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장 주석
=====2:1
아사야가 받은 바...말씀이라 - 문자적으로는 '이사야가 본(* , 하자) 말씀
(* , 하다바르)이라'이다. 이런 표현은 매우 드물다. 보다 더 일반적인 표현은
'주의 말씀이 ...에게'이다(렘 14:1;겔 13:1;호 1:1;욜 1:1;욘 1:1;미 1:1;습 1:1
등). 아모스만이 이와 비슷한 표현법을 쓰고 있다(암 1:1). '다바르'는 '말씀'이란 뜻
이외에도 '사건', '사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것은 역사를 하나님의 말씀의 실현
으로 파악하고 있는 히브리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의미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은 곧 사건이며, 사건은 곧 그의 말씀인 것이다.
=====2:2
말일에 - 문자적으로는 '날들의 끝에'(* , 베아하리트 하야
밈)이다. 이 말은 본서에서 단 한번 나온다. 그것은 창 49:1;민 24:14;신 4:30;31:29
등에서 종말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70인역(LXX)은 이 말을 '이 모든 날 마지막에'
(* , 에프 에스카톤 톤 헤메론, 히 1:2)로
번역하였다. 율법 학자들은 그날을 메시야의 날로, 라이트푸트(Lightfoot)는 옛 세대
의 끝으로 보았으며, 오늘날 많은 주경 학자들은 이를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까지
에 이르는 신약 시대로 이해한다.
여호와의 전의 산이...뛰어나리니 - '여호와의 전의 산'은 '시온'을 가리킨다(시
2:6;3:4;24:3;렘 31:23;욜 2:1;3:17 등). 고래(古來)로 산들은 그 높이와 위엄에서 사
람들의 찬탄을 받아왔으며 신들이 거주하는 거룩한 공간으로 숭배되어 왔다(예컨대,
희랍의 올림푸스 산 등). 그러나 실제로 시온은 전혀 높지 않은 자그마한 언덕에 불과
하였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바산의 산들이 이 낮고 하찮은 하나님의 산을 내려다본다
고 말하였던 것이다(시 68:16). 그러나 종말에는 모든 것이 극적으로 변화된다. 그날
에 시온은 가장 높아질 것이요, 그 영광 앞에서 다른 모든 산들은 평지나 다름 없어질
것이다(슥 14:10).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 '모여든다'(* , 나하루)는 말은 문자적으로
는 '흐른다'(stream)는 뜻이다. 그 옛날 범죄의 절정을 상징하였던 바벧탑에서 각처로
분산되었던 인류는(창 11:1-9) 이제 하나님의 구원의 날에 다시 시온 산으로 물밀듯이
몰려들 것이다. 인류의 범죄와 구원의 역사는 '바벧탑에서 시온 산으로'(from the
Babel to the Zion)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시온 산이 '하나님이 세운 구원의 높
이'를 상징한다면, 바벧탑은 '인간이 세운 죄악의 높이'를 상징한다.
=====2:3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나올 것임이니라 - 백성들이 그처럼 시온에 오고자 한
것은 거기에만 율법, 즉 여호와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율법은 '참된 종교'
(Alexander) 혹은 '시내 산의 토라와 대조적인 의미에서 시온의 토라라 할 수 있는 복
음'(Delitzsch)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본문의 강조점은 '시온에서부터'에 놓는다. 이는
구원의 길이 시온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요 4:22).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판결하시리니 - 앞에서 율법의 수여자 혹은 인생의
행할 길을 가르쳐 주시는 참된 교사로 그려졌던 여호와가 본문에서는 민족들 간의 분
쟁을 조정하며 판단하시는 재판관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판결과 중재가 가능한 것은
열방들이 율법의 말씀으로써 삶의 지침을 삼고 그 뜻에 기꺼이 복종하려 하기 때문이
다. '판단하다'(* , 솨파트)는 '다스리다', '왕노릇하다'(Calvin)나 '징벌하다'
(Cocceius)는 뜻보다는 '중재하다'(Alexander)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
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만들 것이며 -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될 때
전쟁도 더 이상 필요없게 된다. 그날에 사람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파괴적인 목적을 위
해 제작하였던 칼과 창을 생산적인 농기구로 바꾸게 될 것이다(슥 9:10). '보습들'
(* , 이팀)은 당을 갈아서 흙덩이를 일으키는 도구이며, '낫들'(* ,
마즈메로트)은 쓸데없는 가지를 잘라내는 전지용(剪枝用) 가위이다.
=====2:5
야곱 족속아 오라 - 문자적으로는 '야곱의 집이여, 오라'이다. '야곱의 집'은 하나
님의 선택된 가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이다(8:17;10:20;14:1;29:22 등).
앞절에 비추어 볼 때 본문에는 교묘한 대조가 숨어 있다. 즉 율법에 무지한 이방인들
조차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데,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은 오히려 뒤로만 물러
간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이바인을 들어 이스라엘에게 고상한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려
는 선교적 동기가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롬 11:14).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 '여호와의 빛'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Delitzsch)
혹은 '여호와께서 계시해주신 진리의 말씀인 성경'(Alexander)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은 타민족이 갖지 못한 이 빛을 특권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달리
빛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으며 단지 그 가운데 행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암흑 가운데서 방황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야만 되었다.
=====2:6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 원문대로 읽으면 '가득 채워졌다(* , 말레우), 동방
으로부터(* , 미케뎀)'이다. 여기서 '동방'은 지리적으로 팔레스틴 동쪽 특히
앗수르, 아람, 바벧론 등을 가리킨다. 고대 근동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이
들 나라로부터 수입되어 온 이방 풍속들로 온 이스라엘이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는 것
이다.
이방인으로 더불어...언약하였음이라 - 본문은 려러 가지로 해석된다. (1) '이방인
의 자녀들에게서 만족을 취하였다'(Luzzatto). (2) '이방인들과 결혼함으로 인해 연합
되었다'(LXX, Targum). (3) '이방인들과 상업적 계약을 체결하였다'(Cheyne). 심지어
제롬(Jerom)은 여기서 남색(男色)과 같은 성적(性的)범죄를 발견하기도 한다. 문맥과
관련하여 이 말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정치적, 상업적, 문화적,
종교적 측면에서 이스라엘과 이방들과의 교류가 확대되어 결과적으로 성별된 여호와의
백성과 거룩하지 못한 태생의 이방인들 간의 구별이 폐지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본문
은 앞절과 관련하여 대조적이다. 즉 말일에 시온으로부터 여오화의 빛이 이방으로 퍼
져나갈 것임에 반해, 오히려 이방의 악한 풍습들이 이스라엘로 몰려들어온 것이다.
=====2:7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마필(馬匹)이 가득하고 - 이방과의 자유로운 교섭의
결과, 이스라엘 땅에 경제적 부(富)를 상징하는 은금과 군사적 힘을 상징하는 마필 역
시 가득하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일찍이 모세에 의해 강력하게 공고된 것들이었다(신
17:16, 17). 그러나 자기 의지의 수단으로서 경제적, 군사적 힘을 의지하기 시작한 것
은 솔로몬 왕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왕상 10:26-11:8), 웃시야 왕 때에는 이러한 경향
이 가속화되었다(대하 26:6-15). 여기에도 앞 구절(4절)과 비교해 볼 때 대조가 암시
되어 있다. 즉, 말일에 전쟁 무기가 평화의 도구로 바뀌어지는 것과 이와는 반대로 마
필로 힘을 과시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비교해보라.
=====2:8
우상도 가득하므로 - '가득하다'(* , 말라)는 동사가 계속해서 문두(文頭)에
나온다. 본서에서 우상과 관련한 구절들로는 40:18-20;41:6, 7, 29;44:9-20;45:16-20;
46:1, 2, 5-7 등이 있다. 종말의 풍경과 이스라엘의 현재 사이에 존재하는 대조가 여
기까지 이어진다. 이방인들 사이에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지만 정작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에는 우상만이 가득하다.
=====2:9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 이러한 우상 숭배는 천한 자와 귀한 자,
즉 사회 각 계층에 편만히 퍼져 있었다. '천한 자'로 번역된 '아담'(* )과 '귀한
자'로 번역된 '이쉬'(* )는 구약에서 인간에 대한 대표적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전자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에서, 후자는 주로 긍정적인 의미에서 사용된다(5:15).
=====2:10
너희는 바위 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 이 후렴구의 변형이 19절과 21절에 나온
다.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사람들은 바위 구멍 속에 몸을 피하거나(삿 6:2;삼상 13:6)
얼굴을 땅속에 묻으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날에 임할 재앙이 너무도 크고 두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구절이 동방에서 계절풍을 피하거나 사막을 통과하는 지
독한 열풍을 피하는 관례적인 습관에서 착안된 표현이라고 추정한다(Leupold).
=====2:11
눈이 높은 자가...굴복되고 - '눈이 높은'(* , 에네 가브후트)
은 마음의 내적 교만이 나타내는 외적 몸짓을 가리키는 것이다(시 101:5, Calvin). 본
문에서 '높음'을 나타내는 두 단어 ('가브후트'와 '룸')와 '낮음'을 나타내는 두 단어
('솨펠'과 '솨흐')가 평행한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극명하다. 우리가 여호와
를 높이면 그가 우리를 높이시려니와, 우리가 여호와를 낮추면 그도 우리를 낮추신다
(57:15).
=====2:12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 - 문자적으로는 '만군의 여호와에게 있는 한 날'이다. 그날
은 (1) 만군으 여호와의 날이다. 이 칭호는 그가 전우주적인 심판을 시행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Leupold). 또한 (2) 여호와의 생각
속에 영원한 비밀로 존재하다가 지정된 때가 이르렀을 때 역사의 과정을 통해 나타나
게 되는 날이다(Delitzsch). (3) 반드시 하루일 필요는 없다. 주께는 천 년이 하루 같
고, 하루가 천 년 같다(시 90:4;벧후 3:8, Lange). 마지막으로 (4) 두려운 심판의 날
이다. 이것은 본절에서부터 16절까지 계속되는 전치사 '알'(* , against)에서 분명
히 드러난다. 그날은 이미 많은 선지자들로부터 예고된 최후의 날이다(13:6;욜
1:15;2:1, 11, 31;암 5:18, 20;습 1:7, 14;슥 14:1 등).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自高)한 자에게 - 심판의 날에 이르러 파멸의 운명에
처해질 대상들이 먼저 열거되었다. 이를 '사람'(everyone)의 의미로만 한정시킬 필요
는 없다. 오히려 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인 '모든 것'(everything)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낫다(Vitringa, Gesenius, Alexander). '높음'을 나타내는 세 개의 형용사-'교만
한'(* , 게에), '거만한'(* , 람), '자고한'(* , 니사)-는 동의어이다. 어
떤 이는 이것을 뒤에 나오는 자연들과 결부시켜 '장엄하고 인상적인 모든 것들에 대하
여 그리고 높이 들린 모든 것들에 대하여'로 해석하기도 하고(Leupold), 하나님과 같
아지려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창 3:5, J.
Watts).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스스로 높아진 모든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다(Lange).
=====2:13-16
여호와의 심판은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일시에 넘어뜨리는, 지진을 동반한 무서운
폭풍으로 형상화된다. 그 폭풍은 북에서 발원하여 남쪽의 바다로 향한다(Kaiser,
Leupold). 이 방향은 이스라엘의 적들이 침입해 들어오는 방향과 대체적으로 일치한
다.
레바논의...백향목과 바산의...상수리나무 - 레바논은 '흰 산'이란 뜻인데, 그 산
의 꼴개기가 1년 중 거의 절반이 눈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팔레스틴
과 시리아 접경에 위치한다. 그곳의 자랑인 백향목은 성경에서 종종 위엄과 능력의 상
징으로 취해졌으며(삿 9:15;왕상 4:33;왕하 14:9;시 92:12;104:16), 세속적인 교만의
상징으로도 사용되었다(시 29:5, 6;렘 22:6;슥 11:1, 2). 바산은 요르단 동쪽에 자리
하고 길르앗 북쪽에 위치하며 그 남쪽으로는 야르묵 강이 흐르는 고원 지대이다. 지금
은 엔-누크라(en-Nuqra)라고 불리며 가축을 키우기 좋은 목축지가 있다. 황소와 상수
리나무로 유명하다(시 22:12;겔 27:5, 6;39:18;암 4:1). 주석가들은 이것들이 유다의
높은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Jerome, Vitringa, Gesenius). 이 나무들
은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침략해 들어올 때 군사용 목적으로 벌목되어 완전히 황폐화되
고 말았다(37:24).
=====2:17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 약간 변형된 11절의 반복이다. '눈이 높은 사람'
(* , 에네 가브후트 아담)이 '스스로 높은 사람'(*
, 가브후트 하아담)으로 바뀌었을 뿐, 그 의미는 11절과 동일하다. 이
런 반복은 이전의 상세한 시각적 묘사로부터 다시 선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일반적인
진술로 환원하기 위한 것이거나 혹은 시의 운율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2:18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 선지자의 시선은 여호와께서 가장 혐오하시는 대
상인 우상으로 옮긴다. 심판의 날에 우상들은 본래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 엘릴림)처럼, 완전한 무(naught)로 화할 것이다(슥 13:2). 랑게(Lange)는
13-16절이 7절에 관계되듯이, 본절 이하는 8절에 관계된다고 주장한다.
=====2:19
사람들이 암혈(巖穴)과 토굴로 들어가서 - 10절의 경고가 여기서 직접적인 예언으
로 바뀐다. 심판의 날에 우상들은 그 숭배자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따라서 우상들이
무로 화하듯이, 그 숭배자들은 여호와의 진노를 피해 암혈과 토굴에 몸을 숨기지 않으
면 안 되는 것이다.
=====2:20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 70인역(LXX)은 이 구절에 착안하여 그들이 동물 숭배
에 빠졌다는 의미로 이해하였다(Luzzatto, Malbim). 그러나 두더지와 박쥐는 우상 숭
배자들이 몸을 피할 '암혈'과 '토굴'과 연관하여 취해진 것이다. 즉, 그들은 두더지와
박쥐들이 서식하고 있던 어둡고 음습한 동굴에 금과 은의 형상들을 던지는 것이다. 아
마 이러한 행동은 '역겨움에서'(Leupold), 혹은 '심판자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Delitzsch) 취해질 것이다.
=====2:21
본문은 우상에 대하여 언급할 때마다 뒤따라 나오는 후렴구이다(10, 19절). 이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임할 수치와 파멸이 어느 정도로 극심할 것인가를 강조하기
위하여 후렴구로 반복되는 것 같다.
=====2:22
이 구절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후기의 삽입으로 간주되었으며(Diestel, Cheyne),
어떤 곳에서는 아예 빠져 있다(LXX). 그러나 바르게 이해한다면 본절은 앞에서 논의된
(5절 이하) 내용의 결론이며, 동시에 3;1 이하에서 새로 이어질 내용의 도입부로 작용
한다.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 인생의 유한함이 창 2:7을 연상시키는 표현으로 기술되
었다. 인간의 생명은 호흡이 붙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시편 기자는 그 허망함을 이렇
게 노래했다:"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圖謀)가 소멸하리
로다"(시 146:4). 이와 관련된 구절들로는 욥 7:7;34:14, 15;시 78:39;90:36-6;104:29
등이 있다.
'구약 > 이사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이사야 4장 주석 (0) | 2015.02.08 |
---|---|
[스크랩] 이사야 3장 주석 (0) | 2015.02.08 |
[스크랩] 이사야 1장 주석 (0) | 2015.02.08 |
[스크랩] 이사야 주제별 성경보기 (0) | 2015.02.08 |
[스크랩] 이사야 제 2부 (3): 종말에 완성될 회복 (58-66장) (0) | 2015.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