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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이사야

[스크랩] 이사야 38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21

이사야 38장 주석

 

=====38:1

 그 즈음에 - 히스가야 왕은 29년을 통치하였다(왕하 18:2). 그중 15년은 질병이 나

은 후에 여호와의 은혜로 생명이 연장된 기간이다. 따라서 본문의 사건은  그의  재위

14년째에 일어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때의 앗수르왕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한  때와

시기적으로 일치한다(36:1). 히스가야 왕이 치명적인 병을 얻어 죽음을 선고받은 후에

여호와 앞에서 그토록 슬퍼하며 통곡한 것도 이와 연관하여 생각할 수 있다. 즉, 그가

슬퍼한 것은 자신의 갑작스런 죽음보다도 오히려 그의 죽음으로 인해서  민족이  당할

비극적인 처지를 더 걱정했기 때문이다.  어떤학자들(Calvin,Vitringa)은  히스가야의

질병이 앗수르 군대 퇴각 이후에 발생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을  받아

들이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히스가야 왕의 기도의 응답으로 그의 치유  뿐만이  아니

라, 예루살렘 성의 구원까지 약속되고 있기 때문이다(6절). 따라서 본장과 39장의  사

건은 36,37장보다 시간적으로 앞에 위치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Lange,Leupold,Oswalt,

Delizsch).

   히스가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 히스가야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

다. 다만 21절의  '종처'(腫處)라는 말을 근거로 할때, 그의 병이 염증을 동반하는 치

명적인 병-가령, 종기나 등창 같은-이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레 13:18;욥

2:7 참조).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  '살지 못하리라'는 말은, 죽음이  임박했으며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덧붙여진 것이다.  히스가야에게 이 말은  결

코 변경될 수 없는 냉혹한 사형 선고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나중에 철회

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인새의 운명과 관련된  하나님의 선고에도 집행  유

예(執行猶豫)는 있다(출 32:6-12 참조). 언제나 인생에게 복주기를 소원하시는 하나님

은 또한 그의 종들이 기도를 기꺼이 들으시며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뜻은 불변하나, 성도의 기도는 그것을 이루는 과정과 방법을 변경시킬 수 있

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이다(Oswalt).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히스가야의 겸손과  기도

의 열심을 우리는 본받아야 하겠다. 


=====38:2

  히스가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기도하며 - 이러한 행동은 아합  왕이  취했던

것과 일견 비슷하게 보이나(왕상 21:4), 그 기본 정신에서는 크게 차이가 난다.  아합

이 그의 얼굴을 벽으로 향한 것은 나봇의 포도원을 갖지 못한 노여움에서였지만, 히스

가야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존의 자세를 갖기 위해서이다.


=====38:3

 여호와여 구하오니...추억하옵소서 - 히스가야의 기도는 '의인의 간구를  하나님께

서 들으신다'는 구약의 확신에 부합되는 것이다(시 4:3;6:8;17편;26편;34:15,17,18;잠

15:29).그러나 그 초점은 행동의 완전함이 아니라 동기의 순전함에 모아진다.  히스가

야도 인간인 한 비록 그의 행사가 다 완전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는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순전한 양심에  따라  최대한  바르게  행하고자  하였다.  왕하

18:1-7에 나오는 역사적인 기록과 평가를 참조하라.

   진실과 전심으로 - 문자적으로는 '진리(*       ,에메트) 안에서 그리고 완전한 마

음(*            ,레브 솰렘) 안에서'이다. '에메트'는 흔들림없이 일관되게 일을  추

진해 나가는 성실성을 가리키며, '레브 솰렘'은 나뉘지 않은 마음의 온전함, 즉  정직

을 가리키는 말이다. 


=====38:4

 이에...가라사대 -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선지자에게 전달된다. 첫 번째 말씀과 두

번째 말씀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그렇게 오래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왕하

20:4의 평행구에서 볼 수 있듯이, 선지자는 그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

호와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38:5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말씀하시기를 - 히스가야에게 죽음을  선고할

때는 여호와의 이름만 간단히 언급되었다(1절). 그러나 위로를 제시할  때,  선지자는

여호와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이라는 독특한 명칭으로 부른다. 이는 히스가야에게

베풀어진 여호와의 은혜와 자비가 그 조상 다윗과 맺으신 언약에 기인한 것이며, 약속

을 지키시는 여호와의 변함없는 신실하심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Calvin). '다윗'은 단순한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왕국의 연속성을 약속받은 인물로

서 언급되고 있다(삼하 7:12-16). 물론 이 영속성이 다윗 자신이 아니라 그의  후손과

관련된 것임을 말할 나위도 없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 '듣고-보았다'는 말은 여호와께서 히

스가야의 기도를 참되고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셨다는 말이다. 여호와는 의인의 입에서

나오는 진실한 기도를 들으시며, 특히 의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귀하게 보신다.


=====38:6

 너와 이 성을...보호하리라 - 히스가야에게 주어진 약속은 유다에  이미  진주해서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는 앗수르 군대의 위협으로부터의 일시적인 보호뿐만  아니

라(Hitzig, Hendewerk, Knobel). 동시에 일단 퇴각한 후에도 계속해서 있을  수  있는

추가적인 모든 위협으로부터의  완전한  보호를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Gesenius,Rosenmtiller). 이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었으니 앗수르는 결코 예루살렘 성

을 정복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38:7

  나 여호와가...이 징조를 네게 주리라 - 개역 성경은 1인칭 문장으로 되어 있으나,

히브리어 원문에는 3인칭으로 표현되어 있다 : '그리고 이것이 여호와께로부터 너에게

(주어질) 징조니, 그가 말씀하신 이 말씀을 여호와께서 이루실 것이다.' 본문에는  나

와 있지 않으나  일의 순서상  이사야의  말이 주어지기 전에 징조를 구하는 히스가야

의 적극적인 요청이 선행되었을  것이다(22절; 왕하 20:8 참조).  이 점에서 히스가야

의 행동은 징조  구하기를 거부한 아하스의 불신 행위와 대조를 이룬다(7:12,Skinner,

Oswalt).


=====38:8

 아하스의 일영표에...물러가게 하리라 - '아하스의 일영표'는 히스가야의  선왕(先

王) 아하스가 세운 해시계를 말한다. 헤로도투스(Herodotus)의 기록에  의하면,일영표

는 바벧론에서 최초로 만들어졌다(herod.  .109). 이것이 앗수르에  의해  전달되었을

것이고, 아하스가 다메섹에 있는 디글랏 빌레셀을 방문했을 때 이에 대한 지식을 도입

한 듯하다(왕하 16:10 참조). '일영표'는 문자적으로 '계단들'(*          ,마알로트)

이니, 해가 떠오를 때와 질 때를 기준으로 해서 계단에 드리워진 그늘을 이용하여  시

간을 측정하는 수단을 가리키는 것이다. 왕하 20:9,10의 병행구에 따르면, 이사야  선

지자는 히스가야 왕에게 그림자가 앞으로 10도 나아가는 것 중에서  하나를  고르도록

제안했으며,왕은 좀더 어렵게 보이는 후자를 선택하였다.

   이에...물러가니라 - 히찌히(Hitizig)는 해 그림자가 뒤로 물러간 현상을 히스가야

의 죽음이 뒤로 연기된 것과 평행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10'이라는 숫자 대신에 '15'라는 숫자가 사용되어야만  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칼빈(Calvin)은 '당시 해시계는 12눈금밖에 없었으므로, 그것은 불가능하

였다...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숫자상의 차이 때문에 꺼림칙해 할 필요가 없다'고 말

한다. 그러나 해시계의 눈금의 정확한 수치는 차치하고라도, 해시계 자체에 대해서 학

자들이 갖고 있는 지식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더구나 이 징조는  히스가야의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진 '이적적'인 것이다(대하 32:31 참조).  그

럴진대, 이러한 현상이 히스가야의 눈앞에서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혹자는 이것을 부분적인 일식 현상으로 해석한다(Bosanquet). 그러나  이

로써는 그림자가 뒤로 물러감을 설명하지 못한다. 가장 적절한 해석은 이것을  시각적

인 것으로, 다시 말해서 빛의 굴절 현상으로 인해 오후에 바닥에 드리워졌던 그림자가

'이적적으로' 위로 옮겨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Delitzsch,Lange,Oswalt).  본문에서도

'뒤로 물러간 것'은 태양이 아니라 그 그림자였다고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주장

하는 것처럼 태양의 진행이 한시적으로 거꾸로 진행되었다고 한다면, 물리학적인 견지

에서 이 지구상에 엄청난 문제점들이 야기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성은  어떠한

이유로도 제한되어서는 안된다.그러나 하나님은 통상적으로 자신이 설정해 두신 이 세

상의 법칙들과 조화되는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듯하다. 마침 신기루가 팔레스틴 지역에

서 이상한 현상을 나타내듯이, 그 징조는 빛의 굴절 작용으로 생겨날 수도 없었을  것

이다'(Leupold). 그러나 본문 자체가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문제에 대해서  명

시적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추론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38:9

 유다 왕 히스가야가...기록한 글이 이러하니라 - 히스가야 왕의 시편(9-20절)은 오

직 본서에서만 볼 수 있다. 그는 이 시편을 죽음의 병에서 회복된 후에 지었다.본절은

이 시편의 표제인데,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 '유다 왕 히스가야의  글(*         ,믹

탑), 그가 병들었다가 그 병에서 살아난 때'(원문). '믹탑'은 보통 '기록된 글'  혹은

'쓰여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이 다른 시편의 표제에는 전혀 나오지 않기  때

문에 게세니우스(Gesenius)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믹탐'(*        )으로 고쳐 읽어

야 한다고 주장한다. '믹탐'은 시편의 전문 용어로서, 시 16,56-60편에서 표제러 사용

되고 있다. 그러나 그 정확한 의미에 대하여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 없다. 다윗과 마찬

가지로 예술과 문학에 탁월하였던 히스가야는 성전 예배시에 관악과 성악을  복구시켰

으며(대하 29:25-30), 특히 위원회를 결성하여 잠언을 수집하고 고대 문서들을  수집,

보관하는 등의 일을 추진케 한 바 있다(잠 25:1). 따라서 이러한 그가 본 시편을 지었

다는 사실은, 몇몇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38:10

 내가 중년에 음부의 문에 들어가고 - 직역하면 '내 날들의 고요함 가운데서 음부의

문으로 내가 달려간다'이다. '고요함'(*      ,데미)은 대부분의  주석가들에  의해서

'건강한 생활의 평탄한 과정'(Delitzsch), '격정의 때가 지나고 사람의  성격이  한층

고요해지는 때'(Umbreit), '정오의 휴지(休止)'(Cheyne) 드의 긍적적인 의미로 해석되

어진다(Gesenius, Maurer, Knobel). 그럴진대, '내 날들의 고요함'을 '내  생애의  정

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NSB). '음부의 문에 들어간다'는 것은  '죽는다'는

말이다(5:14;14,9,11,15;28:15,18, 삼하 12:15-25하주제 강해, '구약의 사후(死後) 개

념-(陰府)' 참조).


=====38:11

  내가 또 말하기를...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 계속하여 히스가야는 돌연한 죽음으로

인하여 그가 상실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를 노래하니, 그  첫째는  '여호와를  뵈옵는

것'이며, 그 둘째는 '사람들(동료)과 교제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뵈옵는다'는  것은

육신의 눈으로 그를 본다는 말이 아니라, 성전에서 공중 예배를 드림으로써 그의 임재

하심을  경험하며 그와 살아있는 접촉과 교제를 나눈다는 말이다(시 11:7;17:15;27:4;

42:2;63:2;84:2 참조).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는 필경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제로  이어

진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람과 어울리는 이러한 즐거움이야말로 히스가야가  생존세

계, 곧 짧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귀하게 여겼던 것들이었는데 이제  죽음의  자리에서

이것들을 안타깝게 추상하는 것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뵈옵지 못하겠고 - 히브리어 원문에는 '여호와'의  단축형

인 '야'(*    )가 연속해서 두 번 나온다. 직역하면 '내가 보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

여호와. 산 자들의 땅에서'이다. '야 야'(*        )는 '야훼'(*         )의  오류가

아니라 강의적인 반복을 나타내는 것이다(Alexander).


=====38:12

 나의 거처는...하였도다 - 자기 생명의  덧없음을  상기하면서 시인은  그것을  두

가지로 비유한다.  (1)목자가 장막을 걷음 : 목자는  목초지가  싱싱한  곳에  '장막'

(*      , 오헬)을 세우고 짐시 기거한다. 그러나 그 기간은 풀이 남아  있을  때뿐이

다. 풀이 마르면 목자는 곧 장막을 걷고 새로운 곳을 찾아 이동한다. (2)직공이  베를

틀에서 끊음 : 피륙이 베틀에서 완성되어진 다음에는 순식간에 직공의 손에 의해서 잘

려진다. 인생의 덧없음에 대하여는 40:6-8;마 6:30;벧전 1:23을 참조하라.       


=====38:13

 내가 아침까지 견디었사오나 - 탈굼역(Targum)은 본문의 동사(*          ,쉬위티)

를 변형시켜 '(괴로움으로 인해 나는 사자처럼) 포효하였다(*          ,쉬와티)'라고

읽는다(Houbigant). 그러나 다음 구절에서 '사자'에 비교된 이가 왕이 아니라  하나님

이라는 데 난점이 있다.  또 혹자는 '솨와'(*       )  동사에  '...과  같이  되다',

'...에 필적하다'는 뜻이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나는 아침까지 (사자)와 같이 되었

다(즉, 포효하였다)'는 해석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그 뒤에 나오는 '뼈를  꺾

는다'는 표상을 '사자'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시 7:2), 동일한 표상을 양

자 모두에게 적용해야 하는 보순에 빠지게 된다(Alexander). 그러므로 문맥상  본절은

히스가야가 극한 고통 속에서도 인내로서 밤을 세웠으나, 아침이 되어도 병세는  그대

로였으며 오히려 '사자가 그의 뼈를 물어 뜯는 것'과 같은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인

해 거의 죽게 된 사람처럼 혼미한 소리를 내뱉는 뜻으로 이해함이 무난하겠다.


=====38:14

  여호와여...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  구원을  호소하는   왕의  탄원은    '주여'

(*        ,아도나이) 라는 외침으로부터 시작된다 : '주여! 나에게 억압, 나의  보증

이 되소서'(원문). '억압'(*         ,아쉐카)은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느끼는  짓눌림

을 나타내는  전문적인 법정 용어이다(마 18 : 28-30 참조).  '나의  보증이  되소서'

(*          ,아르베니)라는  단어  역시 법정 용어이니, 채무자의  압박을  경감시켜

주기 위해 그 빛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시 119:122;잠 20:16;

27:13 참조). 히스가야는 채무자의 입장에서 채권자이신 여호와께 자신을 위해 보증이

되어 달라고, 즉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욥  17:3,  Wildberger,

Cheyne, J. Watts).  


=====38:15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각근히 행하리이다 - 본절을 기점

으로 시편의 정조가 '비탄'에서 '찬양'으로 급변한다. 이러한 변화는 '주께서 내게 말

씀하셨고-행하셨다'는, 즉 '주께서 내 기도를 응답하셨고-죽음의 질병으로부터 구원해

주셨다'는 두가지 사실로부터 유도된다. 여호와께서 베풀어 주신 놀라운 은혜  앞에서

시인은 할 말을 잊는다 :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삼하  7:20  참조,Alexander,

Delitzsch, Leupold, Lange, J. Watts). 이제 그는 은혜로 부여받은 15년이라는  여생

을 지난날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엄숙하고도 경건하게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한다. '각근

히 행하리이다'의 히브리어 '에다데'(*        )는 시온산을 향해 나아가는  백성들의

엄숙한 행진을 묘사하는 말이다(시 42:4).  


=====38:16

 원컨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주옵소서 - 본문은  개역  성경처럼  간구  형

태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여기 사용된  두 동사는 모두 히필형(사역형  능동)으로

서 명령형뿐만 아니라 미완료형으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미완료형으로 번역할  경우에

는, '당신이 나를 치유하시며(*               ,타할리메니). 나를 살게  하시리이다'

(*          , 하하예니)가 되어 두 동사 모두 기도자의 확신을 나타낸다.


=====38:17

  보옵소서...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 죽음에서 벗어난 후 히스가야는  자신의  이전

고통을 돌아보면서 그것이 자기에게 가져다준 영적인 유익을 노래한다. 히스가야는 그

가 주께로부터 받은 생명과 건강의 축복을 '평안'(혹은 '온전함', *         ,솰롬)이

란 한 단어로 요약하여 말한다. 진실로 깨닫는 자에게는 고통조차도 그를 연단,  완성

시키려는 하나님의 은혜가 된다(롬 8:28 참조).

   주께서...사랑하사...건지셨고...던지셨나이다 - '사랑하사'에 해당하는  '하솨크'

(*      )는 내적으로 확고하게 결합된 사랑을 의미한다. 또 '멸망'의  히브리어  '벧

리'(*      )는 '허무', '부정'을 뜻하는 말이나, 여기서는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멸망의 형벌을 받는다'는 의미로 취한다. 그리고 '등 뒤에 던지다'

라는 말은 '주께서 사라지게 하다', '망각하다',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느 9:26 참조). 반대로 주께서 무언가를 기억하실 때는 그 대상을 그의  얼굴  앞에,

눈앞에 놓으신다고 표현된다(시 90:8;109:15;렘 16:17;호 7:2). 결국 하반절은 히스가

야가 자신에게 선고된 죽음의 재난을 그가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로서  이해하

고 있었음을 보여준다(시 103:3,4 참조, Alexander).


=====38:18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 본절과 19절은  하나

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가능성과 관련하여, '죽음'과 '생명'을 대조시킨다. '죽은  자

는  하나님을  찬미하지 못한다'는 구약적 인식에 관하여는 욥 10:21,22;시 6:5;30:9;

88:10-12;115:17 등을 참조하라. 특히 본절과 관련하여, 사후(死後) 세계에 대한 이러

한 비관적인 생각은 히스가야가 죽음을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의 결과로 파악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Calvin).


=====38:19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 '산 자 곧 산 자'(*      ,

하하)는 강의적 반복이다(11절 참조). 죽음을 선고받은 자의 슬픔의 '어제'와, 죽음에

서 벗어난 자 곧 산 자의 찬미의 '오늘'이 대조되고 있다(Lange). '주의 신실을  아비

가 자녀에게 알게 한다'는 말은 일반적인 의미로 이해된다(출 12:24-27;신 6:7 참조).

왜냐하면 이 당시 히스가야는 아직 자녀가 없었기 때문이다(Alexander).


=====38:20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노래하리로다 - 히스가야의 시편은  그가  자신의

동료 예배자들에게 자기와 더불어 찬미할 것을 권유하는 말로 끝난다. 찬미의  주제는

'여호와의 구원'이며, 그 방법은 '악기를 사용하여 노래하는 것'이며, 그 장소는  '여

호와의 전'이다. 아마도 히스가야는 성전에서 드리는 공적인 예배를 염두에  둔  듯하

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는 '여호와'라는 고유 명사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라는 부정사로 이루어진 불완전한 문장이다. 가장 무난한 독법은, 부정사에 임박

한 미래적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생각하고 본문을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실 것이다'

로 읽는 것이다(Oswalt).


=====38:21

 이사야는 이르기를...왕이 나으리라 하였었고 - 앞에서 언급하지 못했던  사항들을

이사야 선지자는 부연하니, 그중 첫째가 치료약에 관한 것이다. 선지자는 왕에게 무화

과 열매를 찧어 만든 찜질약을 종처 부위에 바르도록 처방하였다. 무화과나무는, 델리

취(Delitzsch)에 의하면, 종기를 빨리 곪게 하여 고름을 터뜨리는 효능이  있다고  한

다. 이에 대해 무화과나무는 오히려 종기에 해로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Grotius). 이들의 말에 따르면, 무화과나무가 상처에 해로운데도 붙이게 한 것은, 히

스가야의 질병이 오직 여호와의 권능에 의해서만 기적적으로 치유될 수 있음을 보여주

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치료를 매개 물질 없이 이루어지는 초자연적

인 역사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모든 치유 행위는 여호와께 속한다. 그는  때때로

병을 직접 치유하시나, 또다른 경우에는 매개 물질을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치유하기도

한다(Oswalt).


=====38:22

  히스가야도 말하기를...하였었더라 - 선지자의 처방 다음에 징졸르 구하는  히스가

야의 요청이 이어진다(왕하 20:7,8). '여호와의 전에 올라간다'는  말은,  예배드리기

위하여 혹은 여호와를 찬미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간다는 말이다. 이사야는 히스가야에

게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것'이라고 약속하였다(왕하 20:5). 이에 히

스가야는 그 약속을 확증할 수 있는 징조를 요구했으며, 여호와께서는 해의  그림자가

뒤로 10도 물러가는 이적으로 응답해 주신 것이다(8절).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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