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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이사야

[스크랩] 이사야 22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17

이사야 22장 주석

 

=====22:1

  이상(異像)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 '이상 골짜기'(*                ,게  히자욘)

는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이름이다(5절). '골짜기'는 다윗 성이 서 있는 언덕

(산) 기슭에서 마주치는 힌놈, 기드론 등의 골짜기에서 연유된 듯하고, '이상'은 그곳

에 선지자의 거주지가 있고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시온 산'이라 불렸음을 생각할

때, '이상 골짜기'라는 이름에는 경멸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산' 과 '골짜기'의 대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산의 높은 곳에서는 먼 데까지도 전망

이 가능하나, 어두운 골짜기에서는 아무것도 내다보지 못한다. '이상'에 관한 한,  예

루살렘은 골짜기와 같다. 선지자가 그 이름을 통해서 풍자하고 있는 바, 미래를  예측

하는 시력을 상실한 예루살렘은 임박한 재난 앞에서도 회개하기는 켜녕, 기쁨으로  소

동하며 분요하는  모습만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2절).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찜인고 - '어찜인고'(*    -     ,  마-라크)는  직역하면

'네게 무슨 일이냐?'(What to you)이다. 이 물음에는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조롱의 뜻

이 담겨 있다(삿 18:23). 예루살렘 주민들이 떼를 지어 지붕에 올라감(삿 16:27)은 아

마도 (퇴각하는) 적군(산헤립의 군대)의 모습을 지켜 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36:22,

Gray, Leupold). 본문과 관련되는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학자들간에 이견(異見)이  분

분하다. 사실 여기서 제시되는 주장들은 기껏해야 개연성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본문의 상황이 B.C. 701년에 있었던 앗수르  군대의  예루살렘

포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당시 산헤립은 히스기야로부터 상당한 양의  공물을  받고

그의 군대를 철수시켰다(왕하 18:14-16).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자세한 사항에 대하여는 36,37장;왕하 18장을 참조하라.


=====22:2

 훤화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 예루살렘 성읍을 떠들석하게 만든  이

소동은 기쁨과 안도감에서 촉발된 것이다. 백성들은 퇴각하는 적군을 바라보면서 모든

위협이 사라진 양, 자만하며 허랑 방탕한 환락에 도취되었다.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전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즐거워하다'(*         

, 알리자)는 말은 헛된 자만에서 분출되는 득의  양양한  기쁨을  나타낸다(습  2:15,

Delitzch).


=====22:3

  너희 관원들은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결박을 당하였도다 - 백성들을  지켜야  할

관원들이 오히려 제 몸을 보전히기 위하여 활도 팽개치고 도망하다가 포로가 되어  결

박을 당한다. 명예와 용기가 자취를 감추고 수치와 비겁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것

이 이상을 상실한 백성들의 결국이다. '활을 버리고'(*        , 미케쉐트)는  직역하

면 '활로부터'이니, 그 의미는 '활을 쏴보지도 못하고' 혹은 '아예 저항을  포기하고'

이다. 유다의 지도자들에 관한 선지자의 부정적인 시선은 1:23;3:2, 3;5:13;7:2;28:7,

14;29:15 등에도 나와있다.


=====22:4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 예루살렘의 미래가 이러하므

로 선지자는 기쁨으로 환호하는 성읍의 한 가운데서 홀로 눈물을 흘린다. 그는 어떠한

위로도 거부한채 실컷 울기만을 소원한다. 이상을 결여한 시대에 선지자는 얼마나  특

이하고 외로운  존재인지!  그는  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깨어  어둠을  응시하며

(21:11,12), 모두가 기쁨에 들떠 분요할 때 홀로 슬픔에 잠긴다. 그는 백성을  향하여

선포하는 자이며, 동시에 백성과 그 운명을 함께 나누자는 자이다.  선지자  이사야의

눈물은 백성의 고난에 참예하려는 그의 애끊는 가슴에서 흘러 내리는 것이다.


=====22:5

  성벽의 무너뜨림과 산악에 사무치는 부르짖는 소리로다 - 직역하면 '성벽을 무너뜨

림과 산악에 대하여 부르짖음(*      ,쇼아)이로다'이다. 두 소리가 들린다. 먼저  들

리는 소리는 적군의 공격을 받아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요, 그와  때를  같이해서

살려달라는 백성들의 비명소리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에서  메아리쳐  울린

다. '쇼아'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부르짖음이다(Alexander).


=====22:6

 엘람 사람...기르 사람 - 예루살렘 성을 포위 공격하는 앗수르 군대 중에 주도적인

두 나라가 진술된다. '엘람'과 '기르'는 산헤립 당시에 이미 거대한 앗수르 제국의 한

주(속국)로 편입되었다. '엘람'은 바벧론 북동쪽에 위치해 있으며(21:2), 활을 잘  쏘

기로 유명하였다. '기르'는 코카서스에서 발원하여 카스피해로 유입되는 큐로스  강에

근접한 지방으로 알려져 있는데, 성경에서 그곳은 '아람 사람의  기원지'(암  9:7)로,

'아람 사람이 포로로 사로잡혀온 곳'(엄 1:5)으로, 또는 디글랏 빌레셀이 다메섹 주민

을 강제로 이주시킨 장소(왕하 16:9)로 언급되고 있다. '엘람'과 '기르'는 여기서  각

각 바사와 메대 대신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Alexander). 이 두 나라로 대표되는  앗수

르 군대의 위용은 곧 궁사들과 전차 부대와 기병대와 보병대로 구성된다.


=====22:7

  병거는...정렬되었도다 -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골짜기마다 적들의 병거가  가

득하고, 성문 앞에는 마병이 정렬해 있는 일촉 즉발(一觸卽發)의 상황에서 예루살렘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다고 아니할 수 없다.


=====22:8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 직역하면 '그가 유다의 베일(*      ,마사크)

을 벗기매'이다. '마사크'는 사람의 눈을 가려 보지 못하도록 하는  무엇을  뜻하는데

(출 26:36;민 4:5;삼하 17:19;시 105:39;고후 3:15, 16), 여기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무지의 베일로 해석함이 가장  무난하다(Alexander,  Leupold).

하나님께서 그들을 깨우쳐 주심으로 백성들은 그제서야 자기들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

속에 놓여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깨달음이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회개하도록 하는 데까지는 이르게 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병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22:9

  아래 못의 물도 모으며 - 포위당했을 때를 대비하여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사전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아래 못'은 시온 산 서쪽 맞은편 힌놈 골짜기에 아직도 남아  있

는 저수지를 가리키는 듯하다.


=====22:10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케도 하며 - 성읍 내의 가옥을 계수함

은 그것을 헐어내기 위함이요, 그것을 헐어냄은 성벽을 견고케 하는 데  필요한  건축

재료를 얻기 위함이다(9절;렘 33:4).


=====22:11

  그러나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존경하지 아니 하였느리라 - 선지자는 적의 공

격에 대비하는 백성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행위의  이면에

하나님을 앙망하는 마음이 없음을 질책하는 것이다. '앙망하다'와 '존경하다'는  히브

리어로 '바라보다'(의지하다)는 뜻이다. '이 일을 하신 자'(*        ,오세야)와  '이

일을 경영하신 자'(*        ,요체라)는 문자적으로는 각각 '그것을 만드신 자'와 '그

것을 빚으신 자'인데, 이는 유다 앞에 놓인 위기를 조성하신 분이 궁극적으로  하나님

이시며, 따라서 하나님께 돌아옴이 없이는 그들이 어떤 자구책을 강구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22:12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 예루살렘 성읍 앞에서  벌어

진 이러한 일련의 위기 상황들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경고

요, 부르심이었다. 이것은 백성들이 특별히 깨닫기 어려운 것도 아니며, 올바른  지각

을 가진 사람이라면 능히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통고하며 애호함'은 가

슴을 치고 우는 것이니, 하나님을 거스려 범죄하였음을 뉘우치는 행위이다.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띰'은 회개의 외적 증거로서 동방에서 널리 시행되어 온 관습이었다

(15:2,3 참조). '굵은 베'(*    ,사크)는 슬픔의 날에 입는 굵은  삼베옷을  가리킨다

(3:24;창 37:34;에 4:1;욘 3:6).


=====22:13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 그러나 회개에의 기대는 깨어졌다. 백성들은  미래의

재난 앞에서 찰나적인 쾌락으로 일관하였다. 니느웨가 보인  반응과  비교해  보라(욘

3:6-9). 그들의 행위는 미래를 상실한 데서 오는 자기 파멸적 경향성일 수도 있고, 또

는 '선지자가 내일 죽는다고 하니 그 말을 존중해주는 의미에서라도 오늘만큼은  실컷

즐기며 놀자'는 조롱의 표현일 수도 있다. 내일은 없으며 따라서 인생에는 영원한  것

도, 가치있는 것도 없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에게 오늘이라는 시간은 먹고 마시는  쾌락

의 한 순간으로만 존재한다. 그들의 눈에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며 자기 부정과 희생의

길을 걸어 가는 신앙인의  삶은  얼마나  기이하고  또  어리석게  보일  것인가(고전

15:19,32)!


=====22:14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 회개하기를 거부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절대로 맛볼 수 없음을 엄숙히 선고하는 말이다. '속하다'로 번역된  히브

리어 '카파르'(*      )는 본디 '덮다', '가리다'는 뜻이다. 구약 시대에 백성들의 죄

를 대신해서 뿌려진 황소와 염소의 피는 백성들의 죄를 없이 하지 못하고 다만 일시적

으로 가리울 뿐이었으므로 해마다 반복될 필요가 있었다(히 10:3,4). 그러나 그리스도

께서 자기 몸을 제물로 바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심으로 이 같은 필요가  소멸되게  된

것이다.


=====22:15

 그 국고(國庫)를 맡고 궁을  차지한  셉나  -  직역하면  '  이  국고  맡은  자(*               

, 하소켄 하제), 그 집 위에(*        -    ,알-하바이트) 있는 셉나'이다. 셉나의 직

위가 소개된다. 그는 '집 위에 있는 사람', 즉  왕궁을  다스리는  궁내  대신이다(창

39:4;44:1, 4;왕상 4:6;18:3;왕하 15:5 참조). 이런 의미에서 그는 왕을 가까이  하는

사람(*      , 소켄)이라 불렀다(Lange). '소켄'은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며 그 여성

형인 '소케네트'(*        )가 다윗 왕을 수종든 젊은 여자 아비삭에게 적용되었다(왕

상 1:2, 4). 그 앞에 붙은 지시 대명사 '이'(this)라는 말 속에 경멸적인 어감이 함축

되어 있다. 이것은 '셉나'란 이름 앞에 '...의 아들'이라는 소개가  생략된  것에서도

확인된다.


=====22:16

  높은 곳에...처소를 쪼아 내었도다 - 2인칭에서 3인칭으로 전환된다. 셉나의  헛된

야망의 높이를 상징하는 '높은 곳'은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대하 32:33)이란

말에서 보여진 것처럼 열왕들의 묘실을 기리킨다. 이들 무덤들은 예루삼렘 주변  산들

의 경사진 곳에 바위를 뚫어 만들었는데 이는 침해를 방지하고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

한 것이다(Gray).


=====22:17,18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속박하고...던질 것이라. 그러나 예루살렘 높은 곳에  왕

들처럼 묻히고자 하는 셉나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그는 단단히 속박된 채로 공처럼  말

려져 광막한 지경에 던져질 것이다.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거기 있으리라 - 원문상 '그 곳'(*       ,  솨

마)이 2번 쓰여 강조되고 있다. 그것은 의미상으로 16절의 '여기'와 대조된다. 후자가

고귀한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면, 전자는 수치스러운 이국 땅을 뜻한다. 이국 땅에서 최

후를 맞이함은 유대인들에게 최고의 불행으로 간주되었다(암 7:17, Leupold).  셉나의

영광은 곧 왕궁의 부끄러움이다. 그 같은 인물을 등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왕궁은  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영달을 좇아가면 욕과 멸시가  그  뒤를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이치이다(23:9).


=====22:19

  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고 - 본문은 다음절에서  엘리아

김의 등장을 말하기 위해서 덧붙여진 것이다. 셉나는 서기관으로 강등되었으며(36:3),

그 자리를 엘리아김이 차지했다.


=====22:20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 엘리야김은 36:3에서 셉나와

함께 다시 언급된다. 그 이름 앞에 '내 종'이란 수식어를 첨가한 것은 그가  여호와의

충실한 종복으로서(20:3;삼하 3:18;암 3:7) 셉나와 대조적인 인물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Alexander).


=====22:21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힘있게 하고 - '옷'은 사람의 신분과 권세를  나

타낸다. '예복'(*        , 케토네트)과 그 위에 두른 '띠'(*        ,아브네트)는 취

임식 때 입는 관복을 가리킬 것이다(출 28:4,39;레 8:7, 13).


=====22:22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 '다윗 집'은 유다  왕궁이다.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둔다'는 말은 위정자의 책임의 무거움을 강조하는 비유적 표현인데  무겁

고 긴 열쇠를 어깨에 두러메었던 고대의 풍습이 반영되고있다(9:6). 열쇠를 가진 자는

집 안의 출입을 비롯해서 모든 살림 살이를 관장해야 했다. 이 열쇠는 왕이  절대적으

로 신임하는 자에게 주어졌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했을  때

도 이와 같은 의미로 말씀하셨다(마 16:19).


=====22:23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같이...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 새로이 공직에 취임한 엘

리아김의 위치가 확고 부동할 것을 선지자는 두가지로 표현한다. 첫째,  국가에  관한

한, 그는 단단한 곳에 박힌 목처럼 흔들림이 없이 견고할 것이다(슥 10:4  참조).  둘

째, 가문에 관한 한, 그는 그 아비 집에서 온 가족이 의지하는 보좌 같이 될  것이다.

즉, 영광이 될 것이다.


=====22:24

  그 아비 집의 모든 영광이...항아리 까지리라 - 그 가문에 속한 모든 이들이  견고

한    못    같은    엘리아김에게    의지함을    말한다.    '후손과       족속'(*                             

, 하체에차임웨하츠피오트)은 대립적 의미-'아들과 딸'(성의 구분), '아들과 손자'(세

대 구분), '고귀한 자와 천한 자'(계급 부분)-로 이해된다(Alexander).


=====22:25

 본절은 해석자들에게 큰 어려움을 야기시킨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엘리아김이 친족

을 등용하여 족벌 정치를 행사하다가(24절), 그로 인하여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25

절)는 해석을 취한다. 그러나 앞에서 엘리아김의 좋은 면을 이야기하다가  돌연  그에

대한 비난과 비극적 최후를 말한다는 것은 매우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몇몇

주석가들은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24절을 엘리아김에게, 본절을  셉나에게  적용하는

것이다(Calvin, Umbereit). 그러나 이 경우에 23, 24절에서 엘리아김을  가리킨  못이

어째서 돌연 셉나로 바뀌어야 하는지 그 까닭이 분명치 않다. 따라서  문맥에  비추어

부자연스러운 감은 있지만 앞의 해석을 받아들인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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