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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이사야

[스크랩] 이사야 23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17

이사야 23장 주석

 

=====23:1

 두로에 관한 경고라 - 열방들에 관한 경고(*      , 마사)는 바벧론에서  시작하여

(13장)두로에서 끝난다. 바벧론과 두로는 각각 세계의 대극점(동과 서)에 위치하면서,

세계의 두 힘 곧 권력과 재물을 대표한다. 계 18장에서 이들 두 나라는 영적으로 함께

결합된다. '두로'는 동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 페니키아(베니게)의  주요한  네

성읍-아라두스, 비블로스, 시돈, 두로-가운데 하나로 유명한 항구 도시였다. 그  자매

항구인 '시돈'은 약 40km 북쪽에 있다.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두로는  일찍이  바다를

개척하여 지중해를 통한 해상 무역에 활발히 종사하였다. 두로는 이사야 선지자의  때

로부터 B.C.322년에 이르기까지 약 5번의 공격을 받았는데, 2번은 앗루르에 의해(느부

갓네살), 또 1번은 바사에 의해(아타르크세르크스 3세), 그리고 마지막은  마게노냐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였다(Oswalt). 본문의 예언이 이중 어느 것과 관련되는지 명확

하지 않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바벧론에 의한 점령이 가장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3절). 두로에 대한 예언으로는 겔 26-28장을 보라.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 '다시스의  선척들아'란  말에는

이중의 수사법이 들어 있으니, 그것이 지중해를 오가는 페니키아의 해상 활동을  대표

하는 한에서 환유법이요, 또한 그것이 인격화되어 부름을 받는 한에서 돈호법이라  할

수 있다. '다시스'는 스페인의 타르테수스를 가리키는데, 그곳은 두로의 해상  식민지

였다(2:16;60:9;왕상 10:22;22:48;시 48:7;겔 27:25;욘 1:3). 다시스를 돌아 고향으로

귀항 중인 선원들에게 슬픈 소식이 전해진다. 그것은 두로가 파멸되어 들어갈 항구도,

쉴 집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들려온 곳은 최종 정박지인 '깃딤' 곧  구브로

섬(Cyprus)이다(창 10:4;렘 2:10;단11:30).


=====23:2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고(商賈)로 말미암아 부유하게 된 - '시돈 상고'는 페니키

아의 상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시돈'은 페니키아를 대표하는 가장 크고 오래된  도

시이며(삿 3:3;왕상 16:31), '상고'(*      ,소헤르)는 상인, 장사꾼을 뜻한다.  이들

은 지중해를 오가며 인접한 나라들의 물건을 중개 무역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덕을

본 나라들이 많았다.


=====23:3

 시흘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열국의 시장이었도다 - 시돈 상고로 대표되는  페

니키아의 해상 활동이 구체적으로 예시된다. 이들은 고대 세계의 곡창 지대였던  애굽

으로부터 곡식을 사서 이것을 '큰 물' 곧 지중해(시 107:23;겔 27:26)로 운반한  뒤에

곡식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되팔아서 큰 이윤을 남겼다. '시흘'(*      )은 나일 강을

뜻하는 애굽어 '예오르'(*      , 19:6)의 히브리어 발음이다(수 13:3;렘 2:18).


=====23:4

 시돈이여...생육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니라 - '바다', 엄밀히 말해서 '바다의  요

새'(*              , 마오즈 하얌)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바다의 요새'는 내륙에

서 보건대, 섬과 같은 두로를 가리킨다. 두로에게 임한 재난은 시돈으로 대표되는  페

니키아 땅에 부끄러움을 강요한다. 왜냐하면 한때 지중해를 석권하며 많은 식민지들을

건설할 두로가 이제 재난을 당하여 모든 것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23:5

  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통도(痛悼)하리로다. 두로의 패망 소식은 애굽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준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곡물  수출업자들인  그들의

몰락으로 애굽의 경제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겠기 때문이요, 둘째는 동방 국가의  서진

(西進)을 저지시켜 주는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던 두로의 몰락으로  애굽  역시

동일한 군사적 위험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23:6

  너희는 다시스로 건너갈지어다...슬피 부르짖을지어다. 적의 포위 공격을 받는  두

로 거민들에게 가능한 한 멀리 다시스로 도피하라는 동정어린 명령이 주어진다.  알렉

산더 대왕이 두로를 포위했을 때 이와 유사한 광경이 벌어졌는데, 늙은이, 부녀자, 어

린아이 할 것없이 모두 페니키아의 식민지 중의 하나인 카르타고 (Carthage)로 도피하

였다고 한다(Diodorus, Curtius, Justin). 그들의 경제력을 두로와의 해상 교역에  거

의 의존하다시피 해온 해변 거민들 역시 두로의 몰락으로 자기들에게 미칠 손실을  생

각하면서 괴로움에 부르짖는다.


=====23:7

  이것이 고대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성...유하던 성이냐 - 두로의 어제와 오늘이  대

비된다(14:16,17;애 2:15 참조). 선지자는 이것을 놀람이 함의된 의문문의 형태로  표

현한다. 두로와 관련된 세 가지 요인이 이 놀람을 더욱 증폭시킨다. 첫째, 두로의  유

구한 역사이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는 두로의 도성이 약 2,7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둘째, 두로의 활력성이다. 이 활력성은  모험성과  진취성이

충만한 상업적 활동에서 기인된 것이며, 두로의 사치와 교만을 반영해주는 것이다. 셋

째, 두로의 끝없는 개척 정신이다. 그들은 넘쳐나는 활력으로 먼 데까지 나아가  시장

을 개척하는 한편,  카르타고,  다시스  등과  같은  식민지들을  건설하기에  바빴다

(Oswalt).


=====23:8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뇨 - 히브리어 원문에 이 물음이 문두에 나온

다. 실상 이 물음이 8-14절의 주조를 이룬다. 두로처럼 역사성이 깊고, 활력이 충만하

며, 개척 정신이 강한 나라가 몰락한 데는 역사의 우연 이상의 더 큰 무엇이 개입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이에 대해 답변하기 전에, 선지자는 두로의 몰락이 주는 충격을  더

하기 위해 과거 두로가 국제 사회에서 점했던 위치를 상기시킨다.


=====23:9

  세상의 모든 존귀한 자로 멸시를 받게하려 하심이니라 - 직역하면 '땅의 모든 존귀

한 자들(*      -            -    , 콜-니크바데-아레츠)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       

,레하켈)'이다. 어원적인 면에서 '니크바딤'(*          )과 '하켈'(*      )은 '무겁

다'와 '가볍다'는 대조적인 의미를 갖는다.


=====23:10

  딸 다시스여...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 두로의 패망은 곧 그 밑에서 속박

당해 온 속국들의 해방과 독립의 계기가 된다. 다시스는 그 한 예로서 본문에  언급된

다. 구속된 상태에서의 두로와 그 식민지 다시스와의 관계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비

유된다. 그러나 해방의 그날, 다시스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 어떤 간섭도 받음이  없이

마치  나일  강이  넘쳐서  제멋대로  흐름과  같이  그렇게  자유를  만끽할  것이다

(Delitzsch)


=====23:11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 - 두로의 파멸이 전적으로  여호

와의 손에 의한 것임을 선지자는 다시 강조하고 있다. 손을 펴시는  여호와의  모습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친숙한 이미지이다(5:25;9:12, 17, 21;10:4;14:26;31:3). 그가  바

다에 손을 펼치심으로 바다에 의존하던 열방들 곧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왕을  섬기고

있던 페니키아의 여러 나라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Gray)


=====23:12

 너 학대받은 처녀 딸 시돈아...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 본문의 전체적인 의미는 6

절과 유사하다. 한때 순결한 처녀와도 같이 그 부(富)와 명예를 자랑하던 시돈 곧  페

니키아가 능욕당하여 모든 즐거움울 상실한 여인의 모습으로 비유된다. 그에게 깃딤으

로 도피하라는 권유가 주어진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지 바라는 안식은 찾지 못할 것이

다.


=====23:13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황무케 하였느니라 - 두로를 멸망시킬  도구가  제시된

다. 그러나 이 도구가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해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뉜다. 두로의

파멸이 앗수르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본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가

나안 땅(페니키아)을 보라. 이 나라는 더 이상 존재치 않는다. 앗수르가 그것을  광야

로 바꾸어 버렸다. 그들(페니키아인들)은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건설했으나  그(앗수

르)가 그것을 황무케 하였다'(Ewald). 그러나 이것은 과도한 본문  수정을  요구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갈대아 사람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다는 견해를 취한다.  이

때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갈대아 사람(바벧론)의 땅을 보라. 이 백성(지금 거주하고

있는 바벧론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즉, 원주민이 아니었다). 앗수르가 그것을  광야

의 거주자들(전에 유목 생활을 하던 갈대아인들)을 위해 건설하였다. 이  백성(갈대아

인)이  망대를  세우고  그녀(두로)의  궁전을  헐었으며  그것을   황무케   하였다'

(Alexander, Delitzsch). 언급된 '망대'는 고대 사회에서 포위 공격할 때 사용된 것이

다. 후대의 역사가들에 따르면, 바벧론의 느부갓네살은 이토발 왕 치하의 두로를 13년

간이나 포위했으며(요세푸스, [고대사]) 부왕(父王)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고국  바벧론

으로 귀환할 때 수 많은 페니키아의 포로들을 끌고 갔다고 한다(Berosus).


=====23:14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 1절의 반복이다. 슬피 부르짖는 이유

도 앞과 유사하다. 즉, '너희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4절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두로가 견고하 요새(*      , 마우즈)로 묘사된다. 수미 쌍관의 형식으로 두

로에 대한 비극적인 예언은 종결된다. 이하에서 선지자는 두로의 회복을 노래한다.


=====23:15

 그 날부터 두로가...기생 노래의 뜻 같이 될 것이라 - 본문에서  선지자는  두로를

기생에 비유하니, 이는 물건을 사고 파는 상업 도시의 면모가 노래와 몸을 파는  기생

과 비슷한 데가 있기 때문이다(17절). 이 기생은 일정한 기간 동안 손님으로부터 잊어

버림이 되었다가 70년이 지난 뒤, 다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언급된  70이란  숫자

는, '7(하나님의 사역을 가리키는 수)X10(완전을 가리키는 수)로서, 하나님께서  자신

의 의도대로 일을 성취시켜 나가는 충만한  때를  상징하는  말로  봄이  무난하다(단

9:24). 실제로  70년이란  기간은  바벧론  유수의  시한과  일치한다(대하  36:21;렘

25:12;29:10;단 9:2;슥 1:12).


=====23:16

  잊어버린 바 되었던 기생 너여...다시 기억케 하라 - '기생 노래'의  가사가  일부

소개 된다. 이는 선지자의 예언을 보다 생생하고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노

래의 내용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한 기생이 다시금 옛 명성을 되찾고 인기를  회복하

기 위해 기묘한 곡조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이는 항간에 유행하던 소곡에서 따온

표현인 듯하다(Dillmann).


=====23:17

  여호와께서 두로를 권고하시리니 -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두로를 방문하실 것이니'

이다. 두로의 멸망이 여호와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면, 그 회복 또한 여호와의 은총으

로부터 기인됨을 말하는 것이다.


=====23:18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 직역하면 '(그녀의) 소득과  (그

녀의) 보수가 여호와께 거룩히 여김이 될 것이며'이다. '하나님께 거룩히  여김이  된

다'는 말은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뜻이다. 이때 '열방과 음란한 행위를 해서  번  돈이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왜냐하면  율법은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하나님께 가져오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다'

(신 23:18)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는 두로에게 적용

된 '기생'이라는 말이 상업 활동에 종사하는 두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Oswalt). 상행위 자체는 근본적으로 악하지

않다. 다만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됨'(딤전 6:10)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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