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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이사야

[스크랩] 이사야 57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43

이사야 57장 주석

 

=====57:1

   의인이 죽을지라도 ...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 여기 '의인'이 구체적으로  누구

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자는 자신이 살던

당시에 무고한 자들의 희생이 일반적인 경향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죽

을지라도'로 번역된 '아바드'(       )나 하반절에 '취하여 감'으로  번역된  '네에사

핌'(            )은 모두 박해로 죽어가는 상황을 암시하는  용어들이다.   유다에도

무고한 피를 흘리게 하는 왕들이 많았는데 그 대료적인 인물이 므낫세이다 :  "므낫세

가 여호아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유다로 범하게 한 그 죄 외에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가에서 거 가까지 가득차게 하였더라"(왕하 21:16).  유대

전승과 초대 교부들은 본서 저자 이사야가 바로 이 악명 높은 므낫세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화액(禍厄)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 - 원문 직역은 '다가올 악으로부터 취하여진

것'(is taken away from the evil to come, KJV)이다.  사방도처에 만연한 도덕적  악

행으로부터, 이방 군대의 침입으로 나타날 민족적 죄악에 대한 징벌로 부터 취하여 갔

다는 뜻이다.  즉, 의인이 너무 이르게 죽은 이유는 그가 만연한 도덕적 악행을 더 이

상 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또 이방 군대의 침입으로 인한 쓰라린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미리 데려가셨다는 것을(are taken away  to  be  spared  from

evil, NIV) 가리킨다.  의인 아비야의 죽음을 성경은 그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이 그

에게 내린 축복으로 묘사하고 있다(왕상 14:10-13).


=====57:2

   정로(正路)로 행하는 자 - 여기 '정로로'에 해당하는 '네코호'(        )는  '곧바

른', '바른' 등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 용어는 악인이 걷는 '구부러진' 길과  대조

할 때 자주 사용되는 형용사이다(59:8;시 125:5;잠 2:15;빌 2:15).

   편히 쉬느니라 - 의인의 몸이 그의 무덤에서 안식을 취하는 듯이  묘사하고  있다. 

신약 성경은 재림 때에 성도의 몸이 부활할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서 죽은 자를  '자는

자'로 부르기도 한다(살전 4:14).


=====57:3

   무녀의 자식 - 문자적인 뜻은 '마술의 아들들'로, 참신이신  하나님보다  이방인이

추구하던 마술, 마법 등에 탐닉해 있던 이스라엘을 풍자하는  표현이다.   이스라엘은

동방의 이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마술, 마법 등에 빠져 있었는데 특히 므낫세 왕 때  아

주 심하였다(왕하 21:6).

   간음자와 음녀의 씨 - 1차적으로는 도덕적 기준이 문란해짐에 따른 성적 부패 현상

혹은 이방인과의 결혼 금지 규례까 무시되어 음란함이 이스라엘에 만연하였던  사실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아울러 이 말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좇는 영적 음란함에  대

한 지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특히 므낫세 통치 때 만연하였던 악하고 부패한  모든

행실 가운데 가장 일반적이었던 것이 바로 음란함이었다(황하 21장).  어떤 경우에 있

어, 이 음란함은 우상 숭배 예식에 필수적인 동반 요소였다.  예수님도 당대 이스라엘

의 죄악을 지적함에 있어서 음란함에 대해 반복 언급하셨다(마 12:39;16:4 등).


=====57:4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 '희롱하느냐'에 해당하는 '티트아나구'(           

)는 '장난치다', '조롱하다' 등을 뜻하는 '아나그'(      )에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후자인 '조롱하다'가 문맥과 어울린다.  1절에서 '의인들'에 대한 언급이 나왔기 때문

에 '조롱'의 대상은 그들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이스라엘 역사를 볼 때 우상 숭배자

들이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고  경멸적  제스처를  취한  경우는  많았다

(Whybray).  우상 숭배자들의 그 같은 태도는 결국 의로운 자들이 섬기는 하나님 그분

에 대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혀를 내미느냐 - '혀를 감느냐'로도 번역되는데 한마디로 순간적으로 혀를  밖으로

쭉 내밀었다가 안으로 끌어들이는 동작을 가리키며 이는 경멸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57:5

   상수리나무 사이 ... 음욕을 피우며 - '상수리나무 사이'는 '바엘림'(           )

인데 '테레빈나무(팔레스틴에 서식하던 나무의 일종)의 숲 사이'로 보는 견해(Kimchi)

와, '우상의 형상들'로 보는 견해(70인역)가 있다. 그 어느 견해를 따르든 간에  분명

놓치지 말아야 할것은,본 구절은 숲속에서 이방 신을 숭배하던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대상은 테레빈나무로 만든 우상일 수도 있다.   '푸른

나무 아래'란 표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기보다는 이방 우상 숭배 의식을 서술

하는 대목에 대체로 수반되는 틀에 박힌, 상투적 표현의 의미가 있다(왕하 17:10;대하

28:4).

   자녀를 죽이는도다 - 상반절의 우상 숭배 의식에 대한 언급과 유사한 내용으로  인

신 희생 제사를 가리킨다.  특히 이는 물록 신에 대한 제사를 연상시킨다.  특히 이는

몰록 신에 대한 제사를 연상시킨다(레 18:21;왕하 23:10).  몰록 신 숭배했던  타락한

이스라엘 부모들은 그 자식을 죽여 불에 태워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성경은 이 사실

을 정확히 증명해주고 있는데 그 제사가 시행되던 곳은 그악명 높은 힌놈의  골짜기였

다(대하 28:3).  이 끔찍스러운 제사는 가나안 민족과 바벧론 민족에 의해서도 수행도

이가으며*왕하 17:31), 역사가들에 따르면 페니키아 민족 그리고 카르타고 민족에  의

해서도 자행되었다고 한다(Eusevius, Diodorus Siculus).  이스라엘에서는 아합 때 처

음 시작도이가고 국가적 위기 때에 가끔씩 자행되다가 아하스와 므낫세 때 널리  유행

되었으며 요시야 때 폐지되었다(왕하 23:10).


=====57:6

   골짜기 가운데 매끄러운 돌 중에 너희 소득이 있으니 - '매끄러운 돌'에  해당하는

'헬레크'(      )는 단지 한정사일 뿐이며 '돌'은 추측에 의한 번역이다.  이에  대해

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물이 흐르는 골짜기에서 발견한 아름답고 맨들맨들한  돌을

가져다가 신적 경의를 표한 사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Kimchi), 그보다는

이스라엘 우상 숭배자들이 숲이 우거진 곳 특히 물이 흐르는 시냇가에 우상을 세원 호

고 숭배하였음을 뜻한다고 봄이 나을 것 같다.  '소득'의  히브리어  역시  '매끄러운

돌'과 같은 '헬레크'(      )로서 일종의 언어 유희(word-play)를 보여주며, 그  문자

적인 뜻이 '기업'으로도 번역된다.  이는 우상 숭배잗르이 직업처럼 그 일에 몰두하였

던 것을 암시하는 용어이다.

   전세 - 하나님께 드리던 제사의 일종으로 포도주와 기름을 제단 위에 부어  드리던

제사(출 29:40;레 23:13;민 15:5-7)이다.  우상 숭배자들은 이방 우상 숭배에  있어서

도 하나님께 드렸던 동일한 방식을 취하였다.

   예물(        , 민하) - 희생 짐승이 아닌 곡식 및 고운 가루를 제물로 드렸던  것

을 가리킨다(레 14:10).


=====57:7

   높은 산 위에 네 침상을 베풀었고 - 공개적으로 수치심없이 감행되는 음란  행위에

서 따온 이미지이다(겔 23:7).  '침상'은 우상 숭배에 사용되는 제단에 상응하는 용어

이다.  아무튼 본절 전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소위  영적

간음 행위를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겔 16:16,25).


=====57:8

   기념표를 문과 문설주 뒤에 두었으며 - 여기 '기념포'란 새긴 이방 우가의  신상을

가리킨다.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가정 수호신인 '라레스'와 '페나테스'의 신상를 집안

곳곳에 놓아 두었듯이 패역한 이스라엘은 이방 신상을 집안에 두었다.  이 행위는  모

세의 율법을 정면으로위반한 행위였다.  뿐만 아니라 그 신상을 둔 곳은 다름 아닌 문

과 문설주였다.  이 두 곳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새겨  두어야  할  곳이었다(신

6:9;11:20).  바로 그곳에 페역한 이스라엘은 신상을 두었다.  이 행위로 하나님의 저

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 "...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

는 자를 저주를 받을 것이라"(신 27:15).

   다른 자를 위하여 몸을 드러내고 - 음란한 여인의 성교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  표

현은 패역한 이스라엘으 이방 신 숭배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침상을 넓히고 그들과 언약하며 - 음란 행위를 할 상대를 더 많이 받아들이는 장면

으로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한 공개적인 위반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미 그들은

하나님과 불변의 언약을 맺은 바 있다(출 19:5;23:32).


=====57:9

   몰렉(      , 멜레크) - 문자적인 뜻인 '왕'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마치 매춘부

가 향수를 바르고 손님을 맞듯이 숭배하기 위해 그 앞으로 나아갔던 우상(렘  4:30;겔

23:40) 혹은 이스라엘이 하나님보다 더 신뢰했던 앗수르, 애굽 그리고 그  외  이방의

왕들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후자로 보는 것이 더욱  낫다.   왜냐하면  문맥적으로는

'우상'으로 볼 수있으나 용어 자체는 문자 그대로 '왕'을 가리킬 떠 쓰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몰렉 우상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몰레크'로 발음됨).  '향품'이란 외국 왕

들에게 바치던 선물, 조공 등으로 보념 되겠다(호12:1).

   음부까지 스스로 낮추었으며 - 낮출 수있는 최저의 자리까지 자신을 낮추었다는 것

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의존하기를 버릴 때 그들은 가장 비천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57:10

   네 힘이 ... 아니함이니라 - 문자적인 뜻은 '너는 너의 손의  생명을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너는 슬퍼하지 아니하였다'이다.  여기 '생명'(      ,  하이트)이란  활력,

원기 등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본 구절이 뜻하는 바는, 이스라엘은  이방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원기가 그몸에 남아 있는 한 여전히 그 소망 가운데 기뻐하였다는 것이

다.  이것은 여러 차례의 이방나라에로의 사신 파송이 아무 소득이  없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이스라엘은 힘이 있는 한 계속해서 사신을 파송하면서 소망을 잃지

않았던 사실을 가리킨다.


=====57:11

   이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 잠잠함을 인함이 아니냐 - 하나님께 대한 관심

조차 없었음을 나타낸다.  거짓 고백으로 아첨하기보다는 차라리  공개적으로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관심도 없으면서 하나님을  부인하

지 않은 약 가장했다.  그 같은 위선은 하나님이 그들을 오랫동안 내버려 두었기 떠문

이라고하나님은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오랜 고통의 침묵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부인케 하기 위함이 아니라 회개케 하기 위함이었다(롬 2:4,5).


=====57:12

   본절 원문 직역은 '나는 너희들의 의와 너희들의 행위들을 나타낼 것이다.  왜냐하

면 그것들은 너희들에게 무익하기 때문이다'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그들의  위선적

인 의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시겠다는 뜻이며, 그들이 이방의 도움을 요청하고 이방  신

상을 숭배하는 행위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공개적으로  나타내시겠다는  것이

다.


=====57:13

   땅을 차지하겠고 - '땅'은 1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돌아가 다시 얻게 될

유다와 시온 산을 가리키지만, 2차적으로는 영적 이스라엘 곧 신약 교회 성도들이  얻

을 영원한 천국을 가리킨다(49:8;시 37:9,11;69:35,36;마 5:5;히 12:22).


=====57:14

   이는 바벧론  포로니로부터 귀환할 때 그 장애물들이 제거될 것이라는  예언으로도

볼 수 있으나, 특히 거치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크숄'(          )은 구약  성

경(특히 에스겔서)에서 문자 그대로의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최촉(催促)하는 우

상 숭배 등의 죄악을 가리키는 말로 종종 사용되므로 본문은 메시야 시대의 구원과 해

방을 암시하는 예언으로도 이해 가능하겠다(Whybray)


=====57:15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 - 여기 '통회'란 '다카'(      )로서 '깨어지고,  부숴

지고, 잘게 쪼개어진 어떤 물건'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여기서는  자신의

죄성과 무가치성을 철저하게 깨닫는 자를 암시하고 있다.  영적 구원 문제에 관한 한,

바로 이 같은 의식을 갖고 있는 자만이 이제 오실 참구속주인 메시야를 인정하고 받아

들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자이기도 하다(마

5:1-8).  이 의식을 가졌던 세리는 의인이라는 호칭을 받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의를

자랑하며 영적 교만에 싸여 있었던 바리새인은 수치를 당하였다(눅 18:9-14).


=====57:16

    내가 영원히는 ... 아니할 것은 - 한마디로 이것은 14, 15절에 있는 약속, 곧  통

회하는 자를 회복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영원히 그의 백성과 다투지 않으시

는 까닭은 그들의 영혼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만 봐도  하나

님의 징계의 목적은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애  3:33;미  7:8,9).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필경 파멸에 이르게  하신다(시  7:11;계

14:11).


=====57:17

   얼굴을 가리우고 - 하나님의 '얼굴'이란 은총의 현시(顯示)를 가리키므로,  얼굴을

가리웠다는 것은 그 반대인 은총의 사라짐을 뜻하겠다.

   오리혀 패역하여 - 문자적인 뜻은 '완고함을 계속하여'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사

라지고 징계가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이스라엘은 죄를 깨닫기는 커녕 도리어 하나님

에게서 더 멀어져만 갔다.  그와 같은 자들에게 취하실 하나님의 태도는 두  가지  중

하나였는데,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버리는 대신 그들의 죄의 문제를 대신 해결할 메

시야를 보내시는 쪽을 택하셨다.


=====57:18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 여기 '길'이란 악행 혹은 회개 등으로 볼

수 있는데, 앞절에 의존할 때 전자가 옳다고 여겨진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스스로

의 힘으로는 도저히 반복되는 죄악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그들의 문제

를 해결할 방법을 간구하셨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메시야를

통한 그 백성의 구원이다.  성경은 영적 구원을 암시함에 있어 질병의 치유와 같은 표

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대하 7:14;시 41:4;렘 3:22;호 14:4 등).


=====57:19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 - 히 13:15에서 바울이 말한 '찬미의 제사'가  바로

'입술의 열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입술에서 찬양이 나오게 할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 일이란 '평강'에 관한 것이다.  이 '평강'(         ,

솰롬)이란 완전한 평화로서(요 14:27), 먼저는 유대인의 포로지에서 겪고 있는 고통으

로부터의 해방과 관계되다.  그러나 좀더 포괄적으로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에도

전파될 복음을 통하여 온 인류 중 택한 자들이 누리게 될 영적 평안을 가리킨다.   베

드로는, 당시로서는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평안의 복음이 이방에게도

퍼질 것을 '먼 데 있는 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드러내었다(행 2:39;엡 2:17).


=====57:20

   의인과는 달리 혼란과 불안정 상태에서 벗어날 길 없는 악인을  대비시키고  있다.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위해 '바다'라는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히브리 개념에 있어

서 '바다'는 결코 안식이 없는 그 무엇의 이미지로 종종 등장한다(43:2).


=====57:21

   본절은 19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완고한 악인, 곧 회개치 못하는 자는  19절에

언급된 평화를 나누는 일에서 제외될 것이다.  이 표현은 약속된 영적 화해와  용서에

따른 평안을 회개에는 자에게만 돌아갈 몫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재강조하는  것이

다.  48장도 동일한 강조로 마무리되고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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