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6장 주석
=====6:1
본절에서부터 8절까지는 북방의 적이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
는 시이다. 본절에 언급되고 있는 베냐민 지파는 예레미야가 소속해 있는 지파이며 그
의 고향 아나돗은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약 4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
다. 적의 침략이 임박함에 따라, 선지자는 경고의 나팔을 울릴 것을 촉구하면서 무장
하고 침략자들을 맞아 싸우라고 말한다. 그리고 베냐민 자손들이 호명된 것은 예루살
렘이 베냐민 지파의 영역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드고아는 아모스의 고향으로서 베
들레헴에서 남쪽으로 약 9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벨학게렘은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
에 이르는 도상에 위치해 있었는데, 여기서는 봉화불을 올리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6:2
아름답고 묘한 딸...멸절하리니 - 시온이 아리따운 소녀에 비유되었다. 70인역
(LXX)과 탈굼역(Targum)은 본절을 '아름답고 상냥한 자여, 어떻게 해서 네 길이 더러
워졌는고'라고 번역하고 있다. 하나님은 딸 시온을 이처럼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로 여
겨왔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수치와 불명예가 뒤따를 것이다(Calvin).
=====6:3
목자들이 그무리 양을 묵고 와서...먹이리로다 - 여호와로부터 심판받게 될 예루살
렘이 여기서는 군대를 거느리고 진군해오는 목자들의 목축지로 묘사되고 있다. 그들은
이곳을 지배하며 자기 군사들을 먹이게 될 것이다. 그들은 또한 각자 지역을 분할하
여 장막을 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장시간에 걸쳐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할 것
임을 암시한다(Thompson, Clarke).
=====6:4
준비하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다쉬'(* )는 '봉헌하다', '성결하게
하다'는 뜻을 내포하는 바 전쟁을 시작하기에 앞서 어떤 종교 의식을 치르는 것을 가
리킨다.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그늘이 길었구나 - 고대 근동에서는 전쟁이 주로 아침에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정오에는 햇빛이 내리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같이 전쟁을
개시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시간인 정오에 전쟁하러 올라가자고 한 것은 적군들이 정오
라 할지라도 결코 공격을 늦추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또한 적들은 날이 기울어진 것
을 아쉬워한다. 이는 밤이 되어도 계속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음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Harrison).
=====6:5
우리가 밤으로 올라가서 - 전쟁 때라도 저녁이 되면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위해 침략해 들어온 적들은 밤에도 공격을 감
행하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적군의 사기가 충천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이 구절을 낮에는 기회를 놓쳤지만 밤에는 기회를 잡자는 의미로 보고 야음을 이용하
여 기습 공격을 감행하자는 것으로도 해석한다.
=====6:6
나무를 베어서...흉벽을 쌓으라 - 이는 앞으로 일어날 싸움의 양상이 어떻게 진행
될 것인지를 암시하는 말이다. 에루살렘 사람들은 성을 지키고자 노력할 것이며, 북방
의 대적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성을 부수려고 할 것이다. '흉벽'(* , 솔
레라)이란 성벽을 파괴하기 위해 쌓아올린 거대한 공성퇴를 말한다(삼하20:15; 왕하
19:32; 겔4:2; 26:8).
=====6:7
샘이 그 물을 솟쳐냄 같이 - 예루살렘이 악을 계속 만들어낸다는 뜻에서 샘에 비유
되었다. 그리고 만연해 있는 사회악은 결국 심각한 도덕적 부패를 야기시켰는데 본절
에서는 이것이 질병과 창상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질병에는 위대한 의사의 진료와
치료가 요청되지만 유다는 여호와의 훈계를 저버리고, 멸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6:8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 유다가 여호와의 훈계를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주
께로 돌아선다면, 아직 기회는 있다는 암시이다. 이와같이 심판이 선고되는 긴박한 상
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실 기회를 찾고 계신다. 이는 자신을 배반하고 떠
나간 아들의 귀향을 간절히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과도 유사하다(눅15:11-32).
=====6:9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 침략해 들어오는 갈대아인들에게 예루살
렘 점령 이후 포로로 잡혀 가고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자들마저 잡아가라는 권고의 말
씀이 주어진다. 남아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크게 뉘우쳐야 할 것인데, 이
들조차도 주께로 돌아오지 않음을 암시한다. 한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확할
때 남김없이 거둬들이지 말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남겨두라고 명하셨으나(레19:10; 신
24:21), 당시 유다인들은 탐욕에 이끌려 이러한 규례를 무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
다면 본절에서 하나님의 그러한 죄악들을 장차 받게될 심판과 연관시켜 언급하고 계신
셈이다.
=====6:10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 이는 유다가 여호와의 말씀을 완고하게 거부
하였음을 가리킨다. 귀가 '할례를 받지 못했다'(* , 아렐라)는 표현은 다소
생소하다. 다른 곳에서는 입술의 할례(출6:12,30)나 마음의 할례(레26:41)란 표현이
쓰이고 있다. 닫혀있는 귀에는 그 어떤 훈계나 가르침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6:11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 예레이먀의 전인격은 여호와의 계시를 온전히 수
용하는 편에 서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여호와의 분노를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
며, 그의 분노에 항의하거나 분노를 거두어 달라고 요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
니라 그의 능력으로는 유다에 임할 심판을 막을 수 없었다. 한편, 클라크(Clarke)는
이를 약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 유다에 임할 무섭고 끔찍한
심판의 광경을 예레미야에게 계시해주셨기 때문에 그의 영혼이 이 예언을 힘써 전하기
위해 뜨겁게 불타 올라 있었다고 해석하였다.
=====6:12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 - 유다인들의 모든 소유가 타인에게 넘어가는 이유는 하
나님이 그의 손을 그들에게 펴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서 자신들을 쫓아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
한 사실은 이미 모세가 경고한 바이기도 하였다(신28:30 이하).
=====6:13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 이 백성은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탐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더군다나 백성들의 도덕적 타락을 경고하고 바른 길로 인도
하여야 할 종교 지도자들까지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작은 자'와 '선지자'가 대구
를 이루고 있고 '큰 자'가 '제사장'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선지자가 제사
장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단지 모든 성직자를
다 포괄하기 위해 이렇게 표현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J.Bright, Thompson). 그
리고 탐남으로 번역된 원어 '바차'(* )인데, 끝부분의 거짓과 대칭을 이루며,
이와 유사한 뜻을 나타낸다. 이 단어가 어떤 경우에는 '이득을 얻다'란 의미로 쓰일
때도 있지만, 대체로 '부당한 이익을 탐하다', '탐심에 빠지다'는 뜻으로 쓰였다.
=====6:14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 백성들의 상태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는데도 종교 지도
자들은 거짓 평강만을 외쳤다. 여호와와 백성 간의 언약 관계는 파괴되어 심판이 목전
에 다달았다. 따라서 백성들에게 팔요한 것은 허황된 빈 말로써 땜질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치료였다. 한편 심상히(* , 네칼라)란 말은 원래 '무가치한 것으
로', '하찮은 것으로'란 뜻인데, 70인역(LXX)은 이를 '여수데눈테스'(*
)라고 번역하여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며', '경멸하며'로 해석
하였다. 심각한 상처에 대한 경각심 없이 이렇게 처치한다는것은 의사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6:15
부끄러워하였느냐...않았느니라 - 종교지도자들은 백성을 속이고 사기치는 더러운
행위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들은 얼굴을 붉히는 법도 알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민족 전체가 잠겨 있는 그 악행에 대해 완전히 감각을 잃고 말았다. 더욱이 그
들은 단순히 무감각한 정도가 아니라 악을 향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던 것이다. 어쩌
면 그들은 요시야 왕의 개혁 운동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와 화목하게 되었으므로 저들의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의식 준수만으로도 항구적인 평화가 보장되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Thompson, Harrison).
=====6:16
옛적 길 곧 선한 길이...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 이스라엘의 믿음의 선조들이 순수
하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살았던 것을 가리킨다(창4:4;5:24; 6:8,9; 12:4등 참
조). 그러나 당시 유다의 상황은 그들이 지난날 걸어온 행적을 되돌아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계시가 주어지는데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형편에 처해 있었다. 예
레미야는 그들에게 안식과 번영의 길을 제시하였으나 그들은 이를 거부하고 멸망과 죄
악의 길을 택하였다.
=====6:17
파숫군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결코 자기 백성의
멸망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여기서의 '파숫군'이란 백성들이
반역과 불순종의 죄악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거나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
키도록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가리킨다(겔3:16-21; 33:1-19, Nicholson).
=====6:18
열방아...회중아...알라 - 이제 하나님은 열방을 불러 그의 백성에게 내려지는 심
판이 얼마나 철저한지를 보라고 하신다. '회중'의 히브리어 '에다'(* )는 구약
에서 대체로 이스라엘 회중을 뜻하나 여기서는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런 점에서 이 말을 '증인들'(Witnesses)이라 옮긴 NIV의 번역이 좋다. 말하자면, 만
방에 신앙의 모범을 보여야 마땅한 제사장 나라가 오히려 배도의 길을 걸음으로써, 오
히려 이방 민족들이 증인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심판과 수치를 당케 되리라는 말씀인
것이다.
=====6:19
본절은 앞절에서 증인들을 소환한 후 유다 백성에게 내리는 선고문의 내용이다. 그
리고 또한 처벌의 이유가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고 지
적된다. 여기서 '법'(* , 토라)이란 모세의 율법을 뜻하며 여호와의 율법이
여호와의 말씀과 평행을 이루며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8:8,9). 아마 백성들과 종
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정의와 바른 길을 제쳐 두고 단순히 형식적 종교
의식을 통해서 언약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20절).
=====6:20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달게 여기지 않노라 - 여기서 선지자는 앞절의
내용을 보충하면서 하나님은 순종이 결여된 향기로운 예물을 원치 않으신다는 점을 지
적한다. 이런 지적은 다른 선지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다(사1:11-14; 암
5:21,22; 미6:6-8). 유향은 그 당시 무역 중심지였던 서남부 아라비아의 시바에서 들
어왔으며(겔27:22), 향품은 인도에서 들어왔던 것 같다. 이 구절은 성전의 모든 제사
체계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레미야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순종과 언약의 준
수이지 이에 대한 폐지가 아니었다. 즉, 믿음과 말씀, 순종이 없는 제사는 하나님 보
시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에게 짐이 될 뿐이다(삼상
15:22; 사1:14).
=====6:21
내가 이 백성 앞에 거침을 두리니...멸망하리라 - 하나님이 이 백성들에게 마련해
둔 '거침'이란 것은 본절에는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백성들이 스스로 자초
한 장애로 이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비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대적의 침략을 뜻할 수 있다. 어쨌든, 그들
은 이 거침에 의해 아비와 아들들 그리고 이웃과 친구 할 것 없이 모두가 걸려 멸망하
게 된다.
=====6:22
한민족이 북방에서 오며...땅 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나니 - 본절에서부터 26절까
지는 북방에서 침략해 들어올 적에 대한 묘사가 다시 언급되고 있다. 이 부분은 운문
체로 기록되고 있는데, 본절과 23절의 내용이 50:41,42에서 다시 언급된다.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밝혀져 있지 않지만, 바벨론을 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다. 혹자는 이어
지는 '땅 끝에서부터'라는 말에 근거하여 이 민족을 스구디아인으로 본다(Hitzig). 그
러나 '땅 끝'이라는 말은 북방의 특정한 나라를 가리키는 지리적 언급이라기보다는 단
지 매우 먼 거리를 나타내는 표현일 따름이다(Delitzsch).
=====6:23
그들은...딸 시온 너를 치려하느니라 - 그들이 진군해 들어오는소리를 흉흉거리는
바다와 같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는 간담을 서늘케 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적의 군사 배치 목적은 시온을 멸망시키기 위함이었다.
=====6:24
손이 약하여졌고...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 적의 침략으로 인한 백성들의 공포와
두려움을 묘사하는 말이다. 이어서 그들의 정신적 불안이 아이를 낳는 여인의 고통에
비유되었다. 완전 무장한 군인 앞에 아무런 저항의 수단이 없는 여인이 서 있다는 것
은 참으로 처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23절의 '딸 시온'이라는 익숙한 용어도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6:25
너희는...길로도 행치 말라 - 유다에 임할 심판에는 아무런 보호 수단이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밭이나 길로 달아난다는 것조차 무모한 도피가 될 것이다. 한편 사방에
두려움이 있음이니라는 말의 원어는 '마고르 밋사빕'(* )으
로서 급박한 위기 상황을 시사하는 암호와 같은 표현이다(20:10; 46:5; 49:29). 하나
님은 예레미야를 핍박했던 바스훌에게 이 말로 이름을 지어주셨다(20:3,10).
=====6:26
굵은 베...독자를 잃음 같이 슬퍼하며 - 유다가 할 일은 이제 굵은 베를 두르고 제
를 뒤집어 쓰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독자를 잃음같이 슬퍼하고 애통하게 될 것
이다. 독자의 죽음은 후손이 끊겨버리는 것을 뜻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를 엄청난 재난으로 여겼다. 이제 한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에 걸쳐 이런 재
앙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6:27
그들의 길을 알고 살피게 하였노라 - 여기서부터 30절까지는 하나님의 호된 징계에
도 불구하고 정화되지 않은 유다 백성들의 패역함이 금속의 제련 과정에 비유되어 있
다. 일반적으로 금속을 제련할 때는, 먼저 제련하고자 하는 금속을 납과 함께 풀무나
용광로에 넣은 후 뜨겁게 불을 지핀다. 그러면 납은 금속의 이물질을 품은 채 밑으로
가라앉는다. 한편, 여기서 여호와는 예려미야를 '살피는 자'로 임명하셨다. 따라서 예
레미야는 백성들의 행위를 검토하고 감독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본서 초반부의
내용을 참고한다면, 그는 열방들에 대한 '감독관'(1:10)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
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감정가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6:28
그들은 놋과 철이며 - 본절에서 30절까지는 예레미야가 살피는 자로서 여호와께 보
고하는 내용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이와는 달리 27절에 계속 이어지는 여호와의 말씀
으로 보기도 한다. 여기서는 27,30절 등의 문맥을 고려할 때 후자로 보는 것이 자연스
럽다. 어쨌든 본절은 유다인들을 가리켜 '심히 패역한 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문자즉
으로는 '패역한 자 중에 패역한 자'라는 뜻이다. 앞서 예레미야는 '공의를 행하며, 진
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도 볼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는데(5:1), 그것과 잘 어울리는
말이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을 가리켜 '놋과 철'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의 임무가
은을 정제하는 것이었음을 암시한다. 예언의 불로써 은을 정제하려고 하였으나 그들에
게서 나오는 것은 불순물과 찌꺼기뿐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6:29
단련하는 자의 일이 헛되게 되느니라 - 광석의 성분이 워낙 불순하였기 때문에, 광
석속의 비(卑)금속들이 제거되지 않아 결국 제련 과정이 무위로 끝났다는 것이다
(J.Bright). 이는 유다의 죄악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져 있었음을 시사
한다.
=====6:30
내어버린 은이라 - 제련 관정은 바르게 진행되었지만, 상습적인 언약 파기자들은
앞에서는 이런 정제 과정이 아무런 효과를 낼 수가 없어, 결국 내버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제련 과정이 실패했다는 이 말 속에서 심판이 불가피해진 상황을 읽을 수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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