑'(*          , 탄님)은 자칼(jackal)을 뜻하는 것 같은데, 이것은 이리나  늑대

등과 같은 짐승들인데, 이것들이 폐허가 된 도시에 굴을 만든다고 하는 설명은 예레미

야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익숙한 표현이었던 것이  틀림없다(10:22;  49:33;

51:37; 사13:22; 34:13 참조). 본절과는 대조적으로, 메시야의 날에는 시랑이 눕던 곳

도 옥토로 변하게 되리라는 예언도 있다(사35:7).


=====9:13

  이는 그들이...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 그들이 처참히 멸망당하고 말  이유

가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불신자들의 눈으로 보면, 유다의 패망은 당시의 국내외적

정세(情勢)에 따른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요 한 민족이나 개인

의 흥망 성쇠를 결정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믿는 이들은 본문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

지 않는다.


=====9:14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 가나안 신화에는 엘 신이  최고

의 위치에 있었으며 그의 배우자로서 아세라(또는 아티랏)가 있었다. 바알은 바로  이

두 신들에게서 태어난 자식으로서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는 바알이 가나안 신들의 계열상 최고의 신이었다. 구약과 근동의 고대 문헌을보면 이

바알이란 이름이 지역 신들 중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지명에서도

잘 나타난다. 즉, 바알-하솔, 바알-브올, 바알-시돈, 바알-레바논, 바알-하람 등이 있

다. 바알이란 이름이 포함된 이러한 지명들은 바알이 그 지역의수호신으로 인식되었음

을 말한다. 우가리트의 종교 문서와 전설 등을 참조하면, 그 당시 수많은 종교 의식들

이 바알 신과 결부되어 있었고 또 다산 제사가 성적 활동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음을 분

명히 알 수 있다. 이런 종교 행사들은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매

력을 주었던 것이며,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그런 활동에 가담하는 것에 대해  맹렬하

게 경고하였다(왕상18:20-40; 호2:13,17; 습1:4). 여호와 외의 다른 신들에게  제사한

다는 것은 여호와의 주권을 거부하는 것으로서, 이것만으로도 심판을 초래하기에 충분

한 것이었다(Thompson, Harrison).


=====9:15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 그들은 가장 처절한 슬픔을 맛보게 될 것이며, 가장 고

통스러운 고난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음식과 음료 대신에 독을 마시게 될  것이

다(Clarke). 한편 '쑥'에 해당하는 '라아나'(*          )와 '독한'에 해당하는  원어

'로쉬'(*        )가 신29:18; 애3:19; 암6:12 등에서도 함께 등장하는데, 이는 쓴 것

과 돌이 같은 맥락에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C.W.E. Naegelsbach).


=====9:16

 알지 못하던 열국 중에 그들을 헤치고 - 이사야는 하나님의 심판이 언약 파기의 결

과라고 말하였으며(사1:4-9), 마모스는 포로로 잡혀 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암

4:1-3). 그리고 신 28:36에 기록된 저주 목록 중에도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 이전에는 한 번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유다 백성들은 본문과 같은 예언이 성취되리라고는 믿을 수 없었을  것이

다.


=====9:17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 곡하는 부녀들은 댓가를 받고 초상집에 가서       소리내어

울어주는 일을 하였다. 이런 관습은 오늘날에도 근동 지역에서 계속되고 있다. 아일랜

드에도 이 관습이 대단히 유행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그들의 조상들이 동방에서 건

너왔기 때문일 것이다. 죽은 자를 위한 첫 번째 애도는 갑작스럽게 표현할 수 없는 슬

픔을 터뜨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9:18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 예레미야는 이들 직업적인 애곡자들을 향하

여 그들의 일을 빨리 진행하라고 촉구하고 있는데, 그것은 당시 상황이 그만큼 긴박하

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9:19

 그들이 우리 주택을 헐었음이로다 - 70인역(LXX)은 이를 '우리는 우리 집들을 포기

해야(내어버려야) 한다'고 옮겼으며, 어떤 주석가들은 레 18:25에 근거하여 이를  '우

리의 처소가 우리를 내어던졌다'라고 해석하지만(Hitzig, Kimchi) 이는 맛소라 본문에

충실하지 못하다.


=====9:20

  너희 딸들에게 애곡을 가르치며 - 아울러 이 말에는 자자 손손 애곡이 이어지게 되

리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9:21

  사망이 우리 창문에 올라오며...멸절하려 하느니라 - 여기서는 사망이  의인화되어

있다. 이 사망이 창문을 타고 요새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는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자기의 희생자들을 내어놓으라고 주장한다. 사망은 거리의 아이들과 공공 장소의 청년

들을 멸절시키고 말 것이다. 한편, 사망이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는 내용은 고대  근동

의 가나안 신화에서도 발견된다(Thompson).


=====9:22

 유다인들이 대량 학살당할 뿐 아니라 그 시선조차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질 것에  대

한 비유이다. 분토(*        , 도멘)는 썩는 냄새를 풍기는 거름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반절은 유다인들의 시체가 밭에 흩뿌려진 거름처럼 버려져서 온 땅이 악취로 가득하

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그리고 뭇(*         , 아미드)은 추수를 하면서 여기저기 흘

려놓은 곡식 이삭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반절은 이미 추수가 끝나 내팽개쳐진 채 돌볼

사람이 없는 뭇처럼, 유다인들의 시신 또한 미처 장사지내지 못하게 되는 치욕을 당할

것을 가리킨다(신21:22,23 참조).


=====9:23

  문맥의 흐름상 본절과 24절은 독립된 신탁의 말씀인 듯하다. 하나님은 모든 축복의

원천이시기 때문에 그로부터 또는 그를 통하여 나오지 않는 지혜와  용맹  그리고  부

(富)란 무의미하다. 부(富)란 것은 죽는 날이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힘과 용맹도 사

망에 대항할 수가 없다.


=====9:24

 본절 내에는 대단히 중요한 용어 세개가 쓰이고 있는데 그것은 '인애'(*

    , 헤세드), '공평'(*          , 미쉬파트). '정직'(*           ,  체다카)이다.

이 세 단어들은 대단히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서 그 함축된 의미를 다 드러내면서

적절하게 번역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첫 번째 낱말인 '인애'에  해당하는

'헤세드'는 구약에서 약 245번 쓰이고 있다. 이 용어는 '진실한 사랑', '끊임없는  사

랑', '충실함', '다함없는 헌신', '자비' 등으로 번역된다. 하나님의 활동은 그의  백

성의 불성실함과 두드러지게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

한 진실하심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공평'에 해당하는 '미

쉬파트'는 의를 행하는 자를 격려하고 악을 범하는 자를 징계하는 '공의' 혹은 '정의'

를 의미한다. 심판자로서 여호와는 행악자들의 활동을 제한하시고  그를  처벌하신다.

반면에 의인을 구원해 주시고 그를 위해 변호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서  압제받

는 자들은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었던 것이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불러 그들

사이에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었다(창16:5; 출5:21; 시26:1; 사2:4).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권리가 완전히 보장받기를 원하셨던 것이며, 이것은 그가 '미쉬파트'를

세우고자 하심을 의미한다. 세 번째 단어인 '정직'에 해당하는 '체다카'는 흔히  '의'

가 그의 백성 중에, 그리고 전세계 사람들 중에 편만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셨다(마6:33). 한편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에 메시야께서 '미쉬파트'와 '체다카'를 가지고 다스리실 것이라고 예언하

였다(사9:6).


=====9:25

 할례받은 자와 할례받지 못한 자를...다 벌하리니 - 할례받은 자는 유다인들을  지

칭하고 할례를 받지 못한 자란 이방인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모두 똑같이 여호와의 공

의의 심판아래 있다. 마음의 할례가 없는 단순한 의식에 의한 육체적 할례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지는 않는다. 다음절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서 할례받지

않는 자들이란 애굽의 주도로 결성된 반바벨론 동맹을 우선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9:26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에게라 - 그들의 신전에서 머리털을 밀어버리는 관습

을 가졌던 아랍의 어느 부족을 가리키는 듯하다(Harrison). 그러나 히브리 율법은  이

같은 행위를 금지하였다(레19:27). 바벨론 군대가 아랍인들을 원정한 바 있는  것으로

보아(49:28-33), 이들 역시 반바벨론 동맹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짙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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