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9장 주석
=====19:1
애굽에 관한 경고라 - `애굽'의 히브리어 음역 `미츠라임'(* )은 본래 그
들의 조상에서 따온 이름이다(창 10:6). 이 말은 하애굽의 명칭이었으나, 여기서는
애굽 전체를 대표하는 뜻으로 쓰였다. `경고'에 대하여는 13:1을 참조하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 여호와께서 임하심은 애굽
을 재판하시기 위함이다(시 96:13). 그가 구름을 타고 임하심은 그의 재판이 신속히
이루어질 것을 가리키는 것이요, 동시에 그의 주권이 온 자연에 미침을 나타내는 것이
다(시 18:10;68:33;104:3). 성경에서 하나님은 종종 하늘 구름과 바람 날개를 타고
다니시는 것으로 묘사된다(신 33:26; 삼하 22:11).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녹으리로다 - 하나님의 신속하고 거룩한 임재
앞에서 애굽의 우상들(* ,얼릴레)은 두려움으로 떨 수밖에 없으니, 출애굽사건
에서 그들은 이미 결정적으로 심판을 받았으며(출 12:12; 렘 46:25), 그때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아무것도 아님'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2:18 참조). 따라서 한번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맛본 저들이 두려움에 떠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앞에서 떠는 것은 우상들만이 아니다. 용감 무쌍하던 애굽인들의 마음(* ,레바
브)조차 절로 녹아내린다고 선지자는 말한다(7:2 참조). 고대의 전쟁에서는 적에게 두
려움을 주는 그 자체가 곧 승리의 선취라고 여겨졌다.
=====19:2
그가 애굽인을 격동하사 애굽인을 치게 하시리니 - 히브리어 원문에는 주어가 3인
칭(그가)이 아니라 1인칭(내가)으로 되어 있다. 여호와의 말씀은 4절까지 이어진다.
애굽에 내려진 심판의 형태는 내란이다(3:5; 삿 7:22; 삼상 14:20; 왕하 3:23; 겔 38:
21; 슥 14:13). `격동하다'(* , 시크사크)는 말은 `무장하다',`공격하다'는
뜻이다.
그들이 각기 형제를...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 동족 상간(同族相姦)의 비극은
`형제'에서 `이읏'으로, `성읍'에서 `나라' 로 그 범위와 강도를 더해간다. 여기서
`나라'는 수십 개로 나뉘어진 고대애굽의 지방들(nomes, 노메스)을 가리킨다. 어떤
의미에서 애굽의 역사는 끝없는 자기 소모의 역사라고 할 만하다. 처음 여섯 왕조
(B.C. 3,000 - 2,200년경)가 변하는 동안 강력한 연합을 유지하였던 애굽은 그 뒤 약
42개의 노메스(지방정부)로 갈리어 난립하는 혼란기틀 맞게 된다. 이 같은 혼란은
제12왕조하(B.C. 1990-1785년경)에서 잠시 주춤거렸을 뿐, 이후 애굽은 거듭되는 분열
과 내란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특히 에디오피아 왕조(제25왕조, B.C. 715-664년)
가 들어서기 직전과 직후(B.C. 715년경). 그리고 삼메티쿠스에 의한 애굽 왕조의 회
복(B.C. 664년경)을 전후하여 혼란은 극에 달한 둣하다.
=====19:3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 극심한 혼란 가운데서 애굽인의 `정신
(* , 루아흐)이 쇠약해질 것이다. 여기서 `정신'은 병행하는 뒷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처리해나가는 `지혜' 혹은 `분별력'을 의미한다. '쇠약
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베카'(* )는 `바카크'(* )동사의 나팔형으로
서, `공허하게 되다', `쏟아버림을 당하다'는 뜻이다. 애굽인들의 절망 상태는 어
쩌다 그들이 입안한 계획들조차 하나님에 의해 못쓰게 된다는 말에서 더욱 심화된다.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 사람들의 마음이 두려움에
녹고(1절) 지역마다 분열되어 골육 상쟁(骨肉相爭)하며(2절) 판단력마저 고갈된(3a
절), 이런 상황에서 애굽 사람들이 의지할 데라곤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판
명된 우상들과 죽은 자들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비참함은 점강법으로 서술된 `우
상-마술사-신접한 자-요술객'의 어순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즉 그들이 가장 신뢰
하던 우상에게 도음을 구하나 불만족한 고로 그보다 낮은 마술사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래도 안 되자 신접한자, 요술객들에게까지 미래를 의탁한다는 것이다(Calvin). 여
기서 두 가지 교훈을 추론할 수 있다. (1) 사회가 불안할수록 허탄한 미신이 판치고
광신적인 종교 집단이 활개친다. (2)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는 그 어느것으로
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한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할 수 없다.
=====19:4
그가 애굽인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붙이시리니 - 본문을 직역하면 `내가 애굽인들
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가둘 것이니...'이다. 새로운 군주에 의한 이 압제의 과중함
이 두 개의 형용사, 즉 `카쉐'(* , 단단하고 무겁다)와 `아즈'(* , 강하고 견
고하다)로 강조되어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 `잔인한 군주'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
키는지에 대해서 학자들간에 이견(異見)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그가 애굽의 삼페티
쿠스라 하기도 하고(Grotius, Gesenius, Delitzsch), 혹은 앗수르의 사르곤(Hitzig,
Hendelwerk) 혹은 에살핫돈(G.W. Rawlinson), 혹은 바벧론의 느부갓네살(Clericus),
페르시아의 캄비세스(Vitringa)라고도 한다. 그러나 본문에는 잔인한 군주가 애굽 본
토인인지 아니면 외국인인지 조차도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이것을 역사상
의 특정한 인물과 결부시키기보다는 `군주들'(* , 아도님)이란 복수 명사에
서 알 수 있듯이, 애굽의 여러 군주들에게 지속적으로 압제를 당할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게 여겨진다(Calvin, Alexander).
=====19:5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을 `바다'(*
,얌)라고 불렀다(18:2). 차고 넘치고 범람하여서 주변 땅들을 적셔주는 나일 강은
예로부터 애굽의 자랑이며 풍요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바다처럼 풍부한 이 강물도 필
경은 말라 없어질 날이 이를것이다. 선지자는 여기서 동일한 의미를 지닌 세가지 동
사를 연속적으로 사용하여 나일 강에 임할 기근의 심각성을 강조해서 보여준다 : `니
솨트'(* , 타다, 마르다), `하레브'(* , 메마르다, 말라지다), `야베쉬'
(* , 말라지다). 본문을 비유적으로 이해하는 학자들은 애굽의 무질서와 재난이
예기되고 있다고 단언한다(Vitringa, Knobel). 반면에 칼빈(Kalvin)은 나일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스스로 무적이라고 자부하던 애굽의 군사력이 붕괴됨올 뜻하는 것이라
고 주장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구절들이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선지자는 나일 강의
기근을 통해서 애굽의 기대와 자랑이 무너지고 그로 인해 애굽의 전사업이 일시에 몰
락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Gesenius, Delitzsch, Alexander). 본문의 전체적인 묘사는
욥 14:11과 거의 흡사하다.
=====19:6
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마르므로 - 전절에 이어 나일 강의 기근이 상세 하게
묘사된다. 바닷물이 없어지고 강이 잦아서 마르게되면 그곳에서 악취가 풍길 것이며
작은 시냇물들도 모두 말라붙게 될 것이다. `애굽 시냇물'은 히브리어로 `예오레 마
초르'(* ,* )인데, `예오르'(* )는 강을 뜻하는 애굽어이며, `마
초르'(* )는 `미츠라임'(* , 1절)의 단수형으로서 '바드로스'(상애굽,
11:11)와 구별되는 의미에서 삼각주를 중심한 하애굽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37:25;
왕하 19:24; 미 7:12, Oswalt, Delitzsch).
달과 같이 시들겠으며 - 직역하면, `갈대'(* , 카네)와 골풀(* , 수프)이
시들겠으며(* , 카멜루)'이다. `갈대'와 '골풀'은 습지에서 자라는 식물들로
서 나일 강 역류 지역에 넓게 분포되어있다. 이하에서 나일 강이 마름으로 해서 애굽
의 전체 산업에 파급될 여러 국면이 서술된다.
=====19:7
나일 언덕의 초장과...곡식 밭이 다 말라서 날아 없어질 것이며 - `나일언덕'은 문
자적으로는 `강의 입'이니, 즉 강의 물줄기가 갈라지는 지점(Knobel) 혹은 (Gesenius,
Michaelis)를 뜻한다(출 2:3; 잠 8:29). 일반적으로 애굽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일는
대신 나일 강을 통하여 중앙 아프리카의 평원에 내리는 동기(冬期) 강우와 에디오피아
고지대에 내리는 하기(夏期) 강우가 유입되어 언제나 풍족한 수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나일 강의 마름은 곧 애굽 전역의 사막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재난
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목축업과 농업의 피폐함뿐만 아니라 어업계도 결정적인 타
격을 입게 될 것이다.
=====19:8
어부들은 탄식하여...피곤할 것이며 - 한때 고대 애굽의 경제를 지탱했던 어업 또
한 붕괴된다(민 11:5; 겔 29:4 참조). 어부들이 생계를 위하여 낚시줄을 던지거나 그
물을 쳐도 고기가 거의 잡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피곤해하며 끝내 슬퍼하게 될 것이
다. 물론 이 모든변화는 전적으로 나일 강의 마름에서 기인된 것이다.
=====19:9
세마포를 만드는 자와 백목(白木)을 짜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 - 이 파괴적
인 재난에서 의류 산업이라 해서 제외되지 않는다. `세마포'(* , 세리코트)는
애굽 승려들의 제사복과 미이라를 싸맬 때 쓰는 천으로 가늘고 질긴 고가의 린넨 직물
이며, `백목(* , 호라)은 보다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된 흰 모직물을 가리킨다.
(Delitzsch)
=====19:10
애굽의 기둥이 부서지고...근심하리라 - `기둥'(* , 솨토트)과`품군들'(*
) , 오세 세케르)은 사회의 두 구성 집단, 즉 고위 관리자들과 하층 노동자
들을 의미한다(Gesenius, Delitzsch).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사회의 모든 계층이 한
결같이 고통받게 된다는 말로, 5절이하의 내용은 일단락된다.
=====19:11
소안의 방백들은...우준하여졌으니 - `소안'은 애굽 북부 삼각주 동편에 자리한 도
시로(민 13:22) 하애굽의 왕궁이 있다. 특히 힉소스 왕조 때에는 정권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방백들'(* , 사림), 곧 지도자들은 애굽의최고 귀족 계급인 제사장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들의 지혜와 학식은 이미 고대에 유명하였다.
(왕상 4:30; 행 7:22).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해서 애굽 전체가 재난에 빠진
이 상황에서 그들의 지혜조차 전혀 도움이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무기력함은 심지어
바로의 곁에 서서 온갖 조언과 모략을 짜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모사들에게도 예외
가 아니었으니, 즉 그들은 우준하여졌다.
=====19:12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 선지자의 조소는 바로를 향해 주어진다. 본문
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 말씀에 대하여는 47:12, 13; 신 32:37, 38; 렘 2:28 을 참조하
라.
=====19:13
소안의 방백들은...미혹되었도다 - `놉'(* )은 멤피스(Memphis)이며 (렘 2:16;
44:1; 46:14,19; 겔 30:13; 호 9:6), 고대 애굽의 주요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서, 삼
메티쿠스에 의해 왕도(王都)로 부상되었다. 소안과 놉은 델타 지역의 북단과 남단이
라는 대극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따라서 선지자는 델타(애굽)을 종횡하여 지혜로운
자는 한 사람도 없음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Leupold).
=====19:14
여호와께서...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 애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일은 결
코 우연한 일이 아님을 설명한다.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애굽의 지혜로운 자들에게
`사특한 영'(* , 루아흐 이웨임), 곧 혼돈의 영을 불어넣으셨다고 말
한다. 그 결과, 그들은 마치치 술취한 자가 제 몸을 이기지 못하고 토하며 비틀거림
과 같이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을 끝없는 혼란과 비극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28:7,8; 욥 12:25; 렘 48:26 참조).
=====19:15
애굽에서...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 - 여호와의 징계로 인해 주어진 이 불가해한 현
기증에서 깨어날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머리나 꼬리나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는
지위 고하를 막론한 애굽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포괄하는 말이다(9:14 참조).
=====19:16
만군의 여호와의 흔드시는 손 - `손의 흔들림'(* , 테누파트 야드)에
서 애굽인들은 전투를 지휘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모습을 본다(30:32). 과거에 자신
들이 겪었던 하나님의 손의 능력 즉, 열 재앙이나 갈대 바다의 갈라짐 등을 결코 잊을
수 없는 애굽인들로서는 이 전투의 결과를 미리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며(11:15; 출 1
4:25), 따라서 두려음과 떨림은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19:17
유다의 땅은...듣는 자마다 떨리라 - 유다의 하나님에 대한 에굽인들의 공포가 너
무나 지대하므로 그들은 심지어 유다의 땅에 대한 소문을 듣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유다를 생각할 때 그들은 필경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가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모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날에 애굽 사람들
이 두려워 떨 것이다'로 요약되는 16절과 본절은 1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심판의 에
필로그를 구성하는 한편, 18절에서 시작되는 애굽인들의 변화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축복의 이유를 설명하는 프를로그로서 작용한다.
=====19:18
그 날에...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 선지자는 두려움의 정점에서 애굽이 여호와
께 돌아올 것을 말한다. `다섯 성읍'은 이 사실을 보증해주는 전조로서 주어진다. 이
`다섯'이라는 숫자는 많은 것 가운데서 지극히 적은 것을 뜻한다(30:17; 레 26:8; 고
전 14:19). 그러나 분문이 후대의 역사적 사건을 기초로 하여 작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부 현대의 학자들은 언급된 `다섯 성읍'이 포로 귀한 이후 애굽 땅에 건설될 유대인
거류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렘 44:1 참조). 더 나아가 어떤 이는 그 거류지
들의 구체적 지명까지 제시한다(Hitzig). 본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향한 애굽인
들의 회심을 말하고 있음이 분명할진대,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 중 하나를 장망성(將亡城)이라 칭한리라 - 장망성, 곧 `장차 망하리라고 예정된
성'은 히브리어로 `이르 하헤레스'(* )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무오
한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의심하고 있다. 왜냐하면 애굽의 회심과 그로 말
미암는 복된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본문에서 `장망성'이란 단어는 문맥에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난점을 피하기 위하여 칼빈(Calvin)은 `장망성'이라 지명된 한
성이 구원받을 다섯 성읍 가운데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문은 여섯 가
운데 하나가 아니라 다섯 가운데 하나가 그러한 이름을 가질 것을 분명히 말한다. 델
리취(Delitzsch)는 이와는 다른 각도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려한다. 즉 장망성이 다섯
성읍 가운데 포함된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은 '장차 망하리라고 예정된 성읍'으로 이
해될 것이 아니라 `장차'(우상 제단들을) 파괴시킬 `성읍'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것이
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본문에 우상 파괴에 대한 어떤 암시도 주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하헤레스'(* )가 `하헤레스
'(* )의 오기(誤記)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약 15개의 히브리어 사본들과 심마
쿠스역(Symmachus), 탈굼역(Targum), 벌게이트역(Vulgate) 등에 이 단어는 `태양의 성
읍'(* , 이르 하헤레스)로 표기되어 있다. 만약 이것이 옳다면 본문의
의미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인, 태양신을 섬기던 바로 그 우
상의 성읍조차 하나님께 돌아와 가나안 방언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될 것이다'(O-
swalt). 현재로서는 이 해석이 가장 타당하게 여겨진다.
=====19:19
애굽 땅 중앙에는...기둥이 있을 것이요 - 어떤 이들은 본문을 B.C. 2세기의 상황
과 결부시킨다. 요세푸스(Josephus)에 따르면, 당시 유다의 대제사장이었던 오니아스
(Onias) 4세가 고국에서 도망하여 애굽으로 망명하였을 때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애굽 왕 필로메토르(Philometor)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것과 똑같은 성전을 지
을 수 있도록 간청하여 허락받았는데, 이때 그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제
시한 성경 구절이 바로 본문이었다고 한다. 그 신전은 레온토폴리스(Leontopolis)에
건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본문은 애굽에서의 유대인의 행위를 말하지 않
고 다만 애굽인들 스스로의 행위를 말하고 있다. 따라서 오니아스의 왜곡된 해석과
본문의 참된 의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언급된 `제단'과 '기둥'은
족장 종교의 흔적을 보여준다(Young).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감사를 표현하
기 위하여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며'(창 12:8), 야곱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응답으로서 돌을 쌓아 `기둥을 세웠다'(창 28:22). `제단'은 하나님께 대한 구
약 시대의 예배 행위를 대표하는 말이며, `기둥'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상징하는 말
이다. 이처럼 애굽도 장차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헌신을 표시하기 위하여 제단과 기
둥을 세울 것이다(Oswalt).
=====19:20
표적과 증거가 되리니 - 애굽의 중앙과 변경에 세워지는 제단과 기둥은 그 자체로
애굽 땅에 여호와를 경배하는 이들이 있다는 한 `표적'(* ,오트)이 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자신을 애굽에 드러내시는 한 `증거'(* ,에드)가 될 것이다(Delitzsc-
h). 이러한 연합의 결과로 애굽인들은 한때 그들을 징계하셨던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게 도움을 간구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마치 사사 시대에 구원자를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심같이 그들을 구원하실것이다(삿 3:9, 15을 보라). 요컨대, 본문의 요
점은 하나님께서 애굽을 이스라엘과 똑같이 대우 해주신다는 것이다. 오스발트(Oswal-
t)가 잘 관찰한 바와 같이, 19절이 창세기의 분위기를 연상 시킨다면, 본문은 사사기
에 매우 흡사하다.
=====19:21
그 날에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애굽에 편만해질 것을
말한다. 이 지식은 전절의 구원의 경험으로부터 주어지는 체험적 지식을 가리키는데
(* , 야다), 이 점에서 그것은 그들이 열 재앙의 쓰라린 과거 속에서 간직하였
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것이다(출 7:5; 9:29; 14:4). 왜냐하면
과거의 지식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사도 야고보가 말한바 하
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심을 귀신들도 믿고 떠는 정도에 불과한 반면에(약 2:19), 미래
의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기초하고 그와 친밀하게 교제하고 동거하는 정도에
까지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요 17:3 참조).
=====19: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 것이라도...고쳐 주시리라 - 끈끈한 유대와 애정으로 결속
된 하나님과 애굽의 관계는 부자지간으로 표상된다. 이스라엘과 더불어 새로이 하늘
아버지의 자녀가 된 애굽은 이제 징계의 형태로 하나님의 돌보심을 체험하게 된다.
때로 그들이 죄악의 길에 빠질때, 하나님은 징계의 채찍을 드실 것이나 그럴때라도 그
들에 대한 치유룔 잊지 아니하실 것이다(호 6:1; 히 11장). 하늘에 계신 한 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애굽과 이스라엘의 차별은 사실상 완전히 소멸된다. 따라서 이 둘은 동
일한 구원의 계획에 포함되게 된다.
=====19:23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 애굽과 관련하여 보다 확대된 전
세계적인 전망이 펼쳐진다. 선지자의 시대에 고대 근동을 지배하던 두나라, 즉 유다
를 중심하여 각각 남과 북에 위치하고 있던 애굽과 앗수르가 이전의 적대 관계를 청산
하고 마치 친구처럼 서로 왕래하게 될 것이다. 그날에 유다는 이 두 나라를 잇는 통
로가 될 것이다. 여기에 선지자의 세계주의적, 평화주의적 비전이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 (1) 그날에 유다는 세계의 중심이 되어 끊어진것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구심점
이 될 것이다. (2) 유다를 교량으로 하여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 가로놓인 전쟁의 통로
가 그날에 복음의 통로, 평화의 대로로 바뀔 것이다. 본문에서 얻을 수 있는 영적인
교훈은 두 가지이다. 첫째,- 유다의 입장에서 볼 때 -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시키시고 이 둘을 화목하게 하심같이, 신자들은 오
늘의 한국상황에서 분열되고 갈라진 인간 관계를 회복시키는 자로서 역할해야 한다(마
5: 9; 엡 2:14-18). 둘째, - 애굽의 입장에서 볼 때 - 모든 관계의 우선은 하나님과
의 화목이며, 그럴 때에 적대적인 관계들도 해소된다는 것이다(엡 2:13).
=====19:24
그날에 이스라엘이...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 온 세상을 대표하는 두 개의 초강대
국,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 이스라엘이 셋 중의 하나로서 참가하게 될 것인데, 이를 통
해서 이전에 두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림을 받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
을 중재해 주는 나라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결국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는 약속의 말씀의 실현이라 볼 수 있을 것이
다.
=====19:25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복이 있을지어다 - 영적으로 연합된 세
나라에 대한 축복 선언으로 본장은 마감된다. 이 축복은 이스라엘에게만 배타적으로
허락되었던 권리와 영예로운 이름이 애굽과 앗수르에게까지 확대 적용되는 형태로 나
타난다. 먼저, 애굽은 `나의 백성'(* , 아미)이라 불리운다. 이는 하나님과 이
스라엘 사이에 체결된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10:24; 렘 11:4; 호 1:10; 2:23).
그리고 앗수르는 `나의 손으로 지은 작품'(* ,미아세 야다)이라 불리운
다. 이는 하나님이 진흙으로 빚어 만든 수고로운 작품이란 말이다(60:21; 64:8;시 11
9:73; 138:8). 이전에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로 쓰임 받았던 앗수르가(10:5)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탈바꿈 할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하여는 `나의 산
업'(* , 나할라티)이란 이름이 그대로 주어진다(신 4:20; 32:9; 시 28:9; 47:
4; 94:5; 미 7:14). 이 놀라운 예언은 16-25절에서 무려 6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그
날'(* ' 바욤하후), 곧 복음이 만방에 선포되어질 신약 시대에나 성취
되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사야 선지자 당대의 모습과는 전혀 조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데, 이런 시간적 괴리감 때문에 선지자의 사고는 다시 현재로 되돌아가게
된다. 다음장에서 그는 애굽의 내적 변화의 시발점이 된 사건에 대해 말한다. 그것
은 직접적으로 앗수르에 의해서 촉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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