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이사야

[스크랩] 이사야 41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22

이사야 41장 주석

 

=====41:1

  섬들      민족들 - 전자는 '이임'(*         )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를 가리

키는데 당시 팔레스틴에서는 블레셋, 페니키아 등이 그런 나라들이겠다.  그러나  '이

임'이 후자 곧 '민족들'로 번역된 '레우밈'(*            )과 나란히 사용할 경우, 이

것은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들을 포함한 세계 모든 민족들을 가리킬 수 있다.

   서로 변론하자 - 문자적인 뜻은 '함께 재판하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개역  성경

의 번역처럼 '논쟁하다', '조목조목 따져 보다'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논쟁을  통하

여 가려볼 사실은 각 열방들이 각각의 신들을 신뢰하고 있는 이유 및 참신은 과연  누

구냐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혹자는 이렇게 본 구절을 번역하고 있다 : '자함께  엄

숙한 토론의 장으로 들어가 보자'(Lowth).


=====41:2

 본정 상반절의 맛소라 원문 직역은 이와 같다 : '누가 동방에서 일으켰느냐. 그 의

가 그 발 뒤를 따르리라.' 본절에는 두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전자는 완료형인 '일으켰

느냐'로 번역된 '헤이르'(*          )이고 후자는 '이르게 하였느뇨'로 번역된 '이크

라에후'(*              )로서 미래형이다. 자유주의 학자들은 40-66장을 제2이사야서

로 보고 그 저작 시기는 포로기 말엽 혹은 포로 귀한 후로 추측하는데, 더욱이  '혜이

르' 곧, 완료형이 사용된 것은 그 당시 이미 활약 중이던 고레스를  지칭하는  것이라

단정한다. 그러나 또 다른 동사가 분명한 미래형이며 그  내용도  미래적임을  고려할

때, 이 완료형 동사는 예언 성취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이해된다.  아울

러 하나님이 사용하기 위하여 세운 동방의 사람은, 고레스가 그 그림자인 미래에 임하

실 메시야를 예언적으로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41:3

 안전히 지났나니 - 여기 '안전히'의 원문 직역은 '평화롭게'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으킨 인물이 정복 사역을 감당하되 그 사역은 피를 흘리게 하는 폭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하게 암시한다.


=====41:4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命定)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 문자 그대로는 '시초부터

시대들을 불러서 존재케 하신 분이 누구냐?'는 뜻인데 여기 역사적 의미의 시간을  의

미하는 '도르'(*        )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본 구절이 강조하는 바는 역사의 주

제 곧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인 것이 분명하다. 앞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능력, 유일 독특성과 이스라엘의 소망이 하나님께만 있음이 언급된 후에  비록

열국과의 변론 형식을 취하긴 하지만 동방에서 사람을 불러내어 세계를 정복케 하리라

는 언급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본문에서 특히 역사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앞으로 하실

일이란 그 인물을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


=====41:5

 섬들, 땅 끝, 곧 세계 만민을 놀라 떨게 할 대상이 생략되어 있지만 문맥상 동방에

서 일으킬 한 인물이 바로 그 대상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41:6

  담대하라 - 원문 직역은 '강하라'이다. 이것은 한 인물의 출현으로 온 세계가 떨면

서도 내놓는 자구책의 일종인데, 그것은 서로 용기를 불어넣어 주려고 안간힘을  쓴다

는 것이다.


=====41:7

 본절은 두려워하는 역국이 서로 용기를 불어넣어 주면서 도모하는  자구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우상 손질이며 그 묘사는 회화적이다. 즉, 본절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초월한 상황이 닥칠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서도 인간의 지혜, 능력을 대

변하는 우상을 손질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분주함을 그림을 보여주듯 세밀하게  묘사하

고 있는 것이다.


=====41:8

 나의 종      야곱      아브라함의 자손 - 먼저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위해 그의 도구로 택함받은 존재를, 두 번째는 족장사에서 최종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선택된 존재를, 세 번째는 아브라함의 약속의 상속자 곧 하나님 나라의 상속

자임을 각각 함축하는 호칭들이다. 본 예언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역하다가

심판당하여 노예로 잡혀감으로 온 나라가 없어진 상황인데,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

을 그의 뜻을 이루는 당신의 도구로 부르신다. 그렇다면 족장사를 통해서 택한 이스라

엘의 선택은 아직도 유효하며,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속에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아브

라함의 씨로서 하나님이 세우기로 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이자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41:9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 이는 하나님이 땅 끝과 같이 먼 곳에까지 흩어져  있

던 이스라엘과 여전히 관계를 맺고 계심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선택의  유효

성은 불변한다는 사실이 재차 강조되고 있다.


=====41:10

  놀라지 말라(*               , 알 티쉬타) - 여기 '티쉬타'(*           )는  '보

다', '주시하다'의 뜻인 '솨아'(*        )에서 온 말로서 다급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눈을 크게 뜨고 그 대상을 주시하는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이스라엘이 이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한 사실의 유효성은 아직  불변

함 곧 하나님이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41:11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 수치와 욕을 당한다는 것은 정복당하고 멸망한  개인이

나 단체를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다. 한편 40장이 주는 바벧론으로부터의 유

다를 구한다는 수동적 측면을 다룬다면, 본장은 여기 보듯이 역으로 적국들을  완전히

정복한다는 구원의 적극적 측면을 다룬다. 물론 이 예언은 메시아의 초림에 따른 복음

의 영적 승리와 재림에 따른 메시아의 종말론적 승리를 복합적으로 예언한 내용이라고

보아도 무난하겠다.


=====41:12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 이 표현은 그 흔적을 찾을 수조차 없게 될 정도

로 말끔히 치워버린 존재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36:37 참조). 대적의 멸망으

로 입증될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같은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41:13

  나      내가 - 둘다 원어로는 1인칭 강조사인 '아니'(*        )로서  다른  성경

특히 다른 선지서들에 비해 월등히 많이 본서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14-46,

48, 49, 52장 등에서 지배적으로 나오고 있다. 중재자를 가운데 두지 않고 직접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심을 강조할 때 사용되기도 하는 이 강조사는 본절에서  하나님이

힘을 주고 도우실 것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J. Watts).


=====41: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 '지렁이'에 해당하는 '톨라아트'(*            )는 부패

한 물질에서 생겨나는 벌레(14:11;출 16:20) 혹은 식물을  파괴하는  해충(신28:39;욘

4:7)등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흔히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자의 상태를 묘사할 때 사용

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무력하고 무가치한 존재로서의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41:15

 신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같게 할 것이라 - 본서에서 산,

언덕은 정치적 권세를 쥔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을 이스라엘이  부숴뜨린다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이스라엘의 대적임에 틀림없다. 한편 앞 문맥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에게

노하던 자가 멸망한 것이라고만 말했는데, 본절에서는 좀더 적극적으로 무가치한 이스

라엘이 힘이 있는 세계 열강들을 무너뜨릴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복자로서

의 이스라엘을 제시하고 있는데 본장 초두와 이 사실을 연결시킬 때, 동일하게 정복자

로 묘사된 초두의 한 인물과 이스라엘은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는 특별한 의미가  파악

되어진다.


=====41:16

 그들을 까부른즉 - 문자 그대로 키질을 의미한다. 타작한 곡식을 바람이 부는 가운

데 키질을 하면 알곡은 채 안에 남고 껍데기는 날아가버리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

표현은 본 문맥에서 이스라엘을 통한 대적의 완전한 멸망, 이스라엘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한다.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 고대 사람들은 폭풍 혹은 회오리  바람이

사람을 휩쓸어 버린다고 믿었는데, 아마도 대적의 완전한 멸망을 생생하게 인식시키기

위하여 당시 사람들이 익숙해 있던 믿음에 호소하는 것 같다.


=====41:17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 물은 생명을 보존케하는 중요한 수단인데, 그

것이 없어서 구한다는 것은 생명 유지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는 의미이다.  40:3에

서 나온 바있는 '광야'란 심판, 죽음의 땅을 의미했는데, 본 구절과 관련시켜  볼  때

그 광야는 징계 아래있는 이스라엘의 상태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물을 찾을 수 없어 그것을 구하는 상태란, 하나님의 극심한  징계  아래에

있는 상태를 암시한다 하겠다.


=====41:18

 자산 - 문자적인 뜻은 '메마른 고지(高地)'로, 토질이 척박하여 나무 한 그루 없는

벌거숭이 산들을 가리킨다(욥33:21;렘3:2;7:29등).

   강 - '네하로트'(*            )로서 문자적인 뜻은 '강들'이며  생수의  풍성함을

암시한다.

   못 -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나 항상 생수가 비축되어 있는 오아시스 비슷한 곳이다.

이상 몇 단어들의 의미를 주해해 본 결과가, 본절은 생수공급이 불가능한 땅을 근원으

로 만들겠다는 놀라운 약속을 담고 있다.


=====41:19

  본절에서 하나님은 식물의 생장(生長)이 불가능한 광야에 온갖 수목이 자라게 하겠

다고 약속하시는데, 이 약속은 단순히 바벧론 포로로부터의 귀환 정도만을 암시한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특히 광야에 생수를 공급하는 이미지는 그리스도를 연결시키지 않고

는 그 온전한 의미를 깨달을 수 없다(고전 10:1-5).


=====41:20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었으나 원문에는 본절 초두에 '      을 위하여', 곧  목적을

의미하는 전치사 '레마안'(*          )이 붙어 있다. 즉, 본절은 하나님께서 '가련하

고 빈핍한 자'(17절)에게 초현실적 긍휼을 베푸시는 목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목적은 보고, 알고, 체험하여, 곧 깊이 숙고하고 그 뜻을 상고하여  오직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베푸심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41:21

  소송을 일으키라 - 문자적 뜻은 '너희 건을 내놓으라'인데, 이것은 너희 입장이 옳

다는 것을 제시해보라는, 즉 시비를 따져 보자는 의미이다. 또한 확실한 증거를  보이

라는 그 문자적인 뜻이 '너희 강한 것들을 제시해 보라'로서 소송 사건에서 자신의 입

장을 강화시킬 논거(論據)를 펴보이라는 의미이다. 그 논거의 핵심은  참신의  증거이

다. 바로 앞 문맥에서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는 목적은 그 백성으로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나서 바로 열국의 신들을 헛되고 하나님만이 참

신으로서 유일하게 영광과 찬송을 받을실 만한 분임을 강조하기 위함이 분명하다.

   

=====41:22

  장차 당할 일      이전 일 - 전자는 미래사를, 후자는 과거사를  각각  의미한다.

과거사와 미래사를 구별하여 양쪽 다 말해보라는 것은 한마디로 누가 역사의 주관인가

에 의해서 참신의 여부를 가려보자는 의미이다. 진정한 역사의 주관자는 과거  역사가

어떤 경륜, 계획에 의해 일어났는가를 알고 또 미래의 역사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경륜의 의미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41:23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 원문 직역은 '선을 행하든지 악을 행하든지  하라'이

다. 우상이 추종자를 옹호하고 그 대적들을 좌절케 하기 위하여 자신이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만한 무언가를 행해보라는 뜻이다. 이 표현들은 이방 우상들이 무능한 존

재임을 강조하기 위한 역설적 표현이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동일한 강조를  위하여

그들을 벙어리, 귀머거리, 움직이지 않는 것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시115편등).

=====41:24

 이와같이 이사야가 우상들의 무력함을 만방에 공포하는 까닭은 우상 숭배자들의 어

리석음과 가증함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정치  권력,  경제적인  부

(富), 군사력, 과학 기술 등을 숭배하는 자들이 허다하다.


=====41:25

  앞에서는 우상들과의 비교를 통해 오직 하나님만이 미래사까지 결정하시는  참신임

을 논증하고자 했다. 이제 본절로부터는 그러한 논증의 실례를 증거로서 제시한다.

   내 이름을 부르는 자 -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이를 고레스에 대한 지칭으로 보는 데

에 동의한다(G. W. Grogan, Whybray). 한편 본문과 같은 호칭은 반드시 고레스가 개종

자가 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실현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무관하겠다.


=====41:26

  누가 처음부터      알게 하였느뇨 - 본문은 우상 숭배자들 가운데 25절에서  언급

된 인물의 출생, 성품 등에 관하여 예언한 자가 하나도 없다는 의미로도 이해된다. 이

같은 의미에 이르게 하는 것은 '처음부터'를 출생에 따른 성품 등으로 해석한  결과이

다(Barnes). 그러나 문맥적으로 볼 때 역사의 미래사나 과거사를 주관하는 존재가  하

나님 외에 있었느냐는 질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1:27

  기쁜 소식 전할 자 - 본절이 포로 귀환과 관련된 예언임을 고려할 때, 본문은 예루

살렘에 귀환하여 재건 운동을 일으켰던 스룹바벧, 느헤미야, 에스라 등과 같은 인물에

적용될 수 있겠다(J. Watts).


=====41:28

 본절은 이방세계의 선지자를 가장한 자들 가운데 미래사를 정확히  예언할  존재는

하나도 없음을 강조한다.


=====41:29

 본절은 이방 선지자들이 미래지사를 예언할 수 없는 까닭을 말함으로써 1절에서 제

시한 논쟁을 결론짓고 있는데, 그 까닭이란 그들이 미래지사를 알려주기는 커녕 그 존

재 자체가 무력하기 짝이 없는 우상들을 숭배하였기 때문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메모 :

'구약 > 이사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이사야 43장 주석  (0) 2015.02.08
[스크랩] 이사야 42장 주석  (0) 2015.02.08
[스크랩] 이사야 40장 주석  (0) 2015.02.08
[스크랩] 이사야 39장 주석  (0) 2015.02.08
[스크랩] 이사야 38장 주석  (0) 2015.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