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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사야 39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22

이사야 39장 주석

 

=====39:1

  그 때에 - 바벧론의 사절들이 히스가야 왕을 찾아온 것은, 왕의 병이 회복된  직후

였다. 본장의 사건은 38장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므로닥발라단이...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 바벧론 왕 므로닥발라단은,  앗수르인들

의 기록에 의하면 두 번에 걸쳐 바벧론을 통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맨 처음에 그는 앗

수르의 사르곤 2세에 반대하여  B.C. 721-710년까지 12년간 바벧론을 통치했다.  B.C.

710년에 사르곤 2세에 의해 강제로 폐위당한 뒤 재기하여 산헤립에 대항하여 다시  바

벧론의 군주가 되었다. 여기 언급된 사건은 이중 후자의 연대(B.C. 701년 직후)에  속

한 것으로 보인다. 병에서 회복한 왕에게 사절을 통해 선물과 축하의  서한을  보내는

것은 고대의 관례에 속한 일이다. 바벧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사절들을 파송하면서  외

교적으로 내세운 명분은 '히스가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그 사실을 축하하

기 위함이었지만(대하 32:31 참조). 진정한 속셈은 유다의 도움을 입어 앗수르에 대항

하는 연합 세력을 구축하려는 정치적 목적에 있었다.


=====39:2

  히스가야가 사자를 인하여 기뻐하며 - 히스가야의 기쁨은 사절들을 보내는 것과 같

은 정중한 방식으로 그에게 존경을 표시한 바벧론 왕의 태도에서 기인된 것이기도  하

지만(Alexander), 더 크게는 유다와 같은 약소 국가가 감히 바벧론의 군사 동맹  상대

로 인정받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연유한 것이다(Leupold).

   그에게 궁중 보물...다 보였으니 - 히스가야 왕이 바벧론의 사절들에게 궁중의  보

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보여준 것은 이러한 자부심의 외적 표현이며, 유다의 국

력을 널리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어쩌면 왕은 바벧론이 지리적으로 너무나 멀리 떨어

져 있어서 예루살렘에는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

여튼 왕은 자기를 드러내고 세상의 보물을 자랑하는 데 급급하였다. 역대하 기자는 이

장면을 '하나님이 히스가야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신' 것으로  본

다(대하 32:31). 왕은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자기가 취함으로써 이 시험에 실패하였으

며, 결국 이로 인해 유다의 바벧론 포로가 예고되기에 이른다.


=====39:3

 이에 선지자 이사야가...나아와 -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가야 왕에게  나아온  것은

바벧론 사절들이 떠난 직후였을 것이다. 이사야라는 이름 앞에  '선지자'라는  직함이

언급된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받은 사람으로서 공적인 임무를 수행  중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묻되...원방 곧 바벧론에서 내게 왔나이다 -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가야 왕에게  세

가지 물음을 던진다. (1)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나이까?' : 이에 대해 왕은  대

답하지 않는다. 외국과의 동맹에 대한 선지자의 부정적인 입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왕으로서 이 문제를 가급적이면 회피하고 싶었을 것이다(Gesenius, Oswalt). (2)'어디

서 왕에게 왔나이까?' : 이에 대해 히스가야는 그들이 '원방 곧  바벧론'에서  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 까닭을 학자들은 다음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왕의 개인적인

명성과 정치적인 중요성이 먼 거리에 있는 바벧론에까지 퍼졌음을 은근히 자랑하기 위

한 것이다(Calvin). 둘째, 친선과 우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먼 나라에서  온  사신들을

환대한다는 것은 마땅한 도리라는 점을 내세워 자신의 잘못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다

(Vitringa). 셋째, 선지자의 의심과 염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바벧론이라는 나라가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Knobel). 둘째 의견이 가장  자

연스럽게 보인다.


=====39:4

  이사야가 가로되...하나도 없나이다 - 선지자의 세 번째 물음이 주어진다. 즉  '그

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 왕의 대답은 매우 솔직하다. 그러나  왕의

대답 속에 담긴 솔직함이 그 자신의 행동에 대한 참회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39:5

 왕은...들으소서 - 엄숙하고도 권위있는 신적(神的)인 판결이 주어질 때, 전형적으

로 쓰이는 표현이다. 병행구인 왕하 20:16에는 '만군의'(*            ,체바오트)라는

말이 빠져 있다.


=====39:6

 보라 날이 이르리니...남을 것이 없으리라 - 선지자의 입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형벌은 히스가야가 지은 죄-역대하의  기록에  따르면,  그것은  교만의  죄이다(대하

32:25)-에 상응해서 주어진다. 히스가야가 왕가의 모든 보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바벧

론 사절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였듯이, 그와 그의 조상들이 축적한 바로 그  보물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바벧론으로 옮기우게 될 것이다(Jarchi, J. Watts, Leupold). 이스라

엘의 바벧론 유수가 여기에서 처음으로 명확하게 표현된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미래는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옮겨지게 되니, 본서의 제 1부가 앗수르와 관계했던  방식으로,

이제 본서의 제 2부는 바벧론에 관계하게 될 것이다.


=====39:7

  또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하셨나이다 - 바벧론으로 옮기우는  것은  히스가야의

보물만이 아니다. 장차 그에게서 날 자손 중 몇 명이 바벧론으로 사로잡혀 가서  왕궁

의 환관(*             ,사리심)이 될 것이다. 참조로 '사리스'(*         )에는  '고

자', '환관'이라는 뜻도 있다(창 37:36; 39:1; 왕하  8:6  등  참조,Targum,Gesenius,

Lange). 본절 첫구절에 표현된 미래형을 통해서 히스가야가 아직 자손을 갖지  못했다

는 사실을 알 수 있다(Delitzsch, Alexander). 본 예언의 성취 여부에 대하여는  왕하

24:12-16;단 1:1-7을 보라.


=====39:8

  히스기야  왕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당신의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라

고 말한다. 이 말은 긍적적인 의미로, 혹은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부

정적인 의미로 이 말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히스가야의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즉,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파멸 선고가 그 당대에는  임

하지 아니하고 그 후손들에게 일어날  것을  생각하며  기뻐한다는  것이다(Gesenius,

Hitzig, Oswalt). 그러나 '나의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는 말은 그러한

이기심의 절정을 나타내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파멸의 선고 중에서 자비를  베푸

셔서 그때를 늦쳐 주신 것을 감사하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게 보인다(대하

32:26 참조). 이와 유사한 경우에 대하여는 왕하 22:18-20을 보라. 따라서 히스가야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보는 많은 주석가들과 더불어 '좋소이다'라는 말을,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선고가 '타당하다'(just)는 사실에 대한 엄정한 인식과 그리고 형벌의  때를

늦쳐준 것에서 알 수 있는 하나님의 크나큰 '자비로움'에 대한 감사가 복합적으로  함

축된 개념으로 파악한다(Alexander, Calvin, Delitzsch, Leupold, J.Watts, Lange).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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