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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전도서

[스크랩] 전도서 4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6:41

전도서 4장 주석

 

=====4:1

  모든 학대(虐待)를 보았도다 - '학대'에 해당하는 '아슈크'(       )는  '누르다',

'사취하다'의 뜻인 '아솨크'(      )의 수동태 분사로서 '압제', '억압'등을 의미한다

(oppressions, KJV, RSV).  본절에서는 세도가들의 수탈과 압제를 가리키는 듯하나 압

제와 피압제의 대상에 대한 분명한 한계를 밝히고 있지는 않다.  구약성경에는 피압제

자에 대한 긍휼에 드러내는 구절이 많다.  예컨대, 왕이 백성들을  압제하는  경우(잠

28:16), 주인이 종을 학대하는 경우(신 24:14), 부자가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경우(잠

22:16;암 4:1) 등에 대한 분개가 그것이다.  특히 나그네나 고아, 과부  등은  각별한

동정의 대상이 되었다(렘 7:6;겔 22:7;슥 7:10).

   위로자가 없도다 - 이 말은 본절에서 두 번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도움받을

길 없는 딱한 처지를 한층 더 강조해 줌과 동시에 이들을 구원할 자는 오직  하나님뿐

임을 암시해 준다.


=====4:2

 그러므로 나는 ... 복되다 하였으며 - 이는 3:22과 대조되며 욥 3:20, 21과 일맥상

통하는 말씀으로서, 학대받는 자들의 비참한 모습으로 인하여 인생의 허무함을 극도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용은 3:22;9:4-10 등을 근거해 볼 때

전도자의 뿌리 깊은 염세주의적 성향을 나타낸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그는 부조리

한 현실에서 느껴지는  인생의  허무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렇게  언급한  것이다

(G.A.Barton).  특히 본절에서 전도자가 학대받는 자들의 편에서 이와같이 말한  것은

그가 비록 이스라엘의 왕이라는(1:1, 12) 높은 권세의 자리에 않아 있으나, 그의 마음

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로서 약한 자들을 동정하는 상태에 있음을 엿보게 한다. 

한편 본절의 '복되다'에 해당하는 '민'(    )은 ' ...보다 위', '  ...보다  더'(more

than, KJV, NASB)라는 비교급의 뜻을 갖는다.


=====4:3

   이 둘보다도 ... 낫다 하였노라 - 이는 욥이 극도의 고난으로 인하여 그의  출생일

을 한탄한 말(3:1-16)을 연상케 한다.  본절 역시 2절에 언급된 바와 같은 인생의  허

무함을 더욱 강도높게 묘사한 것이다.


=====4:4

 내가 또 본즉 ... 시기를 받으니 - 본절에서는 인간이 받는 시기, 질투로 인한  인

생의 허무함을 언급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의 성취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

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수고와 재능에 대해 시기하기 쉽다.  그리고 정정당당한 선의의

경쟁을 하기보다는 지나친 경쟁 의식, 비교 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상대방을  비난하

고 모함하기 쉽다.  '교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쉐론'(          )은 '성공', '성

취', '기술' 등을 의미한다.  영역본들 중 RSV, NASB 등은 이를 '기술'(skill)로 번역

하나 NIV는 이를 '성취'(achievement)로 번역하고 있다.  주석가들  가운데서도  이를

'성공'을 뜻한다고 보는 자가 있는가 하면 '기술'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자도  있다

(Lange, G.A.Barton).  반면 2:21에서는 이를 '재주'(skill, RSV, NIV, NASB)로  번역

하고 있다.  요컨대, 이 말은 사람이 훌륭한 기술로 인하여 성공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M.A.Eaton, Lange).


=====4:5

 우매자는 ... 살을 먹느니라 - 이는 앞절(4절)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함이 무방할 듯

하다.  즉 다른 사람이 행하는 '수고'와 성공을 이루는 '교묘한 일'을  시기,  질투할

뿐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른 우매자에 대한 언급이라는 말이다.  특히 '손을

거두고'란 일하기 싫어서 손놀리기를 멈추고  빈둥거리는  것을  뜻하는  말로서,  잠

6:10;19:24;24:33 등과 유사하다(Lange, G.A.Barton, M.A.Eaton).  그리고 '살을 먹느

니라'란 우매자가 게으름으로 인하여 자기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것을 뜻한다(시 27:2;

사 49:26;미 3:3).  아마도 본절은 전도자가 당시 유행했던 잠언을  인용하여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4:6

  한 손에만 가득하고 ... 나으니라 - 이것도 5절처럼 당시 유행되던 잠언구를  인용

한 것인 듯하다.  원문을 직역하면 '평온함이 가득한 한손이 수고로 가득한 두 손보다

낫다'(Better is a handfull of quietness than two hands full of toil, RSV)의 뜻이

다.  여기서 앞의 '손'은 그 기본어가 '카프'(    )로서 약간 오목하되 거의 평평하게

펼친 손(바닥)을 뜻하며, 뒤의 '손'은 그 기본어가 '호펜'(      )으로서 가능한 많은

것을 움켜쥐기 위하여 오므린 손, 주먹을 뜻한다(G.A.Barton).  이러한 원어상의 뜻은

상호 대조적인 의미를 잘 반영해 준다.  즉 전자의 의미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고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을 나타내는 반면 후자의 의미는 물질에 대해 지나친  욕심

을 내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본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1) 이는  앞절(5절)

과 연관되는 말로서 게으른 우매자가 스스로에 대하여 위로하는 말 또는 '수고'와 '교

묘한 일'을 통해 성공한 부지런한 이웃(4절)에 대해 질투하는 말로  이해한다(Lange). 

(2) 지나친 과욕이나(하반절) 지나친 게으름(5절)을 배격하는 절제된 중용의 삶을  권

고하는 내용이다.  즉 사람이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살면서 너무 지나치게 많이 취

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의 적당량을 취한 상태에서 인생의 묘미를 누리는 것이  최선의

상태임을 가리치는 말이다(M.A.Eaton).  (3) 이는 앞 뒤 문맥의 사상에는 어울리지 않

는 것으로서 전도자에 의해 삽입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볼 때 (2)의

견해가 가장 무난하리라 생각된다.


=====4:7,8

  어떤 사람은 ... 하는고 하나니 - 이는 그 주위에 아들이나 형제가 없는 고독한 자

가 느끼는 인생의 허무함을 언급한 것이다.  특히 본절에서 고독한 자가 주위에  아무

도 없으면서도 끊임없이 일하며 부를 만족하지 않는 것은 그가 느끼게 되는 인생의 허

무함을 더욱 극적으로 묘사해 준다.  한편 '부를 눈에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란

'눈'이 인간 내면의 욕망을 나타내는 외적인 한 기관으로서 표현되어지는 바(2:10) 고

독자가 자족함을 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에 집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본

절에서 고독자가 부를 축적하면서도 그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은,  하나님

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참 기쁨을 누리는 길은 자신의 노력이나 외적인 상황 여

건에 의해서가 아니고 창조주 되시며 기쁨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에 의해 가능함을  엿

보게 한다(2:24, 26).


=====4:9

 두 사람이 ...얻을 것임이라 - 이는 앞절(8절)의 고독자의 허무함에 비해 뜻이  맞

아 협력하는 자들의 유익성을 상대적으로 언급한 말로 보인다.  성경에서  두  사람의

협력의 유익성에 대해서는 여러번 언급되어지는데 그 최초의 암시는 창 2:18-24의  결

혼의 유익성에서 보여진다.  그리고 예수님이 전도의 목적으로 그의 제자들을 둘씩 파

송한 것도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눅 10:1).  그리고 주님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말씀하셨다.  한편 혹자

는 여기에서 '상'이란 이어지는 세 절에 나타나는 세 가지 실례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Lange).  그러나 그보다는 두 사람의 협력으로 얻을 수 있는 갖가지 유익

들을 지칭한 말로 보는 것이 낫다.


=====4:10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 있으리라 -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 '키'(     )라는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가 있다.  이는 본절이 앞절(9절)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본절의 묘사는 흔히 팔레스틴과 같은 거칠은  사

막과 광야 지역에서 여행할 때 일어나는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는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도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갖가지 유혹과 실패로 인해 낙망하고

무의미와 회의감에 젖어 있을 때 옆에서 위로하고 붙들어 일으켜 줄 신앙의  동반자가

필요 요청되기 때문이다.  한편 본절의 '화'란 9절의 '상'이란 말과 대조를 이룬다.


=====4:11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 따뜻하랴 -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또한',  '역

시'의 뜻인 '감'(    )이라는 낱말이 있다.  이것은 본절이 앞절(10절)과 같이  9절에

대한 이유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본절의 '두 사람'은  남편과

아내를 말할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팔레스틴 지역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을 가리키는 것

으로 볼 수 있다.  팔레스틴 지역은 낮에는 기온이 높으나 밤에는 기온이  급강하하여

매우 춥기 때문에 야영할 때 두 사람이 바싹 붙어서 자면 한결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렘 36:22, 30 참조).


=====4:12

  한 사람이면 ... 당(當)하나니 - 문맥상 본절은 계속해서 여행자가 당하는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즉 한 사람이 여행할 때 강도가 덮칠 경우 꼼짝없이 강탈당하

고 말지만 두 사람이 여행할 경우에는 능히 당해낼 수 있는 협동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다(M.A. Eaton, G, A. Barton).

   삽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 여기에서 '삽겹 줄'이란 말은 앞절의 '두

사람'에서 하나를 더한 수를 뜻하며, 이와같이 어떤 수에서 하나를 더하는 식의  표현

은 구약 시대에 흔히 사용된 것이다(11:2;암 1:11).  여기서는 둘 이상의 더 큰  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이라는 표현은 꼭 두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동할 수 있는 두 사람 이상의 많은 수를  암시한다(M.A.  Eaton). 


=====4:13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은 ... 나으니 - 본절에 대하여 혹자는 앞절들과 같이 고

독의 어리석음(8절) 및 단결된 협력의 중요성(9-12절)의 주제와 연결되는 내용이라 말

하며(M.A. Eaton), 혹자는 인간 사회에서 누리는 행운의 허무함을 다루는 것으로 보기

도 한다(Lange).  그러나 이보다는 인간사에서 누리는 명성 또는 인기의 허무함을  다

루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겠다(Delitasch, D.R. Glenn).  한편 본절에서

'소년'(      , 옐레드)은 일반적으로 아동기를 벗어난 1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자들

을 늙은 노인에 빗대어 사용하는 말로 보인다(창 37:10;삼상  3:1;왕상  12:8;14:21). 

그리고 '둔하여'에 해당하는 '케실'(        )의 원래  의미는  '살찐'이나  여기서는

'미련한'의 의미로 유추된다(foolish, KJV, NIV, RSV, NASB).  또한 '간함을'이란  그

원형이 '자하르'(      )로서 '훈계'(instruction, NASB), '경고'(warning, NIV)의 의

미이다.  특히 본절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나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나이가 들수록 지

혜로운  자로  간주되고  존경받았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레  19:32;욥  32:6;시

119:100), 본절은 왕의 어리석음을 더욱 극력하게 나타내준다 하겠다.   한편  본절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말인가 아니면 전도자 자신이 교훈을 위한 한 예증으

로서 언급한 말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반적으로 전자를 주장하는  견해

들 중 탈굼역(Targum)은 아브라함과 니므롯과의 관계를, 미드라쉬(Midrash)는  요셉과

바로 또는 다윗과 사울의 관계를 언급한 구절이라고 본다.  그외에도 요아스(Joash)와

아마샤(Amaziah), 고레스(Cyrus)와 아스타지(Astyages) 등의 관계가 언급된  것이라고

주장되어지기도 한다.  반면 그레츠(Graetz)는 이를 헤롯 대왕과 그의 아들  알렉산더

와의 관계를 말한다고 하며 히찌히(Hitzig)는 톨레미 필리파테(Ptolemy  Epiphanes)와

의 관계를 뜻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 본서의 저작 연대를  솔로몬

시대가 아닌 휠씬 후기 연대로 잡아야 하는 바 납득하기 힘들다.  따라서 본절의 내용

을 가설적인 예화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겠다(Eaton, Wysliffe).


=====4:14

  저는 그 나라에서 ... 되었음이니라 - 이는 13절의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이

'늙고 둔하여 간함을 받을 줄 모르는 왕'의 왕국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후에는

그 지혜로 그 나라의 왕이 되었음을 뜻한다(Eaton).  그러나 본절의 내용이 실제 역사

적 사건을 말하는지 아니면 하나의 가상적인 예화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의

견이 나뉘이며, 만약 실제 역사적 상황을 말한다면 어느 시대,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13절에 언급된 것처럼 복잡하다.


=====4:15

 왕의 버금으로 대신하여 일어난 소년(                                        

        , 하옐레드 하쉐니 아쉐르 야아모드 타흐타) - 직역하면 '그(왕)를  대신하여

뒤이어 일어난 두 번째(제이)의 소년'이란 뜻이다(the second child that shall stand

up in his stead, KJV).  여기서 '두번째'(second)에 대해 혹자는 왕의 다음으로 권세

자리에 않아 차후 그 왕위를 찬탈하는 제2인 선왕(先王)을 이어 왕으로 취임하는 후임

자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Delitzsch, Wright, Knobel).


=====4:16

  저의 치리를 받는 백성들이 ... 아니하리니 - 이는 지혜로운 소년이 후에 왕이  되

어 백성들을 치리한다 할지라도 후 세대의 백성들이 그의 치정(治定)을 기억하거나 그

의 공적등을 인정해 주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즉 소년이 치리하는 세대는 그

세대대로 역사 속에서 가고 그 후 세대는 그 후 세대대로 역사 속에서 진행되어  간다

는 의미로서, 이는 1:11;2:16의 말씀을 연상케 하며 덧없이 흘러가는 이 세상  명성의

헛됨, 무상함을 암시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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