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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이사야

[스크랩] 이사야 주석 11 ~20장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06
성 경: [사11:1]
주제1: [메시야의 통치와 그의 왕국에 관한 예언]
주제2: [메시야와 그의 왕국]
ꃨ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 레바논의 울창한 삼림처럼 위용을 자랑하던 세상 제국의 급속한 몰락과 미미한 그루터기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한 메시야 왕국이 극적으로 대비된다. 그 싹은 메시야이며, 그는 이새의 줄기 곧 다윗 가문에서 탄생하실 것이다(삼상 16:1). 선지자가 '다윗'대신 '이새'란 이름을 사용한 것은, 그로부터 나올 싹이 다윗 이전의 지위, 곧 농부였던 그 아버지 이새가 상징하는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ꃨ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 땅에 묻힌 뿌리에서 연한 가지(*, 네체르)가 돋아남같이, 메시야는 무너진 다윗 가문에서 미천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으로 오실 것이다. 이런 까닭에 그는 비천하고 멸시받는 나사렛 사람(Nazarene)으로 불리워야 했다(마 2:23). 그러나 그 가지는 곧 자라서 열매맺는 장성한 나무로 발전할 것이다. 나사렛 예수의 삶 역시 그러할 것이다.

성 경: [사11:2]
주제1: [메시야의 통치와 그의 왕국에 관한 예언]
주제2: [메시야와 그의 왕국]
ꃨ 여호와의 신...강림하시리니 - 나무의 비유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대신 비유의 주인공 곧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가 전면에 부상한다. 그 위에 여호와의 '영'(*, 루아흐)이 강림하신다. 이는 다윗 언약과 관계된 듯이 보인다(삼하 7:14). 하나님의 영은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역사하신다. 여호와의 영은 메시야에게 통치에 필요한 능력을 분여(分與)해 주신다. 그것들은 각각 세 쌍으로 분류된다(J.Watts). (1)지혜와 총명의 신:'지혜'와 '총명'은 왕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 자질들이다(왕상 3:5-9). '지혜'(*, 호크마)는 외적 분별력을 의미하며, '총명'(*, 비나)은 이보다 깊은 내적 통찰력을 의미한다. (2)모략과 재능의 신:'모략'과 '재능'은 9:6에 각각 '모사'와 '전능'으로 나와 있다(잠 8:14). '모략'(*, 예차)은 정책 수립과 입안(立案), 전쟁 계획의 작성 등 포괄적인 전략을 구상할 수 있는 힘을 뜻하며(36:5;왕하 18:20), '재능'(*, 게부라)은 군대를 이끌고 나가 싸울 수 있는 영웅적인 힘을 뜻한다(왕상 15:23;16:5,27;22:45). (3)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둘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믿음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것인데, 여호와의 영은 왕으로 하여금 신앙에 있어서도 소홀함이 없도록 힘을 복돋아 주신다. '지식'(*, 다아트)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깊은 이해를 말한다. '여호와 경외'(*, 이르아트)는 사유(思惟)의 대상이 아니라 경배의 대상인 하나님께 대한 왕의 절대적인 두려움과 복종을 말하는 것이다.

성 경: [사11:3]
주제1: [메시야의 통치와 그의 왕국에 관한 예언]
주제2: [메시야와 그의 왕국]
ꃨ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 원문대로 읽으면 '여호와 경외를 코로 흐흡한다'이다. '코로 호흡한다'는 말은 단순히 냄새를 맡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좋은 향기를 만끽하는 것, 다시 말하면 즐거워한다는 것이다(Delitzsch, Gesenius, De Wette). 메시야-왕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마치 향기로운 꽃향기를 숨쉬듯이, 오로지 여호와께 대한 경외로 참된 만족과 즐거움을 삼으신다.
ꃨ 눈에 보이는 대로...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은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제2의 다윗, 즉 메시야 - 왕은 눈과 귀에 현혹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께 대한 경외로 즐거움을 삼는 원칙에 의해 사물을 분별하실 것이다(Aben Ezra).

성 경: [사11:4]
주제1: [메시야의 통치와 그의 왕국에 관한 예언]
주제2: [메시야와 그의 왕국]
ꃨ 공의로...정직으로 - 메시야의 통치는 '공의'(*, 체데크)와 '정직'(*,미쇼르)에 입각한 평등 사회로 구현된다. '미쇼르'는 '평등함', '올곧음'을 뜻하는 말이다. 공의롭고 정직한 평등 사회의 구현, 그것은 이스라엘의 오랜 꿈이었다. 그 나라는 빈핍하고 겸손하 자가 보살핌을 받고, 이 세상의 행악자는 엄정한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그런 나라이다. 이 점에서 메시야의 통치는 유당 왕들의 악한 통치와 철저하게 대조된다(1:23;3:15;10:1,2).
ꃨ 빈핍한 자...겸손한 자 - 메시야의 통치가 실현될 때, 가장 기뻐할 이들은 바로 세상에서 멸시받고 억압받던 '빈핍한 자'(*, 달림)와 '겸손한 자'(*, 아나윔)이다. '달림'은 '매달리다'는 뜻의 '달라'(*)에서 나온 말인데, 사회적으로 열등하고 비천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아나윔'은 '굽히다'는 뜻의 '아나'(*)에서 나온 말인데, 전자보다는 좀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내외적으로 궁핍한 이들을 가리킨다.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은 권세자나 부자에게 매달리고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메시야의 날에 그들은 의로운 왕이 바로 자기들의 편이며, 공의와 정직으로 다스려지는 하늘 나라가 바로 자기들과 가까운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마 5:3;눅 6:20,21).
ꃨ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악인을 죽일 것이며 - 메시야의 날은 지상의 질서가 뒤바뀌는 격변의 날이될 것이다. 그날에 높은 자는 낮아지고 낮은 자는 높아진다(삼상 2:8). '세상'(*, 에레츠)은 직역하면 '땅'이다. 이 땅으로 만족을 삼고 하나님을 부인하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 라솨)은 공평한 재판에 의해 그에 합당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죽어 마땅하다면 메시야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한마디로도 그 일은 간단히 처리될 수 있다. '입술의 기운'곧 그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신 분은 '입의 막대기' 곧 그 말씀으로 세상을 좌우하신다(살후 2:8, Lange).

성 경: [사11:5]
주제1: [메시야의 통치와 그의 왕국에 관한 예언]
주제2: [메시야와 그의 왕국]
ꃨ 공의로...성실로 - 왕의 허리에 두른 예대(禮帶)에는 '공의'(*, 체데크)와 '성실'(*, 에무나)이라는 두 가지 장식이 아로 새겨져 있다(Calvin). 그는 모든 일을 공의대로 처리하시며 마땅히 되어져야 할 바는 성실로써 수행하시므로 그의 통치는 지극히 이상적일 것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평화와 지복의 낙원이 건설된다.

성 경: [사11:6,7]
주제1: [메시야의 통치와 그의 왕국에 관한 예언]
주제2: [메시야와 그의 왕국]
메시야의 통치가 실현될 그날에 '분리됨'을 그 특징으로 하는 죄악 세상은 마감되고, 적대하던 모든 세력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평화와 공존의 새세상이 열리게 된다. 이 새세상이 오기 위해서 우선 피조물을 허무한 데 굴복케 만드는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는 새창조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롬 8:19,20;고후 5:17). 그러나 그 궁극적 완성은 역사의 전변(全變), 즉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하기까지 미뤄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선지자의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주어지는 새로움을 넘어 먼 미래의 종말에까지 확대되고, 그가 노래한 메시야 왕국의 평화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계 21:5)는 요한의 묵시록에서 그 진정한 이상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먼 미래에 완성될 이 새로움은 최초의 낙원 상태의 회복과 연관시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복된 세계는 미움도, 갈등도, 다툼도 없는 조화의 세계였으며, 푸르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동산에서 이리와 표범, 곰, 사자 등의 맹수들이 어린 양과 염소, 송아지 등과 어울려 놀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 세계는 또한 동물들이 인간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질서의 세계이기도 하였다. '(모든 짐승들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라는 구절에서 이 같은 표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선지자가 보여주는 본문의 그림에는 약육 강식, 적자 생존의 비정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성 경: [사11:8]
주제1: [메시야의 통치와 그의 왕국에 관한 예언]
주제2: [메시야와 그의 왕국]
ꃨ 젖 먹는 아이가...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 이 복된 낙원 상태는 두 갓난 아이(하나는 젖을 먹고, 다른 하나는 젖을 막 뗀)가 독사의 구멍에 손을 넣고 장난하는 충격적인 장면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그날에는 독사조차도 해롭지 않다. 태초의 세계에서 향유되었던 인간과 동물(자연계)의 친화가 그지없이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다.

성 경: [사11:9]
주제1: [메시야의 통치와 그의 왕국에 관한 예언]
주제2: [메시야와 그의 왕국]
ꃨ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 '나의 거룩한 산'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전용어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것은 후반부의 '세상'(*, 하아레츠)과 병행하여, 하나님에 의해 구속되고 새로워진 세계를 총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65:25, J.Watts).
ꃨ 해(害)됨도 없고...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우주적인 평화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먼저 여호와를 아는 지식, 곧 여호와를 참으로 경외하고(잠 1:7) 온 마음으로 그를 기뻐하며(11:3) 기꺼이 그 앞에 복종하는 지식이 온 땅에 편만하게 퍼지지 않으면 안 된다.

성 경: [사11:10]
주제1: [메시야의 통치와 그의 왕국에 관한 예언]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이새의 뿌리 - '뿌리'(*, 쇼레쉬)는 1절의 '싹'(* - 호테르) 혹은 '가지'(*, 네체르)와 본질적으로 같다.
ꃨ 만민의 기호(旗號)로 설 것이요 - 이새의 뿌리 속에 감추어졌던 그분이 마침내 높은 곳에 우뚝 설 그날이 올 것이다. 그때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를 볼 것이며, 그에게 관심을 갖고 그를 경배하기 위해 몰려들 것이다. '기호'(*, 네스)는 사람들을 소집할 목적으로 멀리서도 볼 수 있게 만든 표시 혹은 깃발을 뜻한다. 이 기호가 5:26에서는 심판의 방편으로 쓰였으나, 여기서는 흩어진 백성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구원의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다.
ꃨ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 '그 거한 곳'(*, 메누하토) 곧 '그가 거주하시는 장소'는 말일에 세상 만민이 몰려드는 역사의 중심지요 또한 구원의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구원의 중심지가 될 것이므로 당연히 영화로울 것이다. 또한 이곳은 교회를 가리킨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이 모든 일은 복음 선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방에 널리 전파된 신약 시대에 그대로 성취되었다(롬 15:12).

성 경: [사11:11]
주제1: [메시야의 통치와 그의 왕국에 관한 예언]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 주께서 손을 펴심을 그의 손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심이다. 주께서 이전에 그의 전능한 손의 위력으로써 그의 백성들을 구출해 내셨던 것처럼(출 12:51) 이제 또 '다시'(*, 쉐니트-'다시', '두 번째'라는 뜻) 그의 백성들을 포로 상태로부터 구원해주실 것이다.
ꃨ 앗수르와 애굽과...바다 섬들에서 - 앗수르와 애굽이 먼저 거론된 것은 이들 두 나라가 이사야 시대의 주요 강대국들이었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언급된 나라들을 애굽에 속한 나라(바드로스, 구스)와 앗수르에 속한 나라(엘람, 시날, 하맛), 그리고 바다 섬들의 세 부류로 구분한다. 앗수르에 대해서는 7:17-8:22;10:28-34;36,37장;왕하 15:29;17:6;18:11을 참조하라. 그리고 애굽에 대해서는 7:18;왕하 23:29-35;호 9:3,6을 참조하라. '바드로스'는 애굽 상부이며(렘 44:1, 애굽 하부는 '미스라임'), '구스'는 애굽 남쪽 아라비아 만을 포함한 에디오피아이다(18:1). '엘람'은 티그리스 강 동쪽 땅이고(21:2;22:6) '시날'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만나는 남쪽 평원이다(창 10:10). '하맛'은 레바논 북부에 인접한 수리아 땅이다(10:9). '바다 섬들'은 지중해의 섬들과 주변 연안 국가들을 가리킨다. 이상 언급된 나라들은 사실상 이방 세계 전부를 가리킨다(Oswalt). 선지자의 예언은 부분적으로는 복음이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에게 전파되었을 때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 완전한 성취는 '모든 영적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때'(롬 11:26)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다(Alexander).

성 경: [사11:12]
주제1: [메시야의 통치와 그의 왕국에 관한 예언]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 주께서 이 일을 이루어 가시는 방식이 설명된다. 그는 '기호'(*, 네스)를 세우실 것이다. 이는 열방 중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으기 위함이다. 그가 기호를 세우면 열방은 그의 백성을 석방하며 호송까지 해줄 것이다(49:22;62:10, Delitzsch). 스룹바벨과 에스라의 영도하에서의 귀환은 그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ꃨ 이스라엘의 쫓긴 자...유다의 이산한 자 - '쫓긴 자'는 남성형이고, '이산한 자'는여성형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는 관용적인 표현으로서 게세니우스(Gesenius)에 의하면, 양(兩) 술부는 양 주어에 공히 종속된다. 즉, '이스라엘과 유다의 쫓긴 남자들과 이산한 여자들'을 가리킨다.

성 경: [사11:13]
주제1: [메시야의 통치와 그의 왕국에 관한 예언]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에브라임의 투기는 없어지고...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 솔로몬 시대 이래 남북으로 나뉘어진 이스라엘이 장차 통일된 한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말이다. 이 일은 상호간에 적대시하던 감정이 해소될 때 성취된다. 이 적대감은 에브라임 쪽에 더 강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8:1;12:1;왕상 11:26;시 78:60-68). 이는 유다를 괴롭게 하는 자가 에브라임이라는 반복된 진술에서 드러난다. 이에 반해 에브라임에 대한 유다의 적의(敵意)는 본절 끝에서 단 한번 나온다. 포로에서의 귀환 이후, 이런 분열상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성 경: [사11:14]
주제1: [메시야의 통치와 그의 왕국에 관한 예언]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그들이 서(西)으로...자기에게 복종시키리라 - 회복된 이스라엘 곧 신앙으로 일치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언제나 성공만이 따른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주변국들이 그들을 공격할때, 그들은 어깨를 같이하여 단합된 힘으로 방어할 것이므로 항상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본문은 실제 전쟁을 이야기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로 회복된 이스라엘의 우월성과 탁월함을 비유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어깨'(*, 카테프)는 바다를 향해 경사진 블레셋 해안의 별명이다. 이스라엘은 마치 굶주린 독수리가 높은 곳에서 내려와 먹이를 덮치듯이 블레셋을 공격할 것이다. 여기 언급된 나라들은 이스라엘에 인접한 주변국들인데 이스라엘을 자주 괴롭혔었다(렘 49:28,29;겔 25:4,10).

성 경: [사11:15]
주제1: [메시야의 통치와 그의 왕국에 관한 예언]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애굽 해고(海股)를 말리우시고...건너가게 하실 것이라 - 과거와 미래가 시적으로 혼합되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한층 강력하고도 풍부하게 표현한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 사람의 혀(해고)처럼 생긴 애굽의 홍해를 마르게 하사 그 백성을 구원하셨던 것처럼, 이제 여호와께서 그보다 더 놀라운 권능으로써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 유프라테스 강물을 말리운 다음, 손으로 그것을 내리쳐 7개의 작은 강물로 쪼개사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이 신을 신은채로 건너올 수 있게 해주실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할 때마다 출애굽의 테마는 주선율로서 거듭 나타난다(40-55장;렘 16:14;23:7).

성 경: [사11:16]
주제1: [메시야의 통치와 그의 왕국에 관한 예언]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
ꃨ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로가 있게 하시되 - '대로'(*, 메실라)는 인공적으로 건축한 큰 길 혹은 공공 도로를 말한다. 남은 자들이 대로를 통해서 돌아온다는사상은 본서에서 자주 나온다(19:23;35:8;49:11;62:10). 본문의 요점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원수의 손에서 해방시킬 뿐만 아니라, 또한 대로를 준비하기까지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아니하셔서 돌아올 때도 전혀 어려움이 없도록 해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위대한 구원 사건은 다음장에서 노래불러지는 찬양으로 일단락 된다(12장).

성 경: [사12:1]
주제1: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의 찬양]
주제2: [구원에 대한 감사의 노래]
ꃨ 전에는...이제는...주께 감사하겠나이다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를 노래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한때 노하셨으나 이제는 그 노가 풀렸을 뿐 아니라 위로까지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조차도 감사의 이유가 된다. 왜냐하면 첫째, 그의 진노는 사랑하는 자식의 잘못을 고치게 하기 위한 훈계의 방편일 뿐이요(진노의 목적, 히 12:5-11), 둘째, 그럴지라도 그 진노는 잠깐이며 그의 은총은 평생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진노의 기간, 시 30:5).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마음으로 순종하여"(롬 6:17)라는 사도 바울의 말에서 선지자의 노래가 화답되고 있다.

성 경: [사12:2]
주제1: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의 찬양]
주제2: [구원에 대한 감사의 노래]
ꃨ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 이 아름다운 고백은 구원을 맛본 사람의 경험과 내적 확신에서 절로 우러난 것이다. 이 말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 있다. (1)'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하나님밖에는 달리 구원이 없다. (2)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하나님은 나를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다. (3)하나님은 나의 구원 '이시라':하나님은 단순히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분 스스로가 구원이시다. 동일한 표현에 관하여는 시 27:1;38:22을 참조하라.
ꃨ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라는 사실에 대한 강한 확신(믿음)에서 모든 두려움은 사라진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카톨릭 수사의 모습에서 담대한 개혁자로 탈바꿈한 루터(Luther)의 경우는 그 좋은 예다.
ꃨ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구원이심이라 - 홍해를 건넌 후 모세가 불렀던 찬양의 노래가 여기 반복되고 있다(출 15:2).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여호와는 그 백성을 지키시며 보호하시는 능력이시요, 그 백성이 매일 부를 찬송의 주제이시며, 그 백성을 원수의 손에서 건져 주시는 구원이시다.

성 경: [사12:3]
주제1: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의 찬양]
주제2: [구원에 대한 감사의 노래]
ꃨ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마름이 없이 샘솟듯 넘쳐날 것을 노래하는 것이다.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서는 물이 구원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즐겨 활용되었다(8:6;35:6,7;44:3;55:1;시 42:1;46:4;렘 2:13;요 4:15;7:37,38;계 7:17). 어쩌면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기적적으로 물을 공급받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본절을 노래했는지도 모른다(출 17:1-7).

성 경: [사12:4]
주제1: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의 찬양]
주제2: [구원에 대한 감사의 노래]
ꃨ 여호와께 감사하라...그 이름이 높다 하라 - 본문은 시 105:1과 거의 흡사하다. 구원 받은 백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가 연속되는 4개의 명령문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 첫째는,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백성의 최초의 언어는 감사이다. 둘째는,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 예배드림을 가리키는 말이다(창 12:8;왕상 18:24). 셋째는,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널리 알리는 것이다. 이는 복음 전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신자는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불신자에게 마땅히 전파해야 한다. 넷째는, 그의 이름을 높이라는 것이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따라서 이 말은 이러한 모든 행위들로써 하나님을 높이며 그로 영광되게 하라는 것이다. 이는 신자의 궁극적 목표이다.

성 경: [사12:5]
주제1: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의 찬양]
주제2: [구원에 대한 감사의 노래]
ꃨ 극히 아름다운 일 - 히브리어 원문은 '게우트'(*)이니, 그뜻은 '올라감', '탁월함', '영광'이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위하여 행하신 일이 그처럼 고귀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그것은 '온 세계에 널리 알려져야만 한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임령(마 28:18-20)과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선교 명령(행 1:8)을 연상시키는 말씀이다(G.W.Grogan).

성 경: [사12:6]
주제1: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의 찬양]
주제2: [구원에 대한 감사의 노래]
ꃨ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 '시온의 거민'은 여성으로 의인화된 하나님의 백성 곧 교회를 가리킨다(Alexander). '소리를 높여 부르라'는 원문에는 두 동사로 되어 있으니, 곧 '기뻐 소리치며(*, 차할리) 환호하라(*, 로니)'이다.
ꃨ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 노래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의 위대하심의 선포로 끝을 맺는다:'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그 존재와 속성에 있어서 인간과 구별되시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기억하사 그 백성을 구원하심이 실로 위대하시다! 더욱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서 그 백성중에 영원토록 함께 거하심이 실로 위대하시다!

성 경: [사13:1]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
ꃨ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 - 아하스 시대의 예언이 마감되고 이어서 바벨론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에 대한 심판 선고가 뒤따른다(13-23장). 글의 구성은 다소 의도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7-12장에 예언된 메시야의 통치 곧 전우주적인 평화의 왕국이 건설되기 위해서는 적대적인 지상 왕국들이 평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40:3-5;마 3:3). 열국에 대한 심판 예언 중에 바벨론이 제일 먼저 거론된다. 이는 그 당시 미미한 세력에 불과했던 바벨론이 머잖은 장래에 앗수르를 대신하는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을 선지자가 미리 내다보았기 때문이다(39장). 그러나 엄밀히 살펴보면, 본장에서 선지자의 주된 관심은 바벨론의 역사적 측면보다는 스미드(G.Smith)가 명기한바,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적이요 암흑의 요새'(창 11:9;계 14:8;17,18장)로 취급되어온 바벨론의 영적인 특성에 주로 향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벨론은 인간의 영광과 교만의 대변자이다. 바벨론이 망한다면 바로 그 내적인 교만 때문이다(12-17절). 유다와의 관계는 여기서 고려되고 있지 않다. '경고'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맛사'(*)는 문자적으로는 '무거운 짐'인데, 이는 환난의 말씀이나 파멸 선고같이 전달하기 부담스러운 메시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언서에 자주 나온다(14:28;15:1;17:1; 19:1;21:1,11,13;22:1;23:1;30:6;나 1:1;슥 9:1;12:1;말 1:1).

성 경: [사13:2]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
ꃨ 자산 위에 기호를 세우고...그들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 군대가 소집된다. 이 장면은 연속되는 세 개의 컷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나무없는 민둥산에 멀리서도 볼 수 있는 깃발이 세워진다. 그 다음 큰소리로 사람들을 부른다.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어 서둘러 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군대를 소집하는 이가 누구인지, 또 소집된 이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는다(그것들은 나중에 점차적으로 드러남).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바벨론을 대적하기 위해서 모였으며, 그 운명의 시간이 임박했다는 사실이다. '자산'의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슈페'(*)는 '긁다, 벗기다'는 뜻의 동사 '솨파'(*)의 나팔 분사형으로, '벌거벗은', '벗겨진'을 의미한다. '기호'(*, 네스)에 대하여는 11:12 주석을 참조하라.
ꃨ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라 - 군대를 소집한 목적은 그들로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려는 것이다. 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그 도성을 정복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존귀한 자'(*, 네디빔)는 아마도 바벨론의 군주들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시 107:40;113:8).

성 경: [사13:3]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
ꃨ 내가 나의 거룩히 구별한 자에게 명하고 - 강조형으로 쓰인 '내가'(*, 아니)란 말에서 군대를 소집한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이 드러난다. 그는 바벨론과의 전쟁이라는 특별한 사명을 위해 용사들을 선발하고 또 준비하신다. 즉 '성별하신다'(렘 22:7;51:27;욜 3:9;습 1:7).
ꃨ 나의 노를 풀게 하였느니라 - 용사들을 성별한 목적이 기술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표출하는 막대기로 부름받았다. 앗수르를 불러 유다를 치게 하신 하나님은 이제 동일한 방법으로 용사들을 불러 바벨론을 치는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로 삼으시는 것이다(10:5).

성 경: [사13:4]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
ꃨ 산에서 무리의 소리가 남이여 - 산에서 들리는 이 소리는 많은 사람의 소리, 곧 '열국 민족들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이다. 침략군들은 잡다한 산악 민족들로 이루어져 있다(렘 51:27).

성 경: [사13:5]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
ꃨ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다 - '온 땅'(*, 콜-하아레츠)은 바벨론 제국을 가리키는 수사학적 표현이다(Gray). NIV는 이를 '온 나라'(the whole country)라고 번역했다.

성 경: [사13:6]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
ꃨ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 욜 1:15 참조. 원문대로 읽으면 '전능자에게서(*, 미솨다) 멸망같이(*, 케쇼드)임할 것이다'이다. '멸망'(*, 쇼드)과 '전능자'(*, 솨다)는 모두 '강하다', '황폐시키다'는 뜻의 '솨다드'(*) 동사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언어 유희의 일종이다.

성 경: [사13:7,8]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
심판날에 바벨론 주민들이 겪을 공포가 생생하게 묘사된다. (1)'모든 손이 피곤하며':저항 불능의 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2)'마음이 녹을 것이라':싸울 용기마저 잃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는 말이다. (3)'놀라며':직역하면 '전율하며'(*, 니브할루)이다. (4)'괴로움과 슬픔에 잡혀서 임산(臨産)한 여자같이 고통하며':'해산의 고통'은 선지자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이다. '괴로움'(*, 치림)과 '슬픔'(*, 하발림)은 모두 임산한 여자의 고통과 관련된 말들이다. (5)'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은 불꽃 같으리로다':'불꽃 같은 얼굴'은 얼굴에 피가 솟구침을 비유한 말이다. 공포와 경악의 극한을 보여준다.

성 경: [사13:9]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
ꃨ 땅을 황무케 하며...죄인을 멸하리니 - '땅'(*, 하아레츠)은 전세계를 가리킨다(Ewald, Umbreit, Delitzsch). 전세계적 심판을 통한 죄인의 구원이라는 주제는 노아 홍수와 유사하다(창 6:13).

성 경: [사13:10]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
ꃨ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 여호와의 날은 어두움의 날이다(겔 32:7;욜 2:10;3:15;암 5:18;슥 14:6,7). 그날에 하늘의 별들도 빛을 잃고 해와 달도 더 이상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다. 해와 달과 별의 빛남이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증거한다면(창 1:14-19;마 5:45), 역으로 어두움의 지배는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어두움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갈보리 언덕에서 1번 있었고(마 27:45), 최후의 심판 때에 다시 있을 것이다(마 24:29).

성 경: [사13:11]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
ꃨ 교만한 자의 오만...강포한 자의 거만 - 본문은 '그중에서 죄인을 멸한다'는 9절 말씀의 확대, 부연이다. 세상은 그 죄로 인해 멸망당한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의 표현이다. 그 모든 죄 가운데 선지자는 교만의 죄를 으뜸으로 꼽는다. '교만한 자', '강포한 자'는 사악한 세상의 군주들을 가리킨다. 특히 '강포한 자'로 번역된 '아리침'(*)은 단순히 군주를 뜻하는 '네디빔'(* -2절)과는 달리 무섭고 잔인한 폭군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바벨론의 주요한 특성을 나타내는 전용어로 에스겔서에 자주 등장한다(겔 30:10,11;31:12;32:12).

성 경: [사13:12]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
ꃨ 사람을...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 - 직역하면 '내가 사람(*, 에노쉬)을 정금보다 희귀하게 하며, 사람(*, 아담)을 오빌의 금보다'이다. 여기서 '에노쉬'와 '아담'은 보통 사람과 고귀한 사람을 구별하는 의미로 쓰이지 않고 일반적으로 사람을 지칭하는 동의어로 쓰였다(Alexander).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인구가 급속히 감소될 것을 말한다. 선지자는 이 희귀함을 금에 비교한다. 금은 값비싼 만큼 그 수가 많지 않다. 더욱이 불순물이 혼합되지 않은 정금일수록 그 수효는 훨씬 더 줄어든다. '오빌'의 자세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오는 금은 특별히 좋은 것으로 인정된 듯하다(왕상 9:28;10:11;22:48;대상 29:4;대하 8:18;9:10;욥 22:24;28:16;시 45:9).

성 경: [사13:13]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
ꃨ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떠나게 하리니 - 하늘이 떨리며 땅이 흔들림은 전세계적 격변이 일어날 최후 심판의 날을 연상시킨다(24:18;욜 2:10;3:16;학 2:6,7;21,22등). 선지자에게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는 날은 여호와의 날의 한 모형이요 시작에 불과하다. 그 완성은 세상이 낡은 허물을 벗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의 새로움을 덧입게 될(엡 4:24) 세상 끝날에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다.

성 경: [사13:14]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
ꃨ 그들이...본향으로 도망할 것이나 - 제국의 전성기에 바벨론은 각처에서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로 인간 시장을 형성했다. 그러나 제국의 멸망에 직면해서 거대한 군중들이 썰물처럼 도시를 빠져 나갈 것이다. 선지자는 이들의 모습을 위험에 처해서 혼비 백산하여 사방으로 날뛰는 겁많은 노루와 한번 흩어지면 다시는 모일줄 모르는 양들에 비유한다.

성 경: [사13:15]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
ꃨ 만나는 자는...잡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겠고 - 그들이 이처럼 사력을 다해서 도망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읍에 남아 있다가 붙잡히는 날에는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게세니우스(Gesenius)는 여기서 길에서 발견당한 사람과 집에 숨어 있다가 붙잡힌 사람이 대조되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로우스(Lowth)는 혼자 있다가 붙잡힌 사람과 무리와 함께 있다가 붙잡힌 사람이 대조되고 있다고 본다. 전자가 더 합당하다.

성 경: [사13:16]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
ꃨ 어린아이들은...그 집은...그 아내는 욕을 당하리라 - 침략군의 만행에서 제외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선지자의 묘사는 소름끼친다. 심지어 방어 능력도 없는 어린아이들마저 내던져져 유리 구슬처럼 부수어 뜨림을 당한다. 그것도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호 13:16;나 3:10). '메어침을 입는다'로 번역된 '라타쉬'(*)는 '박살낸다', '깨뜨린다', '산산조각낸다'는 뜻이다(18절). 집이 약탈당하고 아내가 욕을 보는 재앙에 대하여는 신 28:30;렘 3:2;애 5:11;슥 14:2 참조하라.

성 경: [사13:17]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메대로 인한 바벨론의 멸망]
ꃨ 보라...메대 사람을 내가 격동시켜 그들을 치게 하리니 - 여기 처음으로 약탈자들의 정체가 제시된다. 그들은 메대 사람들이다. 메대인들은 아리안족의 후손으로서 소금 사막(the Salt Desert)과 페르시아,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저지대 사이에 있는 이란 북서부의 고원 지방에 거주하였으며, 성경 기록으로는 창 10:2에 처음 나온다. 이들은 오랫동안 앗수르의 시달림을 받아왔으며 특히 사르곤 왕 때에는 부족의 일부가 점령당하여 일단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메대의 여러 마을에 강제로 이주되기도 하였다(왕하 17:6). 선지자가 이 예언을 할 당시만 해도 메대는 앗수르의 지배를 받는 미약한 세력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본래 호전적인 그들은 B.C. 714년경에 독립된 나라를 형성하였으며 그로부터 1세기 뒤에 바벨론과 함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공략하기도 하였다(B.C.612년). B.C. 539년, 메대-바사 연합군이 바벨론을 점령한 사실에 기초하여 일군의 학자들은 본문이 그 후에 기록되었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맞다면 후대의 작가가 본문을 작성할 때, 바벨론 점령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바사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선지자가 본문에서 바사 대신 메대만을 언급한것은 아마도 그들이 당시 사람들에게 광포하기 그지없는 사나운 민족들로 알려졌었기 때문일 것이다(Oswalt, G.W.Grogan).
ꃨ 은을...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 이 말은 그들이 금과 은의 가치를 모르는 미개한 야만인들임을 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만 그들의 목적이 바벨론 정복에 있음을 강조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성 경: [사13:18]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메대로 인한 바벨론의 멸망]
ꃨ 활로 - 메대 사람들은 활을 잘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22:6;렘 49:35).
ꃨ 청년을...태의 열매를...아이를 가석(可惜)히 보지 아니하리라 - 이는 모두 메대인들의 잔인성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표현이다.

성 경: [사13:19]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메대로 인한 바벨론의 멸망]
ꃨ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 - 직역하면 '갈대아 사람들의 자랑의 영광'이다. '노리개'로 번역된 '티프에레트'(*)는 '꾸미다', '장식하다'는 뜻의 '파아르'(*) 동사에서 파생된 말로 '장식', '광채', '영광'을 의미한다. '갈대아 사람'(*, 카스딤)은 바벨론 성읍 최남단의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로 초기 바벨론을 구성한 주요한 부족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B.C.722년경에 히브리어로 므로닥 - 발라단이라 이름하는 그들의 지도자 마르둑 - 아플라 - 일디나(Marduk - Apla - iddina)를 앞세워 바벨론을 정복했으며 그곳을 수도로 삼았다. 약 1세기 후에 느부갓네살의 통치 아래 신바벨론 제국이 건설되어 그 지배력을 온 세계에 떨치게 되었다(J.Watts). 부족민, 즉 갈대아 사람들에게 세계 제일의 도시 바벨론은 진실로 그들의 자랑이며 영광으로 비쳤을 것이다.
ꃨ 하나님께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같이 되리니 -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형벌로 인한 완전한 파멸의 보기(모범)로 쓰이고 있다(1:9).

성 경: [사13:20]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메대로 인한 바벨론의 멸망]
ꃨ 아라비아 사람도...양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 아라비아 사람들(아라비, * )은 일정한 거주지가 없이 떠도는 유랑민족으로 목축과 수렵에 능하였다. 그들은 아무데서나 천막을 치고 거주하였기 때문에 헬라인들로부터 '천막 생활자들'(*, 스케네타이)이라는 말을 들었다(Calvin). 그런데 이들마저도 그곳에 장막 치기를 거부한다는 말은 바벨론 땅이 사람의 주거지로서만이 아니라 잠시 유숙하는 곳으로도 사용되지 못할 만큼 철저히 황폐해질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Lange).

성 경: [사13:21]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메대로 인한 바벨론의 멸망]
ꃨ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 엎드리고...들양이 거기서 뛸 것이요 - 사람이 살 수 없는 땅, 곧 저주받아 쓸모없게 된 땅을 '들짐승들'(*, 치임)과 '부르짖는 짐승'(*, 오힘), 그리고 '타조'(*, 베노트 야아나)와 '들양'(*, 세이림)이 차지한다. '치임'과 '오힘'이 구체적으로 어떤 짐승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하이에나, 족제비등과 같이 광야에서 서식하는 야생 동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타조'는 문자적으로는 '타조의 딸들'인데, 이는 고대 근동에서 타조에 대해 언급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관용적 표현이다. '세이림'은 본래 '털이 많은 숫염소'를 뜻하는데(레 17:7;대하 11:15에서 숫염소의 형상을 한 우상의 의미로 사용됨), 유대인들 가운데 널리 보급된 민간 신앙에서 이는 염소의 모양을 하고 사막에 자주 출몰하는 귀신(34:14)으로 여겨졌다고 한다(Alexander).

성 경: [사13:22]
주제1: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메대로 인한 바벨론의 멸망]
ꃨ 그 궁성에는 시랑이...들 개가 울 것이라 - '시랑'(*, 이임)은 그 어원적 의미에서 볼 때 '울부짖는 짐승'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리', 혹은 '재칼'등으로 번역된다. '들개'(*, 타님)는 '하이에나'(RSV) 또는 '도마뱀'(KJV)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런 동물들이 '궁성'에 거주한다. '궁성'(*, 알므노트)은 '과부살이'를 뜻하는 '알마노트'(*)와 모음 하나만 다르다. 이는 한때 호사스러웠던 궁성이 이제는 외로운 과부살이처럼 버려진 곳이 될 것을 빗대어 암시한 것이다.

성 경: [사14:1]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
ꃨ 여호와께서...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 바벨론의 파멸은 그의 백성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본문 모두(冒頭)에 나와 있는 '왜냐하면'(*, 키)이라는 접속사에서 앞말과의 논리적 연관성이 분명히 드러난다:'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망시키심은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이라는 주제는 이 책의 후반부(40-66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렘 50:4,8, 28;51:6,36 참조). '야곱'과 '이스라엘'은 온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다시 택하여'(*, 바하르 오드)는 그 옛날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심같이 이제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그 백성을 다시 선택하실 것을 말하니(신 4:37;7:6,7;시 135:4), 결국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버리지 않고 계속 사랑하신다는 뜻이다. 그 사랑은 세 가지로 표현된다. (1)자기 땅에 돌아옴. (2)이방인들이 이스라엘에 연합함. (3)이방인들을 다스림.

성 경: [사14:2]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
ꃨ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를...주관하리라 - 땅과 안식의 회복, 이방인들의 개종은 포로 귀환 이후, 이스라엘의 운명이 뒤바뀌어질 것을 암시하는 서곡에 불과하다. 이 반전(反轉)은 전에 노예였던 이스라엘이 자유자가 되고 전에 압제자였던 이방인들이 노예가 된다는 말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이 말을 전형적인 유대주의의 표현(Procksch)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 본문의 참된 성취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졌던 하나님의 백성된 권리와 특권 및 언약을 계승한 교회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2:2,3;슥 8:20-22, Alexander).

성 경: [사14:3]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여호와께서...안식을 주시는 날에 -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귀환함으로써 시 137편에서 노래불렀던 포로 생활의 슬픔과 고달픔은 이제 지난날의 추억으로 화할 것이며, 대신 영원한 안식이 자리하게 될 것이다. '안식을 주시는 날'은 신 25:19에서 대적에게서 벗어나는 날로 묘사된다. '슬픔'(*, 오체브)은 무거운 노역으로 인한 육신의 고통을 가리키며, '곤고'(*, 로게즈)는 분노와 초조와 괴로워하는 마음의 고통을 가리킨다(Aben Ezra).

성 경: [사14:4]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와 부를 노래는 파멸당한 바벨론 왕을 조롱하는 노래이다. 노래는 23절에서 종결된다.'노래'로 번역된 '마솰'(*)은 '비교하다', '비슷하다'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로서, 일반적으로 간결하게 표현된 비유, 격언, 수수께끼, 풍자 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여기서는 특히 풍자적인 말의 의미로 쓰였다.
ꃨ 학대하던 자가...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 '학대하던 자'(*, 노게스)와 '강포한 성'(*, 마드헤바)은 동의어이다. '노게스'는 세금을 걷는 관리이며, '마드헤바'는 황금성을 뜻하니, 바벨론 사람들의 황금에 대한 탐욕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Calvin). 그처럼 기세 등등하고 고압적이던 압제자들이 졸지에 몰락하게 된 사실이 보는 이들에게 놀라움과 충격을 안겨준다. 이러한 감정이 '어찌'(*, 예크)라는 경악에 찬 물음 속에 함축되어 있다.

성 경: [사14:5]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여호와께서...꺾으셨도다 - 앞절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다. 즉, 황금 성이 몰락하게 된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멸시키셨기 때문이다. 바벨론의 파멸은 우연적,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에 의한 것이다.

성 경: [사14:6]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ꃨ 그들이 분내어 여러 민족을 치되 - 바벨론의 몽둥이와 홀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설명해주는 말이다. 그들은 쉴새없이 정복 전쟁을 감행했으며, 정복한 나라에 대하여는 무자비한 압제와 핍박으로 시종하였던 것이다.

성 경: [사14:7]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온 땅이 평안하고 정온(靜穩)하니...노래하는도다 - 독재자의 급속한 몰락으로 온 땅에 평안과 고요함이 감돌고 기쁨의 노래가 꽃핀다. 구원의 감격이 노래로 표출된다는 사상은 본서에 친숙하다(44:23;49:13;52:9;54:1;55:12). 이 기쁨의 노래에 말 못하는 대자연도 동참한다.

성 경: [사14:8]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ꃨ 향나무와 레바논 백향목도 너로 인하여 기뻐하여 - 향나무와 레바논 백향목이 기뻐하는 까닭은 바벨론의 넘어짐으로 이제 더 이상 군사적 목적으로 자신들이 벌목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향나무와 백향목은 건축물의 최상의 목재로 평가되어 왔다. 따라서 예로부터 열방들은 함대나 공격 무기 등을 제조하기 위하여 이들 나무들을 함부로 벌목하였다. 이 같은 일은 전쟁에 길들여진 갈대아인들에게 더욱 현저하였을 것이다.

성 경: [사14:9]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아래의 음부 - '음부'(히, *, 쉐올;헬, *, 하데스)는 죽은 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고대인들은 그것이 땅 아래 실재한다고 믿었다(5:14).
ꃨ 너로 인하여 소동하여 너의 옴을 영접하되 - 땅 위의 평안(8절)과 땅 밑의 소동이 대조된다. 바벨론 왕이 음부에 내려온다는 소식은 그곳에 먼저 와 있던 세상의 영웅들(*, 레파임)과 열방의 뭇 왕들을 경악 속에 빠뜨린다. '레파임'은 음부에 거주하는 망령들을 가리키는데 산 자에 비해서 훨씬 연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들(그림자처럼 외형만 소유한)로 간주되었다. 게세니우스(Gesenius)는 이 말이 '약해지다'는 뜻의 '라파'(*) 동사에서 유래하였다고 본다(26:14,19;욥 26:5;시 88:11;잠 2:18;9:18;21:16).

성 경: [사14:10]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너도 우리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 망령들이 바벨론 왕을 보고 외치는 소리이다. 생전에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 아삽이 노래한 바 같이, 스스로 신(神)이라 자처하고 지존자의 아들이라 자부하는 이들도 결국 죽을 때는 범인들과 똑같이 엎어지기 마련인 것이다(시 82:6,7).

성 경: [사14:11]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ꃨ 구더기가...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 선지자의 풍자는 점입 가경(漸入佳境)이다. 음부에 떨어진 바벨론 왕이 누울 이부자리가 소개되니, 그 요는 우글거리는 구더기요 그 이불은 꿈틀거리는 지렁이다. 생전의 영화와 사후의 비참이 극명하게 대조되고 있다.

성 경: [사14:12]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땅에 찍혔는고 - 바벨론 왕의 급락을 선지자는 두 가지로 묘사한다. 첫째는 별이 떨어지는 모습으로, 둘째는 거대한 나무가 찍혀 쓰러지는 모습으로, '계명성'(*, 헬렐)은 새벽별(혹은 금성)을 뜻하는 말이다. 그것은 태양보다 먼저 떠서 동트기 전에 비췬다는 의미에서 적절하게 '아침의 아들'(*, 벤-솨하르)이라 불리운다(*, 헤오스포로스, LXX;Lucifer, 루시퍼, Vulgate). 초대 교부 터툴리안과 그레고리 대제는 눅 10:18을 근거로 하여 이 말을 사단의 떨어짐에 적용하였는데, 그 이후로 '루시퍼'가 마귀의 왕을 가리킨다는 대중적 오해가 일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본문에서 선지자가 사단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하늘 끝까지 높아지려한 교만한 바벨론 왕을 염두에 두고 '계명성'이란 표현을 썼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열국을 엎은 자'는 거대한 그늘로 주변을 뒤덮는 나무에서 따온 표상인데, 그 힘으로 열국을 압도했던 바벨론을 일컫는 말이다(Hitzig, Hendewerk).

성 경: [사14:13]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북극 집회의 산 - 신들이 특정한 산에 모여 집회를 갖는다는 신화적인 관념은 고대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예, 그리스의 올림푸스 산). 그 경우 산들은 언제나 북쪽 극단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여기 언급된 '집회의 산'은 제신(諸神)들의 집회의 장소로 알려진 시리아 북쪽의 자폰(Zaphon) 산 혹은 카시우스(Cassius)산을 가리키는 듯하다.

성 경: [사14:14]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 '지극히 높은 자'는 히브리어로 '엘리욘'(*)인데, '위로 오르다', '높다'는 뜻의 '알라'(*)동사에서 유래하였다. 델리취(Delitzsch)에 의하면, 바사 왕들은 그들의 비문에 자신들을 '신의 후손' 심지어는 '신들'(*, 데오이)이라고까지 명명하였다고 한다.

성 경: [사14:15]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ꃨ 그러나 이제 네가...빠치우리로다 - 선지자가 재구성한 바벨론 왕의 독백(13,14절)은 끝나고 이에 대한 엄중한 판단이 뒤따른다:'너는 하늘 끝까지 높아지고자 하나 (정반대로) 무덤으로 던지워질 것이다.' 하나님같이 되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죽음을 선고받은 첫사람 아담과,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하늘에 닿는 탑을 쌓다가 붕괴된 바벨탑 사건은 이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창 3,11장).

성 경: [사14:16,17]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무대는 지하의 음부에서 지상의 전쟁터로 바뀐다. 바벨론 왕은 더 이상 유령이 아니라 여기서부터는 칼에 찔려 횡사한 주검으로 나온다.
ꃨ 너를 보는 자가 주목하여 - 그 시체는 매장되지도 아니했으므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쉬이 뜨인다. 바벨론 왕의 비참한 운명에 대한 놀라움은 지하에서나 지상에서 다르지 않다. 놀람의 원인도 동일하다(10절).

성 경: [사14:18,19]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열방의 왕들은...밟힌 시체와 같도다 - 열방의 왕들과 바벨론 왕이 대조된다. 생전의 영광에 있어서 열방의 왕들은 바벨론 왕에 비길 바가 못되었다. 그러나 사후의 영광에 있어서는 사정이 정반대가 되었다. 열방의 왕들은 미리 준비한 자기들의 집(무덤)에 편안하게 안장될 수 있었지만(왕하 21:18;대하 33:20), 바벨론 왕은 무덤에 눕지도 못하고(*, 미키브레카, '무덤에서 멀리') 마치 나무로부터 잘려져 썩어져가는 나뭇가지처럼 또한 밟힌 시체처럼 길바닥에 버려질 것이다. 주석가들은 느부갓네살의 시체가 무덤에서 꺼내어졌다고도 하고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벧사살에게 이 모든 일이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고도 한다(단 5:30). 그러나 이런 예증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특정한 군주의 운명이 아니라 세계 제국으로서의 바벨론의 비참한 최후이기 때문이다(Alexander).

성 경: [사14:20]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악을 행하는 자의 후손은...못하리로다 - 악인의 통치가 초래하는 재난은 그 당대에만 아니라 그 후손들에게까지 미친다. 이는 주께서 약속하신 바, 의인은 영원히 기념되나(시 112:6) 악인의 자취는 땅에서 끊어지고(시 34:16;109:13) 그 이름은 썩으리라(잠 10:7)는 말씀과 일치한다(Calvin).

성 경: [사14:21]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너희는 - 바벨론을 파멸시키기 위해서 부름받은 자들을 가리킬 것이다(Alexander, Calvin).
ꃨ 그들로 일어나...충만케 하지 못하게 하라 - 그들이 번성하여 다시는 그들의 조상들처럼 정복 전쟁에 나서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바벨론의 전제 군주들은 세계 정복의 야욕에 불타 영토 확장에만 전념하고 넓혀진 경계선마다 그들의 승전(勝戰)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고 도시들을 건설하였다(Leupold).

성 경: [사14:22,23]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바벨론 제국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판결로 바벨론에 대한 경고는 종결된다(13,14장). 본문의 주요한 의미는 바벨론의 멸절을 결론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며, 그것을 두번에 걸쳐 반복되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으로 확증하는 것이다.
ꃨ 내가 일어나 그들을 쳐서 - 하나님의 심판은 그가 원수를 대적하여 일어나심으로 표현된다. 결국 바벨론의 참된 대적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ꃨ 고슴도치의 굴혈(窟穴)과 물웅덩이가 되게 하고 - 사람의 자취가 끊어진 곳을 들짐승이 차지하며, 화려했던 궁성이 들어섰던 자리를 물웅덩이가 대신한다. '고슴도치'로 번역된 '키포드'(*)는 습지에 서식하는 동물을 가리키며(34:11;습 2:14), '물웅덩이'(*, 아그메-마임)는 '늪지', '습한 곳'을 뜻한다(35:7;41:18;42:15).

성 경: [사14:24]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앗수르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이루리라 - 직역하면 '만일 내가(*, 임-로)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았더라면...'이다. 단축형의 맹세에 대하여는 5:9을 참조하라. 이 같은 맹세 형식에서 여호와의 신실하심이 강조되고 있다. 여기에 신자들의 믿음의 확실성이 근거한다.

성 경: [사14:25]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앗수르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내가 앗수르 사람을...밟으리니 - 하나님의 계획은 앗수르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 파괴는 '나의 땅'(*, 나의 산), 즉 유다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을 포위한 산헤립의 군대가 갑작스레 전복된 사건과 무관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37:36;왕하 19:35).
ꃨ 그 때에 그의 멍에가...벗어질 것이라 - 앗수르의 파멸은 곧 이스라엘의 해방으로 귀결된다. 본문에 언급된 사상은 10:27과 비슷하다.

성 경: [사14:26]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앗수르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온 세계를 향하여...열방을 향하여 - 바벨론의 몰락과 앗수르의 멸망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세계 경영과 무관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온 땅과 열방에 대하여 계획하신 일은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니, 왜냐하면 그 지혜와 능력에 있어서 감히 하나님과 겨룰 수 있는 자는 없기 때문이다(시 33:11).

성 경: [사14:27]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앗수르 멸망에 대한 예언]
ꃨ 경영하셨은즉...그 손을 펴셨은즉 - '경영'(*, 에차)과 '손'(*, 야드)은 여기서 '지혜와 능력'(Vitringa) 혹은 '계획과 실행'(Gill)을 뜻한다.

성 경: [사14:28]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블레셋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아하스 왕의 죽던 해에 받은 경고라 - '경고'에 대하여는 13: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사14:29]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블레셋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블레셋 온 땅이여 - '블레셋'(*, 펠레쉐트)은 한때 소아시아 남서 지방에 거주하다가 지중해 연안으로 이주하여 가나안 남부 해안 지역에 정착한 해상 백성들로, 그 이름의 뜻은 '유랑자들', '이주자들'이다.
ꃨ 이들은 다섯 도시국가 -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가사, 가드 - 를 형성하여 각각 군주들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가나안 문화와 종교에 쉽게 적응했으며 헷 족속으로부터는 철 제련 기술을 전수받았다. 유능한 군사 조직가들이나 용맹스러운 전투 행위로 이름난 이들은 사사 시대 이래 통일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을 크게 위협하였다.
ꃨ 너를 치던 막대기 - 아하스 왕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죽은 디글랏 빌레셀 3세를 가리킨다(B.C.727년 사망). 블레셋에 상당한 타격을 가했던 그의 죽음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커다란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막대기가 아하스 왕을 가리킨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는 블레셋을 때린 막대기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로부터 얻어맞은 북이었기 때문이다(대하 28:18).
ꃨ 뱀의 뿌리에서는...나는 불뱀이 되리라 - 블레셋이 기뻐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주석가들은 이것을 미래로 갈수록 위험이 증폭되고 연속되는 세 단계로 파악한다. 그러나 가장 좋은 해석은 본문의 '뱀의 뿌리'와 '그 열매', 그리고 '독사'와 '나는 불뱀'을 시적 평행법에 따른 동의어로 보는 것이다(Gray, Oswalt). 그렇다면 그 의미는 블레셋이 전에 경험했던 것보다 더 엄청난 일이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 될 것이다. 사실 그 말대로, 디글랏 빌레셀의 사후(死後) 사르곤 왕은 아스돗을 치고(20:1) 가사의 왕 카눈을 포로로 잡았으며, 산헤립은 아스글론과 에그론을 정복하고 가사와 아스돗의 왕을 사로잡았던 것이다(G.Rawlinson).

성 경: [사14:30]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블레셋 멸망에 대한 예언]
ꃨ 가난한 자의 장자는...누우려니와 - 선지자는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허덕이는 유다 백성을 '가난한 자의 장자'라 부른다. '장자'(*, 베코레)는 여기서 최상급의 의미로 쓰였다(욥 18:13). '빈핍한 자'(*, 에베요님)는 유리 방황하는 양에 비유된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 비록 현재의 고난이 이와 같을지라도 미래의 모습은 이와 전혀 다를 것이다. 즉, 그들은 목자되신 하나님의 품에서 편히 누울 것이며, 굶주림의 고통으로부터도 영구히 해방될 것이다. 여기 두 겹의 대조가 있다. 즉, 유다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유다의 미래와 블레셋의 미래이다.

성 경: [사14:31]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블레셋 멸망에 대한 예언]
ꃨ 연기가 북방에서 오는데...없느니라 - 선지자는 블레셋에 임박한 재난을 북방에서 다가오는 연기로 표현한다. '연기'는 블레셋을 침공하는 군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행진하는 군데에서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먼지에서 착안된 것인지(Lowth, Gesenius, Rosenmuller), 아니면 침략군에 의해서 파괴당한 도성들에서 솟아오르는 화재와 연관된 말인지(Knobel, Maurer) 분명하지 않다. 하여튼 이 군대는 전열(戰列)에서 낙오되는 이가 하나도 없을 만큼 훈련이 잘되어 있다(5:26-29). 아마도 앗수르 군대를 가리킬 것이다(Oswalt).

성 경: [사14:32]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블레셋 멸망에 대한 예언]
ꃨ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 '사신들'은 아마도 예루살렘에 와서 반 앗수르 동맹에 가입해 주기를 요청하는 블레셋 사신들을 가리킬 것이다(Gray, Leupold). 그 대답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보호해주신다'는 것이다. 즉 시온을 세우신 그가 시온을 지켜주실 것이니, 다른 나라와의 군사적 동맹 따위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성 경: [사15:1]
주제1: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 (I)]
주제2: [모압에 임할 심판]
ꃨ 모압에 관한 경고 - 선지자의 경고는 서쪽에 있는 블레셋을 지나 동쪽의 모압으로 향한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로(창 11:31;19:37) 요르단 동편 사해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모압과 이스라엘이 혈연적으로 가까운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볼 때 두 나라 사이의 상호 관계는 우호적이 아니었다. 사사 시대에 모압 왕 에글론은 이스라엘을 18년간이나 정복하였다(삿 3:12-14). 사울은 모압과 싸웠으며(삼상 14:47), 다윗은 모압을 완전히 장악하였다(삼하 8:2;대상 18:2). 솔로몬은 그의 아내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산에 모압의 신(神) 그모스를 섬기는 산당을 지었다(왕상 11:7,8). 남북으로 나라가 나뉜 후 모압 왕 메사는 북왕국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조공을 바쳤다(왕하 3:4). 아합이 죽은 후 메사는 이스라엘을 배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 유다 연합군의 공격을 받음으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어야 했다(왕하 3:6-27). 그러나 예후 시대에 이스라엘이 트랜스 - 요르단 지배권을 상실한 이후(왕하 10:32) 모압은 빈번히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괴롭혔다. 앗수르에 관한 한, 이웃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모압도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B.C. 712년 모압이 반앗수르 동맹인 아스돗 동맹에 가입한일로 앗수르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선지자의 기록은 아마도 이때를 전후해서 작성된 듯하다. 모압에 관한 그 밖의 기록으로는 렘 9:26;40:11, 특히 렘 48장을 참조하라.
ꃨ 하루 밤에 - 이는 모압의 멸망이 문자적으로 야간에 일어난다는 말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돌연히 임한다는 말이다(17:14 참조).
ꃨ 모압 알...모압 길 - '모압 알'(혹은 '알 모압')은 아르논 남단에 위치한 모압의 수도 이름이며(민 22:36) 오늘날의 랍바(Rabba)에 해당한다. '모압 길'(혹은 '길 모압')은 거대한 바위 위의 요새화된 도시로 '모압 알'의 남동쪽에 위치한다. 오늘날의 케레크(Kerek)에 해당된다. 가장 중요한 모압의 두 도성이 황폐된다 함은 나라 전체가 붕괴됨을 뜻하는 것이다. 이하에서 계속 나오는 모압 지명에 대하여는 본장 강해 지도를 참조하라.

성 경: [사15:2,3]
주제1: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 (I)]
주제2: [모압에 임할 심판]
ꃨ 바잇과 디본 산당에 올라가서 울며 - '바잇'(*, 바이트)의 뜻은 '집', '성전'이다(출 23:19;34:26;신 23:18;수 9:23, Calvin, Alexander, Oswalt, Kimchi). '디본'은 아르논에서 북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며 모압 왕 메사의 고향으로 알려지고 있다(민 33:45). 이곳에 그모스 신의 산당이 있었다. 모압 사람들은 국가적 재난에 직면할 때 그들의 우상인 그모스 신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울며 호소하였다. '바잇'이 '벧 바알 므온'(수 13:17-그곳에 바알 신당이 있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ꃨ 느보와 메드바를 위하여 통곡하도다 - '느보'는 헤스본 남쪽에 위치한 성읍으로 모세가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던 곳이다(신 34:1). '메드바'는 느보와 디본의 중간 지점에 있는 성읍이다. '느보'에 대하여는 민 32:3,38;33:47;대상 5:8;렘 48:1,22 등을, '메드바'에 대하여는 민 21:30;수 13:9,16;대상 19:7등을 참조하라. 모압 사람들이 통곡하는 모습이 길게 서술된다.
ꃨ 그들이 각각 머리 털을 없이 하였고...각기 애통하여 - 각기 자기의 머리털을 베고 수염을 깎으며 맨몸에 굵은 베를 두르고 지붕 위에서 오열하는 것은 고대 근동의 애도 방식으로서(3:24;22:12;창 37:34;삼하 3:31;15:30;왕상 21:27;스 9:3;렘 41:5;애 2:10;미 1:16) 앗수르(욘 3:5), 아람(왕상 20:31), 바사(에 4:1,2), 이스라엘(느 9:1)등에도 이런 관습이 널리 유포되었다(Rawlinson).

성 경: [사15:4]
주제1: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 (I)]
주제2: [모압에 임할 심판]
ꃨ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부르짖으며...야하스까지 들리니 -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인접한 성읍들로, 모압의 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선지자가 가장 북쪽에 있는 이들 도성들까지 언급한 것은 비탄이 모압 전역에 가득 차서 어느 한 군데고 예외적인 곳이 없음을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이다. 이곳에서 부르짖는 통곡 소리가 어찌나 큰지 아르논 근처에 있는 야하스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는 소리의 크기로써 슬픔의 깊이를 표현하는 시적 기교이다.
ꃨ 모압의 전사가...떨도다 - 모압의 비통함이 한층 강조되고 있다. 가장 용맹스러운 전사들마저도 이처럼 두려움에 겨워 통곡할 지경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본절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그 의미상 대구를 이룬다.

성 경: [사15:5]
주제1: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 (I)]
주제2: [모압에 임할 심판]
ꃨ 내 마음이...부르짖는도다 - 모압에게 심판을 선고한 선지자마저도 모압의 통곡에 동참한다는 말에서 모압의 비참이 최고로 강조되고 있다. 본문은 '그들의 재난이 얼마나 심각하면 내 마음이 그들을 위해 이렇게 아파하며 더불어 통곡하겠느냐'로 풀어 설명할 수 있다.
ꃨ 그 귀인들은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로 도망하여...부르짖으니 -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귀인들'(*, 베리헤하)을 '도망하는 사람들'(*, 바리헤하)로 읽는다(43:14, Saadias, Kimchi, Alexander). 모압의 피난민들은 사해 남단으로 도피한다. 이는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도망하여 소알로 피신한 것과 흡사하다(창 19:23).

성 경: [사15:6]
주제1: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 (I)]
주제2: [모압에 임할 심판]
ꃨ 니므림 물이 마르고 - '니므림'이 정확히 어느 곳을 가리키는지 확실하지 않다. 오늘날 사해 남단(Wady en-Numere)과 사해 북단(Wady Nimrin)에 그 이름이 남아 있다. 문맥상 본문이 피난민들의 행로와 관련된다고 볼 때, 그것은 아마도 남쪽을 가리킬 것이다. 한편, 니므림 물이 마른 것은 모압을 침공한 군사들이 전략적 목적으로 수원(水源)을 차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자연의 피폐함(시각적 표현)은 피난민들의 통곡소리(청각적 표현, 5절)와 적절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성 경: [사15:7]
주제1: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 (I)]
주제2: [모압에 임할 심판]
ꃨ 그러므로...버드나무 시내를 건너리니 - '얻은 재물'(*, 이트라)은 '남겨진 것'이며, '쌓았던 것'(*, 페쿠다)은 '값진 소유'이니, 모압 사람들이 난리통에 그나마 건질 수 있었던 재물들을 가리킨다(Leupold). 그들은 이것만이라도 무사히 운반하고자 한다. 그들이 건너야만 하는 '버드나무 시내'는 아마도 모압과 에돔을 가로질러 흐르는 세렛 강(Wady el-Hesa)일 것이다(Oswalt).

성 경: [사15:8]
주제1: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 (I)]
주제2: [모압에 임할 심판]
ꃨ 곡성이...브엘엘림에 미치며 - 이처럼 서둘러 피신해야 하는 이유를 선지자가 요약적인 진술로 제시하니, 즉 '곡성이 사방에 둘렸기' 때문이다. '에글라임'은 사해 남단에 있으며 '브엘엘림'은(위치상 에글라임의 정반대인) 모압의 북동쪽에 있다고 추정된다(Gray). 그렇다면 그 의미는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압 땅 방방 곡곡에서 통곡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것이다.

성 경: [사15:9]
주제1: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 (I)]
주제2: [모압에 임할 심판]
ꃨ 디몬 물에는 피가 가득함이로다 - '디몬'(*)은 '디본'(2절)의 의도적 변형인듯하다. '디몬'은 발음상 '피'(*, 담)와 매우 유사하다. 백성들의 부르짖음과 디몬 물을 붉게 물들인 피, 이것이 귀와 눈을 빌어 표현된 모압의 비극인 것이다.
ꃨ 그럴지라도...더 내리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앙은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9:12,17,21;10:4).
ꃨ 사자를 보내리라 - 앞 구절의 부연 설명이다. 비록 소수의 모압 사람들이 재난에서 모면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들마저 사자의 밥이 되게 하실 것이다. '사자'(*, 아르예)는 대적의 손을 빌려 모압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말이다(Alexander).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고도 완전해서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24:18;암 5:19).

성 경: [사16:1]
주제1: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II)]
주제2: [모압에 대한 권고]
ꃨ 이 땅 치리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 - 현재의 비참한 상황으로부터 모압이 건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유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서 선지자는 유다 왕에게 조공을 바치라고 권유한다. 조공은 복종을 표시하며, 동시에 보호와 도움을 요청하는 간구의 수단이다. 모압은 양들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도 새끼양 십 만의 털과 수양 십 만의 털을 보낸 전력이 있었던 만큼, 그 물품으로는 어린 양들이 적격이었을 것이다(왕하 3:4).
ꃨ 셀라에서부터...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 - '셀라'는 모압 사람들이 도피하였던 에돔의 수도이다(왕하 14:7). 그러나 이 말이 고유 명사로서보다는 '바위'(*, 셀라)로 뒤덮인 모압의 주요 도시들을 지칭하는 집합 명사로 쓰였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Oswalt, G.Rawlinson). 이 공물은 셀라에서부터 출발하여 사해 남부를 돌아 유대 광야를 거쳐 딸 시온 즉 예루살렘에 이르도록 지시되었다.

성 경: [사16:2]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블레셋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모압의 여자들은...새 새끼 같을 것이라 - '모압의 여자들'(*, 베노트 모압)은 모압 마을들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가리킨다(애 1:15;겔 16:55-57 참조). 고향을 떠나 이곳 저곳을 근심스레 방황하는 그들은 이미 '떠다니는 새'요,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나 다름없다. 이러한 그들의 정서가 아르논 강에 속한 나루터에서 가장 진하게 투영된다. 본절은 모압의 처지가 어느 정도로 위태로운가를 여실히 묘사해주고 있다.

성 경: [사16:3]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블레셋 멸망에 대한 예언]
본문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는 사람들은 선지자가 유다의 입장에서 모압에게 말하고 있다고 본다. 즉, 유다의 피난민들을 모압인들이 친절히 대해 주도록 부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모압의 멸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다.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본문을 유다에 대한 모압 사절들의 간청으로 해석한다(Gesenius, Delitzsch, Gary, Oswalt).
ꃨ 모략을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 직역하면 '모략을 자져오며 공의를 실행하며'이다. 그 뜻은 어려운 지경에 빠진 모압 사람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말고 은혜롭게 대우해 달라는 것, 다시 말해서 피난민들을 보호해 달라는 것이다.
ꃨ 정오 때에 밤같이 그늘을 짓고 - 성경에서 종종 '한낮의 뜨거움'은 억압과 고난을 표상하는 말로 쓰인다(4:6;25:4). 그럴진대 '그늘'이 고난으로부터의 구원을 함의함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그 의미는 뒤따라 나오는 구절에서 명확히 해석되고 있다:'쫓겨난 자를 숨기며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

성 경: [사16:4]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블레셋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나의 쫓겨난 자들로...그 피할 곳이 되라 - 본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다:'쫓겨난 모압인들로 너와 함께 머무르게 하라. 너는 약탈자의 얼굴로부터 그들을 숨기는 피난처가 되라'(NIV).
ꃨ 대저 토색하는 자가...멸절하였으며 - 그러나 이러한 피난은 오래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착취자'(*, 하메츠)가 끝장나고 '폭압'(*, 쇼드)이 그쳤으며 '발로 짓밟는 자'(*, 로메스)가 그 땅에서 멸절되었기 때문이다. 동사의 과거 시제는 미래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다. 이 압제의 종언(終焉)은 다윗 장막에서 출현할 미래의 완전한 통치자(왕)의 출현과 밀접히 관련된다.

성 경: [사16:5]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블레셋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신속히 행하리라 - 폭력과 착취로 능사를 삼는 지상 제국이 멸절한 자리에 그와 대조적인 한 왕국이 돋아남을 본다. 이 왕국은 다윗 장막에서 나온 한 왕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왕은 '인자함'(*, 헤세드)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충실함'(*, 에메트)으로 옳고 그름을 판결할 것이며(시 89:24,33 참조), 또한 '공평'(*, 미쉬파트)과 '의'(*, 체데크)를 추구하고 실행할 것이다(9:7;11:4). 이 모든 것들에서 메시야적 시대를 구별짓는 친숙한 특징들을 발견한다. 이 메시야적 소망에 모압도 열방의 하나로서 참여한다. 이는 모압이 시온의 그늘 아래서 피난처를 삼았다는 사실로 말미암는 것이다. 2:1-4에 기록된 예언을 연상시킨다.

성 경: [사16:6]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블레셋 멸망에 대한 예언]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이 피난민들을 숨겨달라는 모압의 간청에 대한 시온의 부정적인 답변, 즉 거절을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을 엄밀히 살펴볼진대, 명백한 거부 의사를 찾아볼 수 없으며, 또한 3,4절에서 2인칭 복수로 되어 있는 점이 위의 주장을 수용하기 어렵게 한다. 따라서 그레이(Gray)의 제안을 따라 본문을 모압의 교만에 대한 독립된 서술로 간주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ꃨ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 선지자는 모압을 교만한 민족이라 단정짓는다. 짧은 본문에서 동일한 어근으로부터 파생된 '교만'이란 낱말이 4번이나 중언(重言)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모압의 교만에 대하여는 25:11;렘 48:42을 참조하라. 이러한 교만은 다른 사람을 쉽게 경멸하며 사소한 것도 참지 못하는 '격분'(*, 에브라)과 자신을 치켜세우기 좋아하는 '자랑'(*, 바딤)으로 연결된다. '바딤'은 '재잘거리다', '쓸데없이 말하다'는 뜻의 '바다드'(*) 동사에서 파생한 말이다. 흠정역은 이 말을 '거짓말'로 번역하였다. 허영과 교만으로 가득 찬 그들의 자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허황된 거짓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교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들 중 으뜸가는 것이며(잠 6:16,17;8:13), 그 최후는 필경 멸망과 넘어짐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잠 16:18). 따라서 다음절에서 모압의 교만은 통곡으로 바뀌어진다.

성 경: [사16:7]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블레셋 멸망에 대한 예언]
ꃨ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라는 말은 모압 사람들이 서로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며 운다는 뜻이다(Calvin). 이 울부짖음에서 제외되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이 비탄의 크기가 클 것임을 뒤이어 나오는 '모두 다(*, 쿨로) 통곡한다'는 말이 보여준다. 이하에서 선지자는 양털과 더불어 모압의 대표적 작물의 하나이며 모압의 교만의 한 요인이기도 한 포도나무에 초점을 맞추어 모압의 황폐상을 비유적으로 묘사해 나간다.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 '길하레셋'은 '길 모압'과 같은 곳으로 추정된다(15:1;왕하 3:25). '건포도 떡'(*, 아쉬쉐)은 건포도를 떡의 모양으로 눌러 만든 것을 말하는데(삼하 6:19;아 2:5;호 3:1), 아마도 길하레셋의 주요 교역 물품인 듯하다. 칼빈(Calvin), 미켈리스(Michaelis) 등은 이 말을 '토대', '주춧돌'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흠정역도 그렇게 해석함). 그러나 모압 덩쿨의 황폐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문맥에 비추어 볼 때 '건포도 떡'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Alexander, Delitzsch). 본문과 병행하는 렘 48:31에서 '길하레셋 건포도 떡'은 '길헤레스 사람'(*, 안쉐)으로 변형되어 나온다.

성 경: [사16:8]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블레셋 멸망에 대한 예언]
ꃨ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 - 헤스본과 십마는 모압의 유명한 포도 산지들이다. 특히 십마의 포도는 그 맛이 달고 강렬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헤스본에 대하여는 15:4 주석을 참조하라. 십마는 르우벤 지파에 속했던 촌락으로(민 32:38;수 13:19), 제롬(Jerome)의 수사학적 표현에 의하면, '헤스본에서 걸어서 500보 되는 거리'쯤에 위치해 있다.
ꃨ 전에는 그 가지가...바다를 건넜더니 - 한창 때 모압의 포도 농사는 북쪽으로 야셀에 미치고 동쪽으로는 시리아 사막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사해 근방까지 펼쳐졌었다. 이는 물론 선지자의 과장된 표현이다. '야셀'은 헤스본 북쪽 15마일 되는 거리에 위치한다(민 32:35;수 13:25).
ꃨ 열국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 - 본문은 어떤 이들이 생각하듯이 십마의 포도주의 우수성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그처럼 방대한 지역에서 번성하던 포도나무가 급작스레 황폐하게 된 원인을 상술하고 있는 것이다(Alexander, Oswalt). 전자의 해석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본문을 '열국의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에 도취되어 쓰러졌도다'로 번역한다(Cocceius, Vitringa, Lowth, De Wette, Delitzsch, Gray). 이들은 본문의 동사 '할람'(*)이 28:1에도 사용되었다는 점을 강력한 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본문과 28:1 사이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상이점이 있으니, 즉 그곳에는 적에 의한 포도나무의 황폐를 암시하는 말이 없고 더욱이 사람들을 넘어뜨린 것도 포도나무가 아니라 포도주였던 것이다(Gesenius, Kissane). 언급된 '열국의 주권자들'은 아마도 여러 민족 단위의 사령관들로 구성된 앗수르 군대를 가리킬 것이다(Leupold).

성 경: [사16:9]
주제1: [이스라엘의 구원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
주제2: [블레셋 멸망에 대한 예언]
ꃨ 내가...나의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 본문의 주제는 선지자의 눈물이다. 선지자는 십마의 포도나무가 황폐케 된 것을 슬퍼하는 야셀의 울음에 자신의 눈물을 섞는다. 그의 눈물은 쉬임없이 흘러 헤스본과 엘르알레를 적신다. 이 눈물은 물론 모압의 참상에 대한 선지자의 인간적 동정심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범죄한 백성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을 간접적으로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하다(Alexander). '엘르알레'에 대하여는 15:4 주석을 참조하라.
ꃨ 너의 농작물에 떠드는 소리가 일어남이니라 - '떠드는 소리'(*, 헤다드)는 원래 포도짜는 농부들이 포도즙을 밟을 때 내지르는 즐겁고 유쾌한 소리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은 비옥한 들판이 침략군의 장화에 의해 짓밟히는 소리이다. 마땅히 흘러야 할 포도즙 대신에 선지자의 '눈물'(*, 데마)이, 마땅히 들려야 할 수확의 환호소리 대신에 포도원이 유린되는 소리가 들린다.

성 경: [사16:10]
주제1: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II)]
주제2: [모압에 대한 권고]
ꃨ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 롤린슨(G.Rawlinson)에 의하면, '틀'은 포도원 가까이에 있다. 이는 바위를 파서 만드는데, 상하(上下) 둘로 나누어 위에서 흐르는 것을 아래에서 받도록 하였다. 포도를 따면 먼저 윗틀에 부어 발로 밟고 그것을 아랫틀로 내려오게 한다. 이때 밟는 사람은 대략 7명이며 맨발로 밟는다고 한다. 이들은 포도를 밟을 때 '포도의 노래'를 불렀다(렘 25:30;48:33).
ꃨ 내가 그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 포도를 수확할 때 부르는 기쁨의 노래를 그치게 하는 이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입에 불과한 것이다.

성 경: [사16:11]
주제1: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II)]
주제2: [모압에 대한 권고]
ꃨ 나의 마음이...그러하도다 - '마음'(*, 메에)과 '창자'(*, 케레브)는 몸의 내장, 심장, 창자를 가리킨다. 이로 보건대, 선지자의 눈물은 그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솟구치는 것이 분명하다. '소리를 발하며'(*, 예헤무)는 직역하면, '격렬하게 떨리며', '요동하며'이다. 모압에서 이루어질 가공할 심판을 생각할 때 선지자의 창자는 마치 하프 줄이 떨림같이 고통으로 뒤틀린다는 것이다. '길하레셋'은 '길헤레스'(렘 48:31)와 같은 곳이다.

성 경: [사16:12]
주제1: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II)]
주제2: [모압에 대한 권고]
ꃨ 그 산당에서...기도할지라도 무효하리로다 - 재난의 순간에 모압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모스 신이 있는 산당에 나아가 몸이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기도하는 것뿐이다.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키-니르아 키-닐르아)는 직역하면 '모습을 드러낼 때, 기진 맥진할 때'이다. 이는 그들이 섬기는 신으로부터 응답을 얻어내기 위하여 제몸을 학대하는 이방 종교의 예배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왕상 18:28 참조). '니르아 닐르아'(*)는 유음 현상이다. 그럴지라도 그들의 모든 노력은 결국 헛된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무효하리로다'(*, 로 유칼)는 '할 수 없을 것이다'이니, 즉 그들이 성전에서 큰소리로 부르짖을지라도 그 응답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성 경: [사16:13]
주제1: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II)]
주제2: [모압에 대한 권고]
ꃨ 전에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어니와 - 선지자가 제시했던 모압에 대한 경고는 이미 오래 전에 그에게 주어졌던 말씀이다. 여기에 새로운 예언이 첨가되어 계시의 결론 부분을 형성한다.

성 경: [사16:14]
주제1: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II)]
주제2: [모압에 대한 권고]
ꃨ 품군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 3년이라는 시기는 예언의 확실성을 기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이 시간은 결코 늦춰지거나 연기될 수 없으니, 왜냐하면 그것이 '품군의 정한 해' 곧 고용 기간이 끝나 품꾼들이 정한 삯을 받기로 되어 있는 그날에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품꾼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 시간이 지체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21:16). 이처럼 모압의 파멸을 확정한 하나님의 시간표는 한치의 착오나 어김도 없을 것이다. 한편 이 '삼년'이라는 기간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듯하며, 다만 본절의 사건은 B.C.734년의 디글랏 빌레셀의 침공 사건 혹은 B.C.718년경의 사르곤 2세의 아라비아 북서쪽 부족민들에 대한 정벌 원정과 연관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ꃨ 모압의 영화와...소용이 없이 되리라 하시도다 - 3년이 지나기 전에 모압의 영화는 '능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 니클라). 즉, 그때에 모압의 많은 무리가 끊어져 무시할 만한 극소수만 남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모압의 운명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교만(*, 게온)으로 시작해서 수치(*, 칼론)로 마감되다.'

성 경: [사17:1]
주제1: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다메섹에 임할 심판 예언]
ꃨ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 유다의 남서쪽에 있는 블레셋과 동쪽의 모압을 살핀 뒤에 선지자의 눈은 북쪽에 있는 다메섹 곧 수리아와 북이스라엘 왕국인 사마리아로 향한다. 이들 두 나라는 전에도 언급된 바 있으나(7-9장), 여기 열방에 대한 경고 가운데 다시 삽입되었다. 본문은 다메섹이 앗수르에 의해 파멸되기 이전에 작성된 것 같다(B.C. 732년 이전). 더욱이 수리아와 에브라임이 함께 거론된 것으로 보아 그들이 군사 동맹을 맺은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B.C. 735년 이후). 따라서 B.C.735-732년 사이에 (아마도 734년) 기록되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B.C. 1,000년경 다메섹은 수리아 연맹의 맹주로서 앗수르와 더불어 고대 근동의 주도권을 다툴 만큼 그 힘이 강력하였다. 그러나 B.C. 732년,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 함락된 이후 이전과 같은 힘을 다시 회복하지 못하였다. 다메섹은 메스포타미아와 애굽을 잇는 무역로의 관문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의 헬몬산과 남의 현무암 평원에 둘러싸인 비옥한 지대였다. 부채살 모양의 일곱 지류로 흐르는 아마나강과 헬몬 산 기슭에서 흘러 내리는 바르발(아와이) 강이 중심을 관류하고 있다(왕하 5:12). '경고'에 대하여는 13:1 주석을 참조하라.
ꃨ 성읍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 - 수도 다메섹의 몰락은 곧 수리아의 멸망을 함의하는 것이다.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이런 수법(제유법)은 선지자의 즐겨 쓰는 표현 기교 중의 하나이다. 선지자는 다메섹이 도시로서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파멸의 무더기로 변모할 것이라고 한다. '도시의 모습을 잃어버린다'는 말은 제국으로서의 위용을 상실한다는 말이다. B.C. 732년, 다메섹을 함락시킨 디글랏 빌레셀은 그의 비문에 이렇게 썼다:'르신의 아버지(벤하닷)의 왕국을...내가 500 성읍들을 파멸시켜 쓰레기더미처럼 만들었다'(Lange). 다메섹은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는 몇 안 되는 고대 도시 중의 하나이다.

성 경: [사17:2]
주제1: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다메섹에 임할 심판 예언]
ꃨ 아로엘의 성읍들이 버림을 당하리니 - '아로엘'(*)이란 지명은 성경에 세 번 나온다. (1)유다에 있는 성읍(삼상 30:28):본문과는 관계가 없다. (2)'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신 2:36;수 12:2;13:9,16):르우벤 지파가 차지했으며, 요단 강 동쪽, 이스라엘 남쪽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다. (3)그 북쪽, 옛 암몬 족속이 차지한 '랍바 앞의 아로엘'(민 32:34;수 13:25):갓 지파가 차지했다. 여기에 언급된 '아로엘의 성읍들'은 요단 강 동편 성읍들을 가리킨다. 수리아의 파멸 경고 뒤에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 뒤따르는데, 그것은 요단 강 동쪽 마을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로엘'이란 이름이 그곳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그 말은 어원적 의미에서 '버림을 당하다'(*, 이르에르), '벗은'(*, 아르아르), '불쌍한'(*, 아리리)등과 유사하다. 버림받은 성읍 '아로엘'은, 사람은 살지 않고 양들만 거하는 목초지가 될 것이다. 각각 따로 거론되었던 다메섹(1절)과 이스라엘(2절)이 다음절에서 함께 다루어진다.

성 경: [사17:3]
주제1: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다메섹에 임할 심판 예언]
ꃨ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 - 에브라임은 유다와 한 핏줄을 나눈 형제국이었음에도 유다를 대적하는 일에 이방 민족인 수리아와 결탁했으므로, 그 운명 역시 수리아와 함께 분유(分有)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 운명은 다음과 같다:'에브라임에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요새화된 성읍들이 제거된다. 다메섹은 한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주권(통치)을 잃는다.' 이어지는 말에서 두 나라의 공동 운명은 더 한층 확실하게 표현된다.
ꃨ 아람의 남은 백성이...이스라엘 자손의 영광같이 되리라 - 선지자의 조롱의 말이다. 전쟁에서 살아 남은 아람의 백성들은 소멸되어져가는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같이 될 것이다(4절).

성 경: [사17:4]
주제1: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이스라엘에 임할 심판 예언]
ꃨ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파리하리니 - 앞절에서 비교된 야곱의 영광, 즉 북이스라엘의 영광이 서술된다. 선지자는 이것을 사람의 신체에 빗대어 말하니 곧 병들어 뼈만 남은 사람과 같다는 것이다. '그 날에'란 말이 암시하듯이, 한때 찬란했던 이스라엘의 영화는 과거지사가 될 것이다(Leupold).

성 경: [사17:5]
주제1: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이스라엘에 임할 심판 예언]
ꃨ 마치 추수하는 자가...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 - 미구에 닥쳐올 이스라엘의 비참이 얼마나 심각할 것인지를 선지자는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그것은 마치 추수꾼이 그 곡식을 베어 팔에 안음과 같고 추수꾼이 남은 이삭을 주움과 같으니,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들이 이같이 원수의 칼에 의해 남김없이 베임을 당할 것이다. '르바임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서쪽에 펼쳐진 넓은 평지를 말하는데(수 15:8;18:16;삼하 5:17-25;23:13 참조), 그 땅의 비옥함이 이스라엘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거명된 듯하다(Calvin).

성 경: [사17:6]
주제1: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이스라엘에 임할 심판 예언]
ꃨ 오히려 주울 것이 남으리니...남음 같으리라 - 그 비참함은 두 번째로 감람나무 열매를 딸 때에 거의 다 떨어지고 그 꼭대기에 '사오개 남은 과실'의 모습으로 비유된다(신 24:20).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이스라엘의 완전한 절멸(絶滅)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남은 열매에서 암시된다('오히려 주울 것이 남으리니'). 여기에 심판으로부터 위로에로 향하는 은밀한 전환이 있다. 아무리 극심한 진노 중에라도 하나님은 긍휼을 잊지 아니하시며 자기를 위하여 신실한 자들을 남겨 두신다. 이들 소수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을 신앙함에 있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성 경: [사17:7,8]
주제1: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이스라엘에 임할 심판 예언]
두 신, 즉 '사람을 지으신 신'과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신'이 대조되고 있다. 모든 일이 형통할 때 흔히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잊고 헛된 것들에 정신을 빼앗긴다(호 4:7). 그러다가 환난을 당해서야 겨우 각성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는다. 이스라엘이 그러하니, 수많은 우상들 - 그중에서 '아세라'와 '태양상'은 대표적인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 을 숭배하던 그들이 이제 큰 재난을 당한 뒤에는 돌아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1:4)를 쳐다보게 될 것이다. '...을 쳐다보다'(*, 솨아알)는 '도움을 간구하다', '앙망하다'는 뜻이다. 즉, 신앙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사람의 손으로 지어진 우상에 대하여는 2:8;44:9-20을 참조하라.
ꃨ 아세라나 태양상 - '아세라'(*, 하아쉐림)는 엘(el) 신의 배우자로서 메소포타미아의 이쉬타르(Ishtar), 애굽의 이시스(Isis)에 해당하는 가나안의 월신(月神)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왕하 17:10)에서 아세라상을 예배하였다(출 34:13;신 16:21;삿 6:25;왕하 23:4). '태양상'(*, 하하마님)은 페니키아인들이 숭배하던 태양신 '바알 하몬'(*)이다(레 26:30;대하 34:4,7;겔 6:4,6,Oswalt, Delitzsch). 흠정역은 이것을 '작은 숲과 형상'으로 번역하였다.

성 경: [사17:9]
주제1: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이스라엘에 임할 심판 예언]
ꃨ 그 날에...황폐하리니 - 의미상 본절은 3절에 연결된다. 선지자는 멸절되리라고 선고된 에브라임 요새의 운명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진입했을 때 그 땅의 거민들이 수풀이나 작은 산 꼭대기에 버려두고 도망간 황폐한 성읍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까닭이 다음절에서 상술된다.

성 경: [사17:10]
주제1: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이스라엘에 임할 심판 예언]
ꃨ 이는 네가...마음에 두지 않은 까닭이라 -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이 같은 형벌을 받는 것은, 첫째 그들이 과거에 자신들을 구원하시며 보호해주셨던 하나님을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구원의 하나님'(*, 엘로헤 이쉬에크)는 '자기 백성을 어려움에서 구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며(시 18:46;25:5; 27:9;62:7;미 7:7;합 3:18), '능력의 반석'(*, 추르 마우제크)은 '택한 백성을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이란 말이다(26:4;30:29;신 32:4,18;시 18:2,31,46;19:14; 28:1;31:3;62:8). 이 이름들은 이스라엘의 체험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ꃨ 기뻐하는 식물을...이방의 가지도 이종(移種)하고 - 심판의 둘째 원인은, 이스라엘이 이방의 종교들을 수입해서 이스라엘 가운데 이식시켰기 때문이다. '기뻐하는 식물'은 곧 '이방의 가지'를 가리키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나무인 이스라엘(5:7)이 하나님을 버리고 대신 자기들의 육신의 기쁨을 좇아 이방인의 사악한 풍습을 모방했다는 말이다(2:6-8). 델리취(Delitzsch)는 '이방의 가지'가 이스라엘과 연합한 다메섹을 가리킨다고 본다.

성 경: [사17:11]
주제1: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이스라엘에 임할 심판 예언]
ꃨ 네가 심는 날에...없어지리라 - 계속되는 묘사는 '아도니스 정원'에 연관된 듯하다. '아도니스'는 담무스(겔 8:14)의 헬라식 명칭으로서, 신화에 의하면 죽었다가 지하의 신으로 부활한다고 한다. 프레이저(Frazer)에 의하면, 주로 여자로 구성된 이 의식의 숭배자들은 흙으로 채워진 바구니나 항아리에 밀과 보리, 상추 등과 그외 여러 꽃을 심고 8일 동안 재배한다. 태양의 빛을 받은 식물은 빨리 자란다. 그러나 그것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므로 또한 빨리 시든다. 이 아도니스의 정원은 아도니스의 표상물 혹은 그 힘의 표현으로 가장 자연스럽게 해석되는데, 이것은 본래 식물의 성장, 특히 농작물의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한 주술이었다. 그럼에도 그 결과는 극히 비참할 것이다. 선지자는 저들이 바라는 것 대신 회피하고자 하였던 근심과 심한 슬픔이 오히려 맺힐 것이라고 말한다. 본문의 요지는 명확하다:'네가 기뻐하는 이방의 가지가 재난의 날에 너를 도와주지 못할 것이며, 또한 네가 수고하고 힘들여 심은 식물이 너에게 아무런 수확도 안겨주지 못할 것이다'(Gray).

성 경: [사17:12]
주제1: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앗수르의 패배에 대한 예언]
ꃨ 슬프다 - 루터(Luther)는 이 말을 저주를 뜻하는 '화 있을진저'로, 칼빈(Calvin)은 이를 이스라엘에 임할 미래의 재난을 괴로워하는 '슬프다'로 번역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뒤이어지는 큰소리와 관련하여 '들으라'로 해석함이 자연스럽다(Henderson, Alexander).
ꃨ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소동하였고 - 선지자가 '들으라'고 주의를 환기시킨 그 소리는 많은 민족이 모여 소동하는 소리이다. 그 소리는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에 비유된다. 여기 언급된 '많은 민족'은 많은 민족들로 구성된 앗수르 군대를 가리킬 것이다.

성 경: [사17:13]
주제1: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앗수르의 패배에 대한 예언]
ꃨ 열방이 충돌하기를...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 직역하면 '열방들이 많은 물의 함성처럼 함성지른다'이다. 그러나 파도치듯 물밀려오는 이 거대한 함성소리도 주의 꾸짖음 한마디에 무력하기 그지없이 흩어지고 만다. 선지자는 이들이 흩어지는 모양을 두 가지로 묘사한다.
ꃨ 산에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 그것은 언덕 위에서 농부가 곡식을 타작할 때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겨와 같다(29:5;호 13:3). 또한 그것은 회오리바람 앞에서 뿌리뽑혀 떠도는 검불과 같다. 이 모든 비유는 아무리 당당한 지상 세력이라도 말씀 한마디로 바다를 평정하시는 전능자 앞에서는 힘을 잃고 만다는 것을 보여준다(막 4:39 참조).

성 경: [사17:14]
주제1: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앗수르의 패배에 대한 예언]
ꃨ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 '저녁'과 '아침'은 여기서 각각 대적의 공포와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하는 대조적인 시간으로 나타난다. 적으로부터 가해지는 위협은 그것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어두움의 공포처럼 무섭고 견딜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아침이 되기 전에 자취도 없이 사라질 악몽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본문이 산헤립의 군대가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몰락한 사건과 관계있다고 생각한다(37:36;왕하 19:35).
ꃨ 이는...우리를 강탈한 자의 보응이니라 - 침략자들이 거둘 몫은 영구한 파멸밖에 없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 그들의 운명이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신자들의 마음에서 두려움은 능히 극복될 것이다:"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

성 경: [사18:1]
주제1: [여호와께 대한 구스의 굴복]
주제2: [구스에 대한 예언]
ꃨ 슬프다 - 구스에 대한 예언으로 간주되고 있는 본장은 다른 곳과는 달리 '경고'(*, 맛사)라는 말로 시작되지 않고 '호'(*)라는 감탄사로 시작한다(13:1;14:28;15:1;17:1과 비교하라).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첫째, 본장이 17:12에 연속되는 예언의 한 부분이며, 둘째, 본장을 구스에 대한 심판예언(경고)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선지자의 논의의 초점은 오히려 앗수르에 향해 있다. 본장은 어떤 의미에서 애굽에 대한 경고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혹은 서론)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장은 19, 20장과는 확연히 구별된다(Oswalt).
ꃨ 구스의 강 건너편 - '구스'(*, 쿠쉬) 곧 에디오피아는 애굽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영토는 오늘날의 에디오피아와 수단, 소말리아를 포함할 만큼 광활하였다(겔 29:10;30:6). 바사 시대에 구스는 인도와 더불어 땅의 맞은편 끝에 있는 나라로 인식되었다(에 1:1). 따라서 탈굼역(Targum)이 본문을 '인도의 강 건너편'으로 해석한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Oswalt). B.C. 715년, 샤바코(Shabako)가 애굽의 왕위에 오름으로써 시작된 애굽 제25왕조(Nubian 왕조) 시대에 이 나라는 북쪽의 앗수르와 함께 서아시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나파타(Napata, 오늘날의 Gebel Berkal)틔 그 당시 정치의 중심지였다. 누비안(Nubian) 왕조의 세 번째 왕인 디르하가(Tirhakah)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히스기야를 핍박하여 라기스를 포위했을 때 그와 접전하였다(37:8, 9; 왕하 19:8, 9, Leon Wood). 한동안 계속되었던 에디오피아인의 애굽 퉁치는, B.C. 633년, 애굽의 삼메티쿠스(Psammeticus)가 그 자리를 다시 찾음으로써 종인을 고하게 된다. 여기에 언급된 '구스의 강'은 나일 강과 그 지류를 가리키며, '그 건너편 땅'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에디오피아인들이 지배하던 남쪽 땅을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Alexander, Delitzsch).
ꃨ 날개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 그 땅은 선지자의 묘사에 의하면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 에레츠 칠찰 케나파임)이다. '칠찰'(*)을 '첼'(*, 그늘)의 반복형(혹은 강조형)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 말을 '날개로 그늘 드리운 땅'으로 해석한다(KJV, Calvin, Grotius, Vitringa, Eichorn, Knobel). 그러나 '칠찰'의 이중 형태가 성경에서 거의 소리와 연관되어 쓰이기 때문에(신 28:42; 삼하 6:5; 시 150:5). 이 말을 본래대로 번역함이 낫겠다. 이소리는 '강물의 철썩거림'(Umbreit)이나 '군인들의 무기가 부딪혀 '쨍그렁거림'(Gesenius, Rosenmuller)이라기보다는 '곤층들의 윙윙거림'(Michaelis, Delitzsch)이 더 어울린다. 무덥고 습기찬 에디오피아 땅에는 곤충들의 날개치는 소리가 흔했다(7:18). 아울러 본문은 앗수르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소집된 군사들의 거대한 함성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성 경: [사18:2]
주제1: [여호와께 대한 구스의 굴복]
주제2: [구스에 대한 예언]
ꃨ 갈대배를 물에 띄우고 - '갈대배'는 파피루스 갈대로 만든 배로서, 극히 가볍고 빨라서 나일 강에 적합하였다(35:7;출 2:3).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직역하면 '사자들을 바다(*, 얌)로 보내며'이다. 여기서 '바다'는 나일강일 것이다(19:5;나 3:8).대부분의 학자들은 본문의 '사자'를 유다 땅에 파견된 에디오피아 사자들로 이해한다.이들은 아마도 앗수르를 견제하기 위한 공동 전선의 필요성을 유다에게 역설하기 위하여 파견되었을 것이다(Ewald, Knobel, Meier). 이들에게 선지자의 음성이 떨어진다.
ꃨ 너희 경첩한 사자들아...가되 - 에디오피아 사자들에 대한 선지자의 회답은 한마디로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이는 에디오피아의 제안에 대한 거절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경첩하다'(*, 칼림)는 말은 '가볍고 날래다'는 뜻이다. 이하에서 에디오피아인과 그 나라에 대한 선지자의 섬세한 인상 묘사가 나열된다. (1)'장대하고 준수한 백성':그들은 '메무솨크'(*), 즉 키가 크고 당당하며(45:14), 또한 '모라트'(*), 즉 윤기나며 부드러운 살갗을 가졌다. 그리스의 사가(史家) 헤로도투스(Herodotus)는 에디오피아인들을 '가장 키가 크고 잘생긴 사람들'이라고 하였다.(2)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 :선지자는 그들이 애굽을 압도하고 그 영토를 크게 확장시킨 사실에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시초부터'(* - , 민-후와할르아)는 공간적인 의미, 즉 '왼거리에서부터'로 해석함이 더 적절하다. '강성하여'(* - , 카우-카우)는 '측량줄', '명령'. 혹은 '힘'을 뜻하는 '카우'(*)를 이중으로 결합시킨 말이니, 이는 온 땅을 명령하며 탁난 용맹성으로 끝없이 영토를 확장시켜 정복해 나가는 그들의 호전성을 나타내는 것이다.(3)'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 : 에디오피아인에 대한 신체묘사가 마지막으로 덧붙여진다. '강들이 흘러 나누인다'는 말은 그 땅이 지극히 비옥함을 암시하는 것이다(Alexander, Delitzsch).

성 경: [사18:3]
주제1: [여호와께 대한 구스의 굴복]
주제2: [구스에 대한 예언]
ꃨ 세상의 모든 거민...너희는 들을지니라 - 앞절의 거절에 대한 이유가 설명된다. 선지자의 말은 지상에 거하는 모든 거민들을 향해 선포된다. 이제 곧 여호와께서 놀라운 역사를 행하실 것이다. 그날에 온 세상은 산 위의 기호를 바라봄같이, 그리고 나팔소리를 들음같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호'와 '나팔'에 대하여는 5:26;13:2;렘 4:5;51:27을 참조하라.

성 경: [사18:4]
주제1: [여호와께 대한 구스의 굴복]
주제2: [구스에 대한 예언]
ꃨ 내가 나의 처소에서 종용히 감찰함이 - 여호와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놀라운 역사는 먼저 고요한 감찰(침묵) 가운데서 비롯된다. 이 침묵은 때로 고난받는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버리심으로, 그리고 악을 밥먹듯이 행하는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부재(죽음)의 증표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할진대, 이것은 목적있는 한정적 침묵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때가 성숙하기까지 참을성있게 기다리시지만, 그 때가 되면(갈 4:4 참조) 지체함없이 신속하게 행동하신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대하여 기다리시는 이 기간은 그들이 하나남의 진노의 막대로서 이스라엘을 때리는 때까지요(10:12), 일단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면 그가 역사하셔서 앗수르를 징벌하실 것이다(10:25, John A. Martin). 본문의 전체적인 표상은 시 33:13, 14에 일치한다.
ꃨ 쬐이는 일광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雲霧)같도다 - 하나님의 정관(靜觀)은 한낮의 햇볕과 저녁의 이슬에 비유된다. 이것들은 곡식을 여물게 하는 데 매우 필요하고 적절한 것이다. '일광'(*, 홈 차흐)은 밝은 빛을 가리키며, '운무'(*, 아브 탈)는 밤에 이슬이 되는 가벼운 구름을 뜻한다. 온 세상을 포괄하는 고요한 응시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영글어간다.

성 경: [사18:5]
주제1: [여호와께 대한 구스의 굴복]
주제2: [구스에 대한 예언]
ꃨ 추수하기 전에... 찍어 버려서 - 하나님의 개입은 추수기가 가까워져서 포도들이 거의 익어갈 무렵 일어난다. 선지자는 그것을 거의 성숙한, 그러나 아직은 신맛이 남아 있는 포도가 달려 있는 연한 가지(*, 하잘잘림)와 길게 뻗은 덩굴손(*, 하느티쇼트)을 베어내는 농부의 작업으로 형상화한다. 여기서 비유되고 있는 '익어가는 포도'(*, 보세르)는 아마도 앗수르일 것이다. 하나님의 개입과 그들의 급작스런 몰락에 대하여는 14:24-27;17:12-14 등을 참조하라.

성 경: [사18:6]
주제1: [여호와께 대한 구스의 굴복]
주제2: [구스에 대한 예언]
ꃨ 산의 독수리들에게와...과동(過冬)하리라 - 앞절에서 농부에 의해 베어지고 찍혀진 포도 가지가 여기서 산과 땅에 무참히 내버려진 시체들로 구체화된다. '독수리들'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트'(*)는 썩은 고기를 뜯어먹는 새를 뜻하는 말이다(46:11;창 15:11). 선지자의 과장된 표현에 의하면, 전쟁터에서 죽음을 당한 시체들의 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새들이 여름 내내 먹고, 맹수들(*, 베헤마트)이 겨울 내내 먹을 것이다. 즉. 배불리 먹을 것이라고 한다(겔 39:17-20). '과하(過夏)하며'(*, 카츠)는 '여름을 보낸다'는 뜻이며, '과동하리라'(*, 테헤라프)는 '겨울을 보낸다'는 뜻이다. 산헤립의 군대가 하룻밤에 몰살당하였을 때, 그 죽은 수가 무려 185,000명에 이르렀다고 성경은 전한다(37:36).

성 경: [사18:7]
주제1: [여호와께 대한 구스의 굴복]
주제2: [구스에 대한 예언]
ꃨ 그 때에 - 앗수르의 패망이 에디오피아에 미칠 영향이 기술되고 있다. '그 때'가 가까운 미래를 말하는지. 아니면 먼 미래를 말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선지자는 앞절의 사건이 있은 직후 에디오피아가 시온 산에 이르러 하나님께 예물드릴 것을 미리 바라보는 한편, 동시에 이것을 통하여 먼 미래에 세계 모든 민족들이 나아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미할 종말론적인 구원의 날을 내다보는 이중적인 전망을 보았을 것이다(2:2-4;습 3:10;행 8:26-39).
ꃨ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백성에게서 - 2절에 묘사된 에디오피아를 가리킨다. 선지자는 수미 쌍관의 구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동일한 나라로부터 두 번의 사절이 파견된다. 첫 번째는 앗수르를 대적하기 위해 함께 연합할 것을 제안하려는 목적으로 온 것이었다(2절). 그러나 두번째는 앗수르를 물리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경배를 드리기 위해 예물을 들고 올 것이다. 이는 시편 기자가 노래한 바,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시 68:31)는 내용과 같다(Delitzsch).
ꃨ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 - 여호와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곳이며 백성들로 하여금 그를 경배하고 그 이름을 부르도륵 명하신 곳, 즉 시온 산은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대체되었다(Calvin).

성 경: [사19:1]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애굽에 관한 경고라 - `애굽'의 히브리어 음역 `미츠라임'(*)은 본래 그들의 조상에서 따온 이름이다(창 10:6). 이 말은 하애굽의 명칭이었으나, 여기서는 애굽 전체를 대표하는 뜻으로 쓰였다. `경고'에 대하여는 13:1을 참조하라.
ꃨ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 여호와께서 임하심은 애굽을 재판하시기 위함이다(시 96:13). 그가 구름을 타고 임하심은 그의 재판이 신속히 이루어질 것을 가리키는 것이요, 동시에 그의 주권이 온 자연에 미침을 나타내는 것이다(시 18:10;68:33;104:3). 성경에서 하나님은 종종 하늘 구름과 바람 날개를 타고 다니시는 것으로 묘사된다(신 33:26; 삼하 22:11).
ꃨ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녹으리로다 - 하나님의 신속하고 거룩한 임재 앞에서 애굽의 우상들(*, 얼릴레)은 두려움으로 떨 수밖에 없으니, 출애굽사건에서 그들은 이미 결정적으로 심판을 받았으며(출 12:12; 렘 46:25), 그때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아무것도 아님'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2:18 참조). 따라서 한번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맛본 저들이 두려움에 떠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앞에서 떠는 것은 우상들만이 아니다. 용감 무쌍하던 애굽인들의 마음(*, 레바브)조차 절로 녹아내린다고 선지자는 말한다(7:2 참조). 고대의 전쟁에서는 적에게 두려움을 주는 그 자체가 곧 승리의 선취라고 여겨졌다.

성 경: [사19:2]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그가 애굽인을 격동하사 애굽인을 치게 하시리니 - 히브리어 원문에는 주어가 3인칭(그가)이 아니라 1인칭(내가)으로 되어 있다. 여호와의 말씀은 4절까지 이어진다. 애굽에 내려진 심판의 형태는 내란이다(3:5; 삿 7:22; 삼상 14:20; 왕하 3:23; 겔 38:21; 슥 14:13). `격동하다'(*, 시크사크)는 말은 `무장하다', `공격하다'는 뜻이다.
ꃨ 그들이 각기 형제를...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 동족 상간(同族相姦)의 비극은 `형제'에서 `이읏'으로, `성읍'에서 `나라' 로 그 범위와 강도를 더해간다. 여기서 `나라'는 수십 개로 나뉘어진 고대애굽의 지방들(nomes, 노메스)을 가리킨다. 어떤 의미에서 애굽의 역사는 끝없는 자기 소모의 역사라고 할 만하다. 처음 여섯 왕조(B.C. 3,000 - 2,200년경)가 변하는 동안 강력한 연합을 유지하였던 애굽은 그 뒤 약 42개의 노메스(지방정부)로 갈리어 난립하는 혼란기를 맞게 된다. 이 같은 혼란은 제12왕조하(B.C. 1990-1785년경)에서 잠시 주춤거렸을 뿐, 이후 애굽은 거듭되는 분열과 내란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특히 에디오피아 왕조(제25왕조, B.C. 715-664년)가 들어서기 직전과 직후(B.C. 715년경). 그리고 삼메티쿠스에 의한 애굽 왕조의 회복(B.C. 664년경)을 전후하여 혼란은 극에 달한 둣하다.

성 경: [사19:3]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 극심한 혼란 가운데서 애굽인의 `정신(*, 루아흐)이 쇠약해질 것이다. 여기서 `정신'은 병행하는 뒷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처리해나가는 `지혜' 혹은 `분별력'을 의미한다. '쇠약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베카'(*)는 `바카크'(*)동사의 나팔형으로서, `공허하게 되다', `쏟아버림을 당하다'는 뜻이다. 애굽인들의 절망 상태는 어쩌다 그들이 입안한 계획들조차 하나님에 의해 못쓰게 된다는 말에서 더욱 심화된다.
ꃨ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 사람들의 마음이 두려움에 녹고(1절) 지역마다 분열되어 골육 상쟁(骨肉相爭)하며(2절) 판단력마저 고갈된(3a절), 이런 상황에서 애굽 사람들이 의지할 데라곤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판명된 우상들과 죽은 자들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비참함은 점강법으로 서술된 `우상-마술사-신접한 자-요술객'의 어순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즉 그들이 가장 신뢰하던 우상에게 도음을 구하나 불만족한 고로 그보다 낮은 마술사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래도 안 되자 신접한자, 요술객들에게까지 미래를 의탁한다는 것이다(Calvin). 여기서 두 가지 교훈을 추론할 수 있다. (1) 사회가 불안할수록 허탄한 미신이 판치고 광신적인 종교 집단이 활개친다. (2)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는 그 어느것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한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할 수 없다.

성 경: [사19:4]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그가 애굽인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붙이시리니 - 본문을 직역하면 `내가 애굽인들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가둘 것이니...'이다. 새로운 군주에 의한 이 압제의 과중함이 두 개의 형용사, 즉 `카쉐'(*, 단단하고 무겁다)와 `아즈'(*, 강하고 견고하다)로 강조되어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 `잔인한 군주'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 학자들간에 이견(異見)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그가 애굽의 삼페티쿠스라 하기도 하고(Grotius, Gesenius, Delitzsch), 혹은 앗수르의 사르곤(Hitzig, Hendelwerk) 혹은 에살핫돈(G.W. Rawlinson), 혹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Clericus), 페르시아의 캄비세스(Vitringa)라고도 한다. 그러나 본문에는 잔인한 군주가 애굽 본토인인지 아니면 외국인인지 조차도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이것을 역사상의 특정한 인물과 결부시키기보다는 `군주들'(*, 아도님)이란 복수 명사에서 알 수 있듯이, 애굽의 여러 군주들에게 지속적으로 압제를 당할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게 여겨진다(Calvin, Alexander).

성 경: [사19:5]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을 `바다'(*,얌)라고 불렀다(18:2). 차고 넘치고 범람하여서 주변 땅들을 적셔주는 나일 강은 예로부터 애굽의 자랑이며 풍요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바다처럼 풍부한 이 강물도 필경은 말라 없어질 날이 이를 것이다. 선지자는 여기서 동일한 의미를 지닌 세가지 동사를 연속적으로 사용하여 나일 강에 임할 기근의 심각성을 강조해서 보여준다 : `니솨트'(*, 타다, 마르다), `하레브'(*, 메마르다, 말라지다), `야베쉬' (*, 말라지다). 본문을 비유적으로 이해하는 학자들은 애굽의 무질서와 재난이 예기되고 있다고 단언한다(Vitringa, Knobel). 반면에 칼빈(Kalvin)은 나일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스스로 무적이라고 자부하던 애굽의 군사력이 붕괴됨올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구절들이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선지자는 나일 강의 기근을 통해서 애굽의 기대와 자랑이 무너지고 그로 인해 애굽의 전사업이 일시에 몰락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Gesenius, Delitzsch, Alexander). 본문의 전체적인 묘사는 욥 14:11과 거의 흡사하다.

성 경: [사19:6]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마르므로 - 전절에 이어 나일 강의 기근이 상세 하게 묘사된다. 바닷물이 없어지고 강이 잦아서 마르게되면 그곳에서 악취가 풍길 것이며 작은 시냇물들도 모두 말라붙게 될 것이다. `애굽 시냇물'은 히브리어로 `예오레 마초르'(*,* )인데, `예오르'(*)는 강을 뜻하는 애굽어이며, `마초르'(*)는 `미츠라임'(*, 1절)의 단수형으로서 '바드로스'(상애굽, 11:11)와 구별되는 의미에서 삼각주를 중심한 하애굽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37:25; 왕하 19:24; 미 7:12, Oswalt, Delitzsch).
ꃨ 달과 같이 시들겠으며 - 직역하면, `갈대'(*, 카네)와 골풀(*, 수프)이 시들겠으며(*, 카멜루)'이다. `갈대'와 '골풀'은 습지에서 자라는 식물들로서 나일 강 역류 지역에 넓게 분포되어있다. 이하에서 나일 강이 마름으로 해서 애굽의 전체 산업에 파급될 여러 국면이 서술된다.

성 경: [사19:7]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나일 언덕의 초장과...곡식 밭이 다 말라서 날아 없어질 것이며 - `나일언덕'은 문자적으로는 `강의 입'이니, 즉 강의 물줄기가 갈라지는 지점(Knobel) 혹은 (Gesenius,Michaelis)를 뜻한다(출 2:3; 잠 8:29). 일반적으로 애굽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일는 대신 나일 강을 통하여 중앙 아프리카의 평원에 내리는 동기(冬期) 강우와 에디오피아 고지대에 내리는 하기(夏期) 강우가 유입되어 언제나 풍족한 수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나일 강의 마름은 곧 애굽 전역의 사막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재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목축업과 농업의 피폐함뿐만 아니라 어업계도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성 경: [사19:8]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어부들은 탄식하여...피곤할 것이며 - 한때 고대 애굽의 경제를 지탱했던 어업 또한 붕괴된다(민 11:5; 겔 29:4 참조). 어부들이 생계를 위하여 낚시줄을 던지거나 그물을 쳐도 고기가 거의 잡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피곤해하며 끝내 슬퍼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변화는 전적으로 나일 강의 마름에서 기인된 것이다.

성 경: [사19:9]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세마포를 만드는 자와 백목(白木)을 짜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 - 이 파괴적인 재난에서 의류 산업이라 해서 제외되지 않는다. `세마포'(*, 세리코트)는 애굽 승려들의 제사복과 미이라를 싸맬 때 쓰는 천으로 가늘고 질긴 고가의 린넨 직물이며, `백목(*, 호라)은 보다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된 흰 모직물을 가리킨다. (Delitzsch)

성 경: [사19:10]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애굽의 기둥이 부서지고...근심하리라 - `기둥'(*, 솨토트)과`품군들'(*) , 오세 세케르)은 사회의 두 구성 집단, 즉 고위 관리자들과 하층 노동자들을 의미한다(Gesenius, Delitzsch).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사회의 모든 계층이 한결같이 고통받게 된다는 말로, 5절이하의 내용은 일단락된다.

성 경: [사19:11]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소안의 방백들은...우준하여졌으니 - `소안'은 애굽 북부 삼각주 동편에 자리한 도시로(민 13:22) 하애굽의 왕궁이 있다. 특히 힉소스 왕조 때에는 정권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방백들'(*, 사림), 곧 지도자들은 애굽의최고 귀족 계급인 제사장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들의 지혜와 학식은 이미 고대에 유명하였다.(왕상 4:30; 행 7:22).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해서 애굽 전체가 재난에 빠진이 상황에서 그들의 지혜조차 전혀 도움이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무기력함은 심지어바로의 곁에 서서 온갖 조언과 모략을 짜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모사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즉 그들은 우준하여졌다.

성 경: [사19:12]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 선지자의 조소는 바로를 향해 주어진다. 본문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 말씀에 대하여는 47:12, 13; 신 32:37, 38; 렘 2:28 을 참조하라.

성 경: [사19:13]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소안의 방백들은...미혹되었도다 - `놉'(*)은 멤피스(Memphis)이며 (렘 2:16; 44:1; 46:14,19; 겔 30:13; 호 9:6), 고대 애굽의 주요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서, 삼메티쿠스에 의해 왕도(王都)로 부상되었다. 소안과 놉은 델타 지역의 북단과 남단이라는 대극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따라서 선지자는 델타(애굽)을 종횡하여 지혜로운 자는 한 사람도 없음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Leupold).

성 경: [사19:14]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여호와께서...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 애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일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님을 설명한다.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애굽의 지혜로운 자들에게 `사특한 영'(*, 루아흐 이웨임), 곧 혼돈의 영을 불어넣으셨다고 말한다. 그 결과, 그들은 마치치 술취한 자가 제 몸을 이기지 못하고 토하며 비틀거림과 같이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을 끝없는 혼란과 비극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28:7,8; 욥 12:25; 렘 48:26 참조).

성 경: [사19:15]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애굽에서...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 - 여호와의 징계로 인해 주어진 이 불가해한 현기증에서 깨어날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머리나 꼬리나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는 지위 고하를 막론한 애굽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포괄하는 말이다(9:14 참조).

성 경: [사19:16]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만군의 여호와의 흔드시는 손 - `손의 흔들림'(*, 테누파트 야드)에서 애굽인들은 전투를 지휘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모습을 본다(30:32). 과거에 자신들이 겪었던 하나님의 손의 능력 즉, 열 재앙이나 갈대 바다의 갈라짐 등을 결코 잊을수 없는 애굽인들로서는 이 전투의 결과를 미리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며(11:15; 출 1 4:25), 따라서 두려음과 떨림은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성 경: [사19:17]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ꃨ 유다의 땅은...듣는 자마다 떨리라 - 유다의 하나님에 대한 에굽인들의 공포가 너무나 지대하므로 그들은 심지어 유다의 땅에 대한 소문을 듣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유다를 생각할 때 그들은 필경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가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모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날에 애굽 사람들이 두려워 떨 것이다'로 요약되는 16절과 본절은 1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심판의 에필로그를 구성하는 한편, 18절에서 시작되는 애굽인들의 변화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축복의 이유를 설명하는 프를로그로서 작용한다.

성 경: [사19:18]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세계 평화에 대한 예언]
ꃨ 그 날에...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 선지자는 두려움의 정점에서 애굽이 여호와께 돌아올 것을 말한다. `다섯 성읍'은 이 사실을 보증해주는 전조로서 주어진다. 이 `다섯'이라는 숫자는 많은 것 가운데서 지극히 적은 것을 뜻한다(30:17; 레 26:8; 고전 14:19). 그러나 분문이 후대의 역사적 사건을 기초로 하여 작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부 현대의 학자들은 언급된 `다섯 성읍'이 포로 귀한 이후 애굽 땅에 건설될 유대인 거류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렘 44:1 참조). 더 나아가 어떤 이는 그 거류지들의 구체적 지명까지 제시한다(Hitzig). 본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향한 애굽인들의 회심을 말하고 있음이 분명할진대,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ꃨ 그 중 하나를 장망성(將亡城)이라 칭하리라 - 장망성, 곧 `장차 망하리라고 예정된 성'은 히브리어로 `이르 하헤레스'(*)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무오한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의심하고 있다. 왜냐하면 애굽의 회심과 그로 말미암는 복된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본문에서 `장망성'이란 단어는 문맥에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난점을 피하기 위하여 칼빈(Calvin)은 `장망성'이라 지명된 한 성이 구원받을 다섯 성읍 가운데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문은 여섯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다섯 가운데 하나가 그러한 이름을 가질 것을 분명히 말한다. 델리취(Delitzsch)는 이와는 다른 각도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려한다. 즉 장망성이 다섯 성읍 가운데 포함된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은 '장차 망하리라고 예정된 성읍'으로 이해될 것이 아니라 `장차'(우상 제단들을) 파괴시킬 `성읍'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본문에 우상 파괴에 대한 어떤 암시도 주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하헤레스'(*)가 `하헤레스'(*)의 오기(誤記)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약 15개의 히브리어 사본들과 심마쿠스역(Symmachus), 탈굼역(Targum), 벌게이트역(Vulgate) 등에 이 단어는 `태양의 성읍'(*, 이르 하헤레스)로 표기되어 있다. 만약 이것이 옳다면 본문의의미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인, 태양신을 섬기던 바로 그 우상의 성읍조차 하나님께 돌아와 가나안 방언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될 것이다'(O-swalt). 현재로서는 이 해석이 가장 타당하게 여겨진다.

성 경: [사19:19]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세계 평화에 대한 예언]
ꃨ 애굽 땅 중앙에는...기둥이 있을 것이요 - 어떤 이들은 본문을 B.C. 2세기의 상황과 결부시킨다. 요세푸스(Josephus)에 따르면, 당시 유다의 대제사장이었던 오니아스(Onias) 4세가 고국에서 도망하여 애굽으로 망명하였을 때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위하여 애굽 왕 필로메토르(Philometor)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것과 똑같은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간청하여 허락받았는데, 이때 그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제시한 성경 구절이 바로 본문이었다고 한다. 그 신전은 레온토폴리스(Leontopolis)에 건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본문은 애굽에서의 유대인의 행위를 말하지 않고 다만 애굽인들 스스로의 행위를 말하고 있다. 따라서 오니아스의 왜곡된 해석과 본문의 참된 의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언급된 `제단'과 '기둥'은 족장 종교의 흔적을 보여준다(Young).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하여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며'(창 12:8), 야곱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응답으로서 돌을 쌓아 `기둥을 세웠다'(창 28:22). `제단'은 하나님께 대한 구약 시대의 예배 행위를 대표하는 말이며, `기둥'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처럼 애굽도 장차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헌신을 표시하기 위하여 제단과 기둥을 세울 것이다(Oswalt).

성 경: [사19:20]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세계 평화에 대한 예언]
ꃨ 표적과 증거가 되리니 - 애굽의 중앙과 변경에 세워지는 제단과 기둥은 그 자체로애굽 땅에 여호와를 경배하는 이들이 있다는 한 `표적'(*,오트)이 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자신을 애굽에 드러내시는 한 `증거'(*,에드)가 될 것이다(Delitzsc- h). 이러한 연합의 결과로 애굽인들은 한때 그들을 징계하셨던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도움을 간구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마치 사사 시대에 구원자를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심같이 그들을 구원하실것이다(삿 3:9, 15을 보라). 요컨대, 본문의 요점은 하나님께서 애굽을 이스라엘과 똑같이 대우 해주신다는 것이다. 오스발트(Oswal-t)가 잘 관찰한 바와 같이, 19절이 창세기의 분위기를 연상 시킨다면, 본문은 사사기에 매우 흡사하다.

성 경: [사19:21]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세계 평화에 대한 예언]
ꃨ 그 날에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애굽에 편만해질 것을 말한다. 이 지식은 전절의 구원의 경험으로부터 주어지는 체험적 지식을 가리키는데 (*, 야다), 이 점에서 그것은 그들이 열 재앙의 쓰라린 과거 속에서 간직하였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것이다(출 7:5; 9:29; 14:4). 왜냐하면 과거의 지식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사도 야고보가 말한바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심을 귀신들도 믿고 떠는 정도에 불과한 반면에(약 2:19), 미래의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기초하고 그와 친밀하게 교제하고 동거하는 정도에 까지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요 17:3 참조).

성 경: [사19:22]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세계 평화에 대한 예언]
ꃨ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 것이라도...고쳐 주시리라 - 끈끈한 유대와 애정으로 결속된 하나님과 애굽의 관계는 부자지간으로 표상된다. 이스라엘과 더불어 새로이 하늘 아버지의 자녀가 된 애굽은 이제 징계의 형태로 하나님의 돌보심을 체험하게 된다. 때로 그들이 죄악의 길에 빠질때, 하나님은 징계의 채찍을 드실 것이나 그럴때라도 그들에 대한 치유룔 잊지 아니하실 것이다(호 6:1; 히 11장). 하늘에 계신 한 분 하나님아버지 앞에서 애굽과 이스라엘의 차별은 사실상 완전히 소멸된다. 따라서 이 둘은 동일한 구원의 계획에 포함되게 된다.

성 경: [사19:23]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세계 평화에 대한 예언]
ꃨ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 애굽과 관련하여 보다 확대된 전세계적인 전망이 펼쳐진다. 선지자의 시대에 고대 근동을 지배하던 두나라, 즉 유다를 중심하여 각각 남과 북에 위치하고 있던 애굽과 앗수르가 이전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마치 친구처럼 서로 왕래하게 될 것이다. 그날에 유다는 이 두 나라를 잇는 통로가 될 것이다. 여기에 선지자의 세계주의적, 평화주의적 비전이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 (1) 그날에 유다는 세계의 중심이 되어 끊어진것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구심점이 될 것이다. (2) 유다를 교량으로 하여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 가로놓인 전쟁의 통로가 그날에 복음의 통로, 평화의 대로로 바뀔 것이다. 본문에서 얻을 수 있는 영적인 교훈은 두 가지이다. 첫째,- 유다의 입장에서 볼 때 -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시키시고 이 둘을 화목하게 하심같이, 신자들은 오늘의 한국상황에서 분열되고 갈라진 인간 관계를 회복시키는 자로서 역할해야 한다(마5: 9; 엡 2:14-18). 둘째, - 애굽의 입장에서 볼 때 - 모든 관계의 우선은 하나님과의 화목이며, 그럴 때에 적대적인 관계들도 해소된다는 것이다(엡 2:13).

성 경: [사19:24]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세계 평화에 대한 예언]
ꃨ 그날에 이스라엘이...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 온 세상을 대표하는 두 개의 초강대국,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 이스라엘이 셋 중의 하나로서 참가하게 될 것인데, 이를 통해서 이전에 두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림을 받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을 중재해 주는 나라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결국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는 약속의 말씀의 실현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성 경: [사19:25]
주제1: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
주제2: [세계 평황에 대한 예언]
ꃨ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복이 있을지어다 - 영적으로 연합된 세 나라에 대한 축복 선언으로 본장은 마감된다. 이 축복은 이스라엘에게만 배타적으로 허락되었던 권리와 영예로운 이름이 애굽과 앗수르에게까지 확대 적용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먼저, 애굽은 `나의 백성'(*, 아미)이라 불리운다.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체결된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10:24; 렘 11:4; 호 1:10; 2:23). 그리고 앗수르는 `나의 손으로 지은 작품'(*,미아세 야다)이라 불리운다. 이는 하나님이 진흙으로 빚어 만든 수고로운 작품이란 말이다(60:21; 64:8;시 11 9:73; 138:8). 이전에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로 쓰임 받았던 앗수르가(10:5)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탈바꿈 할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하여는 `나의 산업'(*, 나할라티)이란 이름이 그대로 주어진다(신 4:20; 32:9; 시 28:9; 47: 4; 94:5; 미 7:14). 이 놀라운 예언은 16-25절에서 무려 6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그날'(* ' 바욤하후), 곧 복음이 만방에 선포되어질 신약 시대에나 성취되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사야 선지자 당대의 모습과는 전혀 조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데, 이런 시간적 괴리감 때문에 선지자의 사고는 다시 현재로 되돌아가게 된다. 다음장에서 그는 애굽의 내적 변화의 시발점이 된 사건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앗수르에 의해서 촉발된 것이다.

성 경: [사20:2]
주제1: [앗수르에 의한 애굽과 구스의 심판 예언]
주제2: [앗수르에 의한 애굽과 구스의 멸망]
ꃨ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향하니라 - 이 말은 본서에 모두 다섯 번 나온다(1:1;2:13:1;37:21). 선지자가 자신의 신분을 암시하는 이 말은 본문에 덧붙인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고귀한 신분을 가진 선지자가 벌거벗은 몸으로 거리를 활보함은 세인들의 눈에 놀라움을 넘어서 의미 심장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기 때문이다(Lange).
ꃨ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 '베(* 사크)는 애통하거나 회계하는 표시로 몸에 걸치는 의복의 일종(창 37:34;삼하 3:31;왕상 20:31;21:27;왕하 6:30;19:1)인데, 일반적으로 선지자들의 예복으로 여겨졌다(왕하 1:8;슥 13:4;마 3;4히 11:37). 이 옷을 바로 갖춰 입기 위해서는 허리에 띠를 둘러야 했다. 의복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였던 동방에서는 이 옷(겉옷)을 벗는 자체만으로도 벌거벗은 것으로 간주되었다(삼하 6:20, Delitzsch). 속옷 이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더구나 신발도 신지 않은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선다는 것이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야 선지자는 주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복하였다.

성 경: [사20:3]
주제1: [앗수르에 의한 애굽과 구스의 심판 예언]
주제2: [앗수르에 의한 애굽과 구스의 멸망]
ꃨ 삼 년 동안 - 이 말이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에 걸리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를 따르면, 그 의미는 선지자가 3년 동안 계속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했다는 뜻이 된다(Calvin, Lange, Delitzsch). 반면에 후자를 따르면, 선지자의 단한번의 기이한 행위가 3년 동안 예표와 기적이 되었다는 뜻이 된다(Jerome, Hitzig, Knobel, Alexander). 히브리어의 구문상 어느 하나를 확장하기는 어렵다. 다만 더위나 추위 등의 다양한 기상 여건 속에서도 선지자가 3년 내내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닐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 전달되어져야 할 표적과 기적이 그처럼 중대한 것이라면 단 한번만이 아니라 계속 반복되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미에서 전자를 지지한다. '삼 년'이라는 숫자는 아마도 앗수르 군대에 의해 아스돗이 포위된 기간 혹은 애굽이 멸망하기 직전의 기간을 가리킬 것이다.
ꃨ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 이는 전쟁 포로의 비참한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4절).
ꃨ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었느니라 - '예표와 기적'(*,오트 우모페트)은 직역하면 '표적과 기사(혹은 징조)'이다(8:18;신 13:1, 2;28:46; 29:3;34:11;시 135:9;렘32:20,21).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는 선지자의 행위를 예표와 징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미래에 있을 애굽과 구스의 불행을 미리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음절에서 그 의미가 제시된다.

성 경: [사20:4]
주제1: [앗수르에 의한 애굽과 구스의 심판 예언]
주제2: [앗수르에 의한 애굽과 구스의 멸망]
ꃨ 이와 같이...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 - 이사야가 온몸으로 실연(實演)한 예언적 행위는 아스돗이 점령된 지 약 30년 후에 사실로 이루어졌다. 앗수르 왕 에살핫돈은 애굽을 공격하여 디르하가의 군대를 패퇴시키고 멤치스를 점령했으며(B.C. 681년), 그의 아들 앗술바니팔에 의해 애굽은 재차 유린되었다(B.C. 669년). 나이의 노소를 불문하고 붙잡혀간 수많은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원문대로는 '애굽의 포로들과 구스의 추방된 자들')는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끌려가야 했으며, 심지어 엉덩이가 드러나는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포로들의 복장에 대하여는 대하 28:15, 그리고 하부를 드러내는 치욕과 수치에 대하여는 3:17;겔 16:37;23:10,29을 참조하라.

성 경: [사20:5]
주제1: [앗수르에 의한 애굽과 구스의 심판 예언]
주제2: [앗수르에 의한 애굽과 구스의 멸망]
ꃨ 그들이...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 여기서 '그들'은 애굽과 구스를 의지하던 유대인 및 팔레스틴 거민들을 가리킨다. 애굽과 구스의 포로됨의 소식은, 그들에게 놀라움과 부끄러움을 안겨다 준다. 놀라움은 그토록 강대하게 보이던 애굽과 구스가 몰락했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요, 부끄러움은 그런한 나라를 그들이 바라고(*, 마바트) 자랑했다는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것이다. '마바트'(*)는 도움을 얻기 위하여 바라봄을 의미한다.

성 경: [사20:6]
주제1: [앗수르에 의한 애굽과 구스의 심판 예언]
주제2: [앗수르에 의한 애굽과 구스의 멸망]
ꃨ 이 해변 거민이 말하기를 - 전절의 놀라움과 부끄러움이 그들 자신의 입으로 토로되어진다. '해변'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이'(*)는 세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즉 '물'에 대조되는 의미에서 '물', '내륙'에 대조되는 의미에서 '해변', 그리고 '본토'에 대조되는 의미에서 '섬'이다. 여기서는 두 번째 뜻으로 쓰여서,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나라들을 가리킨다(23:2,6;습 2:5). 여기에 유다가 포함됨을 물론이다.
ꃨ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 하나님 대신 믿고 의지하던 모든 것이 끊어질 때 느껴지는 암울한 절망의 표현으로 본장은 마감된다(왕하 10:4 참조). 그러나 행간 속에 숨어 하나님의 백성에게 던지는 선지자의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왜 하나님으로 피난처를 삼지 않느냐? 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느냐?'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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