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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이사야

[스크랩] 이사야 17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13

이사야 17장 주석

 

=====17:1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 유다의 남서쪽에 있는 블레셋과 동쪽의 모압을 살핀  뒤에

선지자의 눈은 북쪽에 있는 다메섹 곧 수리아와 북이스라엘 왕국인  사마리아로  향한

다. 이들 두 나라는 전에도 언급된 바 있으나(7-9장), 여기 열방에 대한 경고  가운데

다시 삽입되었다. 본문은 다메섹이 앗수르에 의해 파멸되기 이전에  작성된  것  같다

(B.C. 732년 이전). 더욱이 수리아와 에브라임이 함께 거론된 것으로 보아 그들이  군

사 동맹을 맺은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B.C. 735년 이후). 따라서  B.C.735-732

년 사이에 (아마도 734년) 기록되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B.C. 1,000년경  다메섹은

수리아 연맹의 맹주로서 앗수르와 더불어 고대 근동의 주도권을 다툴 만큼 그 힘이 강

력하였다. 그러나 B.C. 732년,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 함락된 이후 이전과 같

은 힘을 다시 회복하지 못하였다. 다메섹은 메스포타미아와 애굽을 잇는 무역로의  관

문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의 헬몬산과 남의 현무암 평원에 둘러싸인 비옥한 지대였다.

부채살 모양의 일곱 지류로 흐르는 아마나강과 헬몬 산 기슭에서 흘러 내리는  바르발

(아와이) 강이 중심을 관류하고 있다(왕하 5:12). '경고'에 대하여는 13:1 주석을  참

조하라.

   성읍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 - 수도 다메섹의 몰락은 곧

수리아의 멸망을 함의하는 것이다.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이런 수법(제유법)은 선

지자의 즐겨 쓰는 표현 기교 중의 하나이다. 선지자는 다메섹이 도시로서의 모습을 잃

어버리고 파멸의 무더기로 변모할 것이라고 한다. '도시의 모습을 잃어버린다'는 말은

제국으로서의 위용을 상실한다는 말이다. B.C. 732년, 다메섹을 함락시킨 디글랏 빌레

셀은 그의 비문에 이렇게 썼다:'르신의 아버지(벤하닷)의 왕국을...내가 500 성읍들을

파멸시켜 쓰레기더미처럼 만들었다'(Lange). 다메섹은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는 몇  안

되는 고대 도시 중의 하나이다.


=====17:2

 아로엘의 성읍들이 버림을 당하리니 - '아로엘'(*       )이란 지명은  성경에  세

번 나온다. (1)유다에 있는 성읍(삼상 30:28):본문과는 관계가 없다. (2)'아르논 골짜

기 가에 있는 아로엘'(신 2:36;수 12:2;13:9,16):르우벤 지파가 차지했으며, 요단  강

동쪽, 이스라엘 남쪽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다. (3)그 북쪽, 옛  암몬  족속이  차지한

'랍바 앞의 아로엘'(민 32:34;수 13:25):갓 지파가 차지했다. 여기에 언급된  '아로엘

의 성읍들'은 요단 강 동편 성읍들을 가리킨다. 수리아의 파멸 경고 뒤에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 뒤따르는데, 그것은 요단 강 동쪽 마을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로엘'이란

이름이 그곳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그 말은 어원적 의미에서 '버림을 당하다'(*    

  , 이르에르), '벗은'(*       , 아르아르), '불쌍한'(*          , 아리리)등과  유

사하다. 버림받은 성읍 '아로엘'은, 사람은 살지 않고 양들만 거하는 목초지가 될  것

이다. 각각 따로 거론되었던 다메섹(1절)과 이스라엘(2절)이 다음절에서 함께  다루어

진다.


=====17:3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 - 에브라임은 유다와 한 핏줄을 나눈 형제국이었음

에도 유다를 대적하는 일에 이방 민족인 수리아와 결탁했으므로, 그 운명 역시 수리아

와 함께 분유(分有)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 운명은 다음과 같다:'에브라임에서 외적

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요새화된 성읍들이 제거된다. 다메섹은 한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주권(통치)을 잃는다.' 이어지는 말에서 두 나라의 공동  운명은

더 한층 확실하게 표현된다.

   아람의 남은 백성이...이스라엘 자손의 영광같이 되리라 - 선지자의  조롱의  말이

다. 전쟁에서 살아 남은 아람의 백성들은 소멸되어져가는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같이

될 것이다(4절).


=====17:4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파리하리니 - 앞절에서 비교된 야곱의 영광, 즉 북이스라

엘의 영광이 서술된다. 선지자는 이것을 사람의 신체에 빗대어 말하니 곧 병들어 뼈만

남은 사람과 같다는 것이다. '그 날에'란 말이 암시하듯이, 한때 찬란했던 이스라엘의

영화는 과거지사가 될 것이다(Leupold).


=====17:5

 마치 추수하는 자가...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 - 미구에 닥쳐올 이스라엘의  비참

이 얼마나 심각할 것인지를 선지자는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그것은 마치 추수꾼이 그

곡식을 베어 팔에 안음과 같고 추수꾼이 남은 이삭을 주움과 같으니,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들이 이같이 원수의 칼에 의해 남김없이 베임을 당할 것이다. '르바임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서쪽에 펼쳐진 넓은 평지를 말하는데(수  15:8;18:16;삼하  5:17-25;23:13

참조), 그 땅의 비옥함이 이스라엘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거명된

듯하다(Calvin).


=====17:6

  오히려 주울 것이 남으리니...남음 같으리라 - 그 비참함은 두 번째로 감람나무 열

매를 딸 때에 거의 다 떨어지고 그 꼭대기에 '사오개 남은 과실'의 모습으로 비유된다

(신 24:20).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이스라엘의 완전한 절멸(絶滅)을 뜻하지는  않는다

는 사실이 남은 열매에서 암시된다('오히려 주울 것이 남으리니'). 여기에 심판으로부

터 위로에로 향하는 은밀한 전환이 있다. 아무리 극심한 진노 중에라도 하나님은 긍휼

을 잊지 아니하시며 자기를 위하여 신실한 자들을 남겨 두신다. 이들 소수의 남은  자

들은 하나님을 신앙함에 있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17:7,8

 두 신, 즉 '사람을 지으신 신'과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신'이 대조되고 있다.  모

든 일이 형통할 때 흔히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잊고 헛된 것들에 정신을 빼앗긴다

(호 4:7). 그러다가 환난을 당해서야 겨우 각성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는

다. 이스라엘이 그러하니, 수많은 우상들 - 그중에서 '아세라'와 '태양상'은 대표적인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 을 숭배하던 그들이 이제 큰 재난을  당한  뒤에는  돌아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1:4)를 쳐다보게 될 것이다. '...을  쳐다보다'(*          ,

솨아알)는 '도움을 간구하다', '앙망하다'는 뜻이다. 즉, 신앙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사람의 손으로 지어진 우상에 대하여는 2:8;44:9-20을 참조하라.

   아세라나 태양상 - '아세라'(*            , 하아쉐림)는 엘(el) 신의  배우자로서

메소포타미아의 이쉬타르(Ishtar), 애굽의 이시스(Isis)에 해당하는 가나안의 월신(月

神)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왕하  17:10)에서

아세라상을 예배하였다(출 34:13;신 16:21;삿 6:25;왕하 23:4). '태양상'(*

  , 하하마님)은 페니키아인들이 숭배하던 태양신 '바알 하몬'(*            )이다(레

26:30;대하 34:4,7;겔 6:4,6,Oswalt, Delitzsch). 흠정역은 이것을 '작은 숲과  형상'

으로 번역하였다.

          

=====17:9

 그 날에...황폐하리니 - 의미상 본절은 3절에 연결된다. 선지자는 멸절되리라고 선

고된 에브라임 요새의 운명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진입

했을 때 그 땅의 거민들이 수풀이나 작은 산 꼭대기에 버려두고 도망간 황폐한 성읍들

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까닭이 다음절에서 상술된다.


=====17:10

 이는 네가...마음에 두지 않은 까닭이라 -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이 같은  형

벌을 받는 것은, 첫째 그들이 과거에 자신들을 구원하시며 보호해주셨던 하나님을  멀

리 떠났기 때문이다. '구원의 하나님'(*                , 엘로헤 이쉬에크)는  '자기

백성을 어려움에서 구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며(시 18:46;25:5;27:9;62:7;미  7:7;합

3:18), '능력의 반석'(*              , 추르 마우제크)은 '택한 백성을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이란 말이다(26:4;30:29;신 32:4,18;시 18:2,31,46;19:14;28:1;31:3;62:8). 이

이름들은 이스라엘의 체험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기뻐하는 식물을...이방의 가지도 이종(移種)하고 - 심판의 둘째 원인은, 이스라엘

이 이방의 종교들을 수입해서 이스라엘 가운데 이식시켰기 때문이다. '기뻐하는 식물'

은 곧 '이방의 가지'를 가리키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나무인 이스라엘(5:7)이  하

나님을 버리고 대신 자기들의 육신의 기쁨을 좇아 이방인의 사악한 풍습을 모방했다는

말이다(2:6-8). 델리취(Delitzsch)는 '이방의 가지'가 이스라엘과 연합한 다메섹을 가

리킨다고 본다.


=====17:11

 네가 심는 날에...없어지리라 - 계속되는 묘사는 '아도니스 정원'에  연관된  듯하

다. '아도니스'는 담무스(겔 8:14)의 헬라식 명칭으로서, 신화에 의하면 죽었다가  지

하의 신으로 부활한다고 한다. 프레이저(Frazer)에 의하면, 주로 여자로 구성된 이 의

식의 숭배자들은 흙으로 채워진 바구니나 항아리에 밀과 보리, 상추 등과  그외  여러

꽃을 심고 8일 동안 재배한다. 태양의 빛을 받은 식물은 빨리 자란다. 그러나  그것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므로 또한 빨리 시든다. 이 아도니스의 정원은  아도니스의

표상물 혹은 그 힘의 표현으로 가장 자연스럽게 해석되는데, 이것은 본래  식물의  성

장, 특히 농작물의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한 주술이었다. 그럼에도 그 결과는 극히  비

참할 것이다. 선지자는 저들이 바라는 것 대신 회피하고자 하였던 근심과 심한 슬픔이

오히려 맺힐 것이라고 말한다. 본문의 요지는 명확하다:'네가 기뻐하는 이방의 가지가

재난의 날에 너를 도와주지 못할 것이며, 또한 네가 수고하고 힘들여 심은 식물이  너

에게 아무런 수확도 안겨주지 못할 것이다'(Gray).


=====17:12

 슬프다 - 루터(Luther)는 이 말을 저주를 뜻하는 '화 있을진저'로, 칼빈(Calvin)은

이를 이스라엘에 임할 미래의 재난을 괴로워하는 '슬프다'로 번역한다. 그러나 여기서

는  뒤이어지는  큰소리와  관련하여  '들으라'로  해석함이   자연스럽다(Henderson,

Alexander).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소동하였고 - 선지자가 '들으라'고  주의를  환기시킨

그 소리는 많은 민족이 모여 소동하는 소리이다. 그 소리는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에

비유된다. 여기 언급된 '많은 민족'은 많은 민족들로 구성된 앗수르 군대를 가리킬 것

이다.


=====17:13

 열방이 충돌하기를...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 직역하면 '열방들이 많은 물의  함성

처럼 함성지른다'이다. 그러나 파도치듯 물밀려오는 이 거대한 함성소리도 주의  꾸짖

음 한마디에 무력하기 그지없이 흩어지고 만다. 선지자는 이들이 흩어지는 모양을  두

가지로 묘사한다.

   산에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 그것은 언덕 위에서  농부

가 곡식을 타작할 때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겨와 같다(29:5;호 13:3). 또한 그것은 회

오리바람 앞에서 뿌리뽑혀 떠도는 검불과 같다. 이 모든 비유는 아무리  당당한  지상

세력이라도 말씀 한마디로 바다를 평정하시는 전능자 앞에서는 힘을 잃고 만다는 것을

보여준다(막 4:39 참조).


=====17:14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  '저녁'과  '아침'은

여기서 각각 대적의 공포와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하는 대조적인  시간으로  나타난다.

적으로부터 가해지는 위협은 그것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어두움의 공포처럼 무섭고  견

딜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아침이 되기 전에 자취도 없이 사라질 악몽에 불

과하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본문이 산헤립의 군대가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몰락한 사건과 관계있다고 생각한다(37:36;왕하 19:35).

   이는...우리를 강탈한 자의 보응이니라 - 침략자들이 거둘 몫은  영구한  파멸밖에

없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 그들의 운명이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신자들

의 마음에서 두려움은 능히 극복될 것이다:"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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