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이사야

[스크랩] 이사야 5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11

이사야 5장 주석

 

=====5:1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

라 - 히브리어 원문은 '내가 노래하리라'로 시작한다. 그 노래는 '살아하는 자가 소유

하고 있는 포도원'에 관한 것이다. 남자 친구 사이에 맺어진  깊은  우정을  가리키는

'야디드'(*       )와 '도드'(*     )가 본문에서는 동일하게 '사랑하는 자'로 번역되

었다. 선지자가 자신의 벗이라고 부른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포도원은  이스라

엘을 일컫는 친숙한 비유어이다(3:14;시 80:8).


=====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 포도원에 기울인 주인의 정성과 수고가 연이어 기술된다.

그는 좋은 장소를 선택하였을 뿐 아니라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  경작하였

다. '땅을 파다'(*     , 아자크)는 곡괭이로 땅을 푸석푸석하게 하는 것을 뜻하는 말

로 구약 성경에서는 여기에만 나온다. 그 다음 단계는 여기저기 박혀  있는  다돌들을

제거하는(*     , 사칼) 것이다. '사칼' 동사는 '아자크'와 더불어 피엘 동사로  쓰여

서 '돌을 옮기다'는 뜻을 갖는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 이처럼 할 수 있는  모든  수고를

다했으니 주인으로서는 좋은 포도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충

격적이었다. 즉 '들포도'(*         , 베우쉼)를 낸 것이다. '베우쉼'은 '악취를 풍기

다'는 뜻의 '바아쉬'(*     )에서 파생된 명사로, 조악하고 쓴 야생 포도를  가리킨다

(라틴어:Labrusca). 70인역(LXX)은 이것을 '가시나무(혹은 엉겅퀴)'(*              ,

아칸다스)로 해석했다. 여기에서 선지자의 노래가 끝나고 다음절에 선지자의 친구이며

포도원 주인인 여호와의 노래가 1인칭으로 이어진다.


=====5:3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  '이제'

(*     , 아타)는 현재 시점을 말한다기보다는 '사정이 이와 같으니'라는 뜻의 논리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Alexander). 예루살렘과 유다 주민들은 판단하는  자로서  소환된

다. 그들은-칼빈(Calvin)의 주장처럼-그들 자신을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낯선

사람과 그의 포도원 사이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도록 소환된 것이다. 그들은 아직 이

이야기 속에서 말해지고 있는 대상이 자신들임을 알지 못한다. 구약에 있어서 이와 동

일한 경우는 삼하 12:1-6에 나오며, 신약에서는 마 21:33-41에 나온다. 두 경우  모두

처음에는 이야기 속의 대상들이 자기 자신임을 모르고 판단하다가 나중에야 깨닫게 된

다. 판단을 구하는 내용이 다음절에서 의문형(interrogation)으로 제시된다.


=====5: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있었으랴 - 본문과 다음절('이제  내가')

사이에는 휴지(休止)가 있어서, 마치 청중들이 주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포도원

을 위하여는 어떠한 변명도 주어질 수 없음을 침묵으로써 시인하는 듯하다(Gray).  그

러나 주인의 단호한 말이 이 침묵을 깨뜨린다.


=====5:5

  그 울타리를 걷어...그 담을 헐어 짓밝히게 할 것이요 - 주인의 진노는 먼저  포도

원을 보호하고 있던 울타리와 담을 허물어뜨리는 것으로 표출된다. 포도원은 대개 '가

시 울타리'(*         , 메수카트) 혹은 '돌담벽'(*     , 가데르)으로 둘렀으며 때로

완전성을 기하기  위하여  울타리와  돌담벽을  이중으로  두르는  경우도  있었다(G.

Rawlinson). 이러한 울타리와 돌담이 제거될 때, 포도원이 사람과 짐승에 의해  '짓밟

히고 먹힘을 당할 것임'은 명약 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5:6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 주인에 의해  더  이상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포도원은 자연 황폐해질 수 밖에 없다(잠  24:30,  31).

'질려와 형극'(*                 , 솨마르 와솨이트)은 '가시덤불과 가시'란 뜻이다.

'가시덤불'은 '황무한 땅'에 어울린다. 인간의 범죄로 인해 저주받은 땅, 즉 실락원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듯이(창 3:18),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아 황무하게 된  포도원

에 가시덤불만 무성하다. 가시나무는 종종 인간의 여러 죄악을 상징하기도 한다.


=====5:7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

다 - 이것은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2, 4절)에 대한  설명이

다. 여호와께서 기대하신 좋은 포도는 '공평'(*       , 미쉬파트)과 '의로움'(*   

    , 체다카)이었다(1:21, 27). 그러나 정작 맺힌 것은 '포학'(*       ,  미스파흐)

과 '울부짖음'(*       , 체아카)이었다. '미쉬파트'와 '미스파흐', 그리고  '체다카'

와 '체아카'는 언뜻 들어서는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발음이 유사하다. 이런  유

사성을 이용하여 선지자는 속내용은 변질되었음에도 겉모양만 비슷한 이스라엘의 범죄

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1:22). '미쉬파트'와  대조  '체다카'와  대조되는

'미스파흐'는 '피흘림', '억압'을 뜻하며 '체다카'와 대조되는 '체아카'는 '억눌린 자

의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출 3:9)를 뜻한다. 이 억압과 부르짖음이 여섯 번

의 '화 있을진저'(8, 11, 18, 20, 21, 22절) 모음 속에서 상세하게 묘사된다.


=====5:8

  가옥에 가옥을 연(連)하며 전토(田土)에 전토를 더하여 - '화  있을진저'(*      ,

호)로 시작되는 글모음 중 첫 번째는 탐욕스런 부자들에 대한 것이다.  '토지'와  '가

옥'은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요 생존의 근거였다(레 25:33). 하나님의  율법은  토지의

매매를 금지하며 설혹 주인이 바뀐 토지라 할지라도 7년 안식년다을 일곱  번째  맞는

그 다음 해, 즉 50년째(회년)가 되면 원주인에게 다시 귀속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레

25장). 이처럼 율법 속에 명시된 토지 보유의 원리와 경제 정의를 무시하고 가난한 사

람들로부터 가옥과 토지를 불법으로 빼앗아 자신들의 부(富)를 축적하는 행위는  율법

에 대한 반역이요 공동체의 기틀을 파괴하는 범죄 행위라고 말해 지나침이  없다(왕상

21:2;욥 22:8;미 2:2).


=====5:9

 정년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 '정녕히'로 번역된 '임-로'(*         )는  무

자적으로 '...않는다면'(if-not)이라고 번역되는데, 이것은 부정적인 어휘를 써서  가

장 강력한 확신을 전달하는 고대의 서약 형식에 일치하는 것이다(민 14:23;시 95:11).


=====5:10

  열흘같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바트가 나겠고...한 에바가 나리라 - 여호와께서

비를 막으시면(6절) 농작물이 자랄 수 없고 그것은 기근이라는 무서운 재난으로  이어

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제아무리 크고 아름다운 집에서 사는 부자라  할

지라도 그곳에서 머물 수 없을 것이다. '열흘갈이'는 한 쌍의 황소가 하루 동안  밭을

갈 수 있는 정도의 크기를 말한다(Delitzsch, Gray). '바트'(*   )는 액체의 측량  단

위로서, 건조한 곡식을 재는 '에바'(*       , 에파)와 일치한다.  에스겔에  의하면,

10에바는 한 호멜에 해당된다(겔 45:11). '호멜'은 왕조 시대 이후에 '고르'(*   , 코

르)라고 불리워졌으며, 그 용량은 약 220리터 정도이다. 그러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본문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여호와의 징벌의 결과로 밭은 씨를 뿌린 것의 1/10에  해

당하는 수확밖에 거두지 못하며 포도원에서도 포도주가 거의 산출되지  못할  것이다'

(Calvin).


=====5:11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밤이 깊도록 머물러...화  있을진저 -  '화 있을  진저'

(*     , 호)로 시작되는 글모음 중 두 번째는 탐식가들과 그들의 쾌락  추구에  관한

것이다. 8절에 묘사된 부자들의 풍요로움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계속되는 술자

리로 이어진다. 여기서 '독주'(*     , 쉐카르)와 '포도주'(*     , 야인)가 병행되고

있는데, 후자가 순수한 포도주라면 전자는 석류(아 8:2)와 사과, 꿀 등을  섞은  혼합

포도주로서 알콜 도수가 훨씬 더 높은 것이다. 술에 취해 세월을 허비하는  방탕함은-

사도 바울에 의하면-악한 세상의 특징이다(엡 5:16, 18).


=====5:12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생각지  아니하는도다 -  '여호와의 행하심'

(*               , 포알 야훼)은 '그의 손으로 하신 일'과 대구를 이루는 것으로, 여

호와께서 역사속에서 활동하신 일, 특히 이스라엘을 위하여 힘들여 수고하심과 일하심

을 가리킨다(시 92:4). '포알'(*     )에는 '노동', '일'이라는 뜻이 있다. 눈에 보이

는 것으로 만족을 삼고 육체의 향락에 도취된 자들에게 여호와의 일, 즉 영적인  역사

는 한낱 우스갯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사도바울에 의하면, 주의 행하심에 관심도 아니

갖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 하지도 않는 소행은 어리석은  자의전형적인  특징이다

(엡 5:17).


=====5:13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사로잡힐 것이요...주릴 것이요...목마를 것이며 - 현재의

열락(悅樂)에 대조되는 미래의 고통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눅 6:25)와 일치한다. 본절에 나오는 '귀한 자'는 문

자적으로는 '그들의 영광'이니, 백성들로부터 높임을 받는 자, 즉 사회의 지도급 인사

를 말하며, '무리'는 그들과 함께 죄악에 참여한 자들을 가리킨다. 예언 성취의  확실

성을 나타내기 위해 과거 시제로 묘사된 '사로잡힘'과 '굶주림'과 '목마름'은  그들의

'무지함'으로부터 연유된 것이다. 이때 그 무지는 단순한 지식의 결핍이 아니라  여호

와의 일에 대한 악의적인 무관심(12절)이라고 할 것이다.


=====5:14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13

절과 마찬가지로 '이러므로'(*     , 라켄)라는 접속사로 시작한다. 이는 앞절에 묘사

된 징벌의 결과, 이들이 어느 정도까지 몰락할 것인가를 생생하게 나타내기 위함이다.

뒤따르는 동사들 역시 13절과 마찬가지로 과거 시제로 쓰여서 예언  성취의  확실함을

더해주고 있다. '음부'에 관해서는 삼상 2:1-10 주제 강해, '히브리인들의 음부(陰俯)

개념'을 참조하라. 선지자에 의하면, 음부는 탐욕스러운 괴물과 같아서 끝없는 욕망으

로 한껏 입을 벌려 죄인들을 삼킨다(합 2:5). 삼켜질 대상들이 뒤에 열거된다.

   그들의 호와로움과...그 중에서 연락(宴樂)하는 자 - '그들의 호와로움'(*       ,

하다라)은 직역하면 '그녀의 장식'이니, 곧 예루살렘의 허영을 가리킨다. 이와 더불어

'소란스러운 무리'(*           , 하모나)와 그들이 내뿜는 '모든 소음'(*          ,

쉐오나), 그리고 '환락'(*     , 알레즈)들이 넓게 열린 음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이는 사악한 자들의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진다고

한 고라 자손의 노래(시 49:14)를 연상시킨다(Delitzsch).


=====5:15,16

 이러한 징벌의 결과로 이루어질 궁극적인 미래의 모습이 두 개의 대립 개념-인간은

낮아지고(15절) 여호와는 높임을 받는다(16절)-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주제는 2장에서

부터 계속 발전된 것이다.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 '공평'과

'의'에 대하여는 1:21, 27을 보라. 만군의 여호와, 즉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평과  의

가운에서 당신을 가장 잘 드러내시며, 당신이 높임을 받으시는 것도 바로  공평과  의

가운데서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일찍이 공평과 의 가운데서

행하였더라면 그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이 온 세계에 거룩하신 분으로  높임을  받으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기대와는 정반대로 공평과 의 대신 포

학과 부르짖음으로 응수할 뿐이었다(7절). 이에 하나님은 비뚤어진 모든 것을  제자리

에 돌려 놓는 심파느이 엄정함과 죄를 척결하시는 의로움을 통해서 교만의 극치에까지

높아진 이스라엘을 죽음의 아가리 속으로 던지시며(14절), 마침내 당신 자신을 온  세

계에 거룩하신 분으로 친히 증거하시려는 것이다.


=====5:17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草場)에 있는 것같이 먹을 것이요 - 본문은 주석

가들에 따라 그 해석이 크게 둘로 나뉜다. (1) 약속으로 보는 경우:'어린  양들(의인)

이 살찐 자들(부유한 죄인)의 소유를  대신  차지하게  될  것이다'(Targum,  Calvin,

Vitringa). (2) 경고로 보는 경우:'거룩한 땅이 이방인들의 수중에 넘어가게 될  것이

다'(Gill),  혹은  '부자의  소유가  가난한  자의  수중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Hendewerk), 혹은 '땅 그 자체가 파멸될 것이다'(Michaelis, Lowth). 문맥상  후자의

해석이 더 바람직하다.


=====5:18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화 있을진저 - 세 번째 화는 여호와의 행하심을

믿지 아니하므로(12절) 오히려 대담하고 뻔뻔하게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한  것

이다. 선지자는 이들을 굵은 밧줄로 마차를 끄는 모습에 비유한다. '거짓의 끈'은  죄

인들이 그들의 죄악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교묘한 궤변이나 그릇된 노리를  가리킨

다(Vitringa, Calvin). '끈다'로 번역된 '마솨크'(*     )는 그 외에 '견고하게 하다'

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본문의 의미는 자명하다. 즉, 거짓된  지

식과 언변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불법을 합법화시킴으로써 악을 행함에 있어서 더욱 대

담해진다는 것이다. 그 행위의 대담함과 그 논리의 견고함은 후반부의 '수레  줄'에서

한층 강화된 비유적 표현으로 반복된다. '수레 줄' 즉 마차의 밧줄은 그들이 무시하고

조롱하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만 끊어지게 될 것이다.


=====5:19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 이들이  앞

절에 묘사된 것과 같은 행위를 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임하지

않는다'는 완악한 신념이 깔려 있다. 그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제발  하나님으로

하여금 지체치 말고 신속하게 움직이게 하여 우리 눈으로 그가 행하신다고 아득한  옛

날부터 약속해 오신 그 심판을 보게 하라. 그는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니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킬 것 아니냐 ?' 이런 조롱은 최고의 불신아에서  나오는  것이

니, 이미 죄악으로 굳어져버린 그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느껴질 리가 없다. 본문

과 관련하여 벧후 3:3-5, 9을 참조하라.


=====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화 있을진저 - 네 번째 화는 도덕을  파괴하

고 가치 전도(顚倒)에 앞장 서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자기의 잘못을 감추고 오히려

범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채택된 거짓 논리하에서는 선과 악의 구별은  철폐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선과 악을 규정한 객관적, 초월적인 규범이 더 이상 존재치 않으며,

있다면 언제나 선한 그들의 행위 밖에 없다. 이러한 범죄는 지도자들에게서  전형적으

로 나타나는 고질적인 질병들이다. 혹자는 본문을 23절과 관련하여  불의한  사법부에

적용시키나(Gesenius, Hitzig), 유다 지도자 일반의 범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광명'과 '단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상징하며(시  19:8,  10),  '흑암'(시  112:4;잠

2:13;전 2:13;마 6:23) '쓴 것'(민 5:18;신 32:32;렘 2:19;4:18;약 3:11)은 악의 상징

어로 쓰인다.


=====5: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화 있을 진저 - 다섯 번째 화는 자기 자신을 지혜자로  자

처하는 교만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자기 중심적 논리의 귀결은  언제나  교만이며,

교만은 악의 완성이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위의 다른 권위를 인정치 않는다.  따라서

어떠한 훈계나 경고도 그에게는 들리지 않으며 교만은 이런 자기 폐쇄성을 그  특질로

삼는다(잠 1:7;12:1).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이들은 어리석음의 전형일 뿐이다. 참된

지혜는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서 주어진다(잠 1:7;3:5;9:10). 한편, 본문에  언급

된 '지혜'와 '명철'은 위대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덕목들로  간주되었다

(11:2;창 41:39;삼상 16:18).


=====5:22,23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화는 술에 젖은 불의한 재판관에 대한 것이다. 그는  여기서

범죄한 유다 지도자들의 한 전형으로 그려졌다.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 선지자의 어조는 풍자

적이다. 선지자는 그들을 용감하고 힘이 넘치는 사람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용감함은

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포도주를 마시기 위한 것이며, 그  유력함은  공평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독주를 빚기 위한 것이다. '포도주'와 '독주'에  관하여는

11절을 참조하라.


=====5:24

 '이로 인하여'(*     , 라켄)라는 접속사에 유도되는 형벌 내용은 앞의 네 가지 화

(18, 20, 21, 22절)에 대한 것이다. 자기 중심적 아집에 사로잡혀 선악을 혼동하고 어

떠한 훈계도 거부한 채 교묘한 논리를 내세워 스스로를 정당화하기에 바쁜 유다  지도

자들은, 당장은 권세가 있고 힘있어 보일지 모르나 선지자의 눈에는 연약하기  그지없

는 풀 같고 나무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벧전 1:24). 불 같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그들

은 마치 땅 속에서 썩어가는 뿌리와 먼지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꽃마냥 그렇게  허무하

게 소멸되고 말 것이다.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멸시하였음이라 - 그들은 실수에  의해서

한두 가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과 '이스라엘의  거룩하

신 자의 말씀' 자체를 무시하고 적대했다. 말하자면 그들의 범죄는 총체적이다.


=====5: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 본문은 몇몇 주석가들이 주장

하는 대로(Alexander, Calvin, Leupold)과거에 내려진 하나님의 형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 여기 쓰인 동사들은 예언적 과거 시제로서 임박한 미래의  확

실함을 강조하고 있다. 선지자는 24절에 시적으로 묘사된 하나님의 심판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서 임할 것인지를 말하려 한다. 본문을 직역하면  '여호와의  분노가

그 백성들 안에서 불탈 것이며'이다. '분노'로 번역된 '아프'(*   )는 본래는  '(숨쉬

는) 콧구멍'을 의미하는데, 화가 극에 달하여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모습에서  연유하

여 '분노'란 뜻을 갖게 된 것이다.

   산들은 진종하며 - 본문을 과거로 해석하는 이들은 이 말이 웃히야 왕 시대에 일어

난 지진(암 1:1)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Leupold). 그러나 이 말은 여호와의  분노와

심판의 격력함을 나타내는 비유 언어로, 바로 앞에 나오는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

라'는 표현과 연관된 것이다(Delitzsch).


=====5:26

 먼 나라들을 불러 땅 끝에서부터 오게 하실 것이라 - 앗수르(혹은 바벧론)  군대의

침공을 가리킨다. '먼 나라'라는 표현은 신 28:49 이하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들은

땅 끝에서 사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니(39:3), 당시 사람들에게 유브라데 강은 땅  끝으

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슥 9:10 참조).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 올 것이로되 - 먼 곳에서부터 점차 가까이 달려오는 그들의

모습이 히브리어 원문에는 '보라'라는 감탄사에 이어 두 개의 부사로 집약되고  있다:

'빠르게'(*       , 메하라)와 '날렵하게'(*   , 칼).


=====5:27

 그들의 허리띠는 풀리지 아니하며 그들의 신들메는 끊어지지 아니하며 - 혹자는 이

구절이 밤에 휴식을 취할 때에도 허리띠와 신발 끈을 풀어 놓지 않을 만큼 전쟁에  임

하는 각오가 대단하다는 식으로 해석한다(Henderson, Delitzsch). 그러나  '끊어지다'

(*     , 니타크)는 동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행진에 방해를 주는 어떤 일도 발

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기본적인 군사  장비를  철저하게  점검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Leupold).


=====5:28

  그들의 살은 날카롭고 모든 활은 당기어졌으며 - 상황은 점점 더 급박해진다. 질서

정연하게 대오(隊伍)를 지어 먼 곳으로부터 달려온 그들은 이제 유다를 향한 모든  전

쟁 준비를 다 끝마쳤다. 고대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 무기로 꼽히는  화살과  병거들은

출전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목표물을 향해 활은 '당기어졌다'(*          ,

데루코트). 이는 직역하면 '활을 발로 밟았다'이다. 고대인들이 전쟁에서 사용했던 강

궁(强弓)은  활이  너무  커서  발로  밟아야만  구부릴  수   있었다(대상   5:18;시

7:13;11:2).


=====5:29

  그 부르짖는 것은 암사자 같을 것이요...건질 자가 없으리로다 - 함성과 더불어 드

디어 전쟁은 시작된다. 고대인의 전쟁은 함성과 함께 시작되었다(시  74:4;렘  2:15).

선지자의 귀에 그 소리는 마치 암사자와 어린 사자의 포효소리로 들린다. '어린 사자'

로 번역된 히브리어 '케피림'(*           )은 젖을 떼고 어미에게서 독립하여 스스로

먹이를 잡을 줄 아는 젊은 사자를 가리킨다. '부르짖음'과 '소리 지름'에 다같이 사용

된 '솨아그'(*     )는 사자가 먹이를 찾을 때의 포효소리를 뜻한다.


=====5:30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어두우리라 - 위아래를 둘러보아도

도피할 데도, 도움을 청할  데도  없다(Leupold).  '바라보다'로  번역된  '나바트'(*    

)는 '기대를 품고 바라보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땅을 바라봄'은 '하늘을 바라봄'

과 대조되는 시적 표현이다(8:22). 보이는 것은 입을 벌리고 있는 어두움과  고통뿐이

다. 위를 쳐다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고통과 결부된 흑암은  이스라엘의

절망을 표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야말로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

로 흑암을 삼는'(20절) 이들에게 참으로 적절한 심판 아닌가 !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메모 :

'구약 > 이사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이사야 7장 주석  (0) 2015.02.08
[스크랩] 이사야 6장 주석  (0) 2015.02.08
[스크랩] 이사야 4장 주석  (0) 2015.02.08
[스크랩] 이사야 3장 주석  (0) 2015.02.08
[스크랩] 이사야 2장 주석  (0) 2015.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