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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예레미야

[스크랩] 예레미야 10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52

예레미야 10장 주석

 

=====10:1

  1-16절은 운문체로 기록된 한편의 시이다. 그 내용은 우상들에 대한 통렬한 공격과

풍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직 창조주만이 만민으로부터 경배받을 자격이 있음을 명시

하는 내용이다(Thompson). 한편 이 시는 여호야김 통치 당시 유다 백성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짐작된다(Dr. Dahler).


=====10:2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 여기서 '길'이란 것은 그들의 풍습 또는 종교적 관습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J.Bright). 또한 '배우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틸마두'

(*              )는 '제자가 되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고대 근동 종교들의  주요한

양상들 중의 하나는 해, 달, 별 등의 천체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이런 관

행에 대한 유다의 답습 행위는 이미 당시로부터 1세기 전의 아모스       선지자도  지적한

바 있다(암5:25,26). 또한 이것은 므낫세 당시(B.C.697-642년)에 유행했었던  것(왕하

21:5,6)이며  요시야는  특히  이런  제사  관행을  타파하는   데  주력하였다(왕하

23:5,11,12). 아마 열방들은 이러한 천체 현상들을 두려워하여 경외하였던 것으로  보

이며, 특히 혜성이나 일식, 월식과 같은 비정상적인 천체 현상에  대해  무서워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천체 현상들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나타나는  것들로

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이런 형상들을 경외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위인

것이다(Thompson).


=====10:3

 열방의 규례는 헛된 것이라 - '규례'에 해당하는  원어  '후코트'(*           )는

'판결하다', '기록하다'란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헤크'(*     )에서  파생된  명사로

서, 일종의 재판상의 판결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Calvin). 한편 이 '규례'는  그

들이 '믿는 것'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우상이나 종교적 가르침 등을 뜻할 수도 있다

(J.Bright).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우상 숭배에 대한 예레미야의 지적이 시작되고  있

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본절 후반부는 '삼림에서 벤 나무요...도끼로 만든 것'으

로 우상의 본질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로써 전반부의 '규례'를 '우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상에 대한 본절의 묘사는 구약의 여러 다른 부분에  묘사되어  있는

것과 유사한 형태를 따르고 있다(시115:4; 사2:20; 44:9-20). 또한 본절에는 우상들이

생명없는 무익한 것임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던 수세기에 걸쳐 사용된 격언들이  반영되

어 있는 것 같다. 어떤 주석가들은 본절의 내용을 근거로 해서  본서에는 포로 후기의

내용이 많이 삽입되었다는 견해를 내세우고 있으나, 그러한 견해를 뒷받침할 만한  근

거는 희박하다.


=====10:4

 은과 금으로...못과 장도리로...요동치 않게 하나니 - 우상이란 사람의손으로 만든

동상으로, 금이나 은과 같이 귀한 것으로 장식하였다고 하나, 고꾸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못이나 망치 등으로 고정시켜야 하는 그런 물건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삼상

5:1-4 참조).


=====10:5

 그것이 갈린 기둥 같아서...두려워 말라 - '갈린 기둥 같다'는 말은  종려나무처럼

꼿꼿이 서 있다는 뜻이다(Clarke). 그러나 이것들은 말도 못하며,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따라서 그것들은 재앙을 내리거나 복을 주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이것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예레미야는 지금 이런 점을 역설하고 있다. 그것들은

그들의 존재 자체도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데도

역시 사람에게 의존되어 있는 무기력한 존재인 것이다.


=====10:6

 주는...크시니이다 - 예레미야는 우상의 무능함을 지적한 뒤 이제 하나님을 소개한

다. 그가 여기서 이렇게 하나님을 소개하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는

한, 우상을 두려워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참된 교육만이  우상과  미신을

타파하고 추방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Calvin). 구약은 여호와를 다른  것과

감히 비길 수 없다는 점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 우상들이 인간에게 의존하는 존재이

며 그것들의 위상과 권위를 인생에게서 이끌어 내는 것과는  정반대로,  여호와께서는

그 자신으로부터 그의 지위와 권위를 나타내신다(Thompson).


=====10:7

 열방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치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 - '누가 감히 만유의 창조자

이시요 수여자이신 당신을 경배하지 않을 수 있나이까?'란 뜻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참 종교의 근본 실체인 것이다(A. Clarke).

   이는...주와 같은 자 없음이니이다 - 예레미야는 여기서 여호와의 유일하심과 위대

하심을 강조하기 위해 열방들 중에 가장 지혜로운 자나 또한 가장 높은 자라 할지라도

여호와와는 비길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의 왕권 사상을  진하게

드러내 놓고 있긴 하지만, 이처럼 여호와를 왕으로 직접 묘사하는 것은 흔치 않은  장

면이다(Thompson).


=====10:8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 여기서 예레미야는 다시 우상에 대한  묘사

로 들어간다. 이 내용은 3-5절의 우상에 대한 서술임을 더욱 확대시킨 것이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은 그들 자신의 상상에 의해 생산해 낸 그것을 그들의 신으로 섬

기고 있으며, 또한 왕권을 가진 자들 역시 생명없는 인간의 작품을 그들의 종교로  삼

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그들의 생산품만큼이나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다. 이  구절은

해석하기에 좀 난해한 두 동사를 내포하고 있는데, 먼저 '무지하고'는 우상을  경배하

는 이방 나라들을 가리키는 말로 또 '어리석은'이라는 동사는 그 다음의 어구와  연결

시켜 이해할 수 있겠다. 이런 맥락에서 본절 후반부를 다시 해석해보면,  '없는  것들

(우상들)의 도(종교)는 어리석은 것이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의 연결 여부

를 별개로 하더라도 그 의미는 분명한데, 우상들에게서 받을 수 있는  교훈이란  우상

그 자체 만큼이나 무가치하다는 점이다(Thompson). 한편 블레이니 박사(Dr.       Blayney)

는 본절 후반부를 '나무 그 자체가 헛된 것들의 비난자이다'라고 번역한다. 신으로 추

앙되고 있는 것이 나무란 사실은 우상 숭배자들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증명하고 있다는

뜻이다.


=====10:9

  다시스에서 가져 온 은박과 우바스에서 가져 온 금 - 어떤 이들은 '다시스'를 스페

인의 타르테수스로 보고 있는데, 그 당시 페니키아인들은 여기서 많은 은을       수입했다

(Clarke). 아마 고대인들은 이곳을 서쪽 세계의 끝으로 보았던 것 같다. 한편, 최근에

이 '다시스'란 말을 지명으로 보기보다는 '제련된'(혹은 제련소)이란 뜻으로 번역하기

도 한다. 그리고 '우바스'는 위치가 어디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어떤  학자

는 이곳을 비손 강(Clarke) 혹은 인도나 아라비아 등지로 본다(Nicholson).

   청색 자색 감으로 - 이는 고대 당시에는 극히 귀한 염료로서 대단히 값비싸고 구하

기 힘든 것이었다.


=====10:10

  오직 여호와는...왕이시라 - 여호와께 대한 세 가지 선언이 담겨 있는데 이들 각각

은 우상들에 대한 단언들과 대조되고 있다. 즉, 그것들은 거짓 신이고,  생명이  없는

신이며, 단 한순간도 신으로 존재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 그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자연 현상들을 들자면  폭

풍, 지진, 천둥, 벼락 등을 꼽을 수 있다.  여호와의 진노의 표로 상징되는 이런 것들

이 덮칠 때 열방들은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 것이다.


=====10:11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망하리라 - 이 구절이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

에 근거하여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이 본서의 저작 연대를 후대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

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당시 아람어는 서방 아시아와 이스라엘 변방 민족들 사이에

서 이미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었다. 아무튼 이 구절은 거짓 신들과 또 이를       숭배하는

자들 모두가 결국에는 망하고 말 것임을 지적한다. 창조주가 아닌 인간의 손으로 만들

어진 이들 우상들은 그들의 만든 사람들과 같이 멸망하고 말 것이다.


=====10:12

  여호와께서는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  이곳에는 여호와의 권능과 지혜와  명

철이 언급되고 있는데 우상들의 무능, 어리석음, 무지와 대조되고 있다. 특히  본절과

13절은 열방들의 생명없는 우상들에 대한 비난과는 반대로 하나님의 창조주로서의  위

치를 높이 찬양하고 있다(Nicholson). 한편 12-16절의 내용은 51:15-19에서 나타난다.


=====10:13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 하나님이 창고 속에 바람을 넣어두고 계시다가  임

의적으로 내어 보내시는것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곧 자연의 기상마저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시사한다. 또 바람뿐만 아니라 눈과 우박도 이러한 비유로 다루

어진 바 있다(욥38:22,23; 시135:7).


=====10:14

  금 장색마다...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 본절에는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

이 언급된다. 이곳의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자는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은 위치에 놓여있는 것이다(벧후2:12). 하나님이 원

하시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메시야 때에 가서는 작은 자

로부터 큰 자까지 다 하나님을 알 것이라고 예언하였다(31:34).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에 매달려 있는 자들은 그 우상에 의해서 멸망하고 말 것이다.


=====10:15

 그것들은 헛 것이요 망령되이...멸망 할 것 - 우상에 대한 간결한 묘사가 세  가지

로 압축되어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첫째, 무가치하고 공허한 것(*       ,  헤벨)이

다. 둘째, 그것은 망령되이 만든 것으로서, 착각의 소산 또는 비웃음과 조롱거리가 될

만한 것을 뜻한다. 셋째는 징벌하실 때에 멸망하고 말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바, 인간

스스로의 설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어찌 그들을 보호하고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반

문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Calvin).


=====10:16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 여기서 예레미야는 본시(1-16절)의 결론을  내

리고 있다. 여호와는 우상들과는 정반대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분깃'(*       ,

헬레크)이란 어떤 사람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땅(왕하9:10)이나 또는 전쟁 후의 전리품

에 대한 몫(창14:24; 사53:12)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산업의 지파란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계셔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셨음을 뜻하는 말이다. 이스라

엘과 여호와의 관계는 이처럼 끊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이었기에 하나님의 그들에  대

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보호하심은 극진하였다. 이스라엘의 순종과 감사는 바로  이런

관계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바, 그들이 다른 신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이유가 되기

도 한다. 또한, 여기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

야훼 체바오트)임을 다시 밝히고 있는데, 이 칭호는 원래 별들과 천체 위에       지배하고

계시는 여호와의 주권을 염두에 둔 칭호로서, 이방인들의 해, 달, 별 등의 천체  숭배

와 극명하게 대립되어 있는 것이다.


=====10:17

 에워싸인 가운데 앉은  자여...수습하라  -  어떤  주석가들은  17-25절의  내용이

9:17-22에 이어졌던 것이란 견해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런 견해는 대단히 임의로운 주

장일 뿐이다. 여기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우상에 대한 극명한 대조에 이어 오랫동안 예

언되어 왔던 참변이 이제 예루살렘 성문 앞에 이르렀음을 나타내고 있다. 본절은 아마

예루살렘이 포위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은 적들의  침

입에 직면하여 피난 보따리를 꾸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수습하라'(*         ,  아사

프)란 말은 9:22에서 수확물을 '거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말이다. 앗수르인의  고

분 벽화를 보면,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포로로 잡혀가는  자들의  장면이  보인다

(thompson).


=====10:18

 이 땅에 거하는 자를...내어던질 것이라 -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고 말 것이라는 예

언이다(Nicholsosn). '내어던지다'의 원어 '칼라'(*       )는 원래 투석기에 돌을 담

아 내어던지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로서 대단히 생동감 있는 내용을 전달한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을 하시는 분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묘사되고 있다.  여

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오랫동안 참으시고 인내하셨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

다. 이제는 심판의 시간인 것이며, 눈물과 호소의 때는 지나간 것이다.


=====10:19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 우리는 여기서 예레미야의 고통스러운 역할을 보아야 한

다.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 심판과 파멸을 예언해야 했으며, 이와 동시에 그는  그들의

운명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한탄은 그 민족의  한탄과  일치되는

것으로서, 그의 고뇌는 그 민족의 질병이 이제 치유될 수 없는 상태란 점에 있었다.


=====10:20

  내 장막이 훼파되고...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 예레미야는 유목민들이 이주하기

위해 그들의 장막을 철수하는 것을 예화로 사용하여 그의  슬픔을  표현한다.  여기서

'장막'이란 유다인들이 거주하던 예루살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던 말이며, 그  자녀

는 예루살렘 거민을 말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쫓겨나서 다시 장막을 치지  못하고  말

것이다.


=====10:21

 목자들은 우준하여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 이제는 목자와 그들이 치는 양떼를

비유로 하여 슬픔을 토로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목자'는 흔히  지도자들을  상징하는

말이었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야기시킨 일차적 책임이 있는 정치, 종교  지도

자들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우준한 자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

이 야수나 다름 없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탁받고 있으면서도 여호와의 언약이

나 율법을 따르지 않고 있으면서도 여호와의 언약이나 율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  임

의대로 처신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번영이나 형통함이 있을 수 없었고  이

에 대한 결과가 결국 백성들에게까지 돌아가고 만 것이다.


=====10:22

북방에서부터 크게 떠드는 풍성(風聲)이 오니 - 이것은 북쪽 적들이 큰 함성을  지

르면서 밀려오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유다 성읍들을 쓰레기더미로       만들고 짐승들의

거처가 되도록 할 것이다. 이 예언은 B.C. 586년 느부갓네살의  침략으로  성취되었는

데, 전국토가 거의 초토가 되고 말았다.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B.C.6세기 초에  많은

도시들이 파괴되었으며, 그 후 대다수가 복구되지 못한 채로  버려져  있었다고  한다

(thompson).


=====10:23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 이는 인간의 운명이 궁극적으로는 여호와의

통제하에 있다는 내용이다(Nicholson). 유다의 형편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

지만, 예레미야의 관심은 계속해서 자기 동포의 운명에 쏠려 있었으므로 하나님께  탄

원하고 있다. 그의 탄원의 요지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그들 자신들의 운명을 통제할 능

력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으로서 이 점을 고려해 달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간이  연

약하여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죄악에 빠지기 쉬운 도덕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고 탄

원한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운명을 자기가 개척할 수 있

다고 큰 소리친다한들, 결국 그것은 인간의 한계 바깥에 있는 것이다. 요컨대, 여기서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들에게 임할 재앙을 걱정하며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

탄원하고 있는 것이다.


=====10:24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 백성들 편에 서서 드리는 예레미야의 중보기

도가 계속 이어진다. 그는 유다 백성이 징벌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지만, 견딜 수 없는 처벌을 받아 결국 완전히 파산되어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  빠

지지 않기만을 탄원하는 것이다(C.L. Feinberg). 한편, '징계하다'라는 뜻으로 번역된

동사 '이사르'(*       )는 구약의 여러 다른 용례들을 보면  교육적 의미에서 징벌을

가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10:25

 주를 알지 못하는...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대

적들에게는 엄격한 공의의 심판을 적용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외부에 있으며,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오

직 정복을 위한 정복, 살육을 위한 살육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들은...황폐케 하였나이다 - 적들의 잘못된 행위를 열거함으로써 에레미야는 하나

님께 대한 자신의 호소를 더욱 뒷받침한다(Thompson). 이러한 예레미야의 기도는 갈대

아인들에게서 그대로 성취된다. 느부갓네살은 훗날 미쳐버리고, 그의 아들은 반역자들

에게 살해된다. 그리고 바벨론 제국은 결국 멸망하고 마는 것이다. 이 구절은 종종 하

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불경건한 족속들에대한 저주문으로 인용되어 왔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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