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9장 주석
=====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 신인 동형론적 표현을 통하여 본
절이 나타내려고 하는 바는, 이스라엘의 포로된 그리고 그들의 오랜 금식과 기도에도
불구하고해방을 얻지 못하는 원인이 하나님편에 있지 안혹 이스라엘편에 있다는 사실
이다. 본장은 자신들의 오랜 포로 생활 가운데 겪는 고통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는 듯
하나님께 논쟁하고 따지는 어리석은 이스라엘의 변론을(58:3 참조) 전제로 시작되고
있다.
=====59:2
너희 죄악( , 아온테켐) - '너희들의 죄악들'이란 뜻이다. 복수형으로
된 이 죄악들이란 바로 전장에서 나열하였던 죄악들과 본장 앞부분에서(2-8절) 열거할
죄악들을 가리킨다.
사이( , 마브딜림) - 대체로 커튼 혹은 담벽 등으로 인한 영역의 구분
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출 26:33;32:26)이다. '죄악들'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분리시키는 커튼이나 벽과 같은 역할을한다. 그 같은 상태에서는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59:3
본절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동의적 개념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 하나는
'손'과 '손가락'인데, 전자는 총제척 번죄 행위, 곧 범죄 행각을 가리키는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입술'과 '혀'인데, 전자는 공개적으로 되어지는 모든 거짓말을 , 후
자는 은밀하게 되어지는 거짓말을 각각 암시하는 듯하다(렘 6:28;9:4). 당시에는 연
령층에 관계없이 행동과 말로 되어지는 각종의 죄악들이 범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59:4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 문자적인 뜻은 '공의를 요구하는 자도 없고'이다.
말하자면 공의롭게 재판건을 재판정으록 가지고 나가나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부당한 유익을 얻는 목적을 위해서만 법정을 이용하던
행태를 꼬집는 표현이다. 이 같은 형태는 법을 집행하는 사법 기관이 썩었기 때문이
다.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 하박국 선지가 자신의 국가 유다의 멸망을 하나
님께 구했던 중요한 이유는, 바로 공의가 땅에 떨어졌던 사회상을 목도하였기 때문이
다 :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
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이니다"(합 1:4).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 왜곡되고 불합리한 사회 풍조 때문에 합법적이고 정당한
방법으로는 일이 되지 않고 그래서 온갖 부정한 수단에 의지하게 됨을 나타낸다.
잔해(殘害)를 잉태함여 - 문자적인 뜻은 '불행을 잉태하여'이다. 이것은 다른 사
람의 불이익, 성처를 낳는 악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가리킨다.
=====59:5
독사의 알을 품으며 - '독사'에 해당하는 '치프오니'( )의 정확한 뜻은
밝히기 어려우나 맹독성을 지닌 뱀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겠다. 이 같은 뱀음 알 속에
있을 때 밟아 죽여야 옳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도리어 그 동물을 보호하고 키우는 것
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그들이 악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
여주기 위함이다.
거미줄을 짜나니 - 여기 '거미줄'은 다른 곤충을 잡기 위해 치는 함정, 곧 남을 해
치기 위해 놓는 덫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곧 망가져 버릴 정도로 얇은 조직으
로 된 거미줄의 상태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6절에서 이 거미
줄은 단단하고 치밀한 조직으로 짠 '옷'과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남을 해치
고 망치려는 계획과 행위는 헛되면 일순간적인 뿐임을 말하고 있다(욥 8:14;잠
11:18).
=====59:6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 거미줄은 옷감 재료로 부적합하다는
것이 문자적인 뜻인데, 여기서는 그와 유사한 행위는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이득을 주
지 못할 뿐 아니라 나아가 구원을 보장할 수도 없다는 의미를 암싸히단다. 거미줄을
짓는 것과 같은 행위에는 기만적인 궤변이 있다. 이것은 참지혜, 경건, 미덕 그리고
그에 따른 구원을 이루지 못하며 허공을 치는 사색에 그치고 만다(Vitringa). 또 다
른 예로는 악한 자의 술수, 헛된 형식주의, 거짓된 여론, 간교한 사색, 그리고 생명
없는 전승 등이 있겠다.
=====59:7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 문자적인 뜻은 '그들의 발은 악으로 달리며'이다.
악으로 달린다는 것은 악을 행하고자 하는 강한 열정을 암시하는 말이다. 3절에서 죄
를 짓는 신체 부위로서 손, 손가락, 입술, 혀를 언급했던 저자는여기서 발을 언급함으
로써 이스라엘의 죄악이 전인적(全人的)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1:5,6).
사상은 죄악의 사상 - 죄행의 뿌리가 밝혀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그 행동에 있어
서만 악했던 것이 아니라 그 의도, 생각에 있어서도 역시 악했는데 사실 더룩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내적인 요소이다.
=====59:8
평강 - 하나님 및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화평 혹은 자신의 양심에 있어서의 심
적인 평안을 가리킨다.
굽은 길 - 이는 부정적, 자만, 속임수의 상징인 반면, '곧바른 길'은 성실, 진실,
정직 그리고 곧음의 상징이다(시 125:5;잠 2:15). 여기서는 그들의 계획이나 도모하
는 행사 따위가 곡해되고 악하다는 의미이다.
=====59:9
우리에게서 - 8절과 그 앞 몇 구절들에서 3인칭(그들)이었던 호칭이 1인칭으로 바
뀌었다. 저자는이같이 인칭을 바꿈으로써 이제 자신까지를 포함하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당할 재앙을 바라보면서 그 죄악을 회개하는 형식
을 갖추었다.
의 - 문맥상 하나님이 이루실 구원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59:10
소경같이 담을 더듬으며 - 시내 광야에서 모세가 예언한 내용을 상기시킨다. 그때
모세는 만일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준행치 않으면 소경이 더듬는 것같이 더듬으리라
고하였던 것이다(신 28:29). 소경처럼 담을 더듬는다는 것은 갑작스런 환난을 당하여
황망해 하는 것, 스스로 참진리의 길을 가지 못하는 것 혹은 스스로는 구원의 길에 들
수 없는 상태에 처한 것을 가리킨다.
낮에도 황혼 때 같이 넘어지니 -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임한 재앙이 그치지 않음을
뜻한다. 안식의 낮을 잠시 기대하여 보지만 여전히 재앙의 밤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
이다.
우리는 강장한 자 ... 같은지라 - '강장한 자'( , 아쉬마님)에 대한 해
석은 분분하다. 이를 '어둠'(Jerome, Luther), '무덤'(탈굼역, D.Kimchi), '황량한
장소'(J. Kimchi) 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맥상 이 말이 '죽은 자'와 반어
적 관계에 있는 듯하고, 그 어원으로 추측되는 '솨멘'( )이 '풍부한', '살진',
'무성한' 등의 뜻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는 '비옥한 밭'혹은 '살지고 강건한 (
자)'를 가리킨다고 봄이 더 나을 것 같다. 또 이 둘 중에서도 어두(語頭)첨가어 '알
렙'( )이 붙은 말은 대체로명사적 의미보다는 형용사적 의미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후
자가 더 자연스럽겠다(Delitzsch). 다른 사람은 번영과 낙을 누릴 때 죽은 자처럼 번
영도 없이 기쁨을 모르는 삶을 사는것, 그것이 바로 불신자의 모습이다(26:10;눅
15:17).
=====59:11
곰같이 부르짖으며 - '부르짖으며'에 해당한 '네헤메'( )는 중얼거리는 소
리, 혼란하고 시끄러운 소리, 으르렁거리는 소리, 비둘기처럼 '구구'하는 소리(겔
7:16), 모인 무리가 웅성거리고 소동하는 소리 등을 가리킬때 사용되는 용어인데 여기
서는 그 어떤 고통 때문에 울부짖고 신음하는 소리로 보면 되겠다.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 애조를 띤 소리의 대명사인 비둘기의 우는 소리는 흔히 슬
픔을 나타낼때 사용된다(겔 7:16).
=====59:12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거하오니 - 원문 직역은 '우리의 죄가 우리를 향해 대
답하오니'이다. 이것은 그들의 과거 죄악들이 너무 현저해서 그들이 죄인임을 명백히
증언한다는 뜻이다. 한편 본절에는 '우리'라는 말이 무려 일곱 번이나 등장하는데,
이는 허물진 백성을 대신하여 중보적으 회개 기도를 올리는 이사야의 진정한 동족애를
보여준다.
=====59:13
바로 앞절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의 진술없이 일반적인 관점에서 죄인임을 인정했다
면, 본절에서는 죄의 구체적인 내용을 열거하고 있다. 그런데 구체적인 죄행도 사실
은 하나님께 대한 배신의 행동, 말 그리고 생각으로 나타난 것이다.
=====59:14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 여기 '공평'( , 미쉬파트)이란 재판정의 생명
이라 볼 수 있는 '공정성'을 뜻한다. 재판은 바로 이 '공정성'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
다. 그런데 당시는 어떤 권력의 배경이나 뇌물 등을 가진자에게 유리하도록 재판이
진행되곤 하였음을 시사한다.
거리에 앞드러지고 - 공정성에 의해 진행되는 재판은 거리가 아닌 성문 따위와 같
은 사람의 왕래가 가장 빈번한 곳에서 열렸다. 그런데 그 재판의 생명인 바 '공정성'
곧 '성실'( , 에메트)이 거리에 엎드러졌다는 것은 공정성이 재판정을 떠났음을
뜻한다. '정의'의 상징인 재판정이 정의롭지 못하면 그 나라 전체는 도덕적 붕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59:15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 문자적인 뜻은 '악으로부터 떠난 자가 먹이
가 되다'이다. 범람하고 있는 악의 세태에 물들지 않은 정직하고 경건한 자가, 먹이
를 노리른 야수와 같은 악인의 공격 표적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 공평이 없는 것을 기뻐 아니하시고 - 원문 직역은 '하나님 눈앞에 악이 있었다.
그것은 그분을 고통스럽게 하였다'이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죄악성은 하나님은 죄
를 싫어하는 그의 품성을 따라 어떤 조치를 취하셔야만 했다. 사실 이스라엘은 하나
님의 이 속성을 예시하는 역할을 위해 선택된 모범적 국가로서의 자태를 만방에 드러
내어야 했다.
=====59: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 이스라엘이 징벌을 받는 이유는 죄 때문이었다. 따라서
징벌이 멈추려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다. 그런데 인간 세계에는 그 죄의 문제
를 해결한 존재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본 구절의 뜻하는 바이다.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 이쉬
토멤)의 원문 직역은 '어찌할 바 몰라하셨다'인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같은 태도를 취하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것은 중재자, 곧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죄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없음을 크게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 표현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자기 팔 - 구원 문제에 있어서 인간이 아닌 하나님 한 분만이 해결책을 제시하실
수 있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용어이다.
=====59:17
이스라엘의 부패상이 너무 심각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마치 무장한 전사처럼 하고
서 직접 개입하시는 내용이다. 이는 사도 바울이 묘사한 성도의 전신갑주를 연상시킨
다(엡 6:13 이하). 에베소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여호와의 각종 무장 장비들
은 당신의 거룩하신 성품의 다양한 표현들에 다름 아니며, 이들은 당신의 진노와 사랑
을 아울러 나타내는 것이다(Delitzsch).
=====59:18
본절에서 강조되는 말은 '행위'이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게물'( )이
세 차례나 사용되고 있는(개역 성경은 '보응'과 '보복'의 히브리어도 바로 '게물'임)
것만 보아도 강조점은 명백하다. 이제 말씀으로 경고하는 때는 지나갔고 심판의 행동
이 개시된다는 것이다(J. Watts). 한편,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세상 열방들에
대해 내려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어서 마치 패역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은 숨겨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아마 기자는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까지 세상 만국에 대한 심판 속
에 포함시켜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59:19
본절에 대한 번역은 역본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해석은 대체로 다음
과 같이 취해질 수 있다 : '하나님을 겨외하게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격렬
한 진노가 대적들을 완전히 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G.W. Grogan).
=====59:20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 이 말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하늘로부터 오는 구속자
는 배타적으로 유대인에게만, 유대인을 위해서만 오신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이스라
엘은 여호와 신앙의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또 구속주가 이스라엘 중에서 탄생하시게
된다는 의미에서 우선적 배려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롬 1:16 참조).
=====59:21
본절은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20절)를 포함한 구속함 받은 자들에게 주신
약속이다. 그중 첫째는 성령을 그들에게 계속 임하게 하신다는 약속이다. 성령은 계
시의 근원이자(욜 2:28), 권능과 은사의 원동력이다(미 3:8).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
을 그들에게 계속 머물러 하신다는 약속이다. 말씀은 계시의 결정체요, 신령한 은혜
의 방편이요, 성도의 행할 바를 일러주는 삶의 지침서이기도 하다. 이 두 약속은 오
순절 성령 강림과 신구약 66권의 완성을 통해 1차적으로 성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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